카테고리 없음

프랑스 혁명 + 산업 혁명 - 세상을 바꾼 두 개의 열쇠: 소피와 톰의 200년 대모험 (초등학생용 소설)

베오81 2025. 4. 15. 13:14
반응형

 

프롤로그: 다락방의 속삭임

1855년 런던, 빅토리아 여왕이 다스리는 대영 제국의 심장은 뿌연 스모그 속에서도 요란하게 뛰고 있었다. 거리에는 마차와 새로 나타난 증기 자동차가 뒤섞여 소음을 만들어냈고, 거대한 공장 굴뚝에서는 쉴 새 없이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활기찼지만 어딘가 음울한, 그런 날들이었다.

낡은 벽돌집 2층, 책벌레 열세 살 소녀 소피는 창가에 앉아 두꺼운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호기심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열한 살 남동생 톰이 길 건너 공장의 증기 해머가 내려치는 소리에 맞춰 망치 시늉을 하고 있었다. 톰은 온통 기계 생각뿐이었다. 새로운 발명품, 쿵쾅거리는 엔진 소리, 톱니바퀴와 증기의 힘! 톰에게 세상은 거대한 기계 장치 같았다.

반면 소피는 조용하고 신중했다. 책 속의 이야기와 먼 옛날의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좋아했다. 톰처럼 밖에서 뛰어다니는 것보다, 다락방 구석에서 먼지 쌓인 책 냄새를 맡는 것이 더 좋았다. 소피는 겁이 많았고, 톰은 겁이 없었다. 딱 그런 남매였다.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밖에서 놀지 못하게 된 톰은 좀이 쑤셔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누나! 심심해! 뭐 재미있는 거 없어?"

소피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책이나 읽어."

"으, 지겨워! 어딘가에 막 보물 지도 같은 거 숨겨져 있지 않을까?" 톰의 눈이 반짝였다.

바로 그때였다. 톰의 말에 소피도 문득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역사학자셨던 할머니는 늘 흥미로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할머니가 쓰시던 다락방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유품들이 남아 있었다.

"다락방에 가볼까?" 소피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톰은 신나서 벌떡 일어섰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 도착한 다락방은 어둡고 먼지가 자욱했다. 빛바랜 가구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 사이로, 톰은 구석에 놓인 낡고 자물쇠가 채워진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이거다! 보물 상자야!" 톰이 외쳤다.

소피는 톰을 말리며 상자를 살펴보았다. 자물쇠는 낡았지만 단단해 보였다. 그때 소피의 눈에 상자 옆에 놓인 작은 열쇠 꾸러미가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장 오래돼 보이는 녹슨 열쇠 하나를 자물쇠에 넣어 돌렸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매는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서류들, 빛바랜 리본 묶음, 압화 몇 송이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실망한 톰이 투덜거렸다. "에게, 이게 뭐야. 보물은 없잖아."

하지만 소피는 그 아래 깔린 좀 더 단단한 물건을 발견했다. 작은 벨벳 주머니였다. 주머니를 열자, 고풍스러운 은색 로켓 목걸이 하나가 나왔다. 로켓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놀랍게도 아주 작은 열쇠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섬세한 왕관 모양이, 다른 하나는 투박한 톱니바퀴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열쇠다! 이 열쇠로 뭘 여는 거지?" 톰이 흥분해서 물었다.

로켓 안쪽에는 열쇠 말고 또 다른 것이 있었다. 곱게 접힌 낡은 양피지 조각이었다. 소피는 조심스럽게 양피지를 펼쳤다. 희미한 잉크로 오래된 프랑스어 시(詩)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소피는 학교에서 배운 프랑스어 실력을 더듬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두 개의 열쇠가 문을 여네,

왕관이 구르고 굴뚝이 솟을 때.

하나는 피의 강을 건너 외치네,

자유의 이름 아래 켜진 횃불.

다른 하나는 검은 심장으로 뛰네,

강철의 리듬 속 실과 증기의 노래.

흔들리는 성벽 너머 비밀과,

쿵쾅이는 기계 속 눈물을 찾아.

두 개의 길이 만나는 곳에,

세상을 바꾼 하나의 진실 있으리..."

"우와... 이게 뭐야? 암호인가?" 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피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왕관이 구르고 굴뚝이 솟을 때'...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을 말하는 걸까? 할머니는 역사학자셨다.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두 개의 열쇠'와 '하나의 진실'이라니. 도대체 할머니는 무엇을 남기신 걸까?

소피와 톰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지루했던 비 오는 오후는 순식간에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로 변해 있었다. 남매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한 모험의 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제1장: 할머니의 서재와 두 개의 기록

소피와 톰은 다락방에서 내려와 곧장 할머니의 서재로 향했다. 로켓과 두 개의 작은 열쇠, 그리고 암호 시가 적힌 양피지는 이제 남매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서재는 여전히 할머니의 체취가 남아 있는 듯했다. 벽면 가득 꽂힌 두꺼운 역사 책들, 낡은 지도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돋보기와 펜촉까지. 할머니는 이곳에서 무슨 연구를 하셨던 걸까?

"암호 시에 나온 '흔들리는 성벽 너머 비밀'이랑 '쿵쾅이는 기계 속 눈물'을 찾으라고 했어." 소피가 양피지를 다시 읽으며 말했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시대 이야기인 것 같아."

톰은 서재를 둘러보며 외쳤다. "그럼 할머니가 그 시대에 대한 뭔가 특별한 걸 남겨 놓으셨을 거야! 찾아보자!"

남매는 서재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책장 높은 곳, 서랍 깊숙한 곳, 심지어 낡은 지구본 안까지. 하지만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대부분 딱딱한 역사 책들이거나 오래된 연구 노트들이었다.

"에이, 아무것도 없나 봐." 톰이 실망해서 책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톰의 팔꿈치가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책 한 권을 건드렸다. 『유럽 근대사: 혁명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책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책갈피처럼 꽂혀 있던 낡은 편지 봉투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어? 이건 뭐지?" 소피가 편지 봉투를 주워들었다. 겉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 봉투는 꽤 두툼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낡고 빛바랜 작은 일기장 한 권과 두툼한 편지 묶음이 들어 있었다.

일기장은 표지가 해지고 모서리가 닳아 있었지만, 섬세한 손글씨로 '아멜리 드 라투르(Amélie de Latour)'라는 이름과 '178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안의 내용은 모두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다.

"아멜리... 혹시 우리 증조할머니 성함 아니었나?" 소피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파리에 사셨다고...

편지 묶음은 거친 갈색 끈으로 묶여 있었다. 맨 위 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멜리에게'라고 시작하는 글귀와 함께 '제임스(James)'라는 서명이 보였다. 편지는 영어로 쓰여 있었지만, 군데군데 투박한 북부 영국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제임스라면... 혹시 증조할아버지?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하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거야! 할머니가 이걸 숨겨 두신 거야!" 톰이 외쳤다.

소피는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암호 시, 두 개의 열쇠, 그리고 프랑스 혁명 시대를 살았던 증조할머니 아멜리의 일기장과 산업 혁명 시대를 살았던 증조할아버지 제임스의 편지. 이것들이 바로 '두 개의 길'과 '하나의 진실'로 가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멜리의 일기를 읽어볼게. 프랑스어니까." 소피가 말했다. "톰, 네가 제임스의 편지를 읽어봐. 기계 이야기라면 네가 더 잘 이해할 테니까."

