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양봉래(楊蓬萊)의 풍악에서[在楓岳]란 시는 다음과 같다.
백옥경 봉래도에 / 白玉京蓬萊島
허허 넓은 연파는 태고적이고 / 浩浩煙波古
맑고 따사로운 날씨도 좋구나 / 熙熙風日好
벽도화 그늘에 한가로이 오가니 / 碧桃花下閒來往
학 탄 신선 피리소리에 세월은 간다 / 笙鶴一聲天地老
신선 같은 풍채와 도인 같은 느낌이 짙다. 자동(紫洞) 차식(車軾)이 흉내내기를 다음과 같이 했다.
아침엔 현포에 저물녘엔 봉래산에 / 朝玄圃暮蓬萊
산달 걸린 박연폭포요 / 山月鉢淵瀑
향풍어린 계수대라 / 香風桂樹臺
동해를 굽어보며 마고에게 절하고 / 俯臨東海揖麻姑
삼십륙동천에 돌아가노라 / 六六壺天歸去來
원숙하기는 하나. 격(格)이 미치지 못한다. 나의 중형도 다음과 같이 화답하였다.
학은 훤칠하게 제비는 높게 낮게 / 鶴軒昂燕差池
삼신산에 돌아와 오색 구름에 나는구나 / 三山歸去五雲中飛
이 천지간 석자짜리 지팡이에 / 乾坤三尺杖
포의로 한 세상 보내누나 / 身世一布衣
바윗머리 나무에 긴 칼 척 걸어 두고 / 好掛長劍巖頭樹
맑은 시내에 손 담그고 영지풀잎 씹네 / 手弄淸溪茹紫芝
비록 좋기는 해도 마침내 양봉래의 신선 같은 운치에는 미치질 못한다. 이익지(李益之)에게 읊게 한다 해도 미치지 못할는지 모르겠다. 양봉래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산 위에 또 산 있으니 산이 땅에서 나오고 / 山上有山山出地
물가에 또 물 흐르니 물 속에 하늘 어리었네 / 水邊流水水中天
아득해라 이 몸 공허 속에 있거니 / 蒼茫身在空虛裏
연하도 아닌 것이 선경도 아니로세 / 不是煙霞不是仙
불게(佛偈)와도 비슷하다. 또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금옥루대에 보랏빛 안개 떨치고 / 金屋樓臺拂紫煙
용이 나는 구름길에 신선 내려오네 / 躍龍雲路下群仙
청산도 인간 세상에 역겨웠던지 / 靑山亦厭人間世
푸른 바다에 어린 구만리 장천 속에 날아들었네 / 飛入蒼溟萬里天
삼천 년 만에 익는다는 신선 복숭아 / 蟠桃子熟三千歲
한밤중 하얀 난새 쌍으로 왔네 / 半夜白鸞來一雙
중천에 신선 서왕모 내려오니 / 中天仙郞降王母
아롱진 바다기운 구름창에 이었네 / 玲瓏海氣連雲牕
역시 그를 따라 배울 만하다.
차식(車軾)의 자는 경숙(敬叔), 호는 이재(頤齋), 연안인(延安人)이며 벼슬은 군수이다. 《기아(箕雅)》를 참고하건대 ‘金玉’은 ‘金屋’으로 되었고, ‘躍龍’은 어떤 본에는 ‘濯龍’으로 되어 있다.
내 누님의 보허사(步虛詞)는 다음과 같다.
난새 타고 한밤 중 봉래도에 내려서 / 乘鸞夜下蓬萊島
기린수레 한가로이 몰고 아름다운 풀 밟기도 하네 / 閒碾麟車踏瑤草
바닷바람은 벽도화를 불어 꺾어오고 / 海風吹折碧桃花
옥소반엔 가득찬 외만한 대추 / 玉盤滿摘如瓜棗
또 다음과 같이도 읊었다.
구화의 치마폭에 육수의 웃옷 입고 / 九華裙幅六銖衣
학의 등 싸늘바람 자부로 돌아왔네 / 鶴背冷風紫府歸
비취 바다 달도 지고 은하수 기우는데 / 瑤海月沈星漢落
옥피리 소리 속에 상서구름 날리네 / 玉簫聲裏霱雲飛
유몽득(劉夢得)을 본받았으나, 맑고 뛰어나긴 그보다 더하다. 유선사(遊仙詞) 백편은 모두 곽경순(郭景純 경순은 동진(東晋) 곽박(郭璞)의 자)의 남긴 뜻인데, 조요빈(曺堯賓) 따위로는 미치지 못한다. 나의 중형과 이익지가 모두 모방하여 지었으되, 마침내 그 울을 넘지 못했으니, 우리 누님은 천선(天仙)의 재주라 할 만하다.
양봉래(楊蓬萊)의 선종암(仙鍾巖)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거울속 부용은 서른 여섯인데 / 鏡裏芙蓉三十六
하늘가에 바라뵈는 일만 이천 봉 / 天邊螻䯻萬二千
그 가운데 한조각 창주석에는 / 中間一片滄洲石
한 백년 동안에 시라고 말할 수가 있다오 / 可以言詩此百年
박 상공(朴相公)이 끝구절을 고쳐,
동녘에 온 해객이 졸기에 합당하네 / 合著東來海客眠
하자, 봉래가 온당하다고 하여 드디어 고치고 나중에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의 호) 황 상공(黃相公)에게 말하니 상공이,
“이는 공의 시어(詩語)가 아니니 바른 대로 말하시오”
하므로 봉래가 지천의 식견에 크게 탄복했다. 지천은 봉래를 잘 알아보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박 상공(朴相公)의 이름은 순(淳),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庵), 충주인(忠州人)이며 벼슬은 영의정이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사암의 퇴계 선생이 남으로 돌아감을 전송하며[送退溪先生南還]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고향생각 끊임없어 고리인 양 이어지니 / 鄕心不斷若連環
한필 말로 오늘아침 한관 떠나네 / 一騎今朝出漢關
추위에 고갯매화 봄인데도 못 피니 / 寒勒嶺梅春未放
늦은꽃 응당 늙은 신선 돌아오길 기다리리 / 留花應待老仙還
총병(總兵) 양조(楊照)의 사당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철갑옷 금빛칼도 이미 흙이 되었고 / 鐵衣金劍已塵沙
사당집 소나무 전나무엔 저녁 까마귀 지저귀네 / 廟間松杉噪夕鴉
슬프다 중국 날센 장수 죽었으니 / 惆悵漢家飛將死
갈대 피리 소리만 백낭하 자주 넘네 / 胡笳頻度白狼河
청풍(淸風) 한벽루(寒碧樓) 시는 다음과 같다.
