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아버지:
우리가 몰랐던 최초의 질문, 조로아스터
[서문] 퀸(Queen)의 마지막 노래는 누구를 향했나?
"Mama, just killed a man..."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 다들 아시죠?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무대 위에서 노란 재킷을 입고 주먹을 허공으로 찌르던 그 폭발적인 에너지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그거 아세요? 프레디 머큐리의 장례식이 아주 기묘했다는 사실요. 십자가도 없고, 찬송가도 없었습니다. 대신 하얀 옷을 입은 사제들이 알아듣지 못할 고대 언어로 주문 같은 기도를 올렸죠.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저게 무슨 종교야?"
그의 진짜 이름은 '파로크 불사라'.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인도로 피난 온 사람들의 후손, 즉 '파르시(Parsi)'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정체성, 오늘 우리가 떠날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입니다.
"에이, 작가님. 이름부터 너무 어려운데요? 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졸면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맞아요.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담컨대, 여러분은 이미 이 종교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매일 마주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 기사가 목숨 걸고 지키려는 '포스(Force)'의 균형? 그거 여기서 나왔습니다.
-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나 <반지의 제왕>에서 벌어지는 빛과 어둠의 대전쟁? 그거 원작자가 이 종교입니다.
-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데려온 대변인 '짜라투스트라'? 그게 바로 이 종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독일식 이름입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우리가 흔히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천국과 지옥', '최후의 심판', '악마(사탄)'... 이 모든 개념의 '원조 맛집'이 바로 여기라는 사실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성경과 코란이 쓰이기 훨씬 전부터 이들은 천국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3,000년 전 고대 페르시아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갑니다. 지루한 연도 외우기는 없습니다. 대신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는 신전과, 우주를 건 웅장한 선악의 대결,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최초의 질문들을 만날 겁니다.
준비되셨나요? 자, 그럼 프레디 머큐리가 불렀던 신들의 아버지, 그 오래된 불꽃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1부] 오해와 진실: 니체와 프레디 머큐리의 연결고리
제1장. 보헤미안 랩소디의 비밀: 프레디 머큐리는 왜 신을 불렀나?
1991년 11월, 런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한 남자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엘튼 존도 있었고, 데이비드 보위도 있었습니다. 전 세계가 사랑했던 '쇼의 황제', 그룹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떠나는 길이었죠. 팬들은 그가 화려한 성당에서 장엄한 찬송가와 함께, 혹은 십자가 아래에서 편안히 잠들기를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막상 장례식장의 풍경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십자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나 신부님? 보이지 않았습니다.
찬송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무명옷(Sudreh)을 입은 두 명의 사제가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샌달우드 향을 피우며, 참석한 영국인들은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기묘하고 오래된 언어로 주문 같은 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솀 보후... 바히슈템 아스티..." (진리는 가장 좋은 것이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저게 무슨 의식이야? 프레디가 믿던 신이 예수님이 아니었어?"
네, 아닙니다. 그가 평생 가슴속에 품고 살았던,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돌아가 안기고 싶어 했던 품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여권에 적힌 진짜 이름,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
그는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건너온 이방인, '파르시(Parsi)'의 후예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얀 옷을 입은 사제들이 모시는 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예언자 중 한 명인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가 섬기던 '아후라 마즈다'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조로아스터교'라고 부르는 바로 그 종교죠.
자, 여기서 잠깐 퀸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한번 떠올려볼까요? "마마~ 우우우~" 하는 그 노래요. 멜로디는 기가 막히게 좋은데, 가사를 자세히 뜯어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 만큼 난해합니다.
가사 중간에 갑자기 '비스밀라(Bismillah: 신의 이름으로)'가 튀어나오고, '바알세불(Beelzebub: 악마의 왕)'이 등장합니다.
"바알세불이 내 옆에 악마를 심어놨어! (Beelzebub has a devil put aside for me!)" 라고 절규하죠.
많은 평론가가 이 노래를 두고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의 독백이다" 혹은 "커밍아웃을 앞둔 그의 고뇌다"라고 해석합니다. 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3,000년 전 페르시아의 사막에서 불어온 오래된 바람 냄새를 맡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내면은 거대한 전쟁터였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세계관은 아주 심플하면서도 살벌합니다. 이 우주는 빛의 신(아후라 마즈다)과 어둠의 악마(앙그라 마이뉴)가 끊임없이 싸우는 격전지거든요. 그리고 인간은 그 중간에 끼어서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빛을 택할래? 어둠을 택할래?"
<보헤미안 랩소디> 속의 그 처절한 외침은, 어쩌면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방탕한 록 스타의 삶과 경건한 사제들의 가르침 사이에서 줄타기했던 파로크 불사라의 '영혼의 투쟁기'가 아니었을까요?
재미있는 건, 그토록 화려하고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프레디가 죽는 날까지 절대 버리지 않은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가 어린 시절, 인도의 기숙학교에 들어가기 전 할머니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세 가지 가르침입니다.
- 후마타 (좋은 생각)
- 후크타 (좋은 말)
- 후바르슈타 (좋은 행동)
실제로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된 후에도 자신의 재산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무대 아래에서는 누구보다 예의 바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지인들은 회고합니다. 그가 남긴 유언과 막대한 기부금은 지금도 에이즈 퇴치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이고 있죠.
비록 술과 마약, 문란한 파티의 유혹에 흔들렸을지언정, 그의 영혼 깊은 곳에는 언제나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프레디 머큐리가 마지막으로 부른 신, 아후라 마즈다.
그리고 그가 평생 놓지 못했던 이 낯선 종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니체는 자신의 책 제목에 이 종교의 교주 이름(짜라투스트라)을 갖다 썼고,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은 여기서 '제다이'와 '포스'의 영감을 얻었을까요?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몰랐던 이야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심지어 불교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인류 정신사의 '뿌리'가 된 그 거대한 불꽃의 세계로, 이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안전벨트 매세요. 타임머신의 목적지는 기원전 1,500년, 고대 페르시아입니다.
제2장. 니체는 왜 하필 '짜라투스트라'를 소환했을까?
서점에 가서 인문학 코너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반드시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있어 보이는데, 막상 펼치면 무슨 암호문 같은 책.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제목부터 궁금하지 않으세요?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기독교와 서구 도덕을 망치로 때려 부수던 그 까칠한 니체가, 왜 하필이면 자기 책의 주인공으로 3,000년 전 동양의 예언자를 캐스팅했을까요? 소크라테스도 있고, 예수도 있고, 부처도 있는데 말이죠.
여기엔 기가 막힌 '반전 드라마'가 숨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니체가 그를 부른 건 일종의 'A/S(애프터서비스)'를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자, 상황을 한번 보시죠.
니체는 서양 문명을 지배해 온 '선과 악의 이분법'을 혐오했습니다. "이건 착한 거니까 천국 가고, 저건 나쁜 거니까 지옥 가." 이런 흑백 논리가 인간을 병들게 하고, 노예처럼 만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인류 역사상 이 '선과 악(Good and Evil)'이라는 개념을 가장 처음, 아주 체계적으로 만든 사람이 누구냐? 바로 조로아스터(짜라투스트라)입니다.
그전까지 고대인들은 그냥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잤습니다. 신들도 그냥 힘센 깡패 같은 존재였죠. 그런데 짜라투스트라가 나타나서 우주에 선을 그어버린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빛(선)의 구역, 저기는 어둠(악)의 구역! 너희는 반드시 선을 선택해야 해!"
니체 입장에서 보면, 짜라투스트라는 서양 도덕의 '원죄(Origin)'를 만든 장본인인 셈입니다. 그가 만든 이원론이 유대교와 기독교로 흘러들어가 2,000년 넘게 유럽을 지배했으니까요.
그래서 니체는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실수니, 자기가 직접 와서 해결하라고 하자!"
니체의 책 속에서 다시 부활한 짜라투스트라는 과거의 설교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죠.
"나는 과거에 선과 악이 세상의 진리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이제 나는 그 낡은 도덕을 깨부수러 왔다. 신은 죽었다. 이제 신의 뜻이 아니라, 너 자신의 의지로 살아라!"
이게 바로 니체의 노림수였습니다. 도덕을 창조한 사람(Creator)만이 그 도덕을 파괴(Destroyer)할 자격이 있다는 거죠. 일종의 '결자해지(結者解之)' 퍼포먼스였던 겁니다.
마치 아이폰을 처음 만든 스티브 잡스가 무덤에서 돌아와서, "여러분, 스마트폰만 보느라 거북목 되고 대화가 단절됐죠?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이제 스마트폰을 버리고 진짜 삶을 사세요!"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랄까요?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를 이야기합니다. 선과 악이라는 낡은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그 뜨거운 생명력을 강조하기 위해 니체는 역설적으로 '최초의 도덕주의자'를 소환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니체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동시에 매료되었던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불(Fire)'입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이 신성한 정화의 도구였다면, 니체에게 불은 낡은 가치를 태워버리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생명의 의지'였습니다.
어떻습니까? 니체의 책 제목이 이제 좀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그건 단순한 철학서가 아닙니다. 인류에게 '도덕'이라는 굴레를 씌웠던 옛 스승이, 3,000년 만에 돌아와 그 굴레를 직접 벗겨주는 해방의 서사시인 셈이죠.
자, 철학 이야기는 여기까지. 머리가 좀 아프시죠?
그럼 이제 니체의 상상 속에 있는 짜라투스트라 말고, '진짜 역사 속의 짜라투스트라'를 만나러 가봅시다.
무협지에서는 그들을 '불을 숭배하는 마교'라고 부르던데, 정말 그들은 불 앞에서 춤추고 절하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이 억울한 누명, 다음 장에서 아주 시원하게 벗겨드리겠습니다.
제3장. 불을 숭배한다고? '배화교'라는 억울한 누명
자, 여러분. 혹시 무협지 좋아하시나요? <의천도룡기> 같은 소설이나 무협 영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마교(魔敎)'입니다.