톰은 신이 나서 편지 묶음을 받아들었다. "좋아! 누가 먼저 비밀을 찾는지 내기할까?"

소피는 핀잔을 주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남매는 할머니의 낡은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서재 안은 이제 두근거리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소피는 조심스럽게 아멜리의 일기장 첫 페이지를 넘겼다. 1788년 파리, 아직 혁명의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톰은 제임스의 편지 첫 장을 펼쳤다. 맨체스터의 어느 공장에서 보낸, 1780년대 후반의 편지였다.

이제 막, 소피와 톰의 200년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제2장: 아멜리의 파리, 1789년 - 혁명의 전야

소피는 아멜리의 일기장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사각거리는 종이의 감촉과 희미한 잉크 냄새가 마치 먼 과거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프랑스어로 쓰인 섬세한 글씨는 또래 소녀의 설렘과 불안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1789년 4월 28일, 파리

오늘 리브롱 아저씨네 인쇄소에서 끔찍한 소동이 벌어졌다. 아저씨가 임금을 깎으려 한다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화난 사람들이 몰려가 공장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군인들이 와서 총을 쏘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고 하니, 너무 무섭다. 요즘 파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빵값은 계속 오르고,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길거리에서는 이상한 소문들이 떠돌고, 모두들 곧 열릴 '삼부회' 이야기만 한다.

아빠는 삼부회가 열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고 말씀하신다. 오랫동안 우리 같은 제3신분을 억눌러왔던 귀족과 성직자들의 특권이 사라지고, 세금도 공평해질 거라고. 제3신분 대표 수가 두 배로 늘어났으니 이제 우리 목소리도 커질 거라고 기대하신다. 우리 가게에 들르는 손님들도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리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고. 나도 조금은 기대가 된다. 왕과 귀족들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하지만 엄마는 걱정이 많으시다. 세상이 바뀌는 건 좋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화내고 싸우는 건 무섭다고 하신다. 리브롱 아저씨네 일처럼 말이다. 부디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소피는 잠시 일기장에서 눈을 뗐다. 1789년 5월 삼부회 소집 직전의 파리. 혁명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뒤섞인 공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제3신분'이라는 말도 역사 책에서 본 기억이 났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아무런 권리가 없었던 사람들.

"누나, 뭘 그렇게 심각하게 봐?" 옆에서 제임스의 편지를 뒤적이던 톰이 물었다.

"아멜리 증조할머니 일기야. 곧 삼부회가 열리는데, 파리 분위기가 엄청 긴장된 상태였나 봐.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뭔가 큰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도 있고..."

"삼부회가 뭔데?"

"음... 왕이 세금을 더 걷거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세 신분의 대표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듣는 회의 같은 거래. 제1신분은 성직자, 제2신분은 귀족, 제3신분은 나머지 평민들. 근데 오랫동안 안 열리다가 재정 문제 때문에 다시 열리게 된 건데, 제3신분 사람들이 이번에는 뭔가 크게 바꾸려고 하는 거지."

"흠... 그럼 뭐, 싸움이 날 수도 있겠네?" 톰이 말했다.

소피는 다시 일기장으로 눈을 돌렸다. 아멜리는 그 후로도 파리의 소식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5월 5일, 화려했지만 실망스러웠던 삼부회 개회식 풍경. 표결 방식을 둘러싼 제1, 2신분과 제3신분 대표들 간의 지루한 다툼. 그리고 마침내...

1789년 6월 20일, 베르사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오늘 아침, 제3신분 대표들이 회의장에 가보니 왕의 군인들이 문을 막고 못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왕께서 회의장을 폐쇄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대표들은 분노했지만 흩어지지 않고, 근처에 있는 실내 테니스 코트로 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헌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절대로 해산하지 않겠다고 모두 함께 맹세했다고 한다! 아빠는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우리 대표들이 드디어 진정한 '국민 의회'로서 일어선 것이라고, 이제 누구도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시작되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왕께서 이 일을 가만두지 않으실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소피는 숨을 죽였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 역사 책에서 읽었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아멜리의 기록은 딱딱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한 소녀의 생생한 목소리로 다가왔다.

1789년 7월 12일, 파리

상황이 심상치 않다. 왕께서 백성들의 지지를 받던 네케르 재무 장관을 해고하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리고 파리 주변에 군대가 속속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왕께서 군대를 동원해 국민 의회를 해산시키고 우리를 탄압하려 한다고 수군거린다. 거리에는 불안과 분노가 가득하다. 오늘 팔레 루아얄 광장에서는 어떤 젊은 변호사가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사람들이 흥분해서 무기를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빠는 나에게 절대 혼자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너무 무섭다...

소피는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7월 12일... 그렇다면 이제 곧...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일어나겠구나! 소피는 다음 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멜리는 과연 그 역사적인 순간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제3장: 제임스의 맨체스터, 1788년 - 기계 소리와 땀방울

소피가 아멜리의 일기에 푹 빠져 있는 동안, 톰은 제임스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증조할아버지 제임스의 글씨는 아멜리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힘차고 솔직한 느낌이 들었다. 첫 편지는 아멜리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맨체스터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1788년 11월 5일, 맨체스터

조나단, 잘 지내나? 자네가 시골로 돌아간 뒤로 통 소식이 없구먼. 여기 맨체스터는 여전히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네. 우리 공장에 새로 들여온 '뮬 방적기'라는 놈은 정말 물건이야! 크롬프턴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데, 이놈 덕분에 실 뽑는 속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몰라. 실이 산더미처럼 쌓이니, 이제 방직공들이 실이 모자란다고 투덜댈 일은 없겠지. 덕분에 나 같은 기계 수리공 일거리도 늘었지만 말이야. 밤낮없이 기계 돌리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네.

얼마 전에는 볼턴 씨와 와트 씨가 만든 새로운 증기기관을 봤는데, 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물건 같더군. 이전 뉴커먼 엔진보다 훨씬 힘도 좋고 석탄도 적게 먹는다고 하네. 이제 강가 옆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공장을 세울 수 있게 될 거라며 사람들이 흥분하고 있어. 언젠가는 저 증기기관으로 마차나 배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는군!

하지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라네. 공장 안 공기는 목화 먼지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고, 여름에는 찜통처럼 덥지. 얼마 전에는 어린 아이 하나가 기계에 팔이 끼는 끔찍한 사고도 있었어. 그 작은 아이들이 하루 열네 시간씩 일하는 걸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 그래도 어쩌겠나, 다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도 기술을 더 배워서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멋진 기계를 만들어 보고 싶네. 자네 소식도 좀 전해주게나.

톰은 편지에서 눈을 뗐다. 뮬 방적기, 증기기관... 책에서만 보던 것들이 제임스 증조할아버지의 편지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톰은 마치 자신이 제임스가 되어 시끄럽고 먼지 나는 공장 안에서 기계를 만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흥분과 함께, 고된 노동과 위험한 환경에 대한 걱정도 느껴졌다.

"어때, 톰? 제임스 증조할아버지 편지는?" 소피가 물었다.

"와, 누나! 완전 신기해! 증조할아버지는 기계 수리공이셨나 봐. 뮬 방적기랑 와트 증기기관 이야기가 나와! 근데 공장 환경은 엄청 안 좋았던 것 같아. 어린 아이들도 막 다치고..."

"그랬구나... 산업 혁명 시대 노동자들의 삶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톰은 다음 편지를 펼쳤다. 이번에는 아멜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날짜는 1789년 7월 20일. 프랑스에서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직후였다!