나그네 그리움 외로이 절로 시름 생기니 / 客心孤廻自生愁
앉은 채 강물소리 듣노라 다락에서 내려올 줄 모르네 / 坐聽江聲不下樓
내일 또 벼슬길로 가버린다면 / 明日又登官道去
흰 구름에 단풍은 누구 위한 가을일꼬 / 白雲紅樹爲誰秋
견 상인(堅上人)에게 보내는 시는 다음과 같다.
오랫동안 입은 은혜이기에 이 마음 궁리 많아 / 久沐恩波役此心
새벽 닭소리에 조회 나갈 비녀를 꽂네 / 曉鷄聲裏戴朝簪
강남 땅 들집은 하마 황폐했겠지 / 江南野屋今蕪沒
산승을 고용하여 대밭을 돌보게 했네 / 却倩山僧護竹林
짧은 거문고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역산에서 그 누가 오동나무 잘랐는가 / 嶧山誰採鳳凰枝
벼락친 자욱 있어 깎아보니 더욱 기이해 / 雷斧餘痕斲更奇
소리 알 이 이미 갔다 서러워 마라 / 休恨賞音人已逝
옷깃 비추는 저 달이 바로 종자기라네 / 照衿明月卽鍾期
이양정(二養亭) 벽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산새 소리 어쩌다 외마디 들리고 / 谷鳥時時聞一箇
침상은 쓸쓸해라 여러 책 흩어졌네 / 匡床寂寞散群書
가엾어라 백학대 앞 저 물도 / 可憐白鶴臺前水
산문을 나서자 이내 진흙 머금으리니 / 纔出山門便帶淤
신기재(申企齋)의 동산시(洞山詩)는 다음과 같다.
봉래도는 아득아득 지는 해 시름겹고 / 蓬島茫茫落日愁
흰 갈매기 해당숲에 다 날아갔네 / 白鷗飛盡海棠洲
오늘에야 비로소 명삿길 밟게 되니 / 如今蹈踏鳴沙路
이십년전 옛꿈에 놀던 데라오 / 二十年前舊夢游
나는 그곳에 가 본 뒤에야 이 시의 절묘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언젠가 꿈에 한 곳에 이르니 거친 연기, 들풀이 눈길 닿는 데까지 끝없는데, 불탄 나무의 껍질 벗겨진 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원통한 기운 끝없어 / 冤氣茫茫
산하가 한 빛이로다 / 山河一色
세상엔 사람 하나 없고 / 萬國無人
중천에 달도 침침하네 / 中天月黑
잠에서 깨어 몹시 언짢게 여겼었는데 임진란에 서울이나 시골을 막론하고 피를 흘리고 집들이 불탐에 이르러서 이 시가 바야흐로 징험이 되었다.
무위자(無爲者) 천연(天然) 스님은 집안이 본래 좋았으나 잘못 중이 되었는데 씩씩하여 기개가 있었다. 언젠가 지리산(智異山) 성모(聖母) 음사(淫祠)가 대중에게 혹하게 한 것을 분하게 여겨, 이를 쳐부수었다. 남명 선생(南冥先生)이 용사천연전(勇士天然傳)을 지었으며 양송천(梁松川)이 그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제하였다.
주먹 한번 휘둘러 산꼭대기 돌 깨부수니 / 張拳一碎峯頭石
갈 곳 없는 잡귀가 대낮에 울더라 / 魍魎無憑白晝啼
양봉래(楊蓬萊)ㆍ박사암(朴思庵)과 나의 중형이 모두 천연의 친구가 되었다. 천연이 약간 시를 알아 우리 중형에게 준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잘못 고기 배에 걸린 용 곤핍함을 슬퍼하고 / 枉罹魚腹嗟龍困
닭우리에 그릇 떨어진 봉황새 쇠해만 가네 / 誤落鷄巢欲鳳衰
임진란에 정화상(靜和尙)을 따라 여러 번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자는 건중(楗仲), 창녕인(昌寧人)이며 벼슬은 전첨(典籤)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자는 공섭(公燮). 남원인(南原人)이며 벼슬은 부윤(府尹)이다. 정화상(靜和尙)은 휴정(休靜)이니 호는 청허(淸虛)이다. 임진란 때 승병 대장으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되었다. 시를 잘하였다. 송천의 어양교를 지나다[過漁陽橋]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나무빛이며 풍경은 태평세월 그렸는데 / 樹色煙光畫太平
강다리는 아직도 옛이름을 띠었구나 / 河橋猶帶舊時名
이주곡(伊州曲) 양주곡(涼州曲)이 소소곡 같았더라면 / 伊涼若是簫韶曲
어찌 오랑캐놈들이 양경(兩京)을 침범하였으리 / 豈使胡雛犯兩京
청허의 한성도중(漢城道中)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바닷가 나무엔 가을 서리 내리고 / 海樹落秋霜
초관엔 이른 기러기 떠나네 / 楚關鴻去早
종산 외론 새 나는 하늘가에 / 鍾山獨鳥邊
나그넨 배 안에 늙어만 가네 / 客子舟中老
중형이 무위자(無爲者)에게 준 시는 다음과 같다.
천왕봉 위로 나는 듯 달려가 / 天王峯上走如飛
천 년 묵은 돌덩이 주먹으로 부수고 돌아왔네 / 手碎千年片石歸
애닯다 영웅은 속절없이 늙어가고 / 可惜英雄空老去
산속에 밝은 달이 닫힌 사립문 비추네 / 碧山蘿月掩柴扉
또
두만강가 나뭇잎은 시들고 / 豆滿江邊木葉衰
여기저기 외론 산엔 깃발만 펄럭이네 / 孤山處處見旌旗
산속에 하늘을 떠받칠 솜씨 버려졌으니 / 山中褒却擎天手
슬프다 월지국 선우 머리 벨 이 그 누구런가 / 怊悵何人斮月支
그에 대한 칭찬이 이와 같았다. 또 장편 시의 머리 두 구절은 다음과 같다.
무위자는 사람중에 용이니 / 無爲者人中龍
전생엔 바다를 가르던 금시조(金翅鳥)였는데 / 前身擘海金翅鳥
벼락이 한밤에 천왕봉에 떨어졌네 / 霹靂夜下天王峯
말이 매우 기발하였는데 전편을 못 외우겠다. 필경 무위자의 책속에 있을 것이다.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의 호)이 이우정(二憂亭)에 제한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물가에 가로 세로 밀물은 지고 / 洲渚縱橫潮漸退
나무숲 우수수 기러기 손이 오네 / 樹林搖落雁來賓
조어(造語)가 기이 건장한데 전한(典翰) 엄흔(嚴昕)은 하찮게 보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엄흔(嚴昕)의 자는 계소(啓昭)이고 호는 십성(十省)이다. 영월인(寧越人)으로 벼슬은 전한(典翰)을 지냈다.
