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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징비록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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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징비록은 전쟁이 끝난 뒤의 일을 기록한 책이다. 전쟁 이전의 일도 이따금 함께 적었는데, 재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밝히기 위해서다.

아, 임진년인 1592년에 일어난 전쟁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서울을 비롯한 여러 중요한 지역이 차례로 무너졌고, 임금께서는 도성을 떠나 멀리 피란해야 했다.

그런데도 나라가 끝내 오늘까지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대 임금들이 오랫동안 백성을 어질고 두텁게 다스린 은혜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고, 백성들이 나라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임금께서 명나라를 정성껏 섬겨 온 뜻도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나라를 구하려는 명나라 군대가 여러 차례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본래 변변한 재주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라가 떠돌고 무너지던 때에 중대한 책임을 맡았다. 나는 나라가 기우는 것을 바로 세우지도 못했고, 위태로운 상황을 구해 내지도 못했다.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기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온갖 난리를 겪고 우연히 목숨을 보전하여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이것을 어찌 다행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지난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두려웠다.

그래서 난리 가운데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일을 대강 적어 두었다. 임금께서 서울을 떠난 때부터 전쟁의 주요 경과에 이르기까지 내가 겪거나 들은 일을 기록하고, 그 밖에 당시 올렸던 글과 관련 기록도 뒤에 덧붙였다.

글 자체는 볼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지난 잘못을 경계하고 앞으로 닥칠 일을 대비하려는 뜻을 남기고, 동시에 나라의 큰 은혜를 입고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내 죄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제1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신이 오다 - 1587년, 10월, 날짜 미상.

15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다치바나노 야스히로이라는 사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편지를 가지고 조선에 왔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조선과 관계를 맺어 왔다.

처음에는 일본의 지배자가 다른 집안이었고, 조선과 일본은 약 이백 년 동안 큰 충돌 없이 외교 관계를 이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곤 했다.

신숙주도 일본을 다녀온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훗날 성종이 신숙주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신숙주가 대답했다.

“바라건대 나라에서는 일본과의 화친을 잃지 마십시오.”

성종은 그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

그 뒤 조선에서도 다시 일본에 사신을 보내려 한 적이 있었다.

사신 일행이 대마도까지 갔으나 거친 바다를 겪고 병까지 생겼다. 결국 사신은 일본 본토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뒤로 조선은 일본에 정식 사신을 거의 보내지 않았다.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정해진 예법에 따라 접대하는 정도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사이 일본의 권력자가 바뀌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낮은 신분에서 출발해 전쟁을 거듭하면서 세력을 키운 사람이었다.

그의 출신을 두고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건너간 사람의 후손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신분이 매우 낮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그가 힘이 세고 싸움을 잘했으며, 군대에서 공을 세우면서 차츰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마침내 그는 일본의 여러 경쟁 세력을 차례로 굴복시켰다.

서로 싸우던 수많은 지역을 하나로 합치고 일본의 실권을 장악했다.

일본 안을 거의 평정하자 히데요시는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외국을 침략하려는 뜻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신은 계속 조선에 가는데 조선에서는 우리나라로 사신을 보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를 업신여기는 일이다.”

히데요시는 다치바나노 야스히로에게 조선으로 가서 조선 사신을 일본으로 보내라고 요구하게 했다.

그가 보낸 편지에는 천하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매우 거만한 표현까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당시 일본 내부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대마도 사람들이 조선과 일본 사이를 오가면서 일본에서 내려온 명령과 소식을 마음대로 감추거나 고쳐 전달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은 히데요시가 실제로 얼마나 큰 야심을 품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치바나노 야스히로의 오만한 태도 - 1587년, 10월, 날짜 미상.

다치바나노 야스히로은 당시 쉰 살이 넘은 사람이었다.

몸집이 크고 생김새도 당당했으며, 머리카락에는 이미 흰빛이 많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행동은 거칠고 오만했다.

예전에 조선에 오던 일본 사신들과는 태도가 크게 달랐다.

당시 일본 사신이 조선 땅을 지나갈 때에는 지방 백성을 길 양쪽에 세워 창을 들게 하는 관례가 있었다.

조선의 군사적 위엄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다치바나노 야스히로은 그것을 보더니 비웃었다.

“창이 너무 짧구나.”

어느 고을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곳 수령의 머리가 희어진 것을 보고 통역관을 시켜 말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창과 칼 사이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머리가 이렇게 희어졌다. 그런데 그대는 편안한 곳에서 별일도 하지 않았을 텐데 어찌 머리가 그렇게 희었는가?”

조선의 관리들을 대놓고 조롱한 것이다.

서울에 도착한 뒤에도 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연회가 열렸을 때에도 질서를 지키지 않고 함부로 행동했다.

조선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이전 일본 사신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

그가 돌아갈 때 조선 조정은 히데요시가 보내온 편지의 말이 지나치게 거칠고 무례하다는 이유로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조선 사신을 일본에 보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다치바나노 야스히로은 일본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보고했다.

히데요시는 크게 화를 냈다.

전해지는 말로는 결국 다치바나노 야스히로을 죽이고 그 집안까지 벌했다고 한다.

다치바나노 야스히로과 함께 왔던 사람들이 조선의 지형과 사정을 자세히 살펴 히데요시에게 보고했다는 말도 있었다.

소 요시토시가 다시 조선에 오다 - 1589년, 6월, 날짜 미상.

얼마 뒤 소 요시토시가 조선에 왔다.

소 요시토시는 일본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까운 관계에 있던 사람이었으며 히데요시의 신임도 받고 있었다.

당시 대마도를 다스리던 집안은 오랫동안 조선과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런데 실제 대마도의 일을 소 요시토시가 많이 맡고 있었다.

그가 조선에 와서 다시 요구했다.

“조선에서도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 주십시오.”

조선에서는 바닷길이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러자 소 요시토시가 말했다.

“제가 대마도의 일을 맡고 있으니 대마도를 통하여 안전한 길을 마련하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데에는 조선이 더 이상 바닷길을 핑계로 거절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 있었다.

동시에 조선의 실정을 직접 살펴보려는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소 요시토시는 일본 승려 현소 등과 함께 왔다.

그는 젊고 날래며 강해 보였다.

함께 온 일본인들은 그 앞에서 매우 공손하게 행동했다.

소 요시토시는 동평관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조선 사신과 함께 돌아가기를 요구했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백성을 돌려보내다 - 1589년, 11월, 날짜 미상.

그보다 앞서 일본인들이 전라도 손죽도 부근에 침입하여 조선 장수를 죽인 일이 있었다.

그때 생포된 사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선 사람이 일본군에게 붙어 길을 안내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조정은 일본을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소 요시토시가 계속 사신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일본에 잡혀가 있는 우리나라 백성을 먼저 돌려보낸다면 그 뒤에 사신을 보내는 일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소 요시토시는 말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사람을 일본으로 보냈다.

얼마 뒤 일본에 잡혀 있던 조선 사람 열여 명을 데리고 와 조선에 돌려주었다.

임금은 궁궐에서 그들을 직접 만나 보았다.

소 요시토시에게는 말 한 필을 주었다.

일본 사신 일행도 차례로 궁궐에서 접견하고 잔치를 베풀어 접대했다.

그러나 일본에 조선 사신을 보낼 것인지는 여전히 결정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일본에 보낼 국서를 작성할 일과도 관계가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변사의 여러 신하 가운데서도 이런 의견이 나왔다.

“사신을 보내 일본의 실제 사정을 살펴보고 돌아오게 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계책은 아니다.”

결국 조정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황윤길과 김성일을 일본에 보내다 - 1590년, 3월, 6일.

조정은 황윤길을 정사로 삼고 김성일을 부사로 삼았다.

허성은 서장관으로 따라갔다.

이들은 1590년 봄 소 요시토시 등과 함께 일본으로 출발했다.

소 요시토시는 조선에 공작과 조총, 칼 같은 물건도 바쳤다.

조선에서는 공작을 섬에 풀어 놓았다.

조총은 군기를 맡은 관청에 보관했다.

우리나라에 조총이 들어온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이듬해인 1591년 봄, 황윤길과 김성일 일행은 일본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겪은 일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마도에서 김성일이 소 요시토시를 꾸짖다 - 1590년, 3월, 날짜 미상.

조선 사신 일행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로 갔다.

대마도에 한동안 머문 뒤 다시 배를 타고 일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키섬을 지나 하카타와 나가토 등을 거쳐 오사카 부근으로 갔다.

일본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지체시키기도 했기 때문에 몇 달이나 걸렸다.

대마도에 있을 때 소 요시토시가 산속 절에서 조선 사신들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

조선 사신들은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소 요시토시는 가마를 타고 문 안까지 들어왔다.

계단에 이르러서야 가마에서 내렸다.

김성일이 크게 화를 냈다.

“대마도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 온 곳이다. 나는 임금의 명을 받고 온 조선의 사신이다. 그런데 감히 내 앞에서 이토록 무례하게 행동한단 말인가. 나는 이런 잔치를 받을 수 없다.”

김성일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다른 사신들도 함께 나가려고 했다.

소 요시토시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잘못을 가마를 맡은 사람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 사람을 죽인 뒤 머리를 가져와 사과했다.

그 뒤 일본 사람들은 김성일을 매우 어려워했다.

그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말에서 내려 예를 표했다고 한다.

히데요시가 사신을 몇 달 동안 기다리게 하다 - 1590년, 11월, 7일.

조선 사신이 일본의 중심 지역에 도착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곳에 없었다.

다른 지방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가 돌아온 뒤에도 곧바로 조선의 국서를 받지 않았다.

궁궐을 수리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접견을 미뤘다.

조선 사신들은 오랫동안 기다렸다.

앞뒤로 합치면 몇 달이나 지체되었다.

일본에는 천황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히데요시가 쥐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스스로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관백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나라의 중요한 정치를 사실상 자신이 결정했다.

히데요시를 직접 보다 - 1590년, 11월, 7일.

마침내 조선 사신들이 히데요시를 만났다.

히데요시는 체격이 크고 위엄 있는 모습의 인물은 아니었다.

얼굴빛도 좋지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히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만은 번쩍여 사람을 쏘아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높은 자리에 앉고 여러 일본 신하들이 좌우에 줄지어 앉았다.

조선 사신도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정식 외교 사신을 맞는 자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의식이 간단했다.

성대한 잔치도 없었다.

앞에 작은 상 하나를 놓고 그 위에 익힌 떡 한 그릇 정도를 올렸다.

술도 아주 간단히 내놓았다.

예법에 따라 절하고 술잔을 주고받는 절차도 제대로 없었다.

한동안 앉아 있던 히데요시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좌중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얼마 뒤 한 사람이 어린아이를 안고 안쪽에서 나왔다.

자세히 보니 아이를 안고 나온 사람은 히데요시였다.

그는 아이를 안고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일본 신하들은 모두 엎드렸다.

히데요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히데요시의 옷에 오줌을 쌌다.

히데요시는 큰소리로 여자를 불렀다.

여자가 달려오자 아이를 넘겨주고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신들은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 접견 뒤 조선 사신들은 히데요시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답서를 주지 않으려는 일본과 김성일의 항의 - 1591년, 1월, 날짜 미상.

조선 사신들이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도 일본 측은 조선 국서에 대한 답서를 내놓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사신들에게 먼저 떠나라고 했다.

김성일이 말했다.

“우리는 조선 임금의 국서를 받들고 일본에 왔다. 그런데 답서도 없이 돌아간다면 무슨 낯으로 우리 임금께 보고하겠는가?”

일본 측은 그제야 답서를 마련했다.

그러나 내용과 문구가 매우 거만하고 무례했다.

김성일은 그대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몇 차례 고치도록 요구했다.

일본 측은 마지못해 문구를 손질했다.

일본의 여러 지역을 지나 돌아오는 동안 일본 사람들이 사신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다.

김성일은 그런 선물을 대부분 받지 않았다.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가 엇갈리다 - 1591년, 3월, 날짜 미상.

조선 사신들이 돌아온 뒤 임금이 두 사람을 불러 일본의 사정을 물었다.

황윤길은 분명하게 말했다.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일본의 분위기와 히데요시의 태도를 볼 때 일본이 군사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김성일은 다르게 말했다.

“신은 일본이 반드시 군사를 일으킬 것이라고 볼 만한 뚜렷한 형세를 보지 못했습니다. 황윤길의 말은 지나치게 사람들을 놀라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두 사신의 보고가 정반대였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어떤 사람은 황윤길의 말을 믿었고, 어떤 사람은 김성일의 말을 믿었다.

누군가 김성일에게 물었다.

“그대의 말은 황윤길의 말과 정반대다. 만약 실제로 일본군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김성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어찌 일본이 반드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겠는가. 황윤길의 말이 너무 심해 나라 안팎의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할까 봐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일본의 명나라 침략 의도를 알리다 - 1591년, 3월, 날짜 미상.

히데요시의 편지에는 조선을 거쳐 명나라로 들어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 사실을 명나라에 알려야 할지를 두고 조정에서 논의가 벌어졌다.

당시 영의정은 이런 걱정을 했다.

“명나라에서 우리가 몰래 일본과 연락했다고 의심하면 어떡하겠는가. 차라리 이 사실을 감추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나는 반대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사신을 보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예전에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해 중국과 관계를 맺으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일본이 명나라를 침범하려 한다는 뜻을 품었는데 우리가 그것을 숨겼다가 명나라가 다른 곳에서 먼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명나라는 우리가 일본과 한마음이 되어 일부러 감추었다고 의심할 것입니다.

그 죄는 단순히 일본과 사신을 주고받은 것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큰 의리로 보아도 숨겨서는 안 됩니다.”

조정에서는 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일본의 움직임을 명나라에 알리기로 했다.

마침 명나라에서도 다른 경로를 통해 비슷한 보고가 들어가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일본에서 얻어 들은 소식도 있었고, 류큐에서도 일본의 움직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만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자 명나라에서는 오히려 조선을 의심하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조선의 보고가 도착하고서야 의심이 풀렸다.

성을 쌓고 무기를 점검하다 - 1591년, 월·일 미상.

조정은 일본의 움직임을 걱정해 여러 신하를 남쪽 지방으로 보냈다.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 관리를 보내 성을 수리하고 군사와 무기를 점검하게 했다.

어떤 곳에서는 새 성을 쌓았고 어떤 곳에서는 옛 성을 넓혔다.

경상도의 여러 군사 거점도 보수했다.

그러나 나라가 오랫동안 평화를 누린 탓에 백성들은 군역과 성 쌓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갑자기 수많은 백성을 동원하니 원망이 길에 가득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내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지금 성을 쌓는 것은 때가 아닙니다.

앞에 큰 강과 험한 곳이 있는데 일본군이 날아서 건너오기라도 하겠습니까?

수많은 백성을 고생시켜 성을 쌓으면서, 그보다 훨씬 중요한 바닷길의 방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좋은 성을 버리고 평지에 성을 쌓다 - 1591년, 월·일 미상.

어떤 성은 본래 높은 곳에 있어 방어하기 좋았다.

하지만 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성을 아래쪽 평지로 옮겨 쌓았다.

훗날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때 바로 그 낮은 곳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왔다.

결국 성은 지켜지지 않았다.

성을 크고 튼튼하게 쌓는 것만으로는 전쟁에 대비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장수를 제대로 뽑는 일이다.

군사를 평소에 훈련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지휘 체계를 바로 세우고 실제 전투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익혀야 한다.

그런데 조정은 이런 근본적인 일에는 충분히 힘을 쏟지 못했다.

이순신을 발탁하다 - 1591년, 2월, 13일.

당시 이순신은 아직 널리 이름난 장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람됨과 재능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활을 잘 쏘았으며 군사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었다.

일본에 대한 소문이 점점 급박해지자 임금은 대신들에게 장수가 될 만한 인재를 추천하게 했다.

나는 이순신을 추천했다.

그는 낮은 관직에 있다가 여러 단계를 뛰어넘어 전라좌도 수군을 지휘하는 자리에 올랐다.

너무 갑작스럽게 높은 자리를 맡긴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이미 가까이 와 있었다.

장수가 필요해진 뒤에야 사람을 찾아서는 늦는다.

미리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그 지역에 보내 군사와 지형을 익히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옛 군사 제도를 되살리자고 주장하다 - 1591년, 월·일 미상.

나는 당시 군사 지휘 체계에도 큰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나라 초기에는 각 지방의 군사가 가까운 군사 거점에 소속되어 있었다.

적이 나타나면 그 지역의 장수가 자기 관할 고을의 군사를 이끌고 먼저 싸웠다.

한곳의 군대가 패하더라도 인접한 다른 곳의 군대가 그대로 남아 다음 방어를 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군사 거점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뒤에 제도가 바뀌었다.

적이 나타나면 여러 고을의 군사를 한꺼번에 넓은 들판 같은 곳에 모아 놓았다.

그리고 순찰사나 방어사, 조방장이나 도원수 같은 높은 장수가 와서 모두 지휘하게 했다.

이런 방식을 승전방략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면 많은 군사를 한꺼번에 모아 싸우는 좋은 제도처럼 보였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장수 없는 군대가 들판에서 기다리다 - 1591년, 월·일 미상.

적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먼 곳의 군사까지 모두 정해진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그 군사를 지휘할 장수는 중앙이나 다른 지역에서 뒤늦게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군사들은 지휘관도 없이 들판에 먼저 모여 있었다.

장수가 제때 오지 않으면 군사들은 며칠이고 아무 명령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적이 가까이 오면 군심이 흔들렸다.

장수가 도착한다 해도 문제였다.

그 장수는 그 지방의 산천과 길을 알지 못했다.

부하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군사들도 처음 보는 장수를 믿고 목숨을 걸기 어려웠다.

이것은 병법에서 매우 꺼리는 일이다.

나는 옛 제도를 다시 살리자고 주장했다.

평소에는 각 지역 장수가 자기 군사를 훈련시키고, 전쟁이 나면 먼저 자기 지역을 지키면서 앞뒤와 좌우의 군대가 서로 도우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이미 승전방략을 오래 사용했으니 갑자기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의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군사 점검이 형식에 그치다 - 1592년, 4월, 1일 무렵.

조정에서는 여러 신하를 각 지방에 보내 군사 준비를 점검했다.

하지만 실제로 살펴본 것은 활과 화살, 창과 칼 같은 것이 제대로 갖추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대부분 형식적인 점검이었다.

높은 관리가 지방에 내려가면 오히려 수많은 사람이 접대를 준비해야 했다.

백성은 더 힘들어졌다.

장수들이 실제 전투에 어떻게 대응할지, 군대가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지는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신립에게 일본군을 가볍게 보지 말라고 하다 - 1592년, 4월, 17일 무렵.

1592년 음력 4월 1일 무렵 신립이 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신립에게 말했다.

“조만간 변란이 일어나면 그대가 큰일을 맡게 될 것이다. 일본군과 싸운다면 어떻겠는가?”

신립은 일본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나는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전의 일본군은 무기가 짧고 변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총을 가지고 있다.

조총은 멀리까지 날아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신립은 말했다.

“조총이 있다고 해도 그 총알이 언제나 사람을 맞히겠습니까?”

나는 다시 말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오래 평화를 누렸다.

군사와 백성이 전쟁을 본 적이 없다.

갑자기 큰 적이 쳐들어오면 처음에는 반드시 크게 흔들릴 것이다.

몇 년 동안 싸우고 나면 사람도 군사도 차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수습할 수 있겠지만 첫 충돌이 가장 위험하다.”

신립은 끝내 내 말을 깊이 받아들이지 않은 듯했다.

김성일을 경상도에 보내다 - 1592년, 4월, 날짜 미상.

그 무렵 경상우도 병사를 교체하는 일이 있었다.

조정에서는 김성일을 경상도에 내려보냈다.

비변사에서는 김성일이 선비 출신이어서 이런 위급한 때 변방의 군사를 맡기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명령은 그대로 시행되었다.

김성일은 곧 길을 떠났다.

그리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왔다.

부산진이 무너지다 - 1592년, 4월, 14일.

1592년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이 조선에 침입했다.

수많은 배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다.

일본군은 부산진으로 몰려왔다.

부산진을 지키던 정발은 끝까지 싸웠다.

일본군은 성을 사방에서 에워쌌다.

정발은 군사들과 함께 저항했지만 결국 전사했다.

부산진은 함락되었다.

부산 앞바다와 육지가 순식간에 일본군의 손에 들어갔다.

동래부사 송상현이 전사하다 - 1592년, 4월, 15일.

일본군은 곧 동래로 밀려갔다.

좌수사 박홍은 일본군의 규모가 매우 큰 것을 보고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했다.

병력을 나누어 주변 지역으로 보냈지만 전세를 막지 못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성에 남았다.

일본군이 몰려오자 그는 성문을 닫고 싸울 준비를 했다.

다음 날 일본군이 동래성을 공격했다.

송상현은 성 남문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했다.

반나절 동안 싸웠다.

그러나 일본군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

송상현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결국 일본군에게 죽었다.

일본군도 송상현이 끝까지 성을 지키다 죽은 것을 의롭게 여겼다고 한다.

그의 시신을 성 밖에 묻어 주고 표시까지 세웠다는 말이 전해졌다.

경상도의 방어선이 차례로 무너지다 - 1592년,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부산과 동래가 무너지자 주변 고을들은 크게 흔들렸다.

일본군이 온다는 소문만 들려도 수령과 군사들이 흩어졌다.

밀양부사는 동래에서 돌아와 험한 길목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산을 타고 우회했다.

높은 곳을 차지한 뒤 사방에서 내려오니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어떤 장수는 군사 창고를 불태우고 성을 버렸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와 가족부터 먼저 성 밖으로 내보냈다.

군사들은 밤마다 놀라 흩어졌다.

장수 자신도 결국 몰래 도망쳤다.

일본군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길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갔다.

경상도의 여러 장수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 - 1592년, 4월, 17일.

경상도 순찰사는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모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곳곳에서 일본군이 접근하고 있었다.

군사와 백성은 겁에 질려 흩어졌다.

어떤 고을에서는 수령이 군사를 이끌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백성과 충돌하기도 했다.

나라의 명령 체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군사를 모으고 장비를 정비할 시간도 없었다.

서울에 첫 보고가 도착하다 - 1592년, 4월, 17일.

일본군이 침입했다는 보고가 서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조정은 크게 놀랐다.

대신들과 비변사의 신하들이 모였다.

어느 길로 어떤 장수를 보낼 것인지 급히 결정했다.

이일을 순변사로 삼아 가운데 길을 맡기고, 다른 장수들에게 좌우 길을 맡겼다.

조방장들도 급히 임명했다.

하지만 이름만 장수였을 뿐 실제 데리고 갈 군사가 없었다.

서울에서 군사 삼백 명을 뽑으려 했으나 - 1592년, 4월, 18일 무렵.

이일에게 서울의 정예병 삼백 명을 주어 내려보내려 했다.

병조에서 군사를 뽑았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보니 제대로 훈련받은 군사는 거의 없었다.

시장에 있던 사람도 끌려왔다.

관청에서 일하던 하급 관리도 있었다.

유생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유생 옷을 입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관청 관리의 모자를 쓴 채 나왔다.

급히 사람 숫자만 채우려 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보낼 만한 군사를 고를 형편이 아니었다.

이일은 명령을 받고도 사흘 동안 출발하지 못했다.

결국 제대로 된 병력을 데리고 갈 수 없게 되자 먼저 내려가 지방 군사를 모으기로 했다.

이일이 상주에서 군사를 모으다 - 1592년, 4월, 23일.

이일이 내려가는 동안 일본군은 이미 매우 빠르게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일이 상주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 지역 군사들도 대부분 흩어져 있었다.

그는 창고를 열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산과 골짜기로 달아났던 백성이 조금씩 내려왔다.

그렇게 겨우 수백 명을 모았다.

그러나 싸울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본군이 가까이 왔다는 말을 믿지 않다 - 1592년, 4월, 24일.

그때 어떤 사람이 달려와 말했다.

“일본군이 가까이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말로 군심을 흔든다고 화를 냈다.

그 사람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 사람이 외쳤다.

“오늘은 나를 가두어 두시오. 내일 아침까지 일본군이 오지 않으면 그때 나를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

그날 밤 조선군은 상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

그런데 제대로 된 척후병을 보내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서도 이일은 일본군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상주에서 조선군이 무너지다 - 1592년, 4월, 25일.

조선군이 진을 치고 있을 때 숲 사이로 사람 몇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주변을 살펴본 뒤 다시 사라졌다.

일본군의 정찰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군은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뒤 성 안 여러 곳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그제야 이일은 군관 한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군관이 말을 타고 앞으로 나갔다.

일본군은 다리 아래 숨어 있다가 조총을 쏘았다.

군관은 말에서 떨어졌다.

일본군은 그의 목을 베어 갔다.

조선군이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바로 그때 일본군이 대규모로 나타났다.

조총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총에 맞은 사람들은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쓰러졌다.

일본군은 좌우로 갈라져 조선군의 뒤를 포위했다.

이일은 상황이 이미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말을 돌려 북쪽으로 달아났다.

장수가 달아나자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각자 목숨을 구하려 달아났다.

말에 올라타지도 못한 관리와 군사들은 대부분 일본군에게 죽었다.

이일도 말과 옷을 버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달아났다.

간신히 살아남아 서울 쪽으로 올라갔다.

신립을 충주로 보내다 - 1592년, 4월, 27일.

조정에서는 이일이 패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 이미 신립을 큰 장수로 삼아 남쪽으로 내려보냈다.

신립은 당시 조선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무장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그가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정도 안심했다.

신립은 충주에서 군사를 모았다.

충청도 여러 고을에서 동원된 군사들도 그에게 모였다.

조령을 지키지 않다 - 1592년, 4월, 27일.

충주 남쪽에는 험한 고개가 있었다.

길이 좁고 산이 가파르기 때문에 적을 막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신립은 그곳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충주 평야 쪽으로 나왔다.

뒤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지역을 지나며 험한 지형을 보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험지를 두고 왜 지키지 않았는가?”

신립이 어떤 생각으로 평지에서 싸우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자신의 기병을 이용해 일본군을 들판에서 공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탄금대에서 신립의 군대가 무너지다 - 1592년, 4월, 28일.

신립은 탄금대 부근 두 물줄기 사이에 군사를 배치했다.

그 주변에는 논과 물이 많았다.

기병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곳이었다.

일본군은 단양 쪽과 다른 길로 나뉘어 몰려왔다.

그 기세가 바람과 비처럼 빠르고 거셌다.

한 무리는 산을 따라 움직였고 다른 무리는 강을 따라 내려왔다.

조총 소리가 땅을 울렸다.

먼지가 하늘을 가렸다.

조선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립은 말을 몰아 직접 일본군 진영으로 돌진하려 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군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군사들이 강으로 뛰어들었다.

시체가 강을 뒤덮을 정도였다.

신립도 끝내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김여물 역시 난군 속에서 죽었다.

수군과 육군이 제대로 움직였다면 - 1592년, 4월, 28일.

처음 일본군이 들어왔을 때 경상도의 수군과 육군 장수들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전세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경상좌수사는 거의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비교적 많은 배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적의 위세만 보고 물러났다.

육지의 장수들도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일본군은 수백 리를 밤낮으로 달렸지만 앞을 막는 군대가 거의 없었다.

충주에 이르기 전부터 조선군은 여러 차례 무너졌다.

신립 역시 충분히 준비할 겨를 없이 일본군을 맞았다.

이 모든 것이 겹쳐 참패가 일어났다.

류성룡이 지형을 지키지 않은 것을 한탄하다 - 1592년, 4월, 28일.

충주 부근에는 적을 막기에 좋은 험한 곳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일본군도 처음에는 그런 곳에 조선군이 숨어 있을까 두려워 정찰병을 여러 번 보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 놓고 지나갔다.

나는 뒤에 이 사실을 듣고 더욱 한탄했다.

장수가 지형을 모르고 적의 형세도 살피지 못하면 군사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

이런 일은 훗날의 경계로 삼아야 하므로 자세히 적어 둔다.

충주 패전 소식이 서울에 들어오다 - 1592년, 4월, 28일.

음력 4월 30일 새벽이 되었다.

서울 사람들은 날마다 남쪽에서 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날 저녁 군사 몇 명이 말을 달려 서울 성문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둘러싸고 물었다.

“전쟁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이 말했다.

“신립 장군이 충주에서 패해 죽었습니다. 군대는 모두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겨우 몸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 말이 순식간에 퍼졌다.

서울 전체가 크게 술렁였다.

서울을 지킬 것인가 떠날 것인가 - 1592년, 4월, 28일.

임금이 대신들을 불러 의논했다.

한쪽에서는 말했다.

“형세가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임금께서는 잠시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가셔야 합니다.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다시 힘을 모아 나라를 되찾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서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은 크게 소리쳤다.

“이렇게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 어찌 서울을 버릴 수 있습니까?”

나는 너무 격한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서울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군사가 없었다.

종친들이 궁궐 문 밖에서 울다 - 1592년, 4월, 29일.

임금이 서울을 떠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종친들은 궁궐 문 밖에 모여 통곡했다.

“서울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 신하들도 들어와 서울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이미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울에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숫자만 보면 수만 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성을 지킬 만한 군사는 거의 없었다.

군사 행정이 완전히 무너지다 - 1592년, 4월, 29일.

성벽의 각 구역을 지킬 사람을 배치해야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번 군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미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조의 하급 관리들과 짜고 돈을 주어 몰래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남고 누가 도망가는지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위급한 순간이 되자 평소의 명령 체계가 모두 무너졌다.

나라의 군사 행정이 얼마나 허술했는지가 이때 그대로 드러났다.

왕세자를 세우고 왕자들을 지방으로 보내다 - 1592년, 4월, 29일.

대신들은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왕세자를 세워야 한다고 청했다.

임금도 받아들였다.

또 왕자들을 여러 지방으로 보내 그 지역의 군사와 백성을 불러 모으게 하기로 했다.

임해군은 함경도로 가게 했다.

순화군은 강원도 쪽으로 가게 했다.

여러 대신과 관리들이 왕자들을 수행했다.

나라가 무너지는 가운데 각 지방에서 다시 군사를 모으기 위한 조치였다.

이덕형을 일본군에게 보내려 하다 - 1592년, 4월, 29일.

조정은 일본군의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 이덕형을 보내려고도 했다.

일본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덕형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덕형은 이전에 일본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다.

고니시는 이덕형과 만나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정에서는 급박한 상황에서 혹시 대화를 통해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전황이 너무 빠르게 변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임금이 서울을 떠나다 - 1592년, 4월, 30일.

결국 임금은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궁궐 안은 이미 크게 혼란스러웠다.

궁궐을 지키던 군사들도 대부분 흩어졌다.

밤이 깊어 서로 얼굴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남아 있던 군사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혔다.

나는 승정원의 관리들에게 중요한 문서를 챙겨 뒤따라오게 했다.

궁궐 앞 거리에서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불타는 서울을 뒤돌아보다 - 1592년,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임금 일행이 서쪽 성문을 빠져나왔다.

날이 밝아 올 무렵이었다.

나는 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서울 남대문 안쪽 큰 창고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길과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곧 서울 여러 곳에서 불이 번졌다.

임금 일행은 비를 맞으며 계속 북쪽으로 갔다.

온몸이 젖었다.

길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계속 생겼다.

처음에는 많은 관리가 따라왔지만 조금씩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몰래 서울로 돌아갔다.

피란길에서 굶주리다 - 1592년, 4월, 30일.

비는 계속 내렸다.

궁녀들은 약한 말에 짐까지 싣고 따라갔다.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임진강에 이르러 배를 타고 건넜다.

임금은 배 안에서 대신들을 불러 다시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일행은 개성을 향해 갔다.

길을 가는 동안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서울을 떠난 뒤 궁중 사람들은 하루 가까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뒤늦게 주변에서 조금씩 곡식을 구해 겨우 끼니를 마련했다.

개성에서도 백성이 분노하다 - 1592년, 5월, 1일 무렵.

임금이 개성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민심은 매우 흉흉했다.

백성 가운데에는 대신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 백성이 임금 앞에서 말했다.

“정승들을 죽이십시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책임을 대신들에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임금은 백성의 말을 듣고도 크게 꾸짖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일이다.

일본군이 서울에 들어오다 - 1592년, 5월, 3일.

음력 5월 3일 일본군이 서울에 들어왔다.

서울에 남아 있던 지휘관들은 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미 떠난 뒤였다.

일본군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올라왔다.

한 부대는 양산과 밀양을 거쳐 북상했다.

다른 부대는 울산과 경주, 영천 등지를 지났다.

또 다른 부대는 김해와 성주 쪽을 거쳐 올라왔다.

각 부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밤에는 서로 불빛으로 신호를 주었다.

험한 곳에서는 진을 치며 앞뒤 부대와 연결했다.

조선군과 달리 일본군은 지휘와 연락이 매우 질서정연했다.

한강 방어선도 무너지다 - 1592년, 5월, 3일.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가까이 오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군기와 화포를 강물에 버리고 물러났다.

이양원도 서울에 남아 있다가 한강의 군사가 이미 흩어진 것을 알고 서울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역시 빠져나갔다.

일본군은 한강을 건너 서울을 차지했다.

원호가 일본군의 강원도 진입을 막다 - 1592년, 5월, 3일 이후.

강원도 조방장 원호는 수백 명을 거느리고 강 북쪽을 지켰다.

그는 며칠 동안 일본군과 맞서 일본군이 쉽게 강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강원도 관찰사가 그를 다른 곳으로 불러들이면서 방어가 약해졌다.

일본군은 주변 민가와 관청 건물을 헐어 자재를 구했다.

그것으로 건널 도구를 만들어 강을 건넜다.

서울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백성이 대부분 달아난 뒤라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임금이 평양을 향하다 - 1592년, 5월, 1일부터 7일까지.

임금은 개성을 떠나 계속 북쪽으로 갔다.

평산과 여러 고을을 거쳐 평양을 향했다.

나도 벼슬에서 물러난 상태였지만 감히 행렬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계속 뒤따랐다.

서울을 떠난 이후 조정은 평안도와 황해도에 사람을 먼저 보내 백성과 군사를 안정시키게 했다.

임금이 그쪽으로 갈 것을 대비한 것이다.

전라도와 충청도 군사가 용인에서 무너지다 - 1592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전라도 순찰사 이광은 본도 군사를 이끌고 임금을 돕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왔다.

서울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때 다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싸우지도 않고 돌아간다고 비난했다.

이광은 다시 충청도와 다른 지역 군사들과 힘을 합쳐 북쪽으로 움직였다.

경상도 쪽 군사도 일부 합류했다.

군사의 수는 만 명을 훨씬 넘었다.

용인에 이르러 멀리 산 위에 일본군의 작은 진지를 발견했다.

조선 장수들은 적의 수가 많지 않다고 보았다.

적을 가볍게 여겼다.

마치 봄놀이를 가듯 군사를 움직이다 - 1592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선봉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산을 향해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다 말에서 내렸다.

그날 일본군이 갑자기 진지에서 뛰어나왔다.

흰 깃발을 앞세우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선봉에 있던 조선군은 크게 놀랐다.

말을 찾으려고 우왕좌왕했다.

일본군이 공격했다.

선봉이 무너지자 그 소식이 본진으로 전해졌다.

본진의 군사들도 싸워 보지도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당시 세 지역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문신 출신이었다.

군사를 제대로 지휘해 본 경험이 없었다.

군사 수는 많았지만 명령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험한 지형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전투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군대를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봄놀이를 나온 것 같았다고 했다.

이런 군대가 어떻게 패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신각이 양주에서 승리하다 - 1592년, 5월, 16일.

한편 부원수 신각은 양주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함경도에서 내려온 병사들과 다른 군사를 합쳐 일본군을 공격했다.

일본군을 격파하고 수십 명의 목을 베었다.

일본군이 조선에 침입한 뒤 육지에서 조선군이 거둔 첫 의미 있는 승리 가운데 하나였다.

군사들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승리한 신각을 죽이는 잘못을 저지르다 - 1592년, 5월, 17일.

그러나 도원수 김명원은 신각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보고했다.

조정은 신각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각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간 뒤에야 그가 일본군을 격파했다는 보고가 도착했다.

조정은 급히 처형을 멈추라는 명령을 다시 내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신각은 죽은 뒤였다.

그는 본래 청렴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연안부사로 있을 때에도 성을 수리하고 군량을 마련하는 등 전쟁 준비를 해 두었다.

그에게는 아흔 살 가까운 늙은 어머니도 있었다.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이었다.

임진강에서 일본군과 대치하다 - 1592년, 5월, 7일부터 17일까지.

조선군은 임진강 북쪽에 진을 쳤다.

도원수 김명원이 여러 장수를 지휘했다.

강에 있던 배는 대부분 북쪽 강가로 끌어다 놓았다.

일본군은 남쪽 강변에 진을 쳤다.

배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강을 건너지 못했다.

조선군과 일본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열흘 넘게 대치했다.

때때로 서로 활과 총을 쏘며 싸웠지만 일본군은 건너오지 못했다.

일본군의 거짓 후퇴에 속다 - 1592년, 5월, 18일.

어느 날 일본군은 강가의 집들을 불태웠다.

막사를 걷었다.

군수품을 챙겨 뒤쪽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서울 쪽으로 완전히 철수하는 것 같았다.

조선군 장수 가운데 일부는 말했다.

“적이 달아난다. 강을 건너 추격해야 한다.”

경기 관찰사도 강을 건너려 했다.

김명원은 말렸지만 제대로 막지 못했다.

젊고 용감한 장수들은 적을 추격해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유극량이 강을 건너지 말라고 간하다 - 1592년, 5월, 18일.

당시 유극량이라는 늙은 장수가 있었다.

군사 경험이 많았다.

그는 말했다.

“군사들이 먼 길을 와 지쳤습니다.

아직 밥도 먹지 못했습니다.

진형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습니다.

뒤의 군사도 모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적이 정말 달아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은 잠시 쉬고 내일 적의 형세를 살펴본 뒤 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겁쟁이의 말처럼 여겼다.

유극량은 분해서 말했다.

“내가 머리가 희도록 군대에서 살아왔다. 이제 와 죽음을 두려워해 이런 말을 하겠는가?

나라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말하는 것이다.”

그는 화가 난 채 밖으로 나갔다.

임진강에서 또다시 참패하다 - 1592년, 5월, 18일.

조선군은 결국 강을 건넜다.

일본군은 이미 산 뒤에 정예병을 숨겨 놓고 있었다.

조선군이 깊숙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조선군이 위험한 곳까지 들어오자 숨어 있던 일본군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사방에서 공격했다.

조선군은 크게 무너졌다.

유극량은 말에서 내려 땅에 앉으며 말했다.

“이곳이 내가 죽을 자리로구나.”

그는 활을 쏘아 일본군 여러 명을 죽였다.

그러다가 자신도 죽었다.

신할 역시 전사했다.

군사들은 강가로 몰려갔다.

배는 부족했다.

사람들은 높은 언덕과 바위에서 강물로 몸을 던졌다.

마치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강으로 뛰어들지 못한 사람은 뒤쫓아 온 일본군의 긴 칼에 죽었다.

조선군이 공포에 빠지다 - 1592년, 5월, 18일 이후.

김명원과 다른 장수들은 강 북쪽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군사들의 기세는 완전히 꺾였다.

한 장수가 말을 몰아 달아나자 사람들이 도원수가 달아나는 것으로 착각했다.

“원수가 달아난다!”

누군가 이렇게 외치자 강을 지키던 군사들도 모두 흩어졌다.

김명원과 장수들은 임금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갔다.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진 뒤 일본군은 서쪽으로 나아갈 길을 얻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들어가다 - 1592년, 5월, 18일 이후.

일본군은 여러 길로 갈라졌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함께 임진강을 건넌 뒤 황해도 부근에서 갈 길을 나누었다.

고니시는 평안도로 향했다.

가토는 함경도로 향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일본군 가운데서도 매우 사납고 용맹한 장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현지 사람을 붙잡아 길을 안내하게 했다.

한 사람은 길을 잘 모른다고 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다른 사람은 살기 위해 길을 안내했다.

일본군은 산길을 따라 매우 빠르게 북쪽으로 올라갔다.

함경도 군대가 무너지다 - 1592년, 6월부터 7월까지.

함경도 병사가 군사를 이끌고 일본군을 막으러 나왔다.

함경도의 병사들은 본래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일본군의 좌우를 공격하며 맞섰다.

그러나 일본군은 창고나 담 같은 곳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조총을 쏘았다.

조선 군사들은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총알 한 발에 여러 사람이 쓰러지기도 했다.

조선군은 물러났다.

밤이 되자 일본군이 몰래 움직였다.

아침에는 큰 안개까지 끼었다.

조선군은 일본군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일본군의 함성이 터졌다.

군사들은 겁에 질려 일본군이 없는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러다가 늪과 진흙에 빠졌다.

일본군이 뒤쫓아 와 많은 사람을 죽였다.

두 왕자가 붙잡히다 - 1592년, 7월, 23일.

임해군은 함경도에 들어가 있었다.

순화군은 처음에는 강원도에 있었지만 일본군이 그쪽으로 들어오자 함경도로 옮겨 갔다.

두 왕자는 결국 회령 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조선 백성 가운데 일부가 나라를 배반하고 왕자와 수행한 신하들을 붙잡았다.

그들은 왕자들을 일본군에 넘겼다.

함경도 관찰사와 병사, 여러 관리들도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바깥의 적뿐 아니라 안에서 배반하는 사람까지 생긴 것이다.

패한 이일이 평양까지 오다 - 1592년, 6월, 14일 무렵.

충주에서 패한 이일은 살아서 북쪽으로 올라왔다.

서울에서도 많은 장수가 죽거나 흩어졌기 때문에 이름 있는 무장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일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나마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일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는 패전 뒤 제대로 된 옷도 갖추지 못했다.

흰 베옷에 허름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얼굴에는 두려움과 피로가 가득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그대가 오면 의지할 장수가 생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대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안심하겠는가?”

주변에서 옷을 구해 그에게 입혔다.

사람들이 관복과 장비를 조금씩 마련해 주었다.

일본군이 평양 가까이 오다 - 1592년, 6월, 15일부터 16일까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봉산까지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여러 대신에게 말했다.

“적의 정찰병이 이미 가까이까지 왔을 것이다.

대동강은 넓지만 얕은 곳이 있다.

일본군이 조선 사람을 붙잡아 길잡이로 삼아 밤에 얕은 곳을 건너면 평양이 위험하다.

당장 사람을 보내 얕은 여울을 지키게 해야 한다.”

그러나 군대를 보내는 일도 늦어졌다.

나는 여러 차례 재촉했다.

그제야 이일이 일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갔다.

명나라 관리가 평양에 오다 - 1592년, 6월, 15일 무렵.

명나라에서 조선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관리가 평양으로 왔다.

임금은 그를 대동강가에서 접견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연광정에 올라 주변 형세를 보여 주었다.

그때 강 건너 숲 사이에서 일본군 한 명이 나타났다.

곧 두세 명이 더 나타났다.

그들은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면서 매우 태연하게 움직였다.

마치 길을 가다 쉬는 사람 같았다.

나는 명나라 관리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일본군입니다.”

그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말했다.

“일본군이 어찌 저렇게 적습니까?”

나는 말했다.

“저들은 앞에 나와 살펴보는 정찰병일 뿐입니다. 큰 군대는 뒤에 있을 것입니다.

사람 수가 적다고 가볍게 보았다가는 반드시 속임수에 빠집니다.”

평양 백성들이 성을 버린다는 소문에 분노하다 - 1592년, 6월, 14일 무렵.

평양에서는 임금이 다시 성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백성들이 크게 분노했다.

많은 사람이 길을 막고 무기를 들었다.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화를 냈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우리를 성 안으로 불러들여 놓고 이제 임금은 성을 버리고 달아나려 한단 말인가!”

궁궐을 지키던 사람들도 얼굴빛이 변했다.

나는 난민들이 궁문까지 들어올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직접 문 밖 계단으로 나갔다.

류성룡이 평양 백성을 설득하다 - 1592년, 6월, 10일.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든 사람 하나를 불렀다.

그는 지방 관청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이 성을 힘껏 지키려 하고 있다.

조정에서도 성을 굳게 지키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임금께서도 그렇게 알고 계신다.

그런데 너희가 왜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느냐?

너는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이 말을 알려 모두 물러나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큰 죄를 짓게 된다.”

그 사람은 무기를 내려놓고 두 손을 모았다.

“백성들은 임금께서 성을 버린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분하고 두려워 이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저희가 사람들을 타이르겠습니다.”

그 뒤 사람들은 차츰 물러났다.

평양을 떠나자는 주장에 다시 반대하다 - 1592년, 6월, 10일.

어떤 대신들은 그래도 평양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말했다.

“서울에 있을 때와 지금은 형편이 다릅니다.

서울에서는 이미 군사와 백성이 모두 흩어져 지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양 앞에는 대동강이 있습니다.

민심도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명나라와도 가깝습니다.

며칠만 제대로 지키면 명나라 구원군이 올 수 있습니다.

평양을 버리고 나면 의주까지 가는 동안 다시 크게 의지할 만한 곳이 많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나라 전체가 위태롭게 됩니다.”

윤두수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북쪽 함경도로 피하자는 주장 - 1592년, 6월, 10일.

일부 신하들은 임금이 함경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쪽은 산과 길이 험하니 일본군이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그것에도 반대했다.

“임금께서 서쪽으로 오신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여 나라를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함경도로 들어가면 명나라와 연락할 길이 끊길 수 있습니다.

일본군이 중간을 막는다면 어떻게 명나라 군대를 부르겠습니까?

또 일본군이 이미 여러 길로 퍼졌는데 어찌 함경도에 일본군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일본군이 뒤를 막으면 바다 외에는 빠져나갈 곳도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마음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다 - 1592년, 6월, 10일.

당시 내 가족 가운데에도 북쪽으로 피란한 사람이 많았다.

늙은 어머니 역시 동쪽으로 피란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정확히 어디 계신지 몰랐다.

아마 강원도와 함경도 사이 어딘가에 계실 것으로 생각했다.

내 개인적인 마음만 생각한다면 어찌 북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나라의 큰일은 신하 한 사람의 가족 사정과 같을 수 없다.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임금도 내 말을 받아들였다.

일본군이 편지를 보내다 - 1592년, 6월, 10일.

대동강 동쪽 강가에서 일본군 한 사람이 작은 종이를 달아 놓고 갔다.

사람을 보내 가져오게 했다.

그 편지는 고니시 유키나가 쪽에서 보낸 것이었다.

그들은 조선이 길을 빌려 주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우리는 본래 명나라에 조공하려고 조선에 길을 빌려 달라고 했다.

조선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여기까지 왔다.

지금이라도 길 하나를 열어 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이덕형 등이 일본군과 만나 대화를 시도했다.

조선에서는 일본군에게 먼저 군대를 물린 뒤에야 화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금이 평양을 떠나다 - 1592년, 6월, 11일.

결국 임금은 평양을 떠났다.

영변 쪽으로 향했다.

좌의정과 도원수, 여러 장수들은 평양에 남아 성을 지켰다.

나는 명나라 장수를 맞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평양에서는 대동강 문과 여러 성문을 나누어 지켰다.

군사와 민간인을 합쳐 수만 명이 있었지만 부대 조직은 분명하지 않았다.

어느 구역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어느 구역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명령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일본군이 대동강을 건너려는 모습을 보이다 - 1592년, 6월, 11일.

일본군은 강 건너에 붉은 깃발과 흰 깃발을 줄지어 세웠다.

몇 명씩 강가를 오갔다.

어떤 때에는 열여 명이 넘는 기병이 강물 속으로 들어왔다.

물은 말의 배 정도까지 올라왔다.

그들은 일부러 건너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강가를 돌아다니는 일본군의 갑옷과 무기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총과 조선의 화포가 맞서다 - 1592년, 6월, 11일.

일본군 몇 명이 조총을 들고 강가까지 나왔다.

성 쪽을 향해 총을 쏘았다.

총성이 매우 컸다.

총알은 강을 건너 멀리 성 안까지 날아왔다.

어떤 총알은 성 안 건물의 기둥에 깊이 박혔다.

붉은 옷을 입은 일본군 한 명이 연광정에 여러 대신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조총을 들고 점점 가까이 왔다.

그가 모래톱까지 나와 총을 쏘았다.

총알이 사람 둘을 맞혔지만 거리가 멀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조선군도 활로 대응했다.

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나가 일본군을 향해 활과 화포를 쏘았다.

일본군은 물러났다.

조선군이 화전을 쏘자 불화살이 강을 넘어갔다.

일본군도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얕은 여울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다 - 1592년, 6월, 11일.

나는 계속 걱정했다.

“이곳은 물이 깊어 적이 쉽게 건너지 못하지만 강 위쪽과 아래쪽에는 얕은 곳이 있다.

일본군은 결국 그곳을 찾아낼 것이다.

그 여울을 지키지 않으면 평양은 지킬 수 없다.”

나는 장수들에게 직접 강가로 나가 보라고 했다.

“여러 장수가 한자리에 모여 잔치하듯 앉아 있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직접 강가로 가서 군사들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제야 일부 장수가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일이 잘못될 조짐을 느꼈다.

류성룡이 명나라 군대를 맞으러 가다 - 1592년, 6월, 12일 무렵.

나는 명나라에서 오는 구원군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 평양으로 데려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해가 저물 무렵 평양을 떠났다.

밤늦게 순안에 도착했다.

길에서 여러 사람에게 일본군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물었다.

다음 날 여러 고을을 지나 임금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임금이 나를 불렀다.

“평양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대답했다.

“백성들의 마음이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으니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명나라 구원군이 빨리 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군대를 맞으러 나온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걱정하셨다.

“내가 이미 평양의 노약자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임금이 성을 버린다고 생각하면 민심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일이 이미 벌어졌음을 알았다.

서쪽 여러 고을을 안정시킬 사람을 보내다 - 1592년, 6월, 12일 무렵.

나는 임금께 말했다.

“평양 서쪽의 강서와 여러 고을에는 군량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군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백성이 놀라 흩어질 것입니다.

사람을 급히 보내 백성을 달래고 군사를 모아 평양을 돕게 해야 합니다.”

임금이 물었다.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나는 적당한 사람을 추천했다.

나라 일이 매우 급하니 밤을 새워서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일본군이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며 놀랐다.

나는 꾸짖었다.

“나라가 이렇게 위급한데 신하가 물과 불 속이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일 하나가 어찌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그는 마지못해 떠났다.

평양에서 조선군이 야습을 시도하다 - 1592년, 6월, 14일.

평양에 남은 장수들은 일본군이 여러 날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습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예병을 뽑아 밤에 강을 건너 일본군 진영을 습격하기로 했다.

고언백 등이 군사를 이끌었다.

군수품은 배로 옮겼다.

한밤중에 작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군을 크게 놀라게 하다 - 1592년, 6월, 14일.

조선군이 강을 건너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갔을 때 일본군 상당수는 아직 자고 있었다.

조선군은 갑자기 공격해 많은 적을 죽였다.

일본군이 크게 놀랐다.

조선의 용맹한 병사들이 앞장서 싸웠다.

그러나 주변 여러 일본군 진영에서 병력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조선군은 수가 부족했다.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배가 물러가 군사들이 물에 빠져 죽다 - 1592년, 6월, 14일.

조선군이 배로 돌아가려 하자 문제가 생겼다.

배에 있던 사람들이 일본군이 뒤따라오는 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

배를 강가에 대지 않고 강 가운데로 물렸다.

조선군은 배에 오를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강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군사들은 얕은 곳을 찾아 강을 걸어서 건너왔다.

이것이 더 큰 재앙을 불렀다.

일본군이 얕은 여울을 알아내다 - 1592년, 6월, 14일.

일본군은 조선군이 걸어서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대동강에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여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날 저녁 일본군은 대군을 이끌고 그 여울로 몰려갔다.

그리고 강을 건넜다.

강을 지키던 조선군은 제대로 화살 한 번 쏘지 못하고 흩어졌다.

평양성이 비워지다 - 1592년, 6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일본군이 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평양에 남은 조선 장수들은 성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문을 열었다.

성 안의 사람들을 빠져나가게 했다.

많은 군기와 화포가 그대로 버려졌다.

사람들은 여러 성문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어떤 사람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빠져나갔다.

일본군이 빈 평양성에 들어오다 - 1592년, 6월, 15일.

다음 날 일본군은 성 밖 높은 곳에 올라 평양성을 오래 살펴보았다.

혹시 조선군이 성 안에 숨어 있는지 의심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일본군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

평양에 있던 수많은 군량이 일본군의 손에 넘어갔다.

각 고을에서 거두어 평양에 쌓아 둔 곡식까지 모두 빼앗겼다.

막대한 양이었다.

임금이 더 북쪽으로 가다 - 1592년, 6월, 11일.

평양 함락 소식이 전해졌다.

임금은 다시 북쪽으로 길을 옮겼다.

왕세자는 따로 길을 나누어 여러 지역의 군사와 백성을 불러 모으도록 했다.

대신들도 임금과 왕세자를 나누어 따랐다.

나라의 중심이 완전히 흩어진 모습이었다.

평양이 무너지자 백성이 창고를 털다 - 1592년, 6월, 16일.

임금이 평양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길가 고을의 민심도 흔들렸다.

정주와 안주, 박천을 비롯한 여러 고을에서 백성이 관청 창고로 몰려갔다.

곡식을 가져가려 했다.

전쟁 때문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라의 통제가 무너졌다고 생각한 탓도 있었다.

가산의 창고를 지키려 하다 - 1592년, 6월, 17일.

나는 가산을 지나면서 그곳 수령에게 말했다.

“이 고을에는 군량이 많이 있다.

명나라 군대가 오면 이 곡식으로 먹여야 한다.

지금 그대가 잠시라도 남아 있으면 백성이 함부로 창고를 털지 못할 것이다.”

수령은 자신도 가족을 피신시켜야 했기 때문에 몹시 불안해했다.

나 역시 임금의 명령 없이 한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길을 떠났다.

얼마 뒤 뒤돌아보니 고을에서는 이미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주에 남으라는 명을 받다 - 1592년, 6월, 18일.

임금은 정주를 떠나 선천 쪽으로 향하면서 나에게 정주에 남으라고 명했다.

정주의 백성은 대부분 달아난 뒤였다.

성 안에는 늙은 사람 몇 명만 남아 있었다.

나는 객관에 머물렀다.

함께 있는 사람도 매우 적었다.

내 군관 몇 명과 길에서 모은 사람 열아홉 명 정도가 전부였다.

창고를 털러 수백 명이 몰려오다 - 1592년, 6월, 18일.

저녁이 되자 남문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에 무기를 든 사람도 있었다.

조금 지나자 창고 주변에 수백 명이 모였다.

그대로 두면 곡식을 모두 가져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 사람은 너무 적었다.

수백 명과 정면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나는 먼저 그들의 기세를 꺾기로 했다.

몇 사람을 붙잡아 겁을 주다 - 1592년, 6월, 18일.

성문으로 또 열여 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군관과 열아홉 명의 사람에게 달려가 그들을 잡으라고 했다.

그들은 조선군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달아났다.

몇 명을 붙잡았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을 뒤로 묶어 큰길로 끌고 갔다.

뒤따르던 사람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창고를 털러 온 도적을 잡았다!

이제 목을 베어 성 안에 걸 것이다!”

창고 아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다.

그들은 크게 놀라 서문으로 모두 달아났다.

이렇게 해서 정주의 창고를 지킬 수 있었다.

주변의 용천과 선천, 철산 등에서는 창고가 거의 다 털렸지만 정주의 곡식만은 상당 부분 남았다.

군량을 훔치려는 관리도 꾸짖다 - 1592년, 6월, 18일.

정주의 관리 가운데 김영일이라는 무장이 있었다.

그는 평양에서 달아난 뒤 아내와 자식을 해변 쪽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창고의 곡식을 가져가려고 했다.

나는 그를 꾸짖었다.

“그대는 무장이다.

싸움에서 패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죄를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국가의 창고까지 털려 하는가?

이 곡식은 명나라 구원군을 먹이기 위한 것이다.

어찌 그대 개인의 것이 될 수 있겠는가?”

그를 곤장으로 다스렸다.

사람을 귀성으로 보내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다 - 1592년, 6월, 19일 무렵.

길가의 창고가 모두 비면 명나라 군대가 와도 먹을 것이 없었다.

나는 이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귀성에는 아직 곡식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사람을 그곳으로 보냈다.

나는 말했다.

“그곳 백성도 모두 산속으로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가면 소식을 들으려고 내려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일본군은 평양에 들어간 뒤 더 북쪽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명나라 대군이 오고 있으니 나라를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군량이다.

관리와 백성이 힘을 합쳐 곡식을 정주와 가산 쪽으로 운반한다면 나라에서 반드시 그 공을 기록하고 상을 줄 것이다.”

그 사람은 기꺼이 떠났다.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다 - 1592년, 6월, 20일 무렵.

나는 여러 곳에 같은 내용의 명령을 보냈다.

처음에는 사람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마을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몇 사람을 불러 나라의 상황을 설명하고 공을 기록해 주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났다.

나는 작은 책을 내어 이름을 기록하게 했다.

“지금부터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의 이름과 공을 모두 적어 두겠다.

나중에 반드시 조정에 보고하겠다.”

사람들은 말했다.

“저희가 잠시 피했을 뿐 나라를 버리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뒤 사람들이 서로 이어서 돌아왔다.

다시 군량과 물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다 - 1592년, 6월, 21일 무렵.

사람들이 돌아오자 곡식과 콩을 나르기 시작했다.

무너진 집을 고쳤다.

솥을 걸고 군사를 먹일 준비를 했다.

며칠 사이에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다.

나는 이 일을 보고 깨달았다.

전쟁으로 흩어진 백성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사정을 알려 주고 앞으로의 희망을 보여 주면 다시 힘을 모을 수 있다.

충청도에서 온 곡식 배가 도착하다 - 1592년, 6월, 22일 무렵.

그 무렵 뜻밖에도 충청도 쪽에서 곡식을 실은 배가 올라왔다.

원래 다른 곳으로 가려던 곡식이 전쟁 때문에 길이 막혀 정주 부근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크게 기뻐했다.

“마치 하늘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고 이 곡식을 보내 준 것 같다.”

나는 곡식을 여러 곳에 나누어 보내게 했다.

정주와 가산, 안주 등 앞으로 명나라 군대가 지나갈 곳에 군량을 마련했다.

적과 가까운 곳에는 배를 물 위에 대기시켰다.

상황에 따라 바로 옮길 수 있게 했다.

명나라 군대를 위한 다리와 나루를 준비하다 - 1592년, 6월, 22일 무렵.

명나라 군대가 오면 큰 강을 건너야 했다.

나는 각 고을에 명령해 나루와 다리를 준비하게 했다.

배를 모으고 임시 다리를 만들게 했다.

강을 건너는 데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했다.

일본군은 평양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조선군은 순안과 안주 등지에 흩어져 진을 쳤다.

나는 안주에서 군량과 명나라 군대를 맞을 준비를 맡았다.

명나라에서 첫 구원군이 오다 - 1592년, 7월, 날짜 미상.

명나라에서는 조선의 요청을 받고 군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명나라 조정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에서는 조선이 일본군을 일부러 끌어들인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병부의 관리들 가운데에는 조선을 반드시 구원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조선에서 계속 사신을 보내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마침내 명나라 군사가 압록강을 건너왔다.

조승훈이 군사를 이끌고 오다 - 1592년, 7월, 17일.

명나라 장수 조승훈이 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보다 앞서 다른 명나라 장수들도 일부 병력을 데리고 왔지만 평양 함락 소식을 듣고 물러난 일이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조선 군대를 돕기 위한 돈과 물자도 보내왔다.

나는 명나라 군대를 맞아 평양까지 안전하게 보내고 군량을 공급해야 했다.

그때 나는 병이 들어 제대로 일어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임금에게 군량 사정을 설명하다 - 1592년, 7월, 16일.

나는 임금께 말씀드렸다.

“정주와 가산까지는 하루 이틀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안주와 순안 부근에는 군량이 거의 없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까지 들어가려면 최소한 며칠 먹을 식량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평양을 되찾는다면 그곳에 남은 곡식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성을 되찾기 전에는 우리 힘으로 군량을 공급해야 합니다.”

나는 그 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곡식을 모아 앞쪽으로 옮겨야 한다고 자세히 말씀드렸다.

임금은 내 말을 받아들였다.

도망간 백성을 설득하다 - 1592년, 7월, 16일.

명나라 군대를 맞으러 가는 도중에도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산속으로 피했다.

나는 군관을 보내 몇 사람을 찾아오게 했다.

그들에게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위급한데 어찌 모두 달아나 있기만 하는가?

명나라 군대가 지금 우리를 도우러 오고 있다.

이때야말로 너희가 힘을 내 공을 세울 때다.”

그리고 이름을 적어 두고 훗날 공을 따져 상을 주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차츰 돌아왔다.

조승훈이 일본군을 너무 가볍게 보다 - 1592년, 7월, 17일.

조승훈은 평양에 있는 일본군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북방 지역에서 전투 경험이 있었고 자신의 군대를 믿었다.

어떤 조선 사람이 말했다.

“일본군이 이미 평양에서 물러났을지도 모릅니다.”

조승훈은 오히려 말했다.

“그들이 아직 남아 있어야 내가 큰 공을 세울 수 있다.”

그만큼 자신만만했다.

한밤중에 평양을 공격하다 - 1592년, 7월, 17일.

명나라 군대는 순안에서 밤중에 출발했다.

새벽 무렵 평양성을 공격했다.

당시 성 위에는 일본군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명나라 군대는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성 안의 길은 좁았다.

비가 내린 뒤라 진흙이 깊었다.

기병과 말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일본군의 조총 사격에 명나라 군대가 무너지다 - 1592년, 7월, 17일.

일본군은 숨어 있다가 명나라 군사가 안으로 들어오자 조총을 집중적으로 쏘았다.

사유라는 명나라 장수가 총에 맞아 죽었다.

말도 많이 쓰러졌다.

뒤의 군사는 진흙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명나라 군대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크게 패해 물러났다.

많은 군사가 죽었다.

조승훈이 패전을 날씨 탓으로 돌리다 - 1592년, 7월, 17일.

조승훈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퇴각했다.

통역관을 불러 말했다.

“오늘 우리 군사가 적을 많이 죽였다.

다만 사 장군이 죽은 것이 안타깝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비가 내려 길이 진흙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병력을 더 모아 다시 오면 된다.”

그러나 그는 곧 명나라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명나라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 때문에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흔들릴까 걱정했다.

그래서 안주에 남아 뒤에 올 구원군을 기다렸다.

이순신과 원균이 바다에서 일본군을 치다 - 1592년, 5월, 4일 이후.

육지에서는 조선군이 계속 무너졌지만 바다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과 함께 일본 수군을 크게 깨뜨렸다.

처음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했을 때 원균은 적의 규모가 너무 큰 것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선과 군수품을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몇 척의 배만 가지고 육지로 달아나려 했다.

원균의 부하가 싸우기 전에 도망가지 말라고 하다 - 1592년, 5월, 4일.

원균의 부하 장수들이 말했다.

“공께서는 수군을 지휘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싸워 보지도 않고 군대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나면 훗날 조정에서 죄를 물을 때 어떻게 변명하시겠습니까?

차라리 전라도 수군에게 도움을 청해 일본군과 한 번 싸워 보십시오.

싸워서 이기지 못한 뒤 물러나는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원균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에게 사람을 보내 원군을 요청했다.

이순신이 처음에는 관할이 다르다고 거절하다 - 1592년, 5월, 4일.

이순신은 처음에는 말했다.

“나는 전라도 수군을 맡고 있다.

경상도는 내 관할이 아니다.

조정의 명령 없이 마음대로 다른 도로 넘어갈 수는 없다.”

원균은 계속 사람을 보냈다.

다섯 번, 여섯 번이나 요청했다.

사람이 돌아올 때마다 원균은 배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울었다고 한다.

마침내 이순신은 군사를 움직이기로 했다.

이순신이 수십 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출전하다 - 1592년, 5월, 4일.

이순신은 전선을 정비했다.

수십 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경상도 바다로 들어갔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군대도 합류했다.

조선 수군은 일본 배들과 마주쳤다.

원균은 화가 나 곧바로 앞으로 나가 싸우려 했다.

이순신이 말했다.

“이곳은 물이 얕고 좁아 배를 돌리기 어렵다.

여기서 싸우면 우리에게 불리하다.

일부러 물러나 적을 넓은 바다로 끌어낸 뒤 싸우는 것이 좋다.”

일본군을 넓은 바다로 끌어내다 - 1592년, 5월, 7일.

조선 배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본 일본군은 기뻐했다.

조선 수군이 겁을 먹고 달아난다고 생각했다.

앞다투어 뒤쫓았다.

일본 배들이 좁은 곳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왔다.

그때 이순신이 북을 한 번 울렸다.

조선의 여러 배가 일제히 방향을 돌렸다.

곧 전열을 갖추었다.

일본군과 정면으로 마주 섰다.

거북선이 적진으로 들어가다 - 1592년, 5월, 29일.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특별한 전투선을 만들어 두었다.

배 위를 널빤지로 덮었다.

전체 모습이 거북이와 비슷해 거북선이라고 불렀다.

군사와 노 젓는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들어갔다.

적이 위에서 화살을 쏘거나 뛰어내려도 쉽게 공격할 수 없었다.

앞과 뒤, 좌우에는 여러 화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거북선은 적의 배 사이로 직접 들어갈 수 있었다.

조선 수군의 포격이 일본군을 무너뜨리다 - 1592년, 5월, 29일.

거북선이 일본 배들 사이로 돌진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대포를 쏘았다.

뒤따르는 조선 전선들도 한꺼번에 공격했다.

일본 배들이 부서지고 불탔다.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높은 누각을 세우고 붉은 천을 두른 일본 장수의 배도 포격을 맞았다.

그 위에 있던 사람들은 물로 뛰어들었다.

많은 일본군이 바다에서 죽었다.

이순신이 총상을 입고도 지휘를 계속하다 - 1592년, 5월, 29일.

그 뒤 여러 전투에서도 조선 수군은 계속 승리했다.

어느 날 전투를 지휘하던 이순신의 왼쪽 어깨에 총알이 박혔다.

피가 옷을 적셨다.

그러나 이순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계속 군사를 지휘했다.

싸움이 끝난 뒤에야 칼로 살을 조금 갈라 총알을 꺼냈다.

총알은 깊이 박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얼굴빛이 변할 만큼 놀랐다.

그런데 이순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순신의 승리로 일본군의 서해 진출이 막히다 - 1592년, 7월, 8일.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양에 들어간 뒤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일본 본국에서 더 많은 군사가 올 것이며 서쪽 바다로도 군대가 올라올 것처럼 위협했다.

일본군은 원래 육군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수군이 서해를 따라 올라와 서로 힘을 합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순신에게 바다에서 크게 패하면서 계획이 무너졌다.

일본 수군이 서쪽으로 나아갈 길이 끊겼다.

고니시는 평양까지 차지했지만 고립된 처지가 되었다.

더 북쪽으로 쉽게 전진하지 못했다.

바닷길을 지킨 공은 헤아릴 수 없었다 - 1592년, 7월, 8일 이후.

이순신의 승리 덕분에 전라도와 충청도, 황해도 연안이 지켜졌다.

바닷길로 군량을 운반할 수 있었다.

조선 각지의 명령도 이어질 수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육로를 통해 조선으로 들어오는 동안 그 뒤가 크게 위협받지 않았다.

이 한 번의 해전에서 비롯된 이익을 생각하면 그 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을 하늘이 이순신을 보내 나라를 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이후 여러 도의 수군과 함께 한산도에 머물며 일본군이 다시 바다로 나오는 길을 막았다.

조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 1592년, 4월 이후.

관군이 잇따라 무너지자 각 지방의 백성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라도에서는 김천일이 의병을 모았다.

고경명도 의병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여러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싸웠다.

고경명은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었다.

그 뒤 아들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군사를 이끌었다.

경상도의 의병들 - 1592년, 4월 이후.

경상도에서도 여러 사람이 일어났다.

곽재우가 의령에서 군사를 모았다.

김면도 고령 일대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정인홍도 합천에서 의병을 모았다.

김해와 여러 지역에서도 크고 작은 의병이 생겼다.

어떤 사람은 수백 명을 거느렸고 어떤 사람은 수십 명을 거느렸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라는 이름을 내건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모두 큰 공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 무기를 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뜻이 있었다.

장사진이 한 팔로 끝까지 싸우다 - 1592년, 7월, 10일 무렵.

장사진은 군위 쪽 사람으로 활을 잘 쏘았다.

그는 일본군과 여러 번 싸웠다.

일본군은 그를 두려워해 장 장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느 날 일본군이 매복해 그를 기다렸다.

장사진은 적을 추격하다 매복 속으로 들어갔다.

치열하게 싸우던 중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한쪽 팔을 잃었다.

그러나 남은 한 팔로 계속 싸웠다.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마침내 전사했다.

충청도에서도 의병이 일어나다 - 1592년, 5월 이후.

충청도에서는 조헌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

여러 선비와 백성이 그에게 모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이 스스로 군사를 조직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도 의병이 생겼다.

전직 관리와 선비, 무인, 평민이 함께 참여했다.

승려들이 군사를 일으키다 - 1592년, 7월 이후.

승려들도 움직였다.

유정은 금강산의 절에 있었다.

처음 일본군이 산속까지 들어왔을 때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군 역시 때로는 승려를 해치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각 지방에 사람을 보내 모두 군사를 일으키도록 독려하자 승려들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유정은 승려들을 불러 모았다.

승려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

평양 부근까지 올라와 조선 관군과 힘을 합쳤다.

평양 동쪽과 순안 일대에서 일본군을 견제했다.

함경도에서도 반격이 일어나다 - 1592년, 9월, 16일 이후.

함경도에서는 정문부 등이 사람을 모아 일본군에 맞섰다.

일본군에게 협력하던 세력을 공격하고 여러 지역을 되찾았다.

북쪽 지방에서도 백성이 다시 조선 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의병의 활약은 무너진 나라가 다시 힘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원호가 일본군의 길을 끊다 - 1592년, 5월 이후.

강원도에서는 원호가 여러 차례 일본군을 공격했다.

강과 산의 지형을 이용해 기습했다.

배에 활 잘 쏘는 사람을 태우고 안개를 이용해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가 활동하면서 일본군은 강원도 길을 마음대로 이용하기 어려워졌다.

이천과 여주, 양근, 지평 주변의 백성도 그 덕분에 어느 정도 보호를 받았다.

원호가 적을 가볍게 여기다 죽다 - 1592년, 6월, 19일.

그러나 승리를 거듭하면서 원호에게도 적을 가볍게 보는 마음이 생겼다.

강원도 관찰사는 그에게 일본군을 공격하라고 계속 재촉했다.

일본군은 원호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길에 군사를 숨겼다.

원호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갔다.

복병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원호는 전투 중 죽었다.

그가 죽은 뒤 강원도에서 일본군을 적극적으로 막을 만한 큰 장수가 사라졌다.

권응수 등이 영천을 되찾다 - 1592년, 7월, 27일부터 28일까지.

경상도 영천에서도 반격이 일어났다.

권응수와 여러 향병 장수들이 천여 명을 모아 영천에 있는 일본군을 포위했다.

군사들 가운데에는 일본군을 두려워해 앞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자 앞장선 사람들이 직접 성으로 뛰어들었다.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일본군은 버티지 못하고 창고와 높은 건물 안으로 몰렸다.

조선군은 불을 놓았다.

많은 일본군이 타 죽었다.

살아남은 일본군 수십 명은 경주로 도망갔다.

영천을 되찾자 주변 여러 고을의 일본군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결과 경상좌도의 여러 지역이 다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영천의 승리는 매우 큰 공이었다.

박진이 경주를 되찾다 - 1592년, 9월, 8일.

박진도 군사를 모아 경주를 공격했다.

처음에는 공격이 잘되지 않았다.

일본군이 성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조선군은 새로운 폭발 무기를 사용했다.

큰 쇠붙이 안에 화약을 넣은 무기였다.

멀리 쏘아 보내면 일정 시간이 지나 폭발했다.

일본군이 처음 보는 폭탄을 구경하다가 죽다 - 1592년, 9월, 8일.

그 무기가 일본군이 머무는 곳에 떨어졌다.

일본군은 처음 보는 물건이라 무엇인지 몰랐다.

여럿이 모여 굴려 보고 구경했다.

잠시 뒤 안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쇳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본군 수십 명이 죽었다.

맞고도 죽지 않은 사람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일본군은 크게 놀랐다.

그날 밤 성을 버리고 물러났다.

박진은 경주에 들어갔다.

군량도 많이 얻었다.

각 지방 의병의 이름을 기록하다 - 1592년, 날짜 미상.

당시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은 너무 많아 모두 자세히 적기 어렵다.

전라도에는 김천일과 고경명 등이 있었다.

경상도에는 곽재우와 김면, 정인홍 등이 있었다.

충청도에는 조헌 등이 있었다.

경기도에도 많은 사람이 일어났다.

어떤 사람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선비였으며 어떤 사람은 군역을 맡은 사람이었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군사를 일으켰다.

다시 평양을 공격하려는 조선군 - 1592년, 8월, 23일 무렵.

조선군은 평양 주변에서도 계속 일본군을 공격했다.

이원익과 여러 장수가 순안과 주변 지역에 진을 쳤다.

강 아래쪽에는 수군도 움직였다.

여러 방향에서 평양을 압박하려 했다.

한 차례 평양 북쪽으로 진격하여 일본군 선봉 수십 명을 공격했다.

처음에는 일부 일본군을 쓰러뜨렸지만 곧 적의 큰 부대가 나타났다.

조선군은 다시 물러났다.

명나라의 심유경이 조선에 오다 - 1592년, 9월, 1일 무렵.

1592년 9월 무렵 명나라에서 심유경이 왔다.

앞서 조승훈이 평양에서 패한 뒤 명나라 사람들 가운데에는 조선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보고에는 조선이 일본군과 내통한다는 말까지 들어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상황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심유경은 일본군과 직접 접촉해 보겠다고 했다.

심유경이 혼자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가려 하다 - 1592년, 9월, 1일 무렵.

심유경은 일본군에게 편지를 보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편지를 받고 만나겠다고 했다.

심유경이 일본군 진영으로 가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걱정했다.

“저들이 당신을 붙잡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 사람이 말렸다.

심유경은 웃었다.

“그들이 어찌 감히 나를 죽이겠는가?”

그는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갔다.

일본군이 무력을 과시하다 - 1592년, 9월, 1일 무렵.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 현소 등이 많은 군사를 늘어세웠다.

평양에서 멀지 않은 산 아래였다.

조선군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일본군의 수가 매우 많았다.

창과 칼이 눈처럼 번쩍였다.

심유경은 말에서 내렸다.

그대로 일본군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일본군이 사방에서 그를 에워쌌다.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그가 잡힌 줄 알았다.

일본군도 심유경의 담력을 놀랍게 여기다 - 1592년, 9월, 1일 무렵.

얼마 뒤 심유경이 무사히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고니시 유키나가도 그의 담력을 인정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우리 군대 한가운데 들어와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심유경은 일본군 앞에서 옛 중국의 용감한 인물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은 너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오십 일 동안 싸우지 않기로 하다 - 1592년, 9월, 1일부터 10월 20일까지.

심유경은 일본군과 약속을 맺었다.

일정 기간 동안 서로 싸우지 않기로 했다.

약 오십 일 동안 일본군은 평양에서 서북쪽으로 일정 거리 이상 나오지 않고 약탈하지 않기로 했다.

조선 사람도 일본군 진영에 지나치게 가까이 가지 않기로 했다.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경계에 나무 표지까지 세웠다.

그 뒤 한동안 평양 주변에는 큰 싸움이 줄어들었다.

심대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죽다 - 1592년, 날짜 미상.

경기 지역에서도 여러 사람이 일본군을 공격했다.

심대라는 사람은 나라가 무너진 뒤 늘 분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일본군이 있는 곳을 자주 오갔다.

나는 그를 만났을 때 말했다.

“그대는 문신 출신이다.

직접 적진에 뛰어드는 것보다 용맹한 장수를 구해 군사를 맡기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내 말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군에게 내응자를 심어 놓다 - 1592년, 날짜 미상.

심대는 서울 안에 몰래 사람을 들여보냈다.

일본군에게 협력하는 척하면서 내부 사정을 알아내게 했다.

서울 안에는 일본군에게 붙은 조선 사람도 많았다.

심대는 그들을 이용해 일본군의 움직임을 알아냈다.

그러나 일본군도 조선군 진영에 첩자를 보내고 있었다.

양쪽의 첩자들이 서로 오갔다.

심대가 밤중의 기습으로 죽다 - 1592년, 날짜 미상.

심대가 한 지역에 머물고 있을 때 일본군은 그의 위치를 알아냈다.

밤에 강을 건너 갑자기 습격했다.

심대는 놀라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도망치려 했지만 일본군이 추격했다.

결국 심대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죽었다.

서울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의 머리가 서울 거리의 높은 곳에 한동안 걸려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래 돈과 물건을 주고 머리를 찾아냈다.

일본군이 물러난 뒤 시신과 함께 고향에 장사 지냈다.

일본군 첩자를 붙잡다 - 1592년, 12월, 2일 무렵.

나는 안주에 머물면서 여러 군영에 명령을 보내고 있었다.

1592년 12월 2일 무렵이었다.

군관 한 사람에게 군사 작전과 관련된 명령을 들려 보내고 며칠 안에 돌아오게 했다.

그런데 김순량이라는 사람이 수상한 행동을 했다.

그는 여러 군영을 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군인처럼 보였다.

김순량의 행동을 의심하다 - 1592년, 12월, 2일 무렵.

김순량에게 어떤 소가 생겼다.

사람들이 물었다.

“이 소는 어디에서 났느냐?”

그는 말했다.

“원래 내 소인데 친척 집에 맡겨 두었던 것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있었다.

나는 의심했다.

사람을 시켜 김순량을 붙잡게 했다.

엄하게 심문했다.

일본군에게 정보를 넘겼다고 자백하다 - 1592년, 12월, 2일 무렵.

처음에는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심문이 계속되자 마침내 자백했다.

그는 일본군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고 있었다.

조선군의 군영과 명령을 살펴 평양에 있는 일본군에게 전달했다.

일본군은 그에게 비밀 문서를 주었다.

정보를 가져오면 상을 주었다.

소 한 마리도 그 대가로 받은 것이었다.

첩자가 마흔 명이 넘었다 - 1592년, 12월, 2일 무렵.

나는 김순량에게 물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너 하나뿐이냐?”

김순량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마흔 명이 넘습니다.”

나는 크게 놀랐다.

그들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

여러 사람으로 흩어져 있었다.

순안과 강서의 여러 군영을 자유롭게 오갔다.

멀리는 안주와 의주까지 드나들었다.

조선군과 명나라 군대의 형세를 살펴 일본군에게 알리고 있었다.

각 군영에 첩자의 이름을 급히 알리다 - 1592년, 12월, 2일 무렵.

나는 즉시 보고서를 올렸다.

또 김순량에게서 들은 이름을 각 군영에 급히 알렸다.

“이 사람들을 발견하면 곧바로 잡아라.”

일부는 붙잡혔다.

일부는 눈치를 채고 달아났다.

김순량은 성 밖에서 처형했다.

제1권을 마치며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의 대군이 조선으로 들어왔다.

만약 김순량을 잡지 못했다면 일본군의 첩자들이 명나라 군대가 언제 어디로 움직이는지까지 모두 알아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일본군은 미리 대비했을 것이고 이후의 전투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김순량을 우연히 의심하여 첩자 조직의 존재를 알아낸 것도 겉으로 보면 작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이 매우 위태로웠던 때 이런 일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져 결국 다시 일어설 길이 열렸다.

나는 이것 역시 사람의 힘만으로 된 일이 아니라 하늘의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1권 끝

징비록 둘째 권

명나라가 대군을 보내다 - 1592년, 12월, 날짜 미상.

1592년 음력 12월, 명나라는 마침내 대군을 일으켜 조선을 구원하기로 했다.

병부의 송응창이 전쟁 전체를 지휘하는 책임을 맡았고, 이여송이 대장이 되어 군사를 이끌었다. 이여백과 사대수 등 여러 장수가 휘하에 있었으며, 남쪽 지방에서 싸움에 익숙한 낙상지와 오유충 같은 장수들도 함께 왔다.

군사는 모두 4만여 명이었다.

그보다 앞서 심유경이 일본군 진영에 들어가 강화를 이야기한 뒤 일본군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지나도록 심유경이 돌아오지 않자 일본군도 점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일본군 진영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적이 평양성을 공격에 대비해 크게 고치고 여러 방어 시설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초가 되자 심유경이 다시 평양성으로 들어갔다.

그는 며칠 동안 일본군 진영에 머물며 다시 약속을 한 뒤 돌아왔다.

그 무렵 명나라 대군은 안주에 도착해 성 밖에 진을 쳤다.

군대의 진영과 군사 장비가 매우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이여송을 만나 평양의 사정을 설명하려 했다.

처음에는 쉽게 만나 주지 않았지만 마침내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았다.

이여송은 위엄이 있는 장수였다.

나는 평양 지도를 꺼내 놓고 성의 형세와 일본군이 있는 곳, 아군이 들어가기에 좋은 길을 하나하나 가리켜 설명했다.

이여송은 자세히 듣더니 붉은 붓으로 공격할 곳을 표시했다.

그리고 말했다.

“왜적에게 있는 것은 총뿐이다. 우리 대포는 멀리까지 날아가는데 저들이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는 일본군의 화력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와 만난 뒤 이여송은 부채에 시를 적어 주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밤낮없이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조선을 구하러 왔으며, 봄이 오기 전에 적을 쓸어버리고 나라를 다시 편안하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새해가 막 시작된 때였다.

일본군을 속여 성 밖으로 끌어내다 - 1593년, 1월, 6일부터 8일까지.

이여송은 먼저 사대수를 순안으로 보냈다.

일본군에게는 명나라 조정에서 강화를 허락했고 심유경도 곧 온다고 알렸다.

일본군은 이 말을 믿었다.

강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뻐하며 전쟁이 끝나고 중국과 일본이 한집안처럼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까지 지었다.

일본군의 작은 장수 한 사람이 군사 스무여 명을 거느리고 심유경을 맞으러 나왔다.

사대수는 그들을 술자리로 유인했다.

일본군이 방심하여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숨어 있던 명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뛰쳐나와 공격했다.

일본군 일부가 죽었다.

살아남은 몇 사람만 평양성으로 달아났다.

그제야 성 안의 일본군은 명나라 대군이 실제로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술렁였다.

그 무렵 명나라 대군은 이미 평양 가까이까지 진격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진을 치고 밥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여송은 쉬지 않고 기병을 거느린 채 순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평양 공격을 준비했다.

평양성 총공격 - 1593년, 1월, 8일.

다음 날 명나라 군대가 평양성을 포위했다.

보통문과 칠성문을 비롯한 여러 성문을 동시에 공격했다.

일본군은 성 위에 붉은 깃발과 흰 깃발을 빽빽하게 세우고 맞섰다.

명나라 군대는 큰 대포와 화전을 한꺼번에 쏘았다.

포성이 땅을 울렸다.

수십 리에 걸쳐 산과 들이 흔들리는 듯했고, 불화살은 하늘을 가득 메울 만큼 날아갔다.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불화살이 성 안으로 떨어지면서 곳곳에서 불이 났다.

오유충을 비롯한 명나라 장수들은 병사들을 직접 이끌고 성벽에 붙었다.

군사들은 개미떼처럼 사다리를 타고 성벽으로 올라갔다.

앞에 올라간 사람이 떨어지면 곧바로 뒤에 있던 사람이 이어서 올라갔다.

물러나려는 병사는 장수가 직접 막았다.

일본군도 필사적으로 싸웠다.

성벽 위에서 총을 쏘고 칼과 창을 휘둘렀다.

성벽 아래로 무기를 내리치기도 했다.

전투는 매우 치열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가 계속 밀어붙이자 일본군은 끝내 바깥 성을 지키지 못하고 안쪽으로 물러났다.

불에 타 죽은 일본군도 매우 많았다.

명나라 군사들은 다시 안쪽 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안쪽 성에서는 형편이 달라졌다.

일본군은 흙벽 여러 곳에 구멍을 뚫어 놓고 그곳에서 총을 쏘았다.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명나라 군사들이 잇따라 쓰러졌다.

피해가 커지자 이여송은 병사들을 잠시 성 밖으로 물렸다.

다음 공격을 위해 길도 정리했다.

일본군이 한밤중에 평양을 버리다 - 1593년, 1월, 8일부터 9일까지.

그날 밤 일본군은 어둠과 연기를 틈타 평양에서 빠져나왔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 겐소 등을 비롯한 일본군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한양 쪽으로 달아났다.

나는 명나라 대군이 평양으로 진격하기 전부터 이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황해도의 방어를 맡은 장수들에게 미리 명령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면 일본군은 반드시 남쪽으로 달아날 것이다. 주요 길목에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적의 앞뒤를 끊어라.

싸움에서 패해 달아나는 군대는 지치고 굶주려 제대로 싸울 마음이 없다. 바로 그때 공격하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나는 특히 김경로 등에게 이 일을 단단히 당부했다.

그런데 명령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일본군은 밤새 쉬지 않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기운이 다하고 발이 부르튼 병사도 많았다.

어떤 일본군은 논밭에 남아 있는 것을 찾아 먹었고, 먹을 것이 없어 우리 백성에게 구걸하며 내려가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군은 거의 나와 싸우지 않았다.

명나라 군대도 적극적으로 뒤쫓지 않았다.

이시언의 군사 일부만 뒤를 따라가 일본군 수십 명의 목을 베었을 뿐이었다.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것을 탄식하다 - 1593년, 1월, 10일 무렵.

그때 한양에 있던 일본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력은 평양에서 내려가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였다.

가토 기요마사는 아직 함경도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 같은 장수들을 도중에 붙잡거나 죽였다면 한양에 있던 일본군의 기세도 크게 꺾였을 것이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에서 돌아오는 길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면 일본군 전체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지에 고립되었을 것이다.

명나라 대군이 곧바로 뒤쫓고 조선군이 길목을 막았더라면 일본군은 한양까지 제대로 달아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아무도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군은 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한양으로 돌아갔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좋은 기회를 사람이 놓쳐 버린 셈이었다.

나는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웠다.

천하의 큰일은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한 번의 머뭇거림이 나라 전체의 형세를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김경로의 죄를 처벌하려 하다 - 1593년, 1월, 10일 무렵.

김경로는 군율을 어긴 죄가 컸다.

나는 평안도의 군사 업무를 살피는 위치에 있었지만 김경로는 내가 직접 거느리는 장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먼저 조정에 그의 처벌을 요청했다.

조정에서는 선전관 이순일에게 왕의 명령을 상징하는 표신을 가지고 개성으로 가게 했다.

김경로를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나는 먼저 이여송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여송이 말했다.

“그 사람의 죄라면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 한양을 되찾지 못했다. 이처럼 전쟁이 급한 때에는 무장 한 사람도 아깝다.

우선 목숨을 살려 주고 전쟁터에 보내 공을 세워 죄를 갚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결국 김경로는 바로 처형되지 않았다.

조선군 지휘 체계를 다시 정리하다 - 1593년, 1월, 10일 무렵.

평양 전투가 끝난 뒤 조선 장수들의 지휘 문제도 생겼다.

명나라 군대는 조선군이 적의 움직임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다고 불평했다.

명나라 장수들 가운데 조선의 여러 장수를 자주 만나 본 사람들은 누구는 장수로 쓸 만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선 조정에서도 장수들을 다시 바꾸었다.

군사를 이끌 사람을 새로 정하고 일부 장수에게 기병을 붙여 이여송의 군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러나 이런 인사와 지휘권 조정이 전쟁 중에도 계속되었으므로 군대가 하나의 체계로 움직이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대군이 남하하자 군량 문제가 닥치다 - 1593년, 1월, 10일 이후.

이여송은 평양을 되찾은 뒤 한양을 향해 내려갔다.

그러나 곧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다.

군량이었다.

나는 말했다.

“명나라 대군이 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앞길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나라를 되찾으려면 반드시 군량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평양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전쟁 때문에 완전히 황폐해져 있었다.

일본군이 지나간 지역에서는 백성이 흩어지고 창고도 거의 비어 있었다.

나는 급히 길을 떠났다.

밤에 중화에 들어갔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황주에 도착했다.

가는 곳마다 일본군이 지나간 뒤라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도 없고 곡식도 없었다.

나는 황해도 감사에게 군량을 서둘러 모아 운반하라고 계속 명령했다.

평안도 감사 이원익에게도 군량을 모으라고 했다.

평안도 여러 고을의 곡식을 배로 실어 황해도 쪽으로 보내는 방법도 마련했다.

모든 일을 미리 준비했어야 했지만 일본군과 명나라 군대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일이 닥친 뒤에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대군이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으니 하루라도 늦으면 군대가 굶을 형편이었다.

일본군이 한양 백성을 죽이고 건물을 불태우다 - 1593년, 1월, 24일 무렵.

1593년 음력 1월 24일 무렵, 한양의 일본군은 평양 패전 소식을 듣고 크게 흔들렸다.

그들은 한양의 백성들이 명나라 군대를 맞아 내부에서 들고일어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성 안의 백성을 죽이고 관청과 민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서쪽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일본군도 한양으로 모였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이여송에게 계속 말했다.

“지금이 바로 서둘러 공격할 때입니다.”

그러나 명나라 대군의 진격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벽제관으로 나간 선발대가 일본군과 싸우다 - 1593년, 1월, 25일 무렵.

사대수와 고언백은 수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앞으로 나갔다.

그들은 일본군의 선봉과 맞닥뜨려 싸웠다.

전투 끝에 일본군 백여 명을 죽였다.

이 소식이 이여송에게 전해졌다.

이여송은 적이 약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는 본대가 모두 도착하기도 전에 측근과 기병을 이끌고 곧바로 앞으로 달려갔다.

혜음령의 험한 길을 지나는데 이여송이 탄 말이 넘어졌다.

부하들이 달려들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때 처음 보이던 일본군은 겨우 수백 명뿐이었다.

이여송의 군대가 앞으로 나아가자 일본군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것은 적을 끌어들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벽제관 전투 - 1593년, 1월, 27일.

잠시 뒤 산 뒤에서 일본군이 계속 나타났다.

처음에는 몇백 명이던 병력이 점점 늘어 수천 명이 되고, 다시 그 뒤에서 큰 병력이 몰려나왔다.

명나라 군대는 이미 좁은 지형 깊숙이 들어온 뒤였다.

뒤따라오던 명나라 본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여송이 데리고 온 군사는 대부분 기병이었다.

화포도 충분히 가지고 오지 않았다.

반면 일본군은 보병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날카롭고 긴 무기를 들고 가까이 달려들었다.

좁은 산길에서는 명나라 기병이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일본군이 좌우에서 달려들어 사람과 말을 베었다.

기병은 서로 뒤엉켰다.

일본군과 거리를 벌려 말을 달릴 수도 없었다.

앞선 군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속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많은 병사가 죽거나 다쳤다.

이여송도 형세가 매우 위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군대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두고 아끼던 부하 가운데 죽은 사람도 있었다.

이여송은 몹시 슬퍼하며 통곡했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나려 하다 - 1593년, 1월, 27일.

다음 날 명나라 군대는 동파 쪽으로 물러날 준비를 했다.

나와 대신들, 도원수 김명원 등이 이여송의 군영을 찾아갔다.

이여송이 장수들을 좌우에 세워 놓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나는 힘껏 말했다.

“싸움에서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병가에 늘 있는 일입니다.

어제 조금 불리했다고 해서 바로 군대를 물려서는 안 됩니다.

형세를 다시 살펴 곧바로 공격해야 합니다.”

이여송은 말했다.

“어제 우리도 일본군을 많이 죽였다. 크게 불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은 비가 온 뒤 땅이 너무 질어서 군대를 머물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잠시 동파로 가 군사를 쉬게 한 뒤 다시 공격하려는 것이다.”

우리들은 물러나지 말라고 거듭 간청했다.

일본군이 이십만 명이라는 보고를 따지다 - 1593년, 1월, 28일 무렵.

이여송은 자신이 명나라 조정에 올릴 보고서 초안을 꺼내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한양에 있는 일본군이 이십만 명이 넘는다고 적혀 있었다.

또 자신의 몸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지휘를 맡겨 달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나는 일본군 숫자를 적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한양의 일본군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십만 명이나 된다고 하십니까?”

이여송이 말했다.

“나도 직접 센 것은 아니다. 너희 나라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명나라 장수들 가운데 일부는 이여송에게 계속 군대를 물려야 한다고 권했다.

우리 일행이 아무리 말려도 이여송의 생각을 돌리기 어려웠다.

말들이 굶고 병들어 죽다 - 1593년, 1월, 28일 이후.

군량만 문제가 아니었다.

말에게 먹일 풀과 콩도 없었다.

전쟁으로 주변이 모두 황폐해져 길가에서 풀을 구하기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말들 사이에 병까지 돌았다.

많은 군마가 계속 쓰러졌다.

명나라 기병의 힘은 말에 달려 있었는데 말들이 죽기 시작하니 장수들도 크게 걱정했다.

결국 명나라의 여러 부대가 다시 임진강을 건너 동파로 물러났다.

다음 날에는 동파에서도 개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나는 다시 이여송에게 말했다.

“대군이 한 번 물러나면 일본군의 기세가 크게 살아날 것입니다.

멀고 가까운 백성들도 모두 놀랄 것입니다.

임진강 이북마저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이곳에 머물면서 형세를 살펴 주십시오.”

이여송은 잠시 머물겠다고 했지만 결국 자신은 개성으로 돌아갔다.

사대수 등 일부 명나라 군사만 임진강 부근에 남았다.

나는 그대로 동파에 남았다.

그리고 날마다 다시 진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여송은 말했다.

“날씨가 좋아지고 길이 마르면 나가겠다.”

그러나 좀처럼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군량이 도착하는 대로 사라지다 - 1593년, 1월, 28일 이후.

대군이 개성에 오래 머무르자 군량 사정은 더욱 다급해졌다.

강화도에서 곡식과 말먹이를 배에 실어 보냈다.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거둔 세곡도 조금씩 올라왔다.

그러나 대군의 수가 워낙 많았다.

곡식이 도착하면 바로 다 소비됐다.

아무리 보내도 쌓이지 않았다.

어느 날 명나라 장수 몇 사람이 군량이 없다는 이유로 군대를 돌려보내자고 주장했다.

이여송은 크게 화를 냈다.

나와 조선의 관리들도 불려갔다.

나는 나라의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명나라 군대마저 돌아가려 한다는 말을 들으니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계속 머리를 숙이고 사정했다.

이여송은 내 모습을 보고 잠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장수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너희는 예전에 나를 따라 다른 전쟁에 나갔을 때 며칠씩 먹지 못하면서도 싸웠다. 그래도 끝내 큰 공을 세웠다.

지금 며칠 군량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감히 철군을 말하는가?

다시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장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 무렵 강화도에서 출발한 곡식 배 수십 척이 서강 쪽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당장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명나라 군대가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 1593년, 2월, 1일 무렵.

그 무렵 함경도의 가토 기요마사가 평양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여송은 이 말을 듣고 평양이 위험하다며 북쪽을 걱정하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일본군이 명나라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퍼뜨린 말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그때 우리 군대는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권율은 행주에 있었고 고언백과 이시언 등이 파주와 주변 지역에 있었으며 도원수 김명원도 임진강 일대에 있었다.

나는 동파에 있으면서 명나라 군대가 물러나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선왕들의 능이 모두 한양 부근에 있는데 적에게 버려 둘 수 없다.

둘째, 한양 남쪽의 백성들은 날마다 명나라 군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군이 물러난다는 말을 들으면 백성들이 다시 흩어질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땅은 한 치라도 적에게 함부로 내줄 수 없다.

넷째, 우리 장수와 군사들은 명나라 군대를 믿고 함께 적을 치려고 한다. 명나라 군대가 갑자기 물러가면 원망하고 실망할 것이다.

다섯째, 군대가 한 번 물러나면 일본군이 뒤를 따라올 것이므로 임진강 이북도 지키기 어려워진다.

나는 이런 뜻을 글로 써서 명나라 측에 전했다.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싸우다 - 1593년, 2월, 12일.

그 무렵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행주산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권율은 본래 광주목사였다가 전라도 순찰사를 맡게 되었다.

앞서 여러 군대가 일본군과 들판에서 싸우다가 패했을 때 그는 수원의 독산성에 들어가 버텼다.

일본군도 그 성을 쉽게 공격하지 못했다.

뒤에 명나라 군대가 한양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권율은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으로 군대를 옮겼다.

일본군은 한양에서 대병력을 내보내 행주산성을 공격했다.

성 안에서는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뒤에는 한강이 있어 마음대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권율과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일본군은 부대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차례로 공격했다.

한 부대가 물러나면 다른 부대가 올라왔다.

조선군은 활과 총통, 화포와 돌을 쏟아부었다.

전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일본군은 몇 차례나 성 가까이 밀려왔지만 끝내 성을 빼앗지 못했다.

해가 질 무렵 일본군은 결국 한양으로 돌아갔다.

일본군이 입은 피해를 보여 주다 - 1593년, 2월, 13일 무렵.

전투가 끝나자 권율은 적의 시체를 모으게 했다.

일부 시체는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나무와 함께 쌓아 일본군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보이게 했다.

일본군이 다시 공격하려고 나왔을 때 자기들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보게 하려는 뜻이었다.

이 승리는 매우 중요했다.

벽제관에서 명나라 군대가 물러난 뒤 일본군의 기세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는데 행주에서 크게 패하면서 다시 함부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파주 일대의 방어를 다시 정비하다 - 1593년, 2월, 16일 무렵.

나는 행주의 승전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파주로 갔다.

산성의 지형을 직접 살펴보니 큰길을 가로막고 있어 방어하기에 매우 좋았다.

나는 권율과 군대를 그곳에 머물게 했다.

일본군이 서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도록 했다.

고언백과 이시언 등에게는 움직임이 빠른 병력을 주었다.

의병들에게도 산과 길목에 숨어 있다가 적을 공격하게 했다.

원칙은 간단했다.

일본군이 많이 나오면 피했다.

적은 수가 나오면 여러 곳에서 갑자기 덮쳤다.

이렇게 하자 일본군은 한양 밖으로 나와 마음대로 정찰하거나 약탈하기 어려워졌다.

나왔다가 죽는 사람이 많았다.

수군과 의병까지 한양을 압박하게 하다 - 1593년, 2월부터 4월까지.

나는 육군만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의병장들과 경기 수군, 충청 수군도 움직이게 했다.

배를 용산과 서강 쪽으로 보내 일본군을 압박하게 했다.

충청도 방면의 군사는 남쪽 길을 막도록 했다.

여러 고을의 관군과 의병도 자기 지역의 길목을 지키면서 일본군이 이동하지 못하게 했다.

조선군이 일본군의 목을 베어 오면 개성 남문 밖에 걸어 놓기도 했다.

명나라 장수들이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

“조선 사람들도 이제 적을 제대로 베는구나.”

일본군이 권율에게 보복하려 했으나 공격하지 못하다 - 1593년, 2월부터 4월까지.

일본군은 행주에서 크게 패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

권율에게 보복하기 위해 다시 큰 병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나왔다.

일본군은 산성에서 몇 리 떨어진 곳까지 왔다.

그러나 한낮부터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산성만 바라보았다.

산성이 워낙 험해 쉽게 공격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결국 공격하지 않고 다시 물러갔다.

그 뒤 일본군은 그 산성 쪽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런 형세를 이용해 명나라 남쪽 출신 보병을 한강 남쪽으로 돌려 일본군을 압박하는 방법도 생각했다.

일본군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공격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여러 사정 때문에 실행되지 못했다.

굶주린 백성들이 나를 찾아오다 - 1593년, 4월, 날짜 미상.

전쟁이 길어지면서 백성의 형편은 더욱 참혹해졌다.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한 지 오래되었다.

전쟁의 불길이 지나간 곳은 수백 리에 걸쳐 모두 황폐했다.

백성은 농사를 짓지 못했다.

곡식이 끊겼다.

굶어 죽는 사람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한양 안에 숨어 살아남은 백성 가운데 일부는 내가 동파에 있다는 말을 듣고 서로 부축하며 찾아왔다.

그들은 살이 빠져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길에서 어린아이가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일본군이 물러가지 않고 백성의 형편이 계속 이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군량 일부를 굶주린 백성에게 풀다 - 1593년, 4월, 날짜 미상.

마침 전라도에서 보낸 곡식 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일부 곡식을 떼어 굶주린 백성을 살리는 데 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관리를 시켜 죽을 끓이게 했다.

곡식을 여러 몫으로 나누어 물을 많이 넣고 끓여 사람들에게 먹였다.

그러나 굶주린 사람은 너무 많고 곡식은 너무 적었다.

살려 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하루에 수십 석씩 써도 백 명 가운데 몇 사람에게도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 주변에는 언제나 굶주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울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기조차 괴로웠다.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길에서 쓰러져 죽는 사람도 많았다.

씨앗조차 남지 않았다 - 1593년, 4월, 날짜 미상.

나는 전라도의 곡식을 더 옮겨 와 백성을 구제하고 봄 농사에 쓸 씨앗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양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일본군이 오가며 거의 모두 짓밟아 놓았다.

당시는 벌써 음력 4월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이 산과 골짜기로 숨어 다니느라 보리 한 알 심지 못한 곳이 많았다.

일본군이 몇 달만 더 물러나지 않는다면 살아남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어질 상황이었다.

심유경이 다시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가다 - 1593년, 4월, 7일 무렵.

1593년 음력 4월 7일 무렵 심유경이 다시 한양으로 들어가 일본군과 협상하려 했다.

그보다 앞서 우리 진영에 있던 한 사람이 스스로 한양에 들어가 적의 사정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성 안으로 들어가 두 왕자와 여러 신하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일본군도 용산 쪽으로 편지를 보내 강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편지를 받아 생각했다.

이여송은 이미 적극적으로 싸울 뜻을 많이 잃은 것처럼 보였다.

혹시 이 강화 이야기를 구실로 일본군을 물러나게 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또 상황에 따라서는 명나라 대군이 다시 개성으로 물러갈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편지를 사대수에게 보여 주었다.

사대수는 곧 사람을 보내 평양에 있던 이여송에게 알렸다.

나는 강화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1593년, 4월, 7일 무렵.

이여송과 여러 명나라 장수가 모였다.

심유경도 불려왔다.

명나라 장수들은 심유경에게 말했다.

“일본군은 평양에서 직접 우리와 싸웠다. 이미 그들의 거짓을 보았다. 그런데 다시 그들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인가?”

심유경이 대답했다.

“일본군이 빨리 물러가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제가 지겠습니다.

먼저 조선 왕자들과 붙잡아 둔 사람들을 돌려보내게 하고 군대를 부산으로 철수시킨 뒤 강화를 논하면 됩니다.”

나는 이여송에게 말했다.

“강화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지금 공격해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 낫습니다.”

이여송은 처음에는 내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그 말이 바로 내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명나라 군대는 적극적으로 다시 공격하지 않았다.

명나라 군영의 패에 절하지 않다 - 1593년, 4월, 날짜 미상.

그 무렵 명나라 군영에서 군령을 나타내는 패를 가진 사람이 우리 진영으로 왔다.

나와 도원수 등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패가 어떤 성격인지 살펴보았다.

황제의 직접 명령도 아니었고, 우리나라 신하가 반드시 절해야 할 물건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 적힌 짧은 글 가운데 우리 입장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그 일이 이여송에게 전해졌다.

이여송은 크게 화를 냈다.

“내 군령을 들고 갔는데 감히 절하지 않았단 말인가?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이여송을 찾아가 사과하다 - 1593년, 4월, 날짜 미상.

다음 날 나는 도원수와 함께 개성의 명나라 군영으로 갔다.

먼저 문밖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한동안 들어오라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밖에서 계속 기다렸다.

마침 비까지 내렸다.

오랫동안 기다린 뒤에야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이여송은 마루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그 패가 귀한 군령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그 옆에 적힌 글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그대로 절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적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차마 절하지 못했던 것이지 제독을 업신여긴 것이 아닙니다.

죄가 있다면 피하지 않겠습니다.”

이여송은 내 말을 듣고 화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나를 붙잡으라는 명령까지 나왔다는 소문 - 1593년, 4월, 날짜 미상.

그 뒤 명나라 군영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내가 강화를 반대하며 심유경을 잡으려 한다는 말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심유경을 일본군 진영으로 가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고 전했다.

이여송은 그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냈다.

나를 붙잡아 매를 치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명나라 사람 한 명이 심하게 매를 맞아 거의 정신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를 걱정했다.

나는 본래 일본군과의 강화를 믿지 않았으므로 그런 소문이 생긴 듯하다.

그러나 전쟁의 형세를 생각하면 적을 믿고 군사를 물리는 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명나라 장수들이 다시 강화를 권하다 - 1593년, 4월, 날짜 미상.

며칠 뒤 명나라 장수들이 다시 동파로 찾아왔다.

나와 도원수, 여러 관리가 함께 앉았다.

그들은 천천히 강화를 이야기했다.

“일본군이 왕자와 포로를 돌려보내고 한양에서 물러간다고 한다. 우선 그들이 성을 비우게 한 뒤 다른 일을 생각하면 어떻겠는가?”

나는 여전히 반대했다.

말이 여러 차례 오갔다.

명나라 장수 한 사람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 임금은 왜 한양을 버리고 피란했는가?”

나는 그 말에 웃기만 하고 크게 맞서지 않았다.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명나라 군대와 정면으로 갈등하는 것도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바꾸지 않았다.

일본군이 한양에서 물러나다 - 1593년, 4월, 18일.

1593년 음력 4월 19일, 이여송이 대군을 이끌고 동파까지 왔다.

이미 일본군이 한양을 비우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나는 이여송을 찾아갔지만 그는 나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

다음 날인 4월 20일, 한양이 마침내 수복되었다.

명나라 군대가 먼저 도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군은 전날 이미 성을 떠난 뒤였다.

나도 명나라 군대를 따라 한양으로 들어갔다.

폐허가 된 한양 - 1593년, 4월, 20일.

성 안의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남은 백성은 백 명 가운데 한 명도 되지 않는 듯했다.

살아 있는 사람도 굶주림과 병으로 얼굴빛이 귀신 같았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었는데 사람과 말의 시체가 길 곳곳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냄새가 너무 심해 코를 막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었다.

관청과 백성의 집은 거의 모두 불타 없어졌다.

일부 지역에는 벽과 기둥만 남아 있었다.

일본군 장수들이 머물던 곳이나 그들이 사용하던 일부 건물만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먼저 선왕들의 사당이 있던 곳을 찾아갔다.

그 모습을 보자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지금 추격해야 한다고 이여송에게 요구하다 - 1593년, 4월, 20일.

나는 곧 이여송의 숙소로 찾아갔다.

오랫동안 기다린 뒤 그를 만나 말했다.

“일본군이 지금 한양을 떠나 남쪽으로 달아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군사를 보내 뒤쫓아야 합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당연히 추격해야 한다. 하지만 한강을 건널 배가 없다.”

나는 즉시 대답했다.

“제독께서 정말 추격하실 뜻이 있다면 배는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사실 나는 한양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경기도 감사와 수군 장수들에게 명령해 한강의 크고 작은 배를 모두 모으게 해 두었다.

곧 배가 준비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그 사실을 이여송에게 알렸다.

배까지 마련했는데 명나라 군대가 돌아오다 - 1593년, 4월, 20일.

이여백이 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강으로 나왔다.

병사들이 차례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야 일본군을 제대로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해가 저물 무렵 이여백이 갑자기 발이 아프다고 말했다.

“오늘은 성으로 돌아가 치료하고 내일 다시 나오겠다.”

그는 수레를 타고 한양으로 돌아갔다.

이미 강을 건넌 명나라 군사들도 다시 배를 타고 돌아왔다.

나는 답답하고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명나라 군대에는 처음부터 일본군을 끝까지 추격할 뜻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며칠 뒤 나도 병이 심해져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명나라 군대가 뒤늦게 추격하는 모습을 보이다 - 1593년, 4월, 20일 이후.

음력 5월이 되자 이여송이 일본군을 뒤쫓아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문경 부근에서 돌아왔다는 말이 들렸다.

이미 일본군이 한양을 떠난 지 여러 날이 지난 뒤였다.

진심으로 뒤쫓아 싸우려는 것이라기보다 조정에 추격했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실제로 일본군을 두려워하여 더 깊이 내려가지 못한 것이었다.

일본군은 그사이 남해안까지 내려갔다.

일본군이 남해안에 열여섯 곳의 진영을 만들다 - 1593년, 4월, 20일 이후.

일본군은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해안을 따라 여러 곳에 성을 쌓고 주둔했다.

서생포와 부산, 김해를 비롯해 여러 해안 지역에 진지가 이어졌다.

모두 열여섯 곳가량이었다.

산을 등지고 바다를 끼고 성을 쌓았다.

서로 연락하기에도 좋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오랫동안 조선 땅에 머물 생각이 분명했다.

명나라에서도 남쪽으로 병력을 보냈다.

여러 장수가 군사를 나누어 일본군 진지를 둘러싸고 서로 맞섰다.

그러나 산을 넘고 먼 곳까지 명나라 군대의 군량을 나르느라 조선 백성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왕자들을 돌려보내고 진주성을 공격하다 - 1593년, 6월, 21일.

음력 6월, 일본군은 붙잡아 두었던 임해군과 순화군 등 왕자들과 여러 신하를 돌려보냈다.

심유경이 협상을 계속하면서 얻은 결과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왕자를 돌려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진주성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지난해 진주성 전투에서 크게 패한 원한을 갚으려는 것이었다.

그때 김시민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일본군은 이번에는 반드시 진주성을 빼앗겠다는 생각으로 대군을 움직였다.

진주성을 구하려는 군대가 의령에 모이다 - 1593년, 6월, 21일 무렵.

일본군이 진주로 내려간다는 소식이 들리자 도원수 김명원과 권율을 비롯한 여러 장수의 군대가 의령 부근에 모였다.

진주로 가 일본군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곽재우와 고언백 등 일부 장수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군의 기세가 매우 강합니다.

우리 군대는 대부분 기병이고 적을 공격할 화포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상태로 함부로 앞으로 나아가 적의 대군과 싸우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일부 종사관들은 장수들을 향해 왜 빨리 진주로 가지 않느냐고 크게 꾸짖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다.

구원군이 진주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무너지다 - 1593년, 6월, 22일.

여러 군대는 결국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진주 가까이 갈수록 군량이 떨어졌다.

먹을 것이 없어 군사들이 청림의 열매 같은 것을 따 먹을 정도가 되었다.

그때 일본군의 대병력이 김해 쪽에서 몰려온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어떤 장수는 그 자리에서 싸우자고 했다.

다른 장수는 뒤로 물러나 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논의가 끝나지 않았다.

그때 일본군의 포성이 들렸다.

군사들이 크게 놀랐다.

사람들이 서로 먼저 성을 빠져나가려고 몰렸다.

다리 부근에서 넘어지고 짓밟혀 죽는 사람도 많았다.

결국 각 부대가 제각기 흩어졌다.

권율과 김명원을 비롯한 여러 장수도 진주를 구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포위하다 - 1593년, 6월, 22일부터 29일까지.

진주성은 사방이 험하여 본래 지키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성의 일부가 낮은 곳으로 옮겨져 방어에는 불리한 점도 있었다.

일본군은 높은 공격 시설을 만들었다.

성벽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총을 쏘았다.

또 성 밖의 대나무를 이용해 큰 방패를 만들어 병사들을 가렸다.

그 뒤에서 총을 쏘았다.

총알이 비처럼 성 안으로 날아들었다.

성 위의 사람들은 머리를 내밀기도 어려웠다.

성 안의 장수들이 서로 맞지 않다 - 1593년, 6월, 22일부터 29일까지.

성 안에는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고종후를 비롯한 여러 장수와 의병이 있었다.

그러나 지휘가 완전히 하나로 모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군사 경험이 충분하지 않으면서 자기 뜻만 내세웠다.

평소부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명령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황진은 동쪽 성벽을 맡아 며칠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다 날아온 총탄에 맞아 죽었다.

유능한 장수가 죽자 성 안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바깥에서는 끝내 구원군이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진주성이 무너지다 - 1593년, 6월, 29일.

며칠 뒤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일본군은 그곳으로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성 안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북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먼저 무너지면서 성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산 위에서 이 모습을 보던 사람들도 아군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모두 흩어졌다.

김천일과 최경회 등은 더 이상 살아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통곡했다.

그리고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

성 안의 군사와 백성도 거의 모두 죽었다.

전쟁이 시작된 뒤 한 전투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이 죽은 일은 드물었다.

기록에는 죽은 군사와 백성이 육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했다.

소와 말, 닭과 개까지 거의 남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임금이 한양으로 돌아오다 - 1593년, 10월, 4일.

1593년 음력 10월, 임금은 마침내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월에는 명나라 사신도 왔다.

일본군은 남해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명나라 장수와 군대 상당수는 이미 돌아갔다.

남아 있던 명나라 군사들도 군량 부족에 시달렸다.

조선 백성은 더욱 참혹했다.

굶주림과 전염병이 함께 퍼졌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참상이 벌어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명나라가 조선에 강화를 권하다 - 1593년, 10월 이후.

명나라에서는 더 이상 큰 군대를 계속 조선에 둘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해졌다.

새로 전쟁 일을 맡은 명나라 관리가 조선 신하들을 불러 말했다.

“처음 일본군이 너희 나라로 들어왔을 때에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듯 거침없이 북쪽으로 올라왔다.

한양과 개성, 평양까지 잃었다.

나라의 땅과 백성 대부분을 빼앗겼고 왕자와 신하들까지 포로가 되었다.

황제께서 너희 나라를 불쌍히 여겨 군사를 보내 주셨다.

한 번 싸워 평양을 되찾았고, 다시 내려가 개성과 한양도 회복했다.

왕자와 신하들도 돌아왔다.

수천 리의 땅을 다시 찾았다.

여기에 들어간 은과 곡식, 군사와 말이 매우 많았다.

명나라가 속국을 돌보는 은혜로도 이미 할 수 있는 데까지 한 셈이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제 군량을 계속 보낼 수 없고 병력도 끝없이 쓸 수 없다.