사랑하는 아멜리에게.

자네가 보내준 편지는 잘 받았네. 파리에서 그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왕의 감옥을 시민들이 직접 부쉈다니 말이야.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고? 여기 영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세. 여기서는 얼마 전에 케이의 플라잉 셔틀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며 방직공들이 기계를 부수는 소동이 있었지만, 자네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자네는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고 했지. 나도 자네 마음을 알 것 같네. 여기 맨체스터에서도 새로운 기계들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지만, 그 변화가 모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닐세. 어떤 사람들은 큰돈을 벌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더 가난해지기도 하지. 아이들이 학교 대신 공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걸 보면 이게 정말 '진보'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네.

그래도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꿔야겠지. 기술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일세. 자네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이 우리 영국 공장 노동자들에게도 찾아올 수 있을까? 부디 파리에서의 혁명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라네. 그리고 자네와 가족 모두 무사하기를 기도하겠네. 몸조심하게.

추신: 얼마 전에 내가 고안한 작은 장치가 공장주 눈에 띄어 칭찬을 받았네. 언젠가 내 발명품이 세상을 놀라게 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

톰은 편지를 내려놓았다. 제임스와 아멜리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니!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이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벌어진 두 개의 거대한 사건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암호 시에 나온 '두 개의 길이 만나는 곳'이라는 것은 바로 아멜리와 제임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두 혁명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성벽 너머 비밀'과 '쿵쾅이는 기계 속 눈물'을 찾으라는 암호. 그리고 그 끝에 있다는 '하나의 진실'. 소피와 톰은 이제 막 그 거대한 비밀의 실마리를 잡은 듯했다. 두 개의 열쇠는 과연 무엇을 여는 열쇠일까? 남매는 흥분과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제4장: 1789년 7월 14일, 무너진 성벽

소피는 숨을 죽인 채 아멜리의 다음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며칠 동안의 불안한 기록들 뒤에, 마침내 운명의 날짜가 나타났다.

1789년 7월 14일, 밤

오늘 파리는 온통 불길과 함성으로 뒤덮였다. 아침부터 종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댔고, 창밖으로는 사람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총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동쪽 하늘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왕의 군대가 우리를 공격할 거라고, 바스티유 감옥에 엄청난 무기와 화약이 숨겨져 있다고 외쳐댔다.

아빠는 가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우리에게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엄마는 창백한 얼굴로 계속 성호를 그으셨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침대 밑에 숨어 있고 싶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궁금해서 창문 틈으로 몰래 밖을 엿볼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푸른색과 붉은색 리본을 단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바스티유로 가자!", "독재자를 타도하라!"고 외쳤다. 어디선가 끌고 온 낡은 대포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오후 늦게,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민들이...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시켰다는 것이다! 그 단단하고 무시무시한 성벽이 무너졌다고? 아빠는 옆집 아저씨가 전해준 소식을 듣고 펄쩍 뛰며 기뻐하셨다. "자유의 승리다! 압제의 상징이 무너졌다!"고 외치셨다. 하지만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몸서리쳤다. 감옥 사령관 드 로네 후작이 성난 군중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그의 머리가 창끝에 꽂혀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지만, 이렇게 잔인해도 되는 걸까?

밤이 되었지만 거리의 소란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흥분해서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집 안에 숨어 있다. 나도 기쁜 마음과 무서운 마음이 뒤섞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세상이 정말 바뀌려는 걸까?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오게 될까? 부디... 부디 이 피와 함성이 헛되지 않기를.

소피는 일기장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책에서 수없이 읽었던 바스티유 함락 사건이 이렇게 생생하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경험이었을 줄이야. 혁명은 단순히 영웅적인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대한 폭풍이었다. 아멜리의 섬세한 글씨 속에서 소피는 그 시대를 살았던 소녀의 두려움과 희망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와... 진짜 감옥을 부쉈다고?" 톰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소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람들이 엄청 화가 났었나 봐. 왕이 자기들을 억압한다고 생각했고, 바스티유가 그 상징이었으니까. 근데...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창에 꽂고 다녔다는 건 좀 무섭지 않아?"

톰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무섭긴 한데, 옛날이야기 속 나쁜 성주를 물리치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뭔가 큰일을 하려면 용감해야 하잖아."

소피는 톰의 단순함이 때로는 부럽다고 생각했다. "암호 시에 '흔들리는 성벽 너머 비밀'이라고 했지? 아마 바스티유 함락 같은 사건을 말하는 거였나 봐."

"그럼 '쿵쾅이는 기계 속 눈물'은 제임스 증조할아버지 이야기겠네!" 톰이 다시 제임스의 편지 묶음으로 손을 뻗었다. "계속 읽어볼래!"

 

 

 

 

 

 

 

 

 

 

 

 

 

 

 

 

 

 


제5장: 엔진과 편지, 두 개의 길

톰은 다시 제임스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번 편지는 날짜가 조금 더 뒤였다. 제임스는 여전히 맨체스터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1790년 3월 12일, 맨체스터

조나단, 오랜만이구먼. 자네 편지는 잘 받았네. 시골 생활은 여전히 평화로운가? 여기 맨체스터는 새로운 공장들이 계속 들어서면서 더욱 북적이고 있다네. 얼마 전에 우리 공장에 볼턴과 와트 사에서 만든 최신형 증기기관이 들어왔는데, 얼마나 힘이 좋은지 몰라! 밤낮없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진다네.

덕분에 일감이 늘어서 좋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요즘 좀 힘든 일이 있었네. 내가 예전에 살짝 고안했던 기계 부품 기억하나? 공장주 양반이 그걸 보더니 아주 쓸만하다며 정식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었지.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만들어서 시험해 봤는데, 결과가 아주 좋았어! 생산 속도도 빨라지고 불량품도 줄었지. 공장주 양반도 아주 만족해하며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네.

그런데 말이야, 며칠 뒤에 다른 일꾼들이 나를 찾아와서 험악하게 굴지 뭔가. 내가 만든 것 때문에 자기들 일이 줄어들고 임금이 깎이게 생겼다고 말이야. 어떤 친구는 밤길 조심하라고 협박까지 하더군. 나는 그저 기계를 더 좋게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기술이 발전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네.

아멜리에게서도 가끔 편지가 온다네. 파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야. '인권 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해서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했다는데, 정작 여성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차별받는다고 하더군. 혁명이란 게 참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가 보네.

그래도 나는 계속 꿈을 꿀 걸세. 언젠가는 내 기술로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기계를 만들고 말 걸세. 자네도 건강하게 잘 지내게.

톰은 생각에 잠겼다.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직접 발명도 하셨구나!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에게 미움을 받았다니... 기술 발전이 누군가에게는 좋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톰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멜리와 제임스가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누나, 이것 봐.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발명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싫어했대."

"정말? 왜?" 소피가 물었다.

"그 발명품 때문에 자기들 일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나 봐. 그리고 아멜리 증조할머니랑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어! 프랑스 인권 선언 이야기도 하고..."

소피의 눈이 빛났다. "역시! 두 분은 그냥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거야! 이게 바로 암호 시에 나온 '두 개의 길이 만나는 곳'일지도 몰라!"

"그럼 '하나의 진실'은 뭘까?" 톰이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소피는 할머니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할머니는 분명 더 많은 단서를 남겨두셨을 거야. 그냥 일기랑 편지만으로는 부족해. 할머니가 연구하시던 노트나, 혹시 다른 비밀 장소 같은 건 없을까?"