남추강(南秋江 추강은 남효온(南孝溫)의 호)의 한식시(寒食詩)는 다음과 같다.
흐린 날 울 밖에 저녁 해 나고 / 天陰籬外夕陽生
한식날 봄바람에 들 물은 맑다 / 寒食東風野水明
배에 가득찬 장사아치 끝없이 지껄이는 말 / 無限滿船商客語
버들꽃 필 무렵이라 고향의 정일레라 / 柳花時節故鄕情
안자정을 꿈에 보다[夢子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부귀 영화 덧없는 꿈 저문 산 앞에서 꾸니 / 邯鄲一夢暮山前
넋과 넋 만남이란 정말 우연이라 / 魂與魂逢是偶然
가는 비 뜰에 내리고 봄은 쓸쓸한데 / 細雨半庭春寂寞
살구꽃 수없이 지네 붉은 돈처럼 / 杏花無數落紅錢
상사일 성남에서[上巳日城南]란 시는 다음과 같다.
성남이고 성북이고 살구꽃 붉은데 / 城南城北杏花紅
해는 꽃 서녘에 있으니 꽃 그림잔 동에 있네 / 日在花西花影東
외로이 말 탄 병든 늙은이 철 바뀜에 놀라니 / 匹馬病翁驚節候
비낀 바람이 성가퀴에 눈물을 흩뿌려주네 / 斜風吹淚女墻中
이상 몇몇 시는 당인(唐人)에 못지 않다. 귀신론(鬼神論) 일편은 학문이 극히 높다. 훌륭한 재주를 지녔어도 펴보지 못했으니 아깝다.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자는 백공(伯恭)이고 의령인(宜寧人)인데 진사(進士)를 지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안자정(安子挺)의 이름은 응세(應世)이고 호는 월창(月窓)이며 죽산인(竹山人)이다. 진사(進士)를 지냈다.
남추강(南秋江)의 성거산(聖居山)에 제한 절구는 다음과 같다.
동녘에 해 높이 돋으니 / 東日出杲杲
신령스런 비에 나뭇잎 지네 / 木落神靈雨
창 열자 온갖 시름 스러지니 / 開牕萬慮淸
병든 몸이 날개가 돋는 듯 / 病骨欲生羽
무절공(武節公) 황형(黃衡)은 무장(武將) 출신으로, 또한 글과 글씨에 능했다. 경오년(1510, 중종5)에 왜구를 진압하고 몰운대(沒雲帶)에 올라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높은 대에 깃발 세우니 큰 바람 이는구나 / 建節高臺起大風
바다 구름 갓 걷히고 해는 둥실 붉어라 / 海雲初捲日輪紅
하늘에 비겨 칼 어루만지며 자주 고개 돌리니 / 倚天撫劍頻回首
탄환만한 대마도가 가까이 보이는구나 / 馬島彈丸指顧中
조어(造語)가 기이하고 장엄하여 마치 그 사람을 보는 듯하다. 어찌 인재가 옛사람에게 못 미치랴.
무절(武節)의 이름은 형(衡)이요 창원인이다. 무과급제로 공조 판서를 지냈다. 시안(諡案)을 상고컨대 형의 시호는 장무(莊武)이지, 무절이 아니었다.
《승암시화(升庵詩話)》에 명초(明初) 이래 재상의 업적을 논함에 있어 유성의(劉誠意 성의는 유기(劉基)의 봉호)를 제일로 치켜세웠다. 성의가 실로 어질긴 하지만 재상의 업적에 대해서는 소문난 게 없다. 영락(永樂) 연간에는 하원길(夏原吉)을 제일로 삼고 삼양(三楊 양사기(楊士奇) 양영(楊榮) 양보(楊溥))은 그 축에 들지 않았으니 그 의논 또한 온당치 못하다. 이 문달공(李文達公 문달은 이현(李賢)의 시호)이 그를 헐뜯어 심지어는 문달이 나륜(羅倫)을 내쳤으니, 비록 흠이 됨을 면할 수는 없으나, 그 공정한 것만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정덕(正德) 연간에 이르러는 거드름스럽게 자기 아버지를 제일로 쳤다. 젊어서는 비록 괜찮은 사람이었으나 입각(入閣)하여서는 임금의 외척을 연줄로 삼았으니 이미 올바른 선비는 아닌데, 공평하여 사심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정(嘉靖) 이래로 명정승은 문정공(文正公) 사천(謝遷)과 충의공(忠毅公) 양부(楊傅)가 더욱 드러나게 유명했는데, 소인(小人)도 제일 많았다. 계악(桂萼)ㆍ방헌부(方獻夫)ㆍ장총(張璁)ㆍ엄숭(嚴嵩)ㆍ이본(李本)이 모두 소인들인데, 그 중 엄숭은 은총을 20여 년이나 독차지했다. 그 뒤에는 소사(少師) 서계(徐階)ㆍ소부(少傅) 이춘방(李春芳)이 다 명정승인데, 서소사(徐少師)는 남들이 사마공(司馬公)에 비겼으니, 오랫동안 논정(論定)하는 일을 담당했었다. 융경(隆慶) 이래로 고공(高拱)ㆍ장거정(張居正)은 모두 약골(弱骨)이었으며 신시행(申時行)은 기롱을 면할 수 없었고, 승상(丞相) 마자강(馬自强)ㆍ소부(少傅) 허국(許國)ㆍ소보(少保) 왕석작(王錫爵)이 모두 괜찮은 사람이었으나 그들의 사업은 삼양(三楊)에게 비기면 누가 나은지는 모르겠다. 인재가 날로 저하되니 개탄스러운 노릇이다.
우리나라 명상(名相)은 황ㆍ허(黃許 황희(黃喜)와 허조(許稠))를 제일로 삼는다. 세상에서는 더러 전조(前朝 고려(高麗))의 과제(科第)를 병폐로 여기기도 하는데, 과연 그 뒤에는 별로 이름난 사람이 없었다. 중종 때 문익공(文翼公) 정광필(鄭光弼)은 전인(前人)에 부끄럽지 않다.
황희(黃喜)의 자는 구부(懼夫)이고 호는 방촌(厖邨)인데 장수인(長水人)이다. 벼슬은 영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익성(翼成)으로 세종묘정(世宗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허조(許稠)의 자는 중통(仲通)이고 호는 경암(敬庵)인데 하양인(河陽人)이다. 벼슬은 좌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문경(文敬)으로 세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정광필(鄭光弼)의 자는 사협(士協)이고 호는 수부(守夫)인데, 동래인(東萊人)이다. 벼슬은 영의정을 지냈고 중종묘정에 배향되었다.