이 사람들은 보통 시뻘건 옷을 입고, 거대한 화로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피워놓고는 괴상한 주문을 외웁니다. "광명만세! 이단타도!" 주인공인 정파 무림인들은 이들을 보며 혀를 찹니다. "쯧쯧, 불따위에 절을 하다니, 저런 미개한 사교도들 같으니라고."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조로아스터교를 '배화교(拜火敎)'라고 불렀습니다. 글자 그대로 '불(火)에 절하는(拜) 종교'라는 뜻이죠.
그런데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기원전 페르시아로 날아가서, 지나가는 조로아스터교 사제에게 "아, 당신들이 그 유명한 불 숭배자들이군요?"라고 아는 체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장담하건대, 그 사제는 너무 억울해서 뒷목을 잡고 쓰러지거나, 아니면 여러분의 등짝을 아주 세게 때릴지도 모릅니다.
"이보시오! 동방의 손님,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오? 우리가 불을 신으로 모신다니!"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제가 아주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기도할 때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불교 신자들은 불상 앞에서 합장을 하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독교인을 '나무 막대기 숭배자'라고 부르나요? 불교도를 '금속 조각상 숭배자'라고 부르나요? 아니죠. 십자가는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도구이고, 불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라는 걸 다들 아니까요.
조로아스터교의 불도 정확히 똑같습니다.
이들이 믿는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는 형체가 없습니다. 그는 온 우주에 꽉 차 있는 지혜이자, 완전무결한 빛 그 자체거든요. 너무나 거룩해서 감히 인간의 모습으로 조각하거나 그림으로 그릴 수가 없습니다. (이건 나중에 이슬람교가 알라의 형상을 그리지 않는 전통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신에게 기도는 해야겠고, 허공에 대고 말하자니 뭔가 집중이 안 됩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지상에서 신(빛)과 가장 닮은 물질, 바로 '불'이었습니다.
불을 한번 보세요.
첫째, 어둠을 몰아냅니다. (악을 물리침)
둘째, 항상 위로 타오릅니다. (신을 향한 상승)
셋째, 더러운 것을 태워 깨끗하게 만듭니다. (정화)
그러니까 조로아스터교 신전의 불은 신 그 자체가 아니라,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초강력 와이파이(Wi-Fi) 공유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스마트폰(인간)이 인터넷(신)에 접속하려면 공유기(불)가 필요하잖아요? 우리는 공유기 기계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공유기가 쏘아주는 '신호'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거죠. 조로아스터교 사람들도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신의 주파수, 즉 '선한 마음'에 접속(Login)하는 겁니다.
실제로 이들의 신전에 가보면, 사제들은 불이 오염되지 않도록 입에 하얀 마스크(Padan)를 씁니다. 자신의 침이나 날숨이 성스러운 불에 닿지 않게 하려는 거죠. 그리고 향기로운 샌달우드(백단향)를 먹이로 줍니다. 이것은 숭배라기보다는, 신성한 상징에 대한 지극한 '관리'이자 '예우'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배화교'라는 말 대신, 이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빛을 사랑하고, 불꽃처럼 뜨겁게 진리를 추구했던 사람들!"
무협지 속 '마교'의 이미지는 잊으세요.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깨끗하고, 밝고, 따뜻한 것을 좋아했던, 요즘 말로 하면 '감성 캠핑의 원조' 같은 분들이었으니까요.
자, 이제 불에 대한 오해는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단 하나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볼 차례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세상의 모든 잡신들을 정리해고하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일신' 명함을 판 혁명적인 사건을 다뤄보겠습니다.
제4장. 인류 최초의 '유일신' 선언: 다신교의 뷔페를 뒤엎다
자, 여러분. 고대인들의 종교 생활을 한번 상상해 볼까요?
저는 이걸 '신들의 뷔페(Buffet)'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3,000년 전, 자라투스트라가 태어난 시대의 사람들은 정말 바빴습니다.
비가 안 오면 '비의 신'한테 가서 소를 바쳐야 하고, 전쟁이 나면 '전쟁의 신'한테 가서 칼을 바치고, 아이를 낳고 싶으면 '출산의 신'한테 가서 빌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강을 건널 때는 '강의 신', 바람이 불면 '바람의 신' 눈치까지 봐야 했죠.
마치 현대인들이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멜론, 쿠팡 와우 멤버십을 다 따로따로 구독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아니, 이번 달에 월급(제물)을 얼마나 쓴 거야? 전쟁 신 구독료 냈더니 비의 신 구독료가 모자라네? 큰일 났다, 가뭄 오겠네!"
이게 바로 '다신교(Polytheism)' 사회의 풍경입니다.
신들이 많다는 건 얼핏 좋아 보이지만, 사실 서민들 등골이 휘는 일이었어요. 게다가 당시의 사제들은 이 복잡한 시스템을 악용해서 "요즘 강의 신 기분이 안 좋으니 통행료를 두 배로 내라"는 식으로 삥(?)을 뜯기도 했죠.
이 혼란한 뷔페식당에 어느 날,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밥상을 화끈하게 엎어버립니다. 바로 자라투스트라입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분! 이 수많은 잡신들은 다 가짜입니다! 사기입니다!
우주를 만든 진짜 사장님은 딱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사건 중 하나인 '유일신(Monotheism)'의 선언입니다.
자라투스트라는 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수많은 신(Daeva, 다에바)들을 과감하게 '악마' 혹은 '거짓 우상'으로 강등시켜 버립니다. (재미있는 건 이 '다에바'라는 단어가 나중에 인도로 넘어가면 '데바(신)'가 되지만, 서양으로 넘어가면 '데빌(Devil, 악마)'의 어원이 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존재, 지혜로운 주님 '아후라 마즈다'만이 유일하게 숭배받아야 할 참된 신이라고 선포하죠.
이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냐면요, 마치 오늘날 누군가 나타나서 "삼성, 애플, 구글 다 가짜 회사다. 진짜 스마트폰 회사는 딱 하나뿐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사제들이 자라투스트라를 죽이려고 쫓아다닌 건 당연한 수순이었죠.
하지만 자라투스트라의 이 선언은 단순히 "신은 한 명이다"라는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종교가 '거래(Transaction)'였다면, (소 한 마리 줄게, 비 좀 내려줘),
자라투스트라의 종교는 '윤리(Ethics)'로 바뀝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너희의 소나 양 같은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그분이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너희가 '진리(Asha)'에 따라 바르게 사는 것뿐이다!"
복잡한 뇌물도, 까다로운 제사상도 필요 없다. 오직 '바른 마음' 하나면 신과 통할 수 있다!
이 심플하고 강력한 메시지는 당시 억압받던 민중들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복잡한 유료 구독 서비스들을 다 해지하고, '선한 마음'이라는 무료 앱 하나만 깔면 만사형통이라니, 얼마나 획기적입니까?
이 '유일신' 아이디어는 훗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에게 전해졌고, 그것이 성경으로 이어져 오늘날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나 성당, 모스크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알라)"을 찾는 그 믿음의 원천 기술을 특허 낸 사람이 바로 자라투스트라였던 셈이죠.
자, 그런데 여기서 아주 날카로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작가님, 신이 전지전능하고 착한 '유일신' 한 명뿐이라면서요? 그런데 세상에는 왜 전쟁이 나고, 살인자가 생기고, 어린아이가 병에 걸리나요? 신이 직무 유기하는 거 아닙니까?"
크... 역시 우리 독자님들 수준이 높습니다.
자라투스트라도 바로 이 문제, '악의 문제(The Problem of Evil)'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신은 착한데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기가 막힌 '시나리오'를 하나 씁니다.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들이 밥 먹듯이 써먹는 바로 그 설정, '선과 악의 대결'입니다.
다음 장에서 그 웅장한 우주 전쟁의 서막을 올려보겠습니다. 팝콘 준비하세요!
[2부] 스타워즈보다 먼저 시작된 '빛과 어둠'의 전쟁
제5장. 아후라 마즈다 vs 앙그라 마이뉴: 우주 최강의 라이벌 매치
여러분, 요즘 극장가나 넷플릭스를 꽉 잡고 있는 콘텐츠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마블의 <어벤져스>, 판타지의 고전 <반지의 제왕>, 그리고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까지.
전부 '착한 놈'과 '나쁜 놈'이 미친 듯이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타노스 대 어벤져스, 사우론 대 간달프, 제다이 대 시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대결 구도에 열광합니다. 왜냐고요? 명확하잖아요. 우리 편이 이기면 되니까요!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이 뻔하디뻔한, 하지만 언제 봐도 가슴 뛰는 '선과 악의 대결' 시나리오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집필한 작가가 바로 자라투스트라입니다.
지난 장에서 제가 "신은 유일하다(유일신)"라고 했었죠? 그런데 세상에는 여전히 살인, 질병, 전쟁 같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자라투스트라에게 따져 묻습니다.
"신이 전지전능하고 착하다며? 근데 세상 꼴이 왜 이래? 신이 직무 유기하는 거 아냐?"
이때 자라투스트라는 아주 기가 막힌 세계관을 내놓습니다. 바로 우주를 거대한 '전쟁터'로 설정한 겁니다.
자, 링 위로 두 선수가 입장합니다.
🔵 청코너: 아후라 마즈다 (Ahura Mazda)
- 포지션: 지혜로운 주님, 빛, 생명, 진실, 질서.
- 특기: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기. 맛있는 과일, 흐르는 강물, 건강한 가축을 만듭니다.
🔴 홍코너: 앙그라 마이뉴 (Angra Mainyu)
- 포지션: 파괴하는 영, 어둠, 죽음, 거짓, 무질서.
- 특기: 훼방 놓기.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세상에 '버그'를 심습니다.
- (참고: 페르시아어로는 '아리만(Ahriman)'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게 훗날 기독교의 '사탄', 영화 속 '대마왕'의 원조가 됩니다.)
