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록 제3권 · 한적
출처: 한정록 제3권, 한적
배경: 《한정록》은 허균이 만년에 벼슬에서 여러 차례 밀려나고 귀양살이를 거듭하면서, 예로부터 중국의 문인과 학자들이 한가로운 삶을 예찬하며 남긴 글과 시와 일화를 두루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세상과 뜻이 맞지 않아 곤경을 자주 겪으면서도 허균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산수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그의 소망을 옛사람들의 말을 빌려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권의 주제인 "한적"은 "한가하고 여유롭다"는 뜻으로, 두목·백거이·소옹·왕안석·소식·왕희지·도연명·이백·두보 같은 이름난 문인들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은자들까지 수십 명에 이르는 인물들의 말과 시와 일화를 통해 "한가로움"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참되게 누릴 수 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 준다.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는 즐거움, 벗과 술과 시를 나누는 즐거움, 낮잠을 즐기는 즐거움, 청풍명월을 값없이 누리는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무척 다채로워, 허균이 꿈꾸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가로움을 얻는다는 것
"한가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의 모양을 두고 이런 풀이가 있다. 어떤 이는 문틈으로 달빛이 비쳐 드는 모양이 바로 이 글자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글자를 문틈으로 햇빛이 비쳐 드는 모양의 글자와 같은 것으로 보아 왔지만, 읽는 소리만은 서로 다르게 쓰인 경우가 있었다.
아무튼 한가로움이란 누구에게나 얻기 어려운 것이다. 이를테면 두목(자는 목지)의 시에,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한가로움을 얻을 수 없으니 이 몸이 한가로운 나그네 되어 이 속에서 놀고 싶어라
라는 구절이 있다. 그는 이런 마음으로 오흥(지금의 중국 푸젠성 포성현 부근)에 "한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나 역시 본디 한가로움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정작 한가로운 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고 시를 짓고 술을 마련하거나 꽃나무를 가꾸고 새를 길들이는 일로 늘 바쁘다. 옛날 한악(자는 치요, 호는 옥산초인)의 시에,
벽에 그림 그리고 꽃 모종할 날짜를 속으로 헤아리고 술독을 씻으며 술 빚을 때를 먼저 짐작하네 한가로운 사람에게도 바쁜 일이 있다는 걸 알아다오 아침 일찍 비를 맞으며 어부를 찾아가노라
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나와 뜻이 같다고 하겠다. 《미공비급》
옛날 주돈이(자는 무숙)가 정호·정이 두 선생에게 "공자와 그 제자 안회가 즐기던 것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한번 찾아보라"고 한 적이 있다. 이에 정호는 마침내, 기수에서 몸을 씻고 무우에서 바람을 쐰 뒤 노래하며 돌아오겠다던 증점의 그 경지, 그리고 공자가 "나도 증점과 뜻이 같다"며 인정해 주었던 그 마음을 깨달았으니, 주돈이가 낸 이 화두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기만 하고 쏘지는 않은 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가르침과 같았다.
나는 이 가운데 담긴 뜻을 오직 소옹(자는 요부)만이 가장 깊이 음미했다고 본다. 그의 시집 《격양집》에,
세상에 다른 낙은 없고 무사한 낙을 가진 사람은 다만 이 한가로운 사람뿐인가 하노라
라 하였고, 또,
생각건대 이 속의 낙은 나만큼 온전히 누린 이가 없네
라 하였으니, 그는 뜬구름 같은 부귀와 도시락 밥 한 그릇, 표주박 물 한 잔으로 사는 가난한 선비의 살림을 대체 어떻게 보았던 것일까. 무릇 한가로움이란 구차스럽게 편안함만 좇는 것이 아니고, 자적함이란 제멋대로 구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 맑고 깨끗하여 티끌만 한 것도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을 우러러보고 굽어살핌에 어디를 간들 나의 즐거운 곳이 아니겠는가.
소옹은 병이 위중하여 임종이 가까워지자 대뜸 "시험 삼아 한번 죽어 보자"고 말했다. 이 말은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세상을 떠났다. 이는 죽고 사는 변화를 마치 아침이 지나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담담히 본 것이니, 그는 참으로 천고에 남을 풍류가다운 호걸이었다. 《지비록》
극초는 뜻이 고상하여 은거에 마음을 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때마다 선뜻 백만금에 이르는 자금과 함께 살 집까지 마련해 주곤 했는데, 대규(자는 안도)를 위해서는 섬계(지금의 중국 저장성 성저우 지역)에 매우 정갈한 집을 지어 주었다.
송나라 경력 연간에는 소옹이 낙양을 지나다가 그곳 산천과 풍속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그대로 눌러살 뜻을 품었다. 이에 가우 7년(1062년), 낙양윤으로 있던 왕선휘가 천궁사 서쪽, 천진교 남쪽에 있던 땅—오대 시대 절도사 안심기가 살던 옛터이자 곽숭도의 고향 집터였던 곳—에 세 칸짜리 집을 지어 소옹을 그리로 옮겨 살게 했다. 또 부필(한국공에 봉해졌다)이 문객 맹약을 시켜 그 집 맞은편에 동산 하나를 사서 소옹에게 주었는데, 그곳 역시 물과 돌, 꽃과 나무가 매우 아름다웠다.
내 뜻이야 감히 이런 옛 선현들에게 미칠 바 못 되지만, 육수성(호는 평천) 선생과 포우명, 동기창(자는 현재) 등이 나를 위해 각기 돈을 내어 소곤산 북쪽에 독서대를 지어 주었다. 그 언덕과 골짜기가 주변 봉우리와 못을 누르듯 자리 잡고 있어, 찾아오는 손님마다 더없는 절경이라고 일컬었다. 이에 내가 "임강선"이라는 노래 한 곡을 지었으니,
아름다운 북산 소나무 아래엔 바위들이 돌뿌리에 모여 있는데 그 곁에 정갈한 집 한 채 교묘히 세워졌네 그래도 처마 밑에 남은 땅이 있어 대나무와 오동나무를 심어 두고 한가로이 지내다가 손님이 찾아오면 죽순나물과 산나물에 막걸리를 나누다가 피곤해지면 학을 불러 춤추게 하고 취한 뒤에는 스님을 시켜 부축하게 하네
라 하였다. 《암서유사》
옛사람들의 한가로운 하루
백거이(자는 낙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작년 가을 처음으로 여산에서 노닐다가 동쪽 숲과 서쪽 숲 사이 향로봉 아래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보니, 구름과 물, 샘과 바위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가집 한 채를 지었다. 집 앞에는 큰 소나무 열 몇 그루와 대나무 천여 그루가 있고, 푸른 담쟁이덩굴이 담장을 대신하며 하얀 돌이 다리와 길이 되어 주었다. 흐르는 물은 초가집 아래를 휘돌고 솟아나는 샘물은 처마 위에서 떨어지며, 푸른 버드나무와 하얀 연꽃이 못가와 언덕에 줄지어 있다. 이곳의 경치가 이토록 아름다워, 나는 늘 혼자 찾아가 열흘 남짓씩 머물다 오곤 한다. 내가 한평생 좋아하는 것이 죄다 이곳에 있으니, 돌아가기를 잊을 뿐 아니라 아예 이곳에서 남은 생을 마쳐도 좋을 것 같다." 《백씨장경집》
진나라 원굉이 고을살이를 하던 시절, 시와 술로 자적하며 세상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아, 늘 채찍을 지팡이 삼아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면 유유히 돌아가는 것도 잊곤 했다. 마침 그 고을 남쪽 어느 집에 아름다운 대나무와 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원굉은 선뜻 걸어서 그 집을 찾아갔다. 주인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곧장 대숲으로 들어가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집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나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차와 의장 행렬이 뒤이어 들이닥치고 나서야 주인은 그가 다름 아닌 원굉임을 알아차렸다. 《하씨어림》
왕희지(자는 일소)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 동쪽 지방을 유람하고 돌아와 뽕나무를 심었더니 가지와 잎이 한창 무성하게 자랐다. 그래서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그 아래서 노닐며,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골고루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한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그것으로 족하고, 이따금 친지들과 모여 함께 마시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물론 이것이 흥겨운 토론이나 고상한 시구를 주고받으며 잔을 채우는 우아한 놀이는 못 되지만, 그래도 농사짓는 집안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손뼉 치고 즐길 거리는 될 것이니, 그 마음에 드는 즐거움을 어찌 다 말로 옮기겠는가." 《소창청기》
백거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늙어 가는 지금까지, 단 하루 이틀을 머무는 곳이라도 흙을 져다가 대를 쌓고 돌을 모아 산 모양을 만들고 물을 막아 못을 만들곤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여산의 신령스럽고 빼어난 경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침내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것을 얻은 셈이다. 앞으로 자유로운 몸이 되면 왼손으로는 처자식을 이끌고 오른손으로는 거문고와 책을 안은 채 여산으로 들어가 남은 생을 보내며 평생의 소원을 이루고 말겠다. 여산의 맑은 샘물과 하얀 바위도 내 이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소창청기》
사마광은 이렇게 말했다.
"정신과 몸이 피로할 때는 낚싯대를 드리워 고기를 낚거나,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약초를 캐거나, 도랑물을 끌어다 꽃밭에 물을 대거나, 도끼를 들어 대나무를 쪼개거나, 더위를 식히거나,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거나, 이리저리 한가로이 거닐며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면 좋다. 그러다 밝은 달이 때맞춰 떠오르고 맑은 바람이 절로 불어오면, 움직이든 멈추든 아무 거리낌이 없어 눈과 귀와 몸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니, 그저 고상하고 활기차기만 하여 이 하늘과 땅 사이에 또 무슨 즐거움이 이보다 나을지 모를 지경이 된다." 《소창청기》
왕안석(형국공에 봉해졌다)은 만년에 종산의 사공돈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곳이 종산과 성 안 중간쯤에 있다 하여 집 이름을 "반산정"이라 지었다.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면 으레 집에서 기르던 나귀를 타고 종산으로 가서 산길을 거닐었고, 피곤해지면 곧장 수풀 사이에 앉아 졸다가 이따금 해가 저물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은 종산까지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서 나귀를 돌려 오기도 했지만, 이런 일과를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소창청기》
소식(자는 자첨)은 황주와 영남 지방에서 지낼 때, 매일 일찍 일어나 손님들을 불러들여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반드시 자신이 손님들을 찾아가서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어울리던 이들도 말을 가리지 않고 마음껏 농담을 주고받으며 조금도 서먹함이 없었다. 말주변이 없는 사람에게는 억지로라도 귀신 이야기를 시켰는데, 이야기가 이치에 닿지 않으면 "그런 거짓말은 그만두라"고 놀려 대니, 듣던 사람들이 모두 배꼽을 잡고 웃어 대며 실컷 즐긴 뒤에야 자리를 파하곤 했다고 한다. 《미공비급》
소옹은 자신의 거처를 "안락와"라 이름 짓고 스스로를 "안락 선생"이라 불렀다. 매일 아침이면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오후 서너 시쯤 되면 술 서너 잔을 마시되 얼근해지면 그만두어 한 번도 취해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흥이 나면 그 자리에서 시를 지어 읊었고, 봄가을에는 이따금 성안으로 나가 노닐었으나 비바람이 치는 날에는 나가지 않았다. 밖에 나갈 때는 작은 수레를 사람 하나가 끌게 하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다녔다. 그래서 사대부의 집에서도 그의 수레 소리만 들리면 앞다투어 맞이하러 나왔고, 아이와 하인들까지 서로 "우리 집에 선생님이 오셨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인품이 순수하고 맑아 바라보는 사람마다 그 어짊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남과 거리를 두는 법이 없어, 여럿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눌 때도 종일토록 유별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의 좋은 점은 칭찬하고 나쁜 점은 감춰 주었으며, 학문을 묻는 이가 있으면 정성껏 대답해 주었다. 신분의 높고 낮음,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해 대하니, 어진 이는 그 덕행을 좋아하고 부족한 이조차 그 가르침에 감화되었다. 죽은 뒤에 "강절"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명신언행록》
손방의 호는 "사휴거사"이다. 황정견(호는 산곡)이 그 호의 뜻을 묻자 손방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거친 밥을 먹어도 배만 부르면 그만, 누더기 옷을 입어도 몸만 따뜻하면 그만, 그럭저럭 평온하게 지낼 만하면 그만, 탐욕과 시샘도 나이가 들면 그만—이 네 가지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황정견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안락의 비결이다. 무릇 욕심이 적으면 재앙을 피하는 집이 되고, 만족할 줄 알면 그 자체로 극락세계가 된다."
사휴거사의 집에는 세 마지기쯤 되는 동산이 있어 꽃과 나무가 무성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차를 달이고 술상을 내어, 세상 사는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차와 술이 다 식는 줄도 주인과 손님 모두 모를 지경이었다. 《옥호빙》
맑고 한가로운 마음을 이르는 말들
황진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흐려지지 않은 것을 맑음이라 하고,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숨어 삶이라 한다. 나는 노자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다. 아침저녁으로 잡곡밥 한 그릇과 나물국 한 사발이면 그것으로 흡족하고 편안하며, 학의 깃털로 지은 옷을 걸치고 《황정경》을 손에 든 채 초연히 앉아 있으면 세상의 온갖 자욱한 먼지도 내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어찌 맑음이 아니겠는가. 이름이 명예와 이익의 마당에 들지 않고 마음이 영예와 치욕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아, 들어와서는 안개와 노을을 벗 삼고 나가서는 어부와 나무꾼을 벗 삼는다면, 이것이 어찌 숨어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비록》
경야자는 이렇게 말했다.
"산이 깊어 숲이 무성하고 못이 기름져 물고기가 살졌으며, 송아지는 언덕에서 졸고 대숲은 그윽하고 골짜기는 깊다. 나무하는 아이는 숲에서 노래하고 어부는 못가에서 노래하며, 목동은 언덕에서 피리를 불고, 시골 사람들은 골짜기를 찾아 언덕을 오르내리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다가, 배불리 먹은 뒤에는 풍년을 기뻐하는 노래를 부른다.
나는 거문고 하나와 책 한 권에 붓 넣는 주머니를 메고 술병을 챙겨 마음 가는 대로 거닌다. 느낌이 오면 흔연히 시구를 얻고, 흥이 나서 술을 마실 때는 가고 머무는 것에 마음 쓰지 않는다. 지친 새들이 둥지를 찾아들고 흘러가던 구름이 골짜기에 멈추며,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달이 초가지붕 위로 떠올라 사방 벽이 고요하고 온 창문이 환해질 즈음이면, 취기를 타고 돌아오며 마음 편한 이 경지를 읊조리고 태곳적 사람처럼 누워 아무것도 없는 그 고을을 노닌다. 그러면 마침내 이것이 즐거운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지비록》
서면은 이렇게 말했다.
"볕 좋은 겨울날이나 그늘진 여름날, 그리고 계절이 좋아 경치가 아름다울 때면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나가 거닐며 스스로 즐긴다. 못가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막걸리 한 잔과 거문고 한 곡조로 몇 시간의 즐거움을 누리다 보면, 일생을 거의 이렇게 지낼 수 있다." 《지비록》
연독(자는 숙견)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사랑방에 앉았다가, 아침이 되면 태곳적 복희씨가 지었다는 《주역》과 순임금·우임금의 옛 가르침을 외우고, 주공이 마련한 예법과 공자의 《춘추》를 읽는다. 저녁이 되면 안마당 층계를 한가로이 거닐고 남쪽 난간에서 시를 읊다가, 틈틈이 제자백가의 글을 뒤적인다. 그러노라면 귀에 쟁쟁하고 눈이 황홀해지는 그 혼자만의 즐거움이 풍성하고 흐뭇하니, 이 경지의 즐거움이야말로 하늘이 나를 덮고 있다는 것도, 땅이 나를 싣고 있다는 것도, 세상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나에게 몸뚱이가 있다는 것조차도 잊게 만든다." 《저기실》
오징(호는 초려)은 이렇게 말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술동이가 비지 않고 부엌에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으며, 초가지붕이 새지 않고 무명옷을 늘 입을 수 있으며, 숲에서 나무하고 물에서 고기를 낚을 수만 있으면, 영화도 욕됨도 없이 그 즐거움이 넘쳐흐를 것이다. 이만하면 한평생 만족스러우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철경록》
방효유(호는 손지)는 이렇게 말했다.
"흙벽에 띠풀 처마, 깨진 항아리 주둥이로 낸 창문에 새끼줄로 단 문짝, 겨우 몸 하나 뉠 만한 작은 침상과 거적으로 만든 문—이런 곳에서 그저 나의 본뜻을 기를 뿐이다. 칡으로 짠 베옷에 갈대로 엮은 띠, 마른밥과 나물국처럼 거칠고 담박한 것으로 겨우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며 나의 본뜻을 기를 뿐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타고난 바탕대로 살아가되 바른 몸가짐과 바른 낯빛으로 지내며,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고 세상 이치와 어긋나지도 않게 나의 본뜻을 기를 뿐이다. 말은 그저 내 뜻을 드러내고 글은 그저 내 생각에 맞도록 하여, 오직 이치를 따름으로써 나의 본뜻을 기를 뿐이다." 《정학집》
오여필(호는 강재)은 이렇게 말했다.
"남쪽 난간에서 《맹자》를 읽을 때면, 사람이 아침마다 다시 얻는다는 맑고 밝은 기운을 논한 대목을 몹시 좋아하여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하늘이 활짝 갠 대낮, 훈훈한 바람이 슬슬 불어오고 산림이 고요할 때면 하늘과 땅이 저절로 넓어지고 해와 달이 저절로 한없이 커지는 듯하다. 소옹의 '마음이 고요해야 비로소 환한 해를 알 수 있고, 눈이 밝아야 비로소 푸른 하늘을 알 수 있다'는 말의 뜻을 바로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지비록》
진헌장(호는 백사)은 이렇게 말했다.
"주변 환경이 마음과 하나가 되고 기회가 뜻에 딱 들어맞아, 흔연히 쾌적해지고 태연히 편안해지면 바깥 사물과 나를 서로 잊게 될 것이니, 삶과 죽음이 어찌 서로 끼어들 수 있으랴. 이런 가운데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마음자리가 텅 비고 맑아지면 티끌만 한 것도 물들지 않고 겉치레가 모두 사라져 참됨을 얻게 될 것이요, 비파를 뜯고 거문고를 퉁기며 움직이고 멈추는 사이에 기운이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태곳적 세상에 노닌다면, 스스로 얻는 그 즐거움 또한 끝이 없을 것이다." 《지비록》
나륜(호는 일봉)은 이렇게 말했다.
"국화를 불러 벗으로 삼고 소나무를 사귀어 동지로 삼으며 고라니, 사슴과 어울려 한 무리가 된다면, 뜰과 회랑, 책상과 자리 사이로 산은 그 기이함을, 달은 그 깨끗함을, 안개와 노을은 그 변화무쌍함을 보여줄 것이니, 온 세상이 저마다의 장점을 나에게 다 내보여 줄 것이다." 《지비록》
유인(호는 남원)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나는 줄곧 한가로움만 탐하여 낮잠도 자지 않고 손님도 받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붓과 벼루도 가까이하지 않은 채, 접시꽃을 꺾고 무궁화를 구경하다가 혹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물을 바라보는 것으로 한가한 즐거움을 삼을 뿐이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 시를 지어 노래하는 일로 나를 수고롭게 하려 하는가. 시가란 실속도 없고 후세에 전할 가치도 없는 것이요, 또한 안개나 구름처럼 흩어져 버리고 마는 것인데, 어찌 세속과 어울려 시달리며 살겠는가." 《지비록》
축석림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공통으로 앓는 병은, 나이가 들수록 잔꾀와 계산만 깊어진다는 데 있다. 무릇 부싯돌 불꽃은 금세 꺼지고 황하는 수백 년에 한 번 맑아질까 말까 한다. 그러므로 세속에 몸담아 살든 세속을 떠나 숨어 살든, 모름지기 조화의 기미를 알아채고 멈출 줄 알아서 조화와 다투어 그 권한을 빼앗으려 하지 말고 조화의 몫은 조화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자손을 위해서는 복을 심어 그 복을 자손에게 물려준 뒤에는, 세상일 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고 눈앞의 맑고 깨끗한 일에나 마음을 두면 될 것이다.
꽃을 찾고 달을 벗하는 나들이에는 두셋이면 족하고, 차를 달이고 향을 피우는 몸가짐은 단아하면 그만이며, 모임에는 굳이 약속이 필요 없고 격식에는 겉치레가 필요 없으며, 시에는 기교가 필요 없고 바둑에는 승부가 필요 없다. 매사가 날로 간소해지기를 바라며 이 마음이 하늘과 더불어 노닐게 하여, 나이도 잊고 세월의 흐름도 잊어버린다면, 이 또한 티끌세상 속의 신선 세계요 이 땅 위의 정토라 할 것이다." 《지비록》
막시룡(자는 운경)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찍이 산속 절의 방 한 칸을 빌려 홀로 지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숲 안개가 막 걷히고 새소리가 요란하며, 바위 사이 문이 환해지고 구름 낀 산이 눈앞에서 일렁이는 듯한 사이로 산 위의 아지랑이가 걷히면서 자줏빛과 비취빛 기운이 머리맡까지 흘러내려 앉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는 마치 금방이라도 신선이 된 듯, 이 몸과 이 세상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명세설신어》
산속의 하루
당경(자는 자서)의 시에,
산이 고요하니 태곳적과 같고 해가 기니 소년 시절 같아라
라는 구절이 있다.
내 집이 산속에 있어 매년 늦봄에서 초여름이 되면, 섬돌에는 푸른 이끼가 끼고 오솔길에는 떨어진 꽃잎만 가득할 뿐 문밖에 찾아오는 이가 없다. 소나무 그림자는 여기저기 어지러이 드리우고 새소리는 위아래서 지저귄다. 이럴 때면 낮잠을 즐기다가 샘물을 길어 오고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차를 달여 마음 내키는 대로 마신다. 그러고는 《주역》, 《시경》의 국풍, 《좌전》, 굴원의 이소, 사마천의 글, 도잠과 두보의 시, 한유와 소식의 문장을 몇 편씩 읽다가, 조용히 산길을 거닐며 소나무와 대나무를 어루만지고 사슴 새끼나 송아지와 어울려 수풀 속을 뒹굴다가, 흐르는 시냇물에 장난치며 이를 닦고 발을 씻는다.
그러고 나서 발길을 돌려 대나무 창가에 이르면, 아내와 어린것이 차려 놓은 죽순나물과 고사리나물에 보리밥을 흔연히 배불리 먹는다. 그런 다음 대나무 창 아래 앉아 붓을 놀려 크고 작은 글씨를 수십 자 쓰고, 간직해 둔 필첩과 그림 두루마리를 펼쳐 마음껏 감상한다. 흥이 나면 짧은 시를 한 수 읊고 《학림옥로》의 한두 대목을 베껴 쓰기도 한다. 다시 차를 달여 한 잔 마신 뒤 시냇가를 거닐다가 우연히 동산지기 노인이나 시냇가 벗들을 만나면, 뽕과 삼밭의 사정을 묻고 벼농사 형편을 이야기하며 날씨를 헤아리고 절기를 꼽아 가며 실컷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지팡이를 짚고 사립문 앞에 이르면, 서산으로 지는 해가 온갖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하여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고, 목동은 피리를 불며 두셋씩 짝지어 돌아오는데 달은 눈앞의 시냇물에 비친다.
이쯤 되어 당경의 그 시구를 다시 음미해 보면 참으로 절묘하다 하겠다. 그러나 이 시구가 아무리 절묘한들 그 맛을 아는 이는 대개 드물다. 사냥개와 매를 앞세우고 명예와 이익의 마당에서 사냥이나 일삼는 자들은 말발굽에서 이는 먼지 속에 파묻혀 헛되이 세월만 보낼 뿐이니, 어찌 이 시구의 절묘함을 알겠는가. 사람이 참으로 이 절묘함을 안다면, 소식의,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 하루가 이틀의 값어치를 하니 만약 일흔 해를 산다면 곧 백마흔 해를 사는 셈이 되리
라는 시와 같은 경지에 이를 것이니, 그 얻는 바가 어찌 많지 않겠는가. 《학림옥로》
노닒과 잔치
낙양성 안팎 육칠십 리 사이에 있는 온갖 도관과 절, 옛 유적지와 별장 가운데 물과 바위, 꽃과 대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노닐어 보지 않은 곳이 없고, 좋은 술과 거문고가 있는 집이면 어디든 들러 보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그림과 책, 노래와 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구경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낙수 지방의 고을 원님으로부터 벼슬 없는 선비 집안에 이르기까지, 잔치를 벌인다며 부르는 이가 있으면 그때그때 찾아가곤 했다. 계절이 좋고 경치가 아름다울 때나 눈 내린 아침, 달 뜨는 저녁이면 늘 풍류를 즐기는 이들이 서로 찾아왔는데, 그럴 때면 반드시 먼저 술독을 꺼내어 마시고 그다음에는 시 상자를 열어 시를 읊으며, 술이 거나해지면 곧 거문고를 가져다가 곡조 하나를 타서 〈추사〉 한 편을 노래하곤 했다. 《옥호빙》
방 안에는 나무 걸상 넷, 흰 병풍 하나, 흰 칠을 한 거문고 한 대와 유교·도교·불교 경전을 각기 두어 권씩 갖추어 놓았다. 백거이가 그 방의 주인이 되어, 고개를 들어 산을 구경하고 허리를 굽혀 샘물 소리를 들으며 곁으로는 대나무와 나무, 구름 낀 바위를 살피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몹시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눈앞의 풍경에 마음이 이끌려 밖으로는 유유자적하고 안으로는 마음이 화평해져서, 하룻밤을 묵으면 몸이 편안해지고 이틀 밤을 지내면 마음마저 편안해지며, 사흘 밤을 지내고 나면 마치 술에 취한 듯 멍하니 정신이 아득해져서,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되어 버린다. 《옥호빙》
큰 소나무와 기이한 바위가 있는 이 외진 마을은 인가와 열댓 리에서 스무 리쯤 떨어져 있다. 아주 좁은 길을 따라 가파른 벼랑 밑으로 물을 건너가면, 풀숲 사이 좌우 두서너 군데에 두세 채의 인가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닭과 개 소리가 서로 들린다. 대나무 울타리를 두른 초가집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물가에는 난초와 국화를 심고 이따금 복숭아나무와 매화나무도 심어 두니, 서리 내린 밤과 봄바람 부는 날마다 생각에 여유가 생긴다.
아이종과 하인들은 모두 무명옷과 짧은 베옷을 입고 땔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 오는데, 그것으로 시골 술을 빚어 마신다. 책상 위에는 《장자》, 《사기》, 《초사》, 《황정경》, 《음부경》, 《능엄경》, 《원각경》 같은 잡서 수십 권이 놓여 있을 뿐이다.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나막신을 신고서 깊은 산골과 큰 시냇물 사이를 오가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소용돌이치는 여울을 구경하고 맑은 못을 감상하고 높은 다리 위를 거닐고 무성한 숲속에 앉아 보기도 하고 그윽한 골짜기를 찾아 나서고 높은 봉우리에 오르나니,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지 않고서야 어찌 죽을 수 있겠는가. 《징회록》
새가 지저귀고 꽃이 떨어질 때마다 내 마음은 흔연히 흡족해진다. 그럴 때면 어린 종을 보내어 항아리에 든 막걸리를 가져오게 하여 배꽃 무늬 도자기 잔에 따라 마시고는, 얼른 시집을 가져다가 한바탕 유쾌하게 읽고 음미한다. 그러면 흥취가 담박하고 상쾌하여 내가 세속에 있다는 것조차 잊게 된다. 《옥호빙》
낡은 초가집을 손보고 도랑을 터서 샘물을 끌어들이고 그 둘레에 꽃나무를 심어, 날마다 그 사이에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른다. 벗과 만나면 차를 달여 마시고 바둑을 두는데 방 안 여기저기 술잔이 널려 있으니, 그 즐거움은 자못 속세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래를 가져다가 시냇물을 끌어와 채마밭에 물을 대고, 그 틈새에 연못을 파고 둘레에는 나무를 심어, 거닐면서 노래하고 앉아서 낚시질하며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바라보고 이것으로 유유자적하니, 이 또한 아무 근심 없이 남은 삶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옥호빙》
한가하게 사는 것이 벼슬살이보다 훨씬 낫다. 그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편한 것은 특히 무더운 계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침 일찍 향을 피우고 밥을 먹은 뒤, 두건을 벗고 윗옷과 아랫도리, 짚신까지 죄다 벗어던지고는 등나무 침상과 대나무 안석에 몸을 기대어 북쪽 창 아래서 이리저리 뒤척인다. 맑은 바람이 이따금 불어오면 오히려 너무 서늘하다고 투덜대다가, 책을 끼고 자리에 누우면 이내 깊이 잠든다.
서늘한 저녁이 되면 목욕을 마치고 지팡이를 짚고 이곳저곳을 천천히 거닐며 연못가에서 달을 구경하고 높은 곳에 올라 바람을 쐰다. 연꽃을 따고 가시연밥을 거두어, 쪼갠 오이와 하얀 연뿌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 서너 잔을 마시고는 거나하게 취해 유유자적하니, 그 즐거움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경서당잡지》
이름난 명산에는 자리 잡고 살 수 없으니, 작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이고 숲이 무성한 곳으로 나아가 땅 두어 이랑을 일구어 삼간초가집을 짓는다. 무궁화나무를 꽂아 울타리를 삼고 띠풀을 엮어 정자를 짓고, 한 이랑에는 대나무를 심고 또 한 이랑에는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또 한 이랑에는 오이와 채소를 심는다. 이리하여 사방 벽은 말끔히 비워 두고, 산에서 부리는 아이를 시켜 채마밭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게 한다.
정자 아래에는 의자 한두 개를 놓아두고 책과 벼루를 곁에 두어 외로움을 벗 삼으며, 거문고와 바둑판을 가져다 좋은 벗을 붙잡아 두고, 이른 새벽에는 말을 몰고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야 돌아온다면, 이 또한 노년을 즐길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미공비급》
이웃과 벗
예로부터 초야에 한가로이 묻혀 사는 선비치고는 반드시 그와 뜻과 도를 함께하는 벗이 있어 서로 오가며 스스로 즐길 수 있었다. 도연명의 시에,
옛날 남촌에 살고자 한 것은 좋은 집터를 고르려던 것이 아니라 마음씨 고결한 이들이 많다기에 아침저녁으로 그들과 즐기려 함이었네
라 하였고, 또,
이웃 마을 사람들과 이따금 오가며 마주 앉아 옛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글은 함께 감상하고 의심나는 대목은 함께 따져 보았지
라 하였으니, 그가 말한 남촌의 이웃이 어찌 평범한 선비들이었겠는가.
두보(호는 소릉)가 성도의 금리 땅에 있을 때도 남촌의 주씨 성을 가진 은자와 오가며 시를 지었는데,
금리 선생은 검은 각건을 쓰고 밤이면 토란을 거두니 그리 가난하지만도 않구려 자주 찾아오는 손님에 아이들이 반기고 뜰에서 먹이를 받아먹어 새들도 길이 들었네 가을 물은 겨우 네댓 자쯤 불었는데 들에 매인 배는 꼭 두세 사람 탈 만하네 흰 모래 푸른 대숲의 강마을이 저물어 가는데 서로 배웅하는 사립문에 달빛이 새롭구나
라 하였고, 또,
서로 가까이 살아도 대숲은 들쭉날쭉하고 서로 오가면서도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네 그윽한 꽃은 기울어 길에 가득하고 들판의 물은 가늘게 못으로 흘러드네 돌아가는 손님의 마을이 멀지 않으니 남은 술잔을 자리 옮겨 다시 나누세 그대는 도를 아는 기운이 많으니 앞으로는 자주 찾아와 모시리다
라 하였으니, 이른바 주씨 성의 은자란 이는 참으로 예사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이백(자는 태백)이 "노성 북쪽에 사는 범 거사를 찾아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창이 가운데 떨어지고 말았다"는 시에는,
문득 생각나는 범씨 은자여 한가한 동산에서 그윽한 풍치를 기르겠지
라 하였고, 또,
서너 잔 술을 거뜬히 들이켜고 스스로 맹호사를 읊조리네 가까이는 열흘의 즐거움을 함께했지만 멀리는 천 년의 약속을 맺었다오 풍류가 참으로 호탕하니 서로 농지거리하기에 꼭 알맞구나
라 하였으니, 이른바 그 범씨 은자라는 이도 참으로 보통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학림옥로》
값없이 누리는 청풍명월
향을 피우고 책을 보고 나면 사람이 할 일은 다 끝난 셈이다. 주렴 밖에 꽃잎이 떨어지고 소나무 끝에 달이 떠오를 즈음 문득 종소리가 들려오면, 창문을 밀어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은하수와 뜬구름이 대낮보다 훨씬 밝게 빛난다. 마음을 맑게 씻어 세상 이치를 훌쩍 뛰어넘어 스스로 만족을 얻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혼자서는 깨닫기 어려울 것이다. 《소창청기》
이백의 시에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단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얻는다"는 구절이 있는데, 소식의 〈적벽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빛이 되는구나. 가져도 막을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조물주가 마련해 둔 다함없는 곳간이다."
소식의 이 뜻은 대개 이백의 시구에서 나온 것이다. 무릇 바람과 달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닐뿐더러, 가져도 누가 막을 사람이 없으니, 이백과 소식의 말이 참으로 옳다. 그러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뜨는 날도 한 해 가운데 며칠 되지 않는다. 설령 어떤 사람이 이 즐거움을 안다 해도, 세속의 일에 골몰하여 정신을 빼앗기거나 이런저런 걸림돌 때문에 즐기고 싶어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아무 일 없이 한가롭게 지내면서, 돈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가져도 누가 막을 이도 없는 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만나고도 즐길 줄 모른다면, 이는 스스로 자기 앞을 가로막은 것이나 다름없다. 《경서당잡지》
집에는 뽕나무와 삼이 자라고 밭에는 메벼와 찰벼가 있으며 물가에는 버드나무와 연꽃이 있다. 높은 하늘에는 활을 쏘아 낮게 높게 나는 물오리와 기러기를 쫓고, 깊은 물에는 낚싯줄을 던져 헤엄치는 상어와 다랑어를 쫓으니, 이는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림을 꾸려 마음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바이다.
쉬고 싶으면 높은 나무의 무성한 그늘이 있고, 앉고 싶으면 우거진 풀의 그윽한 향기가 있다. 산에 올라 구름을 헤치며 하늘과 땅의 신비한 변화를 구경하고, 샘물을 희롱하며 달빛을 밟고 걸어 마음속 혼탁한 먼지를 말끔히 씻어 내니, 이런 일들은 내가 무료할 때 스스로 뜻을 이루며 즐기는 바이다. 《옥호빙》
눈과 귀를 맑게 비워 부질없는 장치를 두지 않고, 마음은 편안하고 몸은 활달하게 쭉 펴이기를 바랄 뿐이다. 한밤중이면 잠들고 이른 아침이면 일어나, 고요한 집 밝은 창 아래 경전과 역사책, 거문고와 술동이를 죽 늘어놓고 스스로 즐기다가, 흥이 나면 작은 배를 띄워 물가를 돌며 소리 내어 시를 읊고, 강산 사이를 다니며 옛 자취를 찾아보고 회상한다. 차와 술은 시름을 풀기에 족하고 순채와 쌀밥과 물고기와 게는 입에 맞기에 족하며, 게다가 덕 높은 승려와 숨어 사는 은자, 이름난 절과 빼어난 경치도 많다. 집에는 동산이 있어 진기한 꽃과 기이한 돌, 굽이진 연못과 높다란 누각, 물고기와 새가 있으니, 그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겨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를 지경이다. 《옥호빙》
어떤 선비가 몹시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마다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는데 날이 갈수록 그 정성이 더욱 지극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공중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상제께서 너의 정성을 아시고 나를 시켜 네가 바라는 바를 물어보라 하셨다."
선비가 대답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지 감히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라건대 이 한평생 먹고사는 것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를 유유자적하다가 죽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러자 공중에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하늘 세계 신선들의 즐거움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부귀를 구한다면 그것은 이루어 줄 수 있다."
이 말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다. 내가 보건대, 세상에 가난한 자는 굶주림과 추위에 울부짖고 부귀한 자는 또 명예와 이익에 쫓겨 한평생을 그것에 골몰한다. 이로써 알 수 있으니, 먹고사는 것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를 유유자적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인간 세상의 극락이건만, 하늘이 몹시 아끼는 것이라 사람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에서 도시락 밥 한 그릇과 표주박 물 한 잔으로 살아가더라도, 고요히 방 안에 앉아 천고의 어진 이들을 벗 삼는다면 그 즐거움이 또한 어떠하겠는가. 즐거움이 어찌 반드시 산수 사이에만 있겠는가. 《금뢰자》
낮잠 예찬
배불리 먹고 느긋하게 거닐다 막 잠에서 깨니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아이가 달여 오네 두건을 벗고 비스듬히 승상에 걸터앉으니 바람이 귓가로 물소리를 실어 오는구나
이것은 배도(진국공에 봉해졌다)의 시이고,
잔글씨는 늙은이가 읽기에 힘겹고 긴 평상은 깊이 잠들기에 딱 좋구려 평상을 가져다가 한번 쉬려고 책을 내던지니 다시 소년이 된 듯하네
이것은 왕안석(호는 반산옹)의 시이며,
포단 위에 마주 앉아 조는 맛이 진진하니 주인과 손님 둘 다 서로를 잊었네 잠깐 사이 손님은 가고 주인은 잠에서 깨니 서쪽 창 한편에 석양빛이 저물었구나
이것은 육유(호는 방옹)의 시이고,
글을 읽자니 눈두덩이 무겁고 잠자리에 드니 뼈마디가 편안하구나 자느라 날이 이른지 저문지도 몰랐는데 서쪽 창에 남은 햇빛 이미 얼마 없구나
이것은 오나라의 승려 유규의 시이며,
늙어서 글을 읽으면 흥이 쉬이 사그라드니 병을 다스리는 데는 한가로움이 으뜸임을 알아야 하네 대나무 평상, 돌베개로 텅 빈 마루에 누워 강 남쪽 비 갠 뒤의 산을 건너다보네
이것은 여희철(형양군공에 봉해졌다)의 시이고,
종이 병풍, 돌베개, 대나무 평상에 게으르게 책을 던지고 낮잠을 즐기네 잠에서 깨어 빙그레 홀로 웃노니 어부의 피리 소리가 창랑에서 들려오네
이것은 채확(자는 지정)의 시이다.
나는 게으름 피우는 것이 버릇이 되어, 책을 대할 때마다 반드시 누워서 쉬곤 한다. 그래서 낮잠 잔다고 놀리는 손님이 있으면 나는 곧잘 후한 시대 변소(자는 효선)의 옛이야기를 끌어와 스스로를 변호하곤 한다. 변소는 학식으로 이름 높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제자에게 "뚱뚱한 배로 글은 읽지 않고 잠만 잔다"고 놀림을 받았다. 그러자 변소는 태연히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내 이 뚱뚱한 배는 온갖 경전을 담은 상자요, 잠을 자는 것은 그 경전의 뜻을 새기려는 것이다. 잠잘 때는 주공과 서로 만나고, 깨어 있을 때는 공자와 뜻을 같이한다."
하지만 나는 매번 베개가 뜨거워지는 것이 괴로워 두어 번씩 엎치락뒤치락한다. 뒷날 옛사람의 말을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왕안석(형국공에 봉해졌다)이 낮잠을 즐겼는데, 여름철에도 늘 네모난 베개를 썼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왕안석이 답하기를, '오래 졸다 보면 몸에서 훈김이 올라 베개가 뜨거워지는데, 그럴 때 얼른 서늘한 쪽으로 바꿔 베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이는 참으로 낮잠 자는 맛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계신잡지》
꽃과 대나무 우거진 그윽한 창가에서 낮잠에 든 꿈이 무르익으니 이 가운데서 잠시 세상과 서로 잊었노라 화산에 숨어 사는 그 은자를 만나게 된다면 신선 되는 비법일랑 그만두고 잘 자는 비법이나 물어보리
라는 시가 있으니, 그렇다면 잠자는 데도 나름의 법도가 있는 셈인가. 진단(별호는 희이)이 남긴 말은, 결국 세상 모든 사람이 혼과 정신을 저마다 다른 곳에 두지 말고 하나로 가만히 모으라는 것일 뿐이다. 그가 남긴 가르침에는 이런 말이 있다. "번뇌라는 독사가 네 마음속에 들어 있으니, 그 독사를 몰아내야만 비로소 편안히 잠들 수 있다."
근래에는 채원정(호는 서산, 자는 계통)이 남긴 잠자는 비결에 이런 말이 있다.
"졸음이 오면 몸이 절로 기울어 굽고, 잠에서 깨면 몸이 절로 곧게 펴진다.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는 것을 때에 맞추어 하되, 먼저 마음을 재운 뒤에야 깊이 잠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주희(호는 회옹)는 "이것이야말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묘리다"라고 평했다.