남매는 다시 서재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할머니가 자주 보시던 책들, 연구 노트들, 지도들... 소피는 할머니의 낡은 『유럽 근대사: 혁명의 시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까 제임스의 편지가 들어 있던 바로 그 책이었다. 혹시 다른 것도 있지 않을까?

소피는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책 곳곳에는 할머니의 깨알 같은 메모와 밑줄이 가득했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부분을 비교하며 읽으신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다 소피는 책 중간쯤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여러 장의 페이지 모서리가 아주 작게, 규칙적으로 접혀 있었다! 마치 비밀 신호처럼.

소피는 조심스럽게 접힌 페이지들을 따라가 보았다. 페이지 번호는 48, 112, 178... 뭔가 의미가 있는 숫자일까? 전화번호? 주소? 아니면...

"톰! 이것 좀 봐!" 소피가 외쳤다. 접힌 페이지들을 펼쳐보니, 각 페이지의 특정 단어에 아주 희미하게 연필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페이지 48: ...런던의 대영 박물관...

페이지 112: ...오래된 자물쇠 그림...

페이지 178: ...할머니가 아끼던 나침반...

"대영 박물관? 자물쇠? 나침반?" 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뜻이지?"

소피는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단순히 일기랑 편지만 읽는 게 아니라, 직접 단서를 찾아 움직이기를 바라셨던 거야! 대영 박물관에 뭔가 있을지도 몰라! 자물쇠는... 혹시 우리가 가진 두 개의 열쇠로 여는 다른 자물쇠가 있다는 뜻일까? 그리고 나침반은... 길을 안내하는 건가?"

"좋아! 그럼 당장 대영 박물관으로 가보자!" 톰이 벌떡 일어섰다.

소피도 흥분했지만, 동시에 약간의 불안감도 느꼈다. 박물관은 넓고 복잡하다.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그리고 만약 할머니의 비밀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혹시 다른 누군가도 이것을 노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까 다락방에서 내려올 때, 창밖에서 누군가 우리 집을 흘끗 보고 지나간 것 같기도 했는데... 너무 예민한 걸까?

소피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용기를 내야 할 때였다. "그래, 가자! 옷 챙겨 입고, 로켓이랑 열쇠, 그리고 이 책 꼭 챙겨!"

남매는 서둘러 모험을 떠날 준비를 했다. 창밖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런던의 하늘 너머로 희미하게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소피와 톰의 가슴은 이제 막 시작될 탐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세차게 뛰고 있었다. 세상을 바꾼 두 개의 열쇠와 하나의 진실을 향한 그들의 대모험이, 드디어 런던의 거리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제6장: 박물관의 속삭임과 의문의 시선

런던의 거리는 활기찼지만 혼란스러웠다.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 상인들의 외침, 새로 등장한 증기 자동차가 내는 '칙칙폭폭' 소리가 뒤섞여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소피는 톰의 손을 꼭 잡고 인파를 헤쳐 나갔다. 톰은 휘파람을 불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톰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한 기계 장치처럼 보였고, 소피의 눈에는 할머니의 비밀과 연결된 단서처럼 보였다.

마침내 그들은 거대하고 장엄한 건물 앞에 섰다. 대영 박물관이었다.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높은 기둥들과 위엄 있는 입구는 남매를 압도하는 듯했다.

"우와... 엄청 크다!" 톰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여기서 뭘 어떻게 찾아야 하지?"

소피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일단 들어가 보자. 할머니 책에 나온 '대영' 박물관이라는 단서밖에 없으니까... 프랑스 혁명이나 산업 혁명 관련 전시실이 있는지 찾아봐야 할 것 같아."

박물관 안은 바깥 거리만큼이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높은 천장 아래,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온갖 종류의 유물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가득했다. 이집트 미라, 로마 조각상, 고대 그리스 도자기... 남매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안내도 같은 거 없어?" 톰이 물었다.

다행히 입구 근처에 박물관 안내도가 있었다. 소피는 꼼꼼하게 안내도를 살폈다. "음... 프랑스 혁명 전시실은 따로 없는 것 같은데... 아! 여기 '18세기 유럽' 전시관이 있네! 그리고 저쪽에는 '산업과 발명' 전시관도 있어!"

"산업과 발명! 거기로 가보자!" 톰이 앞장서려 했다.

"잠깐만, 톰. 할머니 책의 단서는 프랑스 혁명 부분에도 있었어. 아멜리 증조할머니 이야기랑 관련 있을 수도 있잖아. '18세기 유럽' 전시관부터 가보는 게 좋겠어." 소피가 톰을 말렸다.

톰은 잠시 투덜거렸지만, 누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따랐다. 두 사람은 '18세기 유럽' 전시관으로 향했다. 전시관 안에는 화려한 궁정 의상, 정교한 가구, 그리고 프랑스 혁명 당시의 그림과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소피는 아멜리의 일기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전시물들을 유심히 살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 바스티유 감옥의 모형, 그리고...

"누나! 이것 좀 봐!" 톰이 소피의 팔을 잡아끌었다. 톰이 가리킨 곳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사용되었던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된 작은 진열장이 있었다. 그중에는 낡고 녹슨 자물쇠 몇 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할머니 책에 나온 '오래된 자물쇠 그림' 단서!" 소피의 심장이 뛰었다. 진열장 안의 자물쇠들은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 붙어 있는 설명 카드에 소피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스티유 감옥 열쇠 꾸러미 중 일부 (추정), 1789년 이후 발견>

아래 작은 나침반은 당시 파리 시민군(국민 방위대)의 지휘관 중 한 명이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짐. 나침반 덮개 안쪽에 새겨진 문양은 그의 가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임.

소피는 숨을 멈췄다. 자물쇠와 함께 전시된 작은 황동 나침반! 할머니 책의 마지막 단서였던 바로 그 나침반이었다! 소피는 진열장에 코를 박고 나침반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낡았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침반이었다. 설명대로 덮개 안쪽에는 희미하지만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별 모양 같기도 하고, 톱니바퀴 모양 같기도 한...

"이 문양...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소피가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톰이 소피 옆구리를 쿡 찔렀다. "누나, 저기 좀 봐."

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소피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시관 기둥 뒤에서 중절모를 깊게 눌러쓴 키 큰 남자가 이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남매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신문을 펼쳐 얼굴을 가렸다.

"아까 우리 집 앞에서 본 사람 같지 않아?" 톰이 속삭였다.

소피는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 누군가가 자신들을 미행하고 있는 걸까? 할머니의 비밀이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 나침반 문양을 빨리 그려 둬야 해." 소피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작은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혹시 몰라 준비해 온 것이었다. 소피는 최대한 빨리, 하지만 정확하게 나침반 덮개 안쪽의 문양을 수첩에 옮겨 그렸다.

"이제 어떡하지? 저 아저씨가 계속 따라오면?" 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그리고... 할머니가 아끼던 나침반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해! 우리 집 다락방이나 서재에 혹시 있지 않을까? 그 나침반에도 저 문양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

소피는 수첩을 품에 단단히 넣고 톰의 손을 다시 잡았다. 두 사람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전시관을 빠져나왔다. 흘끗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피는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이 등 뒤에 느껴지는 것 같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온 남매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대영 박물관에서 찾은 새로운 단서, '나침반 문양'. 이것이 다음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의문의 남자는 누구일까? 흥분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남매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그들의 모험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예상치 못한 위험 속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제7장: 할머니의 나침반과 새로운 암호

집으로 돌아온 소피와 톰은 곧장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대영 박물관에서 본 나침반 문양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끼셨다는 나침반,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할머니 물건 중에 나침반이 있었을까?" 톰이 먼지 쌓인 상자들을 뒤적이며 물었다.