일본도 왕의 칭호를 받고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며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적당히 받아들여 군사를 바다 건너 돌려보내는 것이 너희 나라를 오래 보전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월나라 구천의 일을 들며 치욕을 참으라고 하다 - 1593년, 12월, 날짜 미상.

명나라 관리들은 옛 월나라의 구천 이야기도 꺼냈다.

“구천은 나라가 패한 뒤 치욕을 참고 원수에게 몸을 굽혔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을 끝낸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힘을 기른 뒤 마침내 원수를 갚았다.

너희도 지금 잠시 치욕을 참을 수 있다.

일본군이 물러가면 임금과 신하가 밤낮으로 힘을 다해 나라를 다시 일으켜라.

하늘이 어찌 영원히 너희를 버리겠는가?”

그들의 말은 매우 길었다.

대략 이런 뜻이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몇 달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임금도 매우 어렵게 생각했다.

나는 의리를 버리고 강화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1594년, 1월, 날짜 미상.

당시 나는 병으로 쉬고 있었지만 의견을 올렸다.

“의리를 버리고 일본군과 화친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지금 실제로 벌어지는 사정은 자세히 기록해 명나라 조정에 알려야 합니다.

명나라가 무슨 생각으로 일본과 협상을 하고 있는지, 일본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결국 조정에서는 사신을 보내 명나라에 우리의 뜻을 알리기로 했다.

명나라가 일본에 세 가지 조건을 내걸다 - 1594년, 12월, 날짜 미상.

명나라에서는 일본 측 사람을 수도까지 데리고 가 협상을 계속했다.

명나라가 내세운 조건은 대략 세 가지였다.

첫째, 일본은 왕의 칭호만 받고 조공은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일본군은 조선 땅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다.

셋째, 다시는 조선을 침략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약속을 지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의 왕으로 책봉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본 측 사람은 하늘을 가리키며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심유경은 다시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가 이 조건을 알렸다.

책봉사를 일본에 보내기로 하다 - 1595년, 1월, 날짜 미상.

명나라에서는 이종성과 양방형을 각각 정사와 부사로 삼아 일본으로 보내기로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의 왕으로 책봉하는 임무였다.

다만 일본군이 조선에서 실제로 철수하는 것을 확인한 뒤 바다를 건너도록 했다.

1596년 무렵 이종성 등이 한양에 도착했다.

일본군은 명나라 사신에게 신뢰를 보이기 위해 몇몇 진지를 철수시켰다.

거제와 주변 지역의 진영도 일부 비웠다.

그러면서 말했다.

“평양에서처럼 갑자기 공격을 당할까 두렵다. 명나라 사신이 빨리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오면 약속대로 철수하겠다.”

하지만 부산에는 여전히 일본군이 남아 있었다.

명나라 내부에서도 강화에 대한 의심이 커지다 - 1596년, 4월, 날짜 미상.

명나라 사신이 부산에 내려왔지만 일본군은 약속한 만큼 빨리 철수하지 않았다.

명나라 쪽에서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병부에서는 계속 서둘러 일을 끝내라고 재촉했다.

석성은 심유경을 깊이 믿었다.

일본에는 다른 속셈이 없으며 명나라 군대가 움직일까 두려워 빨리 강화를 이루고 싶어 한다는 심유경의 말을 믿었다.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석성이 자신의 책임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이종성이 겁을 먹고 달아나다 - 1596년, 4월, 4일 무렵.

명나라 사신들은 부산에 머물며 일본군의 철수를 기다렸다.

그러나 일본군의 태도가 분명하지 않았다.

이종성은 점점 불안해졌다.

일본이 실제로 책봉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명나라 사신을 붙잡아 욕보일 것이라는 소문까지 들렸다.

이종성은 크게 두려워했다.

어느 날 한밤중에 평범한 사람처럼 옷을 갈아입고 몰래 숙소를 빠져나왔다.

수행원도 제대로 데려가지 못했다.

일본군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사람을 보내 추격했다.

양산의 돌다리 부근까지 뒤쫓았지만 붙잡지 못했다.

이종성은 큰길로 다니지도 못했다.

산과 골짜기를 숨어 다니며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달아났다.

양방형은 일본군 진영에 남았다.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일을 계속 밀어붙이다 - 1596년, 5월, 날짜 미상.

뒤에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가 다시 나타났다.

일본군은 서생포와 일부 섬의 진영을 더 철수했다.

그러나 부산 일대에는 여전히 여러 진영이 남아 있었다.

심유경은 남아 있던 명나라 부사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려 했다.

그리고 조선에서도 사신을 함께 보내 달라고 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나라가 강하게 요구하자 완전히 거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사람을 딸려 보내기로 했다.

책봉사가 일본에 도착하다 - 1596년, 8월, 29일 무렵.

명나라 사신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매우 화려하게 접대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큰 지진이 일어났다.

접대를 위해 마련한 건물과 시설이 크게 무너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처음에는 명나라 사신을 만나 책봉을 받아들일 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조선의 왕자들을 돌려보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도 왕자를 보내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보통 사신을 보내다니 이것은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명나라 사신들은 제대로 책봉 의식을 마치지 못했다.

결국 양방형과 심유경 등이 다시 돌아왔다.

강화의 거짓이 드러나다 - 1596년, 9월, 2일.

일본군은 다시 부산 쪽으로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다.

가토 기요마사도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나왔다.

일본 측에서는 조선 왕자가 직접 와서 감사해야 군대를 풀겠다는 말까지 했다.

문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구한 내용과 명나라 조정에 보고된 내용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었다.

히데요시의 요구는 단순히 명나라에서 왕의 칭호만 받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는 서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 협상을 성공시킨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사실을 줄이고 바꾸어 보고했다.

명나라 조정도 실제 사정을 몰랐다.

조선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거짓은 오래갈 수 없었다.

마침내 전후 사정이 드러났다.

석성과 심유경은 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명나라 군대도 다시 조선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순신과 원균의 사이가 나빠지다 - 1596년, 날짜 미상.

처음에 원균은 이순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두 사람은 함께 일본 수군과 싸웠다.

처음에는 서로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전공을 놓고 다투면서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

원균은 성격이 거칠고 남을 헐뜯는 일이 많았다.

조정과 여러 사람에게 계속 말했다.

“이순신은 처음부터 싸우러 오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여러 차례 요청한 뒤에야 왔다.

일본군을 이긴 첫 공도 사실 나에게 있다.”

당시는 당파 사이의 논쟁도 심했다.

이순신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원균을 편드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이순신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원익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이순신과 원균에게는 각자 지켜야 할 바다가 따로 있었으므로 이순신이 조정의 명령 없이 처음부터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토 기요마사를 잡을 수 있다는 정보 - 1597년, 1월, 11일 무렵.

고니시 유키나가 쪽과 연락하던 사람이 김응서에게 말을 전해 왔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가토 기요마사를 몹시 미워한다.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모두 가토 기요마사 때문이다.

가토 기요마사가 어느 날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들어올 것이다.

조선 수군은 바다에서 기다렸다가 그를 공격하면 된다.”

김응서가 이 내용을 조정에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정말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에게 여러 차례 명령을 내려 바다로 나가 가토 기요마사를 공격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일본군이 일부러 흘린 정보가 아닐까 의심했다.

적이 알려 준 날짜와 길을 그대로 믿고 전 수군을 움직이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곧바로 출동하지 않았다.

이순신을 잡아오다 - 1597년, 2월, 26일.

조정에서는 이순신이 명령을 어겼다며 크게 화를 냈다.

대간에서도 이순신을 잡아다 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이순신은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원균이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무거운 죄를 물었다.

죽여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나는 대신들과 의논하면서 말했다.

“이순신은 이름난 장수입니다.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전쟁의 이해득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모두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가 나가지 않은 데에도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넓게 용서한 뒤 다시 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이순신의 목숨은 살렸다.

그는 모든 벼슬을 빼앗기고 평범한 군인의 신분으로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순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다 - 1597년, 4월, 11일.

이순신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아산에 있는 늙은 어머니에게 전해졌다.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어머니의 병이 깊어졌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순신은 옥에서 풀려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아산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상을 치렀다.

그리고 다시 군인 신분으로 권율의 군영을 찾아갔다.

사람들은 그의 처지를 듣고 모두 슬퍼했다.

명나라가 다시 원군을 보내다 - 1597년, 6월, 날짜 미상.

1597년, 일본군이 다시 대규모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나라에서도 다시 군대를 보냈다.

형개가 전체 군무를 총괄하고, 양호가 조선의 전쟁 업무를 맡았다.

마귀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이 차례로 조선에 들어왔다.

먼저 양원이 군사 삼천 명을 이끌고 내려왔다.

양원은 남원을 지키게 되었다.

남원은 전라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남원 방어를 준비하다 - 1597년, 7월, 날짜 미상.

남원성 밖에는 지키기 좋은 산성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그 산성에 들어가 지키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원은 남원 본성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성벽을 높였다.

해자를 더 깊게 팠다.

성 안과 밖에 적의 기병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여러 장애물도 설치했다.

한 달 넘게 밤낮으로 성을 고쳤다.

원균은 이순신의 방식을 버렸다 - 1597년, 3월, 날짜 미상.

원균이 통제사가 된 뒤 군대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이순신은 한산도에 있을 때 장수들과 언제나 함께 군사 일을 의논했다.

부하가 군사 사정을 말하러 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전투하기 전에는 여러 장수를 불러 계획을 물었다.

충분히 의논해 결정한 뒤 싸웠다.

그래서 큰 패배를 당한 적이 거의 없었다.

원균은 이순신이 쓰던 사람들을 멀리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중심으로 군대를 움직였다.

원균의 군영은 무너져 갔다 - 1597년, 7월, 7일 무렵.

원균은 아내를 가까운 곳에 머물게 했고 장수들이 쉽게 만나기 어렵게 했다.

술도 지나치게 많이 마셨다.

형벌도 일정한 기준 없이 함부로 내렸다.

군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왔다.

“적이 오면 그저 죽으러 갈 수밖에 없다.”

장수들은 뒤에서 원균을 비웃었다.

명령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이 늘어났다.

군율은 갈수록 무너졌다.

원균에게 계속 출동 명령이 내려오다 - 1597년, 7월, 7일 무렵.

일본군이 다시 조선으로 건너오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고니시 유키나가 쪽에서도 김응서에게 일본군이 어느 날 바다를 건널 것이라는 말을 계속 전했다.

조정에서는 원균에게 바다로 나가 공격하라고 재촉했다.

권율도 강하게 출전을 요구했다.

원균은 난처해졌다.

자신이 전에 이순신을 두고 적을 보고도 싸우러 나가지 않는다고 계속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제 자기가 통제사가 되었으니 위험하다는 이유로 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모든 함선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일본군이 조선 수군을 깊은 바다로 끌어들이다 - 1597년, 7월, 14일.

조선 수군은 계속 앞으로 나갔다.

바람이 거세졌다.

배를 움직이는 병사들은 하루 종일 노를 저어 크게 지쳤다.

먹을 것과 마실 물도 떨어졌다.

일본선은 조선 수군 가까이 나타났다가 다시 달아났다.

따라가면 또 멀어졌다.

원균은 계속 뒤쫓았다.

조선 수군은 점점 자기 진영에서 멀어졌다.

밤이 되어도 쉴 곳을 찾기 어려웠다.

배를 부릴 힘조차 떨어졌다.

가덕도에서 수백 명을 잃다 - 1597년, 7월, 15일.

조선 수군은 겨우 가덕도 부근으로 돌아왔다.

군사들이 몹시 목이 말라 작은 배를 타고 육지에 물을 구하러 갔다.

그때 일본군이 섬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공격했다.

조선군 수백 명이 죽었다.

원균은 다시 배를 물렸다.

권율이 원균에게 곤장을 치다 - 1597년, 7월, 15일.

권율은 원균이 큰 함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군사만 잃은 것을 크게 꾸짖었다.

원균을 불러 곤장을 쳤다.

그리고 다시 나가 싸우라고 명령했다.

원균은 분노하고 낙담한 채 군영으로 돌아왔다.

술을 마셨다.

장수들이 찾아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으려 했지만 만나 주지 않았다.

군대에는 제대로 된 지휘가 없었다.

칠천량에서 수군이 무너지다 - 1597년, 7월, 16일.

그날 밤 일본 수군이 기습했다.

조선 수군은 대비하지 못했다.

배들이 서로 뒤엉켰다.

명령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군사들은 크게 혼란에 빠졌다.

원균은 함대를 수습하지 못했다.

조선 수군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원균은 육지까지 달아났다.

배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뒤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본군에게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죽었다.

일부 장수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배설이 자기 배만이라도 보전하다 - 1597년, 7월, 16일.

배설은 전부터 원균이 패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칠천량의 지형도 위험하므로 다른 곳으로 진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균은 듣지 않았다.

배설은 자기가 거느리던 배들에게 따로 경계하라고 명령해 두었다.

일본군이 덮쳤을 때 그는 먼저 배를 빼냈다.

그래서 그의 휘하 함선 일부만은 살아남았다.

나머지 조선 수군은 거의 모두 무너졌다.

한산도의 시설과 군수품도 대부분 사라졌다.

일본군의 계략에 그대로 빠지다 - 1597년, 7월, 16일.

칠천량의 패배 뒤 일본군은 바다를 장악했다.

남해와 순천을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일본군이 몰려들었다.

일본군은 구례를 지나 남원까지 올라왔다.

돌이켜 보면 일본 측의 계책은 매우 교묘했다.

고니시 유키나가 쪽에서는 가토 기요마사를 죽일 수 있다는 정보를 흘렸다.

그 때문에 이순신이 명령을 어겼다는 죄를 입어 쫓겨났다.

그 뒤 원균이 통제사가 되자 다시 정보를 흘려 그를 바다 깊은 곳으로 끌어냈다.

일본군은 조선 수군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낸 뒤 한꺼번에 공격했다.

우리는 모두 그 계책에 빠졌다.

여러 산성에 백성을 몰아넣다 - 1597년, 7월, 날짜 미상.

일본군이 다시 움직인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부터 조정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여러 산성을 고치게 했다.

적이 쳐들어오면 백성과 곡식을 산성 안으로 들여보내 지키려는 생각이었다.

많은 백성을 동원해 성을 쌓고 곡식과 무기를 모았다.

그러나 일본군이 실제로 다시 들어오자 여러 장수와 수령이 적의 기세만 보고 달아났다.

산성에 들어가야 할 백성들도 따라 흩어졌다.

많은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황석산성을 지키다 - 1597년,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황석산성에는 의병장과 관리, 백성이 들어가 지켰다.

안음현감 곽준도 성 안으로 들어갔다.

전 김해부사 백사림도 있었다.

곽준은 무장으로 사람들에게 신망이 있었다.

일본군이 성 아래까지 왔다.

산세가 매우 험하고 성 안의 사람들이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본 일본군은 처음에는 쉽게 공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침내 대군이 공격해 왔다.

전투는 하루 동안 이어졌다.

곽준과 두 아들이 함께 죽다 - 1597년, 8월, 18일.

일본군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

곽준은 두 아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그 집안 사람들에게도 참혹한 일이 이어졌다.

가족 가운데 한 여인은 처음에는 성을 빠져나온 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함께 죽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러다가 남편마저 적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도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 목숨을 끊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절의를 슬퍼했다.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임명하다 - 1597년, 7월, 22일.

칠천량의 참패 소식이 조정에 올라왔다.

임금은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신하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한 신하가 차분히 말했다.

“이것은 원균이 저지른 일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임명하는 것뿐입니다.”

임금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순신이 남쪽으로 내려가며 남원 함락 소식을 듣다 - 1597년, 8월, 18일 무렵.

이순신은 남아 있는 군사와 무기를 모으기 위해 밤낮으로 남쪽을 돌아다녔다.

그 무렵 남원도 위험해지고 있었다.

명나라 장수 양원과 조선 장수들이 남원성에 들어가 있었다.

남원에 들어간 조선 장수 가운데에는 이복남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남원에서 간신히 살아 나온 사람이 성이 무너지는 과정을 자세히 전했다.

일본군이 남원성 아래에 나타나다 - 1597년, 8월, 13일.

일본군 선봉 백여 명이 먼저 성 아래로 왔다.

그들은 총을 쏘고 다시 물러났다.

병력을 몇 명씩 무리 지어 논밭에 흩어 놓았다.

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성의 방어 상태를 살폈다.

성 위에서는 작은 화포를 쏘아 대응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본대는 멀리 뒤에 있었다.

양원은 성 밖으로 일부 군사를 내보내 일본군과 싸우게 했다.

일본군이 남원성을 세 면에서 에워싸다 - 1597년, 8월, 14일.

다음 날 일본군 대군이 도착했다.

일본군은 남원성 세 면을 둘러싸고 진을 쳤다.

총과 화포를 이용해 계속 공격했다.

그보다 앞서 양원은 성 남문 밖의 민가를 없애게 했다.

일본군이 집을 이용해 성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을 허물어도 돌담과 흙담은 남아 있었다.

일본군은 그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총구만 내밀어 성 위를 향해 쏘았다.

성 위의 병사들이 많이 맞았다.

일본군이 볏짚을 산처럼 쌓다 - 1597년, 8월, 15일.

전투가 계속되던 어느 날 성 밖의 일본군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잡초와 논의 벼를 베어 큰 묶음으로 만들었다.

그런 묶음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성 밖에 쌓아 두었다.

성 안에서는 그것을 어디에 쓰려는지 알 수 없었다.

한편 조선군은 밖에서 명나라 구원군이 오기를 날마다 기다렸다.

그러나 구원군은 오지 않았다.

군사들은 갈수록 불안해졌다.

남원성을 향해 일제히 총을 쏘다 - 1597년, 8월, 15일.

새벽이 되자 일본군 진영에서 큰 함성이 일었다.

여러 방향에서 서로 호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본군 일부는 물건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다른 쪽에서는 총과 화포를 성을 향해 마구 쏘았다.

총알이 성 위로 비처럼 떨어졌다.

성 위의 군사들은 고개를 들기조차 어려웠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총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그사이 일본군은 전날 만들어 놓은 풀과 볏짚 묶음을 해자에 던지고 있었다.

깊은 해자가 순식간에 메워졌다.

해자를 메운 뒤 성벽으로 올라오다 - 1597년, 8월, 16일.

일본군은 볏짚과 풀을 계속 쌓아 성벽 밑을 높였다.

마침내 성 밖과 성 안의 높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적은 그 위를 밟고 성벽으로 몰려왔다.

성 안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다.

일본군이 성으로 들어왔다.

성 곳곳에서 불도 났다.

남문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도 급히 성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미 제대로 지휘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명나라 군사들은 북문으로 달아가려고 했다.

북문에서 사람들이 몰리다 - 1597년, 8월, 16일.

북문은 굳게 닫혀 있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뒤에서는 일본군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성 안의 명나라 군사와 말이 모두 북문으로 몰렸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군사와 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갔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미 성 밖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중요한 길목마다 긴 칼을 든 일본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달아나는 군사들이 잇따라 죽었다.

양원은 간신히 탈출하다 - 1597년, 8월, 16일.

양원은 측근 몇 사람과 말을 타고 일본군을 뚫고 달아났다.

일본군 가운데 양원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지만 혼란 속에서 붙잡지 못했다고 한다.

성 안에 있던 많은 조선 장수와 군사는 죽었다.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은 극히 적었다.

어떤 사람은 논의 풀 속에 몸을 숨기고 일본군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아났다.

양원은 용맹만 믿고 적의 계책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남원성이 어떤 형편인지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 채 평지의 성을 지키려 한 것도 잘못이었다.

뒤에 성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 일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양원은 결국 이 패전으로 명나라에서 죄를 받았다.

열두 척 남짓한 배만 남다 - 1597년, 8월, 28일 무렵.

다시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진도로 향했다.

흩어진 수군을 찾아 모았다.

칠천량에서 살아남은 배는 겨우 열두 척 남짓이었다.

남해안에는 전쟁을 피해 배를 타고 떠도는 백성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순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기뻐했다.

여러 지역에서 군사와 백성이 다시 이순신에게 모였다.

일본군 이백여 척이 서해로 들어오려 하다 - 1597년, 9월, 16일.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무너뜨린 일본군은 이제 바다에 자신감을 얻었다.

적선 이백여 척이 서해 쪽으로 올라오려고 했다.

그대로 두면 일본군이 바닷길을 따라 서쪽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남은 열두 척을 이끌고 나갔다.

전력 차이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컸다.

그러나 이순신은 물러나지 않았다.

명량에서 열두 척으로 대군을 맞다 -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은 좁고 물살이 빠른 바다를 이용했다.

일본선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어려운 곳이었다.

적이 밀려들어오자 조선 수군은 물살을 등에 지고 공격했다.

일본선은 서로 부딪치고 뒤엉켰다.

조선 수군은 가까운 거리에서 화포를 집중해 쏘았다.

일본 수군은 크게 무너졌다.

수적으로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지만 지형과 물살, 군사들의 힘을 제대로 이용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칠천량 뒤 거의 사라졌던 조선 수군이 다시 살아났다.

서해 바닷길을 다시 열다 - 1597년, 9월, 17일.

명량 승리 뒤 일본군은 함부로 서해로 들어오지 못했다.

남해안에서 피란하던 배들도 다시 이순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라도와 충청도 해안의 공공 선박과 민간 선박도 통행할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순신에게는 군량이 없었다.

군사에게 먹일 곡식부터 새로 마련해야 했다.

이순신이 통행증을 주고 군량을 모으다 - 1597년, 9월, 17일 이후.

이순신은 바다를 오가는 배에 통행증을 발급했다.

배의 크기에 따라 쌀을 내도록 했다.

큰 배는 세 석, 중간 배는 두 석, 작은 배는 한 석씩 내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투에 직접 참여한 사람에게는 쌀을 내지 않게 했다.

피란민들은 통행증이 있으면 안전하게 바다를 다닐 수 있었으므로 크게 싫어하지 않았다.

이 방법으로 만 석이 넘는 군량이 모였다.

이순신은 철을 모아 무기를 만들고 나무를 베어 배도 만들었다.

전쟁을 피해 떠돌던 백성들도 다시 이순신의 군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진린이 조선으로 내려오다 - 1598년, 7월, 16일.

얼마 뒤 명나라 수군을 이끄는 진린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진린은 성격이 매우 거칠고 사나웠다.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나는 진린이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대신들에게 말했다.

“이제 이순신의 군대가 또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명나라 수군과 조선 수군이 함께 있으면서 서로 다투기 시작하면 일본군과 싸우기도 전에 일이 어긋날 것이다.

진린처럼 거친 사람을 억누르려 해도 문제가 되고 무조건 따르기만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걱정했다.

이순신이 진린을 정성껏 맞다 - 1598년, 7월, 16일.

이순신은 진린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잔치를 준비했다.

군사들에게 물고기를 잡게 했다.

해산물과 술도 넉넉하게 마련했다.

진린의 배가 바다로 들어오자 이순신은 군대의 의식을 갖추고 멀리까지 나가 맞았다.

진린의 병사들도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명나라 병사들이 서로 말했다.

“이 사람이 정말 훌륭한 장수다.”

진린도 매우 기뻐했다.

일본군을 죽인 공을 진린에게 넘기다 - 1598년, 7월, 18일 무렵.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선이 가까운 섬으로 들어왔다.

이순신이 군사를 보내 공격했다.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고 적의 목 마흔여 개를 베었다.

이순신은 그 전공을 자기 이름으로 올리지 않았다.

진린에게 모두 넘겨주었다.

진린은 크게 기뻐했다.

그 뒤부터 이순신을 깊이 믿었다.

이순신이 움직이면 진린도 그의 의견을 따랐다.

두 사람의 군대 사이에서 큰 다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명나라 군사도 조선군과 똑같이 다루다 - 1598년, 7월, 18일 무렵.

이순신은 진린과 약속했다.

명나라 군사든 조선 군사든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똑같이 벌하기로 했다.

누구든 백성의 물건을 함부로 빼앗으면 잡아다가 벌했다.

명나라 군사가 잘못했다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진린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군사들의 행동이 한결 안정되었다.

진린은 이순신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명나라 황제에게 올리는 글에서 이순신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하늘과 땅을 바로 세울 만한 재주가 있고 나라를 다시 살려 낼 만한 공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일본군이 다시 북쪽으로 움직이다 - 1597년, 9월, 날짜 미상.

일본군은 다시 북쪽으로 올라오며 경상도와 전라도 여러 지역을 짓밟았다.

지나는 곳마다 집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였다.

붙잡은 조선 사람의 코를 베어 전공을 증명하는 데 쓰기도 했다.

1597년 음력 9월 무렵 일본군이 충청도 가까이까지 올라오자 한양도 크게 흔들렸다.

도성의 백성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평안도 군사와 황해도, 경기 군사를 불러 도성을 지키게 했다.

임금이 다시 피란할지를 논의하다 - 1597년, 9월, 날짜 미상.

조정에서는 임금이 또다시 피란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대신은 서쪽으로 멀리 피해야 한다고 했다.

한 신하는 말했다.

“임금께서 영변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너무 멀리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군량이라고 보았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위급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율도 한양으로 불려왔다.

임금이 직접 그의 의견을 물었다.

권율은 말했다.

“처음부터 임금께서 너무 멀리 돌아가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적의 형세를 살피면서 서쪽의 적당한 곳에 머무는 것이 낫습니다.”

조정에서는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다행히 일본군이 더 북쪽으로 곧바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울산의 일본군을 공격하다 - 1597년, 12월, 23일.

1597년 음력 12월, 명나라의 양호와 마귀가 기병과 보병 수만 명을 이끌고 경상도로 내려갔다.

울산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의 바닷가 가까운 험한 곳에 성을 쌓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는 적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틈을 타 기병으로 갑자기 공격했다.

일본군은 처음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명나라 군대가 일본군의 바깥 진영을 차지했다.

일본군은 급히 안쪽 성으로 들어갔다.

처음 기회를 놓치다 - 1597년, 12월, 23일.

명나라 군대는 첫 공격에서 큰 이익을 얻었다.

그런데 적을 계속 몰아붙이지 않았다.

일본군의 물건을 빼앗는 데 정신이 팔린 군사도 있었다.

그사이 일본군은 안쪽 성의 문을 닫고 방어 준비를 끝냈다.

이때 바로 공격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를 놓쳤다.

명나라와 조선 군대는 울산성을 포위했다.

울산성 안의 일본군도 굶주리다 - 1597년, 12월, 25일 무렵.

울산성 공격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일본군은 성 안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성 위에는 방어벽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곳이 있었지만 총병을 안쪽에 숨겨 두었다.

명나라 군사가 가까이 오면 총알을 비처럼 쏟아부었다.

매일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명나라 군사와 조선군의 시체가 성 아래에 쌓였다.

일본 수군도 바다에서 몰려왔다.

서생포 쪽에서 온 일본선들이 바다에 줄지어 정박했다.

멀리서 보면 섬이 이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성 안의 일본군도 물과 식량이 부족했다.

밤중에 성 밖으로 나왔다가 잡힌 일본군은 굶주려 기운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성 안의 식량이 완전히 떨어져 곧 항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위와 비 때문에 포위를 풀다 - 1598년, 1월, 4일.

그때 날씨가 몹시 추웠다.

비까지 내렸다.

명나라와 조선 군사들의 손발이 얼었다.

그런데 다른 지역의 일본군이 육지로 울산을 구하러 왔다.

명나라 지휘부는 더 싸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다음 해 초 명나라 군대는 대부분 한양 쪽으로 돌아가 다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양호가 물러나고 만세덕이 오다 - 1598년, 7월, 11일 무렵.

1598년 여름, 명나라 조정에서 양호의 책임을 묻는 일이 벌어졌다.

명나라 관리 정응태가 양호가 저지른 여러 잘못을 들어 탄핵했다.

양호는 결국 물러나게 되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양호가 명나라 지휘부 가운데 조선의 사정을 비교적 잘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의 교체를 걱정했다.

사람을 보내 그대로 머물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로 만세덕이 전쟁을 총괄하게 되었다.

명나라가 세 갈래로 일본군을 공격하다 - 1598년, 9월, 1일 무렵.

1598년 음력 9월,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군은 남해안 일본군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하기로 했다.

한 군대는 울산을 공격했다.

다른 군대는 사천을 공격했다.

또 다른 군대는 순천을 공격했다.

진린의 명나라 수군과 이순신의 조선 수군도 바다에서 함께 움직였다.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압박하여 일본군의 퇴로를 막으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육지의 공격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일부 명나라 군대는 일본군에게 크게 패했다.

특히 사천 방면의 피해가 컸다.

순천의 일본군을 포위하다 - 1598년, 9월, 20일 무렵.

유정의 군대는 순천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를 공격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순천에 튼튼한 성을 쌓고 버텼다.

명나라 육군이 공격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순신과 진린은 바다 입구를 막았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배를 타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고니시는 다른 일본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일본군 구원 함대가 오다 - 1598년, 11월, 19일.

일본군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많은 배를 보냈다.

이순신은 진린과 함께 그 함대를 막으러 나갔다.

일본선 이백여 척이 몰려왔다.

조선과 명나라 수군은 바다에서 크게 싸웠다.

이순신은 직접 앞에서 군사를 독려했다.

일본군은 크게 패했다.

많은 적선이 부서졌다.

죽은 일본군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연합 수군은 달아나는 적을 남해 쪽까지 추격했다.

이순신이 마지막 전투에서 총탄을 맞다 - 1598년, 11월, 19일.

전투가 가장 치열할 때 이순신이 직접 화살과 총탄이 쏟아지는 곳으로 나가 군사를 지휘했다.

그때 일본군이 쏜 탄환이 이순신에게 맞았다.

부하들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이 군사들에게 알려질 것을 걱정했다.

그가 말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조카가 죽음을 숨긴 채 계속 전투를 지휘하다 - 1598년, 11월, 19일.

이순신의 조카는 본래 침착하고 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순신이 죽은 것을 보고도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장군의 명령대로 죽음을 숨겼다.

대신 북을 울리고 깃발을 움직이며 계속 군사를 지휘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많은 군사는 통제사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때문에 군대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진린이 이순신의 죽음을 알고 통곡하다 - 1598년, 11월, 19일.

진린의 배도 한때 일본군에게 포위되었다.

이순신은 군사를 보내 그를 구했다.

전투가 끝난 뒤에야 진린은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린은 배 위에서 몸을 내던지듯 쓰러지며 울었다.

“어르신께서 살아 계실 때 나를 이끌어 주셨는데 어찌하여 돌아가셨단 말인가!”

명나라 군사와 조선 군사가 모두 통곡했다.

울음소리가 바다를 뒤흔드는 듯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 틈을 이용해 바다로 빠져나가 일본으로 돌아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미 죽어 있었다 - 1598년, 8월, 18일.

1598년 음력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일본군은 그 사실을 숨기면서 조선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해안의 여러 일본군 진영은 차례로 비워졌다.

조선과 명나라 군대가 일본군을 몰아내는 과정과 일본 측의 철수 명령이 겹치면서 7년에 걸친 전쟁도 마침내 끝나게 되었다.

이순신은 바로 그 마지막 순간에 적의 퇴로를 막고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백성들이 자기 부모처럼 이순신을 위해 울다 - 1598년, 11월, 19일 이후.

이순신의 죽음이 알려지자 조선군과 명나라 군사 모두 자기 가족이 죽은 것처럼 울었다.

이순신의 관이 북쪽으로 올라갈 때에도 백성들이 길마다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제물을 마련해 놓고 통곡했다.

“공께서 우리를 살려 주셨는데 이제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울며 길을 막는 사람이 너무 많아 운구 행렬이 제대로 앞으로 가지 못할 정도였다.

길을 가던 사람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조정에서도 이순신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바닷가에 비석을 세우려 했으나 그 계획은 당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해안 백성들이 스스로 돌을 세워 그를 추모했다.

장사하러 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순신의 집안과 성품 - 1545년, 3월, 8일.

이순신의 자는 여해이고 덕수 사람이다.

그의 선조 가운데에는 임금을 가까이 모시면서도 바른말을 굽히지 않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있었다.

이순신도 어려서부터 성격이 호방하고 남달랐다.

아이들과 놀 때 나무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눈을 향해 화살을 겨누려고 할 정도였다.

어른들이 말려야 할 때도 있었다.

자라면서 말과 활을 잘 다루었다.

뒤에 무과에 급제해 무관이 되었다.

권세 있는 집의 부탁도 거절하다 - 1576년, 날짜 미상.

이순신이 처음 벼슬길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당시 권세 있는 집안에서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규정보다 먼저 좋은 자리로 올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순신은 그 일을 맡은 관리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제가 이제 막 벼슬을 시작했는데 어찌 권세 있는 집안에 기대어 출세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상대가 크게 화를 내며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조금도 얼굴빛을 바꾸지 않았다.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며 놀랐다.

“저 사람이 감히 저 권세가에게 맞서는구나. 앞으로 벼슬길이 막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순신은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이런 일 때문에 사람들은 일찍부터 그의 성품을 알게 되었다.

옥에 갇혔을 때에도 살려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다 - 1597년, 2월, 26일 이후.

이순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의 앞날은 알 수 없었다.

사형을 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이순신 집안에 말했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가 이순신에게 전해졌다.

이순신은 말했다.

“죽으면 죽을 뿐이다. 어떻게 옳은 길을 어기면서까지 살길을 구하겠는가.”

그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이처럼 굳었다.

평소에는 부드러웠지만 안에는 강한 기개가 있었다 - 1545년, 3월, 8일부터 1598년, 11월, 19일까지.

이순신은 사람을 대할 때 말이 많지 않았다.

웃는 얼굴도 온화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점잖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누구도 쉽게 꺾지 못할 강한 기개가 있었다.

나라를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은 갑자기 생긴 마음이 아니었다.

평생 쌓아 온 성품이 전쟁을 만나 드러난 것이다.

조카들을 자기 자식보다 먼저 챙기다 - 1590년대, 날짜 미상.

이순신의 형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순신은 형들이 남긴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보았다.

좋은 물건이 생기면 먼저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다음 자기 자식에게 주었다.

재산을 쌓거나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는 따뜻했다.

이런 사람이 끝내 전쟁터에서 죽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달 밝은 밤에도 적이 올 것을 짐작하다 - 1598년, 11월, 18일.

이순신이 진린과 함께 바다에서 일본군과 대치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밤이 깊었는데 달빛이 매우 밝았다.

이순신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조금 가져오게 하고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 밤 달이 매우 밝다.

적은 몹시 교활하다.

사람들은 달이 없는 어두운 밤이면 적이 기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이 그런 생각을 모를 리 없다.

달이 밝은 오늘 같은 밤에도 얼마든지 쳐들어올 수 있다.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이순신은 각 배에 엄중하게 경계하라는 명령을 보냈다.

일본 수군이 정말 밤중에 나타나다 - 1598년, 11월, 19일.

모든 배가 전투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교대할 병사들까지 모두 긴장한 채 움직였다.

얼마 뒤 달이 서쪽 산으로 기울었다.

산 그림자가 바다 위로 드리워지면서 바다 한쪽이 조금 어두워졌다.

바로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일본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두 척이 아니었다.

수많은 배가 검은 그림자 속에서 몰려왔다.

일본군은 조선과 명나라 수군이 방심했다고 생각하고 기습하려 한 것이다.

미리 준비한 수군이 일제히 포를 쏘다 - 1598년, 11월, 19일.

일본선이 가까워지자 중군에서 큰 대포를 쏘았다.

동시에 함성이 터졌다.

다른 조선 배들도 일제히 포를 쏘았다.

명나라 배들도 호응했다.

일본군은 조선 수군이 이미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도 총을 쏘았다.

총성과 포성이 바다를 뒤흔들었다.

탄환이 비처럼 물 위에 떨어졌다.

그러나 일본군은 더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결국 배를 돌려 물러났다.

장수들은 이순신이 적이 움직일 것을 미리 짐작해 준비한 것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은 그의 판단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둘째 권 끝

 

 

징비록 제3권

 


지금의 시급한 국정을 아뢰다

사람들은 지금 나라의 형편이 매우 위급하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군이 스스로 물러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는데도 적이 물러날 기미는 전혀 없습니다.

평지에 나와 있는 적군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강까지 건너려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막아 내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명나라가 정말 군사를 써서 적을 몰아낼 생각이었다면 지원군이 벌써 도착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심유경이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아도, 끝내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강화로 일을 마무리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속임수가 매우 많습니다. 설령 지금 강화를 말하더라도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며 쉬고, 이듬해에 다시 많은 병력을 모아 힘을 기른 뒤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로 맺은 약속만 믿고 그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엿보아 왔습니다. 이번 전쟁을 일으키고서도 아직 자기들이 바라던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 적이 아무 성과도 없이 스스로 돌아갈 리가 있겠습니까?

명나라 장수들이 기회를 놓치고 있는 일은 우리나라에 너무나 큰 불행입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타들어 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명나라 조정에 분명하게 다시 알리고, 군대를 빨리 보내 달라고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만에 하나라도 나라를 구할 길이 생길 것입니다.

적 가운데 우리에게 좋은 말을 하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도 일단 좋은 말로 상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납게 몰아붙여 그들의 마음을 자극할 필요는 없습니다.

변방의 장수들에게는 대략 다음과 같은 뜻으로 말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 왔다. 지금 일본에서 난을 일으킨 무리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으므로 우리가 싸우고 있을 뿐이다.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받아들이고 상도 내리겠다.

이 정도로 말해 그들을 달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를 막아 달라는 요구까지 들어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요구를 받으면 노골적으로 욕하고 관계를 끊겠다고 할 필요는 없지만, 완곡하면서도 분명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면 앞으로 큰 해가 생길 수 있다는 뜻도 은근히 알려야 합니다.

다만 지금 우리의 형편이 급하고 힘만으로 적의 진격을 막을 수 없는 만큼, 말 한마디 때문에 또 다른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명나라에서도 갑자기 많은 기병을 보내 강을 건너 주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우리를 도우려는 것인지, 다른 계산이 있는 것인지 당장 알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조정에서 미리 깊이 의논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밖에 나와 있어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므로 여기서는 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사방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들으니 강화도의 형편도 매우 걱정스럽다고 합니다.

군사는 많지만 지휘가 한곳으로 모이지 않고 명령이 어지럽습니다. 능력 있는 장수도 부족합니다. 최근에는 싸움에서 불리한 일을 당했고 배까지 적에게 빼앗겼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래도 믿을 만한 곳 가운데 하나가 강화도입니다. 더구나 강화도는 남쪽 지방과 소식을 주고받는 길목입니다.

만일 강화도까지 적에게 넘어간다면 나라의 큰일은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만한 장수를 골라 많은 수군을 모으고 강화도를 굳게 지키게 해야 합니다. 함부로 군사를 밖으로 빼내지 말고 때를 살펴 움직여야 합니다. 먼저 그곳을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울 동쪽 여러 장수 가운데에서는 고언백이 가장 맡길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 맡긴 권한이 온전하지 않고, 그가 거느리는 군사도 양주 한 지역의 백성 정도여서 큰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양주와 포천, 적성, 가평, 영평 등의 군사를 모두 고언백에게 맡겨 동쪽 방면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울 서쪽의 고양과 교하, 강화 등지의 군사도 한 장수에게 맡겨야 합니다.

광주와 과천, 수원, 안산, 인천 등지의 군사 역시 한 장수에게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세 방면의 군사가 서로 힘을 합쳐 서울을 되찾을 계획을 세우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략과 충성심과 용기를 갖춘 중신 한 사람을 총책임자로 삼아 이 모든 군사를 통제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일이 비로소 질서를 잡게 되고 명령을 내릴 곳도 하나로 모이게 되어 일을 이룰 가능성이 생길 것입니다.

예로부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한 가지 잘못 때문에 갑자기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선비와 관리들의 기강이 무너지고 잘못이 쌓인 끝에 큰 재난이 생기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큰 문제이지만 지금처럼 위급한 때에는 그 폐해가 더욱 크게 드러납니다.

지금 지방의 관찰사와 수령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맡은 지역을 지킬 생각보다 자기 몸부터 지키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백성에게 군량과 물자를 내놓으라고 닦달합니다.

어떤 사람은 군사 가운데 가장 날쌔고 강한 사람만 골라 자기 호위병으로 삼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고을의 아전이나 가까운 사람을 데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휘하의 군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원도는 산이 깊고 길이 험한 곳이 많습니다. 한 사람이 지키기만 해도 여러 사람이 함부로 지나기 어려운 곳이 많습니다.

그 지역에서 산길에 익숙하고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을 뽑아 후한 상을 내리고 곳곳에 매복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이 적에게서 빼앗은 물건 가운데 일부를 그 사람들에게 상으로 주어 싸울 마음을 북돋아 준다면 한 지역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쪽 지방으로 들어갔던 적까지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적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세력이 경상도 좌우 지역까지 가득 차게 된다면 우리나라에 과연 남아 있을 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이 일을 조금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빨리 대책을 세워 각 방면을 수습해야 합니다.

더구나 경상도와 전라도는 지금 우리나라가 의지하고 있는 뿌리와 같은 곳입니다.

적이 이 지역을 계속 노리고 있는데 두 도의 관찰사가 오랫동안 자기 관할 지역을 떠나 있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만일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무너지면 충청도도 지키기 어렵고, 안쪽으로는 다시 의지할 곳이 없어집니다.

장수는 정예병을 이끌고 필요한 곳으로 나아가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찰사는 자기 지역에 머물면서 백성을 수습하고 군량을 마련하고 고을을 지키는 편이 낫습니다.

적이 운 좋게 물러간다고 해도 걱정은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 곳곳에서 농사를 짓지 못했기 때문에 이듬해 봄에 뿌릴 씨앗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곳이 많습니다.

백성이 모두 굶어 죽고 나면 누가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습니까?

그러므로 군량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이듬해 농사에 쓸 씨앗도 따로 보관해야 합니다.

저는 서쪽 지방의 섬들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선천과 정주와 가산 아래쪽에서 용천과 철산 등지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가까운 곳이 많습니다.

이 지역의 곡식을 배로 섬에 옮겨 두고, 무장 한 사람에게 수군을 주어 지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섬에 임시 집과 창고를 만들어 보관하면 적에게 곡식을 빼앗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육지에서 곡식을 옮겨 두었다가 이듬해 씨앗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황해도의 풍천과 초도, 그 밖의 여러 섬도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면서 이듬해를 준비할 수 있고, 강화도 서쪽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이용할 수도 있으므로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제가 아뢰는 방법이 반드시 옳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생각한 바를 감히 말씀드립니다.


시무를 아룬 다섯 글

다음 다섯 글은 원문에서 제목만 적고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고 했다.

시무를 아룬 첫 번째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시무를 아룬 두 번째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시무를 아룬 세 번째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낙동강에 군사 거점을 설치하는 일을 아룬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방어 대책과 관직에서 물러날 뜻을 함께 아룬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서울을 지킬 사람을 보내고 사방의 군사가 힘을 합치도록 청한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당시 일을 조목별로 아룬 첫 번째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당시 일을 조목별로 아룬 두 번째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병이 심해져 다른 대신에게 명나라 장수 접대를 맡겨 달라고 청하다

제가 길을 오는 도중 병을 얻었는데, 한 달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병인 줄 알았으나 다시 피가 섞인 설사가 생기고 배까지 몹시 아팠습니다. 여러 증세가 허약해진 틈을 타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밤낮으로 편안할 때가 없고 며칠 동안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몸이 몹시 쇠약해져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이처럼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 조금의 힘도 보태지 못하고 누워 있으니, 죄송하고 가슴 아픈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나라가 살아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명나라 군대의 움직임과 크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힘을 합쳐 제대로 돕지 못하면 명나라 군대가 강가에 머문 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적은 평양을 차지하고 그곳에서 힘을 기르면서 다시 기회를 엿볼 것입니다.

명나라 장수들을 접대하고 군량을 마련하고 도로와 역참을 정비하는 일은 직접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실제 상황을 보아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어디가 비었고 무엇이 부족한지 직접 확인한 뒤에야 일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병이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중요한 일을 그르칠까 매우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제가 병에서 회복될 때까지만이라도 다른 대신에게 명나라 장수들을 접대하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다행히 살아나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힘이 닿는 데까지 달려가 일하겠습니다.


군량 운송과 빈 고을의 일을 정리하다

저는 군량 조달을 맡은 홍세공과 상의해 어느 곳의 곡식을 어느 고을로 옮길지, 어느 곳의 곡식을 배로 어느 강까지 실어 나를지를 하나하나 정해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홍세공이 걱정하기를, 곳곳에서 아랫사람들이 흩어져 실제 명령을 받아 일할 사람이 없으므로 계획대로 일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가산과 안주, 선천과 순안 등에는 수령이 없거나 행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곳은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라도 사람을 세워 곡식을 옮기게 해야 합니다.

최근 평양으로 돌아가 임무를 맡은 관리들과 변경으로 가족 전체를 옮기는 일에 대해서도 홍세공에게 알려 필요한 조치를 하게 했습니다.


명나라 장수에 관한 한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정주의 군량을 더 마련하다

정주는 구성과 아주 가까우며 명나라 군대가 지나갈 길목에 있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잠시 머물기에도 알맞은 곳입니다.

그런데 정작 정주 창고에 있는 곡식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정주의 군량을 넉넉하게 채워 놓아야 합니다.

정주의 군량이 충분해진 뒤에는 필요에 따라 선천과 곽산 등지에도 나누어 보낼 수 있습니다.

각 고을의 백성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으므로 수령에게 형편에 따라 곡식을 계속 운반하게 해야 합니다.

군량 조달을 맡은 관리와 종사관도 힘을 합쳐 날마다 운송을 계속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옮긴 곡식의 수량을 자세히 적어 보고하게 하십시오.


구성과 창성의 군량을 살피고 자원해서 싸우는 사람에게 상을 청하다

최근 종사관의 보고를 보니 창성과 구성의 창고에는 아직 상당한 곡식이 남아 있습니다.

창성의 창고에는 여러 종류의 곡식이 많이 남아 있어 군량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성의 창고에 있는 곡식도 합하면 대략 칠천 석가량이 되며, 두 고을에 있는 말먹이용 콩도 대략 칠천 석가량이라고 합니다.

석은 당시 곡식의 양을 재던 부피 단위입니다.

이만한 양이면 많은 군대를 여러 달 먹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 고을이 멀고 사람과 말이 부족하여 육로로 운반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창성의 곡식은 물길을 따라 내려보내면 며칠 만에 의주까지 보낼 수 있습니다.

구성의 곡식은 정주 쪽으로 옮길 수 있으므로, 구성에서 정주까지 운송하는 방법을 잘 마련한다면 명나라 군대의 군량으로 쓸 수 있습니다.

구성의 곡식이 많다고 그대로 창고에 묵혀 둘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군량 조달을 맡은 관리들에게 급히 명령하여 형편에 맞게 운송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종사관이 나라를 위해 자원하여 적을 정탐하거나 군대에 들어가 싸우려는 사람을 모집했는데, 이미 열일곱 명을 도원수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희두와 김기서라는 사람은 직접 이곳까지 왔습니다.

두 사람은 평양 싸움에 나가 몸소 적과 싸웠으며, 다시 군대에 들어가 적의 목을 베어 공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싸움에서 공을 세웠는데도 아직 제대로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 마음이 상할 만합니다.

더구나 그들 가운데 한 집안에서는 형제 세 사람이 모두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상을 주겠습니까?

두 사람에게는 규정에 따라 상을 내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도 찾아 위로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뒤에 나오는 사람들도 나라를 위해 싸울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어느 고을에서는 수령과 아전들이 모두 달아나 창고를 지킬 사람이 없었는데, 그 고을의 책임자 이천시라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창고를 지켜 곡식을 보전했다고 합니다.

이 공도 작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도 담당 관청에서 특별히 포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충성과 책임을 다하면 반드시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고 다시 힘을 낼 것입니다.


군량과 배를 준비하다

도원수 김명원 등의 보고를 보니 평양에 남아 있던 적이 강을 건너 달아나면 곧 추격하고, 이어 서울에 있는 적까지 공격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군사가 전진하려면 앞길의 군량과 배를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황해도의 일부 곡식은 이미 옮기도록 명령했습니다.

경기도 관찰사의 행방은 오랫동안 분명하지 않지만 강화와 주변 몇몇 고을은 아직 비교적 온전하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을 급히 보내 그 지역 수령들을 임시 책임자로 삼고, 자기 고을과 주변 고을에서 군량을 힘껏 마련하게 해야 합니다.

그 곡식을 임진강 방면으로 운반하게 하고, 강 아래쪽에 있는 배도 최대한 찾아 모아 정비해야 합니다.

서울을 되찾은 뒤 필요한 군량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김포와 통진, 인천과 부평, 남양과 안산 등 가까운 고을에서 곡식을 서둘러 모아 용산 같은 곳으로 운반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뒤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놓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될 것입니다.


종사관을 먼저 보내 군량 수송길을 정비하게 하다

제 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나라가 이처럼 위급한 때에 누운 채 하루하루를 보내며 조금의 힘도 보태지 못하고 있으니 만 번 죽어도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며칠 전 임금께서 저를 부르셨지만 병 때문에 명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병은 더 심해졌습니다.

고통이 시작되면 온몸이 풀어지는 듯하고 정신도 가누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가 지나갈 길에 군량을 마련하는 일은 하루가 다르게 급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독촉했지만 백성들이 흩어져 있고, 수령 가운데 마음을 다해 일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막상 군대가 도착했을 때 준비가 되지 않아 큰일을 그르칠까 매우 걱정됩니다.

길을 따라 있는 창고의 형편을 살펴보면 의주가 가장 넉넉합니다.

정주는 이름만 큰 고을이지 지금 창고에 있는 곡식은 이백여 석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성의 많은 곡식을 제때 옮겨 올 수 있다면 그나마 군대를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의주에서 출발할 때 사흘 치 군량을 가지고 떠나게 합니다.

첫날 용천에 도착하면 용천에서 하루 치를 다시 주어, 가지고 있는 양을 계속 사흘 치로 유지하게 합니다.

다음에 선천에 도착하면 또 하루 치를 보충해 줍니다.

정주와 가산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보충합니다.

안주에서는 배를 이용해 용강 등 주변 고을의 곡식 오백 석에서 육백 석가량을 미리 강 아래쪽으로 운반해 놓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안주에 도착하면 그 곡식을 나누어 줍니다.

이렇게 하면 의주를 출발할 때 가지고 나온 사흘 치 군량을 길에서 모두 써 버리지 않고 계속 보존하면서 평양 가까이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적이 대군이 오는 것을 보고 평양을 버리고 달아난다면 평양에 남아 있는 곡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적이 달아나지 않는다고 해도 명나라 군대가 평양성 아래에 도착하면 주변 고을에서 곡식을 사람과 말로 계속 운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군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걱정해 군사를 보내면서도 망설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운송 방법을 명나라 장수에게 자세히 설명하여 실제로 군대를 먹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준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말에게 먹일 사료는 먼 곳에서 가지고 가기 무거우므로 각 역참에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며칠 전 강사감이 떠날 때에도 서쪽 세 고을의 쌀 육백 석을 정주로 옮기게 했습니다.

만일 정주에 구성에서 옮겨 온 곡식이 충분하다면 세 고을에서 가져온 곡식은 안주 가까운 곳으로 다시 옮겨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 일은 따로 책임질 사람 한 명을 정해야 합니다.

선전관 같은 사람을 보내 운송 상황만 전담하게 하면 제때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건강했다면 직접 길을 돌아다니면서 점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병이 너무 심하므로 종사관 신경진을 먼저 보내 길마다 준비 상태를 정비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이 있어도 군량 조달을 계속 맡겠다고 아뢰다

명나라 군대의 군량을 마련하는 일이 급한데 제가 병들었다 하여 다른 대신을 내보내 이 일을 맡기려 하신다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부터 이 길의 군량 형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구성과 여러 고을의 곡식을 옮기는 일도 이미 공문을 보내 지시해 두었습니다.

종사관들도 일을 정리하도록 해 두었으므로 아주 늦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에게 병이 있기는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힘이 닿는 만큼 일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임금께서 머무시는 곳에는 군량 문제 말고도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습니다.

지금 대신 가운데 곁에 남아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또 한 사람을 밖으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우선 신경진을 먼저 보내 길의 준비를 독촉하게 하고, 저도 병을 견딜 수 있는 데까지 뒤따라 일을 살피겠습니다.

감히 이 뜻을 아룁니다.


척계광의 새로운 병법책을 올리다

전에 제가 서울에 있을 때 이덕형을 통해 명나라 장수가 가지고 있던 새로운 병법책을 보았습니다.

그때 명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너희 나라가 일본군을 막으려면 먼저 이 방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어렵다.”

라고 했습니다.

그 책은 척계광이 오랫동안 중국 동남부에서 일본계 해적과 싸우면서 군사를 훈련한 방법을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명나라 남쪽 지방 군대가 강한 것도 척계광이 훈련시킨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그 책을 잠깐 살펴보니 우리가 평소 군사 문제에서 알고 싶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던 내용이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책을 오래 빌려 둘 수 없었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급히 한 권 전체를 베끼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활자로 인쇄할 생각도 했지만 미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한 부는 관찰사에게 주어 그 지역에 남겨 두고, 처음 베껴 둔 책은 제 짐 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필체도 고르지 않고 급하게 베껴 글자가 틀렸거나 빠진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 안의 내용은 우리 군사 제도에 매우 중요합니다.

전에는 이런 내용을 알기 어려웠고, 설령 중국에 이런 방법이 있더라도 널리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완성된 사본이지만 감히 올립니다.

바라건대 학식 있는 사람을 시켜 다시 자세히 교정하게 하십시오.

틀린 글자와 빠진 문장을 바로잡고, 무기와 장비의 이름 가운데 뜻을 알 수 없는 부분도 확인해야 합니다.

명나라 남쪽 지방 장수들이 아직 우리나라에 있을 때 총명한 사람을 보내 모르는 부분을 하나하나 물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영을 어디에 놓는지, 군사를 어떻게 작은 부대로 나누는지, 각각의 부대를 어떻게 지휘하는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에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책만 읽게 하지 말고 직접 명나라 군영에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군사를 지휘하고 명령하며 단속하는 모습을 보게 해야 합니다.

책에 적힌 내용과 실제 운용법을 함께 확인하여 의심되는 것이 없어지고 난 뒤에 우리 군대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 쓸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입니다.


명나라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하여 군사 기술을 배우다

군사를 훈련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새 병법책에 매우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우리도 대체로 그 방법에 따라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글의 뜻이나 무기와 장비의 이름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명나라 장수들이 아직 돌아가기 전에 총명한 사람을 보내 자세히 물어 의심되는 것을 모두 풀어야 합니다.

전에 이 문제를 아뢰고 사람을 보내 명나라 군영에서 배우게 했습니다.

명나라 쪽에서도 우리 군사를 가르치기 위해 몇 사람을 남겨 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한곳에 와서 말하기를, 명나라 장수의 명을 받고 우리 군사를 훈련하기 위해 왔는데 며칠 동안 머물러도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였고, 결국 돌아가 버리고 싶다는 뜻까지 나타냈습니다.

저는 제대로 말을 꺼내 보지도 못하고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생각할수록 크게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명나라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배우려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후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마음을 얻은 뒤에야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제대로 가르쳐 줄 것입니다.

요즘은 일이 많다 보니 접대를 맡은 관리가 음식과 필요한 물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일이 많은 듯합니다.

옛 고려 때 중국 상인 이원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최무선의 집에 머문 일이 있었습니다.

최무선은 그를 매우 후하게 대접했고, 그 덕분에 화약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화약을 만들게 된 것은 바로 이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명나라 남쪽 지방 사람들이 많이 우리나라에 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군사 기술과 무기 제작에 밝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들을 후하게 대하고 은혜를 베풀어 마음을 얻은 뒤, 가진 기술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도록 한다면 훗날 얻는 이익이 매우 클 것입니다.

또 우리가 궁금한 것을 물을 때에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통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능한 통역관 한 사람을 군사 기술을 배우는 사람과 함께 두고, 의심되는 것이 생길 때마다 바로 물어보게 해야 합니다.

명나라 사람 가운데 진법에 특히 밝다고 알려진 사람이 있다면 그가 왔을 때도 잘 대접하여 우리 군사를 직접 훈련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명나라 장수와 군사 문제를 주고받은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당시 일을 조목별로 아룬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백성에게 지운 부담을 크게 줄여 힘을 회복하게 하다

전쟁이 난 뒤 다시 흉년과 전염병까지 겹쳤습니다.

천 리 안에 사람의 연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생겼습니다.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크고 작은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불이 난 집을 끄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듯 서둘러 시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평소 각 고을 백성이 바치던 공물과 임금에게 올리던 물품은 종류가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나라가 처음 겪는 큰 재난을 당한 때에는 왕실에 올리는 것부터 각종 공물을 모두 크게 줄여야 합니다.

예전 양의 열 가운데 둘이나 셋 정도만 남길 만큼 줄이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호조에서는 며칠 안에 실제 필요한 양을 자세히 따져 새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고을마다 피해 정도가 다르므로 완전히 무너진 곳과 조금 형편이 나은 곳을 나누어야 합니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고, 꼭 남겨야 하는 것만 남겨야 합니다.

그 내용을 각 고을에 분명히 알려 백성들이 정확히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청의 아전이나 여러 관청의 하급 관리들이 제멋대로 더 거두며 농간을 부리지 못합니다.

살아남은 백성이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제가 전에 해주에 있을 때도 이런 뜻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전쟁과 흉년을 겪어 각 고을에 실제 몇 가구가 살아남았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그 형편은 차마 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공공 창고에도 재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픕니다.

호조에서 며칠 안에 서둘러 기준을 정해 서울과 경기 지역의 백성 부담을 먼저 줄이고, 다른 도도 사정을 살펴 크게 줄여야 합니다.

이처럼 비상한 때에는 예전의 공물 기준을 그대로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없어서는 안 될 물품만 계산하여 그것만 거두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둔전을 운영할 방법을 아뢰다

둔전을 실시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많았습니다.

지금 같은 때에는 더욱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둔전을 하는 방법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대략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변방에 주둔한 군사들이 버려진 땅 가운데 경작할 수 있는 곳을 직접 함께 갈아 농사짓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륙에서 먼 곳까지 군량을 실어 나르는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옛 중국에서 여러 시대에 시행한 둔전 가운데 이런 방식이 많았습니다.

둘째는 전쟁 뒤에 들판이 황폐해지고 떠돌아다니는 백성이 많아졌으므로, 그들을 한곳에 모아 논밭을 나누어 주고 씨앗을 주며 농기구와 소까지 마련해 주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골라 그들을 관리하게 합니다.

이렇게 제대로 시행하면 많은 곡식을 거두어 군사와 백성을 먹이는 기반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백성이 스스로 농사를 지어 이익을 얻도록 하되, 일정한 몫만 관에서 거두는 방법입니다.

앞의 두 방법은 국가에서 먼저 종자와 농기구를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백성 자신이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므로 관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대체로 이 세 가지 밖에 특별히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담당 관청에서 지역 형편과 국가의 힘을 헤아려 실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골라야 합니다.

무엇보다 농사철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호조에서 책임지고 여러 의견을 모은 뒤 실행할 수 있는 것을 급히 추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바다의 섬 가운데 농사 지을 수 있는 곳도 함께 살펴 둔전으로 이용할 방안을 마련하십시오.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면 다시 대신들과 충분히 의논하여 시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명나라에 위급함을 알리는 방법이 옳은지 아뢰다

임금의 답을 받고 두렵고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위급한데 제가 어찌 온 마음을 다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만 사람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고, 요즘 일 가운데에는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해 잘못 판단한 것도 많습니다.

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나라에 우리나라의 위급한 형편을 제대로 알리는 일입니다.

이런 보고는 가능하면 정식 지휘 계통을 거쳐 명나라의 경략을 통해 조정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명나라 조정에서도 우리나라 사정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을 보내기는 했으나 중간에서 헤매며 아직 경략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급하다는 이유로 경략을 건너뛰고 곧바로 명나라 조정에 글을 올리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명나라 조정 안에는 경략의 잘못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식 절차를 건너뛰어 호소하면, 그 일이 오히려 경략을 공격하는 근거로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경략이 우리나라를 원망하거나 의심하여 훗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사실대로 알리는 것입니다.

경략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처벌하는 문제는 명나라 조정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이미 떠난 사람도 있고 뒤이어 간 사람도 있으므로 그들이 제대로 뜻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또 사신이나 승려가 위급한 내용을 적은 글을 가지고 간다면, 그때그때 형편을 보고 사신이 판단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명나라의 다른 군사 기관이나 감찰관에게 사정을 알리는 것도 상황에 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식 절차를 벗어나 비밀스럽게 다른 길로 호소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략이 우리를 원망할 구실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 큽니다.

저희 몇 사람만의 생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한 번 기회를 잘못 잡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품 이상의 신하들에게도 각자 의견을 내게 하여 여러 생각을 충분히 들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사를 훈련하자는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모든 장수의 명령을 하나로 통일하다

적에게 붙잡혔다가 달아난 여자가 말한 내용이 모두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에는 실제 상황과 비슷한 것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말한 적의 진영과 움직임에 관한 내용이 그동안 우리 장수들이 올린 보고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여자가 돌아온 뒤에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 정찰이 얼마나 허술하고 적의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적을 공격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정탐을 자세히 해야 합니다.

적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지형이 험한지 평탄한지, 우리 군사가 어느 길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모두 알아야 합니다.

그런 뒤 여러 장수와 깊이 약속하고 기회를 보아 빠르게 공격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전쟁터의 도원수가 그때그때 판단할 일이지, 천 리 밖의 조정에 하나하나 물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 군령이 엄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도 지휘 체계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상도의 경우만 보더라도 도원수가 모든 군사를 총괄해야 하는데, 여러 장수가 각각 다른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어사와 병사와 순찰사 등이 각각 자기 권한을 행사하니 조방장과 별장 아래의 장수들은 이쪽저쪽에 끌려 다니며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할지 모르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깁니다.

전에 김응서와 고언백 등 여러 장수 사이에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일을 그르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입니다.

어떤 장수가 낸 의견이 실제 전황에 맞는다면 도원수가 형세를 살펴 작전을 정하고 각 진영에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언제 진격하고 언제 물러날지도 도원수가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명령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아 기회를 놓치거나, 반대로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움직여 패배한 장수가 있다면 반드시 군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의 몸이 팔과 손가락을 움직이듯 군대도 한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다만 갑자기 적을 만나 도원수에게 물을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가장 높은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조방장이나 별장 이하의 장수는 방어사나 병사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그 명령을 어기면 다시 멀리 도원수에게 물을 것 없이 현장에서 군법으로 다스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원칙을 도원수 권율에게 분명히 알려 모든 장수가 같은 규칙을 따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소금과 철을 이용해 나라의 재정을 보충하다

전쟁이 시작된 지 세 해가 되어 나라의 재물이 거의 바닥났습니다.

재물을 마련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합니다.

전에 소금과 철을 관리하는 관직을 설치해 나라에서 관리한 적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제대로 운영했다면 백성을 괴롭히지 않고도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뒤에 관리들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소금과 철을 맡는 관리로 세웠고, 이들이 고을을 괴롭히면서 백성들의 원망이 매우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이 잘못한 것인데도, 소금과 철을 국가가 관리하는 일 자체를 나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은 하루도 소금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소금은 곡식과 옷처럼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그리고 소금은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으니 자원이 끝이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라가 소금을 관리했습니다.

한나라와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쳐 지금의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소금은 나라의 재정을 마련하고 군량을 갖추는 중요한 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운영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비웃거나 쓸모없는 일처럼 생각해 왔습니다.

참으로 옳지 않습니다.

이제는 소금과 철을 관리하는 일을 호조에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조가 나라의 재정을 담당하는 관청이므로 굳이 별도의 관청과 별도의 책임자를 새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소금을 관리하는 방법은 반드시 제대로 정해야 합니다.

바닷가에는 원래 소금을 굽던 백성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여러 가지 가혹한 부담이 생기면서 소금 굽는 사람들이 날마다 흩어졌습니다.

소금 만드는 집이 줄어드니 소금 생산량이 줄고, 소금값은 금처럼 비싸졌습니다.

나라와 백성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먼저 소금 굽는 사람들에게 붙어 있는 여러 잡다한 부담을 없애 안정적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루에 소금을 얼마만큼 만들면 그 가운데 일정량만 나라에 바치기로 미리 정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먹거나 팔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한 해 동안 나라에 모이는 소금은 매우 많을 것입니다.

호조에서는 각 지역에 현재 남아 있는 소금 생산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거둔 소금은 그때의 적정한 값으로 백성에게 팔 수도 있고, 그 값으로 곡식을 사들일 수도 있습니다.

또 소금이 귀한 산간 지역으로 운반해 적정한 값으로 팔면 백성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지 않고 백성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면 물자가 자연스럽게 돌고 나라와 백성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 가운데 이보다 좋은 것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의 소금 제도를 보아도 매우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느 고을에 소금 굽는 집이 몇 곳이고 얼마를 생산하는지 기록하여 관리하는 정도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습니다.

철 역시 활용할 방법이 있습니다.

소금과 동시에 모두 시행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근 압록강 부근의 시장에서 명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철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이를 잘 이용하면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담당 관청에서 실제 이익과 폐해를 자세히 조사해 방법을 정해야 합니다.

소금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안정시키듯 철을 생산하는 사람들도 안정시켜 생산을 늘리게 하면 물자가 유통될 길이 생길 것입니다.

호조의 높은 관리 한 사람에게 이 일을 전담시켜 책임지고 처리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충주 위쪽을 정비하고 조령에 관문과 둔전을 설치하자는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심유경의 움직임을 의심하더라도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아뢰다

임금의 명을 받고 여러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심유경의 행동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들리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떠도는 소문도 많아 무엇이 사실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의심만으로 명나라의 장수와 관리를 잘못 대접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문서 가운데에는 경략의 허락이나 명나라 쪽 명령을 받은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길목의 고을에서 그의 길을 막거나 붙잡기라도 했다가 정말 명나라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던 사람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잠깐 그의 길을 늦출 수는 있겠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원망과 후환은 매우 클 것입니다.

더구나 한번 압록강을 건너가 버리면 누가 다시 그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는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가까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를 싫어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적으로 돌릴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속셈을 살피는 것입니다.

간사한 사람이 일부러 우리의 속내와 깊이를 떠보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생각을 모두 드러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는 이와 같아 감히 아룁니다.


사람을 보내 적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아보고 기회를 이용하게 하다

적과 편지를 주고받는 문제는 전쟁의 승패와 연결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대응할지 깊이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명나라 총병에게 적이 보낸 답장이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정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또 중국 사람으로 일본군에게 붙잡혀 있었던 사람이 말하기를,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의 최고 권력자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당장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적 내부의 갈등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옛날에도 훌륭한 장수들은 적의 장수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그 틈을 벌려 적의 힘을 나눈 뒤 공격했습니다.

전쟁에서 적 내부를 갈라놓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계책입니다.

그런데 권율과 여러 장수들은 적과 연락하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며,

“어찌 이런 원수와 말을 주고받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한다고 합니다.

충성스러운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전쟁의 형편에 따라 방법을 바꾸는 생각은 아닙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있었습니다.

심유경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고니시 쪽에서 명나라 총병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이나 시기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이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채 명나라의 유정 군대까지 전라도에서 물러가 버린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고니시가 한 말을 거짓이라고 몰아붙이고, 자신은 싸움으로 공을 세워 고니시보다 우위에 서려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경주 부근에서 적의 움직임이 다시 거칠어진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군사는 적고 군량도 부족합니다.

명나라 군대도 이미 상당수가 철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의 내부가 갈라질 기회마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보내 명나라 총병을 직접 만나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의 실제 움직임을 살펴 도원수와 충분히 의논한 뒤 형편에 따라 계획을 세워 시행한다면 조금이라도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관 제도를 다시 세우자고 청한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군사 훈련의 세부 원칙을 아뢰다

병조가 최근 군사를 훈련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마음을 다하는 일이라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다만 군사를 훈련할 때에는 부지런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군사는 무엇보다 정예해야 합니다.

쓸모없고 전쟁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을 마구 군적에 올려 머릿수만 채우고, 그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군량만 먹게 한다면 그것은 군사를 훈련하는 길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군사는 수가 많은 것보다 정예한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옛 장수들이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병사를 잘 골라 훈련했기 때문입니다.

옛 군사 훈련 가운데에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좌우로 활을 쏘거나, 참호를 뛰어넘거나, 여러 동작을 계속 반복하는 훈련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힘과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척계광도 병사를 훈련할 때 각각 맡은 무기와 동작을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연습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군사를 뽑을 때 몸이 약한 사람이나 늙은 사람을 억지로 섞어 숫자를 채워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몸이 튼튼하고 날쌔며 오래 걷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전에 전해 들은 특별한 화공법 같은 것도 실제 쓸 만한 방법이라면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한 번 전하고 나서 아무도 다시 익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군사를 훈련하는 일은 쇠를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쇠는 수없이 두드리고 달구어야 쓸 수 있는 물건이 됩니다.

군사도 끝까지 정밀하게 훈련한 뒤에야 화살과 돌이 쏟아지고 죽고 사는 일이 갈리는 전쟁터에 내보내도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깃발과 북은 군사의 눈과 귀를 훈련하는 도구입니다.

총과 창과 여러 무기는 손과 발을 훈련하는 도구입니다.

명령과 약속은 군사의 마음과 용기를 하나로 묶는 도구입니다.

나아가고 물러나고 엎드리고 일어나는 훈련은 실제 싸움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진영을 세우는 법, 무기를 다루는 법, 망을 보고 정찰하는 법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훈련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마치 손이 물건을 잡고 발이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밴 뒤에야 군사를 실제로 쓸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을 모아 대충 훈련해서는 안 됩니다.

다섯 사람이 있으면 다섯 사람을 제대로 훈련하십시오.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을 제대로 훈련하십시오.

이 방법을 넓혀 가면 백 명과 천 명도 같은 원리로 훈련할 수 있습니다.

척계광식 군대 편성에서는 가장 작은 단위부터 책임을 분명하게 나눕니다.

가장 아래 책임자가 불과 몇 사람을 맡고, 그 위 책임자가 몇 개의 작은 단위를 맡으며, 다시 그 위의 지휘관이 그 여러 부대를 맡습니다.

아랫사람 몇 명씩을 확실하게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높은 지휘관 한 사람이 수백 명을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단위가 제대로 움직이면 전체 군대도 움직입니다.

병사가 무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거나 명령에 따르지 못하면 그 병사만 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 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한 부대 전체가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다면 다시 그 위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렇게 책임이 그물처럼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각 지휘관은 자기가 맡은 병사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직접 훈련해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더욱 익숙하게 만들고, 부족한 사람은 계속 가르쳐야 합니다.

끝까지 쓸 수 없는 사람은 골라내야 합니다.

이것을 몇 달만 꾸준히 해도 훈련되지 않은 군사는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처음 훈련을 담당하는 관청을 만들었을 때에도 이 뜻에 따라, 각 지휘관이 실제로 몇 명을 제대로 훈련했는지를 따져 상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일이 너무 많아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듯합니다.

앞으로 다시 엄격하게 시행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체계적으로 군사를 훈련하는 방법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지금 명나라 사람들이 남긴 군사 훈련법을 배웠고 병조에서도 이 일에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가지 기술을 충분히 익힌 뒤에는 또 다른 기술을 배우고, 그렇게 하나씩 넓혀 가야 합니다.

옛날의 활쏘기와 여러 군사 기술도 배울 만한 것은 다시 익힐 수 있습니다.

다만 오래 계속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한때 열심히 하다가 곧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침에는 밭을 갈다가 저녁에는 농기구를 던져 버리는 식이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병사는 정예하고 튼튼한 사람을 중심으로 뽑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 병종을 모두 없애라는 뜻은 아닙니다.

깃발을 맡는 사람과 북을 치는 사람, 화기를 다루는 사람 등은 각자의 재능에 따라 배치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능력에 맞는 일을 맡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사를 잘 뽑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수를 제대로 세우는 일입니다.

군대를 장기에 비유하면 병사는 장기판 위의 말이고 장수는 그 말을 움직이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무리 장기말을 가지런히 늘어놓아도 두는 사람이 서투르면 이길 수 없습니다.

훌륭한 장수가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군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잘 훈련된 병사가 있더라도 그 군대를 지휘할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울과 지방의 무사들 가운데 앞으로 군사를 지휘할 만한 사람을 찾아 미리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들에게 진법을 익히게 하십시오.

큰 장수부터 아래의 작은 지휘관까지 평소 자기에게 소속된 군사를 직접 훈련하게 해야 합니다.

싸움이 벌어졌을 때도 자기가 평소 훈련시킨 군사를 그대로 이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소 기른 사람을 전쟁에서 쓰고, 전쟁에서 쓸 사람을 평소에 기르게 됩니다.

새 병법책이 지휘관과 군사 훈련을 함께 중요하게 여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에 전해진 특수 화공법도 필요한 재료를 대체로 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파두라는 약재가 없다고 하는데, 내의원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조금 내주어 훈련을 담당한 관청에서 기록된 방법대로 시험해 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짐승에게 시험하여 실제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한 뒤, 쓸 만하다고 판단되면 군대에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원수가 모든 장수를 통제하게 하자는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경상도의 적 형편을 아뢰고 김응서를 대구에 머물게 하며 이시언을 재촉해 내려보내기를 청하다

제가 경상도에 있을 때 직접 그곳의 형편을 보았습니다.

경상도의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고, 특히 오른쪽 지역의 형편이 더욱 급했습니다.

돌아온 뒤에도 몇 차례 보고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복명할 때 직접 자세히 아뢰려 했으나 병이 심해져 아직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근 적은 창녕과 영산, 밀양과 청도 일대를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구와 경산 가까이까지 나타났습니다.

도원수가 계속 대구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모여 있는 적이 한꺼번에 움직이기라도 하면 경상도 좌우 지역 전체가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경상도는 나라의 문과 창고 같은 곳입니다.

조령 남쪽을 모두 잃어버리면 강원도와 충청도와 전라도까지 차례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나라의 큰일이 거기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 생각만 하면 너무 답답하고 걱정되어 밥 먹는 것과 잠자는 것조차 잊을 정도입니다.

적은 오백 명씩 무리를 짓기도 하고 수백 명씩 떼를 지어 다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옷을 입고 다니며 붙잡은 조선 사람을 앞에 세워 길을 안내하게 합니다.

한밤중에 몰래 움직여 갑자기 마을을 습격합니다.

이 때문에 깊은 산골짜기라고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미처 달아나지 못하면 적의 칼에 죽고, 죽지 않으면 붙잡혀 끌려갑니다.

참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장수들은 제대로 정찰하지 못합니다.

적이 올 때도 모르고, 적이 떠난 뒤에도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전부터 이런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경상도 안에는 좌우 지역 사이 수백 리에 걸쳐 군사가 거의 없는 곳이 생겼습니다.

일부 장수가 작은 병력을 가지고 길목을 지키고 있을 뿐, 그 가운데 넓은 곳은 사실상 비어 있습니다.

이런 곳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 장수 가운데에서는 김응서가 이런 임무를 맡을 만합니다.

그가 거느린 항복한 일본군 가운데에도 실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응서를 대구에 전담 장수로 머물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병력을 더 붙여 주고, 대구에 있는 군량 가운데 일부를 떼어 그 군사에게 주십시오.

함께 있는 항복한 일본군도 먹을 것이 끊기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굶는다면 어떻게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까?

최근 싸움에서 항복한 일본군 가운데 공을 세운 사람이 많았는데 아직 오랫동안 상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상을 늦추면 마음이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군공을 맡은 관청에서 바로 조사하여 상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전쟁 중에는 이런 포상이 더욱 중요합니다.

또 충청도 병사 이시언이 아직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경상도에 있을 때 충청도 관찰사가 저에게 글을 보내, 충청도의 형편도 어려우므로 이시언을 남쪽으로 보내기 어렵다는 뜻을 말했습니다.

저는 답하기를,

“지금 경상도 오른쪽 지역의 적세가 이처럼 급합니다. 이 지역을 지키지 못하면 다음은 충청도입니다. 이시언을 내려보내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도원수의 보고를 보니 이시언은 군량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 전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령과 성주와 대구 등에는 군량으로 이용할 곡식이 있습니다.

군사가 그곳까지 가면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급한 군대라면 하루에 가야 할 길을 두 배로 달려서라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짜만 보내며 기회를 놓치고 있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정에서 엄하게 꾸짖어 하루라도 빨리 대구로 내려가 김응서 등과 힘을 합치게 해야 합니다.

그곳의 적세가 조금 누그러진 뒤에는 김응서와 다른 장수는 각자 맡은 지역에 남게 하고, 이시언은 다시 오른쪽 지역으로 옮겨 정기룡 등과 함께 그쪽 적을 처리하게 하면 됩니다.

이 일은 미룰 수 없습니다.

이미 봄이 깊어 가는데 적의 형편은 이와 같습니다.

백성은 흩어지고 지역이 텅 빈 뒤에 나중에 성을 쌓고 둔전을 만들어 지키겠다고 한들 누구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지금 남쪽 해안의 적 진지는 울산에서 순천까지 약 구백 리에 걸쳐 이어져 있습니다.

거제와 남해에도 적의 근거지가 있습니다.

적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움직이며 우리가 남겨 둔 백성들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합니다.

반면 자신들이 차지한 해안 지역에는 붙잡아 간 백성을 모아 농사를 짓게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곳에는 험한 지형을 차지해 성까지 쌓고 있습니다.

그 진지들이 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오래 두었다가 나중에 수만 명의 군사를 동원해 되찾으려 한다면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해야 할 일은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한 한 빨리 적의 세력을 꺾어야 합니다.

제가 병이 심해 자세한 사정을 모두 적지는 못하지만 대략의 뜻은 이와 같습니다.

조정에서 깊이 헤아려 시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쟁터 가까운 지역의 사람을 모집하고 항복한 일본군을 활용하다

현재 군사는 정예병을 제대로 골라 뽑지 못한 채 군적에 이름만 올리고 군량을 먹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정작 군량은 부족한데 쓸모없는 군사까지 먹이고 있으니 형편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 문제는 지금 무엇보다 급한 걱정입니다.

전에도 여러 차례 명령을 내려 고치라고 했지만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경상도에서 들으니 각 고을의 농민을 군사로 뽑아 내는 옛 방식이 아직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농민은 거의 모두 농사를 놓쳤습니다.

군영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먹을 것이 없어 쓰러지고 죽는 사람이 이어집니다.

전부터 잘못된 방법임을 알고도 지금까지 그대로 두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내륙에서 억지로 끌고 온 민병 백 명이 전쟁터 가까운 지역에서 실제 싸움을 겪은 사람 한 명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경주와 언양, 장기와 울산, 청도와 양산 사이에는 전쟁을 피해 산골짜기에 흩어져 사는 백성이 많습니다.

이들은 한 해 넘게 전쟁을 직접 겪어 담력도 생겼습니다.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을 모집해 먹을 것을 주고 활과 화살과 무기를 마련해 준다고 하면 불과 열흘 안에도 많은 사람이 모일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입니다.

산과 길과 지형을 자세히 압니다.

먼 곳에서 지쳐서 온 군사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런 모집병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내륙 농민을 억지로 군대로 끌어가는 일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군량은 각 고을에 저장된 곡식의 양에 따라 일정하게 정하면 됩니다.

보리가 있는 곳에서는 보리를 내고, 콩이 있는 곳에서는 콩을 내며, 쌀이 있는 곳에서는 쌀을 내게 하십시오.

무리하게 한 가지 곡식만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군사와 농사가 모두 살아날 길이 생깁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나은 방법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또 김응서가 항복한 일본군을 이용해 다른 적을 유인하여 공격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좋은 병법입니다.

그들이 정말 우리에게 마음을 돌렸다면 더욱 후하게 대하여 마음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낮은 무관직이라도 벼슬 임명장을 내려 주고, 옷감 같은 물품도 상으로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을 세운 정도를 보아 특별히 나누어 주십시오.

그들이 실망하여 다시 달아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이 뜻을 도원수와 경상도의 관찰사와 방어사들에게도 알려 시행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앞으로 싸우고 지킬 큰 방책을 아뢰다

명나라 조정에서도 우리나라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에게 보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명나라의 경략이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 뒤 명나라 군대는 이미 상당수가 돌아갔고, 다시 많은 군사를 일으키려면 큰 부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에게 책봉을 허락하는 등의 낮은 방책을 써서 어떻게든 적을 물러나게 하려는 의견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명나라 조정 안에는 적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많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명나라에 요청했어야 할 중요한 고비는 크게 세 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평양을 되찾은 직후입니다.

그때 명나라 대군의 기세가 매우 강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기세를 몰아 적을 끝까지 쫓아내 달라고 강하게 요청했어야 합니다.

다른 논의가 끼어들 틈을 주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둘째는 명나라의 큰 군대가 북쪽으로 돌아가고 남쪽 지방 군사 만여 명이 남쪽에 머물렀을 때입니다.

그때에도 적은 아직 기세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다시 군사를 더 보내 한 번에 적을 쓸어 버려 달라고 간절히 청했어야 합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세 번째 중요한 때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군사도 식량도 명나라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에서 우리의 요청을 바로 들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라의 형편은 하루하루 더욱 위태로워집니다.

적이 계속 우리 땅에 머문다면 결국 나라는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끊임없이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당장은 명나라 조정이 어떻게 결정할지 지켜보면서 형편에 맞게 대응해야 합니다.

최근 명나라에서 책봉과 조공 문제를 이용해 적을 돌려보내려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하지만 작은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방법만으로 적이 정말 돌아갈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금께서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시어 길게 내다보는 계책을 세우고, 우리나라를 온전히 보전할 방법을 마련하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하나의 방안만 옳다고 못 박을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변하는 상황을 살피며 대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원수의 종사관에게 변경의 일을 자세히 지시하다

도원수의 종사관이 내려간다고 하니, 조정에서 전부터 여러 차례 지시한 일이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게 해야 합니다.

요즘 각 진영에서 군사를 뽑는 일을 보면 몸과 머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까지 많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쓸모없는 군사들을 날마다 불러내니 백성은 괴로워하고 도망가는 사람은 계속 생깁니다.

한 집과 한 마을이 함께 부담을 떠안아 매우 소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정작 군영에는 실제로 싸울 만한 정예병이 몇백 명도 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전에도 각 고을에서 정말 싸울 수 있는 군사를 골라 전쟁에 보내고, 나머지는 군량을 운반하는 일 등에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군량이 조금 넉넉해지면 전쟁터 가까운 고을에서 이미 싸움에 익숙한 사람을 모집해 군사로 쓰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여러 번 지시했습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시행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또 경주와 의령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 수백 리가 텅 비어 있습니다.

적이 소수 병력으로 경주와 의령의 우리 군사를 붙잡아 두고 다른 병력을 이 빈 지역으로 내보낸다면 안쪽 지역에는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생각만 해도 매우 위험합니다.

그 가운데 한 장수가 밀양 쪽에 있다고 하지만 싸움을 잘하는 장수도 아니고 거느린 병사도 적다고 합니다.

그가 주변에서 이백여 명을 모집했으나 군량이 없어 다시 흩어졌고, 곡식 몇십 석을 구한 뒤에야 백여 명이 다시 모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일을 보아도 군량만 마련해 주면 흩어진 사람을 다시 군사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도 한 도의 백성은 전쟁이 시작된 뒤 두 해 동안 흩어진 채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습니다.

굶주림 속을 떠돌다 죽은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살기 위해 적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까지 생겼습니다.

동래와 김해 사이에는 우리나라 백성이 많이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장수와 수령은 그들을 마치 남의 백성처럼 내버려 둡니다.

오고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백성을 이렇게 버리고서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되찾고 나라를 회복하겠습니까?

지금 여러 장수 가운데에는 할 일 없이 편안한 곳에 앉아 있다가 싸우고 지키라고 하면,

“군사가 없는데 무엇으로 싸웁니까?”

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군사를 주면 다시,

“적이 너무 많아 상대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합니다.

이런 몇 마디 변명으로 책임을 피하려 할 뿐, 몸과 마음을 다해 죽을 데서 살 길을 찾으려는 뜻이 없습니다.

이래서야 어찌 직책을 다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비교적 온전히 남은 지역도 있습니다.

진주와 합천, 함양, 고령, 거창, 산음, 삼가, 초계, 의령, 단성, 하동 등 여러 곳에 전년도에 관청이 거둔 곡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실제 숫자를 급히 조사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이듬해 봄에 쓸 씨앗을 먼저 떼어 놓으십시오.

나머지는 군량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각 진영의 군사 수를 자세히 헤아려 꼭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중간에서 함부로 쓰거나 빼돌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부유한 집 가운데 곡식을 가진 집을 찾아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청의 위세로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나라의 급한 형편을 정성스럽게 설명하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수량을 정하여 내게 해야 합니다.

산속에 있는 승군도 추수할 때 곡식을 모아 군량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둔전에서 나오는 곡식과 절에 딸린 밭의 곡식, 전에 정해 둔 여러 군량용 곡식과 그해 세금으로 거둔 곡식도 제때 모아야 합니다.

관청과 장수가 몰래 빼돌리지 못하도록 철저히 살펴야 합니다.

밀양과 양산과 김해 등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백성도 찾아 모아야 합니다.

몸이 튼튼한 사람은 군사로 편성하고, 나머지는 살 곳을 마련해 정착시키십시오.

이 일도 매우 급합니다.

상주목사 정기룡은 용감하고 싸움을 잘합니다.

이미 높은 품계로 올려 주었고 적을 토벌하는 장수의 임무도 맡겼습니다.

그를 한 곳의 적만 상대하게 할 것이 아니라 길목이 비어 있는 곳을 지키는 데에도 이용해야 합니다.

정기룡에게 군사를 다시 모집하게 하고, 주변의 지휘관과 미리 약속을 정하게 하십시오.

뜻밖의 일이 생기면 즉시 서로 알리고 중요한 길목을 막게 해야 합니다.

이 밖의 일은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자세히 지시했습니다.

종사관에게 다시 한번 모두 확인하여 실제로 시행하도록 전하십시오.


충성스럽게 싸운 사람을 포상하자는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농사를 강력하게 권하고 관찰사와 수령의 성실함을 조사하다

올해는 비가 알맞게 내려 농사를 짓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각 도의 수령들이 진심으로 백성에게 농사를 권하고 씨앗을 마련해 준다면 전쟁 뒤 살아남은 백성도 다시 살아갈 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절실하고 급한 일입니다.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됩니다.

전부터 여러 차례 명령을 내렸고, 올해 봄이 시작된 뒤에도 각 도의 관찰사에게 계속 공문을 보내 자세히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실하게 시행하는 사람은 열 명 가운데 한두 명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찌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있겠습니까?

요즘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만나면 저희가 직접 그곳의 농사 형편을 물어봅니다.

그들의 말을 모두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사정을 파악할 수는 있습니다.

황해도에서는 해주와 백천 정도가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백천은 도 안에서도 전쟁 피해가 매우 심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 고을 수령은 마음을 다해 일을 하면서 흩어진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고 농사를 권했습니다.

이미 씨앗 삼백 석가량을 뿌렸다고 하니 매우 칭찬할 만합니다.

다른 지역의 사정은 모두 알 수 없지만 연안과 평산은 농사를 제대로 권하지 않는 것으로 특히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들판은 황폐하고 백성은 흩어졌다고 합니다.

경기에서는 통진과 몇몇 고을, 안성 등에서 조금씩 농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양처럼 원래 농지가 넓고 농사를 많이 짓던 곳에서도 제대로 경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닷가의 소금 굽는 백성도 가혹한 부담 때문에 거의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소금값이 금처럼 비싸졌습니다.

충청도에서는 천안과 덕산과 단양 등 몇몇 고을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청안의 수령은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으고 씨앗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 직접 고을 안을 뛰어다니며 농사를 짓도록 권했습니다.

청안은 원래 아주 큰 고을도 아닌데 이런 노력을 하니 청주 등 다른 지역의 백성까지 함께 몰려온다고 합니다.

이 일을 보면 한 고을이 다시 살아나느냐 완전히 무너지느냐는 수령이 마음을 다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조정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임금이 아무리 백성을 사랑하고 살리려는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실제 현장에서 시행할 사람이 없으면 백성은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관찰사는 여러 수령을 통제하는 사람입니다.

조정은 관찰사에게 책임을 묻고, 관찰사는 수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상과 벌이 분명해야 백성이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옛날 정치를 잘한 사람은 이름만 보고 일을 잘한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실제 성과를 확인했습니다.

작은 선행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작은 잘못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급한 때에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수령이 농사에 마음을 다하지 않는데 관찰사가 그대로 보고만 있다면 관찰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조정에서 씨앗을 나누어 주어도 관찰사와 수령이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그 씨앗이 농민에게 가지 않고 아전들의 손에 들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조정에서 아침에 명령 하나를 내리고 저녁에 또 명령 하나를 내려도 모두 헛수고가 됩니다.

최근 백성을 안정시키는 관청에서 나누어 준 씨앗도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경기와 황해도를 비롯하여 충청도와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와 함경도와 평안도까지 모든 도에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각 고을이 씨앗을 얼마나 마련했는지, 농사짓는 백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하나하나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십시오.

농사를 부지런히 권한 수령과 게으르게 한 수령의 이름도 모두 적어 올리게 해야 합니다.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야 합니다.

조정에서도 때때로 신하를 몰래 보내 실제 상황을 확인하게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조령을 지키고 연풍의 백성을 다시 모으다

전에 조령을 지키도록 보낸 신중원의 하인이 와서 현지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신중원은 연풍의 한 마을에서 땅이 기름진 곳을 골라 이미 씨앗 열 석이 넘는 양을 뿌렸다고 합니다.

또 전쟁을 피해 흩어졌던 백성 백오십여 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 가운데 몸이 튼튼한 사람을 골라 화포를 다루는 법도 새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피했던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고 계속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신중원은 씨앗과 소금 등을 조금 더 보내 주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령을 어떻게 지킬지도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조령 아래쪽으로 십여 리 내려간 곳에 양쪽 산이 마주 보며 갑자기 좁아지는 곳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길은 몇 장 정도의 폭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은 당시 길이를 재던 단위입니다.

그곳에 돌을 모아 길을 가로질러 성벽을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세우면 좋겠습니다.

아래에는 사람들이 평소 오갈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 두면 됩니다.

평상시에는 문을 열어 왕래하게 하고, 적이 오면 문을 닫고 험한 지형을 지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의 튼튼한 관문이 만들어지고 조령 방어도 자연스럽게 강해집니다.

보리가 익을 무렵에는 청풍과 영춘, 단양과 주변 고을에서 소금을 주고 보리를 사들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곡식을 군량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이미 모은 군사와 백성을 이용해 성도 조금씩 쌓을 수 있습니다.

이 계획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령에 관문을 만들자는 논의는 전부터 있었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정말 실행할 수 있다면 충주 방어도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조정에서 따로 사람을 보내 현장을 직접 살펴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충청도 관찰사 윤승훈에게 미리 공문을 보내 직접 지형을 조사한 뒤 실행할 수 있는지 결정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연풍은 이미 전쟁으로 크게 파괴되어 정상적인 고을의 모습조차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주민이 대부분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신중원이 씨앗을 나누어 주고 사람을 불러 모아 농사를 짓게 하며 관청의 부역을 함부로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 백성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연풍 현감이 예전처럼 사람을 부르고 부역을 요구한다면 다시 모이는 백성을 흩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온 연풍 백성에게는 여러 세금과 부역을 오랫동안 면제해 주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한동안 연풍을 거의 버려진 지역처럼 두고 백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둔전과 방어를 담당한 사람에게 농사와 방어만 전담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백성의 힘이 조금 회복되고 떠났던 사람들이 충분히 돌아온 뒤에 다시 정상적인 고을 제도를 세워도 늦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충청도 관찰사에게 물어 형편에 따라 처리하게 하십시오.

씨앗도 더 보내 주어야 합니다.

필요한 소금이 도착하면 연풍 쪽에 나누어 주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화포를 배우는 군사 가운데 실제로 능숙해진 사람에게는 옷감 같은 상을 나누어 주어 마음을 북돋아 주십시오.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고 그 말을 들어 보자고 청한 글

본문은 본집에 실려 있다.


사은사를 보내면서 나라의 위급한 사정도 함께 아뢰다

임금의 명을 받고 눈물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큰 위기를 만난 것은 사람의 몸이 심한 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에는 백 가지로 방비하고, 지나치다고 할 만큼 앞일을 걱정해야만 겨우 몸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라의 운명은 너무나 위태롭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밖에서 비밀스럽게 어떤 명령과 계획이 오가는지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일을 걱정하며 여러 방면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의 여러 정황을 보면 마음이 서늘해지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상대가 우리의 위태로운 형편을 이용해 뜻밖의 일을 벌인다면 우리나라에 또 다른 변란이 생기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습니다.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걱정해야 할 일은 눈앞에 있는 일본군만이 아닙니다.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나라를 지킬 여러 방안을 넓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의심하여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확실하지 않은 일을 사실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나라의 형편이 너무 위태로운 만큼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듣기로는 명나라 황제가 우리나라에 군량 이만여 석을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큰 은혜를 입었으니 사신을 보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은사가 명나라로 갈 때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위급한 상황과 앞으로 걱정되는 일들을 함께 자세히 아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 따로 한 사람을 급히 보내는 것보다 정식 사은사의 길을 이용해 함께 아뢴다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적을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제가 지나치게 걱정한 끝에 떠올린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아뢰는 것이니 임금께서 깊이 살펴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징비록 제삼권 끝

 

 

 

 

 

 

 

 

 

 

 

 

 

징비록 제4 권

근폭집


격식에 얽매이지 말고 인재를 널리 뽑아 수령과 장수로 써야 한다

경상도 해안에서는 서생포와 부산 같은 곳을 왜군이 차지하고 있지만, 양산과 밀양을 비롯한 그 밖의 지역에는 아직 우리 백성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전란을 피해 산골짜기로 들어가 무리를 이루어 지내고 있다. 전쟁이 오래 이어지면서 이렇게 모인 백성의 수도 점점 많아졌다.

지금이라도 적합한 사람을 수령으로 뽑아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으고, 도적을 막아 주며, 차츰 고을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지형을 살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는 방어 거점을 만들고, 백성이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그곳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왜군도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피난했던 백성도 그곳이 안전하다는 말을 들으면 다시 모여들 것이다. 장차 방어 체제를 세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지금처럼 전쟁이 계속되는 때에는 사람을 평상시 방식으로만 뽑아서는 안 된다.

그 지방에서 실제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분이나 평소의 벼슬 경력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하게 써야 한다. 본래 그 지방에서 살아온 사람은 백성의 형편과 풍속, 산과 들의 지형까지 잘 알고 있으므로 이런 때에는 더욱 쓸모가 있다.

군관이나 무사 가운데에도 쓸 만한 사람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다만 자기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해 힘을 쓰지 못하고, 재능이 있어도 오랫동안 묻혀 있는 사람이 많다.

사람마다 재능의 크기는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재능을 살펴 알맞은 자리에 쓰고 장점을 북돋아 준다면 모두 나라에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널리 구하지 않는 것과, 사람을 구하고도 알맞게 쓰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특히 경상도는 지금 왜군과 직접 맞서고 있으므로 다른 지역보다 인재가 더욱 절실하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흔히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 찾는다. 그렇게만 해서는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그 지역에 실제로 쓸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골라 맡기면 된다. 반드시 높은 신분의 사람만 수령이나 장수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도원수에게도 이런 뜻을 알려 수령과 장수를 맡길 만한 사람을 널리 천거하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지위가 높고 낮은 것보다 실제 재능을 살펴 사람을 쓰는 길을 넓혀야 한다.


김응서와 고언백이 서로 마음을 합쳐 일을 이루게 해야 한다

요즘 나라의 일이 매우 위급한데도 여러 군영의 장수들이 경계하고 조심하기는커녕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있다.

보고된 내용을 보니 고언백과 김응서 사이에도 다툼이 있었다.

두 사람이 싸우게 된 까닭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어느 자리에 먼저 앉느냐 하는 자리 순서에서 시작된 일에 지나지 않았다. 나라가 위태로운 이런 때에 이런 일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것은 참으로 옳지 않다.

고언백과 김응서는 모두 전쟁터에서 힘껏 싸워 공을 세운 장수다. 나라에서도 그 공을 알고 있다.

앞서 임금의 명으로 서로 화해하게 했으니 이제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문제를 일으킬 까닭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리 순서 문제는 앞으로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분명히 정해 둘 필요가 있다.

서울이나 지방의 관리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에는 본래 관직과 품계에 따라 앉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군대 안이라고 해서 이 원칙을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

고언백과 김응서처럼 서로 다른 품계에 있는 사람을 지휘상의 편의 때문에 억지로 같은 위치에 놓거나, 본래 품계가 높은 사람을 낮은 사람 아래에 두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홍계남이나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다.

도원수가 자기 휘하에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본래 관직의 높고 낮음을 무시하고 다른 병사나 방어사와 맞먹는 지위를 주면 군대 안에서 누가 누구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지가 어지러워진다.

결국 이런 잘못된 배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불복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큰 싸움으로 만든다.

여러 장수를 화합시키고 원망과 다툼을 누르며, 모두 한마음으로 나라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원수의 중요한 임무다.

옛날 양의와 위연은 서로 사이가 몹시 나빴다.

그러나 제갈량이 군대를 지휘할 때에는 두 사람 모두 감히 노골적으로 상대를 미워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제갈량이 사람마다 재능에 맞는 일을 맡겨 공을 세우게 했고, 군대의 질서를 엄정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권율과 관계된 장수들에게 이런 뜻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각 군영의 여러 장수에게도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충성과 의리를 앞세워 서로 힘을 합쳐 나라 일을 이루도록 거듭 타일러야 한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방어 계획을 미리 세우게 해야 한다

전라도에는 이미 군사를 맡은 장수가 있지만 충청도에는 병사를 중심으로 방어를 준비해야 한다.

도 안에서 어디가 중요한 길목인지, 어느 곳을 막아야 하는지, 어디에 군사를 머물게 할 것인지, 위급할 때 어느 장수가 어느 군사를 거느릴 것인지 미리 정해야 한다.

이런 일은 평온할 때 충분히 의논하여 계획을 세워 두어야 한다.

실제로 일이 벌어진 뒤에야 사람을 찾고 군사를 옮기고 길을 알아보려 하면 늦는다.

요즘 군사를 맡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까지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기 관할 지역인데도 마치 남의 일처럼 팔짱을 끼고 있다가 적이 들어오면 그때서야 허둥대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참으로 걱정스럽다.

충청도의 군사를 맡은 변양준에게 도 안의 군사를 어떻게 배치하고 있는지, 중요한 길목을 어떻게 막으려 하는지, 지금 마련해 둔 방책에 허술한 곳은 없는지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하게 해야 한다.

또 감사와 여러 수령에게 다시 명령하여 군사의 조직을 정비하고, 군사들을 제대로 훈련시키며, 무기와 장비를 수리하고 마련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비할 수 있다.


군량을 마련하는 방법

군대를 움직이는 일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군량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라 안에서는 경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중앙 창고에 쌓인 곡식은 몇 달도 버티기 어렵다.

지방 관청의 창고도 비어 있고 백성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곡식도 많지 않다.

명나라 원군에게 줄 식량이 필요하고 우리 군대가 먹을 군량도 마련해야 한다. 지금 형편으로는 식량을 구할 곳이 거의 없는 지경이다.

이보다 더 답답하고 절박한 일이 없다.

그러나 군량을 마련하는 방법을 크게 나누면 몇 가지가 있다.

곡식으로 거두는 방법이 있고, 다른 물품을 거두어 곡식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으며, 백성에게 곡식을 자원해서 내게 하는 방법이 있고, 곡식을 사들이는 방법도 있다.

이 네 가지를 제대로 운영한다면 군량을 계속 마련할 길이 생길 것이다.

서울에 번을 드는 군사의 부담을 조정해 곡식을 마련하는 방법

서울에 올라와 번을 드는 기병과 보병에게는 그 군사의 생활을 돕는 집들이 붙어 있다.

이런 집들의 부담을 알맞게 조정하여 사람마다 쌀이나 잡곡 다섯 말을 내게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각 관청의 노비나 장인, 악공을 돕는 사람들에게도 형편에 따라 일정한 곡식을 내도록 할 수 있다.

이를 모두 모으면 상당한 양의 곡식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충청도와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사람들은 지금 이미 서울에 올라와 군역을 치르고 있으므로 당장 이들에게 또다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우선 전라도부터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

거둔 곡식은 그 지방에 그대로 보관했다가 군량으로 쓰게 할 수도 있고, 배로 서울까지 옮길 수 있는 것은 서울로 보내도 된다.

다른 군사 비용에 보태 쓰게 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별도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서 평소 사용하는 곡식을 아껴 군량으로 돌려야 한다

서울의 여러 관청에서 평소 사용하는 곡식만 해도 한 달에 대략 수천 석에 이른다.

특별한 비용은 여기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한 달에 약 삼천 석을 쓴다고 잡으면 일 년에는 삼만 육천 석이 된다.

호조에서는 일 년 열두 달 동안 어디에 얼마가 필요한지 먼저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꼭 써야 할 비용과 특별히 지급해야 할 비용을 빼고 나머지가 있다면 따로 떼어 군량으로 돌려야 한다.

전쟁 중에는 평상시와 똑같이 모든 지출을 계속할 수 없다.

백성에게 곡식을 모집할 때에는 지나친 양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경상도에서 평소 세금으로 거두는 곡식은 다음 해 봄이 되어야 제대로 들어온다.

그전까지 기다릴 수 없으므로 지금 당장 자원하여 곡식을 내겠다는 사람을 모집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실제로 나라를 돕겠다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지금까지 나라에서 정한 액수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보통 재산을 가진 집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곡식을 요구했다.

그러니 사람들은 나라에서 약속한 상을 믿지 않게 되었고, 곡식이 있어도 깊이 숨겨 내놓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억지로 뒤져 곡식을 빼앗으면 백성의 원망만 커지고 실제로 얻는 곡식도 많지 않다.

최근 곡식을 모집하면서 나라를 위하는 백성이라고 불러 놓고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해 일이 잘되지 않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호조에서 다시 양을 정해야 한다.

백성이 실제로 낼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고, 누가 얼마를 냈는지를 분명히 기록하여 약속한 상을 곧바로 주어야 한다.

예전처럼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백성의 믿음을 잃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곡식을 사들이는 방법도 함께 써야 한다

곡식을 사들이는 것만으로 모든 군량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때 필요한 군량을 보충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의주의 중강 같은 교역 지역을 이용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이런 여러 방법을 병조와 호조가 함께 자세히 검토하여 구체적인 규정을 정하고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말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로 곡식이 군영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지방의 진관 제도를 다시 살려야 한다

지방의 진관 제도는 군사 행정에서 매우 중요한 제도다.

가까운 여러 고을을 하나의 군사 조직으로 묶어 평상시에는 훈련하고, 적이 들어오면 가까운 군사가 먼저 모여 막도록 만든 제도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 제도가 흐트러져 이제는 이름만 남고 실제 조직은 거의 무너졌다.

군사가 흩어져 서로 연결되지 않으니 일이 생겨도 한꺼번에 모으기 어렵다.

앞서 비변사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여 각 고을에 명령을 내린 일이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굳어진 습관 때문에 사람들은 옛 잘못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을 시행하려 하지 않는다.

진관을 맡은 수령들도 일을 번거롭게 여기며 이전 방식만 고집한다.

감사 역시 이를 엄하게 감독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지나가니 군사 문제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충청도만 예로 들어도 효과는 분명하다.

충주 진관의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면 조령과 새재 일대의 문호를 지킬 수 있다.

청주 진관을 제대로 정비하면 황간과 영동, 추풍령 같은 중요한 길목을 막을 수 있다.

공주 진관을 살리면 금강 일대를 방어할 수 있다.

홍주 진관을 살리면 내포와 서해안 일대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일은 비교적 간단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매우 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앞에 익숙한 방식에만 매달려 이런 제도를 다시 세우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몹시 안타깝다.

공주 목사처럼 재능이 있어 이런 일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분명히 주고 시행하게 해야 한다.

충청도 감사에게도 특별히 명하여 진관 제도를 실제로 되살리게 하고, 소속 군사의 일을 전담하여 정돈하도록 해야 한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실제 성과가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


전라도 해안 고을에 임시로 행정을 맡을 사람을 두어야 한다

어제 임금을 뵙는 자리에서 전라도 해안 고을들의 사정을 들었다.

수령들이 자기 고을을 떠나 군영에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관청의 모든 일이 비어 버렸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해 호소하려 해도 들어 줄 사람이 없다.

농사지을 때가 되어도 농사를 권하고 감독할 사람이 없다.

군역과 각종 부담을 처리하는 일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밖에도 온갖 폐단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수령을 모두 군영에서 자기 고을로 돌려보내면 이번에는 군사를 거느릴 사람이 부족해질 수 있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에는 평상시 제도를 그대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사정에 맞추어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예전에도 큰 난리를 겪은 뒤 지방 관청이 비었을 때 임시로 고을의 일을 맡길 사람을 두곤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사람을 골라 내려보내면 아무리 신중하게 고르더라도 그 지방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또 그 사람이 가족까지 거느리고 내려가 정식 수령처럼 생활하면 가뜩이나 피폐한 관청의 비용을 더욱 축낼 수 있다.

그러므로 각 도의 감사가 그 지역의 선비나 전에 벼슬했던 사람 가운데 사리를 알고 청렴하며 백성의 신뢰를 받을 만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 낫다.

고을의 일을 임시로 맡겨 수령을 대신하게 하면 된다.

현을 맡으면 임시로 현의 일을 맡은 관리라 하고, 부를 맡으면 임시로 부의 일을 맡은 관리라고 하면 된다.

일정한 기간 동안 수령의 일을 대신하게 하여 백성의 소송을 처리하고, 세금과 각종 부담을 나누며, 농사도 권하게 해야 한다.

다만 이들에게 관청에 쌓아 둔 재물을 마음대로 쓰게 해서는 안 된다.

평상시 향교의 교관에게 생활비를 주는 정도를 기준으로 필요한 양식만 지급하고, 그 내용을 감사에게 보고하게 해야 한다.

그 가운데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때를 놓치지 않고 농사를 권해 성과를 거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정식 수령으로 쓸 수도 있다.

감사와 어사가 실제 성과를 조사해 조정에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탐욕을 부리고 부정을 저지르거나 백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며 관청의 재물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은 죄를 무겁게 물어야 한다.

감사는 이런 사람을 서둘러 뽑아 먼저 이름을 조정에 보고해야 한다.

아무 사람이나 임명해 오히려 백성과 관청의 폐단을 키우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명나라에서 동쪽 원정에 나온 장수들을 위로하는 글을 올리는 문제

나는 병이 오래되어 어떤 때에는 조금 나아졌다가도 오후가 되면 다시 심해지곤 한다.

비변사에서 한 글의 초안을 보내 왔는데,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를 구하러 동쪽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을 위해 여러 말에 답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뜻인 듯하다.

요즘 내가 걱정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나라의 경략과 제독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고, 한쪽 말을 옳다고 하고 다른 쪽 말을 그르다고 하면 일을 처리하기 곤란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명나라 황제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구하러 나온 모든 장수가 애써 싸웠다는 뜻으로 말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를 별도의 글로 올릴 것인지, 왜군의 형편을 보고하는 글에 함께 넣을 것인지는 다시 의논할 일이다.

나는 병이 심해 사정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비변사에서 충분히 의논하여 빠진 점이 없도록 처리하기 바란다.


싸우고 지키는 데 필요한 방책

훈련도감의 군사 훈련은 병조에 책임을 분명히 맡겨야 한다

어제는 병 때문에 임금을 모시는 자리에 나가지 못했다.

오늘 비로소 빈청에 나와 병조에서 올린 글과 임금의 답을 보았다.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이길 수 없다.

나는 지난해 겨울 잠시 훈련도감의 일을 맡았다.

그러나 그 뒤 다른 직무까지 겸하게 되어 제대로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그해 사월 이후에는 몇 달 동안 계속 큰 병을 앓았다.

다시 일어난 뒤에도 훈련하는 모습을 직접 한 번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 군사 훈련이 잘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군사들의 부지런한 마음이 예전만 못하고, 배워 두었던 무예와 진을 치는 방법도 점점 흐트러진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도 훈련이 무너져 아무 효과가 없어질까 걱정한다고 한다.

명나라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와 관계없이 군사를 훈련하는 것은 본래 나라의 큰일이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물러난다면 결국 이름만 군대일 뿐 실제로 쓸 수 없는 군대가 된다.

내가 밤낮으로 걱정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군대를 다스리는 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첫째는 명령이 한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부대와 지휘 체계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상과 벌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지켜지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마음이 느슨해지고 여러 폐단이 생긴다.

군대의 기운도 쇠퇴하여 하루가 다르게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명나라에서 온 군사 교관들이 비록 신분이 높지 않더라도 우리가 군사 훈련을 배우기 위해 청한 사람들이라면 넉넉하게 대우하고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성의를 다해 가르친다.

이 역시 관계 관원이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다.

나는 오랜 병으로 기력이 쇠하여 훈련도감까지 다시 맡을 형편이 못 된다.

또 나라의 군사 행정은 본래 병조에서 맡는 것이다.

병조가 온 힘을 다해 책임지게 하면 된다.

굳이 대신에게 훈련도감의 책임까지 다시 겸하게 할 필요가 없다.

병조에 책임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좋겠다.


경상도에서 시행해야 할 방어 대책

산과 험한 곳에 거점을 만들어 백성과 군사가 의지하게 해야 한다

예로부터 전쟁이 나면 먼저 중요한 곳에 진영을 만들었다.

군사와 백성이 그곳을 의지하고, 공적인 물자와 개인의 재산도 안전한 곳에 모아 두었다.

적이 오면 험한 지형을 의지해 지키고, 적이 물러가면 산에서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한 곳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은 십여 리, 먼 곳은 수십 리 사이에 서로 연결된 거점을 만들면 앞뒤에서 서로 도울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백성을 보호할 수 있고 적도 막을 수 있다.

이보다 절실한 일은 많지 않다.

그런데 장수와 수령들은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백성들이 스스로 마을 사람을 모아 방어책을 세워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조정과 지방 관리들은 왜군의 세력이 너무 강해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방어 거점을 만드는 일에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러자 사정을 모르는 백성들까지 이를 따라 했다.

사람들은 풀숲에 엎드려 숨거나 다른 곳으로 떠돌며 하루하루 먹고살 궁리만 한다.

농사를 지으려는 마음까지 잃었다.

이 때문에 왜군이 새로 공격하지 않아도 남쪽 지방은 날이 갈수록 더 황폐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다시 수습할 길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산성을 지키자는 말을 들으면 먹을 것도 없고 군사도 없는데 어떻게 산성을 지키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 가지만 알고 다른 한 가지는 모르는 말이다.

지금 대규모로 성을 새로 쌓으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니 당장 할 수 없다.

그러나 산골짜기의 중요한 곳에서 떠돌던 백성을 모아 그들 스스로 간단한 목책을 세우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라에서 종자와 농사에 쓸 소를 조금 도와주고,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지키게 한다면 백성이 오히려 원하는 일일 것이다.

문제는 백성이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관리들이 지휘하지 않고 위에서 명령도 내리지 않기 때문에 백성이 스스로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함안을 중심으로 서부 경상도의 백성을 모아야 한다

경상도를 예로 들어 보자.

김해와 동래는 왜군이 차지하고 있어 지금 당장 백성을 다시 모으기 어렵다.

창원도 적이 매우 가까이 있어 거의 비어 버린 곳이다.

그러나 함안은 사정이 다르다.

함안은 창원에서 동쪽으로 가까운 곳에 있고 다른 서부 지역과도 연결된다.

왜군의 침입과 불에 여러 번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서쪽 지역에는 아직 남은 백성이 많다.

전쟁 초기부터 적절한 사람을 보내 이들을 모으고 험한 곳에 진영을 만들었다면 함안 한 고을만 보전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의령과 진주를 도울 수 있었을 것이며 고성과 다른 바닷가 고을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함안을 안정시키고 고성과 서로 의지하게 하면 해안 지역의 여러 고을을 차츰 수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장수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정한 지역만 경계로 삼고 그 밖의 땅은 사실상 내버렸다.

백성이 오고 가도 살피지 않았고 왜군도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예전에 병사가 살아 있을 때에는 해안 경계와 험한 곳에 복병이라도 두었다.

그래서 창원이나 거제 쪽에서 왜군이 나오면 쉽게 돌아다니지 못했고 백성도 조금이나마 그 도움을 받았다.

그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이런 일마저 모두 잊어버린 듯했다.

그 결과 남은 백성은 날이 갈수록 줄고 땅도 점점 왜군에게 넘어가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왜군과 넓은 들판에서 정면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

왜군은 조총과 긴 칼을 잘 쓴다.

또 목숨을 가볍게 여기며 돌진하는 데 능하다.

우리 군사가 넓은 들판에서 왜군과 정면으로 힘을 겨루면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험하고 단단한 지형을 고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나무와 바위가 있어 적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거나, 높지 않은 산이라도 바로 올라오기 어려운 곳을 골라 목책을 세우고 지키면 된다.

이렇게 지형을 이용하면서 편안히 기다리면 멀리서 공격해 온 왜군은 자기 장기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조총은 멀리서 쏘면 힘이 약해진다.

산 아래에서 위를 향해 쏘면 사람을 제대로 맞히기도 어렵다.

긴 칼을 들고 돌진하는 전법도 산성과 목책 앞에서는 제대로 쓸 수 없다.

1593년 행주산성에서 벌어진 싸움이 바로 그런 사례다.

우리가 좋은 지형을 차지하고 버티면 적은 며칠 동안 공격하다가 피곤해져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그때 정예병을 숲이나 골짜기에 숨겨 두었다가 퇴각하는 적을 곳곳에서 공격하면 된다.

뒤를 치기도 하고 옆구리를 공격하기도 하면 적의 기세는 저절로 약해지고 우리 군사의 기세는 강해진다.


함안에서 실제로 농사와 방어를 함께 시행해야 한다

함안의 수령이 백성을 잘 다스리고 있어 백성이 크게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길 수 있다.

필요하다면 직급도 높여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함안 안의 험하고 중요한 곳을 골라 백성을 한 곳 또는 두세 곳으로 모은다.

나무를 베어 목책을 세워 들어가 지낼 곳을 만든다.

곳곳에 망보는 사람을 두어 왜군이 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게 한다.

봄이 되면 수령 자신이 백성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가 넓은 땅을 개간하게 해야 한다.