초여름 동산에서 살랑이는 바람에 술기운이 깨면, 마음 내키는 대로 이끼를 쓸어 내고 돌 위에 앉아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는다. 대나무 그늘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고 오동나무 그림자는 구름 위로 뻗어 오른다. 이럴 때 잠시 서궤에 기대어, 눈에 담아 둔 시의 정취를 이리저리 다듬어 문장으로 지어내면 그것으로도 운치 있는 노래가 될 것이요, 붓을 들어 동산의 노래—진나라 사안이 대나무 우거진 동산에 은거하며 자손들과 함께 시모임을 갖던 그 풍류를 본뜬 시—를 지어 보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하늘이 내는 맑은 소리가 시원하게 터져 나오고 학 울음소리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뭉게뭉게 뜬구름이 누각에 와 부딪고 일천 산봉우리에 비가 내릴 때, 침상에 들어 낮잠을 청하면 상쾌하고 그윽한 꿈이 또한 나름의 운치를 얻을 것이다. 《소창청기》
산속의 뱃놀이
얼룩무늬 대나무 숲 가운데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푸른 돌로 만든 안석에 몸을 기대고서, 지니고 있는 도교와 불교의 책을 어떤 때는 몇 글자 대조해 보고 어떤 때는 한두 장 외워 본다. 차는 그리 곱게 우리지 못했어도 찻잔은 늘 마르지 않고, 향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어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탄다. 짧은 거문고는 곡조는 없어도 줄은 있고, 긴 노래는 가락은 없어도 소리는 있으니, 격앙된 기운이 숲 그늘 사이로 터져 나오고 좋은 바람이 물가로 불어온다. 이쯤 되면 태곳적 옛사람이 아니라면 필시 완적의 형제뻘은 될 것이다. 《암서유사》
산속에 머물러 살면서도 모름지기 붉은 난간에 푸른 휘장을 두르고 밝은 격자창을 낸 작은 돛단배 한 척쯤은 갖추어 두어야 한다. 그 배 안에 그림과 책, 옛 청동 제기, 술과 안주, 차와 육포를 두루 실어 놓고, 가까이는 산봉우리와 못가에서 그치고 멀리는 북으로 경구, 남으로 전당까지 나아가되, 바람이 알맞고 길이 순조로우면 그길로 옛 벗을 찾아가면 된다. 혹 그 벗이 붙잡거든 하룻밤 이야기를 나누거나 열흘쯤 술을 마시는 것도 무방하다.
또한 아름다운 산수를 만나거나 덕 높은 승려와 초야에 묻힌 은자의 집을 만나, 대나무와 나무가 무성하고 풀과 꽃이 서로 어우러진 그 자리에서 두건 쓰고 나막신 신은 이들과 서로 마주 앉아, 맑고 시원한 풍광 아래 물과 달이 텅 비고 맑은 가운데 쇠피리 한 가락에 흰 갈매기가 너울너울 춤추려는 그 광경을 구경한다면, 이 또한 시끄러운 속세를 피하고 손님을 사절하는 좋은 방책이 될 것이다.
한정록 제4권 · 퇴휴
출처: 한정록 제4권, 퇴휴
배경: 한정록은 허균이 직접 지은 책이 아니라, 명나라에 사신으로 오가면서 사 모은 수천 권의 중국 책 가운데서 세상을 등지고 한가로이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와 글을 뽑아 엮은 책이다. 은둔, 고일, 한적, 퇴휴, 유흥 등 열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네 번째 항목인 '퇴휴'는 벼슬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 제때 물러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전국 시대부터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인물들이 벼슬에서 물러난 사연과 그들이 남긴 시문이 대략 시대순으로 실려 있으며, 각 이야기 끝에는 허균이 그 글을 뽑아 온 원래 책의 이름을 밝혀 두었다.
일러두기: 이 권에 실린 이야기는 허균이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중국 책에서 그대로 뽑아 온 것이므로, 이야기 끝에 적힌 책 이름은 허균이 인용한 원래의 출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인물의 자나 호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에서는 되도록 본이름을 앞세우고 자나 호는 괄호 안에 풀어서 밝혔다. 이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 기존 국역본을 참고하여, 그 뜻을 오늘의 쉬운 한글 문장으로 다시 옮긴 것이다.
우구자 — 스스로 죄를 청하며 인재를 천거하다
초나라 재상 우구자가 장왕에게 아뢰었다. "신이 재상 자리에 있은 지 십 년입니다. 그런데도 나라가 더 잘 다스려지지도 않았고 송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어진 이들의 앞길을 막았고, 자리만 차지한 채 녹봉을 받아먹었으니 이는 끝없이 탐욕을 부린 것입니다. 신의 죄를 다스려 주십시오. 신이 사사로이 숙손오라는 나라의 인재를 천거합니다. 그는 몸은 약하지만 재능이 많고 성품에 욕심이 전혀 없습니다. 왕께서 그를 기용하여 정사를 맡기신다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녹봉과 지위를 지키는 것은 탐욕이요, 어진 이를 추천하지 않는 것은 임금을 속이는 것이요,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은 청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는 불충입니다.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충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사직을 청합니다."
장왕이 이를 허락하고, 우구자에게 한 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쓰도록 삼백 호를 내리며 국로(나라의 원로)라 불렀다. — 《패사휘편》에서
(용어) 숙손오는 초나라의 명재상 손숙오를 가리킨다. 우구자의 추천으로 등용되어 훗날 초 장왕을 패자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범여와 장자방 — 공을 이루고 미련 없이 떠나다
예로부터 호걸들은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고 위기를 안정시켜 왔다. 그러나 대체로 공을 세우는 데 뜻을 두지 않고 하는 것이 고상한 법이다. 하·은·주 삼대 인물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이후로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범여는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나서 조각배를 타고 오호로 떠나갔고, 장자방(장량)은 진나라와 항우를 무너뜨리고 나서 신선 적송자를 따라 표연히 떠나갔으니, 이들은 모두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 인물들 가운데서도 월등히 뛰어난 이들이라 하겠다.
좌태충은 이런 시를 지었다.
공을 이루고도 상을 받지 않은 채 길게 읍하고 전원으로 돌아갔네
이백은 이런 시를 지었다.
일을 마치자 분연히 옷을 떨치고 떠나 몸과 이름을 깊이 감추었네
이 시들을 보아도 그들의 사람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패사휘편》에서
(용어) 범여는 춘추 시대 월나라의 책사로,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벼슬을 버리고 떠나 장사로 큰 부자가 되었다. 장량(자는 자방)은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진나라와 항우를 무너뜨린 최고의 공신인데, 천하가 평정되자 스스로 물러나 신선술을 익혔다고 전한다. 적송자는 전설 속의 신선이다. 좌태충(좌사)은 서진 시대의 문인이다.
범여가 월나라를 떠난 뒤로는 다시 벼슬한 일이 없는데도, 황동발(황진)은 이렇게 말했다. "범여는 공을 이루고 물러난 다음 제나라와 초나라로 옮겨 다니면서 다시 천하에 이름을 드러냈으니, 그의 재주와 식견은 춘추 전국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났다. 그때 재산을 크게 일으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산림에 숨어 지냈다면 참으로 도를 아는 선비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춘추 전국 오백 년 동안 끝까지 공명을 지켜낸 사람은 범여 한 사람뿐이다."
장맹담 역시 조양자를 도와 지백을 멸망시킨 뒤 벼슬을 버리고 부친(지명)이라는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았으니, 배를 타고 오호로 떠나간 범여와 풍모가 같다고 하겠다. — 《금뢰자》에서
(용어) 지백은 춘추 말기 진나라의 권력자였는데, 조·한·위 세 가문에게 멸망당했다. 장맹담은 이때 조양자를 도운 책사다.
안촉 — 다듬지 않은 옥으로 남겠다
안촉이 제 선왕을 뵈었는데, 선왕이 말했다. "안 선생이 과인 곁에 머물러 준다면, 음식은 반드시 소·양·돼지를 갖춘 성대한 상을 차려 드리고 출타할 때는 반드시 수레를 타게 하며 처자식에게는 아름다운 옷을 마련해 드리겠소." 안촉이 이를 사양하며 떠나면서 아뢰었다.
"무릇 다듬지 않은 옥은 산에서 나는 것인데, 다듬으려면 깨뜨려야 합니다. 다듬어 놓은 옥이 보배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미 옥이 본래 지녔던 모습이 아닙니다. 선비가 초야에서 태어나 추천을 받아 등용되면 녹봉을 받게 되니, 존귀한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본디 타고난 몸과 마음은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때가 지나서야 밥을 먹으면 거친 음식도 고기 맛과 같고, 천천히 자유롭게 거닐면 수레를 탄 것보다 낫고, 아무 죄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귀한 것이니, 맑고 곧은 마음으로 스스로를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부디 신에게 내리신 봉읍과 집을 거두어 주시고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는 두 번 절한 뒤 떠나갔다.
훗날 사람들은 이를 두고 말했다. "안촉은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맑고 곧은 삶으로 돌아가 다듬지 않은 옥의 본모습으로 돌아가면, 평생토록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 법이다." — 《전국책》에서
장자방 — 세 치 혀로 이룬 일, 이제는 신선을 따라
장자방(장량)이 말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한나라의 정승을 지내왔다. 한나라가 멸망하자 나는 만금의 돈을 아끼지 않고 한나라를 위해 강대한 진나라에 보복을 가했다. 그리하여 온 천하가 발칵 뒤집혔다.
이제 세 치 혀를 놀려 황제의 스승이 되고, 봉읍이 만 호에 이르고, 지위가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이는 평민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니, 나로서도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래서 이제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신선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을 뿐이다." — 《사기》 유후세가에서
소광과 소수 —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면한다
태부 소광이 조카인 소부 소수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면할 수 있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한다. 이제 벼슬이 이천 석에 이르렀으니 지위와 명예를 이룬 셈이다. 이때 떠나지 않으면 후회가 생길까 염려스럽다."
숙질이 함께 상소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청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고 황금 스무 근을 내려 주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소광은 그 황금을 팔아 잔치를 베풀고 친척과 친구와 손님들을 초청하여 함께 즐겼다. 어떤 사람이 소광에게 그 황금으로 자손을 위한 재산을 마련해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소광이 답했다. "내가 늙은 몸으로 어찌 자손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 있는 밭만 가지고도 자손들이 부지런히 일한다면 남들만큼 먹고살 수 있다. 그런데 밭을 더 사 주어 남아도는 재물을 갖게 하면, 이는 자손들에게 게으름만 가르치는 셈이 된다. 어질면서 재물이 많으면 자신의 뜻을 상하게 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자신의 허물을 더하게 되는 법이다. 게다가 부자는 사람들의 원망을 사기 마련이다. 내가 이미 자손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는데, 그들에게 허물까지 더하게 하고 남의 원망까지 받게 하고 싶지 않다." 친척들이 이 말에 감복했다. — 《한서》 소광전에서
사등 — 난세에는 귀해도 가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등은 천하에 병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는 군수가 찾아와도 만나지 않았다. 사등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난세를 만나면 귀한 처지에 있더라도 능히 빈천하게 살 수 있어야 죽음을 면할 수 있다." 그러고는 집안의 재산을 모두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뒤로는 채소밭이나 가꾸고 책을 읽으며 담담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자사 장비가 그를 불러 부의 사마로 삼으려 했으나 사양하며 말했다. "문을 한번 닫았으면 그만이지, 다시 열 수야 있겠습니까." 예전에 마복파(마원)가 "부귀했다가도 다시 빈천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사등이 "귀한 처지라도 능히 빈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말과 뜻이 같다. — 《금뢰자》에서
(용어) 마원은 후한의 명장으로, 별명이 복파장군이다.
전예 — 일흔 살에 물러나지 않으면 죄인이다
전예가 위나라에 벼슬하여 남양 태수로 승진했다. 여러 번 사직을 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이렇게 말했다. "나이 일흔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통행금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쉬지 않고 밤길을 다니는 것과 같으니, 이는 죄인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 《하씨어림》에서
장한 — 가을바람에 고향의 순채국이 그리워
제왕 경이 장한을 불러 동조연 벼슬에 임명하니, 장한이 같은 고을 사람 고영에게 말했다. "천하의 혼란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무릇 온 세상에 이름이 난 사람은 물러나기가 참으로 어려운 법입니다. 나는 본디 산림에 살던 사람이라 세상에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대는 일이 생기기 전에 현명하게 막고, 일이 생긴 뒤에는 슬기롭게 대처하십시오." 고영이 장한의 손을 잡고 서글피 말했다. "나도 그대와 함께 남산의 고사리를 캐고 삼강의 물을 마시겠습니다."
장한은 낙양에 있을 때 마침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 문득 고향 오중 지방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말했다. "인생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귀한 법이다. 무엇 때문에 벼슬에 얽매여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성과 벼슬을 좇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남산의 고사리와 삼강의 물, 오중 지방의 순채국과 농어회라는 말에서 산림에 묻혀 사는 맑은 풍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 《문기유림》에서
도잠과 가경흥 — 오두미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야
진나라 도잠이 팽택 현령으로 부임한 지 팔십여 일 만에 군에서 감찰관인 독우를 파견했다. 독우가 도착하자 아전들이 "마땅히 정장을 하고 독우를 뵈어야 합니다" 하니, 도잠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어찌 쌀 다섯 말 남짓한 봉록 때문에 시골의 어린 관리에게 허리를 굽힐 수 있겠는가!" 하고는 그날로 벼슬의 인장과 끈을 풀어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위의 가경흥 역시 은거하며 벼슬하지 않았다. 그는 늘 자기 무릎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노니, 그것은 고관에게 무릎 꿇어 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릎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말은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는 말과 짝이 될 만하다. — 《문기유림》에서
(용어) 도잠(자는 연명, 또는 도연명)은 동진의 시인으로,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은거하며 지은 시로 유명하다. "오두미(다섯 말 쌀)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이 일화는 훗날 관직에 얽매이지 않는 선비 정신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고사가 되었다.
도계직 — 이천 석이면 소원은 이루었다
양나라 황문 벼슬의 도계직이 일찍이 탄식했다. "벼슬이 이천 석에 이르렀으니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에 더는 오래 간여하고 싶지 않다." 하고는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 《하씨어림》에서
잠문본과 왕희 — 축하가 아니라 조문을 받아야 할 일
당나라 잠문본이 중서령에 임명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잠문본이 답했다. "저는 나라를 세운 공신도 아닌데, 외람되이 은총을 입어 높은 자리에 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것입니다." 친한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하자 그는 말했다. "저는 조문을 받아야지 축하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북제 숙종이 왕희를 시랑에 임명했으나 왕희는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왕희에게 스스로 소외당하는 일은 할 필요 없다고 권하니, 왕희가 답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요직에 있는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젊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치고 낭패를 당하지 않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게다가 제 성품은 실제로 치밀하지도 민첩하지도 못해서 당장의 일들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또 임금의 사사로운 은혜를 어떻게 오래도록 보장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쩌다 한번 낭패를 당하면 물러가려 해도 물러갈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요직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는 것뿐입니다." — 《문기유림》에서
이일지 — 분수에 지나친 자리는 이미 족하다
이일지가 형부 상서로 있으면서 자주 사직을 청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했다. 그는 사직을 청하려 할 때 집안사람과 상의조차 하지 않았었다. 허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즉시 짐을 꾸리니, 아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집안 살림이 텅 비었는데 왜 이리 갑작스레 사직하셨습니까?" 이일지가 답했다. "벼슬이 형부 상서에 이르렀으면 이미 내 분수에 지나친 것이오. 사람에게 어찌 끝이 있을 수 있겠소." 벼슬을 버린 뒤로는 농사일은 돌보지 않고 정자와 연못을 꾸미며 손님을 초청해 함께 즐기기만 했다. — 《저기실》에서
우완이 사공 벼슬로 승진하게 되자 굳이 사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명되고 나서 탄식하며 손님들에게 말했다. "내가 삼공이 되었다는 것은 천하에 인재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칭찬해 마지않았다.
당나라 정계가 동평장사(재상급 벼슬)에 임명되었다. 임명장이 내리자 정계가 말했다. "천하 사람들이 웃을 것이다." 집무를 시작하면서는 친척들에게 "헐후정오(뒷말을 흐리는 정씨네 다섯째)가 재상이 되었으니, 요즘 시국이 어떤지 알 만하지 않은가" 했는데, 겨우 석 달 만에 병을 핑계로 사직하여 은퇴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변변찮은 재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훌륭하지 않겠는가. — 《독서경》에서
(용어) "헐후"란 말끝을 흐려 본뜻을 숨기고 말하지 않는 말투를 가리킨다. 정계가 우스갯소리를 잘하면서 이런 말투를 즐겨 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헐후정오"라 불렀다.
하지장 — 황제가 손수 지어 보낸 송별시
당나라 명황(현종) 때 하지장이 나이 여든여섯에 표를 올려, 고향으로 돌아가 도사가 되기를 청했다. 명황이 이를 허락하고 저택을 내려 도관을 짓게 하고는 '천추관'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으며, 감호의 섬수 한 굽이도 내려 주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동문 밖에 장막을 치게 하고 모든 관원을 이끌고 가서 전별연을 베풀었다. 이때 황제가 손수 지은 시를 내렸다.
영화를 버리고 도를 닦으려 늙었다 핑계 대며 벼슬을 벗는구나 내 어찌 그대의 현명함을 아끼지 않으랴만 그대의 높은 뜻을 이뤄 주는 것만 하겠는가 천지간에 깊은 비결을 얻었으니 속세 밖에서 그윽한 회포를 풀리라 동문 밖에서 홀로 전별연을 베푸니 뭇 신하들이 그지없이 슬퍼하는구나
— 《사문유취》에서
위표 — 흰머리 자르고 젊은이들 틈에 낄 필요가 있으랴
위표를 불러 어사에 임명하니, 그는 가려던 길을 멈추고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벼슬과 봉록이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누구나 탐내는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 쉰에 거울을 보며 흰 머리카락을 잘라 가면서까지, 외람되이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벼슬 한 자리를 얻어 본들 무슨 맛이 있겠는가. 앞으로는 소나무와 국화의 주인이 되어 도연명(도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 《사문유취》에서
사공도와 공규 — 쉬어야 할 세 가지 이유
당나라 사공도가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중조산에 살면서 정자를 짓고 '삼의휴'라 이름 붙였다. 이는 첫째로 재능을 헤아려 보아도 쉬어야 하고, 둘째로 분수를 헤아려 보아도 쉬어야 하고, 셋째로 늙어 눈마저 어두워졌으니 쉬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나라 목종 때 공규가 늙었다는 이유로 물러나기를 청했다. 한유가 말했다. "공은 별다른 재산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시오?" 공규가 답했다. "나는 나이로 보아 물러가야 하고, 좌상이 되어서는 낭관들의 승진과 강등을 그르쳤으니 물러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도 그대의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 《사문유취》에서
이약졸 — 때를 알고 물러갈 줄 아는 다섯 가지 지혜
이약졸(자는 장용)은 절동과 절서 지방의 전운사를 지냈다. 스스로 세상 형편에 따라 오르내린 지 오래되었다고 여겨 〈오지선생전〉을 지었다. 그 내용은 때를 아는 것, 어려움을 아는 것, 운명을 아는 것, 물러갈 줄 아는 것, 만족할 줄 아는 것 다섯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 《저기실》에서
전약수 — 마흔에 벼슬을 접고 돌아간 사람
전약수가 젊었을 때 관상가 마의도자를 만나 상을 보았더니, 소용돌이치는 벼슬길에서 과감하게 물러날 사람이라 했다.
훗날 추밀부사로 은퇴했는데, 나이 겨우 마흔이었다. 양대년(양억)의 〈한망음〉이라는 시에
세상에 가장 한가한 이가 누구인가 사간(전약수를 가리킴)이 옷깃을 떨치고 화산으로 돌아가네
라 했다. — 《미공비급》에서
조형 — 목우인처럼 조용히 앉아 있던 사람
문원공 조형은 타고난 자질이 지극히 순진했다. 그래서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과거에 급제했고 비로소 결혼도 했다. 이전에는 전혀 세상일을 몰랐다.
처음엔 유해섬에게 도를 배워 기운을 다스리고 몸을 단련하는 법을 익혔고, 뒤에는 불교를 배웠다. 그래서 늘 도교와 불교의 교리를 참고하며 일생 동안 힘써 실행했다. 모든 일을 사절한 채 조용히 지내며 도교 사원에 혼자 거처하고 다른 일은 돌보지 않았다. 또 집안사람들에게도 번번이 찾아와 묻지 못하게 단속했다. 식사 때는 오직 두 가지 반찬만 내오게 했고, 먹고 나면 즉시 제사상처럼 빨리 치우게 했다.
아들 종각이 정자 벼슬에 발탁되어 조복을 입고 와서 인사를 올렸지만, 조형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부인이 한번은 몰래 엿보았더니 눈을 감고 단정히 앉은 채, 수염과 머리카락만 바람에 흩날릴 뿐 나무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은 일찍이 시를 지었다.
쇳돌을 불려 금이 되면 이것이 보배요 정을 다스려 본성을 이루면 이것이 참됨이라 서로 만나 이 이치를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천이고 백이고 그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없구나
— 《지비록》에서
손석 — 순박한 덕으로 이십 년을 시강하고 돌아가다
선공 손석이 태자소보로 은퇴하여 운(지명) 지방에 거처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시청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어시청은 인종 임금이 상으로 내린 시를, 그가 거처하는 청의 벽에 돌에 새겨 붙여 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손석이 손님들에게 말했다. "백낙천(백거이)의 시에 이런 절구가 있습니다.
수많은 고관들의 옛집은 문이 굳게 닫혔는데 그 집 주인은 늙도록 돌아오지를 않는구나
이제 저는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다시 석수도(석개)를 돌아보며 《주역》 이괘 구삼의 효사를 외웠다. "근심을 잊고 즐거워하니 소인(손석 자신을 가리킨다)의 뜻에 만족하고, 노래하며 북 치니 늙은이가 탄식을 내뱉지 않게 되었습니다."
손석은 순박한 덕과 깊은 학문으로 궁중에서 이십여 년간 시강(임금 앞에서 경전을 강의하는 일)을 지내다가, 늘그막에 과감하게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자연스럽게 노닐며 지냈다. 시종일관 덕을 끝까지 온전히 지킨 사람으로 그에게 견줄 만한 이가 근래에는 드물다. — 《명신언행록》에서
진공 — 범여의 그림을 받고 그날로 벼슬을 버리다
진공이 박주를 맡고 있을 때 생일을 맞았다. 친척들은 노인성을 그린 그림을 선물로 보내는 이가 많았으나, 조카 진세수만은 유독 〈범려유오호도〉(범여가 오호로 배를 저어 떠나는 그림)를 선물로 보냈다. 그 그림에는 이런 찬이 씌어 있었다. "훌륭하구나, 도주공(범여)이여.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오나라를 평정했네. 명예를 이루고 과감히 물러나 조각배를 타고 오호로 떠나갔구나." 진공은 그날로 벼슬을 버렸다. — 《하씨어림》에서
이강보 — 산에 올라 보니 비로소 험한 줄 알았다
이강보가 일찍이 〈육화탑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탑 아래를 오간 지 그 몇 해이던가 매번 꼭대기에 오르지 못함을 한스러워했네 오늘에야 올라와 보니 비로소 그 험함을 깨닫나니 산림으로 돌아가 편히 눕느니만 못하구나
이강보는 정승을 지내면서 맑고 바른 마음으로 삼가 법을 지켰고, 자신의 생활은 가난한 선비처럼 검소하게 했으며,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 《저기실》에서
방장민과 구양수 — 그칠 줄 아는 것과 쫓겨나는 것의 차이
방장민이 정주를 맡고 있으면서 늙었다는 이유로 자주 물러나기를 청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지금 상께서 바야흐로 정치에 힘쓰고 계시고, 게다가 공께서는 아직 정력이 매우 건장하신데, 어째서 굳이 물러가려 하십니까?" 방장민이 답했다. "반드시 기력이 다하고 임금이 싫어하게 되어서야 떠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지, 어찌 만족할 줄 알아 스스로 그치는 것이겠소?"
문충공 구양수가 채주에 있으면서 자주 은퇴하기를 청했다. 그때 문하생 채승희가 틈을 타 말했다. "조정에서는 지금 선생님을 중히 여기고 있고, 물러나실 연세도 아직 아닙니다. 어째서 갑자기 물러나려 하십니까?" 구양수가 답했다. "내 평생의 명예와 절개는 모두 뒤에 오는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니, 일찍 물러나 만년의 절개를 온전히 해야 할 뿐이다. 쫓겨나기를 기다릴 게 뭐 있겠는가. 조정에 있는 대신들은 모두 임금에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후배들이 자신을 본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이래서야 염치의 기풍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 《문기유림》에서
조열도 — 비파와 학마저 버리고 부임하다
조열도는 기개와 도량이 맑고 빼어났으며, 그가 기뻐하거나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호를 지비자(잘못을 아는 사람)라 했다.
처음 성도에 부임했을 때는 비파 하나와 학 한 마리만 가지고 갔다. 다시 부임할 때는 그 비파와 학마저 버리고 일을 돌보는 종 한 사람만 데리고 갔다. 그는 평생 밤마다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밖에 나와 향을 피우고 하늘에 고했는데, 고할 만한 일이 없으면 감히 하지 않았다.
원풍 연간 초에 늙었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물러나 구(지명)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곳은 시내와 바위,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빼어난 경치를 지닌 곳이었다. 여기서 승려나 농부들과 어울리며 다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의 시에
난간 밖은 긴 시내요 시내 너머는 산이라 발을 걷으니 텅 빈 하늘에 물과 구름 사이일세 높은 집에서 누가 물어본들 뭐라 답하리 맑은 밤엔 편히 자고 낮엔 한가롭다 하리
라 했다. — 《유씨홍서》에서
정공 부필 — 나귀에서 내리지 않은 재상
정공(봉호가 정국공인 부필)은 은퇴한 뒤 맑은 마음으로 도를 배우면서 환정당에 홀로 거처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중문을 열고 가묘에 들어가 예를 올렸고, 아내를 대할 때도 손님처럼 대했으며, 자손들도 의관을 정제하지 않고서는 만나지 않았다. 《주사》라는 책에는 "정공은 집안을 매우 엄정하게 다스렸으므로 자제와 여종들 사이라도 서로 함부로 왕래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집안의 법도가 더없이 엄숙했다"고 적혀 있다. — 《저기실》에서
정공이 은퇴하여 서도에 돌아와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베로 지은 도포를 입고 나귀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가 수남 순검의 행차와 마주쳤다. 수남 순검은 환관이었는데, 길을 인도하는 행렬의 위엄이 매우 성대했다. 앞장서 길을 열던 군졸이 "나귀 탄 자는 내려라" 하고 외쳤다. 그래도 정공은 채찍을 휘둘러 나귀를 재촉하기만 했다. 군졸의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지며 다시 외쳤다. "나귀에서 안 내리려거든 관직이 무엇인지 말하라." 정공은 채찍만 휘두르며 "필(정공의 이름)이다" 했다. 군졸은 그래도 알아채지 못하고 순검에게 아뢰었다. "앞에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타고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관직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필'이라고만 합니다." 그제야 순검은 그가 상공(재상 정공을 가리킨다)인 줄 깨닫고 말에서 내려 길가에 엎드려 인사를 올렸다. "수남 순검이 인사 올립니다" 하고 공손히 읍했다. 그래도 정공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채찍을 휘둘러 급히 떠나가 버렸다. — 《패사휘편》에서
한지국 — 벗의 시 한 구절에 마음을 정하다
한지국이 만년에 허주 태수로 있었다. 그때 최자후도 그 지방 고을의 원으로 있었다. 한지국의 생일날 별처럼 많은 선물이 들어왔는데, 최자후만은 이런 시를 올렸다.
비단옷 입고 영광스러운 이름 빛내는 것도 좋지만 봉맹처럼 갓을 벗어 거는 높은 절개를 미루지 마오
한지국은 차탄하며 시를 읊고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은퇴했다. — 《문기유림》에서
(용어) 전한 말엽 왕망이 자기 아들 왕우를 죽이자, 봉맹이라는 사람이 "삼강의 도리가 끊어졌다. 머지않아 화가 사람들에게도 미칠 것이다" 하며 관을 벗어 도성 문에 걸어 두고 가족을 데리고 멀리 떠나 버렸다는 옛이야기가 전한다. 최자후는 이 고사를 빌려 한지국에게 은퇴를 권한 것이다.
범경인 — 늙을수록 눈과 귀가 더 밝아지다
범경인이 벼슬에서 물러나 도성의 집에 거처하고 있었다. 여기서 오로지 글을 읽고 시를 짓는 것만을 스스로 즐겼다. 손님이 오면 신분이 높든 낮든 가리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만났고, 따로 답례로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혹 음식을 갖추어 초청하는 이가 있으면 권세 있는 사람이라도 거절하지 않았지만, 부르지 않으면 가서 만나지 않았다.
일찍이 가마를 타고 촉 지방에 가서 친구들과 술 마시며 즐긴 적이 있었다. 그때 여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강산을 두루 구경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다 관람한 뒤 일 년 만에 돌아왔다. 나이가 더욱 들수록 눈과 귀는 더욱 밝아졌고 몸도 더욱 건강해졌다.
아, 범경인이 자신의 지조를 굽혀 세상에 나가기를 바라서 부귀를 얻고, 염치를 무릅쓰며 자리를 지켰더라면 오늘의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범경인은 얻은 것이 많다 하겠다. — 《금뢰자》에서
진우경 — 쟁송하던 이들도 감동시킨 인품
진우경(자는 우경, 이름은 지기)은 훌륭한 덕이 있어 고장 사람들이 군자라 일컬었다. 여러 번 승진하여 태자 중윤에 이르러 은퇴했는데, 이때 나이 쉰도 못 되었다. 곧이어 평강군 절도의 서기에 제수되었고, 다시 교수에 임명되어 조서로 여비까지 주며 빨리 떠나도록 재촉했으나 극력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그는 덕으로 고장에 이름이 나 있어 마을의 어린아이들조차 그를 존경할 줄 알았다. 한번은 오랫동안 결말 짓지 못한 소송을 벌이던 사람들이 노새를 타고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진우경이 대의를 들어 감동시키니 모두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 그가 벼슬에서 물러날 때 시랑 장낭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온 천하가 모두 부귀만 좇고 있는데, 우경만은 그칠 줄을 알아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초야에 이런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 《저기실》에서
왕형공 — 임금이 아니라 내가 결정할 일
왕형공(왕안석)이 재상으로 있을 때 어떤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친 적이 있었다. 점쟁이가 물었다. "공명과 부귀가 이러한데 무엇 때문에 점을 치십니까?" 왕형공이 정색하며 답했다. "지금 극력 물러나기를 청해도 임금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네. 그래서 곧 떠날 수 있을지를 봐 달라는 것이네." 점쟁이가 말했다. "상공이시여, 임금의 신임이 두터울 때 물러나 쉬는 것이 좋다고 제가 전에 상공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가고 싶으면 가는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상공께 달린 일이지 임금께 달린 것이 아닙니다. 의심할 것도 없는 일인데 무엇 때문에 점을 치십니까." 왕형공은 서글피 탄복하며 마침내 물러날 뜻을 굳혔다.
아, 물러갈 때가 이미 지났는데도 스스로 임금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결국 도성에서 객사하고 마는 사람들이여! 어찌 이 점쟁이를 찾아가 한번 점쳐 보지 않는가. — 《저기실》에서
양성재 — 열여섯 해를 한가로이 누린 복
양성재(양만리)는 비서감에서 시작해 강동 조운부사를 맡았다가, 나이 일흔도 안 되어 남계 가로 물러나 쉬었다. 겨우 비바람을 가릴 만한 낡은 집 한 채에 늙은 하인 서너 명이 있을 뿐이었다. 서영휘가 보낸 시에
청백한 가문은 물처럼 맑고 가난한 살림은 허리띠의 쇠고리뿐이라네
라 했는데, 이는 사실 그대로를 적은 것이다. 그래도 그는 총명하고 강건하게 열여섯 해 동안 맑고 한가로운 복을 누렸다.
영종 초에 주 문공(주희)과 함께 조정의 부름을 받았다. 그때 주희는 나아갔지만 양성재는 나아가지 않았다. 주희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 "다시 하늘의 뜻을 즐기고 천명을 아는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사람들과 근심을 함께한다는 그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한가로이 숨어 지내는 일을 지나치게 고집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이 세상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했으나, 양성재의 높은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일찍이 스스로 찬을 지었다.
강바람은 나에게 시를 읊게 하고 산 위의 달은 나에게 술을 마시게 하네 취해서 꽃밭 앞에 쓰러지니 천지가 그대로 나의 이부자리로다
또 이렇게도 지었다.
맑고 깨끗함은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으니 다듬을 필요가 없네 다만 한 가지 용서 못 할 당돌함이 있다면 그지없는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로다
— 《학림옥로》에서
구만경 — 늙어서야 깨달은 벼슬길의 어려움
구만경은 벼슬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았는데, 그를 천거한 사람이 있어 불려가 억지로 사직 벼슬에 임명되었다. 조정에 있으면서 시를 지었다.
새로 지은 서당의 벽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내 말발굽은 장안으로 재촉되어 달리네 어릴 적엔 벼슬살이가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더니 늙어 가며 비로소 그 길의 어려움을 깨닫는구나 천 리 밖 고향 산은 아득히 멀기만 한데 비바람 몰아칠 때마다 그지없이 춥기만 하네 아무래도 띠풀 처마 밑에 조용히 앉아 푸른 대나무와 싱그러운 오동잎이나 보는 것만 못하구나
하고는, 마침내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갔다. — 《공여일록》에서
관운석 — 이름을 바꾸고 약을 팔며 숨다
관산재(관운석)가 한림시독학사 지제고 동수국사(모두 학문을 맡은 조정의 요직)에 임명되었다. 어느 날 문득 탄식했다. "높은 벼슬을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무는 것은 옛 성현이 숭상하던 일이다. 내가 전에 사양했던 군자(군수품을 다루는 직책)라는 벼슬이 이제 이 한림의 청요직과 견주면 어느 것이 더 높은 벼슬인가. 사람들이 나를 이러쿵저러쿵 평할 것이다." 하고는, 부모가 병들었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강남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당의 시내를 다니며 약을 팔았는데, 성과 이름을 바꾸고 옷도 갈아입어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우연히 양산의 낙수를 지나다가 갈대꽃으로 짠 옷을 입은 어부를 보고 비단과 바꾸자고 했다. 어부는 이상한 사람이라 의심하여 일부러 "당신이 내 옷을 갖고 싶으면 시 한 수를 지어야겠소" 했다. 그가 즉석에서 붓을 들어 시를 짓고는 어부의 옷을 가져가니, 세상에서는 이 시를 〈노화피시〉(갈대꽃 옷 시)라 부르며 떠들썩하게 전했다. 그가 의연히 숨어 지내며 세상을 하찮게 여긴 일에는 이런 사례가 많았다. — 《철경록》에서
양유정 — 스무 해 은거, 백낙천보다 나은 풍류
양철애(양유정)가 이런 말을 했다. "내 나이 일흔이 못 되어 벼슬을 그만두고 구봉의 삼묘 지방에 은거한 지 거의 스무 해다. 그런데 경치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노닌 것은 백낙천(백거이)보다 나았다. 이오봉·장구곡·주이치·전사복은 나와 글을 주고받는 벗이고, 도엽·유지·경화·취우는 나를 위해 노래하는 기생이다. 다만 정원과 누각, 꽃과 달을 즐기는 데 진공(배도)처럼 대단한 후원자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동쪽 지방 태수인 이월주·장오흥·한송강·종해감 같은 이들이 큰 잔치를 베풀고 풍악을 울릴 때마다 나를 늘 윗자리에 앉혔으니, 후원자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경치 좋은 날 봄물에 배를 띄우고 오나라와 월나라 지방 사이를 오가며 풍류를 즐기는 벗들을 불러, 옛사람들의 뱃놀이 고사를 본받아 노닐면, 섬 그림자가 거꾸로 비친 호수의 푸른 물결이 햇빛에 반짝이는데,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며 '철룡선'이라 부른다. 아마 향산노인(백거이)에게도 이런 것은 없었으리라."
손님 가운데 소해생이라는 사람이 축하하며 말했다. "강산과 풍월 속에 사는 신선 같은 복인이십니다." 그러고는 그의 늙은 얼굴을 그리고 시를 써 붙였다.
스물네 번이나 시험을 주관한 중서령의 벼슬도 이백여덟 자에 이르는 태사의 직함도 강산과 풍월 속의 신선 같은 복인이라는 여덟 글자만 못하리니, 호수와 산의 풍월을 오롯이 누리는 것만은 못하리
— 《미공비급》에서
(용어) 뱃놀이 고사는, 진나라 시인 도잠의 손자 도현이 곤산에 살면서 배 세 척을 만들어 벗들과 함께 강호를 유람하며 스스로를 '수선(물의 신선)'이라 불렀다는 옛이야기를 가리킨다. 배도는 당나라의 명재상으로, 화려한 저택과 정원을 짓고 문인들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왕문단 — 물러난 덕분에 화를 면하다
왕문단(왕직)은 은퇴하여 집에 거처하면서, 나이 여든이 넘었어도 늘 부인과 따로 가마를 타고 농지를 돌아보았다. 자손들이 잔치를 베풀고 술잔을 올리며 장수를 축원하니, 온갖 복을 고루 누렸다.
어느 날 자리에 앉아 맑은 강물이 불어나 흐르는 것을 구경하다가 자손들에게 타일렀다. "처음에는 동리 선생(양사기)이 나와 함께 내각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때는 속으로 불평했었다. 그러나 내가 그대로 벼슬에 남아 있었더라면 천순 연간 초에 가장 먼저 화를 당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늘 이렇게 너희들과 함께 물 구경하며 즐길 수 있었겠느냐." — 《미공비급》에서
왕기 —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춥고 배고파도 즐겁다
전당의 왕기가 쉰 살에 은퇴하고 돌아와서는 살림에 힘쓰지 않았다. 그래서 깊은 겨울 큰눈이 내릴 때면 굶주려 쓰러져 문밖도 나오지 못할 지경이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지금 요직에 있는 이들이 공을 매우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얼마든지 도움을 받으실 텐데, 어째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 왕기가 답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춥고 배고파도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 — 《명세설신어》에서
좌태참 문석과 장성중 — 태수를 피해 숨은 은자
고소의 좌태참 문석은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날마다 글만 지으며 살았으므로 아는 사람이 적었다.
마침 윤 총재가 그와 같은 해에 급제한 사이였으므로 고소 태수에게 그를 찾아보라고 부탁했다. 태수가 골목골목을 뒤져 짚신에 더러운 모자를 쓴 노인 하나를 찾아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담박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태수가 오고 있다고 알려 주자, 그는 몸을 피해 버렸다. — 《명세설신어》에서
장성중은 급사 벼슬로 은퇴했는데, 성품이 매우 맑고 강직했다.
한번은 작은 배를 타고 성으로 들어가던 중 썰물을 만나 배가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종이 밧줄을 메어 배를 끌고 장성중이 몸소 노를 저었다. 그런데 다른 배들에게 몹시 밀려 곤욕을 당하자 두 종이 소리쳤다. "이 배는 장 급사님의 배다. 앞을 가로막지 말라." 장성중이 종들을 꾸짖으며 말했다. "사람들을 속이지 말거라. 여기에 장 급사가 있을 리가 있느냐." — 《명야사휘》에서
왕서 — 완전한 이름을 지키려면 먼 훗날을 보라
정덕 연간에 조정에서 삼원의 단의공 왕서를 다시 기용하자는 의논이 있었다. 그때 여남의 강경명이 이런 시를 보내왔다.
이품 벼슬 지낸 여든 노인이 맑은 절개로 돌아오니 눈서리처럼 차갑구나 비록 세상을 향한 마음이야 남아 있겠지만 임금 앞에 다시 절하기는 어려운 일일세 갈매기는 위엄 서린 봉새가 나타난 줄 의심하고 바람과 구름은 늙은 용을 오래도록 지켜 주리 삼공의 사업은 삼괴나무 이야기처럼 전해지리니 완전한 이름을 얻으려거든 먼 훗날을 내다보시오
왕서는 이 시를 받고 매우 기뻐하며 끝내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시를 보낸 사람이나 그 시를 받아들인 사람이나 모두 옛사람의 풍모가 있었다. — 《명야사휘》에서
(용어) "삼괴나무" 이야기는, 송나라 왕우가 뜰에 세 그루 회화나무를 심고 자손 가운데 삼공(재상급 벼슬)에 오를 사람이 나올 것이라 예언했는데, 훗날 정말 그 아들 왕단이 삼공에 올라 자손들이 그 집을 '삼괴당'이라 이름 붙였다는 옛이야기에서 왔다. 훌륭한 가문의 유업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장풍산 —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이유
장풍산(장무)이 첨헌 벼슬로 인사 고과에서 승진하게 되자, 마침내 사직하고 물러나기를 청했다. 그때 총재 윤민이 만류하며 말했다. "공은 직무를 감당하지 못한 일도 없고 탐욕이나 잔혹한 일을 한 적도 없으며 늙고 병든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물러나려 하십니까?" 장풍산이 답했다. "옛사람은 조정에서 벼슬하며 안색을 엄정히 했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는 직무를 감당하지 못한 일이 많은 탓이요, 옛사람은 의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취하지 않았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는 탐욕이 많은 탓이요, 옛사람은 백성을 다친 사람 보살피듯 했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는 잔혹한 일이 많은 탓입니다. 게다가 나이 쉰도 안 되었는데 수염과 머리가 일찍 세었으니, 이 또한 늙고 병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윤민이 이 말에 감동했다. — 《패사휘편》에서
장풍산은 벼슬이 좨주에 이르렀다. 훗날 조정에서 시랑과 상서로 불렀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집에 스무 마지기의 밭이 있었고, 식솔은 하인과 집안 남녀를 합쳐 열 명뿐이었다. 한 사람당 하루 식량이 한 되였으므로 일 년에 필요한 양은 서른여섯 섬이었다. 그런데 금화 지방의 수확이 흉작인 해에는 한 해 수입이 필요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찾아오는 손님들이 예로 가져오는 선물도 그는 늘 받지 않았으므로, 손님들도 아예 선물 가져오는 것을 잊게 되었다. 그래서 때로 식량이 모자라면 보릿가루를 죽에 섞어 먹었다.