단간공(端簡公) 정효(鄭曉)의 《오학편(吾學編)》에 우리나라가 여진(女眞) 이만주(李滿住)를 정벌한 일의 본말(本末)이 아주 자상히 실려 있는데, 강순(康純)ㆍ어유소(魚有沼)ㆍ남이(南怡)의 이름을 대서특필하였다. 이 세 사람은 진실로 장군감으로 국사(國史)에 그 이름이 드러났으니 이보다 큰 영광이 무엇이겠는가?
강순의 자는 태초(太初)요 신천인(信川人)이다. 음관으로 좌의정을 지냈고 남이의 옥사(獄事)에 죽었다.
어유소는 충주인(忠州人)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영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정장(貞莊)이다.
남이는 의령인(宜寧人)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를 지냈다.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의 손자(孫子)이고 익평(翼平) 권람(權擥)의 사위로 유자광(柳子光)의 무고에 의해 살해되었다. 남이의 정남(征南)이란 절구는 다음과 같다.
백두산 돌은 칼 갈아 닳아지고 / 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 물은 말 먹여 마르리라 / 豆滿江流飮馬無
사나이 스물에 북을 정벌치 못하면 / 男兒二十未平北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 後世誰稱大丈夫
척 총병(戚總兵 척계광(戚繼光)을 가리킴)은 위명(威名)과 사업이 남의 이목에 번쩍거릴뿐더러 또한 시문에 능하여 이창명(李滄溟)의 무리가 치켜세웠다. 임회후(臨淮侯) 이언공(李言公)의 자(字)는 유인(惟寅)인데, 또한 시문에 능하여 다음과 같은 시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람은 밀물소리 휘몰아 섬들 떠들썩하고 / 風捲潮聲喧島嶼
해에 비낀 돛 그림자 누대에 오르네 / 日斜帆影上樓臺
요즘 스님으로 시 잘 쓰는 사람이 많지 않는데, 유정산인(惟政山人)은 당(唐) 나라 구승(九僧)의 유를 배워 시가 몹시 맑고 고고하였다. 행사(行思)도 자못 좋은 시구가 있어서 상서로운 오색구름 아롱지니 나물 먹는 중이 아니다[慶雲爛熟非筍蔬]라는 구가 있다. 요즘 홍정(弘靜)이란 분이 또한 시를 잘하여 스님을 칭송하다[送僧]란 시가 있었는데 우리 중형(仲兄)이 몹시 칭찬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지난 해 헤어질 땐 가을 강물에 단풍 지더니 / 去年別紅葉秋江波
올해 작별에는 봄 산언덕에 매화가 지네 / 今年別落梅春山阿
물결은 아득하고 산언덕은 가렸는데 / 波杳杳山阿隔
단풍잎 지는 매화 이 시름 어이하리 / 紅葉落梅愁奈何
유정(惟政)의 호는 송운(松雲)이다. 행사(行思)와 같이 일본에 사신갔었다. 이 두 분의 시가 같이 《기아(箕雅)》에 들어 있다.
백대붕(白大鵬)은 천한 종으로 중의 대열에 끼었다. 시를 잘 하였으므로 우리 중형과 승지(承旨) 심희수(沈喜壽)가 다 대등한 벗으로 사귀었는데
가을 하늘에 엷은 그늘 어리어 / 秋天生薄陰
화악의 그림자 침침해라 / 華岳影沈沈
라는 시는 우리 중형이 칭찬해 마지않았다. 우리 백형을 따라 일본에 오간 일이 있으며, 아름다운 시가 매우 많다.
백대붕은 전함사(典艦司)의 종이다. 심희수의 자는 백구(伯懼)이고 호는 일송(一松)으로 청송인(靑松人)이다. 벼슬은 좌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내가 어려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여러 형님들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차마 다그치거나 나무라지 않았기 때문에 게을러 빠져서 독서에 힘쓰지 않았다, 차츰 자라서는 남들이 과거하는 것을 보고 좋게 여겨 덩달아 해 보았으나, 글치레나 하는 것이 장부의 할 짓은 아니었다. 이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났으니, 세상에 나갈 뜻은 이미 사그라졌다. 10년 글읽기로 작정했으나, 아, 그 또한 늦었도다. 《학산초담(鶴山樵談)》 1부(部)를 짓는다.
명 신종(明神宗) 21년 계사년(1593, 선조26) 양월(陽月) 연등(燃燈)한 뒤 사흘 만에 교산자(蛟山子)는 쓰다.
📖 [현대어 완역]
자연과 신선의 풍류를 읊은 명시들
양사언(호 봉래)이 금강산(풍악)에서 지은 시는 이러하다.
백옥경 신선 사는 봉래섬에 / 아득히 넓은 안개 낀 물결은 태고적 그대로네.
맑고 따사로운 날씨 참으로 좋구나 / 푸른 복사꽃 그늘 아래 한가로이 거니노라니
학을 탄 신선의 청아한 피리 소리에, 이 천지간 세월이 느릿느릿 흘러가네.
이 시는 신선 같은 풍채와 도를 깨친 이의 고고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차식(호 자동)이라는 자가 이를 흉내 내어 지은 시는 이러하다.
아침엔 신선 사는 현포에 놀고, 저물녘엔 봉래산에 오르니 / 산에 뜬 달은 박연폭포에 걸려 있고
향기로운 바람은 계수나무 누대에 어리네.
아득한 동해를 굽어보며 선녀 마고에게 절을 올리고 / 신선들 사는 삼십육동천으로 훌훌 돌아가노라.
이 시 역시 솜씨가 원숙하기는 하나, 시의 품격이 양사언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의 둘째 형님(하곡 허봉)도 이에 화답하여 이런 시를 지으셨다.
학은 훤칠하게 날아오르고 제비는 높게 낮게 나는구나 / 삼신산으로 돌아가 오색구름 속을 훌훌 날아다니네.
이 드넓은 천지간에 석 자짜리 짧은 지팡이 짚고 / 벼슬 없는 평범한 백성(포의)으로 이 한세상 여유롭게 보내누나.
바윗머리 늙은 나무에 긴 칼을 척 걸어 두고 / 맑은 시냇물에 손 담그며 신령한 영지버섯을 씹어보네.