함안의 땅은 경상도에서도 매우 기름진 편이다.

논 한 말지기에서 가을에 네다섯 석을 거둘 수 있을 정도라는 말까지 있다.

관리들이 진심으로 이 일을 추진한다면 함안 사람뿐 아니라 사방에 흩어진 백성도 소문을 듣고 모여들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진영을 만들 수도 있다.

그곳에 모인 백성을 평상시에는 농사짓고 훈련하게 하다가 일이 생기면 큰 군대와 함께 싸우게 하면 된다.

지금 필요한 방어 준비 가운데 이것보다 중요한 일도 드물다.

함안 한 고을만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성, 진해, 곤양, 사천, 하동을 비롯한 여러 고을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

해마다 몇 명의 백성을 모았는지 조사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땅을 개간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방어 시설과 대책을 제대로 마련했는지도 하나하나 평가해야 한다.

성과가 분명한 수령은 특별히 승진시켜야 한다.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법에 따라 벌해야 한다.

기력이 약하거나 능력이 없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하나하나 가려 바꾸어야 한다.

도원수와 어사, 감사에게 이런 뜻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낙동강을 이용하는 왜군을 막아야 한다

낙동강 하류는 김해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밀양과 영산, 창녕, 현풍, 성주, 인동, 선산 같은 여러 지역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물길은 의령과 진주 쪽으로 이어진다.

배가 다닐 수 있는 곳이 많다.

1592년 왜군이 침입한 뒤 왜군은 강에 배를 띄워 군량과 무기를 운반하며 자유롭게 오갔다.

그런데 우리 군사는 강길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곽재우는 강 가운데 중요한 곳에 나무 장애물을 설치한 일이 있었다.

왜선이 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나무 장애물에 걸리자 바위 위에 매복해 있던 군사가 갑자기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왜선 여러 척을 타격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있던 왜군이 모두 몰려와 구원하면서 끝까지 공격하지는 못했다.

그때 우리에게 큰 화포와 화전이 충분히 있었다면 높은 바위 위에서 왜선을 향해 계속 쏘아 강 위에서 훨씬 큰 피해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무기가 부족해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왜군 진영을 드나들며 적정을 살피는 사람들도 왜군이 강을 다닐 배를 많이 마련하고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전했다.

그 말이 아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군대는 이런 보고를 들어도 허황된 이야기처럼 여기고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낙동강 하류와 여러 얕은 여울, 사람이 건널 수 있는 곳을 살펴 나무로 장애물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이런 작업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강가에 산이 붙어 있는 곳에서는 수백 명의 군사나 승병을 동원하면 된다.

큰 나무를 베어 강으로 흘려보내고 중요한 곳에 걸쳐 놓아 물길을 막는다.

이렇게 하면 하류에서 위로 올라오는 왜선을 막을 수 있다.

동쪽 지역의 왜군이 얕은 곳으로 강을 건너 서쪽으로 넘어오는 것도 방해할 수 있다.

각 장수에게 이 방법을 알려 형편에 따라 시행하게 해야 한다.


유정이 산성을 정비하고 둔전을 경영하도록 도와야 한다

승장 유정도 산성을 수리하려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힘만으로 모든 일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경상도에서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형편에 따라 도와주어야 한다.

농사지을 종자도 지급해야 한다.

유정이 거느린 사람들과 함께 산 아래에 둔전을 만들어 농사지으면 군량을 쌓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에도 군사를 거느리고 농사를 지은 일이 있었으니, 지난해 둔전에서 곡식을 얼마나 거두었는지, 그 가운데 얼마나 썼고 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

남은 곡식은 올해 농사에 다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숫자를 분명히 확인해 보고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경상도의 수령을 실제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평상시에도 수령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감사가 평가한다.

그러나 평가가 실제와 맞지 않는 일이 많다.

전쟁이 일어나 모든 것이 무너진 지금은 더욱 실제 상황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

경상도처럼 왜군에게 크게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수령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한 고을이 살아남을 수도 있고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상주와 금산, 개령, 지례, 대구, 성주, 청도, 창녕, 영산, 현풍, 고령, 밀양, 언양을 비롯한 여러 고을과 해안에 가까운 지역의 수령은 다른 곳보다 더욱 중요하다.

함안과 진해, 고성, 사천, 하동, 곤양, 삼가, 단성 같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어떤 수령은 백성을 잘 다스린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일한다는 말도 있다.

반면 스스로 사직하려 했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도 있고, 전쟁 중의 행동이 좋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은 사람도 있다.

이런 말들이 모두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풍문만 듣고 상벌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감사와 어사가 실제 형편을 조사해야 한다.

지금 수령이 할 일은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몸소 나가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은다.

농사를 짓게 한다.

굶는 백성이 없게 먹을 것을 마련한다.

지형을 살펴 적이 들어오는 길에 방어 시설을 만든다.

자기가 다스리는 고을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남기고 상을 주어야 한다.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바꾸어야 한다.

각 고을 수령의 현재 실적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예전의 평정 기록에만 의지하지 말고 별도의 명단을 만들어 보고하게 해야 한다.


거제와 남해안 수군 지역을 다시 수습해야 한다

거제의 남은 백성 가운데 흩어진 사람들이 많다.

다른 고을로 옮겨 가 남해 부근 등에 모여 있는 사람도 있다.

올해에는 그들에게 농사지을 종자를 따로 나누어 주어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왜군이 물러나면 다시 자기 고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미리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거제는 바다 가운데 있어 감사가 있는 곳과 매우 떨어져 있다.

감사가 직접 모든 일을 살펴 처리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수군 지휘관에게 이 일을 맡겨 스스로 계획하고 처리하게 해야 한다.

그 성과는 감사에게 보고하게 하면 된다.

해안의 여러 수군 진도 조사해야 한다.

동래와 서생포처럼 왜군이 차지한 곳만 볼 것이 아니다.

김해와 여러 해안 지역에서 지금 어떤 진이 남아 있는지 살펴야 한다.

고성, 당포를 비롯해 여러 수군 거점이 지금도 존재하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각 진을 맡았던 장수와 군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전쟁 전에 수군이었거나 배를 다루던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불러 모아야 한다.

각 지휘관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제로 모았는지를 조사하여 그 성과에 따라 상벌을 내려야 한다.


도원수가 경상도 전체의 군사를 통제해야 한다

도원수는 경상도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좌우 지역의 군사 상황을 모두 통제하는 것이 옳다.

명나라 장수가 철수한 뒤 사정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도 전체의 군사를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도원수가 모든 지역을 직접 돌아볼 수 없다면 종사관을 보내면 된다.

각 군영을 검사하게 하고 군사가 몇 명인지, 무기가 얼마나 있는지, 군량을 얼마나 마련해 두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느 군영과 어느 군영 사이에 연락이 끊어져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군대 사이에 서로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어야 한다.

경상 우도에서는 감사가 물러난 뒤 병사 김응서가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다.

다른 장수를 더 보내 군사를 보강하려 해도 군량이 부족하면 사람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원수가 직접 형편을 급히 따져 보아야 한다.

현재 군량으로 몇 명의 군사를 며칠 먹일 수 있는지부터 계산해야 한다.

전라도에서 보내올 수 있는 군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군율을 엄하게 세워야 한다

군율이 엄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풀어진다.

그러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1592년 왜군이 뜻밖에 우리 땅으로 깊숙이 들어왔을 때 여러 고을이 적의 소문만 듣고 무너졌다.

성을 지켜야 할 신하 가운데 달아난 사람도 있었다.

군사를 거느리고 중요한 길목을 지켜야 할 장수 가운데에서도 도망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이것이 전례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장수들 가운데에는 왜군이 오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을 생각을 하기보다 먼저 그곳을 버리고 달아날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앞으로 또 이런 사람이 나오면 조정에서는 지위가 높고 낮은 것을 따지지 말고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도원수에게 군율을 다시 엄하게 밝히게 해야 한다.

모든 장수에게 명령을 분명하게 내려 앞으로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백성을 왜군 진영 가까이 보내 농사짓게 해서는 안 된다

요즘 변방 장수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눈앞의 편안함만 구하고 먼 훗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왜군이나 우리 백성이나 사람이라는 점은 같다.

그러나 전쟁 초기 우리 백성은 왜군을 호랑이나 뱀처럼 무서워했다.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고 왜군과 같은 곳에 있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1592년 왜군이 처음 국경을 넘어왔을 때 여러 고을이 무너지고 적의 세력이 매우 강했다.

그래도 우리 백성 가운데 억지로 붙잡혀 끌려간 사람을 제외하고 스스로 왜군에게 들어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남녀노소가 산골짜기로 흩어져 피난했을 뿐 자진해서 왜군에게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

나라의 땅은 크게 무너졌지만 백성의 마음까지 완전히 적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중요한 바탕이었다.

그러나 왜군이 우리 땅에 오래 머물면서 형편이 달라졌다.

왜군은 사람을 마구 죽이는 일을 조금 줄이고, 겉으로는 우리 백성을 해치지 않는 척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먹을 것까지 주었다.

굶주린 백성은 평소의 마음을 잃고 먹을 것을 찾아 왜군에게 몰려가기 시작했다.

막아도 멈추지 않았다.

왜군에게 농사지을 땅을 얻어 농사를 짓고, 거기서 난 곡식을 바치며 부역을 하는 백성도 생겼다.

날이 갈수록 왜군과 어울리면서 서로 낯설어하지 않게 되었다.

동래와 부산, 김해 같은 곳에는 들판을 가득 메워 농사짓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백성이라는 말이 있다.

왜군처럼 머리를 만들고 이를 물들이며 그들의 풍속을 따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먼 곳의 장사꾼들까지 물건을 가지고 왜군 진영을 드나들며 서로 사고판다.

우리 쪽에서는 이를 막을 경계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왜군이 여러 해 동안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군사를 쉬게 하며 힘을 기르는 데 우리 백성이 이용되고 있다.

왜군이 군사를 철수하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왜군이 종자와 식량을 주겠다는 속셈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장수는 왜군 진영 가까운 곳에 우리 백성을 들여보내 농사짓게 하려 한다.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말이 퍼지자 경상 좌우도의 왜군은 온갖 꾀를 부려 우리 백성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울산의 늙은 백성들이 왜군에게 가서 약속을 받고 왔다는 말도 있다.

왜군은 편지를 주고 농사지을 종자와 먹을 것을 주면서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왜군이 먼 바닷길로 군량을 실어 나르는 일이 힘들다고 해서 우리 백성에게 종자를 주고 농사지으라고 하는 것이 정말 우리 백성을 사랑해서 그러겠는가.

아니면 우리를 구해 주려는 것이겠는가.

그 속셈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전쟁이 일어난 뒤 우리 백성은 나라에서 군역과 각종 부역을 시켜도 먹을 것이 있는 곳이라면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그런 백성이 먹을 것을 준다는 왜군의 말을 들으면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라도 쪽 백성 가운데도 최근 동쪽 지역으로 흘러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김응서의 군영에 있던 사람도 이런 모습을 보고 백성에게 말했다고 한다.

좋은 땅이 있으면 농사를 지으라고 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먹을 것을 주겠다는 식으로 적이 백성을 꾀고 있으니 그 속셈이 분명하다.

경상도는 땅은 넓고 사람은 적다.

우리 지역에도 농사지을 땅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

도대체 왜 우리 백성을 굳이 왜군 진영으로 몰아넣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왜군의 잔혹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군은 본래 사납고 교활하며 잔인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도 사람 목숨을 풀이나 티끌처럼 여긴다.

그런 자들이 어찌 우리 백성에게만 특별한 은혜를 베풀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서울에서도 이미 분명한 일이 있었다.

백성들이 처음에는 자신들이 죽을 줄 모르고 왜군과 한곳에 모여 있었다가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살육당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다.

장수들은 이 사실을 백성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백성이 스스로 호랑이 같은 적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 땅과 적이 차지한 곳 사이의 경계도 엄하게 세워야 한다.

백성이 살아갈 다른 길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적에게 붙은 사람들이 왜군의 계책을 받아 우리 백성을 꾀어 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세세한 방법을 글 하나에 모두 적을 수는 없다.

실제 일을 맡은 장수들이 사정을 살펴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도원수와 경상 좌우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이런 뜻을 특별히 자세히 알려야 한다.


방어 준비에 관한 건의

조광익과 김시약 등을 충청도에 보내 군사를 모집하게 해야 한다

나라의 일이 날이 갈수록 위급하다.

나는 병중에 있지만 걱정을 놓을 수 없다.

왜군은 밤낮으로 우리를 칠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는 적을 막을 만한 준비를 제대로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서울과 지방의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위급하면 달아나면 된다는 생각만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형편이 완전히 다르다.

이제는 달아날 곳조차 없다.

결국 죽을 것 같은 형편 속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충청도는 서울로 들어오는 문과 같은 곳이다.

반드시 방어 방법을 세워야 한다.

충청도에는 아직 군대에 들어가지 않은 무사도 있고, 전에 전투에 참가하여 실제로 힘써 싸운 사람도 적지 않다.

문제는 각 고을에서 군사를 뽑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힘세고 쓸 만한 사람은 인맥과 청탁을 이용해 빠져나간다.

오히려 늙고 힘없는 사람이 군역에 끌려온다.

이렇게 하면 백성만 괴롭히고 실제 전투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조광익과 권인룡, 김시약을 활용해야 한다

조광익은 청주 사람이다.

전쟁이 시작된 뒤 여러 차례 용감하게 싸운 공이 있다고 한다.

최근 내가 그를 자주 만나 보았는데 재능도 쓸 만했다.

조광익 자신도 권인룡과 김시약 등과 약속하여 충청도에서 전에 전투를 겪고 용맹을 드러낸 사람들을 모으고 싶다고 했다.

몇백 명이라도 모아 남쪽으로 내려가 싸우게 하고 자신들이 하나의 부대를 맡겠다는 뜻이었다.

권인룡은 수문장으로 있으면서 상중에 있는 사람인데 용맹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평이 있다.

김시약도 전에 전투가 벌어졌을 때 함께 힘써 싸워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이다.

재능과 지혜가 있어 쓸 만하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충청도 사람이다.

그러니 충청도 안의 무사 가운데 누가 용감하고 누가 겁이 많은지, 누구에게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잘 안다.

이들에게 관직을 주어 충청도로 내려보내는 것이 좋겠다.

감사의 지휘를 받게 하고 다른 방어 책임자와 힘을 합쳐 중요한 길목을 막게 해야 한다.


모집한 군사를 함부로 다른 부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 사람들이 직접 모집한 군사는 모집한 사람이 지휘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장수가 중간에서 함부로 빼앗거나 옮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부대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충청도의 상황이 당장 위급하지 않으면 이 군대를 남쪽 전선으로 내려보내 실제 전투를 경험하게 할 수도 있다.

싸워 성과를 보이면 특별히 승진시키고 상을 주어야 한다.

그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일어날 것이다.

조광익이 지금 맡고 있는 다른 직책도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남쪽의 전쟁보다 더 시급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가 맡고 있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다.


사람을 찾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인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라에서는 늘 인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로 찾으면 한 시대에 태어난 인재는 그 시대의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어찌 정말 사람이 없겠는가.

지금 사람을 찾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미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만 찾으면 어떤 사람은 뜻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여 나라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약해진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만 찾으면 실제 능력보다 명성만 큰 사람도 섞인다.

시험 성적과 오래된 관례만 가지고 사람을 올리면 평범한 사람만 차례대로 올라간다.

그러면 뛰어나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은 한 번도 앞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래서 나라에서는 늘 인재가 부족하다고 탄식하고, 일이 어려워지면 쓸 사람이 없다고 말하게 된다.

나는 예전부터 평상시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인재를 널리 뽑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해 왔다.

그것은 아무 까닭 없이 한 말이 아니다.

조광익과 권인룡, 김시약 같은 사람부터 시험해 써 보아야 한다.

그 밖에도 쓸 만하다고 알려진 사람이 있다면 직접 불러 그 생각을 들어 보고, 실제로 능력이 있으면 관직을 주어 함께 군사를 모집하게 해야 한다.

나는 병중이라 글의 순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다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만은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비변사에 내려 보내 쓸 만한 사람을 골라 시행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평안도 압록강 방어를 위한 구체적인 방책

나는 병이 매우 깊어 정신과 생각이 예전 같지 않다.

내가 생각해 낸 일에도 잘못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서쪽 지방의 형편이 밤낮으로 마음에 걸린다.

보고를 보니 의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계책이 있어도 때를 놓치게 되고 결국 일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가장 걱정스럽다.

압록강은 강계에서 의주까지 수백 리에 걸쳐 이어진다.

강 위쪽에도 지켜야 할 곳이 있고 아래쪽에도 있다.

어디에서 적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지역만 보고 군사를 배치해서는 안 된다.

평안도 전체의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려 방어가 급한 곳에는 더 보내고 덜 급한 곳에서는 줄여야 한다.

미리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일이 생겼을 때 형편에 따라 대응할 책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런 판단은 현지 사정을 맡은 사람이 해야 한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일이 명령할 수는 없다.


의주의 병력을 지나치게 빼내서는 안 된다

의주는 명나라와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그런데 강 위쪽을 지킨다는 이유로 의주에 있는 군사까지 계속 빼내면 의주 자체가 텅 비게 된다.

이미 그런 상황이 보인다고 하니 걱정스럽다.

고려 때에는 서쪽을 방어하기 위해 전체를 맡는 병마사 아래에 여러 지역을 나누어 맡는 장수를 두었다.

긴 강줄기를 따라 적이 어디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장수가 자기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가 적이 오는 곳을 먼저 막고, 서로 구원하게 했다.

지금 여러 곳에 둔 별장도 원래 이런 뜻과 비슷하다.

하지만 의주에는 그런 체계가 부족하다.


죄를 지은 무관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써야 한다

평안도에 한가하게 머물고 있는 무관 가운데 쓸 만한 사람이 있다면 이런 때에는 활용해야 한다.

죄를 받아 물러나 있는 사람이라도 실제 재능이 있어 믿고 맡길 수 있다면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서 그대로 버려 둘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에게 방어 책임을 맡겨 의주로 가게 하고, 의주 수령과 협력하게 할 수 있다.

용천과 철산 등 주변 진관의 군사도 함께 지휘하여 의주를 지키게 해야 한다.


의주 성의 평지 쪽에는 목재로 포대를 만들어야 한다

의주의 지형에는 험한 곳도 많다.

그러나 북문 밖과 서문에서 남문을 거쳐 동문으로 이어지는 곳은 비교적 평평하다.

이런 곳은 성의 형편을 살펴 포대를 만들어야 한다.

화포와 다른 무기를 충분히 갖추면 지킬 수 있다.

포대라고 해서 반드시 돌로 거대한 건물을 만들 필요는 없다.

급할 때에는 큰 나무를 기둥으로 세우고 세 면을 두꺼운 널판으로 막은 뒤 중간에 구멍을 뚫어도 된다.

그 안에서 총과 화포를 쏠 수 있다.

당장 적을 막는 데에는 충분히 쓸 수 있다.


북쪽 기병을 막으려면 화포가 반드시 필요하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이 성을 공격하는 방법은 남쪽의 왜군과 다르다.

그들은 말을 타고 한꺼번에 성 가까이 몰려오는 전법을 쓴다.

사람도 갑옷을 입고 말에도 갑옷을 씌운다.

일반 활과 화살만으로는 이런 기병을 제대로 막기 어렵다.

화포가 없으면 상대하기 어렵다.

의주에는 예전에 평양을 공격할 때 사용한 여러 종류의 화포가 옮겨져 왔던 것으로 안다.

그 무기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빨리 조사해야 한다.

남아 있다면 모두 거두어 성벽 곳곳에 고르게 나누어 배치해야 한다.

평상시에도 군사들이 화포를 다루는 훈련을 해야 한다.

때때로 화포를 쏘아 군사의 기세를 높이는 것도 좋다.

주변 백성이 성에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면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사람을 쓰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변방 방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합한 사람을 얻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죄를 받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버릴 수만은 없다.

전쟁이 벌어지는 때에는 실제로 일을 맡아 처리할 능력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보아야 한다.

나는 몇몇 무관이 지금 죄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 가운데 쓸 만한 사람이 있다면 국가가 위태로운 때에는 다시 써야 한다.


성을 지키는 군사는 반드시 부대별로 나누어 훈련해야 한다

싸우는 것이든 지키는 것이든 군사 일에서는 부대를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 장수들은 특히 성을 지키는 일을 너무 허술하게 한다.

군사를 어느 구역에 배치할지 정하지 않는다.

튼튼하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을 따로 골라내지도 않는다.

전쟁 초기에 많은 군사가 성 안에 있었는데도 성을 지키지 못한 까닭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전쟁이 벌어진 뒤 여러 지역에서 성이 쉽게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다.

성에 들어갈 군사는 미리 조직해야 한다.

몇 명을 하나의 작은 부대로 묶는다.

그런 부대를 다시 여러 개 모아 더 큰 부대를 만든다.

각 부대에는 책임자를 정한다.

각 사람에게 지켜야 할 자리를 미리 정해 준다.

평상시부터 같은 방식으로 계속 훈련시킨다.

그렇게 해야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익숙한 길을 걷듯 자기 자리로 움직일 수 있다.

여러 사람의 힘도 하나로 합쳐진다.

또 실제로 싸울 수 없는 사람을 성 안에 너무 많이 들여보내서도 안 된다.

이런 준비가 되어야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본래 이런 일은 장수가 알아서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조정에서 다시 분명하게 명령해야 한다.


왜군의 움직임을 명나라에 알리고 봄철 재침에 대비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 정신도 쇠하고 몸도 매우 지쳐 있다.

군사와 국가의 일을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나라의 형세가 머리카락 하나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면 밤낮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북쪽의 걱정은 국경 밖에 있다.

그러나 남쪽의 왜군은 아직 우리나라 안에 있다.

대책을 미리 세우지 않으면 뒤에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왜군의 속셈은 몹시 교활하고 변덕스럽다.

겉으로는 바다를 건너 돌아갈 생각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 측에서 계속 여러 조건을 들고나오는 것도 단순히 우리나라만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명나라와 맺은 약속을 깨뜨릴 구실을 만들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나는 예전부터 이를 걱정해 왔다.


심유경의 행동도 경계해야 한다

심유경의 행동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이 일을 끝까지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실패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속셈이 있을 수도 있다.

명나라 사신이 왜군 진영에 들어간 뒤 일이 잘되지 않으면 명나라 사신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사람을 함께 보내 달라고 계속 요구하면서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고집한다면, 뒤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조선이 협조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책임을 돌릴 수도 있다.

왜군이 실제로 돌아가느냐 마느냐가 우리나라 사신 한 사람을 보내고 보내지 않는 데 달린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 나름의 다른 계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그들이 어떤 요구를 해 오면 어떻게 답할 것인지 비변사에서 미리 여러 경우를 생각해 말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현재 상황을 명나라에 그대로 알려야 한다

명나라 사신이 왜군 진영에 들어간 뒤에도 왜군의 움직임이 이처럼 수상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사실을 그대로 명나라에 알려야 한다.

평소 변방의 사정을 보고하던 방식에 따라 요동으로 문서를 보내고, 그곳에서 다시 명나라의 관련 관청에 알리게 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적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육지와 바다 곳곳을 살펴보면 내가 가장 걱정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제주다.

예전에 왜군 측 인물이 제주를 차지하고 싶다는 뜻을 드러낸 적이 있다고 한다.

왜군이 제주를 탐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주는 우리나라 남쪽 바다의 큰 섬이며 중국으로 이어지는 바닷길과도 가까운 곳이다.

만약 왜군이 제주를 먼저 차지하고 거점을 굳혀 버린다면 나중에는 천하의 힘을 동원하더라도 다시 빼앗기 어려울 수 있다.

제주가 왜군에게 넘어가면 서해안 전체가 위험해진다.

황해도와 평안도 해안까지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

왜군이 지형을 잘 살피는 자들이니 이런 점을 생각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므로 제주를 지키는 계획을 매우 자세히 세워 빨리 시행해야 한다.

제주에 군사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야 한다.

군량이 충분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모자라면 다른 곳에서 병력과 군량을 보태야 한다.


제주 백성의 부담을 줄여 방어에 힘쓰게 해야 한다

제주에서 조정에 바치는 여러 물품도 몇 해 동안은 줄이거나 면제하는 것이 좋겠다.

백성의 힘을 아껴 오직 방어 준비에 쓰게 해야 한다.

백성을 힘들게 하면서 공물은 계속 거두고 정작 섬을 지킬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잘못된 일이다.


남쪽의 중요한 고을도 미리 지켜야 한다

남쪽 여러 지역 가운데 길목을 막을 수 있는 고을은 많지 않다.

그중 중요한 한 고을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면 뒤에는 막을 곳이 없게 된다.

그런 곳에는 새로 부임할 수령을 서둘러 내려보내야 한다.

곡식을 저장하고 군사를 훈련하고 성을 지킬 모든 일을 미리 준비하게 해야 한다.

반드시 끝까지 지키겠다는 각오로 대비시켜야 한다.


충청도에서 이미 훈련한 군사를 흩뜨려서는 안 된다

경상도는 오랜 전쟁으로 크게 무너져 병력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다.

서울 남쪽에서 그래도 군사를 마련할 수 있는 곳으로는 충청도가 중요하다.

충청도에는 이미 훈련한 군사가 수천 명 있다고 한다.

이들을 제대로 지휘할 장수를 정해야 한다.

처음에 조정에서는 어사를 보내 군사를 전문적으로 훈련하게 했다.

그런데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훈련시킨 사람이 군사를 지휘하지 못하고 다른 장수가 대신 맡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부대를 다시 나눈다.

지휘자를 바꾼다.

명령 체계도 새로 만든다.

이런 일은 군사에서 가장 꺼리는 일이다.

훈련시킨 사람은 실제 전투에서 쓰지 않고, 실제 전투에서 쓰는 사람은 그 군사를 직접 훈련하지 않은 셈이 된다.

군사 운용에서 큰 잘못이다.

충청도 안에서 이미 훈련된 포수와 사수가 몇 명인지 모두 조사해야 한다.

다른 종류의 군사는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들을 하나의 지휘 체계 아래 편성해야 한다.

그리고 큰 장수가 전체를 통제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군사들의 마음이 안정되고 갑자기 싸움이 벌어져도 흩어지지 않는다.


한 고을의 군사를 여러 지휘관에게 나누는 폐단을 고쳐야 한다

지금 지방 군사 조직을 보면 한 고을의 군사가 여러 갈래로 찢겨 있다.

감사가 거느리는 군사가 있다.

병사와 수사가 거느리는 군사가 있다.

방어사가 거느리는 군사도 있다.

어사가 별도로 관리하는 군사도 있다.

한 고을의 군사가 여러 문으로 갈라지니 명령이 어지럽다.

누구의 지시를 따라야 할지 알기 어렵다.

우리나라 군사 제도가 오래전부터 무너진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충청도에서도 이런 옛 폐단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빨리 고쳐야 한다.

권인룡과 조광익, 김시약 등이 모집한 군사의 수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각 부대에서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골라 활과 화살, 갑옷 같은 필요한 장비를 지급해야 한다.

그 뒤에는 주장 한 사람의 명령을 따르게 해야 한다.

그러면 실제 전투에서 하나의 부대로 쓸 수 있다.

이 밖에도 봄이 오기 전에 준비할 일이 많다.

병중에서 생각나는 대로 적다 보니 앞뒤 순서가 어지러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작은 마음을 멈출 수 없어 이렇게 적는다.

비변사에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 실제로 쓸 만한 방안은 시행하기 바란다.


평안도에 관한 미처 말하지 못한 대책

앞에서 평안도에 관한 여러 방안을 말했지만 미처 적지 못한 내용이 있다.

황해도 감사에게도 그 도의 방어 대책을 자세히 세워 시행하도록 명해야 한다.

서쪽 지방이 흔들리면 서울과 의주를 잇는 길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각 지역이 따로 움직이지 말고 서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큰 변란이 일어날 때 나라가 무너지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역사를 보면 사람의 마음이 먼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면 적과 싸워 보기도 전에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92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궁궐을 호위하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도중에 도망쳤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담하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모두 무지한 백성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윗사람이 먼저 흔들리면 아랫사람이 어떻게 굳게 버틸 수 있겠는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으로 서울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다

최근 명나라 사신이 왜군 진영에서 나온다는 말이 돌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정은 아직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왜군이 크게 움직였다는 소식도 아직 없다.

명나라 사신이 왜군 진영에 있고 그곳에서 어떤 협상이 이루어졌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설령 왜군이 움직이려고 한다 해도 하루나 이틀 사이에 곧바로 서울까지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끓는 물처럼 들끓고 있다.

며칠 사이에 서울을 떠난 사람이 아주 많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그 말이 모두 사실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대신과 중요한 관리들 가운데에서 먼저 자기 가족과 재물을 밖으로 내보낸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일이다.


대신부터 살 길만 찾으면 백성에게 싸우라고 할 수 없다

높은 관리들이 자기 한 몸을 보전할 생각만 하고 나라를 지킬 뜻이 없다면 사방에서 군사를 이끄는 장수들에게 어떻게 힘껏 싸우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마을에 사는 평범한 백성에게는 또 어떻게 안심하고 흩어지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아무리 단단한 성벽이 있고 좋은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일이다.

가족을 먼저 밖으로 내보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관리가 있다면 법을 맡은 관청이 조사하여 보고해야 한다.

서울의 각 마을에서 몰래 가족이나 재산을 옮기는 사람이 있다면 서울을 맡은 관청과 각 지역 관청에서 이름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

뒤에 사정을 살펴 처리해야 한다.


1592년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1592년에는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닥쳤다.

조정에서도 미처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 일을 거울로 삼을 수 있다.

백성에게 함부로 놀라지 말고 각자의 집과 생업을 지키라고 알려야 한다.

경솔하게 움직여 스스로 조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명령을 듣지 않고 먼저 도망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흔드는 자가 있다면 무겁게 다스려야 한다.

이런 내용을 분명하게 써서 널리 알려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좋겠다.


홍문관에서 서울을 지키자고 한 의견에 대하여

홍문관에서 올린 글 가운데 정사를 맡은 사람이 서울에 머물러 지켜야 한다고 한 내용은 이미 조정에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밖에 말한 내용도 지금 같은 때에는 매우 절실하다.

서울은 나라의 근본이다.

종묘와 사직이 이곳에 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있는 곳이다.

어떻게 일이 생길 때마다 번번이 버리고 떠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위태로울수록 중심을 지켜야 한다

옛날에도 나라가 위급할 때 충신들은 임금에게 중심지를 지키라고 간했다.

어떤 신하는 적의 기병이 사방에 가득한 상황에서도 수도를 버리지 말라고 외쳤다.

또 어떤 신하는 임금에게 남쪽의 중요한 도시에 나아가 머물러 나라의 중심을 세우라고 청했다.

옛 충신과 의로운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생각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천하의 형세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물러난다.

중간에 그대로 머물 수 없다.

수많은 군사와 백성의 마음도 한 사람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윗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면 온 나라의 마음이 일어난다.

윗사람이 뒤로 물러나면 온 나라가 무너진다.

나라의 뿌리가 되는 곳부터 지키지 않겠다고 하면 가지와 잎에 해당하는 지방은 무엇을 믿고 버티겠는가.


전쟁 초기에 서울을 떠난 일은 영원한 원칙이 될 수 없다

전쟁 초기에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서울을 떠난 것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한 번의 일을 앞으로도 계속 따라야 할 법칙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번에 홍문관 신하들이 올린 의견은 옛사람들이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 간하던 뜻과 잘 맞는다.

임금께서 이 뜻을 다시 깊이 생각하시고 여러 신하를 격려한다면 사방 백성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의

통신사를 보내는 문제를 다시 의논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이 일은 매우 급하다.

오늘 다시 논의하기에도 이미 늦은 감이 있다.

그렇다고 내일까지 또 미루기도 어렵다.

여러 신하가 함께 의논해 보니 일이 이미 여기까지 왔으므로 명나라 사신을 따라 우리 신하 한 사람을 보내는 것 자체는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미 사람을 보내겠다는 뜻을 어느 정도 보여 준 상태다

앞서 보낸 답변에서도 우리 쪽 사람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뜻을 어느 정도 나타냈다.

상대방에서도 이 문제를 여러 차례 글로 요구했다.

우리도 통역관을 보내 직접 뜻을 전하게까지 했다.

이제 와서 전혀 보내지 않는다고 하면 뒤에 일을 처리하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함께 갈 사람을 뽑아 뒤따라 보내는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정식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보내서는 곤란하다

사람을 보내더라도 그에게 정식 통신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

정식으로 나라의 사신을 보내면 공식 국서가 있어야 한다.

예물도 따라가야 한다.

그 밖에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정식 외교에 따르는 여러 절차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마치 우리가 일본과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명나라 사신을 따라가는 조선의 수행 신하라는 뜻으로 보내는 편이 낫다.

그 범위를 넘는 요구가 나오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일본을 섬기라는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일본 쪽에서 조선이 일본을 섬겨야 한다는 식의 요구를 한다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작은 나라의 사람이 일본을 섬기는 일은 의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해야 한다.

명나라 병부에서도 이미 같은 뜻을 밝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명나라 사신이 아주 먼 바닷길을 건너 일본까지 가면서 조선 사람 한 명을 함께 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것까지 거절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명나라의 명을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분명히 해야 한다.


왜군이 정말 철수하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사람을 출발시킬 필요는 없다.

먼저 왜군의 움직임을 지켜보아야 한다.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왜군이 실제로 철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직 여러 지역에 왜군이 남아 있다면 앞으로의 적정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왜군이 정말 모두 철수하고 바다를 건널 날짜까지 정해진다면 그때 우리 사람을 보내도 늦지 않다.

우선 통역관을 돌려보내 이런 뜻을 전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실제로 보낼 사람 한 명을 미리 뽑아 준비시켜 두는 것이 좋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적절한 때에 출발시키면 된다.

이 일은 매우 중대한 문제다.

우리의 생각은 이와 같다.


수행 신하 파견을 둘러싼 논쟁에 대하여

이 문제를 두고 삼사의 관원들이 한결같이 반대하며 계속 논의하고 있다.

만약 큰 문제가 없다면 굳이 억지로 사람을 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병이 심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놓고 어떻게 반드시 옳다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일이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생각해야 한다.


처음부터 일본에 사람을 보내려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명나라 사신이 계속 요구했기 때문에 우리 사람이 함께 가는 방안을 검토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부를 묻는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보내고, 왜군의 형편도 알아보려 했다.

그래서 무관 한 사람을 뽑아 보내는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일본에 도착한 뒤 외교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무관에게는 글로 의사를 표현하고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관을 보내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 나온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형세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몰고 갔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일본에 정식으로 신하를 보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


일이 끝난 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쉽다

일이 이미 끝난 다음에는 잘했고 못했고를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일이 진행되는 동안 앞으로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정확히 미리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 명나라 사신이 이미 바다를 건너간 상황이라면 우리 수행 신하를 뒤늦게 보내는 것이 시기를 놓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 갑자기 완전히 중단하기도 쉽지 않다.

상대방에게 이미 말해 둔 일이 있고 우리 관원이 출발한 지 오래되었다면 중간에 멈추게 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억지로 중단하면 관계가 크게 틀어져 일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힘만으로 그 뒤의 문제를 막을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이 문제는 나 같은 사람의 좁은 생각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원칙을 말하는 것과 실제 국정을 처리하는 것은 다르다

대체로 일을 논하는 것은 쉽고 실제로 처리하는 것은 어렵다.

언론을 맡은 관원들은 잘못된 일이 보이면 과감하게 끊어 말해야 한다.

다른 사정을 돌아보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지는 것이 그들의 직책이다.

그러나 실제 일을 맡아 처리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만 할 수 없다.

이쪽 사정도 생각하고 저쪽 사정도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일어날 여러 문제까지 헤아려야 한다.

천 번 생각하고 백 번 따져도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말이 언론을 맡은 관원들의 말과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라를 남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우리 역시 나라를 그르치고 싶지 않다.

다만 형세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일을 쉽게 끊어 버리지 못하고 여러 방면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것이 우리의 죄라면 죽어도 죄가 남을 것이다.

임금께서 두 번 세 번 다시 의논하라고 명하셨지만 이제 신들로서도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직 임금께서 깊이 헤아려 결정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넷째 권 끝

 

 

 

 

 

 

징비록 다섯째 권

충청도 감사의 보고를 받고 조령과 죽령의 방어를 논하다

충청도 감사가 올린 보고를 살펴보았다.

조령과 죽령은 모두 충청도와 경상도 사이를 가로막는 중요한 고개이므로 방어를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곳의 형세를 보면 큰길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큰길에서 갈라지는 작은 길이 아주 많다. 따라서 어느 한 길만 지킨다고 해서 적의 진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험한 길목을 지키는 방법도 단순히 가장 중요한 길에 병력을 모아 세워 두는 데 있지 않다.

나무가 빽빽하고 길이 험한 곳마다 복병을 많이 두어야 한다.

적이 깊이 들어오면 앞과 뒤에서 한꺼번에 공격해 선두와 후미를 서로 끊어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적의 수가 많더라도 서로 돕기 어려워져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방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휘관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적이 움직이는 형세에 따라 때맞춰 대처해야 한다.

산과 골짜기의 지형을 이용할 수도 있고, 활을 잘 쏘는 병사를 적절한 곳에 숨겨 두었다가 기회를 보아 쏘게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길을 잘 알고 적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을 미리 뽑아 곳곳에 보내야 한다.

적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우리가 먼저 알아낸 뒤 그 길로 병력을 보내 대비한다면 적은 많아도 막아 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적이 먼저 험한 곳을 차지하여 우리 땅 깊숙이 들어온 다음에야 막으려고 하면 매우 어렵다.

지난번 충주에서 당한 패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령 방면은 충주와 괴산, 음성 등 주변 고을의 군사를 중심으로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을들은 전쟁으로 이미 심하게 무너졌기 때문에 지금 당장 많은 군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죽령 쪽에는 단양과 청풍, 영춘, 제천 등 주변 고을의 군사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피해가 크므로 무리하게 사람을 끌어내서는 안 된다.

적이 아직 오지 않았을 때 각 고을에서 수십 명씩이라도 먼저 뽑아 산길을 지키게 하는 것이 좋다.

평소 부역에 끌려다니던 백성을 아무렇게나 모아 세워 놓아서는 적을 막을 수 없다.

산길을 잘 알고 몸이 날래며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그들을 맡을 장수도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서로 어떻게 연락하고, 어느 곳에 적이 나타났을 때 어디로 모일 것인지도 미리 분명하게 약속해야 한다.

적이 오면 그 방향에 따라 군사들이 힘을 합쳐 길목을 막도록 해야 한다.

영월과 평창, 원주 같은 지역에도 이와 같은 방법을 적용하도록 충청도와 강원도 감사에게 알려 시행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군사를 나누어 배치하되 농사도 잃지 않게 하다

충청도 감사의 보고를 바탕으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무슨 일이든 그 형편에 알맞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성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백성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사람들이 서로 도망가 버린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군사 명부에 올려놓아도 실제로는 쓸 수 없다.

지금 백성들은 여러 해의 전쟁으로 이미 몹시 지쳤다.

물론 꼭 필요한 군사를 동원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을 뽑을 때에는 수만 많이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러 사람 가운데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골라 한곳에 모아야 한다.

많은 숫자를 만들기보다는 정예병을 얻는 데 힘써야 한다.

늙고 약하거나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사람은 지금이 농사철이므로 집으로 돌려보내 농사를 짓게 해야 한다.

농사를 잃지 않아야 나중에 군사와 백성이 먹고살 수 있다.

군사를 많이 만들겠다는 이유로 농사지을 사람까지 모두 끌어내면 군대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농사까지 망친다.

일을 이루기도 전에 고을의 근본부터 무너뜨리게 된다.

이것은 적을 막으려는 본래 뜻과도 맞지 않는다.

충청도에서는 이 원칙을 다시 자세히 살펴 시행해야 한다.


경상도의 세 갈래 길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 주다

경상도 방어에 관한 일을 맡은 사람들을 내려보내 각 지역의 형세에 맞는 방어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명나라 군대는 경주와 대구, 삼가 등 세 곳에 나누어 주둔하면서 세 방면으로 들어오는 일본군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와 삼가에 있던 명나라 군대는 이미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 주둔한 명나라 군대도 오래지 않아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매우 위급해진다.

명나라 군대가 떠난 자리는 결국 우리 군대가 직접 지켜야 한다.

삼가에는 산성이 있고 명나라 장수가 머물던 진지도 있으니, 그 주변의 지형을 자세히 살펴 가장 지키기 좋은 곳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믿을 만한 장수와 군사를 남겨 두어야 한다.

경주 방면에도 전쟁 경험이 있고 싸울 수 있는 장수와 군사를 모아 배치해야 한다.

세 지역의 형편을 서로 연결해서 살펴야 한다.

용감한 군사를 불러 모으고 모두 진영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군사를 모아 놓고 먹을 것이 없어 흩어지는 일이 없도록 식량 공급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적의 움직임이 갑자기 달라지면 도원수가 어느 지역이 가장 위급한지 살펴 그곳에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


폐허가 된 충주를 다시 일으킬 방법을 논하다

충주는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고을 가운데 하나다.

지금처럼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진 때에 다시 수습하려면 먼저 수령을 잘 골라야 한다.

백성을 다시 모으고 폐허가 된 고을을 되살리는 일은 결국 수령에게 달려 있다.

이미 그곳에서 어느 정도 백성의 마음을 얻고 행정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

오래 맡겨 실제 성과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고을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곡식을 옮겨 주어 굶주림을 구제해야 한다.

이 일은 조금도 늦출 수 없다.

감사는 도 전체의 곡식 사정을 살펴 비교적 여유가 있는 곳의 곡식을 옮겨 와 부족한 지역에 나누어 주어야 한다.

다만 어느 한 고을의 백성을 살리겠다고 다른 고을을 굶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각 지역의 형편을 서로 살펴 조금씩 옮겨야 한다.

강원도와 충주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므로 강원도 쪽에서도 곡식을 옮겨 올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원주를 비롯한 강원도의 여러 고을도 이미 심한 피해를 입었다.

자기 백성도 먹이지 못하는데 억지로 곡식을 거두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다.

따라서 가능한 곳에서 가능한 양만 옮겨야 한다.


충주의 기름진 땅에 다시 농사를 짓게 하다

백성을 살리는 일과 함께 농사를 다시 일으키는 것도 매우 급하다.

충주 부근의 들판은 땅이 기름져 제대로 농사를 지으면 다른 곳보다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다.

둔전은 군사나 관청이 직접 농사를 지어 군량을 마련하는 제도다.

둔전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한곳에 모아 농사를 짓게 하고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충주 가까이에 있으면서 전쟁 피해가 비교적 적은 고을의 부유한 백성 가운데 씨앗이나 농사에 쓸 소를 내놓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공을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 한다.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은 따로 상을 주는 것이 좋다.

공이 충분히 크다면 그에 걸맞은 벼슬을 주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감사가 이런 일을 직접 살피고 바로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충청도로 올라오는 여러 길을 모두 준비하다

적의 움직임이 날로 위급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방어 시설과 군사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적이 다시 갑자기 북쪽으로 치고 올라와 지난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한강 남쪽에는 다시 믿고 지킬 만한 곳이 거의 없게 될 것이다.

걱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전라도에는 이미 순찰사를 보내 경상도 군대의 뒤를 돕게 했다.

그러나 충청도에는 아직 방어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곳이 많다.

적이 전에 북쪽으로 올라올 때에도 하나의 길만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한 부대는 조령을 통해 곧장 충주로 들어왔다.

다른 부대는 금산 쪽을 지나 황간과 영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이용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이 여러 길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

한곳만 지킨 채 다른 길을 비워 둘 수는 없다.


전에 일본군과 싸웠던 정예병을 다시 모으다

전에 영동을 맡았던 한 수령은 날쌔고 용감한 군사를 골라 길목에 매복시킨 뒤 일본군을 공격했다.

그 결과 적의 목을 베는 전공을 여러 차례 세웠다.

그 사람이 죽은 뒤 군사들이 흩어졌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그들을 다시 찾아 모으면 수백 명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미 적과 싸워 본 사람들은 갑자기 끌려 나온 백성보다 훨씬 쓸모가 있다.

청안과 보은, 영동, 황간 등은 모두 일본군이 북쪽으로 올라올 때 지날 가능성이 큰 요충지다.

이들 고을의 수령에게 역마를 마련하거나 접대 물품을 내놓는 등의 부담을 지나치게 지워서는 안 된다.

백성의 힘을 아껴 주어야 한다.

대신 군사를 모집하고 산에서 사는 날쌔고 힘센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에 힘쓰게 해야 한다.

또 적이 어느 길로 올 수 있는지 미리 정탐하게 하고, 길을 막고 방어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여러 고을을 하나의 지휘 아래 묶어 함께 준비시키는 것도 좋다.

미리 군사를 훈련시키고 무기도 갖추어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게 해야 한다.

충청도 감사와 병사에게 이 일을 분명히 지시해야 한다.


전라도에서는 전쟁 준비와 농사를 함께 해야 한다

전라도 감사의 보고도 보았다.

전라도의 오른쪽 지역은 경상도와 바로 이어져 있으므로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길목이 많을 것이다.

서울에서 그 모든 지형을 세세하게 판단하여 명령하기는 어렵다.

감사가 현지의 형세에 따라 직접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지금은 농사일도 매우 급한 때다.

제때 씨를 뿌리지 못하면 적이 오기 전부터 백성의 살아갈 길이 끊어진다.

오늘의 대책은 전쟁 준비와 농사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어야 한다.

어느 한쪽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장 전투가 없는 곳의 병사는 잠시 농사를 짓게 하다

일본군이 당장 서쪽으로 공격해 올 움직임이 뚜렷하지 않고 앞쪽에 이미 군대가 주둔한 지역도 있다.

그런데 적이 바로 눈앞에 있지도 않은 곳까지 수많은 수비군을 계속 묶어 두어 농사철을 놓치게 하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각 지역의 병사에게 장수를 정해 주고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을 분명하게 한 뒤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다가 적의 움직임이 나타나면 약속한 날짜와 장소에 바로 모이도록 해야 한다.

명령을 받고도 제때 나타나지 않는 장수나 병사는 군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런 원칙을 여러 고을에 분명히 알려야 한다.


큰 성을 쌓지 못하는 곳에는 장애물과 복병을 두다

험한 길목마다 반드시 튼튼한 성을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을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 곳에는 여러 겹의 방어 시설과 장애물을 설치해야 한다.

숲이 빽빽하거나 골짜기가 깊은 곳에는 길을 막을 방법을 마련하고 복병을 숨긴다.

적이 들어오면 여러 곳에서 동시에 공격하게 한다.

골짜기 여러 방향에서 우리 군사가 나타나면 적은 우리 군대가 얼마나 되는지 쉽게 알 수 없다.

그 때문에 많은 병력도 함부로 앞으로 나오기 어렵다.

우리가 산과 숲을 잘 이용한다면 적의 보병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유극량이 산의 나무를 베어 방어 시설을 만들었던 일을 생각하다

예전에 유극량이 한 곳을 방어할 때였다.

그는 주변 산꼭대기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 산이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베어 낸 나무를 백성에게 옮기게 하여 여러 겹으로 늘어놓았다.

마치 물을 막는 시설처럼 길을 가로막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양이 어설프다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주변 지형이 이전처럼 깊고 험하여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이 아니게 되었고 적이 숨어 접근하기도 어려워졌다.

눈앞의 일에만 밝은 사람도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다른 장수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험한 곳을 지키는 장수라면 이런 방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충청도와 전라도 감사에게 이런 뜻을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군량을 가장 먼저 마련해야 한다

전쟁을 준비하려면 군량과 군사, 성곽, 무기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군량이다.

군량이 준비된 뒤에야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경기도의 군량 문제도 감사와 의논해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해에 거둘 토지세 가운데 평소 쌀이나 콩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형편에 따라 실제 곡식으로 거두어 보관하는 것이 좋다.

수원의 독산성과 죽주 일대의 산성처럼 군사가 들어가 지켜야 할 곳에는 미리 군량을 나누어 쌓아 두어야 한다.

백성이 원하는 방법이 있다면 가능한 한 그 형편에 맞추어 받아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거둔 재물이 있다면 그것을 팔아 쌀을 사는 방법도 쓸 수 있다.

곡식을 거두는 시기에 맞춰 빨리 확보하고 중요한 곳마다 나누어 보관해 뜻밖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남한산성을 직접 살펴보게 해 달라고 청하다

광주의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수십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데다 형세가 매우 튼튼하다고 들었다.

그곳에 군량을 쌓고 군사를 배치하고 성을 제대로 고쳐 중요한 방어 거점으로 삼으면 서울의 방어도 자연히 강해질 것이다.

나는 최근 경기도 감사와 이 문제를 의논했다.

우선 성 안에 창고를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사람을 보내 장소를 살펴보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전해 듣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 좋은 터를 정확히 잡아야 한다.

그래서 직접 남한산성으로 가 형세를 살펴보고 오고 싶다고 청했다.

부사와 함께 가서 현장을 본 뒤 앞으로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정하려는 것이었다.


남한산성을 직접 살펴본 뒤 다시 보고하다

직접 남한산성에 가서 살펴보니 과연 지형이 매우 좋았다.

산 위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밖에서는 성 안의 모습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넓고 평평한 땅이 있었다.

사람이 살 만한 곳도 있었다.

성벽은 대체로 단단한 돌을 이용해 쌓은 곳이 많았다.

방어할 수 있는 지점도 많았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서울에서 독산성 방면까지 넓은 지역이 눈 아래 들어왔다.

강화 쪽과 여러 산도 바라볼 수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산 위에는 봉화 시설도 있어 서울 남산과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곳을 형편에 맞게 수리하고 곡식을 충분히 쌓은 뒤 군사를 주둔시키면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는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권응원이 예전에 산성으로 들어가자고 했던 일을 되새기다

전쟁 초기에 권응원은 광주 지역에서 의병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웠다.

그는 직접 적을 만나 여러 명을 활로 쏘아 죽일 정도로 용감했다.

뒤에 다른 장수가 군사를 모아 평지에 진을 치려고 했을 때 권응원은 산성으로 들어가 지킬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 장수는 군대가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공격했다.

군대가 완전히 무너지고 광주도 지키지 못했다.

광주 사람들은 그 뒤 이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권응원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고 원망했다고 한다.


권응원을 남한산성에 계속 두어 활용하자고 청하다

권응원은 지금 산성에 창고를 짓는 일을 맡고 있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그를 불러 전쟁 당시의 사정을 직접 물어보았다.

만나 보니 몸이 튼튼하고 용감했다.

혼자 적을 만나서도 물러서지 않고 여러 명을 활로 쏘아 죽였다는 지역 사람들의 말도 있었다.

당시 세운 군공 가운데에는 길이 막혀 보고서가 조정에 도착하지 않아 인정받지 못한 것도 있었다.

지금처럼 전쟁이 계속되는 때에는 이런 사람을 거두어 실제로 써야 한다.

권응원을 남한산성의 별장으로 삼아 성 안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 좋겠다.


예전 의병을 다시 모아 훈련시키다

권응원이 예전에 거느렸던 의병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모으게 해야 한다.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더라도 차츰 모아 훈련시키면 된다.

예전의 공을 인정하여 육품 이상에 해당하는 실제 직책을 주는 것도 좋겠다.

지난 공을 격려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공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의 모든 일을 맡아 관리하게 해야 한다.

백성도 차츰 성 안으로 불러 모아 정착시키게 해야 한다.

다음 해에는 산 아래의 기름진 땅을 골라 조금씩 둔전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운영하면 산성을 유지하는 기반이 차츰 갖추어질 것이다.

다만 사람에게 벼슬을 주는 일은 내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으므로 조정에 아뢰어 결정해야 한다.


종사관을 황해도와 평안도에 보내 실제 사정을 조사하게 하다

각 도의 군사 업무가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종사관을 먼저 내려보내 여러 지역을 조사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한준겸을 황해도와 평안도로 보내 군사 문제를 다시 점검하게 하려고 한다.

군사의 수와 상태를 살피게 하고, 무기와 군량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지도 조사하게 한다.

수령들이 실제로 일을 잘하고 있는지도 평가하게 한다.

또 도 안의 백성들을 직접 만나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를 물어보게 해야 한다.

때로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민간을 돌아다니며 실제 모습을 직접 살피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가 보고 들은 일을 하나하나 기록해 올리게 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조치를 취하면 된다.


잘못한 낮은 벼슬의 수령은 현장에서 벌하게 하다

종사관에게 일정한 권한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낮은 직급의 수령 가운데 잘못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규정에 따라 현장에서 육십 대 이하의 형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보다 높은 수령에게 문제가 있으면 조정에 보고해 처리하도록 한다.

종사관이 아무 권한 없이 조사만 한다면 현지에서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오른쪽 방어사를 서울 밖으로 내보내는 문제

경기도의 오른쪽 방어사를 서울 밖으로 내보내 실제 방어 지역을 맡기자는 의견도 따로 올렸다.

이 항목의 자세한 내용은 원문의 다른 문집에 실려 있다고 표시되어 있고, 이 부분에는 본문이 따로 실려 있지 않다.


평안도에서 소금을 만들어 군량을 보충하다

평안도의 다른 일들도 형편에 따라 차츰 정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군량이다.

여러 고을의 군량이 전쟁을 겪으면서 똑같이 바닥났다.

평안도에서 올린 장부를 살펴보니 평양 한 고을에 남아 있는 쌀이 팔백여 석, 콩이 이천칠백여 석밖에 되지 않았다.

평양처럼 큰 고을의 형편이 이 정도라면 다른 고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옛사람이 나라의 큰일을 하려면 먼저 먹을 것을 충분히 한 뒤 군사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다면 군사의 수는 줄일 수도 있지만 먹을 것은 없앨 수 없다.

지금처럼 군량이 부족해서야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절박한 걱정거리다.


소금을 산골 백성에게 팔아 곡식을 얻다

재물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든 찾아 시행해야 한다.

평안도에서 소금이 나는 세 고을에서는 형편에 따라 소금을 굽게 하는 것이 좋다.

그 소금을 대동강을 따라 위쪽으로 운반해 성천과 강동 같은 산골의 백성에게 팔도록 한다.

그러면 산골 백성은 필요한 소금을 얻을 수 있다.

관청에서는 그 대가로 곡식을 받을 수 있다.

관청과 백성 양쪽에 모두 이익이 되는 일이다.

제대로 운영하면 한 해에 수천 석에 해당하는 곡식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유의 버려진 기름진 땅에 둔전을 만들다

영유 일대에는 전쟁으로 버려진 땅 가운데 매우 기름지고 농사를 지을 만한 곳이 있다.

논을 만들면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그 고을에 사는 전직 관리 가운데 나라 일을 걱정하여 스스로 둔전 관리 일을 맡고 싶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다.

뜻이 가상하다.

그 사람을 둔전 관리자로 정해 일을 맡기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평안도 안에서 농사에 쓸 소를 모집해 제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게 해야 한다.

가을에 곡식을 거두면 영유의 산성에 보관한다.

그러면 군량으로 사용할 수 있고 전쟁 준비에도 편리할 것이다.


진강과 호곶의 둔전에 농사소를 나누어 주다

서울 주변의 군사를 마련하는 일은 최근 여러 방법으로 추진하고 있다.

장정을 모집해 어느 정도 사람은 모이고 있지만 무기와 물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군대를 제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군량을 마련하는 방법도 서둘러 찾아야 한다.

진강과 호곶 두 지역에는 둔전으로 삼은 땅이 있다.

토지는 매우 기름지지만 사람이 부족하여 제대로 일구지 못하고 있다.

농사에 쓸 소 백여 마리를 마련하고 지난해 둔전에서 거둔 곡식 가운데 씨앗으로 쓸 것을 함께 나누어 준다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들어가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에게 땅을 맡기면 버려진 땅이 차츰 개간되고 수확도 늘어난다.

황해도의 여러 고을에 백성을 다시 정착시키기 위해 마련해 둔 관청의 소가 있다면 빨리 가져다가 이곳에 나누어 주는 것이 좋겠다.


서쪽 지방을 가을이 오기 전에 정비해야 한다

최근 서쪽 지역의 형세를 보면 날이 갈수록 걱정스럽다.

가을이 오기 전에 여러 방법으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가을철에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그 밖의 일은 내가 직접 해당 지역에 지시하고 종사관 한준겸도 오가며 살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일은 조정에서 결정하지 않으면 시행하기 어렵다.


평안도의 무과 합격자들이 오히려 시험에 붙은 것을 원망하다

평안도의 무과 합격자들은 처음 시험에 붙었을 때에는 모두 기뻐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북쪽으로 나가 지키는 일이 거의 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길과 진영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농사를 완전히 놓치게 되었다.

수령들도 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일반 백성과 똑같이 대하면서 여러 부담을 지운다.

조금이라도 거두어야 할 것이 있으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독촉한다.

그래서 평안도의 무과 합격자들은 모두 괴로워한다.

오히려 무과에 합격한 것을 원망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된 상태에서 나라에 일이 생겼을 때 목숨을 걸고 힘써 싸우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국경 근무 기간을 벼슬 경력으로 인정해 주다

이들을 훈련원의 임시 직책에 소속시키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강가의 국경 수비에 나간 기간을 벼슬 경력으로 계산하여 승진에 반영한다.

보통 훈련원 관리에게 적용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하면 된다.

지역의 장수는 정해진 날마다 활쏘기를 시험한다.

성적을 계산해 감사와 병사에게 보고하도록 한다.

그 가운데 성적이 특히 뛰어난 사람을 따로 뽑아 등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억지로 끌려가 지키는 일을 원망하던 사람도 기꺼이 군사 일을 하려고 할 수 있다.

관련 관청에서 자세히 의논해 시행함으로써 국경 군사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


평안도 군사에게 말을 나누어 주는 방안

강가에서 근무하는 토착 군사 가운데 말을 가진 사람은 매우 적다.

북쪽 지역에서는 말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보병만으로는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관리하고 있는 말의 수를 조사해야 한다.

쓸 만한 말을 골라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장수와 군사를 격려하는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쓸 수 있는 북방 인재를 해마다 뽑다

강가의 토착 군사 가운데에는 용감하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략이 있어 군사를 이끌 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역의 형세를 잘 알고 적진을 드나들며 정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감사와 병사가 이런 사람들을 따로 자세히 알아보게 해야 한다.

실제 능력이 있는지 확인한 뒤 해마다 가장 뛰어난 한두 사람을 뽑아 조정에 보고한다.

그러고 나서 그 능력에 맞는 군사 직책에 임명한다.

이렇게 하면 국경의 군사들도 스스로 힘을 내어 공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포루를 만들었으면 반드시 화포와 화약도 준비해야 한다

최근 강가에는 적을 막기 위해 포루를 만든 곳이 많다.

어느 고을 수령의 보고를 보면 이미 포루를 설치한 곳도 있다고 한다.

성이나 진을 지키는 데 유용한 시설이다.

하지만 포루만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쓸 화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화포가 있어도 화약이 없으면 마찬가지다.

지금 화약을 만들 재료가 크게 부족하다.

한 지역에서 마련되는 것만으로는 한 진에서 사용할 양조차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적이 닥친 뒤에야 이것을 마련하려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평소부터 각 고을에서 화약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화약과 화포를 만드는 일을 한 사람이 책임지게 하다

이 일에 밝고 실제로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전담시켜야 한다.

도 안에서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기술자들을 한곳에 모아 화약과 화포, 여러 군사 장비를 만들게 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수량뿐 아니라 품질도 살펴야 한다.

성과가 뛰어난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몇 달 사이에도 적지 않은 물자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화포를 조사해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리다

강가의 진과 도 안 여러 곳에 있는 화포와 군사 장비도 모두 조사해야 한다.

실제로 쓸 수 있는 것은 그대로 보관한다.

쓸 수 없는 것은 고친다.

고쳐도 쓸 수 없는 것은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성 하나에 포루가 몇 곳 있는지도 조사한다.

포루 하나마다 큰 화포가 몇 문 필요하고 작은 화포가 몇 문 필요한지도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 수에 맞게 모두 준비해 놓아야 한다.

적이 닥친 다음에 그제야 이곳저곳에서 화포를 찾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포를 쏘는 사람을 따로 골라 훈련시키다

큰 대포는 아무나 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지역 군사와 여러 사람 가운데 화포를 다룰 만한 성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먼저 골라야 한다.

이들을 여러 방법으로 가르쳐 충분히 익숙하게 해야 한다.

훈련 과정에서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제외하고 능력이 좋은 사람을 더 집중해서 가르친다.

그래야 실제 전투와 성을 지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이 내용도 감사와 병사에게 자세히 알려 시행하게 해야 한다.


종루의 깨진 종을 녹여 큰 대포를 만들자고 청하다

전쟁에 필요한 무기 가운데 화포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성을 지키고 요새를 방어하려면 큰 대포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지방에서도 조금씩 만들고 있지만 군기시에서 만드는 양만으로는 여러 지역에 모두 나누어 줄 수 없다.

포루를 만들어 놓아도 대포가 없다면 쓸모없는 시설일 뿐이다.

서울과 지방 모두 쇠가 부족해 대포를 만들고 싶어도 재료를 구하기 어렵다.

종루의 깨진 종이 땅에 묻힌 채 남아 있다고 한다.

그것을 그대로 두어도 쓸 곳이 없다.

지금 나라의 형편에서 어느 일이 더 급한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새 종을 만드는 일보다 적을 막을 대포를 만드는 것이 훨씬 급하다.

깨진 종의 쇠를 이용해 빨리 큰 대포를 만들고 필요한 여러 지역에 나누어 주는 것이 좋겠다.


수원의 독산성을 더 튼튼하게 준비하다

수원의 독산성은 이미 성을 어느 정도 수리했고 무기도 대강 갖추었다.

이 때문에 수원 백성 가운데에는 위급한 일이 생기면 독산성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차츰 늘고 있다.

자기 힘으로 필요한 물건을 마련해 가지고 들어가 지키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백성들이 어디를 안전하게 여기는지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곳의 장수도 밤낮없이 일을 살펴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적이 다시 나타난다면 수원부의 군사와 이 장수가 힘을 합쳐 지키게 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지금 책임을 맡은 사람에게 확실한 직책이 없다면 실제 벼슬을 주어 책임감을 더욱 높여야 한다.


용인과 양지 사이의 석성을 수리하다

용인과 양지 사이에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옛 석성이 하나 있다.

그곳의 지형은 매우 험하고 중요한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독산성보다도 낫다고 볼 수 있다.

이 성을 다시 수리하여 곡식을 쌓고 군사를 배치하면 매우 중요한 방어 거점이 될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독산성과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남한산성과 연결된다.

이 두 방어 거점이 서로 연결되면 서울로 통하는 문이 훨씬 단단해진다.


승려를 모집해 성 안의 건물도 마련하다

용인의 수령에게 성 안으로 승려를 모집해 들이고 필요한 건물을 만들게 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사람과 물자가 부족하므로 쉽게 끝내기는 어렵다.

가까운 곳에 있는 안집도감의 둔전에서 사용하는 소 가운데 일부를 옮겨 보태 주는 방법도 있다.

여러 기관이 가진 힘을 합해야 공사를 끝낼 수 있다.

처음 이런 둔전을 만든 뜻도 결국 험한 곳을 차지하고 백성을 모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로 통하는 길을 방어하는 것이 매우 급하니 관련 기관에서 물자를 아끼지 말고 반드시 공사를 완성하도록 해야 한다.


군량을 전담하는 관리를 따로 두자고 청하다

전쟁이 계속되는 때에 가장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것은 군량이다.

군량이 부족하면 다른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가을에 곡식을 거둔 뒤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 많은 양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군대를 먹이는 데 쓸 수 있다.

여유가 생기면 명나라 군대를 지원할 수도 있다.

나는 네 도의 군사 업무를 함께 맡아 무기와 화포, 깃발, 갑옷과 군복 같은 여러 물건도 마련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군량을 구하지 못하면 이 모든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이름을 비워 둔 임명장만 내려보내서는 소용이 없다

전에 여러 도에 이름을 적지 않은 임명장을 두 장씩 내려보내 군량 마련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활용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면 임명장을 아무리 보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직책과 제도만 만들어 놓아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쟁 전에도 각 도에 군량을 담당하는 사람을 두어 관리하게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각 도에 군량을 전담하는 관리를 두어야 한다.


계산에 밝고 일을 처리할 사람을 직접 뽑아 쓰다

사람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내 휘하에서 나라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고 계산에 밝으며 실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군량을 전담하는 관리로 삼고 싶다.

그 사람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일을 맡기면 된다.

군량 마련을 잘한 사람에게는 나중에 특별히 공을 따져 상을 주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시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란다.


홍산에 도적이 모였다는 보고를 가볍게 보지 않다

충청도에서 올라온 보고를 보니 홍산에 도적 무리가 모였다는 말이 있었다.

사람 수가 매우 많다는 보고는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변란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백성의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상황임을 생각해야 한다.

예로부터 큰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키는 자들은 대개 나라가 어지러운 때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작은 일처럼 보여도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미리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좌우 방어사를 두 갈래로 내보내려 한 까닭

경기도에 좌우 방어사를 둔 것은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각각 한 방면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오른쪽 방어사는 서울의 군사 문제 때문에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빨리 내려보내 수원과 죽산 일대의 길과 형세를 직접 살피게 해야 한다.

왼쪽 방어사는 아직 올라올 날짜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광주 아래쪽과 용진 등 한강 상류 지역에는 순찰하고 경계할 사람이 없는 상태였다.

그대로 둘 수 없다.


이미 지역을 아는 방어사를 계속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다

전에 이 지역의 방어를 맡았던 사람 가운데 현지 사정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다른 관리와의 관계 때문에 자리를 옮긴 사정이 있었지만 실제 맡은 직무가 서로 완전히 겹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지금도 그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그대로 방어사의 일을 맡겨 한강 상류 여러 지역을 돌아보며 경계와 준비 상태를 살피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새 사람이 올 때까지 중요한 지역을 비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훈련도감 군사의 절반 이상이 서울 밖으로 나가다

훈련도감 군사도 이미 절반 이상이 다른 지역으로 나갔다.

서울에 남은 군사의 수는 매우 적다.

양주와 노원 등지의 속오군과 별영 군사를 합쳐 백오십 명 정도를 뽑는 것이 좋다.

속오군은 지역 백성을 일정한 군사 조직으로 편성해 필요할 때 동원하는 군대다.

이들을 서울 가까이에 새로 마련한 진영에 두고 오래 근무하지 않도록 교대로 지키게 한다.


고양과 파주, 교하의 군사도 강가에 배치하다

고양과 파주, 교하의 속오군 가운데에서도 백오십 명에서 백육십 명 정도를 뽑아야 한다.

강가에 따로 마련한 진영을 지키게 한다.

평상시에는 이곳을 지키다가 갑자기 위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군사로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황해도 군사를 더 불러 서울을 지키다

적의 형세를 살펴보면 아직 기세가 꺾였다고 볼 수 없다.

황해도의 무사 가운데 연안과 배천, 해주 부근 사람 삼백에서 사백 명을 서울로 보내라고 이미 지시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고을에 남아 있는 무사들과 연안, 해주, 배천의 속오군도 더 뽑아 서울로 보내야 한다.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일이 매우 급하므로 낮인지 밤인지 따질 수 없다.

장수를 정하여 곧바로 출발하게 해야 한다.

황해도 감사도 배천 부근까지 나와 조정의 명령을 바로 받아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일을 못하는 수령을 가려내다

나는 서울에 있으면서 네 도의 수령이 모두 일을 잘하고 있는지 직접 알 수 없다.

그래서 한준겸을 내려보낼 때 백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히 알아보도록 했다.

소문만 듣고 판단하지 말고 실제 행정을 살피게 했다.

제대로 고을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 한두 명을 골라 보고하도록 했다.

그가 올린 보고를 보니 황해도의 어느 현감은 사람됨이 가볍고 경험도 적었다.

나이도 젊어 고을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했다.


전쟁으로 가장 심하게 무너진 강서의 수령도 교체할 필요가 있다

평안도의 강서는 특히 심하게 무너진 고을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그곳의 수령은 젊은 무관으로 한때 세운 군공 때문에 갑자기 그 자리를 맡은 사람이라고 한다.

맡은 직책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망가진 고을에는 평상시보다 훨씬 능력 있는 수령이 필요하다.

그런데 적임자가 아닌 사람에게 맡기면 고을을 다시 세우기는커녕 남은 백성마저 흩어지게 할 수 있다.


문관과 무관을 따지지 말고 백성을 수습할 사람을 보내다

두 고을은 모두 전쟁으로 크게 무너진 곳이다.

수령까지 적임자가 아니면 오래지 않아 고을 전체가 완전히 황폐해질 것이다.

한준겸이 직접 본 사실과 백성에게 들은 말을 함께 보고했으므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현재의 수령들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

그 사람을 문관 가운데 고를지 무관 가운데 고를지는 중요하지 않다.

출신도 지나치게 따질 일이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고 일을 자세히 살펴 폐허가 된 고을을 다시 일으킬 만한 사람을 골라 보내야 한다.


북쪽의 위험은 서쪽보다 더 심할 수 있다

최근 북방의 형세도 매우 걱정스럽다.

오히려 북쪽의 위험이 서쪽보다 더 클 수 있다.

서쪽은 명나라 국경과 이어져 있다.

북방의 적이 자기 근거지를 완전히 비운 채 아주 깊숙이 내려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함경도 남쪽 지역은 다르다.

삼수와 갑산에서 함흥으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가깝다.

적이 갑자기 이 길로 들어오면 함경도 남쪽과 북쪽이 서로 끊어질 수 있다.

앞뒤가 서로 돕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중심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이다.


북방 세력이 커지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

최근 북쪽의 한 세력이 험한 지역에 모여 자리를 잡으려 한다는 보고가 있다.

아직 세력이 크지 않다고 해서 가볍게 볼 수 없다.

한번 기반을 만들고 세력이 강해진 뒤에는 주변 사람들이 차츰 그쪽으로 붙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훗날 나라의 큰 걱정거리가 된다.

지금처럼 아직 세력이 굳지 않았을 때 미리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는 급하다고 함부로 처리해서도 안 되지만 늦추어서도 안 된다.

먼저 우리 내부의 준비를 갖춘 뒤 적의 형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야 한다.


현지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장수에게 계속 맡길 수 없다

당시 함경도 남쪽의 병사를 맡은 장수는 처음 임명될 때부터 적임자가 아니라는 걱정이 있었다.

그곳으로 내려간 뒤에도 특별한 방어 계획이나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행동이 가볍고 백성을 괴롭힌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래서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백성과 여러 집단을 수습하고 북방의 근심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군대를 맡길 사람을 반드시 무관 가운데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대신할 만한 훌륭한 무장이 있다면 물론 좋다.

하지만 마땅한 무장이 없다면 무조건 무관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문관 가운데 사람을 이끄는 재주가 있고 판단력이 있으며 큰일을 처리할 만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군사를 맡겨도 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군사 배치와 지역 수습에서 반드시 무장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지역 수령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비변사 여러 신하에게 널리 물어 빨리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북방의 일은 너무나 중요하므로 이 문제를 조정에서 직접 결정해야 한다.


오른쪽 방어사가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지 다시 살피다

오른쪽 방어사로 임명한 사람이 실제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다시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처음부터 그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걱정하는 말이 있었다.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는 이유로 비변사에서 추천했다.

적이 움직인다는 급한 보고가 들어오자 나는 그가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명령을 보냈다.

앞쪽과 오른쪽 방면의 중요한 길목을 맡아 지키게 했다.


군사의 중심을 수원에 두고 멀리까지 정찰하게 하라고 명하다

나는 그에게 군사를 너무 흩어 놓지 말라고 했다.

병력을 나누어야 할 때에도 중심이 되는 큰 군대는 수원에 모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정찰병은 멀리까지 보내 적이 어디로 오는지 계속 알아보게 했다.

왼쪽 방어사와도 연락을 유지하면서 적의 움직임에 따라 힘을 합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뒤에 들려오는 말을 보면 실제 행동은 내 명령과 달랐던 듯하다.


독산성 병력까지 다른 곳으로 빼고 여러 길에 군사를 흩었다는 보고

독산성을 지키던 군사를 여러 차례 다른 곳으로 빼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너무 많은 길목을 모두 지키겠다며 군사를 잘게 나누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각 부대가 외따로 떨어지게 된다.

갑자기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와주기 어려워진다.

이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사이의 정확한 사정을 모두 알지 못한다.

이미 사람을 보내 실제 형편을 물어보도록 했으므로 그 사람이 돌아오면 보고를 듣고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

정말 임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쓸 만한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


평안도의 무과 합격자 문제를 다시 자세히 논하다

종사관 한준겸의 보고를 보니 평안도에서 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의 사정이 매우 심각하다.

이들은 전에 평범한 군사였을 때에는 자신들의 생활과 군역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또 평소에는 자기 고을에 머물렀고 늘 국경 수비에 끌려다니지는 않았다.

그런데 무과에 합격하고 난 뒤에는 오히려 이전에 받던 지원이 모두 없어졌다.

무과 합격자라는 이유로 계속 수비 임무에 동원되었다.


봄부터 겨울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봄에는 자기 지역에서 국경을 지켰다.

강의 얼음이 풀리면 다시 강가로 옮겨져 수비했다.

가을과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진으로 보내졌다.

한 해 동안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을 틈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나라에서는 쌀 한 되, 베 한 자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필요한 장비를 모두 자기 집에서 마련해야 했다.

집안 살림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를 빨리 바꾸지 않으면 사람들이 더는 견디기 어렵다.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까지 버리고 달아나다

나는 전에도 평안도 무과 합격자들이 매우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 뒤에는 더 심한 소식이 들렸다.

평양 등지의 무과 합격자 가운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붉은 표식을 관청 문에 던져 버리고 아예 달아났다고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매우 놀랐다.

그러나 한준겸의 보고를 보니 그렇게까지 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교대 순서조차 없이 일 년 내내 수비시키는 것은 견딜 수 없다

무과에 합격한 뒤에는 생활을 도와줄 사람도 없다.

서로 번갈아 쉴 수 있는 일정한 근무 순서도 없다.

일 년 내내 길과 국경을 돌아다니며 지킨다.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지급받지 못한다.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완벽한 해결 방법을 당장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도움을 주는 제도를 어느 정도 다시 마련하고 근무 순서를 정해 교대로 쉬게 해야 한다.


육품 이상의 실제 벼슬을 받은 사람은 수비 부담을 덜어 주다

여러 조를 나누어 일정한 순서로 근무하게 한다면 각자의 힘을 잠시라도 회복시킬 수 있다.

또 무과 합격자 가운데 벼슬이 올라 육품 이상의 실제 관직을 받은 사람은 그때부터 일반 수비 의무를 면제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의 생활을 도와주던 사람은 다른 군사를 돕도록 돌리면 된다.

이렇게 해야 백성의 형편도 조금 나아질 것이다.

병조에서 널리 의논해 시행하여 국경 백성이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겪고 있는 고통을 풀어 주어야 한다.


용진에 승군을 옮겨 장기적인 방어 거점을 만들다

훈련도감에 소속된 평안도와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을 용진으로 옮기는 방안을 마련했다.

승군은 승려들로 조직한 군대다.

방어사가 이들을 거느리게 한다.

처음에는 훈련도감 군사와 같은 기준에 따라 서울 창고에서 군량을 받아 먹게 하면 된다.

그곳에 성을 쌓아 훗날 정식 방어 거점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성이 완성되면 승군을 그 지역에 정착시키다

몇 해가 지나 성이 완성되면 계속 서울에서 군량을 보내기보다 이 군사들을 그 지역에 정착시켜 토착 군사처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성 주변의 비어 있는 땅 가운데 농사짓기에 좋은 곳을 나누어 준다.

군사들이 번갈아 성을 지키고 농사를 짓게 한다.

이렇게 해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용진 군량을 계속 서울 창고에서 가져올 수는 없다

지금처럼 나라의 재정이 매우 어려운 때에는 용진 군사들이 언제까지나 서울 창고에서 먹을 것을 받아갈 수 없다.

진 자체에서 군량을 마련하는 방법을 세워야 한다.

군사에게 지급할 비용 가운데 현지에 그대로 남겨 군사 양성에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본진에 남겨 두는 것도 좋다.

장기적으로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진을 만들어야 한다.


한강 상류의 새 성에는 전담 수성장이 필요하다

한강 상류의 한 중요한 성은 현재 성벽을 쌓고 군량과 무기를 마련하고 있다.

적이 오면 그 고을의 수령도 당연히 성으로 들어가 지켜야 한다.

하지만 평소 수령은 고을 행정 전체를 맡고 있다.

성 안에 계속 있으면서 성벽을 고치고 군량과 무기를 하나하나 점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다른 중요한 성에서 했던 것처럼 별도의 무장 한 사람을 수성장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수성장은 성을 전문적으로 지키는 지휘관이다.

그 사람이 밤낮으로 성에 머물면서 필요한 일을 즉시 처리하게 해야 한다.


지역 사람들이 아는 무장을 수성장으로 두어야 한다

그 지역 백성들은 아직 위급하면 성 안으로 들어가 끝까지 지키겠다는 마음이 충분히 굳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 고장 출신이면서 백성과 선비들이 잘 알고 있는 무장을 수성장으로 삼는 것이 좋다.

그가 먼저 자기 가족을 데리고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어와 함께 지키도록 권해야 한다.

그래야 적이 왔을 때 백성들이 서로 흩어지고 성 안으로 모이지 않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후보로 거론된 무장은 그 지역에 살고 있으며 평양 전투를 비롯해 실제 전쟁도 겪어 보았다.

겁이 많은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그에게 수성장을 맡겨 방어사의 지휘를 받게 하고 고을 수령과 함께 성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미 승려 장수가 있는데 또 수성장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

이에 대해 조정에서는 이미 승려 장수를 그곳에 맡겨 두었는데 또 다른 수성장을 둘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한강 상류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성이 있는 곳 가운데 하나라도 방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승려 장수가 그곳에 머물 수는 있지만 모든 방어를 혼자 맡길 수는 없다.

그가 거느리는 군사는 먼 산골짜기에서 그때그때 모은 승려가 많다.

부르면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성을 쌓는 공사에는 이용할 수 있지만 위급한 날에 이 군사만 믿고 성을 끝까지 지키기는 어렵다.


성 안에는 지역의 관리와 선비, 속오군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적이 실제로 오면 그 지역의 관리와 선비, 백성도 모두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고을의 속오군도 나누어 성을 지키게 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 전체를 승려 장수가 마음대로 명령하고 지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별도의 수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에는 방어사를 성 안에 머물게 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방어사가 맡은 강가의 지역은 너무 넓다.

그는 여러 곳을 오가며 방어 상황을 점검해야 하므로 한 성 안에만 있을 수 없다.


수령에게만 맡겨 두어도 준비가 늦을 수 있다

고을 수령이 전쟁이 시작된 뒤 성에 들어가 지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미리 성을 고치고 군량과 무기를 마련하는 일까지 모두 수령에게 맡기면 위급한 일이 닥쳤을 때 준비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비변사와 의논하여 현지 무장을 별도의 수성장으로 임명하자고 한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 하나를 더 두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 위급한 날에 성을 지킬 수 있도록 평소부터 책임자를 두려는 뜻이다.


한강 상류 방어를 맡을 보조 장수 둘을 더 두자고 청하다

서울에서 한강 상류에 이르는 지역의 경계 문제는 방어사에게 이미 대략 지시해 두었다.

어느 장수가 어느 구역을 맡을 것인지도 나누었다.

각자 자기 구역을 책임지고 군령에 따르게 했다.

그러나 강이 위아래로 백여 리나 이어져 있다.

방어사 한 사람이 넓은 강줄기를 모두 오가며 지킬 수는 없다.

적이 한 방향으로만 오는 것도 아니다.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나타나면 한 부대가 다른 부대를 제때 도와주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예와 군사 지휘 능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을 보조 장수로 더 뽑는 것이 좋겠다.

이들을 방어사의 지휘 아래 두고 함께 강을 지키게 해야 한다.

다섯째 권 끝

 

 

 

 

 

징비록 제6권

일본군의 형세를 보고하고 평양을 구할 군사를 급히 보내 달라고 요청하다

일본군의 형세와 명나라 사람들을 맞아 보내는 일에 관해 보고한다.

일본군은 어제부터 계속 성 밖으로 나오고 있다. 군량과 물건을 나누어 실어 나르는 자들도 있고, 강을 건너려는 듯한 움직임도 자주 보인다.

그들은 조총을 많이 가지고 있어 날마다 우리 군사와 서로 맞서고 있다.

우리 군사는 배 일곱 척을 타고 나가 일본군과 싸웠고, 화살을 쏘아 몇 명을 맞혔다.

나는 김명원 등과 함께 한곳에서 일본군의 모습을 직접 살펴보았다.

적이 가장 잘 쓰는 것은 조총뿐이다. 하지만 우리 군사가 화살을 쏘면 그들도 놀라 멀리 달아난다.

이것을 보면 훈련이 잘된 군사를 얻어 맞서 싸울 수만 있다면, 우리 군대가 반드시 명나라 군대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명나라에서 먼저 나온 정찰병들이 밤낮으로 적의 형세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 장수도 이미 우리나라 국경 안으로 들어온 듯하다.

전에는 명나라 관리가 우리나라에 오면 그 지위에 따라 맞이하는 예법을 엄격히 따졌다.

하지만 지금 오는 사람들은 평상시의 사신이 아니다.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나라를 구하러 오는 장수들이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예법보다 먼저 우리나라가 지금 얼마나 위급한지를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명나라 군대가 머뭇거리지 않고 빨리 움직여 우리를 구할 것이다.

나는 명나라 사람을 맞이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길을 가다가 명나라 장수를 만나면 처음 만나는 곳에서라도 간단한 차와 과일을 준비해 예를 갖추려 한다.

그런데 길가의 고을을 보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된 접대조차 마련하기 힘들까 걱정된다.

더욱 급한 것은 평양의 사정이다.

일본군이 평양성을 압박한 지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

강 위아래에는 얕은 여울이 많은데 그것을 지키는 군사가 너무 적다.

평양의 안위는 말 그대로 숨 한 번 쉬는 사이처럼 위태롭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까지 오려면 아직 며칠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그사이에 우리 군사를 더 보내 평양을 구하는 일을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

나는 길에서 흩어진 군사 몇 사람을 만나자 곧바로 군대로 돌아가게 했다.

또 가는 길에 군사를 더 모으고 싶었으나 박천과 안주 이남의 여러 고을은 이미 군사가 거의 모두 흩어져 버려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별도로 책임 있는 사람 한 명을 급히 보내 흩어진 군사를 모아 평양을 구하게 해야 한다.

각 고을에서 보내는 긴급 보고도 계속 이어지도록 하여 중간에서 늦어지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훗날 때를 놓치고 후회해서는 안 된다.


명나라 사람에게 일본군의 실제 형세를 묻다

나는 말을 타고 가던 명나라 사람 한 명을 만나 일본군의 형세를 물었다.

그가 말했다.

“일본군은 실제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숫자를 많아 보이게 하려고 세워 둔 사람도 많습니다.

깃발이나 여러 물건을 들고 서 있는 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싸움에 쓸 만한 병사가 아닙니다.

조선군이 다시 모여 한밤중에 갑자기 공격한다면 한 번에 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대 말이 참으로 옳다.

일본군은 처음부터 감히 우리 군대와 정면으로 맞설 만큼 대단했던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백성이 거의 이백 년 동안 전쟁을 모르고 살았다.

갑자기 적을 만나자 겁을 먹고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적만 보면 달아났다.

그래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일본군은 평양성 아래에 여러 날 머물러 있었다.

성 안 사람들은 명나라 구원군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명나라 군대가 언제쯤 이곳에 올 것인가?”

그는 날짜를 말하며 그 무렵이면 이미 압록강을 건넜을 것이라고 했다.


명나라 사람이 조선의 원군 맞이 준비를 비판하다

그 명나라 사람은 원군이 오고 있는데 조선에서 군량 운송과 영접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을 이야기했다.

특히 의주에서 군대를 맞이하는 책임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대답했다.

“나라에서도 그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죄를 물어야 할 만한 잘못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 중이어서 담당 장수를 함부로 바꾸기 어렵습니다.

일이 조금 안정된 뒤에 죄를 따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명나라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

또 들으니 명나라 사람들은 종이 한 장에 평양의 지형과 일본군의 진영을 그려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전날 저녁에도 명나라 사람 열다섯 명가량이 안주에 도착했다.

그들은 평양까지 가서 일본군의 상황을 살펴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글과 그림을 보아도 명나라 군대가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더욱 걱정되었다.

평양은 이미 오랫동안 적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성을 지키는 장수들은 힘을 다하고 있지만 강 위아래에 얕은 곳이 너무 많다.

일본군은 속임수를 잘 쓰므로 어느 순간 몰래 강을 건너 평양성 북쪽으로 돌아 들어갈지 모른다.

명나라 군대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명나라 사람들의 의심을 풀어야 한다고 보고하다

명나라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우리나라의 말을 완전히 믿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처음 조선이 일본군의 침략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인지 거짓인지 의심했다.

그러다가 남쪽 여러 고을에서 서울까지 불과 며칠 사이에 잇따라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사정은 그렇게 급박했는데 조선에서 명나라에 변란을 알리고 원군을 요청하는 일은 매우 늦었다.

의주에서도 명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는 과정에 쓸데없는 말이 많았다.

나라가 정말 위급하다면 피를 토할 정도로 다급하게 뛰어다니며 도움을 청해야 할 텐데 그런 절박한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명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사정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심이 생긴 데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었다.

명나라 사람들은 여러 차례 물었다.

“국왕께서는 어째서 계속 피란하십니까?”

통역관은 일본군이 성을 계속 함락시키며 추격해 오기 때문에 임금께서 어쩔 수 없이 피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나라 사람들은 그제야 조금 이해하는 듯했다.


명나라 군사에게 음식과 말먹이를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

가는 길의 고을을 보니 명나라 군사에게 줄 음식과 말먹이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곳도 많았다.

명나라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만스러운 기색이 드러나는 때도 있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앞으로 명나라의 큰 군대가 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과 말먹이가 필요하다.

현재의 준비 상태로는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

나는 이 일을 몹시 걱정했다.

나는 본래 군사에 밝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여러 날 평양성 안에서 직접 일본군의 움직임을 보니 적에게 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 군대가 도착하고 우리 군사가 힘을 합쳐 한꺼번에 공격한다면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임금께서 멀리 피란한 뒤에도 백성들의 마음은 생각만큼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군사들도 저마다 힘을 내고 있었다.

이것 역시 나라의 운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는 징조라고 생각했다.


패잔병과 황해도의 군사를 다시 모아야 한다

전에 싸움에서 패해 흩어졌다가 돌아온 군사와 아직 징발되지 않은 군사를 가리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다시 군대에 넣어야 한다.

황해도 해주 부근에도 흩어진 군사가 매우 많지만 이들을 지휘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따라서 별도로 한 사람을 보내 급히 군사들을 모아야 한다.

해주를 비롯하여 배천과 연안 등지에 남아 있는 군사도 모조리 모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일본군이 물러날 때 뒤를 쫓아 공격할 수 있다.

이것이 지금 매우 시급한 일이다.


종사관 신경진을 임금에게 보내다

나는 안주에서 이 모든 상황을 장계로 작성했다.

그리고 종사관 신경진에게 그것을 가지고 임금이 머무는 곳으로 가게 했다.

당시 임금은 영변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신경진이 돌아왔다.

그가 말했다.

“임금께서 이미 영변을 떠나셨습니다.

길에서 듣는 말도 서로 달라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장계를 그냥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또 명나라 사람들이 돌아갈 때에도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으므로 보고를 늦출 수 없었다.

그래서 신경진을 다시 보냈다.

임금이 계신 곳을 찾아가 앞서 작성한 장계를 반드시 올리고, 안부까지 묻게 했다.


평양에서 일본군이 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다

그 무렵 길에서 평양 쪽 사정을 아는 사람을 만나 자세히 물었다.

그 사람은 전날 저녁 일본군이 몰래 강을 건넜다고 했다.

강가를 지키던 장수는 먼저 달아났고 군사들도 무너졌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크게 놀랐다.

평양성이 완전히 포위되면 바깥에서 구해 줄 군대가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쓸 만한 군사까지 모두 명나라 군대를 맞으러 보내 버린다면 평양을 지킬 힘이 더욱 약해진다.

명나라 군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평양을 지킬 병력을 따로 남겨 두고, 임금이 머무는 곳에서도 장기적인 대책을 급히 의논해야 한다.


평양을 지키던 장수들이 명나라 장수를 만나려 하다

김명원과 여러 장수가 정주에 남아 있었다.

일부 장수는 명나라 장수를 직접 만나 일본군의 형세를 설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명나라 장수에게 같은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오히려 불편하게 여길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통역관을 보내 뜻을 전하게 했다.

“평양을 지키던 장수들이 직접 찾아가 적의 형세를 자세히 말씀드리고 명나라 장수의 지시를 듣고 싶어 합니다.”

명나라 장수 두 사람이 대답했다.

“적의 형세는 이미 자세히 들었다.

장수가 자기 진영을 떠나 여기까지 오면 그 사이 군사가 흩어질 수 있다.

우리에게 올 필요가 없다.

돌아가 군대를 정비하고 기다리도록 하라.”

또 다른 장수는 말했다.

“정예병 삼백 명을 골라 적이 있는 곳 가까이 직접 보내라.

그 보고가 확실하면 곧바로 진격할 것이다.

조선의 장수들도 정예병을 뽑아 명령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결국 우리 장수들은 명나라 장수를 직접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정주에는 지휘할 군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정주의 형편을 보니 참담했다.

다른 장수들도 각기 흩어져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평안도 관찰사도 본도의 군사를 거느려야 할 사람이었지만 다른 길로 떠나 버렸다.

정주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거느릴 군사 하나 없이 서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임금이 서쪽으로 더 깊이 피란할수록 길 위의 유민은 더욱 많아졌다.

사람들이 열 명, 스무 명씩 떼를 지어 다녔다.

마치 주인을 잃은 개처럼 의지할 곳이 없었다.

힘센 자는 약한 사람의 것을 빼앗고 약한 사람은 달아났다.

며칠 안에 평범한 백성까지 모두 난민과 도적으로 변할 것 같은 형편이었다.

참으로 끔찍했다.

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라 일을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하고, 죽음을 피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남쪽 지방이 모두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보고하다

나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는 관찰사의 장계를 임금께 올리러 가던 사람이었다.

말이 있고 빨리 갈 수 있었으므로 내 사람 가운데 말을 탈 수 있는 자를 붙여 함께 보내기도 했다.

남쪽의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강 이남의 충청도와 전라도가 전부 일본군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경상도의 좌우 지역도 일본군이 직접 지나간 고을을 제외하면 아직 지켜지는 곳이 있었다.

황해도 해주 등도 모두 무너지지는 않았다.

북쪽 지방과 강원도에도 아직 남아 있는 세력이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와서 우리 장수들과 한마음으로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아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일본군이 오지도 않은 고을에서 백성이 먼저 달아나는 일이었다.

관청 창고까지 부수고 곡식을 가져간다는 말이 들렸다.

황해도 가까운 지역도 그렇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명나라 군대가 와도 먹일 것이 없다.

나는 종사관 홍종록이 귀성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일이 워낙 급해 임금께 먼저 아뢰지도 못하고 길에서 바로 사람을 보냈다.

귀성의 관리와 백성을 타이르고 창고를 굳게 지키게 하여 내가 도착할 때까지 군량을 보전하게 했다.


군량을 운반할 방법과 공을 세운 사람의 포상을 요청하다

나는 병이 심해 먼 길을 갈 수 없었다.

그날은 한곳에 머물렀다가 병세가 조금 나아지면 가산으로 갈 생각이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일은 이미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준비하게 했다.

종사관 신경진도 먼저 보내 일을 처리하게 했고, 나는 뒤따라갈 생각이었다.

의주에서 정주까지는 온갖 방법으로 군량을 마련했지만 겨우 사천에서 오천 명 정도의 군사와 말을 먹일 수준이었다.

명나라 군사가 많이 압록강을 건너 모두 이 길로 내려오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 의주에서 정주로 오는 길 말고도 귀성과 태천을 거쳐 박천으로 나오는 길이 있었다.

귀성에는 군량이 비교적 넉넉했다.

명나라 장수가 군대를 나누어 내려보내려 한다면 이 길을 안내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까지 미리 생각해 준비해야 한다.


명나라 군대를 보고 놀라 백성이 달아나지 않게 해야 한다

산골 백성은 갑자기 명나라 군대가 온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놀라 달아날 수 있다.

따라서 지나가는 각 고을에서는 백성을 잘 타이르고 미리 준비시켜야 한다.

그 무렵 지방의 유생과 백성 가운데 스스로 군사를 모아 일본군과 싸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은 직접 임금께 가서 자신들의 뜻을 아뢰려 했다.

여러 고을에서 이미 모은 군사가 만 명이 넘는다는 보고도 있었다.

백성의 마음이 이와 같다면 일본군을 물리칠 날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여도 지휘할 장수가 없으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조정에서 이들을 잘 조직하게 하고, 앞장선 사람들에게 알맞은 상을 주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더욱 일으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평양 동쪽 여러 고을의 군사를 수습할 대신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다

평양 동쪽의 성천, 삼등, 강동, 강서, 순천, 은산, 개천, 영변, 희천, 운산, 영원, 덕천, 맹산 같은 지역은 길이 끊겨 서로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그곳의 군사도 대부분 흩어지고 있었다.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나는 조정에 요청했다.

“지혜와 판단력이 있는 대신 한 사람을 보내 주십시오.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달려가 평양 동쪽 여러 고을의 군사를 불러 모으게 해야 합니다.

명나라 대군이 북쪽에서 내려올 때 이 군사들이 동쪽에서 함께 움직이면 일본군을 협공할 수 있습니다.

또 황해도와 강원도, 경기 이남에도 명령을 전달하여 각 지역에서 매복하고 적의 길을 끊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큰 계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1592년 음력 7월 9일, 명나라 군대를 맞을 군량을 마련하다

1592년 음력 7월 9일, 나는 정주에 있으면서 조정에서 내려온 명령을 받았다.

명나라 군사를 맞이할 군량을 마련하라는 내용이었다.

의주에서 정주까지 각 고을에는 명나라 군사 오천 명이 하루 동안 먹을 양식과 말먹이, 땔감과 그 밖의 필요한 물건을 갖추도록 이미 지시해 두었다.

정주에도 백미와 여러 종류의 쌀을 마련했다.

귀성에서는 종사관과 수령이 힘을 합쳐 곡식을 모아 정주로 보내 왔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예병 오천 명이 여러 날 먹을 만한 양이었다.

부족한 것이 생기면 정주의 물자를 옮겨 보태려 했다.

그러나 말먹이로 쓸 콩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다른 고을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아직 보고가 오지 않아 매우 걱정스러웠다.


계속되는 장맛비로 강을 건너기가 어려워지다

며칠째 비가 계속 내려 곳곳의 강물이 불어났다.

배를 띄우기도 쉽지 않았다.

많은 군사와 말이 한곳에 오래 머물면 음식과 말먹이가 곧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여러 고을의 곡식을 안주로 운반하도록 계속 사람을 보내 재촉했다.

그러나 그것이 제때 도착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강을 건너기 위한 배도 준비했다.

공적인 배와 개인 배를 함께 모았다.

청천강에는 배 오십여 척을 이용해 부교를 만들었다는 보고가 왔다.

다른 강에도 같은 방식으로 건널 길을 마련하게 했다.

내 병은 아직 낫지 않았다.

부득이 정주에서 하루 이틀 더 머물며 병세가 조금 나아지기를 기다린 뒤 가산과 안주 등으로 나아가 모든 일을 직접 살펴보려 했다.


아산에서 세곡을 실은 배가 뜻밖에 도착하다

그때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충청도 아산의 창고에서 보낸 백미를 실은 배가 정주에서 약 삼십 리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바다를 멀리 돌아온 곡식이었다.

물때만 잘 맞으면 하루 안에 안주 쪽으로 옮길 수 있었다.

나는 안주 이남의 군량을 어떻게 이어 갈지 몹시 걱정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먼 지방의 많은 곡식이 때맞춰 도착했다.

마치 하늘이 나라를 도와 준 것처럼 기뻤다.

즉시 사람을 보내 배를 옮기게 했다.

다음 날 안주에 닿게 하라고 명령했다.

순안에도 말먹이로 쓸 콩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당장 사람과 말을 먹일 물자는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강동과 성천의 군사를 다시 불러 모으다

대군이 이미 모이고 있으니 우리 군사도 여러 지역에서 함께 진격하여 적을 앞뒤로 압박해야 했다.

나는 길에서 전에 의병을 모으던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이전부터 강동 등지에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양을 잃은 뒤 백성이 많이 흩어졌고, 윗사람의 공식 문서도 없어서 따르려는 사람이 있어도 쉽게 모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강동과 성천 등의 수령과 백성에게 따로 명령을 보내 군장과 무기를 갖추고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러 나오게 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군사를 모으게 했다.

강동 등의 군사가 다시 모이면 서쪽에 있는 군사와 함께 적을 양쪽에서 압박할 수 있다.

황해도의 형세와도 이어지고 평양의 일본군을 고립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홍세공의 잘못은 뒤에 묻고 우선 군량 일을 계속 맡기다

군량을 담당하던 홍세공에게는 이전부터 책임을 물을 만한 잘못이 있었다.

원래라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지금은 군량 조달이 한시도 끊겨서는 안 되는 때였다.

홍세공을 갑자기 바꾸고 후임자가 제때 오지 못하면 일이 중간에서 끊길 수 있었다.

나는 우선 그대로 일을 맡기고 전쟁 상황이 안정된 뒤에 잘못을 따지는 것이 현실에 맞다고 생각했다.


7월 11일, 명나라 군대가 정주에 도착하다

그달 11일 조정에서 다시 명령이 내려왔다.

나는 정주에서 명나라 군대와 각 고을에서 뽑은 정예병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원익은 군사를 거느리고 안주에 있었다.

김명원도 그곳에서 명나라 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늦게 명나라 군대가 정주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가산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대군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부교를 만들라는 명령을 엄하게 내려 거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여러 고을의 창고에서 안주로 곡식을 옮기는 일은 아직 제대로 끝나지 않았다.

군량을 맡은 홍세공이 전날에야 도착했으므로 나는 그를 먼저 안주로 보내 남은 일을 재촉하게 했다.

나머지 군사 문제는 김명원과 상의해 처리할 계획이었다.

내 병은 며칠 사이 더욱 심해져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다.

병이 조금만 나아지면 가산으로 가려 했지만 언제 움직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큰일을 그르칠까 몹시 걱정되었다.


7월 15일, 명나라 군대가 안주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다

그달 15일 명나라 군대는 새벽에 가산을 출발하여 안주에 도착했다.

그들은 안주성에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청천강을 건너 남쪽 길로 향했다.

문제는 안주보다 남쪽이었다.

그곳부터는 음식과 군량을 이어 주기가 더욱 어려웠다.

나는 여러 곳에서 곡식을 급히 끌어모았다.

운산과 박천, 영변을 비롯한 고을에서 쌀 수백 석을 안주로 가져오게 했다.

명나라 군대가 지나간 뒤에는 안주에 남아 있던 백성과 전투에 나가지 않은 사람을 다시 동원해 군량을 옮기게 했다.

순안으로 보낼 군량도 약 삼백사십 석을 먼저 마련했다.

부족한 양은 뒤이어 계속 운반하게 했다.


평양을 되찾은 뒤 일본군을 추격할 군량까지 준비하다

다른 지방의 곡식도 배에 실었다.

삼화와 용강 등지에서 모은 쌀과 콩을 대동강 하류와 가까운 곳으로 옮겨 두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을 되찾고 강을 건너 일본군을 추격하게 되면 바로 이 군량을 이어 공급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명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우리 형편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된 위로 잔치 한 번 열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나라의 체면으로 보아 매우 송구한 일이었다.

만일 명나라 군대가 큰 공을 세워 평양을 되찾고 일본군을 무찌른 뒤 돌아온다면 잔치를 열고 후한 상을 주어 그 수고에 보답해야 한다.


명나라 군대를 위해 술과 소를 미리 마련하다

나는 군량을 맡은 관리와 이 일을 의논했다.

평양과 안주, 정주, 의주 네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미리 마련해 놓기로 했다.

각 지역마다 술을 넉넉히 준비하고 소도 스무 마리 정도 마련하려 했다.

돼지와 양, 닭과 개 같은 것도 구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게 했다.

주변 고을에 각각 분담하여 미리 준비하게 하고, 별도로 담당 관리까지 정해 직접 살펴보도록 했다.

이 일은 나라의 체면과 관련된 큰일이다.

명나라 군대가 우리 백성 수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준다면 우리가 보답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술을 마련하는 데 드는 쌀은 모두 합쳐도 아주 많은 양은 아니었다.

여러 고을이 나누어 부담하면 감당할 수 있었다.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은 소였다.

평안도에는 이미 소가 매우 귀해진 상태였다.


소를 자원해 내는 백성에게 상을 주자고 요청하다

백성이 자원해 소를 내놓는다면 일정 기간 부역을 면제해 주거나 따로 상을 주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필요한 소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의주는 명나라 대군이 머무는 곳이므로 다른 지역보다 더욱 풍성하게 준비해야 한다.

잔치가 끝난 뒤에는 명나라 장수들에게 줄 예물도 필요하다.

이것 역시 미리 준비해 놓아 막상 그때가 되어 부족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했으나 패하다

그런 가운데 급한 보고가 왔다.

전날 명나라 군대가 평양으로 진격하여 일본군을 공격했으나 전투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선봉에 있던 명나라 장수 사유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고 했다.

명나라 군사도 계속 뒤로 물러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 명나라 장수가 성 밖에 말을 세워 놓고 통역관을 불러 말했다.

“오늘 우리 군사가 성 안에 들어가 일본군을 많이 죽였다.

불행하게도 사유 장군이 전사했고 우리 군사 역시 적지 않게 죽었다.

우리는 그대로 남아 다시 싸우려고 했지만 화살과 화약도 거의 떨어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

양 총병과 다시 의논하여 훨씬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돌아오겠다.

조선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진정시켜 흔들리지 않게 하라.

강에 만들어 둔 부교도 절대로 없애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우리는 사흘이나 나흘 안에 다시 올 것이다.”

그들은 원래 그곳에 들어가 묵으려 했지만 음식과 물자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정주 쪽으로 향했다.

나는 나머지 사정은 뒤에 다시 자세히 보고하더라도 이 소식만큼은 너무 급하다고 생각하여 먼저 임금께 알렸다.


패전 뒤에도 군량 준비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난 이유는 이미 앞에서 보고했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에서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패전은 참으로 통탄스러웠다.

명나라 장수들이 적을 다소 가볍게 본 것이 화를 불렀다고 생각했다.

앞서 여러 고을의 곡식을 청천강 부근으로 옮기게 한 것도 명나라 군대가 곧바로 평양으로 진격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명나라 군대가 언제 다시 움직일지 알 수 없다.

나는 김명원 등에게 형세를 살펴 군량을 옮길지 그대로 둘지 판단하게 했다.

명나라 사람들이 하는 말을 보면 더 큰 군사를 다시 보내려는 듯했다.

그렇다면 의주 이남의 군량도 더욱 많이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군대가 왔을 때 먹일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상황을 더 살핀 뒤 머무를지 떠날지를 정하려 했다.


명나라 군대가 패한 까닭을 따져 보다

최근 날씨가 오랫동안 좋지 않았다.

작은 전투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말을 종합하면 명나라 장수들이 너무 가볍게 진격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먼 길을 급히 달려와 말은 병들고 사람은 지쳐 있었다.

거기에 날씨까지 나빴다.

큰비가 내려 길이 온통 진흙탕이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적이 굳게 지키는 성 아래로 바로 들어갔다.

자기 약점을 가지고 적의 강점을 공격한 셈이었다.

그러니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병사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패전 뒤 조선과 상의하지 않고 밤중에 물러나다

더욱 아쉬운 것은 패한 뒤의 행동이었다.

명나라 군대는 우리 조선 측과 충분히 의논하지도 않은 채 한밤중에 물러났다.

여러 고을을 지나면서 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곳도 많았다.

어지럽게 물러나는 가운데 부상자도 계속 생겼다.

나는 종사관 신경진을 보내 명나라 장수의 안부를 묻게 했다.

명나라 쪽에서는 내가 안주에 있다는 것을 알면 직접 만나도 된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사유의 장례를 비롯해 처리할 일이 많았으므로 사람을 보내 위로하게 했다.


비바람 속에서 명나라 군사들이 고생하다

명나라 군대가 가산 쪽으로 물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측에서는 그들이 안주에 머물기를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명나라 장수는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병든 군사도 많았다.

전날부터 비가 퍼붓듯 내렸다.

많은 군사와 말이 들판에서 비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그 상태가 이틀이나 이어졌으니 참으로 고생이 컸다.

명나라 장수는 다시 군사를 모으고 더 많은 병력을 불러오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장마가 깊어 강물이 크게 불어난 상황에서 새 군대가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명나라 군대를 정주에서 쉬게 한 뒤 다시 움직이게 하자고 건의하다

나는 명나라 군대가 다시 온다면 우선 정주 부근에서 며칠 쉬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말에게 힘을 회복시키고 지친 군사도 쉬게 해야 한다.

당장 싸우지 않을 군사는 다시 압록강 쪽이나 의주 부근에 머물게 할 수도 있다.

그런 뒤 차례로 천천히 남쪽으로 내려오게 하면 군사들의 기세가 지치지 않고 말의 힘도 보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렇지 않고 수천, 수만 명의 군사가 한꺼번에 다시 내려와 여러 곳에 오래 머문다면 이미 크게 피폐해진 조선의 고을에서 어떻게 며칠씩 계속 먹일 수 있겠는가.

군대가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이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닌데 군량 공급까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조정에서 이런 사정을 자세히 생각해 장기적인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유를 비롯한 명나라 전사자를 후하게 돌보아야 한다

사유 장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지나갈 때를 대비해 관을 만들 재료와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도록 고을에 명령했다.

그러나 밤중에 시신을 운구해 가는 바람에 미처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밖에도 명나라 장수와 군사 가운데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나라 일을 위해 싸우다가 죽고 다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장례와 치료를 특별히 후하게 해야 한다.

장례 비용과 위로에 필요한 은이나 물건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조선이 그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다.

명나라 장수가 신경진에게 한 말도 이런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머무르면서 다른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명나라 군대가 패해 물러난 뒤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흔들릴까 걱정되어 형세를 살피고 있었다.


명나라 군관 두 사람이 백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안주로 돌아오다

전날 밤 이경 무렵 명나라 군관 두 사람이 가산에서 안주로 왔다.

손영과 강안이라는 사람들이었고, 그 아래 군사 백여 명을 데리고 있었다.

그들이 왜 다시 돌아오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떠날 때 그들은 명나라 총병이 보낸 짧은 글을 보여 주었다.

글의 뜻을 완전히 정확하게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명나라 쪽에서 안주에 어떤 물건을 준비하라고 요구한 내용도 있었다.

명나라 사람들의 움직임을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명나라 장수들이 패전 책임을 조선에 돌릴까 걱정하다

명나라 군대가 큰 성과 없이 돌아가자 혹시 그들이 패전의 책임을 우리나라에 돌려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말도 들렸다.

떠도는 이야기도 몹시 많았다.

듣기 놀라운 말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라의 일이 불행하게도 번번이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마침 장맛비가 그쳐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군사를 움직여 일본군을 공격하기 좋은 때였다.

그런데 원군이 뒤따라오지 않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앞으로 일을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나는 조정에서 명나라에 다시 우리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원군을 빨리 보내 달라고 요청하도록 건의했다.


명나라 군대가 다시 올 때를 대비해 군량을 계속 모으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갔다고 해서 준비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다시 대군이 올 때를 대비해야 했다.

안주에 계속 머물며 각지에서 운반되는 곡식을 정주와 안주에 모았다.

두 곳에 들어온 쌀은 각각 약 이천 석에 이르렀다.

말먹이로 쓸 콩도 따로 쌓았다.

이 정도면 오천이나 육천 명 정도의 군사를 열흘가량 먹이는 데에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만 명도 며칠이라면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군사가 오거나 오래 머물면 곧 부족해질 형편이었다.


부상당한 명나라 군사를 길가 고을에서 구호하게 하다

앞선 평양 전투에서 다친 명나라 군사들이 평양에서 계속 북쪽으로 올라왔다.

사람들의 발이 부어 걷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길가의 모든 고을에 명령했다.

“부상자를 정성껏 구호하라.

말을 잃고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소나 말을 마련해 태워 보내라.”

우리나라를 구하러 왔다가 상처를 입은 사람이므로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황해도 서흥산성의 사정을 알아보게 하다

황해도의 서흥산성에는 여러 고을의 창고와 곡식이 많이 모여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산성의 지형도 험하다고 했다.

몇백 명만 제대로 지킨다면 일본군도 쉽게 공격하지 못할 곳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잘 지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정찰에 나서겠다는 사람을 모집했다.

의주 사람 김극훈과 몇몇 사람을 황해도로 보냈다.

각 고을에 공문도 보내 일본군을 막을 방책을 알려 주고, 관리와 백성이 앞장서 힘껏 싸우게 했다.


승려들을 함경도 쪽으로 보내 소식을 알아오게 하다

함경도 소식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안주에 있던 승려 두 명을 뽑았다.

승려들은 산골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맹산과 양덕의 산길을 통해 북쪽 지방으로 가서 형세를 살펴오게 했다.

만약 함경도에 있는 일본군이 이쪽의 일본군과 합쳐 양덕과 평안도 쪽으로 나온다면 형세가 매우 위험해질 것이다.

나는 관찰사에게 계속 공문을 보내 각 고을에서 힘을 다해 길목을 지키게 했다.


산속으로 피란한 무사들을 다시 모으다

그런데 평안도에는 당장 장수로 세울 만한 무사가 거의 없었다.

나는 여러 산골에 피란한 사람 가운데 무사 출신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운산 등지의 관리에게 사람을 나누어 보내 이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평사와 다른 관리들도 지역을 나누어 사람들을 모집했다.

정해진 날짜까지 모이라고 매우 급하게 알렸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원익과 여러 장수가 큰 군사를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우고 있다.

서쪽의 여러 고을에서도 동시에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일본군을 향한 분노가 있었다.

비도 그치고 날씨도 맑아져 군사를 움직이기에 좋아졌다.

하늘이 도와 남은 일본군을 쓸어버리고 평양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군량도 필요한 곳에서 계속 마련해야 했다.


우리 군사가 평양으로 진격해 일본군을 끌어내다

그날 이원익에게서 평양 공격 상황을 알리는 보고가 왔다.

새벽부터 군사를 움직였다.

선봉대가 나아가자 일본군 삼십여 명이 먼저 성문 밖으로 나왔다.

나머지 일본군은 성 위에 줄지어 서서 깃발을 세우고 있었다.

두 번째 보고가 왔다.

우리 군사는 여러 산길로 움직이며 일본군을 성 밖으로 끌어냈다.

일본군 백여 명이 밖으로 나왔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말을 타고 앞장섰다.

우리 척후병이 일본군을 만나 활을 쏘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본군 수십 명이 매복 속으로 들어오다

다시 보고가 왔다.

유인되어 나온 일본군이 우리 매복 부대 안으로 들어왔다.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일본군 선봉의 정예병 오십여 명 가운데 스무 명 이상이 화살에 맞아 쓰러져 죽었다.

나머지는 다시 북쪽으로 달아났다.

우리 군사는 그들을 추격했다.

그런데 뒤따라 나오던 일본군이 갑자기 우리 큰 진영까지 바로 들이닥쳤다.

본진의 군사들은 크게 놀라 뒤로 물러났다.

거의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된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우리 군사 가운데 몇 명이나 죽고 다쳤는지는 그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자세한 사정은 현지 장수의 보고가 다시 올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 돌진한 일본군을 거의 모두 활로 물리친 것만은 분명했다.

문제는 갑자기 다시 몰려온 적을 보고 우리 군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놀라 물러난 것이었다.

그래도 군대 전체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진을 다시 정비하고 다음 싸움을 준비했다.


군량이 실제로 얼마나 남았는지 다시 조사하다

명나라 군대가 지나간 길의 여러 고을은 이미 크게 피폐해졌다.

전쟁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창고와 물자가 많이 사라져 제대로 준비하기 어려웠다.

최근에야 여러 지역의 곡식을 조금씩 모아 운반하면서 겨우 군량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의주에는 본래 창고의 곡식이 비교적 많았다.

부족하면 주변 고을의 곡식을 더 가져올 수도 있었다.

정주와 안주는 다른 지역에서 곡식을 계속 옮겨 와야 했다.

앞서 명나라 군대를 먹이고 남은 것을 다시 모두 계산했다.

정주에는 백미와 여러 잡곡을 합쳐 약 이천오백 석이 남아 있었다.

콩은 약 이천육백오십여 석이었다.


만 명의 군사를 얼마나 먹일 수 있는지 계산하다

명나라 병사 한 사람에게 하루에 지급하는 곡식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만 명이 하루에 먹는 양이 매우 많았다.

현재 정주에 남아 있는 곡식으로는 만 명을 열흘 남짓 먹일 수 있었다.

말먹이는 더욱 빨리 줄어든다.

콩 이천육백여 석도 말 만 마리가 며칠 먹으면 거의 사라질 양이었다.

그래도 귀성에 남아 있는 곡식을 가져오면 어느 정도 보탤 수 있다.

안주에는 잡곡을 합쳐 약 이천육백여 석이 있었다.

콩은 그보다 적었다.

쌀은 정주보다 조금 많거나 비슷했지만 말먹이가 부족했다.

명나라 군대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명나라의 첫 패전은 병사보다 장수의 잘못이 컸다

내가 보기에 일본군의 기세는 아직 강했다.

우리나라의 형세는 외롭고 약했다.

우리 군사가 때때로 적을 기습하여 작은 성과를 내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성이 날마다 죽거나 붙잡혀 가는 숫자는 이루 셀 수 없었다.

일본군을 한 번에 모두 몰아내지 못하면 나라에 생길 걱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앞선 명나라 군대의 패전은 지휘를 잘못하고 일본군을 가볍게 본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명나라 병사들이 싸울 힘이 없어서 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을에는 명나라 기병을 넓은 들판에서 활용해야 한다

이제 가을 기운이 높아지고 있었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말의 힘도 좋아진다.