이 둘의 싸움은 정말 치졸하다 싶을 정도로 치열합니다.
아후라 마즈다가 '생명'을 만들면? 앙그라 마이뉴는 즉시 '죽음'을 만듭니다.
아후라 마즈다가 '건강'을 주면? 앙그라 마이뉴는 '질병'을 퍼뜨립니다.
아후라 마즈다가 따뜻한 '불'을 선물하면? 앙그라 마이뉴는 거기에 매캐한 '연기'를 섞어버립니다.
"아하! 그래서 세상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섞여 있는 거구나!"
이 설명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신이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악당(앙그라 마이뉴)이 쳐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거죠. 즉, 신은 악을 방관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악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우리 편 대장님'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교리인 '이원론(Dualism)'입니다.
세상은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힘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현장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이 영화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해피 엔딩'입니다.
자라투스트라는 단언합니다.
"지금은 악이 강해 보이고 세상이 엉망진창인 것 같지?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거야. 결국 최후의 날에는 아후라 마즈다가 앙그라 마이뉴를 박살 내고, 완전한 선이 승리할 것이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종말론적 낙관주의'라고 합니다.
언젠가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 이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가 있었기에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 거친 사막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문명을 일굴 수 있었습니다.
자, 시나리오도 나왔고, 무대도 세팅되었습니다. 대장님(신)도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 전쟁에서, 과연 보잘것없는 인간인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그냥 팝콘이나 먹으며 신들이 싸우는 걸 구경만 하면 될까요? 아니면 대장님 뒤에 숨어서 기도나 해야 할까요?
여기서 자라투스트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상을 제시합니다.
"당신은 구경꾼이 아니다. 당신은 이 전쟁의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쥔 주인공이다!"
다음 장, 드디어 인간이 신의 꼭두각시 줄을 끊고 스스로 일어서는 순간을 만나보겠습니다.
제6장. 당신은 꼭두각시가 아니다: 최초로 '자유의지'를 말하다
자, 여러분. 그리스 로마 신화 좋아하시죠? 거기 나오는 영웅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킬레우스도, 오이디푸스도 정말 멋있고 힘도 센데, 결국은 어떻습니까?
'운명'을 이기지 못합니다.
신탁에서 "너는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다"라고 하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아버지를 죽이게 됩니다. 제우스가 번개를 치면 맞아야 하고, 포세이돈이 파도를 일으키면 배가 뒤집혀야 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인간이란, 신들이 체스판 위에서 이리저리 옮기는 '말(Pawn)'이나, 줄에 매달려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게 당시 인류의 주된 정서였죠. 신이 정해놓은 운명(Script)대로 연기하다 퇴장하는 게 인생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무기력한 분위기 속에, 자라투스트라가 가위를 들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간을 묶고 있던 그 운명의 줄을 싹둑 잘라버립니다.
"당신은 노예가 아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당신을 조종하지 않는다!
선택은 오직 당신의 몫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 지성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견, '자유의지(Free Will)'의 탄생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앞서 말씀드린 '선과 악의 전쟁' 기억나시죠?
아후라 마즈다(선)와 앙그라 마이뉴(악)가 팽팽하게 맞붙고 있습니다. 전력은 50 대 50. 어느 한쪽도 압도하지 못하는 교착 상태입니다.
이때,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겁니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로봇처럼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코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빛과 어둠 중에 네가 좋아하는 걸 골라봐"라고 자유를 줬죠.
그래서 인간이 "나는 착하게 살 거야!"라고 결심하고 선한 행동을 하면?
그 에너지가 아후라 마즈다에게 전송되어 신의 힘이 세집니다.
반대로 "에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남을 속이자!"라고 나쁜 마음을 먹으면?
그 에너지는 앙그라 마이뉴에게 넘어가 악의 세력이 강해집니다.
와, 이거 대단하지 않나요?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에게 "제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 매달리잖아요?
그런데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입장이 완전히 바뀝니다.
오히려 신이 인간에게 "제발 나를 좀 도와다오! 네가 필요하다!"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신전 구석에서 떨고 있는 NPC(배경 캐릭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우주 전쟁의 '주전 플레이어'이자, 신과 등을 맞대고 싸우는 '동등한 파트너'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 그건 단순한 매너가 아닙니다.
우주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아후라 마즈다에게 '보급 물자'를 보낸 것이고, 악의 무리에 강력한 '미사일'을 날린 겁니다. 여러분의 선행 하나가 우주를 구하는 데 일조했다는 뜻이죠.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인간관입니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하고 한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운명을 짊어진 전사들이니까요. 자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 당신의 손에 쥐어진 이 강력한 '자유의지'라는 무기, 오늘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물론, 말은 쉽죠. 착하게 살아야지, 선을 택해야지.
하지만 현실은 유혹 투성이잖아요.
그래서 자라투스트라는 우리가 헷갈리지 않고 딱 집중할 수 있도록, 아주 심플하지만 강력한 '전투 매뉴얼'을 세 가지 남겼습니다.
복잡한 율법책? 다 필요 없습니다. 딱 세 단어면 됩니다.
다음 장에서 그 전설적인 '세 개의 절대 반지'를 공개합니다.
제7장. 세 가지 절대 반지: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여러분, 혹시 종교 경전 읽어보신 적 있나요?
성경의 레위기나 불교의 율장 같은 걸 보면, 솔직히 좀 숨이 막힙니다.
"돼지고기 먹지 마라", "제사는 몇 시에 지내라", "옷감은 섞어 짜지 마라"... 하지 말라는 게 뭐 그리 많은지, 마치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보험 약관'을 읽는 기분이 들 때가 있죠.
"신을 믿으려면 이 수백 가지 규칙을 다 지켜야 해? 난 틀렸어, 못 해."
이렇게 포기하고 싶은 분들에게 자라투스트라는 그야말로 '혁명가'이자, 종교계의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그는 복잡한 버튼들을 싹 없애고, 홈 버튼 하나만 남긴 아이폰처럼 교리를 아주 심플하게 정리해 버렸거든요.
"복잡한 율법 다 필요 없다. 딱 세 가지만 챙겨라. 이것만 있으면 너는 천국 하이패스다!"
자라투스트라가 남긴 이 전설적인 세 가지 아이템, 저는 이것을 우주를 구하는 '세 개의 절대 반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주문 한번 외워볼까요? 발음이 좀 귀엽습니다.
- 후마타 (Humata): 좋은 생각
- 후크타 (Hukhta): 좋은 말
- 후바르슈타 (Huvarshta): 좋은 행동
여기서 'Hu(후)'는 '좋다(Good)'는 뜻입니다. 정말 쉽죠?
그런데 여러분, "에이~ 작가님, 너무 뻔한 거 아니에요? 유치원 도덕 시간에 다 배우는 거잖아요."라고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이 심플한 문장 뒤에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나비 효과'가 숨겨져 있습니다.
먼저 '후마타(좋은 생각)'.
모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 내 머릿속(소우주)에는 이미 악마 '앙그라 마이뉴'가 침투한 겁니다. 반대로 "저 사람을 도와줘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내 안에는 신의 빛이 켜집니다. 즉, 생각은 '전쟁의 시작점'입니다.
다음은 '후크타(좋은 말)'.
조로아스터교에서 말(Word)은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말은 '주술적인 힘(Energy)'을 가집니다. 거짓말, 욕설, 이간질은 악마에게 힘을 실어주는 '검은 마법'이고, 진실과 칭찬, 위로는 신을 돕는 '백색 마법'입니다.
인터넷 악플 하나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잖아요? 3,000년 전 페르시아인들은 이미 '말의 위력'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마지막은 '후바르슈타(좋은 행동)'.
생각하고 말했으면, 반드시 움직여야 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산속에 틀어박혀 명상만 하는 종교를 싫어합니다.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고, 이웃을 돕는 '생산적인 활동'만이 악을 물리치는 실질적인 타격이 된다고 믿었죠.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이 오늘 아침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자"라고 생각(후마타)하고,
가족에게 "사랑해, 다녀올게"라고 말(후크타)하고,
출근길에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를 도와드렸다면(후바르슈타)?
여러분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한 게 아닙니다.
우주 전쟁터에서 악마의 병사 셋을 베어 넘기고, 신의 영토를 세 칸 넓힌 겁니다.
반대로 사기를 치거나 남을 괴롭히면? 그건 악마에게 무기를 밀수해 준 반역죄가 되는 거죠.
이 교리가 왜 위대하냐면요, 종교를 '성직자들의 전유물'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제사나 기도가 없어도 됩니다. 농사짓는 농부도, 장사하는 상인도, 공부하는 학생도, 누구나 '3H(Humata, Hukhta, Huvarshta)'만 실천하면 그 자리에서 성자가 될 수 있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기억하시죠?
조로아스터교식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 우주를 구한다."
이토록 건전하고, 실용적이고, 심플한 종교.
이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페르시아 제국이 얼마나 거대하고 멋진 나라를 만들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다음 장에서는 영화 <300>에서 괴물처럼 묘사되어 억울했던, 그 제국의 진짜 모습을 만나러 갑니다.
제8장. 다리우스 대제의 돌에 새겨진 맹세
영화 <300> 다들 보셨죠?
"This is Sparta!"를 외치며 발차기를 날리는 제라드 버틀러의 그 터질 듯한 복근. 정말 멋있었습니다.
반면, 그들과 맞서 싸우는 페르시아군은 어떻게 묘사되던가요?
온몸에 피어싱을 한 기괴한 황제 크세르크세스, 가면을 쓴 괴물 부대, 채찍질하며 노예들을 내모는 야만적인 제국... 말 그대로 '악의 축' 그 자체였죠.
하지만 여러분, 역사적 팩트를 하나 말씀드리면 좀 배신감을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당시 진짜 '글로벌 신사'이자 '선진국'은 스파르타가 아니라 페르시아였습니다.