형님의 이 시도 훌륭하기는 하지만, 역시 양사언 시 특유의 신선 같은 운치에는 미치지 못한다. 내 생각엔 내 스승 이달(손곡)에게 시를 읊게 한다 해도 감히 양사언의 경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양사언의 다른 시 중에는 또 이런 기가 막힌 구절이 있다.
산 위에 또 산이 솟았으니 그 산이 땅에서 솟구쳐 오르고 / 물가에 또 물이 흐르니 그 물속에 맑은 하늘이 어리었네.
아득해라, 이 내 몸이 텅 빈 허공 속에 떠 있는 듯하니 / 이는 노을도 아니요, 내가 신선도 아니로세.
가만히 읽어보면 불교의 오묘한 게송(불게)과도 비슷하다. 또 이런 시도 있다.
금과 옥으로 꾸민 누대에 보랏빛 안개 떨치고 / 용이 날아오르는 구름길 따라 신선 무리가 내려오네.
저 푸른 산도 더러운 인간 세상이 몹시도 역겨웠던지 / 푸른 바다에 어린 구만리 아득한 하늘 속으로 훌훌 날아들었네.
삼천 년 만에야 비로소 익는다는 신선 복숭아 / 한밤중에 하얀 난새가 쌍으로 날아왔네.
중천에서 신선 서왕모가 사뿐히 내려오니 / 아롱진 바다의 기운이 겹겹이 구름 창에 닿았네.
양사언의 시는 참으로 후대 사람들이 따라 배울 만한 위대한 본보기다.
(참고로, 차식의 자는 경숙, 호는 이재이며 연안 사람으로 군수를 지냈다. 시집 《기아》를 살펴보면, 양사언의 시 중 '금옥루대'가 '금옥(金屋)'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용이 나는 구름길(躍龍)' 구절이 어떤 판본에는 '용이 씻는 구름길(濯龍)'로 적혀 있기도 하다.)
'천선(天仙)'이라 불릴 만한 허난설헌의 시재
우리 누님(허난설헌)이 지은 <신선 세계를 거니는 노래(보허사)>는 이러하다.
난새 타고 한밤중 봉래섬에 사뿐히 내려앉아 / 기린이 끄는 수레를 한가로이 몰며 아름다운 신선 풀을 밟아보네.
시원한 바닷바람은 푸른 복사꽃 가지를 꺾어 날려 오고 / 옥소반엔 참외만큼 큼지막한 신선 대추가 가득 담겼네.
누님은 또 이렇게도 읊었다.
구화의 화려한 치마폭에 육수의 가벼운 옷을 차려입고 / 학의 등에 올라타 싸늘한 바람 가르며 자부(신선 궁궐)로 돌아왔네.
비취빛 바다 위로 달도 지고 은하수도 기우는데 / 청아한 옥피리 소리 위로 상서로운 구름만 피어오르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유우석(유몽득)의 시풍을 본받았으나, 그 맑고 뛰어난 품격은 원작을 훌쩍 뛰어넘는다. 진나라 곽박(곽경순)이 남긴 유선시(신선 세계를 노래한 시) 백여 편의 오묘한 뜻을 고스란히 담아냈으니, 고려 시대 조요빈 따위의 시인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나의 둘째 형님과 이달 스승님도 모두 이 장르를 흉내 내어 시를 지어보았으나 끝내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 누님이야말로 '하늘이 낳은 진정한 신선(천선)'의 재주를 가졌다고 할 만하다.
양사언의 시와 문인들의 뛰어난 안목
양사언(봉래)이 선종암에 제하여 지은 시는 이러하다.
거울 속에 비친 부용꽃 같은 봉우리는 서른여섯 개인데 / 아득한 하늘가에 바라보이는 봉우리는 일만 이천 개라오.
그 가운데 우뚝 솟은 한 조각 푸른 바윗돌(창주석) 위에서 / 한 백 년의 세월 동안 맘껏 시를 논할 수 있다오.
이 시를 본 박순 상공이 끝 구절을 살짝 고쳐 "동녘에서 찾아온 바다 나그네가 한숨 졸고 가기에 딱 좋겠네(合著東來海客眠)"라고 다듬어 주었다. 양사언도 그 구절이 퍽 온당하다고 여겨 그대도 수정했다.
나중에 양사언이 황정욱(호 지천) 상공에게 그 시를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시를 가만히 읽던 황 상공이 대뜸 "이 끝 구절은 공의 시어(말투)가 아니오! 누가 고쳐주었는지 바른대로 말하시오!"라고 꼬집어냈다. 이에 양사언은 남의 손을 탄 것까지 단박에 알아채는 황 상공의 놀라운 식견에 크게 탄복했다. 황정욱이야말로 양사언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안목 깊은 지기라 할 만하다.
(박순 상공의 자는 화숙, 호는 사암이며 충주 사람이다. 영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문혜이다.)
박순(사암) 상공이, 벼슬을 마치고 고향 안동으로 돌아가는 퇴계 이황 선생을 전송하며 지은 시는 이러하다.
고향 향한 끊임없는 그리움이 고리처럼 둥글게 이어지니 / 오늘 아침, 한 필 말에 몸을 싣고 한양 관문을 훌쩍 나서시네.
늦추위가 매서워 고갯마루 매화가 봄인데도 아직 피지 못했으니 / 머물러 있는 저 꽃망울은 응당 늙은 신선(퇴계)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림이리라.
양사언이 읊은 명나라 총병 양조의 사당에 제하여 지은 시는 이러하다.
번쩍이던 철갑옷과 금빛 보검은 이미 흙먼지가 되어버렸고 / 쓸쓸한 사당 집 소나무와 전나무엔 저녁 까마귀만 슬피 지저귀네.
애달프다, 한나라의 그 날쌘 명장이 세상을 떠났으니 / 찰진 갈대 피리 소리만 백낭하 강물을 자주 넘어오누나.
충북 제천의 청풍 한벽루에서 지은 시는 이러하다.
나그네의 짙은 그리움, 외로이 절로 시름이 솟아나니 / 가만히 앉아 강물 소리 듣노라 누각에서 내려갈 줄 모르네.
내일 또 어김없이 벼슬길 핑계로 이 절경을 떠나가 버린다면 / 저 흰 구름과 붉은 단풍은 대체 누굴 위해 물드는 가을일꼬.
스님 견 상인에게 보낸 시는 이러하다.
오랫동안 나라의 두터운 은혜 입었기에 이 마음 보답할 궁리 많아 / 오늘도 새벽닭 우는 소리에 벼슬아치의 비녀를 꽂고 조회에 나간다네.
내가 살던 강남 땅 초가집은 하마 잡초가 무성하게 황폐해졌겠지 / 그래서 산승에게 품삯을 주고 내 대나무 밭이나 돌보게 했다네.