명나라에 요청해 정예 기병을 많이 보내게 해야 한다.

우리 군대와 먼저 약속을 정하고 일본군을 성 밖으로 끌어낸 뒤 넓은 들판에서 함께 싸운다면 일본군의 남은 병력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라의 운명이 달린 큰일이다.

이처럼 좋은 기회가 오는데 작은 비용을 아끼느라 놓쳐서는 안 된다.

현재 마련한 군량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대책 없이 있을 수도 없다.

조정에서 다른 곳의 곡식까지 조사하여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더 많은 군량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


황해도 백성들이 스스로 군사를 일으켜 일본군과 싸운다는 보고를 받다

전에 황해도로 보냈던 김극훈 등이 밤에 돌아왔다.

그들은 황해도 한 도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고 왔다.

또 여러 지역 사람들의 글과 보고도 가지고 왔다.

임금께서 서쪽으로 피란하고 평양까지 함락된 뒤 황해도 백성도 의지할 곳을 잃었다.

살기 위해 일본군에게 붙은 사람도 있었다.

힘센 자들 가운데에는 혼란을 틈타 도적질을 한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스스로 사람을 모아 일본군과 싸우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백성은 싸우려 하는데 관리들은 먼저 달아났다

어떤 지역에서는 백성들이 스스로 군사를 모아 적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흩어져 있던 수령 가운데 뒤늦게 자기 고을로 돌아가려는 사람도 생겼다.

조정에서 그들에게 빨리 돌아가 흩어진 백성을 수습하도록 명해야 한다.

그 가운데 어떤 젊은 무사는 먼저 군사를 모으고 일본군을 치겠다고 나섰다.

명령을 내리는 태도도 제법 갖추어 앞으로 기대할 만하다고 했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는 임시로라도 벼슬을 주어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백성 가운데 이렇게 스스로 일어난 사람이 있는데 정작 수령과 장수들은 처음부터 머리를 감싸고 달아나기 바빴다.

아무도 백성을 이끌어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의 죄는 매우 크다.

생각할수록 통탄스러웠다.


의병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벼슬과 상을 주어야 한다

흩어졌던 관리들도 이제 고을로 돌아가 백성을 불러 모아 일본군을 막아야 한다.

조정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잘 가려 격려해야 한다.

특히 젊은 나이에도 먼저 군사를 모아 적을 치려고 한 사람에게는 임시 벼슬을 주어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게 할 수 있다.

나에게는 공이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빈 벼슬 문서가 일부 있었다.

필요하다면 이런 사람에게 먼저 지급하고 뒤에 조정에 보고할 생각이었다.

황주 등지의 백성은 명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온다는 말을 듣고 먹을 것을 마련해 기다리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실제로 내려오기만 하면 여러 지역의 백성이 집집마다 자원하여 군량을 내놓겠다고 했다.

모두 하루빨리 일본군을 쓸어버리고 다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평양 전투에서 정예병을 많이 잃다

앞서 평양 부근에서 싸운 날 우리 군사도 적지 않게 죽었다.

그날 싸움에 내보낸 병사는 강가 지역에서 뽑은 건장하고 정예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하루 사이에 많이 잃었다.

그런데 일본군의 기세는 아직 크게 꺾이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몹시 분하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전사한 사람의 가족은 잘 돌보고 나라에서 마땅히 보상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명나라 군대를 다시 빨리 보내 달라고 강하게 요청하다

명나라 군대를 맞을 군량과 각 지역에 남아 있는 곡식의 양은 이미 여러 차례 보고했다.

하지만 명나라가 다시 군사를 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몹시 답답했다.

안주에 모아 둔 여러 곳의 곡식 가운데 아직 배에서 내리지 못한 것도 있었다.

특히 아산에서 세곡을 실어 온 사람들은 먼 바다를 여러 달 돌아 이곳까지 왔다.

그런데 또 오랫동안 강가에서 기다려야 했다.

사람들은 날마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나는 여러 방법으로 타이르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가을이 깊어져 날씨가 차가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을 한없이 붙잡아 둘 수도 없었다.


일본군은 평양에 멈춰 있지만 다른 계책을 꾸미고 있을 수 있다

이원익이 보내 온 일본군 진영의 보고를 보면 적의 움직임이 수상했다.

일본군은 멀리서 와 지금까지 크게 한번 꺾인 적이 없었다.

평양에 들어온 뒤에는 오랫동안 더 북쪽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 반드시 무슨 다른 계책을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명나라 군대와 우리 군대가 몇 차례 뒤로 물러났다.

우리 군사도 날마다 죽고 다쳤다.

순안에 큰 장수와 함께 있는 군사는 몇천 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 가운데 실제로 쓸 만한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도원수 쪽에 남은 군사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이어져 와 도울 군사도 거의 없었다.


일본군이 병력을 더 모으기 전에 쓸어버려야 한다

만약 일본군이 다른 지역의 병력을 더 많이 모아 여러 길로 나누어 나오면 우리 형세는 매우 위험해진다.

나는 밤낮으로 이 일을 걱정했다.

따라서 일본군의 움직임과 속셈을 명나라 조정에 빨리 자세히 알려야 한다.

그리고 적의 군사가 더 많이 모이기 전에 명나라와 조선이 힘을 합쳐 한 번에 쓸어버릴 방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뒤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명나라 장수들도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되면 반드시 그 필요성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592년 음력 7월 19일, 다시 군량 문제를 자세히 보고하다

음력 7월 19일 조정에서 또 명령이 내려왔다.

나는 안주에서 그 명령을 받았다.

각지의 창고는 이미 크게 비어 있었다.

처음 명나라 군사 오천 명을 먹일 준비를 할 때도 동쪽의 것을 서쪽으로 옮기고 이쪽의 것을 저쪽으로 옮겨 겨우 필요한 양을 맞췄다.

온 힘을 다했지만 간신히 형태만 갖춘 정도였다.

그런데 첫 명나라 군대가 물러간 뒤 다시 더 많은 군사를 보낸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병력이 올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정주에 남은 군량을 구체적으로 보고하다

정주에 남은 곡식을 살펴보았다.

귀성에서 가져온 전미가 삼백여 석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거두어 온 곡식도 오백 석가량 있었다.

여러 종류의 곡식을 같은 기준으로 계산하면 모두 합쳐 천오백 석 안팎이었다.

이것은 군사 만 명이 며칠 먹으면 거의 없어질 양이었다.

안주에는 아산에서 가져온 세곡 약 칠백 석이 있었다.

앞서 옮겨 와 쓰고 남은 곡식도 이백 석가량 있었다.

삼화와 용강 등에서 실어 온 쌀도 있었다.

그 배들은 한동안 다른 곳에 머물게 했다가 명나라 군대가 물러난 뒤 다시 안주로 오게 했다.

아직 모두 도착하지 않아 계속 재촉하고 있었다.


만 명 이상의 명나라 군대가 오면 현재 군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 곡식들이 무사히 안주에 도착하면 안주에는 모두 이천 석가량이 모일 것이다.

그렇다면 명나라 군사 만 명이 와도 열흘 남짓은 먹일 수 있다.

그러나 가산과 선천, 용천, 철산 같은 곳에 남은 곡식은 아주 적었다.

기껏해야 몇천 명이 하루 먹을 수준이었다.

더 마련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았다.

이런 형편에서 뒤에 오는 명나라 군사가 만 명보다 훨씬 많다면 참으로 대책이 없었다.


말먹이는 사람의 식량보다 훨씬 더 큰 문제였다

군량보다 더 큰 걱정은 말먹이였다.

명나라 기병의 말 한 마리에게 먹이는 곡식은 사람 한 명에게 주는 양보다 훨씬 많았다.

사람의 식량만 생각해서는 대군을 감당할 수 없다.

안주와 주변 고을에 남은 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부 고을에 조금씩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의주는 본래의 창고와 다른 창고에 곡식이 많이 남아 다른 지역보다 형편이 나았다.

귀성과 용강 등에도 비교적 많은 양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다른 고을에도 수천 석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것을 바로 가져올 수만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육로와 수로 모두 군량 운송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귀성에서 정주까지는 산길이 험했다.

여러 고을에서 이미 운반해 온 쌀과 콩도 많아 백성의 힘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계속 운반하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삼화와 용강은 배로 옮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바닷물의 흐름과 바람 방향이 늘 일정하지 않았다.

출발해도 언제 도착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것도 걱정했다.


명나라 군사에게 지급하는 쌀도 실제 필요량에 맞춰 줄여야 한다

처음에는 명나라 군사 한 사람에게 쌀을 비교적 넉넉하게 지급했다.

그런데 들으니 명나라 병사들이 받은 쌀을 모두 먹지 못해 남은 것을 다른 물건과 바꾸는 일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실제 먹는 양을 조사하여 지나치게 많이 지급되는 부분은 줄여야 한다.

그래야 부족한 군량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쓸 수 있다.

나라에 큰일이 닥친 지금 나는 군량이 떨어질까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도 재물을 마련하고 군량을 넉넉히 할 방법을 따로 깊이 연구하여 빨리 시행해야 한다.


황해도 군사를 모을 사람으로 이현을 추천하다

황해도에서는 일본군의 기세가 여전히 강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본군은 길목마다 목책과 방어시설을 만들고 군사를 두었다.

백성을 끌어모으고 오래 머물 준비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우리 장수들은 산골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숨어 지내며 적이 보이면 물러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한 가닥 희망을 두는 것은 백성의 마음이었다.

백성은 아직 나라를 따르고 있었다.

여러 지역에서 스스로 무리를 이루어 자기 고장을 지키려 했다.

이들을 잘 격려하여 한꺼번에 일어나게 한다면 일본군을 물리칠 날을 기대할 수 있다.


광주와 가평 등지의 사례에서 장수의 중요성을 말하다

최근 여러 곳의 백성을 보면 자기 고장을 사랑하여 서로 군사를 모으고 있었다.

적당한 사람을 장수로 세우고 진을 치게 하니 제법 군대의 모습을 갖추는 곳도 있었다.

광주에서는 백성들이 서로 약속해 매복하고 일본군을 활로 쏘았다.

그 때문에 일본군이 가까이 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곳에서는 지휘하는 장수가 잘못되자 일본군을 조금 만난 것만으로 군사가 한꺼번에 흩어졌다.

결국 그 고을까지 지키지 못했다.

가평 사람들도 꽤 잘 뭉쳐 일본군을 공격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군사를 모았지만 제대로 이끌 장수가 없으면 군사는 결국 흩어질 수밖에 없다.

쓸 만한 사람이 있어도 혼자 싸울 수는 없다.

장수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일본군은 꾀로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하다

옛말에도 사람은 꾀를 써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을 살펴 형편에 맞는 기묘한 방법을 써야 한다.

적과 정면으로만 맞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특히 밤에 일본군을 공격할 때 쓸 수 있는 도구가 중요하다.

내가 안주에서 이미 수십 개를 만들게 했고 가까운 곳에서도 더 많이 만들고 있었다.

각 도에 나누어 보내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다만 제대로 사용할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이 걱정이었다.


이현에게 황해도 군사 모집을 맡겨 달라고 요청하다

그때 배천 사람인 선전관 이현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말했다.

“저는 고향의 무사들과 이미 약속했습니다.

모으면 수백 명의 군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개성, 평산, 강음 등지의 일본군 움직임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임금께 보고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뜻과 생각이 쓸 만했다.

그래서 조정에 요청했다.

“이현에게 사람을 모집할 권한을 주어 곧바로 황해도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향에서 계획한 일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관찰사에게도 이런 사람을 특별히 격려하도록 명하십시오.

서로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군사를 모으는 데 필요한 돈과 물건이 있다면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말고 지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일어날 것입니다.”


평양 주변에서 일본군 수십 명과 접전하다

전날 이원익에게서 다시 보고가 왔다.

우리 쪽 장수가 사람을 보내 알려 왔다.

일본군이 스무 명 남짓, 또는 마흔 명 남짓씩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산원 쪽으로 나왔다.

우리 매복병이 일본군을 만나 싸웠다.

지원군을 차례로 보냈다.

다시 보고가 왔다.

우리 척후 장수가 일본군을 뒤쫓아 어느 지역까지 갔다.

일본군 선봉 삼십여 명이 무기를 들고 우리 쪽을 향해 다가왔다.

우리 군사는 활을 겨누고 적이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일본군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수많은 화살을 쏘았다.

일본군은 점차 뒤로 물러났다.


지원군이 계속 합류하자 우리 본대도 전진하다

우리 지원군이 계속 현장으로 들어갔다.

지원군이 모두 모이자 큰 진영도 앞으로 움직였다.

그 뒤 다시 보고가 왔다.

우리 군사가 적과 싸운 뒤 일본군은 종송 부근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고 했다.

또 다른 보고에서는 일본군이 결국 평양성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미처 끝까지 추격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에 많은 사상자가 나다

그 뒤 이어진 보고에서는 일본군이 두 길로 나누어 갑자기 뛰어나왔다고 했다.

많은 군사가 쏟아져 나와 전투가 다시 벌어졌다.

싸움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날이 어두워져 그날 싸움을 멈추었고 다음 날 다시 나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일본군 가운데에는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았다.

우리 군사도 부상자와 전사자가 있었다.

정확한 숫자는 뒤에 다시 보고하기로 했다.

당장 확인된 것만 보면 크게 다치지 않은 부상자가 스물일곱 명이었고, 그 밖에도 몇 명이 더 있었다.


우리 군사들이 전투에서 힘을 다했다고 보고받다

군관 권혼 등이 와서 말했다.

“싸움이 끝난 뒤 우리 군사는 산원 부근으로 돌아와 진을 쳤습니다.

전투가 시작된 뒤부터 우리 군사들은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이번에는 적에게 분명히 피해를 입혔습니다.”

우리 쪽의 정확한 피해는 아직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을 실제로 꺾은 것은 분명했다.

나는 우선 군사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관리하고 있던 군수품도 두 차례로 나누어 전선으로 보내도록 했다.


황주목사 김진이 일본군의 움직임을 보고하다

황주목사 김진의 보고도 들어왔다.

봉산 쪽에서 일본군 육백여 명이 내려왔다고 했다.

그 가운데에는 지휘하는 일본 장수도 있었고 말 탄 군사도 오십 명가량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짐과 물건도 적지 않았다.

명나라 장수가 일본군과 접촉해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 사람이 일본군과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다시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명나라 사람이 다시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간 뒤 아직 보고가 오지 않았다는 말도 있었다.


일본군의 화친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이원익에게서 온 글을 보면 일본군이 화친을 이야기하는 듯한 정황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믿을 수는 없다.

김진의 보고를 보면 일본군의 움직임은 여전히 활발했다.

새로 들어온 일본군도 많았다.

날짜와 이동 상황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에서 이미 보고된 일본군과 같은 부대일 수도 있었다.

정확한 형편은 더 확인해야 했다.

앞으로의 일이 여전히 매우 걱정스러웠다.

명나라 군대를 다시 빨리 보내 달라는 요청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

일본군은 날마다 전과 다름없이 성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안주에 온 지 한 달이 되어 돌아갈 일을 보고하다

그달 초와 중순에 조정에서 군량 문제에 관한 명령이 잇달아 내려왔다.

나는 안주에서 그 명령을 받았다.

내가 안주에 온 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 갔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거의 모두 군량을 살피고 각지에서 온 곡식을 옮겨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 밖에는 달리 처리할 큰일이 거의 없었다.

지난달 명나라 군대가 물러난 뒤 나는 임금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몇 가지 걱정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각지에서 온 쌀과 콩 수천 석이 아직 강 위에 있었다

먼 곳에서 보내온 쌀과 콩 수천 석이 아직 관청 창고에 들어오지 못한 채 배에 실려 강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안주에 머물렀다.

안주 북쪽 여러 고을은 내가 직접 가서 군량과 여러 준비를 확인했다.

대체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온 쌀 가운데에는 너무 오래 묵었거나 품질이 좋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런 곡식은 명나라 군사에게 지급하기 어려웠다.

종사관을 보내 하나하나 살펴 좋은 곡식과 나쁜 곡식을 가려내게 했다.


적과 가까운 곳에는 군량을 미리 많이 쌓아 둘 수도 없었다

순천과 순안 등은 일본군과 가까운 곳이었다.

그런 곳에 많은 군량을 미리 쌓아 두면 일본군에게 빼앗길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곡식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가 다시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삼화와 용강 등 여러 고을에 급히 공문을 보내 쌀과 콩을 천여 석씩 서둘러 운반하게 했다.

그것을 순천과 순안 등지에 나누어 둘 생각이었다.


일할 백성도 종사관도 부족한 상황에서 군량을 재촉하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젊은 백성은 대부분 군대에 나가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은 늙고 약한 사람이 많았다.

많은 양의 곡식을 제때 옮길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종사관 가운데 한 사람도 열흘 넘게 다시 심한 병을 앓아 직접 뛰어다니며 살펴볼 수 없었다.

쓸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군관을 보내 운송을 감독하게 했다.

또 다른 종사관이 근처에 있었으므로 그에게도 각 고을에서 곡식을 제때 실어 보내는지 검사하도록 했다.

조금이라도 늦어 명나라 군량 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각지에 공문을 보내 필요한 지시를 모두 내렸다.

그런 뒤 다음 날에는 임금이 계신 곳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제6권 끝

 

 

 

 

 

 

 

 

 

징비록 일곱째 권

북쪽 지방의 소식을 알아보고 남쪽에서 화살대를 가져오게 해 달라고 청하다

나는 북쪽 지방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적의 형편을 살펴보고 돌아올 만한 정탐꾼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산과 골짜기의 길은 승려들이 비교적 잘 알고 있었으므로 승려 스물두 명을 모집했다. 이들을 여섯 무리로 나누어 차례로 북쪽으로 보냈다.

먼저 보냈던 승려와 군관 몇 사람이 북쪽에서 돌아와 그곳의 형편을 전했다.

어느 창고 부근에는 백오십여 명의 군사가 모여 있었고 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도 있었다. 승려 일행은 그 사람들과 함께 더 북쪽으로 가려 했지만 길이 막혀 끝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정평에서는 지방의 전직 관리와 전에 훈도를 지낸 사람 등 열여 명이 산골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승려가 가지고 간 공문서를 보고 임금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를 물었다. 임금이 무사하다는 말을 듣자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정평에는 지금 수령이 없습니다. 새 수령만 빨리 내려오면 흩어진 백성들이 많이 모여 일본군을 칠 것입니다.”


고원 백성들이 일본군을 쏘아 죽이다

최근 일본군이 작은 배를 타고 영흥 쪽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뒤쫓았다.

고원 사람들은 일본군 세 명을 만나 그 가운데 두 명을 활로 쏘아 죽였다.

남은 한 명은 달아났다.

그 뒤 그 일본군이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와 마을 사람 수십 명을 죽였다.

이 일 때문에 백성들은 두려워 더욱 깊은 산골로 숨어들었다.

일본군은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나누어 준 표식을 지니게 했다. 그 표식이 없는 사람은 적으로 여기고 죽이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이 준 표식을 지니고 다니는 조선 백성이 생겼다. 북쪽으로 갈수록 그런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일본군 진영 가까이에 있던 백성들의 사정

일본군에게 붙잡히거나 그 주변에 남은 사람들의 가족은 여러 곳에 흩어져 숨어 있었다.

우리 백성이 일본군의 말을 몰래 끌어내 철령 쪽으로 도망쳐 오기도 했다.

일본군 가까이에 있던 조선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울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군을 좋아해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죽는 것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여기 있을 뿐이다.”

일본군이 주둔한 곳에서는 흙집을 짓고 나무를 세워 방어 시설을 만들고 있었다.

일본군이 점령한 곳에서는 조정과의 연락이 끊겨 정확한 소식을 얻기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일본군이 이미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직 그보다 아래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삼수 같은 깊은 산간 지역은 길까지 막혀 더욱 확인하기 어려웠다.

뒤에 보낸 정탐꾼들이 돌아와야 사실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북쪽 일본군은 계책으로 무너뜨려야 한다

내가 생각해 보니 북쪽의 일본군은 날이 갈수록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이들을 정면으로 맞서 군사를 늘어놓고 싸우기만 해서는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일본군 가운데에는 사납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이 많지만 큰 계책을 세우는 데에는 허점도 있다.

무엇보다 일본군과 우리 백성이 서로 섞여 오가는 상황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기회다.

유능한 장수가 적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낸 뒤 밖에서 갑자기 들이쳐 번개처럼 공격한다면 일본군은 미처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첫 공격에서 크게 꺾고, 그 뒤에도 곳곳에서 계속 기습하면 적에게 붙어 있던 조선 백성들도 자연히 돌아서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군의 세력은 칼로 대나무를 쪼개듯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일본군이 북쪽에 자리 잡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장수들은 당장 눈앞의 일만 보고 멀리 내다보는 계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북쪽의 일본군은 아무도 제대로 막지 않는 가운데 이미 몇 달째 머물고 있다.

그대로 두면 차츰 뿌리를 내리고 주변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그 뒤에는 공격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반드시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북쪽의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들 가운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빈 임명장을 주어 상을 내리고 다른 사람도 앞다투어 정보를 가져오도록 격려했다.

그런데 누군가 상을 받으면 다른 사람이 왜 자기에게 먼저 알리지 않았느냐며 시기하는 일도 있었다.

나라가 위태로운데 서로 공을 다투고 시기한다면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북쪽 지방의 화살이 바닥나고 있다

또 하나 매우 급한 문제가 있다.

북쪽 지방에서 활과 화살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 뒤 많은 무기가 흩어지거나 없어졌다.

어떤 곳에는 남은 화살이 겨우 삼백여 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군사가 많아도 화살이 없으면 싸울 수 없다.

남쪽 지방에는 화살을 만드는 데 쓸 대나무가 있다.

전라도 등에 사람을 보내 화살대를 많이 가져오게 해야 한다.

바닷가와 섬에서 나는 대나무도 거두어야 한다.

도착하는 즉시 장인에게 맡겨 긴 화살과 여러 종류의 화살을 만들게 해야 한다.

수만 대를 만들어 각 지역에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급한 일이다.

조정에서 특별히 사람 하나를 보내 남쪽의 대나무를 거두어 화살을 대량으로 만들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심유경을 만나 군사 문제를 이야기하다

심유경이 전날 저녁 가산에서 와서 묵은 뒤 다음 날 아침 다시 떠났다.

나는 길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처음에는 심유경이 여행복 차림이어서 정식으로 만나기 불편하다는 뜻을 보였다.

나는 사람을 다시 보내 말했다.

“나는 나라의 명을 받아 이 지역의 군량과 전쟁 준비를 살피고 있습니다. 몇 가지 물어볼 일이 있으니 잠깐 만났으면 합니다.”

그러자 심유경이 만나도 좋다고 했다.

내가 숙소로 들어가자 심유경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 내 곁으로 옮겨 앉았다.


심유경이 우리 군사와 군량을 묻다

심유경은 여러 가지를 물었다.

우리 군대의 형편은 어떠한지, 군량은 얼마나 있는지, 군사는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군량을 전담하는 관리가 따로 있어 내가 모든 세부 사항을 직접 맡는 것은 아니지만 대강의 형편은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심유경은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을 공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당시 준비한 군량은 대략 만여 명이 열흘 남짓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명나라 군대가 다시 오기만 한다면 평양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명나라 군대의 앞선 실패에 대해 심유경이 화를 내다

나는 말했다.

“지금까지 명나라 군대가 뜻대로 싸우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시 제대로 된 군대가 나온다면 평양을 되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심유경은 앞서 있었던 명나라 군대의 실패 이야기가 나오자 매우 화를 냈다.

그는 당시 장수들의 잘못을 하나하나 들며 꾸짖었다.

어떤 장수들은 임무를 그르쳤으니 죽어 마땅하다고까지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우리나라의 일은 하늘이 보고 있습니다. 지난 일은 이제 너무 많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사정을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군대가 평양 앞에서 지지부진한 형편을 말하다

심유경은 오는 길에 순안에서 조선 사람을 만나 우리 군대의 형편을 물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조선군의 힘만으로 평양을 되찾을 만한 형편이 아닙니다. 군대는 순안 부근에 머물러 있고 뒤로 물러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 군대의 형세는 매우 외롭고 약했다.

날마다 평양 가까이에 있는 절과 여러 지점을 오갈 뿐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

일본군은 성 안에서 편히 먹고 쉬고 있었다.

우리가 밖에서 지쳐 가기만 하는데 일본군이 저절로 물러날 까닭이 있겠는가.


호남 군사를 빨리 돌려보내 평양 공격에 쓰게 해야 한다

멀리서 올라온 호남 군대 가운데에는 싸울 의지가 있는 군사가 있었다.

이들을 제대로 위로하고 다른 군대와 함께 움직이게 한다면 급한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호남 감사는 다른 일 때문에 군대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나는 빨리 돌려보내 전선에서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평양의 일본군은 서쪽과 북쪽의 방비에는 힘을 많이 쓰고 있었다.

반면 동쪽과 남쪽은 상대적으로 허술했다.

우리가 이 틈을 잘 이용하면 공격할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군대는 날마다 똑같은 길로만 나갔다가 돌아왔다.

기습이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이래서는 큰 성과를 바라기 어렵다.


심유경이 떠난 뒤 임금의 명을 받다

심유경이 지나간 뒤 임금의 명이 도착했다.

나는 도원수 김명원과 함께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려 했다.

군사는 수가 많다고 반드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더라도 정예병이라면 쓸 수 있다.

전쟁에는 언제나 똑같은 형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잡으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군대는 일본군과 대치한 지 이미 다섯 달이 넘었다.

군사는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다.

좋은 기회도 여러 차례 놓쳤다.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여러 물자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걱정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앉아서 나라가 망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형편이 어렵다고 손을 놓고 앉아 망하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

결국 한 번은 싸워야 한다.

그래서 장수들과 힘을 모아 한 차례 결전을 벌일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침 명나라 장수가 다시 오가며 여러 가지를 조정하려 하니 우리의 군사 배치와 계획이 그 때문에 흐트러질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이 또한 매우 답답한 일이었다.


심유경이 평양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눈 말

심유경이 평양성으로 들어가기 전 일본군 통역과 말을 나누었다.

일본군 쪽에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장수가 조선 국왕을 만나 화친을 논하고 싶다.”

이 말을 들은 조선 측 사람은 말했다.

“그것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심유경에게 물었다.

“선생이 성 안으로 들어가 일본군에게 붙잡히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우리 군대도 선생 때문에 공격하지 못하고 명나라 군대도 공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유경은 호랑이 굴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심유경은 대답했다.

“나는 명을 받아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다.

명나라가 나 한 사람 때문에 군사를 내지 않겠는가?”

심유경은 또 명나라의 두 관리에게 물었다.

“내가 성 안으로 들어간 뒤 일본군 장수가 조선 국왕을 만나 화친하겠다고 요구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한 사람은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명나라에는 명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있고 조선에는 조선의 임금과 신하가 있다.

조선 국왕이 일본군을 만날지를 우리가 어떻게 마음대로 말하겠는가?

우리가 입을 연다고 해도 조선의 임금과 신하가 당신들을 만나겠는가?

일본군이 애초에 이루기 어려운 일을 일부러 요구하는 것은 실제로 명나라와 화친할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답하면 될 것이다.”


나는 심유경의 강화 협상을 걱정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걱정했다.

명나라 관리에게 따로 만나 이 문제를 말하려 했다.

그 사람은 내 말을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심유경이 성 안으로 들어가면 일본군에게 조선에는 별도의 임금과 신하가 있으니 우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일본군이 조선 국왕을 만나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따질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군사를 전진시켜 일본군을 없애는 것뿐이다.”

나는 같은 뜻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명나라 관리가 강화할 뜻이 없다고 나를 안심시키다

그 명나라 관리는 말했다.

“명나라가 어찌 일본군과 화친하겠는가?

각지의 병력과 말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려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군대는 반드시 온다.

쓸데없이 의심하지 말라.”

음력 스물닷새에 심유경을 다시 만났을 때 나도 이 문제를 자세히 말하려 했다.

그러나 심유경은 몇 마디만 하고 더 깊이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자고 해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날 정오 무렵 심유경은 평양성으로 들어갔다.


세자를 강화도로 옮겨 남쪽 지방과 연락하게 하는 문제

세자를 강화도로 옮겨 남쪽 여러 지방과 연락이 이어지게 하는 방안도 별도의 장계로 올렸다.

이 글은 다른 문집에 따로 실려 있어 이 권에는 제목만 남아 있다.


임금의 명을 받고 적의 형세와 북쪽 사정을 다시 보고하다

임금의 명이 도착했다.

명나라 대군이 곧 다시 전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중요하고, 백성의 마음도 안정시켜야 하니 조금 더 그곳에 머물러 일을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정주 이북의 준비 상태를 하루 이틀 더 살펴본 뒤 안주로 돌아가려고 했다.

본래 내가 맡은 일은 군량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형세가 너무 위태로워 내 직무가 아니라고 해서 다른 일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걱정되는 점을 다시 아뢰었다.


평양 일본군은 물러갈 기색이 없었다

일본군의 기세는 여전히 거셌다.

평양성의 일본군은 물러갈 날짜도 기약할 수 없었다.

우리 군사 가운데 싸울 만한 사람은 날이 갈수록 죽거나 다쳤다.

평양 동쪽의 몇몇 고을은 서북 지방 전체의 군량을 마련하는 근본 지역이었다.

황해도와 경기, 남쪽 세 도로 통하는 길도 모두 이곳을 거쳤다.

그 지역을 지키지 못하면 순안에 십만 군사가 있더라도 계속 머물 수 없다.

일본군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서쪽으로 나오면 막을 길도 없어진다.


죽은 군사의 시체가 쌓이고 민심이 흔들리다

그 지역의 군사가 앞뒤 전투에서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 셀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가 들에 그대로 쌓여 있다는 말까지 들렸다.

백성은 그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어제 봉산에서 온 한 사람이 안주에서 나를 만나 말했다.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일본군이 다시 황주에 모이고 있는데 수가 매우 많습니다.”

최근 전투에서 우리 군대가 평양으로 진격했을 때 일본군의 수는 전보다 오히려 더 늘어난 듯했다.


일본군은 대동강에 배와 뗏목을 만들고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또 일본군이 대동강에 새로 배와 뗏목을 많이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우리 군대가 움직이려 한다는 말을 듣고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있던 일본군을 다시 불러 모으는 듯했다.

적이 한쪽으로는 우리 주력군을 막고 다른 병력을 나누어 보내 지친 우리 군사의 빈 곳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운 일이었다.

평양을 되찾지 못하면 나라를 다시 일으킬 날도 알 수 없다.


무기와 화살마저 거의 없어졌다

각지의 군사 장비도 거의 없어졌다.

처음 어렵게 모아 순안과 여러 전선으로 운반한 활과 화살도 몇 차례 전투를 치르면서 거의 다 흩어졌다.

안주에 남겨 둔 긴 화살과 다른 화살도 각각 천여 대 정도였는데 계속 가져다 쓰고 있었다.

곧 모두 없어질 형편이었다.

그다음에는 무엇으로 싸울 것인가.

이 또한 매우 급한 걱정이었다.


명나라 군대는 온다는 말만 있을 뿐 보이지 않았다

명나라 군대가 다시 온다는 소문은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가는 명나라 사람의 얼굴빛을 살펴보면 일본군을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명나라 군대는 그동안 군사의 위세와 기세로 상대를 누르는 데 익숙했다.

그런 사람들까지 주저한다면 실로 걱정스럽다.

그래도 최근에는 우리 백성의 마음이 차츰 다시 모이고 있었다.

장수와 군사들도 조금씩 목숨을 걸고 싸우려 했다.

다만 제대로 된 무기가 너무 부족했다.


각종 부담을 쌀로 바꾸어 군량을 마련하자고 하다

군량은 현재 창고에 있는 것만 믿을 수 없었다.

각 고을에 명령해 그해 가을에 거둔 곡식을 빨리 거두어 들이도록 해야 했다.

그해 도 안에서 바쳐야 하는 여러 공물과 왕실, 여러 관청에 바치는 것 가운데 쌀로 바꾸어 받을 수 있는 것은 쌀로 바꾸어 군량에 보태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그 수량을 적절히 정하면 관청과 백성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편리할 수 있다.

군량이 떨어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관련 관청에서 빨리 헤아려 처리해야 했다.


북쪽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두 번째 보고

북쪽 정세를 자세히 아는 사람 몇 명이 다시 돌아와 보고했다.

고원과 정평, 영흥 등 여러 곳의 사정은 매우 참혹했다.

고원에서는 일본군 몇 명을 우리 백성이 직접 활로 쏘아 죽였다.

남은 일본군이 살려 달라고 빌다가 틈을 타 사람들을 공격한 일도 있었다.

그 뒤 일본군은 산속까지 들어가 피란한 사람들을 수색하고 죽였다.

죽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일본군은 곳곳에 매복해 백성을 죽였다

다른 곳에서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일본군에게 잡혀 죽은 사람이 많았다.

일본군은 길목마다 사람을 숨겨 두고 지나가는 백성이 보이면 죽이기도 했다.

백성들은 두려워 깊은 산골로 숨어들었다.

들판으로 나갈 수 없으니 먹을 것을 얻지 못했다.

일본군의 칼을 피한 뒤에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북쪽 백성은 관군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백성들은 조정의 공문을 보면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오직 관군이 와서 우리를 살려 주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강한 백성 가운데에는 일본군을 쏘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활과 화살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싸우고 싶어도 싸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일본군이 경성까지 갔다가 그곳의 북방 군사에게 패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왕자가 회령에 머물고 있다는 말도 백성 사이에 돌았지만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심유경의 움직임과 군량 준비를 보고하다

심유경은 최근 순안에서 일본군과 만나 문답을 나누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도원수의 보고에도 들어 있을 것이다.

심유경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그의 속뜻이 결국 전투보다 화친과 휴전에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일본군은 믿을 수 없다.

그들은 매우 교활하고 거짓이 많다.

병력도 제대로 줄어들지 않았다.

말 몇 마디와 약속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명나라 군대를 기다리기만 하다가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군대는 이미 지쳐 있었다.

오직 명나라 군대가 와서 도와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날짜는 계속 늦어졌다.

명나라 군대가 정말 올 것인지, 온다면 언제 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본군이 갑자기 움직인다면 매우 두려운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따라서 빨리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길목마다 가을 곡식을 거두어 군량으로 저장하다

명나라 군대가 지날 길의 군량은 전에 준비한 것만으로 부족했다.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 형편에 맞게 그해 가을 곡식을 먼저 거두어 저장하도록 했다.

한 고을 백성은 스스로 쌀을 내어 군량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 양이 이백여 석에 이르렀다.

먼저 나선 사람에게는 이름을 비워 둔 임명장을 주어 격려했다.

다른 사람도 본받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아직 물러나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관청과 민간의 곡식을 마음껏 모을 수는 없었다.


몇 달째 강 위에 머물러 있는 군량선의 폐단

안주 강가에는 여러 곳에서 운반해 온 쌀을 실은 배가 많이 정박해 있었다.

아직 관청 창고로 들여오지 못하고 배에 그대로 둔 곡식이 적지 않았다.

배를 부리는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집을 떠나 자기 식량을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날마다 돌아가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매우 어려웠다.

황해 감사의 보고를 보면 충청도에서 실어 온 세곡으로 쌀 이천여 석과 콩 수백 석이 도착한 것도 있었다.


군량선을 한곳에 오래 묶어 두는 것도 위험했다

명나라 군대가 언제 올지, 몇 명이나 올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곡식을 평안도로 모두 보낼 것인지 황해도에 남겨 둘 것인지도 쉽게 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황해도 해안에는 일본군이 갑자기 나타나는 일이 있었다.

배를 얕은 포구에 오래 정박시켜 두었다가 일본군에게 습격당하면 곡식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었다.

관련 관청에서 빨리 의논해야 한다.

더 안전한 곳에 나누어 두든지, 군대가 실제로 지날 곳으로 차례로 옮기든지 해야 한다.


심유경과 일본군의 문답을 보고한 글

심유경이 일본군과 나눈 문답에 대해서도 별도로 보고했다.

이 글은 다른 문집에 따로 실려 있어 이 권에는 제목만 적혀 있다.


오십 일의 기한에 얽매여 아무것도 하지 말아서는 안 된다

나는 심유경에게 다시 의견을 전했다.

심유경이 일본군과 일정한 경계를 정하고 오십 일의 기한을 세운 것이 실제 아무 효과도 없이 시간만 끄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오십 일이 지나면 음력 11월 하순이 된다.

추위가 매우 심해질 것이다.

들판에서 대치하고 있는 군사는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고향을 잃고 떠도는 백성도 추위에 죽을 것이다.

일본군은 그동안 온갖 계책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손을 묶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일본군이 성 안으로 모이면 그 움직임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일본군이 밖에 흩어져 있던 병력을 평양성으로 모으면 우리도 그 상황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정해 놓은 기한 안이라도 큰 변화가 생긴다면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다.

꼭 싸워야 할 때에는 싸워야 한다.

다만 기한을 정해 놓은 이상 별다른 사정도 없이 함부로 먼저 공격해 약속을 깨는 모습은 좋지 않다.

그렇더라도 전쟁에서 나와 적의 형편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분명히 이길 만한 기회가 있고 우리 힘도 충분하다면 공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은 장수들이 형편을 자세히 따져 결정해야 한다.


강화한다는 소문 때문에 우리 장수들의 마음이 풀려서는 안 된다

옆에서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심유경이 일본군과 화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우리 장수와 병사들이 싸우려는 뜻을 잃는다.

그래서 각 전선과 좌우 방어사에게 공문을 보냈다.

화친이라는 말만 믿고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적의 형세를 살피면서 군사를 조금씩 앞으로 움직여 적의 반응을 시험하게 했다.

좋은 기회가 생기면 공격하도록 했다.

황해도와 경기의 장수들에게도 같은 뜻을 전했다.

화친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임금을 돕고 나라를 구하려는 마음을 더욱 분발시켜 차례로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일본군의 기세가 조금 꺾인 듯했다

명나라 군대가 언제 나올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았다.

곧 온다는 말도 있고 더 늦어진다는 말도 있었다.

정탐병 수십 명을 순안과 평양 일대로 오가게 하며 적의 움직임을 계속 살폈다.

최근 일본군은 자주 평양성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우리 군사를 보면 다시 성 안으로 피해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 기세가 전보다 크게 떨어진 듯했다.

황주와 중화에 있던 일본군도 진영을 거두어 다시 남쪽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군이 돌아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곳곳에서 복병으로 공격하여 적을 계속 괴롭힌다면 나라를 다시 일으킬 날도 멀지 않을 수 있었다.


강화도의 군량을 맡을 책임자를 따로 보내야 한다

전에 들으니 충청도 등지에서 거둔 토지세 쌀과 콩 칠천여 석이 강화도에 정박해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이 그 곡식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가 자리를 떠난 뒤에는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뒤에 강화도에서 온 사람에게 다시 물어보니 배에 실린 곡식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마땅히 맡아서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곡식이 흩어지거나 없어질 수 있었다.

강화도에는 조정의 관리도 여러 명 머물고 있었다.

앞으로 군량을 조달하는 일에서도 강화도는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일을 잘 처리할 사람 하나를 특별히 보내 모든 군량을 전담하게 해야 한다.

앞으로 군량을 어떻게 운반하고 어디에 쓸지도 그 사람이 맡아 처리하게 하는 것이 편리했다.


학교와 서원, 절과 개간지의 세금을 군량에 보태자고 청하다

나는 지금 나라의 형세를 살펴보면 갈수록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명나라 군대였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명나라 장수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반드시 전투만을 고집하기보다 협상으로 일을 끝내려는 뜻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매우 교활하다.

약속으로 묶어 둘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날씨마저 이미 추워지고 있었다.

추위와 서리 때문에 우리 군사의 기운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만약 일본군이 많은 병력을 모아 다시 서쪽으로 온다면 정말 두려운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심유경이 압록강을 건넌 뒤의 소식도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밤낮으로 걱정했다.


현재 군량으로는 삼만이나 사만 명의 명나라 군사를 먹일 수 없다

전에 마련한 군량으로는 만여 명이 먹을 것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가 삼만이나 사만 명씩 나오면 현재의 곡식으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

적어도 이삼만 명이 추가로 먹을 군량을 더 마련해야 했다.

그래야 부족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각 고을의 창고는 거의 모두 비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 옮겨 올 방법도 없었다.


그해만이라도 특별 토지의 세금을 군량으로 돌리자고 하다

도 안에는 학교에 딸린 토지가 있고 서원에 딸린 토지가 있었다.

여러 절에 딸린 토지도 있었다.

또 왕실이나 여러 곳에 나누어 준 바닷가의 개간지도 있었다.

평상시에는 각각 정해진 용도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가 위급하다.

그해만이라도 각 고을에 명령하여 이런 토지에서 나오는 세금을 거두어 군량으로 사용하게 하면 수천 석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군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관련 관청에서 빨리 의논하여 시행해야 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무기다

군대를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날카롭고 좋은 무기다.

우리 군대와 일본군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면 일본군의 가장 큰 장점은 총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활과 화살이다.

그런데 활은 수십 보 거리에서는 쓸 수 있지만 일본군의 총알은 수백 보 밖에서도 맞으면 사람을 뚫는다.

멀리서 싸우면 우리가 불리하다.

그렇다고 가까이 붙으면 일본군의 칼과 창 같은 짧은 무기를 막기도 어렵다.

그래서 싸우기만 하면 달아나고 무너지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명나라 사람도 우리 군대에 무기가 없다고 비웃었다

최근 오가는 명나라 사람들도 우리 군대가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쓸 만한 무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무기가 있으면서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나는 화차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매우 편리하고 적을 제압하기 좋은 무기였다.

그런데 난리가 난 뒤 거의 쓰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안주에서 화차 스물두 대를 찾아 고쳐 쓰다

나는 안주에 머물면서 화차 스물두 대를 찾아냈다.

기존 구조 가운데 불편한 부분을 조금 고쳤다.

그러자 끌고 움직이기가 훨씬 쉬워졌다.

화차 한 대마다 작은 화포 열다섯 문가량을 싣게 했다.

한꺼번에 쏘면 수십 발이 동시에 터지는 것과 같았다.

들판에서 이런 화차를 사용하면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화차 백여 대를 만들어 사방으로 늘어놓다

이런 화차를 백여 대 만들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화차를 사방으로 늘어놓는다.

그 사이사이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배치한다.

화차와 사수가 서로 의지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높은 곳과 낮은 곳, 왼쪽과 오른쪽을 서로 가리면서 움직인다.

일본군이 아무리 많아도 함부로 가까이 오기 어렵다.

일본군이 총을 쏘더라도 사수들은 화차를 방패처럼 이용할 수 있다.


의주에 있는 화차와 장인을 전선으로 보내게 하다

나는 이 방법을 도원수와 순찰사에게 이미 알렸다.

그들도 실제 전투에 써 보고 싶어 했다.

장인들을 모아 화차를 수리하고 새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수량이 너무 적었다.

의주에는 화차가 비교적 많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것들을 빨리 가져오게 해야 한다.

안주에서 고친 방식대로 다시 손보면 된다.

필요한 작은 화포가 부족하면 다른 종류의 작은 화기와 화살을 함께 섞어 써도 된다.

의주에는 이 일에 밝은 사람과 화포 장인도 있다고 들었다.

그들을 모두 빨리 군대 앞으로 보내 전투에 쓰게 해야 한다.

이 일은 원래 내가 맡은 직무 밖의 일이지만 나라의 존망과 관계되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의 백성이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내 직무와 직접 관계없는 일이지만 서쪽 길의 사정도 너무 심각해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여러 고을이 크게 무너졌다.

장정은 거의 모두 전쟁터나 부역에 나갔다.

남아 있는 사람은 늙고 약한 사람이 몇 명뿐인 고을도 많았다.

그런데 군사 보고를 전하는 사람과 장수, 사신, 여러 관리가 밤낮없이 이 길을 오갔다.

이들을 먹이고 재우며 말을 내주는 부담이 남은 백성에게 모두 돌아갔다.


백성의 말을 강제로 끌어 쓰는 폐단

피란한 선비나 백성도 길을 가려면 역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역에서 쓸 말이 부족했다.

그러자 백성의 말을 강제로 끌어다 쓰는 일이 생겼다.

어떤 역에서는 앞 역에서 끌어온 말을 다음 역까지 또 몰고 갔다.

말이 부족하면 다시 민간의 말을 빼앗았다.

어떤 사람은 자기 물건을 실어 준 뒤 말이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백성은 더 이상 견딜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긴급한 군사 보고가 생기더라도 제때 전달할 수 있겠는가.

서쪽 지방에 또다시 큰일이라도 생긴다면 실로 두려운 일이다.

조정에서 빨리 대책을 세워 함부로 민간의 말을 끌어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옛날에는 전쟁이 나면 산성을 고치고 백성을 들여보냈다

우리나라의 옛 역사를 살펴보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산성을 고쳤다.

백성을 성 안으로 모았다.

곡식을 안에 쌓았다.

그리고 험한 지형에 기대어 적을 막았다.

그래서 적이 아무리 여러 지역을 휩쓸어도 한 도 안에 끝까지 지켜 온전한 고을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하늘이 만든 천연 요새가 있어도 버려 둔다.

곡식 창고와 무기는 모두 적에게 내준다.

백성은 산골짜기로 제각기 도망가 손 한번 써 보지 못한 채 일본군에게 죽는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평양 가까이에 일본군이 있으니 산성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

평양의 일본군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주변 고을들은 겁을 먹고 거의 텅 비었다.

혼란을 틈타 도둑이 생길 걱정도 있었다.

평안도 안에는 용강과 자산을 비롯해 험하고 지키기 좋은 산성이 여러 곳 있다고 들었다.

안주 이북 여러 고을에도 산성이 있다.

각 고을 수령에게 명령하여 관청의 곡식과 중요한 물건을 산성으로 옮기게 해야 한다.

가능하면 백성도 함께 들어가 지키도록 해야 한다.

황해도의 서흥 등 여러 곳과 다른 도의 지킬 만한 산성에도 같은 명령을 내려야 한다.

이것은 지금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일본군은 우리 땅의 곡식을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내가 앞선 장계에서도 산성 문제를 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먼 바다를 건너온 뒤 이미 여러 달 동안 우리 땅 깊숙이 머물렀다.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가져온 곡식만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겠는가.

결국 우리나라에서 얻은 곡식으로 먹고 버틴 것이다.

만약 평양에 쌓인 곡식이 전혀 없었다면 아무리 성이 튼튼해도 어떻게 오래 버틸 수 있었겠는가.


일본군이 우리가 곡식을 거두어 놓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최근 일본군은 오랫동안 깊숙이 들어온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병력을 모아 서쪽으로 내려오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속셈을 누가 알겠는가.

혹시 우리가 공적인 곡식과 백성의 곡식을 열심히 거두어 길목마다 쌓아 놓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진격하면서 그것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닌지 알 수 없다.

군대가 남의 나라에 들어갔을 때 가장 좋은 일은 현지의 곡식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본적인 점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


평양 주변의 익은 곡식을 일본군이 날마다 가져갔다

평양 주변 수십 리에는 익었지만 아직 거두지 못한 곡식이 많았다.

일본군은 날마다 밖으로 나와 그것을 거두었다.

수레에 가득 싣고 성 안으로 돌아갔다.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지 않았더라면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일본군이 곡식을 싣고 돌아갈 때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일본군이 이처럼 마음대로 곡식을 빼앗지는 못했을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관청 창고의 곡식이었다

하지만 들판의 곡식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순안과 숙천, 평양 가까운 고을에서는 지금도 국가에서 거두어들이는 곡식을 관청 창고에 조금씩 넣고 있었다.

안주 이북 여러 고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곡식을 지킬 제대로 된 군사와 방어 시설은 거의 없었다.

만약 앞선 전투 때처럼 우리 군사가 한 번 더 무너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애써 거둔 곡식으로 일본군을 배불리 먹이는 꼴이 된다.

적은 그 힘으로 다시 북쪽으로 쳐올라올 것이다.

생각할수록 두려웠다.


가장 튼튼한 산성에 곡식과 백성을 함께 들여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평안도 안에서 가장 튼튼한 산성을 빨리 골라야 한다.

그 고을과 주변 고을의 곡식을 그곳으로 옮긴다.

백성도 함께 들어가게 한다.

유능한 장수 한 사람을 특별히 정해 끝까지 지키게 한다.

산성이 없는 지역이라면 가까운 바닷가나 섬 가운데 지키기 좋은 곳을 찾아야 한다.

그곳에 임시 창고라도 지어 곡식을 옮겨 놓는다.

위급하면 백성도 섬으로 들어가 피하게 한다.


목미도 같은 섬을 이용하는 방법

목미도라는 섬은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고 섬 안이 넓으며 산에 절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섬이 남쪽에 있었다면 마땅히 군사를 두어 지키는 요새로 삼았을 것이다.

서쪽에서는 바다 쪽 방어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활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바닷가의 곡식을 이런 섬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다.

위급하면 백성을 섬에 들어가게 하고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는 배를 이용해 다시 육지로 나오게 할 수 있다.

백성과 곡식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다.

지금은 나라의 형편이 이처럼 위급하다.

한 가지라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빨리 해야 한다.

형세가 급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결국 피할 곳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군량 마련과 일본군의 형편을 다시 보고하다

명나라 군대가 나올 날짜는 여전히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정주와 안주 등 길목에는 쌀과 콩을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여 명의 군사와 말이 겨우 며칠 먹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명나라 군사가 수만 명씩 온다면 반드시 부족할 것이다.

다행히 가을 곡식이 막 익었기 때문에 급히 거두면 어느 정도는 더 마련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평양을 빨리 되찾아야 했다.

그래야 황해도 이남으로 계속 진격해 일본군을 몰아낼 수 있다.


일본군 역시 오랫동안 깊숙이 들어와 지친 상태였다

최근 일본군은 순안 가까운 영유 등지까지 나와 날마다 집을 불태우고 곡식을 약탈했다.

그 피해가 매우 심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적국 깊숙이 들어온 고립된 군대였다.

이미 몇 달이 지났다.

밖으로 나와 약탈하는 일본군의 기운도 전처럼 강하지 않았다.

우리 장수들이 군사를 이끌고 길목마다 복병을 두었다가 좋은 기회를 잡아 계속 공격한다면 적의 세력은 자연스럽게 약해질 것이다.

그런데 각 지역 장수와 수령은 서로 눈치만 보면서 감히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백성만 죽고 시체가 들판에 널려 있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명나라 대군이 빨리 와 일본군을 쓸어버릴 날만 기다릴 뿐이었다.


사방의 잘못된 군사 조치를 바로잡아 달라고 올린 글

일본군의 기세가 아직 거셌다.

나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

최근 오가는 사람들에게 각 지방의 형편을 들어 보니 잘못된 조치가 너무 많았다.

그대로 둘 수 없어 몇 가지로 나누어 아뢰었다.


장수와 관리가 정예병을 자기 호위에만 쓰는 잘못

옛날 중국 군대에서는 군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날랜 사람을 골라 장수 가까이에 두었다.

그러나 이것은 장수 혼자 살기 위해 정예병을 모아 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최근 경기 지방의 감사와 수령 가운데에는 도 안에서 가장 좋은 군사를 자기 주위에 모두 모아 놓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들을 자기 호위병이나 군관이라 부른다.

자기 몸과 가족만 지키게 한다.

평소 여러 고을을 오갈 때에는 백성에게 먹을 것과 필요한 물건을 요구한다.

정작 일본군이 나타나면 싸우지 않고 몇십 리 밖으로 먼저 달아난다.


관리가 정예병을 빼가면서 마을의 방어 조직이 무너졌다

광주와 수원, 가평, 고양 같은 곳에서는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방어대를 만들었다.

복병을 두어 일본군을 공격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관리들이 쓸 만한 사람을 모두 자기 곁으로 끌고 갔다.

결국 마을 사람은 흩어지고 일본군을 공격할 사람이 없어졌다.

관청과 마을은 차례로 무너졌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조정에서 엄중한 명령을 내려 앞으로 다시 이런 잘못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경기 군사를 세 방향으로 통합해야 한다

경기 지역에는 장수가 너무 많아 군사들이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여러 장수 가운데 고언백은 비교적 맡길 만하다고 보았다.

양주와 영평, 가평, 포천 등지의 군사를 고언백에게 맡겨 서울 동쪽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좋다.

고양과 교하 등 서울 서쪽에 있는 군사는 또 다른 장수 한 사람에게 통합해 맡긴다.

광주와 과천, 안산, 인천, 부평, 남양, 수원 등 서울 남쪽의 군사 역시 장수 한 명에게 맡긴다.


각 지역에 정예 사수를 나누어 배치하고 서로 연락하게 하다

각 장수는 맡은 지역에서 날쌔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골라 중요한 곳마다 나누어 배치한다.

길목에는 복병을 둔다.

정찰을 철저히 한다.

일본군이 나타나면 즉시 서로 알려 함께 공격한다.

이렇게 하면 일본군이 마음대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군사도 뒤에서 도울 수 있다.

서울을 둘러싼 아군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도성을 되찾을 형세도 차츰 만들어질 수 있다.


강원도의 산척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강원도는 산과 숲이 매우 험하다.

나무가 깊고 빽빽하며 사람이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 많다.

정규군은 많지 않지만 산골에는 활로 짐승을 잡으며 사는 사람이 많다.

이들을 산척이라 부른다.

후한 상을 내걸어 이들을 모집해야 한다.

적이 오가는 길을 정탐하게 한다.

중요한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일본군을 발견하면 활로 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일본군도 감히 마음대로 강원도 안을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다.


일본군을 죽이고 얻은 물건을 관청이 가져가서는 안 된다

산척이나 마을 사람이 일본군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았다면 그것은 모두 싸운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관청에서 거두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일본군을 죽이면 실제로 보상이 돌아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적을 공격하려 할 것이다.


산성을 고치고 피란민을 성 안으로 들이는 것이 가장 급하다

산성을 고치고 백성을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은 지금 가장 급한 일 가운데 하나다.

최근 멀고 가까운 곳의 피란민은 대부분 빈손으로 산과 골짜기에 흩어져 있다.

머물 곳도 없다.

굶고 병들어 죽는 사람이 날마다 셀 수 없이 늘어난다.

이처럼 험한 천연 요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성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산성 여러 곳을 끝까지 지키면 일본군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백성을 산성 안에 들여보내 힘을 합쳐 지키게 하면 일본군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더라도 사람의 마음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 도 안에 끝까지 버티는 성이 여러 곳 생기면 적이 와도 험한 곳에 기대어 싸울 수 있다.

적이 물러갈 때에는 뒤를 쫓아 공격할 수도 있다.

일본군도 함부로 깊숙이 들어오기 어렵다.


부산과 동래의 함락 뒤 생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부산과 동래가 차례로 무너진 뒤 사람들은 성에 들어가 지키는 것은 곧 죽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성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사람이 없는 땅을 걷는 것처럼 마음대로 들어왔다.

그러나 산성과 성을 끝까지 지켜 살아남은 곳도 있었다.

백성에게 성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살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지금 제대로 준비한다면 사람들도 믿고 따를 것이다.


겨울이 닥치기 전에 산성 방어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도 일본군은 물러가지 않았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산속으로 도망간 백성이 어디에 몸을 숨기겠는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게 될 것이다.

관련 관청에서 하루빨리 산성을 수리하게 하고 백성을 들어가 살도록 해야 한다.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일이다.


강원도와 북쪽 지방의 무너진 민심을 급히 수습해야 한다

여러 도 가운데 크게 무너진 곳을 꼽으면 강원도와 경기, 황해도 등이었다.

경기와 황해도에는 그래도 의병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북쪽 지방과 강원도에서는 민심이 크게 무너져 백성이 나라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빨리 수습해야 한다.


강원도의 사냥꾼을 길목마다 매복시키다

강원도의 산림은 깊고 험하다.

사람이 쉽게 지나가지 못하는 길이 많다.

정규군이 적더라도 산골에서 맹수를 잡는 사냥꾼은 많다.

이들을 곳곳에서 모집해야 한다.

요충지에 숨어 있게 한다.

일본군이 나타날 때마다 활로 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적은 강원도 안으로 함부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감사와 수령이 먼저 달아나 민심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감사와 수령은 일본군을 만나기만 하면 먼저 달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싸울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 결과 백성도 모두 무너져 흩어졌다.

북쪽 지방과 강원도를 완전히 잃으면 경기의 일본군과 경상도의 일본군이 쉽게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추격하는 우리 군사가 하나도 없다면 일본군은 경상도에 있어도 마음대로 다른 지역으로 움직일 수 있다.

나라의 위기가 이 정도인데 그대로 둘 수 없다.


서울 동쪽과 서쪽, 남쪽 군사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경기의 군사는 세 방향으로 다시 조직해야 한다.

서울 동쪽에서는 양주, 적성, 포천, 영평, 가평 등의 군사를 한 장수가 통솔한다.

서울 서쪽에서는 강화와 고양, 교하 등의 군사를 한 장수가 통솔한다.

서울 남쪽에서는 광주와 과천, 안산, 수원, 남양 등지의 군사를 또 한 장수가 맡는다.

세 방향의 군사가 서로 소식을 주고받고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강원·충청·전라의 군사와 의병까지 연결해야 한다

강원도 군사는 경기 동쪽 군사와 합친다.

충청도와 다른 서쪽 지역의 군사는 경기 서쪽 군사와 연결한다.

충청도 군사와 의병, 남쪽에서 올라오는 군대는 경기 남쪽 군사와 힘을 합친다.

세 방향에서 일본군을 압박한다.

좋은 기회가 생기면 정예병을 골라 여러 길로 보내 기습한다.

그러면 밖으로 나온 일본군을 공격하기 쉬워진다.

한양 안에 있는 우리 백성 가운데에도 안에서 호응하려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무능한 경기 감사를 비판하다

경기 감사는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적을 칠 계책을 세우지 않았다.

도 안의 장정을 모아 자기 호위병과 군관으로 삼았다.

자기 몸과 가족을 지키는 데 사용했다.

일본군이 나타나면 몇십 리 밖으로 먼저 달아났다.

평상시에는 관청을 드나들며 백성에게 필요한 물건을 요구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위급한 나라를 맡을 수 있겠는가.


전투도 하지 않고 달아난 관리에게 다시 벼슬을 주는 문제

황해도의 전 감사 가운데에도 중요한 지역을 잃고서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임금을 돕기 위해 군사를 이끌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튼튼한 성을 버리고 일본군이 오기도 전에 배를 타고 달아났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데 감사 자리에서 물러난 뒤 오래지 않아 다시 순찰사와 중요한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

사방에서 이 일을 들으면 조정의 상과 벌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는 매우 두려웠다.

나라의 기강에 관계된 일이므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강원 감사도 적임자가 아니면 바꾸어야 한다

강원도의 감사 역시 큰일을 처리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군에게 붙잡혀 있는 백성과 장인 가운데 쓸 만한 사람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화포와 수전, 활과 화살 등 여러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본군에게 그대로 빼앗긴 채 둘 수 없다.

그들이 빠져나올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적진 안에서 우리에게 호응하려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주어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이것 역시 지금 매우 급한 일이다.


각 도의 장수를 줄여야 한다

각 도에 장수가 너무 많았다.

장수가 많으면 명령도 여러 갈래로 나온다.

백성은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모른다.

피해만 생기고 실제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능력 없는 장수를 빨리 줄여야 한다.

모집관 같은 이름으로 사람을 두었어도 뚜렷한 성과가 없다면 당분간 없애는 것이 좋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재 가장 급한 일은 백성과 군사의 마음을 격려해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공적인 군사든 천한 신분의 사람이든 일본군을 죽인 자가 있다면 반드시 후하게 상을 주어야 한다.

공을 세우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상을 아껴서는 안 된다.

상을 아끼다가 사람의 마음을 잃는 것이 더 큰 손해다.

옛말에도 큰 상 아래에는 반드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전리품을 관청에서 빼앗는 잘못을 금하다

강원도 등지에서는 백성이 일본군을 죽인 뒤 얻은 물건을 예전의 전리품처럼 관청에서 거두는 일이 있다고 했다.

수령이 감사에게 보고한 뒤 모두 가져간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백성이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소나 말을 감사가 자기 물건처럼 여기고 아는 사람에게 주었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러니 백성이 다시 일본군을 죽이려 하겠는가.

이보다 잘못된 일이 없다.


일본군을 죽여 얻은 물건은 모두 그 사람의 것으로 인정하다

조정에서 널리 알려야 한다.

누구든 일본군을 죽이고 얻은 물건은 모두 그 사람에게 준다.

관청에서 거두지 못하게 한다.

남도 빼앗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을 죽이는 일이 실제로 자기 가족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지에서 백성이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다.

적의 세력도 조금씩 약해질 것이다.


군사의 마음은 큰 물건보다 진심으로 위로해야 한다

지금 나라에서 얻어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옛날 훌륭한 장수가 군사를 위로한 일을 보면 큰 물건을 많이 주는 데에만 뜻이 있지 않았다.

작은 은혜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사는 특별히 위로해 주어야 한다.


의병과 마을에서 스스로 싸운 사람에게 왕의 뜻을 전하다

강화도와 다른 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의병에게는 오가는 관리를 보내 임금의 뜻을 특별히 전해야 한다.

나라가 그들의 수고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마을에서 스스로 일본군을 붙잡거나 죽인 사람도 해당 관청에서 이름과 공을 하나하나 기록해 조정에 보고하게 한다.

그 공에 따라 상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욱 힘을 낸다.


일본군 숫자가 늘어난 까닭에는 우리 백성이 들어간 것도 있었다

최근 일본군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백성이 일본군에 들어간 경우도 매우 많았다.

금산 전투에서도 일본군 진영에서 화살이 비처럼 날아왔다고 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군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쏜 화살이라는 말도 있었다.

일본군은 붙잡은 우리 백성 가운데 건강하고 힘센 사람을 골랐다.

머리 모양을 바꾸고 일본군처럼 꾸며 군사로 부렸다.


붙잡힌 백성에게 돌아올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일본군에게 끌려간 백성도 달아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군 진영으로 돌아왔다가 일본군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했다.

그 때문에 차라리 일본군에게 붙어 그들의 힘을 도와주는 사람까지 생겼다.

실로 매우 한탄스러운 일이다.


일본군 진영에서 돌아오는 백성은 죄를 묻지 않는다고 알려야 한다

별도의 규정을 만들어 곳곳에 알림문을 붙이는 것이 좋다.

일본군 진영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돌아오는 사람은 전에 있었던 일을 묻지 않는다.

죽이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일본군을 죽이고 돌아오는 사람이나 적의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는 더 큰 상을 준다.

이렇게 돌아올 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억지로 일본군 안에 있는 우리 백성이 마음을 돌려 돌아올 수 있다.


수전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전쟁이 처음 일어났을 때 생각이 짧은 사람들은 말했다.

“우리에게는 바다 싸움이 불리하니 굳이 바다에서 일본군과 싸울 필요가 없다. 일본군이 배를 타고 와서 마음대로 육지에 내리게 두어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 일본군이 마음대로 육지에 올라온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리는 직접 보았다.

전라도 수군은 아직 비교적 강했다.

그러나 경상도 수군은 크게 무너져 거의 남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지금처럼 아무 준비가 없다면 올해와 같은 일을 다시 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위급한 만큼 다른 지출을 줄이고 수군에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은 나라가 매우 위급하다.

다른 일을 따질 여유가 없다.

모든 힘을 전쟁 준비에 쏟아야 한다.

남쪽 세 도에서 바칠 공물과 다른 지출 가운데 당장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이고 그 재원을 군사 준비에 돌리는 것이 좋다.

이런 뜻을 해당 일을 맡은 신하들에게 미리 분명히 알려야 한다.


겨울 동안 전선 백여 척을 다시 만들다

올겨울 적이 물러난 곳에서 판옥선과 전선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모두 합쳐 백여 척 이상은 준비해야 한다.

배를 만들 수 있는 곳마다 목재와 장인을 모아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다음 해 봄이 된 뒤에야 배를 만들려고 하면 늦는다.


수전에 익숙한 장수를 골라 바다 입구를 지키게 하다

배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바다 싸움을 잘 아는 장수를 골라 수군을 맡겨야 한다.

평소 수군의 군량과 장비를 마련하는 데 쓰던 재물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고 전선과 수군을 유지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새로 마련한 배와 군사를 바다 입구에 미리 두어 일본군이 다시 건너오는 데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해야 효과가 있다.

적이 이미 바다를 건너온 뒤에야 서둘러 배를 만들고 군사를 모아서는 늦는다.

무슨 일이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지역의 군사를 맡은 신하라면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일곱째 권 끝

 

 

 

 

 

 

징비록 제8권

일본군을 토벌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아뢰다

지금 나라의 형편을 보면 우리는 손을 묶은 채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오직 명나라 구원군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만약 명나라 군대가 제때 오지 않는데 일본군의 기세가 다시 강해지면 무엇으로 막겠는가.

날씨는 이미 추워지고 있다.

사방의 백성은 산과 골짜기로 흩어졌고 마을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떠도는 사람도 많다.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내가 살펴보니 일본군이 처음부터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적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장수가 부족했고 군사들은 훈련되지 않았다.

싸움터에 나가 힘껏 싸우지 못한 채 적의 모습만 보고 달아났기 때문에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 부족한 생각이나마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몇 가지로 나누어 아뢰고자 한다.


평양의 일본군이 서쪽으로 나오면 세 방향에서 함께 공격해야 한다

평양의 일본군이 병력을 합쳐 서쪽으로 내려온다면 우리 군사도 미리 공격할 방법을 정해 두어야 한다.

지금 평양 동쪽에는 우리 군사가 있고, 평양 서쪽에도 여러 고을의 군사가 있다.

김억추가 거느리는 수군은 평양의 서남쪽에 있다.

순안의 군사는 평양 북쪽에 있다.

이 군사들이 미리 날짜와 신호를 정해 두어야 한다.

일본군이 서쪽으로 나오면 세 방향의 군사가 동시에 공격한다.

그리고 별도로 정예병을 뽑아 적의 뒤쪽으로 돌려보내 퇴로를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일본군이 마음 놓고 곧장 서쪽으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순안의 군사도 정예병을 골라 옆에서 공격하게 하고, 밤에는 기습을 해야 한다.

또 여러 곳에 가짜 군대를 배치하여 적이 우리 병력이 실제보다 훨씬 많다고 여기게 해야 한다.

각 부대가 서로 연락하면서 나아가고 물러난다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일본군이 온다는 소리만 들으면 군사들이 다시 흩어져 달아난다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소용이 없다.


평양의 일본군이 적었을 때 좋은 공격 기회를 놓쳤다

일본군이 평양을 점령한 지 이미 몇 달이 지났다.

전달까지만 해도 성 안에 있는 일본군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공격하기 좋은 기회였다.

평양성 서쪽과 북쪽에는 산이 가까이 있어 우리 군사가 비교적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일본군도 그쪽을 주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수군을 밤중에 몰래 대동강으로 올려보냈다면 좋은 작전이 되었을 것이다.

배에 불화살과 화약 무기를 많이 싣고 일본군이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들어가 갑자기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장수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기회를 놓쳤다.

뒤늦게 수군을 준비했을 때에는 일본군도 이미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명나라 장수와 일본군 사이에 약속까지 생겨 우리 군대가 마음대로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군사를 쓰는 일은 적에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적은 준비할 시간을 얻고 우리 군사의 기세는 떨어진다.

각 장수에게 이런 사정을 알려 상황을 살피다가 기회가 오면 공격하게 해야 한다.


일본군과 싸우려면 무엇보다 무기부터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무기다.

우리나라 군사와 일본군이 싸워 온 모습을 비교해 보면 장단점이 분명하다.

일본군이 가장 잘 쓰는 것은 조총이다.

빠르게 돌진하는 것도 잘한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칼과 창을 들고 싸운다.

반면 우리 군사가 제대로 쓸 수 있는 무기는 활과 화살이 거의 전부다.

활은 수십 걸음 안에서 제대로 맞혀야 큰 힘을 낸다.

그런데 일본군의 총알은 수백 걸음 밖에서도 날아와 사람의 몸을 뚫는다.

멀리서 싸워도 우리가 불리하다.

일본군이 가까이 달려들어 칼을 휘두르면 우리 군사는 더욱 버티지 못한다.

이런 형편에서 어찌 쉽게 이길 수 있겠는가.


명나라 장수들도 조선군에 무기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최근 명나라 장수들이 여러 군영을 오가면서 우리 군대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조선군에 제대로 된 무기와 장비가 거의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전쟁이 시작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어째서 아직 무기를 충분히 갖추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군사들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거의 빈손으로 적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오래전에 만든 화차를 찾아 다시 고치다

내가 화차를 살펴보니 제대로 사용한다면 매우 편리한 무기였다.

적을 이기는 데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장비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전쟁이 없었던 탓에 거의 쓰지 않았다.

나는 안주와 영변 일대에서 예전에 만들어 둔 화차 22대를 찾아냈다.

그 가운데 쓰기 불편한 부분은 조금씩 고쳐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화차 한 대에는 승자총통이라는 작은 화약 무기 약 15자루를 실을 수 있었다.


화차 백여 대를 만들어 일본군을 향해 한꺼번에 쏘게 하자

이런 화차를 백여 대 정도 만들어 군대 사방에 배치하면 좋을 것이다.

화차 사이사이에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세운다.

이렇게 대열을 짜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지형의 높고 낮음과 적이 오는 방향에 맞추어 움직인다.

일본군과 기병이 가까이 왔을 때 화차들이 한꺼번에 불을 뿜으면 그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화차 뒤에 있는 활잡이는 화차를 방패처럼 이용해 총알을 피할 수도 있다.

보통 방패만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을 것이다.


의주 등지에 남아 있는 화차도 모두 고쳐 전선으로 보내야 한다

의주를 비롯한 여러 곳에도 예전에 만든 화차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것을 급히 찾아내 안주에서 고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수리해야 한다.

승자총통이 부족하면 다른 종류의 작은 총통이라도 대신 실을 수 있다.

각 고을에서 사람을 정해 직접 전선까지 운반하게 해야 한다.

무기는 창고에 쌓아 두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싸움에 써야 한다.


서울을 되찾으려면 경기 일대의 군사를 세 방면으로 나누어야 한다

일본군이 서울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백성들의 마음도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서울을 되찾으려면 주변의 군사를 제대로 조직해야 한다.

양주와 적성, 영평 등지에 있는 군사는 한 장수에게 맡겨야 한다.

강화와 교하, 고양 등지의 군사는 또 다른 장수가 맡아야 한다.

광주와 과천, 금천, 수원, 양천, 용인 등지의 군사도 별도의 장수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

이렇게 크게 세 방면으로 나누어 지휘하게 하는 것이 좋다.


경기 군사와 강원도·충청도·전라도 군사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양주 일대의 군사는 강원도의 군사와 서로 힘을 합칠 수 있다.

서울 남쪽 군사는 충청도 군사와 연결할 수 있다.

강화와 서쪽의 군사는 전라도 군사와 의병 세력과 힘을 합칠 수 있다.

각 군대가 적의 움직임을 서로 알려 주고 작전 날짜와 신호를 미리 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서울과 경기 일대의 일본군을 쓸어낼 수 있다.

형세가 불리해 물러날 때에도 서로 도울 수 있다.

군사에게 의지할 곳이 생기므로 외롭게 떨어져 있다가 겁을 먹고 흩어지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고언백에게 한 방면의 군사를 맡길 만하다

최근 오가는 사람들에게 들으니 양주목사 고언백은 용기와 판단력이 꽤 있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한 방면을 맡겨 볼 수 있을 듯하다.

나머지 장수는 조정에서 잘 골라 보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여러 도에 지휘권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감사와 순찰사, 방어사와 군사를 모집하는 관리 등이 여기저기 따로 명령을 내리고 있다.

군사가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꼭 필요하지 않은 자리는 줄여야 한다.

한 지역에서는 반드시 책임지는 지휘관이 분명해야 한다.


군사를 모았다고 하지만 산속에 숨어 가족만 지키는 사람도 많다

어떤 곳에서는 많은 군사를 모았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이름만 군사일 뿐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 자기 몸과 가족만 지키는 사람이 많다.

일본군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먼저 멀리 도망간다.

적이 지나간 뒤에야 다시 내려와 사람을 모은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처음에는 스스로 모여 고장을 지키려던 백성들까지 모두 실망해 흩어지고 있다.

이것이 지금 매우 큰 문제다.

조정에서는 상과 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실제로 싸우고 공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어야 한다.

사람을 모아 놓고 싸우지 않는 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장수로 쓸 사람을 제대로 골라 지휘권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


황해도의 지휘 체계도 줄이고 정리해야 한다

황해도 역시 감사와 순찰을 맡은 관리, 방어사, 군사를 모집하는 사람 등 여러 지휘관이 뒤섞여 있다.

필요 없는 자리는 줄여야 한다.

특히 중요한 고을의 수령이 능력이 없으면 백성을 수습할 방법이 없다.

해주 같은 중요한 곳은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원망하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으면 군령을 바로 세울 수 없다.


군공에 대한 상을 빨리 내려 장수와 군사의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

나는 종사관 신경진을 보내 김응서가 진을 친 곳과 여러 고을의 군영을 살피게 했다.

군사들의 형편도 위로하고 알아보게 했다.

군사들은 말했다.

“전에 여러 차례 일본군과 싸웠을 때 세운 공을 도원수가 이미 등급을 나누어 조정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결과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세운 군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매우 많았다.

군공을 조사하고 확정하는 일은 관계 관청에서 차례대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군사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상을 받을 사람에게 상이 늦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군사들의 마음을 격려할 수 있다.


죄를 입고 종군하던 평양의 관리 이응을 다시 쓰는 문제를 아뢰다

평양에서 관직을 맡았던 이응은 죄를 입어 벼슬을 잃고 흰옷을 입은 채 군대에 종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힘껏 싸운다는 이름도 얻었다.

우리 군대가 물러날 때에는 홀로 뒤에 남아 후군을 수습했다.

그 덕분에 많은 군사가 살아났다고 한다.

전달에는 평양 백성들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이응을 다시 평양의 관리로 두어 군사 일을 맡기게 해 달라고 청했다.

당시에는 그가 죄를 입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실제로 어떤 공을 세웠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함부로 장계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백성들의 마음이 이와 같고 그가 세운 공도 확인되고 있다.

백성들의 바람을 받아들여 다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다만 다시 벼슬을 주는 것은 임금의 은혜와 관련된 일이므로 나는 들은 사실만 아뢰는 것이다.


심유경과 일본군이 정한 기한이 다가오자 각 장수에게 대비하게 하다

나는 전에 일본군과의 약속 기한이 가까워지면 적이 병력을 더 많이 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해도 방어사 김경로에게 명령을 보냈다.

일본군이 많이 모여 서쪽으로 움직일 경우를 대비하게 했다.

그 무렵 실제로 일본군이 봉산 쪽으로 많이 들어와 서쪽으로 향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심유경이 일본군과 정한 기한은 50일이었다.

9월 1일부터 계산하면 이 장계를 올릴 당시에는 약 11일밖에 남지 않았다.


명나라 군대가 와도 일본군이 이미 많이 모였다면 싸움이 어려워진다

명나라 군대가 정말 50일 안에 온다고 하더라도 일본군이 그 사이 많은 병력을 모아 버리면 물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에서 오가는 사람마다 말이 달랐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멀리 내다보며 걱정하는 사람은 적고 눈앞의 편안함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명나라 조정 안에서도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니 심유경이 말한 것만 믿고 있을 수 없다.


이원익과 의논해 황해도와 평양 주변 장수에게 대비를 명령하다

그때 이원익이 군사 문제를 의논하려고 안주에 왔다.

나는 이원익과 함께 대응책을 의논했다.

평양과 중화의 장수, 황해도의 여러 방어 책임자들에게 연락했다.

일본군이 내려오는 길을 막게 했다.

적이 대동강을 건너려고 하면 모두 건너기를 기다리지 말고 절반 정도가 강을 건넜을 때 공격하게 했다.

강을 건너는 군대는 앞뒤가 갈라지므로 공격하기 좋은 때다.


김억추의 수군도 대동강으로 올라가 육군과 함께 싸워야 한다

김억추가 이끄는 수군도 물길을 따라 대동문 가까이 올라가게 해야 한다.

육군과 작전 시기를 맞추어 함께 공격한다.

그러나 여러 장수가 너무 멀리 흩어져 있어 갑자기 병력을 모두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50일의 기한이 지나 일본군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대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내려오면 그때에는 준비하기 늦을 수도 있다.


명나라 군대를 위해 모은 곡식이 오히려 일본군의 식량이 될까 두렵다

내가 더욱 걱정하는 일이 있다.

일본군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필요한 음식을 모두 조선에서 빼앗아 먹고 있다.

한편 우리는 명나라 군대를 먹이기 위해 여러 고을에서 백성의 곡식을 거두어 길가에 쌓아 두었다.

아직 창고 안에 넣지 못한 곡식도 많다.

만약 뜻밖의 일이 생겨 일본군이 갑자기 내려오면 이 군량을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우리가 명나라 군대를 먹이려고 모은 곡식이 오히려 일본군의 군량이 될 수 있다.

생각할수록 두렵다.


이번 겨울 안에 전쟁을 끝내지 못하면 내년에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어렵다

만약 이번 겨울 안에 일본군을 깨끗이 몰아내지 못한다면 내년 봄에는 나라의 재정이 완전히 바닥날 것이다.

백성의 힘도 다할 것이다.

군사를 다시 모으고 먹일 방법도 없게 된다.

나라를 되찾을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고 피눈물이 나는 심정이다.

그래서 내 군관 한 사람을 보내 명나라 군대의 소식을 직접 알아오게 했다.

언제 출발하고 언제 도착하는지 빨리 확인하게 했다.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화살을 만들 대나무를 남쪽 세 도에서 급히 가져와야 한다

우리 군대의 화살도 크게 부족했다.

나는 전부터 남쪽 세 도에서 화살대를 만들 대나무를 가져오도록 요청했다.

그것이 실제로 출발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관계 관청에서 급히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여러 진영에서 가지고 있는 화살은 몇백 개 정도뿐이라는 말이 있었다.

하루 전투에도 쓰기 어려운 양이다.

군사가 백만 명이 있어도 화살이 없다면 모두 손을 묶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작은 일 하나라도 늦추어서는 안 되는 때다.


폭발 무기를 사용할 장치까지 함께 전선으로 보내야 한다

전투에서는 폭발하는 화약 무기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각 고을에 보관된 것 가운데에는 제작 방법이 잘못되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쏘아 보낼 발사 장치가 없는 것도 있었다.

의주 등지에는 비교적 제대로 된 것이 10여 개가량 남아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찾아내야 한다.

서울에서 쓰던 것과 같은 발사 장치도 함께 보내 전선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평양성 안의 일본군 진영 수를 조사하다

평양 주변을 지키는 장수가 보고했다.

전투 중 일본군에게 붙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에게 성 안의 사정을 물었다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평양성 안에는 큰 깃발을 세운 일본군 진영이 7곳 있었다.

큰 깃발이 없는 진영은 19곳이었다.

작은 진영은 한곳에 20명 남짓이 있거나 많아도 50명 정도였다고 한다.

큰 깃발이 있는 진영은 적어도 300명이나 400명 정도였고, 많은 곳은 정확한 숫자를 셀 수 없었다.

진영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었다.


황해도 길을 따라 서울 쪽 일본군이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다

황해도에서 온 사람이 말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일본군이 황주와 여러 지역을 지나 계속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에 순안에서도 일본군이 늘어나는 형세를 자세히 보고하고 명나라 군대를 빨리 보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50일의 기한이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고 다시 보고하다

이보다 뒤에 다시 보고할 때에는 심유경이 정한 50일의 기한이 거의 끝나 있었다.

9월 1일부터 계산하면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명나라 군대가 정말 약속한 기간 안에 온다 해도 일본군의 수가 이미 많아져 싸우는 데 상당한 힘이 들 것이다.

그런데도 명나라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말은 여전히 제각각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멀리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은 적고 당장의 편안함을 구하는 사람만 많았다.

명나라에도 서로 다른 주장이 어찌 없겠는가.

심유경의 계획이 실제로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었다.


기한이 지나 일본군이 명나라의 약속 위반을 구실로 삼을 수 있다

50일이 지난 뒤 일본군이 오히려 명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하며 대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그때 명나라 군대가 출발한다면 이미 늦을 것이다.

일본군은 조선에 들어온 뒤 우리나라의 곡식에 의존해 살아왔다.

우리는 명나라 군대를 먹이기 위해 백성의 곡식을 거두어 길가에 쌓아 두고 있다.

뜻밖의 일이 일어나면 이 곡식을 어떻게 수습할지 정말 막막하다.


화살 부족을 다시 한번 급히 호소하다

나는 화살 문제도 여러 차례 장계로 올렸다.

남쪽 세 도에서 화살대를 만들 대나무를 가져오게 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현재 여러 진영의 화살은 거의 바닥나고 있다.

많아도 몇백 개 정도 남았을 뿐이다.

하루 싸움에도 부족하다.

군사가 아무리 많아도 쏠 화살이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라가 위태로운 때이니 모든 일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훗날 후회해서는 안 된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할 때 여러 길로 나누어 움직이는 방안을 논하다

군량을 맡은 관리에게서 명나라 군대를 여러 길로 나누어 평양으로 보내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계획에 대해 미리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군대를 나누어 평양을 공격한다면 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일부 군대는 큰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평양 동쪽으로 돌아 대동강 동쪽으로 나올 수 있다.

큰 군대는 순안으로 곧바로 내려와 서로 협공하는 형세를 만드는 것이 좋다.


산길을 이용하면 군량을 공급하기 어렵다

반면 개천과 순천, 은산, 성천, 삼등 같은 산간 지역을 지나가는 길을 이용한다면 문제가 크다.

그곳은 큰 군대가 다니기에 불편한 길이다.

또 군대가 지나가는 여러 고을의 창고에 있던 곡식은 이미 다른 곳으로 힘겹게 옮기고 있었다.

남은 것이 거의 없다.

그 지역에는 처음부터 군량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명나라 대군이 갑자기 그 길로 움직이면 먹일 곡식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명나라 군대가 어느 길을 사용할 것인지 반드시 미리 정확히 알아야 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군대가 움직일 길과 지급량을 확정해야 한다

겨울이 이미 가까워졌다.

명나라 군대가 출발할 날짜와 이동 경로를 빨리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군량과 말먹이를 준비할 수 있다.

전에 보고했던 사람과 말에게 하루 지급할 양도 명나라 측에 곧바로 알려 미리 합의해야 한다.

또 명나라 군대가 나아갈 길을 하나의 지도로 그려 비변사에 보내 두어 참고하게 해야 한다.


섬 지역을 조처하는 일에 관한 장계

이 대목은 원문에 장계 제목만 실려 있고 자세한 본문은 다른 기록을 보라고 되어 있다.


안주에 수비를 도울 장수를 보내 달라는 장계

이 장계 역시 원문에는 제목만 있고 자세한 내용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황해도 길목의 군량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명나라 군사를 먹일 군량은 평안도에서 계속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을 되찾은 뒤 명나라 군대가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면 황해도에서부터 큰 문제가 생긴다.

황해도와 경기 북쪽의 여러 고을은 제대로 보전된 곳이 거의 없다.

백성의 힘도 전쟁 때문에 크게 소모되었다.

대군이 남쪽으로 내려온 뒤에야 군량을 마련하려 하면 절대로 제때 준비할 수 없다.

큰일을 그르칠까 걱정된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황해도 산성과 튼튼한 곳에 곡식을 모아 두게 하다

나는 이미 황해도 관찰사와 순찰을 맡은 사람에게 공문을 보냈다.

각 고을에서 거두어 둔 곡식을 길가에 아무렇게나 쌓아 두지 말고 도 안의 산성이나 서흥을 비롯한 튼튼한 곳에 모아 두게 했다.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앞으로 군량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강화도에 쌓인 많은 군량이 없어질까 걱정하다

강화도에도 충청도에서 배로 가져온 군량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원문에는 그 양이 수천 석에 이르는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그곳의 군량을 맡던 사람이 자리를 떠난 뒤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부족한 듯했다.

또 임금이 머무는 곳으로 여러 사람이 오가면서 군량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 많은 곡식이 중간에서 없어지거나 함부로 쓰일까 염려된다.


강화도의 군량만 맡을 책임자를 따로 정해야 한다

조정에서는 강화도에 있는 신하 가운데 계산과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 한 명을 골라야 한다.

그에게 군량을 전적으로 맡기고 창고에 넣는 일과 운반하는 일을 모두 책임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곡식이 중간에서 새거나 흩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군량을 마련하는 방법과 명나라 군사의 지급량을 다시 정하다

군량 담당자가 올린 계획을 각 고을에 알렸다.

어떤 지역 백성들은 스스로 백미 약 200석을 모아 바쳤다.

나는 먼저 나서서 일을 주도한 사람에게 임시로 벼슬을 내리는 방식으로 상을 주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부역을 줄여 주는 등의 보상을 하게 했다.

또 길가의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곡식을 거두었다.

이렇게 모은 곡식이 모두 500여 석에 이르렀다.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계속 곡식을 마련하고 있었다.


백성에게 더 이상 지나친 부담을 주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올해는 바닷가 여러 고을이 일본군 때문에 두 배로 피해를 입은 곳도 있었다.

산간 지역도 전쟁과 군사 동원 때문에 매우 지쳐 있었다.

이미 온갖 군역과 운반 일을 감당했다.

그런데 국가에 돌려줄 곡식과 세금 외에도 계속 별도의 곡식을 거두면 백성이 버티지 못할까 걱정된다.

군량을 마련해야 하지만 백성의 힘도 남겨 두어야 한다.


명나라 병사 한 사람에게 주는 곡식을 하루 3되에서 2되로 줄이자

전에 명나라 군사에게 지급한 식량은 한 사람에게 하루 3되였다.

말 한 마리에는 콩 한 말을 주었다.

그런데 이 양은 너무 많아 우리나라가 오래 감당하기 어렵다.

사람 한 명에게 하루 2되를 지급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말먹이도 절반으로 줄여 생콩 5되 정도를 지급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날마다 곡식이 조금씩 남는다.

남는 양을 다른 지역의 군량으로 돌릴 수 있다.


지급량을 줄이려면 명나라 장수에게 먼저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마음대로 줄이면 안 된다.

명나라 군대가 의주에서 출발할 때 통역관을 시켜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명나라 장수와 지급 기준을 미리 정해야 한다.

그 내용을 군대가 지나가는 모든 고을에 똑같이 알려야 한다.

그래야 한 지역에서는 많이 주고 다른 지역에서는 적게 주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명나라 군사 6만이나 7만 명이 오면 조선 군량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나는 평안도 여러 고을의 창고에 남은 곡식을 힘껏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명나라 군대가 6만이나 7만 명에 이른다면 도저히 조선의 곡식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심유경이 보낸 보고 가운데에는 명나라에서 쌀과 다른 식량을 가져와 조선의 부족한 양을 보태려는 듯한 말도 있었다.

그러나 원문 자체에서도 그 문서의 뜻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고 했다.

따라서 명나라 쪽에 미리 분명히 물어야 한다.

대군이 다 도착한 뒤에야 식량 문제를 놓고 다투어서는 안 된다.


군량 지급을 전담할 유능한 관리를 따로 뽑아야 한다

명나라 군대가 나오면 군량을 지급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한 사람이 여러 곳에서 곡식을 거듭 받아 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조정에서는 계산에 밝고 일을 꼼꼼히 처리하는 관리를 따로 뽑아 이 일을 맡겨야 한다.

기존의 군량 책임자가 자리를 비우거나 일을 할 수 없으면 후임도 빨리 보내야 한다.

여러 사람이 길을 나누어 군량을 관리하게 하면 준비가 끊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겨울이 되어 강이 얼면 부교 문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큰 강에 만들어 놓은 부교도 문제다.

날씨가 추워져 강물이 얼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배를 이어 만든 다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얼음과 물살 때문에 배가 떠밀리거나 부교가 망가질 수도 있다.

이 문제 역시 미리 살펴야 한다.


순안 군대가 이동한 일에 관한 장계

이 대목은 원문에 장계 제목만 있고 자세한 본문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심유경이 정주를 거쳐 안주에 오다

전날 심유경이 명나라 쪽에서 내려와 정주에서 묵었다.

그날 안주로 왔다.

나는 직접 찾아가 안부를 물었다.

심유경은 말했다.

“우리 높은 장수께서 곧 이곳에 오실 것입니다.

대군도 멀지 않아 뒤따라올 것입니다.

나는 먼저 길가의 군량과 말먹이를 조사하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분을 기다리려고 합니다.”


명나라 대군이 언제 오며 말이 몇 마리인지 분명히 알려 달라고 하다

나는 통역관을 통해 심유경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백성은 높은 장수와 대군이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도 힘을 다해 준비할 것입니다.

다만 모든 일을 분명하게 알려 주십시오.

군대와 말이 얼마나 옵니까?

언제쯤 이곳에 도착합니까?

이것을 알아야 필요한 군량과 말먹이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심유경은 명확한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

말의 숫자에 관한 말도 있었으나 원문 OCR이 심하게 깨져 정확한 숫자를 확정하기 어렵다.

그는 자신과 함께 온 사람이 먼저 군량과 말먹이를 조사하고, 뒤에 다른 고위 관리가 와서 다시 살펴볼 것이라는 뜻으로 말했다.


군량 담당자에게 명나라 사람과 함께 창고를 점검하게 하다

나는 즉시 군량을 맡은 관리에게 공문을 보냈다.

명나라에서 군량을 검사할 관리가 실제로 오면 함께 창고를 살펴보게 했다.

명나라 사람의 말과 실제 준비된 곡식의 양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심유경의 움직임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데가 있었다

나는 본래 군사에 어두운 사람이라 사람의 깊은 속셈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예전부터 심유경의 행동을 보며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사람을 구하러 오는 사람과 남에게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같지 않다.

명나라가 일본군을 치려는 이유는 결국 일본군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다.

어찌 오직 우리 조선이 불쌍해서만 군사를 움직이겠는가.

우리가 스스로 할 일을 하지 않고 명나라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겨울이 다가오므로 우리 스스로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최근 여러 진영의 장수와 군사에게 조금씩 싸우려는 마음이 생기고 있다.

겨울도 가까워졌다.

이대로 계속 기다릴 수 없다.

나는 여러 장수에게 무기와 장비를 손질하고 적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도록 명령했다.

정예병을 나누어 대동강의 얕은 여울에도 매복시키게 했다.


평양 일본군의 거처는 불 공격에 약하다는 정보를 얻다

들으니 평양의 일본군은 들어가 사는 집의 벽과 주변을 곡식 줄기와 마른 풀 같은 것으로 막아 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불에 매우 약하다.

불을 붙이는 화약과 불화살을 잘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는 며칠 전 이원익 등과 함께 여러 장수에게 공격 날짜와 방법을 서로 맞추도록 지시했다.


심유경이 다시 돌아오면 공격 계획이 흔들릴까 걱정하다

그런데 심유경이 다시 군사 일에 관여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며칠 동안 기다리는 사이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공격 약속까지 한 장수들이 갑자기 다시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군사 기밀이 새어 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런 큰일을 계속 어정쩡하게 끌고 갈 수는 없다.

명나라 대군이 정말 오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명나라 대군이 정말 오고 있는지 책임 있는 장수에게 직접 확인해야 한다

명나라에서 높은 관리가 이미 출발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 사람에게 물으면 대군의 출발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중대한 일을 계속 소문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명나라의 책임 있는 장수에게 분명히 물어야 한다.

만약 대군이 실제로 곧 온다면 그 말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우리 군사가 스스로 싸울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다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일본군의 형세를 논하고 황해도와 강화도에 길을 막게 하다

전에 일본군이 병력을 늘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군관 김선의를 황해도로 보냈다.

관찰사와 방어사 등에게 명령을 전하게 했다.

황해도 군사는 다른 방어군과 힘을 합쳐 일본군이 서쪽으로 오는 길을 막아야 한다.

강화도에도 급히 소식을 보냈다.

수군을 내려보내 나루와 강을 지키게 했다.

일본군이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을 끊으려는 것이었다.

다른 방어군에도 연락해 여러 진영의 군사가 기회를 보아 적을 공격하게 했다.


김억추의 수군을 밤에 대동강으로 올려보내 불 공격을 하게 하다

대동강 여러 곳은 일본군의 방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김억추에게 수군을 거느리고 밤에 곧바로 강을 올라가게 했다.

배에 불을 뿜는 화포와 다른 화약 무기를 많이 준비하게 했다.

대동문을 향해 불을 쏘아 성 안에 불길을 일으키게 하려 했다.

또 미리 한 부대를 문밖에 매복시켰다.

일본군이 불을 피해 어지럽게 밖으로 뛰쳐나오면 배 위에서 활과 화포를 쏘고 육지의 복병이 공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평양은 동남쪽이 열려 있어 수군을 일찍 썼어야 했다

평양은 서북쪽은 지형이 험하지만 동남쪽은 비교적 열려 있다.

따라서 수군을 이용한 공격을 처음부터 빨리 했어야 했다.

잘만 했으면 반드시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장수들이 의심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회를 놓쳤다.


뒤늦게 수군을 보냈지만 일본군만 경계하게 만들고 성과를 내지 못하다

뒤늦게 수군을 보냈을 때에는 일본군이 이미 많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도 장수가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결국 일본군에게 우리의 움직임만 알아차리게 했다.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배 몇 척만 움직이고 돌아온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해서는 전쟁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군율이 무너지고 장수와 군사에게 싸울 마음이 없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군율이 해이해졌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장수와 군사 모두 힘껏 싸우려는 마음이 약하다.

우리 쪽의 패배하는 기운은 날마다 커지고 있다.

반대로 일본군의 기세는 계속 강해지고 있다.

전쟁에 사용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활만 가지고 일본군 조총과 칼을 상대할 수 없다

우리 군사는 활을 가장 좋은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백 걸음 밖에서는 일본군의 총알을 당하기 어렵다.

일본군이 가까이 달려들면 칼과 창을 막을 무기도 부족하다.

군사에게 믿고 싸울 무기가 없는데 어떻게 물러나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전장에서 무너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폭발 무기가 일본군을 공격하는 데 가장 큰 효과가 있다는 보고를 받다

다른 지역에서 온 보고를 가져온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일본군 진영을 공격할 때 폭발하는 화약 무기를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일본군도 그것을 매우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런데 여러 고을에 보관된 물건은 대부분 제작이 잘못되었다.

제대로 날아가지 않아 쓸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지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전선으로 급히 보내야 한다.


명나라 군대가 오는 날짜를 알 수 없어 밤낮으로 걱정하다

명나라 대군이 언제 올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정해진 시기는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군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다.

아침저녁 사이에도 온갖 걱정이 생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이라도 모두 준비해 놓아야 한다.

조정에서도 여러 소식을 모아 서둘러 의논하고 결정해야 한다.

머뭇거리다가 또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


북쪽 지방의 일본군에게 거짓으로 화친을 말하며 시간을 버는 방법도 생각하다

북쪽 지방도 걱정스럽다.

내가 보기에 일이 매우 위급한데 쉽게 쓸 수 있는 계책이 없다.

만약 일본군이 화친을 이야기해 온다면 당장은 적당히 받아 주는 것처럼 하여 그들의 사나운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옛날에도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적과 잠시 화친한 일이 있었다.

내 말이 지나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나라의 큰일이 걸려 있으므로 답답한 마음으로 여러 차례 아뢰는 것이다.


함경도에서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다

함경도에서 보내 온 보고를 전달받았다.

정평과 함흥 부근 여러 지역의 백성이 다시 일어나 일본군과 맞서고 있다고 했다.

한때 일본군의 기세가 매우 강했지만 이제는 함경도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조선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것은 하늘이 백성들의 마음을 일으켜 준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외부 지원군이 오지 않으면 다시 흩어질 수 있다

다만 외부의 군사가 들어가지 않고 그들만 외롭게 싸우게 하면 문제가 된다.

이미 모인 의병이 다시 흩어질 수 있다.

한번 흩어지면 다시 모으기 어렵다.

전쟁에서는 먼저 소문으로 기세를 올린 뒤 실제 군사를 보내는 방법도 있다.


북쪽에 명나라 대군이 왔다는 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굳게 해야 한다

맹산과 양덕 등지에는 이런 소문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 좋겠다.

“명나라 대군이 이미 내려와 이쪽 일본군을 모두 물리쳤다.

평안도 군사도 며칠 안에 북쪽으로 갈 것이다.”

이 말을 퍼뜨리면 북쪽 백성의 마음이 더욱 굳어질 것이다.

강계의 관리 김대현 등이 거느리는 군사도 함흥과 가까운 곳까지 움직여 실제 지원군이 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 좋다.


그렇게 하면 일본군에게 붙었던 백성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함경도 의병은 더욱 기세를 올릴 것이다.

이미 일본군에게 붙었던 백성도 그 기세를 보고 흩어져 우리 쪽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일본군 진영 안에서 호응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한두 달 사이에 일본군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있다.


함경도의 책임자를 지금 바로 교체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함경도의 책임자 가운데 잘못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 지역에 들어가 백성을 모으고 있다.

지금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오히려 일이 어지러워질 수 있다.

당분간 그대로 두고 앞으로 세우는 공을 보아 판단하는 편이 낫다.

북쪽에서 군공을 세운 사람과 처음부터 임금을 수행해 온 사람도 특별히 상을 주고 빨리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백성의 마음을 더욱 격려할 수 있다.

나는 늘 북쪽 지방의 일을 걱정했는데 이런 소식을 들으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장수를 교체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논한 장계

이 대목은 원문에 장계의 제목만 남아 있고 자세한 본문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원문 OCR에서 사람 이름도 크게 깨져 있으므로 이름을 억지로 추정하지 않았다.


명나라 구원군이 출발한다는 형세에 관한 장계

이 대목도 원문에는 제목만 보이고 본문은 다른 기록을 보라고 되어 있다.


24일과 25일에 내려온 명령을 받고 공격 시기를 의논하다

지난달 24일과 25일 조정에서 잇달아 명령이 내려왔다.

나는 같은 날 그 명령들을 받았다.

그 가운데에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공격하는 문제를 잘 의논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도원수와 상의하여 처리하려 했다.

최근 중화와 황주 일대에서는 일본군이 계속 서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 잇달아 들렸다.

일본군의 기세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죽을 각오로 살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이제는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죽을 각오로 싸워 그 속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날짜만 끌면서 기다릴 수 없다.

이것은 특별히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지금 형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달에는 여러 장수가 실제로 진격할 뜻을 보이기도 했다.


장수 교체와 명나라 사람의 왕래 때문에 공격 준비가 또 흔들리다

그러나 그 뒤 일부 지휘관을 바꾸는 일이 있었다.

명나라 장수들이 오고 가며 여러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다시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제 여러 장수는 각자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다시 군사를 정돈하고 작전 약속을 정하는 일을 시작하고 있다.

기회를 보아 움직이는 준비는 반드시 해야 한다.


명나라 군대를 너무 오래 기다려 군사와 백성의 마음이 느슨해지고 있다

내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가을 이후의 상황이다.

여러 지역의 군사와 백성이 날마다 명나라 군대만 기다렸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더구나 심유경이 일본군 쪽에서 돌아오는 날과 우리가 거사를 시작하는 날이 서로 겹치면 또 뜻밖의 일이 생길 수 있다.

걱정이 끝이 없다.


체찰의 명을 받고 적의 형세를 아뢴 장계

이 대목은 원문에 제목만 있고 자세한 본문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군사 명령을 전달하러 간 김석량이 수상한 행동을 하다

전달 18일 무렵 나는 중요한 군사 명령서를 한 장수에게 보내려고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전달했다는 보고도 없었다.

수상하게 생각하여 그 사람의 행방을 조사했다.

그러자 22일이 되어서야 다른 군영에서 문서를 갖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사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자세히 심문하게 했다.


그는 삼화 수군 김석량이었다

그 사람은 삼화 수군에 속한 김석량이었다.

김석량은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공문과 명령서를 원수에게 가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함께 갔습니다.

그러다가 평양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본 장수가 공문을 보고 찢어 버렸습니다.

저는 성 안에서 이틀을 머물렀습니다.

그 뒤 일본군이 준 물건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가 도망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엄하게 여러 차례 심문했다.


김석량은 이미 7월부터 일본군을 위해 움직였다고 자백하다

김석량은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7월 무렵 일본군에게 붙잡힌 뒤 평양성을 계속 드나들었다고 했다.

그와 한패인 조선 사람도 많았다.

삼화의 관청 노비 막동과 평양의 사노비 한룡 등을 비롯해 모두 40여 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일본군의 지시를 받았다.

처음부터 우리나라의 사정을 살펴 일본군에게 알려 주는 일을 했다.


첩자들은 조선군의 모든 진영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이들은 우리나라 여러 진영을 거의 빠짐없이 오갔다.

특히 순안을 자주 드나들었다.

정주와 의주까지 오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군대가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명나라 군대가 어디까지 왔는지도 알아보았다.

군량과 군사의 움직임도 알아냈다.

김석량 역시 방어사에게서 군사 명령을 받은 뒤 그것을 가지고 평양성에 들어갔다.

일본군 장수에게 공문을 보여 주었다.

일본군은 그것을 찢어 버렸다.


일본군은 첩자들에게 물건과 소까지 주었다

일본군은 첩자들에게 물건을 주었다.

한룡 등에게도 값을 치르듯 물건을 주었다.

김석량에게는 소 한 마리까지 주었다고 했다.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 조선군의 상황을 살핀 뒤 평양으로 돌아갈 약속까지 했다.

우리나라의 움직임이 일본군에게 거의 모두 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산과 강, 길의 거리와 군사가 움직일 날짜까지 일본군이 알고 있었다

김석량의 자백을 들으니 놀랍기 짝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본군이 미리 알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산과 강의 형세도 알고 있었다.

길의 거리도 알고 있었다.

우리 군대가 곧장 갈 길과 돌아갈 길도 알고 있었다.

군대가 어느 날 움직이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나는 일본군이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는지 늘 의심했는데 모두 이런 조선인 첩자들이 일본군의 눈과 귀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군 첩자가 아주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다

김석량의 말을 들어 보면 일본군의 첩자는 가까운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우 먼 곳까지 퍼져 있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이번 사건으로 그 실체가 조금 드러났다.

나는 김석량에게서 들은 사람들의 이름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게 했다.

미리 소문이 나면 모두 달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석량을 안주에 가두고 다른 첩자들을 한꺼번에 붙잡으려 하다

우선 김석량을 안주에 가두었다.

그 뒤 다른 사람을 붙잡은 다음 서로의 말을 대조해 자세한 사실을 알아낼 계획이었다.

각 군영에도 즉시 명령을 보냈다.

드나드는 사람을 엄하게 살피게 했다.

수상한 사람이 군사 진영 안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군사 기밀과 직접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었으므로 먼저 급히 보고했다.


김석량을 처형하자 한패들이 흩어지다

며칠 뒤 김석량은 안주성 밖에서 목을 베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 뒤 한패들이 크게 놀라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 대군이 압록강을 건넜다.


첩자를 잡지 못했다면 평양 공격 계획까지 일본군에 알려졌을 것이다

만약 김석량의 일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일본군 첩자들이 명나라 군대가 언제 어디로 움직이는지까지 모두 알아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군은 미리 준비했을 것이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명나라 군대를 상대로 매복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평양을 공격하는 일이 성공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첩자를 막는 일은 전쟁 전체의 승패와도 관계되는 것이었다.


김양서를 안주에 남겨 성을 지키게 하자고 요청하다

나는 전에 안주성을 지키는 문제를 이미 아뢰었다.

평양 북쪽에서 의주 남쪽까지를 살펴보면 안주는 가장 중요한 길목 가운데 하나다.

이곳을 잃으면 다시 버틸 만한 곳이 거의 없다.

안주성은 매우 크고 넓다.

적은 숫자의 군사로 지키기 쉽지 않다.

하지만 곡식은 많이 쌓여 있다.

그리고 지금 큰 군대가 안주 앞에 나가 있다.


앞의 군대가 패하더라도 안주성을 지키면 다시 버틸 수 있다

만약 앞으로 나간 군대가 불행하게 패하더라도 안주성으로 물러나 버틸 수 있다.

따라서 안주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성을 지킬 무기와 여러 장비는 거의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군사 일을 아는 무관 한 명을 얻어 미리 성을 지킬 준비를 시키고 싶었다.

이미 여러 번 이 문제를 아뢰었으나 오랫동안 결정이 내려오지 않았다.

나라가 이렇게 위급한데 일마다 늦어지니 답답했다.


김양서에게 안주 수비 준비를 맡기는 것이 좋겠다

마침 다른 지역 군대와 함께 온 군관 김양서가 있었다.

그는 전에 벼슬을 지낸 사람으로 일을 맡길 만해 보였다.

나는 김양서를 안주성 수비를 돕는 장수로 임명하여 성 지키는 일을 전담하게 하자고 요청했다.

그가 거느리는 군사 가운데 필요한 사람도 함께 남겨 둘 수 있다.


화포 기술자가 거의 없어 전투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뒤 여러 종류의 군인이 흩어졌다.

평안도까지 내려온 화포 기술자는 거의 없었다.

싸움을 앞두고도 필요한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경기 지역 책임자 아래에 서울에서 온 화포 기술자 40여 명이 모여 있으나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가운데 기술이 뛰어난 사람 10여 명을 골라 즉시 전선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심유경과 일본군의 화의에 관한 장계

이 대목은 원문에 장계 제목만 있고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기록을 보라고 되어 있다.


조정에서 공격을 재촉했지만 무턱대고 진격할 수도 없었다

그달 초9일 조정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공격을 빨리하라는 뜻이었다.

여러 차례 같은 재촉을 받다 보니 마치 우리가 일부러 문을 닫고 구원군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까 염려되었다.

14일에도 다시 명령이 내려와 사정을 자세히 살피고 나아갈지 물러날지를 판단하라고 했다.

나는 도원수와 순찰사 등과 여러 번 의논했다.


싸우자니 준비가 부족하고 기다리자니 적이 강해졌다

현재 형편은 싸우지 않을 수도 없고 함부로 싸울 수도 없었다.

우리에게 충분한 힘이 있고 반드시 이긴다는 판단이 있었다면 진작 싸웠을 것이다.

어찌 명나라 군대를 몇 달 동안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했겠는가.

하지만 평양 부근 우리 군사의 힘은 약했다.

무기도 충분하지 않았다.

한 번 공격했다가 또 크게 무너지면 남아 있는 힘마저 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명나라 군대와 힘을 합친 뒤 진격하려고 기다린 것이다.


명나라 군대가 끝내 오지 않는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가 계속 오지 않고 겨울 추위가 깊어지면 더 기다릴 수도 없다.

그때에는 차라리 죽기를 각오하고 한 번 싸워 승패를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답답한 사정을 앞서도 여러 차례 아뢰었다.

명나라 장수의 확실한 말을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명나라 대군이 강을 건넜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제 명나라 대군이 이미 압록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여러 달을 기다렸으니 며칠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다.

실제 대군이 코앞까지 왔는데 겨우 며칠을 참지 못해 약속을 어기고 섣불리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본군의 수는 처음에는 적었지만 뒤로 갈수록 많아졌다.

지금은 전보다 공격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명나라 대군이 온다는 사실도 일본군에 이미 알려졌을 수 있다

심유경의 사람 가운데 일본군 진영 안에 들어가 있는 자도 있었다.

그들을 통해 명나라 대군이 온다는 소식이 일본군에게 알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군도 심유경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미 모은 병력을 움직이려 할 수도 있다.

상황은 더욱 위험해지고 있었다.


명나라 대군을 빠르게 내려보내 일본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제 가장 좋은 방법은 명나라 대군이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대군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일본군에게 보여 주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공격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그런데 일본군은 이미 많이 모여 있는 것 같다.

명나라 군대가 빨리 오지 않으면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

조정에서 명나라 장수에게 이 사정을 매우 급하게 알려야 한다.


명나라 대군이 안주에 도착하다

전달 29일 명나라 대군이 처음 안주에 도착했다.

먼저 선발 장수가 왔다.

음력 초2일에는 좌익 도독 이여백이 여러 장수와 함께 도착했다.

성 밖에 진을 쳤다.

군대의 모습과 위세가 매우 성대했다.

다음 날 이여백은 앞으로 출발했다.


이여백에게 평양의 지도와 군사 형편을 설명하다

나는 군사에 필요한 여러 사항을 항목별로 정리했다.

평양의 지도도 그려 가지고 갔다.

이여백은 큰 건물에 나와 나를 불러 만났다.

그가 물었다.

“일본군이 얼마나 되는가?

평양까지 길은 얼마나 먼가?

어느 길로 갈 수 있는가?

군량과 말먹이는 얼마나 있는가?

그 밖의 군사 사정은 어떠한가?”

나는 묻는 말에 따라 하나하나 대답했다.

그 뒤 물러났다.


우익 도독과 여러 명나라 장수도 잇달아 도착하다

우익을 맡은 명나라 도독도 뒤이어 도착했다.

그는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

그 뒤 명나라 군대를 총지휘하는 이여송과 양원 등 여러 장수도 도착했다.

나는 성 밖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이여송에게 평양 지도를 바치다

이여송은 자리에 앉은 뒤 나를 불렀다.

나는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간 평양 지도를 꺼내 바쳤다.

이여송은 지도를 탁자 위에 펼치게 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길과 산, 강의 위치를 짚어 가며 설명했다.

어느 길로 진군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일본군을 어떤 방법으로 공격할 수 있는지도 자세히 말했다.

이야기가 오래 계속되었다.


이여송이 다음 날 현지 장수들과 직접 군사 문제를 의논하자고 하다

이여송은 말했다.

“내일 더 앞으로 가겠다.

그곳에서 실제 군사를 거느리는 조선 장수들과 만나 자세히 의논하겠다.”

나는 다음 날에도 따라갔다.

이여송은 다시 지도를 펴 놓고 작전을 설명했다.


명나라 군사를 매복시키고 조선군이 일본군을 유인하는 계획

이여송은 지도에서 평양 가까운 한 산을 손으로 짚었다.

그가 말했다.

“명나라 군사를 이곳에 매복시키겠다.

조선군이 일본군을 성 밖으로 유인하라.

적이 나오면 우리가 함께 공격해 없애면 된다.”

또 다른 공격 방법도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부대를 동쪽 길로 보내 대동문을 둘러싼 뒤 사방에서 공격할 수도 있다.”


이여송은 명나라 화포가 일본군 조총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신했다

이여송은 일본군의 조총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일본군의 조총은 백 걸음 밖에서는 맞더라도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하지 못한다.

우리 군대의 큰 화포는 몇 리 밖까지 날아간다.

이것으로 성을 공격하면 일본군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평양을 되찾은 뒤 일부 명나라 군대는 함경도로 보낼 계획이었다

이여송은 평양을 되찾은 뒤의 계획도 말했다.

“평양을 깨뜨리고 나면 한 갈래 군사는 북쪽 지방으로 보내겠다.

나머지 군대는 황해도 쪽으로 내려갈 것이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만 되찾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남쪽과 북쪽으로 다시 나누어 움직일 계획이었다.


명나라 대군이 오래 머물면 현재 군량으로는 도저히 먹일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군량이었다.

여러 고을에 있는 곡식을 있는 대로 거두어도 당장 며칠 먹이는 정도였다.

명나라 대군이 한곳에 오래 머문다면 계속 먹일 방법이 없다.

명나라에서 별도의 군량을 가져온다는 말도 있었지만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수령이 직접 백성과 소를 거느리고 군량을 운반하게 하다

나는 각 고을 수령에게 직접 자기 고을의 소와 백성을 이끌고 군량을 운반하게 했다.

군량이 어느 날 출발했고 어느 날 다음 지역에 도착했는지까지 기록하게 했다.

정해진 날짜보다 지나치게 늦는 자가 있으면 엄하게 죄를 묻겠다고 했다.

그래야 군량이 며칠 안에 전선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왔다고 우리 군사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명나라 대군이 왔지만 우리 군사도 이 기회를 이용해 스스로 힘을 다해야 한다.

명나라 군대가 모든 일을 대신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각 진영을 살펴보면 큰일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매우 적다.

현재 있는 장수 가운데 용감하게 싸울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원의 김영이라는 용맹한 무사를 급히 전선으로 보내 달라고 하다

수원에 사는 김영이라는 사람이 힘이 세고 용감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다른 관리가 거느리는 군사 가운데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전투를 바로 앞둔 때에는 이런 용감한 사람 한 명도 매우 중요하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전마를 내주어 빨리 전선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평양을 되찾으면 명나라 대군이 바로 황해도로 내려갈 수 있다

안주에서 들으니 이여송은 평양을 어렵지 않게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평양을 공격한 뒤 대군은 곧 대동강을 건너 황해도로 내려갈 수 있다.

그래서 황해도의 군량이 매우 중요해졌다.


황해도의 군량 수를 조사하다

며칠 전에 황해도 관찰사가 도 안의 군량 수를 보고했다.

분명하게 읽히는 항목 가운데 하나는 쌀 약 7천390여 석이었다.

다른 종류의 쌀도 1만 석을 훨씬 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말먹이로 쓸 콩은 약 3만6천 석이 넘는 규모로 적혀 있다.

다른 잡곡도 1천 석이 넘었다.

다만 이 부분은 원문 OCR의 여러 숫자가 심하게 깨져 있어 일부 정확한 자릿수는 확정하기 어렵다.


장부에 곡식이 있다고 실제 전선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부에 적힌 숫자만 보면 어느 정도 군량을 공급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다르다.

일본군이 길목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곡식도 안전을 위해 여러 곳에 흩어 숨겨 둔 상태였다.

대군이 갑자기 진격하면 필요한 때에 곡식을 전선까지 가져오기가 어렵다.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서라도 군량을 운반하게 하다

나는 황해도에 즉시 명령을 보냈다.

각 지역에서 가까운 백성을 모으게 했다.

소와 말도 동원하게 했다.

명나라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즉시 군량을 앞으로 옮기게 했다.

상황이 급하면 남자는 곡식을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서라도 군량을 전선까지 나르게 하라고 했다.

뒤늦게 군량이 도착하여 대군의 진격을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미 지친 백성들이 실제로 군량을 제때 옮길 수 있을지 걱정하다

그러나 백성은 전쟁을 겪으며 이미 크게 지쳐 있었다.

민심도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다.