"기억은 안 나. 하지만 할머니는 역사학자셨으니까, 옛날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계셨을 거야." 소피는 할머니의 낡은 책상 서랍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잉크병, 낡은 펜촉, 압화, 그리고...

"찾았다!" 소피가 외쳤다. 서랍 가장 안쪽에서 작은 나무 상자가 나왔다. 상자를 열자, 부드러운 천 위에 놓인 오래된 황동 나침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영 박물관에서 본 것과 비슷했지만,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할머니가 정말 아끼셨던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소피는 떨리는 마음으로 나침반 덮개를 열었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덮개 안쪽, 바로 그 자리에... 박물관에서 본 것과 똑같은, 별과 톱니바퀴가 결합된 듯한 독특한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거야! 똑같아!" 톰도 옆에서 보고 외쳤다.

"그렇다면... 이 나침반은 단순히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야. 뭔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야." 소피는 나침반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러다 나침반 옆면에 아주 작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는 읽기 어려웠다.

"돋보기! 할머니 서재에 있던 돋보기 가져와!"

톰이 쏜살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돋보기를 가져왔다. 소피는 돋보기를 이용해 작은 글씨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또 다른 암호 시처럼 보였다.

"북쪽 별이 길을 비추고,

검은 강이 도시를 감쌀 때.

옛 공장의 벽돌 아래,

잊힌 목소리가 잠들어 있네.

철의 심장이 멈춘 곳에서,

두 개의 열쇠 하나 될지니..."

"또 암호야?" 톰이 실망한 듯 말했다. "이번엔 또 무슨 뜻이야?"

소피는 시를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북쪽 별... 검은 강... 옛 공장의 벽돌 아래... 잊힌 목소리..." 소피는 런던 지도를 떠올렸다. 런던 북쪽을 흐르는 강이라면... 혹시 리(Lea) 강을 말하는 걸까? 그 주변에는 옛날 공장 지대들이 많다고 들었다. '검은 강'이라는 표현은 아마 공장 폐수 때문에 오염된 강물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런던 북동쪽, 리 강 근처의 옛날 공장 지대인 것 같아!" 소피가 말했다. "아마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일했던 곳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옛 공장? 재밌겠다! 거기 가면 뭔가 찾을 수 있을까?" 톰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잊힌 목소리가 잠들어 있다고 했어. 어쩌면 제임스 증조할아버지의 또 다른 기록이나, 혹은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철의 심장이 멈춘 곳'이라니... 이건 아마 오래된 증기기관이나 공장 기계를 뜻하는 거겠지? 거기서 '두 개의 열쇠가 하나 된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가진 두 개의 열쇠가 드디어 쓰일 곳을 찾은 걸지도 몰라!"

소피는 흥분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옛 공장 지대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봤던 그 의문의 남자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만약 그 남자도 이 암호를 알고 있다면?

"하지만 혼자서는 못 가. 너무 위험할 수도 있어." 소피가 말했다.

"그럼 아빠한테 말씀드릴까?" 톰이 제안했다.

소피는 잠시 고민했다. 아빠에게 말씀드리면 걱정하실 테고, 어쩌면 가지 못하게 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몰래 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바로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아빠 말고... 할머니의 옛 친구분께 한번 여쭤보자! 할머니랑 같이 역사 연구하시던 분이 계셨잖아. 왜, 가끔 우리 집에 오셔서 할머니랑 어려운 책 이야기하시던 할아버지."

"아! 그 수염 하얀 할아버지? 성함이 뭐였더라..." 톰이 기억을 더듬었다.

"위더스푼 교수님! 분명 할머니의 비밀에 대해 뭔가 아실 수도 있어. 그리고 우리가 옛 공장 지대에 가는 것도 도와주실 수 있지 않을까?"

"좋아! 그럼 내일 당장 교수님 댁에 찾아가 보자!" 톰이 찬성했다.

소피는 할머니의 나침반을 소중하게 손에 쥐었다. 박물관에서 시작된 추적은 이제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런던의 잊힌 공장 지대, 그곳에 잠든 비밀은 무엇일까? 그리고 위더스푼 교수님은 과연 남매의 모험에 어떤 도움을 주게 될까? 또 다른 암호와 함께, 미스터리는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제8장: 위더스푼 교수님의 서재

다음 날 아침, 소피와 톰은 약간의 긴장과 큰 기대를 안고 위더스푼 교수님의 집으로 향했다. 교수님의 집은 런던 외곽의 조용한 동네에 있었다. 낡았지만 기품 있는 벽돌집이었고, 담쟁이덩굴이 벽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문이 삐걱 열리며 하얀 수염을 멋지게 기른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났다. 위더스푼 교수님이었다. 그는 여전히 학자풍의 트위드 재킷을 입고 있었고, 반짝이는 작은 안경 너머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오, 소피, 톰! 이게 얼마 만이냐! 어서 들어오너라." 교수님은 따뜻한 미소로 남매를 맞이했다.

교수님의 서재는 할머니의 서재만큼이나 책으로 가득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책과 서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 유물 같은 것들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펼쳐진 두루마리와 돋보기, 파이프 담배가 놓여 있었다. 은은한 책 냄새와 달콤한 파이프 담배 향이 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니? 학교는 쉬는 날인가?" 교수님이 푹신한 가죽 안락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소피는 침을 꿀꺽 삼키고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락방에서 발견한 낡은 상자, 할머니의 로켓과 두 개의 작은 열쇠, 암호 시, 그리고 대영 박물관에서의 발견과 할머니의 나침반에 새겨진 또 다른 암호까지. 소피는 숨 가쁘게 설명하며 할머니의 로켓과 나침반, 그리고 암호 시를 적은 수첩을 교수님께 내밀었다.

교수님은 처음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듣다가, 로켓과 나침반을 받아 들고 나침반 덮개 안쪽의 문양을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약간의 걱정이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교수님은 한동안 말없이 문양과 암호 시를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역시... 엘리자베스(할머니의 이름)가 이걸 너희에게 남겼구나." 교수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문양... 내가 그녀와 함께 오랫동안 연구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정말요? 이게 뭔데요?" 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교수님은 안경을 고쳐 쓰고 남매를 바라보았다. "너희 할머니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역사학자가 아니셨다. 그녀는 과거 속에 숨겨진 진실, 특히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저항하며 세상을 바꾸려 했는지에 깊은 관심이 있으셨지. 특히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이 '이중 혁명'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현대 세계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다."

교수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너희 증조할머니 아멜리와 증조할아버지 제임스... 두 분은 단순한 부부가 아니었다. 각자 혁명의 심장부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편지를 통해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깊은 유대를 맺었던 특별한 분들이셨지. 할머니는 두 분의 삶을 통해 이중 혁명의 거대한 서사 속에 숨겨진 인간적인 진실을 찾으려 하셨던 거다."

"그럼 그 '하나의 진실'이라는 게 혹시..." 소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테지. 너희 할머니는 두 혁명이 인류에게 자유와 풍요라는 엄청난 가능성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과 소외, 그리고 파괴의 위험 또한 낳았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이 두 힘의 조화와 균형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믿으셨지. 아마도 할머니는 너희가 스스로 그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셨을 게다."