오히려 스파르타가 장애인을 버리고 노예를 학대하는 폐쇄적인 군국주의 국가였다면, 페르시아는 노예제를 금지하고 피정복민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관용(Tolerance)'의 제국이었거든요.
도대체 페르시아는 왜 그렇게 '쿨(Cool)'했을까요?
그 비밀이 바로 다리우스 대제(Darius the Great)가 남긴 돌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다리우스 대제는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 중의 왕'입니다. 그가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지을 때 돌판에 새겨 넣은 유명한 기도가 하나 있습니다. 보통 왕이라면 "내가 세상을 정복했다! 나는 위대하다!"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을 텐데, 그는 신(아후라 마즈다)에게 이렇게 빕니다.
"위대한 아후라 마즈다여, 이 나라를 이 세 가지 재앙으로부터 지켜주소서.
첫째, 적군(Enemy)으로부터.
둘째, 흉년(Famine)으로부터.
셋째, 거짓말(The Lie)으로부터."
적군과 흉년은 이해가 가는데, 갑자기 웬 '거짓말'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 제국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그 통치 철학의 핵심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배웠듯이 조로아스터교에서 선(善)은 곧 '진실(Asha)'이고, 악(惡)은 곧 '거짓(Drauga)'입니다.
악마 앙그라 마이뉴의 주특기가 바로 사람들을 속이고 이간질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에게 가장 큰 덕목은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조차 페르시아의 교육 방식을 보고 깜짝 놀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아이들에게 딱 세 가지만 가르친다. 말을 타는 법, 활을 쏘는 법,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법."
이 '진실'을 숭상하는 종교관은 제국의 통치 방식마저 바꿔놓았습니다.
이전의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 제국은 정복한 나라의 신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그게 당연한 시대였죠.
하지만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 황제들은 달랐습니다.
"아후라 마즈다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것은 악(거짓)이다!"
그 유명한 키루스 대제(다리우스의 선왕)는 바빌론을 정복하자마자 노예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심지어 "너희 신(야훼)을 섬길 성전을 다시 지어라"라며 건축비까지 지원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유일하게 '메시아/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칭송받는 이방인 왕이 바로 키루스입니다.)
페르시아는 정복지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종교를 믿어라. 너희 언어를 써라. 너희 왕을 섬겨라.
단, 세금만 잘 내고, 거짓말(배신)만 하지 마라. 그러면 우리(아후라 마즈다의 대리인)가 너희를 보호하리라."
와... 2,500년 전에 이런 마인드라니, 정말 세련되지 않나요?
이것은 단순한 자비심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으로 세상을 다스려라"는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정치적으로 실현한, 인류 최초의 '제국적 관용'이었습니다.
다리우스 대제의 비석은 오늘날 정치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국가를 위협하는 것이 전쟁이나 경제 위기(흉년)뿐만이 아닙니다. 지도자의 '거짓말',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불신'. 이것이야말로 악마가 노리는 가장 치명적인 재앙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영화 <300> 속의 괴물들이 사실은 '진실'을 목숨처럼 지키고, '자유'를 존중했던 신사들이었다는 반전.
어때요? 이제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좀 다르게 보이지 않으신가요?
자, 그런데 이 멋진 제국이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과 아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오늘날 우리가 믿는 성경의 내용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되는데요.
다음 장, 강가에 앉아 울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다가온 페르시아의 그림자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3부] 성경과 코란 속에 숨겨진 페르시아의 DNA
제9장. 바빌론의 강가에서: 유대인과 페르시아인의 운명적 만남
여러분, 혹시 보니 엠(Boney M)이라는 그룹 아시나요?
7080 디스코 음악의 전설이죠. 그들의 노래 중에 <Rivers of Babylon(바빌론 강가에서)>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음~음음~" 하고 흥겹게 박수 치며 듣기 딱 좋은 노래인데, 사실 가사를 뜯어보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슬픈 노래입니다.
"우리는 바빌론 강가에 앉아 시온(고향)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이 가사는 성경의 시편 137편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빌론 제국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하고, 수많은 유대인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살이를 하던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 시절의 통곡을 담은 노래죠.
당시 유대인들은 '멘붕'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고, 우리 하나님(야훼)이 세상에서 제일 센 줄 알았는데... 왜 졌지? 바빌론의 신 마르두크가 더 센 건가?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건가?"
신앙의 근간이 흔들리던 그 절망의 시기, 갑자기 동쪽에서 구원투수가 등장합니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과 그들의 왕 '키루스 대제'였습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난공불락이라던 바빌론 성을 하룻밤 만에 함락시킵니다. 유대인들은 공포에 떨었겠죠. "아이고, 이제 주인만 더 무서운 놈으로 바뀌는구나."
그런데 웬걸? 키루스 대제는 역사상 듣도 보도 못한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는 자유다. 고향으로 돌아가라. 가서 너희 신의 성전을 다시 지어라. 돈은 내가 대주겠다."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이사야서 45장)을 보면, 하나님이 키루스를 향해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Messiah)'라고 부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이방인 왕에게 '메시아'라는 칭호를 붙인 건 성경 역사상 키루스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고마웠던 거죠.
자, 그런데 이 챕터의 진짜 핵심은 '해방' 그 자체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던 약 200년(이것을 페르시아 시대라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 사이에 엄청난 '화학 반응'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시골 청년이 뉴욕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룸메이트(페르시아인)가 듣도 보도 못한 세련된 이야기를 해줍니다.
룸메이트(페르시아인): "야, 너희는 왜 이 세상 이야기만 하냐? 죽으면 끝이야? 우리는 죽으면 다리를 건너서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믿어."
유학생(유대인): "어? 우린 죽으면 그냥 '스올(Sheol)'이라는 컴컴한 곳에서 잠잔다고 배웠는데..."
룸메이트: "그리고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그건 악마가 있어서 그래. 하지만 걱정 마. 나중에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 대장님(신)이 악마를 싹 쓸어버리고 죽은 사람들도 다 부활시킬 거거든."
유학생: "와... 대박. 악마? 부활? 최후의 심판? 그거 되게 말 된다. 멋진데?"
이전까지의 초기 유대교는 주로 '현세의 복(땅, 자손, 장수)'에 집중했었습니다. 사후 세계나 악마에 대한 개념은 희미했죠.
그런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를 접하면서 유대교의 세계관이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종교를 그대로 베낀 건 아닙니다. 자신들의 신앙(유일신 야훼) 안에 페르시아의 세련된 개념들을 받아들여 소화시킨 거죠. 이것을 종교학에서는 '교차 수분(Cross-pollination)'이라고 합니다. 서로의 꽃가루가 묻어서 더 화려한 꽃을 피운 겁니다.
그 결과, 바빌론 유수가 끝나고 돌아온 유대인들의 경전 속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단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사탄, 천사들의 계급, 지옥의 불, 그리고 종말론.
오늘날 우리가 교회나 성당에서 듣는 "천국 가세요", "마지막 날에 심판받습니다"라는 이야기의 씨앗이 바로 이 바빌론의 강가에서, 유대인과 페르시아인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던 그 시절에 뿌려진 것입니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들이 '수입'되었을까요?
가장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 이후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믿으시나요?
다음 장에서 조로아스터교가 설계하고, 유대교와 기독교가 완성한 '천국과 지옥'의 오리지널 도면을 공개하겠습니다.
제10장. 천국과 지옥은 원래 여기에 있었다
여러분, 조금 무서운 질문 하나 드려볼까요?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세요?"
지금이야 "착한 일 하면 천국 가고, 나쁜 짓 하면 지옥 간다"는 게 상식처럼 통하지만, 자라투스트라가 등장하기 전 고대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으면 '하데스'라는 지하 세계로 간다고 믿었고, 초기 유대인들은 '스올(Sheol)'이라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닙니다. 그냥 춥고, 어둡고, 먼지 냄새 나는 거대한 지하 창고 같은 곳이죠.
왕이든 거지든, 착하게 살았든 살인마든 상관없이 죽으면 다 같이 그 멍~한 상태로 영원히 갇혀 지내는 겁니다.
"아니, 내가 평생 착하게 살았는데 죽어서 저 살인마랑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너무 억울하잖아!"
이런 고대인들의 허무함과 억울함을 한 방에 날려버린 것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입니다.
그들은 인류 최초로 '죽음 이후의 심판'이라는 개념을 설계도로 그려냅니다. 그것도 아주 디테일하게요.
자, 조로아스터교가 말하는 '저승 가는 길'을 한번 따라가 볼까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3일 동안 시신 곁에 머물다가, 4일째 되는 날 재판장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주 기묘한 다리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이름하여 '친바트의 다리(Chinvat Bridge)'.
저는 이걸 '영혼의 스마트 톨게이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다리는 아주 신기한 인공지능(?)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너는 사람의 '인생 데이터'를 스캔해서 다리의 너비를 실시간으로 조절하거든요.
여러분이 살아생전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3H)'을 많이 했다?
그럼 다리가 고속도로처럼 넓고 평탄하게 쫙~ 펼쳐집니다. 다리 건너편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마중을 나옵니다.
"누구세요?" 하고 물으면 그녀는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의 양심이자, 당신이 평생 쌓은 선한 행동들입니다. 당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예뻐졌어요."
그리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노래의 집(House of Song)'이라 불리는 천국으로 입장합니다.
반대로, 남을 속이고 나쁜 짓만 골라 했다?
다리 위에 발을 올리는 순간, 다리가 갑자기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옆으로 회전해 버립니다. 발 디딜 곳이 사라진 영혼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합니다.
그 아래에는 뭐가 있냐고요? 악취가 진동하고 끔찍한 어둠이 깔린 '거짓의 집(House of Lies)', 즉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요?
- 이슬람교 경전 <코란>에 보면, 심판의 날에 인간이 건너야 할 '시라트의 다리(As-Sirat)'가 나옵니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는 그 다리, 바로 친바트의 다리가 원조입니다.