명령을 내린다고 정말 필요한 날짜에 군량을 운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해주의 수령이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하다

그날 사람을 통해 해주목사에 관한 여러 말을 들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해주는 황해도 전체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겨우 다시 안정을 찾는 상황에서 사람을 잘못 쓰면 모든 일이 무너질 수 있다.

수령 한 사람을 제대로 뽑는 일이 전쟁의 성패와 연결될 수 있다.


해주를 수습하지 못하면 연안 등 다른 지역도 지키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전에 다른 고을을 다스렸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과 몇 달 사이에 백성이 모두 흩어졌다고 했다.

그런 사람을 해주처럼 중요한 곳에 둔다면 문제가 된다.

해주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연안 등 주변 지역 역시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 전체의 일을 논하다 보니 걱정되는 점을 함께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명나라 군사가 민가를 침범하자 즉시 목을 베어 군율을 보이다

전날 명나라의 큰 장수가 어떤 지역에 도착하여 들판에 진을 쳤다.

그런데 명나라 군사 한 사람이 민가를 침범했고 그 과정에서 어린아이가 죽는 일이 있었다.

명나라 장수는 즉시 그 군사의 목을 베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리고 잘못을 고발한 사람에게 은을 상으로 주었다.

처형을 집행한 사람에게도 따로 상을 주었다.

군율이 매우 엄했다.


순안에서 급한 소식을 가져온 사람이 오자 이여백이 바로 말을 달리다

명나라 군대가 새로 진을 치고 있을 때 순안에서 급히 소식을 가져온 사람들이 도착했다.

보고를 받은 이여백은 곧바로 움직였다.

집안사람 두 명 정도만 데리고 활과 화살을 찬 채 서둘러 말을 달렸다.

뒤이어 다른 군사들도 차례로 출발했다.

우리는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심유경이 평양을 세 차례나 오가며 일본군과 만나다

나중에 우리 장수의 보고를 통해 사정을 알았다.

심유경은 먼저 순안에 도착해 있었고 평양을 세 차례나 오갔다고 했다.

그날 일본군 23명이 순안 가까이까지 나왔다.

일본군은 우리 군사가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의심하여 처음에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


심유경이 우리 군사를 물러나게 하고 일본군을 앞으로 끌어내다

심유경은 우리 장수에게 조금 뒤로 물러나라고 했다.

몇 차례나 같은 말을 했다.

자기가 길을 안내하겠다고도 했다.

우리 군사가 조금 물러나자 일본군이 그제야 앞으로 나왔다.

서로 술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대화하려 했던 듯하다.


교섭 자리에서 갑자기 충돌이 일어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싸움이 갑자기 벌어졌다.

우리 쪽에서 일본군 두 명의 목을 베었다.

다른 일본군도 공격을 받았다.

일부는 죽고 일부는 달아났다.

일본군 장수 가운데 한 사람은 가까스로 평양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였다.

이 일이 일본군의 보복을 부를 가능성도 있었다.


명나라 대군이 이미 도착했지만 화포와 군수품은 아직 뒤에 있었다

다행히 명나라 대군 자체는 이미 가까이 와 있었다.

따라서 일본군이 갑자기 나와도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화포와 여러 군수 물자가 아직 길에서 운반되고 있었다.

그것이 제때 도착하지 않을까 매우 걱정되었다.


명나라와 조선군이 평양성 10리 밖까지 전진하다

다음 날 명나라 군대와 우리 군사는 평양성에서 약 10리 떨어진 곳까지 나아가 진을 쳤다.

날이 저물 무렵 일본군 일부가 성 밖으로 나왔다.

명나라 군대가 화포를 많이 쏘았다.

일본군은 버티지 못하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명나라 군대는 다음 날 새벽 성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전투가 오래 끌리면 화약과 군량 공급이 큰 문제가 된다

공격이 바로 끝나지 않고 여러 날 계속된다면 화약과 군량을 어떻게 계속 공급할지가 큰 걱정이었다.

나는 앞서 보고한 대로 물자를 서둘러 운반하게 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전쟁이 바로 눈앞인데도 길가 여러 고을의 수령 가운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많았다.

그 때문에 온갖 일이 늦어졌다.


안주목사 이민각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하다

안주목사 이민각은 본래 성품이 약했다.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부족했다.

명령을 내려도 아랫사람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그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 수령을 자주 교체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 미루어 왔다.

새로 오는 사람이 더 능력이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임중기를 안주목사로 쓰자고 요청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너무 급해 이민각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문관 가운데 부지런하고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골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내야 했다.

나는 전날 임중기를 불러 중화의 사정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의 사람됨을 살펴보니 일을 맡길 수 있을 듯했다.

이 사람을 안주에 보내 고을을 다스리고 성을 지키는 일을 맡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양을 빨리 되찾으면 군사를 북쪽으로 나누어 보내야 한다

평양의 일본군을 며칠 안에 쓸어버릴 수 있다면 곧 군사를 나누어 북쪽 지방을 구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평양 공격이 오래 이어지면 북쪽의 일본군이 빈틈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 배후로 들어오면 매우 위험하다.


함경도 일본군이 서쪽으로 움직일 조짐이 있다는 소식을 듣다

최근에도 일본군이 서쪽으로 움직일 듯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제 눈이 녹고 고갯길을 다닐 수 있게 되면 상황은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현재 그 길을 지키는 우리 군사는 너무 적다.

일본군이 실제로 내려오면 제대로 막을 방법이 없다.


김희립과 박명현의 군사 일부를 북쪽 길에 보내자고 하다

명나라 대군이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이곳의 우리 군사만 모두 붙잡아 둘 필요는 없다.

김희립과 박명현 등이 거느리는 군사 가운데 일부를 뽑을 수 있다.

수백 명가량을 명나라 군사처럼 꾸며 함경도 남쪽 방어 지역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다.

실제 병력이 많지 않더라도 명나라 대군이 북쪽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보이면 적에게 압박을 줄 수 있다.


함경도는 거의 되찾을 수 있는 형세까지 왔다

북쪽 지방의 형세를 보면 처음과 크게 달라졌다.

나라를 다시 되찾을 가능성이 거의 무르익었다.

일본군의 정예병은 함흥 부근에 주로 모여 있었다.

남쪽의 고원, 문천, 덕원, 영흥 같은 곳에는 일본군이 많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백여 명 정도만 남아 있기도 했다.

우리 백성도 그 사이를 제법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일본군이 특별한 방어 시설을 마련하지 않은 곳도 많았다.


북쪽 일본군의 앞뒤 연락을 끊으면 함흥의 적을 고립시킬 수 있다

이럴 때 한 부대를 갑자기 깊숙이 보내 일본군의 앞뒤 연락을 끊으면 좋다.

그러면 함흥에 있는 일본군은 고립될 것이다.

북쪽에서 일어난 우리 군사와 남쪽에서 올라가는 군사가 앞뒤로 협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한두 달 사이에 적을 크게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북쪽에 보낸 장수들이 무능해 좋은 기회를 그대로 놓치고 있다

그런데 추가 병력을 보내지 않고 있다.

북쪽을 돕기 위해 보낸 장수들도 대부분 평범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손을 놓은 채 상황만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일본군의 기세가 다시 강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하다.


명나라 군대가 있어도 함경도를 그대로 두면 나라의 배후가 위험해진다

지금 명나라 대군이 와 있다고 해도 북쪽의 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함경도는 나라의 배후와도 같은 중요한 지역이다.

이 기회를 놓치고 일본군이 다시 힘을 얻으면 훗날 되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조정에서 다시 깊이 생각하여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나중에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된 뒤 후회해서는 안 된다.

제8권 끝

 

 

 

 

 

 

 

징비록 아홉째 권

명나라 군대가 평양성 안으로 들어갔다는 급보

종사관 김신원이 급히 보고해 왔다.

그날 오후 강복원 뒤쪽 역참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 장수들은 이미 왜군과 싸우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성을 사방에서 공격했고, 대포를 쏘는 소리가 천둥이 치고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들렸다.

얼마 뒤 적의 형편을 살피러 갔던 군관 이계명이 돌아와 보고했다.

“명나라 군대가 칠성문을 깨뜨리고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군대도 다른 성문으로 들어가 지금 왜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평양 한 지역이 마침내 수복되었다.

기쁘고 다행스러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우선 이 소식부터 급히 아뢴다.

나는 지금 순안으로 가서 군량 등의 형편을 살펴보려 한다.

명나라 군대에 줄 식량을 운반하는 일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이 일은 매우 시급하니 조정에서도 서둘러 대책을 세워 주기 바란다.


평양을 되찾은 뒤의 형편

도원수 김명원과 여러 지휘관의 보고를 살펴보았다.

왜군은 한밤중에 평양성을 빠져나가 거의 모두 달아났다.

명나라 장수들은 날이 밝아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우리 군대가 미리 적의 움직임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 왜군이 달아난 뒤에도 곧바로 군사를 내어 추격하지 않았다며 크게 화를 냈다.

실제로 우리 군대가 추격을 시작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평양을 공격할 당시 우리 군대는 성 주위 여러 곳에 나누어 진을 치고 있었다.

병사의 군대는 한쪽에 있었고 좌우 방어사의 군대도 각자 맡은 곳에 있었다.

중화 등지에서 온 군대와 다른 장수의 군사들은 대동강 건너편 등에 진을 치며 성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 장수 가운데 일부는 명나라 장수들과 함께 성문 밖에 있었다.

싸움이 벌어지자 우리 군대는 성문을 통해 들어가 왜군과 맞붙었다.

왜군이 패하여 달아나자 우리 군대도 안쪽으로 전진했다.

명나라 군대도 칠성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런데 전투가 진행되면서 명나라 군대가 우리 군사들의 움직임까지 지나치게 통제했다.

우리 부대 가운데에는 명나라 장수 한 명과 명나라 군사 몇 명이 붙어 진퇴를 직접 감독하는 곳도 있었다.

문제는 통역관도 없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 군사가 명나라 장수의 명령을 즉시 알아듣지 못하거나 진퇴가 조금이라도 그들의 뜻과 달라지면 등을 때리는 일까지 있었다.

우리 군대가 싸워 얻은 물건을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는 일도 생겼다.

군대의 일은 그 군대를 맡은 주장이 지휘해야 한다.

명나라 장수의 명령을 전적으로 따라 우리 군대의 장수가 아무 지휘도 하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군이 평양에서 남쪽으로 달아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군대가 미리 가까운 길목을 지켰다면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왜군을 공격해 상당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휘와 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적에게 살아서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고 말았다.

이보다 더 통탄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황해도를 통해 군량을 공급하는 일은 이미 여러 차례 문서를 보내 독촉했다.

서울과 강원도 쪽의 관군과 의병에게도 군사를 모으라는 뜻을 전했다.

다만 내가 다른 도의 군사를 모두 지휘하라는 명을 받은 것은 아니어서 함부로 명령할 수는 없다.

조정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명나라 군대를 따라 개성에 도착하고 임진강에 부교를 놓은 일

나는 명나라 군대보다 먼저 개성에 도착했다.

개성의 모습을 보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관청 건물과 여러 시설이 거의 모두 왜군에게 파괴되어 온전하게 남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창고에 있던 곡식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자 저절로 눈물이 났다.

서울로 진격하려면 무엇보다 군량이 필요했다.

강화도에 있는 곡식을 배로 후서강 쪽까지 가져오게 했지만, 사람을 제대로 모으지 못해 정해진 때에 운반되지 않았다.

이여송 제독이 개성에 도착해 하루를 머문 뒤에는 곧 서울로 나아가려는 기세였다.

사흘 정도 먹을 군량을 마련해 출발하려 했지만 그조차 구할 길이 막막했다.

대체로 서울 북쪽 지역의 군량 문제는 황해도에서 맡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전쟁으로 크게 파괴된 지역이었다.

대군이 서울까지 들어간 뒤 사람과 말에게 먹일 것이 떨어진다면 그 참혹한 형편은 차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여러 차례 문서를 보내 군량을 서둘러 마련하도록 독촉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풀어질 대로 풀어져 있었다.

각지의 의병과 관군에게 모이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제대로 오는 부대가 거의 없었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었다.

생각할수록 한심하고 두려웠다.

임진강을 건널 부교는 이덕형 등과 함께 직접 살펴 겨우 다리의 모양을 갖추었다.

강물이 넓어 모든 군대가 한 가지 방법으로 건너기는 어려웠다.

기병은 얕은 곳을 골라 건너게 하고, 보병과 수레는 부교를 이용하게 할 계획이었다.

나는 명나라 대군을 따라 서울로 향하려 했다.

나머지 상황은 뒤에 다시 자세히 보고하기로 했다.


김경로의 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달 스무나흗날 선전관 이순일이 임금의 표신과 승정원의 문서를 가지고 왔다.

내용은 김경로의 죄가 매우 무거우니 선전관을 군중으로 보내 그 죄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나라 군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조선의 장수를 군중에서 처벌하려면 먼저 명나라 장수에게 사정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여송 제독에게 김경로의 죄를 설명했다.

그러자 제독이 사람을 보내 말했다.

“김경로의 죄는 본래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아직 서울을 수복하지 못했다. 지금은 장수 한 사람도 아깝다. 내가 조선 국왕에게 따로 청하겠다. 우선 살려 두고 싸움에서 공을 세워 죄를 갚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는 다시 말했다.

“군율은 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경로가 지은 죄는 본래 죽어 마땅합니다. 다만 장수를 처벌하는 일이라 먼저 제독께 알려 드렸을 뿐입니다.”

이여송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선 죽이지 말고 공을 세우게 하시오.”

다음 날 나와 도원수 등이 제독에게 문안하러 갔을 때에도 이여송은 문서를 보여 주며 비슷한 뜻을 밝혔다.

김경로는 전투에서 군사를 흩어 버리고 혼자 돌아온 죄가 있었다.

그 죄만 생각하면 죽어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 고언백과 이시언 등과 함께 서울에서 나오는 왜군을 추격하려고 한 일도 있었다.

나는 이미 군관을 보내 김경로를 데려오게 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명나라 제독이 이처럼 특별히 용서를 청하니 그대로 처벌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이미 임금의 표신까지 내려왔으므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표신을 가지고 온 이순일을 그대로 붙잡아 두는 것도 온당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다시 처분해 주기를 기다렸다.


서울로 진격할 때의 군량 문제와 이여송이 백성을 걱정한 일

명나라 장수들은 서울 쪽에 왜군이 많이 모여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명나라 군대의 무기와 장비가 아직 모두 도착하지 않았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러자 이여송은 먼저 정예병을 뽑아 자신이 직접 서울 가까이 나아가 형세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나도 앞길로 먼저 가서 군량과 여러 준비 상태를 살펴보겠다고 청했다.

처음에는 제독도 이를 허락했다.

그런데 명나라 장수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대군이 지금 여기에 있는데 조선의 중요한 신하를 먼저 보내 버리면 여러 일을 처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당분간 이곳에 있게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제독도 그 말이 옳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명나라 군영과 함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 쪽의 군량 사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후서강까지 배로 운반해 온 곡식도 제때 군영으로 들여오지 못했다.

결국 명나라 제독이 자기 군사를 보내 직접 곡식을 받아 오게 할 정도였다.

말에게 먹일 콩과 풀은 거의 완전히 떨어졌다.

장수들이 타는 말조차 며칠씩 제대로 풀을 먹지 못했다.

이여송은 군율을 엄하게 적용했다.

명나라 군사가 조선 백성의 물건을 함부로 빼앗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군량과 말먹이를 공급하지 못하면 명나라 군대는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군사가 많아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시 우리 쪽에서 모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만 보면 만 명이 넘는다고 할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미리 명령을 내려 이들을 부대로 나누고 제대로 정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패전하거나 흩어진 뒤에도 다시 한곳으로 모으도록 조직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각 고을의 군사 조직은 이미 크게 어지러워져 있었다.

평소 관청의 명령을 받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의병에 들어갔다.

그 밖의 사람도 감사와 여러 장수에게 각각 나뉘어 들어갔다.

누가 누구를 거느리고 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급한 일이 생겨 사람을 동원하려 해도 명령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배가 정박해 있는 곳이 불과 삼십 리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곡식을 군영까지 운반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애가 타도록 사람을 찾고 독촉했지만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양과 수원 같은 지역의 창고에 있는 곡식을 서울 쪽으로 가져오라고 계속 문서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의 감사와 여러 책임자 가운데에는 군영으로 와서 사정을 의논하고 날짜를 정하며 상황을 살피는 사람이 제대로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 대군이 서울 안으로 들어갔다가 식량과 말먹이가 끊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 같은 사람은 만 번 죽어도 나라 일을 그르친 죄를 갚지 못할 것이다.

나는 밤낮으로 이 일을 걱정했다.


이여송이 황해도 백성의 굶주림을 불쌍히 여기다

이여송은 황해도를 지나오면서 백성들이 명나라 군대에 먹을 것을 대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러면서 백성의 형편이 극도로 어려운 것을 알고 매우 불쌍히 여겼다.

어느 날 명나라 관리들과 이야기하다가 말했다.

“이곳 백성은 이미 죽을 지경이 아닌가. 나라에서 이들을 구제하는 일은 없는가?”

통역관이 대답했다.

“평상시 같으면 봄이 시작될 무렵 나라에서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청의 창고도 비었고 전쟁도 끝나지 않아 달리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이여송은 크게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베 같은 물건이라도 내어 주변 백성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통역관이 말했다.

“지금 백성에게는 베가 있어도 그것으로 사 먹을 곡식이 없습니다.”

이여송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자신이 다른 지방에 있을 때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전에 한 백성이 가난 때문에 아내를 팔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을 불러 꾸짖으며 어째서 아내를 파느냐고 물었더니,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내 돈을 주어 그 아내를 다시 데려오게 하고 곡식 스무 석도 주어 가족이 함께 살게 했다.”

그는 이어 말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우리 같은 신하가 어찌 백성이 이런 지경에 빠진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 사람 목숨을 살리고 하늘의 도움을 얻어야 나라가 오래갈 수 있다.”


명나라 관리들이 조선의 형벌과 백성을 이야기하다

명나라 관리 가운데 한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매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조선에서는 형벌을 너무 무겁게 쓰는 것 같다. 사람을 때릴 때 무릎 가까운 곳과 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때리니 몇 대만 잘못 맞아도 죽을 수 있다. 중국의 방법과는 다르다.”

이여송은 통역관에게 조선 백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중국에서는 전쟁으로 한 지역이 휩쓸린 뒤 백성이 한번 달아나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일이 많다. 그런데 너희 나라에서는 왜군이 물러난 뒤 백성이 곧 돌아와 관청의 부역까지 한다. 심지어 가족을 잃고도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 이 나라 백성의 마음이 충직하고 순박하니 참으로 가상하다.”

실제로 황해도 일대의 백성은 오랫동안 왜군에게 짓밟혔다.

그런데도 명나라 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자 있는 힘을 다해 음식을 마련했다.

술과 물, 떡과 음식을 가지고 길가에 나와 군사를 맞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여송을 비롯한 명나라 장수들은 이 모습을 보고 매우 감탄했다.

이여송이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의 근본을 보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옛날 이름난 장수의 기풍이 조금은 있었다.

내가 직접 곁에서 본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아뢴다.


봄철 구휼을 서둘러야 한다

이제 봄이 다가오고 있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전쟁 뒤 살아남은 백성을 위로하고 흩어진 사람을 다시 고향으로 불러 모으는 일도 조정에서 매우 세밀하게 계획해야 한다.

특히 수령을 잘 골라야 한다.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적을 막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전투 경험을 생각해 무관을 수령으로 임명한 곳이 많았다.

그 조치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고을을 맡으면 백성이 그 때문에 다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왜군이 물러간 지역부터 수령의 능력을 실제로 조사해야 한다.

백성을 다스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뒤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가려내야 한다.

그래야 민생을 조금이라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여송이 벽제관 쪽으로 진군했다가 불리해져 동파로 물러나다

1593년 음력 정월 스무엿새였다.

이여송은 개성에서 출발해 동파를 지나 임진강의 얕은 곳을 건너 파주에 진을 쳤다.

스무이렛날에는 이여송과 다른 명나라 장수가 자신의 친위병 백여 명을 거느리고 벽제관 방향으로 나아갔다.

서울 주변의 왜군 형세를 직접 살펴보려 한 것이다.

명나라 대군의 본진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새벽 사대수가 거느린 군대와 방어사 고언백의 군대가 먼저 창릉 부근까지 나아갔다.

왜군은 이미 산과 골짜기 사이에 많은 복병을 숨겨 놓고 있었다.

왜군은 처음에는 몇백 명만 내보냈다.

명나라 군대를 꾀어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다.

명군이 공격하자 왜군은 일부러 흩어져 달아났다.

명나라 군대는 적을 패주시켰다고 생각하고 뒤를 쫓았다.

상당한 전과를 거둔 것으로 생각하고 물러나려 할 무렵이었다.

숨어 있던 왜군의 대부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혜음령 부근에서 명군이 포위될 위기에 놓이다

이여송이 혜음령 부근에 이르렀을 때 왜군이 갑자기 앞길에 나타났다.

길은 좁고 험했다.

말이 제대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이여송이 타고 있던 말도 길 가운데에서 넘어졌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겨우 말을 일으켜 다시 나아갔지만 앞쪽에는 이미 왜군의 큰 진영이 펼쳐져 있었다.

왜군의 숫자는 앞서 나온 명나라 군대보다 몇 배나 많았다.

뒤따라오던 명나라 본대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결국 먼저 나아간 명나라 군대는 왜군의 공격을 받아 밀려났다.

이여송도 뒤로 물러나야 했다.

대군 역시 차례로 물러나 파주까지 돌아왔다.

명나라 군대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여송이 특별히 아끼던 친위병 가운데 한 사람도 죽었다.

이여송은 말을 타고 돌아오면서 크게 슬퍼했다.

파주에 도착한 뒤에도 밤에 죽은 부하를 생각하며 울었다고 한다.

우리가 문안하자 이여송은 말했다.

“장수들이 적을 보자 먼저 물러났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그는 곧 군영의 경계를 엄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천천히 동파 쪽으로 군대를 물리기 시작했다.


명나라 군대를 물리지 말라고 힘껏 간청하다

나는 도원수 김명원, 접대사 이덕형을 비롯한 여러 신하와 함께 이여송을 찾아갔다.

권율도 함께 진격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거듭 아뢰었다.

이여송은 밖으로 나와 뜰에 섰다.

명나라 장수들이 좌우로 둘러섰다.

그가 우리를 불러 말했다.

“우리 군대는 어제 이겼다. 크게 패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곳에는 말먹이가 하나도 없다. 뒤에는 강이 가로놓여 있다. 화포와 여러 군사 장비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남쪽의 보병도 모두 오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뒤로 물러가 군사를 쉬게 하고 다시 정비한 뒤 진격하려는 것이다.”

나와 여러 신하는 일제히 무릎을 꿇고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간절히 말했다.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군이 이미 이곳까지 전진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나면 왜군이 승리했다고 생각해 기세를 올릴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도 흔들릴 것입니다.

지금이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남쪽의 의병과 여러 지역의 장수들은 명나라 대군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북쪽으로 올라와 임진강 가까이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군량과 물자를 실은 수레와 배도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독께서 어찌 이런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갑자기 뒤로 물러나려 하십니까?

이 지역에서 살아남은 백성들도 왕의 군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늙은이와 아이가 서로 부축하면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군이 다시 물러나면 이들은 또 살던 곳을 버리고 도망쳐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백성이 왜군에게 죽을 것입니다.

어찌 차마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이여송이 대답했다.

“내가 처음 이곳까지 온 것도 서울의 적정을 직접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잠시 뒤로 주둔지를 옮기는 데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사를 쉬게 한 뒤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간청했다.


서울의 왜군이 이십만 명이라는 보고를 둘러싼 논쟁

우리가 계속 간청하자 이여송은 손에 들고 있던 군사 문서를 보여 주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서울 안의 왜군이 이십만 명가량 되고, 명나라 군사는 몇만 명뿐이며, 이번 전투에서 부상자도 많이 생겼으므로 병력을 더 보내고 군량도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몸에도 병이 있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문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서울 안의 왜군이 많아도 몇만 명 정도일 뿐입니다. 어떻게 이십만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여송이 말했다.

“너희 나라에서 올린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적이 어떻게 이십만 명이나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올린 문서에도 그런 내용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국가의 큰일이 걸린 문제이니 제독께서 다시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명나라 장수들은 이미 크게 두려워하고 있는 듯했다.

그 가운데 한 장수는 특히 후퇴를 강하게 주장했다.

목소리와 얼굴빛까지 달라지면서 빨리 군사를 물려야 한다고 재촉했다.

이여송도 우리에게 여러 번 설명했지만 결국 군사를 동파 쪽으로 물렸다.

그때 다른 지역의 체찰사도 뒤늦게 도착했다.

통역관을 시켜 다시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했지만 이미 군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답만 돌아왔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나면서 군량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

처음부터 군량을 운반하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이제 군대가 다시 이동하니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길가의 들판은 모두 불타 있었다.

산에도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곳이 많았다.

파주 일대는 더욱 심했다.

백 리 가까이 가도 마을다운 마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참혹한 폐허뿐이었다.

명나라 군대가 지나가는 길에는 굶어 죽은 말이 줄지어 쓰러져 있었다.

살아 있는 말도 대부분 굶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권율과 여러 지방 책임자에게 군량과 말먹이를 마련하도록 맡겼다.

체찰사도 오래전부터 이를 독촉하고 있었다.

모두 힘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실제로 마련되는 것이 너무 적었다.

대군은 길 위에 있는데 먹을 것과 풀은 없었다.

이 지역은 왜군에게 오랫동안 짓밟혔다.

무슨 방법을 써도 당장 필요한 것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명나라의 군량이 어느 곳까지 도착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빨리 운반해 군영에 도착하게 해야 했다.


명나라 군대가 동파에서 다시 개성으로 물러나려 하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접대사 이덕형 등과 함께 이여송에게 문안하러 갔다.

그런데 이여송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군사와 말의 절반을 개성으로 돌려보내 그곳에서 쉬게 하고, 화전과 여러 군사 장비도 나누어 개성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여겼다.

통역관에게 이유를 묻게 했다.

제독이 대답했다.

“이곳에는 집이 한 채도 없다. 비가 오면 군사 장비와 화약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전에 조승훈의 군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 못했는가?”

나는 말했다.

“며칠 전 파주에서 동파까지 물러났을 때에도 멀고 가까운 곳의 백성이 모두 놀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사를 나누어 또 개성으로 돌려보낸다면, 제독께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진격하려 한다는 것을 백성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왜군도 이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명나라 군대가 패해 서쪽으로 물러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일이 모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제독께서 정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진군할 생각이라면 언제 어떻게 진군할 것인지 우리 신하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도 여러 길로 사람을 보내 백성에게 알려 마음을 안정시키겠습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어찌 완전히 물러난다는 말이 있겠는가? 너는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째서 그렇게 말이 많은가?”

나는 더 말할 수 없어 물러났다.


벽제관 뒤 명군의 계속되는 후퇴가 매우 의심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이여송은 전날 남쪽에서 온 주력 보병도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채 적은 기병만 거느리고 너무 깊이 나아갔다.

결국 싸움이 뜻대로 되지 않아 물러났다.

그렇다면 군사를 다시 정비하고 병력을 모은 뒤 전진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데 파주에서 동파로 물러났고, 이제 다시 개성으로 물러나려 한다.

그 형세를 보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직접 후퇴하겠다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 말을 꺼내기만 하면 불쾌해했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계속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명나라 군대가 이런 식으로 계속 물러나면 왜군의 기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왜군은 반드시 승세를 타고 다시 공격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답답했다.


말먹이 부족이 특히 심각했다

서울 부근에서는 말에게 먹일 것을 전혀 대지 못하고 있었다.

장수부터 일반 군사에 이르기까지 전마가 하루에 수십 마리씩 쓰러졌다.

심한 날에는 백여 마리가 죽었다.

나머지 말도 굶주린 채 죽기만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사람을 불러 말먹이를 가져오게 하려 해도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강화도와 통진 같은 섬과 해안에서 가져오려면 배로 왕래하는 데 며칠씩 걸렸다.

나는 애초에 이 지방을 맡은 사람이 아니었다.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해 둔 것도 아니었다.

일이 닥친 뒤 갑자기 해결하려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명나라 군량을 급히 수송해 달라는 보고

경기도 일대의 군량과 말먹이 문제는 예전부터 너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조정에도 여러 차례 아뢴 바 있다.

경기는 전쟁과 화재가 지나간 뒤 온통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강화도와 통진 같은 곳이 조금 온전했다.

하지만 전쟁을 피해 들어간 백성과 의병이 이미 그곳에 가득했다.

공적인 곡식과 개인이 가진 식량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만약 처음부터 일을 미리 계획했다면 강화와 통진 같은 곳에 곡식 오륙만 석을 모아 둘 수 있었을 것이다.

섬 안의 사람들을 미리 조직해 배에 싣고 서울 부근까지 운반하게 할 수도 있었다.

명나라 대군이 도착하는 즉시 필요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을 것이다.

군량도 현재 가진 양부터 계산했어야 했다.

군사와 말이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지를 먼저 따진 뒤 부족한 양을 미리 마련했어야 했다.

충청도 내포와 전라도 바닷가의 창고 등 비교적 곡식에 여유가 있는 곳에서 가져다가 가까운 곳에 쌓아 두었다면 이렇게까지 궁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 일이 닥친 뒤에 곡식을 마련하려 해서는 늦는다

강화도에 전에 모아 둔 곡식도 여러 곳에서 서로 나누어 가져가 남은 것이 많지 않았다.

사람을 미리 확보하지도 않았다.

배를 준비해 두지도 않았다.

운반 조직도 없었다.

명나라 군대가 눈앞에 도착한 다음에야 사람을 찾고 문서를 주고받으며 여러 차례 독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곧바로 일이 되겠는가.

사람이 먹을 군량은 조금 남아 며칠 정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말에게 먹일 콩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났다.

굶어 죽은 말이 길가에 이어졌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여송에게 개성으로 물러가지 말라고 다시 간청하다

전날 이여송이 개성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나와 이덕형 등은 여러 번 간청했다.

겨우 그날만은 떠나는 것을 늦추게 했다.

그들은 통역관을 통해 뒤에서 오는 군대가 도착하면 다시 전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에는 여전히 왜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전쟁이 예상보다 오래 계속되면 군량과 말먹이가 모두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물러나기 어려워진다.

나라의 일을 맡은 신하로서 이런 사태를 만들면 만 번 죽어도 죄를 갚지 못한다.

명나라 군대에 줄 식량 만여 석만이라도 제때 도착한다면 상당 기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까지 운반되었는지조차 확실한 보고가 없었다.

날이 풀리며 강의 얼음도 녹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배를 이용한 수송도 서둘러야 한다.

시기를 놓치지 말고 특별한 방법까지 마련해 처리해 주기를 거듭 청한다.


이여송이 결국 개성으로 군사를 돌리다

전날 이여송은 개성으로 돌아가 사람과 말을 조금 쉬게 하겠다고 했다.

나와 이덕형 등은 대군이 한번 물러나면 민심이 무너질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끝내 이여송이 말했다.

“나는 군사를 잠시 쉬게 했다가 다시 전진하려는 것이다. 완전히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왜 사정을 모르고 계속 같은 말을 하는가?”

그는 잠시 행군을 멈췄다.

처음에는 우리 말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통역관을 불러 가까운 사람들에게 앞으로 다시 공격할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상한 말도 했다.

“이번 달은 나의 운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말에서도 떨어졌고 적을 공격하는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 달이 되어야 군사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알리지 말고 조선의 수행 신하들만 알고 있으라고 했다.

그날 전마가 많이 죽었고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내렸다.

날씨가 조금 흐려지자 제독은 땅이 얼기 전에 개성으로 물러나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조금만 더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끝내 듣지 않았다.

남쪽에서 온 보병과 포수 일부만 임진강 부근에 남기고 기병은 대부분 개성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벽제관 싸움 뒤 명군의 사기가 달라졌다

대체로 이여송은 스무이렛날 자신의 친위병만 거느리고 너무 가볍게 전진했다가 싸움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뒤 동파까지 물러났다.

명나라 장수 가운데에는 그때부터 후퇴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동파에서도 다시 개성으로 물러났다.

입으로는 군사를 쉬게 했다가 다시 진격한다고 했지만 그 말대로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군량을 마련할 때에는 명나라 군대가 하루나 이틀 정도씩 머물며 곧바로 서울로 전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개성에서 나흘, 파주에서 이틀, 동파에서도 사흘을 머물렀다.

군량 수송은 계속 군대의 이동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명나라 군대가 계속 뒤로 물러난다면 큰일은 거의 끝장날 것이다.

나는 마음이 타들어 가 죽고 싶어도 죽을 곳이 없는 것처럼 답답했다.

더욱 힘을 다해 진격을 청하고 싶었지만 명나라 장수들이 들을지는 알 수 없었다.

평양성을 공격해 승리했을 때에는 실제 전투에서 남쪽 출신 명군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공을 논할 때에는 북쪽 출신 군사들이 앞에 놓였다고 한다.

이런 일도 명나라 군대 내부의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원인이 되는 듯했다.

한 차례 승리한 공만 믿고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잃는다면 우리 힘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괴롭고 답답했다.


명나라 군량을 다시 서둘러 운반해 달라는 보고

명나라 군대가 경기 지역에 들어온 지 이미 보름이 되었다.

그런데도 군량과 말먹이를 공급할 방법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동안 후서강으로 운반한 곡식이 오천여 석 정도였다.

황해도에서도 쌀과 콩을 마련했다.

해주와 연안, 여러 산골 지역에서도 남은 곡식을 거두어 오게 했다.

동파에 보내 놓은 쌀과 콩도 있었다.

남쪽에서 다시 배로 실어 와 후서강으로 내려보내 보충할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이여송은 처음에는 정해진 날에 바로 진격하려 했다.

그런데 열흘 가까이 비와 눈이 이어졌다.

길은 온통 진흙탕이 되었고 말은 배까지 빠졌다.

군대를 움직이기 어려웠다.

명나라 장수의 몸 상태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도 머무르는 날이 늘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군량까지 미리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개성의 백성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모든 일이 막혀 있었다

개성의 백성은 아직 대부분 흩어져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을 시키려 해도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도를 살피던 체찰사도 명나라 장수가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임무를 정리하고 강화도 쪽으로 떠났다.

나는 본래 이 지역을 담당하던 사람도 아니었다.

더구나 어리석고 경험도 부족해 이전의 군량 배치와 사람 동원 과정이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 처음부터 자세히 알지 못했다.

급한 대로 현지 사람에게 묻고 경기와 충청도, 전라도 등의 감사에게 문서를 보내 남쪽 곡식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먼 물로 가까운 불을 끌 수는 없다.

명령을 내린다고 곡식이 곧바로 군영에 도착하지 않는다.


경기와 강원 일대의 굶주림은 참혹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까지 수백 리가 전쟁에 휩쓸렸다.

군사와 백성이 굶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곡식 한 알을 찾아다니다가 길에서 죽는 사람이 계속 나왔다.

평안도에서 온 군사 가운데 일부는 파주 일대에 오래 머물렀는데, 굶어 죽은 사람도 많았다.

이들을 다시 구제할 길도 없었다.

서울 안의 왜군은 아직 깊이 웅크리고 있어 당장 밖으로 나올 기세가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상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북쪽에서도 왜군이 움직인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군량을 군영까지 운반하는 일은 불을 끄듯 급하게 처리해야 했다.

북도의 방어도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명나라 군대 일부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다

명나라 군대가 경기 지역에 들어와 머문 지 이미 열엿새가 되었다.

군량 마련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비와 눈이 며칠씩 이어져 길이 진흙탕이 된 것도 진격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동파에 나가 임진강 부교와 군량 운반을 감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명나라 군사 만여 명이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크게 놀라 밤새 서둘러 개성으로 돌아갔다.

사정을 알아보니 북쪽 왜군의 움직임에 관한 보고 때문이었다.

안변 쪽 왜군이 덕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이덕형 등을 거쳐 제독에게 전해졌다.

이여송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

그는 왜군이 뒤에서 치고 나오면 명나라 군대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군사 육천 명가량을 평양 쪽으로 돌려보내 성을 지키게 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군대를 뒤로 보낸 것이다.

이여송은 자기가 완전히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쪽으로 진격할 기세가 더욱 약해진 것은 분명했다.

날이 마르고 길이 좋아지면 출발하겠다고 했지만, 그날도 다시 비가 내려 언제 길이 마를지 알 수 없었다.

가슴이 타는 듯 답답했다.


군무를 두루 살피는 임무에서 물러나게 해 달라고 청하다

나는 전해인 1592년 칠월 명을 받고 서쪽 길의 여러 일을 살피기 위해 나왔다.

그 뒤 구월에는 군사 문제까지 함께 살피라는 명을 받았다.

그때에는 그렇게 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한 사람에게 책임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

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 놓고 다시 다른 사람을 옆에 붙여 이래라저래라 하게 만들면 책임이 서로 나뉘어 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옛사람도 이런 것을 경계했다.

나는 본래 판단이 어둡고 부족하다.

이전에도 나라 일을 잘못 처리한 일이 많다.

지금처럼 나라의 존망이 걸린 위급한 때에 다시 잘못을 저질러 옛사람이 경계한 일을 반복한다면 그 죄가 더욱 클 것이다.


병과 정신 쇠약으로 더는 군무 전체를 맡기 어렵다

나는 피난길에 오른 뒤로 나라의 일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분하고 괴로워했다.

가슴에 울분이 쌓여 병까지 깊어졌다.

때로는 정신이 흐려지고 생각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군무 전체를 두루 살필 수 없다.

부디 군사를 체찰하라는 명을 거두어 주기 바란다.

나는 지금 맡고 있는 군량 조달과 수송 한 가지 일에만 힘을 다하고 싶다.


명나라 장수가 철군을 정한 것은 단순히 군량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여송의 문서를 보니 여러 곳에서 군량이 계속 이어지지 않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군사를 물릴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평양을 되찾아 큰 공을 거의 이룰 듯하다가 명나라 군대가 철수한다면 참으로 큰일이다.

조정은 멀리 떨어져 있다.

현장의 군량 마련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 두었는데, 이 중요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제독이 군사를 돌리겠다고 한다면 우리 죄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온 힘을 다해 군량을 마련해 완전히 끊어지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명나라 장수가 물러나는 것이 정말 군량 하나 때문인지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남쪽에서 올라온 군량은 이미 만여 석이 있었다

최근 남쪽에서 운반해 온 쌀과 콩이 계속 강 어귀에 도착했다.

그 양이 만여 석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여송이 군사를 물리려 한 가장 큰 이유가 군량의 완전한 고갈이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불행하게도 벽제관에서 가볍게 나아갔다가 한 차례 뜻대로 되지 않은 뒤 명나라 장수들의 마음이 크게 바뀌었다.

그 뒤에는 물러나는 일만 생각하는 듯했다.

파주에서 동파로 물러났다.

동파에서 다시 개성으로 물러났다.

이런 것을 보면 그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이제는 군사를 돌릴 계획까지 정했다는 말이 나온다.

처음부터 그들 내부에서 정한 생각이라면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큰일이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을 보면 모두 우리같이 못난 신하들의 죄가 아닌가 싶다.

부끄럽고 두려워 몸 둘 곳이 없다.


왜군이 권율의 진영을 공격했다는 보고

다른 일은 이미 보고한 바와 같다.

나는 명나라 군대가 개성에 오래 머무르자 군사를 다시 정비할 일을 의논하기 위해 도원수 김명원과 상의하려고 동파에 와 있었다.

이달 열이튿날 한낮에 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많은 왜군이 양천 쪽으로 나와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진을 친 곳을 공격하고 있으며 한창 싸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임진강 앞쪽까지 가서 각 군영과 의병에게 급히 올라와 돕도록 명령했다.

다음 날 새벽 다시 보고가 들어왔다.

왜군은 세 부대로 나누어 공격했다고 했다.

한 부대는 흰 깃발을 들었다.

한 부대는 붉은 깃발을 들었다.

한 부대는 검은 깃발을 들었다.

세 부대가 우리 진영을 에워싸고 오랫동안 공격했다.

그러나 세 부대 모두 우리 군사에게 패했다.

죽은 왜군이 매우 많았다.

의병장 쪽에서도 비슷한 보고가 왔다.

왜군이 밖으로 나와 전라도군의 진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군사가 나누어 뒤를 이어 출동했다고 했다.

이 싸움이 바로 행주에서의 승리였다.


명군이 진격하지 않자 왜군이 다시 대담해졌다

왜군은 평양에서 크게 패한 뒤 오랫동안 감히 서울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가 오랫동안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왜군은 다시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요즘은 날마다 한강 남쪽으로 나오는 왜군이 더욱 많아졌다.

통탄할 일이다.

명나라 장수들은 벽제관에서 전투가 뜻대로 되지 않은 뒤부터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날씨가 나쁘다거나 길이 마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격을 계속 미뤘다.

그러나 최근 서울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서울 안에 있던 왜군도 상당수가 이미 나갔다고 말했다.

명나라 장수도 며칠 뒤에는 진격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때에 다시 수상한 일이 생겼다.


통역관의 수상한 정탐 보고

통역관 가운데 한 사람이 얼마 전 강화도에서 명나라 군영으로 왔다.

그는 자신이 직접 서울 안의 적정을 살피러 가겠다고 청했다.

명나라 사람 한 명이 그와 함께 갔다.

그런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전날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우리 관리에게 먼저 보고하지도 않았다.

곧바로 명나라 장수를 찾아가 말했다.

“서울 안의 왜군은 삼사만 명이나 됩니다.”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선 신하들은 왜군이 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않으면 뒤에 죄를 받을까 두려워 이렇게 직접 말씀드립니다.”

명나라 장수는 그의 말을 매우 믿었다.

결국 다시 진격 계획을 멈추었다.

게다가 수상한 사람들이 명나라 장수 가까이에 머물며 이런 보고를 계속 전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매우 교활해 보였다.

상황을 살펴 반드시 제대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군량도 어느 정도 동파까지 올라왔다

한편 남쪽에서 배로 운반한 군량은 차츰 도착하기 시작했다.

동파 아래에 도착한 쌀이 상당량 있었고 콩도 들어왔다.

합치면 대략 엿새나 이레 정도는 사용할 수 있는 양이었다.

여러 곳에서 오는 군량도 계속 뒤를 이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제때 진격하기만 한다면 왜군이 물러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명나라 장수들에게는 빠르게 나아갈 뜻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 접대사 등은 입이 닳도록 몇 번이고 진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다.

입으로는 완전히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행동을 보면 앞으로 나아갈 준비보다 뒤로 물러날 준비가 더 분명해 보였다.


군량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필요한 곳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1593년 음력 이월 초아흐레 조정에서 군량 문제와 관련한 명령이 내려왔다.

군량은 그저 어딘가에 많이 쌓여 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대가 필요로 하는 곳에 정해진 때까지 옮겨 놓아야 한다.

수만 석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고 제때 운반하지 못하면 굶는 군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성 이북은 왜군에게 짓밟혔다.

일 년 넘게 불타고 파괴되어 관청과 개인에게 남은 곡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해부터 배를 이용해 남쪽에서 군량을 가져와 강화도 등에 미리 쌓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몇만 석이라도 미리 모았어야 했다.


사람과 배까지 미리 준비했어야 한다

곡식만 쌓아 놓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운반할 사람을 미리 조직했어야 한다.

대군이 도착하면 배에 실어 후서강으로 보내고, 미리 모아 둔 사람을 동원해 즉시 육지의 군영으로 옮기게 했어야 했다.

연안과 강화, 통진, 풍덕 등에 있는 관청과 민간의 배도 미리 거두어 두었다면 필요할 때 곧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이처럼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준비가 없었다.

왜군이 물러난 단 하루 사이에 흩어졌던 개성 백성을 불러 모아 군량을 나르라고 했다.

백성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모이겠는가.

군사는 하루 이틀만 지나도 곧 굶게 된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뒤 아무리 마음을 태우고 독촉해도 방법이 없었다.


개성의 행정이 특히 무너져 있었다

평안도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고을이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개성은 특히 심했다.

명나라 장수의 꾸지람을 받아도 변명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호조 관리와 경기의 책임자, 개성의 책임자를 개성에 남겨 군량을 처리하게 했다.

또 다른 관리를 동파에 두어 군량을 점검하게 했다.

동파에는 당시 쌀이 약 육천구백 석 정도 있었고 콩도 이천백육십여 석가량 남아 있었다.

전라도에서 배로 실어 온 곡식도 그 안에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왜군이 언제 서울에서 물러날지는 알 수 없었다.

곳곳에 앉아서 먹기만 하는 군사가 모여 있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길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이제 강의 얼음도 풀렸다.

배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대동강 하류에도 배가 많이 있었다.

급히 모아 사용해야 한다.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따로 보내 배와 운반을 관리하게 해야 한다.

군량 수송은 다른 일보다 특별히 힘을 기울여 처리해야 한다.


서울의 왜군 기세가 약해졌으니 명나라 군대가 서둘러 진격해야 한다

요즘 서울 안의 왜군 형편을 정탐해 오는 보고는 서로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대체적인 상황은 알 수 있었다.

서울 안의 왜군은 열이튿날 행주 싸움에서 매우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이는 서울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말도 거의 같았다.

수군 쪽에서도 보고가 왔다.

보름날 수군이 배를 타고 용산의 왜군 창고 아래까지 올라가 왜군과 맞서 포를 쏘았다고 한다.

강 밖에 있던 왜군 가운데 상당수는 진영을 거두어 물러났다고 했다.


한강 남쪽에는 여전히 왜군이 많았다

그렇다고 적의 세력이 모두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한강 남쪽에는 아직 왜군이 많이 있었다.

사평원 등 서울 남쪽 여러 지역의 왜군이 남아 있었다.

더 멀리 죽산과 충주, 음죽 일대까지 왜군의 세력이 상당하다고 했다.

원주 쪽 왜군도 충주 근처에서 많은 군량을 운반해 어느 곳에 쌓아 두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따라서 서울만 보고 다른 지역의 방어를 비울 수도 없었다.


권율과 충청도·전라도 군대의 배치

전라도 순찰사 권율은 왜군이 다시 공격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진지를 옮겨 파주 쪽으로 올라왔다.

나는 처음에는 권율에게 다시 행주산성으로 돌아가 지키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행주 싸움에서 목책이 대부분 불타 버려 그대로 다시 지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파주 뒤쪽의 산성에 머물게 했다.

다른 장수들의 군대도 차례로 서로 이어 진을 치게 했다.

임진강 남쪽을 단단히 지키기 위해서였다.

기회가 생기면 서울의 동쪽과 서쪽에서 적을 공격해 진격할 생각이었다.


남쪽 지방까지 비워 둘 수는 없었다

충청도와 전라도로 이어지는 길도 문제였다.

의병의 소수 군사는 남아 있었지만 관군의 상당수가 서울 주변으로 올라와 있었다.

남쪽 지역이 비어 버린 것이다.

만약 왜군이 갑자기 남쪽으로 내려가면 몇몇 고을만으로는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이 역시 작은 걱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충청도 감사에게 군사를 돌려보내 그 도의 중요한 길목을 지키게 했다.

각지의 의병에게도 온 힘을 다해 적을 가로막으라고 다시 알렸다.


결국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 군대의 굶주림이었다

당시 모든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군량 부족이었다.

전라도와 충청도처럼 남쪽에서 올라온 군대는 그나마 자기 지역에서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안도처럼 먼 곳에서 온 군사는 달랐다.

전쟁이 시작된 뒤 거의 일 년 동안 계속 전투를 치렀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거기에 식량까지 없었다.

굶어 죽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살아남은 사람도 얼굴이 누렇게 뜨고 기운이 빠져 사람다운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눈앞의 광경이 참혹했다.


고언백의 군사도 먹을 것을 구할 곳이 없었다

고언백 등이 거느린 군사는 서울 주변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관청도 백성도 가진 것이 모두 떨어졌다.

더는 군량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용도로 아껴 두었던 군량 몇백 석을 내어 당장의 굶주림을 구하게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오랫동안 버틸 수는 없었다.


명나라 장수에게 날마다 진격을 청하다

사대수는 동파에 머물렀고 여러 명나라 장수는 개성에 있었다.

나와 도원수 김명원은 날마다 그들에게 나아가 하루라도 빨리 군사를 움직이라고 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매번 말했다.

“대장에게 청해 보겠다.”

자기들이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이여송은 당시 다른 곳에 머물면서 마음속에 불만이 있고 군사를 거두어 북쪽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말도 들렸다.

통역관을 통해 전해 오는 말도 비슷했다.


적의 세력이 다시 합쳐지기 전에 공격해야 했다

만약 지금 왜군이 다시 세력을 합치기 전에 명나라 군대가 전진한다면 큰 공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계속 끌다가 우리 군량이 완전히 떨어지고 군사들까지 모두 지친 뒤에 진군한다면 이미 기회를 잃는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도 중요한 신하를 특별히 보내 명나라 장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진격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모여드는 왜군을 우리 군사가 곳곳에서 매복해 공격하다

최근 왜군이 동쪽 여러 지역에서 서울로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앞서 여러 장수에게 명령해 적이 지나는 길에 군사를 숨겨 두게 했다.

적이 나타나면 기회를 보아 공격하라고 했다.

강원도 쪽의 장수들에게도 적의 길목을 끊어 공격하게 했다.

고언백에게도 군사를 나누어 양주 일대에 매복시키고 왜군이 나타나면 치도록 했다.


소규모 적을 기습한 전과

이달 스무엿새 고언백의 군관이 군사를 거느리고 매복해 있었다.

왜군 기병 십여 명과 보병 이십여 명가량이 나와 함부로 돌아다녔다.

우리 군사가 갑자기 뛰어나가 공격했다.

몇 명을 죽이거나 목을 베었다.

또 다른 날에도 고언백의 매복군이 왜군을 공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왜군이 서울로 들어가려는 길을 노려 새벽에 기습한 일도 있었다.

여러 군관이 힘을 합쳐 싸웠다.

적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다른 길로 서울에 올라오던 왜군도 공격하다

또 다른 보고에서는 왜군이 어느 지역에서 출발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우리 매복군은 왜군이 지나갈 곳을 미리 지키고 있었다.

적의 선두가 지나가고 뒤의 군사가 완전히 도착하기 전에 갑자기 뛰어나가 공격했다.

왜군은 놀라 달아났다.

우리 군사는 승세를 타고 뒤쫓았다.

적의 목 여러 급을 베었다.

다른 군관들도 주변 수령의 군사와 힘을 합쳐 적을 공격해 전과를 올렸다.

이처럼 곳곳에서 작은 승리가 이어졌다.


서울 북쪽의 왜군은 거의 서울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여러 보고를 종합해 보면 서울 북쪽에서 움직이던 왜군은 대부분 다시 서울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포천 같은 곳에 남아 있는 적이 다른 적군과 어떻게 연락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성, 마전과 그 주변 여러 지역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한 명의 군사도 지키지 않는 곳이 생겼다.


우리 동쪽 방어군도 명나라 군량을 대느라 이미 지쳐 있었다

동쪽 지역을 지키던 우리 군대는 전쟁 초부터 명나라 군대에 줄 군량을 마련하고 운반하는 데까지 동원되었다.

이미 크게 지쳐 있었다.

지금 다시 이들을 한곳에 모아 중요한 길목을 막으려 해도 군량이 없었다.

사람을 모아 놓고 먹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손을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평양 승전 직후가 서울을 되찾을 가장 좋은 기회였다

처음 평양에서 승리했을 때 왜군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서울에 있던 왜군 가운데 상당수도 남쪽으로 달아날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바로 그때 명나라 대군이 쉬지 않고 밀고 내려왔다면 적의 세력을 깨뜨리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명나라 장수가 벽제관에서 한번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뒤 명군은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대도 명나라 군대가 다시 진격하기만 기다렸다.

결국 세월만 흘렀다.

한번 얻었던 좋은 기회를 너무나 쉽게 잃었다.

생각할수록 몹시 통탄스럽다.


고언백과 여러 군대의 실제 형편

고언백은 굶고 지친 군사 몇백 명을 거느리고 파주와 양주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 정도의 군사로 작은 무리의 왜군 한두 부대를 공격하는 데 그쳤다.

경기 감사가 거느린 군사도 수천 명가량 있었지만 군량이 없어 몹시 곤궁했다.

앞으로 나아가 싸우기가 어려웠다.

다른 의병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군사가 모여 있다는 이름만 있었지 실제 전투에서 크게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충청도 감사는 처음 양천 근처까지 올라왔지만 안성과 죽산 일대에 왜군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군사를 돌렸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권율의 군대와 수군의 움직임

전라도 순찰사 권율은 파주의 험한 산성에 군사를 두고 있었다.

지형이 험해 어느 정도는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곳이었다.

전라도 병사와 다른 군사도 수원과 독산성 등에 머물렀다.

충청도 수군도 배를 타고 용산 아래를 오가며 왜군을 견제했다.

왜군의 주의를 끌어 서쪽으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작전에도 한 가지 문제가 따라붙었다.

바로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군량이 없으면 백만 대군도 아무 소용이 없다

대체로 군대에서 먹을 것이 부족하면 백만 명의 군사가 있어도 쓸 수 없다.

여러 지역에서 어렵게 거둔 곡식 만여 석은 강 어귀에 모아 명나라 군대에 공급하기 위해 따로 둔 것이었다.

감히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었다.

그 밖의 각 고을에는 적은 양의 곡식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명나라 군량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가지고 있는 곡식을 우리 군사에게 나누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느 쪽을 보아도 남는 곡식이 없었다.

백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천 번을 헤아려 보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라의 형편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참으로 답답하고 두려울 뿐이다.

아홉째 권 끝

 

 

 

 

 

 

 

징비록 제10권

임금의 명을 받은 뒤 적의 형세와 방어 상황을 아뢰다

1593년 음력 2월 17일, 승정원에서 임금의 명을 적은 문서가 내려왔다.

나는 그때 동파에 머물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나 개성에 주둔한 뒤에도 서울은 아직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일을 생각하면 원통하고 분하여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명나라 황제의 위세를 등에 업고 우리 장수들을 독려하여 다시 진격하고 싶었다.

마침 행주 싸움에서 우리 군대가 크게 승리하여 일본군의 기세가 꺾였다. 바로 지금이 승세를 타고 공격할 가장 좋은 때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권율은 일본군이 다시 공격해 올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군대를 파주 쪽으로 옮겼다.

충청도 관찰사와 여러 장수도 자기 도가 비어 있고 적의 기세가 다급하다는 이유로 잇따라 안성과 주변 지역으로 군사를 물렸다.

다른 의병들도 군량이 떨어지자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그러니 여러 지역의 요충지를 막고 적을 공격하려던 계획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

나는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명나라 장수들에게 계속 진격해야 한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군사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지금 적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우리 군대가 여러 곳에 진을 이어 설치하고, 서로 호응하면서 큰 기세를 만들어 곳곳에서 공격한다면 일본군은 편안히 머물지 못할 것이다.

적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면 결국 서울을 버리고 달아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 군대는 오랫동안 군율이 해이해졌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장수마다 명령이 다르다.

하나의 작전을 세워 함께 움직이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군량을 마련하는 문제를 아뢰다

지난달 19일에 임금의 명이 내려왔다.

이여송 제독은 이미 뒤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지만 명나라 남쪽 지방의 포수 수만 명이 지금 나오고 있으니, 이 사실을 백성에게 널리 알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하셨다.

또 군량과 말먹이를 더욱 힘껏 마련하여 명나라 군대를 잘 대접하고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24일에도 다시 명이 내려왔다.

이덕형 등이 올린 보고를 보니 이여송 제독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앞길에 필요한 군량과 말먹이를 넉넉하게 준비하여 부족한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동파에서 이 명을 받았다.

처음 명나라 대군이 거침없이 진격할 때는 멀고 가까운 곳의 백성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사람들은 서울을 곧 되찾을 것이라고 믿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백성들도 조금씩 다시 모여들었다.

그런데 대군이 갑자기 한 번 물러나자 백성들의 마음도 한꺼번에 무너졌다.

겁을 먹고 놀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 때문에 동파에 계속 머물면서 백성을 타이르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일을 제대로 수습할 방법이 없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모습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굶주린 백성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살려 달라며 몰려온다.

하루에도 수백 명, 많을 때에는 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살릴 방법이 없다.

최근에는 전염병까지 크게 번지고 있다.

굶주림과 병으로 하루에도 여덟 명이나 아홉 명이 죽는 때가 있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다.

봄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씨앗이 있어도 아직 땅에 뿌리지 못하고 있다.

사방의 굶주린 백성들이 한곳에 모여들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곡식까지 모두 먹어 치울 것이다.

지금 명나라 군대에게 지급하도록 이미 따로 정해 놓은 것을 제외하고 남은 곡식은 쌀이 약 만 구천구백사십삼 석이고, 콩이 약 칠천백십삼 석이다.

쌀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콩은 크게 부족하다.

명나라 대군이 곧바로 진격하기만 한다면 이 정도로 잠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날 이곳에 머물러 먹기만 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곳에는 명나라 군대뿐 아니라 우리 군대도 많이 모여 있다.

고언백을 비롯한 장수들의 군대도 모두 이곳의 곡식에 의지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여러 군대도 먹을 것이 없다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해도 서울은 아직 적의 손에 있다.

그대로 남겨 두려고 해도 먹일 곡식이 없다.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처음 내가 세운 계획은 이러했다.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배로 수만 석의 곡식을 실어 오게 하여 명나라 군대를 먹인다.

경기와 강원도에서 모은 곡식은 우리 군대를 먹이는 데 사용한다.

이렇게 서로 나누어 쓰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경기와 강원도에서 모을 수 있었던 곡식은 명나라 군대가 하루 동안 먹을 양도 넉넉하게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곡식까지 모두 명나라 군대가 가져가 버리면 우리 군대와 백성은 먹을 것이 완전히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남겨 두어 우리 군대와 그 지역 백성에게 쓰고 싶었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가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머물면서 군량을 담당한 관리들이 눈앞의 필요만 보고 경기의 각 고을에 남아 있던 곡식까지 계속 거두어 갔다.

강원도의 철원과 안협과 이천 등지에 저장되어 있던 곡식도 거의 모두 가져왔다.

이제 남은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명나라 군대는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 군사들은 모두 굶주려 제대로 된 군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파주와 고양과 교하 같은 곳의 백성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일본군과 계속 싸웠다.

원래는 매우 굳세고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먹지 못하면 싸울 수 없다.

판독이 어려운 부분

이 대목 뒤의 한 쪽은 문자 인식이 매우 심하게 무너져 문장 전체를 정확히 복원하기 어렵다.

서울과 한강 주변의 적군 이동, 우리 관군과 의병의 배치, 각 지역 군대를 서로 연결하여 적의 길을 끊는 문제를 논하고 있는 것은 확인된다.

그러나 정확히 읽을 수 없는 인명과 숫자, 세부 문장은 뜻을 만들어 넣지 않는다.


관군과 의병을 가까운 장수에게 나누어 맡기다

적이 깊숙이 들어온 상태에서는 앞에서만 적을 막아서는 안 된다.

적의 옆과 뒤에도 우리 군사가 있어야 한다.

동쪽 길의 관군과 의병이 먼저 적의 왕래를 막으면 적의 앞뒤가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

적이 물러날 때 뒤를 쫓아 공격하면 크게 무찌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지금 이런 일을 힘껏 맡아 할 사람이 거의 없다.

의병은 서울과 경기에서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무려 쉰 부대가 넘게 모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관군의 지휘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

관군과 의병이 서로 떨어져 따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날이 갈수록 군대가 흩어진다.

관군의 군율도 엄하지 못하다.

관군과 의병이 모두 팔짱을 끼고 바라보기만 하며 제대로 싸우지 않는다.

왜 공격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우선 명나라 군대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매우 답답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각 지역의 군대를 가까운 곳에 있는 믿을 만한 장수에게 나누어 맡기는 방안을 생각했다.

가평과 포천, 장단과 풍덕, 고양과 주변 지역의 군사들은 고언백 같은 장수에게 붙여 주어 서울의 동쪽과 북동쪽 지역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

다른 지역의 군사와 모집병, 의병도 가까운 곳의 방어사나 믿을 만한 장수에게 나누어 맡겨야 한다.

죽산과 양지 등지의 군사와 여러 모집병, 의병도 그 지역의 장수에게 붙여 한 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용인과 과천을 비롯한 지역의 병사들도 해당 지역을 잘 아는 장수에게 맡겨 그 일대의 적을 공격하게 해야 한다.

통진과 김포, 양천과 안산, 수원과 남양, 진위와 안성 등지의 군사 역시 각각 책임자를 정해 서로 호응하게 해야 한다.

전라도 병사 선거이의 군대가 독성에 있으니 그 군대도 주변 군사와 연계하여 적을 공격하게 해야 한다.

충청도 관찰사와 병사는 적절한 곳에 진을 두어 동쪽에서 오는 길을 막고 군량 운송로를 지켜야 한다.

또 죽산 이북을 오가는 적의 길을 차단해야 한다.

각 지역의 의병도 지휘 체계 안에 넣어야 한다.

죽산의 의병은 그 지역의 장수에게 맡기고, 음성과 충주와 보은 등지의 의병도 그 가운데 맡길 만한 사람을 골라 책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명령을 받고도 게으르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거나, 자기 마음대로 군사 행동을 거부하거나,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모두 군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그래야 사기가 살아나고 적을 평정할 희망이 생긴다.

충청도의 의병들은 당시 심수경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심수경은 멀리 아산에 있었다.

군사 행동은 순간순간 변하는 상황에 바로 대응해야 한다.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사람을 보내 명령을 물어보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면 어떻게 싸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정에서 심수경에게 이 사정을 자세히 알려 현지 장수들이 실제 상황에 따라 바로 지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용산의 일본군 창고를 불태울 방책을 아뢰다

용산에 있는 일본군의 창고를 불태우는 일은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계책이다.

충청 수사 정걸은 최근 수군을 이끌고 용산 아래쪽을 오랫동안 오가고 있었다.

경기 수군의 장수와 창의군의 장수들도 각각 배를 이끌고 그곳에서 힘을 보탤 수 있었다.

나는 명나라 장수들에게서 불화살 수십 개를 빌려 정걸에게 주었다.

기회를 보아 사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용산의 지형을 생각하면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용산의 창고는 강가 안쪽에 있고 일본군이 지키고 있다.

우리 수군이 쉽게 육지에 내려 적을 공격하려다가 오히려 적에게 포위되면 크게 패할 수 있다.

그래서 정걸 등에게 명령하여 낮에는 배를 움직이며 적의 시선을 끌게 하고, 다른 육군을 밤에 몰래 적의 뒤쪽으로 보내 불을 놓는 방법을 시험해 보게 했다.

다만 이 작전을 맡을 사람은 반드시 대담해야 한다.

또 용산 일대의 지형을 평소부터 자세히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섣불리 시행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충분히 살핀 뒤에 움직여야 한다.

병법에서는 공격하기 어려운 강한 곳을 억지로 공격하기보다 적의 약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강한 곳만 힘으로 밀어붙이면 우리 군사의 힘이 먼저 다한다.

서울 안에는 일본군의 정예병이 모여 있다.

그들을 지금 당장 정면으로 공격해 성을 빼앗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강 남쪽을 오가며 흩어져 있는 적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병력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고 오랫동안 싸워 지쳐 있다.

그런 적은 공격하기가 훨씬 쉽다.

수로를 이용하면 개성에서 강화도로 갈 수 있고, 강화도에서 다시 통진 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길이 크게 막혀 있지 않다.

남쪽 지방의 포수 가운데에도 굶주려 힘든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포수들을 용감한 장수 한 사람에게 맡기고 배를 이용하여 적의 뒤쪽으로 돌아가게 하면 좋겠다.

앞에서는 우리 군대가 적과 맞서고, 뒤에서는 그 군대가 갑자기 공격한다.

적이 미처 대비하지 못했을 때 일제히 들이친다면 벌 떼처럼 흩어져 있는 일본군의 여러 진지가 어떻게 버티겠는가.

한강 남쪽의 적을 단번에 쓸어 버린다면 충주 이북으로 이어지는 일본군의 길이 끊어진다.

서울에 있는 적군은 직접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고립될 것이다.

그런 뒤 명나라 대군이 뒤에서 힘차게 진격하여 앞서 나간 우리 군대와 합세한다.

그리고 일본군의 돌아갈 길을 먼저 막은 뒤 추격한다면 적은 쉽게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금 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계책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에 이곳에 있던 명나라 장수들에게도 이런 뜻을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무관이어서 군사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고 내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했다.

이제 송응창 경략이 그쪽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다.

빨리 이 계책을 그에게 알려야 한다.

그가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에만 다행한 일이 아니다.

전쟁 전체를 끝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또 문제가 되는 것은 군량이다.

고언백 등이 군대를 이끌고 진을 이어 동쪽의 적 길을 막고 있지만 군량이 끊기고 있다.

경기 여러 고을은 이미 바닥이 났다.

강원도의 이천과 평강과 안협 같은 지역에 조금 있던 곡식도 명나라 군대를 대접하기 위해 가져가 버렸다.

더 가져올 곳이 없다.

민간에는 반 되의 곡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집이 많다.

전에 곡식을 모집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지만 요구한 양이 너무 많아 실제로 응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한 되나 한 말이라도 급하다.

그 양이 적다고 가볍게 볼 때가 아니다.

당장 사람을 보내 조금씩이라도 거두어 모아야 한다.

먹을 것이 없다면 정예병 만 명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밤낮으로 걱정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일본군이 보내 온 편지를 보고 그 속셈을 헤아리다

일본군이 보낸 편지 한 통이 명나라 장수에게 들어왔다.

그 편지는 명나라 장수가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자세한 내용을 모두 보여 주지 않은 듯했다.

충청 수사 정걸에게서도 편지가 왔다.

이 일은 전쟁의 큰 흐름과 관련된 것이므로 서둘러 자세히 의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일본군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일 수 있다.

첫째, 일본군은 평양에서 패했고 다시 행주에서도 크게 패했다.

정예병을 많이 잃었다.

북쪽 지방과 원주 등지에 있던 일본군이 서울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북쪽에는 명나라 군대가 있었다.

우리나라 군사도 남쪽과 여러 길목에 있었다.

정걸과 경기 수군, 김천일 등이 배를 거느리고 강을 오가며 적의 길을 끊고 있었다.

고언백의 군대도 서울 동쪽에서 연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우리 군대의 손실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지만 일본군의 사상자는 많았다.

그들은 깊숙이 들어와 있다가 앞뒤가 막힌 셈이었다.

이미 그들의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둘째, 일본군은 여러 해 동안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싸웠다.

군사들은 지쳤고 마음속으로 모두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허락하지 않으니 마음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따라서 강화를 핑계 삼아 자신들의 사정을 일본에 보고하고 귀국할 허락을 받으려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다.

셋째, 그들이 실제로 물러날 생각 없이 강화를 말하며 시간을 벌려는 것일 수도 있다.

명나라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아 놓고, 그동안 뒤에서 새로 들어오는 일본군을 기다리려는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나는 명나라 장수들이 지금까지 일을 처리하는 모습과 하는 말을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강하게 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뜻은 약했다.

오히려 강화를 통해 일본군을 물러나게 하려는 기색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 계획이 실행될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전날 김명원과 함께 명나라 장수를 찾아가 그 속뜻을 직접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 장수는 병에 걸렸다며 사람을 보내 만나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가 다시 사람을 우리 숙소로 보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장군께서 병이 나으면 직접 오셔서 의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붙잡힌 왕자들을 구해 내기 위해 일본군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군은 형편이 불리해질 때마다 강화를 말하여 우리를 속이고 군사를 늦추는 것이 늘 쓰던 방법입니다.

임진강에서도 그랬고 평양 싸움에서도 그랬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말을 믿고 계략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장군께서는 전에 평양성 안에 직접 들어가 일본군을 보셨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를 돌려 그들을 공격하셨습니다.

적이 장군을 몹시 원망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적을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이 적과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는 원수 사이입니다.

죽는다 해도 우리가 먼저 강화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런 뜻으로 답장을 보내는 일을 거절했다.

그 뒤 명나라 장수는 다시 사람을 보내 말했다.

“병이 나으면 원수와 대신들을 불러 함께 의논하겠습니다.”

결국 앞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알 수 없었다.

대체로 명나라에서는 전쟁을 오래 계속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일본의 조공을 어느 정도 허락하고 군사를 물러나게 하여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우리 국토의 대부분은 아직 되찾지 못했다.

우리 힘만으로 일본군을 몰아낼 병력도 없었다.

결국 남의 군대에 의지하여 우리 땅을 되찾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는 동안 군사와 백성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다.

좋은 기회가 생겨도 싸울 장수와 용감한 병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니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한강 남쪽의 일본군을 정탐하여 보급로를 끊을 계책을 아뢰다

한 장수가 사람을 보내 말했다.

남쪽 지방 군사 삼십 명가량을 골라 배에 태워 한강 남쪽에 있는 일본군의 상황을 정탐해 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충청도의 한 의병장도 개성으로 올라오는 길에 사람을 만나 의견을 전했다.

그의 생각도 비슷했다.

먼저 남쪽 길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면 서울에 있는 일본군의 보급 근원이 끊긴다는 것이었다.

매우 훌륭한 계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군관과 군사 열 명가량을 더 붙여 그 일을 돕게 했다.

이 계책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서울에 있는 일본군의 뿌리가 끊긴다.

그 뒤 대군이 뒤에서 진격하고 우리 군대가 사방에서 포위하면 반드시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매우 기뻤다.

최근 명나라 장수들이 전쟁에서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남쪽 군사와 북쪽 군사를 제대로 협력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바로잡으면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송응창 경략이 이미 평양 쪽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이 계책을 받아들여 준다면 지금 나라를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계책이 될 것이다.

최근 우리 군대는 여러 곳에서 힘을 내 일본군을 공격하여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만 군량이 계속 이어지지 않아 더 큰 일을 하지 못한다.

명나라 군대가 곧바로 전진하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그들에게 준비한 군량 가운데 일부라도 우리 군대에 나누어 주어 배불리 먹여야 한다.

그리고 한 번 결전을 벌여 성과를 얻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형세가 위급함을 아뢰다

이곳 명나라 군대의 군량 사정은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아뢰었다.

호조 관리들의 보고를 보면 쌀과 콩을 합쳐 거의 사만 석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명나라 군대가 먹는 일은 당분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말먹이도 지금 육로를 이용해 계속 운반하고 있다.

이여송 제독이 군사를 뒤로 물린 것은 단순히 군량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벽제에서 너무 가볍게 진격하다가 뜻하지 않게 패하여 일이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친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 뒤 여러 우리 군대가 도중에 흩어졌다.

군량이 끊겨 계속 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의병과 관군 가운데에는 백성에게 함부로 물건을 거두고 빼앗는 사람까지 있다.

공적인 창고와 개인이 가진 곡식이 가리지 않고 모두 고갈되었다.

백성의 힘은 완전히 다했다.

전쟁 피해를 심하게 입은 곳의 상황은 특히 참혹하다.

들으니 충청도의 몇몇 지역은 사방에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바람 소리와 물소리만 들린다고 한다.

충주 이북 지역에서는 일본군이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는 일이 지난 가을과 겨울보다 오히려 더 심하다고 한다.

일본군은 명나라 대군이 서쪽에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멀리 진격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을 점령하고 있다.

그리고 한강 남쪽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충청도와 전라도 방향으로 계속 밀고 내려온다.

이들을 어떻게 막겠는가.

설령 일본군이 서울을 버리고 돌아가려 한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군량이 떨어졌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지나는 고을마다 남아 있는 곡식을 약탈하려 할 것이다.

당연히 예상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 남쪽 지방의 형편은 이처럼 매우 위급하다.

명나라 군대에 줄 군량 가운데 일부는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 오고 있다.

그런데 길에서 일본군에게 빼앗기는 것도 많다.

경기 여러 고을에서는 명나라 군대가 온다는 말을 듣자 오직 그 군대를 먹이는 일에만 마음이 쏠렸다.

적을 막을 대비는 잊어버렸다.

각 고을 수령들은 담당자를 정하고 고을의 모든 사람과 수레와 가축을 동원하여 명나라 군대의 식량과 말먹이를 나르게 했다.

의병으로 모여 있던 사람들까지 명나라 군량을 운반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떠나 흩어졌다.

자기 진지를 지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을 매우 걱정한다.

경기도 관찰사에게 급히 명령하여 군기를 바로잡아야 한다.

의병을 다시 모으고 관군과 힘을 합쳐 중요한 길목을 지키게 해야 한다.

지난달 십칠일 이후 한강 남쪽의 일본군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고 한다.

과천과 수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 적이 출몰하고 백성은 모두 흩어졌다.

일부 장수가 성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 몸을 보전하기도 힘든 정도다.

밖으로 나가 일본군의 길을 끊을 군사는 거의 없다.

거기에 군량까지 바닥났다.

경기 각 고을에 얼마 남지 않았던 곡식도 거의 모두 거두어 갔다.

병력을 다시 모으고 싶어도 병사들이 굶주려 움직일 수 없다.

굶어 죽어 가는 백성을 데려다 어떻게 전쟁을 하겠는가.

내가 전부터 걱정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나라 군대의 식량은 가능하면 남쪽 지방에서 배로 운반해 오는 수만 석의 곡식으로 지급하고 싶었다.

강원도와 경기의 곡식은 건드리지 않고 우리나라 군대의 군량으로 남겨 두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계획도 아직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이제 일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가까워지고 있다.

경기도 쪽을 맡은 관리가 유능하고 경험 많은 사람이라면 그나마 형편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담당자는 이처럼 위급하고 복잡한 상황을 혼자 책임지고 처리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렇다고 당장 대신할 만한 사람을 얻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쉽게 사람을 바꾸자고 말하지 못한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충청도의 아산 등지에 있던 창고 곡식도 여러 차례 거두어 가 이제 거의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이 지역의 군량까지 완전히 떨어지면 군사와 백성은 다시 모을 수 없을 만큼 흩어진다.

그러면 일본군은 아무런 방비도 없는 지역을 마음대로 휩쓸 것이다.

나라가 끝내 의지할 곳은 어디에 남겠는가.

이런 사정을 담당 관청에서 매우 깊이 살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군량과 백성의 식량을 논한 글

이 파일에는 제목 다음에 별도의 본문이 이어지지 않는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난 뒤의 사정을 아룬 글

이 파일에는 제목만 남아 있고 본문은 이어지지 않는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글

원문에는 본문이 본집에 실려 있다고 되어 있다.


임금의 명을 받은 뒤 벽제 패전의 원인을 논하다

임금께서 명하셨다.

“이여송 제독을 만나게 되거든 우리나라 군사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일을 이야기하라. 벽제 싸움에서 어떤 장수가 먼저 달아났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보고하라.”

나는 동파에서 이 명을 받았다.

내가 예전 여러 시대의 전쟁을 살펴보니 나라가 아무리 쇠약해져도 반드시 한두 명의 뛰어난 장수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

군사의 수는 적지 않다.

그러나 부대의 편성이 분명하지 않다.

누가 누구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지도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다.

명령과 약속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 많은 군사를 모아 놓아도 마치 장터에 사람들이 뒤섞여 모여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막상 적을 만나면 적의 기세만 보고 모두 달아난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수습할 수도 없다.

나라 일이 이 지경까지 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군사는 정예하게 훈련되지 않았다.

장수는 평소 병사들을 제대로 통솔해 본 경험이 없다.

아래의 병사들은 굶주리고 피곤하다.

그러면서도 위의 장수에게 따뜻한 보살핌이나 은혜를 입은 적이 없다.

장수와 병사의 마음이 서로 하나가 아니다.

이런 군사에게 어떻게 끓는 물과 불 속이라도 뛰어들 듯 목숨을 버리고 싸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최근 여러 군대를 살펴보면 고언백이 거느린 군사들이 가장 눈에 띈다.

그의 군사들은 고언백의 명령을 잘 따랐다.

싸움터를 드나들면서도 죽고 사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고언백이 평소 병사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병사들과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명령과 약속을 매우 엄하고 분명하게 했다.

그래서 병사들이 따르는 것이다.

다만 군사의 수가 적어 큰 적을 정면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장수들은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이 장수의 명령을 잘 듣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 장수가 군사를 다스리는 방법이 오직 무섭게 하고 엄한 형벌을 내리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벽제 싸움이 있었던 날 나는 파주에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들은 바에 따르면 처음부터 명나라 장수와 우리 군대 사이에 분명한 명령과 작전 약속이 없었다.

그날 아침 일찍 고언백은 명나라 장수를 따라 먼저 벽제 쪽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일본군을 죽였다.

다른 우리 장수 한 사람도 군대를 이끌고 앞쪽으로 십여 리 나아갔다.

그런데 이여송 제독이 아무런 통보도 없이 직접 몸을 앞세워 갑자기 달려 나갔다.

이를 들은 우리 장수도 다른 길을 따라 전진했다.

하지만 명나라 군대와 제대로 합치기도 전에 명군이 이미 패하여 돌아오기 시작했다.

만일 실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우리나라 정예병 수천 명이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일본군의 옆구리를 공격했다면 명나라 군대가 그처럼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 장수에게 죄가 있다면 물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날의 일은 애초에 명나라 장수들이 우리 군대에게 분명한 명령과 약속을 하지 않은 데에서도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당시 나는 파주에 있었다.

도원수 김명원은 명나라 군대를 따라 뒤쪽에 있었으므로 그날 상황을 직접 보았다.

그에게 자세히 물으면 실제 사정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벽제에서 명나라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일이 더욱 엉망이 되었다.

각 고을에서 동원된 사람과 아랫사람들, 군량을 운반하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그들은 군사들과 서로 뒤섞여 한꺼번에 물러났다.

길이 막힐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일본군에게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큰 공을 이루지 못하고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된 데에는 그날 한 번의 패전이 큰 원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뼛속까지 아프고 원통하다.


우리 군대의 군량이 모두 떨어진 사정을 아뢰고 백성의 부담을 줄여 달라고 청하다

충청도의 조방장 홍계남이 보고했다.

자신이 따로 마련해 둔 군량 백여 석을 신창 지역의 산사에 저장해 두었는데, 명나라 군대의 군량을 감독하는 관리가 명나라 군대를 먹여야 한다며 여러 차례 가져갔다고 했다.

그 결과 자기 군사들에게 먹일 길이 끊겼다.

군사들은 모두 흩어졌다.

양지와 죽산 일대의 일본군은 전보다 몇 배나 많아졌다.

그런데 조방장은 적군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에서 군사를 잃은 채 혼자 남았다.

손을 쓸 방법이 없다며 답답하고 걱정스럽다고 보고했다.

승군을 이끄는 유정도 보고했다.

황해도 승려들에게서 어렵게 얼마간의 군량을 모았는데, 감독 관리가 그것마저 여러 차례 가져갔다고 했다.

그 때문에 승군도 먹을 것이 없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명나라 군대의 군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가 아직 앞으로 나아가기도 전에 우리나라 군대가 먼저 굶어 모두 흩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틈을 타 일본군이 안쪽으로 깊숙이 쳐들어온다면 나중에 명나라 대군이 아무리 많이 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일에는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급한지를 자세히 살핀 뒤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조정의 명령과 군량을 맡은 관리들의 행동을 보면 오직 명나라 군량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것 같다.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관청과 민간에 저장된 곡식을 모두 가져가 버린다.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다.

관청에서 평소 사용할 곡식도 없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할 곡식도 없다.

봄 농사에 쓸 씨앗조차 남지 않을 지경이다.

우리나라 군대가 먹을 군량은 아예 마련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우리 군대가 곳곳에서 무너져 흩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강원도의 이천과 철원과 안협 같은 곳의 창고에는 곡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북쪽 지방에서 내려온 여러 장수들의 군사도 대부분 흩어졌다.

남아 있는 병사들은 굶주림이 극심하여 이미 제대로 된 군대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서울 동쪽과 한강 주변은 반드시 군사를 두어 적의 길을 끊어야 하는 곳이다.

그 일을 맡은 한 장수는 처음에 삼천육백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에서 군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군사들이 칠팔 일이나 굶었다.

마침내 대부분 흩어졌다.

굶어 죽은 사람이 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병으로 쓰러진 사람도 육백여 명에 이르렀다.

이제는 독립된 군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어 다른 군대에 붙여 놓을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명나라 군량 가운데 조금을 떼어 주어 간신히 먹였지만 병사들은 이미 병들고 굶주려 얼굴빛이 푸른 귀신처럼 변했다.

이런 병사들을 어디에 쓸 수 있겠는가.

한강 남쪽의 경기 지역도 마찬가지다.

일부 고을에서는 다음 농사에 쓸 씨앗까지 계산하지 않고 명나라 군대의 식량으로 거의 모두 내주었다.

그러니 우리 군대는 먹을 것이 없어 흩어졌다.

그런 가운데 일본군은 여러 곳으로 흩어져 나와 수십 리, 수백 리 안을 돌아다니며 약탈한다.

소를 셀 수 없이 많이 잡아먹는다.

그런데도 나가서 막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대로 경기 남쪽을 포기할 수는 없다.

충청도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반드시 군사를 두어 중요한 곳을 끊어 지켜야 한다.

싸울 때에는 싸우고 지킬 때에는 지켜야 한다.

그래야 적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홍계남 같은 의병장까지 먹을 것이 없어 군대를 해산해야 한다면 다른 군대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형세는 곳곳이 무너지고 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고, 팔다리와 몸통이 서로 돕지 않는 것과 같다.

생각만 해도 뼛속이 서늘하다.

황해도와 강화도 등에서도 명나라 군대에 공급할 물자를 마련하는 일이 불보다 더 급하다고 한다.

경험 없는 군관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곡식을 강제로 정해 내게 한다는 말도 들린다.

어떤 집에는 쌀 반 되도 없는데 일정한 양을 반드시 내라고 독촉한다고 한다.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길에 가득하여 차마 들을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일이 나라가 위급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백성들의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때다.

조금이라도 사정을 살펴 주어야 한다.

나라의 일과 백성의 생활이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 곡식을 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그대로 받더라도, 굶주린 가난한 백성에게까지 똑같은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주 가난한 집에는 조금이라도 곡식을 더 나누어 주어야 한다.

나라가 백성을 사랑한다는 뜻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라가 잃는 것은 많지 않지만 얻는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바라건대 임금께서는 이 문제를 매우 깊이 살펴 실제로 시행할 대책을 마련해 주시기 바란다.


적진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전한 두 왕자와 가토 기요마사의 상황

의병장과 수군 장수들에게서 보고가 올라왔다.

한 사람이 13일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갔다가 14일 정오 무렵 편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동행자들과 함께 큰길을 따라갔다.

들판을 지나 돌다리 아래쪽 길로 들어갔다.

다시 개울가를 따라 여러 집을 지났다.

열 집이 넘는 곳을 지나자 은행나무가 서 있는 큰 집 하나가 나타났다.

그곳이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먼저 바깥 행랑으로 들어갔다.

두 식경가량 기다린 뒤에야 안쪽 행랑으로 불려 들어갔다.

안에는 병풍과 붉은 비단, 화려한 휘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장식이 매우 화려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나이가 서른 살쯤으로 보였다.

그는 붙잡혀 있던 두 왕자와 함께 마루에 앉아 있었다.

우리 사람은 왕자들 앞으로 나아가 엎드려 절했다.

왕자들은 임금의 안부를 물었다.

서쪽 지방의 소식도 물었다.

가토는 통역을 시켜 우리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통역을 맡은 자는 조선 출신으로 적에게 붙은 사람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가토는 두 왕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왕자들의 피부와 얼굴빛을 보아라. 조금도 야위지 않았지 않느냐. 우리가 얼마나 후하게 대접하고 있는지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강화 이야기를 꺼냈다.

“강화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겠다는 것인지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말해야 우리도 일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런 분명한 대답도 하지 않는가?

일본에서는 계속 군사를 보내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바다를 건너오는 병력이 이어질 것이다.

더 많은 군사가 들어와 일이 커진 뒤에는 후회해도 늦는다.

왜 빨리 일을 결정하지 않는가?”

우리 사람이 대답했다.

“지금 명나라에서 많은 군사가 왔고 우리나라에도 원수를 갚겠다는 군사들이 모여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군이 싸우고 싶다면 싸우는 것은 우리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화 문제는 우리나라가 마음대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명나라 군대는 황제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강화를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도 명나라 장수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멋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가토는 그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잠시 뒤 음식을 차리게 했다.

가토와 왕자와 우리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술도 세 잔씩 돌렸다.

그 뒤 황정욱 부자와 그 밖에 붙잡혀 있던 조선 사람들이 각각 다른 곳에서 불려 나왔다.

그들에게도 술을 세 잔씩 주었다.

가토가 말했다.

“조선 사람이 여기까지 왔으니 너희들끼리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하여라.

그리고 이 사람이 돌아가면 너희 대장에게 말하게 하라.

명나라 장수에게 전하여 빨리 강화 여부를 결정하라고 하라.”

잠시 뒤 가토가 다시 말했다.

“내가 성 안에 들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너희는 여기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라.”

가토가 자리를 뜨자 일본군 병사들이 마루 아래에 서서 사람들을 지켰다.

그 사이 두 왕자와 붙잡힌 신하 몇 사람이 불빛 아래에 함께 앉았다.

그들은 그동안 겪은 고생을 이야기했다.

듣기가 참혹하여 차마 끝까지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한 왕자는 털로 만든 도포를 입고 머리에도 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왕자가 말했다.

“나는 원래 흰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일본 장수가 갑자기 이런 옷을 가져와 입으라고 했다.”

곁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오늘 조선에서 사람이 오니 초라한 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 주면 우리가 왕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좋은 옷을 입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세수하고 그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했다.

임해군은 머리의 일부를 드러내 상처를 보여 주었다.

그가 말했다.

“잡혀서 끌려오는 길에 일본군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이 상처가 그때 생겼다.”

황정욱도 자신이 끌려오는 동안 심한 고문을 당한 일을 이야기했다.

적은 그가 중요한 물건이나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 알려 달라고 강요했다.

그가 가르쳐 주지 않자 수없이 구타했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말했다.

“나는 잡힌 뒤 여러 번 죽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죽이지 않았다.

살아서 나라가 이런 치욕을 겪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찌 차마 견딜 일이겠는가.”

두 왕자는 가토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개인적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진 뒤에야 가토가 돌아왔다.

우리 사람과 동행자들은 다른 곳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뒤 일본 측에서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두 왕자의 답장도 주었다.

그 밖의 문서도 몇 개 함께 주었다.

가토를 다시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그들은 문서를 가지고 일본군 진영에서 빠져나왔다.

서울 쪽에서 일본군이 머무는 곳까지 약 십 리에 걸쳐 길가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머리와 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길을 제대로 걷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본군도 그 시체들을 밟으며 오갔다고 한다.

그들이 가지고 나온 일본군의 편지는 명나라 유격장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또 행재소로 보낸다는 긴 문서 한 통이 있었다.

봉투를 열어 보니 여러 대신의 이름을 함께 적은 글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너무나 분하고 통탄스러워 차마 볼 수 없는 말이 많았다.

나는 당장 불에 태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미 문서를 열어 본 뒤였으니 그냥 없애기도 어려웠다.

두 왕자의 답장은 모두 임금과 관련된 내용이므로 그대로 올렸다.

문제가 된 긴 문서는 겉에는 행재소로 보낸다고만 적혀 있었다.

안팎 어디에도 정상적으로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없었다.

몇몇 붙잡힌 신하들의 이름과 서명이 있을 뿐이었다.

글씨도 황정욱이 쓴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글의 형식과 내용이 매우 수상했다.

나는 일본 장수가 일부러 이런 글을 만들어 우리 내부를 속이고 이간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문을 그대로 올리지 않고 우선 모양과 내용을 베껴서 보고했다.

원래 문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따로 조사하게 했다.

우리 대신들은 이곳에 있는데도 명나라 장수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명나라 장수들도 강화에 관한 속뜻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보면 실제로 강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14일 저녁에는 내가 다른 일을 살피느라 밖에 있다가 명나라 사람 사오십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서울로 간다고 했다.

또 전에 일본군 진영을 왕래한 사람과 관련된 명나라 사람이 돌아와 우리 종사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 나라에는 군량과 말먹이가 없다.

봄도 이미 깊어졌다.

앞으로 수십 일이 더 지나면 백성들이 모두 죽을 지경이 될 것이다.

일본군을 강화시켜 물러나게 하려면 그들이 명나라와 왕래하며 조공하는 것을 어느 정도 허락하고 협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난해부터 명나라 사람들과 계속 접촉하며 그들의 속마음을 살펴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본군과 협상하여 군사를 물러가게 하고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들도 우리나라가 일본군에게 부모와 형제를 잃고 뼛속 깊이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 앞에서는 강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시 전쟁을 적극적으로 벌일 뜻이 매우 약해졌다.

명나라 대군이 한 번 물러난 뒤로 다시 힘껏 진격하려는 기색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때문에 밤낮으로 마음이 타들어 가고 뼈가 아픈 심정이었다.

하지만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 힘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의 재정과 백성의 힘이 모두 명나라 군대를 대접하고 군량을 운반하는 데 소진되었다는 사실이다.

경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충청도와 전라도까지 더 버틸 힘이 거의 없어졌다.

군량 운송을 감독하도록 보낸 관리 가운데에는 젊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도 많다.

그들은 오직 명나라 군대를 먹이는 일이 급하다는 생각으로 관청과 민간에 남은 곡식을 모두 거두었다.

이 때문에 흩어진 관군과 의병들은 다시 중요한 길을 지킬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한강 남쪽에서 충주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이 비어 가고 있다.

그 틈을 타 일본군이 날마다 사방으로 나가 약탈한다.

남쪽 지역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나는 본래 능력도 부족한 사람인데 이런 큰 책임을 맡았다.

공문을 보내고 독촉할 뿐이다.

이미 한 번 흩어진 군사는 다시 모을 수 없다.

곳곳의 창고에는 남은 곡식이 없다.

간신히 조금 모은 곡식은 명나라 군량이라고 따로 표시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 군대에 쓸 수도 없다.

그 밖에는 어디에도 기대어 쓸 만한 곡식이 없다.

조정에서 이 형편을 깊이 생각하여 빨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내 몸이 죽어 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나라 일을 그르친 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싸울 것인가, 강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라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다.

설령 형편이 너무 어려워 정말 어쩔 수 없이 협상을 해야 한다고 해도 명나라 장수들이 우리나라와 충분히 의논해야 마땅하다.

어떻게 우리나라를 빼놓고 중요한 일을 비밀리에 결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답답하다.


붙임 문서에 실린 일본군 진영 방문 보고

1593년 음력 3월 무렵의 일이다.

일본군 진영에 붙잡혀 있던 임해군과 여러 사람을 통해 일본군이 계속 편지를 보내 강화하자고 요구하고 있었다.

12일, 나는 충청 수사 정걸과 경기 수군을 맡은 장수 등과 함께 배를 정비해 물때에 맞추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먼저 일본군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냈다.

당장 서로 싸우지 말고 사람을 보내 이야기를 주고받자는 뜻이었다.

그 뒤 서강 쪽으로 올라갔다.

강가에는 일본군 오륙십 명이 줄지어 서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갈을 보내자 일본군 쪽에서도 십여 명이 편지를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일본군 안쪽의 사정을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 간단히 답장을 써 주어 돌려보냈다.

나는 적의 실제 사정과 두 왕자가 머무는 곳을 더 정확하게 알아보고 싶었다.

우리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자원하여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는 14일에 돌아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자세히 보고했다.

그가 들어간 길과 가토 기요마사의 숙소, 두 왕자의 모습과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앞에서 기록한 내용과 대체로 같았다.

그는 큰길을 지나 돌다리 아래의 개울가 길을 따라갔다.

열 집이 넘는 곳을 지나 은행나무가 있는 큰 집에 이르렀다.

그 집이 가토 기요마사의 숙소였다.

처음에는 바깥 행랑에서 한참 기다렸다.

뒤에 안쪽 행랑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화려한 병풍과 붉은 비단 휘장이 걸려 있었다.

가토는 서른 살가량으로 보였으며 두 왕자와 함께 마루에 앉아 있었다.

우리 사람이 왕자들에게 절했다.

왕자들은 먼저 임금의 안부를 물었다.

가토는 통역을 시켜 강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토는 왕자들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의 얼굴빛을 보라.

조금도 굶거나 야위지 않았지 않은가.

우리가 얼마나 잘 대우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물었다.

“강화 문제를 언제까지 끌 것인가?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분명히 결정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계속 군사가 건너오고 있다.

왜 빨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가?”

우리 사람은 말했다.

“지금 명나라 대군과 조선의 복수하려는 군대가 함께 와 있다.

일본이 싸우겠다면 싸우면 된다.

그러나 강화 문제를 우리나라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다.

명나라 군대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왔으므로 그 문제는 명나라 장수들과 의논해야 한다.”

이후 음식과 술이 나왔다.

가토는 왕자와 우리 사람 등에게 음식을 먹게 했다.

술도 세 잔씩 돌렸다.

황정욱 부자와 다른 포로들도 불러내었다.

가토는 그들에게 조선에서 온 사람과 서로 말을 전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사람에게 돌아가 자기 대장에게 말하여 명나라 장수가 빨리 강화 여부를 결정하게 하라고 했다.

가토가 잠시 다른 일을 보러 자리를 비우자 일본군이 밖에서 사람들을 감시했다.

왕자들과 붙잡힌 신하들이 서로 모여 자신들이 겪은 고생을 이야기했다.

왕자는 원래 초라한 흰옷을 입고 있었지만 조선 사람이 들어온다는 말을 들은 일본군이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다고 했다.

자신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임해군은 머리에 난 상처를 직접 보여 주었다.

붙잡혀 오던 길에 일본군이 몽둥이로 때려 다친 곳이라고 했다.

황정욱을 비롯한 신하들도 모진 구타를 당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일본군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내놓으라고 계속 고문했다.

어떤 사람은 여러 번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지만 일본군이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살아서 나라의 치욕을 보는 일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왕자들은 가토가 없는 사이 몰래 개인적인 편지를 쓰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서야 가토가 돌아왔다.

다음 날 식사를 마친 뒤 우리 사람은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는 일본군의 편지와 왕자들의 답장을 받았다.

그것을 가지고 적진에서 나왔다.

25일 무렵에는 앞서 나왔던 일본군 사람들이 다시 일본 장수의 편지와 두 왕자의 편지를 가지고 나왔다.

마침 명나라 유격장 몇 명도 수행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우리가 배를 대고 있던 곳으로 왔다.

일본군은 멀리서 명나라 장수들이 쓰는 의장과 표시를 보고 그들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 사람이 다시 적진 안으로 들어가 명나라 장수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잠시 뒤 밖으로 나왔다.

명나라 장수는 그에게 즉시 물었다.

“왕자들의 몸 상태와 얼굴빛은 어떠하더냐?”

그는 왕자들이 매우 야위었다고 답했다.

다시 물었다.

“일본군의 식량은 어떠하더냐?”

그는 정확한 양까지 알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적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먹을 것이 부족한 기색이 분명했다고 했다.

일본군의 말들도 좋은 사료를 먹지 못하고 풀만 뜯어 먹고 있었다.

길가마다 죽은 말의 뼈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말먹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다시 적의 수를 물었다.

정확히 셀 수는 없었다.

다만 오가는 일본군을 보면 대부분 지쳐 있었고 전보다 기세가 크게 꺾여 있었다고 했다.

명나라 장수는 그 말을 듣고 모든 것을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통역을 시켜 일본군에게 다시 말을 전하게 했다.

명나라 장수는 이런 뜻을 전했다.

“우리는 황제의 명을 받고 온 대장들이다.

전에 일본군 진영을 오가던 몇 사람과 같은 처지가 아니다.

이 사실을 너희 장수에게 분명하게 알려라.”

명나라 장수들은 그날 배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우리에게 수군을 이끌고 함께 가 달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서강으로 갔다.

일본군의 기병과 보병들이 전날처럼 강가에 줄지어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 쪽의 일본군도 나왔다.

명나라 장수들은 곧바로 육지에 내리지는 않았다.

통역과 수행원을 보내 말을 전했다.

편지도 몇 차례 주고받았다.

적진에 억류되어 있던 조선 사람 삼십여 명도 밖으로 나왔다.

명나라 장수는 다시 답장을 써 가토 기요마사 쪽으로 보내도록 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주고받은 말이 많아 우리에게는 그 자세한 내용을 모두 알려 주지 않았다.

명나라 장수들은 그대로 서강에 배를 대고 머물렀다.

나와 정걸을 비롯한 수군 장수들은 그들을 호위하며 함께 밤을 보냈다.

이렇게 일본군과 명나라 장수 사이의 교섭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더욱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징비록 제10권 끝

 

 

 

 

 

 

징비록 제11권

두 왕자의 편지를 받고 일본군을 이간시킬 방도를 생각하다

그달 29일, 나는 동파에 있으면서 임금의 명령을 받았다.

전날 낮에 우리 장수가 일본군 진영에서 나온 두 왕자의 편지 두 통과 별도의 기록 한 통을 가져왔다.

별도의 기록은 황정욱이 쓴 것으로 보였다.

그 내용을 보니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사이에 서로 의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일본군 내부를 갈라놓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심유경이 전날 낮 개성에서 이쪽으로 왔다.

나는 두 일본 장수 사이를 이간시킬 방도를 간단히 적어 심유경에게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러나 심유경은 갑자기 지나가 버렸다.

제대로 만나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예로부터 서로 욕심이 끝없는 적들이 한때 화친한다고 해서 그것이 끝까지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일본군 사이에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만큼 깊은 원한이 있다.

죽는다 해도 어찌 쉽게 화친을 말할 수 있겠는가.

최근 일본군을 살펴보면 며칠 동안 계속 성 밖으로 흩어져 나와 약탈하고 있었다.

혹시 화친을 내세워 우리 군대와 명나라 군대의 공격을 묶어 놓고, 그동안 시간을 벌어 뒤에 오는 병력을 기다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었다.

나는 밤낮으로 이 일을 걱정했다.

하지만 결정권이 명나라 장수에게 있으므로 우리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 심유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더 살핀 뒤 다시 자세히 보고하려 했다.


군공을 세운 군사에게 상을 제때 내려야 한다

최근 서울 주변과 여러 지역의 관군과 의병을 살펴보니 군사의 절반 이상이 이미 흩어졌다.

다행히 아직 남아 있는 사람도 굶주림 때문에 제대로 군대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다시 일본군과 싸우겠다는 마음까지 잃어 가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는 예전부터 군공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제때 주지 못한 것도 영향을 주었다.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공을 인정받지 못하면 누가 다시 앞장서 싸우겠는가.

앞으로는 군공을 세운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공을 확인해 주는 문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누구가 일본군 몇 명의 머리를 베었는지를 적고, 지휘관이 직접 서명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정식으로 공을 조사하여 상을 내리겠다고 분명히 밝혀 준다.

이렇게 하면 군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공을 세우면 반드시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생길 것이다.


굶주려 흩어진 의병을 다시 모으다

고양에는 의병을 거느리던 이산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군사도 먹을 것이 없어 흩어진 지 오래되었다.

나는 그를 불러 군량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남은 군사를 다시 모아 용산 같은 곳에 매복하게 했다.

일본군을 기습하여 공을 세우면 특별히 상을 주어 다른 사람도 본받게 해야 한다.


군사가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물건도 되도록 군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여러 지역의 군사가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물건 가운데 반드시 조정에 올려 확인해야 하는 것만 제외하고는 되도록 실제 싸운 군사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좋겠다.

소와 말, 옷 같은 물건까지 모두 거두어 버릴 필요는 없다.

나라에서 군사에게 먹을 것조차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얻은 물건까지 모두 빼앗는다면 군사들의 마음이 더욱 떠날 것이다.

이렇게라도 조금 위로해야 흩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고언백의 군사에게도 공에 맞는 상을 주어야 한다

고언백이 거느리는 군사들은 전부터 일본군과 자주 싸워 많은 전공을 세웠다.

최근에는 백여 명의 군사가 서울 안팎까지 드나들었다.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용감하게 앞으로 나갔다.

이들에게는 우선 빈 벼슬 문서라도 지급하여 공을 인정해 주고, 나중에 전공이 확실하게 확인되면 정식으로 상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해야 다른 군사들도 더욱 힘을 낼 것이다.


심유경이 일본군 진영에서 나오다

전날 명나라 사람 김지귀와 우리 통역관 김선경 등이 용산에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심유경은 강화도 쪽 길을 택해 개성으로 갔다고 했다.

오종도라는 명나라 사람도 용산에서 나와 송응창이 있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송응창은 심유경이 자기를 만나지도 않고 일본군 진영에 들어간 일을 매우 화냈다고 한다.

명나라 통역관들도 말했다.

“심유경이 일본군과 무슨 약속을 했는지 우리도 전혀 모릅니다.

이 일은 반드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심유경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만났지만 가토 기요마사는 만나지 않았다

나는 김선경에게 심유경이 일본군 진영에서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물었다.

김선경이 말했다.

심유경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토 기요마사도 심유경을 만나 화친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심유경은 가토 기요마사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

서로 편지만 주고받았다.

심유경은 명나라의 높은 지휘관에게 다시 보고한 뒤 일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언제 다시 돌아오겠느냐고 묻자 심유경은 다음 달 초8일을 기한으로 삼아 돌아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강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경기 수사 쪽에서 보내 온 보고를 보니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도 있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군과 화친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 단순한 소문만은 아닌 듯했다.

전에 우리 쪽에서는 일본군을 서로 의심하게 만들기 위한 글을 마련해 평양 쪽에 보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심유경이 일본군 진영을 드나들고 있었다.

만약 그 글이 가토 기요마사에게 들어가면 가토 기요마사가 심유경에게 보여 주며 따질 수도 있었다.

“당신은 고니시 유키나가와 따로 약속한 것이 아니오?”

이렇게 되면 일본군을 이간시키려던 일이 도리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일본군을 이간시키려던 글을 당장은 보내지 않다

우리가 마련한 글은 글씨도 크게 쓰고 관인까지 찍은 공식 문서였다.

일본군이 그것을 보고 우리 의도를 알아차리면 이간시키려던 계책이 오히려 실패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선 보내지 않았다.

상황을 더 지켜본 뒤 처리하기로 했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난 뒤 서울 일본군의 길을 끊을 계획을 세우다

명나라 군대가 뒤로 물러난 뒤 나는 도원수 김명원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각 장수에게 임무를 나누었다.

수군을 이용해 강 어귀와 중요한 물길을 가로막게 했다.

각 진영에서 만든 전투선에 화포를 실었다.

그리고 한강에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부교를 공격해 끊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일본군이 강을 마음대로 건너다닐 수 없게 된다.


용산의 일본군 군량 거점을 먼저 공격하려 하다

의병장 이산휘와 박유인 등에게도 사람을 붙였다.

삼강과 고양 일대의 지형을 잘 아는 사람들을 뽑아 일본군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게 했다.

먼저 용산의 군량 창고와 그곳을 지키는 일본군을 공격하면 다른 지역에 있는 일본군도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성공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러 진영에서는 지휘를 받아 조금씩 공격 준비를 시작했다.


심유경이 계속 일본군 진영을 드나들자 군사들의 마음이 풀어지다

그런데 심유경이 일본군 진영을 계속 오가면서 군사들의 마음이 날마다 느슨해졌다.

화친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렇게 되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던 군사들도 기다리기만 하려 했다.

나는 이것이 몹시 답답했다.

지금부터 심유경이 돌아오겠다고 한 다음 달 초8일까지도 약 20일이나 남아 있었다.

그동안 각지의 군사와 말을 먹이는 비용도 엄청났다.

봄이 다 지나고 여름이 되면 또 어떤 변고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밤낮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군이 남쪽에서 배로 군량을 운반한다는 소문이 들리다

며칠 전 길에서 또 다른 말을 들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사람의 말로는 일본군 배들이 어떤 포구 근처에 많이 모여 있다고 했다.

일본군의 군량을 실은 배라는 소문도 있었다.

아직 공식 보고가 도착하지 않아 사실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약 사실이라면 일본군이 그쪽으로 군량을 운반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수군이 그 길을 공격해 군량 운송을 끊는다면 일본군의 힘을 크게 약하게 만들 수 있다.

군사와 관련된 중요한 일이라 우선 들은 내용을 보고했다.


전쟁으로 버려진 향교와 사당의 위패를 지켜야 한다

전쟁이 일어난 뒤 여러 고을의 향교와 사당이 불탔다.

건물이 무너져 잡초만 우거진 곳도 많았다.

위패가 흩어져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곳도 적지 않았다.

수원의 향교에 있던 위패도 전쟁이 시작될 때 다른 고을 민가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그 뒤 향을 피우고 제사를 올리는 일도 끊어졌다.

지키는 사람조차 없다고 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가까운 고을 선비에게 사당과 위패를 임시로 맡기자

지금 나라 사정으로는 모든 고을에 정식으로 훈도를 다시 임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고을 가까이에 사는 선비 가운데 평판이 좋은 사람을 골라 임시로 훈도라는 이름을 주는 것이 좋겠다.

그 사람에게 사당과 위패를 지키는 일을 전담하게 한다.

그 고을의 다른 선비들도 때때로 찾아가 청소하고 돌보게 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라도 이렇게 해야 사당이 완전히 버려지지 않는다.

지역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고을 가운데 위패가 남아 있는 곳도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면 좋겠다.

조정에서 관계 관청과 빨리 의논해 시행해 주기를 바란다.


서울 동쪽으로 나온 일본군을 곳곳에서 공격하다

최근 일본군의 형세는 각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에 이미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달 초10일 무렵부터 일본군은 서울 동쪽으로 흩어져 나왔다.

민가에 불을 지르고 백성을 죽였다.

양주와 포천을 거쳐 가평 부근까지 움직이기도 했다.

이시언과 여러 장수, 고언백 등이 곳곳에서 일본군과 맞섰다.

어떤 곳에서는 정면으로 싸웠고 어떤 곳에서는 미리 매복하여 활을 쏘았다.


분교 부근에서 일본군 십여 명의 머리를 베다

전날에는 내 군관 김선의와 도원수의 군관, 방어군과 여러 군사가 분교 가까이에서 일본군을 공격했다.

일본군 십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서쪽에서는 벽제 부근의 싸움 뒤로 일본군이 한동안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일부가 연희 같은 곳을 오가며 풀과 물자를 가져간 뒤 다시 서울로 들어갔다.


여러 의병장도 날마다 일본군과 싸우다

의병장 박유인과 여러 의병장도 일본군과 계속 싸웠다.

여러 차례 적을 베었다.

그 숫자는 앞서 올린 보고에 적었다.

겉으로 보면 일본군의 수가 매우 많아 보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붙잡혀 억지로 끌려 다니는 조선 사람도 절반가량 섞여 있는 듯했다.

반대로 우리 관군과 의병은 전보다 먼저 나아가 용감하게 싸우려는 기세가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군량과 말먹이가 없어 큰 승리를 거두기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먹을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군량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군사들은 겨우 목숨만 이어 가고 있었다.

말들도 먹을 것이 없어 털이 거칠어지고 힘을 잃었다.

사람에게 싸울 마음이 있어도 굶주리고 말이 움직이지 못하면 큰 싸움을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없어 몹시 걱정되었다.


일본군이 다시 파주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에 대비하다

그날 오후에도 척후병의 보고가 들어왔다.

일본군 선봉과 뒤따르는 병력이 계속 밖으로 나오고 있다고 했다.

파주 같은 곳을 공격하러 올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는 즉시 경계를 강화하고 적이 올 경우에 대비했다.


일본군 진영에서 두 왕자의 공동 편지가 나오다

그달 어느 날, 나는 강화에서 파주로 향해 오는 사람을 만났다.

그 무렵 일본군 진영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그는 두 왕자가 함께 이름을 적은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따로 써 준 작은 글도 있었다.

그 사람을 불러 자세히 물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명나라 장수와 정한 날짜를 확인하려 하다

그가 말했다.

“가토 기요마사가 안변 쪽에 있을 때 명나라 장수가 찾아와 화친을 논했습니다.

서로 약속한 날짜가 이달 초10일이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명나라 장수가 실제로 오는지 편지를 보내 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왕자가 사람을 내보냈습니다.”

두 왕자가 쓴 편지는 명나라 장수와 우리나라 장수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남쪽에서 일본군 증원병이 계속 올라온다는 말이 들리다

최근 일본군은 날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남쪽에서 서울 쪽으로 올라오는 병력도 많다고 했다.

의병 쪽에서 일본군의 종 한 명을 붙잡아 심문했다.

그 사람은 일본에서 높은 장수가 더 올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명나라가 공격 기회를 놓치는 동안 일본군은 힘을 되찾았다

처음 명나라 군대가 왔을 때 바로 공격했다면 일본군을 크게 흔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기회를 놓쳤다.

그사이 일본군은 살아날 틈을 얻었다.

우리나라 장수들 역시 명나라 군대와 함께 공격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경기 우도 여러 고을의 수령들까지 명나라 군대를 접대하고 군량을 운반하는 일에 매달렸다.

본래 싸워야 할 군사를 풀어 곡식을 나르고 물자를 공급하게 했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한강 남쪽의 일본군 형세가 오히려 더 위급해지다

그사이 한강 남쪽의 일본군은 갈수록 강해졌다.

광주와 수원, 남양 일대에서는 전쟁을 피해 흩어졌다가 겨우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일본군에게 죽거나 쫓겨났다.

남쪽의 형세가 오히려 서쪽보다 더욱 위급해졌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에 일본군이 화친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속뜻이 명확하다고 보았다.

우선 명나라 군대를 멈추게 한 뒤 시간을 벌어 뒤에서 오는 일본군과 합치려는 계책일 가능성이 컸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서늘해졌다.


명나라 장수 사대수에게 두 왕자의 편지를 보여 주다

나는 명나라 장수 사대수와 일본군 형세를 논의했다.

사대수도 두 왕자의 편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편지를 읽은 사대수는 몹시 마음 아파했다.

그가 말했다.

“왕자들의 편지를 보니 눈물이 날 정도다.

어떻게 두 분을 구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당장은 일본군의 화친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고 왕자들을 먼저 구해 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왕자들을 구한 뒤 천천히 적을 공격할 방도를 세워도 늦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면 논에 물이 차고 길이 진흙탕이 되어 대군을 움직이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왕자를 구하는 일 때문에 일본군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다

나는 대답했다.

“일본군이 정말 화친하고 물러날 뜻이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군은 화친을 핑계로 명나라 대군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시간을 번 뒤 다시 흉악한 계책을 꾸미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명나라와 우리나라가 함께 적의 계책에 빠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사대수가 물었다.

“그렇다면 무슨 계책을 쓰는 것이 좋겠습니까?”


개성 동파에 대군을 두고 별동대를 서울 남쪽으로 돌리는 방책을 내놓다

나는 말했다.

“한 가지 특별한 계책이 있습니다.

다만 장군께서 들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명나라 대군을 개성 동파에 전진 배치하여 큰 위세를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정예병을 따로 뽑아 서울 남쪽 길로 돌아가게 하십시오.

큰길에 있는 일본군의 뒤쪽으로 먼저 들어가 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을 공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서울에 있는 일본군의 남쪽 길이 끊깁니다.

서울의 일본군은 반드시 동쪽으로 달아나려 할 것입니다.

그곳 양주 방면에 우리 군사 만여 명을 먼저 배치해 놓고 기다립니다.

뒤에서는 명나라 대군이 추격합니다.

앞과 뒤에서 함께 공격하면 일본군은 거의 모두 무너질 것입니다.

지금 이것보다 안전한 계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대수가 손으로 지형을 그려 가며 크게 기뻐하다

사대수는 내 말을 듣자 크게 기뻐했다.

손으로 땅에 길과 지형을 그려 가며 여러 곳을 짚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일본군은 반드시 항복을 청할 것이다.

왕자들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계책이 있는데 왜 진작 나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말했다.

“예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말씀을 드렸지만 끝까지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제도 이 방책을 장계에 써서 임금께 보고했습니다.

오늘 장군께서 받아들여 주시니 하늘이 도우시는 듯합니다.”

사대수는 그제야 화친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이 방책을 이여송과 송응창에게도 보고하겠다고 했다.


명나라 장수들 사이에 서로 맞지 않는 기색이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걱정이 있었다.

명나라 북쪽 지방 출신 장수와 남쪽 지방 출신 장수들이 서로 뜻이 잘 맞지 않는 듯했다.

서로 불편해하는 기색이 있었다.

전날 어떤 명나라 관리가 찾아왔을 때 사대수가 크게 불쾌해하며 우리에게 사람과 말을 내주지 말라고 말한 일도 있었다.

나는 그것까지 따를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런 일을 보면 명나라 장수들끼리도 서로 잘 협력하지 못하는 듯했다.

가토 기요마사가 보낸 편지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알 수 없었다.

두 왕자의 편지까지 얽혀 있으니 군사 기밀과 관계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었다.

조정에서 자세히 살펴 좋은 방법을 빨리 정해야 한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26일, 명나라 쪽에서 강화가 실제로 논의되고 있음을 다시 보고하다

26일, 나는 명나라 장수가 보낸 답서를 보았다.

그 안에는 일을 맡은 사람이 화친을 중심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다만 송응창과 이여송의 허락이 있어야 실제로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편지를 보면 명나라 장수들이 전부터 화친을 생각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일본군에게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있고 죽어도 화친하지 않겠다고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듯하다.


심유경을 직접 만나려 했으나 길에서 피해 가다

전에 심유경이 용산으로 갈 때 나는 길가에 서서 만나기를 기다렸다.

직접 만나 화친 문제를 따져 보고 싶었다.

그런데 심유경은 길이 바쁘다고 하며 그대로 지나갔다.

돌아올 때에도 이 길로 오지 않았다.

강화도 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일부러 나와 만나기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송응창과 이여송에게 직접 공격을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

다른 명나라 장수들까지 화친을 말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실제 결정권을 가진 송응창과 이여송에게 직접 우리 뜻을 강하게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

기회를 놓치면 우리나라 일은 정말 어찌할 방법이 없게 된다.

서울의 일본군은 아직 도성을 차지하고 있지만 처음 같은 기세는 아니었다.

명나라 대군이 북쪽에서 강하게 압박하고 별동대가 남쪽을 돌아 나간다면 한 번에 크게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서울의 일본군은 큰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한 계책이며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명나라 장수 한 사람도 남쪽 우회 공격 방책을 받아들이다

명나라 장수 가운데에는 말이 분명하고 재치가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남쪽 지방의 사정도 잘 아는 듯했다.