교수님은 나침반에 새겨진 두 번째 암호 시를 다시 한번 읽었다. "'옛 공장의 벽돌 아래, 잊힌 목소리가 잠들어 있네...' 리 강 주변의 옛 공장 지대라... 그곳은 산업 혁명 초기에 수많은 공장들이 세워졌다가 지금은 대부분 버려진 곳이지. 제임스가 젊은 시절 일했던 곳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잊힌 목소리'라면... 혹시 제임스가 남긴 또 다른 기록이나 중요한 물건일 수도 있겠구나."

"저희가 그곳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톰이 용감하게 말했다. "두 개의 열쇠가 쓰일 곳이 거기일지도 몰라요!"

교수님은 톰과 소피를 번갈아 보며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곳은 아이들끼리 가기엔 좀 위험할 수도 있다. 낡고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이 많고, 좋지 않은 사람들이 어슬렁거릴 수도 있고..."

바로 그때, 소피가 대영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자신들을 훔쳐보던 의문의 남자에 대해서.

교수님의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흠... 의문의 남자라... 어쩌면 할머니의 연구나 유품에 대해 아는 다른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너희 할머니의 연구 중 일부는 당시 사회의 기득권층에게는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었으니까. 혹은 단순히 값비싼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오해하는 자일 수도 있고."

교수님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알겠다. 너희만 보내는 것은 불안하니, 내가 함께 가 주마. 마침 내일 오후에는 시간이 비는구나. 하지만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단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네! 교수님!" 남매는 기뻐서 소리쳤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좋다.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여기서 만나도록 하자. 편안한 옷차림과 튼튼한 신발을 신고 오너라. 그리고... 혹시 모르니 랜턴도 하나 챙겨오면 좋겠구나." 교수님이 덧붙였다.

소피와 톰은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은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두근거렸다. 드디어 내일이면 잊힌 공장 지대로 가서 할머니가 남긴 비밀의 다음 조각을 찾게 될 것이다. 두 개의 열쇠는 과연 무엇을 열게 될까? 그리고 그들을 노리는 의문의 그림자는 또 누구일까? 남매의 모험은 이제 더욱 흥미진진하고 위험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제9장: 폐허 속의 단서

다음 날 오후, 약속 시간에 맞춰 교수님 댁에 도착한 소피와 톰은 단단히 준비를 한 모습이었다. 튼튼한 워커 부츠를 신고, 두꺼운 외투를 입었으며, 톰의 가방에는 랜턴과 약간의 간식도 들어 있었다. 교수님 역시 평소의 학자풍 모습과는 달리, 오래된 여행용 외투를 입고 손에는 지팡이 대신 투박한 나무 막대기를 들고 계셨다.

"준비됐느냐? 자, 그럼 출발해 보자꾸나."

교수님은 마차를 불러 남매를 태우고 런던 북동쪽으로 향했다. 번화한 시내를 벗어나자 풍경은 점차 황량해졌다. 낡은 창고 건물들과 잡초가 무성한 공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강물은 교수님의 말처럼 검고 탁하게 흐르고 있었다. 공기는 매캐한 석탄 냄새와 알 수 없는 화학 약품 냄새가 뒤섞여 불쾌했다.

"여기가 바로 리 강 유역의 옛 공장 지대란다." 교수님이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백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영국의 산업을 이끌던 심장이었지. 수많은 공장들이 밤낮없이 돌아갔고, 강에는 원료와 상품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가득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고 이렇게 폐허처럼 변해 버렸지."

마차는 낡은 벽돌 건물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 앞에서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할 것 같구나."

세 사람은 마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 무너져 내린 담벼락, 녹슨 철문... 스산한 바람 소리만이 버려진 공장 지대를 감돌았다. 톰은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소피는 왠지 모를 으스스함에 교수님 옆에 바짝 붙어 걸었다.

"암호 시에 '옛 공장의 벽돌 아래'라고 했으니, 아마도 이 근처 공장 중 하나일 텐데..." 교수님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리고 '철의 심장이 멈춘 곳'이라는 표현... 아마도 오래된 증기기관이나 큰 기계가 있던 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은 마치 탐험가처럼 버려진 공장 건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떤 건물은 문이 잠겨 있었고, 어떤 건물은 너무 위험해 보여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해 보이는 오래된 방직 공장 건물을 발견했다. 철문은 녹슬었지만 살짝 열려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 보자꾸나. 조심해서." 교수님이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내부는 어둡고 음침했다. 높은 천장에는 거미줄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먼지와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빛은 깨진 창문 틈으로 희미하게 들어올 뿐이었다. 공장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기계들이 녹슨 채 멈춰 서 있었다. 아마도 방적기나 역직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는...

"저기! 증기기관이에요!" 톰이 랜턴을 비추며 외쳤다. 거대한 보일러와 실린더, 그리고 복잡한 파이프들이 얽혀 있는 낡은 증기기관이 마치 잠자는 거인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철의 심장이 멈춘 곳!"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증기기관 쪽으로 다가갔다. 기관 주변 바닥에는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벽돌 아래'라는 단서를 기억하며, 그들은 증기기관 주변의 벽돌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이쪽 벽돌 색깔이 좀 다른 것 같지 않아요?" 소피가 증기기관 바로 아래쪽 바닥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주변 벽돌보다 약간 더 붉은 빛을 띠는 벽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교수님이 나무 막대기로 그 벽돌을 꾹 눌러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벽돌이 살짝 안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은 힘을 합쳐 벽돌을 들어냈다. 벽돌 아래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는 기름종이로 감싸인 납작한 금속 상자가 놓여 있었다!

"찾았다!" 톰이 환호성을 질렀다.

소피는 떨리는 손으로 금속 상자를 꺼냈다. 상자는 오래되었지만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상자 앞면에는... 작은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자물쇠는 왕관 모양과 톱니바퀴 모양이 새겨진, 바로 로켓 안에 있던 두 개의 작은 열쇠 구멍과 꼭 닮아 있었다!

"열쇠! 누나, 빨리 열쇠 가져와 봐!" 톰이 재촉했다.

소피는 품속에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로켓을 꺼내 두 개의 작은 열쇠를 꺼냈다. 하나는 왕관 모양, 하나는 톱니바퀴 모양. 소피는 먼저 왕관 모양 열쇠를 위쪽 열쇠 구멍에, 톱니바퀴 모양 열쇠를 아래쪽 열쇠 구멍에 넣고 천천히 돌렸다.

'딸깍!'

맑은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세 사람은 숨을 죽이고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보물? 아니면 또 다른 암호?

상자 안에는 두툼한 편지 묶음과 작은 나무 상자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편지 묶음의 맨 위에는 '나의 아들 윌리엄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윌리엄이라면... 바로 소피와 톰의 할아버지 이름이었다! 이것은 제임스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들이었다.

그리고 작은 나무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할머니의 나침반과 똑같이 생긴 나침반 하나와, 두 개의 열쇠가 딱 들어맞는 작은 홈이 파인 나무 조각이 들어 있었다. 그 나무 조각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두 개의 열쇠는 세상을 바꾼 두 힘. 하나는 자유를 향한 외침, 다른 하나는 기계의 심장 소리. 그러나 진정한 열쇠는 이 둘을 함께 품는 지혜와 책임감에 있나니..."