- 단테의 <신곡>이나 기독교의 <천로역정>에서 묘사되는 천국과 지옥의 풍경, 그 오리지널 디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천국(낙원)은 단순히 맛있는 거 먹고 쉬는 곳이 아닙니다. 빛과 노래가 가득하고, 신(아후라 마즈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곳입니다.
반면 지옥은 불타는 곳이라기보다는(이들에게 불은 신성하니까요), 춥고, 더럽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고립되는 '절대 고독'의 장소로 묘사됩니다. 악인들에게 딱 맞는 형벌이죠.
이 내세관이 인류에게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내 인생의 성적표는 죽은 뒤에 나온다."
이 믿음이 생기자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악당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도, "두고 보자. 친바트 다리 앞에 가면 네놈은 추락이고 나는 하이패스다!"라는 정신승리, 아니 '정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이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공정한 심판의 문이라는 생각.
오늘날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믿고 있는 이 거대한 세계관의 '특허권'은 바로 3,000년 전 페르시아의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개인의 죽음 말고, 이 우주 전체의 수명이 다하는 날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할리우드 재난 영화 뺨치는 스펙터클한 '종말론'의 시나리오가 다음 장에서 펼쳐집니다.
제11장. 최후의 심판: 종말론의 탄생
여러분, 영화나 드라마 보실 때 가장 싫은 게 뭔가요?
저는 '열린 결말'입니다. 주인공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악당은 벌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애매하게 끝내버리면 정말 찜찜하잖아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확실한 결말, 이왕이면 악당이 시원하게 참교육을 당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사이다 결말'을 원합니다.
그런데 고대 세계의 역사관은 대부분 '무한 반복'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지고, 다시 봄이 오고... 인도나 동양에서는 이것을 '윤회(Reincarnation)'라고 했죠. 역사는 그냥 뱅글뱅글 도는 수레바퀴일 뿐,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겁니다.
이 지루한 도돌이표를 끊어버리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역사에는 분명한 '끝'이 있고, 그 끝은 완벽한 승리다!"라고 선언한 사람이 누구냐? 네, 또 그분입니다. 자라투스트라.
그가 쓴 시나리오의 마지막 챕터, '최후의 심판'은 할리우드 재난 영화보다 훨씬 스펙터클합니다. 한번 미리보기(Spoiler) 해볼까요?
세상에 악(앙그라 마이뉴)의 세력이 극에 달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될 무렵, 동쪽에서 구세주가 나타납니다. 그의 이름은 '사오슈얀트(Saoshyant)'. (재미있는 건 이 구세주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설정이죠?)
구세주가 나팔을 불면, 땅과 바다가 열리고 죽었던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납니다. 좀비 영화처럼 흉측한 모습이 아니라, 생전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Resurrection)'하는 겁니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모든 인간은 거대한 '용광로'를 통과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녹아내린 금속이 강물처럼 흐르는데, 부활한 모든 사람이 그 뜨거운 쇳물 강을 건너가야 하는 거죠.
"으악! 다 타 죽는 거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여기서 바로 '기적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살아생전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했던 의인들에게, 이 펄펄 끓는 쇳물은 마치 '따뜻한 우유'처럼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웃으며 강을 건너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나옵니다.
하지만 악인들에게는? 네, 상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그 뜨거운 고통 속에서 자신의 모든 죄악과 거짓을 불태워야 합니다.
이 최후의 정화 작업이 끝나면, 악마 앙그라 마이뉴와 그의 졸개들은 무력화되어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제 우주에는 오직 선(善)만이 남습니다. 더 이상의 죽음도, 질병도, 거짓말도 없는 완벽한 세상.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이 상태를 '프라쇼케레티(Frashokereti)', 즉 '경이로운 완성'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의 '요한계시록'이나 이슬람교의 종말론이 뿌리를 두고 있는 '직선적 역사관(Linear History)'의 시초입니다.
"역사는 시작(창조)이 있고, 과정(투쟁)이 있으며, 반드시 끝(심판과 구원)이 있다."
이 드라마틱한 시나리오는 고대인들에게 엄청난 희망을 주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고통은 영원한 게 아니야. 언젠가 끝나는 날이 와. 그때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해!"
노예로 살던 유대인들이, 박해받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 모진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확실한 해피 엔딩'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시나리오에서 아주 흥미로운 빌런이 하나 등장합니다.
신(아후라 마즈다)에게 대적하며 끝까지 세상을 망치려 드는 악의 대장, 앙그라 마이뉴.
이 녀석이 훗날 유대교로 넘어가서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붉은 악마'로 변신하게 되는데요.
다음 장,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든 그 이름, '사탄'의 족보를 캐보러 가겠습니다.
제12장. 악마의 족보: 사탄의 조상은 페르시아 출신?
여러분, 공포 영화 <검은 사제들>이나 <곡성>, 혹은 <엑소시스트>를 보면 소름 끼치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인간을 유혹하고, 신에게 대들고,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는 어둠의 제왕. 우리는 그를 '사탄(Satan)' 혹은 '마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 하나.
구약 성경의 앞부분(초기 기록)에 나오는 사탄은 우리가 아는 그 무시무시한 '악의 축'이 아니었습니다.
<욥기>라는 성경책을 한번 볼까요?
거기서 사탄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마치 회사 사장님과 김 부장이 회의하듯이요.
사탄이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사장님, 욥이라는 친구가 믿음이 좋은 척하는데, 재산 좀 뺏어보면 본심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자 하나님이 허락합니다. "그래? 그럼 목숨만 건드리지 말고 한번 테스트해 봐라."
이때의 사탄은 신에게 반역하는 '반란군 수장'이 아니라, 신의 명령을 받고 인간의 죄를 감찰하는 '까칠한 검사(Prosecutor)' 혹은 '감사팀 공무원'에 가깝습니다. 히브리어로 '사탄'이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대적하는 자', '고발하는 자'라는 뜻이거든요. 즉, 직업 이름이었던 셈이죠.
"아니, 공무원이었던 김 사탄 씨가 어쩌다 우주 최강의 빌런이 된 거죠?"
그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앞서 말한 '바빌론 유수' 시절, 페르시아 형님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 가서 보니, 거기는 스케일이 다릅니다.
페르시아의 '앙그라 마이뉴'라는 악마는 신(아후라 마즈다)의 부하가 아니에요. 신과 맞장뜨는 '대등한 라이벌'입니다. 죽음, 질병, 거짓말을 스스로 창조하고 지옥을 다스리는, 그야말로 포스 넘치는 '어둠의 군주'였죠.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와... 저쪽 동네 악당은 차원이 다르네. 우리 쪽 사탄은 그냥 심부름꾼인데, 쟤네는 신이랑 전쟁을 하네?"
이 '앙그라 마이뉴'의 강력한 캐릭터성은 유대교 신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세상에 가득한 악과 고통을 설명하기에, '신의 심부름꾼 사탄'보다는 '신에게 대적하는 강력한 악마' 설정이 훨씬 설득력 있었거든요.
그래서 포로 생활이 끝나고 돌아온 이후, 유대교 문헌 속의 사탄은 급격하게 '스펙업(Spec-up)'을 시작합니다.
- 지위 상승: 단순한 '고발자(공무원)'에서, 하나님 왕권에 도전하는 '타락한 천사장(반란군 리더)'으로 신분이 바뀝니다.
- 조직 결성: 혼자 다니지 않고, 페르시아의 악마 군단(Daeva)처럼 수많은 '졸개 귀신(Demon)'들을 거느리기 시작합니다.
- 이원론적 대결: 이제 사탄은 신의 허락을 받는 게 아니라, 신의 뜻을 훼방 놓고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절대 악'의 화신이 됩니다.
결국 우리가 오늘날 기독교나 이슬람교,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접하는 '뿔 달린 붉은 악마', '루시퍼'의 이미지는 유대교의 '사탄(Satan)'이라는 뼈대에 페르시아의 '앙그라 마이뉴'라는 살을 입혀서 탄생한 '하이브리드 캐릭터'인 셈입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3,000년 전 페르시아의 사막에서 불어온 모래바람이 없었다면, 오늘날 공포 영화의 주인공들은 일자리를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자, 악마 이야기로 등골이 좀 서늘해지셨나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서, 아주 신비롭고 거룩한 손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 연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세 사람.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왔다는 '동방박사'.
그런데 여러분, 성경 원문에는 이들이 '박사(Doctor)'가 아니라 '마기(Magi)'라고 적혀 있다는 거 아시나요?
그리고 이 '마기'가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을 부르는 직업 명칭이었다면?
다음 장,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페르시아 사제들의 정체를 밝혀드립니다.
제13장. 동방박사는 누구인가: 아기 예수를 찾아온 페르시아의 사제들
여러분,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나 성당, 혹은 백화점 앞에 놓인 아기 예수의 구유 장식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거기 보면 항상 빠지지 않는 조연들이 있죠. 낙타를 타고 온, 터번을 쓰고 화려한 옷을 입은 세 사람. 우리는 그들을 '동방박사(Three Wise Men)'라고 부릅니다.
어릴 때 저는 이들이 그냥 "동쪽 나라에서 공부 많이 한 똑똑한 할아버지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신약성경(마태복음 2장)의 원문인 그리스어 성경을 펼쳐보신 적 있나요? 거기에는 이들을 '박사(Doctor)'나 '왕(King)'이라고 적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명확하게 '마고이(Magoi)'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마구스(Magus)'의 복수형입니다.
자, 여기서 소름 돋는 사실 하나.
'마구스'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서 활동하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계급을 부르는 고유 명사였습니다.
즉, 아기 예수를 찾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친 그 사람들은, 십자가를 든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얀 로브를 입고 불을 섬기던 '이교도' 사제들이었다는 겁니다.
이 '마구스'라는 단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맞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 단어 '매직(Magic, 마법)'과 '매지션(Magician, 마법사)'이 바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페르시아 사제들이 불을 피워놓고 주문을 외우고, 별을 보고 점을 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거든요. 그래서 "와, 쟤네들 진짜 마술 부리는 것 같아!"라고 해서 '마구스들이 하는 짓 = 매직'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페르시아의 사제들이 왜 남의 나라(유대 땅) 아기에게 경배하러 왔을까요?"