그는 남쪽 출신 군사 20여 명을 자기 진영에 데리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명나라 장수들도 내가 설명한 사정을 듣고 어느 정도 귀를 기울였다.

만약 송응창과 이여송이 결정만 해 준다면 이 계획으로 공을 세울 가능성이 있었다.

그 명나라 장수도 직접 가서 이 방책을 설명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조정에서도 급히 힘을 보태 주어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 남쪽의 일본군을 먼저 치는 방책을 다시 아뢰다

최근 서울 동쪽과 서쪽으로 나오는 일본군은 대부분 민가에 불을 지르고 백성을 죽이며 재물을 빼앗은 뒤 다시 서울로 들어갔다.

명나라 군대가 개성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일본군도 서쪽으로는 쉽게 크게 나오지 못했다.

박명현과 여러 장수도 이곳에 와 있었다.

고언백과 이시언 등과 함께 경기 지방 일본군의 형세를 의논했다.


지금 부족한 것은 군사가 아니라 먹을 것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군사가 아니라 식량이었다.

식량만 있다면 며칠 안에 수천 명을 다시 모을 수 있었다.

멀리 다른 도에서 군사를 불러오지 않아도 일본군과 싸울 수 있는 병력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일본군이 실제로 굳게 차지한 곳은 서울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큰길 정도였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우리 군사가 움직일 수 있었다.


남쪽을 돌아 일본군의 뒤를 공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었다

전에 내가 명나라 군대를 남쪽 길로 보내 일본군을 뒤에서 공격하자고 한 것은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대수와 왕유격을 비롯한 명나라 장수들도 내 말을 옳게 여겼다.

명나라 장수가 정찰을 위해 보낸 남쪽 지방 군사 30명도 우리 의병 진영에 머물며 실제 일본군의 형세를 살폈다.

그들도 일본군이 생각보다 상대하기 어렵지 않다고 보았다.

군사를 조금 더 보내 함께 공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나 역시 그 뜻을 글로 적어 명나라 장수에게 보냈다.

하지만 아직 답이 없었다.

남쪽 출신 명나라 장수들은 공격하려는 생각이 있어도 자기 마음대로 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최고 지휘관의 결단이 필요했다.


이귀가 백성에게서 군량을 모으다

선전관 이귀가 보고했다.

그는 전해 12월 나라의 명령을 받았다.

빈 벼슬 문서를 가지고 황해도와 강원도 등으로 돌아다녔다.

백성들에게 나라가 위급한 사정을 설명했다.

한 되, 한 말이라도 힘닿는 만큼 곡식을 내어 군량을 도와 달라고 권했다.


이귀가 약 360석의 곡식을 모으다

이귀가 이렇게 백성들을 설득해 모은 여러 곡식이 약 360석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일부는 개성으로 운반했다.

명나라 군대를 먹이는 데 사용했다.

남은 곡식은 우리 군사에게 보태 주었다.

덕분에 군사들이 며칠 동안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개성에 왔을 때 쌀과 콩 300여 석을 다시 마련하다

명나라 군대가 개성으로 왔을 때는 여러 지역의 군량과 말먹이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

이귀는 다시 안협과 이천, 평강 등에서 쌀과 콩 300여 석을 모아 운반했다.

말먹이로 쓸 베어 둔 풀도 300여 단가량 마련했다.

긴 풀도 수천 단을 가져와 부족한 양을 보충했다.


이귀를 당분간 종사관처럼 활용하게 해 달라고 하다

그 뒤 이귀에게 따로 맡겨진 일이 없었다.

반면 내가 데리고 있는 종사관은 한 사람뿐이었다.

각지에 사람을 보내 명령을 전달하고 군량을 검사하려 할 때마다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귀를 당분간 내 곁에 두고 종사관처럼 사용하고자 했다.

여러 지역을 오가며 군량과 말먹이를 점검하게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25일 밤, 노원평과 우관동 일대에 군사를 매복시키다

여러 도의 방어를 맡은 장수와 이시언, 고언백, 박명현 등을 비롯한 여러 장수가 군사를 모았다.

그달 25일 저녁, 각 부대에서 정예병을 뽑았다.

삼각산 아래 노원평과 우관동 같은 곳으로 군사를 몰래 보내 좌우 중요한 길에 매복하게 했다.

26일 날이 밝기 전 큰 군대도 움직여 앞쪽에 진을 쳤다.

다른 군사들은 숨어서 일본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일본군이 매복 사실을 모르고 넓은 들판으로 쏟아져 나오다

서울 동쪽의 일본군은 우리 군사가 숨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일본군은 노원과 우관동 일대로 많이 나왔다.

넓은 들판이 일본군으로 가득 찰 정도였다.

여러 장수는 군사를 거느리고 미리 매복한 부대와 서로 연락했다.

일본군이 가운데까지 들어오자 좌우에서 한꺼번에 공격했다.


유정의 승병도 동쪽에서 달려와 함께 싸우다

싸움이 시작되자 도원수의 군사도 가까운 곳에서 합류했다.

승병장 유정이 이끄는 군사도 동쪽에서 잇따라 달려왔다.

여러 군대가 함께 일본군을 공격했다.

활을 쏘니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일본군은 크게 놀라 대열이 무너졌다.


일본군을 서울에서 10리쯤 떨어진 곳까지 추격하다

우리 장수와 군사들은 앞을 다투어 용감하게 싸웠다.

달아나는 일본군을 계속 뒤쫓았다.

서울에서 약 10리 떨어진 곳까지 추격했다.

도망치는 일본군을 많이 쏘아 죽였다.

확인해 벤 머리만 47급이었다.

최근 전투 가운데 보기 드문 큰 승리였다.


27일 수락산 부근에서도 일본군을 크게 공격하다

다음 날인 27일에도 일본군이 많이 밖으로 나왔다.

수락산 같은 곳에 불을 질렀다.

고언백의 군사와 여러 부대는 높은 곳을 먼저 차지하고 일본군에게 계속 활을 쏘았다.

죽거나 다친 일본군이 매우 많았다.

적들은 부상자를 부축하거나 업고 돌아갔다.


수락산에서 화살에 맞은 일본군이 행주 싸움 때보다 적지 않았다고 하다

우리 군사는 높은 곳을 지키고 있었고 일본군은 산 아래쪽에 있었다.

그래서 내려가 죽은 일본군의 머리를 직접 베어 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화살에 맞아 죽거나 다친 일본군은 매우 많았다.

일본군 진영에서 나온 사람들의 말로는 수락산에서 화살에 맞은 일본군이 앞서 행주에서 당한 피해보다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장수가 힘을 합쳐 거둔 큰 승리였다

이번 싸움에서는 여러 장수가 서로 힘을 합쳤다.

누구 하나 혼자 공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보기 드문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유정의 승병은 매우 정예했다.


유정의 승병은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하면서도 싸움마다 앞장섰다

유정의 승병은 스스로 군량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군대보다 먹을 것이 덜 부족했다.

최근 싸움마다 앞장서 용감하게 공격했다.

승병이 먼저 돌진하면 일본군이 놀라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공이 매우 가상하다.

특별히 상을 내려 다른 군사들도 본받게 해야 한다.


중책을 맡고도 서울을 되찾지 못한 자신의 죄를 아뢰다

전달 28일, 나는 대신으로서 밖에 나가 여러 지역의 군무를 총괄하라는 임금의 명령을 받았다.

나는 본래 너무나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이처럼 무거운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 중책을 맡고도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나라를 욕되게 한 죄를 말로 다 할 수 없다.

일본군이 나라 안에서 날뛰고 서울도 되찾지 못한 채 다시 명나라 군대만 바라보고 있으니 죽어도 죄를 갚기 어렵다.

그래도 나라의 형편을 알고 있는 이상 임금께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사실을 보고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1593년 음력 1월 28일, 이여송이 파주에서 동파로 물러나다

1593년 음력 1월 28일, 이여송이 파주에서 갑자기 동파 쪽으로 물러났다.

나는 도원수 김명원과 여러 관리, 군량과 명나라 접대를 맡은 사람들과 함께 이여송의 군막으로 갔다.

왜 군대를 물리는지 묻고 앞으로 다시 진격해 달라고 요청하려 했다.

처음에 이여송은 우리를 만나 주지 않았다.

그저 사람을 통해 말했다.

“이곳은 대군이 머무르기에 불편하다.

동파로 물러가 하루나 이틀 군사를 쉬게 한 뒤 다시 진격하겠다.”


우리는 이여송의 군막 앞에서 오랫동안 물러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돌아갈 수 없었다.

명나라 대군이 한 번 뒤로 물러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여러 사람이 이여송의 군막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

군사를 물리면 안 되는 이유를 거듭 설명했다.

마침내 이여송이 군막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그 앞으로 나아갔다.

어떤 사람은 서서 간절하게 말했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조아리며 울었다.


조금 물러났다가 다시 오겠다는 이여송의 말을 믿기 어렵다고 호소하다

우리는 말했다.

“조금 물러갔다가 다시 나오겠다고 하시지만 지금 대군이 물러나면 조선 백성의 마음이 무너집니다.

일본군도 다시 기세를 얻을 것입니다.

부디 여기서 군대를 돌리지 마십시오.”

이여송은 계속 조금 쉬었다가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몇 번이나 다시 간청했다.


장세작이 크게 화를 내 통역관을 발로 차다

우리의 간청이 너무 오래 이어지자 명나라 장수들도 불쾌해했다.

장세작이라는 장수는 크게 화를 냈다.

통역관을 발로 차 뒤로 물리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군막 안에 머무를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우상도 뒤늦게 달려와 다시 이여송에게 진격을 요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여송이 동파에서도 다시 개성으로 물러가려 하다

그 뒤 이여송은 동파에서도 개성으로 더 물러가려 했다.

우리는 또다시 길을 막고 간청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여러 차례 붙잡았다.

얼마나 많이 진격해 달라고 요청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마침내 이여송은 말했다.

“이곳에는 말을 먹일 풀이 없다.

그대들은 개성으로 가라.

나는 이곳에 남아 있겠다.”

하지만 얼마 뒤 이여송 자신도 말을 타고 떠났다.

우리는 길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명나라 대군이 물러나자 파주와 동파의 민심이 크게 흔들리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친한다는 말이 공개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명나라 군대가 갑자기 뒤로 물러나는 것만 걱정했다.

대군이 물러가자 파주와 동파 지역의 민심은 크게 흔들렸다.

나는 동파에 머물며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김명원은 파주에 남았다.


이여송이 물러난 이유는 평양 때와도 달랐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에서 물러났을 때에도 이유가 여러 가지였다.

이번 후퇴 역시 처음에는 자세한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공격을 계속할 것인지 화친으로 방향을 바꾼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확실하게 설명하는 사람도 없었다.


명나라 장수 사대수만 동파에 남아 일본군과 연락하다

대군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사대수만 동파에 남아 있었다.

그 역시 실제 사정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매일 사람을 용산 같은 곳에 보내 일본군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일본군 진영에 붙잡혀 있는 두 왕자와 조선 신하들의 편지도 받아 왔다.

그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기도 했다.


사대수에게 대군이 다시 진격할 것인지 묻다

나와 김명원은 함께 사대수를 찾아갔다.

앞으로 명나라 군대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물었다.

사대수는 정확한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큰 군대가 반드시 다시 진격할 것이라며 우리를 달랬다.

그러나 그의 표정과 말투를 보면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어느 날 나는 직접 물었다.

“이여송 제독의 뜻은 대체 무엇입니까?”


사대수는 왕자를 먼저 구하고 뒤에 싸우자는 뜻을 내비치다

사대수는 처음에는 왕자를 먼저 구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듯했다.

왕자들을 먼저 일본군에게서 빼낸 뒤 군사를 움직여도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여러 차례 그의 말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래도 그는 왕자 구출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왕자를 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본군을 물리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라의 큰 의리를 들어 강하게 말했다.

“우리나라와 일본군 사이에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한이 있습니다.

반드시 갚아야 하는 피의 원수입니다.

왕자들을 구하는 일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것은 두 번째 일입니다.

먼저 일본군을 물리쳐야 합니다.

적을 그대로 두고 왕자만 구한다고 나라가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심유경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직접 만나려 하다

그 뒤 심유경이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나는 군량과 관련된 일 때문에 덕진 부근에 나가 있었다.

나는 종사관 신경진을 심유경에게 보냈다.

잠시 멈추어 나와 만나 달라고 요청하게 했다.

나도 서둘러 뒤쫓아갔다.


심유경은 말을 탄 채 손짓만 하고 만나 주지 않았다

내가 따라잡으려 했으나 심유경은 이미 길 위에서 말을 타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그만 따라오라는 뜻을 보였다.

나와 직접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통역관에게 말했다.

“그가 나를 만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고는 그대로 지나갔다.

돌아갈 때에도 동파를 거치지 않았다.

용산에서 물길을 이용해 다른 쪽으로 떠나 버렸다.


화친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 말 없이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나라가 망할 판인데 화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듣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개성과 명나라 진영에 있는 여러 장수에게 계속 글을 보냈다.

서울 남쪽으로 정예병을 돌아 보내 일본군의 뒤를 공격하자는 방책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서울 남쪽의 길을 살피기 위해 의병에게 정찰병을 보내다

의병장 이산휘에게 활을 잘 쏘는 사람 30명 정도를 붙여 남쪽 길을 살피게 했다.

명나라 군사가 그 길로 내려올 경우 안내할 수 있도록 길과 일본군의 배치를 알아보게 했다.

그 군사들은 아직 진위 부근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글을 만들어 명나라 지휘관에게 보내 이 작전을 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모두 했지만 결정권은 명나라 최고 지휘부에 있었다

내 힘은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거의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실제 전쟁을 할지 화친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송응창과 이여송이었다.

이여송이 이곳에 있을 때에도 화친 문제를 우리에게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군대를 물린 뒤에는 백여 리나 떨어진 곳으로 가 버렸다.

이곳에 있는 사대수 이하의 명나라 장수들은 최종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명나라 장수들이 실제 사정을 숨기는 듯해 답답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실제 형편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계속 대군이 다시 진격할 것처럼 우리를 달랬다.

나는 머리를 부딪쳐 깨뜨려서라도 진실을 알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보고 들은 내용을 하나하나 적어 조정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


조정이 송응창과 이여송에게 직접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

내 뜻은 오직 하나다.

조정에서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빨리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실제 결정권을 가진 송응창과 이여송에게 있는 힘을 다해 진격을 요청해야 한다.

두 왕자가 일본군 진영에서 보낸 편지도 나와 김명원이 직접 보았다.

그 안에는 읽기만 해도 뼈에 사무칠 만큼 가슴 아픈 내용이 많았다.


전쟁 중의 일을 모두 공개적으로 보고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었다

전쟁터에는 군사 기밀과 관련된 일이 많다.

모든 내용을 여러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어떤 일은 조정에서도 널리 공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가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와 김명원은 여러 차례 의논했다.

결국 나라의 큰일이므로 실제 사정을 임금께 자세히 알리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내가 죽어도 이미 늦었다

나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이제 죽는다 해도 이미 늦었다.

차라리 전쟁터에서 칼과 화살에 맞아 죽는다면 내게는 영광일 것이다.

최근 각 지역의 군사와 백성 가운데에도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이 조금씩 생겼다.

나는 늘 여러 장수에게 말했다.

“서울 동쪽과 서쪽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라.

명나라가 화친한다고 하든 싸운다고 하든 그 말 때문에 우리의 마음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군사가 굶주리지만 며칠만 먹일 수 있어도 싸울 수 있다

문제는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군사가 지쳐 있다는 점이다.

불과 며칠 먹일 곡식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군사들의 힘이 빠져 있었다.

임금과 나라가 당한 원한을 생각하면 신하로서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무거운 직책을 맡아 놓고도 군사들의 기세까지 떨어뜨리고 장수들이 앞으로 나갈 마음까지 잃게 했다면 그 죄는 더욱 크다.


자신이 부족하다면 다른 대신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다

내가 너무 무능하여 중책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판단된다면 조정에서 나를 벌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 큰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새로 보내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여 나라의 일을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나는 죽는 날에도 다시 살아난 것처럼 기쁠 것이다.


이여송이 개성으로 돌아오자 다시 진격을 요청하다

그달 초 어느 날 밤, 이여송이 안성 쪽에서 개성부로 왔다.

나는 다음 날 김명원과 함께 동파에서 개성으로 가 이여송을 찾아갔다.

안부를 묻자 이여송은 곧 옷을 갈아입고 큰 마루에 나와 우리를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여러 사정을 물었다.


이여송은 심유경의 말과 일본군을 그대로 믿지 말라고 하다

이여송이 말했다.

“심유경이 지금 용산에 있다고 해도 일본군은 매우 간사하다.

그들의 말을 어찌 그대로 믿겠는가.

나에게는 따로 정해 놓은 계획이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는 다시 대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간절히 말했다.


이여송이 남쪽 출신 포수 천여 명을 먼저 보내겠다고 하다

이여송은 말했다.

“이 일은 가볍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다시 의논하자.”

그리고 덧붙였다.

“남쪽 지방 출신 포수 천여 명을 내일 먼저 보내겠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마침내 명나라 군대가 다시 움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화친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따로 올리다

나는 돌아온 뒤 다시 별도의 글을 작성했다.

지금 일본군과 화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자세하고 간절하게 적었다.

일본군의 형세가 이미 약해지고 있고 지금 공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서울에서 일본군에게서 도망쳐 나온 아이들을 이여송에게 보여 주다

서울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있다가 도망쳐 나온 아이 20명가량도 데리고 갔다.

아이들에게 직접 서울의 사정을 말하게 했다.

최근 일본군의 병력이 어떠한지, 먹을 것은 있는지, 군사들의 형편은 어떤지를 자세히 설명하게 했다.


이여송이 뒤따라오는 명나라 군대를 재촉하는 명령을 내리다

아이들의 말을 들은 뒤 이여송은 곧 명령문을 내보냈다.

뒤에서 오고 있는 명나라 군사와 말을 빨리 앞으로 보내라는 내용으로 보였다.

실제로 곧바로 군사를 쓰기 위한 것인지까지는 당시 분명하게 알 수 없었다.

나는 다음 날 다시 찾아가 자세히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선릉과 정릉이 일본군에게 훼손되었다는 보고가 오다

그런데 그때 경기 지역의 관리가 급히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

선릉과 정릉 등 왕릉이 일본군에게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말을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함께 있던 신하들과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이여송의 문밖에서 왕릉 훼손을 알리며 통곡하다

우리는 그 보고서를 들고 이여송의 문밖으로 갔다.

여러 신하가 함께 울면서 왕릉이 당한 일을 말했다.

이여송도 매우 놀랐다.

그는 보고서를 가져오게 하여 직접 읽었다.

우리 신하들은 밖으로 물러나 만월대 앞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또 통곡했다.


이여송이 우리 군대가 어디에 있는지 적어 내라고 하다

잠시 뒤 이여송이 명령서를 내보냈다.

우리나라 군대가 현재 어느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적어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군사들을 어디에 배치할지 판단하려는 듯했다.

나는 즉시 작은 종이에 각 지역의 군사 위치를 자세히 적어 보냈다.


왕릉을 지키지 못한 죄를 생각하다

우리 신하들은 동파와 파주로 돌아가 왕릉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더욱 자세히 알아보려 했다.

일본군이 이렇게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를 때까지 막지 못했으니 신하의 죄가 너무 컸다.

만 번 죽는다 해도 가볍다고 느꼈다.


이여송이 다시 진격할 뜻을 분명하게 보이다

다시 이여송을 만났을 때 그는 앞으로 진격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말했다.

다음 날에는 남쪽 지방 출신 포수를 임진과 파주 쪽으로 먼저 보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드디어 다시 공격할 기회가 생기는 듯했다.


화친과 전쟁의 이해관계를 글로 자세히 설명하다

우리는 물러난 뒤에도 글을 올렸다.

화친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지금 공격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항목별로 자세하게 적었다.

이여송도 그 글을 보고 우리 의견이 옳다고 인정하는 듯했다.

각 항목에 직접 의견을 적기도 했다.


사대수가 심유경의 행동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다

그날 사대수는 통역관을 보내 나에게 말을 전했다.

“심유경이 용산을 오간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평양에서 있었던 일을 벌써 잊었소?

다만 이 말은 널리 퍼뜨리지 마시오.

마음을 놓고 지나치게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명나라 장수 한 사람에게 군사를 주어 동쪽 길을 정찰하게 했다.

겉으로 보면 다시 진격하려는 준비 같았다.


그러나 화친을 추진하는 듯한 명나라 쪽 문서가 또 나타나다

마침 의병장 쪽에서 보내 온 보고에는 명나라 장수들이 일본군과 화친하려는 듯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더욱 답답했다.

전날 왕릉이 훼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이여송의 문밖에서 울며 호소했을 때 이여송은 통역관을 가까이 불러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고 한다.

“군사 기밀은 함부로 퍼뜨려서는 안 된다.

일본군에게는 명나라 장수가 화친을 원한다고만 알려라.

우리가 군사를 움직이려 한다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여송이 실제로 공격을 숨기려는 것인지 우리를 달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말만 들으면 명나라가 겉으로는 화친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기습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혹시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하고 실제로는 화친을 추진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경기와 충청도의 관군과 의병에게 적당한 기회를 보아 일본군을 공격하도록 명령해 두었다.

한강 남쪽에도 별도의 군사를 보내 매복시켰다.

이 지역의 여러 장수에게도 다시 약속을 정해 움직이게 했다.

끝내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초9일, 고언백이 서울 동쪽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치다

그달 초9일, 고언백은 군사를 매복시켰다.

군관들과 군사 약 200명을 거느리고 서울 동쪽 작은 성문 밖의 한 지역으로 나갔다.

별도로 정찰병 7명도 보냈다.

일본군 약 200명이 나타나자 우리 군사가 뛰어나가 맞서 싸웠다.


고언백의 군사가 일본군 17명의 머리를 베다

싸움에서 고언백의 군사는 일본군 머리 17급을 베었다.

다른 부대에서도 일본군의 머리를 하나 베었다.

화살에 맞아 쓰러진 일본군은 숫자를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굶주린 군사들이 일본군을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 군사들은 이미 굶주리고 지쳐 있었다.

일본군을 계속 추격할 힘이 없었다.

잠시 뒤 일본군의 큰 부대가 뒤에서 다시 나타났다.

예전 같으면 일본군이 기세를 올려 우리 진영으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군대를 멀리서 바라보면서도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우리 군사는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진영으로 돌아오다

우리 군사도 굶주림 때문에 더 싸울 수 없어 그대로 진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큰 승리를 얻고도 아무 피해 없이 돌아왔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군사 한 사람에게 하루 1되 7홉 정도밖에 주지 못하다

그러나 군량 사정은 참혹했다.

우리 군사의 군량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명나라 군대가 먹던 쌀이나 여러 곳에서 조금씩 얻은 곡식을 나누어 줄 뿐이었다.

사람 한 명에게 하루 약 1되 7홉 정도씩 지급했다.


군사는 그 적은 식량마저 가족과 나누어 먹었다

군사들은 받은 곡식마저 아내와 자식에게 나누어 주었다.

실제로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적었다.

하루에 얼마 되지 않는 쌀만 먹고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굶주린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몸에는 힘이 없었다.

적과 싸우려는 마음은 있어도 실제로 싸울 힘이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알 수 없어 애가 탔다.


왕릉 훼손에 책임이 있는 이기빈을 법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아뢰다

그달 초9일 밤, 경기 지역에서 선릉과 정릉이 일본군에게 훼손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는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파주로 가서 김명원 등과 의논했다.

내 군관 이노국에게 자원한 군사 10명을 붙여 양주 쪽을 통해 왕릉으로 들어가게 했다.

실제 상태를 자세히 살펴오도록 했다.

헌릉도 일본군 진영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함께 확인하게 했다.


광주는 원래부터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지역이었다

광주는 전해 우리 군대가 패한 뒤 백성이 크게 흩어졌다.

거의 빈 지역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전부터 여러 장수에게 맡은 고을을 지키라고 거듭 명령했다.

광주목사 이기빈에게는 광주와 용인의 군사를 모아 지키게 했다.

다른 군사 모집 책임자의 병력과 이천 쪽 군사도 서로 연락하게 했다.


서울 남쪽 여러 군대를 서로 연결해 일본군을 협공하도록 명령했었다

김포와 통진, 과천과 금천 등지의 군사에도 따로 장수를 정하려 했다.

이기빈의 군대와 서로 맞은편에서 힘을 합쳐 일본군을 양쪽에서 공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은 한두 번 말한 것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 엄하게 명령했다.


그런데 이기빈은 자기 고을을 떠나 남양과 수원 일대에 가 있었다

그 뒤 보고를 받아 보니 이기빈은 남양과 수원 지역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크게 놀랐다.

다시 확인하니 경기 지역을 지휘하는 사람의 명령으로 다른 관리와 함께 남양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전란을 피해 잠시 자리를 옮긴 정도가 아니었다.

자기 고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 일본군과 싸울 뜻 없이 적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급해지면 강화도로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자기 자리를 지켰다면 왕릉 훼손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기빈이 자기 지역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달랐을 것이다.

군사를 불러 모을 수 있었다.

여러 곳에 정찰병을 보내고 길목마다 복병을 둘 수도 있었다.

날마다 일본군을 막으려고 싸웠다면 고언백이 다른 지역을 지킨 것처럼 어느 정도 막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먼저 멀리 피해 버렸다.

결국 지역 전체를 일본군에게 내주었고 왕릉까지 참혹한 일을 당했다.


경기 지휘관들의 잘못도 함께 살펴야 한다

최근 경기 지역의 군사 조직은 크게 흩어져 있었다.

다시 바로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경기 지역을 지휘하는 관리의 일 처리에도 문제가 많아 한 지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나는 이미 전에 이 문제를 아뢰었다.

그러나 아직 분명한 처분이 없었다.

만약 왕릉 훼손이 이기빈이 자기 임무를 버리고 떠난 뒤에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면 법대로 죄를 물어 다른 사람에게 경계가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나라 장수가 300여 명을 거느리고 일본군 진영으로 향하다

전날 나는 파주에 가서 여러 장수와 군사 행동을 의논했다.

그날 명나라 장수 한 사람이 큰 깃발을 앞세우고 300여 명을 거느린 채 왔다.

나는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게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서울로 가서 왕자들과 붙잡혀 있는 조선 신하들을 데리고 나오려 한다.”


명나라 측에서 깃발에 머리를 조아리라고 요구하다

잠시 뒤 명나라 사람이 나와 말했다.

“큰 깃발이 여기까지 왔으니 안으로 들어와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올리십시오.”

나는 대답했다.

“명나라 군령을 상징하는 깃발에 예를 올리는 법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깃발은 지금 일본군 진영으로 가는 깃발입니다.

일본군은 우리나라와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군과 화친할 뜻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일과 관련된 깃발에 내가 먼저 머리를 조아릴 수는 없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여러 차례 강하게 요구했지만 끝내 절하지 않다

명나라 장수는 계속 들어와 절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명나라 쪽에서 내려온 공식 문서를 내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이런 뜻의 말이 있었다.

조선과 일본은 본래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이지만, 일본군이 조공하고 항복하겠다고 청했으므로 우선 명나라 병부의 회답을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이 문서는 결국 우리 군대에게 일본군을 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항의하다

나는 그 문서를 보고 몹시 슬프고 분했다.

말했다.

“이 문서대로 한다면 결국 우리 군대더러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뜻이 아닙니까?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나는 더더욱 이 깃발에 머리를 조아릴 수 없습니다.”

서로 여러 차례 논쟁했다.

나는 끝까지 절하지 않고 돌아왔다.


이여송은 군사 기밀이라며 우리를 달래고 책임을 송응창에게 돌렸다

나는 전에도 이여송에게 이런 문제를 여러 차례 물었다.

그때마다 이여송은 군사 기밀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를 달랬다.

화친 여부에 대한 큰 결정은 송응창 쪽에 달려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심유경이 일본군 진영에 들어간 뒤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심유경은 일본군 진영에 들어간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군에게 붙잡혔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은 커졌다.

이여송도 우리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부산과 동래에 일본 배가 크게 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다

그 무렵 경상도에서 보고가 왔다.

4월 초3일에 작성된 것이었다.

최근 동래와 부산 일대의 일본 배 움직임이 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왕래하는 배가 많아도 30척이나 40척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배가 들어왔고, 여기저기 흩어져 정박한 것까지 있어 정확한 숫자를 알기 어려웠다.


일본에서 새 병력이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다

일본군이 새로 증원된다는 말도 들렸다.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바람이 잔잔해 배가 오가기 좋은 때였다.

일본군이 실제로 새 병력을 보내고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공격하여 기세를 꺾어야 했다.

그런데 명나라 지휘부는 화친과 전쟁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기회를 계속 잃는 것이 더욱 통탄스러웠다.


용산 공격도 심유경 때문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다

최근 나는 정예병을 나누어 용산 일대 일본군을 공격하려 했다.

한강에도 별도의 병력을 보내 적의 퇴로를 살피게 했다.

그러나 심유경이 용산 일본군 진영에 머물고 있었다.

우리 장수들이 그곳을 함부로 공격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또다시 군사 행동이 지연되었다.

생각할수록 답답했다.


자원병 열 명을 뽑아 선릉과 정릉, 헌릉의 상태를 직접 조사하게 하다

그달 초10일, 나는 군관이자 수문장인 이노국에게 명령했다.

스스로 가겠다고 나선 병사 10명을 뽑아 선릉과 정릉, 헌릉의 상태를 자세히 알아보게 했다.

15일, 이노국이 돌아와 조사 내용을 보고했다.

그와 함께 간 사람 가운데에는 관청 노비와 개인 노비, 양인이 섞여 있었다.

모두 목숨을 걸고 왕릉의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었다.


조사대가 파주에서 몰래 남쪽으로 내려가다

그들은 파주를 떠났다.

일본군이 있는 곳을 피해 은밀하게 움직였다.

밤이 된 뒤 강가에서 작은 배를 탔다.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밤이 깊은 뒤 어느 섬 근처에서 배에서 내렸다.

그 뒤 걸어서 왕릉으로 들어갔다.


한 왕릉의 봉분이 깊이 15자, 너비 7자 정도 파헤쳐져 있었다

왕릉 가운데 한 곳은 크게 파헤쳐져 있었다.

파인 곳은 깊이가 약 15자, 너비가 약 7자 정도였다고 했다.

이노국과 몇 사람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밤이 너무 어두워 눈으로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손으로 더듬어 안쪽을 살폈다.


안쪽은 이미 크게 훼손되어 있었고 돌과 기와만 남아 있었다

손으로 만져 본 결과 중요한 부분은 이미 원래 자리에서 옮겨진 것처럼 보였다.

흙으로 만든 단 안에는 특별한 물건이 없었다.

기와와 돌 조각 같은 것만 쌓여 있었다.

조사대는 상태를 확인한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왕릉 가까이에 버려진 옷과 천 조각을 하나하나 거두다

왕릉 주변에는 옷과 천 조각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조사대는 손에 닿는 것들을 하나씩 거두었다.

함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가까운 곳에 임시로 묻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선릉의 왕릉도 깊이 7자, 너비 5자 정도 파헤쳐져 있었다

다시 선릉을 살폈다.

왕의 능은 길 앞쪽이 깊이 약 7자, 너비 약 5자 정도 파헤쳐져 있었다.

안쪽에는 특별한 물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회로 다진 부분이 보였다.

나무판은 불에 타 몇 조각만 남아 있었다.


왕비의 능도 파헤쳐지고 나무판이 불에 타 있었다

왕비의 능 역시 훼손되어 있었다.

파낸 곳은 깊이 약 6자, 너비 약 4자 정도였다.

안쪽의 나무판도 불에 타 거의 재가 되었다.

일부 흔적만 남아 있었다.

두 능 모두 참혹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헌릉은 일본군 진영이 너무 가까워 조사하지 못하다

헌릉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나 왕릉을 조사하는 동안 밤이 거의 끝나 날이 밝으려 했다.

일본군 진영이 매우 가까웠다.

더 머물렀다가는 모두 붙잡힐 위험이 있었다.

결국 헌릉은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돌아왔다.


왕릉을 어떻게 임시로 수습할지 김명원과 권율에게 의논하게 하다

이처럼 참혹한 변고가 일어났으니 신하로서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가슴속이 모두 찢어지는 듯했다.

나와 도원수 김명원은 권율과도 왕릉을 어떻게 수습할지 의논하게 했다.

의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현지에서 흙을 덮어 임시 봉분을 만드는 방안

한 가지 의견은 우선 해당 지역의 관리가 흙으로 다시 덮어 임시 봉분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 나라가 안정된 뒤 정식으로 다시 수습하자는 방법이었다.


유해를 배로 옮겨 적에게서 먼 곳에 임시로 모시는 방안

다른 의견은 가능한 유해와 남은 물건을 먼저 수습해 배에 싣고 일본군에게서 멀리 떨어진 양근 같은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안전한 곳에 임시로 모신 뒤 전쟁이 끝난 다음 다시 정식으로 처리하자는 의견이었다.


유해를 옮기는 길도 일본군 때문에 매우 위험했다

그러나 배로 옮기는 길 역시 매우 위험했다.

삼전도 부근을 지나야 했다.

일본군이 가까이에 있었다.

낮에는 움직일 수 없고 밤에만 이동해야 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밤도 짧아지고 있었다.

중간에 일본군을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목숨을 걸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을 다시 모집하다

이런 일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

일본군 진영 가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의병장 박유인과 내 군관으로 있던 전 만호 김극충 등이 나섰다.


박유인과 김극충에게 활 잘 쏘는 사람과 자원병을 붙여 다시 보내다

박유인과 김극충에게 활 잘 쏘는 사람 10명 정도를 붙였다.

또 스스로 가겠다는 사람도 더 모았다.

우선 다시 왕릉 가까이 들어가 현재 상태를 정확히 살피게 했다.

그 결과를 보고 실제 수습 방법을 결정하려 했다.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기에는 왕릉이 너무 오래 드러나 있었다

왕릉에 관한 일이므로 원칙대로라면 먼저 조정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왕릉이 훼손된 채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하루 이틀을 그냥 보낼 수도 없었다.

그 사이 일본군이 다시 무슨 짓을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 사람을 먼저 보내 자세히 살피게 했다.

조정에서도 가장 급한 일로 여겨 빨리 좋은 방법을 정해 주기를 요청했다.


명나라 깃발에 절하지 않은 일을 이여송이 문제 삼다

전에 파주에서 명나라 깃발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던 일은 이미 보고한 바 있다.

그날 함께 있던 명나라 장수는 이 일을 이여송에게 보고한 듯했다.

이여송은 우리가 명나라 군령을 무시한 것으로 생각하고 죄를 물으려 했다.

명나라 접대를 맡은 우리 관리들도 불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는 매우 불안했다.


이여송이 김명원을 용산으로 데려가라고 말하다

우리가 직접 가서 사과하려고 하던 중 이여송의 부하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가 전한 말은 이러했다.

“의정은 이곳에 남아 있고 도원수 김명원은 나와 함께 용산으로 가라는 제독의 명령이다.”

김명원은 대답했다.

“나 역시 임금에게 임무를 받은 사람이다.

말로만 들었다고 해서 쉽게 자리를 떠날 수 없다.

제독의 명령이라면 문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문서를 보여 달라.”


김명원은 문서 없는 구두 명령만으로 자리를 떠나기를 거부하다

명나라 사람은 말했다.

“별도의 문서는 없다.

제독께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김명원은 끝내 따라가지 않았다.

결국 명나라 사람은 혼자 용산으로 갔다.


날이 저문 뒤 이여송의 문밖으로 찾아가 기다리다

날이 저물자 나와 여러 관리들은 개성으로 갔다.

이여송이 머무는 곳의 문밖에 서서 만나기를 청했다.

직접 사정을 설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죄를 받으려 했다.

이여송은 처음에는 우리를 만나 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대로 밖에서 기다렸다.


한참 뒤 이여송이 나와 우리를 만나 주다

오랫동안 기다린 뒤에야 이여송이 나왔다.

우리를 안으로 들여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일본군과 화친할 수 없는 이유부터 설명했다.


일본군과는 만대가 지나도 갚아야 할 원한이 있다고 말하다

나는 말했다.

“우리나라와 일본군 사이에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한이 있습니다.

만대가 지나도 반드시 갚아야 할 원한입니다.

우리는 명나라 군대의 힘을 믿고 적을 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본의 회답을 기다리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너무 놀랍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문서에 절하면 우리도 일본군 공격을 멈추겠다고 인정하는 꼴이라고 설명하다

나는 이어 말했다.

“우리가 아무 말 없이 그 문서를 받아들이고 머리를 조아리면 그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여러 장수에게 명령을 내려 앞으로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고 약속을 기다리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저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직접 제독께 찾아와 다시 판단을 구하려 했습니다.

다만 예법에 어긋난 일이 있다면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이여송은 화친 문서가 자기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다

이여송이 대답했다.

“그것은 위에서 내려온 문서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일반 문서라면 반드시 절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정식 명령을 상징하는 깃발이라면 예를 갖추어야 한다.”

나는 다시 말했다.

“예를 잘못한 죄가 있다면 받겠습니다.

하지만 일본군과 화친한다는 말은 뼈에 사무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여송이 송응창 쪽에서 내려온 글을 직접 보여 주다

이여송은 송응창 쪽에서 온 글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 몇 구절을 직접 손으로 가리켰다.

내용에는 일본군이 정해진 기한 안에 약속을 지키는지 기다리고, 그 뒤에 다시 처리한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문서를 보고 큰 결정이 이여송 혼자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동파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붙잡혀 오라는 명령이 내려오다

우리가 이야기를 마치고 동파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깃발을 든 사람이 불같이 달려와 나를 불렀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뒤에 명나라 접대를 맡은 관리와 종사관에게서 사정을 들었다.

명나라 장수 한 사람이 이여송에게 나에 관한 말을 잘못 전한 듯했다.


용산으로 갈 배가 준비되지 않은 책임까지 내게 돌린 듯했다

용산으로 갈 때 필요한 배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명나라 장수는 그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이여송에게 말한 듯했다.

이여송은 크게 화를 내어 나를 잡아 오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뒤에 실제 사정을 다시 확인하니 처음 보고된 내용과 달랐다.

결국 나를 다시 돌아가게 했다.


명나라 지휘부가 화친을 원하면서도 조선의 분노를 두려워한다고 판단하다

전체의 형세를 살펴보면 이여송 이하 명나라 장수들이 이미 화친 쪽으로 상당히 마음이 기운 듯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군과 화친한다는 말을 들으면 몹시 분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면으로 우리에게 말하지 못하고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듯했다.

우리의 반대 때문에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불쾌해하는 기색도 전보다 강해졌다.

앞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알 수 없어 더욱 걱정되었다.


명나라 관리들이 흑석강에 도착해 일본군을 기다리다

충청 수군 쪽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명나라 관리 몇 사람이 부하 20명가량을 데리고 15일 아침 흑석강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들은 먼저 작은 배를 보내 일본군에게 자신들이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오후까지 일본군은 마중 나오지 않았다.

멀리서 일본군 여러 명이 나타났다가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만 보였다.


일본군이 마중 나오지 않으면 화포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다

명나라 측에서는 여러 배에 작은 글을 보내 명령했다.

“일본군이 우리를 마중 나오지 않는다.

명나라를 업신여기는 행동이다.

각 배는 크고 작은 화포와 무기를 모두 준비해 두라.

일본군이 계속 나오지 않으면 신호를 보낼 것이니 곧바로 화포를 쏘아 공격하라.

매우 중요한 일이니 반드시 명령대로 하라.”

일본군의 오만함이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분하고 뼈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명나라 장수들이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없었다.


전쟁과 화친의 결정권은 실제로 송응창에게 더 많이 있었다

명나라 병부에서 내려온 글과 이여송의 행동을 함께 살펴보면 이여송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군사를 움직이는 큰 결정은 송응창의 지시를 받는 듯했다.

이여송에게만 계속 싸움을 청해서는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전쟁터의 장수에게 지휘권이 있어야 하는데 이여송도 마음대로 싸우지 못했다

나는 앞서 명나라 장수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전쟁터의 장수는 군령을 직접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멀리 있는 사람에게 허락을 기다려야 한다면 어떻게 때를 맞춰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여송은 이 말에 뚜렷하게 답하지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큰 결정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명나라의 화친 결정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에서 내려온 문서에는 아직 병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다시 처리한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일이 이미 끝난 것은 아니다.

다시 논의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조정에서 송응창에게 더욱 간절하게 요청해야 한다.


공격 기회를 놓치기 전에 송응창에게 진격을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

지금은 일본군을 공격해 물리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 때다.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얻기 어렵다.

나는 너무나 답답하고 다급해 다시 이 일을 아뢴다.

조정에서 실제로 큰 지휘권을 가진 송응창에게 급히 요청해 주기를 바란다.

일본군을 지금 공격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대군이 다시 진격하도록 힘을 다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이니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제11권 끝

 

 

 

 

징비록 열두째 권

명나라 장수들과 일본과의 강화 문제를 논하다

며칠 전 명나라 대군 지휘관이 군령을 상징하는 패 때문에 크게 화를 내며 나를 잡아오라고 했다가 그 명령을 거두었다. 이 일은 이미 앞서 보고했다.

그 뒤 명나라 장수 세 사람이 동파에 와서 객관의 정청에 군령을 상징하는 패를 세워 놓고 우리에게 절하라고 했다.

우리는 전에 대군 지휘관이 그 패가 황제의 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절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순찰사 이정형이 들어가 절하고 그들과 마주 앉았다.

명나라 장수들은 일본과 화친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일본이 이미 조공하겠다고 했고 명나라 조정도 받아들였다. 너희 나라 사람은 거의 죽었고 농사도 크게 망가졌다. 나라의 형세가 이처럼 위태로운데 무엇 때문에 끝까지 싸우려 하는가?”

나는 물었다.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대답했다.

“명나라 조정이 이미 일본의 조공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조선도 일본군을 함부로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큰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분한 마음을 참기 어려웠다.


우리나라가 화친하려 했다면 진작 할 수 있었다고 반박하다

나는 말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화친하려 했다면 오늘까지 기다릴 까닭이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전쟁이 시작된 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화친을 요구했습니다.

동래에서도 글을 보냈고, 다른 곳에서도 다시 요구했으며, 평양에서도 또 글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보낸 글에는 명나라를 모욕하고 업신여기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명나라를 섬겨 왔습니다. 천하의 큰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일본군과 싸운 것입니다.”


종묘와 왕릉을 짓밟고 백성을 죽인 원수와 화친할 수 없다고 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일본군은 우리 종묘를 불태우고 왕릉을 파헤치며 나라의 백성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였습니다.

우리 백성에게 일본군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그런데 이제 명나라의 명령이라고 하여 우리 백성에게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 원통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런 명령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여러 차례 말을 바꾸어 가며 나와 논쟁했다. 글을 써서 보여 주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여 따지기도 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나라가 비록 작지만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부모와 자식의 의리도 압니다.

일본군은 우리 임금을 욕보이고 백성의 부모와 형제를 죽였습니다.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 어찌 죄가 되겠습니까?

명나라 장수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일본군을 죽이지 못하게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치욕을 참고 훗날 원수를 갚으라는 말을 듣다

명나라 장수들은 말했다.

“이것은 황제의 뜻을 받들어 군무를 맡은 관리와 대군 지휘관이 시행하는 명령이다.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일본은 조선 왕자들과 붙잡아 간 백성을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당장의 분함을 조금 참아야 한다.

나라가 다시 안정되고 백성을 모으며 군사를 훈련하면 훗날 원수를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옛날에도 치욕을 참고 백성을 모으고 군사를 훈련해 오랜 뒤 원수를 갚은 사람이 있었다.

눈앞의 분함을 참지 못해 큰 계획을 망쳐서는 안 된다.”

나는 대답했다.

“이익과 손해만 놓고 보아도 그런 방법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전 중국의 역사를 보아도 변방의 세력과 화친했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논쟁이 거칠어지자 명나라 장수 가운데 한 사람이 내가 써 놓은 종이를 손으로 쳤다. 다른 사람이 웃으며 그를 말렸다.


싸움과 화친의 큰 결정은 명나라에 맡기더라도 우리 백성의 복수까지 막을 수는 없다고 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우리나라 군사가 약하여 스스로 나라를 회복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죽더라도 누구를 원망할 수 없습니다.

화친할 것인지 계속 싸울 것인지 하는 큰 문제는 명나라 조정에서 결정할 일이니 작은 나라가 함부로 간섭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의병 가운데에는 일본군에게 부모와 형제를 잃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원수를 갚지 말라고 어떻게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아직 우리 임금의 명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마음대로 전국 군사에게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말했다.

“이것은 사실상 황제의 명령이다. 조선 국왕도 어찌 다른 의견을 내겠는가? 국왕의 명령을 다시 기다린다면 언제 일을 시행하겠는가?”

그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으면 명나라 군대를 철수시키겠다는 위협을 받다

오랜 논쟁 끝에 명나라 장수들은 말했다.

“그렇다면 대군 지휘관에게 말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게 하겠다. 그 뒤에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

그들은 곧 다른 곳으로 떠나려 했다.

전라도 군영에 전할 문서도 내놓고 길을 안내할 사람을 요구했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명나라 황제의 명령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모든 연락과 왕래를 막아 버릴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가져가는 문서를 전하도록 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라도 군영에는 따로 알려 일본군이 진영 밖으로 나와 함부로 백성을 죽이고 약탈한다면 군사를 정비해 형편에 따라 대응하도록 했다.


조선이 명나라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통탄하다

명나라 쪽에서는 조선 백성이 일본군을 공격하는 것을 두고 명나라의 일을 방해한다고 했다.

우리 쪽에서 일본군과 싸운 일을 문제 삼아 누가 명령했는지 조사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부모와 형제를 잃고 나라까지 파괴당한 우리 백성이 품은 원한은 너무나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복수조차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결국 우리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다른 나라 군대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수모를 겪는 것이다.

우리 신하들의 정성과 능력이 부족하여 명나라 장수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나는 살아 있어도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다.

먼저 내 죄를 다스리고 조정에서 다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청했다.


우리 군사가 일본군과 싸워 세운 공을 보고하다

내 휘하의 군관 한사립과 서강 쪽 군사 십여 명은 용산에 있는 일본군 진영을 살폈다.

그들은 밤을 틈타 불을 질러 적을 공격할 생각까지 세웠다.

그러나 당시 심유경을 비롯한 명나라 사람이 일본군 진영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그달 14일에는 우리 군사가 밖으로 나온 일본군을 공격하여 십여 명을 활로 쏘아 죽였다.

며칠 뒤 외성산에서도 일본군과 싸웠다.

한사립 등은 적 한 명의 목을 베고 여러 명을 활로 쏘아 죽였다.

17일에는 외성산에서 일본군 이백여 명을 만났다.

우리 군사는 겨우 열네 명이었다.

그런데도 일본군 속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마구 공격했다.

일본군은 버티지 못하고 달아났다.

우리 군사는 다시 십여 명을 죽였고 몸에 화살을 맞은 일본군도 많았다.


우리 군사의 사기는 높아지고 일본군은 우리를 보면 달아나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 군사는 모두 분발하여 일본군을 보면 앞다투어 싸우려 했다.

반대로 일본군의 기세는 조금씩 떨어졌다.

우리 군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달아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계속 공격했다면 일본군을 더 크게 몰아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 장수들은 일본군에게는 진영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고 우리 군대에는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명나라 군대가 한양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눈앞에 부모와 형제를 죽인 원수가 있는데도 복수하지 못했다.

너무나 원통한 일이었다.


일본군과 싸운 조선 군사를 오히려 조사하다

우리 군사가 일본군과 싸운 일을 이유로 명나라 쪽에서는 사람을 붙잡아 누가 전투를 시켰는지 조사하려 했다.

한사립 등이 외성산에서 싸운 일이 직접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병력이 약해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명나라 군대에 의지한 결과가 이런 것이었다.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명나라 대군이 한양으로 출발하다

그달 19일 아침, 명나라 선발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발했다.

오후에는 대군 지휘관이 주력군을 이끌고 뒤따라 동파에 이르렀다.

다음 날인 20일 대군 지휘관은 다시 전군을 거느리고 한양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하려 할 때 조선의 접대 관리들이 힘껏 말했다.

“일본군은 매우 교활합니다.

아직 두 왕자를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명나라 군무를 총괄하는 곳의 명령에도 일본군이 약속을 따르지 않으면 공격하라는 뜻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조선군도 지금 한강을 건너 뒤를 추격하려 합니다.

분명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대군 지휘관은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왕자를 돌려보내기 전에 먼저 싸운 조선 장수들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꾸짖다

대군 지휘관은 말했다.

“너희 나라 장수들은 왕자들이 풀려나기도 전에 먼저 싸움을 벌였다. 매우 잘못된 일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 바로 말에 올랐다.

그때 한양을 살피고 돌아온 사람이 말했다.

“일본군이 아직 도성을 완전히 빠져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심유경과 명나라 사람 두 명도 일본군과 함께 있습니다. 왕자들 역시 아직 풀려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분하고 답답했다.

일본군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우리 군사가 싸운 일만 문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권율과 이시언, 고언백을 비롯한 여러 장수에게 빨리 앞으로 나아가 적의 형편을 살피고 기회에 따라 행동하라고 명령했다.

나도 뒤따라 임진강까지 갔다.

하지만 명나라 군사들이 길을 막고 있어 바로 건너지 못했다.


명나라 대군을 따라 한양에 들어간 뒤 도성의 형편을 보고하다

명나라 대군 지휘관이 동파에서 출발해 한양으로 들어간 일은 앞서 보고했다.

해가 질 무렵 도성에 들어가 보니 일본군은 이미 모두 빠져나간 뒤였다.

명나라 장수를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조선군은 즉시 적을 추격하지 못했다.

고언백의 군대가 동대문으로 먼저 들어가 뒤에 처진 일본군 다섯 명을 죽였다.

다른 길로 들어간 군사도 일본군 여섯 명을 베었다.

또 다른 장수도 한 명을 죽였으나 명나라 명령을 어겼다고 문제 삼을까 걱정해 숨겼다.


한양 수복을 축하하러 가다

나와 권율, 이정형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명나라 지휘관의 숙소 앞으로 가 한양을 되찾은 일을 축하했다.

명나라 지휘관은 말했다.

“너희 나라의 수도를 되찾았는데 왜 나에게 감사하는가?”

나는 곧바로 일본군을 추격할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으나 그는 다음 날 만나자고 했다.

이미 날이 저물어 도성 안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다.


모화관에서 도성 안까지 백골과 시체가 길을 메우다

다음 날 도성의 형편을 자세히 살펴보니 참혹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화관 부근부터 백골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성 안에는 사람과 말의 시체가 쓰러져 길을 메우고 있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집도 대부분 불타거나 무너졌다.

온전하게 남아 있는 집은 전체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듯했다.

나라의 수도였던 한양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명나라 지휘관이 처음에는 적을 추격하겠다고 하다

명나라 지휘관은 말했다.

“일본군이 왕자들을 돌려주지 않고 달아났으니 우리가 군사를 보내 뒤를 추격하겠다.

한강을 건너야 하니 배를 빨리 마련하라.”

나는 즉시 경기도의 관리와 의병장들에게 밤을 새워서라도 배를 준비하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이용하던 부교는 모두 불태워진 뒤였다.

강에 남은 배도 거의 없었다.

충청도 수군의 전선 몇 척을 용산에서 한강 위쪽으로 올리려고 했지만 물이 너무 얕아 큰 배는 올라오지 못했다.


정예병을 먼저 한강 남쪽으로 보내려 하다

나는 권율과 고언백, 이시언 등에게 정예병을 뽑아 먼저 강을 건너 적을 뒤쫓도록 했다.

앞서 내가 보냈던 군관과 여러 부대의 군사를 합하면 구백여 명이 되었다.

그들에게 적의 길목을 막고 기회를 보아 공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본군도 퇴로에 복병을 두고 화기를 많이 준비하고 있어 우리 군사가 쉽게 공격할 수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무엇보다 명나라 장수를 따라 움직이며 그들의 명령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군사를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좋은 기회를 놓칠까 몹시 답답했다.


한양을 되찾은 뒤 도성을 수습하게 하다

한양을 막 되찾은 뒤의 형편은 마치 나라를 처음 세우는 것과 같았다.

관청도 무너지고 백성도 흩어졌다.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곳곳에서 도둑질과 약탈이 벌어졌다.

바로 수습하지 않으면 남아 있는 것마저 모두 없어질 형편이었다.


도성 동쪽과 서쪽에 군사를 나누어 도둑을 잡게 하다

전라도 군사를 거느린 장수에게 삼백 명을 주어 도성 서쪽에서 도둑을 잡게 했다.

또 다른 장수에게 사백 명을 주어 동쪽을 맡게 했다.

그들에게 약탈하는 사람을 단속하고 흩어진 백성을 보호하게 했다.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물건이나 공공 재산을 함부로 가져가는 일도 막게 했다.


관청과 민가, 창고에 남은 물건을 모두 조사하게 하다

도성 안팎에는 불타지 않고 남은 관청과 민가가 조금 있었다.

여러 창고에도 일본군이 가져가지 못한 물자가 남아 있었다.

호조가 이것을 전담해 거두고 관리하도록 했다.

창고를 지킬 사람이 없는 곳에는 따로 사람을 보내 지키게 했다.

용산의 창고 역시 별도의 사람을 정해 지키게 했다.

내 종사관과 군관도 호조의 지휘를 받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남은 재물을 거두게 했다.


흩어진 서적과 인장, 관청 물건을 거두다

도성 안에 흩어진 서적도 다시 모으게 했다.

관청의 인장과 군사 장비, 의복과 여러 기물도 발견하는 대로 수습하게 했다.

각 관청의 서리와 하급 관리 가운데에는 죽은 사람도 많았고 의병에 들어간 사람도 많았다.

살아남은 사람은 가능한 한 본래 소속 관청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맡게 했다.

관청 자체를 다시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굶주린 한양 백성 수백 명을 구제하다

한양 안에 살아남은 백성 가운데 굶주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남아 있는 곡식 가운데 일부를 떼어 수백 명에게 나누어 주게 했다.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입을 것도 나누어 주었다.

서울 가까운 지역에서 다시 농사를 지을 사람에게는 씨앗으로 쓸 곡식도 마련해 주려고 했다.

한양을 되찾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폐허 속에서 사람을 다시 살리고 관청과 농사를 일으키는 일이 시작되어야 했다.


나는 적이 물러나는 대로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앞서 나에게 일정한 일을 마치면 돌아오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러나 남쪽의 군사 상황은 여전히 매우 위급했다.

일본군이 완전히 물러난 것도 아니었다.

조정에서 나를 해임하지 않는다면 일본군이 물러나는 대로 직접 남쪽으로 내려가 여러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양 역시 막 되찾은 상태였다.

대신 한 사람이 남아 백성을 안정시키고 도성을 수습해야 했다.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고 여러 문제를 조정할 사람도 반드시 필요했다.


명나라 장수들이 우리 군사의 추격을 막은 일을 자세히 보고하다

음력 4월 20일 명나라 군대가 한양으로 들어왔다.

그날 아침 대군 지휘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했다.

“우리는 일본군을 뒤쫓을 것이다.

너희 나라의 군마도 함께 나아가라.

한강을 건널 배를 빨리 준비하라.”

나는 즉시 경기도와 충청도 수군 지휘관에게 배를 한강으로 올리라고 다시 재촉했다.

권율과 여러 방어 장수에게도 이전 명령에 따라 정예병을 골라 강을 건너라고 했다.

승려 군대를 거느린 유정에게도 가까운 곳에서 강을 건너 다른 관군과 힘을 합치도록 했다.


명나라 장수가 만오천 명을 보내 추격하라고 명령하다

21일 아침 우리는 다시 명나라 지휘관을 만났다.

한양을 되찾은 일을 축하한 뒤 곧바로 일본군을 추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나라 지휘관은 그 자리에서 휘하 장수 두 사람에게 군사 만오천 명을 이끌고 적을 추격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배가 부족해 군사가 제때 강을 건너지 못할까 걱정했다.

그래서 한강으로 나가 직접 배를 모으는 일을 살폈다.


일본군이 남기고 간 배 오십여 척까지 이용하다

충청도 수군의 큰 전선은 물이 얕아 한강 위쪽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다행히 일본군이 새로 만들어 놓고 달아나며 버린 배가 오십여 척 있었다.

우리의 작은 배 몇 척도 있었다.

이 배들을 모두 이용해 명나라 군사와 말을 강 남쪽으로 계속 건넜다.

이미 오천에서 육천 명가량이 강 남쪽에 건너가 있었다.

나도 이제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을 건넌 군대가 갑자기 모두 돌아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명나라 장수 한 사람이 갑자기 한양으로 돌아갔다.

다른 장수는 발이 심하게 아프다며 강가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었다.

또 다른 장수도 병이 심하다고 하면서 수레를 타고 도성으로 돌아갔다.

이미 강을 건넌 명나라 군사도 모두 다시 북쪽으로 건너왔다.

나는 크게 의심했다.

병이 정말 그렇게 갑자기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추격을 금지하라는 명나라 군무 지휘부의 문서가 왔다고 하다

나는 다시 명나라 대군 지휘관의 숙소로 갔다.

오랫동안 문밖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안에서 사람이 나와 말했다.

“군무를 총괄하는 곳에서 일본군을 추격하지 말라는 문서가 왔다.

대군 지휘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일본군 뒤에는 명나라 사신 두 사람과 조선의 두 왕자가 있다.

조선군이 일본군을 세게 공격하면 사신과 왕자가 해를 입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군사를 거두면 일본군이 왕자를 돌려줄 까닭이 없다고 말하다

나는 대답했다.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일본군이 왕자와 붙잡아 간 백성을 돌려주지도 않고 떠났다면 오히려 대군을 보내 그 뒤를 세게 압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본군이 두려워 왕자와 백성을 돌려보낼 것입니다.

군사를 모두 거두고 뒤쫓지 않으면 일본군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들은 반드시 남쪽의 좋은 지역을 차지하고 눌러앉아 다시 계책을 세울 것입니다.

그때 명나라가 뒤늦게 공격하려고 해도 이미 늦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계속 따졌다.

하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권율이 직접 강을 건너려 하자 명나라 군사가 막다

밤이 깊은 뒤 권율이 직접 찾아왔다.

그는 명나라 쪽에 일본군을 계속 추격해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그 뒤 스스로 강을 건너려고 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들이 강가에 줄지어 서서 조선군을 막았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 장수들이 다른 길을 이용하려고 해도 곳곳에서 제지했다.


일본군 다섯 명을 벤 조선 군관이 명나라 군사에게 심하게 맞다

우리 군관 한 사람은 죽산 부근에서 일본군 다섯 명을 죽이고 목을 베어 왔다.

명나라 군사가 그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적의 목을 빼앗아 감추려고 했다.

우리 군관이 항의하자 심하게 때렸다.

그는 크게 다쳐 피까지 토했다.

또 다른 조선 장수도 명나라 군사에게 맞아 상처를 입었다.

여러 장수가 붙잡히거나 길을 막혀 일본군을 뒤쫓지 못했다.

오직 몇몇 장수만 명나라 군사의 눈을 피해 다른 길로 적을 따라갔다.


우리 힘으로 원수를 치지 못하는 현실을 통곡하다

우리나라 군사력이 약한 것도 이미 부끄럽고 원통했다.

그런데 이제는 명나라 군대가 중간에서 길을 막아 일본군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물러가게 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명나라 지휘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군을 힘으로 끝까지 추격하기보다 말로 일을 마무리할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우리 군대마저 곳곳에서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우리 스스로 적을 쳐 나라의 치욕을 씻지 못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저 통곡하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내 죄부터 다스리고 중책에서 물러나게 하여 군사와 백성이 품은 분노에 답해 달라고 청했다.


왕릉을 살피다

나는 음력 20일 저녁 동파에서 한양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에도 한강의 추격 문제 때문에 계속 분주했다.

22일이 되어서야 왕릉이 있는 곳으로 가 직접 살펴보았다.

전쟁으로 훼손된 모습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싶었고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였다.

왕실 사람과 관련 관리, 무관 십여 명에게 그곳을 계속 지키도록 했다.


왕릉 주변 고을은 명나라 군대의 부담까지 져 기력이 거의 남지 않았다

한양 주변 여러 고을은 이미 전쟁으로 심하게 무너졌다.

게다가 계속 이어진 명나라 군대의 접대와 군량 공급 때문에 백성의 힘이 거의 바닥나 있었다.

왕릉을 돌볼 물자조차 제대로 마련하기 어려웠다.

나는 강원도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 필요한 물자를 가능한 한 마련해 보내 달라고 했다.

왕릉과 주변 시설을 수습하는 일도 밤낮을 가리지 말고 처리하게 했다.


병이 심해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한다고 보고하다

나는 오랫동안 기혈이 상해 있었다.

지난달 24일부터 병이 심해졌다.

이십여 일 동안 거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제서야 겨우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머리조차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살지 죽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한강 부교와 군량 수송 준비는 이미 마련해 두었다

한강에 놓을 부교는 전에 관련 수령과 수군 장수를 따로 정해 만들게 했다.

공사는 이미 끝났다.

명나라 대군도 거의 모두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갔다.

호조의 관리도 대군을 따라가며 군량 운반과 지급 문제를 맡게 했다.

그러므로 그쪽의 당장 급한 군량 문제는 어느 정도 이어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병든 내가 계속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이 공적인 일에도 해가 된다고 하다

그러나 내 병세는 너무 심했다.

아무 일도 직접 처리할 수 없었다.

나는 나라의 중책을 맡고 있는데 병은 언제 나을지 알 수 없었다.

한양과 동남쪽의 전쟁 상황은 하루하루 더욱 급해지고 있었다.

죽어 가는 병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나 개인에게만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공적인 일에도 큰 해가 되었다.

조정에서 빨리 다른 사람을 보내 내 직책을 맡게 하여 나라의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명나라 군사가 우리 장수의 추격을 방해한 일을 다시 보고하다

내가 병들기 전, 명나라 군대가 한양으로 들어갈 무렵에 나는 조선 장수들에게 일본군을 추격하도록 미리 명령했다.

동쪽 길로는 고언백과 이시언 등에게 여러 지역의 군사와 힘을 합쳐 적을 뒤쫓게 했다.

서쪽 길로는 권율을 비롯한 전라도 군사와 경기 지역 군사가 함께 강을 건너 추격하게 했다.

충청도 등에도 연락하여 그 지역 군사가 같은 방식으로 일본군을 공격하도록 했다.


명나라 군사가 한강 남쪽에 줄을 서 조선군을 막다

그런데 명나라 장수 차대수 등의 군사가 강 남쪽에 줄지어 서서 우리 군대를 막았다.

활과 화살을 가지고 일본군을 살피거나 따라가는 조선군을 발견하면 함부로 때렸다.

우리 군관 가운데 한 사람은 죽산에서 일본군 다섯 명을 죽였다.

명나라 군사가 그가 가지고 온 적의 목을 보고 빼앗아 숨기려 했다.

그가 항의하자 심하게 구타했다.

중상을 입을 정도였다.


여러 조선 장수가 붙잡히거나 구타당하다

다른 조선 보조 장수도 명나라 군사에게 맞아 다쳤다.

여러 장수가 붙잡히거나 길을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몇몇 장수만 몰래 다른 길을 이용해 추격했다.

우리 병력이 약한 것도 이미 부끄러운 일인데 명나라 군대가 길을 막고 있는 동안 일본군은 제 마음대로 물러났다.

이보다 분하고 원통한 일이 없었다.

나는 이 일 때문에 울화가 더욱 심해져 병세마저 악화되었다.


도원수가 내려간 뒤 나는 병들어 아무것도 처리할 수 없었다

도원수 김명원은 이미 명나라 군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중병 때문에 뒤에 남았다.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누워 있으면서 다시 임금의 명을 받으니 더욱 송구하고 답답했다.

내가 맡던 급한 일은 도원수에게 넘기거나 다른 사람을 빨리 정해 맡기도록 해 달라고 거듭 청했다.


군량을 제대로 관리하고 서둘러 곡식을 모집하게 해 달라고 청하다

한양에 들어온 뒤 이미 쌀과 콩 사만 육천여 석을 사용하다

음력 4월 20일 명나라 대군이 한양에 들어온 뒤 군량 소비가 매우 컸다.

남쪽 지방에서 배로 실어 나른 쌀과 콩을 합쳐 이미 사만 육천여 석을 사용했다.

용산 창고에 일본군이 남겨 두고 간 곡식도 있었지만 남은 것은 이천여 석 정도뿐이었다.

그것으로는 하루 이틀, 길어도 며칠을 버티기 어려웠다.


도성 안에 남은 곡식과 토지세까지 모두 써도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도성 안 여러 창고에 남은 곡식도 찾아보았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나라 안에서 써야 할 여러 비용도 있었다.

왕릉을 수습하는 일에도 날마다 많은 물자가 들어갔다.

명나라 군대가 오래 머물면 지금 가진 곡식은 금방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토지세로 들어오는 쌀을 이어서 써야 했다.

그런데 이미 도착했거나 배에 실려 오고 있는 토지세 쌀도 겨우 만여 석 정도였다.

그것으로 대군을 며칠이나 먹일 수 있겠는가.


호남의 재정도 이미 거의 바닥났다고 하다

내가 들으니 호남의 재정도 이제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 가운데 아직 한양에 있는 사람도 많고 새로 오는 여러 장수와 병력도 있었다.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먹일 것인지 방법이 없었다.

서울과 지방의 재정이 동시에 무너지면 그 뒤에는 다시 손을 쓸 방법이 없다.

나는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의주에 있는 명나라 군량을 빨리 배로 내려보내야 한다

명나라가 직접 가져와 의주에 보관하고 있는 군량이 있다면 빨리 배에 실어 남쪽으로 내려보내야 한다.

명나라 군대가 먹을 곡식까지 조선 백성이 계속 부담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군량 운반을 전담하던 관리가 멀리 경상도에 가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명나라 군량이 도착해도 검사하고 관리할 책임자가 없었다.

이대로 두면 운반 과정에서 낭비와 손실이 생길 수 있었다.


한양을 막 되찾은 때에 호조의 책임자마저 부족했다

평상시에도 호조는 나라의 재정을 전담하는 매우 중요한 관청이다.

높은 관리가 모두 있어도 나라 살림을 제대로 꾸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한양을 막 되찾아 나라를 다시 세우다시피 해야 하는 지금, 호조의 중요한 관리가 남쪽에 내려가 있었다.

서울에는 책임지고 일을 처리할 높은 관리가 거의 없었다.

임시로 일을 맡은 사람만 있어 모든 일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호조의 책임자를 빨리 보충해야 한다.

실무 관리도 여러 명을 두어 일을 나누어 맡겨야 한다.

나라의 재정을 붙잡는 일보다 급한 것은 없었다.


지금 가장 큰 걱정은 군량이었다

당시 나라의 여러 근심 가운데 군량보다 더 큰 문제는 없었다.

경상도에는 일본군이 바닷가 여러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적의 세력은 아직 강했다.

그런데 경상도에는 공적인 곡식도 민간의 곡식도 거의 없어졌다.

사람마저 많이 죽었다.

방어 준비를 하려 해도 먹을 것이 없으니 모든 계책이 막혔다.


보리와 밀이 익는 지금이 곡식을 사들일 마지막 기회라고 하다

전라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제 보리와 밀이 익기 시작했다.

백성이 모두 먹어 버리기 전에 적절한 값을 주고 사들여야 한다.

많이 모집하면 만 석 정도를 얻을 수도 있고, 적게 얻더라도 수천 석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식은 군량으로 쓸 수 있다.

굶주린 백성을 구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성이나 포루를 만들고 방어 시설을 쌓는 사람들을 먹이는 데에도 쓸 수 있다.


곡식을 모집할 때 상으로 줄 빈 임명장 수백 장을 요청하다

나는 전에 곡식을 내는 사람에게 상을 주기 위해 빈 임명장을 조금 받아 왔다.

그러나 수가 너무 적었다.

또 낮은 등급의 사람에게 줄 만한 적절한 직책도 충분하지 않았다.

곡식을 널리 모집하려면 상으로 사용할 임명장을 수백 장 정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청했다.

그것을 가지고 종사관을 보내 민간에서 곡식을 사거나 모집하게 하면 백성을 심하게 괴롭히지 않고도 어느 정도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몇 달 뒤에는 민간의 보리와 밀이 모두 소비된다.

그때 아무리 모집하려 해도 내놓을 곡식 자체가 없게 된다.


한양의 여러 수습 업무는 우의정이 맡고 있음을 덧붙이다

최근 한양의 수습과 여러 실무는 우의정이 직접 맡아 살피고 있었다.

세부적인 사정은 따로 보고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모두 다시 적지 않았다.

다만 군량과 국가 재정 문제는 나라의 존망과 직접 연결되므로 별도로 자세히 아뢰었다.


정예병을 골라 훗날을 준비하게 해 달라는 글

정예병을 따로 골라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하자는 장계도 올렸다.

이 권에는 제목만 남아 있고 자세한 본문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군사 장비를 정비하고 화포를 많이 만들어 달라는 글

군사 장비를 수리하고 화포를 대량으로 만들어 앞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장계도 올렸다.

이 역시 이 권에는 제목만 남아 있다.


한양에서 군사를 모집해 새로운 화포 사용법을 가르치자는 글

한양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새로운 화포 사용법을 익히게 하자는 장계도 있었다.

이 글 역시 자세한 본문은 다른 기록에 따로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화산성을 비롯한 산성을 수리하고 좋은 수령을 골라 민심을 수습하자고 청하다

남해안 일본군은 집을 짓고 성과 보루를 쌓으며 장기 주둔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 경상도에서 올라온 보고를 계속 살펴보았다.

일본군은 양산과 기장, 동래, 부산, 김해, 창원 등 여러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 세력은 아직 매우 강했다.

그들은 집을 짓고 성과 보루를 쌓으며 곡식을 끌어모았다.

진주를 다시 공격하겠다는 말도 퍼뜨렸다.

형세가 매우 위험했다.


여러 방향의 일본군이 동시에 움직이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함께 위험해진다

양산 쪽의 일본군이 안쪽으로 들어오면 경상도 동쪽 지역을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

부산에서 곧장 북쪽으로 올라오는 길도 있었다.

창원 쪽 일본군이 서쪽으로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고 다시 전라도로 들어갈 가능성도 있었다.

각 지역의 적은 서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호응할 수 있었다.

세 도의 형세를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의 전쟁에서는 지키면서 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지키면서 싸우는 것이다.

먼저 적이 쉽게 이기지 못할 곳을 만들어야 한다.

그 뒤에 적에게 빈틈이 생기는 것을 기다려 공격해야 한다.

일본군이 비록 바닷가 여러 곳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륙의 많은 지역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곳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요충지마다 흙벽과 목책을 만들고 무기와 군량을 쌓아 두다

지형이 좋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을 골라야 한다.

필요한 곳에는 흙으로 방어벽을 만든다.

나무로 목책도 세운다.

무기와 군량을 충분히 저장한다.

적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지키면서 힘을 기른다.

용감한 군사를 골라 유능한 장수에게 맡겨 훈련한다.

현지에서 말을 가진 사람도 활용한다.


일본군이 움직이면 옆과 뒤를 계속 공격해 편히 다니지 못하게 하다

적이 움직이면 정예병으로 그 좌우와 뒤를 공격한다.

적의 움직임을 계속 살펴 잠시도 편안하게 두지 않는다.

일본군이 앞으로 나아가도 얻는 것이 없고, 뒤로 돌아가도 우리가 지키는 요새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적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적이 물러갈 때가 오면 그 퇴로를 공격한다.

강이나 바다를 건너려 할 때에는 육군과 수군이 함께 공격한다.

그렇게 하면 크게 이길 수 있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전쟁 수습책은 결국 이 방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 군대는 들판에서 싸우기보다 험한 곳을 지키는 데 유리하다

나는 앞서도 여러 지역에 방어 시설을 만들고 산성을 고쳐 백성을 들어가 지키게 하자고 청했다.

우리나라 군사는 본래 넓은 들판에서 일본군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전투에는 약하다.

그러나 성과 험한 지형을 이용해 지키는 데에는 강점이 있다.

행주 전투가 그것을 잘 보여 주었다.


권율의 행주 전투는 지형의 힘을 보여 준 사례였다

권율이 행주에서 싸울 때 일본군은 우리보다 몇 배나 많았다.

적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격했다.

그런데 우리 군사는 유리한 지형에 의지해 끝까지 버텼다.

일본군은 끝내 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한양의 일본군이 뒤에 물러난 데에도 행주에서 크게 패한 일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일을 보고 더욱 확신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험한 지형을 이용해 방어 거점을 단단히 만드는 것이다.

명나라 장수 가운데에도 같은 의견을 말한 사람이 있었다.


각 도의 산성을 백성의 힘을 지나치게 소모하지 않는 범위에서 수리하다

조정에서 빨리 의논해야 한다.

실행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각 도에 명령을 내린다.

지킬 만한 산성을 골라 차츰 수리한다.

백성이 자기 지역의 성을 수리하도록 하되 억지로 짧은 기한 안에 끝내게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이미 전쟁으로 지칠 대로 지쳤다.

성을 고친다는 이유로 다시 백성의 힘을 모두 소모시키면 본래 뜻을 잃는다.

관청의 곡식과 민간에서 보관할 수 있는 곡식도 성 안으로 옮겨 둔다.

각 지역 책임자가 형편을 자세히 살펴 시행해야 한다.


성이 있어도 화약과 화포가 없으면 적을 막을 수 없다

성을 아무리 잘 쌓아도 화약과 화포가 없으면 적과 싸울 수 없다.

방어 시설만 있고 적을 공격할 무기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조정에서 화포와 화약 마련을 매우 급한 일로 보아야 한다.

서울에 큰 제작소를 두고 기술자를 많이 모아 밤낮없이 화포를 만들게 할 수도 있다.

수천 문, 가능하다면 만 문가량을 만들어 여러 지역에 나누어 주어야 한다.

화약도 지방에서 필요한 만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쟁 전 군기시에는 화약이 이만 칠천 근이나 있었다

몇 해 전 군기시에는 화약 이만 칠천 근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때 일본 침략을 걱정한 사람 가운데에는 그 화약 가운데 이만 근 정도를 서울에 두고 나머지는 남쪽 두 도에 보내 해안 방어에 쓰자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울의 화약을 함부로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실제 남쪽으로 보낸 것은 겨우 수십 근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정작 적이 왔을 때 바닷가에는 화약 한두 근조차 없었다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 뒤 서울에 쌓아 놓았던 화약은 대부분 소모되었다.

정작 일본군을 처음 막아야 했던 바닷가 방어 지역에는 화약 한두 근조차 없는 곳이 있었다.

싸우고 싶어도 무엇으로 싸울 수 있었겠는가.

지나간 일을 돌아보면 너무나 한탄스럽다.


민간에서 화약 만드는 일을 지나치게 막았던 것도 잘못이었다

화약을 개인이 만드는 것을 지나치게 금지한 일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화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널리 가르쳐야 한다.

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 가운데에도 화포에 익숙해질 사람은 있다.

그들을 따로 뽑아 부대로 편성한다.

훈련 방법을 정하고 계속 익히게 한다.

그렇게 했더라면 일본군이 어찌 이처럼 쉽게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나쁜 무기를 들려 군사를 전장으로 보내면 이름난 장수라도 이기기 어렵다

무기가 형편없는데 사람만 전장으로 내보내는 것은 백성을 적의 칼 아래 몰아넣는 것과 같다.

아무리 이름난 장수라도 좋지 않은 무기로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을 이끌고 싸우면 큰 공을 세우기 어렵다.

그런데 일본군이 한양에서 물러난 지 겨우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중앙과 지방의 사람들은 벌써 조금 안심하려 하고 있었다.

전쟁 준비 역시 다시 느슨해지고 있었다.

만약 일본군이 다시 대군을 이끌고 깊이 들어온다면 나라를 수습할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매우 두려웠다.


경상도에는 전쟁과 흉년, 전염병이 겹쳐 백성이 거의 사라졌다

경상도 남쪽 지역은 일본군의 침략에 더해 흉년과 전염병까지 겹쳤다.

백성이 거의 다 죽었다고 할 정도였다.

문경 아래에서 남쪽으로 수백 리를 가는 동안 사람 사는 연기를 거의 볼 수 없는 곳도 있었다.

이미 완전히 비어 버린 지역에서 나중에 군량을 마련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보리와 밀이 아직 백성의 손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빨리 사들여야 한다.


보리와 밀을 만 석가량 모을 수 있다면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잘 모집한다면 만 석가량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게 모이더라도 수천 석은 가능할 것이다.

그 곡식으로 군대를 먹인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다.

포루를 만들거나 성을 쌓는 사람들의 식량으로도 사용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별도의 장계로도 올렸다.

조정에서 빨리 시행해 주기를 바랐다.


곡식을 낸 사람에게 줄 상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곡식을 내는 사람에게 상으로 줄 임명장을 넉넉하게 마련해 주면 내가 종사관을 보내 직접 곡식을 모집하게 할 수 있다.

적절한 값을 주고 상까지 더하면 백성을 억지로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곡식을 구할 수 있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뒤에는 아무리 모집하고 싶어도 민간에 곡식 자체가 남지 않는다.


지금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좋은 수령을 골라야 한다

전쟁 이후 백성의 고통이 지금처럼 심한 때가 없었다.

각종 세금과 부역, 굶주림으로 겪는 고통은 차마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며 편안해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결국 백성의 마음을 얻느냐 잃느냐에 달려 있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하늘의 뜻도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이것은 틀림없는 이치다.

그러므로 지금 수령을 임명할 때에는 평상시보다 더욱 신중해야 한다.


재능과 공이 있는 사람은 등용하고 탐욕스럽고 잔인한 관리는 골라내야 한다

능력이 있고 실제 공을 세운 사람은 그 재능에 맞추어 일을 맡겨야 한다.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사람은 차츰 골라내 없애야 한다.

감사와 부사, 지방을 오가는 관리에게도 나라가 백성을 걱정하는 뜻을 널리 알리게 해야 한다.

백성의 병과 상처를 자기 몸의 상처처럼 생각하고 보살피게 한다.

사방의 백성이 나라의 은혜를 느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여기게 해야 한다.

그러면 비록 일이 힘들더라도 쉽게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지방으로 오가는 관리들까지 백성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

최근에는 수령만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관리와 사신도 너무 많았다.

그들이 역참마다 말과 음식, 숙소를 요구했다.

가뜩이나 지친 백성은 더 큰 부담을 지게 되었다.

사람이 특별히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민심이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이런 폐단도 거듭 금지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줄여 주어야 길가의 고을이 살아날 수 있다.


양주·수원·광주·이천·강화 같은 큰 고을은 수도의 팔다리와 같다

내가 보기에 큰 고을을 설치한 것은 단순히 행정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 도의 크고 작은 형세를 서로 연결하여 바깥을 막고 안을 지키게 하려는 깊은 뜻이 있다.

경기도를 보면 양주와 수원, 광주, 이천, 강화 같은 지역은 수도의 팔다리와 같다.

이런 고을에는 특별히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수령으로 보내야 한다.

큰 나라에서 수도 주변의 중요한 지역에 특히 뛰어난 관리를 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천의 수령 한 사람이 백성을 모아 일본군의 진입을 막은 사례

전쟁 중 이천에서는 수령이 백성을 잘 모으고 민병을 조직해 일본군을 막았다.

그 때문에 일본군도 이천 안으로 쉽게 깊이 들어오지 못했다.

수령 한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하면 한 고을의 형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일에서 알 수 있다.

지금 이천은 남쪽으로 오가는 중요한 길목이므로 임무가 더욱 중요하다.

반드시 좋은 사람을 골라야 한다.


광주와 주변 고을이 다시 살아나면 수도 방어에도 큰 힘이 된다

광주 역시 수도 남쪽의 매우 중요한 곳이다.

반드시 특별히 좋은 사람을 수령으로 삼아야 한다.

광주와 이천 등 몇몇 중요한 고을이 백성을 다시 모으고 차츰 회복된다면 훗날 수도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원칙은 경기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다른 도에서도 형세가 중요한 고을은 모두 수령을 특별히 골라야 한다.


충주는 나라의 중심 길목이므로 다른 고을보다 더욱 중요하다

충주는 나라의 중심부에서 중요한 길목을 막고 있다.

충주를 잃으면 그 아래 낙동강 유역의 넓은 지역이 적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그 중요성은 다른 보통 고을과 비교할 수 없다.

현재 수령이 실제로 어떻게 고을을 다스리고 있는지는 내가 아직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면 직접 보고 다시 판단하려 했다.

다만 이런 중요한 고을의 수령을 임명할 때마다 함부로 사람을 바꾸거나 적임자가 아닌 사람을 보내지 않도록 미리 아뢰는 것이다.


병든 몸으로 중책을 계속 맡을 수 없다고 다시 청하다

나는 본래 부족한 사람인데 오랫동안 나라의 중대한 일을 맡았다.

임금을 따라 피란길을 다니면서도 나라에 보탠 것이 한 치도 없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심한 병을 앓아 목숨이 실처럼 위태로운 지경까지 갔다.

여러 차례 중책에서 물러나게 해 달라고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병이 조금이라도 나으면 몸을 부축해서라도 남쪽으로 내려가 직접 여러 일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재주와 힘으로 나라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다.

병중에도 한두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속 아뢰었다.

내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말하는 죄가 두려울 뿐이다.


군사를 모집하고 훈련하는 방안을 올리면서 다시 교체를 청하다

도원수 김명원이 보내 온 보고를 보니 경상도의 형세가 너무나 위급했다.

일본군의 움직임은 갈수록 사나워졌다.

나는 중병에 걸린 상태에서도 밤낮으로 걱정했지만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경상도 좌우 지역은 여러 해 동안 전쟁을 겪었다.

들판은 황폐했고 백성은 많이 죽었다.

곳곳에 백골이 널려 있었다.

특히 오른쪽 지역에서는 병사와 감사가 잇따라 교체되어 백성의 마음을 붙잡아 줄 중심도 부족했다.

방어 준비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명나라 장수도 남쪽의 위기를 걱정하다

어느 날 명나라 장수 한 사람이 내 병문안을 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쪽의 상황을 매우 걱정했다.

명나라 군무를 맡은 높은 사람들 가운데에도 지금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일본군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는데 명나라 대군이 철수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대군 지휘관은 기병 일부를 조선에 남겨 방어하게 하는 방안도 생각한 듯했다.


명나라 기병을 남겨 두더라도 조선이 먹일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명나라 기병이 남아 있으면 그들이 탈 말과 군사가 먹을 곡식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

우리나라 재정은 이미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남쪽 지방 출신 명나라 장수들 가운데에는 계속 조선에 남고 싶어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병사들 역시 집을 떠난 지 오래되어 모두 돌아가고 싶어 했다.

새로 온 한 명나라 장수는 일본군과 싸우는 데 익숙한 사람인 듯했지만 실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므로 조정이 충분히 의논하고 명나라 지휘부에도 요청해야 했다.


명나라 남쪽 지방 군사의 훈련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명나라 남쪽 지방 출신 군사는 일본군과 싸우는 방법에 비교적 익숙했다.

그들이 쓰는 훈련과 무기 사용법을 우리 군사가 배운다면 앞으로 오래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이것은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정에서 충분히 따져 빨리 좋은 방법을 정해야 한다.


평안도 군사 백 명을 보내 훈련시키려 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다

앞서 나는 명나라 장수에게 배우게 하려고 평안도 군사 백 명을 골라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군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생활을 보장하지 않은 채 사람만 붙잡아 두는 방식으로는 훈련을 오래 이어 갈 수 없었다.

군사를 제대로 만들려면 사람을 뽑는 것과 함께 먹고 지낼 방법도 마련해야 했다.


한양에서 화포 장인 십여 명과 젊은 장정 삼십여 명을 모집하다

최근 나는 명나라 장수와 의논하여 한양에서 화포를 만들고 다룰 줄 아는 장인 십여 명을 모집했다.

또 젊고 건강하여 훈련할 만한 사람 삼십여 명을 뽑았다.

우선 이들을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 새로운 훈련법을 배우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반드시 군량을 지급해야 했다.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곧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훈련할 사람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므로 좌우 부대를 만들자고 하다

처음에는 수십 명에 불과하더라도 이들이 먹을 것을 지급받으며 훈련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지원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조정에서 미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능력 있는 장수 두 사람을 따로 뽑는다.

한 사람은 왼쪽 부대를 맡기고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 부대를 맡긴다.

밤낮으로 병사들을 훈련하게 한다.

지방에서도 날쌔고 용감한 사람을 계속 골라 보내게 한다.

차례로 훈련시키면 앞서 내가 건의했던 새로운 군사 조직도 실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병세는 조금 나아졌지만 원기가 완전히 무너져 나라 일을 맡기 어렵다고 하다

내 병은 큰 고비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원기가 완전히 쇠했다.

방 안에서도 누워 있다가 힘들게 몸을 일으켜야 했다.

정신과 생각도 예전처럼 또렷하지 못했다.

이런 몸으로 군사와 나라의 중대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라의 형세를 생각하면 병든 몸을 일으켜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기력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일을 그르치면 죄를 피할 길이 없다.

조정에서 하루빨리 다른 대신으로 나를 교체하여 동쪽과 남쪽의 군사 문제를 맡기고 위급한 나라 일을 제대로 처리하게 해 달라고 다시 청했다.

열두째 권 끝

 

 

 

징비록 열세째 권

병을 앓은 뒤 남쪽으로 내려가며 올린 보고

저는 오랫동안 병을 앓은 뒤라 원기가 완전히 쇠했습니다.

문밖에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달 열여드렛날에야 겨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열아흐렛날에는 여러 신하와 함께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나라의 큰 책임을 맡고 있으면서 아직 그 직책에서 물러나지도 못했습니다.

왜군을 토벌하는 일이 한창인데 병 때문에 도원수와 함께 처음부터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셈이 되었습니다.

몸 상태가 이처럼 좋지 않았지만 남쪽의 사정은 날마다 더 급해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더 머물며 편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여송 제독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제독은 통역관을 통해 제게 말했습니다.

“모든 일은 형편을 잘 헤아려서 처리하시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지는 마시오.”

한편 제독이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의정이 그를 찾아가 조금만 더 머물러 달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제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조선 안에 적이 하나도 남지 않은 뒤에야 나는 돌아가겠다.”

저는 또 유정의 군대가 그달 열사흘날 남쪽으로 떠났으며 다른 명나라 장수들도 군사를 이끌고 함께 내려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일 명나라 군대와 우리 군대가 힘을 합치고, 육군과 수군이 함께 전진한다면 남해안에 남아 있는 왜군을 바다로 몰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에게 조금이라도 원한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양쪽 군대가 오랫동안 서로 맞서 있기만 했고 아직 뚜렷한 결과가 없었습니다.

저는 결국 병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남쪽으로 내려가 직접 형세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이여송과 관련된 다른 일은 우의정이 따로 자세히 보고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경상도의 형세가 매우 위급하다는 보고

저는 이틀 전에 보고서를 올린 뒤 바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날 밤을 꼬박 달려 다음 날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유정 총병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경상도의 사정이 얼마나 위급한지를 자세히 말하고 즉시 군사를 보내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그러나 유정은 자신이 마음대로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을 보였습니다.

곧바로 보고서를 만들어 명나라 경략과 이여송 제독에게 올려 허락을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과 태도를 살펴보니 위에서 회답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형편에서는 회답만 기다리고 있다가 일을 돌이킬 수 없게 될까 걱정되었습니다.


함안과 진주를 향해 왜군이 몰려오다

경상우병사 황진이 열엿샛날 작성한 급한 보고가 도착했습니다.

창원 쪽의 왜군과 김해 등지의 왜군이 서로 합세하여 함안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함안성은 해자가 얕았습니다.

방어 시설도 튼튼하지 못했습니다.

각 장수가 가진 군량도 며칠을 버틸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왜군이 성 밖의 높은 산을 차지하고 여러 날 버티며 공격한다면 끝까지 성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이에 도원수 권율과 여러 책임자가 의논했습니다.

전라도 병사와 여러 방어장, 경상도 장수들을 움직여 함께 적을 막게 했습니다.

여러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함안과 진주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왜군의 선봉이 이미 함안으로 들어오다

뒤이어 더욱 급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창원 일대에서 나온 왜군의 선봉이 보름날 무렵 이미 함안 쪽으로 넘어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열엿샛날에는 경기도 쪽에서 내려간 조방장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날 함안으로 들어온 왜군이 성 밖으로 다시 나와 어느 고을에 모여 있는데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곳은 진주에서 불과 사십 리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분명 진주를 공격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였습니다.

여러 지역의 왜군이 힘을 합쳐 한꺼번에 밀고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진주성 안의 장수들은 서로 약속을 정하고 성을 지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라도 병사와 경기도에서 내려간 조방장은 별도의 명령에 따라 군사를 거느리고 의령 쪽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이처럼 적의 형세가 매우 급하다는 사정을 명나라 장수에게도 곧 알려 빨리 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의령과 낙동강 일대도 동시에 위험해지다

또 다른 보고를 받았습니다.

보름날 함안에 있던 왜군이 병력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사방으로 나왔습니다.

강 위와 아래의 여러 지역에도 왜군이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경상좌병사 고언백에게 알렸습니다.

성주 목사 곽재우와 군사를 합쳐 중요한 길을 막게 했습니다.

의병도 함께 움직이게 했습니다.

좌병사가 거느린 군사 역시 필요한 곳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의령 부근에서 왜군과 싸우다

고언백의 보고에는 의령 부근에서 선봉군 쉰여 명을 내보내 적과 싸웠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곽재우의 군사와 힘을 합쳐 왜군을 뒤쫓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군의 세력은 매우 컸습니다.

사방에 가득 퍼져 있었습니다.

진주와 그 부근에서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우리 장수는 몇 사람뿐이었고 그들이 가진 병력을 모두 합쳐도 육백 명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까지 있었습니다.

그 정도 병력으로 사방에서 몰려오는 왜군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좌도의 여러 장수에게도 서둘러 달려와 돕게 해야 했습니다.

명나라 군대도 반드시 원군을 보내 주어야 했습니다.


영산 부근에서 왜군을 추격한 일

다른 장수들의 보고도 잇따라 도착했습니다.

영산 지역에 왜군 수백 명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한 장수가 스무 명 남짓한 군사만 거느리고 뜻밖에 뒤쫓아가 많은 적을 사살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산에 남아 있던 왜군이 다시 되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따라 바로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관에게 정예병을 뽑아 맡기고 인근 수령의 군사와 힘을 합치게 했습니다.

적이 돌아오는 길을 막도록 했습니다.

다른 장수들도 정예병을 거느리고 영산 방면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기회를 보아 적을 공격하도록 한 것입니다.


진주에 들어간 군사는 적지 않았지만 오래 버틸 군량이 없었다

함안에서 물러난 여러 장수가 진주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성 안에 들어간 군사의 수만 보면 적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성을 지킬 힘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군량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식량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왜군이 성을 포위한 채 전투를 오래 끌면 버티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령에 있는 우리 군사도 실제로 숫자가 많지 않다면 그쪽에도 원군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경상우도의 여러 중요한 길목 역시 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한 군대를 이쪽에 보내면 다른 쪽이 비고, 저쪽을 지키면 이쪽이 허술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른쪽 지역의 방어도 함께 살펴야 했다

도 안의 다른 장수들에게도 빨리 군사를 이끌고 오게 해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성주 쪽으로 와 있었습니다.

기병과 무사를 급히 뽑아 필요한 곳으로 보내게 했습니다.

우도 감사와 서로 연락해 적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계속 살피게 했습니다.

이미 운반해 놓은 군량 외에는 새로 내놓을 식량도 거의 없었습니다.

함안과 진주 부근의 사정은 따로 사람을 보내 계속 살피게 했습니다.

왜군의 기세가 너무 강해 어느 곳으로 갑자기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 병력은 외로웠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새로 끌어올 군사가 없었습니다.

결국 명나라 장수의 구원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 쪽에도 여러 제약이 있어 움직임이 늦었습니다.

더욱 답답했습니다.

저는 잇따라 두 차례 급한 문서를 유정에게 보내 원군을 청했습니다.

각지의 우리 장수에게도 명나라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목숨을 걸고 버티게 했습니다.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부터 경상좌도의 병력이 매우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울을 떠난 뒤에는 도원수 김명원이 경주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곳으로 가서 김명원과 의논한 뒤 좌도의 일을 살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상도에 들어온 뒤 진주의 일이 다급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방향을 바꾸어 우도로 향했습니다.


전쟁 뒤의 길에는 사람도 없고 연락도 끊겼다

큰 병을 치른 뒤라 몸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도 하루 종일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길에서 사정을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소식이 오가는 길도 끊겼습니다.

성주 등지에서는 저와 일행이 먹을 식량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길에서 진주 함락 소식을 처음 듣다

고령 쪽으로 향하던 중 남쪽에서 올라오는 사람 한 명을 만났습니다.

지방 책임자가 보낸 문서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로 전해 준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진주성은 지난달 스무아흐렛날 이미 왜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고 비통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고령에 도착한 뒤에도 아직 정식 보고문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길에서 들은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진주가 함락되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습니다.


비가 내리던 날 적이 성 안으로 난입했다는 소식

전해 들은 바로는 왜군이 진주성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가 번번이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스무아흐렛날 비가 내리자 그 틈을 타 왜군 수천 명이 갑자기 밀고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우리 군대는 이를 끝까지 막지 못했습니다.

성 안의 장수 가운데 누가 죽었고 누가 살아났는지 당시에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왜군이 초계까지 들어오자 고령도 위험해지다

독전관과 도원수의 군관 박종남 등이 군사를 모아 고령과 초계 부근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군이 바로 전날 초계까지 들어왔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곳은 제가 있는 곳에서 수십 리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크게 흔들렸습니다.

고령과 그 주변을 지킬 방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경상우도 전체가 이미 텅 빈 땅처럼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길에 쌓인 군량마저 왜군에게 빼앗길 처지였다

그 고을에는 전라도에서 운반해 온 군량도 길 밖에 쌓여 있었습니다.

왜군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모두 빼앗길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시로 사람을 정해 그 곡식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그 무렵 유정의 군대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와 고을 남쪽 산 위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본대가 정말 이곳까지 와서 주둔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왜군은 명나라 군대를 묶어 두면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왜군이 오랫동안 갖가지 교활한 계책으로 명나라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어 놓고 있는 듯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군사도 부족했습니다.

의지할 만한 물자도 없었습니다.

남쪽의 중요한 방어 거점인 진주 한 고을에 여러 정예병이 모여 있었는데 그마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좌도와 우도는 지역이 매우 넓었습니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문서를 보내고 답을 받는 데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급한 일이 생겨도 바로 대처하기 어려웠습니다.


진주가 무너지면서 경상도의 지휘 체계도 거의 끊어지다

경주는 특히 비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도원수 김명원은 다시 교체되었습니다.

새 도원수 권율은 아직 전라도 쪽에 있었습니다.

도와 도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급한 명령을 바로 내릴 수도 없었습니다.

전라도 여러 고을의 수령들도 명나라 군대에 군량과 물자를 대느라 자기 고을을 떠나 있었습니다.

길과 고을이 곳곳에서 비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걱정이 끝이 없었습니다.


진주성이 함락된 데에는 우리 쪽의 잘못도 있었다

진주성이 함락된 가장 직접적인 까닭은 왜군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대가 서로 호응하지 못한 잘못 또한 매우 컸습니다.

저는 그 잘못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첫째, 진주 목사가 미리 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 진주 목사 서예원은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는 차원으로 다른 곳에 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명령을 보냈습니다.

“진주는 아침저녁으로 언제 공격받을지 알 수 없는 곳이다. 고을을 책임진 사람이 어떻게 멀리 나가 있을 수 있는가. 빨리 돌아가라.”

그러나 그는 곧바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적이 이미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야 겨우 진주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문에 방어 준비를 미리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잘못입니다.


둘째, 여러 장수가 모였어도 전체를 지휘하는 한 사람이 없었다

진주성 안에는 여러 장수가 각자 자기가 거느린 군사를 데리고 들어가 있었습니다.

군사의 숫자는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장수를 한꺼번에 지휘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각자가 자기 의견을 주장했습니다.

전체 군대가 하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서로 다른 판단이 뒤섞였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잘못입니다.


셋째, 적의 규모도 살피지 않고 함안까지 가볍게 나갔다

여러 장수는 처음에 적의 세력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군사를 이끌고 함안까지 나가 진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왜군의 대군이 몰려오자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진을 버리고 돌아왔습니다.

왜군은 이를 보고 우리 군대가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적의 기세만 더욱 높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잘못입니다.


넷째, 성 밖의 군사들이 왜군의 뒤를 제대로 흔들지 않았다

성 밖의 우리 군대가 진을 지키며 왜군의 뒤를 계속 위협했다면 적도 진주성을 사방에서 한꺼번에 공격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장수들은 물러나 버렸습니다.

왜군의 육군과 수군이 모두 진주로 모여들었습니다.

진주가 완전히 포위되기 전부터 주변 여러 고을의 적군도 한꺼번에 모였습니다.

선산과 단성, 진해와 고성 등 여러 방면의 왜군까지 합쳐져 원군이 들어갈 길이 막혔습니다.


성 밖의 장수들은 최소한 적의 뒤에서 의심이라도 일으켰어야 했다

설령 실제로 성 아래까지 가서 싸우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은 있었습니다.

밖에 있던 장수들은 낮에는 의병처럼 움직이며 적을 위협하고, 밤에는 진을 옮겨 다니면서라도 적의 뒤를 불안하게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만 했어도 왜군은 모든 병력을 성 공격에 쏟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장수들은 멀리 산으로 물러나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습니다.


진주성 사람들은 날마다 원군을 기다렸다

진주성 안의 사람들은 날마다 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손을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내 단 한 부대도 성을 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성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참혹하게 죽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차마 들을 수조차 없습니다.


진주가 무너지자 바깥의 장수들까지 흩어졌다

여러 장수는 진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 흩어져 물러났습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군사들은 지나가는 지역의 창고 곡식을 사용했고, 부대는 다시 흩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군대의 처신은 특히 통탄스러웠습니다.


우도의 장수까지 모두 전라도로 보내서는 안 되었다

좌도에서 온 독전관과 조방장, 별장 등 몇몇 장수는 도원수의 명령에 따라 전라도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경상우도에는 이미 병사도 없었습니다.

다른 장수도 하나 남아 있지 않다시피 했습니다.

이 사람들까지 모두 전라도로 떠나면 경상우도 전체를 적에게 그대로 맡겨 버리는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장수를 고령에 그대로 남겼습니다.

그곳을 지키며 사태를 살피게 했습니다.

또 명나라 장수의 지휘를 받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정하게 했습니다.


유정의 군대가 고령에 왔지만 식량 문제가 다시 생기다

접반관이 보내 온 보고에 따르면 유정 총병이 이미 군대를 거느리고 고령에 와 있었습니다.

선봉군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정은 전라도의 상황이 급하다는 말을 듣고 그쪽을 구하러 빨리 진격하고 싶다는 뜻도 보였다고 합니다.

다른 명나라 지휘관도 군대를 이끌고 고령 방면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대군이 도착해도 먹일 곡식이 없었습니다.


경상도의 군량은 사실상 전라도 곡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경상도 큰길의 여러 역참에 필요한 군량을 경상도 자체에서 마련하기 어려웠습니다.

간신히 전라도에서 가져온 곡식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각지로 수송하는 일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 대군도 여러 고을에 흩어져 이곳저곳 계속 옮겨 다녔습니다.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가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람과 말의 힘이 거의 다했습니다.


진주가 무너진 뒤 군량을 가져올 길도 크게 줄었다

진주가 무너진 뒤에는 앞으로 군량을 어디에서 얻을 것인지 더욱 막막해졌습니다.

전라도에서 군량이 들어오는 길도 이제 거창을 통하는 한 길 정도에 의지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만일 그 길마저 왜군에게 뚫리면 전라도 군량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도를 도울 일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백 가지 계책을 생각해 보아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군량 책임자인 이성중도 중병에 빠졌다

호조 판서 이성중은 병이 매우 위중했습니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 채 누워 있었습니다.

군량을 옮기고 배치하는 일을 전체적으로 처리할 책임자가 사실상 없는 상태였습니다.

일부 관리가 여러 지역에 나뉘어 돌아다니며 사람을 모으고 곡식을 옮겼지만 물자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동해안에도 왜선이 많이 나타났다

좌도 감사의 급한 보고를 보니 동해안에도 많은 왜선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배들이 다른 곳에 있던 왜군이 옮겨 온 것인지, 새로 바다를 건너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혹시 왜군이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움직이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김명원은 이미 도원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권율이 대신 도원수가 되었지만 그때에도 아직 전라도에 있었습니다.

길이 너무 멀어 급한 상황을 직접 지휘할 수 없었습니다.


경상우도에서 온전히 남은 고을이 거의 없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상우도에서 그나마 온전한 곳은 진주, 거창, 산음, 안음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진주와 산음까지 왜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남은 곳은 거창과 안음 정도였습니다.

그곳에는 아직 적이 직접 들어오지 않았지만 백성과 창고는 이미 텅 비어 있었습니다.

명령을 내려도 시행할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늙고 병든 데다가 큰 병을 막 치른 뒤라 정신과 기력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손을 묶고 탄식할 뿐 아무 계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정에서 서둘러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 무너져 가는 형세를 구해 주기를 바랍니다.


영남의 위급한 사정을 명나라 조정에 직접 알려야 한다

왜군이 처음 서울에서 물러날 때 저는 이미 걱정했습니다.

그들이 경상도에 그대로 자리 잡은 뒤 다시 큰 해를 끼칠까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실제로 일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왜군은 화친을 말해 명나라 장수들의 손발을 묶어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동쪽과 서쪽을 마음대로 공격하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진주까지 함락했습니다.

경상우도에는 이제 제대로 지킬 곳도 거의 없습니다.


경주마저 무너지면 영남을 수습할 기반이 사라진다

경주까지 잘못된다면 영남을 다시 일으켜 세울 곳이 없어집니다.

영남을 지키지 못하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가 차례로 적의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 전체의 큰일이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한강을 경계로 나라를 나누려 한다는 소문

심유경이 왜군 진영을 오가기 시작한 뒤로 길에는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말이라 차마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강을 경계로 나라를 나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한강 북쪽은 명나라 쪽에 두고 남쪽은 일본에 넘겨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황당한 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직접 비슷한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다

의병장 한 사람이 소와 술을 마련해 명나라 군사를 위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명나라 총병이 그에게 대략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군과 심유경이 일을 벌여 한강 북쪽은 중국 쪽에 두고 남쪽은 일본의 땅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천자께서 어찌 그런 일을 허락하시겠는가. 만일 그것을 허락한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 의병장이 직접 들은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길에 떠돌던 소문도 완전히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통탄스러웠습니다.


왜군은 시간을 끌어 명나라 군대와 조선을 함께 지치게 하려는 듯하다

제 생각은 짧지만 왜군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교활한 말과 꾀로 명나라 장수를 붙잡아 두려 합니다.

명나라 군대는 조선에서 거의 일 년이나 머물렀습니다.

군사는 지쳤습니다.

군량도 떨어져 갑니다.

이대로 계속되면 언젠가는 군대가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도 팔도의 힘을 모두 짜내 명나라 군대를 먹이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백성의 피와 땀을 다 짜내고 팔도의 재물을 거의 다 써 가며 명나라 대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힘 역시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군은 오래 버티면서 양쪽이 모두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 뒤 우리가 가장 약해졌을 때 빈틈을 타 다시 공격하려는 것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명나라 현지 지휘관과만 의논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의 명나라 경략과 제독에게 아무리 말해도 쉽게 의견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의 사정을 빠짐없이 정리해 명나라 중앙 조정에 직접 알려야 합니다.

실제 상황이 밖에서 가려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왜군이 남쪽을 차지하면 명나라에도 위험이 된다

만일 왜군이 남쪽 지방을 완전히 장악하면 세력을 넓혀 서해 쪽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육로에서도 더 깊이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단지 조선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명나라에도 적지 않은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분명하게 적어 명나라 조정에 보고해야 합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강력하게 구원을 청하기 바랍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위급함을 유정에게 설명하다

이달 초아흐레 유정 총병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찾아갔습니다.

유정은 비교적 차분한 태도로 저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왜군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화친을 내세우는 논의 때문에 명나라 군대가 적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고, 그 사이 왜군이 제멋대로 움직여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구해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습니다.


유정도 군령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유정은 대략 이렇게 답했습니다.

“군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니 나도 할 말이 없다. 들으니 적이 이미 전라도 쪽으로 들어간 듯하다. 경상도에서 그것을 막지 못하면 앞으로 걱정이 끝이 없을 것이다.

나도 군사를 보내 구하고 싶다. 어느 장수를 거창에 남겨 두고 다른 군사를 고령 쪽에 두어 지키게 한 뒤 움직일 생각도 있다. 그러나 명령이 내려오지 않으니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만일 정말 전라도가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면 너희의 말대로 곧 구원하겠다.”


유정은 길에 관군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그는 또 말했습니다.

“내가 이곳까지 오는 길에 조선의 관리도 보이지 않고 군사도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가?”

저는 대답했습니다.

“우리 군사는 원래 함안 등 여러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주가 무너졌다는 말을 듣고 흩어져 전라도 쪽으로 물러난 부대가 많습니다.

나중에 임금께서 군율에 따라 죄를 물으실 일입니다. 다만 지금은 사정이 너무 위급합니다. 부디 빨리 구원해 주십시오.”

유정은 제 말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자신이 마음대로 군사를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거듭 말했습니다.


직접 지도를 만들어 유정에게 보내다

유정은 전라도의 적정이 실제로 어떠한지 정확히 알아오면 곧 군사를 움직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숙소로 돌아와 직접 지도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각 지역의 위치와 거리를 표시했습니다.

어느 길이 어느 곳으로 통하는지도 그렸습니다.

그 지도를 글과 함께 유정에게 보냈습니다.

유정은 그것을 보고서도 여전히 여러 장수가 자기 명령을 따르지 않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러나 곧 정찰병을 보내 적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조금은 싸울 뜻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그곳에 며칠 더 머물렀습니다.


진주성 함락 뒤 남은 우리 군대의 형편

조방장과 별장 등은 지친 군사 오륙백 명 정도를 거느리고 명나라 오유충의 군대와 함께 초계 쪽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장수들은 진주가 무너진 뒤 거창이나 함양 등지로 물러났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진주성 함락 이후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의 백성이 짐을 싸 등에 지고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전라도와의 연락까지 끊겼다

전라도 쪽의 소식도 완전히 끊겼습니다.

겨우 도원수 권율이 보낸 문서를 하나 받아 보았습니다.

그 문서를 보면 왜군 일부가 이미 전라도 쪽으로 들어가 곡성과 남원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를 보면 왜군이 전라도를 공격하려는 것은 거의 분명해 보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걱정스러웠습니다.


왜군은 합천·삼가·의령까지 계속 약탈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왜군은 여러 곳에 다리를 놓고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숫자도 매우 많았습니다.

날마다 무리를 나누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합천과 삼가, 의령 일대를 불태우고 약탈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과도 불과 사십 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망을 보던 군사가 계속 그 상황을 알려 왔습니다.


유정은 움직이려 하다가도 적이 물러났다는 말에 다시 멈추었다

이런 보고를 들은 유정은 군대를 움직일 듯했습니다.

그러나 왜군이 잠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다시 행동을 멈추곤 했습니다.

저는 가까운 지방의 책임자와 접반관 등을 미리 대기시켰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출발하면 즉시 따라 움직이며 필요한 일을 처리하게 했습니다.


명나라 군대를 먹이는 부담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모두 고갈시키고 있었다

경상도는 이미 곳곳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명나라 군대에 줄 군량은 사실상 전라도의 남은 고을에서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전에 가져온 쌀과 콩도 거의 다 써 가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후속 군량을 가져오는 길마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전라도 여러 고을에서 온 운송 인부들도 고향에 왜군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 흔들렸습니다.

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도 없었습니다.


명나라 군대는 여러 곳에 흩어져 계속 군량을 요구했다

초계와 합천에는 오유충 쪽 군사가 있었습니다.

거창 근처에는 유정의 일부 군사가 있었습니다.

대구와 큰길 곳곳에도 크고 작은 명나라 부대가 오갔습니다.

어떤 곳에는 많은 군사가 있었고 어떤 곳에는 적은 군사가 머물렀습니다.

이들이 지나가는 고을마다 그 숫자에 맞추어 곡식과 말먹이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사람은 지쳤고 말도 지쳤습니다.

지방의 힘은 모두 바닥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성중이 세상을 떠나 군량 총괄 책임자도 없어지다

경상도 감사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호조 판서 이성중이 이달 초이렛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운송을 감독하는 어사는 한 명 있었지만 군량 조달 전체를 총괄할 대신은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이렇게 한꺼번에 막혀 있었습니다.

답답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조정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얼마나 위급한지 빨리 살펴야 합니다.

명나라 경략과 제독에게도 계속 문서를 보내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미 늦었더라도 만에 하나 살릴 기회가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이성중을 대신해 군량을 총괄할 사람도 즉시 임명해 보내야 합니다.

군대가 먹을 것을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진주성 함락의 전말을 자세히 조사한 보고

방어사 김응서가 보고한 내용이 있습니다.

또 왜군에게 붙잡혔다가 탈출해 돌아온 사람의 진술을 조사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진술을 보면 그는 진주성을 공격할 당시 높은 곳의 왜군 진영에 있어 전투 과정을 직접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왜군은 진주성에서 약 오 리 떨어진 곳을 완전히 에워쌌다

왜군은 진주성에서 약 오 리 떨어진 동쪽, 서쪽, 북쪽에 진을 쳤습니다.

남쪽의 강 건너에도 수많은 진영을 설치했습니다.

진주성을 사방에서 둘러싼 것입니다.


첫날, 왜군이 먼저 총을 쏘며 성벽으로 다가왔다

전투가 벌어진 날 왜군이 먼저 총을 쏘았습니다.

성 안에서도 총과 활로 응사했습니다.

왜군이 성벽 가까이 다가오자 성 안 사람들이 빗발치듯 화살을 쏘았습니다.

왜군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결국 적은 한차례 물러났습니다.

그날 밤 삼경 무렵에도 왜군은 계속 조총을 쏘며 크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성 안 사람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셋째 날, 왜군이 흙산 네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

셋째 날 왜군은 소나무와 여러 나무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흙과 돌을 담아 성 밖 약 삼십 보쯤 되는 곳에 인공 언덕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흙산을 네 곳에 세웠습니다.

그 위에는 다시 네 층으로 된 높은 누대를 만들었습니다.

높이는 몇 길이나 되어 성 안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 위에서 총을 쏘기 위한 시설이었습니다.


흙산을 쌓는 왜군을 성 안에서 계속 공격했다

왜군이 흙을 쌓고 누대를 만드는 동안 성 안에서는 끊임없이 활과 총을 쏘았습니다.

왜군 가운데 죽는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적은 죽고 사는 것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앞사람이 죽으면 뒷사람이 나왔습니다.

죽은 사람을 끌어내고 산 사람이 다시 앞으로 나갔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흙산과 높은 누대를 완성했습니다.


왜군은 높은 누대 위에서 계속 조총을 쏘았다

왜군은 완성된 높은 시설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성 안을 향해 끊임없이 총을 쏘았습니다.

그런데도 성 안의 군사와 백성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깃발을 세우고 맞서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엿새째, 성 안에서 진천뢰를 던져 많은 왜군을 죽이다

엿새째가 되자 여러 진영에 있던 왜군이 한곳으로 많이 모였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진천뢰를 세 차례 적진으로 던졌습니다.

왜군은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여럿이 가까이 다가가 모양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순간 진천뢰가 폭발했습니다.

죽은 왜군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왜군은 더 싸우지 못하고 한동안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레째에도 왜군의 피해가 컸다

이레째에도 성 안에서는 총과 화살을 많이 쏘았습니다.

왜군 역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공격이 뜻대로 되지 않자 왜군은 물러날 생각까지 한 듯합니다.

그러나 곧 새로운 계책을 세웠습니다.


왜군이 나무와 널판으로 성벽 밑까지 접근하다

왜군은 하루 동안 많은 나무를 베어 널판을 만들었습니다.

성 동쪽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왜군은 그 나무 위에 올라가 성 안의 상황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그 뒤 널판을 이어 붙여 위를 덮었습니다.

그 아래로 몸을 숨긴 채 조금씩 성벽 밑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성 안에서 날아오는 총탄과 화살을 막으면서 성벽 바로 아래까지 접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열흘째 무렵 성벽 일부가 무너지다

오랫동안 이런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한낮 무렵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곳의 폭은 여러 장정이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높은 나무 위에서 이를 보고 있던 왜군이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진영의 왜군이 일제히 움직였습니다.

말을 탄 자도 있었고 걸어서 달려오는 자도 있었습니다.

모두 한꺼번에 성으로 돌진했습니다.


성 안에서는 총과 활을 모두 쏘며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성 안에서는 가지고 있던 총과 활을 모두 쏘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왜군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밟으면서까지 앞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성 안 사람들의 힘은 점점 떨어졌습니다.

마침내 왜군 일부가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왜군이 성에 들어온 뒤 피비린내 나는 백병전이 벌어지다

왜군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우리 군사와 적군이 서로 뒤엉켰습니다.

피를 흘리며 싸웠습니다.

죽은 사람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성 안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서로 밀리고 밟혀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고 강에 떠내려간 우리나라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성이 무너지자 남녀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진주성이 완전히 함락된 날 왜군은 남자와 여자, 아이를 가리지 않고 마구 죽였습니다.

다음 날에도 살육은 이어졌습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사로잡았다는 진술도 있습니다.

왜군 일부는 진주에 남았습니다.

다른 병력은 주변의 하동과 함양 등지로 나가 며칠씩 불을 지르고 약탈했습니다.


왜군이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문서를 받고 기뻐했다는 포로의 증언

한 포로의 진술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왜군 보병 몇 명이 도장이 찍힌 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 왜군 우두머리가 한곳에 모여 그 문서를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빨리 군사를 돌려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왜군들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왜군 무리가 창원과 김해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포로도 함께 끌려가다가 틈을 보아 자기 고향으로 달아났다고 했습니다.


다른 포로가 전한 왜군의 공성 방식

또 다른 포로의 진술도 있었습니다.