소피는 마지막 문구를 읽으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할머니가 말한 '하나의 진실'일까?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자유와 평등의 정신, 그리고 산업 혁명이 가져온 기술 발전과 생산력. 이 두 가지 강력한 힘이 세상을 바꾸었지만, 어느 한쪽만으로는 부족하며, 두 힘을 어떻게 조화롭게 사용하고 책임감을 갖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할머니가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렇구나... 두 개의 열쇠는 바로..." 소피가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공장 입구 쪽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숨어!" 교수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세 사람은 재빨리 거대한 증기기관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들어온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대영 박물관에서 봤던 그 의문의 남자?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중절모를 쓴 키 큰 남자. 틀림없었다. 박물관의 그 남자였다! 남자는 랜턴으로 주위를 샅샅이 비추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열려 있는 벽돌 바닥과 그 옆에 놓인 빈 금속 상자에 멈췄다.

"젠장! 늦었군! 꼬맹이들이 먼저 찾아냈어!"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눈빛이 분노로 번뜩였다. 남자는 증기기관 뒤편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피와 톰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제10장: 어둠 속의 추격

증기기관 뒤편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소피는 톰의 손을 꽉 잡았다. 톰도 무서웠지만, 누나의 떨리는 손을 느끼고 오히려 용기를 내려 애썼다. 교수님은 침착하게 아이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여긴 사유지입니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소." 교수님이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랜턴 불빛이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을 언뜻 비췄다. "경찰? 웃기는 소리. 이 늙은이랑 꼬맹이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는 내가 더 잘 알지. 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을 먼저 가로채려고? 어림없다!"

'보물?' 소피는 남자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할머니의 비밀이 값비싼 보석이나 금화 같은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가 말한 '조상'이라는 것은, 먼 친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할머니에게 탐욕스러운 먼 친척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났다. 이름이... 스큅이었던가?

"보물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교수님이 시간을 벌려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는 그저 역사 연구를 위해 이곳을 둘러보고 있었을 뿐이오."

"시치미 떼지 마시오, 영감!"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성큼 다가왔다. "그 상자, 당장 내놔!"

남자가 손을 뻗어 상자를 빼앗으려던 순간, 톰이 용기를 내어 행동했다. 옆에 놓여 있던 녹슨 쇠파이프를 발로 힘껏 걷어찬 것이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쇠파이프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이런 꼬맹이가!" 남자가 잠시 흠칫하며 톰을 노려보는 사이, 소피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들어왔던 입구는 남자가 막고 있었다. 다른 출구는 없을까? 그때 소피의 눈에 증기기관 옆쪽, 벽돌 벽 아래에 뚫린 작은 환기구 같은 통로가 들어왔다. 먼지와 거미줄로 막혀 있었지만, 아이들이라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수님, 톰! 저쪽이에요!" 소피가 속삭이며 통로를 가리켰다.

교수님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저자를 막을 테니, 너희 둘 먼저 저리로 빠져나가거라! 어서!"

교수님은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는 피하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교수님의 예상외의 저항에 잠시 주춤했다. 그 틈을 타 소피는 톰의 손을 이끌고 환기구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빨리 와, 톰!"

통로는 좁고 어두컴컴했다. 먼지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기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등 뒤에서는 교수님의 고함 소리와 남자의 거친 목소리, 그리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은 괜찮으실까?" 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실 거야. 우린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소피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대답했다.

얼마나 기어갔을까. 마침내 통로 끝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통로는 공장 건물 뒤편의 잡초가 무성한 공터로 이어져 있었다. 남매는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 온몸이 먼지투성이였지만, 상자는 소피의 품 안에 안전하게 있었다.

"교수님!" 톰이 공장 쪽을 향해 소리쳤다.

바로 그때, 공장 옆문으로 교수님이 뛰쳐나왔다. 외투는 찢어져 있었고 이마에는 작은 상처가 나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얘들아! 어서!" 교수님이 손짓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남자가 욕설을 퍼부으며 교수님 뒤를 바짝 쫓아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교수님보다 훨씬 빨랐다.

세 사람은 공터 너머 강가 쪽으로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이제 거의 따라잡히려는 순간, 강가에 정박해 있던 작은 석탄 운반용 바지선에서 인부 두 명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도와주세요!" 소피가 목청껏 소리쳤다.

인부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듯 잠시 멈춰 섰지만, 다급하게 달려오는 세 사람과 험악한 표정으로 뒤쫓는 남자를 보고는 상황을 짐작한 듯했다. 건장한 인부 한 명이 들고 있던 삽을 남자 앞을 가로막듯 내밀었다.

"이봐, 당신! 무슨 짓이야!"

남자는 인부들의 기세에 잠시 주춤했다. 그 틈을 타 교수님과 남매는 인부들 뒤로 몸을 숨겼다. 남자는 분한 듯 씩씩거리며 노려보았지만, 두 명의 건장한 인부를 상대하기는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결국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휴... 살았다." 톰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소피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교수님은 숨을 고르며 인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맙소. 덕분에 큰일 날 뻔한 걸 면했소."

"별말씀을요. 헌데 무슨 일이셨습니까?" 인부가 물었다.

"아... 그저 정신 나간 사람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지. 이제 괜찮으니 걱정 마시오." 교수님은 자세한 설명을 피했다.

세 사람은 인부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빈 마차를 잡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겪은 위험천만한 추격전과, 할머니의 비밀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소피는 품 안에 든 금속 상자를 꼭 껴안았다. 상자 안에는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편지들과 또 다른 나침반, 그리고 '하나의 진실'에 대한 단서가 담긴 나무 조각이 들어 있었다. 이것들은 단순한 가족의 유품이 아니었다. 어쩌면 할머니가 목숨처럼 지키려 했던, 세상을 바꾼 두 혁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경고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노리는 위험한 존재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들을 통해, 할머니가 찾으려 했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했다. 소피와 톰의 모험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제11장: 제임스가 남긴 편지들

교수님의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방금 전의 긴장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교수님은 소피와 톰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내어주며 진정시켰다.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그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 이제부터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교수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소피는 금속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교수님, 이 상자 안에 있던 편지들이에요. 증조할아버지가 할아버지(윌리엄)에게 남기신 거래요."

교수님은 조심스럽게 편지 묶음을 집어 들었다. 맨 위 편지의 날짜는 1840년대 중반으로, 제임스가 노년에 접어들었을 시기였다.

"흠... 자네 할아버지 윌리엄에게 남긴 편지라... 이건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겠구나. 제임스가 자신의 삶과 시대를 어떻게 돌아보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세 사람은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첫 번째 편지를 펼쳤다. 제임스의 글씨는 젊은 시절보다 조금 더 흘려 쓴 듯했지만, 여전히 힘이 느껴졌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윌리엄에게,

네가 보낸 편지는 잘 받았다. 런던은 여전히 번잡하고, 새로운 철도가 놓이고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나도 놀라곤 한단다. 내가 젊었을 때 맨체스터에서 처음 증기기관을 보고 흥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상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는구나.