그냥 별이 예뻐서 따라왔을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두 종교의 거대한 '세계관 통합'이 숨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세상의 끝에 악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 '사오슈얀트'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것도 '동정녀'의 몸에서 말이죠.
한편,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기억나시죠? 바빌론 유수 시절, 두 민족은 서로의 예언과 믿음을 공유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천문학자(사제)들은 밤하늘을 관측하다가 유대 땅 쪽에서 심상치 않은 별(초신성 혹은 행성 정렬)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쳤을 겁니다.
"찾았다! 우리의 경전이 예언한 '사오슈얀트'이자, 유대인들이 말하던 '메시아'가 드디어 오셨구나!"
그들은 이 우주적인 사건을 목격하기 위해 사막을 건너는 위험을 감수하고 베들레헴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축하해 주러 왔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종교(조로아스터교)가, 신흥 종교인 기독교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인증'해주고 '바통을 터치'해 주는 역사적인 장면인 셈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프레디 머큐리의 조상님들이, 아기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예물을 바치는 장면.
이것이야말로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크로스오버(Crossover)'가 아닐까요?
우리가 크리스마스마다 보는 그 동방박사 인형들.
이제부터는 그들을 보며 그냥 '박사님'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이렇게 속삭여 주세요.
"아, 당신들이 바로 그 별을 보고 달려온 페르시아의 '매지션'들이었군요!"
자, 이렇게 페르시아의 종교는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거대한 강물에 자신의 DNA를 섞고,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합니다.
찬란했던 제국은 무너지고, 경전은 불타버리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4부] 제국의 몰락과 꺼지지 않는 불꽃
제14장. 알렉산더 대왕, 아베스타를 불태우다
여러분, 세계사 시간에 배운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억나시죠?
잘생긴 외모, 20대의 젊은 나이에 유럽과 아시아를 제패한 천재 전략가. 서양에서는 그야말로 '엄친아'이자 영웅 중의 영웅으로 추앙받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가서 "알렉산더 대왕 만세!"를 외친다면? 아마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역사 기록에서 알렉산더는 '대왕(Great)'이 아닙니다.
그들은 알렉산더를 '가족(Gajok)'이라고 부릅니다. "가족? Family?" 아니요. 페르시아어로 '저주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미워하냐고요? 그가 단순히 나라를 정복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소중한 지식의 보고(寶庫)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부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궁전.
정복에 성공한 알렉산더는 거대한 승전 파티를 엽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한 무희가 제안합니다. "과거 페르시아가 그리스 아테네를 불태웠던 것에 대한 복수로, 이 궁전을 태워버립시다!"
술김인지, 계획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알렉산더는 횃불을 던졌고, 화려했던 궁전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됩니다.
문제는 그 궁전 안에 보관되어 있던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Avesta)>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아베스타>는 무려 1만 2천 장의 소가죽 위에 황금 잉크로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천문학, 의학, 철학 등 고대 페르시아의 모든 지식이 담긴 '국가 데이터 센터'였던 셈이죠.
이 귀중한 원본이 그날 밤, 허무하게 불타 사라집니다.
요즘으로 치면 해커의 공격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의 메인 서버가 포맷되고, 백업 하드디스크까지 깡그리 날아간 겁니다.
"아이고, 경전(책)이 없으면 종교가 어떻게 유지되나요? 망한 거 아닌가요?"
보통의 종교라면 거기서 끝났을 겁니다. 텍스트가 사라지면 교리도 변질되고 흩어지니까요.
하지만 조로아스터교에는 아주 독특하고 끈질긴 '백업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제들인 '마기(Magi)'들의 머리였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경전을 글로 적는 것보다, 소리 내어 암송하는 것을 더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글자는 더러워질 수 있지만, 소리는 영혼에 새겨진다고 믿었거든요.
그래서 사제들은 어릴 때부터 <아베스타>의 방대한 분량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워야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성경책 한 권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궁전은 불탔고, 황금으로 쓴 가죽책은 재가 되었지만, 산속으로 도망친 사제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도서관'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굴에 숨어서, 혹은 유랑길에 올라서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듯 경전을 읊조렸습니다.
"아후라 마즈다여, 진리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제자가 스승의 입모양을 보고 외우고, 그 제자가 또 제자를 가르치고.
이 눈물겨운 '구전(Oral Tradition)'은 무려 수백 년 동안 이어집니다.
나중에 다시 페르시아에 사산 왕조라는 부흥기가 찾아왔을 때, 왕이 사방에 흩어진 사제들을 모아 기억을 맞춰보니 놀랍게도 내용이 일치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걸어 다니는 '인간 USB'였던 겁니다.
알렉산더는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리고 건물을 불태웠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켜진 불꽃(신앙)과 머릿속에 새겨진 진리(암송)까지는 태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끔찍한 박해는 조로아스터교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죠.
"건물은 무너져도 정신은 남는다."
하지만 여러분, 안타깝게도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수백 년 뒤, 알렉산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하고 무서운 '초승달의 군대'가 사막의 모래폭풍과 함께 몰려옵니다. 이번에는 단순히 건물을 태우는 게 아니라, "개종할래? 죽을래?"를 묻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죠.
다음 장, 페르시아의 마지막 불꽃을 지키기 위한 눈물의 탈출기가 시작됩니다.
제15장. 초승달의 습격: 이슬람의 정복과 최후의 선택
여러분,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속담 아시죠?
역사에서는 이 속담이 정말 잔혹하게 실현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에게는 7세기가 바로 그런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페르시아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로마 제국과 맞짱을 뜰 만큼 강력한 전성기를 누렸죠.
그런데 서기 630년대, 남쪽 아라비아 사막에서 심상치 않은 모래폭풍이 불어옵니다.
바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 제국, 즉 '초승달의 군대'였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사막에서 낙타나 몰던 유목민들이 감히 우리 제국을 넘봐? 우린 1,000년 넘게 이 땅의 주인이야!"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잔인했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지쳐있던 페르시아 군대는 신흥 종교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슬람 군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결국 651년, 마지막 황제가 암살당하면서 찬란했던 페르시아 제국은 지도에서 지워집니다.
자, 나라가 망한 것도 서러운데 더 큰 문제가 닥쳤습니다.
새로운 정복자들은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습니다.
- 무슬림이 되라: 이슬람교로 개종해라. 그럼 세금도 깎아주고 형제 대우를 해주겠다.
- 지즈야(Jizya)를 내라: 개종하기 싫어? 그럼 알라를 믿지 않는 벌금, 즉 '인두세'를 왕창 내라. 대신 목숨은 살려주마.
- 죽음: 돈도 없고 개종도 싫어? 그럼 죽어야지.
이건 정말 악마의 밸런스 게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많은 페르시아인이 현실과 타협했습니다. "일단 살고 봐야지", "세금이 너무 비싸서 못 살겠다"라며 이슬람으로 개종했죠.
조로아스터교의 신전이었던 곳은 하나둘씩 이슬람의 '모스크(Mosque)'로 개조되었습니다. 수천 년간 타오르던 성스러운 불이 꺼지고, 그 자리에 "알라는 위대하다"는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타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후라 마즈다를 배신할 수는 없다!"
이들은 온갖 차별과 멸시를 견뎌야 했습니다. 무슬림들 앞에서 말을 타는 것도 금지되었고, 비가 오는 날에는 "더러운 이교도가 빗물에 씻겨 우리를 오염시킨다"며 외출도 못 하게 했습니다. 말 그대로 '2등 시민', 아니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은 거죠.
견디다 못한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과 독실한 신자들은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여긴 더 이상 우리가 살 곳이 아니다. 불을 지키기 위해 떠나자."
이것이 바로 조로아스터교 판 '메이플라워호' 사건입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 페르시아를 버리기로 합니다. 짐을 쌉니다. 하지만 그들의 짐 보따리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신전 화로에서 옮겨 담은 '꺼지지 않는 불씨'였습니다.
수백 명의 피난민이 호르무즈 항구로 모여들었습니다. 낡은 배 몇 척에 몸을 실은 그들의 눈에는 피눈물이 흘렀을 겁니다.
"안녕, 페르시아.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망망대해로 나선 보트 피플. 목적지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거친 파도와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오직 신앙 하나만을 붙잡고 동쪽으로, 더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낯선 땅,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는 나라 '인도(India)'였습니다.
하지만 인도 왕은 난민들을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땅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찼소. 당신들을 받아줄 자리가 없소."
이 절체절명의 순간, 조로아스터교의 현명한 사제가 인도 왕에게 '우유 한 잔'과 '설탕'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하죠.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인도 왕의 마음을 돌려놓았을까요?
다음 장, 쫓겨난 난민들이 인도의 전설적인 상인 집단 '파르시(Parsi)'로 다시 태어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만나보겠습니다.
제16장. 인도로 간 보트 피플: '파르시'의 탄생
망망대해를 떠돌던 페르시아의 난민선이 드디어 육지를 발견합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Gujarat) 해변, '산잔(Sanjan)'이라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뭍에 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당시 그 지역을 다스리던 인도의 왕, '자디 라나(Jadi Rana)'가 군대를 이끌고 나와 길을 막어선 겁니다.
왕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갑자기 말도 안 통하고 생김새도 다른 수백 명의 외국인이 떼로 몰려왔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요? 게다가 무기도 차고 있고 덩치도 큽니다.
왕은 그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력으로 내쫓기엔 좀 찜찜했는지, 아주 고상하고도 단호한 방법으로 거절 의사를 밝힙니다.
그는 신하를 시켜 난민들의 리더(사제)에게 '유리잔 하나'를 보냅니다.
그 잔에는 하얀 우유가 찰랑찰랑 넘칠 듯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말은 한마디도 없었지만, 뜻은 명확했죠.