오일원이 젊을 때 장풍산에게 가서 공부했으므로 수시로 찾아가 뵈었다. 장풍산은 구레나룻이 많아서 식사 뒤엔 반드시 수염을 닦고 나왔는데, 그래도 미처 닦이지 않은 보릿가루가 수염 끝에 붙어 있곤 했다. 이는 오일원이 직접 본 일이다. — 《사우재총설》에서
박암 — 큰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워하다
박암(장증)은 장풍산의 조카다. 처음 벼슬하여 급사중이 되었고, 훗날 공부 상서에 이르렀다. 깨끗한 절조와 순박한 마음은 장풍산과 대략 비슷했다.
장증이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봉급에서 남은 돈이 사오백 냥이나 되었다. 장풍산이 이를 알고 "네가 이번 걸음에 한바탕 장사를 했더라면 큰 이문을 얻었겠구나" 하니, 박암은 부끄러운 낯빛을 감추지 못했다. — 《사우재총설》에서
여남 — 관의 술과 안주가 거친 나물밥만 못하다
여중목(여남)이 병을 핑계로 고향에 돌아왔다. 문인들이 길에서 맞이하며 물었다. "선생님께서 도성에 가신 지 일 년밖에 안 됐는데 또 돌아오시니, 어찌 이렇게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으십니까?" 여중목이 답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벼슬자리만 지키며 공짜로 먹는 관청의 술과 안주가, 남산의 거친 나물밥만큼 맛있지는 않더구먼." — 《명세설신어》에서
허상경과 왕녹지 — 산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윤과 여상을 쭉정이로 여긴다
사대부가 산림에 은거함에 있어, 참으로 은거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참으로 은거하는 정취를 체득하지 못한 사람은 산림을 오히려 족쇄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가정 연간에 해령 사람 허상경이 급간 벼슬에서 물러나 십 년간 집에 있었다. 그는 귀계(지명, 권신 엄숭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와 오랜 친분이 있었다. 귀계가 다시 정승으로 조정에 들어가게 되자 편지로 허상경을 초청하며, 남경 대사성 자리를 줄 테니 함께 하자고 했다. 그러나 허상경은 사양하며 말했다. "공이 이번에 나아가는 것도 이미 그릇된 일인데, 남까지 그르치려 하십니까." 훗날 귀계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자, 사람들은 허상경의 선견지명에 감복했다.
오중의 왕녹지는 이부랑으로 있으면서 당시 권세가에게 아부하기를 즐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방관으로 좌천되자 부임하지 않고 이십 년간 집에 있었다. 그를 급제시켜 준 시험관 이묵이 당시 총재로 있으면서 억지로 기용하려 했지만, 왕녹지는 편지로 이렇게 사양했다. "젊은 나이에 벼슬을 버린 사람이 늙은 나이에 다시 벼슬하려는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융경 연간 초에 이묵이 그의 집을 직접 찾아가 남경 이부에 기용하려 했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큰 도를 품고 세상일에 오래 뜻을 두지 않는 사람은 그 흥취가 절로 보통 사람과는 다른 데가 있는 법이다. 마공이 "벼슬과 봉록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소보와 허유를 어리석다 하고, 산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윤과 여상을 쭉정이라 한다"고 했는데, 과연 미더운 말이다. — 《문기유림》에서
(용어) 소보와 허유는 모두 상고 시대의 은자로, 요 임금이 나라를 물려주려 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도리어 더러운 말을 들었다 하여 귀를 씻고 산속에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이윤은 은나라 탕왕을 도와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선정을 베푼 명재상이며, 여상(강태공)은 주나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한 명재상이다.
육수성 — 불경을 이야기하며 얻은 쾌활함
문정공 육수성이 말했다. "내가 병 때문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성 밖에 집을 지었다. 그 집 동북쪽 모퉁이에 여덟 자 남짓한 작은 집을 짓고, 그 안에 앉을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목 상좌(원로 승려를 가리킨다)가 오기만 하면 그 자리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쉬면서 두어 명의 승려들과 불교의 이치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 곁에서 수고로움을 잊고 마음을 고요히 한 채 얼마쯤 있노라면 고요한 가운데 깊은 경지를 느끼게 되니, 잠깐의 휴식으로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일찍이 본일선원의 법당에 가면 그때마다 은남 선사와 함께 고요히 앉아 있곤 했는데, 그러노라면 가슴속에 절로 일종의 쾌활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는 남에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사대부들은 화려하고 성대한 것을 즐기지만, 내가 보아 온 바로는 그 즐거움이 그렇게 상쾌하고 이로운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힘을 써야 되겠습니까?" 육수성이 답했다. "나처럼 해서는 안 된다. 삼가 떳떳한 덕을 행하고 떳떳한 말을 하도록 하라." — 《미공비급》에서
예부 상서 육수성이 은퇴하여 돌아가게 되자, 원로 대신들이 그를 전송했다. 그때 이기와 조금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조금이 말했다. "육공의 이번 발걸음을 보면 천하 사람들이 조정에도 벼슬과 봉록을 탐하지 않는 신하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기가 말했다. "육공은 실제로 병 때문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 집안을 위해 나라를 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 《명세설신어》에서
양유예와 원중랑 — 벼슬이 나를 붙들 수는 없다
양유예가 글을 올려 사직을 청했다. 그때 양유예의 명망이 매우 높아 이부랑으로 승진할 참이었으므로, 은근히 사직하지 말라고 권하는 이가 있었다. 양유예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스스로 돌아가려는 것이 어찌 형부랑 자리를 하찮게 여겨서이겠는가. 이부랑 자리인들 어찌 나를 붙들 수 있겠는가." 하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원중랑이 오현의 수령으로 있다가 병으로 사직한 뒤 말했다. "수령 노릇 때문에 병이 생겼고, 병 때문에 수령 자리에서 풀려났다. 수령 자리 때문에 병이 났으니 수령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자리인데, 나의 병이 그 자리에서 풀려나게 해 주었으니 병이 오히려 나를 즐겁게 해 준 것이 아니겠는가." — 《명세설신어》에서
조형 — 벼슬을 버려야 도를 즐길 수 있다
조 문원(조형)이 말했다. "문중자(왕통)가 '내가 벼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문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스스로 생각해 보니, 벼슬을 버리지 않고는 도를 즐기려는 뜻을 이룰 수가 없다고 느꼈다." 옛날과 지금, 어질고 어리석음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매한가지다. — 《소창청기》에서
한유와 소식 — 나아가도 물러나도 마음 편할 날이 없구나
한퇴지(한유)의 시에
한가히 살자니 양식이 부족하고 벼슬에 나가자니 능력이 모자라네 이 두 가지 일이 모두 본성을 해치는지라 일생 동안 늘 마음속으로 괴로워했네
라 했고, 소자첨(소식)은
집에 있으니 처자식이 울부짖고 벼슬하니 원숭이와 학이 원망하네 열 가지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못하니 어떻게 구만리 장천을 날 수 있으랴
라 했으니, 이 두 사람도 나아가고 물러나는 갈림길에서 머뭇거림을 면하지 못했다.
그 뒤 한유는 형산에서 눈 속을 헤매었고 소식은 남쪽 바닷가 담주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은거한답시고 문 닫고 들어앉아 이불을 뒤집어쓴 채 거친 음식이나 먹고 지내는 사람들과 견주어 본다면, 이 두 사람은 신선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경》의 〈고반〉이라는 시를 지은 사람이 "자나 깨나 이 즐거움을 잊지 않겠노라 맹세하네" 했던 것이다. — 《지비록》에서
(용어) 〈고반〉은 《시경》 위풍 편에 실린 시로, 어진 사람이 산골짜기에 숨어 사는 것을 찬미한 노래다.
옛사람의 노래 — 무심하면 어디를 가나 유유자적하다
옛사람이 지은 짧은 노랫말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금으로 만든 완구가 가득한 좋은 집이거나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초라한 초가집이거나, 이 모든 것에 무심해야 한다. 세상을 등진 선비가 진실로 무심한 마음으로 세상에 응한다면, 쓰여서 높은 벼슬에 오르든 버려져 초야에 묻히든 어디를 간들 유유자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마음에 얽매인 것이 있다면, 가난하고 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부귀를 누린다 해도 유유자적할 수 없는 법이다." — 《임거만록》에서
도연명의 부끄러움 — 새와 물고기 앞에서
나대경이 말했다. "선비가 어찌 평생 도롱이와 삿갓 차림으로 산림에만 묻혀 살 수 있겠는가. 다만 조정에서 벼슬하고 있을 때에도 산림에서 도롱이 입던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훌륭한 것이다." 도연명(도잠)의 〈진군 장군의 막부로 부임하며〉라는 시에
구름을 바라보니 높이 나는 새에게 부끄럽고 물에 다다르니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부끄럽네 애초의 뜻은 자연을 즐기려는 것이었는데 누가 알았으랴 이 몸이 세상일에 얽매일 줄을
이라 했는데, 이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바깥의 영화로움이 어떻게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 《공여일록》에서
황정견 — 옥을 차도 마음은 욕심이 없어야
산곡(황정견)이 말했다. "몸에 옥을 차고 있더라도 마음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어야 하고, 조정에서 벼슬하더라도 마음은 산속 은자의 마음이어야 한다." 이 역시 앞서 도연명의 시와 같은 뜻이다. — 《공여일록》에서
말로만 돌아가겠다는 사람들
사람들은 대체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 은거하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벼슬하여 부귀를 누리는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하의 시에
조만간 내 한 몸의 일을 대강 마무리 짓고 물가로 돌아가 한가한 사람이 되리라
라 했는데, 만약 자기 일을 다 끝내고서야 돌아가려 한다면 벼슬길에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더 치열해져서 끝내 돌아갈 날이 없게 될 것이다.
왕이간의 시에
청산으로 갈 수 있다면 우선 돌아갔다가 관직에서 부르면 곧 다시 나가리라
라 했는데, 이는 잠시도 벼슬을 잊지 못한 것이다.
장괴애(장영)가 촉 지방에 있을 때 막부의 일을 맡은 관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장괴애에게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했다. 그가 시를 지어 올렸다.
야박한 벼슬살이 인정은 온통 가을 풍경처럼 싸늘하니 산빛도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이 마음의 짙음만은 못하구나
하니, 장괴애가 사과하며 그를 떠나지 못하게 만류했다. 이 시는 그 막료가 서운한 마음에 감정이 북받쳐 지은 것이다.
《몽계필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무관이 문득 시를 지었다.
인생은 본디 얽매임이 없는 것인데 어찌 굳이 은거할 산을 살 돈까지 필요하랴
하고는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는 가장 과감한 결단이었다고 하겠다.
일찍이 역참의 벽에 씌어 있는 두 구절의 시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러했다.
인생에서 만족을 기다린다면 어느 때에 만족하겠는가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비로소 참된 한가로움일세
나는 이 시의 뜻을 깊이 곱씹으며, 정작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또
사람마다 만나면 모두 벼슬 버리고 가겠다고 말하지만 산림에 가서 정말 은거한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네
라는 시도 있는데, 세상에서 많이들 외우는 구절이지만 이 시를 지은 사람이 당나라 때 사람이라는 것은 잘들 모르고 있다.
위단이 승려 영철에게 보낸 시에
나랏일에 쫓기느라 하루도 한가할 틈이 없는데 덧없는 이 인생은 뜬구름과 다름없구나 이미 벼슬을 마치고 돌아가 쉴 계획을 세워 두었으니 오로봉 앞에서 반드시 그대와 함께 즐기리라
라 하니, 영철이 곧바로 이렇게 화답했다.
늙은 몸 한가로워 다른 일이 없으니 삼베옷 입고 초막에 앉아 있어도 몸은 편안하네 사람마다 만나면 모두 벼슬 버리고 가겠다고 말하지만 산림에 가서 정말 은거한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네
《염계집》에 실린 〈비령의 산놀이 시에 화답하다〉라는 시에
이곳은 세상의 온갖 시름 다 잊을 만한 곳이지만 태평한 시절이라 차마 벼슬을 사양하지 못하는구나
라 했는데, 이는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말로 도를 아는 사람의 말이니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입으로는 산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벼슬 구하기에 바쁘기 일쑤다.
당나라 승려 백수는
산에 사는 사람은 적은데 산을 말하는 이는 많구나
라 했고, 두목지(두목)는
모두들 청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말들 하지만 정말로 청산으로 돌아간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라 했다.
양성재(양만리)는 조정에서 벼슬하고 있을 때 도성에서 고향집까지 가는 데 드는 비용을 미리 계산해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채운 뒤 침상 곁에 두었다. 그리고 집안사람들에게 이렇게 훈계했다. "물건 하나라도 새로 사들이지 말라.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짐이 무거워질까 걱정스럽다." 그러면서 날마다 금방이라도 길 떠날 짐을 꾸릴 것처럼 지냈다. 이 마음가짐이 참으로 훌륭하다. 조정에 벼슬하는 사람만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이렇게 해야 한다.
무릇 세상살이란 사람에게 여관에 묵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날마다 물건을 사 모으며 재물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니, 그 재물이 훗날 길 떠날 때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자경편》에서
범순인 — 중앙에서는 검소하게, 지방에서는 넉넉하게
범 충선공(범순인)이 도성의 내직에 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딱 두 가지 반찬만 만들게 했고, 그것도 종과 첩들을 시켜 집에서 직접 만들도록 했다. 그마저도 가끔 줄여서 지나치게 검소하게 지낸 탓에 식구들이 배불리 먹지 못한 적도 있었다. 만년에 재상 자리에 올랐을 때도 이렇게 했다. 반대로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음식 일체를 바깥 주방에 맡기고 값도 몇 배씩 더 쳐주었으므로 늘 풍족했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범순인이 답했다.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비록 나 자신에게 달린 일이긴 하지만, 처자식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중앙에 있을 때는 힘들면서도 생활은 부족하게 지내고, 지방에 있을 때는 편안하면서도 생활은 넉넉하게 지냄으로써,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늘 지방으로 나가는 것을 반기고 도성 생활에 미련을 두지 않게 하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는 한 가지 도움이 된다." 옛 선배들은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에 이토록 엄격하여, 매번 이런 데까지 마음을 썼다. — 《패해》에서
왕형공과 도연명 — 마음이 멀어야 진정 한가롭다
왕형공(왕안석)은 재상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 금릉에 살았다. 날마다 산과 샘을 유람하며 세상일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그의 시에
양후(위염)는 늙어서도 관중 땅의 일을 도맡아 언제나 제후들의 유세객이 찾아올까 염려했었네 나 또한 늘그막에 골짜기 하나를 도맡았건만 수레나 말을 만날 때마다 문득 놀라고 의심한다네
라 했다. 이미 산과 샘에 마음을 두었다면 바깥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할 텐데, 어찌 놀라고 의심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이로 보면 형공의 마음속에는 아직 통쾌하게 떨쳐 버리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연명(도잠)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시에
사람들 사는 곳에 오두막을 지었건만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속세에서 멀어지면 사는 곳도 절로 외져지는 법이라오
라 했으니, 마음을 먼 곳에 두면 비록 사람들 속에 살더라도 수레와 말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지만, 마음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골짜기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살더라도 수레와 말을 만날 때마다 놀라고 의심하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 《학림옥로》에서
이상으로 한정록 제4권 퇴휴를 마친다. 초나라 우구자에서부터 송나라 왕안석에 이르기까지, 벼슬에서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스스로 그친 이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허균은 이 권 곳곳에서 "말로는 돌아가겠다 하면서 정작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는 점을 거듭 짚으며, 진정한 은퇴란 자리를 버리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 세상일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을 곳곳에 담아 두었다.
한정록 제5권 · 유흥
출처: 한정록 제5권, 유흥(옛사람들이 산천을 유람하며 즐겼던 이야기 모음)
배경: "유흥"은 허균이 《한정록》을 엮으며 세운 열여섯 갈래 가운데 다섯째 갈래로, 산천의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다니며 정신을 쉬게 하는 것이 한가로이 지내는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즐거움이라는 뜻에서 마련한 자리다. 허균은 《세설신어》, 《와유록》, 《하씨어림》, 《소창청기》, 소식의 문집인 《소문충공집》, 《옥호빙》, 《미공비급》, 《지비록》 등 중국의 여러 책에서 산수 유람을 즐긴 이들의 일화와 명언을 뽑아 한자리에 모았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풍류객들로부터 송나라의 사마광과 소식, 명나라의 문인들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뛰어넘어 자연 속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 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고산에서 바다를 바라본 순선
중랑장을 지낸 순선이 경구(지금의 중국 강소성 진강 지역)의 북고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봉래산ㆍ방장산ㆍ영주산이라는 삼신산은 보지 못했지만, 이 경치만으로도 절로 속세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인다. 만약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려 했을 것이다."
(용어) 진시황과 한무제는 둘 다 신선이 되기를 몹시 바랐던 임금들이다. 진시황은 신하를 보내어 삼신산의 불로장생약을 구해 오게 했고, 한무제는 바닷가를 순행하며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면서 신선 만나기를 바랐다.
(《세설신어》)
등산하기 좋은 몸을 타고난 허순
허순은 경치 좋은 곳을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그의 체구가 마침 등산하기에 편리하게 생겼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허순은 좋은 경치를 즐기려는 마음만 지닌 것이 아니라, 좋은 경치를 찾아다니기에 알맞은 몸까지 타고났다."
(《세설신어》)
회계산의 경치를 묻자 고개지가 답하다
고개지(자는 장강)가 회계산에서 돌아오자 사람들이 그곳 산천의 아름다움에 대해 물었다. 고개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천의 바위들은 서로 높이를 다투듯 치솟아 있었고, 수만의 골짜기에는 물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울창한 나무숲 위로는 구름이 피어오르듯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세설신어》)
산음 가는 길의 경치를 자랑한 왕헌지
왕헌지(자는 자경)는 이렇게 말했다.
"산음(지금의 중국 절강성 소흥) 가는 길을 걷노라면 산천의 경치가 절로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 경치를 다 구경할 겨를조차 없게 만든다. 가을이나 겨울 같은 계절에는 더더욱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기이한 경치가 펼쳐진다."
(《세설신어》)
오흥의 인저에서 감탄한 왕호지
왕호지가 오흥(지금의 중국 절강성 호주)의 인저에 이르러 그 경치를 구경하고는 이렇게 감탄했다.
"사람의 마음을 툭 트이게 할 뿐만 아니라, 해와 달의 밝은 빛이 이토록 맑고 환한 줄도 새삼 깨닫게 하는구나."
(《세설신어》)
눈길을 다녀온 도일 스님의 대답
도일 스님이 도성에서 동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중 지방을 거쳤는데, 마침 눈이 내렸으나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다른 스님들이 오는 길에 지나온 곳의 경치를 묻자, 도일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는 길의 고생스러움이야 굳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가장 쓸쓸했던 광경을 말씀드리자면, 성 밖 마을은 눈발이 휘날려 잘 보이지 않았고, 숲과 산봉우리는 그저 온통 희기만 했습니다."
(《세설신어》)
누워서 유람하기를 꿈꾼 종병
종병(자는 소문)은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여 먼 곳까지 유람하기를 즐겼다. 그리하여 서쪽으로는 형산과 무산에 올랐고, 남쪽으로는 형산(지금의 중국 호남성에 있는 산)에 올랐다. 이에 형산에 집을 짓고, 평소 흠모하던 은자 상장(자는 자평)처럼 유람을 즐기려 했으나, 병에 걸려 강릉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늙음과 병이 한꺼번에 찾아왔으니 이름난 산들을 두루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이제는 마음을 맑게 하고 도를 궁구하며, 누운 채로 유람이나 해야겠다."
그러고는 그동안 유람했던 곳의 경치를 모두 집 안에 그려 놓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파를 타서 그림 속의 산들이 모두 그 가락에 메아리치게 하겠다."
(《와유록》)
좋은 경치에 돌아갈 줄 몰랐던 종병
종병은 비파와 서적을 좋아했고 이치를 논하는 데에도 정통했다. 그래서 좋은 경치를 유람할 때마다 번번이 돌아갈 줄을 까맣게 잊곤 했다. 왕장사가 늘 그를 따라다녔는데, 날이 저물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씨어림》)
신선 같다는 말을 들은 유언도
유언도는 산과 못을 유람할 때마다 끝없이 즐기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정신은 옥처럼 맑았고 자태도 훤칠했으며, 산골짜기를 유람할 때면 그 기상이 더욱 고상해 보였다. 그래서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그를 두고 신선 같다고 말하곤 했다.
(《하씨어림》)
명산을 두루 찾아 선약을 구한 도홍경
도홍경은 처음 동양 땅의 손유악에게서 도교의 부적과 경전을 전수받은 뒤, 이름난 산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신선이 되는 약을 찾아다녔다. 경치 좋은 계곡을 지날 때마다 반드시 그 사이에 머물러 시를 읊었으며,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성이곤 했다.
(《하씨어림》)
여산에서 형산까지, 장자위의 십 년 발자취
장자위는 젊었을 때 혼인도 벼슬도 하지 않은 채 도경순이 버려둔 채마밭을 얻어 그곳에 띳집을 짓고 살았다. 거친 음식과 물로 끼니를 삼으면서도 큰 소나무와 긴 대숲 아래를 거닐며 휘파람을 불었고, 그렇게 거리낌 없이 십여 년을 지냈다.
어느 날 호남과 상강 일대의 경치가 빼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지팡이 하나를 짚고 홀로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여산에 올랐다가 팽려호에 배를 띄워 동정호를 건넜고, 남쪽으로 내려가 형산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다니느라 몇 해 만에야 돌아왔다. 그가 찾아간 곳은 비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험한 곳이라 해도 반드시 끝까지 가 보고서야 자신의 뜻을 채웠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를 글로 남겼는데, 이 기록을 〈산수만유기〉라 이름 붙였다.
(《소창청기》)
전유연이 눈 내리는 향산으로 술과 기생을 보내다
전유연(시호는 문희)이 서도의 태수로 있을 때, 사희심과 구양수(자는 영숙)가 그곳에 함께 있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숭산을 유람하고 영양을 거쳐 돌아오다가, 저물녘에 용문의 향산에 이르렀다. 조금 있으니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두 사람은 석루에 올라 도성 쪽을 바라보았는데, 저마다 가슴에 품은 회포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자욱한 안개 속으로 이수를 건너 달려오는 수레와 말이 있었다. 다가와 보니 전유연이 보낸 음식과 기생이었다. 그들은 전유연의 말을 전했다.
"산을 유람하신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지요. 서둘러 돌아오지 마시고, 잠시 용문에 머무시며 눈 내리는 경치나 즐기시기 바랍니다."
전유연의 활달한 마음과 인재를 아끼는 도량이 이와 같았다.
(《세설신어》)
사마광이 스스로 제물자라 이르며 낙양을 유람하다
사마광(봉호는 온공)은 낙양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세상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사물과 나를 가르는 생각을 버리고 궁함과 통함을 한결같이 여겼으므로, 스스로 "만물을 하나로 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제물자라 일컬었다.
원풍(송나라 신종의 연호) 연간의 어느 한가위, 그는 낙령자와 함께 낙예를 방문하기 위해 나란히 말을 몰아 길을 떠났다.
한성을 지나 등봉에 이르러 준극서원에서 쉬었고, 숭양으로 달려가 숭복궁을 거쳐 자극관에 이르렀다. 회선사를 찾아보고 환원을 지나 서사에 이르렀다. 광도사에서 잠시 머물다가 용문을 거쳐 이양에 이르러 봉선사를 찾아보고, 화엄각에 올라 천불암을 구경했다.
산길을 걸어 올라가 고공직당을 구경하고, 걸어서 잠계를 건너 보응으로 돌아와 문언박과 부필 두 정승을 모신 광화사를 구경하고 빈양당에 참배한 다음 내려왔다. 이수를 건너 향산에 올라 백거이를 기리는 사당에 이르렀고, 황감원에 나아가 석루에 기대었다가 팔절탄을 거쳐 이구로 돌아왔다.
이렇게 유람하며 지나는 곳마다 그 경치를 시로 읊었다. 돌아와서는 이를 정리하여 〈유록〉이라는 글을 지었는데, 사대부들이 앞다투어 베껴 갔다.
(《패사휘편》)
황주에서 배를 띄워 적벽을 오간 소식
내(소식)가 황주로 귀양 가 있을 때, 변재와 삼료자 두 선사가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어왔고, 또 "태허"라는 제목을 붙인 글도 함께 보내왔다.
이때는 한가위를 열흘쯤 앞둔 무렵이라, 가을 장맛비에 강물이 불어 수면이 천 리에 뻗쳐 있었다. 달은 방성과 심성 두 별 사이에 떠올랐고, 수면 위로는 흩날리는 이슬이 자욱했다.
내가 거처하는 곳은 강에서 열 걸음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 하나만 데리고 작은 배를 저어 적벽에 이르렀다. 무창 쪽 산골짜기를 바라보니 울창한 나무숲이 짙푸르렀고, 구름 덮인 물결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이에 이 풍경을 글로 적어 삼료자에게 부치면서 변재에게도 보여 주게 했다. 숭우로 가는 인편이 있으면 이 글을 태허에게도 부칠 수 있을 것이다.
(《소문충공집》)
소식이 여산의 서현곡을 거닐다
원풍 3년(1080년) 여름 6월, 나는 여산에 가서 이 산의 남쪽 기슭을 올라 서현곡으로 들어갔다.
골짜기에는 큰 바위가 많았는데, 높고 웅장한 모습으로 서로 기대어 서 있었고, 그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소리는 마치 우렛소리 같았고, 천 대의 수레가 내달리듯 땅을 뒤흔들어, 지나는 사람은 마음이 떨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험하기로 이름난 그 삼협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다리를 삼협교라 이름 붙인 모양이다.
삼협교를 건너 동쪽으로 가니 산을 낀 채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수면은 흰 비단을 깔아 놓은 듯 잔잔했다. 큰 바위가 물길을 가로막는 곳에 이르자 물은 큰 수레바퀴처럼 맴돌아 고였는데, 이리저리 휘돌며 세차게 솟구치기도 하여 온갖 모습을 다 빚어냈다.
절은 이 지점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돌벽을 등지고 왼쪽으로는 흐르는 물을 끼고 있었다. 승방은 돌벽의 등마루에 자리해 있어서, 큰 봉우리와 기이한 바위가 처마 끝에서 춤추듯 서 있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이리저리 얽혀 짙은 푸르름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큰 비바람이 몰아치면 이 절의 승려들은 봉우리나 바위가 무너져 내려 승방을 덮칠까 걱정한다고 한다.
여산의 지리에 밝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산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는 서현곡이며, 이런 곳은 한두 군데에 불과하다고 했다.
(《소문충공집》)
달빛 아래 열다섯 개의 절을 지나 변재대사를 찾다
원풍 2년 10월 1일, 나는 오흥에서 항주를 거쳐 동쪽으로 회계에 이르렀다. 그때 용정에 변재대사가 있었는데, 편지를 보내어 나를 산으로 초청했다.
성곽을 나서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배를 타고 호수를 따라가 보령에 이르렀는데, 도중에 삼료자를 만났다. 그에게 용정에서 보내온 가마에 대해 물었더니, 내가 제때 오지 않아 이미 돌려보냈다고 했다.
이날 저녁 하늘이 맑게 개어 숲 사이로 달이 떠올랐는데, 터럭 끝까지 셀 수 있을 만큼 환했다. 그리하여 나는 배에서 내려 삼료자와 함께 지팡이를 짚고 호숫가를 걸었다. 뇌봉을 지나고 남병을 넘어 혜인간에서 발을 씻었다. 영석오에 들렀다가 지름길로 풍황령에 올랐고, 용정정에서 쉬며 샘물을 떠 마셨다.
보령에서부터 열다섯 개의 절을 지나왔는데, 모두 적막하기만 할 뿐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길가의 인가에도 등불이 희미하게 가물거렸다. 숲은 몹시 울창했고 흐르는 물소리는 비명처럼 격렬하여, 마치 인간 세상이 아닌 듯했다.
삼경이 지나서야 비로소 수성원에 이르러 조음당에서 변재대사를 만났다. 다음 날 곧바로 돌아왔다.
(《소문충공집》)
여주 열매를 안주 삼자던 부로들과의 약속
소성(송나라 철종의 연호) 2년(1095년) 3월 4일, 담 사군이 나를 초청하여 함께 백수산의 불적사를 유람했다.
온천에서 목욕하고 폭포 아래서 바람을 쐰 뒤 중턱에 올라 폭포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가마에서 내려 걸으며 산 경치를 구경하고, 유람 온 이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저물녘에는 여포 가에서 쉬면서 지팡이를 짚고 대숲 속을 거닐었다. 이때 여주 열매가 가시연밥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마을 노인들이 그 열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으로 안주를 만들어 놓을 테니, 나리께서는 술을 가지고 다시 오시겠습니까?"
나는 흔쾌히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소문충공집》)
항우가 장감을 격파하는 듯한 불적암 폭포
오늘 백수산의 불적암을 유람했다. 산 위에는 폭포가 있었는데 그 높이가 서른 길이나 되어, 물이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지고 번갯불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그 형상은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굳이 견주어 보자면, 항우가 진나라 장수 장감을 격파할 때의 기세와 비슷했을 것이다.
(《소문충공집》)
눈 덮인 잠악봉에서 신선이 되고 싶다던 왕면
왕면이 큰눈이 내린 뒤 맨발로 잠악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이렇게 외쳤다.
"온 천지가 모두 흰 옥처럼 변하여 사람의 마음마저 한없이 맑게 씻어 주는구나. 이대로 신선이 되어 떠나가고 싶다."
(《옥호빙》)
열 개의 산악을 유람하겠다던 왕인
왕인은 불교 이야기를 즐겨 나누었고, 일찍이 불제자의 예를 행한 적도 있었다. 고봉선사를 찾아뵙고 절을 올린 뒤 무릎을 꿇고 청했다.
"제가 그동안 기이한 사람을 여럿 만나 보았지만 선사 같은 분은 없었습니다. 선사께서는 이제 어디로 떠나려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중국 안의 다섯 명산을 이미 세 번이나 두루 유람했다. 이제는 중국 밖의 다섯 명산까지 유람한 뒤에 다시 세상에 나오려 한다."
이 말을 들은 왕인은 더욱 선사를 사모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스스로 "열 개의 산악을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십악산인이라 자호했다.
(《미공비급》)
삼만 권을 읽고 천하를 유람한 오입부
오입부는 유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중원 땅의 기이한 경치와 옛사람들이 춤추며 놀던 자리, 그리고 옛 전쟁터를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스스로 즐거워했다. 그야말로 사마천(자는 자장)의 풍모를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강남으로 돌아와서는 바닷가를 따라 교문협을 거쳐 소백화산으로 갔다. 반타석에 올라서는 바닷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옛 신선인 안기생과 선문을 불러 그들과 함께 노닐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이리하여 그의 가슴속은 더욱 툭 트이고 맑아졌으며, 문장에도 더욱 웅장하고 기이한 기상이 서렸다. 그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잘 지으려면 삼만 권의 책을 읽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천하의 기이한 산천을 두루 구경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없이는 아무리 글을 잘 지었다 해도 그저 아녀자들의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용어) 안기생과 선문은 모두 전설 속의 신선이다. 안기생은 진나라 낭야 사람으로 하상장인이라는 신선에게 배워 신선이 되었다 하고, 선문은 아주 옛날의 신선이라 전해진다.
(《미공비급》)
산수첩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한 육수성
육수성(예조 판서에 해당하는 벼슬인 종백을 지냈다)이 막시룡(자는 운경)이 그린 산수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 고향 집은 첩첩산중에 있어서 아침이면 아침대로, 저녁이면 저녁대로 늘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성안으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부터는 그 경치를 나무꾼과 목동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산수첩을 펼쳐 보니 문득 벗들이 있던 옛집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고, 다시 짚신을 신고 대지팡이를 짚은 채 유람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인다."
(《미공비급》)
병약한 몸으로도 산을 오른 등이찬
등이찬(시호는 문결)은 평생 병치레가 잦아 자신의 몸을 몹시 아꼈다. 그러나 높고 험준한 산에 올라서는 끝까지 올라가 보지 않고는 쉬지 않았고, 절벽 끝에 서 보지 않고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정신이 산뜻해져 훨훨 날아오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명세설신어》)
시 짓는 데만 매달리면 유람의 참맛을 잃는다는 육심
육심(호는 엄산)은 이렇게 말했다.
"산에 오르고 물을 건너면서 오로지 시나 부만 짓는 데 몰두한다면, 도리어 유람의 참된 즐거움을 잃고 만다. 〈섭석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진사도(호는 후산)는 산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다가 시구 하나가 떠오르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리에 누워 버렸다. 집안사람들은 이럴 때면 즉시 집 안을 조용하게 만들기 위해 고양이와 개를 멀리 쫓아내고, 갓난아기는 품에 안고 어린아이는 손을 잡아 이웃집에 맡기고 왔다. 그러고는 그가 일어나 시를 다 지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시가 완성된 뒤에야 비로소 아이도 다시 데려오고 고양이와 개도 불러들였다.' 이는 시를 짓느라 집안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다.
무릇 아름다운 산천에 날씨마저 청명하면, 풍류를 아는 좋은 벗들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는 흥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그리고 등불이 가물거리는 밤이나 달빛이 쏟아지는 저녁이 되면, 낮에 다녀온 곳을 하나하나 눈앞에 그리듯 떠올려 본 뒤에야 비로소 붓을 들어 시를 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저마다 자신의 뜻에 흡족하여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육문유공집》)
몸보다 마음이 경치와 하나 되어야 한다는 말
아름다운 경치를 유람하는 일을 논하는 사람은 흔히 명승지를 찾아다니기에 알맞은 몸을 첫째로 꼽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의 정취가 아름다운 경치와 한데 어우러져, 산에 오르고 물을 건널 때 저절로 정신이 왕성해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잘 걷는 튼튼한 다리를 지녔다 해도 이내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소창청기》)
가슴속에 산을 품어야 글을 지을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가슴속에 스스로 한 폭의 산과 골짜기를 갖추고 있어야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바야흐로 산을 마주 보아야 비로소 글을 지을 수 있다. 산이 고요하면 낮도 밤처럼 느껴지고, 산이 담박하면 봄도 가을처럼 느껴지며, 산이 텅 비어 있으면 따뜻한 날도 추운 듯 느껴지고, 산이 깊숙하면 맑은 날도 비 내리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파라관집》)
바다의 산, 강의 산, 시내의 산, 변방의 산
바다에 있는 산은 아득하여 보일 듯 말 듯하고, 강에 있는 산은 엄숙하게 우뚝 솟아 있고, 시내에 있는 산은 아늑하고 고요하며, 변방에 있는 산은 민둥민둥하여 마치 흙언덕 같다.
(《암서유사》)
산만이 속세 밖의 참된 벗이다
속세 밖에서 사귈 만한 참된 벗은 오직 산뿐이다. 산은 반드시 사물의 이치를 깊이 살필 줄 아는 안목과, 명승지를 찾아다니기에 알맞은 몸과,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인연을 갖춘 사람에게만 비로소 허물없는 벗으로 곁을 내어 준다.
(《소창청기》)
산수를 오르내리며 나눈 이야기는 음악과도 같다
산수를 오르내리며 그윽한 경치를 마음껏 구경하고, 낮부터 밤까지 이어진 성대한 모임의 이야기를 모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면, 이는 감미로운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옥호빙》)
취하면 마주 베고 눕는 즐거움
높은 산, 깊은 숲, 굽이도는 시내를 따라 그윽한 샘과 기이한 바위가 있는 곳이면, 아무리 멀어도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르는 곳마다 풀을 헤치고 앉아 술병을 기울여 마시고, 취하면 서로 머리를 마주 베고 눕는다. 이렇게 하여 마음이 더없이 흡족해지면, 꿈속의 정취마저도 평소와 다름없어진다.
(《옥호빙》)
인적 없는 곳에 묻혀 사는 즐거움
천지 사이에 자욱한 구름과 안개, 나무와 바위, 높은 언덕과 깎아지른 절벽 가운데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면서도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 그래서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기이한 사람들은 세상일을 잊은 채 스스로 그 즐거움을 누리며, 늘 그 속에 묻혀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위를 잃는 아쉬움이나 쑥대머리에 때 묻은 옷을 입는 것쯤은 오히려 달갑게 여기는 것이다.
(《소창청기》)
높은 산에서 성을 내려다보며 얻은 깨달음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성안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성이 마치 개미집처럼 보이니,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 산이 성의 높이보다 과연 얼마나 더 높다고 이렇게까지 보이는 것일까. 하물며 진짜 신선이 하늘 위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그저 개미집 정도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지비록》)
골짜기에 앉아 해 지는 줄 모르다
높은 산에 오를 때마다 깊숙한 골짜기를 찾아가 편안히 앉아, 깎아지른 절벽에 걸린 폭포와 고목에 드리운 넝쿨을 구경한다.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 있노라면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른 채 돌아갈 생각을 잊게 된다.
(《소창청기》)
얼음과 서리도 조각구름과 초승달 같다
깎아지른 바위와 높은 절벽, 그리고 고목의 넝쿨에 맺힌 맑은 얼음과 서리는 마치 조각구름이나 초승달과 다를 바 없다.
산빛이 호수 위에 비칠 때 지팡이를 짚고 물가에 서면, 마음도 함께 더없이 맑아진다.
(《소창청기》)
서리 내린 숲에서 낙엽을 맞다
서리가 내려 나뭇잎이 떨어질 무렵, 성긴 숲 깊숙한 곳 나무 아래 앉아 있노라면 누런 낙엽이 나부껴 옷깃에 떨어지고, 들새는 나뭇가지로 날아와 사람을 엿본다. 황량한 풍경 속에도 자못 맑고 탁 트인 운치가 있는 법이다.
(《소창청기》)
사계절 산의 모습과 왕기가 서린 땅
봄 산은 아리땁기가 웃는 듯하고, 여름 산은 푸르름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고, 가을 산은 맑고 깨끗하기가 단장한 듯하고, 겨울 산은 쓸쓸하기가 조는 듯하다. 이는 화가 곽희가 남긴 말인데, 네 계절 산의 모습을 명확하게 그려 냈다. 이로 보면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야말로 아무리 가져와도 나무라는 이 없고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경치라는 사실을 참으로 잘 알고 있는 셈이다.
호수와 산은 대체로 그곳에 어울리는 훌륭한 인물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훌륭한 인물이 머물던 곳에는 절로 남다른 기운이 서리게 된다. 이를테면 사안이 즐겨 찾던 사공돈, 정박이 은거하던 곡구, 왕적이 취해 노닐던 취향, 소식이 쌓은 둑인 소제 같은 곳에는 종종 그런 기운이 감돈다고 하니, 이른바 풀과 나무, 새와 물고기조차 모두 상서로운 빛과 맑은 소리를 낸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하다.
(《지비록》)
신비로운 별세계는 아무나 만날 수 없다
신비로운 별세계나 깊은 경지는 고상한 풍류를 지닌 사람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이는 조물주가 은밀히 감추어 두고서, 함부로 평범한 사람에게 보여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양의 구곡산이 금릉 땅의 명당자리가 되는데, 좌원방이라는 도사가 석 달 동안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뒤에야 비로소 그 별세계의 문이 열렸다. 또 선경으로 이름난 무릉도원도 어느 어부가 우연히 찾아 들어갔던 곳이다. 이렇게 보면 이름난 다섯 명산을 유람하는 데도 겁을 내어 몸을 움츠리는 사람이야, 그 선경의 울타리 언저리나마 볼 수 있겠는가. 그윽한 이치를 탐구하는 일은 오히려 그다음 일일 뿐이니, 이는 약초 캐는 사람이 약초를 핑계 삼아 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산의 기이함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산을 빌려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선경이 보통 사람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 것은, 산신령이 이를 꼭꼭 숨겨 두고서 그 선경을 빛내 줄 만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지비록》)
꽃구경으로 손꼽힌 등달도의 은밀한 정원
등달도, 전순로, 손신로, 손거원 네 사람이 함께 한 관청에 있었다. 꽃 피는 계절이 되자 저마다 도성 안에서 꽃이 가장 무성한 곳을 하나씩 꼽았다. 그때 등달도가 말했다.
"여러분이 꼽은 곳은 자랑할 만한 곳이 못 됩니다. 열흘만 말미를 주신다면,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여러분을 모시고 가서 구경시켜 드리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세 사람은 등달도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그날 등달도가 앞장서서 봉구문을 나서더니 작은 암자로 들어갔다. 몇 걸음 걸어 어떤 문 앞에 다다랐는데 매우 초라했다. 거기서 다시 몇 걸음 더 가니 큰 대문이 나타났는데 매우 웅장했다. 말에서 내려 대청으로 가니, 도사 모자를 쓰고 자줏빛 반소매 옷을 입은 주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등달도는 그와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등달도가 말했다.
"오늘은 바람과 먼지가 유난히 심하군요."
주인이 대답했다.
"이곳은 변변치 않으니, 여러분께서는 안쪽 작은 대청으로 가시지요."