그가 짧은 거문고에 제하여 지은 시는 이러하다.
험준한 역산에서 대체 그 누가 이 귀한 오동나무를 베어왔는가 / 벼락 맞은 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어 깎아놓고 보니 그 자태가 더욱 기이하네.
내 소리를 알아주던 지음(知音)이 이미 세상을 떴다 서러워 마라 / 네 옷깃을 밝게 비추는 저 달빛이 바로 너의 종자기(지음)라네.
이양정이라는 정자 벽에 쓴 시는 이러하다.
산새 소리 어쩌다 한 번씩 정적을 깰 뿐 / 빈 침상은 쓸쓸하고 이 책 저 책만 어지러이 흩어졌네.
가엾어라, 저 맑은 백학대 앞의 맑은 물도 / 이 깊은 산문을 벗어나는 순간 이내 세상의 탁한 진흙을 머금으리니.
신기재의 시와 임진왜란을 예언한 나의 꿈
신기재가 <동산시>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는 이러하다.
봉래섬은 아득아득, 지는 해 바라보니 시름겹고 / 하얀 갈매기들은 해당화 숲으로 몽땅 날아갔네.
오늘에야 비로소 이 명사십리 고운 모래를 밟게 되니 / 아, 여기가 바로 이십 년 전 내가 옛 꿈속에서 놀던 그곳이라오!
나는 훗날 직접 그곳에 가본 뒤에야 이 시가 얼마나 절묘한지 비로소 깨달았다.
언젠가 내가 꿈을 꾸었는데, 발길 닿는 곳이 온통 잿빛 연기와 거친 들풀뿐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불에 타 껍질이 까맣게 벗겨진 나무 기둥에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원통한 기운 끝이 없어 / 온 산하가 핏빛으로 하나로구나.
세상엔 살아남은 사람 하나 없고 / 중천에 뜬 달마저 침침하고 어둡네.
나는 잠에서 깬 뒤 이 불길한 꿈을 몹시 언짢게 여겼다. 그런데 훗날 임진왜란이 터져 서울과 시골을 막론하고 피가 내처럼 흐르고 온통 집들이 불타버리는 참상을 겪고 나니, 내 꿈속의 그 시가 바야흐로 끔찍한 현실로 증명(징험)된 것이었다.
음탕한 사당을 부순 의로운 승려, 천연
스님 중에 '무위자'라고 불리는 천연이라는 자가 있었다. 본래 집안이 뼈대 있는 가문이었으나 어쩌다 잘못하여 중이 되었는데, 성품이 워낙 씩씩하고 호연한 기개가 있었다. 언젠가 그는 지리산에 있는 성모 사당(음탕한 미신으로 점철된 사당)이 어리석은 대중들을 홀리는 것을 보고 몹시 분개하여, 그 사당을 맨손으로 때려 부수어버렸다.
이 호쾌한 일화를 두고 남명 조식 선생이 <용사천연전(용감한 선비 천연의 전기)>이라는 글을 지었으며, 송천 양응정이 그 책 머리에 이런 헌시를 썼다.
주먹 한 번 냅다 휘둘러 산꼭대기의 요망한 돌을 바사삭 깨부수니 / 머물 곳 잃은 잡귀들이 대낮에 처절하게 울부짖더라!
양사언, 박순, 그리고 나의 둘째 형님(허봉)이 모두 천연 스님의 절친한 벗이 되었다. 천연 스님도 시를 제법 알았는데, 그가 우리 둘째 형님께 보낸 시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잘못하여 고기잡이배 그물에 걸려든 갇힌 용의 곤핍함을 슬퍼하고 / 닭장 속에 그릇 떨어져 닭들과 섞인 봉황새가 쇠약해져 감을 한탄하네.
훗날 임진왜란이 터지자, 천연 스님은 청허 휴정(사명대사)을 따라 참전하여 여러 번 큰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조식의 자는 건중, 호는 남명, 창녕 사람이다. 전첨을 지냈고 시호는 문정이다. 양응정의 자는 공섭, 호는 송천, 남원 사람으로 부윤을 지냈다. 정화상은 서산대사 휴정으로 호는 청허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 대장으로 팔도도총섭이 된 영웅이며 시를 몹시 잘 지었다.)
양응정(송천)이 <어양교를 지나며> 지은 시는 이러하다.
나무 빛깔이며 아름다운 풍경은 태평성대를 그림처럼 펼쳐냈는데 / 강물 위 다리는 아직도 피비린내 나던 그 옛날의 이름을 띠었구나.
만약 훗날 사람들이 부른 이주곡, 양주곡 같은 노래가 정말 태평성대를 알리는 소소곡 같았더라면 / 어찌 저 오랑캐놈들이 감히 우리의 두 도읍(양경)을 침범할 수 있었으리오!
휴정 대사(청허)가 <한성 도중>에서 지은 시는 이러하다.
바닷가 앙상한 나무엔 차가운 가을 서리가 내리고 / 쓸쓸한 초나라 관문에선 이른 기러기 떼가 서둘러 떠나가네.
멀리 종산 하늘가엔 외로운 새 한 마리 날아가는데 / 정처 없는 나그네는 작은 배 안에서 덧없이 늙어만 가네.
우리 둘째 형님(허봉)이 무위자(천연 스님)에게 지어 준 시는 이러하다.
천왕봉 꼭대기 위를 나는 듯이 달려 올라가 / 천 년 묵은 요망한 돌덩이를 맨주먹으로 박살 내고 돌아왔네.
애달프다, 저 거친 영웅도 세월 앞에 속절없이 늙어가고 / 깊은 산속 밝은 달빛만이 굳게 닫힌 그의 사립문을 비추누나.
또 다른 시는 이러하다.
두만강 가 나뭇잎은 시들시들 말라가고 / 여기저기 솟은 외로운 산등성이엔 군대의 깃발만 펄럭이네.
무너지는 하늘을 떠받칠 만한 영웅의 솜씨가 저 깊은 산속에 버려져 있으니 / 슬프다, 오랑캐(월지국 선우)의 목을 베어올 영웅이 대체 그 누구런가!
형님이 천연 스님을 칭찬하고 아낀 것이 이토록 대단했다. 또 어떤 장편 시의 첫 두 구절은 이러하다.
무위자 천연은 인간 세상에 숨어든 펄떡이는 용이니 / 그의 전생은 필시 바다를 가르던 신령한 새(금시조)였으리라.
벼락이 한밤중 천왕봉 꼭대기에 냅다 떨어졌네.