왜군은 진주성 앞의 평평한 곳 여러 곳에 인공 흙산과 높은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올라가 성 안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흙산 주변에는 대나무와 다른 장애물을 세워 성 안에서 쏘는 공격을 막았습니다.

성 안에서는 큰 화살과 총을 쏘았습니다.

운 좋게 목표를 맞히면 적의 방패나 시설을 관통하기도 했지만 쉽게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이종인이 끝까지 성벽을 지키다

장수 이종인은 그날 온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는 밤을 틈타 대나무를 성벽 주변에 빽빽하게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적의 화살과 돌이 쉽게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또 그 틈에서 돌과 여러 무기를 적에게 던졌습니다.


갑옷을 입은 왜군 여러 명이 성벽 아래로 돌진하다

갑옷을 단단히 입은 왜군 십여 명이 갑자기 성벽 아래로 돌진했습니다.

성을 허물려고 한 것입니다.

이종인은 사태가 위급해지자 직접 큰 활을 들었습니다.

높은 사대에서 큰 화살을 쏘았습니다.

한 차례 공격으로 여러 왜군을 꿰뚫어 쓰러뜨렸다는 진술이 있습니다.


황진이 적을 살피다가 총탄을 맞다

충청병사 황진은 처음 성이 포위된 때부터 방어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직접 흙과 돌을 어깨에 지고 나르며 성벽을 보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때 이종인이 왜군 여러 명을 쏘아 죽였다는 말을 듣고 몸을 일으켜 성 밖을 살펴보려 했습니다.

그 순간 적의 총탄에 맞았습니다.

머리 부근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으며 끝내 목숨을 잃었습니다.


왜군이 생가죽을 덮은 공격 수레를 만들다

왜군은 다시 큰 나무로 공격 장비를 만들었습니다.

겉모양은 큰 상자나 틀과 비슷했습니다.

그 바깥을 생소가죽 여러 겹으로 둘렀습니다.

그리고 바퀴 달린 작은 수레 위에 올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안에 몸을 숨기고 성벽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성 안에서는 기름을 부은 장작으로 공격 수레를 불태웠다

왜군이 그 장비를 성 아래까지 밀고 들어오자 성 안에서는 마른 풀과 장작을 모았습니다.

기름을 부어 불을 붙였습니다.

그것을 아래로 던져 적의 장비를 태웠습니다.

왜군은 한동안 성벽 아래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북쪽 성벽을 지키던 일부 군사가 먼저 무너지다

왜군은 계속 성벽의 여러 곳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 한쪽을 지키던 군사들이 먼저 놀라 흔들렸습니다.

결국 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왜군은 이를 보았습니다.

곧 북쪽 성벽으로 몰려갔습니다.

대나무 사다리를 걸고 성벽을 올라왔습니다.


왜군 몇 명이 성벽 위에 오르자 사방의 적군이 한꺼번에 돌입하다

먼저 성벽 위로 올라간 왜군 몇 명이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를 신호로 사방의 왜군이 한꺼번에 성 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성 안의 군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이종인은 다른 곳이 무너진 뒤에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종인은 자기 담당 구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의 방어선이 무너진 뒤에도 계속 활을 쏘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발의 총탄을 맞았습니다.

온몸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마침내 쓰러져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혼란이 너무 심해 확실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황진과 이종인 등의 충절을 포상해야 한다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와 포로들의 진술을 함께 살펴보면 황진과 이종인 등이 끝까지 싸우다 나라를 위해 죽은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들의 충절은 마땅히 특별히 포상해야 합니다.

김천일과 최경회 등도 성이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자 서로 붙잡고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합니다.


진주성 안팎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진주성 안에는 죽은 사람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그 냄새 때문에 수십 리 안에서도 가까이 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관청과 민가는 텅 비었습니다.

성 안의 건물도 대부분 불타거나 무너졌습니다.

왜군이 물러난 뒤라 해도 당장 사람을 다시 모아 예전 모습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진주를 그대로 버릴 수는 없다

진주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목과 같은 요충지입니다.

두 지방을 지키는 중요한 방어 거점입니다.

성 안에 있던 사람이 거의 모두 죽었다고 하더라도 진주를 그대로 버릴 수는 없습니다.

사방의 산골짜기에 숨어 살아남은 백성이 아직 있을 것입니다.

왜군이 물러난 뒤에는 빨리 이들을 불러 모아야 합니다.


진주 주변에는 농사 지을 땅도 많았다

진주 지역은 원래 농사가 잘되고 곡식이 많이 나는 곳입니다.

사람만 다시 모을 수 있다면 회복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토착 도적과 흉악한 무리가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엄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백성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습니다.


당장 보낼 만한 목사가 없어 박종남에게 임시로 맡기다

저는 임시 목사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별장 박종남에게 군사 수십 명을 주어 먼저 진주로 가게 했습니다.

현지를 자세히 살피게 했습니다.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아 타이르게 했습니다.

군사가 백성을 침탈하는 일을 엄하게 금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성을 수습하고 지키는 일을 맡겼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조정에서 소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는 것을 알다

이달 열나흗날 제 군관 전제안이 전라도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는 도원수 권율이 전달한 임금의 명령 내용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맡고 있던 도체찰사의 임무를 거두고 조정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 도의 군사에 대한 권한은 도원수에게 모두 맡긴다는 뜻도 있었습니다.


아무 공도 세우지 못했는데 다시 불러 주시니 부끄러웠다

저는 여러 달 동안 큰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죄는 만 번 죽어도 모자랍니다.

그런 사람을 다시 불러 주신다는 은혜를 입으니 감사하고 부끄러워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에는 아직 임금의 명령이 제게 직접 도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소환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계속 그 지역에 머물며 제 마음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경상도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정식 명령을 받으면 바로 조정으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임금께서 하루빨리 서울로 돌아오시기를 청하다

서울을 되찾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임금께서는 아직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계십니다.

백성들이 임금의 환도를 바라는 마음은 날마다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왜군은 아직 바닷가 여러 곳에 주둔해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도 보이지 않습니다.

동쪽과 남쪽의 형세는 아직 매우 불안합니다.


수천 리 밖에서 문서를 주고받다 보면 나라의 기회를 놓친다

중요한 일을 수천 리 떨어진 곳과 문서로 주고받아 의논하고 있습니다.

문서 한 번이 오가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결정적인 때를 놓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왕실 가족 일부가 사정상 서쪽 지역에 잠시 머무르더라도 임금께서는 하루빨리 서울로 돌아오시는 것이 옳습니다.


임금이 서울에 있어야 동남쪽의 일을 바로 처리할 수 있다

임금께서 서울로 돌아오시면 전국 백성이 오랫동안 기다린 마음에 답할 수 있습니다.

동쪽과 남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훨씬 빨리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큰 계획과 직접 관계된 문제입니다.


한 걸음 앞으로 가면 한 걸음을 얻고, 물러서면 그만큼 잃는다

군사를 움직여 적을 몰아내는 일은 한 걸음 전진하면 한 걸음을 얻는 것입니다.

한 걸음 물러나면 한 걸음을 잃습니다.

예로부터 그러했습니다.

조정에서는 왜군이 서울에서 물러났다는 것만 보고 지금 상황을 잠깐 안정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멀리 내다보아 뒤에 생길 걱정을 막아야 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감히 이런 말씀까지 올립니다.


소환 명령을 받고 올라오다 다시 경상도에 머문 까닭

저는 소환 명령을 받고 북쪽으로 올라오다가 군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경상좌도 감사 한효순의 급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왜군이 울산과 경주를 공격하려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보고가 완전히 사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세로 볼 때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즉시 유정 총병에게 직접 글을 보냈습니다.

군사를 움직여 경주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서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울산과 언양, 양산에 왜군이 가득하다는 추가 보고

그날 한효순에게서 다시 급한 보고가 왔습니다.

왜군의 세력이 매우 강하다고 했습니다.

울산과 언양, 양산 등지에는 왜군이 산과 들에 가득했습니다.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북쪽으로 올라올 위험이 바로 눈앞에 닥친 것처럼 위급했습니다.


경상도 안에는 당장 적을 막을 장수가 거의 없었다

도원수와 순찰사 이하 여러 장수는 모두 경상우도나 전라도 경계 쪽에 가 있었습니다.

빨리 지휘하여 밤낮없이 달려오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도 안에 남아 있는 주요 장수는 경주 부근의 고언백 정도였습니다.

그가 거느린 군사도 수백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밀려오는 대규모 왜군을 그 병력으로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고을의 장정도 거의 남지 않았다

상도의 여러 고을 수령들은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느라 자기 고을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백성과 인부는 모두 지쳐 있었습니다.

전염병까지 겹쳤습니다.

건장한 장정은 거의 죽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도 숨만 붙어 있다고 할 만큼 쇠약했습니다.

군사를 모아 원군으로 보내고 싶어도 사람을 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감사는 제가 조금만 더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한효순이 제가 잠시 더 머물며 여러 장수에게 명령을 내려 달라고 바란 것은 답답한 상황에서 나온 요청이었습니다.

저도 이를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도원수에게 상황을 알렸습니다.

빨리 군사를 정리해 대책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전라도는 너무 멀었습니다.

왜군은 이미 경주에서 수십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왔습니다.

도원수의 군대가 적의 공격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환 명령을 받은 사람이 계속 군사를 지휘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저는 임금의 소환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길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미 제 임무는 거두어진 상태이므로 군사를 계속 지휘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는 것은 더욱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도원수가 경상도에 도착할 때까지만 기다린 뒤 바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유정이 군사를 보내기로 하고 권율도 가까이 도착하다

이 보고를 다 써 놓고 아직 보내기도 전이었습니다.

군관 이유생이 유정에게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가 유정의 답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보내온 글을 보고 적의 형세가 매우 급하다는 것을 알았다. 방비를 엄하게 해야 한다. 이미 두 부대의 군사를 먼저 중요한 곳으로 보냈다. 내일 다시 여러 군사를 그쪽으로 보내겠다.”


유정이 요청을 받아들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군위에 오는 길에 울산과 경주의 상황이 급하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유정에게 군사를 옮겨 구원해 달라고 했는데, 다행히 그가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왜군도 명나라 군대가 움직인다는 소식을 들으면 놀라거나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또 이유생의 말을 들으니 도원수 권율도 이미 가까운 곳까지 도착했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일은 도원수가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머물지 않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하다

저는 소환 명령을 받은 뒤 이미 오랫동안 길에서 지체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몹시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따라서 이제 곧바로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큰 병을 치른 직후 무더위 속에서 돌아다니고 음식과 물도 제때 먹지 못해 다시 병이 생겼습니다.

기운이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조금씩 움직이는 형편입니다.

하루에 얼마만큼 길을 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군위 현감을 그대로 두어 달라고 청하다

제가 군위에 도착했을 때 고을의 품관과 백성 홍축 등 서른여 명이 함께 이름을 적어 글을 올렸습니다.

그들이 말한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군위 현감은 본래 온순하고 백성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라의 일을 받들면서 백성을 돌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뒤에도 고을을 버리지 않았다

전쟁이 난 뒤에도 그는 자기 고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군이 군위를 침범했을 때에는 직접 지휘관을 정하고 군사를 뽑았습니다.

적이 지나갈 만한 길목에 군사를 숨겨 두었습니다.

왜군을 공격해 많은 적을 죽였다고 합니다.


왜군이 물러난 뒤 남은 곡식을 군량과 구휼에 함께 사용했다

왜군이 물러난 뒤에는 관청과 민간에 남아 있는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한쪽은 군량으로 썼습니다.

다른 한쪽은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현감은 직접 구휼 물품을 가지고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른 사람을 살렸습니다.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이 매우 많다고 했습니다.

고을 안의 남자와 여자가 모두 현감을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오랜 전쟁과 전염병 뒤에도 고을의 모습이 조금은 유지된 것은 현감의 공이라고 했다

오랜 전쟁과 전염병을 겪은 뒤인데도 군위가 그나마 어느 정도 고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현감의 힘이 컸다고 했습니다.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고 군량을 마련하는 일이 시작된 뒤에도 다른 곳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사와의 관계 때문에 평상시의 회피 규정에 따라 현감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백성들은 현감이 바뀌면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호소했다

백성들은 말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때 이 현감까지 잃으면 살아남은 백성에게는 다시 살 길이 없습니다.”

저도 이전부터 이 현감이 고을을 잘 다스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번에 백성의 마음과 주변 평가를 살펴보니 그 말이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쟁 중에는 평상시의 회피 규정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군량을 마련하고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는 온갖 일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잘하는 수령을 쉽게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경상도 안에 왜군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평상시의 인사 회피 규정을 지나치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위 현감을 당분간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한 고을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새 수령을 맞고 보내는 폐단도 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병이 심해져 직책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다

사월 이후 큰 병을 앓은 뒤 제 원기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쪽의 형세가 너무 위급해 멀리 떨어져 편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길에서는 경상우도의 일이 급하다는 말을 듣고 밤낮없이 서둘렀습니다.

고령과 초계 사이를 오가기도 했습니다.


쉬지 못하고 무더위 속을 다니면서 병이 더욱 깊어졌다

따로 몸을 돌볼 틈도 없었습니다.

병은 날마다 심해졌습니다.

더운 날씨에 계속 길을 다녔습니다.

음식을 제때 먹지 못했습니다.

물도 가려 마실 수 없었습니다.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형편이 이런데 제가 죽고 사는 문제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병을 핑계 삼지 못했습니다.


임금의 소환 명령을 받고 길을 떠났다가 원주와 충주 사이에서 다시 쓰러지다

소환 명령을 들은 뒤 바로 길을 떠났습니다.

원주로 가는 길에서 선전관이 가지고 온 임금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날은 큰 바람이 불었습니다.

산길은 몹시 험했습니다.

병이 다시 심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충주에 이르렀을 때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다시 길에 나섰다가 길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하루를 쉬고 조금 나아진 듯하여 다시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길을 가던 중 갑자기 병이 크게 도졌습니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길 한복판에 쓰러졌습니다.

한동안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병세는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살은 모두 빠지고 뼈와 가죽만 남은 듯했다

고열도 심했습니다.

저 스스로 생각해도 병이 이미 깊은 곳까지 들어간 듯했습니다.

살은 모두 빠졌습니다.

피부와 뼈가 서로 붙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저를 보는 사람들은 얼굴에 사람 빛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라의 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라의 일은 더욱 위급했습니다.

명나라 오유충과 유정의 군대가 모두 돌아가려 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오래 머물 생각이 없는 듯했습니다.

도 안의 곡식은 이미 고갈되었습니다.

전라도에서 오는 군량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호조 판서 이성중이 죽은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는데도 후임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군량을 옮기고 군사를 먹이는 일이 날마다 허술해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살필 능력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저는 이 지역에 늦게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있었던 모든 일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

지역 사이를 오가려면 며칠씩 걸렸습니다.

그런데 제 병까지 이 정도로 깊어졌으니 직접 살피고 일을 독촉하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군량 때문에 철수한 뒤 왜군이 다시 나오면 막을 수 없다

왜군은 지금도 그대로 주둔하면서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형편은 하루가 다르게 더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만약 명나라 군대가 먹을 것이 없어 철수한 뒤 왜군이 그 빈틈을 타 다시 밀고 나온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고 속이 타들어 갑니다.


일을 처리할 능력 있는 대신을 따로 내려보내 주기를 청하다

저는 조정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지 못하는 사정도 많을 것입니다.

저처럼 쇠약하고 병든 사람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다시 큰일을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조정에서는 다른 대신 가운데 생각이 깊고 큰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즉시 내려보내 주십시오.

밤낮을 가리지 말고 빨리 보내 나라의 일을 구해 주기 바랍니다.


본문이 자료에 실려 있지 않은 몇 편의 보고

이 대목에는 원문 자료에 제목만 남아 있고 본문은 실려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용을 새로 만들어 넣지 않습니다.

죽을 끓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해 달라는 보고

오유충에게 글을 보내 왜군의 형세를 설명한 보고

통역관을 보내 명나라 군대의 군량 지급 상황을 살피고 여러 도에서 거둔 베로 명나라 군사에게 옷을 마련해 주기를 청한 보고

군량 조달을 맡을 대신을 급히 내려보내고 군율 문제도 엄정히 처리해 달라는 보고


군량의 손실과 관리 방법에 관한 보고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군량이 흩어지고 없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폐단이 있습니다.

군량을 제대로 처리하는 데에도 몇 가지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앞으로 군량을 계속 마련하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먼저 군량이 없어지는 까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군량이 운반하는 길에서 사라진다

처음 남쪽의 왜군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전라도의 군량이 큰길을 따라 운반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성주에서 어지러운 백성들이 왜군이 나타났다는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곡식을 운반하던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습니다.

혼란한 틈을 이용해 곡식을 가져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흩어지고 없어진 군량만 삼백 석가량이나 되었습니다.

이 일은 제가 현지에 도착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각 고을에 명령해 당시 없어진 곡식을 다시 조사하고 받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진주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전라도 군량 수송대도 다시 흩어졌다

진주가 함락되자 전라도 쪽의 상황도 급박해졌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때 전라도에서 운반하던 군량 가운데 운봉과 남원, 임실 사이까지 올라온 것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운송 인부들이 싣고 가던 짐을 길가에 버리거나 아예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미 경상도 안으로 들어왔지만 아직 정해진 역참까지 도착하지 못한 군량도 있었습니다.

이 곡식들은 지나가는 곳마다 명나라 군대를 먹이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급한 상황이라 장부조차 정확하게 맞출 수 없었다

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문서와 장부를 정확하게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경상도와 전라도 감사에게 문서를 보내 실제로 흩어지거나 없어진 군량이 얼마인지 다시 조사하게 하고 있습니다.


군량 운송에는 명확한 책임자를 세워야 한다

전라도 각 고을에서 군량을 보낼 때에는 원래 토지와 인구, 동원할 수 있는 사람과 말의 숫자를 계산했습니다.

그에 맞추어 군량을 배정했습니다.

곡식은 감독하는 관리나 실무 담당자에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길에서 오래 머무는 동안 여러 비용이 생겼습니다.

또 왜군이 온다는 거짓 경보만 울려도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러면 곡식도 함께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군량이 운송 도중 사라지는 첫 번째 큰 문제입니다.


앞으로는 고을 수령이나 높은 군관에게 구간별 책임을 맡겨야 한다

앞으로 다시 군량을 운반할 때에는 분명하고 능력 있는 수령이나 지위 있는 군관을 골라 길마다 책임자로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처음 곡식을 넘겨받을 때 수량을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도착 날짜를 미리 정합니다.

경계에 도착하면 다시 점검합니다.

다음 책임자에게 곡식을 직접 넘기게 합니다.

최종 역참에서도 수량을 확인하게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길에서 군량이 마음대로 사라지는 일은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군량이 역참에 도착한 뒤에도 사라진다

전라도 군량이 역참에 도착하면 본래는 곧바로 한곳에 모아 쌓아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경상도에는 창고가 부족합니다.

많은 곡식을 지킬 사람도 없습니다.


곡식을 운반한 말과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둘 수도 없었다

군량 운송에는 말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한 차례 짐을 나른 뒤에는 말과 사람을 빨리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그대로 붙잡아 두면 다시 다음 군량을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결국 군량을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자기 몫을 지켰습니다.

역참에 도착한 순서대로 군대에 날마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기가 운반한 군량을 모두 넘겨준 뒤에야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여러 역참의 관례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곡식이 조금씩 없어졌다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먹을 것이 완전히 떨어진 운송 인부가 군량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몰래 곡식을 사고파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곡식이 줄었습니다.


한두 석이 부족하면 소나 말 같은 재산으로 받아냈다

군량이 한두 석 정도 부족하면 책임자의 재산 가운데 소나 말 등을 처분해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양이 열 석을 넘으면 개인 한 사람에게 모두 물릴 수 없었습니다.

그 군량을 원래 맡았던 고을에서 관계된 사람들에게 나누어 받아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 전부 받아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명나라 군사가 역참에서 정해진 양보다 많은 군량을 요구하기도 했다

유정이나 오유충 같은 주요 장수가 직접 머무는 군영에서는 군사 숫자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군량을 나눠 줄 때 함부로 더 받아 가는 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각 역참의 형편은 달랐습니다.

정식으로 그곳에 주둔하는 군사 외에도 길을 오가는 정찰대와 작은 부대가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명나라 장수의 문서를 내세워 마음대로 곡식을 가져가려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명나라 장수의 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곡식을 요구했습니다.

사람 한 명과 말 한 필뿐인데 열 명 몫에 가까운 양을 달라고 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또 자기들이 큰 됫박을 가져와 마음대로 곡식을 재려고 했습니다.


이를 막으려는 우리 관리가 오히려 매를 맞기도 했다

군량을 나누어 주는 우리 관리가 지나친 요구라고 따지면 명나라 군사들이 그 관리를 채찍질하고 위협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음대로 가져가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한정된 군량으로 끝없는 요구를 어떻게 모두 채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군량이 역참에 도착한 뒤 다시 없어지는 또 하나의 큰 폐단입니다.


명나라 군사의 지나친 군량 사용은 우리 관리 힘만으로 막기 어렵다

우리나라 지방 관원이 저지른 잘못이라면 조사해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들이 지나치게 쓰는 문제는 우리가 마음대로 바로잡기 어렵습니다.

경략과 제독 같은 높은 명나라 장수의 휘하에서는 유정이나 오유충조차 자기 군사들을 완전히 억제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명나라 쪽에서 공식적으로 금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조정에서 명나라 측에 요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접대하는 관리들이 제시할 수 있는 명나라 측의 공식 문서를 받아 두어야 합니다.

그 문서를 근거로 역참마다 함부로 군량을 더 가져가지 못하게 한다면 한정된 곡식을 조금이라도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명나라 군대가 이동할 때마다 군량도 함께 옮기면서 크게 줄어든다

큰길 곳곳에는 역참을 설치했습니다.

그곳에 군량과 말먹이를 미리 쌓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경상우도에서 적의 형세가 갑자기 급해지자 명나라 장수 네다섯 명이 여러 차례 주둔지를 옮겼습니다.

유정과 오유충의 군대도 해평과 대구 등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부대가 옮길 때마다 수백 석씩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군대가 이동하면 각 역참에 쌓아 둔 군량도 따라서 옮겨야 했습니다.

한 번 옮기는 양이 수백 석이나 되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천 석에 가까운 양이 움직였습니다.

어떤 군량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것은 길 가운데 남았습니다.

수백 리 사이에 군량이 이곳저곳 흩어졌습니다.


군대가 다시 움직이면 군량을 또 되돌려야 했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가 다시 주둔지를 바꾸면 전에 옮겨 놓은 군량을 원래 역참으로 다시 돌려야 했습니다.

실제로는 처음 옮겼던 양만큼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곡식을 이리 가져갔다 저리 가져갔다 한 일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군량이 쉽게 바닥나는 데에는 이 일이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곡식을 여러 번 옮기면서 자연스러운 손실도 생겼다

군량을 계속 옮기는 과정에서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비에 젖기도 했습니다.

상하거나 없어지는 양도 생겼습니다.

이것을 나중에 정확하게 조사해 누구의 책임인지 밝히기도 어렵습니다.


말에게 먹일 콩은 빈터에 몇 달씩 쌓여 있었다

쌀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말에게 먹일 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역참에는 수백 석의 콩이 빈 땅에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이미 넉 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창고에 넣지 못했습니다.

비와 이슬을 맞아 자연히 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두 사람이 여러 역참의 곡식을 모두 감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떤 지역은 담당자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여러 역참 가운데 겨우 한두 명의 관리만 배치된 곳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곳의 군량을 제대로 지킬 수는 없습니다.

이것 역시 군량이 없어지는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간 뒤 남는 군량도 정확히 처리해야 한다

앞으로 왜군의 형세가 조금 수그러들고 명나라 군대가 한곳으로 모이면 각 역참에 남아 있는 곡식을 다시 모아야 합니다.

쓸 수 있는 것은 군량으로 보관합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 군대에 쓰기 어려운 곡식이라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굶주린 백성에게 형편에 맞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장부를 만들고 정확하게 계산해야 합니다.


군량 장부를 제대로 맞추는 일 자체가 큰 어려움이다

처음에는 담당 호조 관리가 각 역참의 군량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면서 필요한 곳에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호조 판서가 병들었습니다.

계산을 맡던 실무자들도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관련 장부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각 역참에서 사용한 양과 남은 양을 대략 조사하고 앞뒤 문서를 맞춰 실제 수량을 확인하려 합니다.

이것이 군량 처리에서 생기는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조 책임자와 실무자를 빨리 내려보내 정확한 회계를 해야 한다

호조의 책임 있는 당상관과 실무 관리 몇 사람을 빨리 내려보내야 합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처음 마련하기로 한 군량이 각각 얼마였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거둔 양이 얼마인지 확인합니다.

이미 쓴 양이 얼마인지 계산합니다.

현재 남은 양도 조사합니다.

그래야 국가의 곡식이 어디에서 얼마나 흩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부족해진 군량을 다시 받아내는 문제도 매우 어렵다

수천 리 길을 운반하다 보면 장부에 적힌 양과 실제 남은 양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족한 양이 생기면 결국 누군가에게 다시 받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청과 백성 모두 가진 것이 다 떨어진 때입니다.


너무 급하게 받아내면 백성이 살 수 없고, 늦추면 영영 받지 못한다

부족한 양을 곧바로 강제로 받아내면 백성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늦추면 나중에는 받아낼 수 없게 됩니다.

국가에서 받을 것은 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백성이 완전히 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 가지를 모두 살릴 수 있도록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이 군량 처리에서 또 하나의 큰 어려움입니다.


앞으로 먹일 군량을 새로 마련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왜군이 언제 물러날지는 날짜를 정해 말할 수 없습니다.

왜군이 돌아가지 않으면 명나라 군대도 쉽게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 몇 달 동안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군량은 이미 거의 다 사용했습니다.

이제부터 먹일 곡식을 마련하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아직 분명한 대책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지방 감사도 뚜렷한 처분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운송을 맡은 한두 관리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가을 곡식과 공물, 토지세, 자원 납부를 함께 활용해야 한다

이제 가을이 되면 새로운 곡식이 나옵니다.

경상좌도와 우도 가운데 농사를 지은 곳에서는 여러 방법을 함께 써야 합니다.

공물 대신 쌀을 받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낼 토지세를 미리 바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라에서 벼슬이나 포상을 받을 수 있는 증서를 주고 곡식을 자원해 내도록 모집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함께 사용해 얼마만큼 곡식을 모을 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얻은 곡식을 군량에 보태야 합니다.


이런 일은 책임자가 직접 지방을 돌아다녀야 성과가 난다

이런 정책은 문서만 보내서는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책임 있는 사람이 직접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현지에 오래 머물면서 실제 상황을 살피고 조치해야 일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유정과 오유충의 군대에 군량을 공급하는 일이 너무 급해 그 길을 잠시도 떠날 수 없습니다.


좌우도 감사도 적의 움직임 때문에 다른 일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경상좌도와 우도의 감사들도 왜군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른 일까지 두루 살필 여유가 없습니다.

지난봄 조정에서 군량을 독촉하라고 선전관 두 명을 내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명령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여러 일을 전체적으로 지휘할 권한은 없었습니다.

또 무관이어서 지방 관료들을 강하게 통제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군량을 전담할 큰 책임자를 내려보내야 한다

조정에서 특별히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군량 조달과 수송, 명나라 군대 지원을 한꺼번에 책임질 사람을 따로 내려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지방 감사와 힘을 합쳐 처리한다면 국가와 백성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큰 전쟁도 계속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임자가 없는 상태가 너무 오래 이어졌다

운송 책임자가 돌아가고 호조 판서가 병든 뒤로 저는 이런 내용을 여러 차례 아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두렵고 조심스러워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적의 형세가 이처럼 급합니다.

군량도 이처럼 끊어져 갑니다.

좌우의 길까지 막히고 있습니다.

미처 대처할 틈조차 없습니다.

이런 형편을 생각하면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송산에 임시로 모셔 둔 정릉의 유해를 살펴본 보고

앞서 선릉과 정릉을 살펴본 내용은 제가 병중에 이미 보고한 바 있습니다.

이번 달 열여드렛날 다시 관계자들과 함께 자세히 살폈습니다.

그 뒤 송산에 임시로 모셔 둔 유해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머리와 얼굴에는 머리카락과 수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유해의 머리와 얼굴 쪽에는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피부와 뼈의 상태도 오래된 유해로 보였습니다.

가슴 아래쪽으로는 뼈가 드러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유해처럼 보였습니다.


배와 등 쪽은 피부가 두껍고 단단하게 남아 있었다

배와 등 부분은 피부가 두껍고 단단했습니다.

뼈마디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왼쪽 어깨 부근에는 구멍처럼 보이는 흔적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하나는 조금 컸고 하나는 작았습니다.

두 흔적은 매우 가까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 외에는 상태가 심하게 변해 확실하게 구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중대한 일은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왕실과 관련된 전례 없는 큰 변고입니다.

조금이라도 잘못 구별한다면 차마 말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제가 아는 것이 적은 상태에서 가볍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더욱 자세히 조사해야 합니다.


능 주변을 다시 철저히 찾아야 한다

능이 훼손된 상태를 다시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능 가까운 곳도 빠짐없이 찾아보아야 합니다.

파손되거나 흩어진 물건이 있는지도 조사해야 합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물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사실을 밝힐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낸 뒤에야 신중하게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열세째 권 끝

 

 

 

 

 

징비록 열네째 권

경상도를 지킬 형세를 아뢰다

요즘의 형세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아무리 다른 곳에 여러 겹으로 방어 시설을 마련해 놓더라도 영남을 지켜 내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영남이 무너지면 강원도와 충청도, 전라도도 차례로 전쟁터가 될 것이다.

지금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명나라 군대다.

그러므로 명나라 군대를 중요한 길목에 전진 배치해 일본군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명나라 군대 한 부대를 대구와 그 주변에 머물게 하면 좌우로 움직이며 경주 방면의 일본군과 가운데 길로 안쪽에 침입하려는 적을 함께 견제할 수 있다.

다른 명나라 군대도 서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전진 배치해 일본군이 전라도 방면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수군까지 함께 움직여 육지와 바다에서 적을 압박해야 한다

여러 도의 수군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육군과 수군이 서로 호응하면 군세가 훨씬 강해진다.

전라도에서는 순천을 비롯한 남쪽 지역의 군량을 바다로 운반하면 된다.

바람만 알맞으면 하루 만에 필요한 곳까지 갈 수 있다.

육지로 먼 거리를 운반할 때보다 백성의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우리 군대도 중요한 나루에 진을 치고 방어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적이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지역이 서로 연결되어 한쪽에서는 싸우고 한쪽에서는 지킨다면 일본군의 기세는 저절로 약해질 것이다.

적도 함부로 돌진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벼슬에서 물러나 늙은 어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다

나는 양주로 가는 길에서 승정원이 전한 임금의 명을 받았다.

앞서 내가 사직하고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은 자식으로서 견딜 수 없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쪽의 일본군은 아직 바다를 건너 돌아가지 않았다.

서쪽에서도 위급한 소식이 다시 들어오고 있다.

나라의 형세는 전보다 더욱 위태롭다.

이런 때에 대신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안일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라가 이렇게 위태로운데 쉽게 떠난다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


나라의 명과 늙은 어머니 사이에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다고 하다

나는 대신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의 일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집안 사정을 들어 임금께 말씀드렸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까지 불러일으켰다.

내 죄는 죽어도 용서받기 어렵다.

하지만 내 집안의 사정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난리가 난 뒤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만나지 못했다.

수백 리 밖에서 서로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지냈다.

자식 된 사람이 어찌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전쟁 중 가족을 잃은 슬픔 때문에 병들었다고 하다

내 어머니는 전쟁 뒤 자식과 가족을 여러 차례 잃었다.

슬픔이 쌓여 병이 되었다.

나까지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자 나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

내가 불효한 것이 이 정도인데 어떻게 차마 마음을 모질게 먹고 그대로 있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병이 가볍고 나라의 형세가 조금이라도 안정되어 있다면 나도 마땅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위중하고 나도 해묵은 병으로 몸이 성하지 않다.

그런데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먼 길을 오가는 데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나라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어머니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다

어떤 사람은 나라의 일이 안정된 뒤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안정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그날까지 내 어머니가 살아 계실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정을 한 집안의 일이라고 보면 사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조정이 사람을 쓰는 도리에서 생각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 역시 세상 사람이 함께 지켜야 할 도리다.

나라가 아무리 위급하더라도 이런 길까지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대신이 이미 나와 있으니 잠시라도 어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다

전에 임금께서는 내 간절한 마음을 불쌍히 여기셨다.

다른 대신이 나와 일을 맡으면 잠시 돌아가 어머니를 뵙고 오도록 허락하셨다.

나는 그 허락을 기다려 왔다.

지금은 좌의정 김응남도 나와 일을 맡고 있다.

나라의 급한 군사 업무를 맡을 사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잠시 돌아가 죽어 가는 어머니를 만나더라도 나라의 큰일과 사사로운 정을 함께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도성을 나서자 다시 돌아오라는 명이 내려 병까지 심해졌다고 하다

그런데 내가 도성을 떠나자마자 다시 돌아오라는 엄한 명이 내려왔다.

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돌아가려고 해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렵고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웠다.

정신이 어지럽고 가슴속의 불이 치밀어 병이 다시 심해졌다.

황량한 길과 들판 사이에서 쓰러진 채 명을 기다리는 지경이 되었다.

엎드려 바라건대 앞서 허락하신 뜻대로 잠시 내려가 늙은 어머니를 뵙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대신의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면 차라리 벼슬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다

만약 대신의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 둘 수 없다면 내 직책을 거두어 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한동안 마음을 놓고 어머니를 뵌 뒤 다시 나라의 명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일도 그르치지 않고 사람의 도리도 완전히 끊지 않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한산성을 수리하는 일을 아뢰다

나는 광주에 도착한 뒤 남한산성에 다시 올라가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함께 올렸다.

성의 서쪽과 북쪽, 동쪽은 대부분 산비탈이 매우 가파르다.

자연 지형 자체가 험해 방어하기가 좋다.

하지만 남쪽은 사정이 달랐다.

물이 빠지는 곳 가까이에는 바깥 산과 이어지는 곳이 있고 다른 곳에 비해 덜 험했다.

성을 제대로 수리하려면 우선 이곳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곳을 먼저 튼튼하게 만들어야 뒤의 걱정을 덜 수 있다.


남한산성 공사는 크므로 기한을 정해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남한산성을 제대로 고치는 일은 매우 큰 공사다.

지금 남아 있는 백성의 힘만으로 쉽게 해낼 수 없다.

며칠이나 몇 달 안에 무조건 끝내라고 할 수도 없다.

다행히 이 지역 백성들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남한산성을 자신들이 몸을 피할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성문도 대강 만들어 놓았다.

스스로 성을 고치려는 뜻도 있다.

이런 백성의 마음을 이용해 차츰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느라 지친 백성을 당장 동원해서는 안 된다

최근 명나라 사신들이 잇따라 오갔다.

각 고을 백성이 여러 달 동안 길에 나와 접대하느라 몹시 지쳤다.

게다가 날씨도 추워졌다.

높은 산꼭대기에는 이미 눈까지 쌓여 있다.

이런 때 며칠 안에 공사를 시작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날씨가 조금 풀리고 백성의 힘도 어느 정도 회복되면 형편을 보아 차츰 수리하는 것이 좋다.

오래 지킬 성을 만드는 일이니 조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종사관 한준겸에게 황해도의 훈련과 방어 상태를 점검하게 하고 먼저 보냈다.


파사성을 수리하고 양근 산성도 함께 방어 거점으로 만들자고 청하다

비변사의 공문을 살펴보았다.

한강 상류에 파사성 한 곳이 있다고 해서 여러 나루와 온갖 길을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류에는 강을 건널 만한 곳과 갈라지는 길이 많다.

지난 전쟁 때 일본군도 충주에서 병력을 나누어 북쪽으로 올라왔다.

그 가운데 한 부대는 여주 쪽으로 움직여 강을 건너려 했다.

당시 원호가 몇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강 북쪽을 며칠 동안 지켰기 때문에 일본군이 곧바로 건너지 못했다.


파사성만이 아니라 충주·원주와 주변 산성을 함께 연결해야 한다

파사성은 여주와 이천 사이에 있다.

주변에서 서로 연결해 방어할 만한 곳은 몇 군데뿐이다.

멀리까지 내다본다면 충주를 굳게 지켜야 한다.

원주에도 충분한 군사를 두어야 한다.

여주와 죽산 등 주변 지역도 서로 맞물려 도와야 한다.

수레의 두 바퀴와 덮개처럼 서로 의지해야 파사성 역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양근 남쪽 산은 여러 길이 갈라지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다

파사성 아래쪽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곳이 많다.

양근 남쪽 산은 그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는 원주로 가는 길과 가평으로 통하는 길을 비롯해 여러 길이 갈라진다.

만약 일본군이 원주 쪽에서 작은 길을 따라 양근으로 향한다면 이곳에서 반드시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직접 산에 올라 지형을 살펴보다

나는 직접 그 산에 올라 지형을 자세히 보았다.

그 산은 위쪽의 다른 산과 서로 마주하고 아래쪽으로도 다른 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강 바깥 여러 길이 한곳에 모이는 요충지였다.

방어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양근 수령에게 사람을 모아 그곳에 차츰 목책과 방어 시설을 만들고 군사가 주둔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다.


가까운 곳의 천연 산성을 노약자의 피란처로 쓰게 하다

그곳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에도 산성이 하나 있었다.

높은 산 위에 있어 사방이 매우 험했다.

하늘이 만든 요새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한 고을의 노인과 어린아이, 약한 백성이 전쟁을 피해 몸을 숨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이런 곳도 함께 손질해 피란처로 쓰게 해야 한다.


백성을 살리기 위한 방어 준비가 오히려 백성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다

내가 여러 지역을 지나며 보니 피란민이 백 명씩 떼를 지어 떠돌았다.

굶주리고 병들어 쓰러진 모습은 차마 바라보기 어려웠다.

성을 지키고 전쟁을 준비하는 것도 결국 사람을 살리려는 일이다.

백성이 이미 개미처럼 흩어지고 힘이 다 빠졌는데 짧은 기간 안에 큰 공사를 끝내라고 재촉한다면 본래 뜻과 어긋난다.

충주와 원주의 방어 준비 역시 그 지역 책임자가 형편을 살펴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너무 늦추지도 말아야 한다.


양근 수령을 교체하지 말고 그대로 맡겨 달라고 청하다

내가 양근에 도착해 보니 고을의 형편이 참혹했다.

옛 주민은 거의 모두 흩어졌다.

백 명 가운데 한 명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라의 경계가 텅 빈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길은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중요한 길이다.

사신과 관리가 끊임없이 지나갔다.

그들의 음식과 숙소를 준비하고 말을 내주는 일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백성이 부담하고 있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수령이 부지런히 백성을 다시 모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양근 수령은 부지런히 일을 처리했다.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으고 고을을 다시 세우려고 힘썼다.

그가 교체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고을 사람들이 크게 걱정했다.

온 고을의 크고 작은 백성이 쌀과 콩을 합쳐 오십 석가량 모았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말했다.

“이것을 군량으로 바치겠습니다. 지금 수령을 바꾸지 말아 주십시오.”


백성이 자발적으로 모은 곡식을 지역 군사에게 사용하게 하다

나는 백성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지금 수령을 믿고 따르는 마음은 조정에 그대로 알리겠다. 하지만 수령을 그대로 두는 일은 조정에서 결정할 것이다.”

이미 모아 놓은 곡식을 다시 집집마다 돌려주는 것도 어려웠다.

양근에는 편성한 군사가 이백여 명 있었다.

하지만 군사 장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백성이 모은 곡식을 이 군사의 식량으로 쓰도록 했다.


화살 등 부족한 군사 장비를 마련하는 데에도 쓰게 하다

모은 곡식 가운데 일부는 군사의 먹을 것으로 삼았다.

또 일부는 화살 등 부족한 군사 장비를 마련하는 데 쓰게 했다.

한 고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자기 고을의 군사를 돕는 일이었다.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행정의 원칙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며 감사했다.


젊은 무관이지만 민심을 이미 얻었으므로 함부로 바꾸지 말자고 하다

양근은 서울 한강 상류의 중요한 곳이다.

위쪽의 방어 거점과 이어지고 아래쪽으로 용진과 연결되어 있다.

이곳의 방어 준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수령은 젊은 무관이지만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아 이미 백성의 마음을 얻었다.

이때 다시 교체하면 이제 조금 모이기 시작한 백성과 방어 준비가 다시 흐트러질 수 있다.

백성의 실망도 클 것이다.

그래서 그대로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아뢰었다.


경기 군사의 훈련 상태와 독산성의 준비를 보고하다

경기 좌우 후영의 군사를 살펴보았다.

먼저 한 지역에서 진을 치게 하고 군사들의 상태를 보았다.

그 뒤 다른 지역으로 가 오른쪽 부대의 군사 삼백여 명을 모아 훈련시키는 것도 직접 보았다.

각 고을에서 뽑힌 군사들이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 빠지지 않고 모인 것은 그나마 일이 조금씩 틀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옷과 무기, 진법이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

군복과 옷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무기도 좋지 않았다.

진을 치는 법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 동작이 모두 서툴렀다.

이들은 본래 농사짓던 백성을 편성해 만든 군사였다.

평소 군영에서 먹이고 재우며 오랫동안 훈련한 군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능숙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계속 훈련하면 실제 전투에 쓸 만한 군사도 나올 수 있다고 하다

그래도 날마다 가르치고 오랫동안 훈련하면 차츰 나아질 수 있다.

그 가운데 활을 잘 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전에 실제 전투를 경험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방어 지휘관 변양걸에게 이들 가운데 다시 뛰어난 사람을 정밀하게 뽑게 했다.

백 명 가운데 한 명을 고르듯 신중하게 뽑도록 했다.

숫자에 얽매이지 말고 실제로 전투에 쓸 수 있는 사람을 골라 두라고 했다.


군관들에게 정예병을 나누어 맡겨 따로 훈련시키다

군관들에게도 정예병을 고을별로 나누어 맡겼다.

별도로 더욱 훈련시키라고 여러 번 명령했다.

급한 일이 있을 때 바로 쓸 수 있는 군사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 두려는 것이었다.


독산성에는 군량과 군사 이천사백 명이 준비되어 있었다

독산성은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형편이 나았다.

성의 방어 시설과 목책, 여러 군사 장비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다.

쌀과 콩을 합친 군량도 성 안에 저장되어 있었다.

원문에 적힌 정확한 군량 수치는 글자가 크게 깨져 확정하기 어렵지만 상당한 양이 이미 쌓여 있었다.

이 지역의 편성 군사는 이천사백 명가량이었다.

이들을 사방에 나누어 배치하면 갑자기 위급한 일이 생겨도 먼 고을의 원군만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지킬 수 있었다.


성을 맡은 군사들이 성문 세 곳과 여러 시설을 만들었다고 보고하다

성 안에 들어온 군사들이 나에게 글을 올렸다.

성을 맡은 장수와 관리들이 성을 수리하고 성문 세 곳을 만들었다고 했다.

큰 건물과 군사 장비를 보관하는 곳을 비롯해 필요한 시설도 마련했다고 했다.

험한 곳에는 군사를 배치했다.

둔전도 경영했다.

지난해 둔전에서 거둔 곡식이 육백여 석에 이르렀다.


큰 공을 세우고도 포상이 없어 사람들이 섭섭해한다고 하다

이처럼 많은 일을 했는데도 아직 제대로 포상받은 일이 없었다.

군사와 관련자들이 모두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독산성의 준비 상태를 살펴보니 지금의 모습은 대부분 이 사람들이 애쓴 결과였다.

힘닿는 데까지 포상하여 그 마음을 위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독산성 책임자에게 관인을 주어 공무를 처리하게 하자고 청하다

독산성을 맡은 책임자는 본래 다른 관직도 맡고 있었지만 계속 성에 머물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군사를 옮기거나 공문을 보낼 때 정식 관인이 없어 직접 쓴 문서만으로 일을 처리해야 했다.

매우 불편했다.

다른 중요한 군사 거점 책임자에게 한 것처럼 관인을 주어 공식 업무를 처리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 역시 군사와 백성이 함께 원하고 있는 일이었다.

조정에서 적절하게 판단해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부대 지휘관들의 근무를 벼슬 경력으로 인정해 사람들의 마음을 격려하자고 청하다

군사 훈련 규정에는 각 부대의 지휘관이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를 살피고 실제 성과를 기록하여 조정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잘한 사람은 승진시키거나 포상해 다른 사람을 격려하게 했다.

나는 좌우 방어 지휘관에게 각 부대 책임자의 실제 성과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했다.


군사를 잘 훈련한 지휘관들을 실제로 시험하다

보고된 사람 가운데에는 자기가 맡은 군사를 질서 있게 훈련하여 활쏘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낸 사람이 있었다.

무예가 특히 뛰어나고 맡은 일을 부지런히 한 사람도 있었다.

또 진을 칠 때 부대를 가지런히 세우고 각 대오를 분명하게 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보고만 듣지 않고 직접 그들이 훈련시키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실제로 군사들의 성과가 좋은 사람이 있었다.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 실제 벼슬을 주어야 한다고 하다

이처럼 실제 성과가 있는 사람은 규정대로 먼저 포상하는 것이 좋다.

필요하면 실제 벼슬을 주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해야 다른 지휘관들도 힘을 낸다.

지역 군사 훈련을 수령에게만 모두 맡길 수는 없다.

수령은 백성과 군사를 다스리는 여러 일을 한꺼번에 맡고 있다.

모든 군사의 훈련까지 혼자 세밀하게 살필 수는 없다.


수령은 큰일을 맡고 부대 지휘관은 직접 군사를 훈련하게 하다

수령은 전체적인 책임을 맡는다.

각 부대 지휘관은 자기에게 속한 군사를 직접 나누어 훈련한다.

훈련 결과를 검사한다.

잘한 사람은 상을 주고 못한 사람은 벌한다.

이렇게 하면 군사 훈련도 점차 틀이 잡힐 것이다.

최근 훈련 날짜에 각 지휘관이 군사를 데리고 모였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빠지는 군사는 거의 없었다.

편성과 통솔 방법이 차츰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기의 지휘관 스무 명과 하급 지휘관 백 명에게 근무 경력을 인정하는 방안을 말하다

하지만 부대 지휘관들은 자기 양식을 먹었다.

훈련 장소까지 오가는 비용도 스스로 마련했다.

고생만 하고 특별한 보상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이 생겼다.

경기의 네 부대에는 상급 지휘관 스무 명과 하급 지휘관 백 명가량이 있었다.

그 가운데 이미 정식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평안도 사람이 국경에 들어가 근무한 기간을 경력으로 계산해 주는 예와 비슷하게 근무 날짜를 벼슬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방법이 좋겠다.

나라에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사람들의 마음을 격려할 수 있다.

관련 관청에서 의논해 시행하기를 바란다.


활쏘기와 대포 사격에 뛰어난 사람을 포상하자고 청하다

군사 훈련 규정에는 무예와 활쏘기를 시험해 뛰어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규칙이 있었다.

그런데 지방의 여러 고을에서는 아직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그러니 군사에게 분발할 마음이 생기기 어려웠다.

나는 지나온 경기 여러 고을에서 군사들에게 활쏘기와 무예 시험을 보게 했다.


군영에 있던 활을 성적에 따라 나누어 주다

성적이 좋은 사람에게는 군영에 있던 활 등을 적절히 나누어 주었다.

그 가운데 특히 뛰어난 사람은 따로 기록해 조정에 보고했다.

관련 관청에서 앞선 규정에 따라 다시 포상한다면 나머지 군사도 더욱 분발할 것이다.


성을 지키는 데에는 큰 대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다

성을 지키는 무기 가운데 큰 대포보다 중요한 것도 드물다.

그런데 요즘 서울과 지방에서 화포를 맡은 사람들은 작은 총을 다루는 데만 익숙하고 큰 대포를 제대로 쏘지 못한다.

군기시에서 큰 대포를 시험할 때에도 큰 소리와 충격에 겁을 먹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러니 적을 정확히 맞히기 어렵다.


독산성에서 큰 대포 사격을 직접 시험하다

나는 독산성에 도착한 뒤 큰 대포를 다루는 군사에게 직접 시험 사격을 시켰다.

성 밖 먼 산기슭에 표적을 세웠다.

여러 사람에게 차례로 쏘게 했다.

정확히 맞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 가운데 세 사람만 표적을 맞혔다.


한 사람은 한 번 쏜 두 발이 모두 표적을 뚫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한 번 발사했는데 두 발이 모두 표적을 맞혔다.

표적을 뚫고 지나가 부서뜨릴 정도였다.

사람들이 모두 이런 정도로 대포를 쏠 수 있다면 성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기존 군사 훈련 규정에는 큰 대포 사격에 대한 별도의 포상 규칙이 없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 하나만큼은 포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 함께 보고한다.


지나온 고을의 수령이 일을 잘했는지를 조사하여 상벌을 분명히 하자고 청하다

내가 지나온 여러 고을의 수령들을 살펴보았다.

정치를 잘한 사람이 있는지,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 상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남양부사 이경함은 정치를 너그럽고 간단하게 하여 온 고을 백성이 편안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천부사 역시 흩어진 백성을 모으고 백성을 아끼는 데 힘쓰고 있었다.

행정의 모든 일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백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은 분명했다.

이 두 사람은 알맞게 포상할 만하다고 보았다.


군사 명령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병사를 포악하게 대한 수령도 있었다

반대로 어느 지역의 수령은 군사에 관한 명령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부대 지휘관을 여러 차례 바꾸어 군정까지 흐트러뜨렸다.

군사에게 포악하게 굴었다.

수군 한 사람이 심한 일을 당해 죽었다는 보고까지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


죽산은 중요한 길목이므로 나약한 수령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다

죽산은 앞쪽으로 충주와 청주 방면의 길을 잇는 중요한 곳이다.

전쟁으로 몹시 무너졌지만 다시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면 한 지역을 제어하는 요충지가 된다.

현재 죽산 수령에게 눈에 띄는 큰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이 지나치게 나약해 이처럼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바꾸는 것이 좋겠다.


진위와 죽산에는 문관·무관을 따지지 말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보내야 한다

진위와 죽산은 모두 길이 번잡하고 중요한 지역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

문관인지 무관인지 따질 필요도 없다.

부지런하고 세밀하며 마음이 안정되어 있고 백성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을 충분히 살펴 특별히 골라 보내야 한다.


수도 방어를 위해 육로와 수로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아뢰다

임금의 명을 받았다.

일본군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내가 군사를 이끌고 각 길을 살피며 방어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용진에서 수원과 양성 사이로 향하면서 지난 전쟁 때 일본군이 수도로 들어온 길을 다시 생각했다.

그때 적은 세 길로 나뉘어 도성을 향했다.

여러 부대는 충주 쪽으로 올라온 뒤 강을 건너 수도의 동쪽과 남쪽으로 들어왔다.

다른 부대도 별도의 길을 이용했다.

이번에도 일본군이 여러 길로 나뉠 가능성이 있었다.


경기 좌우 부대의 병력이 넓은 강을 지키기에는 너무 적었다

처음에는 경기의 좌우 후영 군사를 각각 좌우 방어 지휘관에게 맡겼다.

한강 수백 리에 걸친 지역을 나누어 지키게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명나라 군대의 접대와 각종 물자 운반 때문에 경기 각 고을의 편성 군사가 계속 동원되었다.

사람들이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한곳에 모아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남아 있는 군사 가운데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만 조금씩 나누어 지키게 하다

남은 사람 가운데 그나마 활을 다룰 줄 알고 훈련이 조금 된 사람을 골라 각 방어 지역에 나누어 놓았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적었다.

강 상류와 하류의 군사를 마음대로 다른 곳으로 옮겨 쓸 수도 없었다.

오른쪽 지역의 군사도 자기 지역을 버리고 모두 왼쪽으로 옮길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너무 허술했다.


황해도 군사를 더 불러야 할 수도 있다고 하다

사정이 더 급해지면 평안도나 황해도의 군사를 불러 앞쪽에 배치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다만 멀리 있는 사람을 급히 불러오는 일이므로 실제 가능한 병력과 이동 시간을 자세히 따져야 한다.

조정에서 빨리 의논해 결정해 주기를 바랐다.


이번에는 지난 전쟁과 달리 바닷길까지 함께 대비해야 한다

이번 적의 움직임은 지난 전쟁 때와 다를 수도 있다.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충청도 해안으로 배를 타고 올라와 아산 부근에 접근할 수도 있다.

이곳은 바닷길을 이용하면 수도와 훨씬 가까워진다.

따라서 육지만 막고 바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너무 넓은 육로와 수로를 모두 관리할 수 없다고 하다

한 사람이 넓은 지역의 육로와 수로를 모두 다니며 처리하기는 어렵다.

지방의 일은 원래 감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나는 전체 군사를 살피는 직책에 있으므로 감사에게 지시하고 감사가 다시 각 지역 장수에게 전달하여 지휘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최근 감사들은 명나라 군대의 접대와 장수 영접 때문에 다른 곳으로 다니느라 전선의 일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공문이 오가는 동안 며칠씩 지나 급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고 하다

나는 혼자 밖으로 나와 직접 일을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공문을 주고받을 때마다 며칠씩 걸렸다.

급한 전쟁 상황에서 모든 일이 늦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높은 책임을 가진 대신 한 사람이 더 밖으로 나와 서로 지역을 나누어 맡으면 육로와 수로의 일을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한 사람이 더 나오는 문제를 조정에서 빨리 결정해 달라고 하다

다만 대신을 밖으로 내보내는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다.

병조판서 이항복도 사직을 청하고 있어 중요한 대신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울 수도 없다.

그래서 감히 미리 아뢰는 것이다.

조정에서 형편을 충분히 살펴 일을 나누어 맡길 사람을 빨리 정해 주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일을 함께 의논할 사람이 같은 지역에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음죽과 죽산에 먼저 군사를 보내기보다 충주와 한강 상류의 형세를 다시 살펴야 한다고 청하다

그달 초 열흘 무렵 임금의 명이 내려왔다.

일본군 한 부대가 진주와 의령 부근에서 나와 낙동강을 따라 위로 올라오는 듯하다는 소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을 향하는 움직임일 수도 있었다.

충주에는 명나라 군사 한 부대만 있어 형세가 외롭다고 했다.

그래서 정예병을 뽑아 음죽과 죽산 사이에 먼저 배치해 충주를 돕도록 하라는 명이 내려왔다.


여주 방어가 용진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고 판단하다

나는 그 명령을 받고 다시 지형을 살펴보았다.

도성을 떠난 날부터 한강 바깥 지역을 돌다가 용진에 도착했다.

왼쪽 방어 지휘관 변응성은 후영에서 뽑은 군사 백여 명과 승군 백여 명을 모아 용진에서 훈련시키며 방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강 상류의 전체 형세를 생각하면 여주로 통하는 길은 용진보다도 더 중요했다.


지난 전쟁 때 일본군이 충주에서 여주 쪽으로 올라와 강을 건넜던 일을 떠올리다

지난 전쟁 때 일본군은 충주에서 북쪽으로 올라왔다.

그 가운데 일부가 여주 방면에서 강을 건너려 했다.

여주 쪽을 지키지 못하면 용진을 아무리 튼튼하게 지켜도 적이 다른 길로 돌아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후영 군사와 용진 군사는 그대로 용진에 남겨 지키게 했다.

변응성에게는 파사성으로 가 좌영에 속한 정예 군사를 다시 모아 변란에 대비하게 했다.


나는 수원과 양성 쪽 방어도 살피려고 했다

나는 그 뒤 오른쪽 지역인 수원과 양성 사이로 가 방어 시설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남쪽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길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본군이 낙동강을 따라 북상한다는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한강 상류 쪽을 다시 오가며 방어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더욱 커졌다.


적이 강을 건너기 전에는 강을 지켜야지 음죽·죽산 들판으로 먼저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다

우리와 적의 힘이 비슷하거나 우리가 강하다면 앞쪽으로 나아가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적이 강하고 우리가 약한 상황에서는 험한 지형을 차지해 막아야 한다.

일본군이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았다면 우리는 강을 끼고 지키는 것이 좋다.

음죽과 죽산은 많은 군사가 적을 막아 세우기에 좋은 천연 지형이 아니다.

강을 버리고 미리 텅 빈 들판으로 나가면 군량 운반도 어렵다.

전진해도 근거지가 없고 물러나도 의지할 곳이 없다.

좋은 계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충주를 돕더라도 여주를 비우고 음죽으로 옮길 필요가 없다고 하다

여주는 충주와 음죽, 죽산에서 아주 멀지 않다.

충주를 지원하려고 하더라도 여주를 버리고 음죽과 죽산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

죽령으로 통하는 길은 원주와 이어진다.

다른 길도 여주와 수도 방면으로 이어진다.

강원도 군사는 원주를 지키게 하고 경기 군사는 여주에 연이어 주둔하게 하면 충주 북쪽을 받치면서 산과 강의 험한 지형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움을 받기도 쉽다.


죽산으로 가는 곧은 길에는 의지할 지형이 거의 없다고 하다

죽산으로 곧장 통하는 길은 넓고 평평하다.

군사가 의지해 지킬 만한 곳이 거의 없다.

일본군이 그쪽으로 들어오면 다시 두 갈래로 갈 수 있다.

한 길은 여주와 이천 방면으로 향한다.

다른 길은 양성과 안성 방면으로 나온다.

음죽과 죽산에 소수의 군사를 두더라도 적의 대군을 막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 전체의 형세를 다시 헤아려 배치해야 한다.


오른쪽 방어 지휘관을 빨리 정해 달라고 청하다

현재 경기의 무장 가운데 전체 방어를 맡길 사람이 많지 않다.

변응성 한 사람이 한강 상류 전체를 맡고 있다.

오른쪽 지역에는 별도의 방어 지휘관이 없다.

수원과 양성, 죽산 등 넓은 지역을 맡아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전에 수령을 지낸 무관 한 사람이 현재 별다른 직책 없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그 사람의 능력을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므로 반드시 그를 임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상황이 급해 후보의 이름을 들어 아뢰는 것이다.

비변사에서 그가 적임자인지 자세히 살펴 빨리 사람을 정해 보내기를 바란다.


한강 상류의 방어 장비를 갖춘 뒤 강화도와 서해의 섬들을 돌아보겠다고 보고하다

남쪽 일본군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깊숙이 올라올 것인지는 내가 도성을 떠난 뒤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수도를 지키려면 강화도를 튼튼하게 하는 것과 한강 상류를 굳게 지키는 것이 지금 가장 급한 일이다.

임금의 명을 받은 뒤 나는 파사성과 그 주변 강가를 돌아보며 방어 장비가 얼마나 마련되어 있는지 살폈다.


강화 수군에 밤낮없이 대비하라고 여러 차례 명령하다

강화도에는 이미 여러 번 공문을 보냈다.

수군 책임자에게 밤낮으로 선박과 군사를 정비하고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게 했다.

또 군관을 바닷가와 섬으로 보내 적선이 나타나는지를 감시하도록 했다.


남양 앞바다와 영흥도·대부도 등지에 장수를 나누어 감시하게 하다

남양 앞바다와 여러 섬 가운데 바닷길이 서로 통하고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에는 장수를 나누어 배치했다.

영흥도와 대부도 같은 곳에서도 바다를 감시하게 했다.

적선이 나타나면 곧바로 신호하고 보고하도록 했다.

경기 감사도 그 지역을 돌아보고 있었으므로 당분간 그곳에 계속 머물며 살피게 했다.


한강 방어 준비가 끝나면 직접 해안과 섬을 살펴볼 생각이라고 하다

수군 책임자 이하 여러 장수에게 배를 정비하고 전투 준비를 완전히 하도록 거듭 명령했다.

나는 우선 한강 상류의 방어 장비가 대략 마련되는 것을 기다렸다.

그 뒤 강화도와 주변 바닷길, 섬의 형세를 직접 돌아볼 생각이었다.


황해도 군사 이백 명을 한강 상류에 보내고 서울의 무기도 넉넉히 내려보내 달라고 청하다

현재 수도 방어의 형세를 보면 한강 상류의 방어가 매우 위태롭다.

한강 상류에는 강을 건널 수 있는 곳이 많다.

적이 한곳으로 몰려오면 우리 군사도 한곳에 모여 힘을 합쳐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군이 넓게 흩어져 여러 곳에서 동시에 건너려 한다면 우리 군사는 너무 적어 곳곳을 지킬 수 없다.


왼쪽 방어군의 정예병은 겨우 이천여 명이었다

왼쪽 방어 지휘관 변응성이 거느린 편성 정예병은 모두 합쳐도 이천여 명 정도였다.

그마저도 용진과 파사성 등 여러 곳에 나누어 배치해야 했다.

최근에는 명나라 군대를 접대하기 위해 많은 군사가 차출되었다.

말먹이와 물자를 나르는 데에도 여러 사람이 끌려갔다.

남은 병력이 한곳에 모여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어려웠다.


서울 방어를 위해 다시 불려간 사람도 많아 한강 방어선이 더욱 약해졌다

앞서 임금의 명에 따라 경기 군사를 다시 서울로 불러들인 일도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명나라 군대의 여러 잡역과 물자 운송을 맡고 있었다.

결국 한강 상류를 직접 지킬 군사는 더욱 줄었다.

이런 형세에서 상류 한곳이라도 뚫리면 그 뒤에는 기대할 곳이 거의 없다.

생각하면 밤에도 마음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황해도에서 정예병 이백 명을 뽑아 보내 달라고 청하다

전에 황해도의 정예 기병을 불러오도록 명한 일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서울에 있어 지금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황해도에 남아 있는 쓸 만한 병사 가운데 이백 명을 뽑아 한강 상류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

부족한 병력을 보태 강을 건너는 길목을 막게 하려는 것이다.

조정에서 빨리 명령을 내려 주기를 바랐다.


강을 막는 데 쓸 화포와 여러 무기가 크게 부족하다고 하다

한강을 지키려면 화포와 여러 군사 장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에 화약과 화포를 내려보내 달라고 요청해 일부를 산성과 요충지에 배치했다.

그러나 강가에서 사용할 것은 수량이 많지 않았다.

서울의 군기고에 보관된 무기 가운데 쓸 수 있는 것을 넉넉히 보내 달라고 청했다.


여러 종류의 화포와 화살, 철환을 직접 운반해 내려보내 달라고 하다

큰 화포와 작은 화포, 불화살, 여러 발을 연이어 쓸 수 있는 무기, 철환, 편전 등 실제로 전투에 쓸 수 있는 것을 충분히 골라 내려보내야 한다.

원문에는 여러 무기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으나 문자 인식이 심하게 깨져 정확한 명칭을 모두 확정하기 어렵다.

담당 관원이 직접 가지고 내려와 방어 지휘관에게 넘기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바로 강가의 전투에 사용할 수 있다.


경상도에 들어온 뒤 군사 집결과 보고 체계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아뢰다

내가 경상도 경계에 들어온 지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런데 좌우 여러 지역에서 군사가 얼마나 모였고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에 관한 보고가 제대로 오지 않았다.

각 고을의 편성 군사가 정해진 수대로 정돈되어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전쟁의 형세는 갑자기 변한다.

우리나라 군사와 말은 이미 지쳐 있다.

그런데 지휘와 보고까지 느리니 걱정이 컸다.


큰 전쟁을 앞두고도 각 기관의 협조가 지나치게 느리다고 탄식하다

중대한 일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우리나라 여러 기관이 서로 호응하고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나 부족했다.

군사 명령이 내려왔는데도 약속한 날짜를 어기거나 정해진 곳에 제때 모이지 않는다면 군법으로 처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처벌한다고 이미 놓친 기회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흩어진 군사도 하루아침에 다시 정비하여 적을 공격할 수 없다.

평소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명나라 군량으로 마련한 공사 곡식이 칠만에서 팔만 석가량 되었지만 넉넉하지 않다고 하다

명나라 군대를 먹이려고 관청과 민간의 저장 곡식을 끌어모았다.

모두 합해 칠만에서 팔만 석가량은 마련한 것으로 보였다.

수만 많아 보이지만 대군이 오래 머물면 결코 넉넉한 양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 곡식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도 여러 명이라는 점이었다.


같은 곡식을 이곳저곳으로 다시 옮기라는 명령이 잇따르다

어떤 지휘관은 곡식을 한 지역으로 옮기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경주로 보내라고 했다.

다른 명령에서는 다시 대구로 보내라고 했다.

명령이 서로 달랐다.

백성들은 같은 곡식을 이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저곳으로 옮겨야 했다.

남은 백성의 힘은 날마다 더욱 고갈되었다.


군량을 총괄하는 지휘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하다

처음 명나라 군무 책임자는 윤승훈에게 경상도의 군량을 총괄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전선을 나누어 관리하면서 담당자가 여러 갈래로 생겼다.

하지만 총괄하는 책임은 한 사람에게 남겨 두는 것이 좋다.

여러 담당자가 서로 의논하여 같은 명령을 내려야 한다.

비변사의 관리와 군량을 나누어 맡은 사람들도 서로 다른 이름으로 제각기 명령해서는 안 된다.

권한을 하나로 모으고 논의를 서로 통하게 해야 한다.

조정에서 빨리 정리해 주기를 바란다.


명나라 대군 지휘관과 군무 책임자를 맞이하고 군량 형편을 보고하다

그달 14일, 명나라 대군 지휘관이 군대를 거느리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를 맞이하려고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한 지역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해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명나라 지휘관이 그곳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뒤따라갔다.

마침내 만나 남쪽 일본군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보고를 바탕으로 일본군 형세를 설명하다

그는 남쪽 일본군의 상황이 어떤지를 물었다.

나는 경상도 좌병사의 보고와 여러 지역에서 올라온 소식을 바탕으로 적의 형세를 설명했다.

명나라 지휘관은 여러 말을 하며 일본군이 매우 사납지만 명나라 군대의 위세가 있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난 뒤 다시 명나라 군무 책임자를 찾아가려고 했다.


밤이 깊어 바로 만나지 못하고 안동까지 따라가다

내가 그가 머무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그가 떠날 때 다시 이름을 알렸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 일행을 따라 안동까지 갔다.

안동에 도착한 날 아침이 되어서야 마침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가 경상도의 군량을 모두 경주로 운반하라고 명하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는 말했다.

“대군은 이미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곳에 있는 군량은 모두 경주 쪽으로 운반해야 한다.

군량 운반이 끊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윤승훈 등 군량을 맡은 사람과 잘 의논하여 처리하라.”

그는 경상도 감사도 불러 같은 말을 했다.


군량 운반은 중앙 관리만의 일이 아니라 경상도 관리들이 직접 힘써야 한다고 하다

명나라 책임자는 경상도 감사에게 말했다.

“군량 운반은 의정과 총괄 관리에게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이 지방의 신하들이 직접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힘을 다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이어 안동부사도 불러 섬돌 아래 세워 놓고 물었다.

“너희 고을에서 이미 운반한 군량이 얼마나 되며 아직 보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는가?”

안동은 다른 곳에 비해 전쟁의 직접 피해가 적었으니 곡식 마련에 더욱 힘쓰라고 명했다.


경상도에서 마련하기로 한 쌀은 육만 천칠백여 석이었다

당시 보고에 따르면 경상도 좌도에서 마련하기로 한 쌀은 모두 육만 천칠백여 석이었다.

그 가운데 이미 거둔 쌀은 사만 삼천이백아흔아홉 석가량이었다.

아직 거두지 못한 쌀은 만 팔천사백여 석이었다.

원문의 끝자리 숫자는 일부 글자가 깨져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말먹이용 콩은 이만 팔천여 석이었다

말에게 먹일 콩은 모두 이만 팔천여 석이었다.

이미 거둔 것은 만 팔천구백여 석이었다.

아직 거두지 못한 것은 구천이백여 석이었다.

그 뒤 새로 마련한 곡식의 수량은 아직 조사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다른 담당자가 맡은 지역에서도 보고가 오지 않아 전체 수량을 모두 알 수는 없었다.


황폐한 경상도가 명나라 대군의 군량을 떠맡아 더 이상 힘이 남지 않았다고 하다

경상도는 전쟁으로 이미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황폐해졌다.

그런데 이 한 도에서 명나라 대군의 막대한 군량을 마련해야 했다.

각 고을의 지방 관리와 선비들이 앞장서 백성들을 이끌고 곡식을 모았다.

모두 남아 있는 힘을 다했다.

이제는 다시 힘을 낼 여유조차 거의 없었다.


명나라 군대는 이미 출발했는데 군량 운반로가 원활하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다

앞으로 군대를 맞이하고 먹여야 할 일은 계속 남아 있었다.

명나라 군대는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 군량이 가는 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큰일이 어떻게 될지 밤낮으로 걱정했다.

만약 대군이 오랫동안 머물게 된다면 뒤쪽 지방에서 곡식을 계속 보내야만 한다.

조정에서 미리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


충청도 곡식과 의주로 들어온 명나라 군량을 남쪽으로 돌리는 방안도 생각하다

필요하다면 충청도에서 일부 곡식을 영남으로 옮겨야 한다.

의주로 들어온 명나라 자체의 군량도 남쪽으로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당장의 부족을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다.

다만 백성의 힘이 너무 지쳐 먼 거리의 운송을 제때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명나라 총병의 군영에서 퍼지는 유언비어를 보고하다

한 명나라 총병이 안동에 온 뒤 군영 안에 여러 수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곳 조선 백성 가운데 일본군에게 들어갔다 돌아온 사람이 많다는 말도 있었다.

누군가 일본군과 몰래 통했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나왔다.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말이 군영 안에서 공공연하게 퍼졌다.


이 지역의 옷차림 때문에 조선 백성을 일본군으로 의심하는 일까지 생기다

이 지역 사람 가운데에는 예전부터 머리나 옷차림이 다른 지역 사람과 조금 다른 사람이 많았던 듯하다.

명나라 군사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모자를 벗기고 머리를 살피기도 했다.

일본군에게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라고 의심해 붙잡았다가 조선 사람임이 확인되자 풀어 주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지역 백성의 의심과 두려움이 날마다 커졌다.

관청이나 명나라 군영 가까이로 오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생겼다.


군량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명나라 군사를 피해 샛길로 다니다

군량 운반을 맡은 사람들도 큰길에서 명나라 군사에게 의심받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외딴 고을의 창고에서 곡식을 꺼낸 뒤 샛길을 이용해 운반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가 곳곳을 조사하니 운반하는 사람들까지 의심을 받았다.

군량 수송 자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명나라 군사가 평범한 조선 사람을 붙잡았다는 소문도 돌다

어느 지역에서는 명나라 군사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선 사람을 붙잡았다는 말이 있었다.

그가 일본군과 관계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조선 옷을 입은 평범한 조선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한밤중에 붙잡힌 사람이 틈을 타 달아났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근거 없는 의심이 명나라 지휘부까지 올라갈 것을 걱정하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말도 많았다.

그런데 의심이 한번 생기자 또 다른 의심이 이어졌다.

명나라의 크고 작은 장수들이 이런 말을 서로 전한다면 높은 군문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조선 사람 전체가 일본군과 내통한다는 식의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작은 유언비어가 나중에는 큰 화가 될 수 있다고 하다

세상의 큰일은 처음부터 큰 사건으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근거 없는 작은 말이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옮기다 보면 나중에는 막기 어려운 화가 되기도 한다.

조정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 명나라 군대가 조선 백성을 함부로 의심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의 말을 듣고 직책을 벗겨 달라고 청하다

그날 아침 나는 명나라 군무 책임자의 숙소 앞에 가 내 이름을 알렸다.

이덕형이 먼저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역을 맡은 사람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명나라 책임자의 말을 들었다며 나에게 전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류 아무개는 어느 군문에 죄를 지었다. 군문에서 사람이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피해 왔다. 군량 운반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

나는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통역이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덕형에게 물었으나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하다

이덕형이 나온 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나도 통역이 멀리서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가 자리를 떠난 뒤에는 이 일도 잘못 전해진 말이려니 했다.


오후에 다시 비슷한 말을 전해 듣다

그런데 오후에 명나라의 다른 관리와 접촉한 조선 사람이 돌아와 또 말을 전했다.

그 명나라 관리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 대신은 군문에 죄를 짓고 이곳으로 도망쳐 온 사람이다.

나를 따라 앞으로 갈 필요가 없다.

여기에 남아 군량을 재촉하고 운반하게 해야 한다.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제야 나는 처음 통역이 전했던 말이 완전히 잘못 들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뜻밖의 악명을 얻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하다

나는 나라의 대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 이런 좋지 않은 이름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이 한 번 퍼지면 다시 큰 의심이 생길 것이다.

위로는 나라에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내 죄가 된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임금께 사실을 아뢰는 것이다.


명을 받고 내려온 자신이 죄를 짓고 달아난 사람으로 몰렸다고 하소연하다

나는 임금의 명을 받고 이곳에 내려왔다.

그런데 내가 군문에 죄를 짓고 도망쳐 왔다는 말을 들었다.

밤낮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바늘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나라의 일 때문에 죽을 수는 있어도 악명을 쓰고 죽을 수는 없다고 하다

죽는 일 자체를 아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라의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이름을 뒤집어쓴 채 죽는 것은 차마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런 누명을 쓰고 죽으면 나라의 체면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명나라 군무 책임자가 다른 곳으로 떠날 때 직접 따라가 의심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중간 지역에서 군량을 재촉하라는 임무도 받고 있었다.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조정에서 직책을 벗기고 사실을 밝혀 달라고 청하다

엎드려 바라건대 조정에서 빨리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직책을 벗기고 죄를 다스려 달라.

그렇지 않다면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이런 누명을 씻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나는 죽더라도 임금과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자신을 헐뜯는 말이 명나라 지휘관에게 들어갔다고 덧붙이다

처음 명나라의 높은 군무 책임자가 조선에 왔을 때에도 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조선 대신 가운데 나라 일을 도울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과정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를 좋지 않게 말하며 믿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식으로 헐뜯었다고 한다.

명나라 책임자는 그 말을 마음속에 남겨 두었던 듯하다.


정유재란 무렵에도 자신을 헐뜯는 유언비어가 다시 퍼졌다고 하다

1597년 가을 내가 서울에서 일을 맡고 있을 때에도 나를 둘러싼 근거 없는 말이 다시 퍼졌다.

그 말이 안으로 들어가고 밖으로 전해져 명나라 사람들의 의심을 키웠던 것 같다.

이번에 명나라 군무 책임자가 한 말도 그런 오래된 유언비어가 쌓인 결과일 수 있었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의 명령에 따라 대구 일대의 군량 수송을 독촉하다

나는 안동에서 군량을 재촉한 뒤 영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안강 방면으로 향하려던 중 이덕형이 명나라 군무 책임자의 말을 급히 전해 왔다.

그 책임자는 새벽 일찍 길을 떠나기 직전 이덕형을 불러 말했다고 한다.

“군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군사가 굶게 되면 큰일을 그르칠 것이다.

조선 국왕은 왜 나라의 법으로 군량 업무를 그르치는 신하를 다스리지 않는가?”


여러 군량 담당자에게 지역을 나누어 맡기라고 명하다

명나라 책임자는 윤승훈 등을 불러 각자 길목의 군량 수송을 맡기도록 했다.

한 사람은 뒤쪽 지역의 곡식을 재촉하게 했다.

다른 사람은 별도의 지역에 머물며 수송을 살피게 했다.

나에게는 대구 등지로 급히 가서 군량을 더욱 마련하도록 했다.

명나라 대군의 이동을 따라 군량을 끊임없이 앞으로 옮기라는 뜻이었다.


안강에 있던 곡식도 경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다

안강은 경주에서 사십 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영천에서 경주로 가는 곧은 길과도 이어져 있었다.

여러 지역에서 모은 군량이 이미 안강에 들어와 있었다.

한 명나라 총병에게 줄 군량은 안강에서 어느 정도 지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나라 대군의 주력이 경주 쪽으로 향하자 안강의 곡식까지 다시 경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미 여러 번 옮긴 곡식을 다시 옮겨야 하는 형편을 한탄하다

경주와 주변 지역으로 이미 많은 곡식이 모였다.

백성들은 늙은이와 여자까지 나와 곡식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양산과 울산 부근에서는 일본군과 전투가 벌어져 백성들이 모두 흩어졌다.

운반에 동원할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다.


백성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많은 곡식을 옮길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곡식을 옮길 방법이 없었다.

남아 있는 백성에게 아무리 재촉해도 낼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나는 본래 군량을 전담하던 관리도 아니었다.

이 지역에 막 내려온 상태라 어느 곳에 얼마의 곡식이 있고 이미 어디로 얼마나 옮겼는지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급한 명령을 계속 받아야 했다.


방법은 없지만 대구 쪽으로 가 수송을 독촉하겠다고 하다

답답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영천에서 다시 대구 쪽으로 가 군량 수송을 두루 살피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 몹시 걱정스러웠다.


군량의 형편과 명나라 군대가 울산의 일본군을 처음 크게 이긴 일을 보고하다

나는 영천에서 이덕형의 급한 연락을 받고 대구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대구에서 이미 운반한 쌀과 콩이 상당량 있어 당장은 며칠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경주와 울산 아래쪽으로 명나라 대군이 모두 모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쓸 군량이 훨씬 급했다.


남아 있는 백성을 모두 동원해 군량을 운반하게 하다

나는 길마다 수령들에게 군량을 독촉했다.

현재 남아 있는 백성을 모두 동원해 곡식을 전선 쪽으로 보내게 했다.

나도 경주로 가 윤승훈 등과 만나 앞으로 어떻게 공급을 이어 갈지를 의논하려 했다.

그때 경상도 위쪽 지역의 군량 대부분은 이미 전선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울산에서 돌아온 군관이 명나라 선봉의 승전을 보고하다

그날 새벽 경기 왼쪽 방어 지휘관에게 딸린 군관 한 사람이 울산 전선에서 돌아왔다.

그가 전한 말은 이러했다.

“이십삼일 명나라 선봉이 일본군과 싸워 적의 목 오백여 개를 베었습니다.

일본군은 크게 놀라 진 안으로 달아났습니다.

명나라 군대가 곧 일본군 진영을 에워쌌습니다.”


다음 날 명나라 군대가 큰 화포를 쏘며 성을 공격하다

다음 날 일본군은 성 위에 붉은 깃발과 흰 깃발을 셀 수 없이 많이 세워 놓았다.

명나라 군대는 큰 화포를 쏘며 힘껏 공격했다.

여러 군사가 한꺼번에 바깥 성으로 들어갔다.

일본군을 많이 죽였다.

남은 적은 다시 안쪽 성으로 물러났다.

명나라 군대는 계속 그곳을 공격하고 있었다.


조선군도 명나라 군대 사이에 섞여 편전으로 적을 죽이다

우리나라 군사도 명나라 군대 사이에 섞여 함께 싸웠다.

편전을 쏘아 일본군을 맞혀 죽인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자세한 전황은 도원수 권율이 이미 보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매우 급했으므로 나도 우선 들은 사실을 곧바로 보고했다.


명나라 군대가 울산 안쪽 성을 공격했지만 일본군과 대치하게 되었다고 보고하다

다음 날 내 군관 구희신이 울산에서 돌아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명나라 군대와 조선군은 일본군이 들어간 안쪽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이 매우 험하고 튼튼했다.

쉽게 깨뜨릴 수 없었다.


일본군이 성벽 구멍에서 총을 집중해 쏘아 양쪽 군사의 피해가 커지다

일본군은 성 위와 성벽의 여러 구멍에서 총을 계속 쏘았다.

명나라 군사와 조선군 가운데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았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는 군대를 조금 뒤로 물린 뒤 성을 공격할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서생포 쪽에서 일본선 수십 척이 울산성을 구하러 오다

그때 서생포 방면에서 일본선 수십 척이 나타났다.

배들은 바다에 정박하며 성 안의 일본군을 도우려 했다.

명나라 장수들은 군사를 나누어 바닷가와 포구를 막았다.

일본군이 배에서 내려 육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밤 공격으로 일본군의 절반이 다쳤다는 소문도 들었으나 확실하지 않았다고 하다

그날 오후에는 명나라의 한 장수가 밤을 틈타 성을 공격하여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었고 절반가량이 다쳤다는 말도 들렸다.

하지만 전쟁터의 급한 소문이어서 정확한 사실인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나는 들은 대로 보고하되 이후의 소식을 기다렸다.


비와 동풍, 추위 때문에 들판에서 지내는 군사들이 얼어 다칠 것을 걱정하다

날씨도 나빠졌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동풍이 계속 불었고 바람은 점점 강해졌다.

밤이 되도록 군사들은 들판에서 그대로 지내고 있었다.

젖은 몸으로 추위를 맞으면 얼어 다칠 사람이 많을 것이 분명했다.

적과 싸우다 입는 피해뿐 아니라 추위로 쓰러질 사람이 생길까 몹시 걱정했다.


울산 전선의 형편과 우리 군사의 사상자를 보고하다

그해 마지막 날 나는 울산으로 갔다.

새해 첫날 새벽 도원수 권율과 경상도 순찰사를 비롯한 여러 장수와 함께 명나라 군무 책임자를 찾아가 새해 인사를 올렸다.

그는 곧 군량이 어떻게 운반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대군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군량 문제가 그만큼 절박했다.


명나라 제독이 조선군의 싸움을 칭찬하다

우리는 이어 명나라 제독의 막사로 들어갔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독은 앞선 전투에서 조선군도 힘껏 싸웠다고 말했다.

조선군 가운데에도 용감하게 적을 상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조선군이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 명나라 조정에 알려지는 것도 좋다고 하다

제독은 명나라 군대가 적을 공격하기도 쉽지 않은데 조선군까지 전혀 싸울 수 없다면 매우 답답할 것이라는 뜻으로 말했다.

그러나 조선 사람 가운데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명나라에서도 기쁘게 여길 것이라고 했다.

도원수와 우리 일행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물러났다.


나는 전선에 머물지 말고 뒤로 돌아가 군량을 재촉하라는 명령을 받다

조금 뒤 명나라 군무 책임자가 나에게 말했다.

“이곳에는 대군이 많이 모여 있어 군량 운반이 무엇보다 급하다.

의정이 여기에 머물 필요는 없다.

속히 뒤로 돌아가라.

뒤에 쌀 한 석이라도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 보내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곧 경주로 돌아왔다.


일본군은 험한 산에 세 겹의 돌성을 쌓고 있었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가 머물던 곳에서 일본군 진영까지는 한 마장 남짓이었다.

일본군은 험한 산기슭을 차지하고 세 겹으로 돌성을 쌓았다.

방어 시설이 매우 튼튼했다.

성 위에는 지붕이 있는 가림 시설까지 만들어 놓았다.

멀리서 보면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성 아래에 가까이 가면 일본군이 갑자기 총을 집중해 쏘았다

그러나 군사가 성 아래로 가까이 다가가면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군이 갑자기 총을 마구 쏘았다.

맞은 사람은 거의 살아남기 어려웠다.

앞선 여러 차례 공격에서 명나라 군사와 조선군이 많이 죽고 다쳤다.

그래서 더는 성으로 무작정 돌진하지 못했다.


성 안에 식량과 물이 없다는 말을 믿고 장기 포위를 생각하다

성 안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고 물까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명나라 지휘부는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 오랫동안 둘러싸 굶주리게 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다음 날 밤에는 성 밖 우물로 물을 길으러 나온 일본군 십여 명을 복병이 붙잡았다.

명나라 군무 책임자는 매우 기뻐했다.


붙잡은 일본군도 성 안의 물과 식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고 하다

붙잡은 사람들에게 성 안의 형편을 물었다.

그들도 식량이 부족하고 물이 없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래 포위할 경우 일본군이 스스로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군사의 전사자는 이백구십팔 명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여러 장수의 군사를 조사한 보고에 따르면 전사자는 이백구십팔 명이었다.

총탄을 맞거나 추위에 얼어 다친 사람은 팔백칠십육 명이었다.

원문에는 그 밖의 병력과 진중에 남아 있는 군사의 숫자도 적혀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글자가 크게 깨져 정확한 숫자를 확정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전투와 추위로 피해가 매우 컸다는 점이다.


평안도 군사는 그때서야 도착하기 시작했다

경기와 북쪽에서 온 군사 가운데 일부는 군량과 말먹이 운반에 동원되어 있었다.

평안도 군사도 그 무렵에야 전선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새 병력이 오고 있었지만 앞서 입은 손실을 곧바로 메우기에는 부족했다.


명나라 군대가 울산에서 물러나려 한다는 소식을 보고하다

나는 명나라 군무 책임자의 명령에 따라 경주에 머물며 뒤에서 군량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때 수군 지휘관 이운룡의 급한 보고가 도착했다.

초사흘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본선이 계속 이어져 서생포 방면에서 올라온다는 내용이었다.


크고 작은 일본선이 바다를 덮은 듯 몰려오다

수군 지휘관이 높은 곳에서 직접 바라보니 크고 작은 배들이 서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바다를 덮은 것처럼 많았다고 했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일본군이 울산성을 구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바다로 보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육지에서도 일본 지원군이 산 위로 몰려들다

같은 날 정탐 군관도 돌아와 보고했다.

전날 밤 명나라 군대가 성을 포위해 싸웠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조금 뒤로 물러났다고 했다.

육지의 일본 지원군은 산 위로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바다에서도 일본선이 셀 수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쪽 성의 일본군과 바깥의 지원군이 서로 연결될 위험이 커졌다.


전선까지 보낸 군량을 다시 뒤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다

군량은 이미 전선 가까이까지 옮겨 놓았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가 물러날 가능성이 생기자 군량 역시 다시 뒤쪽으로 옮겨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날 초저녁에는 경기 쪽 방어 지휘관에게서도 급한 보고가 왔다.

명나라 군대가 울산에서 물러나 경주 쪽으로 돌아올 뜻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길에서 이미 뒤로 오는 명나라 군사들이 보였다고 하다

실제로 길에서는 울산 쪽에서 물러나오는 명나라 군사가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군량도 경주로 다시 거두어들이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울산성을 포위하고 공격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군사의 피해는 컸다.

반대로 일본군은 육지와 바다에서 지원군을 계속 늘리고 있었다.

나는 우선 형세가 어떻게 되는지를 조금 더 살펴야 한다고 보고했다.


울산 공격이 실패한 뒤의 일을 수습하다

이번 울산 전투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처음 명나라 군대가 공격했을 때 일본군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명나라 기병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일본군은 크게 놀랐다.

바깥 진영에 있던 일본군은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크게 무너졌다.

일본군이 가지고 있던 여러 물건도 명나라 군대가 빼앗았다.


처음 이겼을 때 바로 안쪽 성까지 밀어붙였다면 함락할 수도 있었다고 하다

그때 패한 일본군은 안쪽 성으로 달아났다.

명나라 군대가 바로 뒤따라 안쪽 성 안까지 밀고 들어갔다면 성을 즉시 무너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승리를 거둔 뒤 군대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 사이 일본군이 안쪽 성으로 모두 들어갔다.

성문을 닫고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일본군이 성문을 닫은 뒤부터 전투가 완전히 달라지다

안쪽 성은 지형이 험했다.

성벽도 튼튼했다.

일본군은 높은 곳을 차지하고 총을 쏘았다.

명나라 군대와 조선군은 여러 차례 성을 공격했다.

하지만 성벽을 오를 만한 충분한 장비가 없었다.

성 가까이 가는 군사는 일본군의 총탄을 맞았다.

공격은 번번이 실패했다.

죽은 사람이 날마다 성 아래에 쌓였다.


일본의 지원군이 좌우 지역에서 육지와 바다를 통해 몰려들다

그동안 경상도 좌우 여러 지역의 일본군이 울산성을 구하러 왔다.

육지와 바다에서 병력이 몰려들었다.

그 수가 매우 많았다.

명나라 장수들도 일본군의 지원 병력이 커지는 것을 알고 일부 병력을 나누어 막게 했다.


안쪽 성의 일본군과 밖의 지원군이 호응해 공격하다

하지만 성 안의 일본군과 밖에서 온 군대가 서로 호응하며 명나라와 조선군을 공격했다.

전선에 있던 명나라 군사와 조선군의 피해가 크게 늘었다.

우리 군사 가운데에도 혼란을 틈타 흩어져 달아난 사람이 많았다.

울산 공격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여러 조선 장수가 경주로 모이고 군사 수백 명도 다시 집결하다

며칠 뒤 여러 조선 장수가 경주에 모였다.

흩어졌던 군사도 조금씩 되돌아왔다.

그때 다시 모인 병력은 모두 수백 명 정도였다.

나는 도원수 권율과 의논했다.

이들을 우선 경주에 머물게 하며 다시 정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일부 장수는 오른쪽 지역으로 돌려보내 기병을 다시 모으게 하다

모든 군사를 경주에만 둘 수는 없었다.

일부 장수는 오른쪽 지역으로 돌아가 흩어진 말과 군사를 다시 모으게 했다.

일본군이 전투 뒤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방어를 다시 세워야 했다.


명나라 군대를 위해 경주에 모아 둔 군량을 일본군에게 빼앗기지 않게 하다

명나라 대군을 먹이려고 경주에 운반해 둔 군량이 상당히 많았다.

군대가 물러간 뒤 곡식을 그대로 놓아두면 일본군이 차지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순찰사의 종사관에게 우리 군사의 식량으로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게 했다.

나머지는 안전한 곳에 보관하게 했다.


강원도 군사가 멀리 운반해 온 군량도 안전한 곳으로 옮기다

강원도 군사가 멀리서 운반해 온 곡식 가운데에도 아직 전선 가까이에 남은 것이 있었다.

원문에는 삼천을 넘는 수량이 언급되지만 단위와 일부 글자가 깨져 정확한 전체 값을 확정하기 어렵다.

나는 일본군과 너무 가까운 곳에 두지 말고 영해 등 비교적 안전한 지역의 창고로 옮겨 보관하도록 명했다.


명나라 군대의 퇴각 소식에 경상도 백성이 크게 놀라 달아나다

명나라 군대가 울산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퍼지자 경상도 백성은 크게 놀랐다.

남녀노소가 앞다투어 달아났다.

일본군이 다시 북쪽으로 쳐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 도의 민심이 크게 흔들렸다.


민심을 조금 안정시키기 위해 당분간 경주에 머물기로 하다

이 상태에서 나까지 곧바로 떠난다면 경주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할 것이다.

나는 당분간 경주에 머물며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안정시키기로 했다.

형세가 조금 진정된 뒤 안동에 있는 명나라 군무 책임자 쪽으로 올라가 다음 명령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간 뒤 경주와 영천 군사가 일본군을 공격한 일을 보고하다

경주에서 새로운 보고가 올라왔다.

명나라 군대가 물러난 뒤 일본군 이백여 명이 밖으로 나왔다.

어떤 자는 말을 탔고 어떤 자는 걸어서 움직였다.

그들은 길에 떨어져 있던 명나라 군사의 갑옷과 물건을 주워 가고 있었다.

그때 경주 군사가 갑자기 돌진해 공격했다.

일본군의 목 열일곱 개를 베었다.


일본군 삼백여 명과 싸워 적을 죽이고 한 명을 사로잡다

그달 어느 날에는 일본군 삼백여 명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기병과 보병이 섞여 있었다.

우리 군사가 한꺼번에 돌진했다.

여러 일본군을 화살로 맞혔다.

적의 목도 베었다.

한 명은 살아서 사로잡았다.


일본군 사백여 명이 나왔을 때에도 스무 명이 넘는 적을 베다

또 다른 날에는 일본군 사백여 명이 나와 돌아다녔다.

경주 군사가 다시 돌진해 싸웠다.

적의 목 스무 개가 넘게 베었다.

영천 쪽에서도 그 지역 일본군이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 군사가 맞서 싸워 적의 목 열세 개를 베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경주와 영천 군사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싸워 담력이 생긴 것이라고 하다

내가 살펴보니 경주와 영천 군사가 본래부터 다른 고을 사람보다 특별히 용감하고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적진 가까이에 살았다.

날마다 일본군과 마주쳤다.

자주 싸우면서 마음과 담력이 굳어졌다.

그래서 적은 수로 많은 일본군을 만나도 쉽게 물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만 명을 억지로 징발하는 것보다 그 지역에서 자원한 백 명이 낫다는 옛말이 맞다고 하다

옛사람이 군사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멀리 있는 사람 만 명을 억지로 끌어오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 모인 백 명을 얻는 것이 낫다고 했다.

정말 빈말이 아니다.

자기 고장을 지키는 사람은 지형을 잘 알고 도망갈 곳도 없으니 마음이 훨씬 단단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군사를 제대로 먹이거나 훈련시키지 못한다고 탄식하다

문제는 우리 군대에 평소의 훈련과 지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군사는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자기 무기와 옷까지 자기가 준비해야 한다.

나라에서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이러니 아무리 용감하고 힘껏 싸우려는 사람이라도 굶고 지치면 자기 재능과 힘을 다 쓸 수 없다.


공을 세워도 포상이 늦어 군사의 마음이 꺾인다고 하다

게다가 공을 세운 뒤에도 상이 제때 내려오지 않는다.

싸운 사람이 공을 인정받지 못하면 마음이 식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좋은 군사가 저절로 생기기를 바랄 수 없다.


경주에는 칠백여 명, 영천에는 백여 명의 쓸 만한 군사가 모여 있었다

당시 경주에는 다시 모인 군사가 칠백여 명 있었다.

영천에도 백여 명가량의 쓸 만한 군사가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한 사람이 열 사람을 상대할 만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잘만 돌보면 매우 귀중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군량과 옷·갑옷·활·화살을 주어 특별히 돌보자고 하다

이들에게 군량을 날마다 계산해 나누어 주어야 한다.

옷과 갑옷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활과 화살도 지급해야 한다.

다른 군사와 달리 특별히 돌보며 사기를 북돋워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더 많은 군사가 차츰 모여들 것이다.

앞으로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병력도 지금 숫자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


전공자의 이름은 도원수가 이미 보고했으므로 다시 적지 않는다고 하다

당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사람의 이름과 공의 등급은 도원수가 이미 따로 보고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시 적지 않았다.

다만 경주와 영천 군사가 힘껏 싸웠다는 사실과 이들을 반드시 포상해야 한다는 뜻을 다시 강조했다.


관련 관청에서 전후 전공을 조사해 즉시 상을 내려 달라고 청하다

관련 관청에서는 앞뒤의 전공 보고서를 조사해야 한다.

공을 등급별로 나누어 빨리 상을 내려야 한다.

상을 주어야 할 때 제때 주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

군사의 마음을 격려하려면 포상이 반드시 때에 맞아야 한다.


도 안의 군사와 백성을 수습한 뒤 올린 글

도 안의 군사와 백성을 어떻게 수습했는지에 관해서도 별도의 장계를 올렸다.

그러나 이 부분은 원문에서 자세한 내용이 다른 글에 있다고만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원문에 없는 내용을 덧붙이지 않는다.


성안의가 직무를 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다

감사 쪽에서 성안의를 문제 삼는 보고를 올린 듯하다.

명나라 제독이 남쪽으로 내려올 때 경계에 나가 맞이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또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겁게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아는 사정은 달랐다.


성안의는 명나라 제독이 내려올 때부터 다른 군량 업무를 맡고 있었다

명나라 제독이 남쪽으로 내려올 때 성안의가 경계에 나가 맞이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까닭 없이 자기 직무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 경주와 울산 전선의 군량을 수습하는 일이 매우 급했다.

성안의에게도 그 일을 나누어 맡긴 상태였다.


울산 전투 뒤 경주까지 왔다가 다시 내 명령으로 군량을 거두러 가다

내가 경주에 있을 때 울산의 전투가 벌어졌다.

성안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주까지 왔다.

그 뒤 길을 따라 운반 중이던 군량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성안의와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나누어 맡겼다.

각자 군량을 거두어 경주와 안전한 창고로 옮기게 했다.


길에 실려 오던 군량을 나누어 거두고 창고에 저장하게 하다

여러 지역에서 운반해 오던 군량이 길에 머물러 있었다.

명나라 군대가 갑자기 물러난 뒤에는 그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나는 성안의 등에게 지역을 나누어 맡겨 곡식을 수습하도록 했다.

거둔 곡식은 경주 등 필요한 곳으로 들이거나 인근의 안전한 창고에 보관하게 했다.


경주에 남은 군량을 여러 진영에 나누어 주는 일도 맡기다

성안의에게는 경주에 남아 있던 곡식도 조사하게 했다.

필요한 군영에는 군량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나중에 성안의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도 오른쪽 지역의 군량과 여러 일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나라 장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실만으로 직무를 버렸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다

겉으로 보면 중요한 명나라 장수가 내려왔는데 경계에 나가지 않은 것이 잘못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때 맡겨진 다른 일이 있었다.

그가 일을 내버려 두고 편한 곳으로 달아난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명령한 일이었으므로 그 사정을 알고 있다.


자신은 중요한 자리를 맡고도 일을 피하는 사람을 평소 매우 미워한다고 밝히다

최근 나라가 위급한데도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 자기 편의를 구하며 일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평소 그런 일을 매우 분하게 생각했다.

대신과 관리가 나라가 어려울 때 자기 몸부터 생각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러나 성안의의 이번 일은 그런 경우와 다르다.


현지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된 보고가 생겼을 수 있다고 하다

성안의의 사정은 내가 직접 아는 일이다.

하지만 조정에 있는 사람이나 서로 다른 곳에 있던 관리들은 그가 무슨 명령을 받고 어디에 갔는지 모두 알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처럼 그가 임무를 피했다고 오해하는 보고가 생긴 것 같다.


잘못이 있다면 벌하되 맡은 일을 한 사람에게 억울한 죄를 씌워서는 안 된다고 하다

그에게 다른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조사해 죄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맡긴 일을 수행하느라 다른 곳에 있었던 사실까지 직무를 회피한 것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내가 직접 알고 있는 사정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함께 아뢴다.

조정에서 사실을 자세히 살펴 공정하게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열네째 권 끝

 

 

 

 

 

 

징비록 제15권

군문에서 남긴 기록

1595년, 나는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임금의 명을 받아 경기·황해·평안·함경 네 도의 군무를 총괄하여 살피는 일을 맡았다.

그때 각 도와 주고받은 공문과 명령, 여러 가지 시행 지침을 모아 두었다.

그러나 전쟁과 혼란을 거치는 동안 흩어져 거두지 못한 것이 거의 3분의 2에 이르렀다.

나는 재주도 능력도 부족한 사람으로 나라의 큰일을 맡았지만, 안팎의 일을 돌아보면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뒤에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 이 기록을 다시 보니 부끄러운 마음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나라 일을 맡아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하려 했으며, 또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뒤의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남겨 둔다.

네 도에 군정의 큰 원칙을 알리다

1595년 10월 13일, 여러 도에 다음과 같은 뜻을 알렸다.

모든 일은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질서가 잡힌다.

지금 나라의 형편은 매우 위급하다.

큰 적이 아직 완전히 물러난 것도 아니다.

남쪽의 여러 도는 다른 대신이 맡아 처리하게 되었고, 나는 경기·황해·평안·함경 네 도의 일을 맡게 되었다.

이덕형을 부책임자로 삼고, 몇몇 관원을 종사관으로 두어 함께 일을 계획하고 처리하게 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매우 많다.

그러나 큰 줄기로 나누면 몇 가지다.

먼저 전쟁 때문에 죽고 흩어진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

백성은 나라의 뿌리이므로 먼저 살려 놓아야 한다.

그다음 군량을 마련한다.

군사를 훈련하고 부대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

각 지역의 지형을 살펴 중요한 길목과 험한 곳을 지킬 방책을 세운다.

무기와 군수품을 마련한다.

봉수와 연락 체계도 정비한다.

이것이 지금 가장 큰 일들이다.

명령이 아래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관찰사가 수령들을 잘 감독하고, 군사를 맡은 장수들도 마음과 힘을 다한다면 나라 형편이 위급해도 아직 수습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일을 미루고 자기 직책을 가볍게 여기며 하루하루만 넘긴다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지금 군정의 가장 큰 폐단 가운데 하나는 명령이 아래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체찰사의 명령이 감사와 병사에게 내려간다.

감사와 병사의 명령은 각 지역을 책임지는 군사 지휘관에게 내려가야 한다.

그 지휘관의 명령은 다시 수령에게 이어져야 한다.

수령의 명령은 지역의 군사 책임자에게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어느 단계에서든 명령이 끊어지면 아무리 좋은 계획을 매일 내려보내도 실제 효과는 없다.

지휘 체계부터 세워야 한다

군사 조직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니 명령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위에서는 명령하지만 아래에서는 따르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지휘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장수와 군사가 서로 따로 움직인다.

앞으로는 군사와 관련된 모든 일을 정해진 지휘 체계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각 지역은 자기 위 지휘관의 명령을 따른다.

상급 지휘관도 정해진 책임자에게 보고한다.

명령 체계를 함부로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체찰사라고 해서 나라의 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을 정해진 법과 질서에 따라 해야 한다.

경기의 군사를 백성의 마을에서 훈련하게 하다

나라의 남쪽과 북쪽 모두 전쟁의 위험이 아직 남아 있었다.

군사를 길러 대비하는 일은 하루가 급했다.

하지만 훈련 방법을 잘못 잡으면 군사를 만들기도 전에 백성부터 지치게 된다.

지금까지는 훈련한다고 사람들을 관청에 불러 모으거나 먼 군영으로 오가게 하는 일이 많았다.

며칠씩 먼 곳에 머물면서 자기 먹을 것까지 마련해야 했다.

군사 훈련의 성과는 별로 없는데 백성의 힘만 빠졌다.

가까운 마을에서 훈련해야 한다

새로 마련한 훈련법은 이런 폐단을 없애려는 것이다.

각 고을을 여러 지역으로 나누고 다시 마을별로 군사를 조직한다.

마음이 바르고 일을 부지런히 하며 책임감 있는 사람을 골라 초관으로 삼는다.

초관은 작은 지역 군사를 지휘하는 책임자다.

초관이 다시 그 아래의 기총과 대총을 고르게 한다.

기총과 대총은 더 작은 군사 조직을 맡는 사람들이다.

훈련장도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만든다.

농사가 한가한 때 각자 자기 지역에서 훈련하게 한다.

활을 쏘고 총포를 다루며 창과 여러 무기를 연습한다.

굳이 매일 먼 관청이나 군영을 찾아다니게 하지 않는다.

아전이 군사 일을 이용해 백성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다

사람들이 자기 고장에서 훈련하면 먼 길을 다닐 필요가 없다.

관청에서 오래 머물며 먹을 것을 마련할 필요도 없다.

또 병방이나 아전이 군사를 모은다는 구실로 백성을 함부로 부리거나 물건을 뜯어낼 기회도 줄어든다.

백성은 덜 고생하고 군사 훈련은 오히려 꾸준히 할 수 있다.

훈련을 잘한 책임자는 상을 주다

초관과 그 아래 지휘관 가운데 자기 군사를 성실하게 훈련하여 실제 쓸 수 있는 군대로 만든 사람은 반드시 상을 주어야 한다.

성과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에게는 실제 벼슬을 주는 방안까지 생각할 수 있다.

책임을 맡은 사람이 열심히 하면 상을 받고 게으르면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경기와 황해도의 군사 지휘 구역을 다시 정비하다

나라가 오랫동안 평화를 누린 탓에 사람들은 군사를 거의 알지 못했다.

갑자기 전쟁을 만나자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지난 일을 경계하여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하려면 군사를 훈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훈련을 한다면서 백성을 괴롭힌다면 오래 시행할 수 없다.

군사는 평소부터 소속과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

평화가 오래되면서 예전 군사 조직이 거의 무너졌다.

군사에게 일정한 부대가 없었다.

누가 누구의 지휘를 받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면 장수는 따로 나오고 군사는 들판에서 제각각 모였다.

무리를 잃고 흩어진 양 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군대로 강한 적을 상대했으니 패하는 것이 당연했다.

먼저 편제를 만들고 그다음 훈련해야 한다

부대의 숫자와 소속이 확실해야 훈련도 할 수 있고 명령도 내릴 수 있다.

경기에는 수원·광주·파주·장단 등 중요한 지역을 중심으로 큰 군사 지휘 구역을 두었다.

황해도에는 해주와 황주 등을 중심으로 지휘 체계를 만들었다.

강화와 교동은 섬에 있으므로 육지 부대에 억지로 넣지 않고 별도로 운영하는 것이 알맞았다.

군사의 실제 숫자를 장부로 만들다

각 군사 지휘 구역에 군사가 몇 명 있는지를 조사한다.

각 고을마다 초관과 기총, 대총이 누구인지도 적는다.

황해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장부를 만든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장부를 보고 바로 군사를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황해도의 수군도 누가 지휘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황해도 해안의 여러 포구에는 수군이 있었다.

그런데 육군과 수군의 지휘 관계가 불분명했다.

어떤 포구는 자기가 어느 수군 지휘관에게 속하는지도 분명히 모르는 형편이었다.

이래서는 적을 막을 수 없다.

앞으로 수군 지휘관은 자기에게 속한 포구를 모두 파악해야 한다.

각 포구에 군사가 몇 명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전선이 몇 척 남아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평소 배를 수리하거나 새로 만들 때 필요한 목재를 어느 곳에서 마련할지도 미리 정해 놓아야 한다.

군량을 미리 모아 두어야 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이 지나면서 각 도와 고을의 창고가 거의 비었다.

앞으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를 먹일 곡식을 마련할 곳이 없다.

군량이 없다면 군사가 수천 명, 수만 명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높은 성과 깊은 해자가 있어도 먹을 것이 없으면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군량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군량으로 돌릴 수 있는 수입을 모두 살피다

군량을 마련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토지에서 거두는 세금이 있다.

일부 공물을 쌀로 대신 거두는 방법도 있다.

둔전에서 생산하는 곡식이 있다.

노비가 내는 부담 가운데 곡식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있다.

군역이나 번을 대신해 내는 곡식도 있을 수 있다.

스스로 나라를 돕겠다며 곡식을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 재원을 하나씩 모아 군량으로 저장해야 한다.

성이 없는 곳에 군량을 많이 두는 것은 위험하다

문제는 많은 고을에 튼튼한 성이 없다는 것이다.

방어하기 어려운 고을 창고에 군량을 많이 쌓아 두면 적이 왔을 때 그대로 빼앗길 수 있다.

전쟁이 벌어진 뒤 옮기려고 하면 이미 늦는다.

따라서 지역마다 미리 안전한 저장 장소를 정해야 한다.

광주 쪽 군량은 남한산성처럼 지키기 좋은 곳에 둘 수 있다.

수원 쪽 군량은 수원의 본창이나 독성 같은 방어 거점을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지역도 가까운 산성이나 튼튼한 창고 가운데 가장 알맞은 곳을 골라야 한다.

지역마다 사정에 맞게 처리한다

모든 지역에 똑같은 방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백성이 곡식을 옮기기에 편한지도 살펴야 한다.

산성의 창고가 실제로 튼튼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관찰사가 현지 형편과 백성의 뜻을 살펴 가장 알맞은 장소를 정하도록 했다.

다른 종류의 곡식을 한 창고에 뒤섞지 않는다

여러 종류의 곡식을 한 창고에 마구 섞어 두면 나중에 조사하기 어렵다.

종류별로 따로 보관한다.

창고 문에는 어떤 곡식이 들어 있는지 표시한다.

어디에서 들어온 곡식인지도 기록한다.

얼마가 들어왔는지 장부에 적는다.

종사관을 때때로 보내 장부만 보지 말고 실제 됫박으로 재어 양이 맞는지 확인하게 한다.

둔전의 수확도 정확히 보고하게 한다

둔전에서 나오는 곡식도 얼마를 거두었는지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장부를 만들어 보고하게 한다.

필요하면 바로 군량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아직 농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곡식을 빼앗듯 걷어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소금과 바다의 이익을 나라 살림에 이용하다

큰 전쟁을 치르려면 철과 소금 같은 중요한 물자의 이익을 나라 살림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사방이 바다다.

바다에서는 많은 소금이 나온다.

그런데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그 큰 이익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을 이용해 소금을 내륙까지 운반할 수 있다

한강과 임진강 같은 큰 강을 이용하면 바닷가의 소금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옮길 수 있다.

배를 모아 강으로 운반하면 경기와 황해도는 물론이고 충청도와 강원도의 백성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산골에서는 당시 소금값이 금값처럼 비싼 곳도 있었다.

바닷가에서 소금을 마련해 강으로 옮기면 백성은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관청은 그 소금을 곡식과 바꾸어 군량을 마련할 수 있다.

공적인 배와 민간 배를 알맞게 활용한다면 해마다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당장의 작은 이익만 생각한 계획이 아니다.

오랫동안 나라 살림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검토해야 한다.

평안도의 서북 방어를 정비하다

평안도 백성은 지난 4년 동안 계속 군사를 내고 군량을 운반했다.

사람들의 힘이 거의 다 빠졌다.

그런데 또 서쪽 국경에서 경보가 들려왔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대비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천 리 밖의 세부 사정까지 내가 하나하나 정할 수는 없다.

실제 상황에 따른 판단은 관찰사와 병사가 해야 한다.

다만 큰 원칙은 미리 알려 주었다.

지친 군사를 넓은 들판에 흩어 놓아서는 안 된다

압록강을 따라 긴 지역을 지친 군사 몇 명씩 나누어 지키게 해서는 큰 적을 막기 어렵다.

적의 많은 군사가 빈 곳을 타고 갑자기 들어올 수도 있다.

넓은 들판에서 아무 의지할 곳 없이 맞붙으면 우리 군사가 먼저 겁을 먹을 수 있다.

승패를 장담할 수도 없다.

험한 지형과 성을 먼저 이용해야 한다

먼저 지형을 살핀다.

험하고 지키기 좋은 곳을 고른다.

이미 성이 있는 곳에는 근처 작은 부대까지 합쳐 함께 지키게 한다.

군량도 모은다.

화약과 무기도 넣어 둔다.

조총과 각종 총통, 큰 화포를 준비하여 적이 접근할 때 기세를 꺾도록 한다.

성이 없어도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은 막는다

성이 없는 곳이라도 적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면 버려서는 안 된다.

험한 지형을 이용해 먼저 방어선을 만든다.

적이 쉽게 이길 수 없는 모양을 갖춘 뒤 기다려야 한다.

산과 숲, 골짜기에는 적을 의심하게 만들 시설이나 가짜 진지도 마련할 수 있다.

여러 방어 지점이 서로 연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적이 한두 곳에서 이기더라도 안쪽 깊이 들어오기 어렵게 해야 한다.

힘으로만 싸우지 말고 꾀를 써야 한다

병법에는 적을 반드시 힘으로만 깨뜨려야 한다는 법은 없다.

속이고 유인하여 적을 무너뜨리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다.

현지 장수들은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압록강 방어 구역을 나누어 맡긴다

강계에서 의주까지 압록강을 따라 여러 군사 지휘 구역을 두었다.

위쪽과 아래쪽 지역을 나누어 장수들이 서로 도울 수 있게 했다.

병사는 전체를 지휘한다.

이렇게 지휘 구역을 나눈 것은 아무 까닭 없이 한 일이 아니다.

군사만 있고 먹을 것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전쟁 이후 국경의 군사는 매우 줄었다.

그렇다고 군사만 많이 모아 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먹일 곡식이 없으면 군대를 유지할 수 없다.

각 지역에서 실제 필요한 군사를 고른다.

중요한 곳에는 포수와 사수를 더 배치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군사가 먹을 식량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평안도 안쪽 고을도 지원군을 준비해야 한다

귀성과 태천, 운산 같은 안쪽 고을의 군사도 정비해야 한다.

국경에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 돕게 한다.

어느 부대가 어느 길을 따라 움직이는지 미리 정한다.

누구의 명령을 들을지도 정한다.

그래야 갑자기 일이 생겨도 군사들이 흔들리지 않는다.

평안도에는 여섯 개의 큰 군사 지휘 구역이 있었다

다른 도는 큰 군사 지휘 구역이 대개 네다섯 곳이었다.

평안도에는 여섯 곳이 있었다.

원문에는 평양에 속한 고을이 7곳, 영변 쪽이 4곳, 귀성 쪽이 4곳, 성천 쪽이 10곳이라고 적혀 있다.

나머지 지역의 숫자는 원문 글자가 크게 깨져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각 지휘 구역에 속한 고을 숫자가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서쪽의 적은 어느 길로 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평안도에서는 적이 압록강 위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아래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가까운 고을끼리 지휘 구역을 나누어 놓았다.

평상시에는 자기 지역에서 훈련한다.

전쟁이 나면 주장 명령에 따라 다른 지역을 돕는다.

중요한 길목을 막기도 한다.

적이 일부 지역에서 이기더라도 안쪽 군사가 서로 의지해 적이 깊이 들어오는 것을 막게 하려는 것이다.

포수 훈련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최근 평안도의 포수들은 이미 훈련을 받아 솜씨가 꽤 나아졌다고 했다.

주장이 미리 계책을 정해 놓고 침착하게 움직인다면 큰일이 생겨도 제대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군사 명부를 다시 만들게 하다

각 지휘 구역에 실제 군사가 몇 명인지 조사한다.

어느 고을이 어느 지휘 구역에 속하는지도 분명히 한다.

초관과 기총, 대총의 이름을 모두 장부에 적는다.

나중에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중요한 성의 보수 계획도 미리 세우다

중요한 지역에 있는 성 가운데 방어하기 불편한 곳은 고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백성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큰 공사를 무턱대고 벌여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한지 먼저 계산한다.

겨울에는 땅이 얼어 공사하기 어려우므로 계획과 준비만 해 두었다가 봄에 시작해도 된다.

남한산성에 군량 창고를 만들게 하다

경기 관찰사에게 남한산성 안에 군량 창고를 세울 곳을 빨리 조사하라고 했다.

광주목사와 함께 현장을 살펴 창고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보고하게 했다.

군량 창고는 앞으로의 방어와 직접 연결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공사를 시작해 놓고 제때 완성하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

필요한 인원과 공사량을 계산하여 형편에 맞게 시행하도록 했다.

광주 백성의 힘만으로 부족하면 다른 인력을 이용하다

광주 백성이 너무 지쳐 공사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다른 인력을 이용해야 한다.

상번하러 오는 사람이나 수군 가운데 활용할 수 있는 사람, 그 밖의 인력을 적당히 돌려쓸 수 있다.

모든 부담을 농민에게 몰아서는 안 된다.

함경도에는 먼저 백성을 살리는 정치를 하라고 명하다

정치는 너그러움만 써도 안 되고 엄격함만 써도 안 된다.