작은 대청으로 가 보니 온갖 꽃이 만발해 있었고, 난간을 화사하게 꾸며 놓은 매우 아름다운 누각이었다. 물에서 피는 꽃과 뭍에서 피는 꽃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는데, 도성 안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주인이 다시 사람을 시켜 안쪽 대청의 문을 열게 하니, 음악 소리가 자리에까지 들려왔다. 손신로는 이때 상중이었으므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사양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안쪽 대청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손신로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평생 꽃구경을 다녀 본 곳 가운데 그만한 곳이 없었다."
(《염이편》)
한정록 제6권 · 아치
출처: 허균, 《한정록》 제6권 〈아치〉
배경: '아치'는 우아한 정취, 곧 속되지 않은 고상한 취향을 뜻한다. 제6권에는 위진남북조 시대 이래 중국의 문인·은자들이 보여 준 멋스러운 언행과 취미, 그리고 산수를 즐기고 책과 술과 음악을 벗 삼아 산 사람들의 일화가 실려 있다. 앞부분은 대부분 《세설신어》와 《하씨어림》 등에서 뽑은 위진 시대 인물들의 짧은 일화이고, 뒤로 갈수록 당·송·명나라 문인들의 글과 말이 이어지며, 책의 뒷부분에는 허균 자신이 직접 겪은 일과 스스로의 생각을 적은 대목도 여러 편 섞여 있다. 허균은 이 권을 통해 벼슬살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풍류를 즐기며 사는 삶의 멋을 보여 주고자 했다.
1. 곽태, 하룻밤 묵은 여관도 깨끗이 치우고 떠나다
곽태(자는 임종)는 길을 가다 여관에 묵게 되면 몸소 방을 청소하고 날이 밝으면 떠났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 방을 보고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곳은 필시 곽유도(유도는 '도리를 갖춘 선비'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곽태를 높여 부르던 말이다)가 어제 자고 간 곳일 것이다."
(출전: 《세설신어》)
2. 손초,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듯하게 둘러대다
손초(자는 자형)가 젊어서 은거하려 하면서 벗 왕제(자는 무자)에게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겠다"고 말하려다, 그만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겠다."
하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물었다.
"물을 베개로 삼을 수 있으며, 돌로 양치질을 할 수 있겠는가?"
손초가 답했다.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귀를 씻고자 함이요, 돌로 양치질을 하겠다는 것은 이를 닦고자 함일세."
(출전: 《세설신어》)
3. 위개, 평생 기쁘거나 성난 낯빛을 보이지 않다
위개(세마 벼슬을 지냈다)는 늘 인품이 모자란 사람은 너그럽게 용서하고, 일부러 속이려는 것이 아니면 이치로 타일렀다. 그래서 평생 동안 기쁘거나 성난 낯빛을 얼굴에 드러낸 일이 없었다. (출전: 《세설신어》)
4. 배해, 형이 탐내는 새집을 선뜻 내주다
배해(자는 숙칙)가 매우 화려한 집을 새로 지었다. 이사할 때 형과 함께 그 집을 둘러보는데, 침상과 휘장이 반듯하고 창틀과 난간이 아름다워 형이 몹시 부러워하면서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를 눈치챈 배해는 그 집을 형에게 내주어 살게 했다. (출전: 《하씨어림》)
5. 육기, 낙양에서 고향의 대숲을 그리워하다
육기(평원내사 벼슬을 지냈다)가 낙양에 있을 때의 일이다. 여름날 문득 고향 집 동쪽 대나무 밭에서 술을 마시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벗 유보에게 말했다.
"고향 생각이 간절하네."
(출전: 《세설신어》)
6. 유량, 늙은 나도 이곳에 오니 흥이 인다고 말하다
유량(태위 벼슬을 지냈다)이 무창 땅에 있을 때의 일이다. 가을밤 풍경이 맑고 서늘하여, 그 밑에서 일하던 은호와 왕호지 등 젊은 관원들이 누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 복도에서 엄정한 발소리가 들려오니, 모두 틀림없이 유량이라 생각했다.
조금 있으니 유량이 시종 십여 명을 데리고 걸어서 왔다. 여러 사람이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 하자 유량이 천천히 말했다.
"이 늙은이도 이곳에 오니 흥이 이는구나!"
하고는 접이의자에 걸터앉아 젊은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훗날 왕희지(자는 일소)가 이 이야기를 승상 왕도에게 전하니 왕도가 말했다.
"원규(유량의 자)가 요즘은 풍모가 조금 예전만 못하구나."
왕희지가 말했다.
"그래도 속세를 벗어난 풍류만큼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출전: 《세설신어》)
7. 사안, 지둔 스님에게 외로운 마음을 전하다
사안(자는 안석)이 고승 지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란 마치 길손과 같아서, 지난날의 풍류와 즐거웠던 일들이 다 사라지고 하루하루 적적하게 지내다 보니 일마다 서글퍼집니다. 그대가 와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이 심정을 씻어 준다면, 하루를 살아도 마치 천 년을 사는 것 같겠습니다."
(출전: 《소창청기》)
8. 유진장, 바람과 달을 보면 벗이 떠오르다
유진장(단양윤 벼슬을 지냈다)은 이렇게 말했다.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을 보노라면 문득 현도(벗 허순의 자)가 생각나는구나."
(출전: 《세설신어》)
9. 사안, 왕수령을 숲과 못에서 함께 노닐 만한 사람이라 칭찬하다
사안(태부 벼슬을 지냈다)이 왕수령을 이렇게 칭찬했다.
"사주(왕수령을 가리킨다)는 함께 숲과 못에서 노닐 만한 사람이다."
(출전: 《세설신어》)
10. 사안, 죽림칠현 같은 사람을 만나면 손잡고 대숲으로 들어가다
사안이 예장 땅을 지나다가, 만일 옛 죽림칠현(위나라 말엽 속세를 벗어나 대숲에서 어울려 놀던 일곱 선비들)과 같은 풍모를 지닌 사람을 만나면 그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대숲으로 들어가곤 했다. (출전: 《세설신어》)
11. 환이, 노랫소리에 갈수록 정이 많아지다
환이(자는 자야)는 맑고 우아한 노랫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감탄했다. 이 말을 들은 사안이 말했다.
"자야는 갈수록 더욱 정이 많아지는구나."
(출전: 《세설신어》)
12. 곽박과 완부, 시 한 구절로 정신을 초탈하게 하다
곽박(자는 경순)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 없고, 흐르지 않는 시내 없네."
완부는 이렇게 읊었다.
"깊은 물 높은 봉우리 쓸쓸하기 그지없어,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구나."
이 구절들을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문득 정신이 속세를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출전: 《세설신어》)
13. 대규, 가난한 근심을 이기지 못한 아우와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 형
대규(자는 안도)가 동산에서 조용히 지조를 닦고 있는데, 그의 아우는 공을 세우려 했다. 사안(태부)이 말했다.
"그대들 형제는 어찌 이리도 뜻이 다른가?"
아우 대녹이 대답했다.
"저는 가난의 근심을 이기지 못한 것이요, 형님은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신 것입니다."
(출전: 《세설신어》)
14. 왕공, 벗의 청아한 모습을 서리 맞은 오동나무에 견주다
왕공이 왕침(건무 벼슬을 지냈다)과 매우 다정하여 만날 때마다 서로를 그리워했다. 한번은 왕공이 서울 어귀의 사당(활쏘기를 익히던 곳)에 이르렀는데, 마침 맑은 서리가 내리고 오동나무에 새순이 돋고 있었다. 왕공이 이를 보고 말했다.
"왕대(왕침을 가리킨다)는 본디 저 오동나무처럼 맑고 우아한 사람이었지."
(출전: 《세설신어》)
15. 지둔, 산을 사서까지 은거하려 하다
지둔(고승으로, 자는 도림이다)이 사람을 시켜 승려 축법심에게 인산이라는 산을 사라고 권했다. 그러자 축법심이 말했다.
"나는 옛 은자 소부와 허유가 산을 사서 숨어 살았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소."
(출전: 《세설신어》)
16. 도연명, 논물 소리가 스승보다 낫다고 말하다
도연명이 한번은 논의 물소리를 듣고 지팡이에 의지해 한참을 듣다가 이렇게 탄식했다.
"벼는 벌써 이삭이 패고 푸른빛이 사람의 옷까지 물들이는구나. 시시각각 이 소리가 가슴속 가시를 씻어 주니, 이 물소리가 우리 스승이나 어른들의 가르침보다 낫구나."
(출전: 《지비록》)
17. 도홍경, 벼슬을 놓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말하다
도홍경(자는 통명)이 자기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귀한 사람의 크고 화려한 집을 보면, 비록 그것이 화려하고 즐거운 줄은 알아도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높은 바위를 바라보거나 큰 못을 내려다볼 때는, 비록 그곳에 오르거나 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늘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또 예전 영명 연간에 벼슬길에 나서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만약 그때 뜻대로 되었더라면 어찌 오늘처럼 지낼 수 있었겠는가. 이는 내 몸에 신선이 될 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세상 돌아가는 형세가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이다."
(출전: 《지비록》)
18. 도홍경, 성품대로 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 말하다
도홍경은 또 이렇게 말했다.
"시골에서 편히 쉬고 교외에서 조용히 살며 한결같은 뜻을 지키는 것은, 감히 영화를 업신여기거나 세속을 비웃어 스스로 고상한 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타고난 성품대로 구김살 없이 살며 벼슬하지 않아 한가로움을 얻으니, 나무하고 물 긷는 일에도 즐거움이 넘치고 소나무를 베어 삽주 뿌리를 구워 먹어도 기쁨이 넘친다. 이 밖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출전: 《지비록》)
19. 왕찬지, 벼슬을 살면서도 은자처럼 지내다
왕찬지는 병조의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조정의 세도가들을 한 번도 찾아가 인사한 일이 없었다. 강감이 이렇게 말했다.
"왕찬지야말로 오늘날의 '조정에 몸담은 은자'라 할 만하다."
(출전: 《지비록》)
20. 원찬, 부소의 조용한 집을 두고 감탄하다
원찬은 늘 부소의 집을 지날 때마다 이렇게 감탄했다.
"그 집을 지나며 보면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게 조용한데, 문을 열어 보면 그가 방 안에 있으니, 이 어찌 밝은 현자가 아니겠는가."
(출전: 《하씨어림》)
21. 사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 삼다
사혜는 아무나 함부로 사귀지 않아 잡스러운 손님이 그 집 문을 드나드는 일이 없었다. 이따금 홀로 술을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내 방을 드나드는 것은 오직 맑은 바람뿐이요, 나와 마주 앉아 술을 나누는 것은 오직 밝은 달뿐이다."
(출전: 《하씨어림》)
22. 왕사미, 산수 좋은 곳에서 여생을 마치려 하다
왕사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공현과 낙수 일대를 떠돌았다. 그곳 산수가 마음에 들어 범양의 노원명, 거록의 위계경과 뜻을 함께하기로 하고 천릉산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여생을 마칠 생각이었다. (출전: 《하씨어림》)
23. 왕희, 사람들이 '속세 밖의 벼슬아치'라 부르다
왕희(자는 숙랑)는 한가로운 이야기를 잘하고 욕심이 적었다. 정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고상한 지조를 잃지 않았다. 좋은 날 좋은 경치를 만나면 노래와 시를 읊으며 노닐었고, 산과 물을 찾아다니며 이야기와 웃음으로 소일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두고 '속세 밖의 벼슬아치'라 불렀다. (출전: 《하씨어림》)
24. 소명태자, 풍악 대신 옛 시구를 읊다
소명태자(양 무제의 맏아들로, 이름은 통이다)가 여러 현사들과 함께 현포지에서 뱃놀이를 했는데, 사람들이 마땅히 여악(잔치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기녀들)을 갖추어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태자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좌사(자는 태충)가 지은 '초은시'의 다음 구절만을 읊었다.
"하필 풍악이 있어야 하는가, 산수에는 절로 맑은 소리가 있는 것을."
(출전: 《하씨어림》)
25. 왕적, 매미와 까마귀 소리로 산의 고요함을 그리다
왕적(자는 문해)이 회계 땅에 있을 때 약야계에 이르러 이런 시를 지어 읊었다.
"매미 우는 소리에 숲은 더욱 고요하고, 까마귀 울어대니 산은 더욱 깊구나."
사람들이 이를 매우 뛰어난 시구라 여겼다. (출전: 《하씨어림》)
26. 중장자광, 서른 해 동안 남의 것을 먹지 않다
중장자광은 북쪽 물가에서 삼십 년을 숨어 살았는데, 자기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왕적(자는 무공)이 그 깨끗한 지조를 아껴 가까운 곳으로 옮겨 살게 하고 친하게 지냈다. (출전: 《하씨어림》)
27. 반사정, 소나무와 샘물만 있으면 족하다 답하다
반사정이 숭산의 소요곡에 살 때, 고종이 그를 불러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반사정이 답했다.
"신이 바라는 것은, 무성한 소나무와 맑은 샘물이 이 산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뿐입니다."
(출전: 《하씨어림》)
28. 하지장, 하루만 못 봐도 그리워지는 벗
하지장은 도량이 넓고 소탈하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고모의 아들인 육상선과 사이가 좋았는데, 육상선이 일찍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계진(하지장의 자)의 맑은 이야기와 풍류를, 내가 하루만 보지 못해도 문득 옹졸한 마음이 생기고 만다."
(출전: 《하씨어림》)
29. 이백, 신선과 같은 기상을 지니다
당나라 현종이 이백을 편전으로 불러 만나 보니, 정신과 기운이 맑고 높으며 밝고, 그 남다른 기상이 마치 신선과 같았다. (출전: 《하씨어림》)
30. 이백, 술 깬 뒤 꽃그림자로 옷깃을 씻다
미주 땅의 상이산에는 이백이 남긴 이런 시가 있다.
"달빛 아래 드러누워 술이 깨고 나니, 꽃그림자 어지러이 옷깃에 떨어졌네."
이 구절이야말로 마치 맑은 옥병에 넋을 씻어 낸 듯하다고 할 만하다.
31. 이백, 화산에 올라 하늘에 시를 묻고 싶어 하다
이백이 화산의 낙안봉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너무나 높아서 숨 쉬는 기운이 하늘까지 닿는데, 사조(남조 제나라의 시인)의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구를 가지고 와서, 머리를 긁적이며 저 푸른 하늘에 물어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출전: 《하씨어림》)
32. 우적, 산을 사겠다는 편지에 선뜻 거금을 내주다
우적이 양양 땅을 다스리고 있을 때, 여산의 부재라는 사람이 편지를 보내 산을 사고 싶다며 돈 백만 냥을 빌려 달라고 청하자, 우적은 즉시 그 돈을 내주었다. (출전: 《하씨어림》)
33. 백거이, 스스로 자기 묘비명을 짓다
백거이(자는 낙천)가 스스로 자기 묘비명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밖으로는 유학의 가르침으로 몸을 닦고, 안으로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욕심을 덜어 내며, 곁으로는 그림과 역사책, 산과 물, 거문고와 술과 노래로 뜻을 즐겁게 했다."
(출전: 《백씨장경집》)
34. 사마광, 잠시 머물다 가는 별장에서 초탈함을 배우다
사마광(온공에 봉해졌다)이 독락원을 지어 아침저녁으로 그곳에서 쉬었다. 그러다 숭산의 첩석계를 구경하고는 마음에 들어, 그 근처 땅을 다시 사서 별채를 지었다. 그러나 갈 때마다 며칠을 채 못 머물고 돌아오곤 하여 늘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이에 이런 시를 지었다.
"잠시 왔다 가곤 하니 도리어 손님 같고, 돌아가 버리니 내 집 같지가 않네."
사마광이야말로 참으로 가고 머무는 데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출전: 《저기실》)
35. 범진, 꽃잎 떨어진 술잔으로 벌주를 내리다
범진(촉 땅에 봉해졌다)이 허하 땅에 살 때, 집 근처에 큰 집을 짓고 '장소당'이라 이름 붙였다. 그 앞에는 찔레꽃 덩굴을 올린 시렁이 있었는데, 높이와 너비가 손님 수십 명을 앉힐 만했다. 해마다 늦봄 꽃이 활짝 필 때면 그 아래에서 손님들에게 잔치를 베풀며 이렇게 약속했다.
"만일 꽃잎이 술잔 속에 떨어지면 그 사람은 큰 술잔으로 한 잔씩 마셔야 합니다."
담소를 나누는 사이 산들바람이 지나가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술잔에 어김없이 꽃잎이 떨어졌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꽃잎이 날아드는 모임'이라 불렀는데, 사방에 이 이야기가 전해져 모두들 아름다운 이야기로 여겼다. (출전: 《패해》)
36. 소식, 형에게 소박한 즐거움을 이야기하다
소식(호는 동파)이 형 소자명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형제도 이제 다 늙었습니다. 마땅히 때때로 즐거움을 누려야지 세상일에 마음 쓸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즐긴다는 것 역시 세속에서 말하는 그런 즐거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속이 한 점 티끌 없이 탁 트이기만 하면, 천지 사이의 산천과 풀과 나무, 벌레와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 줄 것입니다."
(출전: 《소문충공집》)
37. 소식, 문장을 뜻대로 지어낼 때가 가장 큰 즐거움이라 말하다
소식(자는 자첨)이 벗 유계손(자는 경문)에게 말했다.
"나는 평생 그다지 기쁜 일이 없었네. 다만 문장을 지을 때 뜻대로 써 내려가다가 문맥이 여러 갈래로 변화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다 담아낼 수 있게 되면, 세상에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네."
(출전: 《장공외기》)
38. 산수를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조사서(자는 계인)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에게는 평생의 소원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 모든 훌륭한 사람을 다 사귀어 보는 것이요, 둘째는 이 세상 모든 좋은 책을 다 읽어 보는 것이요, 셋째는 이 세상 경치 좋은 산과 물을 다 구경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것을 어찌 다 이룰 수 있겠습니까. 다만 가는 곳마다 헛되이 지나치지만 않으면 됩니다. 무릇 산에 오르고 물가를 거니는 일은 도리의 실마리를 넉넉히 일깨워 마음을 활달하게 하니, 그 유익함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조사서가 말했다.
"산수를 구경하는 것 역시 책을 읽는 것과 같아서, 보는 사람의 취향이 높은지 낮은지를 그대로 드러내 줍니다."
(출전: 《학림옥로》)
39. 유여려, 산수의 즐거움은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의 몫이라 말하다
유여려가 이렇게 말했다.
"부귀를 누리는 선비는 강산이나 소나무, 대나무의 즐거움에 뜻을 두지 못한다. 산천의 기이한 경치, 안개와 구름, 대나무와 바위, 시와 술, 바람과 달 같은 것들은 오직 세상에서 뜻을 펴지 못한 사람만이 비로소 그 즐거움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천지 사이에 있는 웅장하고 예사롭지 않은 경치는, 하늘이 어진 사람에게 내려 그 답답한 마음을 풀어 주도록 한 것이다."
(출전: 《지비록》)
40. 벼슬의 즐거움은 아껴 주지 않아도, 산수의 즐거움은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손적이 추밀 벼슬의 호송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공옥이 한번 떠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으니, 문득 굽이진 못조차 이미 메워져 평탄해져 버린 듯한 탄식이 이는구나."
내가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높은 벼슬의 즐거움은 조물주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 굳이 아끼지 않지만, 산속 골짜기를 즐기는 것만큼은 사람에게 선뜻 내주지 않는다."
이제 와 보니, 손적의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을 더욱 믿게 되었다.
41. 문천상, 초가삼간에서 소를 타고 노래하다
문천상(남송의 승상을 지냈다)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는 세 칸짜리 초가집이 첩첩산중 깊은 곳에 있어, 책을 빌려 오거나 술을 사 오는 일 말고는 나랏일이든 사삿일이든 그 어느 것도 털끝만큼도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그저 백 이랑 밭에 소나무를 심어 놓고, 날마다 그 사이에서 소를 타고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출전: 《문산집》)
42. 조맹부, 황제가 신선이라 부르다
조맹부(문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는 용모가 훤칠하고 예의가 반듯했다. 그가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대궐 뜰이 환하게 빛나는 듯했으므로, 원나라 세조가 늘 그를 눈여겨보다가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신선이로다."
(출전: 《하씨어림》)
43. 이우, 나비 암자에 장자와 진단을 모시고 싶어 하다
이우가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공무에 바쁘다 보니, 아직 한 번도 꿈속 낙원에 가서 실컷 놀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낙양에 물과 대나무가 좋은 땅을 사서 그곳에 '나비 암자'라는 작은 집을 지은 다음, 세상일과는 모두 인연을 끊고 그 안에 살면서, 암자 가운데에 마땅히 장자를 첫 번째 스승으로 모시고 진단을 그 곁에 함께 모시고 싶다. 그러나 나처럼 바쁜 사람은 그런 일에 좀처럼 몰두하기가 어렵구나."
(출전: 《장설소췌》)
44. 전복, 경치만 보고 몰래 돌아가다
전복(호는 학탄)이 휴가 중에 있을 때, 그의 제자 하나가 유양 지방의 태수로 있으면서 사람을 보내 그를 맞이하려 했으나 기한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뒤늦게 그가 한번 오자 그 고을의 큰 장사치들이 다투어 찾아와 인사를 올리니, 전복이 말했다.
"병든 이 몸이 이곳 광릉의 물결을 보러 온 것은 그저 경치를 구경하고, 아울러 경화라는 꽃 소식을 한번 알아보려는 것일 뿐, 호강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돌아가 버렸다. 태수는 그를 만나려 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출전: 《견문수옥》)
45. 육심, 조정에서 물러나면 문 닫고 참선하다
육심(문유라는 시호를 받았다)이 조정 벼슬아치에게 말했다.
"나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고지식한 사람이라, 무슨 일에 실패하더라도 별로 뉘우치지 않는다. 요즘 한 가지 비법을 터득했는데, 조회에 나갔다가 남는 시간에는 문을 닫고 향을 피운 뒤 조용히 앉아 참선을 한다. 이때는 책마저 모두 치워 버리는데, 이렇게 하니 참으로 얻는 것이 크다."
(출전: 《견문수옥》)
46. 고숙사, 산속에 편히 누워 세상 밖의 명성을 피하다
고숙사(호는 소문)가 말했다.
"나는 산속 깊이 편히 누워 세상 밖의 헛된 이름을 피하며 지낸다. 농사지어 나라에 세금을 바치고, 땔나무를 해다 어버이를 봉양하며, 이따금 햇곡식이 익어 농가가 넉넉해지면 살진 양 새끼를 삶아 귀신께 바치고 마른 고기를 구워 벗을 부른다. 도롱이와 삿갓은 방문에 걸려 있고 두레박은 허공에 매달려 있는데, 탁주를 서로 불러다 마시며 장구 치고 노래 부르니, 이 또한 내 스스로 유쾌히 여기는 바요 옛사람들도 이런 삶을 허여한 바였다."
(출전: 《지비록》)
47. 왕정진, 옛 은자와 충신의 극단을 모두 경계하다
왕정진이 벗 여무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숲과 샘 사이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지만, 위로는 옛사람을 그대로 본받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세속과 뜻을 같이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차라리 소활하고 게으른 짓은 할지언정 감히 미친 짓은 못하고, 못나고 어리석은 짓은 할지언정 감히 못된 짓은 못한다. 옛 죽림칠현(산도, 왕융, 유령, 완적, 완함, 혜강, 상수, 이렇게 위나라 말엽 대숲에서 어울려 놀던 일곱 선비)의 풍모는 높이 살 만하지만 그 지나친 방탕함은 부끄럽게 여기고, 굴원의 충심은 갸륵하지만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진 것은 지나쳤다고 여기며, 범려(월나라를 도운 뒤 이름을 바꾸고 세상을 떠돈 인물)가 벼슬을 버리고 떠난 것은 슬기롭다 여기지만 그가 뒤에 이룬 큰 부는 더럽게 여긴다.
경치가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면 술을 마시며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만 술도 양껏 마시지 않고 노래도 끝까지 다 부르지 않으며, 몸이 피곤해지면 드러눕지만 꿈은 꾸지 않는다. 세속이 지겹도록 싫지만 그렇다고 마음 붙일 데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다시 노장의 사상을 깊이 궁구하여 타고난 성명을 기른다.
흥이 일면 강호에 나가 노닐기를 좋아하지만 물이 크게 불어나면 배를 띄우지 않고, 구름 낀 산봉우리를 좋아하지만 이끼 낀 위태로운 비탈길이면 물러서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것이 내 삶의 대략이다."
(출전: 《지비록》)
48. 막시룡, 대숲 그림자만 보아도 그 아래 살고 싶어지다
막시룡(자는 정한)이 말했다.
"나는 평소 이렇다 하게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시냇가 대숲 그림자가 작은 창을 가리고 있는 풍경을 볼 때마다, 문득 그 아래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출전: 《명세설신어》)
49. 육궁보, 자기 초상화에 벼슬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을 적다
육궁보(평천이라 불렸다)가 자기 초상화에 이런 글을 써서 여러 절에 두었다.
"조정에 둘 만한 문장도 없고, 공신각에 걸릴 만한 공적도 없으니, 그저 그림 속의 늙은 거사가 되어 향산(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만년에 은거했던 산)과 맑은 인연이나 맺고 싶을 뿐이다."
(출전: 《암서유사》)
50. 문수승, 얼음물로 차를 끓이며 세속의 먼지를 잊다
문수승(박사 벼슬을 지냈다)이 말했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고여유(사인 벼슬을 지냈다)의 벼루 다듬는 서재에 갔다가, 밝은 창가 깨끗한 책상에 소나무 가지와 매화꽃을 꺾어 꽂아 둔 것을 보았고, 궁궐 개천의 얼음을 떠다가 차를 끓여 마셨다. 또 새로 얻은 기이하고 고상한 오리 모양의 솥에 궁중에서 나온 용연향(향유고래에서 얻는 귀한 향료)을 태우니, 마치 세상 밖에 있는 듯 황홀했다. 그래서 서울 바닥에 먼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말았다."
(출전: 《소창청기》)
51. 손일원, 신선을 닮은 풍모로 노장 사상을 즐겨 이야기하다
손일원은 노장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풍성한 얼굴에 흰 수염을 나부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선을 보는 듯했다. (출전: 《명세설신어》)
52. 황도월, 눈빛과 눈빛이 촛불처럼 마주 비치다
황도월이 서울에 머물 때, 황승원(자는 이상)의 누각에서 술을 마시며 서산에 내린 눈을 구경한 일이 있었다. 이때 황도월이 누각 난간에 기대어 술을 마셨는데, 그의 눈빛이 흰 눈빛과 서로 어우러져 마치 촛불처럼 번뜩였다. 그러고는 격정에 찬 마음을 담아 길게 휘파람을 부니, 그 소리에 온 산과 물이 찢어질 듯했다. (출전: 《명세설신어》)
53. 서익손, 눈과 발만 있으면 어디든 그 산천의 주인이 되다
서익손(자는 장유)이 말했다.
"나에게는 눈도 있고 발도 있으니, 내가 갈 수 있는 곳에 경치 좋은 산천이 있다면 곧바로 찾아간다. 그러면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산천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출전: 《명세설신어》)
54. 왕백곡, 남는 돈으로 책을 사다
왕백곡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은 돈으로는 그저 책을 살 뿐이다."
그러나 돈이 남기를 기다렸다가 책을 산다면, 세상에 책 살 사람이 없어 눈이 벌써 메말라 버렸을 것이다. 나 역시 생활비를 아껴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곤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찍이 '돈을 아껴 책을 샀다'고 한 말과 같다. (출전: 《미공비급》)
55. 진계유, 게으름도 맑은 일이 될 수 있다
진계유(호는 미공)는 게으름을 맑은 일로 여겼는데, 정작 그의 높은 집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여 조금도 게으른 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일찍이 오대 시대 남당의 야사를 읽다가, 오나라 땅 합령이라는 도사의 말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람이 만일 한가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바로 게으른 것이요, 만일 부지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한가한 것이 아니다."
진계유는 바로 이 말의 뜻을 깊이 터득한 사람이었다. (출전: 《소창청기》)
56. 산비를 기다리는 노인의 뜰에서 시를 짓다
내가 일찍이 어느 산골 이웃 노인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고운 꽃이 붉게 피어 문에 비치는데 노인은 손자와 함께 볕을 쬐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까운 성안에 수레와 말이 오가는 시끄러움이 있는 줄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하물며 멀리 서울의 어지러운 먼지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내가 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소나무 아래 작은 사립문 하나 열려 있고, 마루 앞 밭두둑엔 온갖 약초 둘러 심었네. 늙은이는 술동이 대신 손자를 품에 안았는데, 꽃에 물을 주려는 듯 산에는 비가 오려나."
(출전: 《미공비급》)
57. 내가 옛 은자들처럼 살지 못하는 네 가지 이유
옛 은자들은 흔히 몸소 농사를 지었지만 나는 몸이 약하니 이것이 첫 번째로 그들처럼 하지 못하는 까닭이요, 옛 은자들은 흔히 낚시질과 사냥으로 살았지만 나는 산 목숨 죽이는 것을 꺼리니 이것이 두 번째로 하지 못하는 까닭이요, 옛 은자들은 흔히 넓은 밭과 수백 그루 뽕나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가난하니 이것이 세 번째로 하지 못하는 까닭이요, 옛 은자들은 흔히 맹물만 마시고 새끼줄로 허리띠를 삼았지만 나는 심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니 이것이 네 번째로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조용히 살면서 변변찮은 밥을 먹으며 글을 쓰는 것뿐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은 결코 옛 현인을 함부로 비평하거나 논박해서는 안 되고, 다만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말할 뿐 남의 잘못을 굳이 바로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출전: 《미공비급》)
58. 갈홍과 소식,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을 이야기하다
갈홍(자는 치천)은 이렇게 말했다.
"다시 고향에 돌아와 보니 남녀노소는 모두 낯선 얼굴로 바뀌었는데, 오직 푸른 물과 푸른 산만은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았구나."
소식(호는 동파)은 이렇게 말했다.
"다시 여산을 찾으니, 십구 년 사는 동안 골짜기와 초목은 옛 모습을 잃었고, 서현사와 개선사의 아름다운 경치도 절반 가까이 사라졌으니, 세상이 덧없다는 이치가 참으로 그러하다. 그러나 산속에서 도를 함께 논하던 벗들과의 정만큼은 예전과 다름없으니, 도는 세월을 뛰어넘는다는 말이 참으로 빈말이 아니었다."
이 두 사람의 말을 곱씹어 보노라면 문득 동산과 숲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인다. (출전: 《지비록》)
59. 옛사람의 기상을 보려면 가슴속이 맑은지를 살펴야 한다
옛사람의 기상을 보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그 가슴속이 얼마나 정결한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황헌(자는 숙도)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쩨쩨하고 인색한 마음을 다 사라지게 하고, 노중련(전국 시대 제나라의 은자)과 이백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명예와 이익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만든다."
이 두 경지는 스스로 깊이 체득하여 그 핵심을 얻어야만 바랄 수 있는 것이다. (출전: 《미공비급》)
60. 홍애, 흰 나귀를 타고 세상과 어울리지 못함을 노래하다
홍애라는 사람은 흰 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그 나귀의 이름은 '쌓인 눈'이었다. 그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낮은 가락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높은 마음은 도리어 비난을 받네. 세상 풍속의 뜻을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나더러 대체 어떤 사람이 되라는 것인지."
또 황정견(호는 산곡)은 자기 초상화에 이런 시를 적었다.
"전생에는 한산자(당나라 때의 은자이자 시인. 사람들이 찾아오자 몸을 숨겨 바위굴로 들어가 버렸다는 인물이다)였고, 후생에는 황노직(황정견 자신의 자)이 되었는데, 자못 속세 사람들의 번뇌를 마주하니, 차라리 저 돌벽 속으로나 들어가고 싶구나."
이를 두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옛사람의 말에 "가장 높은 선비는 마음의 문을 닫고, 중간 정도의 선비는 입을 닫고, 가장 낮은 선비는 대문을 닫는다"라고 했으니, 나 같은 사람은 그 중간이나 마지막 경지라도 본받는다면 큰 허물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61. 오균, 매화와 대숲에 둘러싸인 은거지를 그리다
오균(자는 숙상)이 벗 고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병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돌아와 숨어 지낼 곳을 찾다가, 매계의 석문이라는 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삼엄하게 솟은 바위벽은 안개에 자욱이 휩싸이고, 외로운 봉우리는 해를 찌를 듯 솟아 있으며, 그윽한 산등성이는 구름을 머금은 듯하고 깊은 골짜기는 비취빛을 쌓아 놓은 듯합니다. 매미 울고 학이 울며, 굽이치는 물소리와 원숭이 울음소리가 또렷이 서로 어우러져 늘 조화를 이룹니다. 제가 본디 그윽한 곳을 좋아했으므로 마침내 이곳에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다행히 이곳에는 국화와 대나무가 풍성하니, 참으로 이 산골짜기의 덕을 톡톡히 입은 셈이라 그저 만족스러울 따름입니다."
(출전: 《지비록》)
62. 미불과 은중문과 왕침, 저마다 다른 흥취에 마음을 붙이다
미불(자는 원장)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문득 생각이 둔해졌고, 은중문은 사흘만 《도덕경》을 읽지 않으면 혀가 굳은 듯했으며, 왕침(자는 불대)은 사흘만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편치 않았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저마다 흥취를 붙인 곳이 달랐으나,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이름만큼은 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환히 빛나는 듯하다. (출전: 《미공비급》)
63. 이백과 두보, 시로 호걸의 기개를 드러내다
이백은 이렇게 읊었다.
"하늘이 나에게 재주를 내렸으니 반드시 쓰일 데가 있을 것이요, 황금이란 다 써서 흩어져도 다시 모을 수 있는 것을."
두보(자는 자미)는 이렇게 읊었다.
"내 사람됨이 좋은 글귀를 찾는 버릇이 있어, 시구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으리."
호걸이라 할 만한 사람이라면 이 시들에 담긴 뜻을 마음에 새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출전: 《소창청기》)
64. 세속을 벗어난 벗을 사귀기는 예로부터 쉽지 않다
세상의 평범한 벗이라면 쉽게 우정을 맺을 수 있지만, 오직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만은 남과 잘 어울리는 일이 드물다. 이백(호는 청련거사)은 이렇게 읊었다.
"홀연히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이가 떠오르는구나."
두보(공부원외랑 벼슬을 지냈다) 역시 이렇게 읊었다.
"그대에게 도인의 풍모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네."
이를 보면, 속세를 벗어난 벗을 사귀는 일은 예로부터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65. 짐승의 마음까지 내 마음으로 삼으면 못 견딜 것이 없다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넓고 넓어서, 설령 이치에 어긋나게 구는 사람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짐승의 마음까지도 내 마음으로 삼아 아무 막힘 없이 너그럽게 대한다면, 온갖 고난을 견뎌 내어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위개(세마 벼슬을 지냈다)는 이렇게 말했다.
"남의 단점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용서해야 할 것이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냥 놓아주어야 한다."
이 두 마디 말을 마음에 새긴다면, 세상에 나가 행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가까이 여기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66. 소식, 달 밝은 밤 벗과 함께 뜨락을 거닐다
원풍 육년 시월 보름날 밤, 막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밝은 달빛이 방 안까지 비쳐 들기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으나, 생각해 보니 함께 노닐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승천사로 가서 장회민을 찾았더니, 그도 마침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뜨락을 거니는데, 뜨락이 마치 물이 고인 호수 같아서 물풀이 이리저리 어우러진 듯 보였다. 알고 보니 그것은 대나무와 잣나무 그림자가 달빛 아래 서로 엇갈려 있는 것이었다.
어느 밤인들 달이 없겠으며 어느 곳인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겠는가마는, 다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로운 정취를 지닌 사람이 드물 뿐이다. (출전: 《소문충공집》)
67. 소식, 겨울밤 등불 아래에서 작은 흥취를 느끼다
한 해가 다하려 하고 비바람이 스산한데, 대나무로 엮은 집의 종이 바른 창에 등불이 푸르게 빛나니, 이때야말로 참으로 자그마한 흥취가 이는 순간이다. (출전: 《소문충공집》)
68. 소식, 강산의 풍월은 한가로운 사람의 것이다
강과 산에 이는 바람과 달은 본디 정해진 주인이 없으니,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야말로 그 주인이다. (출전: 《소문충공집》)
69. 눈에 띄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제아무리 화려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며,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라면 제아무리 시끄러운들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런 까닭에 도를 닦는 사람은 산에 들어갈 때 그곳이 충분히 깊지 않을까 걱정하고, 숲에 들어갈 때 그곳이 충분히 은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법이다. (출전: 《소창청기》)
70. 대울타리 안에 숨어 살아야만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날을 만나 즐거운 마음이 일면, 그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옛사람의 시 한 수를 읊조리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이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회포를 풀고 시를 읊을 수 있는 것이니, 어찌 굳이 대울타리 두른 곳에 숨어 산 뒤에라야 그 정취가 내 것이 되겠는가. (출전: 《옥호빙》)
71. 목침에 기대어 누운 채로도 세상을 등질 수 있다
향을 피우고 목침에 기대어 누우면 세상일이 모두 꿈속처럼 아득히 사라지고, 다가올 일조차 이미 지금 이 순간 속에 숨어 있는 듯하다. 이만하면 '누운 채로 은거한다'고 할 만하니, 굳이 땅속에 토굴을 파고 산에 숨어 사는 것이 오히려 번거로운 일임을 알겠다. (출전: 《암서유사》)
72. 청담을 즐기되 명성을 좇는 폐단은 경계해야 한다
진나라 사람들은 명성 얻기를 좋아하여 장자의 말을 늘 이야깃거리로 삼으면서 그것을 '청담'이라 불렀다. 나 역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지만, 딱히 무엇을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없다. 그 말이 맑아도 좋고 속되어도 좋으며, 고상한 말이라도 좋고 비속한 말이라도 좋으며, 우아한 것이라도 좋고 질박한 것이라도 좋으며, 신선 이야기라도 좋고 불교 이야기라도 좋으며, 귀신 이야기라도 좋고 기이한 이야기라도 좋다. 그러나 이는 모두 마음속 울적함을 그것으로 삭이며 세월을 보내려는 것일 뿐이다.
다만 저 진나라 사람들의 경우, 그 폐단이 결국 조정과 여염집에까지 번져 지나친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니, 그럴 때는 얼른 옛사람 이건훈이 옥으로 만든 경쇠를 서너 차례 쳐서 스스로를 일깨웠던 것처럼, 마땅히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출전: 《소창청기》)
73. 경계에 따라 정취를 찾고 정취에 따라 운치를 찾는다
산꼭대기에는 모름지기 샘물이 있어야 하고, 샛길에는 모름지기 대나무가 있어야 한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술이 없어서는 안 되고, 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없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경계에 따라 정취를 찾고, 정취에 따라 운치를 찾는다는 말이다. (출전: 《소창청기》)
74. 무엇을 즐기든 그에 어울리는 벗이 있어야 한다
꽃을 감상할 때는 호탕한 벗과 어울려야 하고, 기녀를 볼 때는 담박한 벗과 어울려야 하며, 산에 오를 때는 세속을 벗어난 벗과 어울려야 하고, 물에 배를 띄울 때는 마음이 넓은 벗과 어울려야 하며, 달을 볼 때는 시원스러운 벗과 어울려야 하고, 눈을 볼 때는 아름다운 벗과 어울려야 하며, 술을 마실 때는 운치 있는 벗과 어울려야 한다. (출전: 《미공비급》)
75. 세상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소리는 꽃 파는 소리다
소리의 운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흔히 시냇물 소리, 골짜기 물소리, 댓잎 스치는 소리, 솔바람 소리, 산새 소리, 그윽한 골짜기에서 울려오는 소리,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꽃잎 떨어지는 소리, 낙엽 지는 소리를 꼽는다. 이것들은 모두 천지가 빚어낸 맑은 소리로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따진다면, 마땅히 저잣거리에서 들려오는 꽃 파는 소리를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출전: 《소창청기》)
한정록 제7권 · 숭검
출처: 한정록 제7권, 숭검
배경: '숭검'은 '검소함을 높이 받든다'는 뜻으로, 한정록의 여러 항목 가운데 이 권에 해당하는 주제다. 여기에는 옛 중국의 재상과 관리, 학자와 선비들이 높은 지위와 부유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았던 일화들을 모아 놓았다. 춘추 시대의 안자부터 명나라의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폭넓게 아우르며, 검소함이야말로 인격을 닦는 길이자 재앙을 멀리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여러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거듭 강조된다.
일러두기: 이 권에 실린 이야기는 허균이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중국 책에서 뽑아 온 것이므로, 이야기 끝에 적힌 책 이름은 허균이 인용한 원래의 출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인물의 자(성인이 되면서 따로 지어 부르던 이름), 호(따로 즐겨 부르던 별칭), 시호나 봉호(죽은 뒤나 공로에 따라 나라에서 내린 이름)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에서는 되도록 본이름을 앞세우고 나머지는 괄호 안에 풀어서 밝혔다. 이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 기존 국역본을 참고하여, 그 뜻을 오늘의 쉬운 한글 문장으로 다시 옮긴 것이다.