시어가 대단히 기발했는데 아쉽게도 전체를 다 외우지는 못하겠다. 필경 무위자의 문집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명시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호음 정사룡 상공이 <이우정>이라는 정자에 제하여 지은 시 중에 이런 기막힌 구절이 있다.
물가에는 이리저리 가로세로 얽히며 밀물이 점점 빠져나가고 / 나뭇잎 우수수 지는 숲속으로 기러기가 반가운 손님처럼 날아오네.
시어를 엮어낸 솜씨(조어)가 대단히 기이하면서도 건장하다. 그런데 전한 벼슬을 지낸 엄흔은 이 시를 아주 하찮게 깎아내렸으니, 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리 눈먼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엄흔의 자는 계소, 호는 십성이며 영월 사람이다. 전한을 지냈다.)
불우한 천재, 남효온의 빼어난 시들
추강 남효온의 <한식 시>는 이러하다.
잔뜩 흐렸던 날, 울타리 밖으로 저녁 해가 삐죽이 솟아나고 / 한식날 따사로운 봄바람에 들판의 물이 투명하게 맑아지네.
배에 가득 올라탄 장사치들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끝없이 지껄이는데 / 하얀 버들꽃 흩날리는 이 계절이 되니 뼈저리게 고향 땅이 그립구나.
<안자정(안응세)을 꿈에서 만나다>라는 시는 이러하다.
부귀영화란 한단 땅의 덧없는 꿈결 같은 것, 어스름 저문 산 앞에서 잠시 꿈을 꾸니 / 죽은 자의 넋과 산 자의 넋이 만나는 것도 참으로 우연이로구나.
가랑비는 뜰 안을 적시고 봄날은 쓸쓸하기만 한데 / 붉은 살구꽃만 붉은 동전처럼 수없이 툭툭 떨어져 내리네.
<상사일(삼월 삼짇날) 성남에서>라는 시는 이러하다.
성문 남쪽이든 북쪽이든 온통 붉은 살구꽃이 만발했는데 / 해는 꽃의 서쪽에 떠 있으니, 꽃그림자는 길게 동쪽으로 드리워졌네.
외로이 말에 올라탄 병든 늙은이, 훌쩍 바뀐 계절에 깜짝 놀라니 / 빗겨 부는 봄바람이 성가퀴(성벽) 사이로 눈물을 흩뿌려주네.
위에 소개한 시들은 당나라의 쟁쟁한 시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명작이다. 특히 남효온이 남긴 <귀신론>이라는 글 한 편을 보면 그의 학문이 지극히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토록 훌륭한 천재성을 지녔으면서도 끝내 세상에 널리 뜻을 펴보지 못했으니 참으로 아깝고 원통한 일이다.
(남효온의 자는 백공, 호는 추강이며 의령 사람이다. 진사에 머물렀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안응세의 자는 자정, 호는 월창이며 죽산 사람으로 진사를 지냈다.)
남효온이 성거산에 제하여 지은 절구는 또 이러하다.
동녘 하늘에 해가 둥실 높이 솟아오르니 / 신령스러운 산비 속에 나뭇잎이 지네.
창문을 활짝 열자 온갖 시름이 씻은 듯 스러지니 / 이 병든 몸에 당장이라도 새 날개가 돋아나는 듯하구나!
문무를 겸비한 명장, 황형
무절공 황형은 무장(장군) 출신이면서도 학문과 글씨에 능통한 호걸이었다. 1510년(중종 5년, 경오년) 삼포왜란 때 왜구를 완벽히 진압하고 기세를 몰아 몰운대에 올라 지은 시는 이러하다.
높은 누대에 대장군의 깃발을 꽂으니 거센 바람이 일어나는구나 / 짙은 바다 구름이 갓 걷히자 태양이 둥실 붉게 떠오르네.
하늘을 향해 보검을 어루만지며 거듭 고개 돌려 바라보니 / 저깟 탄환만 한 대마도쯤이야 내 손가락 한 번 퉁기면 끝날 거리에 있구나!
단어를 구사하는 솜씨(조어)가 너무도 기이하고 장엄하여,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장군의 호쾌한 기상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하다. 어찌 우리 시대의 인재가 옛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섣불리 깎아내릴 수 있으랴!
(황형은 창원 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공조 판서에 올랐다. 시호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시호는 본래 '장무'이지 '무절'이 아니었다.)
명나라와 조선의 재상들을 논하다
중국의 《승암시화》라는 책을 보면, 명나라 건국 이래 역대 재상들의 업적을 논하면서 유기(유성의)를 단연 으뜸으로 치켜세웠다. 유기가 진실로 어진 인물이긴 하나, 사실 재상으로서 크게 소문날 만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것은 별로 없다. 또 명나라 영락제 연간의 인물을 꼽을 때는 하원길을 최고로 치면서, 정작 나라의 기틀을 다진 훌륭한 재상들인 '삼양(양사기, 양영, 양보)'은 그 명단에 끼워주지도 않았으니 그 평가가 영 온당치 못하다.
이현(시호 문달공)이 유기를 몹시 헐뜯고 심지어 나륜이라는 인물을 내친 일은 비록 흠이 되긴 하나, 적어도 이현이 국정을 공정하게 처리했던 사실만큼은 덮어둘 수 없다. 그런데 명나라 정덕제 연간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아버지를 훌륭한 재상 1위로 꼽는 추태를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젊어서는 꽤 괜찮은 선비였으나, 막상 내각(입각)에 들어가서는 임금의 외척들에게 줄을 대며 권력을 탐했으니 이미 올바른 선비라 할 수 없다. 그런 자를 어찌 공평무사한 훌륭한 재상이라 우길 수 있겠는가?
가정제 이후 명나라의 훌륭한 정승으로는 사천과 양부 같은 인물이 널리 이름을 떨쳤지만, 반대로 나라를 망친 소인배들도 바글바글했다. 계악, 방헌부, 장총, 엄숭, 이본 같은 자들이 모두 간신 소인배들인데, 그중에서도 엄숭은 무려 20여 년이나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권력을 휘둘렀다. 그 후 등장한 서계와 이춘방이 훌륭한 명정승으로 꼽혔으며, 특히 서계는 옛날 사마광에 비견될 정도로 오랫동안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는 일에 헌신했다.
그러나 융경제 이후에 나타난 고공, 장거정 같은 재상들은 능력은 있어도 줏대가 약한 약골들이었고, 신시행은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을 면치 못했다. 마자강, 허국, 왕석작 같은 이들은 제법 괜찮은 인물들이긴 했으나, 그들의 업적을 명나라 전성기의 '삼양'과 비교해 본다면 글쎄, 누가 낫다고 감히 말하기 어렵다. 갈수록 나라의 인재가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그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반면, 우리나라 조선의 훌륭한 명재상을 꼽으라면 단연 세종 때의 황희와 허조를 최고로 친다. 세상 사람들은 더러 과거 고려 시대의 과거 제도가 병폐가 많았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그 이후에는 황희나 허조만큼 이름난 위대한 인물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훗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 정도가 앞선 두 대가에게 부끄럽지 않은 명재상이라 할 만하다.