"보시다시피 우리 왕국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소(Full). 당신들이 들어올 빈자리는 단 한 방울도 없으니 돌아가시오."
이 무언의 압박 앞에 난민들은 절망했습니다.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굶어 죽거나 빠져 죽을 게 뻔했거든요.
이때, 조로아스터교의 늙은 사제(Dastur)가 앞으로 나섭니다. 그는 왕이 보낸 우유 잔을 조심스럽게 받아듭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냅니다.
바로 하얀 '설탕' 한 줌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라 '금반지'라는 설도 있지만, 설탕 이야기가 훨씬 더 감동적입니다.)
사제는 그 설탕을 가득 찬 우유 잔에 조심스럽게 넣고 휘휘 젓습니다.
설탕은 우유 속에 스르르 녹아들었고, 신기하게도 우유는 단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습니다.
사제는 그 달콤해진 우유를 다시 왕에게 정중하게 돌려보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길이 남을 '설탕의 약속'입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위대한 왕이시여, 보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나라를 넘치게 하거나 어지럽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우유에 녹아든 설탕처럼, 우리는 당신의 백성들 사이에 조용히 섞여들어 이 나라를 더욱 달콤하고 풍요롭게 만들겠습니다."
이 기가 막힌 퍼포먼스에 인도 왕은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허허,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이로구나! 그대들의 입국을 허락하노라."
대신 왕은 몇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너희 언어(페르시아어)를 버리고 우리말을 써라. 무기를 버려라. 그리고 우리 식의 옷(사리)을 입어라."
난민들은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다 하겠습니다. 단, 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가져온 '성스러운 불'을 모실 신전을 짓게 해주시고, 우리만의 신앙을 지키게 해주십시오."
왕은 쿨하게 OK 사인을 보냈고, 그렇게 페르시아의 유민들은 인도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들을 '파르시(Parsi)'라고 불렀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때부터 파르시들은 인도 사회의 '설탕'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들은 약속대로 절대 포교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파르시는 부모가 모두 파르시여야만 신자로 인정하는 폐쇄적인 혈통주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상업, 교육, 자선 사업에 투신했습니다.
그들은 인도인들이 싫어하는 궂은일을 도맡았고,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할 때는 그들의 언어 능력과 중개 무역 실력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워 인도 사회에 환원했죠.
우유 잔에 설탕을 녹이듯 섞이겠다던 1,000년 전의 약속.
그들은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인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 '타타(Tata) 그룹'이 바로 이 파르시 후손들이 세운 회사라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하지만 여러분,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문제가 남았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잖아요? 이 낯선 땅에서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할까요?
땅에 묻자니 흙이 더러워지고, 태우자니 불이 더러워지고, 물에 흘려보내자니 물이 더러워집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자연을 신성시하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기묘하고 충격적인 장례 시설을 짓습니다.
높은 탑 위에 시신을 올려두고 독수리를 기다리는 곳.
다음 장,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침묵의 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제17장. 침묵의 탑: 독수리에게 육신을 보시하다
자, 여러분. 이번 장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경고 말씀드립니다.
비위가 좀 약하시거나 지금 식사 중이신 분들은 심호흡 한번 크게 하시고 읽어주세요.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기묘하고, 어쩌면 가장 충격적인 장례식 이야기를 할 거거든요.
인도의 뭄바이 시내 한복판에는 '말라바 힐(Malabar Hill)'이라는 아주 울창한 숲이 있습니다.
숲이 얼마나 우거진지 도시의 소음이 차단될 정도죠. 그 고요한 숲속에 거대한 원형 석조 구조물들이 서 있습니다.
이곳의 이름은 '다크마(Dakhma)'.
영국 시인들은 이곳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침묵의 탑(Tower of Silence)'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이름은 참 낭만적인데, 실상은 아주 살벌합니다.
이 탑의 꼭대기는 지붕이 없이 뻥 뚫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나란히 누워 있죠.
네, 맞습니다. 흙에 묻는 것도 아니고, 불에 태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하늘 아래 덩그러니 놓아둡니다.
그러면 누가 찾아올까요?
하늘의 청소부, 독수리들이 내려옵니다.
"으악! 시신을 새한테 뜯어먹게 한다고요? 너무 야만적인 거 아니에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죠. 시신 훼손이라고 생각되니까요.
하지만 파르시(조로아스터교도)들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장례 문화를 보며 기겁을 합니다.
"아니, 그 더러운 시신을 신성한 땅 속에 묻어서 흙을 오염시킨다고요?" (매장 반대)
"세상에, 신의 상징인 성스러운 불에 시신을 태워서 더럽힌다고요?" (화장 반대)
"물에 띄워 보내서 물의 신을 화나게 한다고요?" (수장 반대)
기억하시죠? 이들은 세상 만물, 즉 흙, 물, 불, 공기를 모두 신성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인간이 죽으면 그 육체는 영혼이 빠져나간 '빈 껍데기'이자, 악마(죽음의 신)가 깃든 '가장 불결한 오염원'이 됩니다.
이 오염덩어리로 대자연을 더럽히는 건, 그들에게 있어 씻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낸 솔로몬의 지혜가 바로 '조장(鳥葬, Sky Burial)'입니다.
방법은 아주 과학적이고 친환경적입니다.
- 시신을 탑 꼭대기에 두면 태양의 열기와 독수리들이 살을 처리합니다. (보통 몇 시간 안에 끝납니다.)
- 남은 뼈는 태양 빛에 하얗게 바래고 부서집니다.
- 비가 오면 그 뼈 가루는 탑 중앙의 구멍으로 씻겨 내려갑니다.
- 그 밑에는 숯과 모래로 된 4중 정화 장치가 있어서, 빗물은 깨끗하게 정수되어 지하수로 흘러들어갑니다.
결과적으로 땅 한 평도 차지하지 않고, 탄소 배출도 제로(0)이며, 자연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의 원조가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
파르시들은 이것을 단순한 처리가 아니라, '최후의 자선(Charity)'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땅의 소산물을 먹고살았으니, 죽어서는 내 육신을 배고픈 새들에게 보시하고 가겠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침묵의 탑에는 가슴 뭉클한 '평등'이 숨어 있습니다.
탑의 내부는 세 개의 원으로 되어 있는데, 맨 바깥은 남자, 중간은 여자, 안쪽은 아이들의 자리입니다.
하지만 결국 뼈가 되어 굴러떨어지는 중앙의 구멍(우물)은 하나입니다.
왕족이든, 재벌이든, 거지든 상관없습니다.
살아서는 신분이 달랐을지 몰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뼈 조각이 되어 한곳에서 만납니다.
침묵의 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겁니다.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여러분, 안타깝게도 이 3,000년 된 친환경 시스템이 최근 심각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인도의 산업화와 환경 오염으로 인해 독수리들이 멸종 위기에 처했거든요. (소에게 투여한 진통제가 독수리에게 치명적이었다고 합니다.)
청소부(독수리)가 사라지니 탑 위에는 시신이 쌓이고,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도 빗발쳤죠.
결국 현대의 파르시들은 눈물을 머금고 전통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독수리 대신 강력한 태양열 반사판을 설치해 시신을 건조하거나, 전기로 태우는 화장장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정신만은 여전합니다.
"내 죽음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혐오스러워 보였던 장례식이, 알고 보니 가장 지극한 자연 사랑이었다는 반전.
어떠신가요? 이제 저 탑 위를 맴도는 독수리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으신가요?
자, 이제 과거 여행은 모두 끝났습니다.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 현재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멸종 위기의 독수리처럼, 전 세계에 겨우 10만 명 남짓 남은 조로아스터교의 후예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전 세계 경제와 문화를 쥐락펴락하는 '슈퍼 리치'이자 '히든 챔피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다음 장, 인도의 삼성이라 불리는 '타타 그룹'의 비밀을 파헤치러 갑니다.
[5부] 21세기, 자라투스트라는 다시 말한다
제18장. 인도의 유대인, 타타 그룹과 파르시의 기적
여러분, 혹시 도로에서 '재규어(Jaguar)'나 '랜드로버(Land Rover)' 지나가는 거 보면 무슨 생각 드시나요?
"와, 저거 영국 왕실 의전차잖아. 명품이네."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영국의 자존심인 이 자동차 회사의 주인은 영국인이 아닙니다.
2008년, 경영난에 허덕이던 재규어 랜드로버를 현찰로 쿨하게 사버린 회사는 바로 인도의 '타타(Tata) 그룹'입니다.
타타 그룹은 인도의 삼성, 아니 그 이상입니다.
소금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철강, 통신, 호텔, 항공사까지... 인도 사람은 타타 병원에서 태어나서 타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타타 소금을 먹고 자라, 타타 호텔에서 결혼하고, 죽으면 타타가 만든 장례식장으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그런데 이 거대한 재벌 가문의 정체가 바로 파르시(Parsi), 즉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조로아스터교의 후예들입니다.
여기서 통계 하나를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인도 전체 인구가 약 14억 명입니다. 그중에서 파르시 인구는? 고작 6만 명 정도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0.005%. 올림픽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찼는데, 그중에 딱 3명 앉아 있는 꼴입니다.
그런데 이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인도 100대 부자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경제의 핵심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인도의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요? 단순히 머리가 좋아서?
그 비밀은 타타 그룹의 창업자, 잠셋지 타타(Jamsetji Tata)의 일화에 숨어 있습니다.
19세기 말, 영국 식민지 시절이었습니다.
잠셋지 타타가 사업차 뭄바이의 최고급 호텔인 '왓슨스 호텔'에 들어가려는데, 문지기가 막아섭니다.
"이보시오, 여기 팻말 안 보여? '개와 인도인은 출입 금지'!"
보통 사람이라면 화를 내며 싸우거나, "내가 돈이 얼만데!"라고 갑질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독실한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던 그는 분노를 '후바르슈타(좋은 행동)'로 승화시킵니다.