안자 — 여우 갖옷 한 벌로 삼십 년
안자는 제나라의 재상으로 있으면서 여우 가죽으로 만든 갖옷 한 벌을 삼십 년 동안이나 입었다. — 《권계총서》에서
손숙오 — 재상이 되고도 다 낡은 집에 살다
손숙오는 초나라의 재상인 영윤이 되어서도 사슴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조정에 나갔으며, 그가 살던 집은 띠풀로 지붕을 덮어 비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 《권계총서》에서
백리해 — 피곤해도 수레를 타지 않다
오고대부라 불린 백리해는 아무리 피곤해도 탈것을 타지 않았고, 아무리 더워도 햇빛 가리개를 펴지 않았다. — 《권계총서》에서
(용어) '오고대부'는 백리해의 별명이다. 진나라 목공이 검은 양의 가죽 다섯 장을 값으로 치르고 그를 데려와 재상으로 삼았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소하 — 후손에게 검소함을 물려주다
소하는 외지고 궁벽한 곳에 밭과 집을 마련했으며, 담장이나 집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후손 가운데 어진 자가 나온다면 나의 검소함을 본받을 것이고, 어질지 못한 자가 나오더라도 권세가에게 빼앗길 것이 없을 것이다." — 《권계총서》에서
왕량 — 대사도의 부인이 손수 나무를 하다
왕량은 대사도(한나라 때 교육을 총괄하던 벼슬) 자리에 올라서도 무명옷을 입고 질그릇을 사용했다. 대사도부의 관리인 포회가 볼일이 있어 그의 집에 들렀다가, 대사도의 부인이 무명 치마를 입고 손수 땔나무를 끌며 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 《권계총서》에서
범염 — 솥에서 먼지가 날 정도로
범염(자는 사운)은 청빈하기가 지나쳐서 솥에서 먼지가 날 정도였다. — 《권계총서》에서
범선 — 끝내 사양하다 못해 받은 옷감
범선은 마음씨가 맑고 행동이 검소했다. 한백(예장 태수를 지내 한예장이라 불렸다)이 비단 백 필을 주려 해도 받지 않았고, 반으로 줄여 오십 필을 주어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반씩 줄여 나가 마침내 한 필까지 이르렀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훗날 한백이 범선과 한 수레를 타고 가다가, 수레 안에서 옷감 두 장을 끊어 범선에게 주면서 말했다. "사람으로서 어찌 자기 부인에게 홑치마 하나 없게 할 수 있겠는가." 그제야 범선이 웃으며 받았다. — 《세설신어》에서
도연명 — 벼슬을 버리고 끝내 곡식 맛도 못 보다
도잠(자는 연명)은 매우 대범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진나라와 송나라를 통틀어 으뜸가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가난했던지, 끼니가 떨어지는 일이 잦았고 항아리에는 곡식 한 톨 남아 있지 않았으며, 추울 때도 짧은 옷을 누덕누덕 기워 입고 겨우내 거친 베옷 한 벌로 지냈다. 사는 집도 사방이 쓸쓸하고 햇빛도 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곤궁함이 극심했다고 할 만하다.
그가 팽택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나라에서 내준 밭에 모두 차조를 심게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술에 실컷 취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내가 메벼도 심어야 한다고 굳이 청하므로, 밭을 나누어 절반에는 차조를, 절반에는 메벼를 심게 했다.
그가 스스로 쓴 글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나라에서 내준 밭에서 나오는 이익으로 술이나 마련할 수 있겠거니 하여 벼슬을 구했고, 곡식이 익기만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한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관직에 있은 지 팔십여 일 만에 곧바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으니, 결국 메벼든 차조든 그 맛을 보지도 못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유유간 — 은혜는 이미 넉넉하다며 곡식을 사양하다
유유간(자는 유간)은 조용히 숨어 사는 것을 좋아하여 바깥사람들과 사귀지 않았다. 임천왕이 그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유간을 특별히 아껴 보리 백 섬을 보내 주었는데, 유간이 심부름 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슴이나 노루와 짝하여 나무를 하고, 그것들이 털갈이하며 남긴 털로 옷을 지어 입으며, 해와 달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고, 스스로 농사지어 얻은 것으로 먹고사니, 대왕께서 이미 저에게 베푸신 은혜가 넉넉합니다." 그러고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 《하씨어림》에서
진원용 — 재물보다 자손의 그릇을 믿다
진원용은 집이 대단히 부유했고 책 모으기를 몹시 좋아했지만, 재산을 불리는 일에는 힘쓰지 않았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는 자손이 있다면 전답과 집을 물려주지 않아도 반드시 스스로 장만할 것이고,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손이라면 비록 전답과 집을 물려준다 해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훗날 그의 손자 세 사람이 모두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청빈함을 스스로 지키며 이렇게 말했다. "선대 어른의 이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 《공여일록》에서
이의염 — 지위가 높을수록 집은 검소해야 한다
이의염은 가장이 거처하는 본채가 변변치 않았으므로, 아우 이의진이 형을 위해 집을 지을 재목을 사서 보냈다. 그러나 이의염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의진이 물었다. "말단 관리들도 큰 집을 가지고 사는데, 형님께서는 지위가 높으신데도 어찌 아랫사람처럼 사십니까?"
이의염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옛말에 '일이란 두루 다 좋을 수는 없고, 사물은 다 함께 흥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미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넓은 집에까지 산다면, 훌륭한 덕을 갖춘 사람이 아닌 이상 반드시 재앙을 부르게 된다." 그러고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 《문기유림》에서
이항 — 낡은 난간을 고치지 않은 재상
이항이 집을 지었는데, 봉구문 안쪽 대청 앞은 겨우 말 한 마리가 돌아설 수 있을 정도로 몹시 좁았다. 어떤 사람이 너무 좁다고 하자 이항이 웃으며 말했다. "이 집은 언젠가 자손에게 물려줄 것인데, 재상의 관사로 보면 참으로 좁다고 하겠지만,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자리로 보면 이미 넓은 것이다."
그가 살던 누추한 골목의 집에는 겹문도 없었고 담과 벽도 허물어져 있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마루 앞의 난간이 무너졌는데, 그 아내가 집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고치지 말라고 시켜 이항의 반응을 시험해 보려 했다. 그러나 이항은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보면서도 끝내 아무 말이 없다가, 동생 이유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이런 것으로 내 마음이 움직이겠느냐."
집안사람들이 늘 집을 손보라고 권하면 이항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녹봉도 후하게 받고 이따금 나라에서 내리는 물건도 있으니, 주머니 사정을 따져 보면 집을 꾸밀 만도 하다. 그러나 불경에서도 이 세상은 허망한 것이라 했는데, 어찌 모든 것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겠느냐. 지금 새집을 사서 한 번 수리한다 해도 아침저녁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인데, 어찌 영구히 살기를 바라겠느냐. 새가 숲속 나뭇가지 하나에 깃들듯 그저 스스로 만족할 뿐이니, 어찌 훌륭한 집을 짓는 일에 마음을 쓰겠느냐." — 《명신언행록》에서
장문절 — 사치에서 검소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장문절은 재상이 되어서도 하급 관리로 있을 때처럼 하인들의 시중을 받지 않고 스스로 생활했다. 누군가 그것을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검소한 데서 사치한 데로 들어가기는 쉽지만, 사치한 데서 검소한 데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오늘의 이 녹봉이 어찌 늘 그대로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지금과 처지가 달라진다면, 사치한 생활에 오래 젖어 있던 사람은 갑자기 검소하게 살 수가 없어 반드시 낭패를 겪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벼슬에 있든 물러나든, 살아 있든 죽든 한결같이 사는 것만 못하겠는가." — 《명신언행록》에서
두연 — 검소함은 물건이 없어서가 아니다
두연(두기공이라는 봉호로도 불린다)은 손님을 접대할 때 채색한 칠기를 많이 사용했다. 어떤 손님이 그 앞에서 이를 칭찬하며 말했다. "공께서는 재상이 되셨는데도 이렇게 청빈하게 사십니다." 그러자 두연은 시중드는 사람을 시켜 은으로 만든 잔치용 그릇들을 가져오게 하여 앞에 늘어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런 물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화려한 것을 스스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 《저기실》에서
사마광 — 모임이 잦을수록 예는 더 도타워야 한다
송나라의 사마광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의 선친께서 군목판관(가축 관리를 감독하던 벼슬)으로 계실 때, 손님이 오면 늘 술상을 차려 대접했는데 세 순배나 다섯 순배, 많아야 일곱 순배를 넘지 않았다. 술은 시장에서 사 온 것이었고, 과일은 배·밤·대추·감 정도였으며, 안주는 육포와 젓갈, 나물국에 지나지 않았고, 그릇은 도자기나 칠기를 썼다. 당시 사대부들이 다 그러했지만 아무도 흉보지 않았다. 오히려 모이는 횟수가 잦을수록 예는 더욱 도타워졌고, 음식이 소박할수록 정은 더욱 두터워졌다.
그런데 요즘 사대부들은 그렇지가 않다. 술이 집에서 빚은 것이 아니거나, 과일이 먼 지방에서 온 귀한 것이 아니거나, 반찬이 여러 가지가 아니거나, 그릇이 상 가득 차려지지 않으면 감히 모임을 열지도 못하고, 며칠씩 준비한 뒤에야 초청장을 보낸다. 혹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어 흉을 보며 인색하다고 한다. 그러니 사치스러운 풍속을 따르지 않을 자가 드물다. 이렇게 풍속이 무너졌으니,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풍조를 부추겨서야 되겠는가."
사마광이 낙양에 있을 때, 문언박(노공이라는 봉호로도 불린다), 범순인(충선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과 서로 약속하여 '진솔회'라는 모임을 열었는데, 거친 밥 한 그릇에 술 두어 순배가 전부였고 그것도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문언박이 시를 지었다.
콩을 씹는 담박한 맛이야말로 안자가 즐기던 것이요 차린 것 변변찮아도 유유간의 가난이 부끄럽지 않네
범순인이 화답했다.
벗들이 자주 모이나 간소함을 따르니 갖춘 것 하찮아도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사마광이 또 화답했다.
집안 형편대로 있는 것을 즐기니 갖춘 것 없다고 그 누가 가난하다 비웃으리
이 세 사람은 반드시 당시의 나쁜 풍조를 바로잡으려는 뜻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어찌 조금이라도 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복을 아끼고 재물을 늘리는 이런 일은 일상에서 결코 작지 않은 일이므로, 내가 이를 갖추어 적어 여러 뜻 맞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 《자경편》에서
(용어) '진솔회'는 신분이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도착한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 격식을 따지지 않고 소박하게 어울리는 모임을 말한다.
사마광 — 진솔회를 위해 지은 글
사마광이 낙양에서 여러 노인들과 함께 진솔회를 열고, 스스로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우리 이 모임에는 헛된 예의를 높이 치는 이가 없어, 오는 손님을 일부러 맞이하지도 않고 가는 손님을 일부러 배웅하지도 않는다. 손님과 주인 사이에 거리낌이 없어 줄지어 앉은 자리에 순서도 없다. 진실하고 소박한 것을 약속으로 삼고, 간소한 것으로 다 갖춘 셈 친다. 있는 술로 잔을 돌리다가 술이 떨어지면 그만 그친다. 맑은 거문고 소리 한 곡조에 좋은 향 한 심지 피워 놓고, 한가로이 옛일과 오늘 일을 이야기하다가 조용히 산수를 즐긴다.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관청의 일도 논하지 않는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담담한 이 집안의 풍모는 자연스러운 맑은 운치이니, 도의로 맺은 사귐이란 바로 이런 것일 뿐이다. 비린내 나는 고기를 잔뜩 벌여 놓고 서로 눈치를 보며 분주히 인사를 나누면서도, 속마음은 진심이 아니면서 겉으로만 거짓을 꾸미고, 오로지 이해관계에 얽매여 서로 시기하며 눈을 흘기는 것, 이런 것은 다 세속의 사귐일 뿐이니 나는 이런 것들을 모두 버리겠다." — 《지비록》에서
소식 — 세 가지를 기르는 법
소식(자는 자첨)이 황주에 있을 때, 그와 이웃하여 오가던 이들도 가난한 사람이 많았다. 그가 스스로 말한 '세 가지 기르는 법'이 있었으니, "분수에 편안히 하여 복을 기르고, 위장을 편안히 하여 기운을 기르며, 씀씀이를 아껴 재물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섭몽득(호는 석림)이 말했다. "산속에 살다 보면 나물 반찬은 언제든 구할 수 있고, 나 또한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니, 이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취해서 참작해 행하겠다." 그러고는 농담 삼아 손님들에게 말했다. "옛날 손님을 대접하던 예법에는 '연'과 '향'이 있었는데, '향'은 조금 격식을 줄인 것으로 베푸는 데에 저마다 마땅한 바가 있었다. 이제 우연히 모였을 때는 소식이 하던 방식을 따라 '향'으로 하고, 특별히 정해 놓고 모였을 때는 사마광이 하던 방식을 따라 '연'으로 하여, 때에 맞게 알맞은 것을 쓰겠다. 미리 이렇게 알려 두면 손님들이 모두 웃을 것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내 뜻을 굽히지는 않겠다." — 《지비록》에서
두연과 황정견 — 본디 일개 서생일 뿐이다
두연(두기공이라는 봉호로도 불린다)의 어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재상이 되어서도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오직 국수 한 그릇, 밥 한 그릇뿐이었다. 누군가 그 검소함을 칭찬하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본래 한낱 서생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이름과 지위, 옷과 살림살이는 모두 나라에서 내린 것이다. 녹봉에서 남는 것을 가난한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음식이 남아돌까 두려워서인데, 어찌 감히 혼자서만 먹겠는가. 하루아침에 나라가 이 이름과 벼슬을 거두어 간다면 나는 곧바로 한낱 서생으로 돌아갈 것인데, 앞으로 무엇으로 살아가겠는가."
황정견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의주로 귀양 가 있을 때, 관아에서 성안에 사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여 이불을 안고 성 남쪽으로 가서 묵었다. 내가 머문 곳은 비바람도 제대로 막지 못했고 저잣거리의 시끄러운 소리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본래 내 집안의 일이 농사와 누에치기였으니 내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면 들판의 농가에서 이렇게 살았을 것인데, 이 정도를 견디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선비는 부귀할 때일수록 어려운 때를 걱정하고, 늘 스스로를 돌아보아 살아가는 데 정해진 도리가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 《문기유림》에서
구여 — 태수인 나도 육류를 먹지 못하는데
구여(자는 태연)가 사명 지방의 태수로 있을 때, 한 막료와 매우 가깝게 지냈다. 하루는 그에게 물었다. "그대 집에서는 하루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그가 대답했다. "식구가 열 명인데 하루에 천 전을 씁니다." 구여가 놀라며 물었다. "어찌 그렇게 많이 쓰는가?" 그가 답했다. "아침에는 고기를 조금 갖추고, 저녁에는 나물국을 먹습니다."
구여가 말했다. "나는 태수가 되어서도 평소에는 감히 고기를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데, 그대는 낮은 관직에 있으면서 늘 고기를 먹으니 참으로 청렴한 선비가 아니다." 그러고는 그 뒤로 그를 멀리했다.
나(허균)는 일찍이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백성이 복을 누리는 것은 관리의 청렴에서 나오고, 관리의 청렴은 검소함을 달게 여기는 데서 나오며, 검소함은 꿋꿋이 참는 절조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의리로 욕심을 눌러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야 이렇게 할 수 있다.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 《저기실》에서
악양자 — 주운 금덩이를 들에 버리다
악양자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금덩이 하나를 주워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제가 듣기로 뜻있는 선비는 '도둑의 샘'이라는 이름이 붙은 물이라 해도 마시지 않고, 청렴한 사람은 무례하게 주는 음식은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물며 주운 물건으로 이익을 구해 행실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악양자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 금덩이를 들판에 내다 버렸다. — 《하씨어림》에서
(용어) '도둑의 샘'은 옛날 중국에 실제로 있던 샘의 이름인데, 이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리 목이 말라도 그 물을 마시지 않았다는 옛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진현달과 범중엄 — 사치스러운 물건은 불태워라
진현달은 아들 진상휴가 고라니 꼬리로 만든 파리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타일렀다. "무릇 사치를 부리고서 망하지 않은 자가 없다. 이 파리채는 본디 왕씨나 사씨 같은 명문가에서나 쓰는 물건이니, 네가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고는 가져다가 불태워 버렸다.
범중엄(문정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은 아들 범순인을 장가보내며 며느리를 맞을 때 이렇게 타일렀다. "고운 비단이 어찌 휘장을 만들 물건이겠느냐. 우리 집안은 본디 검소함을 가풍으로 삼는데, 어찌 감히 우리 집 법도를 어지럽히려고 이런 것을 가져왔느냐. 마당에서 태워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같은 경우라 하겠다.
일찍이 살펴보니, 사현이 어렸을 때 자줏빛 비단 주머니를 차고 다니기를 좋아하자 그의 숙부 사안이 이를 걱정하면서도 조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장난삼아 구경하는 척하며 가져다가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이렇듯 사치스러운 물건은 왕씨와 사씨 같은 명문가에서도 경계했던 것인데, 하물며 그만 못한 사람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주백년의 아내 공씨도 고결한 지조를 지닌 사람이었다. 주백년이 산속에서 세상을 떠나자, 회계 태수로 있던 채흥종이 쌀 백 섬을 보내 주었는데, 공씨는 종을 시켜 관아에 나아가 굳이 사양하게 했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아름답게 여겨 그를 양홍의 아내에 견주었다. — 《하씨어림》에서
(용어) 왕씨와 사씨는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로 대대로 이름을 떨친 명문 가문이어서, 훗날 '명문가'를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양홍의 아내는 이름이 맹광으로, 서른 살이 넘도록 혼인하지 않다가 당대에 어질기로 이름난 학자 양홍에게 시집가서 정성껏 남편을 섬겨 현명한 아내의 본보기로 꼽혔다.
사치와 검소를 견주는 말
한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사치스러운 자는 삼 년 쓸 것을 일 년 만에 다 써 버리고, 검소한 자는 일 년 쓸 것을 삼 년 동안 쓴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자는 그래도 부족하고, 지극히 검소한 자는 오히려 여유가 있다. 사치스러운 자는 부유해도 만족할 줄 모르고, 검소한 자는 가난해도 여유가 있다. 사치스러운 자는 늘 마음이 가난하고, 검소한 자는 늘 마음이 풍요롭다. 사치스러운 자는 사람을 가까이 두기를 좋아하므로 허물이 많고, 검소한 자는 사람을 멀리할 수 있으므로 화가 적다. 사치스러운 자가 임금을 섬기면 반드시 욕을 당하고, 검소한 자가 임금을 섬기면 반드시 그 지위를 온전히 지킨다. 사치스러운 자는 근심이 많고, 검소한 자는 복이 많다. 검소함을 따르는 사람이라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 《지비록》에서
사마광 — 베이불에 새긴 글
사마광(온국이라는 봉호와 문정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이 덮던 베이불에는 예서체 글씨로 백열 자가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경인이 준 것"이라 적힌 것은 단명전 학사를 지낸 범진(봉호는 촉공)이 준 것이라는 뜻이고, "요부가 쓰다"라고 적힌 것은 우복야를 지낸 범순인(봉호는 고평공)이 지었다는 뜻이다.
원풍 연간에 사마광이 낙양에 있을 때, 범진이 허 지방에서 찾아와 이 이불을 주었는데, 범순인이 이를 위해 '베이불에 새기는 글'을 지어 배우는 이들을 경계했다. 사마광은 그 글의 뜻을 아껴 이불 머리맡에 적어 두었는데, 병이 깊어지자 상서성의 관원들이 그가 세상을 떠날 것을 알고 평소 입던 옷으로 염을 하며 이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 글은 이러하다.
"나물국도 꿀맛 같고 거친 베옷도 따뜻하다. 바른 가르침을 지키는 즐거움과 도덕과 의리의 높음은 구하기는 매우 쉽고 누리면 늘 편안하다. 화려한 비단과 기름진 음식, 성대한 권세와 총애, 번거로운 이익과 욕심은 얻기는 어려워도 재앙과 치욕이 먼저 찾아온다. 얻기는 쉽고 잃기는 어려운 것, 위태한 것을 버리고 편안한 데로 나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아는 일인데 선비가 어찌 모르겠는가. 안자가 즐기던 한 그릇의 밥은 만세토록 본보기가 되었다. 주왕은 화려한 누대에 살았으나 죽어서는 외로운 사내가 되고 말았다. 군자는 검소함으로 덕을 삼고 소인은 사치로 자신을 망치니, 그렇다면 이 이불을 어찌 하찮게 여길 수 있겠는가."
옛날 공손홍이 덮던 베이불은 급암에게서 면박을 받은 것이었고, 이 베이불은 사마광이 범순인에게서 글을 지어 받은 것이니, 참됨과 거짓이 갈리는 갈림길이라 하겠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문기유림》에서
(용어) 옛날 한나라의 재상 공손홍은 지위가 높고 녹봉이 많으면서도 베이불을 덮었는데, 그와 가깝게 지내던 급암이라는 신하가 황제 앞에서 "공손홍이 삼공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베이불을 덮는 것은 검소함을 거짓으로 꾸며 명예를 낚으려는 것입니다"라고 면박을 주었다. 이에 공손홍은 "급암이 아니었다면 내 병통을 아무도 지적해 주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오히려 그 지적을 달게 받아들였고, 황제는 이 일로 공손홍을 더욱 신임했다고 한다.
사마광 — 눈으로 보고 귀로 먹는 세태
사마광(스스로 '우수'라는 호를 지어 불렀다)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귀로 물건을 보고 눈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이가 드물다."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무슨 뜻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옷과 갓은 몸을 꾸미는 것이니 몸에 맞으면 아름다운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마다하고 남들이 칭찬해 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니, 이것이 어찌 귀로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니 입에 맞으면 좋은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과자에 알록달록한 조각을 새겨 넣어 상 위의 모양을 감상하려 드니, 이것이 어찌 눈으로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 《공여일록》에서
나대경 — 검소함의 네 가지 이로움과 부지런함의 세 가지 이로움
나대경(자는 경륜)이 이렇게 말했다. "검소하면 네 가지 이로움이 있고, 부지런하면 세 가지 이로움이 있다. 무릇 탐욕과 음란은 사치에서 생기지 않는 것이 없다. 검소하면 탐욕스럽지도 음란하지도 않게 되어 덕을 기를 수 있다.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은 저절로 정해진 양이 있으니, 아끼고 담백하게 쓰면 오래 쓸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이렇게 하면 수명을 오래 누릴 수 있다. 술에 취하고 고기로 배를 채우면 정신이 흐려지지만, 나물을 먹으면 속이 맑아져 더러운 찌꺼기가 없어지니 정신을 기를 수 있다. 사치하면 헛되고 구차하게 이익을 구하느라 뜻과 기개가 비루해지지만, 한결같이 검소함을 따르면 남에게 요구할 것이 없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어 기개를 기를 수 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반드시 굶주리게 되고 누에를 치지 않으면 반드시 추위에 떨게 되는데, 부지런하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수 있다. 농사짓는 사람은 낮에는 힘써 일하고 밤에는 곤히 잠들어 그릇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부지런하면 그릇된 마음을 멀리할 수 있다. 옛말에 '문의 지도리는 좀이 슬지 않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고 했다. 주공은 옛 임금들과 문왕이 오래 산 까닭을 논하며 이를 부지런함 덕분이라 했으니, 부지런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학림옥로》에서
양소윤과 고희무 — 재앙은 이익을 좇는 데서 생긴다
양소윤이 말했다. "재앙은 모두 이익과 욕심에서 생기는 것이니, 참으로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면 재앙이 어디에서 생기겠는가." 고희무는 말했다. "재물을 쌓아 두면 근심을 마련하는 것이고, 근심은 또한 많은 재물에서 생기니, 재물을 쌓아 두고 근심하는 것과 재물이 없어 근심할 것도 없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낫겠는가." 모두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 — 《저기실》에서
'부유하다'는 글자의 유래 — 농사를 귀히 여긴 옛 뜻
옛사람들은 집안과 나라를 넉넉하게 하는 데에 오직 농사를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주나라 사람은 농사짓는 어려움을 왕업의 근본으로 삼았고, 진나라 사람은 농사에 힘쓴 것으로 벼슬과 상을 내렸으며, 한나라 때는 농사에 힘쓴 사람을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옛사람들이 글자를 만든 것을 보아도, '부유하다'는 뜻의 글자는 '밭'이라는 글자를 밑바탕으로 삼아 만들어졌으니 밭이 있어야 비로소 부유해진다는 뜻을 담은 것이고, '밭'이라는 글자는 또 '한 사람의 입'이라는 뜻을 밑바탕으로 삼았다고 하니, 밭을 가진 사람이 식구가 적은 것을 귀하게 여겼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 《저기실》에서
소식 — 채마밭에서 얻은 만족
소식(호는 동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왕참군의 땅을 빌려 채소를 심었는데, 땅이 반 이랑도 되지 않았지만 나와 그대가 한 해 내내 채소를 배불리 먹었다. 밤중에 술이 취해 속을 풀 방법이 없을 때면 채소를 뽑아다 삶아 먹었는데, 그 맛에는 흙의 기름진 기운이 배어 있고 그 기운에는 서리와 이슬의 정기가 서려 있어, 아무리 좋은 고기 요리라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시 무엇을 더 욕심낼 것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시 네 구절을 지었다.
가을 되니 서리와 이슬이 동쪽 정원에 가득한데 무는 뿌리가 굵어지고 겨자는 새순이 돋아나네 누구와 더불어 이토록 배불리 먹을까 고기를 먹겠다고 무엇하러 애쓰겠나
"나는 짐짓 그 오두막에 '나물로 편안하다'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 — 《소문충공집》에서
소식 — 세 가지를 절제하는 삶
소식이 황주에 있을 때 아침저녁 밥상은 고작 술 한 잔에 고기 한 점뿐이었고, 귀한 손님이 와도 딱 세 차례만 그렇게 대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를 초대하려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알려 둔다. 첫째 분수에 맞게 하여 복을 기르고, 둘째 위장을 편안히 하여 기운을 기르며, 셋째 씀씀이를 아껴 재산을 늘리라." — 《장공외기》에서
소식 — 살아가는 큰 요령은 아끼는 것뿐
소식이 '을첩'이라는 글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쉰 해를 살고 나서야 비로소 살아가는 큰 요령이 다름 아닌 인색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좋게 표현하면 검소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검소함은 속된 사람들의 그것과는 달라서 담박한 맛이 있다. 옛 시에 '크게 화목하고 크게 공경하니 받으시는 복도 매우 많으시네'라고 했으니, 먹고 싶은 것을 어찌 다 채우려 하겠는가. 언제나 아끼고 검소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복을 아끼는 길이요 수명을 늘리는 길이다. 내가 도성에 가더라도 마땅히 이 방법을 쓸 것이다. 나는 산속에 묻혀 사는 사람으로서, 이 계책을 한번 웃어넘기고 말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 《미공십부집》에서
(용어) 인용된 옛 시는 《시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대경 — 화려한 옷과 흰 쌀밥은 아무나 누릴 것이 아니다
나대경이 말했다. "비단옷과 흰 쌀밥은 옛사람의 말에 '오직 임금만이 누릴 수 있다'고 했으니, 이는 임금이 천하에 공로가 있기 때문에 분수상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한낱 선비가 한때 뜻을 이루었다고 곧바로 절제 없이 사치를 부려, 심지어 겉옷을 화려한 비단으로 지어 입는 자들이 있으니, 그런 자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이런 광경을 직접 보는 사람들에게 사치를 경계하는 본보기가 될 만하다." — 《학림옥로》에서
첩과 노비와 넓은 밭이 다 채워 주지 못하는 것
지체 높은 집안에는 여종과 첩이 많아 여색을 즐기기에는 넉넉하지만 오래 살 바탕을 기르기에는 부족하고, 종이 많아 위세를 부리기에는 넉넉하지만 평온한 복을 남겨 주기에는 부족하며, 밭과 집이 많아 사치를 뽐내기에는 넉넉하지만 권세가에게 빼앗기거나 자손이 망하는 화를 막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제갈량의 부인은 볼품없는 외모였고, 왕안석의 나귀는 다리를 절었으며, 소하는 담장과 집을 꾸미지 않았으니, 여러 옛 현인들에게 비추어 보면 본받지 않을 것이 없다. 여러 군자들이여, 어찌하여 이를 따르지 않는가. — 《임거만록》에서
(용어) 제갈량은 촉나라의 재상이었고, 왕안석은 송나라의 재상이었다. 두 사람 모두 겉치레에 마음 쓰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일화로 흔히 인용된다.
주휘 — 밭이 있어야 복이 있다
주휘가 언젠가 어느 큰 벼슬아치를 모시고 있을 때 이야기가 살아갈 밑천에 미쳤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밭이 없을 수 없다. 밭이 있으면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을 자유로이 할 수 있어 자기 뜻을 펼 수 있고, 선비는 위로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 자녀를 기르며 명절 제사도 대강이나마 차릴 수 있어 기개와 절조를 잃지 않을 수 있으니, 밭이 있으면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옛말에 '복이라는 글자는 밭과 옷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옳다 해도, 나는 삼십 년이 지나도록 끝내 한 뼘의 땅도 없으니, 돌아가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내려 해도 입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복의 바탕이 약한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마광에게 선비가 살아가는 방도를 물었더니 그 뜻이 나와 같았다. 내가 또 일찍이 복과 이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다. '복이라는 글자는 옷과 밭이라는 뜻을 담았을 뿐이니, 겨우 한 입 먹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배만 채우면 그만인 것을.'" — 《문기유림》에서
방효유 — 곤궁한 것이 우리뿐이랴
방효유(호는 손지)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양식이 떨어졌다. 집안사람이 그 사실을 알리자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 중에는 한 달에 아홉 끼니만 먹고 쌀독에 낟알 하나 없던 사람도 있었는데, 곤궁한 것이 어찌 우리뿐이겠는가." 그러고는 서로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 《명세설신어》에서
송렴 — 가난도 부유함도 한 집안만의 일이 아니다
송렴(문헌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은 밭과 집을 마련하지 않았다. 누군가 자손을 위한 계책을 세우라고 권하면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고 부유한 것이 어찌 한 집안만의 일이겠는가. 나는 이 말을 자손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삼겠다." — 《명세설신어》에서
호거인 — 인의로 몸을 채우다
호거인은 집이 몹시 가난하여 다 해진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으면서도 태연히 이렇게 말했다. "어짊과 의로움으로 몸을 넉넉하게 하고 책으로 집을 꾸미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명세설신어》에서
장무 — 백이와 숙제를 되뇌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장무(문의라는 시호로도 불린다)가 말했다. "나는 곤궁에 처할 때마다 늘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 아래에서 굶어 죽었지만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 덕을 칭송한다'는 옛이야기를 되뇐다. 그러면 문득 정신이 상쾌해져서 곤궁한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 《사우재총설》에서
장열 — 검소함으로 오래가는 살림을 지키다
장열(장간공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은 소박한 것을 좋아하여 늘 이렇게 말했다. "손님이 오면 붙잡아 두고 검소한 반찬으로 대접했다. 안주는 있는 대로 준비했고 술도 있는 만큼만 냈다. 아무리 새로 사귄 벗이라도 상을 성대하게 차리지 않았고, 아무리 높은 손님이라도 가축을 잡지 않았다. 이것은 사치를 경계하여 검소하게 살면서 살림을 오래 유지하려는 것일 뿐 아니라, 번거로운 일상을 줄여 삶을 편안히 하려는 뜻이기도 했다." — 《공여일록》에서
장계맹 — 인정 어린 밥 한 그릇
장계맹(소참이라는 벼슬로도 불린다)은 성품이 본디 청렴하고 검소했다. 이동양(호는 서애)과 나기(호는 포정) 등이 이따금 잇달아 찾아오면, 장계맹은 그들을 머물게 하고 거친 밥에 나물이나 과일을 곁들여 내오고 술도 서너 순배만 돌리고 그쳤다. 여러 노인들이 그의 집을 나서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가 장씨 어른의 인정 어린 밥 한 그릇을 먹었더니, 화려한 잔칫상보다 오히려 배가 부르다." — 《장설소췌》에서
유대하 — 사치를 경계한 옛사람의 가르침
유대하(충선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진현달은 아들 진상휴가 고라니 꼬리로 만든 파리채를 가진 것을 보고 '무릇 사치를 부리고서 망하지 않은 자가 없다. 이 파리채는 왕씨나 사씨 같은 명문가에서나 쓰는 물건이니 네가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며 가져다가 불태워 버렸다. 범중엄은 아들 범순인이 장가들 때 며느리에게 '화려한 비단이 어찌 휘장을 만들 물건이냐. 우리 집안은 본디 청렴하고 검소한 집인데, 우리 집 법도를 어지럽히려고 감히 이런 것을 가져왔느냐. 마당에서 태워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일은 서로 비슷하다. 선배들이 자신을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 이토록 엄격했다." — 《장설소췌》에서
유대하 — 고생을 미리 겪게 하다
유대하는 아들들에게 책을 읽으면서도 힘써 농사를 짓도록 가르쳤다. 언젠가 비가 오는데도 농사일을 감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지런한 것에 익숙해지면 피로도 잊게 되고, 안일한 것에 길들면 나태해지고 만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이 고생이 장차 도움이 될 것이다." — 《세설신어》에서
유대하의 아버지 — 부들자리와 무명 이불로 판가름 난 사람됨
유대하의 아버지 유인택이 정통 연간에 어사가 되어 도성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양부(문정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가 조상의 묘를 살피고 조정으로 돌아가던 길에 화용 지방을 지나며 유대하의 집에 들러 물었다. "너의 아버지는 계시냐?" 유대하가 답했다. "출타하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물었다. "너의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 "이웃집에 곡식을 빻으러 가셔서 안 계십니다."
양부는 집 안의 살림살이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유대하를 이끌고 침실까지 들어갔는데, 침상에는 오직 부들자리와 무명 이불뿐이었다.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절조가 이러하니 어사 자리에 꼭 맞는 사람이다." 그러고는 떠나갔다.
유인택이 돌아온 뒤 유대하가 그 일을 아뢰자 유인택이 말했다. "이는 틀림없이 고을의 선배이신 양소보(양부의 다른 관직명)일 것이다. 그분은 사람됨이 꼼꼼하기 때문에 이렇게 남들이 그냥 지나칠 만한 것도 자세히 살펴본 것이다." 훗날 살펴보니, 양부가 화용 지방을 지난 것은 유대하가 이를 갈 나이였을 때의 일이라 한다. — 《문기유림》에서
나륜 — 식량이 떨어져도 태평한 사람
나륜(호는 일봉)은 벼슬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 손님이 오면 붙잡아 두고 밥을 대접하느라 식량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그의 부인이 마르지도 않은 겉곡식 두어 되를 얻어다가 한쪽에서는 볶고 한쪽에서는 찧느라 날이 저물도록 애를 써도, 나륜은 태평하게 아무렇지 않아 했다. — 《명야사휘》에서
설선 — 손님 접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장무(문의라는 시호로도 불린다)가 말했다. "손님을 접대하는 예법은 마땅히 옛사람의 뜻을 따라야 한다. 설선(문청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이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들어 보니, 그저 닭 한 마리에 기장밥 한 그릇, 술 석 잔에 밥을 먹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본받을 만하다." — 《세설신어》에서
허국 — 문지기도 알아보지 못한 재상
허국(문목이라는 시호로도 불린다)은 조정에서 벼슬할 때 녹봉을 가난한 친척들에게 다 나누어 주어,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살림이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다름없었다. 한번은 작은 배를 타고 오강 지방에 사는 신시행(소사라는 벼슬로도 불린다)을 찾아갔는데, 해진 무명 두루마기에 다 낡은 우산을 쓰고 갔더니 문지기가 그를 알아보지 못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명함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허국은 성내지 않았다.
신시행의 아들(태복이라는 벼슬로도 불린다)이 문틈으로 내다보고서야 허국임을 알아채고 급히 나가 맞아들였다. 신시행이 그를 만나 반가워하며 함께 술을 마시고 이틀 밤을 묵은 뒤 돌아갔는데, 이 일을 좋아한 사람들이 그림으로 그려 전했다고 한다. — 《이담유림》에서
황헌 — 손님과 함께 즐긴 소박한 밥상
황헌(부권이라는 벼슬로도 불린다)은 집안 형편이 가난했으나 손님을 좋아했다. 손님이 오면 손수 부엌에 들어가 잠방이 차림으로 음식을 다 준비한 뒤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오곤 했다. 주원부가 그를 찾아갔을 때도 황헌이 몹시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자 주원부가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차렸는가" 하고 세 번이나 물었다. 그러자 황헌이 말했다. "그러면 자네가 직접 요리를 해서 먹게."
함께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주원부가 가만히 살펴보니 온 집안이 마치 절간처럼 쓸쓸했다. 주원부가 말했다. "내가 오늘 다행히 복희씨가 다스리던 아득한 옛 시절에 노니는 것 같구나." — 《장설소췌》에서
(용어) 복희씨는 중국 신화에서 가장 오래된 임금으로 전해지는 인물로, 사람들이 꾸밈없이 소박하게 살았다는 아득한 옛 시절을 상징적으로 가리킬 때 흔히 쓰인다.
한정록 제8권 · 임탄
출처: 한정록 제8권, 임탄
배경: 이 8권의 주제인 "임탄"은 "제멋대로 행동하며 거리낌이 없다"는 뜻으로, 예법과 세상의 눈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았던 중국 역대 인물들의 기이한 언행을 모아 놓은 대목이다. 이른바 죽림칠현으로 알려진 혜강·완적·산도·유령을 비롯해 왕휘지, 도연명, 이백, 소식 같은 이름난 인물들부터 곽충서, 손일원처럼 덜 알려진 기인들까지 두루 등장하며, 술에 취해 벌인 기행, 세상의 격식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 돌이나 먹, 다구 같은 사물에 절을 하는 기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일화를 담고 있다. 허균은 이런 인물들에게서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삶의 한 전형을 발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혜강, 완적, 산도, 유령은 노장 사상을 좋아하여 세상의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속세를 피해 대숲에 모여 제멋대로 살았던 이들로, 여기에 상수·왕융·완함을 더한 일곱 사람을 흔히 "죽림칠현"이라 부른다. 하루는 혜강·완적·산도·유령이 대숲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왕융이 늦게 도착했다. 완적이 말했다.
"속된 자가 또 와서 흥이 깨지는구나."
그러자 왕융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 《세설신어》
혜강(자는 숙야)은 대장장이 일을 잘했다. 집에 무성한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둘레에 물을 끌어다 놓고 여름철이면 그 나무 아래서 대장일을 했다. 《세설신어》
유령(자는 백륜)은 하늘과 땅도 좁다고 여겼다. 늘 작은 수레를 타고 술 한 병을 지니고 다니면서 사람을 시켜 삽을 메고 뒤따르게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거든 그 자리에 묻어라." 《세설신어》
유령은 늘 술을 실컷 마시고 방탕하게 굴었는데, 어떤 때는 옷을 벗은 채 알몸으로 집에 있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나무라면 유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집으로 삼고 방을 옷으로 삼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내 옷 속으로 들어왔는가?" 《세설신어》
완수(자는 선자)는 늘 걸어 다니면서 돈 백 닢을 지팡이 머리에 걸고 다녔다. 술집에 이르면 혼자서 실컷 마셨는데, 당대의 부귀한 이들이라 해도 즐겨 찾아가는 일이 없었다. 《세설신어》
왕징(자는 평자), 호모보지(자는 언국) 등 여러 사람은 제멋대로 구는 것을 세상 이치에 통달한 것으로 여겨, 어떤 이는 옷을 벗고 지내기도 했다. 악광이 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유교의 가르침 안에도 즐거운 경지가 있는데, 하필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세설신어》
장한(자는 계응)은 제멋대로 살아 거리끼는 바가 없어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두고 "강동의 완적"이라 불렀다. 어떤 이가 물었다.
"그대는 한세상을 방탕하게 지내면서 죽은 뒤의 명성은 생각하지 않는가?"
그가 대답했다.
"나에게는 죽은 뒤의 명성이 당장의 한 잔 술만도 못하네." 《세설신어》
진나라 명제가 사곤에게 물었다.
"그대는 스스로를 유량과 견주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사곤이 대답했다.
"조정에 앉아 모든 관료의 본보기가 되는 일이라면 신이 유량만 못하지만, 산속에서 조용히 즐기는 일이라면 신이 그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세설신어》
왕공(자는 효백)은 이렇게 말했다.
"명사란 반드시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늘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면서 술을 실컷 마시고 《이소경》을 되풀이해 읽을 줄 알면, 그것으로 명사라 부를 수 있다." 《세설신어》
왕희지는 이렇게 말했다.
"술이란 절로 사람을 빼어난 경지로 이끄는 힘이 있다." 《세설신어》
왕공이 왕침에게 물었다.
"완적을 사마상여(한나라의 문장가)에 견주면 어떠한가?"
왕침이 대답했다.
"완적의 가슴속에는 응어리가 있어서 술로 씻어 내야만 했던 것이다." 《세설신어》
왕휘지(자는 자유)는 산음에 살았다. 어느 날 밤 큰눈이 내렸는데,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게 하고 술을 따르라 이르고는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새하얬다.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며 좌사의 〈초은시〉를 외다가 문득 대규(자는 안도)가 생각났다. 이때 대규는 섬계에 있었다. 왕휘지는 그 밤으로 작은 배를 타고 밤새 노를 저어 대규의 집 문 앞까지 이르렀다가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흥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 꼭 안도를 만나야 한단 말인가." 《세설신어》
왕휘지가 한번은 오중 땅을 지나다가 어느 사대부 집에 아주 좋은 대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 주인은 왕휘지가 반드시 자기 집을 찾아오리라 여기고,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대청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왕휘지는 가마를 탄 채 지름길로 곧장 대나무 아래로 가서 한참을 시를 읊조리기만 했다. 실망한 주인은 그래도 돌아갈 때는 인사말이라도 나눌 줄 알았는데, 왕휘지는 그대로 문을 나서려 했다.