(황희의 자는 구부, 호는 방촌이며 장수 사람이다. 영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익성으로 세종 임금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허조의 자는 중통, 호는 경암이며 하양 사람이다. 좌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문경으로 역시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정광필의 자는 사협, 호는 수부이며 동래 사람이다. 영의정을 지냈고 중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국위를 떨친 세 장군: 강순, 어유소, 남이
정효라는 중국인이 쓴 《오학편》을 보면, 과거 우리나라가 북방의 여진족 추장 이만주를 정벌했을 때의 사건 전말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거기에는 우리 장군들인 강순, 어유소, 남이의 이름이 아주 대서특필되어 있다. 이 세 사람은 진실로 나라를 구할 훌륭한 장군감으로서 중국의 역사서에까지 그 위대한 이름이 당당히 기록되었으니, 무장으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강순의 자는 태초이며 신천 사람이다. 음서로 벼슬에 올라 좌의정까지 지냈으나 남이의 억울한 옥사 때 엮여 목숨을 잃었다. 어유소는 충주 사람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영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정장이다. 남이는 의령 사람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젊은 나이에 병조 판서를 지냈다. 의산위 남휘의 손자이자 권람의 사위였으나, 간신 유자광의 더러운 모함에 빠져 억울하게 처형당했다.)
남이 장군이 갓 스물의 나이에 북방을 정벌하며 읊은 그 유명한 절구 <정남>은 이러하다.
백두산 거친 돌은 내 칼을 갈아 다 닳아 없애버릴 것이요 / 두만강 깊은 물은 내 말에게 다 먹여 말려버리리라!
사나이 갓 스물에 북방의 오랑캐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 훗날 역사에서 그 누가 나를 대장부라 부르리오!
무장들의 문학적 재능
명나라의 총병 척계광은 그 위대한 명성과 전공이 남들의 이목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시와 문장에도 몹시 능통하여 이창명 같은 문인 무리들이 크게 치켜세울 정도였다.
또한 명나라의 임회후 이언공(자는 유인) 역시 훌륭한 무장이면서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다. 그가 지은 다음과 같은 멋진 시구가 조선의 여러 사람 입에 널리 오르내리고 있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거센 밀물 소리를 끌어와 온 섬들이 떠들썩하고 / 붉게 지는 해에 비낀 돛배의 그림자는 이내 누대 위로 기어오르네.
신분과 속세를 뛰어넘은 승려 시인들
요즘 불교계의 스님 중에 시를 제대로 잘 짓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사명대사 휴정(유정 산인)은 당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아홉 스님(구승)의 시풍을 제대로 배워 그 시의 격조가 몹시 맑고 고고하였다.
또 행사 스님 역시 자못 훌륭한 시구를 지었는데, 그의 시 중에 "상서로운 오색구름이 찬란하게 얽혀 아롱지니, 결코 고사리나 캐 먹는 평범한 중이 아니로다"라는 기막힌 구절이 있다.
요즘에는 홍정이라는 스님이 또한 시를 잘 짓는다. 그가 다른 스님을 칭송하며 지은 <송승>이라는 시를 우리 둘째 형님(허봉)이 몹시 칭찬하셨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지난가을 우리가 아쉽게 헤어질 땐 강물 위로 붉은 단풍잎이 지더니 / 올해 또다시 작별하려니 봄 산 언덕으로 하얀 매화가 속절없이 지는구나.
강물결은 아득히 멀어지고 산 언덕은 시야를 가로막았는데 / 붉은 단풍잎, 흩날리는 하얀 매화 속에 겹겹이 쌓인 이 시름을 어이 달랠꼬.
(사명대사 유정의 호는 송운이다. 앞서 말한 행사 스님과 함께 일본에 국서를 들고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 두 스님의 훌륭한 시가 조선의 시집인 《기아》에 나란히 실려 있다.)
백대붕이라는 자는 본래 전함사(배를 관리하는 관청)에 속한 비천한 노비 출신인데, 훗날 스님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비록 출신은 천할지언정 시를 짓는 솜씨가 워낙 출중하였기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우리 둘째 형님(허봉)이나 승지 심희수 같은 당대의 고관대작들도 신분을 따지지 않고 그를 대등한 벗으로 예우하며 사귀었다.
백대붕이 지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쓸쓸한 가을 하늘엔 엷은 먹구름 그늘이 어리고 / 화악산 봉우리 그림자는 무겁게 침침해라.
이 시구를 우리 형님이 칭찬해 마지않으셨다. 백대붕은 훗날 나의 맏형(허성)을 따라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온 일도 있으며, 그가 남긴 아름다운 시가 무척이나 많다.
(심희수의 자는 백구, 호는 일송이며 청송 사람이다. 영의정을 지냈고 시호는 문정이다.)
글을 맺으며: 허균의 회한과 다짐
나는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엄한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위로 여러 형님들이 막내인 나를 너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신 나머지 차마 매질하며 다그치거나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 바람에 나는 천성이 게을러빠져서 어릴 적 독서에 매진하지 못했다.
차츰 머리가 굵어지자 남들이 과거 시험을 보는 것을 보고 그럴듯해 보여 덩달아 붓을 들고 과거를 보긴 했으나, 그저 남의 글귀나 베껴 겉치레나 하는 것은 결코 대장부가 할 짓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임진왜란이라는 끔찍하게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고 나니, 더러운 세상에 나아가 벼슬을 하겠다는 뜻은 내 마음속에서 이미 까맣게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다잡고 산속에 파묻혀 10년 동안 독서에만 매진하리라 작정해 보지만, 아아! 이 또한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과 문학에 대한 내 거친 생각들을 모아 《학산초담》 제1부를 지어 엮는다.
1593년(명나라 신종 21년, 조선 선조 26년 계사년) 10월, 연등제를 지내고 사흘 뒤에.
교산자(蛟山子, 허균의 호) 쓰다.
💡 [핵심 해설]
허균은 《학산초담》의 마지막 장에서 비천한 노비 출신의 승려, 이름 없는 무장들의 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하며 '예술 앞에서는 신분과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파격적이고 평등한 문학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속에서 세속적 출세의 덧없음을 깨닫고, 늦게나마 진정한 학문과 문학의 길로 정진하겠다는 애틋한 자기 고백으로 글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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