네가 학교에서 역사와 과학을 배우며 세상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궁금해하는 것을 보니 기특하구나. 아비로서 네게 해줄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너는 아마 아비가 젊었을 때 기계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에 열광했던 이야기만 기억하겠지. 그래, 그때는 정말 가슴 뛰는 시대였다. 기계의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빈곤과 무지에서 벗어나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

하지만 아들아, 세상을 살아보니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우리가 만든 기계들은 놀라운 생산력으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를 만들어냈지만, 그 부는 소수의 공장주와 자본가들에게 집중되었지. 수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비좁고 더러운 도시 빈민가에서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단다. 내가 젊었을 때 보았던 어린 아이들의 고통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네 증조할머니, 아멜리를 기억하니? 내가 가끔 이야기해 주었지. 프랑스 혁명의 불길 속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던 용감한 여인이었지. 그녀는 편지를 통해 내게 압제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이상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기계의 힘으로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지. 프랑스에서는 자유를 외쳤지만 공포정치라는 피바람이 불었고, 영국에서는 기계가 풍요를 약속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했단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자유를 위한 혁명과 생산력을 높이는 기술 발전, 이 두 가지 강력한 힘은 분명 세상을 바꾸는 열쇠였는데, 왜 세상은 여전히 고통과 불의로 가득한 것일까?

소피와 톰은 숨죽여 편지를 읽었다. 제임스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변화를 깊이 성찰하고 고민했던 사상가이기도 했다. 아멜리와의 관계 역시 젊은 시절의 교류를 넘어, 평생에 걸쳐 그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교수님이 다음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단다, 아들아. 문제는 '열쇠' 자체가 아니라 그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는 것을. 프랑스 혁명이 외친 '자유와 평등'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물질적 기반과 생산력 발전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산업 혁명이 가져온 '기술 발전과 생산력'은 엄청난 힘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연대라는 가치와 함께하지 않으면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찾던 '하나의 진실'은 바로 이것이었을 게다.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는 힘은 '정치적 자유'와 '기술적 진보'라는 두 개의 열쇠를 따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사용하여 모든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여기에는 막중한 '지혜'와 '책임감'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든 기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 혜택이 소수에게만 돌아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평생에 걸쳐 얻은 깨달음이고, 너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이야기다.

이 나침반은 네 증조할머니 아멜리가 내게 준 선물이다. 그녀는 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을 주었지. 이 나침반 안에는 내가 평생 간직해 온 작은 비밀이 담겨 있다. 언젠가 네가 혹은 너의 후손들이 이 비밀을 발견하고, 내가 남긴 이 고민의 의미를 이해해 줄 날이 오기를 바란다...

편지는 거기서 끝났다. 소피와 톰, 그리고 교수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임스의 편지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을 향한 사랑과 함께,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깊은 성찰과 당부였다. '두 개의 열쇠', '하나의 진실', 그리고 '지혜와 책임감'. 할머니가 남긴 암호의 의미가 마침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소피는 아까 공장에서 찾은 또 다른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제임스가 아들에게 남긴 이 나침반은 할머니의 것과 똑같이 생겼지만, 훨씬 더 새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가 이 나침반을 할머니께 물려주셨고, 할머니는 이걸 연구에 활용하신 거군요."

"그렇겠지."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비밀이란... 아마도 이 나무 조각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게다." 교수님은 아까 상자에서 나온, 두 개의 열쇠 홈이 파인 나무 조각을 가리켰다.

톰이 조심스럽게 로켓 속의 작은 열쇠 두 개를 나무 조각의 홈에 끼워 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무 조각 옆면에서 '딸깍' 소리가 나며 아주 작은 서랍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서랍 안에는 곱게 접힌 낡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소피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그것은 아멜리가 제임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인 듯했다.

...비록 우리의 길이 달랐고, 많은 슬픔과 좌절을 겪었지만, 제임스, 우리는 같은 꿈을 꾸었다고 믿어요. 더 정의롭고 인간적인 세상을 향한 꿈 말이에요. 혁명의 불길도, 기계의 소음도 언젠가는 잦아들겠지만, 그 꿈만은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기를...

소피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200년 전,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의 진심이 시공간을 넘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이제 모든 비밀이 풀린 걸까요?" 톰이 물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비밀은 풀린 것 같구나." 교수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스큅이라는 자가 여전히 너희가 가진 로켓이나 상자에 값비싼 보물이 있다고 믿고 있다면, 너희는 여전히 위험할 수 있다. 당분간은 몸조심해야 한다."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할머니가 남긴 진실을 찾았지만,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현재를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방해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창밖으로는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런던의 가로등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소피와 톰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남매였던 그들은, 이제 세상을 바꾼 두 혁명의 비밀을 알게 된, 조금은 특별한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조상들이 남긴 질문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두 개의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며 살아갈 것인가?'

 

 

제12장: 돌아온 일상, 새로운 시작

며칠 후, 소피와 톰은 다시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져 보였다. 아침을 깨우는 공장의 기적 소리, 거리를 오가는 마차와 증기 자동차들, 신문에 실린 정치 뉴스, 심지어 책 속의 역사 이야기까지.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아멜리와 제임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격동의 시대와 연결되어 느껴졌다.

금속 상자와 그 안의 편지들, 두 개의 나침반과 열쇠들은 교수님의 도움으로 안전한 곳에 보관하기로 했다. 스큅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교수님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셨고, 당분간은 남매에게 직접적인 위험이 없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셨다.

어느 주말 오후, 소피와 톰은 할머니의 서재에 다시 마주 앉았다. 창밖으로는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런던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 높이 솟은 공장 굴뚝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은 희뿌연 스모그까지.

"누나,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말한 '지혜와 책임감'이라는 거, 너무 어려운 것 같아." 톰이 턱을 괴고 말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우린 그냥 어린애인데."

소피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할머니랑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 같아. 아주 작은 일부터라도 말이야."

소피는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신문을 집어 들었다. 얼마 전 콜레라가 유행했던 런던 빈민가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깨끗한 물 부족과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봐, 톰.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도 없이 힘들게 살고 있어. 기술은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말이야.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지도 몰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것."

톰은 신문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음... 공장에서 나오는 더러운 물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너무 가난해서 그런가?"

"둘 다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거야. 아멜리 증조할머니가 '인권 선언'을 읽고 여성의 권리에 대해 질문했던 것처럼, 제임스 증조할아버지가 기술 발전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말이야."

소피는 책상 서랍에서 빈 노트를 꺼냈다. "우리, '이중 혁명 탐정단' 노트를 만들어 볼까? 우리가 발견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궁금한 것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보는 거야."

톰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좋아! 그럼 첫 번째 질문은 이거야. '어떻게 하면 런던의 강물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까?'"

"좋은 질문인데! 그럼 나는... '모든 아이들이 공장이 아니라 학교에 갈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피도 노트를 펼치고 적기 시작했다.

남매는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고 질문들을 쏟아냈다. 빈부 격차 문제, 공장 매연 문제, 여성들의 투표권 문제,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소피와 톰은 더 이상 역사를 딱딱하고 지루한 옛날이야기로만 느끼지 않았다. 역사는 바로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었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주는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그때, 문밖에서 아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저녁 먹으렴!"

남매는 노트를 덮고 일어섰다. 서재 창문 너머로 런던의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여전히 세상은 복잡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가득했지만, 소피와 톰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을 바꾼 두 개의 열쇠는 이제 그들의 손 안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열쇠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유를 향한 열망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라는 이름으로.

소피와 톰은 이제 알게 되었다. 진정한 모험은 다락방이나 폐허 속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자신들이 발 딛고 선 현실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험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두 개의 혁명이 뒤흔든 세상 속에서, 소피와 톰은 그렇게 한 뼘 더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날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은 이제, 그들이 직접 써 내려갈 미래의 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