주인은 크게 화가 나서 하인에게 명해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왕휘지는 이런 주인의 됨됨이를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 눌러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뒤에 떠났다. 《세설신어》
왕휘지가 환온의 거기참군이 되었다. 환온이 말했다.
"그대는 이 부서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제는 마땅히 나와 함께 일을 의논해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왕휘지는 처음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다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먼 곳을 바라보며 손에 든 홀로 턱을 괸 채 이렇게 말했다.
"서산에 아침이 오니 시원한 기운이 감도는구나." 《세설신어》
왕휘지와 그 아우 왕헌지(자는 자경) 형제가 함께 《고사전》을 읽다가 그 뒤에 붙은 찬을 보게 되었는데, 왕헌지는 정단(후한 시대 사람으로 오경에 능통했다)의 고결함을 몹시 칭송했다. 그러자 왕휘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마상여(자는 장경)가 세상을 우습게 여기며 마음껏 산 것만은 못하지." 《세설신어》
왕휘지가 도성을 나와 나루터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전부터 환이(자는 자야)가 피리를 잘 분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서로 만난 적은 없었는데, 마침 둑 위를 지나는 환이를 보게 되었다. 왕휘지는 이때 배 안에 있었는데, 손님 가운데 그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 저 사람이 환이라고 알려 주었다. 왕휘지는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청했다.
"그대가 피리를 잘 분다고 들었으니, 나를 위해 한 곡 불어 주시오."
이때 환이는 이미 지체 높은 벼슬에 있었지만 평소 왕휘지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수레에서 내려 접이식 의자에 걸터앉아 세 곡조를 불고는 서둘러 수레에 올라 떠나갔다. 이렇게 손님과 주인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세설신어》
맹가(자는 만년)는 술을 실컷 마시기를 좋아했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환온(별칭은 선무)이 한번은 그에게 물었다.
"술에 무슨 좋은 점이 있다고 그대는 그리 즐기는가?"
맹가가 대답했다.
"공께서는 술의 참맛을 모르시는군요." 《세설신어》
도잠(자는 연명이며, 세상에는 흔히 도연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 한번은 9월 9일 중양절을 맞았는데 술이 없어, 집 동쪽 울타리 밑 국화밭에서 국화 한 줌을 꺾어 들고 앉아 있었다. 얼마 후 흰옷 입은 사람이 오는 것이 보였는데, 다름 아닌 왕홍이 보낸 술심부름꾼이었다. 그리하여 실컷 마실 수 있었다. 《하씨어림》
도연명(시호는 정절)이 고을에 있을 때, 그 고을의 장수가 인사를 드리러 찾아온 일이 있었다. 마침 도연명은 익은 술을 머리에 쓰고 있던 갈포 두건으로 거르고 있었는데, 다 거르고 나자 그 두건을 다시 머리에 썼다.
강주자사 왕홍은 도연명과 사귀고 싶어 했으나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도연명이 한번은 여산에 가게 되었는데, 왕홍은 도연명의 옛 친구인 방통지를 시켜 술을 가지고 가는 길목인 율리에서 그를 맞이하게 했다. 이때 도연명은 마침 다리에 병이 있어 문하생 한 사람과 아이 둘에게 남여를 메게 하여 그곳에 이르렀고, 방통지와 둘이서 그 술을 마셨다. 얼마 후 왕홍이 찾아와 이 모습을 보았지만 그 역시 화를 내지 않았다. 《하씨어림》
장사광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옛사람을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지 않다. 다만 옛사람에게 나를 보여 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세설신어보》
진훤은 글재주가 빼어났으나 술이 지나쳤다. 조카 진수가 편지를 보내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리자, 진훤은 이렇게 답했다.
"어서 술지게미 언덕이나 쌓아 두어라. 나도 이제 늙었으니." 《하씨어림》
북제의 시조 고환(시호는 신무제)이 이원충을 복야로 삼으려 하자, 그 아들 고징(시호는 문양)이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으니 나랏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원충의 아들 이소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아버지에게 술을 줄이시라 청하니, 이원충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복야 벼슬도 술 마시는 즐거움만은 못하다. 하지만 너는 내가 복야가 되기를 바라니, 차라리 내가 술을 줄이는 것이 낫겠구나." 《하씨어림》
왕적(자는 무공)은 문하성 대조 벼슬에 있었는데, 예로부터 이 벼슬을 지내는 이에게는 관아에서 날마다 술 세 되씩을 내려 주는 관례가 있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대조라는 벼슬에 무슨 즐거움이 있습니까?"
왕적이 대답했다.
"좋은 술이 있으니 즐겁지요."
이 말을 시중 진숙달이 듣고는 그에게 날마다 술 한 말씩을 내려 주게 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한 말 술 마시는 학사"라 불렀다. 《하씨어림》
대악서의 관리 초혁의 집에서는 술을 잘 빚었다. 왕적이 그 소문을 듣고 대악승 벼슬을 원했으나, 이부에서는 그가 적임이 아니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적이 굳이 그 자리를 청하여 결국 그 벼슬을 얻었다. 초혁이 죽은 뒤에도 그의 아내가 끊임없이 술을 보내왔는데, 한 해 남짓 지나 그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왕적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좋은 술을 못 마시게 하려는가 보다."
그러고는 벼슬을 버리고 떠나 버렸다. 《유후당서》
이백이 한번은 달빛 아래 최종지와 함께 채석강에 배를 띄우고 금릉까지 나아갔는데, 궁중에서 하사받은 비단 도포를 입은 채 배 안에 앉아 마음껏 구경하고 웃으며 곁에 아무도 없는 듯이 행동했다. 《하씨어림》
안진경이 호주자사가 되었을 때 장지화가 그를 찾아왔다. 안진경이 그의 배가 낡아 물이 새는 것을 보고 새 배로 바꾸라고 권하자, 장지화는 이렇게 말했다.
"제 소원은 물 위에 뜬 배를 집 삼아 초계와 삽계 사이를 오가며 사는 것입니다." 《하씨어림》
육우는 초계에 숨어 살면서 스스로를 "상저옹"이라 부르고 문을 닫아걸고 책을 지었다. 이따금 혼자 들판을 거닐며 시를 외고 나무를 두드리면서 서성이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통곡하고서야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오늘날의 접여"(춘추시대의 은자)라 일컬었다. 《하씨어림》
사공도는 벼슬 없는 평민 차림에 새 깃털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딸의 집 하인인 난대라는 이가 늘 스스로 그 뒤를 따랐다. 《소창청기》
곽충서(자는 서선)는 성품이 자유분방하여 얽매이는 바가 없었고 속된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송나라 태조가 그 이름을 듣고 불러들여 대궐에 이르게 하고는 내시성 관리 두신흥의 집에 머물게 했다.
곽충서는 수염이 길고 아름다웠는데, 하루는 갑자기 그 수염을 모조리 뽑아 버렸다. 두신흥이 놀라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수염 없는 당신을 흉내 내고 싶어서요." 《하씨어림》
곽충서는 이따금 막일꾼이나 하인들과 어울려 저잣거리에 들어가 음식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사귀는 사람이란 다 그대들 같은 이들이오." 《하씨어림》
곽충서는 얼굴이 잘생겼다. 곽종의가 기하 땅을 다스리고 있을 때 그를 불러 산속 별관에 머물게 했다. 그 고장의 어느 부잣집 아들이 그를 좋아하여 종일토록 좋은 술을 대접하는 등 매우 후하게 대했다. 그러다 얼마 후 자기 마음을 표현하며 비단까지 보내왔다.
곽충서는 그 비단에 실감개를 든 어린아이가 바람에 연을 날리는 그림을 그렸는데, 연줄의 길이가 몇 길이나 되도록 가득 그려 넣었다. 이를 본 부잣집 아들은 크게 화를 내며 결국 곽충서와 절교하고 말았다. 《하씨어림》
소식이 유양 땅에 있을 때, 하루는 손님 십여 명과 잔치를 벌였는데 모두 당대의 이름난 선비들이었다. 미불(자는 원장)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 미불을 미쳤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지 소식에게 물어보고 싶소."
소식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말을 따르겠소." 《하씨어림》
미불은 돌에 절을 했고, 반곡은 이정규가 만든 먹에 절을 했으며, 노정벽은 승려 거가가 벌여 놓은 열 가지 다구를 보고 의관을 갖추어 절을 했다. 이 세 가지 일은 어리석은 듯도 하고 미친 듯도 하고 고상한 듯도 하고 지나친 듯도 하지만, 한 번쯤은 있어야 할 일이요 두 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소창청기》
오자행은 한평생을 제멋대로 노닐며 살았다. 누가 찾아와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면 누각 위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외출한 지 한참 되었네."
그러고는 거문고를 타고 퉁소를 불면서 옥돌로 만든 등긁이를 쉼 없이 어루만졌다. 《하씨어림》
손일원(자는 태초, 별호는 산인)이 무림 땅에 머물러 살고 있을 때, 비굉(시호는 문헌)이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찾아왔다. 마침 손일원은 낮잠을 자던 중이었는데, 일부러 누운 채 일어나지 않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나왔고, 게다가 고마운 뜻조차 표하지 않았다. 대문까지 배웅하면서는 고개를 들어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바닷가에 푸른 기운이 일어 마침내 적성산까지 뻗쳤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비굉은 집을 나서며 자신의 마부에게 말했다.
"내 평생 이런 사람은 처음 보았다." 《감산당별집》
손일원이 서호에 숨어 살 때,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손일원은 그를 배웅하러 나와서는 먼 산만 바라볼 뿐 한 번도 그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 벼슬아치가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산이 무엇이 그리 좋습니까?"
손일원이 대답했다.
"산이 좋은 것이 아니라, 푸른 산을 마주하는 것이 속된 사람을 마주하는 것보다 나을 뿐입니다." 《소창청기》
당백호와 장몽진, 축윤명은 모두 제멋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한번은 눈 오는 날 거지 행세를 하며 댓가지를 두드리고 〈연화가〉를 불렀다. 그러다 돈이 생기면 술을 사서 들판의 절에서 실컷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즐거움을 이백이 몰랐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명세설신어》
소주의 주야항은 시를 잘 지었다. 왕씨 성을 가진 이의 집에 묵으면서 주인과 함께 늦도록 술을 마시고 자리를 파하려는데 마침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주야항은 문득,
세상만사가 손에 든 술잔만 못하고 한 해에 몇 번이나 저 달을 보았던가
라는 시구를 읊고는 너무도 기뻐 미친 듯이 외치며 사립문을 두드려 주인을 다시 불러냈다. 주인이 일어나자 그 시를 읊어 들려주고는 다시 함께 술을 나누었다. 《사우재총설》
심가칙은 금릉을 떠돌며 날마다 오랑캐 여인이 파는 술집에서 취하도록 마셨는데, 그가 한마디만 하면 온갖 호걸과 재주 있는 이들이 모두 머뭇거리며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하늘의 세성(목성)이 다시 인간 세상에 귀양 내려온 것이라 했는데, 그 자신도 그 말을 사실로 여기고 의심하지 않았다. 《명세설신어》
진계유(자는 미공)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만 권에 이르는 진기한 책을 모아 두고, 특별한 비단으로 표지를 싸고 귀한 향을 피워 그 책들을 쬐면서, 띠풀 지붕에 갈대발을 치고 종이 창에 흙벽으로 된 집에서 평생 벼슬 없는 몸으로 그 가운데 파묻혀 시를 읊고 싶다."
그러자 손님이 말했다.
"참으로 그리 사신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다시없을 기이한 사람이 되실 것입니다." 《암서유사》
한정록 제9권 · 광회
출처: 한정록 제9권, 광회
배경: 한정록은 허균이 직접 지은 책이 아니라, 명나라에 사신으로 오가면서 사 모은 수천 권의 중국 책 가운데서 세상을 등지고 한가로이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와 글을 뽑아 엮은 책이다. 은둔, 고일, 한적, 퇴휴, 유흥, 아치, 숭검, 임탄, 광회 등 열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아홉 번째 항목인 '광회'는 마음을 넓게 열어 두고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재물과 명예, 늙음과 죽음, 가난과 부귀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는 활달한 마음가짐을 보여 주는 일화들이 대략 시대순으로 실려 있으며, 각 이야기 끝에는 허균이 그 글을 뽑아 온 원래 책의 이름을 밝혀 두었다.
일러두기: 이 권에 실린 이야기는 허균이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중국 책에서 그대로 뽑아 온 것이므로, 이야기 끝에 적힌 책 이름은 허균이 인용한 원래의 출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인물의 자나 호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에서는 되도록 본이름을 앞세우고 자나 호는 괄호 안에 풀어서 밝혔다. 이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 기존 국역본을 참고하여, 그 뜻을 오늘의 쉬운 한글 문장으로 다시 옮긴 것이다.
조물주가 사람에게 가장 아끼는 것 — 한가함
조물주는 사람에게 공명과 부귀를 아끼지 않지만, '한가함'만은 아낀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천지가 움직이는 기틀이 발동하여 돌고 돌 뿐, 한순간도 멈추는 때가 없다. 이처럼 천지도 한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높은 벼슬에 많은 녹봉을 받는 사람이나 이름난 요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가운데 조용히 세속에서 물러나는 것을 즐기는 이는 매우 적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날마다 재산을 모으고 좋은 집을 지으려는 생각뿐이면서, 끝내 그 뜻을 이루지도 못한 채 먼저 죽고 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집에서 먹고살 만한 형편이 된다면 정말 한가한 생활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좋을 텐데도, 돈주머니만 꼭 움켜쥐고 손을 벌벌 떨며 장부만 챙기면서 마음을 졸이고 있으니, 어찌 낮에만 분주하겠는가. 밤에 꾸는 꿈조차 뒤숭숭할 것이다.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이 좋은 산수와 좋은 풍경의 맛을 어찌 제대로 알겠는가. 그리하여 부질없이 한평생을 수고롭게 하다가 죽어서도 뉘우칠 줄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실로 돈만 모을 줄 아는 수전노로서, 자손을 위해 소나 말처럼 일하고 있는 셈이다. 아, 수전노보다 더 심한 자도 있으니, 자손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독사나 전갈처럼 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시구가 있다.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함을 얻지 못하니 한가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등한한 사람은 아니라네
— 《문기유림》에서
호숙 — 조물주의 비웃음을 살 일은 하지 않는다
호무평(호숙)은 기상이 고상하고 시원스러우며 의논이 참신했고, 성품이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성실하고 정성스러운 것이 원래부터 타고난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평생 도리를 지키며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에 마음을 얽매이지 않았다. 문관 자리에 있은 지 이십여 년, 그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귀와 빈천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선비는 마땅히 몸을 닦으며 때를 기다릴 뿐, 조물주의 비웃음을 살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 《하씨어림》에서
짚신 한 짝 — 내쫓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오
어떤 승려가 산에 머물러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쫓아내려고 꾀했다. 그러자 승려는 짚신 한 짝을 방장(승려의 거처) 앞에 걸어 두고 시를 써 붙였다.
방장 앞에 짚신 한 짝 걸어 놓았으니 내쫓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오 늙은 중이 다닐 곳이야 예부터 넓은 법이니 이 해골을 굳이 이곳에 묻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오
나는 생각건대, 사대부가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태도도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고 본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어느 도성의 수령이 있었는데 이름은 잊었다. 그는 부임할 때 가족을 데려가지 않고, 짐이라고는 낡은 상자 하나뿐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면 장막을 걷고 잠자리를 정리했으며,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을 씻고 수저를 거두어 둔 뒤, 지팡이로 그 낡은 상자를 관청 앞에 받쳐 놓곤 했다. 이는 마치 나그네가 늘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아무 두려움 없이 세력 있는 토호와 환관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양성재(양만리)가 조정에서 벼슬할 때는 날마다 집으로 돌아갈 때 드는 여비를 계산해 두었으며, 돌아갈 때 짐이 무거워질까 봐 물건을 하나도 사지 못하게 하고는 날마다 짐을 꾸려 두어 마치 당장이라도 길 떠날 준비를 하듯 지냈으니, 바로 이와 같은 뜻이다. — 《학림옥로》에서
배도와 위세강 — 닥치는 대로 먹고 때가 오면 그대로 따른다
당나라 배진공(배도)은 사주나 관상 같은 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닭고기든 돼지고기든 물고기든 마늘이든 닥치는 대로 먹고, 살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은 때가 오면 그대로 따를 뿐이다."
수나라 위세강은 이부 상서가 되었지만 늘 만족하는 마음을 지녔다. 그는 자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녹봉이야 굳이 많기를 바랄 것이 있겠느냐. 정해진 임기가 차면 물러가야 하고, 나이가 아주 늙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몸에 병이 들었으면 사퇴해야 한다." — 《문기유림》에서
저부 — 소외양간에서 밝혀진 정체
저공(저부)이 장안령에서 태위기실참군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름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지위가 낮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번은 저공이 동쪽으로 가는 길에 장삿배를 타고, 옛 부하 두어 사람을 배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당정이라는 곳에 묵게 되었는데, 그때 오흥 사람 심충이 현령으로 있으면서 자기 손님을 배웅하려고 마침 그곳 절강을 지나게 되었다. 손님이 도착하자 역참의 관리가 저공을 쫓아내어 소외양간으로 옮기게 했다.
밀물이 밀려들자 심충이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다가 소외양간 아래 있는 사람을 보고는 누구냐고 물었다. 관리가 답했다. "어제 웬 천한 사람 하나가 와서 역참에 묵고 있었는데, 귀한 손님이 오셔서 임시로 그곳에 옮겨 두었습니다." 마침 현령이 술기운이 거나하여 멀리서 물었다. "이보게, 보리떡을 먹고 싶은가? 그리고 이름이 무엇인가?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저공이 손을 들어 답했다. "하남 사는 저계야(저부의 자)요. 멀고 가까운 곳에서 공의 이름을 안 지 이미 오래되었소."
현령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감히 그를 부르지 못하고, 소외양간에서 자기 명함을 써 보내 인사를 올리고 다시 짐승을 잡아 진수성찬을 차려 그 앞에 내왔다. 그러고는 역참 관리의 종아리를 쳐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려 했다. 그러나 저공은 그와 더불어 즐겁게 술을 마시며 말투와 낯빛이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나중에 현령이 저공을 배웅할 때는 고을 경계까지 따라 나왔다. — 《세설신어》에서
조변과 사마광 —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기를 바랄 뿐
송나라 청헌공(조변)이 성도의 전운사가 되었는데, 관할 지역을 순시할 때면 오직 학 한 마리와 거문고 한 대만 데리고 다니며, 앉을 때면 거문고를 타면서 학을 바라보았다. 늘 청성산을 찾았는데, 눈을 만나면 여관에서 쉬었다. 그런데 주인이 그가 조변인 줄 모르고 거만하게 굴며 업신여겨도 조변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그저 거문고만 탈 뿐 따지지 않았다.
사마온공(사마광)이 서경유대 벼슬로 있을 때는 나들이할 때마다 앞장서 인도하는 호위 인원이 세 명을 넘지 않았고, 훗날 궁의 제사를 맡은 한직에 있을 때는 말을 타면서도 일산을 펴지 않고 자기가 든 부채로 햇볕을 가리곤 했다. 그러자 정이천(정이)이 말했다. "공께서 나들이하실 때 뒤따르는 기병이 없어서 거리의 사람들이 혹 공인 줄 모를 것이니, 이는 편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사마광이 답했다.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네." — 《문기유림》에서
여희철 — 며칠씩 양식이 떨어져도 태연하다
여형공(여희철)은 만년에 숙주와 진양 사이에서 십여 년을 살았다. 그동안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지 못해 며칠씩 양식이 떨어진 적도 있었으나, 그는 태연했다. 조용히 방에 들어앉아 집안일을 일체 묻지 않았고, 지방 관청에는 털끝만큼도 부탁하지 않았다. 그가 화주에 있을 때 지은 시에
나에게 남은 일이라곤 책 빌려 오고 술 사는 것뿐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시끄러운 일이라곤 없네
라 했다. — 《저기실》에서
요유와 한기 — 늙어서 경계할 것은 탐욕뿐
요유가 말했다. "《서경》에 '그 마지막을 삼가라' 했고, 《시경》에 '처음에는 좋지 않음이 없으나 끝을 잘 맺는 이는 드물다' 했다. 그렇다면 군자란 온전한 이름을 이루는 것이 늘그막에 달려 있으니, 조심조심 스스로를 잘 지켜 나가더라도 오히려 뜻밖의 잘못이 있을까 두려운 법이다.
만에 하나 늙어 죽을 날이 가까울 때 처첩과 자손의 앞날을 걱정한다는 명목으로 이해득실에 마음을 쏟아, 스스로 더러운 짓을 저질러 나쁜 인상을 남긴다면, 사람들의 조롱과 욕이 뒤따를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늙어 혈기가 이미 쇠약해진 때에 경계할 것은 바로 탐욕이다." — 《지비록》에서
한위공(한기)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초년의 절개는 지키기 쉽지만, 만년의 절개는 지키기 어렵다." 그리고 구월 구일 중양절에 여러 사람과 잔치하면서 지은 시에
가을 늙은 채마밭의 담담한 모습을 서러워 마오 국화꽃은 가을이 깊을수록 더욱 향기로운 법이니
라 했는데, 이언평(이형)은 이 말을 경건히 받들어 큰 글씨로 벽에 써 붙이고 스스로의 규범으로 삼았다. — 《사문유취》에서
범순인 — 천 년을 산들 무슨 즐거움이겠는가
범 충선공(범순인)이 말했다. "사람들이 몸을 다스리는 이치로 서로 권면하는 것은, 사람이란 원래 이 세상에 오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정영위처럼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고향에 돌아와서, 그때의 성곽과 사람들을 보았을 때 하나도 자기가 살던 시절의 것이 아니라면, 자기 혼자만 오래 살아 있는 것이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 《견문수옥》에서
(용어) 정영위는 한나라 때 요동 사람으로, 도를 배워 학이 되어 천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육수성 — 세상을 사는 법과 세상을 벗어나는 법은 함께할 수 없다
육평천(육수성)이 말했다. "문장과 공업에 뜻을 둔 선비가 세상에서 바라던 것을 마침내 이루고 나면, 흔히 좋은 약을 구해 먹으며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누린 운수가 이미 넉넉하다면 도리어 조물주가 아끼는 바가 될까 두려우니, 오직 검소함으로 큰일을 대하고, 좋은 것은 조금만 취하고 적게 누리며 남은 생을 이어 가는 것이 좋다.
옛날 백향산(백거이)이 충주 별가로 임명되자, 그 이튿날 바로 신선의 약을 만들던 화로를 부수어 버렸다. 대체로 이 세상을 사는 방식과 이 세상을 벗어나 사는 방식은 이처럼 함께 갈 수 없는 것이다." — 《소문충공집》에서
소식 — 봄날 한바탕 꿈이었을 뿐, 마음 편한 곳이 곧 고향
소식은 별가 신분으로 담주에 유배되었는데, 처음 도착해서는 관사를 빌려 지냈다. 관청에서 안 된다고 하자 결국 땅을 사서 집을 지었는데, 담주 사람들이 돌을 나르고 흙을 지어다 주며 도왔다. 그는 날마다 어린 아들 소과와 함께 그곳에서 글을 읽으며 스스로 즐겼고, 때로는 큰 바가지를 짊어지고 밭이랑 사이를 다니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일흔 살 된 농사꾼 아낙이 그에게 말했다. "한림 학사께서 예전에 누리셨던 영화는 한바탕 봄꿈이었던 셈이지요." 소식은 그 말이 참으로 옳다 여겨, 그 아낙을 '춘몽파(봄꿈 할머니)'라 불렀다.
그때 왕정국(왕공)이 소식과 한패로 몰려 침주로 좌천되어 있었는데, 소식이 북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왕공과 작별하게 되었다. 왕공이 시중드는 여인 유노에게 술을 내오게 하니, 소식이 유노에게 물었다. "영남 땅이 아마 살기 좋지 않았겠지." 유노가 답했다. "이 마음이 편안한 곳이 곧 제 고향입니다." 소식은 이 말에 감동하여 유노에게 〈정풍파〉라는 노래 한 편을 지어 주었다.
춘몽파나 유노나 참으로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들이니, 초야에 묻힌 여인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춘몽파를 정풍파라고도 하는데, 결국 그 노래는 오랜 세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작이 되었다. — 《문기유림》에서
범순인 — 먼 땅에 온 줄도 모르고 지내다
범 충선공(범순인)이 영주에서 귀양살이할 때 어떤 사람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곳의 양고기와 밀가루 음식이 북쪽 지방의 것과 다름이 없어서, 날마다 문을 닫고 들어앉아 밀가루 떡만 먹고 있으니 몸이 먼 지방에 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낸다." — 《세설신어보》에서
소식 — 좋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소동파(소식)는 천하의 선비를 두루 사랑하여 어질든 못났든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위로는 옥황상제도 모실 수 있고, 아래로는 빈민을 구제하는 곳에서 빌어먹는 아이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우 자유(소철)는 틈만 나면 늘 형에게 사람을 가려 사귀라고 타일렀지만, 그때마다 소식은 "내 눈앞에 보이는 천하에는 한 사람도 좋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의 병통이라 하겠다. — 《철경록》에서
부귀와 늘그막 — 빈 채로 잠긴 대궐 같은 집
부귀란 사람에게 있어서 조물주가 아끼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귀는 젊은 시절에는 잘 찾아오지 않고, 늘 늘그막에야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젊을 때 부귀를 누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개 드문 일이다. 그리고 사람이 늘그막에 부귀를 얻더라도, 그것은 큰 저택을 마련하고 기생과 첩을 사고팔며 평생 채우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보상받으려는 모양새를 벗어나지 못한다. 백낙천(백거이)의 시에
수많은 고관들의 저택은 텅 빈 채 잠겨 있고 주인은 끝내 늙도록 돌아오지 못하는구나
라 했고, 또 사공서의 시에는
황금을 다 써서 노래와 춤을 가르쳐 놓았지만 결국 남에게 넘겨주어 그 사람의 젊음이나 즐겁게 하는구나
라 했다. 이 두 사람의 시를 읽으면 사람을 서글프게 만든다. 그러니 이런 삶은 참으로 본받을 만한 것이 못 된다. — 《저기실》에서
사공도와 양성재 — 색은 자기를 해치는 것이다
당나라 사공도의 시에
어제는 꾀꼬리 소리더니 오늘은 매미 소리로다 일어나 떠나려 하니 또 하루해가 저무는구나 여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처럼 세월은 빠르게 몰아치는데 거기다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채찍질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라 하여, 여색이 자신을 해친다는 것을 경계했다. 양성재(양만리)는 우스갯소리를 잘했는데, 늘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염라대왕이 아직 그대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대가 스스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말이 바로 저 사공도의 시와 같은 뜻이다. — 《학림옥로》에서
한기 — 즐거움이 얼마나 된다고 사람 마음을 수고롭게 하리
한위공(한기)이 승상부에 있을 때 집에 여악(노래하고 춤추는 여인들) 스무 명 남짓을 두고 있었는데, 부인 최씨가 세상을 떠나자 어느 날 그들 모두에게 후한 재물을 주어 내보냈다. 같은 반열의 사람들이 그냥 곁에 두었다가 노년의 즐길 거리로 삼으라고 권하자 한기가 말했다. "즐거운 때가 얼마나 된다고 늘 사람의 마음을 수고롭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것이 어찌 나의 간결하고 고요한 즐거움만 하겠는가." — 《사우재총설》에서
백거이 — 세속의 욕심을 스스로 금하다
백낙천(백거이)은 벼슬에서 물러나자 곧바로 집안일을 정리하고 살림을 계산하며 값진 재물과 사람을 정돈했다. 그런데 그의 기생 가운데 번소라는 이가 있었는데, 나이는 스무 살 남짓으로 노래와 춤을 멋지게 잘했다. 특히 〈양류지〉라는 곡을 잘 불러서 사람들이 아예 그 곡 이름으로 그녀를 부를 정도로 낙양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백거이는 이미 벼슬에서 물러난 데다 풍증에도 걸렸으므로 그녀를 놓아 보내려 했는데, 번소가 슬피 울며 차마 떠나지 못했다.
이를 본 백거이는 가엾게 여겨, 떠나는 그녀와의 정을 아쉬워하는 시를 읊었다. 그리고 고황이라는 사람도 의성이라는 이가 자신의 애첩이었던 금객을 시집보낸 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의성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면서 그 애첩도 출가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을 스스로 금하여 자기 눈과 귀의 즐거움만을 위해 남을 붙들어 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의 모습이다. — 《문기유림》에서
두보 — 질그릇 동이의 술이나 옥잔의 술이나
두소릉(두보)의 시에
농가의 묵은 질그릇 동이라고 비웃지 마오 여기에 술을 담아 마시며 자손을 키워 왔다네 은 술병 기울이고 옥잔으로 마시면 사람들 놀라게야 하겠지만 취해서 돌뿌리에 누워 자기는 매한가지라네
라 했으니, 대개 질그릇 동이에 술을 담아 마시는 것이나 은 술병을 기울이고 옥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나 한번 취하기는 매한가지요, 소나무 침상에 왕골자리를 깔든 비단 장막에 옥베개를 베든 한번 잠자기는 매한가지라는 뜻이다. 이 이치를 안다면 가난과 부귀, 천함과 귀함을 하나로 볼 수 있다. — 《학림옥로》에서
축법심 — 그대 눈에는 화려해도 내게는 초가집일 뿐
진나라의 승려 축법심이 간문제와 마주 앉아 있는데, 유윤이 물었다. "도를 닦는 이가 어찌 권세가의 집에서 노니는가?" 축법심이 답했다. "그대 눈에는 화려한 대문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쑥대로 엮은 초가집에서 노니는 것과 다름없소."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은 사람이 유윤이 아니라 변 땅의 수령이었다고도 한다. — 《세설신어》에서
서면 — 이 집은 누구의 집이 될지 알 수 없다
거처하는 집이란 몸을 담을 만하면 그만이지, 높고 넓은 집일 필요는 전혀 없다. 나는 늘 양나라 서면(자는 수인)을 좋아한다. 그가 아들을 경계하며 쓴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청명문 밖 집 서쪽 근처 선복사에 재물을 시주하고도 다시 잘 고치거나 수리하지 않는 것은, 그곳을 그저 여관집 정도로 여기는 내 마음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화려하게 꾸미겠는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이 집을 두고 내 집이라 부르니 그때마다 늘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집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호걸과 귀인들이 대대로 이어 살아온 곳인데, 내가 죽은 뒤에는 또 누구의 집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곽종의는 낙양에 집을 지을 때 겨우 촛불을 들고 살펴볼 수 있을 만큼만 지었고, 진수공은 윤주에 집을 지을 때 가마 하나가 겨우 서루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만 지었다. 두 사람 모두 사치스럽기로는 당대 으뜸이었다지만, 그것이 결국 무슨 이로움이 있었겠는가. — 《문기유림》에서
유과와 진덕수 — 옛사람은 한 걸음도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
용주 유개지(유과)의 시에
한 발자국 물러섬은 안락을 누리는 방법이요 세 가지 좋은 점을 말해 줌은 기쁨을 맺는 인연이라네
라 했는데, 진서산(진덕수)은 이 시구를 외는 것을 즐겼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한 발자국 물러선다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세 가지 좋은 점을 말해 준다는 것은 그저 세속을 따르고 인정에 영합하는 것인데, 그것을 옳다고 보십니까?" 이에 나(허균이 인용한 원문의 화자)는 이렇게 답했다.
"옛사람은 곧은 도리로 행동하여, 이치가 있는 곳이면 한눈팔지 않고 곧장 나아갔다. 벼슬을 떠나고 나아가며 멈추고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나는 것이 모두 그러했으니, 어찌 이른바 한 발자국 물러선다는 것이 있었겠는가. 그러다가 후세에 이르러 부귀영화를 탐내고 승진을 다투며 반 등급을 놓고도 사람을 해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니, 그제야 비로소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을 안락한 방법으로 삼게 된 것이다.
또 옛사람들은 옳으면 옳다 하고 그르면 그르다 하여 명백하고 정직했으니 일찍이 무엇을 가리려 했겠는가.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정직함을 미워하고 아첨을 좋아하게 되면서, 바른말을 했다가 번번이 재앙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비로소 세 가지 좋은 점을 말해 주는 것을 기쁨을 맺는 인연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 《학림옥로》에서
배도와 황정견 — 글하는 자손만은 끊어지지 않게
당나라 재상 배도는 늘 아들에게 이렇게 훈계했다. "무릇 우리 자손들에게는 그저 글하는 집안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가운데 혹 공을 이루어 천자의 정승이 되는 자가 나온다면, 그것은 그저 하늘이 준 행운일 뿐이다." 또 산곡(황정견)은 "선비·농부·장인·상인이 모두 대대로 내려오는 생업을 지키고 있으니, 사대부 집안의 자제들도 충신과 효자의 도리를 알면 그만이다. 다만 글 읽는 자손의 맥만은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재주 있는 자손이 나온다면 절로 세상에 이름이 날 것이다" 했는데, 이는 배도의 말을 이어받되 다만 '글하는 자손'을 '책 읽는 자손'이라는 말로 바꾼 것뿐이다.
연겸선은 늘 책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이제 늙었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 이름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선 후대에 글하는 자손이나 하나 두고 싶을 뿐이다." 그의 집에는 '서종당(책 읽는 후손의 집)'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배도와 황정견 두 사람의 말을 함께 취한 것이다. — 《저기실》에서
유 선생 — 도포 한 벌이 남긴 무거운 마음
곽단이 말했다. "유 선생이라는 사람이 형산 자개봉 아래, 고을 저잣거리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그는 끼니때마다 얻어먹고 다녔는데, 돈이 생기면 술을 사 마시고 취해 돌아갔다가 낮이면 다시 저잣거리에 나타나곤 했다.
그런데 어떤 부유한 사람이 그에게 도포 한 벌을 주니 유 선생은 기쁘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만나 보니 그는 여전히 예전에 입던 거친 베옷을 입고 있었다. 유 선생이 그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가 나에게 누를 끼쳤소. 예전에는 암자를 나서면 아무 데서나 빌어먹을 수 있었고, 잠자리에 들어도 문을 잠글 필요조차 없었소. 그런데 그 도포를 얻은 뒤부터는, 그것을 입지 않고 나갈 때조차 마음이 늘 거기에 매여 편치가 않았소. 그래서 자물쇠까지 사서 나갈 때마다 방문을 잠갔고, 혹 도포를 입고 나갔다가 밤에 돌아와서도 도둑을 막으려고 방문을 굳게 걸어 잠갔소. 그렇게 며칠을 아등바등 지내다 보니 나 스스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오늘 우연히 그 옷을 입고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문득 이 도포 한 벌 때문에 내 마음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참으로 크게 웃을 일이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에 벗어서 주어 버렸더니, 그제야 내 마음이 편안해졌소. 그대가 나에게 누를 끼친 것이오.'" — 《문기유림》에서
호구소 — 나물죽 세끼에도 맑은 복을 사례하다
오청강이 말했다. "금계 사람 호구소는 오강재(오여필)를 따라 《주역》을 배웠는데 조예가 매우 깊었다. 그러나 집이 몹시 가난하여 아들에게 농사를 짓게 해 겨우 먹고 입는 것을 마련했다. 그는 매일 저녁 무렵이면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며 하늘이 하루치 맑은 복을 내려 주신 데 대해 감사드렸다. 그러자 늙은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루 세끼 나물죽을 먹는데 그것을 두고 무슨 맑은 복이라 부를 것까지 있습니까.' 호구소가 답했다. '내가 다행히 태평한 세상에 태어나 전쟁의 화를 겪지 않았고, 또 다행히 온 집안 식구가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내며 굶주리거나 춥지 않게 지내고, 또 다행히 병상에 누운 사람도 없고 감옥에 갇힌 사람도 없으니, 이것이 맑은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으면 그저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정덕 신미년(1511년)에 화림의 도적 떼를 만나고, 기묘년(1519년)에 신호의 반란을 만나 산속으로 난리를 피해 다니면서,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쳐 쓰러져 몸을 가눌 기운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호구소가 말한 맑은 복이 참으로 옳은 말이었음을 믿게 되었다. — 《미공비급》에서
고중결 — 유자의 옷, 승려의 모자, 도인의 신
고중결은 만년에 불교 경전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마침내 머리를 깎고 스스로를 '금속 도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초상화에 스스로 이렇게 써 붙였다.
유자의 옷에 승려의 모자, 도인의 신을 신었으니 천하의 어느 푸른 산에라도 이 뼈를 묻을 만하구나 만약 예전에 내가 호기롭게 놀던 곳을 묻는다면 낙양 거리를 말 타고 노닐던 부잣집 자제였다네
당시 사람들은 그의 활달한 기풍을 기꺼이 즐겨 이야기했다. — 《하씨어림》에서
두 사인 — 선사는 과거 급제를 몰랐다
두 사인은 약관의 나이에 이름을 이루어 책문 시험에 급제해 도성에 명성을 떨쳤다. 그가 일찍이 벗들과 함께 도성 남쪽을 유람하다가 어느 절에 이르렀는데, 한 선승이 거친 베옷을 입고 홀로 앉아 있었다. 그와 더불어 깊은 이치와 오묘한 뜻을 이야기해 보니 그 뜻이 참으로 남달랐다. 선승이 두 사인의 성과 자를 묻고 또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니, 곁에 있던 사람이 그가 여러 번 과거에 급제한 것을 자랑스레 알려 주었다. 그러나 선승은 그를 돌아보며 웃을 뿐 "그렇소, 내가 미처 몰랐구려" 할 뿐이었다.
두 사인이 감탄하고 의아하게 여기며 시를 지었다.
집은 도성 남쪽 두곡 언덕 곁에 있는데 두 차례 과거를 한 번에 다 급제했네 선사는 도무지 내 이름조차 모르시니 이제야 불문의 깊은 뜻을 알겠구나
— 《사문유취》에서
장사와 구양현 — 벼슬 없이 돌아온 이를 향한 조용한 조소
《녹설정잡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장사 땅에 어느 조정 관리가 있었는데, 고향에 돌아오니 기세가 등등했다. 그는 손님이 오면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몹시 요란하게 맞이하곤 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오랜 벗이 한 사람 있어 그를 뵙기를 청했다. 관리가 물었다. '옹께서는 평소 시 외기를 좋아하셨으니, 요즘은 어떤 시를 읽으셨습니까?' 벗이 답했다. '요즘 손봉주가 구양규재(구양현)에게 지어 준 시 한 수를 외었는데 참으로 좋더이다.' 하고는 곧 낭랑히 그 시를 외웠다.
규재는 그래도 여전히 예전의 규재일 뿐 조그만 벼슬 하나 지니지 못한 채 돌아왔구나 만약 이 사람이 다른 이들처럼 이품 벼슬에라도 올랐더라면 문 앞에 울리는 풍악 소리가 천둥처럼 요란했을 텐데
관리는 잠잠히 그 시를 듣고만 있었다. 그다음 날부터는 손님이 와도 그 집 뜰이 조용해졌다." — 《공여일록》에서
상성원 — 이 세상 가는 곳마다 나의 정자
강서의 조 상서는 집이 상성원의 동산과 서로 가까이 있어, 그 동산을 백방으로 가지려 애썼지만 손에 넣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성원이 시와 편지를 지어 그에게 보냈다. 그 시는 이러하다.
이 세상 가는 곳마다 바로 나의 정자이니 사람이 지어낸 일이란 예로부터 반드시 참된 것은 아니라오 비가 내리고 구름이 뒤집히는 것도 절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사람을 냉랭하게 바라볼 뿐 난정의 옛 모임도 이제는 지난 일이 아니던가 무릉도원의 신선들도 진나라를 두고 비웃었다네 동산은 그저 주인이요 사람은 손님인 것을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는 몇 해나 더 살 수 있으리오
조 상서는 이 시를 보고 부끄러워하며 사과하고, 감히 그 동산을 받지 못했다. 아, 상성원이야말로 참으로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요, 조 상서 또한 자신의 허물을 아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 《공여일록》에서
(용어) "난정의 옛 모임"은 동진의 명필 왕희지가 벗들과 난정에 모여 시를 짓고 놀았던 유명한 모임을 가리키며, 화려했던 옛 모임도 결국 지나간 옛일이 되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무릉도원의 신선들이 진나라를 비웃었다"는 것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 사람들이 진나라의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들어가 살았다는 이야기를 빗댄 것이다.
양분 — 옛집을 빼앗겨도 소송하지 않다
양분이 상서 벼슬로 은퇴하고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옛집을 힘센 이웃에게 빼앗겼으므로 자제들이 관가에 소송을 하려고 그 소장을 양분에게 올렸다. 양분은 그 종이 끝에 이런 시를 적었다.