그는 그길로 돌아가서 다짐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뭄바이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지어서, 인종과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궁전을 만들겠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도 뭄바이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전설적인 '타지마할 호텔'입니다.
이 호텔은 인도인들에게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식민 지배의 설움 속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존심을 세워준 '민족의 성지'였죠.
파르시들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이것입니다. '신뢰(Trust)'.
조로아스터교에서 가장 큰 죄악이 뭐라고 했죠? 바로 '거짓말'입니다.
상업의 나라 인도에서 사람들은 항상 속고 속이는 것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파르시'라면?
"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삽니다. 파르시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이 '정직함'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쌓이고 쌓여서, 그들을 인도의 상류층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하지만 파르시가 진짜 존경받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닙니다.
돈을 '쓰는 방식' 때문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우유 잔에 설탕을 녹이며 했던 약속.
"우리는 인도 사회를 달콤하게 만들겠습니다."
타타 그룹의 지배 구조는 아주 독특합니다. 회장 개인이 주식을 다 갖는 게 아니라, '타타 트러스트(자선 재단)'가 지주의 66%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즉, 회사가 돈을 벌면 그 돈의 3분의 2가 자동으로 인도 전역의 병원, 학교, 연구소, 빈민 구제 기금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입니다.
이것은 "죽어서 육신마저 독수리에게 주고 간다"는 그들의 장례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부(富)는 아후라 마즈다가 잠시 맡겨둔 것일 뿐, 내 것이 아니다. 선한 곳에 흘려보내야 한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지휘자 주빈 메타, 그리고 타타 그룹까지.
비록 나라는 잃었지만, 그들은 '선한 부자'가 되어 세상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멋진 파르시들에게 지금 비상이 걸렸습니다.
돈은 넘쳐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이 사라지고 있거든요.
너무 엄격하게 그들만의 리그를 고집하다가, 이제는 멸종 위기종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다음 장, 10만 명 붕괴라는 카운트다운 앞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치열한 내부 논쟁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제19장. 10만 명의 멸종 위기종, 하지만 영향력은 70억
여러분, 동물원에 있는 자이언트 판다 아시죠?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번식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사육사들이 애를 태웁니다. 개체 수가 너무 적어서 '멸종 위기종'으로 특별 관리를 받죠.
그런데 인간 세상에도 판다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돈도 많고, 능력도 좋고, 역사도 깊은데, 정작 '사람'이 없어서 멸종 위기에 처한 집단.
네, 바로 우리의 주인공 파르시(조로아스터교도)들입니다.
현재 전 세계 조로아스터교 신자 수는 얼마나 될까요?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대략 10만 명에서 15만 명 사이로 추산됩니다.
70억 인구 중에서 10만 명.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하나를 채우면 끝나는 숫자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번 세기 안에 역사책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아니, 작가님. 그렇게 좋은 종교라면 전도해서 신자를 늘리면 되잖아요?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요."
맞습니다. 그게 상식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그들의 발목을 잡는 '천 년의 딜레마'가 숨어 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16장에서 인도 왕에게 했던 '설탕의 약속'.
"우리는 당신네 백성을 개종시키지 않고 조용히 살겠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비(非)전도 정책'을 고수해 왔습니다. 즉, 조로아스터교는 가입하고 싶다고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동호회가 아닙니다.
오직 '부모가 모두 파르시인 경우'에만 신자로 인정합니다. (조금 완화된 곳은 아버지가 파르시면 인정해 주기도 합니다.)
다른 종교나 민족과 결혼하면? 그 순간 공동체에서 추방되거나, 태어난 아이는 파르시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 엄격한 '순혈주의'는 지난 1,000년 동안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준 강력한 방패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족쇄가 되어버렸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고학력에 부자인 파르시들은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이를 적게 낳습니다. (한국이랑 비슷하죠?) 게다가 유학 가서 외국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납니다.
그러니 인구 그래프가 미친 듯이 수직 하락하는 겁니다.
오죽하면 '인구 대국' 인도의 정부가 나서서 이런 캠페인까지 벌이겠습니까. 이름하여 '지요 파르시(Jiyo Parsi: 파르시여 영원하라)'.
이 캠페인의 광고 문구가 정말 웃프(웃기고 슬프)니다.
"콘돔을 쓰지 마세요. 오늘 밤은 제발 참으세요."
"엄마랑 헤어지세요. (마마보이 짓 그만하고) 결혼해서 독립하세요."
인도 정부 입장에서도 이 똑똑하고 세금 잘 내는 '알짜배기' 시민들이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까운 겁니다.
지금 파르시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보수파 (Orthodox):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순수성이 생명이다. 혼혈을 받아들이고 개종을 허용하면 우리는 더 이상 파르시가 아니다. 그냥 역사 속으로 명예롭게 사라지자."
🔴 개혁파 (Reformist): "무슨 소리냐! 종교는 유전자가 아니라 정신이다. 배우자가 타 종교라도 받아들이고, 원한다면 개종도 시켜줘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마치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의 고민과도 같습니다.
"대중화해서 많이 팔 거냐(개혁), 아니면 소수만 갖더라도 프리미엄을 지킬 거냐(보수)."
프레디 머큐리의 장례식이 그토록 쓸쓸했던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가 외국인과 사귀고 파격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사제들은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여러분, 저는 여기서 한 가지 희망적인 반전을 봅니다.
비록 물리적인 숫자는 '10만 명'이라는 멸종 위기종일지 몰라도, 그들의 '영적인 DNA'는 이미 전 세계 70억 인구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 우리가 영화를 보며 "권선징악"을 외칠 때,
- 힘든 순간에 "천국이 있겠지"라고 위로받을 때,
- "내 인생은 나의 선택"이라며 자유의지를 불태울 때,
-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장식하며 동방박사를 떠올릴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라투스트라의 언어를 쓰고 있고, 페르시아의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라는 거대한 종교들의 뿌리가 되어주었기에, 그들의 불꽃은 이미 전 인류의 가슴속으로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셈이죠.
숫자가 0이 된다고 해서 그들이 사라지는 걸까요?
아니요. '원조'의 품격은 영원히 남을 겁니다.
자, 이제 마지막 장입니다.
이 오래된, 하지만 너무나 현대적인 종교가 지금 이 복잡하고 혐오스러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를 들으러 가볼까요?
제 방의 책상 위, 작은 촛불을 하나 켜두고 에필로그를 씁니다.
제20장. 에필로그: 왜 지금 다시 '선한 생각'인가?
자, 여러분. 긴 여행을 마치고 이제 다시 21세기, 대한민국, 우리 집으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우리는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에서 시작해, 다리우스 대제의 비석을 지나, 바빌론의 강가와 인도의 침묵의 탑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솔직히 말해볼까요? 3,000년 전의 고대 종교, 이름도 발음하기 힘든 조로아스터교.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이거 안다고 연봉이 오르거나 아파트 값이 오르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왜 저는 이 낡은 이야기를 꺼내 여러분을 붙잡았을까요?
지금 창문을 열고, 혹은 스마트폰 뉴스를 한번 켜보세요. 세상이 어떤가요?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시끄럽고 잔인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는 '나쁜 말(악플)'이 칼날처럼 날아다닙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고 짓밟는 '나쁜 생각(혐오)'이 바이러스처럼 퍼집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과 범죄 소식은 끔찍한 '나쁜 행동'들로 가득 차 있죠.
마치 3,000년 전 자라투스트라가 걱정했던 악마, '앙그라 마이뉴'가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착하게 살면 호구 되는 세상이야."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야."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헬(Hell)조선이지."
이 차가운 냉소와 피로감 속에 지쳐있는 여러분에게, 저는 자라투스트라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의 노래(가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슈타 아흐마이 야흐마이 우슈타 카흐마이치트."
(Ushta ahmai yahmai ushta kahmaichit)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남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조로아스터교가 발견한 우주의 비밀이자, 행복의 알고리즘입니다.
우리는 행복이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착각합니다. 내가 가지려면 남의 것을 뺏어야 하고, 내가 이기려면 남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자라투스트라는 말합니다. 행복은 '촛불'과 같다고요.
내 초로 옆 사람의 초에 불을 붙여준다고 해서 내 불꽃이 줄어드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방 안은 두 배로 밝아지고 따뜻해집니다.
선(善)은 도덕 교과서에나 나오는 지루한 의무가 아닙니다.
선은 '전략'입니다. 나와 내 주변을 지옥(거짓과 불신)으로부터 지켜내고, 천국(신뢰와 기쁨)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영리하고 확실한 생존 전략인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이 우주는 거대한 전쟁터이고, 여러분은 구경꾼이 아니라 '캐스팅 보트'를 쥔 주인공이라고 했던 이야기요.
내일 아침, 여러분이 눈을 뜨는 순간 또다시 전쟁은 시작될 겁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발을 밟고 지나갈 때, 직장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할 때, 인터넷에서 화가 나는 뉴스를 봤을 때.
그 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는 아후라 마즈다(빛)와 앙그라 마이뉴(어둠)가 속삭일 겁니다.
그때, 부디 '좋은 생각(후마타)'의 편에 서주시길 바랍니다.
거창한 게 아닙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좋은 말),
쓰러진 자전거를 세워주는 작은 손길(좋은 행동).
그 사소한 행동 하나가 나비효과가 되어, 오늘 하루 여러분의 우주를 조금 더 환하게 밝힐 것입니다.
니체가 말했던 '위버멘쉬(초인)', 조로아스터가 기다렸던 '사오슈얀트(구세주)'.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영웅이 아닙니다.
매 순간 선(善)을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바로 당신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떠났고, 페르시아 제국은 사라졌으며, 신전의 불은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 불꽃은 신전의 화로가 아니라, 지금 이 책을 덮는 여러분의 가슴속에 옮겨붙었으니까요.
부디 그 불꽃을 꺼트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좋은 생각이,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아솀 보후 (Ashem Vohu).
진리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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