두 가지를 알맞게 써야 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직후 백성이 죽고 흩어진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

백성을 위로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살아갈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그 뒤 다른 제도를 차례로 시행해야 한다.

함경도의 피해는 특히 참혹했다

함경도는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삼수와 갑산 같은 깊은 산골과 북쪽 여러 고을은 더욱 멀다.

전쟁 뒤에는 적은 백성이 전쟁에서 죽고 굶어 죽었다.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피해가 심한 곳도 있었다.

수령과 변방 장수가 남은 백성까지 괴롭혀서는 안 된다

이런 때 관리들이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살아남은 사람에게 달리 살 길이 없다.

먼 지역의 백성이 계속 수탈을 당한다면 나라를 원망하게 된다.

수령과 장수가 하루 동안 백성에게 끼치는 폐단조차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현지의 폐단을 자세히 조사해 없애야 한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 그곳의 일을 모두 알 수 없다.

감사와 병사가 제대로 보고하지 않으면 백성이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지도 알 수 없다.

현지에서 직접 조사해야 한다.

군사와 백성에게 어떤 부담이 있는지 낱낱이 살핀다.

잘못된 것은 없앤다.

백성을 살려 주지도 않으면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이 뜻을 각 고을에 다시 분명하게 알리게 했다.

평안도의 화포 시설과 군량을 정비하다

평안도의 여러 준비는 관찰사와 병사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어사를 내려보낼 때 이미 큰 원칙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 가운데 특히 강가 일대가 걱정스러웠다.

군사가 부족했다.

성의 시설도 충분하지 않았다.

무기도 잘 갖추어지지 않았다.

화포를 쏘는 누각을 성에 설치해야 한다

성을 지키는 데 화포를 설치한 누각이 매우 중요하다.

화포를 아는 기술자도 함께 보내게 했다.

돌과 나무를 이용해 튼튼하게 만든다.

안에 군사가 들어가 화포를 쏠 수 있게 한다.

적의 화살이나 총탄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평양 같은 큰 성에는 여러 화포를 갖추어야 한다

평양은 한 도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 필요한 화포 시설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였다.

화포 누각을 만든 뒤 천자포·지자포·현자포·황자포 같은 여러 화포와 불랑기 계통의 큰 화포를 두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평소에도 계속 발사 훈련을 한다.

한번 제대로 준비해 두면 오랫동안 쓸 수 있다.

겨울에 당장 공사를 할 수 없으면 필요한 목재부터 미리 마련한다.

다음 봄에는 반드시 완성하게 해야 한다.

국경의 성에는 쌀이 몇십 석밖에 없는 곳도 있었다

압록강 주변의 성과 진을 살펴보니 남아 있는 군량이 매우 적었다.

많은 곳도 쌀이 몇십 석 정도에 불과했다.

어떤 곳은 겨우 몇 석밖에 없었다.

그 정도 군량으로 어떻게 많은 군사를 모아 오랫동안 지키겠는가.

내륙 곡식을 국경까지 옮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토지세를 쌀로 바꾸어 국경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운반이 어렵다.

의주처럼 먼 곳까지 옮기는 것은 특히 힘들다.

내륙 역시 변고가 생기면 자기 지역의 곡식을 지켜야 한다.

위급한 순간에 모든 곡식을 한꺼번에 국경으로 보내기는 어렵다.

따라서 국경 가까운 곳에서 군량을 마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장기전이 이어지면 나라가 버티기 어렵다

전쟁이 3년이나 이어지면 나라가 나라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여러 해 전쟁을 겪었다.

아직 위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평안도 안에서 스스로 곡식을 마련하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둔전을 크게 넓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둔전이었다.

평안도에는 기름지고 넓은 땅이 많았다.

안주와 정주, 박천 부근에도 갈대밭과 묵은 땅 가운데 농사지을 수 있는 곳이 적지 않았다.

다음 해에 이런 땅을 갈아 농사를 지으면 군량을 얻을 수 있다.

전년에 내려간 향병 2천5백여 명도 활용할 수 있는지 살피다

전년에 내려보낸 향병이 약 2천5백 명 남짓 있었고 여러 고을에 나누어 배치되어 있었다.

현재 그 가운데 얼마나 남아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쓸 수 있는 사람을 모아 둔전에서 농사짓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었다.

강가에 번을 서러 온 수군 가운데 실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도 활용할 수 있다.

사람뿐 아니라 씨앗과 소도 필요하다

둔전을 만든다고 땅만 정해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농사 지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씨앗도 필요하다.

소와 농기구도 필요하다.

평안도 안에서 소를 얼마나 마련할 수 있는지도 조사해야 했다.

현지에서 이 모든 문제를 자세히 계산하여 시행하도록 했다.

각 지휘 구역이 자기 군사의 식량을 계산하게 하다

군사 편제가 확실하면 군량도 계산하기 쉽다.

어느 고을에 군사가 100명 있다면 그 고을은 100명이 몇 달 동안 먹을 곡식이 얼마인지 계산해 미리 마련한다.

한 지휘 구역에 속한 여러 고을이 각자 자기 몫을 준비한다.

그러면 큰 군량을 한꺼번에 마련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간단하면서도 오래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포수와 사수의 숫자를 따로 조사하다

각 지휘 구역마다 포수가 몇 명인지 조사한다.

활을 잘 쏘는 사수가 몇 명인지도 조사한다.

초관과 기총, 대총의 이름도 함께 장부에 적는다.

나중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신분에 관계없이 실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활용하다

포수와 사수는 양인만 따질 필요가 없다.

공적인 노비든 개인 노비든 실제로 무기를 다룰 수 있다면 군사 조직에 넣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사람 가운데 본래 다른 군역을 지고 국경에 번을 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다시 다른 부대에 넣으면 한 사람이 두 가지 부담을 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는 현지에서 자세히 살펴 해결 방법을 보고하게 했다.

무기를 한 자루씩 실제로 조사하게 하다

도 안에 현재 남아 있는 군기를 조사해야 한다.

활과 화살이 얼마나 있는지 본다.

조총이 몇 자루 있는지 본다.

승자총통을 비롯한 작은 총통이 몇 개인지 살핀다.

큰 화포와 작은 화포도 몇 문인지 조사한다.

각 무기가 어느 곳에 보관되어 있는지까지 장부로 만들어야 한다.

화약은 가장 중요한 군수품이다

화약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도 안에 몇 근이나 남아 있는지 조사한다.

전에 명나라 쪽에서 받은 화약을 의주와 평양을 비롯한 몇 곳에 나누어 둔 것이 있었다.

그 화약을 다시 정제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아직 제대로 손보지 않은 것이 있다면 빨리 다시 정제한다.

화약과 화포 기술을 현지 사람에게 가르치다

화약이 부족하면 더 만들어야 한다.

화포 기술자를 국경으로 보내 현지 사람 가운데 재주 있는 사람을 뽑는다.

화포를 만들고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다.

앞으로 중앙에서 기술자가 내려오기만 기다리지 않고 현지에서도 무기를 만들고 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황해도의 소금 생산을 군량에 이용하다

소금의 이익을 나라의 재정에 이용하는 것은 옛날부터 여러 나라에서 시행한 방법이다.

옛사람은 소금을 나라의 큰 보물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백성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물건이면서 잘 이용하면 나라에도 큰 수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바닷가에는 소금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매우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군량이 절실한 지금 같은 때에는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황해도에는 소금이 많이 나는 곳이 있다

황해도 바닷가는 다른 곳보다 소금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이 있었다.

그곳에 관청이 관리하는 소금 굽는 시설을 별도로 두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백성을 함부로 끌어내 소금을 굽게 해서는 안 된다.

활용할 수 있는 수군을 적당히 골라 일하게 하고, 책임자를 따로 두어 관리한다.

그렇게 하면 백성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소금을 얻을 수 있다.

소금 창고를 두고 곡식과 바꾸다

바닷가 가까운 적당한 곳에 소금 창고를 만든다.

생산한 소금을 육지로 옮겨 저장한다.

소금값이 비싸질 때 산골 백성이 찾아오면 지나치게 비싸지 않은 값으로 팔거나 곡식과 바꾸어 준다.

그러면 산골 백성은 소금을 구하기 쉬워진다.

관청은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다.

기존 염전과 생산량부터 정확히 조사한다

먼저 관청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소금 굽는 곳이 각각 몇 군데인지 알아야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군사와 사람이 몇 명인지 조사한다.

한 해에 소금이 실제로 몇 석이나 나오는지도 장부로 만든다.

이것을 정확히 알아야 앞으로 규모를 어떻게 늘릴지 결정할 수 있다.

봄철에 군사를 이용해 소금을 만들 수 있는지도 검토하다

봄철처럼 소금을 많이 굽는 때에는 일정한 군사에게 먹을 쌀을 지급하고 소금을 만들게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생산한 소금은 창고에 넣는다.

필요한 백성이 곡식과 바꾸어 가져가게 한다.

그렇게 하면 별도의 큰 부담 없이 소금을 마련하고 군량도 얻을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현지에서 자세히 의논해 보고하게 했다.

경기의 군사 편제를 구체적으로 정하다

새 군사 제도의 목적은 백성을 편하게 하면서도 실제로 싸울 수 있는 군사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을 멀리 끌고 다니며 훈련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훈련하게 한다.

백성은 먼 곳을 오가는 고생을 하지 않는다.

별도의 식량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군사는 평소 무예를 익힐 수 있다.

도적이나 외적도 쉽게 마을을 침범하지 못한다.

수령이 백성에게 제도의 뜻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수령은 먼저 이 뜻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각 마을 백성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군사를 만든다고 놀라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

초관과 기총, 대총 역시 백성을 조금도 괴롭혀서는 안 된다.

위아래가 서로 믿어야 한다.

겉으로 명령만 따르는 척하며 실제로는 옛 폐단을 그대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농사철에는 농사에 전념하게 한다

농사철에는 밭갈이와 씨 뿌리는 일에 힘쓰게 한다.

농사가 한가할 때에는 무기를 익힌다.

그렇게 하면 아래로는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식을 지킬 수 있다.

위로는 나라를 방어할 수 있다.

이것보다 분명한 이익이 어디 있겠는가.

한 큰 진영을 여러 단계의 부대로 나누다

경기의 군사를 왼쪽·오른쪽·앞쪽·뒤쪽 등 큰 진영으로 나누었다.

한 큰 진영 아래에는 다섯 개의 사를 둔다.

한 사에는 다섯 개의 초를 둔다.

한 초에는 세 개의 기를 둔다.

한 기에는 세 개의 대를 둔다.

한 대에는 대체로 11명의 군사를 둔다.

전체로 보면 한 큰 진영에 대략 2천 수백 명의 군사가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 원칙일 뿐이다.

실제 마을의 인구와 형편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각 사와 마을에 따로 훈련장을 둔다

큰 진영에 속한 다섯 사는 각각 군사들이 오가기 편한 곳에 훈련장을 마련한다.

각 초와 기의 군사들도 자기 마을 가까운 곳에 활쏘기와 무기 훈련을 할 수 있는 작은 훈련장을 둔다.

평소에는 마을 훈련장에서 활을 쏜다.

총포를 쏜다.

창을 사용한다.

달리기 같은 훈련도 한다.

한 달에 일정한 횟수로 큰 훈련을 한다

평소에는 작은 부대별로 훈련한다.

일정한 날에는 한 사에 속한 군사가 한곳에 모여 진법을 익힌다.

또 한 달에 한 차례 정도는 다섯 사의 군사가 큰 진영에 모여 전체 훈련을 한다.

이렇게 작은 훈련과 큰 훈련을 나누어 시행한다.

훈련 성적이 좋은 군사에게 실제 혜택을 준다

훈련 때 활쏘기와 여러 무예를 시험한다.

한 사 안에서 성적이 뛰어난 군사 세 명을 뽑는다.

1등에게는 일정 기간 각종 부역과 쇄마 같은 잡역을 면제한다.

그 아래 사람들도 성적에 따라 부담을 줄여 준다.

다섯 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는 더 큰 포상을 준다.

물건을 내릴 수도 있고 다른 특별한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말뿐인 상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상을 주어야 한다.

지휘를 잘한 초관은 크게 상을 준다

초관이 자기 책임을 다하고 군사를 훌륭하게 훈련했다면 따로 보고해 크게 상을 준다.

반대로 맡은 일을 게을리하거나 공적인 권한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챙긴 사람은 조사한다.

자기 군사를 괴롭히고 수탈한 사실이 드러나면 무겁게 다스린다.

심한 경우에는 군법으로 처벌해야 한다.

정식 편제 밖의 무사도 예비군으로 정리한다

정식 군적에 들어가는 장정은 모두 편제에 넣는다.

이 밖에도 벼슬이나 군직을 경험한 무사, 금군 출신 가운데 지금 집에 있는 사람 등이 있다.

이런 사람도 실제 숫자를 조사해 별도의 예비군처럼 정리한다.

몇 명이든 필요할 때 동원할 수 있게 한다.

척후병을 따로 뽑다

군대 안에는 길과 지형을 잘 아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질이 민첩하고 총명하며 길을 잘 찾는 사람을 고른다.

산과 골짜기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잘 달리는 사람도 좋다.

한 사마다 이런 사람 10명을 뽑아 척후병으로 삼는다.

그 가운데 책임자를 따로 둔다.

필요할 때 알아볼 수 있도록 신호용 깃발도 준다.

전쟁이 나면 앞에서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길을 찾게 한다.

나팔과 신호 도구도 평소부터 익히게 하다

각 부대에는 크고 작은 나팔과 여러 신호 도구를 갖추게 한다.

평소 군사들이 신호를 부는 법을 계속 연습하게 한다.

전쟁터에서 말로 명령을 전달하기 어려울 때 신호로 부대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신호를 잘 다루는 사람도 따로 시험한다.

뛰어난 사람은 활을 잘 쏘는 군사처럼 포상한다.

큰 진영을 중요한 방어 거점에 둔다

오른쪽 진영은 수원의 독성을 중심으로 삼는다.

앞쪽 진영은 죽산의 산성 부근을 이용한다.

뒤쪽 진영은 파주산성 아래쪽을 중심으로 삼는다.

다른 진영도 가까운 고을과 지형을 살펴 알맞은 곳에 둔다.

각 진영의 군사 훈련과 집결은 같은 원칙으로 시행한다.

진영마다 군기 제작 시설을 두다

일부 진영에는 군기를 만들 시설을 따로 마련한다.

활과 화살뿐만 아니라 조총과 필요한 여러 무기를 만들어 군사에게 지급한다.

평소 훈련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다른 진영도 같은 방법으로 필요한 무기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한다.

마을 단위 군사 제도를 다시 강조하다

경기의 군사를 훈련할 때에는 먼저 고을에서 면을 찾고, 면에서 마을을 찾고, 마을에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아주 작은 생활 단위에서부터 군사 조직을 만든다.

그러면 군사를 징발해 먼 곳까지 오가게 하는 폐단이 없다.

사람을 한곳에 모아 먹이는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한번 제대로 조직해 놓으면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활을 익히는 사람들이 된다.

도적이나 외적이 나타나면 서로를 지키는 군사가 된다.

그런데 실제 책임자들의 관심이 부족했다

이 제도가 이렇게 편리한데도 수령들이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초관이 군사 명령을 받으러 오는 일조차 드물었다.

지휘 책임자가 자기 군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래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각 고을은 면마다 초관과 기총, 대총이 누구인지 이름을 적어 보고하게 해야 한다.

수령이 직접 군사를 조직해야 한다

새 제도는 각 면과 마을의 장정을 가까운 사람끼리 묶어 훈련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수령이 이 뜻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어떤 초관은 자기가 왜 임명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군사라고 하면 무조건 사람을 긁어모아 백성을 괴롭히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군사를 뽑는 일을 아전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군사를 편성하는 일을 병방이나 아전에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초관과 기총, 대총이 직접 자기 군사를 살펴야 한다.

부대가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대의 군사가 훈련되지 않았으면 대총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 위 지휘자가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위로 올라가며 책임이 이어진다.

그렇게 해야 상과 벌을 내릴 근거가 생긴다.

건강한 남자는 가능한 한 군사 조직에 넣는다

대체로 15세 이상 50세 이하의 남자 가운데 심한 병이나 장애가 없는 사람은 군사 편제에 넣을 수 있다.

지금 활을 쏠 줄 모른다고 제외할 필요는 없다.

가르치면 된다.

50세를 넘었더라도 힘이 좋고 용감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만 보고 빼지 않는다.

남자는 평소에도 무예를 완전히 잊지 않아야 고향을 지킬 수 있다.

훗날 나라가 위급할 때에도 쓸 수 있다.

편제법을 인쇄해 각 고을에 나누어 주다

새 편제법을 자세히 적은 지침을 훈련 기관에서 인쇄한다.

각 고을 수에 맞게 나누어 준다.

수령과 군사 지휘자들이 내용을 정확히 알게 한다.

나중에 군사의 재주를 시험할 때 실제로 이 지침대로 시행했는지도 함께 조사한다.

군사 편제의 세부 규칙

먼저 한 고을에 어느 면이 있는지 조사한다.

면 안에 어느 마을이 있는지 조사한다.

마을마다 집이 얼마나 있는지 살핀다.

실제 사는 장정이 몇 명인지 확인한다.

그 숫자에 맞춰 초관과 기총, 대총을 정하고 부대를 만든다.

나중에 군사의 숫자가 장부와 맞지 않거나 장정이 빠져 있다면 해당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한 영 아래 다섯 사를 둔다

기본 편제는 이렇다.

한 영에 다섯 사를 둔다.

한 사에는 다섯 초를 둔다.

한 초에는 세 기를 둔다.

한 기에는 세 대를 둔다.

한 대는 대체로 11명을 기본으로 한다.

다만 이것을 무조건 숫자대로 맞추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많으면 늘리고 적으면 줄인다

어떤 마을에 사람이 많다면 세 기를 넘어 네 기나 다섯 기를 만들 수도 있다.

한 기에 세 대보다 더 많은 대를 둘 수도 있다.

사람이 부족한 곳은 한 대가 11명을 채우지 못해 6명이나 7명이라도 괜찮다.

사람 수를 맞추겠다고 가까운 사람을 버리고 먼 곳의 사람을 억지로 끌어와서는 안 된다.

모든 군사는 자기 소속을 알아야 한다

군사는 자기가 어느 대에 속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대는 어느 기에 속하는지 알아야 한다.

기는 어느 초에 속하는지 알아야 한다.

초는 어느 사에 속하는지 알아야 한다.

사는 어느 영에 속하는지 알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대장의 지휘 아래 이어진다.

이 순서를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명령도 위에서 아래로 차례대로 내려간다

훈련이나 출동 명령이 생기면 대장이 각 영에 명령한다.

영의 책임자는 사의 책임자에게 전한다.

사의 책임자는 초관에게 전한다.

초관은 기총과 대총을 통해 자기 군사를 모은다.

이렇게 해야 많은 군사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정해진 시각보다 늦으면 군법으로 다스린다

집결할 날짜와 장소를 미리 알린다.

까닭 없이 늦는 군사는 군법으로 다스릴 수 있다.

명령을 가볍게 여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큰 장수는 몇 사람의 책임자만 제대로 지휘하면 된다

군사가 수천 명이어도 대장이 직접 명령할 사람은 몇 명의 영 책임자뿐이다.

영 책임자도 자기 아래의 몇 사람만 직접 통솔한다.

이런 방식으로 명령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많은 군사가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다.

대장이 모든 군사를 직접 거느리려 한다면 아무리 애써도 제대로 된 군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기의 각 큰 진영과 소속 지역을 정하다

원문에는 각 진영에 속한 고을을 하나하나 적어 두었다.

다만 이 부분은 OCR이 심하게 깨져 일부 지명은 정확한 판독이 어렵다.

분명하게 확인되는 곳을 보면 오른쪽 진영은 수원 독성을 중심으로 수원·남양·인천·부평·양천·통진·김포 등 가까운 지역을 묶었다.

앞쪽 진영은 용인과 죽산 일대의 산성을 중심으로 삼았다.

뒤쪽 진영은 파주산성을 중심으로 고양·교하·적성·장단 등 북서쪽 지역을 묶었다.

다른 진영 역시 같은 원칙으로 가까운 고을끼리 묶었다.

강화는 섬이라는 특별한 사정 때문에 별도의 한 지휘 구역으로 운영했다.

각 진영은 자기 군량을 스스로 준비하다

각 진영은 자기 군사의 숫자를 계산한다.

그만큼의 곡식을 미리 준비한다.

가능하면 반년 먹을 곡식을 마련한다.

여유가 있다면 1년이나 2년 먹을 곡식도 계속 쌓아 둔다.

다만 오래된 곡식이 썩게 해서는 안 된다.

오래된 곡식은 먼저 쓰고 새 곡식을 다시 채워 넣는다.

진영마다 무기와 신호 장비를 준비하다

군기의 숫자도 군사 수에 맞춰 준비한다.

활과 화살, 화포뿐 아니라 깃발과 북, 징과 여러 신호 도구를 갖춘다.

각 진영이 자기 형편에 따라 마련하게 한다.

진영마다 작은 방어 거점을 만들다

진영은 되도록 지형이 험하고 방어하기 쉬운 곳을 고른다.

앞쪽에 훈련할 만한 넓은 들판이 있으면 더욱 좋다.

흙으로 작은 성이나 방어 시설을 만들 수 있다.

각 사가 있는 곳에도 지형을 보고 작은 보루를 둔다.

평소에는 훈련장으로 이용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까운 노약자와 식량을 그 안으로 옮긴다.

장정은 밖으로 나가 싸운다.

각 마을에도 작은 훈련장을 마련한다.

옛 관중의 군사 제도를 함께 기록하다

관중은 제나라 임금에게 나라의 행정 조직과 군사 조직을 하나로 연결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평소 가까이 사는 집을 작은 단위로 묶는다.

작은 조직을 다시 더 큰 조직으로 묶는다.

각 단계마다 책임자를 둔다.

그렇게 하여 나라의 백성이 평상시에는 함께 생활하고, 전쟁 때에는 그대로 군대가 되게 했다.

같은 마을 사람이 함께 싸우면 서로 버리지 않는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안다.

집안 사정도 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고 늙어서도 왕래한다.

누가 죽으면 서로 장례를 돕는다.

병들면 서로 보살핀다.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한다.

이런 사람들이 전쟁터에서도 같은 부대에 들어가면 서로 도우며 싸운다.

평소의 정이 있기 때문에 쉽게 서로를 버리지 않는다.

내가 만든 제도와 옛 제도가 우연히 서로 통했다

나는 이미 가까운 마을 사람끼리 한 부대를 만들고 그 마을의 능력 있는 사람을 지휘자로 삼는 방법을 마련해 시행하려 했다.

뒤에 명나라 사람에게서 관중의 옛 제도를 적은 글을 보게 되었다.

읽어 보니 내가 생각한 방법과 뜻이 우연히 비슷했다.

그래서 뒤에 함께 붙여 두었다.

경기 관찰사에게 더 이상 군사 편제를 늦추지 말라고 하다

지금 나라의 형편은 매우 급하다.

군사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면 날짜를 정해 반드시 끝내야 한다.

하루에 할 일을 한 달로 미뤄서는 안 된다.

한 달에 할 일을 한 해로 미뤄서도 안 된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기회가 지나간 뒤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이제 곧 봄 농사가 시작된다

겨울도 거의 지나갔다.

곧 봄 농사가 시작된다.

농사철이 시작된 뒤 백성을 모아 군사를 편성하려 하면 더욱 어려워진다.

군사 지휘 체계를 정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제대로 시행한 지역은 매우 적었다.

새 제도는 며칠이면 기본 장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한 고을에서 면을 조사한다.

면 안의 마을을 조사한다.

마을 안의 실제 장정을 조사한다.

그 가운데 책임자를 고른다.

가까운 사람끼리 부대를 만든다.

자기 지역에서 훈련하게 한다.

먼 길을 다닐 필요도 없다.

관청에 머물며 식량을 써야 할 필요도 없다.

제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며칠 안에도 기본 명부를 만들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방 관리들이 군무를 아이들 장난처럼 다루었다

그런데도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고을이 많았다.

어떤 곳은 초관을 정하지 않았다.

어떤 곳은 아무 사람이나 초관으로 삼았다.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군사 일을 장난처럼 처리했다.

임금은 밤낮으로 나라 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수령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위에서 명령하면 말로는 따른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일부러 게으른 사람은 실제로 벌해야 한다

이렇게 태만한 사람 가운데 한두 사람은 실제로 죄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수령들도 정신을 차린다.

정해진 달 20일까지 각 지역 초관의 편성을 모두 끝내고 명부를 올리게 했다.

수령과 장수에게 기한을 정해 다시 경계하다

옛사람은 천하가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하물며 지금은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다.

군사를 길러야 한다는 것은 길 가는 사람조차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고을과 군사를 책임진 사람들이 게으른 습관에 젖어 있었다.

뜻을 가진 사람은 적고 뜻 없는 사람이 많았다.

문서를 받아 놓고 대답만 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명령을 내려도 형식적인 문서 하나 만들어 대답하고 그만두었다.

진심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분발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매우 답답했다.

그래서 다시 엄하게 타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를 만드는 목적은 백성을 편하게 하는 데 있다

이 제도는 백성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백성이 편하게 살면서 스스로를 지키게 하려는 것이다.

평소에는 같은 마을 사람이 서로 지킨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함께 힘을 모아 나라를 돕는다.

그것뿐이다.

초관은 군사를 자기 가족처럼 아껴야 한다

수령은 좋은 초관을 고른다.

초관은 좋은 기총과 대총을 고른다.

군사는 가능하면 서로 가까이 사는 사람끼리 묶는다.

같은 마을 사람은 얼굴과 사정을 알고 있다.

서로 친하다.

위급할 때 서로 구하고 도울 수 있다.

먼 곳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한순간 모아 부대를 만드는 것과는 효과가 다르다.

지휘자를 잘못 고르면 백성에게 더 큰 폐단이 된다

초관은 매우 중요한 자리다.

기총과 대총도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사람을 잘못 고르면 군사가 훈련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백성을 괴롭히는 폐단까지 생긴다.

따라서 군사를 사랑하고 책임감 있게 일할 사람을 골라야 한다.

초관과 아래 지휘자들은 군사를 한집 식구처럼 아껴야 한다.

털끝만큼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군사도 자기 지휘자를 믿고 명령을 따라야 한다.

사람을 보내 실제 훈련 상태를 조사한다

나는 때때로 사람을 보내 각 고을을 검사할 생각이었다.

초관이 일을 잘하는지 살핀다.

군사들이 활과 총을 얼마나 익혔는지도 시험한다.

한 지역의 성과는 그 지역을 맡은 초관에게 책임을 묻는다.

잘한 사람은 보고하여 상을 준다.

못한 사람은 차례대로 책임을 묻는다.

경기 군사 훈련의 주기를 다시 정하다

전쟁 뒤에는 마을이 매우 드물어졌다.

몇 리를 가야 집 한 채가 나오는 곳도 있다.

열 리쯤 가야 다른 마을이 나오는 곳도 있다.

이런 사람을 모두 매번 한곳으로 불러 모으면 오가는 고생이 너무 크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자기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작은 단위로 훈련해야 한다.

작은 부대부터 차례대로 시험한다

평소에는 대와 기 단위에서 활쏘기와 총포, 창과 달리기 등을 훈련한다.

초 단위의 군사도 날짜를 나누어 차례로 시험한다.

원문에는 닷새 단위로 일부 군사를 시험하고, 더 큰 단위는 보름이나 한 달 간격으로 모아 시험하도록 세밀한 일정이 적혀 있다.

핵심은 모든 군사를 매번 한꺼번에 불러 모으지 않는 것이다.

작은 부대는 자주 훈련하고 큰 부대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모이게 한다.

한여름에는 농사에 전념하게 한다

농사일이 가장 바쁜 한여름에는 큰 훈련을 멈춘다.

백성이 농사에 전념하게 한다.

그 밖의 때에는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큰 훈련을 할 수 있다.

훈련 뒤에는 어느 부대에 재주 있는 군사가 얼마나 있는지 보고하게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상을 준다.

여러 기관이 같은 군사를 서로 차지하는 폐단을 없애다

전에는 한 고을의 군사를 여러 기관이 서로 자기 소속이라고 주장했다.

감사가 데려가려 했다.

병사도 데려갔다.

수사와 방어사, 조방장과 여러 임시 장수도 자기 군사로 삼았다.

이렇게 되니 군정이 크게 어지러웠다.

실제로 군사를 동원하려 하면 어느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 한 고을 군사는 하나의 지휘 체계에 둔다

앞으로 한 고을의 군사는 한 체계 안에 둔다.

수령이 군사를 관리한다.

그 위 지역 지휘관의 명령을 받는다.

전쟁이 나면 큰 장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군사가 부족하거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수령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군사에게 진법을 가르칠 교관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법에 익숙하지 않다.

마을 사람을 많이 모아 놓아도 가르칠 사람이 없다면 길을 모르는 사람을 한곳에 모은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명나라 군사 교관들을 여러 도로 나누어 보낸 일이 있었다.

경기에도 교관이 내려오게 했다.

진법을 잘 아는 사람은 여러 군영을 오가며 초관들과 함께 군사를 가르치게 해야 한다.

농사가 한가한 때에는 다섯 사를 모두 모아 큰 훈련을 한다

농사일이 한가할 때에는 교관을 보내 한 진영의 다섯 사를 모두 모아 큰 진법 훈련을 실시한다.

작은 부대 훈련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군사가 함께 움직이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특별히 잘한 초관은 따로 포상한다

초관 가운데 자기 군사를 부지런히 가르쳐 군사들이 잘 따르고 훈련 성과도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따로 보고한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상을 주어 격려한다.

함경도에도 같은 마을 중심의 군사 제도를 시행하다

함경도의 군사 훈련 역시 고을에서 면을 찾고, 면에서 마을을 찾고, 마을에서 실제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세밀해 보이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군사를 먼 곳에 불러다니는 고생이 없다.

한꺼번에 모아 먹이는 비용도 들지 않는다.

한번 제대로 조직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활을 익히고 고향의 도적을 막는다.

전쟁이 나면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구한다.

함경도에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도 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함경도 각 고을에는 일본군과 힘껏 싸운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많은 공을 세웠는데도 상을 받지 못해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윗사람이 찾아 쓰지 않아 시골에 묻혀 있는 용감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을 그냥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전쟁 경험이 있는 사람을 지역 군사 책임자로 활용하다

공을 세운 사람을 찾아낸다.

적당한 상을 준다.

벼슬을 줄 만하면 벼슬을 준다.

그리고 지역 군사 조직의 책임자로 활용할 수 있다.

굳이 멀리 불러내어 농사를 망치게 하지 않는다.

자기 지역에서 한 부대를 맡아 지키게 하면 된다.

군사를 다스리는 일은 어지러운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

상과 벌도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황해도에서는 먼저 민심을 안정시키다

정치를 할 때에는 백성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민심이 안정되면 아무리 급한 일도 해낼 수 있다.

민심이 떠나면 억지로 시키려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은 전쟁이 끝난 직후다.

흩어진 백성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다.

집과 논밭을 다시 일으키지도 못했다.

이런 때에는 먼저 힘없는 백성을 보호하고 떠돌이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한다.

백성이 마음을 놓은 다음 군사 훈련과 성 수리, 무기 마련을 차례대로 시행해야 한다.

산성을 쌓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산성을 수리하고 새로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 곳에나 큰 성을 쌓으면 안 된다.

지형이 실제로 중요한가를 먼저 본다.

적의 길을 막을 수 있는가를 본다.

쉽게 쌓을 수 있는가를 본다.

완성한 뒤 실제로 지킬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장소를 잘못 고르면 백성만 지친다

어떤 곳에서는 산성을 쌓으면서 지형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감독하는 사람도 적당하지 않았다.

성벽이 산의 형세와 맞는지도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큰 공사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백성의 힘만 빠지고 쓸 수 없는 성이 남는다.

전쟁과 굶주림을 겪은 백성을 다시 함부로 동원해서는 안 된다.

산성에 들어간다는 핑계로 군역을 피하는 사람도 막아야 한다

산성에 들어가 살겠다고 자원한 사람에게 군역을 조금 줄여 주는 것은 임시 방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산성에 살지도 않으면서 이름만 올려 군역을 피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일이 많아지면 다른 군사와 백성에게 부담이 돌아간다.

실제 거주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깊은 산성에는 창고를 두고 승려가 지키게 할 수도 있다

아주 험한 곳에 있는 산성은 평상시 많은 사람이 살기 어렵다.

그곳에는 미리 창고를 만들고 곡식을 저장할 수 있다.

승려들을 머물게 해 지키게 하는 방법도 있다.

주변 고을 백성에게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느 곳으로 들어갈지 미리 알려 준다.

그래야 갑작스럽게 적이 와도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경기의 각 군영에 백성의 생업부터 살피라고 하다

경기 백성은 전쟁 피해가 다른 지역보다 매우 심했다.

죽고 흩어진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전해 농사가 조금 나아지면서 떠돌던 백성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새 군사 조직을 만드는 것은 이 백성을 다시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마을과 같은 부대의 사람이 서로 구하게 하려는 것이다.

농사지을 소와 씨앗이 없는 사람을 조사하다

봄이 되어 농사철이 가까워졌다.

군사 가운데 농사지을 소가 없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하게 했다.

씨앗이 부족한 사람도 보고하게 했다.

초관이 상황을 모아 진영 책임자에게 보고한다.

위에서 형편을 살펴 도울 방법을 찾게 한다.

병든 군사와 부당한 부역에 시달리는 사람도 살피다

병에 걸렸는데 약을 구하지 못하는 군사가 있으면 보고하게 한다.

관청의 부당한 부역이나 수탈 때문에 고통받는 군사도 하나하나 조사한다.

백성이 먼저 생업을 안정시켜야 제대로 군사 훈련도 할 수 있다.

이 점을 모든 진영의 장수에게 분명히 알렸다.

수원의 군사 편성이 너무 늦어진 것을 꾸짖다

수원이 속한 오른쪽 진영은 군사 편제를 끝내라는 명령을 받은 지 여러 달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끝내지 못했다.

지방에서 조정의 명령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일이 대부분 이와 같았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군사 장부에 군사의 이름조차 없었다

전에 만들어 놓은 군사 명부를 살펴보니 매우 엉망이었다.

군사의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저 실제 군사 몇 명, 사정이 있어 빠진 사람이 몇 명이라는 식으로만 적었다.

누가 실제 군사인지 알 수 없었다.

누가 무슨 까닭으로 빠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것은 군사 명부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들 장난과 다를 것이 없다.

각 단계의 책임자가 자기 군사를 직접 골라야 한다

한 영에는 다섯 사가 있다.

한 사에는 다시 여러 초가 있다.

초 아래에 기와 대가 있다.

각 단계의 책임자는 자기 아래 사람을 직접 골라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군사가 정예하지 않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전쟁 전 수원에는 1만 7천 명이 넘는 군사가 있었다

예전 장부를 보면 수원에는 군사가 1만 7천 명이 넘었다.

전쟁 이후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현재 조사된 숫자는 지나치게 적었다.

몇천 명 수준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단순히 전쟁 피해 때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수령이 직접 조사하지 않고 아전에게 맡긴 것이 문제였다

초관이 직접 군사를 뽑지 않았다.

아전과 하급 관리에게 일을 맡겨 놓았다.

그 과정에서 군역을 피하는 사람도 생기고 실제 장정이 장부에서 빠지는 일도 생긴 것으로 보였다.

이제부터는 수령과 책임자가 직접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

일부 부대부터 실제 사람을 모아 확인하게 하다

우선 몇 개 초의 군사를 실제로 불러 모아 하나씩 확인하게 했다.

그 방법으로 다른 부대도 차례로 조사한다.

다섯 사의 편제가 모두 끝나면 즉시 보고하게 했다.

그 뒤 훈련 담당자를 보내 군사를 훈련시키고, 다섯 사 전체를 독성에 모아 큰 진법 훈련을 실시하도록 했다.

평안도에 장기적인 서북 방어책을 다시 명하다

임금은 서쪽 국경이 이 지경까지 무너진 것을 깊이 걱정했다.

군사 일을 맡은 신하와 수령, 변방의 장수들은 밤낮으로 긴 안목의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그저 문서 몇 장 처리하고 세월을 보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지키려면 군량·군사·성·무기가 필요하다

서북 지역을 지키는 데 필요한 큰 조건은 몇 가지다.

군량이 있어야 한다.

군사가 있어야 한다.

성을 비롯한 방어 시설이 있어야 한다.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야 한다.

그리고 일을 제대로 처리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군량을 보면 여러 창고가 비어 몇 달을 버틸 곡식조차 없었다.

군사를 보면 수령들이 게을러 편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성은 겉모습만 있을 뿐 굳게 지키기 어려운 곳이 많았다.

무기는 흩어지고 화약과 화포도 충분하지 않았다.

군량·군사·성·무기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었다.

백성의 원망까지 심했다

여기에 백성들의 원망도 매우 심했다.

사람들의 마음까지 잃어버리면 무엇으로 나라를 지키겠는가.

평안도의 어려운 사정은 몇 마디로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탐욕스러운 관리의 수탈을 먼저 막아야 한다

법을 분명하게 세워 탐욕스러운 관리가 백성을 침해하지 못하게 한다.

없애야 할 폐단은 분명하게 없앤다.

살려야 할 제도는 다시 일으킨다.

하나씩 자세히 살펴 실제로 시행해야 한다.

병사는 강가의 여러 진과 성을 직접 살펴야 한다.

수리할 곳을 수리한다.

무기가 부족한 곳은 보충한다.

평소 일이 비교적 한가할 때 집안 살림을 돌보듯 하나하나 준비해야 한다.

하루 성과는 작아도 몇 해가 지나면 반드시 튼튼해진다.

평양성의 화포 시설을 특별히 강화하다

평양은 예로부터 험하고 중요한 성으로 알려졌다.

강을 끼고 산을 등지고 있어 지형만 보면 천연의 요새와 같았다.

그러나 군량이 부족하고 군사가 적으면 그런 성도 지키기 어렵다.

화포 누각을 설치하는 방법은 성을 지키는 데 매우 효과가 크다.

화포 누각은 성벽에 너무 붙여서는 안 된다

화포 누각을 성벽 바로 옆에 붙여 만들면 좌우로 포를 쏘는 데 장애가 생긴다.

지형을 보고 성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어 설치해야 한다.

여러 누각이 서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한쪽으로 적이 접근하면 다른 누각에서도 함께 포격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교차해 포를 쏘게 해야 한다

몇 곳에 화포 누각을 만들어 서로 포탄이 교차하는 지역을 만든다.

적이 성으로 접근하면 여러 방향에서 큰 화포를 동시에 쏜다.

적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성 아래에 쉽게 다가오기 어렵다.

처음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지형과 포격 방향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압록강의 중요 지점에도 차례로 설치한다

강가의 여러 진과 중요한 길목도 조사한다.

화포 누각을 설치하기 좋은 곳이면 차례로 만든다.

이미 설치한 곳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점검한다.

안주성도 보강하다

안주성도 더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얼음이 풀릴 때 청천강 위쪽에서 목재를 마련한다.

물길을 따라 목재를 내려보내면 운반하기 쉽다.

먼저 성문과 중요한 시설을 정비한다.

그 뒤 성벽도 차례로 보강한다.

기존 성문의 목재 가운데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다른 성문 공사에 이용해도 된다.

농사철에는 농민 대신 다른 인력을 활용한다

농사철에 백성을 대규모로 불러 성을 쌓게 해서는 안 된다.

가능하면 승군과 그 밖의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쓴다.

도 안의 부유한 사람 가운데 곡식이 있고 나라 일에 자원하여 돕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힘도 받을 수 있다.

승려든 관리든 공사에 특별히 힘쓴 사람은 나중에 공을 조사해 상을 주어야 한다.

성천의 군사 조직을 제대로 살리다

성천은 대동강 상류에 있다.

평양과 서로 의지하는 위치다.

또 황해도 쪽에서 들어오는 중요한 길을 막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성천 지휘 구역에 다른 곳보다 많은 고을을 소속시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천에 정예병 2만 명을 만들 수 있다면 평양이 더욱 튼튼해진다

성천의 책임자가 자기 일을 제대로 하고 소속 고을의 군사를 정예하게 훈련한다면 원문에서는 약 2만 명 규모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쪽으로는 평양을 지원할 수 있다.

다른 쪽으로는 황해도와 연결되는 산길을 막을 수 있다.

대동강 일대의 방어가 크게 튼튼해질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나라를 지키려는 계획이었다.

다른 지휘 구역도 같은 방식으로 정비한다

영변을 비롯한 다른 지휘 지역도 군사 조직을 바로잡아야 한다.

각 책임자가 자기 군사를 훈련한다.

성과가 있는 사람은 상을 준다.

게으른 사람은 벌한다.

이름만 지휘 구역이라고 해 놓고 실제 조직 없이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농사도 특별히 장려한다

군사를 훈련한다고 농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곡식이 곧 군량이다.

전쟁 뒤 나라를 다시 세우는 힘도 농사에서 나온다.

각 고을에 그해 농사를 특별히 권장하게 했다.

경기의 오른쪽 진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다시 지적하다

경기의 왼쪽 진영은 군사 조직이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오른쪽 진영은 여전히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방어를 책임지는 사람도 바뀌어 일을 맡아 처리할 사람이 분명하지 않았다.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새 제도의 뜻을 관리와 백성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각 고을의 관리와 백성이 새 훈련 지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제도는 백성을 한꺼번에 긁어모아 관청에 붙잡아 두려는 것이 아니다.

각자 고향에서 살면서 군사 기술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아전에게 맡기면 군사를 빼고 백성을 괴롭히는 폐단이 생긴다

수령이 직접 살피지 않고 하급 관리에게 맡기면 중간에서 여러 폐단이 생긴다.

군사로 뽑혀야 할 사람을 빼 주는 일이 생긴다.

군역을 구실로 백성에게 부당한 요구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백성이 제도를 두려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군사 조직이 고향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게 한다

초관과 아래 지휘자에게 제도의 뜻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백성에게도 설명한다.

군사 조직은 자기 고향을 지키는 울타리와 같은 것이다.

평소에는 원하는 무예를 익힌다.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는다.

훈련 때문에 쓸데없는 부역을 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상을 실제로 보여 주어야 한다

누가 훈련을 잘하면 상을 준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잘한 초관과 군사에게 상을 준다.

백성이 직접 그것을 보게 한다.

그러면 스스로 힘쓰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해야 새 제도가 실제 성과를 낼 수 있다.

위아래의 문서 전달 질서를 바로 세우다

나라의 일이 유지되는 것은 위와 아래가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위의 명령은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의 사정은 다시 위로 올라온다.

전쟁 뒤에는 이런 질서마저 크게 무너졌다.

안과 밖, 위와 아래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와 절차가 사라졌다.

이것 역시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워진 큰 까닭이었다.

관찰사가 체찰사에게 보내는 보고에도 정해진 절차가 있다

관찰사가 체찰사에게 보고하는 방식이 있다.

체찰사가 관찰사에게 명령하는 방식도 있다.

같은 지위의 관청끼리 주고받는 문서와는 다르다.

군문의 명령이 병사와 여러 기관을 거쳐 아래로 내려갈 때에도 각각 정해진 형식이 있다.

서로의 지위와 책임이 분명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문서 형식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최근 지방의 여러 보고서를 보면 상급 기관에 보내는 문서를 지나치게 가볍게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정해진 형식과 절차를 무시했다.

얼핏 작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질서가 무너지면 더 큰 명령도 시행되지 않는다.

체찰사의 명령이 병사에게 먹히지 않는다.

수령의 명령이 백성에게 먹히지 않는다.

장수의 명령이 군사에게 먹히지 않는다.

아래가 위를 업신여기고 위는 아래를 통솔하지 못하게 된다.

작은 일도 바로잡지 못하면서 큰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큰 책임을 맡고서도 많은 일을 제대로 바로잡지 못했다.

그러나 작은 문서의 질서조차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큰 나라 일을 기대하겠는가.

앞으로 여러 관청에서 주고받는 공문은 전에 정해 놓은 규칙을 따르게 했다.

제멋대로 문서를 쓰거나 태만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관찰사가 조사해 보고하게 했다.

서북 지역의 군사 숫자를 다시 확인하다

현재 장부에 적힌 어떤 지역의 군사 숫자는 만여 명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 집과 장정의 숫자를 제대로 따지면 그보다 훨씬 많아야 했다.

공적·사적 신분의 사람과 떠돌다가 돌아온 사람까지 생각하면 현재 장부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었다.

군사 선발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서로 군역을 피하게 해 주는 폐단이 있었는지 다시 조사해야 했다.

적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준비하면 쉽다.

적이 이미 들어온 다음에 준비하면 어렵다.

날씨가 풀리고 강의 얼음이 녹는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서둘러야 했다.

수리할 성은 수리한다.

새로 쌓아야 할 곳은 준비한다.

군량이 부족한 곳은 채운다.

말과 무기가 부족하면 마련한다.

장수가 자기 직책에 맞는 인물인지도 살핀다.

먼저 적이 이기기 어려운 형세를 만든 다음 적을 기다려야 한다.

모든 세부 사항을 내가 멀리서 지시할 수는 없다.

현지 관찰사와 병사, 여러 장수가 진심을 다해 함께 나라를 구해야 한다.

종사관에게 별도로 맡긴 시행 사항

종사관에게 황해도와 평안도 등에서 반드시 살필 일을 다시 조목별로 주었다.

경기의 군량이 급하니 생선과 소금의 이익을 살피다

경기 주변의 군량이 매우 부족했다.

생선과 소금을 이용해 군사 비용을 마련할 방법을 빨리 조사하도록 했다.

임시로 한 번 쓰고 끝나는 방법이 아니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황해도의 숨어 있는 무사들을 모두 모으다

황해도에는 정식 군사 외에도 전쟁에서 공을 세워 벼슬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사는 무사도 있었다.

활을 잘 쏘거나 산길을 잘 아는 사냥꾼 같은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을 빠짐없이 찾아내야 한다.

그 가운데 쓸 만한 사람을 골라 부대로 만든다.

소속을 정한다.

명령과 약속을 분명히 한다.

그렇게 해야 위급할 때 즉시 불러낼 수 있다.

기존 군사와 힘을 합쳐 싸울 수도 있다.

평안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군사의 바탕은 농사이므로 농사를 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전쟁이 급해도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군사의 바탕은 결국 농민과 곡식이다.

최근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쉽게 흔들렸다.

조금만 소문이 나도 집과 농토를 버리고 달아났다.

적이 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떠돌다가 죽는 사람도 많았다.

거짓 소문으로 사람을 흔드는 자는 엄하게 다스리다

수령은 백성에게 함부로 동요하지 말라고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거짓말을 만들어 민심을 흔드는 사람은 엄하게 다스린다.

전쟁의 혼란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무거운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

역참의 말 때문에 생기는 백성 부담을 계속 줄이다

역참에서 말을 마련하고 운송과 접대를 담당하면서 생기는 폐단이 컸다.

전에 백성이 제각각 부담하던 일을 곡식으로 통합해 처리하는 방안을 시행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 제도가 중간에 없어지지 않게 한다.

또 다른 폐단이 생기면 즉시 바로잡는다.

역참을 살피는 담당자에게 이 일을 맡겨 계속 검사하게 했다.

산성은 정말 중요한 곳에만 만들어야 한다

산성을 한꺼번에 마구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꼭 필요한 곳까지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형이다.

힘은 적게 들이고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곳을 골라야 한다.

한 도에는 그 도 전체의 큰 형세가 있다.

나라 전체에도 중요한 지형이 있다.

그 요점을 잡아야 한다.

황해도의 중요한 두 길을 살피다

황해도에는 큰길이 크게 두 방향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평산에서 개성과 경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다른 하나는 여러 산골을 지나 평안도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 길 가운데 반드시 적은 힘으로 적을 막을 수 있는 험한 곳이 있을 것이다.

현지 사람과 함께 직접 조사하게 하다

지리를 잘 아는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 종사관과 함께 다니게 한다.

어디가 중요한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다.

성을 만들 만한 곳이 있으면 하나씩 적어 보고하게 한다.

평산과 서흥산성을 다시 조사하다

평산은 큰길의 중요한 요충지다.

사람들은 그곳 산성이 썩 좋은 형세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옛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성을 만들었을 리는 없다.

직접 다시 살펴 보고하게 했다.

서흥산성도 전에 이미 조사하도록 지시한 곳이다.

수령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까지 확인하게 했다.

황해도 군사가 평안도까지 번을 서러 가는 문제를 검토하다

황해도 여러 고을 군사 가운데 평안도로 올라가 번을 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 숫자가 실제로 얼마인지 조사하게 했다.

서쪽 국경의 상황이 갈수록 위급해지면 황해도 군사를 더 보내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었다.

먼 고향의 군사를 보내는 것보다 현지에서 모집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황해도 백성을 멀리 평안도까지 보내는 것은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실제 군사 효과도 크지 않을 수 있다.

꼭 필요하다면 그들이 직접 번을 서는 대신 비용을 내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그 돈을 서쪽에서 현지 군사를 모집하는 데 쓴다.

그러면 실제 쓸 수 있는 군사를 얻는다.

황해도 백성이 먼 길을 오가는 부담도 없앨 수 있다.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현지 사정을 조사해 보고하게 했다.

성천 지휘 구역에 많은 고을이 속한 이유를 다시 설명하다

평안도의 여섯 큰 지휘 구역 가운데 성천에 속한 고을이 특히 많았다.

이것은 옛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정한 것이 아니다.

북쪽에서 적이 들어오면 산길을 따라 안쪽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있었다.

성천은 그 길을 끊을 수 있는 곳이었다.

성천은 평양의 대동강 상류를 잡고 있다

성천은 평양 대동강의 상류 쪽에 있다.

평양이 위급할 때 성천에 큰 군대가 굳게 버티고 있으면 상류에서 평양과 호응할 수 있다.

평양의 형세가 그만큼 굳어진다.

그래서 성천에 많은 고을의 군사를 소속시켰다.

평화가 오래되면서 지휘 구역의 이름만 남았다

오랫동안 평화가 계속되면서 이런 제도의 실제 뜻이 사라졌다.

지휘 구역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군사는 흩어졌다.

수령도 자기 고을 군사를 모아 지킬 능력을 잃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천의 책임자가 군사를 잘 훈련하면 큰 힘이 된다

현재 성천의 책임자가 군사 훈련에 뜻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맡겨야 한다.

그가 직책에 힘써 소속 고을의 군정을 바로잡는다면 몇 해 지나지 않아 정예한 군사를 만들 수 있다.

위급한 날 나라가 얻는 힘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른 지휘 지역도 똑같이 시행한다.

소속 고을 군사가 실제로 정예해졌는지를 살핀다.

성과가 뛰어난 지휘관은 특별히 상을 준다.

평양·순안·숙천·안주 등 큰길의 고을을 다시 살리다

평양·순안·숙천·안주처럼 큰길이 지나가는 고을은 전쟁으로 특히 크게 무너졌다.

마을의 모양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곳이 많았다.

그 원인이 단순히 전쟁 때문인지, 아니면 수령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더욱 심해졌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이 지역은 군량과 접대 부담을 가장 많이 졌다

명나라 군대와 조선 군대가 계속 이 길을 오갔다.

고을 창고의 곡식도 거의 모두 소모되었다.

백성은 군량 운반과 각종 접대를 맡았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심하게 지칠 수밖에 없었다.

백성이 돌아오지 않는 원인을 먼저 찾아야 한다

관리의 수탈이 문제인지 살핀다.

먹을 곡식이 없는 것이 문제인지 살핀다.

집과 농토가 파괴된 것이 문제인지 살핀다.

문제의 근원을 알아야 고칠 수 있다.

원인을 그대로 둔 채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명령해도 소용이 없다.

넓은 들판과 물고기·소금의 이익을 활용하다

이 지역에는 넓고 기름진 들판이 있었다.

바다와 강에서는 물고기와 소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이익을 잘 활용한다.

농사 지을 소와 씨앗처럼 백성에게 없는 것을 마련해 준다.

그동안의 수탈을 줄인다.

그렇게 해야 황폐한 고을이 다시 살아난다.

그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의견도 듣다

전에 그 지역에서 벼슬했거나 실제 백성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불러 물어야 한다.

백성이 무엇 때문에 가장 어려운지 묻는다.

어떤 방법을 쓰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 수 있는지 알아본다.

소금과 농업을 비롯해 여러 방안을 함께 써 반드시 백성이 다시 정착하게 해야 한다.

압록강 일대의 성과 군사를 마지막으로 다시 점검하다

강가의 여러 성과 진을 빠짐없이 검사한다.

성벽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본다.

무기와 군량이 있는지 본다.

군사의 숫자는 충분한지 본다.

그 지역을 맡은 장수가 직책을 감당할 만한 사람인지도 조사한다.

병사는 날씨가 풀리기 전에 모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적이 나타난 뒤 준비하면 늦다.

봄이 되어 군사가 움직이기 쉬워지기 전에 필요한 것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현지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군문에 보고한다.

위에서 방법을 찾아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화포 누각은 가장 중요한 성 방어 시설 가운데 하나다

이미 화포 누각이 있는 곳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검사한다.

없는 곳은 지형에 맞게 만들게 한다.

완성한 뒤에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평소 계속 화포를 쏘는 훈련을 한다.

다시는 무기를 창고에 넣어 두었다가 전쟁이 터진 뒤 사용할 줄 몰라 당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제15권 끝

 

 

 

 

 

징비록 제16권

군문에서 내려보낸 여러 지시


경기 관찰사와 좌우 방어사에게 보내는 글

전쟁이 일어난 뒤 백성들의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적이 온다는 소식이 조금이라도 들리면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따져 보지도 않고 모두 놀라 달아난다.

노인과 어린아이도 함께 흩어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도망치다가 적에게 죽는 사람도 많다.

운 좋게 살아남아도 살던 곳을 떠났으니 식량이 곧 떨어진다.

그러면 산과 골짜기를 헤매다가 굶어 죽는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백성이 거의 다 죽고 말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생각해 보았다.

백성들의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것도 이유지만, 실제로는 급할 때 몸을 피하고 지킬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어도 들어갈 곳이 없다.

그러니 적이 온다는 말만 들리면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수원의 백성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성을 수리한 뒤에는 적이 온다는 소문이 퍼져도 수원의 백성들만은 다른 지역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위급할 때 들어가 의지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실제 효과가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각 고을에서는 백성이 사는 곳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 지세가 험하고 방어하기 좋은 곳을 골라야 한다.

사람들이 들어가 지킬 수 있도록 미리 수리해 두어라.

그리고 평소부터 구역을 정해,

“이 마을 사람들은 적이 오면 이곳으로 들어간다.”

“저 마을 사람들은 저곳으로 들어간다.”

하고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한다.

적이 나타나면 젊고 힘센 장정은 밖으로 나가 싸우게 한다.

노인과 어린아이, 힘이 약한 사람들은 안에 들어가 보호받게 한다.

돌과 방어에 필요한 물건도 많이 쌓아 두어라.

관청과 민간에 있는 곡식과 중요한 물건도 가능한 한 그런 곳에 모아 두는 것이 좋다.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

아무 일이 없으면 굳이 산 안에 머물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 적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진 것을 챙겨 미리 정해 둔 곳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적이 갑자기 밀고 들어와도 백성과 재물을 쉽게 빼앗지 못한다.

또 들판의 먹을 것을 거두어 적이 얻을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방을 비워 곡식과 먹을 것이 없게 해 놓으면 적도 오래 머물 수 없다.

며칠 지나지 않아 형편이 어려워져 물러날 수밖에 없다.

적이 굶주리고 지친 채 돌아갈 때에는 밖에 나가 있던 장정들이 곳곳에서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적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을 막고 백성을 살리는 장기적인 방법 가운데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많지 않다.

그런데 장수와 관리들이 먼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이런 일에 힘쓰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수원의 독성은 이미 오른쪽 군영에서 맡아 수리하고 있다.

군영에 소속된 군대를 몇 부대로 나누어 독성 주변 백성에게도 미리 알려라.

농사일이 한가할 때에는 사람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 피난처와 방어 시설을 수리하게 하라.

한곳에서 이렇게 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그대로 본받을 수 있다.

1년이나 반년 정도만 계속해도 방어할 만한 장소가 차츰 갖추어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어느 쪽이 나은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인천에도 산성이 있다고 들었다.

그 지역 백성들이 그 산성으로 들어가 피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백성들이 스스로 원한다면 허락하는 것이 마땅하다.

인천의 관리가 책임지고 산성을 수리하게 하라.

그 밖에도 백성이 많이 사는 지역 주변에는 험한 산과 지킬 만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직접 돌아보고 지형과 형편을 살펴라.

쓸 만한 곳이 있으면 하나하나 보고하라.

백성에게는 반드시 이 뜻을 잘 설명해야 한다.

이 일은 나라만을 위해 백성을 동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백성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살리기 위한 일이다.

백성이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의 이익과 손해는 알 수 있다.

진심으로 잘 설명하면 따르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용인의 석성산성은 큰길의 요충지에 있어 형세가 매우 좋다.

그런데 백성들의 힘이 모이지 않아 아직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하니 매우 안타깝다.

방어사가 직접 가서 살펴라.

공사가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려 보고, 농사일이 조금 한가해진 뒤 앞쪽 군영의 병사들을 이틀 정도씩 나누어 동원하여 마무리하게 해도 좋다.

며칠의 수고로 오랫동안 쓸 방어 시설을 마련할 수 있다면 백성들도 크게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수원과 이천과 양근 등 여러 고을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킬 만한 곳을 찾아 수리하라.

실제 시행할 수 있는지 다시 자세히 살펴 보고하라.


황해도 관찰사에게 마을별 군대와 군량 비축을 지시하다

최근 군사를 정비하는 방식은 각자의 고향과 마을에 사는 사람을 한데 묶어 군대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부터 내려온 좋은 제도와 뜻이 통한다.

평상시에는 같은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산다.

도둑이 들면 함께 지키고, 병든 사람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

전쟁이 벌어지면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그대로 한 부대가 되어 생사를 함께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끌어다 한곳에 모아 군대로 만드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며 형편도 모르는 사람들을 억지로 한 부대로 묶으면 마음이 하나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같은 마을 사람들은 평소부터 서로 알고 있으므로 전쟁이 나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다만 군사가 있으려면 반드시 먹을 것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관청 창고도 비었고 민간의 비축도 거의 없다.

갑자기 군사를 동원하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쓰러질 것이다.

그런 군사는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을 단위 군대를 만드는 것과 함께 마을 단위 군량도 만들어야 한다.

각 마을에서 군사가 몇 명인지 헤아린다.

보리가 익을 때나 가을에 곡식을 거둘 때, 백성에게 형편에 따라 조금씩 자원해서 곡식을 내게 한다.

몇 되씩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몇 말씩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한데 모아 그 마을에 저장해 둔다.

해마다 조금씩 더 보태어 두었다가 그 마을 군사가 동원될 때 먹이면 된다.

군사를 먹일 길은 결국 여기에 있다.

설령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곡식을 미리 비축해 두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흉년과 굶주림이 닥쳤을 때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옛사람들이 곡식을 비축하는 일을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큰일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몇 해 먹을 양식 가운데 적어도 한 해 먹을 만큼은 남겨 두어야 한다는 말 역시 같은 뜻이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은 먼 앞날을 생각하지 못한다.

조금 생기면 당장 써 버린다.

앞으로 굶을 가능성까지 생각해 스스로 저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윗사람이 먼저 이해득실을 자세히 설명하여 이끌어야 한다.

각 군영과 부대 안에서 마음이 바르고 생각이 깊으며 마을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사람을 골라 이 일을 맡겨라.

그런 사람이 책임을 져야 비로소 일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이 일은 지금 가장 급한 일 가운데 하나다.

황해도에서는 실제 시행할 방법을 다시 깊이 의논하여 보고하고 곧 시행하라.


황해도의 명나라 군대 통행로에서 역참의 폐단을 줄이도록 하다

명나라 군대가 계속 오가는 길에서는 역참이 사람과 말을 대접하고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

그 부담 때문에 백성들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지금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일 가운데 이보다 심한 것이 많지 않다.

반드시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도 전체에서 필요한 비용을 계산하라.

그 비용을 몇몇 고을에만 떠넘기지 말고, 도 안의 토지와 형편을 헤아려 쌀과 베를 고르게 부담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라.

그 뒤 중요한 역참 몇 곳을 정하여 물자를 모아 두어라.

그곳에는 일을 잘 알고 부지런하며 함부로 물자를 쓰지 않는 사람을 책임자로 정해야 한다.

각 고을에서 거둔 쌀과 베를 책임자가 받아 관리한다.

그리고 실제 필요한 곳에만 지급하도록 하라.

매일 얼마를 사용했는지 장부를 만들어 하나하나 기록해야 한다.

나중에 반드시 그 장부를 조사할 것이다.

명나라 군대가 어느 날 몇 명이 지나갔고 얼마나 지급했는지도 모두 적어야 한다.

서로 가까운 역참끼리는 장부를 대조해야 한다.

한 역참의 기록에는 군사 백 명이 지나갔다고 되어 있는데 다음 역참에는 이백 명이라고 되어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앞의 역참에서 썼다는 쌀과 뒤의 역참에서 썼다는 쌀이 실제 통행 인원과 맞지 않는다면 중간에서 거짓으로 받아 쓴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발견되면 하나하나 조사하여 죄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길가 백성들의 고통을 덜 수 있고, 중간에서 몰래 물자를 빼돌리는 폐단도 줄어든다.

명나라 군대의 통행은 날마다 똑같지 않다.

어떤 날은 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다음 날은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적게 지나간 날 남은 물자를 잘 보관해 다음에 쓰면 된다.

함부로 써 버리지 않는다면 전에는 한 달 동안 썼던 물자로 두 달이나 석 달까지 버틸 수도 있다.

이치는 매우 분명하다.

이렇게 운영하면서 책임자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물자를 아껴 쓴다면 상을 내려라.

반대로 잘못하면 죄를 물어라.

상과 벌이 분명해야 사람들도 자기 책임을 다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일이 매우 어지럽다.

오랫동안 자세한 보고 한 장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몇몇 역참을 누가 실제 책임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한 도의 백성에게서 쌀과 베와 돈을 거두고도 어느 역참에 얼마가 들어갔는지 분명하지 않다.

한 역참이 받은 돈과 곡식 가운데 얼마를 썼고 얼마가 남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모든 일이 마치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

한 걸음 앞의 일도 알 수 없다.

윗사람이 명령한 일까지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니 어떻게 정돈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는 명나라 사람들조차 우리 백성이 말을 내고 물자를 대느라 고통받는 것을 걱정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명나라 쪽에서 별도의 규칙을 만들어 함부로 물자를 더 받아가는 일을 줄이려 한다고 한다.

멀리 중국에서 온 사람들조차 우리 백성의 고통을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관리들이 직접 일을 맡으면서 백성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는 각 역참의 장부를 날마다 조사하라.

수입과 지출을 따로 기록하고 실제로 명나라 군대가 지나간 사람 수까지 대조하라.

그 내용을 정리하여 계속 보고하라.


함경도의 군역을 대신 떠넘기는 폐단을 고치게 하다

함경도에서 온 사람들에게 들으니 군역 때문에 백성이 크게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정해진 군사가 병들거나 사고가 생겨 방어 근무에 나가지 못하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떠넘긴다.

앞 순번 사람이 빠지면 뒤 순번에게 부담을 넘긴다.

그 사람도 형편이 안 되면 또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이런 일이 이어지니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다.

한 사람이 도망가면 그 부담을 친척에게 지운다.

친척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면 다시 다른 친척에게 떠넘긴다.

마침내 한 사람의 도망 때문에 한 집안 전체가 고통을 받고, 그 집안 때문에 또 다른 친족까지 부담을 떠안는다.

결국 한 마을 전체가 흩어질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백성이 고향을 버리고 길 위를 떠돌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문제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잠시 군사 한 사람을 더 확보하려다가 결국 국경 지역의 백성 전체를 잃게 된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한두 차례는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겨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나중에는 동원할 사람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북쪽 변경이 텅 비는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행정을 잘못하고 백성을 지나치게 몰아붙인 것도 큰 원인이다.

앞으로 실제로 군역을 피한 사람과 아무 죄 없이 대신 부담을 떠안은 사람을 분명히 구별하라.

한 사람 때문에 관계없는 친척과 이웃을 끝없이 동원하지 못하도록 엄하게 금지하라.

실태를 하나하나 조사하여 부당하게 부담을 떠안은 사람은 풀어 주어야 한다.


경기 관찰사에게 전쟁 준비의 네 가지 근본을 지시하다

지금 적은 문밖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이나 내일 다시 움직일지 알 수 없다.

우리 쪽의 준비를 조금도 늦출 수 없다.

싸우고 지키는 데 필요한 큰일은 네 가지다.

첫째, 군량을 마련하는 일이다.

둘째, 군사를 마련하고 훈련하는 일이다.

셋째, 성과 방어 시설을 갖추는 일이다.

넷째, 무기를 갖추는 일이다.

이 네 가지를 미리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 갖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백성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군사와 백성이 나라와 장수를 믿고 따르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훌륭한 장수를 골라 전적으로 일을 맡겨야 한다.

이런 조건이 함께 갖추어져야 실제로 적을 막을 수 있다.

내가 이 일을 맡은 뒤 거의 1년 동안 계속 마련하려 했던 것도 결국 이 네 가지다.

하지만 실제 성과를 살펴보면 어느 하나도 충분히 이루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이 때문에 밤낮으로 걱정하며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해 왔다.

먼저 군량 문제다.

전에 경기에서 거두는 논밭의 세금 가운데 쌀과 콩 일부를 각 고을의 창고에 그대로 두도록 했다.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 바로 사용할 군량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체를 합해도 얼마 되지 않는다.

수천 명의 군사가 한 달 먹기에도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각 마을에 권하여 형편에 따라 곡식을 조금씩 내어 비축하게 했다.

적이 갑자기 나타날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 지시는 이미 여러 차례 널리 알렸다.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군사의 경우에는 경기 병력을 네 군영으로 나누어 좌우 방어사에게 맡겼다.

실제로 얼마나 훈련되었는지를 조사하고 잘한 사람에게 상을 내려야 한다.

농사가 끝나면 여러 군영을 한꺼번에 모아 크게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좌영과 우영, 전영과 후영의 병사들에게 각자 소속을 표시하는 패를 차게 하라고 이미 지시했다.

좌영에서는 어느 정도 시행하고 있지만 다른 군영에서는 아직 제대로 하지 않은 곳이 있다고 한다.

다시 명령하여 모두 시행하라.

남한산성을 수리하는 일도 전에 직접 만나 의논했다.

별장 권응원 등의 보고에 따르면 포루를 만들 목재가 산 아래에 여섯 개 정도 마련되어 있는데 아직 산 위로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필요한 사람이 제때 힘을 모아 올려야 한다.

무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각 고을에 재료를 나누어 주고 필요한 군기를 만들라고 이미 명령했다.

빨리 제작하게 하라.

이런 것은 적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뒤 며칠 동안 급하게 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평상시에 넉넉히 마련해 두어야 위급할 때 쓸 수 있다.

다른 모든 준비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때를 놓치지 말라.


군인의 소속을 표시하는 패를 정확하게 만들도록 지시하다

최근 군사 편성이 매우 어지럽다.

사람을 군대로 뽑았다고 해도 명부에서 빠지고 숨어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직하게 등록된 사람은 계속 군역의 고생을 하는데 빠진 사람은 집에서 편하게 지낸다.

이것은 매우 불공평하다.

나는 전부터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각 군영의 병사가 허리에 패를 차게 했다.

패에는 소속 군영과 번호를 분명하게 표시한다.

좌영의 패는 한 가지 모양으로 만들고 푸른빛으로 표시한다.

후영의 패는 다른 모양으로 만들고 검은빛으로 표시한다.

우영의 패도 모양을 따로 정하여 흰빛을 쓴다.

전영 역시 별도의 모양과 빛깔을 정한다.

이렇게 하면 네 군영의 병사가 한곳에 뒤섞여 있어도 패만 보고 어느 군영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또 군사들 가운데 패가 없거나 번호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명부에서 빠져 있던 사람인지 조사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새로 들여온 병법에서도 쓰는 것이며 우리나라의 옛 군사 제도에도 비슷한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들어 보니 일부 군영에서는 패를 제멋대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다.

새긴 글자와 번호도 고르지 않다.

푸른색과 붉은색과 흰색과 검은색도 제대로 구별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는 군대를 가지런히 정비하려는 뜻에 맞지 않는다.

앞으로 각 군영 장수는 솜씨 좋은 사람을 찾아 정해진 견본에 따라 패를 똑같이 만들게 하라.

글자와 번호도 정확하고 고르게 새겨야 한다.

군영별 색깔도 분명하게 칠하라.

완성되면 모든 군인이 반드시 몸에 차게 하라.

끝난 뒤에는 보고하라.

나는 때때로 군관을 몰래 보내 마을을 돌아다니며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강음을 없앤 뒤의 문제를 다시 살피게 하다

강음은 전쟁으로 크게 쇠잔해졌다.

백성이 적어 다른 고을에 합치는 조치를 한 것도 당시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나 역시 그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옛날에 고을을 설치한 사람들은 지형과 도로를 생각하여 자리와 범위를 정했다.

단순히 백성이 적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없애서는 안 될 지역도 있다.

황해도의 전체 형세를 보면 서울에서 서쪽으로 나가는 중요한 길이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개성 방면을 지나 서쪽의 큰길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산과 골짜기를 따라 북쪽 지역으로 연결된다.

그 사이에도 작은 길은 많지만 큰 흐름은 이 두 길이다.

강음은 중요한 물길의 아래쪽에 있으면서 여러 육로와도 연결된다.

한쪽으로는 강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고, 다른 쪽으로는 백천과 연안과 해주로 이어진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다.

전쟁 때 적이 큰길로 내려올 때에도 가까운 요충지에 진을 설치하고 강음에 군사를 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강음에 군사가 자리 잡고 있으면 백천과 연안 방면의 우리 군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길을 오가는 적도 함부로 돌아다니기 어렵다.

지형을 살펴 어디를 지켜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음을 완전히 폐지하면 평산과 백천을 이어 주는 길 사이에 넓은 빈틈이 생긴다.

이것은 장기적인 대책이 아니다.

나는 전부터 강음의 힘을 다시 키우고 싶었다.

강가의 험한 곳에 방어 시설을 두고 길목을 지키게 하면 적이 큰길을 따라 곧바로 평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예전 고을 이름을 되살리는 것만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다시 모으고 둔전을 운영하고 곡식을 비축하며 방어 시설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강음을 다른 고을에 합치면 강음의 아전과 관속들은 가족과 재산을 들고 새로 소속된 고을로 옮겨 가야 한다.

그러면 본래 지역은 더욱 텅 빈다.

또 원래 다른 고을 사람이었던 관리들이 새로 편입된 강음 사람에게 여러 부담을 지울 수도 있다.

결국 두 지역 백성 모두 피해를 입는다.

고을을 합치는 일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음의 경우에는 특별한 방법을 써야 한다.

원래 살던 아전과 관속을 그 지역에 그대로 머물게 하라.

가능하면 다른 고을로 옮겨 다니게 하지 말라.

그곳에서 식견이 있고 부지런하며 일을 잘하는 사람을 골라 마을과 둔전을 책임지게 하라.

농기구와 소와 씨앗도 마련해 주어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으도록 하라.

이렇게 몇 년을 계속하면 백성이 차츰 모일 것이다.

지역의 형편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때 다시 온전한 고을로 만들 수 있다.

험한 곳을 이용한 방어 계획도 자연스럽게 갖추어질 것이다.

그러나 책임자를 잘못 고르면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백성이 다시 괴롭힘을 당한다.

따라서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현지 백성의 실제 사정도 자세히 조사하여 보고하라.

폐지된 고을에는 원래 제사를 지내던 곳과 백성들이 의지하던 여러 시설도 있었을 것이다.

고을이 없어졌다고 그것들을 그대로 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관리할지도 함께 조사하여 보완하라.


황해도의 군량과 물고기·소금에서 얻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게 하다

황해도 군량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결국 황해도에서 직접 고민해야 한다.

군사를 충분히 쓰려면 먼저 먹을 것이 충분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말은 포기할 수 있어도 식량은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군량이 중요하다.

전쟁이 다시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언제 군대를 움직일 일이 생길지 모른다.

홍수나 가뭄 같은 재난이 닥칠 수도 있다.

그때 무엇으로 백성과 군사를 먹일 것인가.

이것은 가장 크고도 시급한 문제다.

최근 명나라 유격장의 지시가 내려와 우리나라가 길가의 역참에 상당한 양의 군량을 마련해야 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정말 군사가 움직이는데 군량이 끊긴다면 담당자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황주와 주요 역참에 군대가 모였을 경우 필요한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 미리 계산하라.

어느 곳에 얼마나 비축할 것인지 하나하나 계획하여 보고하라.

옛날부터 전쟁 때 나라의 재정을 마련하는 중요한 방법에는 소금과 철 같은 자원이 있었다.

황해도는 바다와 강을 끼고 있다.

물고기와 소금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예전부터 나라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그 이익이 개인에게 흩어졌다.

나라가 이처럼 가난한데도 손을 놓고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바닷가 한두 고을의 수령 가운데 마음이 바르고 나라를 위해 힘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다.

마땅한 수령이 없다면 별도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계획을 세울 줄 알고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으며 백성을 함부로 괴롭히지 않을 사람이어야 한다.

공적인 이익과 백성의 생활을 함께 살리는 방법을 찾아라.

물고기와 소금을 배로 서울의 강가와 여러 지역으로 옮겨 팔면 한 해에 마련할 수 있는 곡식이 수만 석에 이를 수도 있다.

백성에게서 억지로 몇 되씩 곡식을 긁어모으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가 클 것이다.

황해도 안에서 물고기와 소금이 많이 나는 곳이 몇 군데인지 조사하라.

소금을 만드는 집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조사하라.

그들을 다시 모으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생각하라.

배는 어떻게 마련하고 어디로 오가게 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누가 전체 일을 맡을지도 정하라.

이 모든 내용을 조목조목 계획으로 만들어 보고하라.


함경도의 군대 명부와 마을별 훈련을 제대로 정비하게 하다

함경도에서 올린 군사 명부를 보니 병사의 생김새와 나이는 적혀 있는데 정작 어느 군영과 어느 지휘관에게 속한 사람인지 적지 않은 경우가 있다.

머리는 없는 몸과 같다.

매우 불안정한 방식이다.

군대를 제대로 쓰려면 지휘 관계부터 분명해야 한다.

군사를 묶어 편성하는 일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백성이 지나치게 고통받는다면 제도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한 고을 안에서도 면과 마을별로 실제 사는 사람을 파악하라.

그 가운데 부지런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작은 부대의 책임자로 삼는다.

현재 살아 있는 장정들을 같은 마을 사람끼리 묶어 대오를 만든다.

그들을 훈련할 때마다 멀리까지 불러 모을 필요는 없다.

자기 마을이나 가까운 곳에서 일정한 때에 모여 활쏘기와 무기 사용법을 익히게 하면 된다.

책임자는 누가 부지런히 훈련하고 누가 게으른지 살펴라.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면 다른 사람도 힘을 낼 것이다.

옛날에도 수만 명의 백성을 이런 방식으로 조직하여 나라의 큰 군대로 만든 사례가 있었다.

세부 제도까지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핵심 원리는 본받을 만하다.

삼수와 갑산 같은 먼 북방 지역에서는 군량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원군이 필요한 날이 닥친 뒤에 곡식을 찾는다면 늦는다.

비교적 한가한 때에 소금이나 다른 물건을 이용하여 곡식을 바꾸어 모으고 저장하는 방법을 마련하라.

이것도 매우 급한 일이다.


죽산산성을 수리하는 일을 다시 검토하게 하다

도 안의 산성 가운데 적당한 곳을 골라 수리하면 백성을 보호하고 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죽산산성은 특별히 중요하다.

죽산은 여러 큰길이 만나는 곳이다.

청주 쪽과 충주 쪽에서 오는 길이 만나는 요충지이며 곧바로 서울로 이어진다.

다른 지역보다 형세가 중요하다.

이곳에 산성을 잘 정비해 앞쪽 군영의 군사를 훈련하는 곳으로 사용하면 좋다.

산 아래의 넓은 들을 이용해 둔전을 많이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오래도록 이익이 된다.

과거에도 이 성의 지형을 이용해 적을 막은 일이 있었으므로 실제 효과가 이미 확인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부터 성을 수리하고 싶었다.

다만 공사가 너무 커져 많은 백성을 동원하게 될까 걱정하여 쉽게 명령하지 못했다.

그런데 현지 백성이 이미 흙과 돌을 상당히 모아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해가 바뀌면서 전쟁의 소란이 조금 줄었다.

명나라 군대의 왕래로 인한 부담도 전보다 덜하다.

이때를 놓치면 나중에는 공사를 완성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앞쪽 군영에 소속된 군인들과 아직 군대로 뽑히지 않은 사람을 형편에 따라 동원하여 성을 쌓게 하라.

이미 군역을 많이 한 사람에게 또 무거운 일을 몰아주지 말고, 상대적으로 부담을 적게 진 사람에게 조금 더 맡기는 것이 좋다.

농사철에는 하루에 동원하는 인원과 시간을 줄여 농사를 망치지 않게 해야 한다.

실제 공사가 얼마나 걸릴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관찰사가 전체 계획을 자세히 세우고 백성들의 생각도 살펴라.

실행할 수 있는지 빨리 보고하라.


황해도의 작은 소란 때문에 백성이 크게 놀라지 않게 하다

이달 초에 도 안의 깊은 산과 숲에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나타나 소란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형편상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있던 포수와 사수 일부를 나누어 보내 진압하도록 했다.

그 때문에 서울을 지키는 군사의 수도 줄었다.

서울 가까운 지역의 무사들을 뽑아 보내라는 명도 이미 내려갔다.

그러나 처음부터 매우 큰 변란이라고 확정할 만한 일은 아니다.

지방 백성이 실제 사정을 모르고 지나치게 놀란다면 오히려 더 큰 혼란이 생긴다.

관찰사는 사실을 자세히 살펴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무사를 보내야 한다면 연안과 백천과 해주 등에서 먼저 삼백 명이나 사백 명 정도를 골라 올려 보내라.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동원하지 말라.

나머지 무사들도 미리 정돈해 두어 조정의 명령이 내려오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라.

황해도 백성들은 전쟁 이후 오랫동안 각종 부역에 시달렸다.

사람을 뽑는 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실제 형편을 자세히 살피고 백성을 불필요하게 동요시키지 않도록 하라.


황해도에서 승려들에게 지나친 부역을 지우지 못하게 하다

전쟁이 시작된 뒤 병력 동원과 물자 운송 등 모든 일이 평상시와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다.

백성의 고통은 말할 수도 없다.

산속에 사는 승려들도 마찬가지다.

성을 쌓는 일을 비롯해 여러 부역에 계속 불려 나가 쉴 날이 없다.

승려는 본래 농토에 붙어 사는 일반 백성과 조금 다르다.

머물기 어려우면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리기 쉽다.

한 승려가 떠나면 그 사람이 맡던 부담을 남은 사람에게 나누어 지운다.

그 부담 때문에 다시 다른 사람이 떠난다.

이런 일이 계속되어 절 전체가 텅 비는 곳도 생겼다.

그런데도 수령들은 승려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관청의 여러 잡다한 일을 계속 떠맡긴다.

종이를 만드는 일이나 장을 만드는 일 같은 것까지 승려에게 요구한다.

관청의 힘을 믿고 중간에서 승려들을 괴롭히는 사람도 한두 명이 아니다.

승려들이 평민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한다는 말까지 있으니 차마 들을 수 없다.

비록 떠돌아다니기 쉬운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살아갈 길을 완전히 막아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힘센 사람은 도적이 될 수도 있다.

약한 사람은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앞으로 각 수령은 자기 고을의 절과 승려를 특별히 보호하라.

법에 정해지지 않은 잡역을 함부로 맡기지 말라.

성을 쌓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계절과 형편을 보아 동원하라.

가을과 겨울에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농사와 생업이 바쁜 때에 사람을 잡아다 시켜서는 안 된다.

한 절의 승려를 계속 반복해 부르지 말고 여러 곳에 부담을 고르게 나누어라.

실제로 얼마나 자주 동원되었는지 헤아려 일정한 기간 동안 다시 부르지 않도록 보호하는 증명서를 줄 수도 있다.

그 증명서를 받은 사람은 1년 안에 다른 곳에서 또다시 억지로 동원하지 못하게 하라.

다만 이런 증명서를 핑계로 권세를 부리거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조사하여 죄를 물어야 한다.

도 안의 절과 성문,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이 내용을 크게 써 붙여 모든 승려가 알게 하라.

관찰사는 실제로 지켜지는지 계속 조사해야 한다.


평안도에서 군사를 훈련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다

군사를 기르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군량이 넉넉하다면 정예하고 용감한 사람을 모집한다.

나라에서 곡식을 주어 한곳에 모아 두고 장수가 지휘하며 밤낮으로 훈련한다.

옛날부터 여러 나라에서 정예 상비군을 기르던 방법이 대체로 이와 같았다.

그러나 군량이 부족하면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다.

그때에는 각자의 고향과 마을을 기준으로 백성을 부대로 묶어야 한다.

그 가운데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책임자로 세운다.

농사일이 한가할 때 가까운 곳에서 훈련하게 한다.

때로는 여러 부대를 한곳에 모아 진을 짜고 움직이는 법을 익히게 한다.

이 역시 옛날부터 사용해 온 방법이다.

지금 우리나라 창고는 거의 비었다.

군사를 한곳에 모아 계속 먹이며 훈련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멀리 있는 고을의 군사를 훈련한다는 이유로 매달 번갈아 먼 곳까지 불러오면 백성의 고통이 너무 크다.

왕복하는 데 비용이 든다.

자기 먹을 식량도 마련해야 한다.

농사철을 잃는다.

심하면 집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도 생긴다.

이것은 군사를 훈련하려다가 오히려 군대와 백성을 함께 망치는 폐단이다.

경기에서 시행한 방법을 참고할 수 있다.

군대를 네 군영으로 나누었다.

각 고을을 거리에 따라 가까운 군영에 소속시켰다.

가장 작은 부대는 가능한 한 같은 고향 사람끼리 묶었다.

사람이 많은 마을은 부대도 많게 만들고, 사람이 적은 마을은 적게 만든다.

가까운 사람을 놔두고 굳이 먼 곳의 사람과 한 부대로 섞지 않는다.

모든 원칙은 백성을 편하게 하는 데 있다.

날씨가 따뜻하고 농사일이 한가할 때 각자 사는 곳에서 훈련하게 한다.

작은 부대의 책임자는 훈련한 날짜와 횟수를 기록한다.

그 내용을 위 지휘관에게 보고한다.

다시 군영의 장수가 관찰사와 병사에게 보고한다.

잘한 사람은 상을 준다.

큰 군사 훈련이 필요할 때에는 한 군영의 군사를 한곳에 모아 점검할 수 있다.

필요하면 네 군영 전체를 중앙에 모아 큰 훈련을 한다.

이것이 경기에서 시행하는 군사 훈련의 대강이다.

평안도에서도 이 원칙을 따를 수 있다.

현재는 각 지역 군사가 매달 번을 정하여 관청에 들어가 숙직하거나 훈련하는 것으로 들었다.

이런 방식은 왕복 비용이 매우 크다.

농사도 망친다.

더구나 이미 다른 군역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 훈련 근무를 시키고 자기 식량까지 마련하게 하면 한 사람이 두 곳의 일을 맡게 된다.

사람의 힘으로 견디기 어렵다.

처음 훈련된 사람이 전혀 없던 때라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포수와 사수 등은 상당수가 훈련을 마쳤다.

그들을 자기 마을로 돌려보내라.

각자 사는 곳에서 정해진 방법대로 연습하게 한다.

새로 군대에 들어온 사람은 먼저 익힌 사람에게 배우게 하라.

한 사람이 열 사람을 가르치고 열 사람이 백 사람을 가르친다면 오래지 않아 도 전체의 사람들이 군사 훈련을 익힐 수 있다.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다만 훈련을 열심히 해서 뛰어난 사람이 된 사람에게 혜택이 있어야 한다.

잘하든 못하든 똑같이 군대 명부에 넣고 똑같은 부담만 준다면 누가 힘써 배우겠는가.

각 부대에서 실력을 비교하여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는 방법을 생각하라.

상등의 군사는 다른 군역 일부를 줄여 주는 등의 혜택을 줄 수 있다.

중등은 그보다 조금 적게 혜택을 준다.

하등은 아직 일반 백성과 크게 다르지 않게 둔다.

실제 군사를 동원해야 할 때에는 상황에 따라 상등자부터 보낼 수도 있다.

또는 상등과 중등을 함께 보낼 수도 있다.

상등 군사를 뽑아 보내면 중등과 하등은 고향에 남아 방어하게 한다.

중등까지 동원하면 하등은 남아 있게 한다.

이렇게 하면 한꺼번에 모든 장정을 빼내 마을이 텅 비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 방안이 실제로 편한지 백성에게도 물어라.

깊이 의논하여 알맞게 시행하라.


평안도의 작은 보루를 정리하도록 하다

일부 지역에는 다섯 리나 열 리 사이마다 작은 보루를 연달아 설치한 곳이 있다.

각 보루에는 지휘관과 군관을 두고 병사를 배치한다.

군관이 먹는 식량을 관청에서 내기도 하고 병사들에게 부담시키기도 한다.

결국 군사도 고통스럽고 관청의 곡식도 계속 줄어든다.

그런데 정작 작은 보루마다 있는 군사의 수는 너무 적어 큰 적군을 막을 수 없다.

적이 크게 쳐들어오면 결국 작은 보루를 버리고 큰 진지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평상시에는 사람과 군량만 소비하고 실제로 위험한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시설은 형편에 따라 합치거나 줄이는 것이 좋다.

작은 보루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곳에 큰 진지를 두고 병력을 모으는 편이 낫다.

그 사이에는 연락 시설을 두어 적이 나타나면 서로 즉시 알려 주게 하라.

큰 진지에는 병사 수가 많으므로 힘을 합쳐 적과 싸울 수도 있다.

백성을 보호하기에도 더 좋다.

이 문제도 병사와 서로 의논해 실제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보고하라.


평안도의 수군 부담과 군마 부족을 해결하도록 하다

평안도에서 수군을 보내 지키는 곳은 몇 군데 있다.

예전에는 그 부담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 뒤로는 사정이 달라졌다.

명나라 사신과 군대가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

내륙의 백성에게도 쉴 날이 없다.

수군도 계속 동원되면서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조정할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전쟁 뒤에는 말의 수도 크게 줄었다.

사람이나 군수 물자를 운반할 때 필요한 말을 민간에서 마련하기가 어려워졌다.

이것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전에 이런 방법을 생각한 적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 당나귀 수십 마리를 구한다.

평안도의 목장 가운데 물과 풀이 좋아 기르기 좋은 곳을 정한다.

그곳에서 암말 백여 마리를 골라 당나귀와 함께 기른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면 새끼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운송에 사용할 수 있는 말과 노새를 상당수 마련할 수 있다.

역마가 부족할 때도 쓸 수 있다.

군수 물자를 나르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다.

오래 두고 보면 큰 이익이 된다.

이 계획을 지시한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실제로 시행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다시 조사하라.

국경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면 필요한 가축을 구입해 시험해 보는 방법도 생각해 보라.

실제로 가능한지 깊이 검토하여 보고하라.


외지 장수의 식량을 병사에게 떠넘기지 않게 하다

우리나라 옛 제도 가운데에는 외지에서 온 장수가 자기 군사의 식량을 함부로 빼앗아 먹지 못하도록 한 취지가 있었다.

군사 거점 가까이에 일정한 양의 곡식을 비축해 두고 그것을 장수와 군관의 식량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봄과 가을에 가까운 지역의 백성에게 형편에 맞게 곡식을 거두어 저장해 두고, 해마다 필요한 양을 정해 쓰면 된다.

그렇게 하면 장수의 식량을 병사에게 떠넘기지 않아도 된다.

수군 역시 숨을 돌릴 수 있다.

또 일부 조방장은 군사를 모을 때마다 내륙 여러 고을에서 사람과 말을 멀리 끌어와 함께 방어하게 한다고 한다.

처음 제도를 만들 때에는 방어가 급해 어쩔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관행으로 굳어졌다.

지금도 꼭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명나라 군대와 사신의 왕래가 계속되어 내륙 백성도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옛날부터 하던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그대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이익과 폐해를 자세히 비교해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황해도의 수령과 군사 책임자를 실제 성과로 평가하게 하다

지금 나라의 형편은 다시 위태로워지고 있다.

북쪽 변경도 한꺼번에 급하다.

군대와 물자를 움직이는 데에는 말도 필요하다.

하지만 군사를 제대로 만드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령과 장수가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수령과 장수는 온 힘을 다해 윗사람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백성을 부지런히 돌보고 위로해야 한다.

백성이 고향을 떠나 흩어지거나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군사 조직을 만들고 실제로 쓸 수 있다.

황해도 수령 가운데에도 생각이 깊고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소문만 듣고 사람을 판단하여 능력 있는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일도 있는 듯하다.

누가 어떤 사람을 두고 험담한다고 해서 바로 사람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군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큰일이다.

이미 마을별로 군사를 편성했다 해도 평소 훈련에만 사용하고 실제 변란이 일어났을 때 쓰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관찰사는 다시 수령과 군사 책임자들의 실제 행동을 조사하라.

정말 마음을 다해 일하여 성과를 낸 사람이 있다면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실을 기록해 보고하라.

군문에서 확인하여 상을 주겠다.


여러 도의 관찰사와 병사에게 수령과 장수를 엄정하게 평가하도록 하다

백성이 살아나느냐 죽느냐는 수령의 행동과 매우 깊이 관계된다.

그 수령이 직무를 제대로 하는지는 관찰사가 얼마나 엄정하게 평가하느냐에 달렸다.

평가는 반드시 공평해야 한다.

사사로운 칭찬이나 비난 때문에 실제 공과를 뒤집어서는 안 된다.

나라에서 해마다 수령을 평가하고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도록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관찰사가 평가를 엄정하게 하면 백성을 성실히 돌본 수령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게으르고 탐욕스럽고 잔인한 수령은 나쁜 평가를 받는다.

그래야 좋은 정치가 백성에게 미칠 수 있다.

지금은 전쟁 뒤라 백성의 형편이 평상시보다 훨씬 어렵다.

백성은 이미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각종 부역과 물자 운송, 사신 접대와 군대 지원에 시달렸다.

이런 때 수령까지 다시 가혹한 정치를 한다면 백성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형벌을 함부로 남발하고 백성의 재물을 탐내며 자기 집안을 위해 공적인 물자를 쓰고, 친한 사람만 돌보는 수령이 있다면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관찰사가 이런 사실도 알지 못한다면 백성이 다시 살아날 날이 없다.

잘하는 사람은 잘한다고 평가하고 못하는 사람은 못한다고 평가해야 한다.

상과 벌이 공정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윗사람의 평가가 한번 흐려지면 백성의 어려움은 끝날 때가 없다.

한 지역 전체의 풍속과 정치도 바로잡을 수 없다.

군사를 맡은 장수와 각 진의 지휘관도 마찬가지다.

군사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엄격하게 조사해야 한다.

나는 여러 도를 살피라는 명을 받은 지 이미 2년이 되었지만 직접 모든 지역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수령이 현명하고 어느 사람이 나쁜지 소문만으로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번 겨울에는 각 도의 수령과 장수의 실제 성적을 분명하게 조사하라.

특히 매우 잘한 사람과 매우 잘못한 사람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어 보고하라.

그것을 확인해 상과 벌을 결정하겠다.


함경도 남북의 군사 근무 기간을 줄이고 번갈아 방어하게 하다

함경도는 서울에서 아주 멀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부역이 백성에게 한꺼번에 몰렸다.

백성들은 견디지 못해 곳곳에서 흩어지고 있다.

들어 보니 남도와 북도의 무사들이 새로 뽑힌 사람인지 오래 복무한 사람인지 가리지 않고 국경 방어에 나간다고 한다.

해마다 2월에 들어가 10월이 되어야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 집을 비우면 농사철을 모두 놓친다.

그 결과 살림이 무너지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가능하다면 무사들을 네 번으로 나누어 서로 교대로 방어하게 하라.

한 사람이 계속 붙잡혀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실제로 가능한지, 백성들이 원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자세히 조사하여 보고하라.

북쪽의 여러 진과 요새는 지역에 따라 형편이 서로 다르다.

모든 곳에 한 가지 방법을 강제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형편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함경도의 군공을 세운 사람들이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는 문제

군공을 세운 사람들의 사정도 매우 안타깝다.

자기 식량을 마련하여 오랫동안 국경을 지키면서 공을 세운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공을 세우고도 원래 신분과 처지에서 아무 변화가 없다면 누가 다시 힘써 싸우겠는가.

관청에 딸린 천한 신분의 사람이 공을 세워도 그대로 관청에 딸려 있고, 개인의 종이 공을 세워도 다시 주인집의 종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 공이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모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는 일을 자기 몸을 해치는 일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설령 다시 큰 변란이 생겨도 누가 나라를 위해 나서겠는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지는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

방어 근무에 나갈 때 관청에서 식량을 주어 자기 식량을 모두 부담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관청의 힘이 부족해 모든 사람에게 계속 지급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먼 곳을 왕복하는 거리와 근무 기간을 따져 번을 적절하게 나누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적의 움직임이 잠잠할 때에는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한다.

방어가 급할 때 서로 차례를 바꾸어 나가게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쉴 수 있을 것이다.

깊이 의논하여 시행하라.


북방 장수들이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엄하게 금지하다

우리나라는 큰 전쟁을 겪고 이미 크게 쇠약해졌다.

그런데 강한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다.

군사가 없으면 적을 막을 수 없다.

백성이 없으면 나라 자체를 지킬 수 없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변경 장수 가운데에는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백성을 함부로 괴롭히는 일이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변경의 백성 마음이 떠나고 흩어진다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관찰사와 병사는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백성을 괴롭히는 장수를 자세히 가려내라.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어 백성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없애고 백성의 마음을 다시 얻어 국경 방어에 힘을 보태게 해야 한다.


북방 병사의 개와 가죽을 빼앗지 못하게 하다

북방은 매우 춥다.

그 지역 백성은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가죽을 얻기 위해 개를 많이 기른다.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추위를 견딘다.

그런데 장수들이 사람을 대접하거나 잔치를 할 때 군사들이 기르는 개를 수백 마리씩 거두어 간다고 한다.

고기는 먹고 가죽까지 빼앗는다.

잔치에 쓸 다른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죽까지 빼앗는 것은 옳지 않다.

북방 병사들은 그 가죽으로 겨울옷을 만들어야 한다.

가죽마저 돌려주지 않으면 무엇으로 몸을 보호하겠는가.

앞으로는 이런 일을 모두 엄하게 금지하라.

이미 가죽을 가져간 경우에는 가능한 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하라.

이후에 병사의 가죽 한 장이라도 사사로이 빼앗는 사람이 있으면 무거운 죄로 다스릴 것이다.

이 내용을 국경 지역에 분명히 알려 시행하라.


황해도의 전체 방어에서 강음이 가장 중요한 길목임을 다시 강조하다

나라의 큰일을 운영하는 것은 결국 싸우는 것과 지키는 두 가지다.

그런데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싸우는 사람은 없다.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형을 얻는 것이다.

한 나라에는 한 나라의 중요한 지형이 있다.

한 도에는 한 도의 중요한 지형이 있다.

한 고을에도 그 고을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 있다.

중요한 지형이란 우리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적에게는 반드시 빼앗고 싶은 곳이다.

황해도를 크게 살펴보면 중요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에는 산길이 많고 험해서 적에게 불리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곳이 있다.

예전 일본군도 그런 험한 길을 쉽게 이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큰길을 기준으로 보면 강음이 가장 중요한 곳이다.

강음은 중요한 강의 아래쪽에 있어 배가 오갈 수 있다.

여러 큰길과도 가깝다.

백천과 연안과 해주 같은 곳도 그 뒤에 있다.

이곳에 강한 군대를 두면 적이 큰길을 따라 곧바로 평산 쪽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백천과 연안과 해주도 보호할 수 있다.

강음은 황해도의 목구멍과 같은 곳이다.

예전 적이 내려왔을 때에도 큰길을 막기 위해 한곳에 진을 치고, 갈림길을 막기 위해 강음에 다시 군대를 두었다.

적 역시 중요한 지형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전에 강음을 다른 고을과 합치려고 했을 때 내가 그것을 아깝게 생각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강음을 다시 살리자는 뜻은 단순히 고을 이름을 되돌리자는 것이 아니다.

둔전을 운영하고 곡식을 모은다.

험한 곳을 골라 방어 시설을 설치한다.

그렇게 해서 연안과 백천과 해주 등 여러 지역을 지켜 주는 방패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은 황해도 전체의 큰 방책과 관계된다.

관찰사는 다시 깊이 생각하라.

군량은 어느 곳에 저장해야 좋은지 살펴라.

사람들은 어느 곳으로 모아야 좋은지도 살펴라.

성이나 보루가 필요하다면 어디에 세울지를 정하라.

중요하지 않은 시설은 줄이고 전체 계획을 먼저 세워 해마다 조금씩 완성해야 한다.

평산과 서흥, 황주와 재령 같은 중요한 지역도 똑같이 마음을 써서 대비해야 한다.

실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조사하여 보고하라.


황해도의 군사에게 무기를 갖추고 정예병을 다시 골라 뽑게 하다

지금까지 마련한 일이 모두 헛일이 되지 않게 하려면 앞으로 몇 달 동안의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

적의 움직임이 다시 달라지고 있다.

다음 봄에는 더욱 크게 걱정할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몇 달 동안 모든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응할 수 있다.

황해도의 군사들을 마을별 부대로 묶고 각 방어 거점에 배치하는 일은 차츰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군사를 뽑기만 하고 무기를 주지 않으면 빈손으로 적을 막으라는 것과 같다.

각 부대원이 지금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조사하라.

무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관청에서 마련해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황해도 사람들은 본래 굳세고 싸움을 잘한다.

황주와 봉산을 비롯하여 무사가 많이 사는 곳도 있다.

현재 군대 명부에 들어 있는 사람만 보고 끝내서는 안 된다.

명부에서 빠졌지만 실제 전쟁을 겪어 쓸 만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전에 의병장들이 사람을 모았을 때 만든 명단도 다시 찾아보라.

그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 방법으로 정예하고 용감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쓸모없는 사람을 숫자만 채우려고 넣지 말라.

의병을 이끌던 사람 가운데 지휘할 능력이 있는 사람도 골라 다시 활용하라.

한 사람에게 반드시 많은 군사를 맡길 필요는 없다.

많으면 백 명 정도를 맡긴다.

적으면 쉰 명이나 이십여 명도 괜찮다.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사람 수에 맞게 부대를 나누면 된다.

뽑힌 병사들에게는 어느 장수에게 속했는지 알아볼 수 있게 표시를 하라.

앞에서 정한 군사 패의 견본에 따라 수에 맞게 만들어 몸에 차게 할 수 있다.


황해도의 군량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모으게 하다

군사가 백만 명 있다고 해도 먹일 것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황해도에 남아 있는 군량은 매우 적다.

수천 명의 군사를 한 달 먹이기도 어려울 만큼 부족하다.

명나라 대군이 다시 많이 나오면 더더욱 감당할 수 없다.

곡식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

급히 거두어 필요한 때를 기다리며 저장하라.

각 고을에서 거두는 세금 가운데 일부를 쌀로 바꾸어 군량에 보태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미 거둔 곡식을 백성에게 돌려주었다가 다시 내라고 하는 식으로 일을 복잡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백성이 너무 어렵다.

조금의 부담도 크게 느낀다.

관찰사가 민심과 실제 사정을 자세히 살펴 가장 피해가 적은 방법을 고르라.

해주는 다른 고을과 다르다.

중요한 거점이므로 평상시에도 군량을 조금 넉넉하게 쌓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창고를 조사해 보니 남아 있는 양이 지나치게 적은 듯하다.

다른 곳에서 별도로 모집한 쌀과 콩 가운데 옮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주로 보내라.

종사관이 모은 쌀과 콩 사백여 석은 봉산에 남겨 둔 것으로 보인다.

봉산은 명나라 군대가 지나는 큰길이므로 그곳의 곡식은 함부로 다른 데로 옮기지 말고 접대와 군량에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

그곳에 보관 중인 화살 재료와 군수 물자도 새 수령에게 정확히 넘겨라.

모두 군량과 전쟁 준비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경기 좌방어사에게 강가의 임시 방어 시설을 만들도록 지시하다

전에 강가를 따라 방어선을 만드는 일을 지시했다.

다시 자세히 살펴 실제로 시행하라.

강가마다 큰 포루와 튼튼한 시설을 모두 만드는 것은 형편상 어렵다.

그러면 군사 한 사람에게 빈 가마니 몇 장씩을 준비시키는 방법이 있다.

적이 나타났을 때 강둑 위에 가마니를 쌓아라.

그 안에 흙을 채운다.

그러면 임시 방벽이 된다.

군사는 그 뒤에 몸을 숨긴다.

그곳에서 총이나 활을 쏘면 된다.

큰 시설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간단하고 실제로도 쓸 수 있다.

형편을 살펴 시행한 뒤 보고하라.


경기 우방어사에게 독성의 나무기둥과 수성 체계를 다시 점검하게 하다

독성 성벽 앞에 나무기둥을 많이 세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실제 모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둥을 너무 빽빽하게 세웠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적이 멀리 있을 때에는 성 위에서 돌과 화살을 쏘므로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이 기둥 아래까지 가까이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성 위의 사람이 오히려 기둥 때문에 시야를 가릴 수 있다.

포를 쏘거나 활을 쏘고 돌을 던질 때에도 방해가 된다.

방어를 위해 설치한 것이 오히려 성을 지키는 사람의 공격을 막는다면 잘못된 일이다.

예전에도 성 밖에 설치한 나무 시설 때문에 오히려 성 위에서 적을 공격하기 어려웠던 사례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두지 말라.

기둥의 간격과 형태를 직접 자세히 살펴라.

실제로 유리한지 불리한지 판단하여 고칠 것은 고쳐라.

필요 없는 시설을 더 만드는 것은 뱀을 그리고 나서 쓸데없이 다리를 붙이는 것과 같다.

사람의 힘만 낭비한다.

성을 지킬 군사의 수도 미리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의 어느 구역을 어느 부대가 맡을 것인지 미리 정하라.

어느 구간에 몇 명이 설지까지 정해야 한다.

전쟁이 시작된 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밀고 당겨서는 안 된다.

별도로 기동 병력도 두어 위급한 곳에 달려가 돕게 하라.

이것이 성을 지키는 기본 원칙이다.

독성을 방어할 병력이 충분한지 미리 계산하라.

군대를 여러 작은 부대로 나누고 부대별로 깃발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작은 부대를 표시하는 작은 깃발과 여러 부대를 합친 큰 깃발을 세운다.

각 깃발에는 병사의 이름이나 소속을 적어 둔다.

한번 경보가 울리면 모든 병사가 즉시 성 위의 자기 자리로 올라가게 한다.

성 안에는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렇게 정돈한 뒤에야 성을 제대로 지킬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을 자세히 정리하여 시행하라.


한강 상류 방어 구역의 책임을 분명하게 하다

한강 상류를 방어하는 큰 계획은 이미 대략 정해 알려 주었다.

각 지역을 여러 방어 구역으로 나눈다.

각 방어사가 다시 자기 부하 지휘관에게 구역을 나누어 맡긴다.

지형의 중요도에 따라 병사의 수를 늘리거나 줄인다.

어느 장수가 어느 지역을 맡는지 분명하게 해야 한다.

담당자는 자기가 맡은 구역을 문서로 인계받아야 한다.

만일 실제 적이 나타났는데도 군령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매번 위에 물어볼 필요 없이 현장에서 군법에 따라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만큼 책임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각 방어 책임자는 다시 자기 아래의 장교와 작은 부대 책임자에게 임무를 나누어 준다.

모두 마음을 합해 움직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자기 구역을 함부로 벗어나면 무겁게 다스려야 한다.

이 약속을 문서로 두 부 만든다.

한 부는 방어사가 가지고 있는다.

한 부는 군문이나 상급 기관에 보내 나중에 조사할 수 있게 한다.

군율은 엄해야 한다.

그러나 군율이 엄한 것보다 먼저 명령이 분명해야 한다.

병법에도 명령이 불분명한데 병사가 잘못하면 장수의 죄라고 했다.

명령이 이미 분명한데도 병사가 어기면 그때에는 병사의 죄다.

방어사는 이 원칙을 직접 부하들에게 명백하게 설명해야 한다.

아래 지휘관들은 한결같이 방어사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


한강의 물길과 여울을 현지 사람에게 자세히 조사하게 하다

강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지형을 아는 것이다.

물이 어디에서 깊고 어디에서 얕은지 알아야 한다.

건널 수 있는 여울이 어디인지도 알아야 한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고 어느 곳이 가까우며 어느 곳이 먼지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그 지역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외지 군사가 아무리 많이 와도 현지 지형을 모르면 제대로 방어하기 어렵다.

지역 군사를 중심으로 배치하고 필요하면 외지 군사를 보태야 한다.

여러 강가 지역에 차례로 방어선을 두어라.

강 바로 옆의 방어 지점과 그 뒤의 산성을 서로 연결하라.

백성이 들어가 피할 곳도 함께 정해야 한다.

양근 부근의 군사가 적어 부족하다면 가까운 지역 사람을 더 동원해야 한다.

벼슬한 사람과 나이 든 사람, 실제 전투에 쓰기 어려운 사람은 산성 안으로 들어가 보호받게 할 수 있다.

젊은 장정은 밖에서 방어하게 한다.

높은 곳에는 깃발을 많이 세워라.

밤에는 횃불을 밝힌다.

위쪽 방어 지점과 아래쪽 방어 지점이 서로 신호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양근 수령에게 이 일을 책임지고 마련하게 하라.


가평과 한강 상류의 산길과 얕은 여울도 방비하게 하다

한강 상류와 가평 경계에는 산골짜기의 작은 길이 많다.

강물이 얕아 쉽게 건널 수 있는 곳도 있다.

평상시에 이런 곳을 자세히 조사해 두어라.

적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 그들의 이동 방향을 살펴 서로 연락해야 한다.

필요한 곳에는 매복하고 적의 길을 끊는다.

이 모든 일을 하나하나 미리 글로 정해 줄 수는 없다.

장수가 지형을 알고 기본 계획을 마련한 뒤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강 남쪽의 수원과 이천 등지 군사 가운데 필요하면 일부를 강 북쪽으로 옮겨 두어라.

강가 여러 곳에는 병사가 한데 모일 수 있는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시야가 넓고 높은 곳이나 험한 곳을 골라 한 부대씩 주둔하게 한다.

간단한 집도 만들어 바람과 비를 피하게 하라.

이 거점들이 강을 따라 서로 이어지면 서울까지 연결되는 방어선 전체가 튼튼해진다.

그러면 적이 다시 온다 해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 없다.


남한산성을 경기 방어의 핵심으로 삼다

강 북쪽의 여러 방어 지역과 함께 남한산성을 반드시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남한산성은 지세가 험하다.

광주 백성의 수도 많다.

이 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이 지역 백성이 위급할 때 갈 곳이 없다.

내년 봄까지 성을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고친다면 광주 여러 지역의 군사와 백성, 주변 고을 사람들도 이곳에 들어가 의지할 수 있다.

서울을 지키는 데에도 서로 의지하는 중요한 거점이 된다.

특별히 힘써 준비하라.

잘못하면 책임을 묻겠다.

남한산성 안에서 먹을 곡식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광주와 주변 고을에 남아 있는 이전 해의 세곡과 군량 가운데 옮길 수 있는 것은 형편을 살펴 옮겨라.

육로로 무거운 곡식을 모두 나르면 백성에게 큰 고통이 된다.

봄에 얼음이 풀린 뒤 물길을 이용해 운송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편하다.

두 방법 가운데 실제로 편한 방법을 골라 시행하라.


경기 수군 책임자에게 수군 진영을 성으로 만들도록 지시하다

수군 진영으로 쓸 만한 지역의 지형이 매우 좋다고 들었다.

양쪽에 백성의 논밭이 있고 가운데는 비교적 좁아 막기가 쉽다고 한다.

그곳에 성을 하나 만들어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면 좋겠다.

적이 나타났을 때 한 고을의 백성이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가 피할 수 있게 한다면 수군 진영도 훨씬 튼튼해질 것이다.

현지 수령의 말도 그러하고 백성들도 원한다고 한다.

좋은 기회다.

수군 책임자는 현지 수령과 다시 의논하라.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먼저 나무를 베어 필요한 재료를 마련한다.

땅이 녹으면 본격적으로 흙을 쌓아 성을 만들도록 하라.

성 만드는 방법은 이미 사람을 보내 알려 주었다.

그래도 잘 모르는 점이 있으면 군관을 다시 보내 지도를 받게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완성하도록 하라.


남한산성 수축의 구체적인 방법

남한산성은 서울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다.

이미 성을 수리하기로 의논을 마쳤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성의 둘레가 너무 큰데 백성이 적으니 도저히 완성할 수 없습니다.”

형편에 맞는 방법을 찾지 않고 무턱대고 큰 공사를 벌이면 실제로 완성하기 어렵다.

백성의 힘만 먼저 다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 전체를 한꺼번에 완벽하게 다시 쌓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을 지킬 때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먼저 만들어야 한다.

성벽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성 밖으로 튀어나온 방어 시설을 만들 수 있다.

이곳을 이용하면 성벽 아래로 접근하는 적을 정면뿐 아니라 좌우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

이런 시설을 제대로 만들고 서로 공격 범위가 겹치게 하면 그 사이의 성벽이 조금 약하더라도 적이 쉽게 가까이 붙지 못한다.

남한산성 군사 가운데 마을별 부대로 편성된 사람 수를 계산해 보라.

대략 오십 명 정도에게 방어 시설 하나씩을 맡기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군사의 수가 백 명이면 두 곳을 맡긴다.

오십 명이면 한 곳을 맡긴다.

지역의 아전과 관속, 품계가 있는 사람 가운데 나라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각자 힘이 닿는 만큼 한두 곳의 공사를 맡게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필요한 방어 시설을 여러 곳에 나누어 세울 수 있다.

각 시설 사이를 대략 백 보 안팎으로 두고, 한 시설 자체도 상당한 너비를 차지하게 하면 서로 활과 총으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면 성 전체를 처음부터 완벽하게 쌓지 않더라도 큰 방어 체계는 먼저 갖출 수 있다.

오십 명이 방어 시설 하나를 맡아 만든다면 사람의 힘도 충분하다.

오래 걸리지 않고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우선 수리할 구간을 정하다

남한산성의 전체 둘레는 매우 길다.

그렇다고 모든 곳을 똑같이 새로 고칠 필요는 없다.

이미 성벽이 온전한 곳도 있다.

남문 일대와 서북쪽에는 바위와 자연 지형이 매우 험해 큰 공사가 필요하지 않은 곳도 있다.

따라서 평탄하여 적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간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남문 동쪽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을 지나 평탄한 지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공사를 집중하는 것이 좋다.


산 아래의 돌을 기구를 이용해 산 위로 올리게 하다

성을 쌓는 데 쓸 큰 돌은 대부분 산 아래에 있다.

먼저 그 돌을 산 위로 올려야 한다.

사람들이 돌을 밑에서 밀고 끌어 산꼭대기까지 올리려 한다면 너무 많은 힘이 든다.

간단한 기구를 만들면 훨씬 쉽게 옮길 수 있다.

산 위에 튼튼한 기둥 두 개를 세운다.

그 위에 가로로 나무를 걸어 돌릴 수 있게 한다.

큰 밧줄을 준비하여 그 가로 나무에 감는다.

밧줄의 다른 끝은 큰 돌에 묶는다.

산 아래에서는 몇 사람이 돌을 받치고 움직인다.

산 위에서는 대여섯 명이 밧줄을 감아 당긴다.

이렇게 하면 매우 무거운 돌도 빠르게 올라간다.

하루만 해도 산 아래에 있던 돌을 상당히 많이 산 위로 옮길 수 있다.

눈이 녹은 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각 군사에게 밧줄과 필요한 목재를 미리 마련하게 하라.

공사가 시작된 뒤에야 준비하면 늦는다.


성을 쌓는 군사에게 먹을 것과 상을 마련하라

남한산성을 쌓는 군사에게 처음에는 관청의 곡식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천 명이 넘는 군사를 계속 관청 곡식으로 먹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 식량을 모두 싸 가지고 와서 여러 날 일하라고 하면 백성들이 힘을 내지 않을 것이다.

공사 역시 제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을 격려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사에 참여한 사람에게 술과 먹을 것을 적절히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쌀은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백여 석 정도를 형편에 따라 사용하면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술을 담글 그릇이나 필요한 도구도 갑자기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광주 안의 아전과 품계가 있는 사람, 관속과 인근 승려 가운데 형편이 나은 사람에게 일정한 양을 나누어 맡기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조금씩 부담하게 한다.

필요할 때 한데 모아 사용하면 된다.

갑자기 한 사람에게 큰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지역에서 믿을 만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전담시켜야 한다.

도에서도 필요한 곡식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라.

백여 석 정도를 산성으로 옮길 수 있다면 공사하는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날 일을 특별히 잘한 사람에게는 바로 상을 주는 것도 좋다.

눈앞에서 공을 인정해 주면 다른 사람도 힘을 낸다.


남한산성 수축을 반드시 완성하도록 당부하다

남한산성은 하늘이 만들어 준 것처럼 험한 곳이다.

서울로 이어지는 산성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 가운데 하나다.

광주 백성들이 크고 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힘을 합쳐 자기 집안일처럼 공사한다면 한번의 수고로 오래도록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 다시 변란이 생겨도 가족을 데리고 들어가 편안히 의지할 수 있다.

이 뜻을 백성에게 더욱 자세히 설명하라.

지정한 방어 시설을 다 만든 뒤에도 공사가 끝나지 않으면 다른 고을의 마을별 군사도 적절히 나누어 투입하라.

일정한 기한을 정하여 반드시 완성하도록 하라.

그 밖의 세부 문제는 경기 관찰사가 실제 형편에 맞게 함께 마련하여 시행하라.

징비록 제16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