이웃이 나를 침범한다 해서 나도 그대로 따라야 하나 결국은 모름지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때를 생각해야지 시험 삼아 옛 궁궐 함원전 터를 향해 바라보니 가을바람에 가을 풀만 참으로 쓸쓸하구나
— 《자경편》에서
왕헌지 — 그 청전만은 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
왕자경(왕헌지)이 밤에 서재에 누워 있는데, 도둑 떼가 방에 들어와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했다. 왕헌지가 천천히 말했다. "이보게 도둑 친구들, 그 푸른 담요만은 우리 집안에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건이니, 특별히 그것만은 두고 가는 것이 좋겠네." — 《세설신어》에서
장솔 — 장하다, 참새와 쥐들이여
장사간(장솔)은 집안 살림에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신안에 있을 때 하인에게 쌀 삼천 섬을 실어 보내게 했는데, 오나라로 돌아오는 동안 절반 넘게 없어져 있었다. 장솔이 그 까닭을 물으니 하인이 답했다. "참새와 쥐가 축내서 그렇습니다." 장솔이 웃으며 말했다. "장하다, 참새와 쥐들이여." 하고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 《세설신어보》에서
진종 — 무덤을 매일 보아야 마음이 놓인다
효렴 출신 진종은 별장을 고을 북망산에 지었는데, 앞뒤로 무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진종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놀렸다. "눈에 매번 이 무덤들만 보이니 참으로 유쾌하지 않겠소?" 진종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않소. 날마다 눈으로 이 무덤들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감히 함부로 즐기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오." — 《세설신어보》에서
무덤 위의 잔치 — 저승과 이승을 한가지로 보는 사람들
범효경(범신)은 무창에 있을 때 스스로 무덤을 만들어 '장실'이라 이름 붙이고는, 때로 손님들과 함께 북 치고 피리 불며 그 안에 들어가 잔치를 벌이고 술을 마셨다.
또 사공표성은 미리 자신이 묻힐 무덤을 만들어 두고, 벗들이 찾아오면 무덤 구덩이 안으로 이끌고 들어가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이를 힐난하면 표성은 이렇게 답했다.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의 큰 안목으로 보면 저승과 이승은 하나로 보이는 법이오. 이 안에서 잠시 노니는 것으로 그칠 일도 아닌데, 그대는 어찌 그리도 마음이 넓지 못하시오." 참으로 이 두 사람의 활달함은 대단하다 하겠으나,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다. — 《문기유림》에서
곽덕성 — 벼슬보다 술 한잔의 자유가 낫다
명나라 태조(주원장)가 곽덕성을 불러 도독으로 삼으려 하자, 곽덕성은 관을 벗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신은 술을 즐기고 눕기를 좋아하며 일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급한 일이 생기면 지위는 높고 녹봉은 무거운데 일 처리는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니, 폐하께서는 결국 저를 죽이시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정이란 그저 돈을 넉넉히 얻어 좋은 술을 마시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한평생을 마치는 데 있을 뿐입니다." — 《명세설신어》에서
도목 — 하늘이 나를 굶겨 죽이지는 않으리라
도현경(도목)은 조용한 서재에 거처하며 손님을 맞아 술을 마시고 옛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하여, 하루 종일 그렇게 지내곤 했다. 간혹 쌀이 떨어지면 웃으며 말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설마 이 도 아무개를 굶어 죽게야 하겠는가." — 《소창청기》에서
양신 —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음을 마음에 품다
양승암(양신)은 벽에 이런 글을 써 붙였다. "늘그막에 병마가 찾아와 붓과 벼루를 가까이하기가 어려워, 신명 앞에서 다시는 시문을 짓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죽 한 그릇, 저녁에 등잔불 하나로 살아가는, 집에 있으면서도 산속 승려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고는 길을 다닐 때마다 오직 당나라의 재가승 방온이 남긴 "모든 소유는 텅 비어 있다"는 네 글자만을 써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 《소창청기》에서
위교 — 우주를 바라보며 물아를 잊다
위장거(위교)가 말했다. "나는 병이 많아 집 안에만 들어앉아 그저 서투름을 지키며 스스로를 닦아 갈 뿐이다. 때로 밖에 나가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노라면, 우주의 텅 비고 아득히 넓은 기운을 마주하며 흔연히 마음이 그 속으로 모이고, 사물과 나 자신을 함께 잊게 된다. 헛된 명예가 인간 세상에 떠도는 것은, 비유하자면 한가한 구름이 하늘에 떠 있고 뜬 물거품이 바다 위에 이는 것과 같으니, 모였다가 흩어지고 일어났다가 스러질 뿐이다. 여기에 어찌 변치 않는 도리가 있겠는가." — 《지비록》에서
진자칙 — 나를 아는 자가 드물면 오히려 귀해진다
진자칙이 말했다. "옛날 요 임금이 허유를 넓은 아량으로 우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건만 허유는 두 귀를 영수에 씻었고, 초나라가 장주(장자)를 예를 갖추어 초빙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건만 그는 낚싯대를 잡은 채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안회의 소박한 밥그릇과 표주박 같은 삶을 즐기며 글을 외고, 원헌의 쑥대문 같은 초가에 살면서 시를 읊다가, 때로는 숲속과 물가를 거닐기도 한다. 그리하여 장저와 걸닉 같은 옛 은자들과 한 무리가 되어, 원숭이의 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으슥한 못가에서 우는 학의 뜻을 살피면서, 몸이 편안한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근심 없는 것을 복으로 삼는다. 이렇게 헛된 이름에 스스로 만족하며 남에게 그다지 신통찮게 보이는 처지에 머무를 수 있다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수록 나는 오히려 더 귀해지는 것이다." — 《지비록》에서
(용어) 허유는 상고 시대의 은자로, 요 임금이 나라를 물려주려 하자 이를 더러운 말로 여겨 귀를 씻고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장주(장자)는 전국 시대의 사상가로, 초나라 왕이 재상 자리로 그를 초빙했지만 사양하고 낚시나 하며 살겠다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안회와 원헌은 모두 공자의 제자로, 가난 속에서도 도를 즐기며 산 것으로 유명하다. 장저와 걸닉은 공자와 같은 시대에 세상을 등지고 농사지으며 살았던 은자들이다.
양간 — 이미 부유한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경허자가 말했다. "양자호(양간)가 말하기를 '사람이 한세상을 사는 데는, 다만 한바탕 바삐 살고 나면 그다음엔 곧 쉬는 것일 뿐이다' 했고, 또 '무릇 집이 있는 사람이 그 집에서 편히 살 만하고, 곡식이 먹고살 만큼 있고, 채소밭의 채소가 쓰기에 넉넉하다면, 이미 부유함에 속하는 것인데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만족할 줄 아는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드물다' 했다.
양자호가 '다만 한바탕 바삐 살고 나면 그다음엔 곧 쉬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나는 사람들이 만족할 줄 아는 즐거움을 아는 이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일 가운데 어느 것이 이보다 더 심한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 만약 이 괴로움을 벗어던질 수 있다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마음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더없이 통쾌한 일인데, 세상 사람들이 미혹하여 이를 깨닫지 못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 《지비록》에서
이상으로 한정록 제9권 광회를 마친다. 조물주가 사람에게 가장 아끼는 것이 다름 아닌 '한가함'이라는 첫머리의 말처럼, 이 권에 실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재물과 명예, 늙음과 죽음, 가난과 부귀 앞에서 마음을 넓게 열어 두고 얽매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짚신 한 짝을 걸어 놓고 "내쫓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던 승려, 도둑에게 집안 가보만은 남기고 가라고 태연히 말한 왕헌지, 무덤 곁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았던 이들까지, 허균은 이들의 활달한 마음가짐을 통해 스스로도 얽매임 없이 살고자 하는 바람을 이 권 곳곳에 담아 두었다.
한정록 제10권 · 유사
출처: 한정록 제10권, 유사
배경: 이 10권의 주제인 "유사"는 "그윽하고 한적한 삶 속의 소소한 일들"이라는 뜻으로, 산속이나 시골에 묻혀 사는 선비들이 서로 사귀는 법, 집과 정원을 꾸미는 법, 계절 따라 누리는 자잘한 즐거움과 취미, 이름난 문인·학자들의 한가로운 언행과 일화 등을 두루 모아 놓은 대목이다. 앞의 여러 권이 대체로 한 인물의 말이나 시, 또는 한 가지 일화를 중심으로 짧게 엮여 있다면, 이 권은 그런 짧은 일화들과 더불어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벗을 사귀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아울러 담고 있어, 허균이 꿈꾸던 은둔의 삶이 한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산속에 묻혀 사는 선비들이 서로 사귀는 법은 저잣거리나 조정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예절은 간소함을 소중히 여기고 말은 정직함을 소중히 여기며 숭상하는 바는 청렴함이다. 남의 착한 일은 반드시 서로 칭찬하여 알리고 잘못은 반드시 서로 나무라 바로잡으며 병이 나면 반드시 서로 돌보아 준다. 편지를 쓸 때는 반드시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사실을 말하고, 상대를 부를 때는 호나 자를 쓰지 관직명을 쓰지 않으며, 학문을 논할 때는 반드시 자신이 알고 들은 바를 착실히 말할 뿐 당시의 정치나 정책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술과 음식은 형편이 되는 대로 마련하되 자리에 앉는 순서는 신분과 나이 순으로 하고, 술은 주량껏 마시고 시는 생각나는 대로 짓는다. 앉고 일어서는 것은 자연스럽게 하되 자리를 함부로 뜨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심부름할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직접 몸을 움직인다. 초청을 받으면 반드시 약속한 대로 가지만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가는 법은 없다. 볼일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하지만, 다녀온 뒤에 굳이 인사치레로 사례할 필요는 없다. 무릇 충효와 우애에 관한 일이라면 마음을 다해 힘쓴다. 공연히 선배를 미워하지 말고, 반드시 후배들과 가까이 지내며 이끌어 주어 함께 옛 풍속을 이어 가야 한다. 《패해》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은 마치 문틈으로 달리는 말을 언뜻 내다보듯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데, 그나마 비바람 치는 날과 근심 걱정에 시달리는 날이 대개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그 가운데 한가로운 때를 누리는 것은 겨우 십분의 일 남짓밖에 안 된다. 게다가 그런 이치를 알아서 한가로움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은 백에 하나나 둘 정도이고, 그 백에 하나 되는 사람 중에도 대개는 음악과 여색으로 즐거움을 삼으니, 이는 본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경지가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애초부터 여색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귀에 듣기 좋은 것이 애초부터 음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환한 창가 정갈한 탁자 위에 향을 피워 놓고, 옥을 깎아 세운 듯 단정한 손님과 마주 앉아, 이따금 옛사람들의 빼어난 글씨를 꺼내어 새 발자국 모양이나 달팽이가 기어간 모양을 닮았다는 옛 글씨체며 기이한 산봉우리와 아득히 흘러가는 강물을 그린 그림을 함께 감상하고, 옛 청동 종과 솥을 어루만지며 오래전 상나라·주나라 시대를 직접 마주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좋은 벼루에 간 먹물이 마치 바위 속에서 샘물이 솟듯 하고 거문고 소리가 옥이 부딪는 소리처럼 맑게 울린다면, 자신이 지금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이른바 맑고 한가로운 복을 누린다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산가청사》
고향 마을 물가에 터를 잡아, 가시나무를 둘러 심어 울타리로 삼고 그 사이사이에 대나무를 심는다. 남은 땅에는 부용꽃 이백육십여덟 그루를 심어 두 길 높이쯤 자라게 하고, 매화나무 여덟 그루를 둘러 심어 세 길 남짓 자라게 한다. 겹으로 두른 울타리 바깥에는 토란과 밤나무 같은 과일나무를 심고 안쪽에는 다시 매화를 심는다.
집은 앞채는 띠풀로, 뒤채는 기와로 팔각 모양으로 지어 "존경각"이라 이름 짓고 고금의 책을 갈무리해 두며, 왼쪽에는 자손을 가르칠 글방을 두고 오른쪽에는 도를 닦는 집을 마련하여 손님을 맞는다. 앞채는 세 칸으로, 침실 하나와 독서실 하나와 약재를 두는 방 하나를 두고, 뒤채는 두 채를 지어 하나에는 술과 곡식을 갈무리하고 농기구와 산에서 쓸 도구를 두며, 다른 하나에는 일꾼들이 지낼 방과 부엌과 욕실을 알맞게 배치하고, 심부름하는 아이 하나와 몸종 하나와 정원을 돌보는 이 둘을 둔다. 앞뜰에는 학을 기르는 집을 마련해 학을 기르고, 뒤뜰에는 개 한두 마리와 나귀 한 마리와 소 두 마리를 기른다. 손님이 찾아오면 채소와 밥과 술과 과일을 마련해 대접한다. 틈이 나면 책을 읽거나 농사일을 돌보며, 억지로 애써 시를 짓지는 않고, 타고난 대로 남은 생을 편안히 지낸다. 《옥호빙》
소나무와 대나무가 길에 우거지고 뜰에 온갖 꽃이 둘러 피면, 산에 묻혀 사는 사람의 소박한 옷을 걸치고 지팡이를 끌며 책을 옆에 낀 채 흥얼거리며 걸어 다니면서 울창한 숲속에서 세월을 보낸다. 묵은 밭이든 새로 일군 밭이든 농사가 어찌 되든, 녹봉이며 휴가며 벼슬에 나가고 물러나는 일 따위는 무릎을 괴고 앉아 길게 휘파람이나 불며 흘려보내고, 자식 혼인시키는 일도 형편이 닿는 대로 할 뿐이니, 이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꿈속의 일과 다를 바 없다. 오직 이름난 좋은 선비를 만나면 흔쾌히 맞아들여 함께 담백한 국수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유교와 불교가 갈라지고 합쳐지는 이치를 이야기하니, 타고난 본성과 하늘이 정한 운명의 참된 자리란 물속에 녹아든 소금 맛처럼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법이다. 《옥호빙》
집 두어 칸이 본채 뒤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세상일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요 손님이나 교유하는 이들도 찾아오지 않는 곳이다. 이따금 혼자 이곳에서 노닐며 너럭바위 위에 옷을 벗어 두고 등받이 의자에 걸터앉아 붓을 적셔 시를 쓰기도 하고, 등에 볕을 쬐며 책을 펼쳐 읽으면서 언짢았던 기분을 풀곤 한다. 《옥호빙》
한유(자는 지국)가 허창에 마련한 자기 집 냉방은 깊이가 일곱 길이나 되었는데도, 여름이면 오히려 그 안에 있기 힘들다고 했다. 마침 교외에 살던 상영사가 찾아오자 한유가 물었다.
"교외에 사니 시원하던가?"
상영사가 대답했다.
"시원했습니다."
한유가 그 까닭을 묻자 상영사가 말했다.
"들판에 사는 사람들은 처마가 긴 큰 집이 없으니, 일찍 일어나도 수레와 말이 일으키는 먼지에 시달릴 일이 없습니다. 가슴속에 아무 잡념도 없이 몸을 훤히 드러내고 부채를 든 채 나무 걸상에 발을 걸치고 앉아, 나무 그늘이 동쪽으로 옮겨가면 저도 동쪽으로 따라가고 서쪽으로 옮겨가면 저도 서쪽으로 따라갑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유가 급히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만하게. 자네 말만 들어도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구먼." 《피서록화》
사영운(강락공에 봉해졌다)이 말했다.
"좋은 시절, 아름다운 경치, 구경하고 싶은 마음, 즐거운 일—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다 갖추기란 어려운 법이다. 한기(위국공에 봉해졌다)가 도성 북문에 사병당이라는 집을 지었는데, 공명과 부귀를 뜻대로 이루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이 네 가지를 늘 함께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젊어서 사방을 떠돌며 노닐 때만 해도 이 네 가지가 한데 갖추기 어려운 것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뒤 허창에 살 때 나이 든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유(자는 지국)가 그 고을 원으로 있을 때, 봄이 되면 날마다 서호에다 손님 열 명분의 술과 안주를 마련해 두고, 아침 일찍 고을 일은 아전들에게 맡겨 버리고 곧장 서호 가로 나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벼슬아치가 있으면 손님 아홉이 다 찰 때까지 붙잡아 맞아들여 그들과 함께 하루 종일 즐겁게 술을 마셨다. 이에 증존지라는 이가 한번은 공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데는 무슨 부득이한 사정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공이 대답했다.
'자네는 젊으니 어찌 이 마음을 알겠는가. 나는 이미 늙었으니 앞으로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네. 만약 함께 마실 만한 사람을 일일이 가려서 사귀려 한다면, 내가 즐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고 봄 또한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네.'" 《피서록화》
신기질(자는 유안)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하는 법이니, 무엇보다 농사에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 내 호를 '가헌(농사짓는 집이라는 뜻)'이라 지었다." 《소창청기》
유대하(자는 시옹)는 아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한편 농사일에도 힘쓰게 했다. 한번은 비가 오는데도 밭 갈기를 재촉하며 이렇게 말했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면 고단함도 잊게 되지만, 편안함에 젖으면 게을러지고 마는 법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든 일을 시키는 것은 장차 너에게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소창청기》
서적은 아들 서숭을 이렇게 타일렀다.
"작은 남새밭을 일구어 가꾸는 것은 채소를 내다 팔아 이익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 얼마간이나마 눈으로 즐길 거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소창청기》
농사철을 달마다 정리한 표를 마땅히 초가집 좌우에 붙여 두고, 담장과 지붕을 손보는 일은 방향을 잃지 않게 하고, 몸을 돌보는 일은 절도를 잃지 않게 하고, 살림살이를 손질하는 일은 격식을 잃지 않게 하고, 화초와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은 제철을 놓치지 않게 해야 한다. 《미공비급》
우리 집안은 대대로 오릉과 화산에 숨어 살던 옛 처사들의 그 은둔한 덕을 이어받아 왔는데, 정작 우리는 어지러운 속세에 얽매여 한평생을 매여 지내니, 푸른 솔과 흰 돌 사이에서 살자던 그 다짐을 떠올릴 때마다 어찌 크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유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옛 처사들의 옛터에 완련초당을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대 심을 땅을 마련했는데 중년에야 비로소 산에 살고 싶던 마음을 이루었네
하는 시구를 짓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산중이라도 도가들처럼 몸을 단련하고 숨을 고르는 수련을 하여 남은 수명을 아끼는 짓을 할 수는 없고, 그저 불교의 대장경 육천 권을 읽다가 쉬다가 하며, 오직 이웃 노인이나 절의 승려들과 더불어 꽃나무 접붙이는 법, 과일나무 심는 법, 차조 심는 법, 복령(약재로 쓰는 버섯의 일종) 깎는 법을 즐거이 이야기해야 한다. 이 나머지 시간은 한결같이 본디 타고난 제 모습에 편안히 머물러야 할 뿐이다. 틈나는 대로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암서유사》를 엮어 흙집에 간직해 둔다. 아, 이것이 은나라를 일으킨 이윤이나 주나라를 도운 강태공, 순임금의 신하였던 설이나 후직 같은 이들의 큰 사업은 못 되지만, 세상에서 이른바 대인 선생이라 불리는 이들이 비웃지만 말아 주었으면 한다. 《암서유사》
의리를 논한 글을 읽고 옛 명필의 글씨본을 익힌다. 맑은 마음으로 고요히 앉아 유익한 벗과 담박한 이야기를 나눈다. 술이 몇 잔 들어가 얼근해지면 화초에 물을 주고 대나무를 심는다. 거문고 소리를 듣다가 학을 놀리고, 향을 피우다가 차를 끓인다. 배를 띄워 산수를 구경하고 장기와 바둑에도 마음을 붙인다. 설령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다 해도 나는 이것과 바꾸지 않으리라. 《옥호빙》
새로 지은 집이 낙성되었는데, 저잣거리의 소란한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고 속된 사람들의 수레도 문 앞에 이르지 않으며, 손님이 오면 자리를 권해 앉힌다. 문 앞에는 푸른 산이 우뚝 서 있고 흐르는 개울이 왼편으로 지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바탕 나누다가는 이내 큰 술잔을 돌린다. 《옥호빙》
손이 가는 대로 대나무를 다듬어 낚싯대를 만들고, 맑은 물에 배를 띄운 채 푸른 숲 우거진 언덕 아무 데나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있노라면, 참으로 인간 세상의 온갖 잡념을 잊어버리게 된다. 사영운이 이른바 "북고산 아래 큰 물고기가 많다는 말을 듣고 낚싯대를 한 번 드리웠더니 마흔아홉 마리를 낚았다"고 한 그 흥취야말로, 어찌 엄광(한나라 때 벼슬을 마다하고 낚시로 세월을 보낸 은자)만 못하다 하겠는가. 《소창청기》
한가로이 지내는 것도 높은 벼슬아치들의 그것과는 다른 데가 있다. 성현의 글을 읽을 때는 마치 임금과 아버지를 마주 대하듯 하고, 역사책을 읽을 때는 마치 재판 기록을 살피듯 하며, 소설을 읽을 때는 마치 광대의 놀음을 구경하듯 하고, 시를 읽을 때는 마치 노래를 듣듯 한다. 이렇게 한다면 그 즐거움이 어찌 세상 이치에 통달한 이들의 즐거움과 다르다 하겠는가. 《소창청기》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짧은 경계의 글이 하나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술은 적게 마시고 죽은 많이 먹으며, 채소는 많이 먹고 고기는 적게 먹는다. 입은 적게 열고 눈은 자주 감으며, 머리는 자주 빗고 목욕은 적게 한다. 여럿이 어울리기는 적게 하고 혼자 잠자기를 많이 하며, 책은 많이 모으고 금은보화는 적게 모은다. 명성은 적게 취하고 굴욕은 많이 참으며, 착한 일은 많이 하고 녹봉은 적게 구한다. 편하다고 자꾸 찾아가지 말라. 좋은 일도 없느니만 못한 법이다." 《공여일록》
산에서 사는 것이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 대략 여덟 가지 좋은 점이 있으니, 까다로운 예절로 책망받을 일이 없고, 낯선 손님을 맞을 일이 없고, 술과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을 일이 없고, 땅과 집을 두고 다툴 일이 없고, 세상 인심의 변화를 물을 일이 없고, 옳고 그름을 다툴 일이 없고, 글빚(써 주기로 한 글을 재촉받는 일)을 독촉받을 일이 없고, 벼슬자리의 이동을 입에 올릴 일이 없다. 이와 반대로 산다면, 이는 곧 소를 흥정하는 가게나 말을 사고파는 역참과 다를 바 없다. 《소창청기》
어떤 손님이 말했다.
"산에 들어가 살려 해도, 딸린 식구를 챙기기도 곤란하고, 산속 이웃을 사귀기도 곤란하고, 산속 벗을 만나기도 곤란하고, 산속에서 부릴 사람을 두기도 곤란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산속 집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라도록 내버려 두고 집안일과의 인연을 아예 끊는 편이 낫습니다. 그저 아이 두어 명을 가려 뽑아 데리고 가서, 힘센 아이에게는 밥 짓고 불 때고 나무하고 김매는 일을 시키고, 약한 아이에게는 청소하고 글씨 베끼는 일을 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이런 뜻을 잘 헤아리는 자손은 알아서 먹을 것을 보내올 것이고, 이런 마음을 잘 헤아리는 벗은 알아서 선물을 보내올 것이니, 이 밖에 다른 방법은 저도 알지 못합니다." 《암서유사》
낙빈왕의 시에,
등나무 덩굴을 끌어다 책 시렁을 만들고 담쟁이 넝쿨을 엮어다 옷을 지어 입었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런 경지라면 책을 읽을 만도 하고 늙어 감도 잊을 만하다. 《암서유사》
형편에 맞게 화초와 대나무를 심고, 저마다의 본성에 맞게 새와 물고기를 기른다. 이것이 곧 산속에서 살림을 꾸려 가는 이치다. 《암서유사》
산에서 사는 데는 네 가지 법도가 있다. 나무는 줄을 맞추어 심지 않고, 돌도 정해진 자리에 놓지 않는다. 집은 크고 화려하게 짓지 않고, 마음에는 바라는 것을 두지 않는다. 《암서유사》
떨어진 붉은 꽃잎과 얼룩덜룩한 이끼는 비단 요와 다를 바 없고, 향기로운 풀과 아리따운 꽃은 맵시 있는 여인과 다를 바 없다. 거스르지 말아야 할 벗은 산에 사는 사슴과 시냇가의 산비둘기요, 음악으로 삼을 것은 물소리와 새소리다. 짐승의 털가죽은 비단옷을 대신하고 산과 구름은 나의 주인이자 손님이 되어 준다. 뿌리째 무친 나물은 산해진미보다 못할 것이 없고, 잎이 얽힌 사립문은 크고 화려한 대문 못지않다. 초승달이 산 너머로 지고 나면 온갖 생각이 가지가지로 마음속에 얽혀 오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런 것들로 즐거움을 삼으면 열흘이 채 못 되어 그 생각들이 말끔히 사라진다. 《지비록》
손님이 내 초가집을 지나다가 어찌하여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아 그저 옛사람의 시구로 대신 답했다.
"무슨 감회가 있어 숨어 살기를 좋아하시오?" 하기에,
일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한가로움을 얻었고 젊은 나이에도 이미 만족함을 알았노라
하였고, "무슨 일을 하며 세월을 보내시오?" 하기에,
꽃을 심느라 봄이면 눈을 치우고 책을 보느라 밤이면 향을 피우노라
하였고, "무슨 일을 하여 먹고살며 노년을 마치려 하시오?" 하기에,
벼루로 삼는 밭에는 흉년이 없고 술로 삼는 나라에는 언제나 봄이라네
하였고, "어디를 오가며 적적함을 달래시오?" 하기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때면 인사를 나눠 보니 다들 순박한 이들일세
라 하였다. 《암서유사》
육씨(호는 평옹)가 쓴 《연거일과》에 이런 말이 있다.
"책을 읽는 것으로 정원을 삼고, 시를 읊조리는 것으로 음악을 삼고, 의로운 이치를 궁리하는 것으로 산해진미를 삼고, 글을 짓는 것으로 화려한 문채를 삼고,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농사를 삼고, 묻고 배운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재산을 삼고, 앞선 이들의 말과 행실로 스승과 벗을 삼고, 충성과 신의와 도타운 공경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착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복 받는 인과를 삼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하늘이 정한 운명을 아는 것으로 극락세계를 삼는다." 《미공비급》
나규가 지은 〈화구석〉(꽃에게 내리는 아홉 가지 은전이라는 뜻)이라는 글에 이런 말이 있다.
"첫째는 겹으로 친 장막으로 바람을 막아 준다. 둘째는 금으로 아로새긴 칼로 가지를 다듬어 준다. 셋째는 단 샘물을 길어다 준다. 넷째는 옥으로 만든 화분에 옮겨 심어 준다. 다섯째는 무늬를 새긴 좌대 위에 놓아 준다. 여섯째는 그림으로 그려 남긴다. 일곱째는 아름다운 노래로 옮겨 부른다. 여덟째는 좋은 술로 상을 내린다. 아홉째는 새로운 시를 지어 바친다."
또 이렇게 말했다.
"난초·혜초·매화·연꽃 같은 꽃이라야 비로소 이런 마음을 다 쏟을 만하고, 부용·철쭉·수선화·석류 같은 꽃에까지 어찌 이런 후한 대접을 다 내릴 수 있겠는가." 《소창청기》
나무를 옮겨 심는 법에서는 소식(호는 동파)만큼 요령 있는 이가 없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큰 나무는 옮겨도 살리기 어렵고, 너무 작은 나무는 이 늙은이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으니, 오직 알맞은 크기의 나무를 가려서 옮겨야 한다. 그때는 뿌리에 흙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일수록 좋다." 《소창청기》
그윽이 숨어 지내는 것이 비록 세상과 아주 인연을 끊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사람을 시켜 갖추게 하고 나면,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는 일마저도 마치 속세를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든다. 화초는 부리는 몸종이 되고 새소리는 정담이 되며, 골짜기의 나물과 흐르는 물은 술안주와 국을 대신한다. 책은 스승이 되고 대나무와 돌은 벗이 되며, 빗소리와 구름 그림자와 솔바람과 넝쿨 사이로 비치는 달빛은 한바탕 흥겨운 노래와 춤이 되니, 그 정취가 참으로 무르익고도 맑고 화사하다. 《소창청기》
양원은 산속에 살았는데, 그 집 앞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유난히 빼어났다. 그는 늘 등받이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세상을 비웃듯 바라보다가 이따금 아예 드러눕기도 하면서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푸른 병풍 같은 산은 저녁 무렵에 마주 보아야 사람의 마음과 눈을 참으로 상쾌하게 해 줍니다."
그리하여 안진경(호는 노공)이 그 산에 "취병산(푸른 병풍 산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소창청기》
왕유(자는 마힐)는 평소 부처를 받들기를 좋아하여 늘 채소와 밥만 먹고 마늘이나 고기는 입에 대지 않았다. 남전 땅에 있던 송지문의 옛 별장을 얻어 망천이라는 물굽이 어귀에서 살았다. 망천의 물이 집 아래를 휘감아 흐르므로, 함께 도를 닦던 벗 배적과 배를 타고 대나무 우거진 기슭과 꽃 핀 언덕을 오가며 거문고를 타거나 시를 짓거나 휘파람을 불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도성에 있을 때는 승려 수십 명에게 밥을 대접하며 깊은 이치를 논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그가 재계하며 지내던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찻주전자와 약절구, 경전을 놓는 책상과 노끈으로 얽어 만든 평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씨어림》
삼월이면 차와 죽순이 막 살이 오르고 매화 향기 실은 바람도 아직 가시지 않으며, 구월이면 순챗국과 농어회가 유난히 맛이 좋고 찹쌀로 빚은 술에서 새 향내가 풍긴다. 좋은 손님과 함께 환한 창가에 앉아 옛사람들의 필적과 명화를 꺼내 놓고 향을 피우며 감상하기에는 이 두 계절만 한 때가 없다. 《미공십부집》
종측(자는 경미)은 봄이 되면 산골짜기를 노닐다가 기이한 꽃이나 특이한 풀을 보면 허리띠에 매달아 가지고 돌아와서는, 그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 "취방원(향기를 모은 동산)"이니 "백화대(온갖 꽃의 띠)"니 하는 이름을 붙였는데, 많은 사람이 이를 본받았다. 《소창청기》
허근선은 성격이 활달하여 자잘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 가까운 벗들과 꽃밭 한가운데 술자리를 마련할 때도 굳이 장막을 치거나 자리를 깔지 않고, 그저 어린 종들을 시켜 떨어진 꽃잎을 그러모아 깔게 하고는 그 위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본디부터 있던 내 꽃방석일세." 《소창청기》
관문연은 산기상시라는 벼슬에 있을 때, 흰 비단으로 지은 반소매 옷에 구화산 그림을 그려 넣고는 "구화반비(구화산 그림을 그린 반소매 옷이라는 뜻)"라 이름 붙이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하여 내 몸이 늘 자연 속에 있도록 한 것이다." 《소창청기》
강남 땅의 이건훈(자는 치요)은 한 자 남짓한 옥으로 만든 경쇠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침향나무로 만든 채로 치면 소리가 더없이 맑게 울려 퍼졌다. 손님 가운데 간혹 저속한 말을 하는 이가 있으면 얼른 일어나 그 경쇠를 두어 번 두드리며 말했다.
"이렇게 해서 귀를 맑게 씻어 내는 것입니다."
대나무로 지은 집 한 채에 "사우헌(네 벗의 집이라는 뜻)"이라는 현판을 걸고는, 거문고로 역산 남쪽 오동나무 벗을 삼고 경쇠로 사수 물가 돌의 벗을 삼고 《장자》로 마음의 벗을 삼고 상강의 대나무로 만든 걸상으로 꿈속의 벗을 삼았다. 《옥호빙》
섭몽득(자는 소온, 호는 석림)이 쓴 〈낙수당기〉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석림산을 얻고부터는 그 산의 샘과 바위가 좋아져서 그곳을 책을 갈무리할 곳으로 삼고자 했다. 종들을 데리고 삽과 가래로 골짜기를 고르게 다듬게 하면서, 나 자신도 비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바위틈을 손수 파헤쳤으니, 사람들은 모두 내가 몹시 지쳤으리라 여겼지만 나는 실은 한 번도 게을러진 적이 없었다. 이 또한 무언가에 흘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소창청기》
심운홍은 자가 유시로, 심주(호는 석전)의 아들이다. 성품이 남달리 옛 기물과 서화를 좋아하여, 이름난 물건을 만나면 어루만지며 완상하느라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했고, 때로는 가진 것을 다 털어서라도 사들였는데, 밭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그 비용을 댈 만했다. 책을 담는 쪽빛 자루와 베로 만든 담황색 책갑이 방 안 가득 찬란하게 쌓여 있었는데, 거두어 간수하는 일에 각별히 조심하여, 손님이 오면 손수 꺼내 보여 주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 번도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연도를 따지고 정품과 조악품을 가려내는 데도 하나하나 근거를 대며 살폈으므로, 강남 지방의 감정가들이 모두 그를 우러러보았다. 또 서책 모으기를 좋아하여 꼼꼼히 대조해 바로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후세 사람들이 이 책들을 재물로만 보지 않는다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만에 하나라도 이 책들을 잘 읽어 준다면, 내가 남긴 것이 참으로 넉넉한 셈이 될 것이다." 《미공십부집》
설혜(자는 군채)는 벼슬을 버린 뒤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한가로이 지내며 시 짓는 일은 아예 끊고 《노자해석》이라는 책을 지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달마대사의 초상을 놓아두었는데, 소옹(자는 요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말했다.
옳도다, 옳도다, 더없이 옳도다
라 하였다. 《명세설신어》
등정우가 장양화, 옹용계와 함께 옛 난정 터에서 싸리를 깔고 앉아 놀며 굽이진 물길에 술잔을 띄워 마시고 있는데, 문득 새 한 마리가 울며 날아가자 웃으며 말했다.
"이 소리가 관현악보다 낫구나." 《명세설신어》
진계유(호는 미공)는 이렇게 말했다.
"산새가 새벽 오경 무렵에 울며 깨어나는 것을 '경을 알린다'고 하는데, 이는 말하자면 산속의 꾸밈없는 물시계 소리인 셈이다. 내가 소곤산 아래에서 살 때, 장맛비가 막 갠 어느 날 손님들과 자리를 함께하여 술잔을 돌리고 있었는데, 마침 뜰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려오기에 이만 술자리를 파하자 하고는 이어 대구가 되는 시구 한 연을 지었다.
꽃가지에서는 손님을 보내느라 개구리가 북을 울리고 숲속 새는 대나무 퉁소 불듯 오경을 알리네
이 정도면 산속 생활을 있는 그대로 담은 기록이라 할 만하다." 《암서유사》
한정록 제11권 · 명훈
출처: 한정록 제11권, 명훈
배경: '명훈'은 '귀감이 될 만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옛사람의 짧은 말이나 대구 가운데 속됨을 고치거나 세상을 경계할 만한 것들을 모아 놓은 자리다. 송나라 성리학을 세운 주희ㆍ정이ㆍ정호ㆍ주돈이ㆍ소옹 같은 학자들의 근엄한 가르침으로 시작하여, 명나라 문인들이 남긴 한가로운 삶의 지혜와 처세의 격언들로 이어진다. 학문과 수양에 관한 묵직한 말들 사이사이에, 자족하는 삶과 욕심을 절제하는 삶에 대한 소박한 통찰이 촘촘히 엮여 있어, 한정록 전체의 정신을 압축해 놓은 듯한 권이다.
일러두기: 이 권에 실린 말들은 허균이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중국 책에서 뽑아 온 것이므로, 말 끝에 적힌 책 이름은 허균이 인용한 원래의 출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원문에 출처가 적혀 있지 않은 항목은 옮긴 글에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인물의 자(성인이 되면서 따로 지어 부르던 이름), 호(따로 즐겨 부르던 별칭), 시호(죽은 뒤에 내린 이름)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에서는 되도록 본이름을 앞세우고 나머지는 괄호 안에 풀어서 밝혔다. 한자로 된 말장난이 나오는 대목은 그 글자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뜻을 풀어서 전했다.
주희 — 뜻을 세우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희(호는 회암)가 말했다.
"학문을 하는 데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하니, 뜻이 정해지지 않으면 끝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 《근사록》에서
정이 — 뜻을 세우고 공경한 마음으로 지켜라
정이(정자라고 높여 부른다)가 말했다.
"뜻을 세워 그 근본을 정하고, 마음을 늘 공경한 상태로 두어 그 뜻을 붙들어야 한다."
— 《근사록》에서
사양좌 — 뜻이 서면 근본이 있다
사양좌(호는 상채)가 말했다.
"사람은 반드시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뜻이 서면 근본이 있게 된다."
— 《근사록》에서
정호 — 한 가지 재주로 이름을 얻지 않겠다
정호(정명도 선생이라고 높여 부른다)가 말했다.
"성인의 경지를 배우다가 끝내 이루지 못할지언정, 자잘한 재주 하나로 이름을 얻으려 하지는 않겠다."
— 《근사록》에서
주희 — 이치를 캐는 데는 독서가 먼저다
주희(호는 회암)가 말했다.
"학문을 하는 길은 이치를 깊이 캐묻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이치를 캐묻는 요체는 책을 읽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 《주자전서》에서
왕수인 — 사람의 욕심을 덜어 낸 만큼 하늘의 이치를 얻는다
왕수인(호는 양명)이 말했다.
"사람의 욕심을 한 푼 덜어 내면 하늘의 이치를 한 푼 얻는다."
— 《사자수언》에서
소옹 —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온갖 변화에 응할 수 있다
소옹(시호는 강절)이 말했다.
"마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 산란하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변화에 다 응할 수 있다. 군자가 마음을 텅 비우고서도 흔들리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지비록》에서
주돈이 — 고요함과 감응과 낌새
주돈이(호는 염계)가 말했다.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성이라 하고,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 만사의 이치에 통하는 것을 신묘함이라 하며, 아직 뚜렷한 형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있음과 없음의 사이에 있는 것을 낌새라 한다."
(용어) 이 말은 본래 《주역》에 나오는 생각을 주돈이가 다시 풀어낸 것이다. 우주의 운행이라는 것은 사람처럼 이리저리 헤아리거나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고요히 있다가 감응하여 통하는 신묘한 작용을 지니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훗날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 《근사록》에서
백록동학규 — 몸을 닦는 요령
주희가 백록동서원에 걸어 두었던 학문의 목적과 방법에 관한 글, 즉 백록동학규의 '몸을 닦는 요령' 조목에 이런 말이 있다.
"말은 진실하고 믿음이 있게 하며, 행동은 도탑고 신중하게 하며, 성난 마음은 참고 욕심은 억누르며, 착한 일을 하고 잘못은 고쳐 나가라."
— 《지비록》에서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음으로써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거든 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고,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 《공여일록》에서
아는 데서 모르는 것으로, 모르는 데서 아는 것으로
학문 공부는, 모르던 데서 점점 아는 것이 생겨나게 해야 하고, 잘 아는 데서도 다시 점점 모르는 것이 생겨나게 해야 한다.
— 《공여일록》에서
입은 병마개처럼, 마음은 성벽처럼
병에 마개를 꼭 막듯이 입을 다물어 말을 삼가고, 군사가 성을 지키듯 마음에 사사로운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용어) 이 말은 주희가 지은 '경재잠'이라는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 《공여일록》에서
혜강 — 완적을 스승 삼고 싶으나 미치지 못하다
혜강(자는 숙야)이 말했다.
"완적(자는 사종)은 남의 잘못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나는 그를 스승으로 삼고 싶으나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하였다."
— 《문선》에서
설선 — 소인과는 사물의 진상을 낱낱이 말할 수 없다
설선(시호는 문청)이 말했다.
"소인과는 더불어 사물의 진상을 낱낱이 이야기할 수 없다."
— 《독서록》에서
사마광 — 등산에도 길이 있다
사마광(시호는 문정)이 말했다.
"산에 오르는 데에도 나름의 도리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지치지 않고, 안전한 땅을 밟으면 위험하지 않다."
사마광 — 만물이 저마다의 삶을 이루도록
사마광이 말했다.
"풀이 걸음을 방해하거든 베어 내고, 나뭇가지가 갓을 스치거든 잘라 내라. 그 밖의 다른 일은 모두 자연스러운 이치에 맡겨야 한다. 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니, 만물이 저마다 제 삶을 온전히 이루도록 두어야 한다."
소옹 — 사람 사귀는 데는 서두르지 말라
소옹이 말했다.
"착한 사람은 마땅히 사귈 만하지만, 아직 그를 잘 모를 때는 너무 급하게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 또 악한 사람은 멀리해야 마땅하지만, 당장 멀리할 수 없는 처지라면 너무 급하게 그를 저버려서도 안 된다."
서치 — 조정의 일을 물으면 묵묵히 답하지 않다
서치(자는 유자)는 후한 사람인데, 누가 조정의 일을 물으면 언제나 묵묵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곱씹어 볼 만하다.
자가자 — 가장 즐겁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곤궁한 것
자가자가 말했다.
"가장 즐거운 일로는 책을 읽는 것만한 것이 없고, 가장 중요한 일로는 자식을 가르치는 것만한 것이 없으며, 가장 넉넉한 살림으로는 기와로 지붕을 이는 것만한 것이 없고, 가장 곤궁한 처지로는 땅을 파는 것만한 것이 없다."
— 《공여일록》에서
하루 한 가지 선행이면 헛되이 살지 않은 것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 동안에 한 가지 착한 말을 듣거나 한 가지 착한 일을 행했다면, 그날은 헛되이 산 것이 아니다.
— 《공여일록》에서
호안국 — 일마다 만족스럽기를 바라지 말라
호안국(시호는 문정)이 제자 양훈에게 말했다.
"사람의 일은 일마다 만족스럽게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조금 부족한 듯한 것이 오히려 좋은 법이다. 만약 일마다 모두 만족스럽게 되어 버리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니, 이는 차고 기우는 이치가 본디 그러하기 때문이다."
— 《공여일록》에서
독서는 기질도 바꾸고 정신도 길러 준다
책을 읽는 일은 사람의 기질을 바꾸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도 길러 준다. 이치와 의로움이 사람의 마음을 다잡아 주기 때문이다.
— 《공여일록》에서
왕일천 — 덕이 넘쳐도 없는 듯이
왕일천이 말했다.
"몸을 잘 닦는 사람은 덕이 넘치도록 갖추고 있어도 마치 없는 것처럼 처신하고, 집안을 잘 꾸리는 사람은 살림이 넉넉해도 부족했던 때를 잊지 않는다."
— 《공여일록》에서
인후함과 각박함, 겸손함과 자만함이 갈라놓는 것
너그럽고 후덕한 것과 각박하고 매정한 것은 오래갈지 짧게 끝날지를 가르는 것이요, 겸손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과 자만하여 가득 채우려는 것은 복이 될지 화가 될지를 가르는 것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과 사치스럽고 방탕한 것은 넉넉해질지 가난해질지를 가르는 것이요, 몸을 잘 보살피는 것과 욕심을 함부로 부리는 것은 사람으로 살지 귀신처럼 시들어 갈지를 가르는 것이다.
— 《소창청기》에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니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이 세상에 오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겠으며, 죽을 때도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떠나가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겠는가.
— 《성학계관억설》에서
복이 얇으면 덕을 쌓고, 덕이 얇으면 복을 아끼고
나는 본디 복이 얇은 사람이니 마땅히 덕을 두터이 쌓는 일을 해야 하고, 나는 본디 덕이 얇은 사람이니 마땅히 검소하게 살아 복을 아끼는 일을 해야 한다.
— 《미공십부집》에서
속된 말, 부드러운 말, 농지거리를 경계하라
속된 말은 장사치의 말에 가깝고, 지나치게 부드러운 말은 기생의 말에 가깝고, 함부로 하는 농담은 광대의 말에 가깝다. 선비 된 사람이 한번 이런 것에 물들면 위엄을 잃을 뿐만 아니라 복을 받기도 어려워진다.
— 《미공십부집》에서
담백해야 참맛을 안다
벼슬에 대한 마음이 강하면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수 없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죽어야 할 때 편히 죽지 못한다. 참으로 담백한 데에 참맛이 있는 법이다.
— 《미공십부집》에서
한 생각이 좋은 귀신도, 나쁜 귀신도 부른다
한 가지 착한 생각을 품으면 길한 신이 따르고, 한 가지 나쁜 생각을 품으면 사나운 귀신이 따른다. 이 이치를 알면 귀신마저 부릴 수 있다.
— 《미공십부집》에서
나라를 근심하되 말로 떠벌리지는 말라
선비 된 사람은 마땅히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은 지녀야 하지만, 나라를 근심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 《미공십부집》에서
육지 — 절약하면 텅 비어도 반드시 찬다
육지(선공이라는 봉호로도 불린다)가 말했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바닥이 나고,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반드시 채워지게 마련이다."
— 《공여일록》에서
의심난다고 함부로 고치지 않는 사람
책을 교감할 때 의심스러운 구절이 있어도 함부로 고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의 평생에 허튼소리가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공여일록》에서
임포 — 만족할 줄 알면 즐겁다
임포(송나라의 숨어 사는 선비로,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살았다)가 지은 《성심전요》에 이런 말이 있다.
"만족할 줄 알면 즐겁고, 탐욕에 힘쓰면 근심스럽다."
— 《공여일록》에서
장무진 — 복을 아끼는 법
장무진이 지은 '복을 아끼는 이야기'에 이런 말이 있다.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고, 말은 끝까지 다 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리려 하지 말라."
— 《공여일록》에서
장무진 — 만족스럽지 않은 여유를 남겨 두라
장무진이 또 말했다.
"사람은 반드시 조금 부족한 듯한 여유를 남겨 두어야 좋은 것이다. 만약 한번 완전히 만족해 버리면 곧바로 다른 탈이 생기고 만다."
— 《공여일록》에서
마음에 흡족할 때 그만두라
일이란 마음에 흡족할 때 그만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삶이 쓸쓸해지는 것을 면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조화를 능히 부릴 수 있게 된다. 말도 뜻이 흡족할 때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평생 잘못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 오묘한 맛이 다함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 《소창청기》에서
스스로를 가련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가장 가련하다
천하에 가장 가련한 사람은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가련하게 보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천하에 아끼는 물건은 남들도 모두 다 함께 아끼는 물건이다. 그러므로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빼앗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물은 도랑에 이르러야 모이고
"물은 도랑에 이르러야 모이고, 오이는 익어야 꼭지가 저절로 떨어진다." 이 여덟 글자는 평생을 두고 새겨 쓸 만한 말이다.
이지언 — 돈이라는 글자의 무서운 짜임새
이지언이 말했다.
"일찍이 장난삼아 '돈'이라는 글자의 짜임새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이 글자는 위아래로 창을 뜻하는 글자 두 개를 포개어 놓고, 그 가운데에 재물을 뜻하는 글자를 끼워 넣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실로 사람을 해치는 물건인 셈인데도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이렇듯 창 두 자루가 재물 하나를 놓고 다투는 형상이니, 어찌 천하지 않다 하겠는가."
— 《미공비급》에서
왕십붕 — 못하는 만큼 삼가라
왕십붕이 말했다.
"글을 잘 짓지 못하는 사람은 글 짓는 일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반듯하게라도 써야 하며,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되도록 간략하게 말해야 한다."
— 《공여일록》에서
온 세상이 다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슬퍼하다
글을 지으면서 온 세상 사람이 다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면, 나는 그 글 짓는 태도를 슬프게 여긴다. 사람됨에 있어서도 온 세상 사람이 다 자기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면, 나는 그 사람됨을 슬프게 여긴다.
— 《소창청기》에서
착한 정신을 기르고 살기를 없애라
담담자라는 이는 늘 사람들에게 착한 정신을 기르라고 가르쳤고, 지암자라는 이는 늘 사람들에게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없애라고 가르쳤다. 이 두 마디 말이야말로 나의 스승이라 할 만하다.
진나라의 풍류와 송나라의 도학을 아울러
위진 시대 사람들이 즐기던 청담(노장의 담박하고 무위한 사상을 논하던 담론)과 송나라 사람들이 추구하던 도학(성리학의 학문)은 서로 그대로 통용되지는 않지만, 때로는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는 법이다. 이른바 둘이 갈라서면 둘 다 손상되고 둘이 합쳐지면 둘 다 좋아지는 격이다. 우리가 몸가짐을 지녀 나가는 데는 이 진나라와 송나라의 중간을 취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나라 사람의 풍류를 송나라 사람의 도학으로 다잡는다면, 그 사람됨과 재주와 정취가 비로소 세상에 알맞게 들어맞을 것이다.
예장의 장상공 — 자랑하지 말고 큰소리치지 말라
예장(지금의 중국 남창 지역) 사람인 장 정승이 말했다.
"가난하다고 검소함을 자랑하지 말고, 부유하다고 청렴함을 자랑하지 말라. 권세 있는 요직에 있을 때는 벼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을 하지 말고, 산림에 묻혀 있을 때는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제할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복은 함부로 얻으려 말고, 명성은 함부로 다투지 말라
좋은 복은 하늘이 아끼고 잘 내려 주지 않는 것이니, 경솔하게 움직이며 분주히 굴면 도리어 복이 줄어들고 만다. 좋은 명성은 하늘이 꺼려서 잘 주지 않는 것이니, 비방을 얻으면 명성을 더 얻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 《미공십부집》에서
진단 — 좋아하는 곳도 오래 머물지 말라
진단(하사받은 호는 희이)이 말했다.
"좋아하는 곳이라 해도 오래 연연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곳이라 해도 두 번 다시 가지는 말라."
— 《사우재총설》에서
좋은 일도 지나치게 집착하면 고해가 된다
산에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거기에 미련을 두고 연연하면 사람 많은 저잣거리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글씨와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고상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거기에 욕심을 내면 골동품 장사꾼과 다를 바 없으며, 술을 마시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남의 권유에 못 이겨 마시면 지옥에 떨어진 것과 다를 바 없고, 손님을 좋아하는 것은 마음을 활짝 열어 주는 일이지만 속된 무리에게 한번 끌려다니면 고해에 빠진 것과 다를 바 없다.
— 《감주사부고》에서
시는 성미에 맞게, 술은 마음을 화락하게
시란 자신의 성미에 맞으면 그만이니 두보가 애써 시구를 짜내려 고심하던 모습이 우습고, 술이란 마음을 화락하게 하자는 것이니 도연명이 지나치게 술을 즐긴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약 시를 짓는다면서 시샘하고 명성을 다툰다면 어찌 성미에 맞는다 하겠으며, 만약 술을 마시면서 미쳐 날뛰고 욕지거리를 한다면 어찌 마음을 화락하게 한다 하겠는가.
— 《소창청기》에서
다섯 사람에게서 배울 다섯 가지 성정
소탈하기는 혜강처럼, 담박하기는 도연명처럼, 호방하기는 소식(자는 자첨)처럼, 다정다감하기는 백거이(호는 향산)처럼, 남의 좋고 나쁨을 함부로 평하지 않기는 완적(자는 사종)처럼 하라.
— 《소창청기》에서
번거로움보다 못한 유유자적함
한나라의 양웅(자는 자운)이 현정에 머물 때 일 좋아하는 이들이 찾아와 노를 멈추고 글자의 뜻을 물었던 일이나, 도연명이 국화 핀 집으로 벗들이 술을 가지고 찾아와 그를 부르던 일은, 모두 알고 보면 번거로운 일이었다. 이는 저 장중울이 쑥대가 무성한 오두막에 숨어 살던 것이나, 원안이 세속의 번거로움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히 누워 있던 것만은 못한 셈이다.
(용어) 양웅은 고문자에 능통했는데, 일 좋아하는 이들이 술을 가지고 찾아와 글자를 물었다는 옛이야기가 전한다. 도연명은 술을 몹시 좋아하여 늘 술벗이 끊이지 않았다. 장중울은 후한 사람으로 외진 곳에 살아 그 집이 쑥대로 뒤덮여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원안은 후한 사람으로, 벼슬하기 전 낙양에 살 때 큰눈이 내려 사람들이 다 걸식을 다녔으나 그는 굶주림에도 흔들리지 않고 편안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 《소창청기》에서
평생 탈 없기를 바라는 네 가지
평생토록 아무 탈 없이 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네 가지 있으니, 푸른 산과 옛 벗, 간직해 둔 책과 이름난 꽃이 바로 그것이다.
— 《소창청기》에서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문을 닫고 불경을 읽는 일, 문을 열고 좋은 손님을 맞는 일, 문을 나서 산수를 찾아다니는 일, 이 세 가지가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 《소창청기》에서
향은 멀리서, 차는 짧게, 산은 가을에
향은 멀리서 은은히 피어올라야 좋고, 차는 짧은 시간 안에 끓여야 좋으며, 산은 가을에 올라야 좋다.
— 《소창청기》에서
자연은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은 소란하다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시내는 흐르고 돌은 우뚝 서 있으며, 꽃은 새를 맞아 웃는 듯하고, 골짜기는 나무꾼의 노랫소리에 메아리친다. 이렇듯 온갖 자연의 풍경은 저절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만은 저절로 소란스럽다.
— 《소창청기》에서
왕유의 시 — 물길이 다한 곳에서 구름을 보다
당나라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걷다가 물길이 다한 곳에 이르면, 앉아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바라보네."
이 말에는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고요한 마음의 기상과, 그것이 드러나 절도에 딱 들어맞는 실마리를, 이 구절 하나로 모두 상상해 볼 수 있다.
(용어) 기쁨ㆍ노여움ㆍ슬픔ㆍ즐거움은 사람의 감정을 이르는 말이다. 이 감정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의 고요한 마음 상태와, 감정이 드러나되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알맞게 들어맞는 것을 두고 《중용》에서는 각각 '중'과 '화'라고 하였다. 이 구절이 그러한 경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 《소창청기》에서
이백의 시와 왕유ㆍ왕안석의 시를 견주다
이백은 이렇게 노래했다.
"맑은 바람은 그칠 때가 없어, 하루 종일 맑고 시원하구나."
이 시의 마음가짐이 지닌 오묘함은, 왕유(자는 마힐)가 "스님의 옷이 산빛에 비쳐 푸르네"라고 읊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반면 왕안석(봉호는 형국공)이 "이웃집 닭 울음소리가 한낮의 적막을 깨뜨리니, 그 소리로 인해 사람이 문득 깨닫게 되는구나"라고 읊은 시는, 억지로 고요함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어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 《소창청기》에서
해로우면서 이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취하지 말라
오직 책을 읽는 것만이 이롭고 해가 없으며, 오직 산과 물을 즐기는 것만이 이롭고 해가 없으며, 오직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꽃과 대나무를 벗 삼는 것만이 이롭고 해가 없으며, 오직 단정히 앉아 고요히 말없이 있는 것만이 이롭고 해가 없으니, 이러한 것들을 두고 지극한 즐거움이라 한다.
— 《미공비급》에서
진계유 — 복이 없는 자는 잡생각을, 복이 있는 자는 독서를
진계유(호는 미공)가 말했다.
"창을 닫고 향을 피우면 좋은 복은 이미 다 갖추어진 셈이다. 복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잡생각을 하게 되고, 복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독서로 그 시간을 채운다."
병들 때와 죽을 때를 미리 생각하라
늘 병들 때를 생각하면 더러운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늘 죽을 때를 미리 헤아려 대비하면 도를 향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풍류를 즐기며 만족스러웠던 일도 한번 지나고 나면 문득 처량한 마음이 뒤따르지만, 맑고 고요한 적막의 경지는 오래될수록 오히려 그 맛이 더해 간다.
— 《소창청기》에서
푸른 산과 흰 구름이면 오성십이루가 부럽지 않다
푸른 산이 문 앞에 있고 흰 구름이 창가에 걸려 있으며, 밝은 달이 창가에 이르고 시원한 바람이 자리를 스칠 때, 이런 경치 좋은 곳은 모두 전설 속 신선이 산다는 화려한 누각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제야 비로소 그런 경지를 고를 줄 알게 되었다.
— 《소창청기》에서
산새와 들꽃만도 못한 사람의 처신
문을 닫아걸고 남을 거절하는 것은, 산새가 사람을 알아보고 스스로 부르는 것만 못하고, 뜻을 굽혀 가며 남의 동정을 구걸하는 것은, 들꽃이 오가는 길손을 오만하게 대하는 것만 못하다.
— 《소창청기》에서
좋은 인연과 좋은 복
차가 알맞게 익고 향이 맑게 피어오를 때 손님이 문 앞에 이르면 그것이 기쁜 일이요, 새는 울고 꽃은 지는데 찾아오는 인적이 없으면 그것이 한가로운 일이다. 천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기묘한 인연으로는 좋은 책 한 권을 만나는 것만한 것이 없고, 일생의 좋은 복으로는 그윽한 일상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만한 것이 없다.
— 《소창청기》에서
본마음을 다하는 것이 자연스러움보다 귀하다
부처에게 빌어 죄를 참회할 수만 있다면 형벌을 맡은 관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신선을 찾아 목숨을 늘릴 수 있다면 하느님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리를 깨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 곧 본마음을 다할 뿐이다. 지극한 정성은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보다도 오히려 귀한 것이다.
— 《소창청기》에서
소철 — 병이 많으면 도교를, 근심이 많으면 불교를
소철(자는 자유)이 말했다.
"몸에 병이 많으면 도가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좋고, 마음에 근심이 많으면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좋다."
— 《지비록》에서
강함을 알고도 부드러움을 지키라
"강함을 알고도 부드러움을 지킨다." 이 네 글자는 평생을 두고 음미하고 따라도 그 뜻이 다함이 없다.
(용어) 이 말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로, "굳세고 강함을 알면서도 스스로는 부드럽고 낮은 자리를 지켜, 천하의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골짜기가 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낮고 겸손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다는 가르침이다.
송기 — 장자의 말에 쓸쓸해지다
송기(시호는 경문)가 말했다.
"장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를 배웅하는 사람들은 모두 강가에서 발길을 돌려 돌아가니, 그대는 이제부터 정말 멀리 떠나가는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를 때마다 사람으로 하여금 쓸쓸히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 《하씨어림》에서
구양수와 고승의 문답 — 옛사람과 요즘 사람의 마음가짐
구양수가 일찍이 한 승려에게 물었다.
"옛날의 훌륭한 스님들은 죽고 사는 일에 초연했다는데, 어찌하여 요즘은 그런 사람이 이토록 드뭅니까?"
승려가 대답했다.
"옛사람은 생각이 늘 선정과 지혜에 머물러 있었으니, 죽음을 맞이할 때인들 어찌 마음이 어지러웠겠습니까. 지금 사람은 생각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니, 죽음을 맞이할 때인들 어찌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구양수는 참으로 그렇다며 수긍했다.
— 《하씨어림》에서
풍경과 왕안국의 문답 — 눈을 감아도 완전히 깨친 것은 아니다
풍경(자는 당세)은 만년에 불교를 좋아하였는데, 병주를 다스릴 때 왕안국(자는 평보)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다.
"집집마다 문 앞에서 벌어지는 노래와 춤이 묘하고 아름다우나, 나는 눈을 감고 보지 않은 채 날마다 참선을 이야기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지낸다."
이 말을 듣고 왕안국이 말했다.
"이런 말은 아직 참선의 이치를 제대로 깨치지 못한 것이다. '눈을 감고 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중요한 화두인 것을."
— 《하씨어림》에서
귀와 눈과 입을 꼭 닫아 두라
귀와 눈과 입, 이 세 가지 문은 꼭 막아 두고 함부로 열지 말라. 도를 깨친 사람은 그 마음이 잠잠하기가 깊은 못과 같고, 세속에 얽매인 사람은 정해진 법도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 《참동계》에서
한정록 제12권 · 정업
출처: 허균, 《한정록》 제12권 〈정업〉
배경: '정업'은 고요히 힘쓰는 일, 곧 세상일에서 물러나 조용히 지내며 몰두할 만한 일을 뜻한다. 한정록 제12권은 온전히 '책 읽는 일'을 다루고 있다. 송·명나라 학자들이 남긴 독서에 관한 격언과 태도, 책을 아끼고 모으고 베끼던 옛사람들의 일화, 그리고 허균 자신이 옛글에서 뽑아 엮은 '독서십육관(책 읽는 사람이 새겨 둘 열여섯 가지 지침)'이 이 권의 중심을 이룬다. 벼슬에서 물러나 조용히 지내는 삶에서 책 읽기가 얼마나 큰 즐거움이자 버팀목이 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 주는 글들이다.
1. 장재, 책을 놓으면 그만큼 덕이 풀어진다
장재(호는 횡거)는 이렇게 말했다.
"책은 이 마음을 붙잡아 준다. 잠시라도 손에서 놓으면 그만큼 덕성이 풀어지고 만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늘 그 자리에 있고, 책을 읽지 않으면 옳고 그름의 이치를 눈앞에 두고도 끝내 보이지 않는다."
(출전: 《장자전서》)
2. 안지추, 재물 천만 냥보다 작은 재주 하나가 낫다
안지추(남북조 시대의 문신)는 이렇게 말했다.
"재물 천만 냥을 쌓아 두어도 작은 재주 하나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다. 그리고 여러 재주 가운데 쉽게 익힐 수 있으면서도 귀한 것으로는 책 읽기만 한 것이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얼굴이 많기를 바라고 세상일을 널리 보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책은 읽으려 하지 않으니, 이는 배부르기를 바라면서 밥 짓기는 게을리하는 것과 같고, 따뜻하기를 바라면서 옷 짓기는 나태히 하는 것과 같다."
(출전: 《안씨가훈》)
3. 안지추,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구해야 한다
안지추는 또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어 비록 크게 이름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 하나의 재주가 되어 스스로 살아가는 밑천이 된다. 부모 형제도 늘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고향이나 나라도 늘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다. 한번 떠돌이 신세가 되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서 그 힘을 구해야 하는 법이다."
(출전: 《안씨가훈》)
4. 설선, 고요하고 여유 있고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설선(시호는 문청)은 이렇게 말했다.
"책은 고요하게, 여유롭게, 세심하게 읽어야 마음이 그 속에 젖어 들어 참맛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시끄럽고 조급하고 건성으로 읽는다면, 《중용》에서 말한 것처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르는 것과 같아지니, 어찌 그 참맛을 얻을 수 있겠는가."
(출전: 《독서록》)
5. 설선,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설선은 또 이렇게 말했다.
"책에서 배운 것을 자기 몸과 마음의 공부로 체득해 내지 못한다면, 고금 천하의 책을 다 읽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출전: 《독서록》)
6. 독서하기 좋은 세 철, 세 가지 즐거움
책을 읽는 데에도 마침맞은 때가 있다. 그래서 동우(위나라 사람으로, 동자라고도 불렸다)가 말한 '세 가지 남는 시간'이라는 말이 가장 일리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밤은 낮이 남긴 시간이요, 비 오는 날은 갠 날이 남긴 시간이요, 겨울은 한 해가 남긴 시간이다. 이렇게 남는 시간에는 사람들 사이의 왕래가 뜸해지니, 마음을 하나로 모아 공부에 몰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맑은 밤, 고요히 앉아 등불을 밝히고 차를 달이면 온 세상이 죽은 듯 고요한데, 이따금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책을 마주하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이부자리를 걷어 놓고도 여자를 가까이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몰아쳐 길이 막히면 문을 걸어 잠그고 방을 깨끗이 치운다. 오가는 사람의 발길은 끊기고 책은 앞에 가득 쌓여 있다.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책이나 뽑아 든다. 시냇물 소리는 졸졸졸 들려오고,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녹여 벼루를 씻는다. 이 그윽한 고요야말로 둘째 즐거움이다.
또 잎이 다 떨어진 숲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싸락눈이 흩날리거나 눈이 소복이 쌓인다. 마른 나뭇가지를 바람이 흔들고 지나가면 겨울새가 들녘에서 지저귄다. 방 안에서 화로를 끼고 앉으면 찻잔에서 향기가 오르고 술이 익어 간다. 마음에 드는 시와 노래를 모아 엮으면 마치 좋은 벗을 마주한 듯하다. 이 정경이야말로 셋째 즐거움이다.
나는 일찍이 이 뜻을 알았기에, 이를 좀 더 풀어써서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출전: 《소창청기》)
7. 독서십육관 — 책 읽는 사람이 새겨 둘 열여섯 가지 지침
지난날 옛것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위로는 층층이 솟은 벼랑을 뒤지고 아래로는 깊은 연못까지 내려가서, 비석에 새긴 글, 판각한 책, 솥이나 그릇에 새긴 글씨를 가리지 않고 모두 찾아내어 후세에 전했다. 게다가 향기로운 풀을 책 사이에 끼워 벌레를 막고 향내를 나게 하며, 옥빛이나 옅은 노란빛 비단으로 책갑을 만들어 소중히 감쌌으니, 옛 책에 대한 그 남다른 애착이 이와 같았다.
나 역시 부끄럽지만 젊어서부터 좋아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남다른 책을 많이 모으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자식과 조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아직 보지 못한 책을 읽을 때는 마치 좋은 벗을 새로 얻은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다시 볼 때는 마치 옛 벗을 다시 만난 것 같다. 내 천성이 본디 손님 접대를 즐거워하지만 말과 행동에 허물이 있을까 늘 걱정스러우니, 차라리 이 책들에 의지해 문을 닫아걸고 늙어 가려 한다."
이에 대나무로 엮은 창 아래에서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려 '독서십육관'을 지었다. 이는 불교 정토종의 경전 가운데 《십육관경》이 있는 것을 본떠 이름 붙인 것이다. (출전: 《미공비급》)
- 여회(자는 헌가)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책은 많이 읽을 필요가 없다. 한 글자를 읽었으면 한 글자를 실천해야 한다." 정이(호는 이천) 또한 이렇게 말했다. "한 자를 읽는 것이 한 치를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 말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범질은 벼슬길에 나선 뒤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어떤 기이한 사람이 나를 보고 한 나라의 재상이 되리라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된다면 공부하지 않고서야 어찌 재상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 말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심유지는 뒤늦게야 책을 좋아하게 되어 늘 이렇게 말했다. "곤궁함과 영달함에는 제각기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내 일찍이 알았건만, 십 년 동안 책을 읽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럽다."
- 섭몽득(호는 석림)은 또 이렇게 말했다. "그저 자손들이 책 읽는 가업을 끊이지 않게 하여, 그들이 마을에서 착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크게 성공하고 못하고는 하늘에 달린 일이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 말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손울의 집안은 대대로 책을 모아 왔으므로, 먼 곳 가까운 곳 할 것 없이 그 집에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이 늘 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손울은 그들을 위해 옷과 밥을 마련해 주었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소식(호는 동파)이 왕랑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 어리고 아직 학문이 얕은 사람은 책 한 권을 붙들고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한다. 마치 바다 속의 온갖 보물을 사람마다 저마다의 힘만큼만 가져갈 수 있을 뿐 그것을 한꺼번에 다 가져갈 수는 없는 것처럼, 책 읽기도 그저 자기가 바라는 만큼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사람은 언제나 한 가지 뜻을 세워 그것을 구해야 한다. 옛날과 지금의 흥망과 치란, 그리고 성현의 살아온 자취를 알고자 한다면 오로지 그 뜻만을 두고 구해야지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밖의 다른 사적이나 문물을 알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여 학문을 이루면 사방에서 무엇을 물어 와도 답할 수 있게 되니, 건성으로 책을 읽는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 말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동우는 늘 경서를 끼고 다니며 틈만 나면 외웠는데, 사람들이 가르침을 청해도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먼저 백 번을 읽어라. 그러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또 소철(호는 난성)은 이렇게 말했다. "책을 보는 것은 약을 먹는 것과 같다. 약을 많이 먹으면 약효가 저절로 온몸에 퍼진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 말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강록은 책을 다 읽기 전에 급한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보던 책을 가지런히 정돈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으므로 그의 책은 늘 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에게 책 빌려주기를 꺼리지 않았다. 제나라의 왕유는 남에게 책을 빌리면 손수 그 잘못된 곳을 바로잡은 뒤에 돌려주었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유현은 그 시절 학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다고 이름이 났는데, 공환과 함께 책을 놓고 토론할 때면 서로를 깊이 존중했다. 유현이 공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채옹(후한의 학자로, 자는 백해다)이 자기 집의 책을 전부 왕찬(자는 중선이다)에게 물려주었다는데, 나도 그 채옹이 한 일을 본받고 싶으니, 그대도 왕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게." 하고는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공환에게 주었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소순흠(자는 자미)이 장인 두기 공의 집에 식객으로 머물 때, 저녁마다 책을 읽으며 늘 술 한 말을 곁에 두었다. 두기가 몰래 엿보니, 소순흠이 《한서》의 장량전을 읽다가 자객이 진나라 황제를 철퇴로 내리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손으로 책상을 쓸며 "아깝구나, 맞히지 못했구나!" 하고는 큰 술잔 가득 한 잔을 들이켰다. 또 장량이 "제가 처음 하비 땅에서 몸을 일으켜 유 땅에서 폐하를 만났으니, 이는 하늘이 저를 폐하께 내려 주신 것입니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다시 책상을 어루만지며 "임금과 신하가 이토록 서로 뜻이 맞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 하고는 또 큰 잔으로 한 잔을 들이켰다. 이를 본 두기 공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마시는 술이라면 한 말도 결코 많은 것이 아니겠구나."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황정견(호는 부옹)은 이렇게 말했다. "책을 뜯어 옹기 뚜껑을 덮거나 역사책을 찢어 문에 바르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선비가 궁박한 처지에서 원통하게 모함을 당하면, 이를 전해 들은 사람도 가엾게 여기지 않고 그를 본 사람도 마음에 두지 않으며, 다들 그의 생사에 무관심하다. 이 두 가지를 견주어 보면, 앞의 경우는 종이 위의 글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요, 뒤의 경우는 뱃속에 학문을 가득 담은 선비를 마치 원수처럼 여기는 것이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주희(호는 자양)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의 오회는 대나무 조각을 엮어 《한서》를 손수 베끼려 했고, 조이도는 늘 《공양전》과 《곡량전》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하다가, 뒤늦게 책 한 권을 구해서야 비로소 베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서로 책을 돌려 가며 베끼는 일조차 귀찮아하니, 그 때문에 책이 적어지고 배움의 폭도 넓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진유(자는 자겸)는 이렇게 말했다. "두영, 전분, 관부의 전기를 읽어 보니, 관부가 술기운에 취해 좌중을 꾸짖는 모습이 눈앞에 역력히 그려져 마치 영취산에서 부처님이 설법하던 자리에 앉아 있는 듯했다. 너무나도 생생하여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조사서(자는 계인)가 나대경(자는 경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평생의 소원이 세 가지 있으니, 첫째는 세상의 훌륭한 사람을 모두 사귀어 보는 것이요, 둘째는 세상의 좋은 책을 모두 읽어 보는 것이요, 셋째는 세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모두 구경해 보는 것이다." 나대경이 말했다. "그것을 어찌 다 이룰 수 있겠는가. 다만 처한 상황마다 그저 지나쳐 버리지만 않으면 될 뿐이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 안지추(남북조 시대의 학자로, 《안씨가훈》을 지었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성현의 책을 읽을 때마다 엄숙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낡은 종이라도 거기에 오경(다섯 가지 유교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글귀나 옛 현인의 이름이 적혀 있으면 결코 함부로 더럽히지 않았다."
- 사마광(온공에 봉해졌다)이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사치가 돈을 모으듯이, 학문하는 사람도 책을 보배처럼 아껴야 한다. 요즘은 불교나 노장을 따르는 사람들조차 자기네 경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데, 어찌 우리 유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조맹부(자는 자앙)는 책 뒤에 적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을 모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책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이렇게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바르게 한 뒤 책상을 깨끗이 치우고 향을 피우고서야 책을 펼친다. 책장을 접지 말고 책 모서리도 접지 말며, 손톱으로 글자를 긁어 상하게 하지 말고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지 말라. 또 책을 베개 삼지 말고 다른 물건 사이에 끼워 두지도 말라. 책이 상하면 곧바로 고치고, 무심코 펼쳐 놓았다면 반드시 도로 덮어 두라. 훗날 내 책을 물려받는 사람에게도 이 법을 함께 전한다." 책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이상 열여섯 가지 지침을 다 베끼고 나서 붓을 내려놓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내 등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책을 다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차라리 책이 없느니만 못하다'는 옛말은, 바로 글이 말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말이 뜻을 다 전하지 못하는 경우를 두고 한번 곱씹어 보라는 뜻으로 한 말일세."
나는 그 노인의 말에 마음이 훤히 열려 크게 깨닫고는 누구인지 물었더니, 스스로 '수레바퀴 깎는 늙은이'(옛날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속 인물로,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를 지닌 사람을 뜻한다)라 했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이 이야기를 적어 앞의 '열여섯 가지 지침'을 보충하는 말로 삼는다. 이상이 '독서십육관'이다.
8. 여름날 책과 술로 더위를 잊다
우리 집에는 옛날부터 모아 온 책이 일만여 권 있는데, 그 가운데는 내가 손수 베낀 책도 많아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세월을 뛰어넘은 듯한 감회가 인다. 그래서 날마다 보고 싶은 책 수십 권을 꺼내 와 문하의 젊은이들에게 곁에서 읽게 했는데,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술 빚는 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사흘 만에 술이 익는 방법으로, 빛깔은 맑은 강물 같고 맛은 이름난 좋은 술에 못지않았다. 언제나 이 술을 저녁 서늘할 무렵 석 잔쯤 마시면 딱 알맞게 취기가 올랐다. 책을 읽으며 더위를 잊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방법인데, 거기에 이런 술까지 곁들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다 문득 구양수(시호는 문충)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평생의 고단한 공부는 책 천 권에 담겨 있건만, 세상만사는 술 한번 진탕 마시면 다 사그라지네."
이 시구를 되뇌노라니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출전: 《피서록화》)
9. 송민구, 집세가 배로 뛸 만큼 좋은 책을 모으다
송민구(자는 차도)의 집에 있는 책은 모두 서너 번에서 대여섯 번씩 꼼꼼히 대조하고 바로잡은 것이라, 세상 사람들이 송민구 집의 책을 가장 좋은 판본으로 여겼다. 송민구가 춘명방이라는 동네의 소릉 근처에 살 때, 책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그의 집 곁에 다투어 집을 세내어 살았는데, 이는 송민구에게서 책을 쉽게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당시 춘명방의 집세는 다른 곳보다 갑절이나 비쌌다.
진염(자는 숙역)이 늘 이 일을 두고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광경을 어찌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출전: 《규거지》)
10. 진소경, 꽃과 책을 함께 물려주다
진소경이 책 수천 권과 이름난 그림 수십 폭을 모았다.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화정 땅에 살았는데, 학 한 쌍과 기이한 돌 하나를 두고 몹시 아꼈으며, 진귀한 꽃 수천 그루를 뜰에 심어 놓고는 자손들에게 이런 시를 지어 경계했다.
"방 안 가득한 것은 그림과 책들이요, 화정의 신선 같은 이 몸은 큰 산의 정기를 타고났네. 내가 죽더라도 이 꽃과 책을 팔지 말라, 그래야만 우리 집안의 착한 자손이니라."
그러나 진소경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책들은 모두 흩어져 민간으로 팔려 나가고 말았다. (출전: 《하씨어림》)
11. 왕도곤, 꼭 필요한 책 몇 권이면 충분하다
왕도곤의 서재에는 갈피마다 쪽지를 꽂아 표시해 둔 책이 만 권도 넘었다. 손님이 그 책을 곁눈질해 보면 왕도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쪽지 꽂은 책이 많다고 부러워하지 마시게. 그저 훗날 찾아보기 편하도록 해 둔 것일 뿐이라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몇 가지 꼭 필요한 책을 익숙하게 읽어 두면 그만이지. 비유하자면 한 고조가 천하를 통일할 때 정말로 마음이 통했던 사람은 소하, 장량, 한신 이 세 사람뿐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일세."
(출전: 《명세설신어》)
12. 미불, 손을 씻은 뒤에야 책을 꺼내 보이다
미불(자는 원장)이 쓴 '손 씻고 책 보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책 한 권을 손에 넣으면 언제나 암송할 만큼 읽고 나서 상자에 넣어 두는데, 그때마다 '미씨가 아끼는 책'이라는 도장을 찍거나 '이미 다 읽었음'이라는 도장을 찍어 둔다.
책상 두 개를 하나는 높게 하나는 낮게 나란히 놓아두고, 나는 손을 씻은 뒤에야 몸소 책을 가져다 펼쳐서 손님에게 보여 준다. 그러면 손님은 인사를 하고 책상에 기대어 조용히 그 책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내가 그 앞을 지나가면 손님이 '이 책을 주시겠소' 혹은 '이 책은 다 보았소' 하고 말한다. 손님이 책상에 기대어 책을 보게 하고 내가 직접 책을 건네는 것은, 언뜻 손님을 지나치게 귀하게 대접하고 나 자신은 지나치게 낮추는 듯 보이겠지만, 이렇게 하는 까닭은 다만 손님의 손이나 옷자락으로 책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출전: 《해악집》)
13. 이밀, 만 권의 책을 언제 다 읽으랴 탄식하다
이밀(자는 영화)은 대문을 닫아걸고 마당을 깨끗이 쓸게 한 뒤 사람들의 왕래를 막고 휘장을 내리고서, 있는 재산을 다 털어 책을 모으고 손수 그것을 엮어 나갔다. 그러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대장부가 책 만 권을 갖게 되었으나, 언제 이 많은 책을 다 읽는단 말인가."
(출전: 《해악집》)
14. 송기, 글은 조용한 가운데서 짓는 것이다
송기(시호는 경문)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고 글을 짓는 일은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출전: 《해악집》)
15. 황정견, 옛 글씨와 그림을 보면 세속의 먼지가 떨어진다
황정견(호는 산곡)은 이렇게 말했다.
"날마다 옛사람의 법도 있는 글씨나 이름난 그림을 마주하면, 얼굴에 잔뜩 낀 세속의 먼지를 떨어낼 수 있다."
(출전: 《소창청기》)
16. 황정견, 사흘만 책을 안 읽어도 몰골이 가증스러워진다
황정견은 이렇게 말했다.
"선비가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옳고 그름의 이치가 가슴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자기 몰골이 밉살스러워지고 말이 아무 맛도 없어짐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출전: 《소창청기》)
17. 황정견, 잘못된 풍속을 고치는 것은 오직 책뿐이다
황정견은 이렇게 말했다.
"자손들의 이런저런 병은 다 고칠 수 있지만, 잘못 든 버릇만은 고치기 어렵다. 그 잘못된 버릇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책뿐이다."
(출전: 《공여일록》)
18. 예사, 세상의 온갖 맑은 소리 중 책 읽는 소리가 으뜸이다
예사(시호는 문절공)는 이렇게 말했다.
"소나무에 이는 바람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산새 우짖는 소리, 들판의 풀벌레 소리, 학이 우는 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돌 놓는 소리, 섬돌에 떨어지는 빗소리, 창밖을 스치는 눈 소리, 차 끓는 소리, 이 모두가 참으로 맑은 소리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책 읽는 소리가 가장 좋다. 그런데 남이 책 읽는 소리를 들을 때는 그리 기쁘지 않다가도, 제 자식이 책 읽는 소리를 들을 때는 그 기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또 황정견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일이란 대개 이로움과 해로움이 반반씩 섞여 있게 마련인데, 오로지 이로움만 있고 털끝만 한 해로움도 없는 것은 오직 책뿐이다."
(출전: 《암서유사》)
19. 진계유, 못 본 책은 새 벗, 읽은 책은 옛 벗과 같다
진계유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보지 못한 책을 읽을 때는 좋은 벗을 얻은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다시 볼 때는 옛 벗을 만난 것 같다."
(출전: 《미공비급》)
20. 진계유, 대나무와 향기가 있으면 복이 갖추어진 것이다
진계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숨어 사는 곳에 쭉쭉 뻗은 대나무와 이름난 향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복을 이미 다 갖춘 셈이다. 다만 복이 없는 사람이라야 딴생각을 품게 되니, 설령 복이 있다 하더라도 책을 읽어 그 복을 더 채워야 한다."
(출전: 《암서유사》)
21. 만 권의 책과 거문고와 향, 이것이 곧 인간 세상의 선경이다
책 만 권을 모아 비단으로 감싸 두고, 글씨와 그림 천 축을 거두어 귀한 비단으로 표구해 둔다. 그리고 거문고 한 대, 피리 한 자루, 칼과 창, 자기로 만든 술그릇, 좋은 향, 오래된 솥, 비단으로 꾸민 걸상, 흰 병풍과 다구와 먹까지 두루 갖추어 두고서, 한가한 날이면 그 속에서 시를 읊조리며 세속의 번거로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런 경지야말로 동방의 정토요 인간 세상 가운데 있는 신선의 세계라 할 만하다. (출전: 《암서유사》)
22. 진계유, 그림과 글은 함께 있어야 한다
진계유(호는 미공)는 이렇게 말했다.
"하도, 낙서, 팔괘, 홍범(모두 옛 성인이 하늘의 이치를 그림과 글로 나타냈다고 전해지는 것들이다)은 다 그림이다. 글은 그것을 두고 연구할 수 있지만, 그림은 반드시 곁에서 풀어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옛사람이 왼쪽에는 그림을 두고 오른쪽에는 글을 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글만 있고 그림이 없으므로, 배우는 공부는 있어도 묻고 토론하는 공부는 없다. 글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말은 품은 뜻을 다 전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둘을 이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뿐이다."
(출전: 《미공십부집》)
23. 처음과 끝이 없는 두 글, 《장자》와 《이소경》
예로부터 지금까지 문장 가운데 처음과 끝의 짜임이 따로 없는 것은 오직 《장자》와 굴원의 《이소경》 두 가지뿐이다. 대개 굴원과 장주는 둘 다 슬픔과 즐거움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지나쳤던 인물이다. 슬픔은 가라앉고 움츠러드는 기운을 북돋우므로 《이소경》은 외롭고 가라앉아 한없이 깊숙이 내려가는 감정을 담고 있고, 즐거움은 뻗어 나가고 들뜨는 기운을 북돋우므로 《장자》는 거침없이 자유분방하며 가볍게 하늘로 떠오르는 감정을 담고 있다. 슬픔과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웃음과 울음에 절제가 없어지고, 웃음과 울음이 극에 이르면 말에도 절제가 없어지는 법이다. (출전: 《미공십부집》)
24. 시대마다 한 가지씩 뛰어난 것이 있다
진나라가 세워지기 전과 한나라 시대에는 시와 문장이 두루 갖추어졌고, 진나라 사람들은 청담과 서예가 특색이었으며, 오·동진·송·제·양·진 여섯 나라 사람들은 대구를 맞춘 화려한 문체가 특색이었고, 당나라 사람들은 시와 소설이, 송나라 사람들은 노래 가사가, 원나라 사람들은 그림과 남북의 희곡이 저마다의 특색이었으니, 이 모두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들이었다. (출전: 《미공십부집》)
25. 이백은 천재, 백거이는 인재, 이하는 귀재
이백은 하늘이 낸 재주로 으뜸이요, 백거이는 사람의 재주로 으뜸이요, 이하는 귀신 같은 재주로 으뜸이다. (출전: 《미공십부집》)
26. 책마다 요점이 되는 글자가 있다
책을 읽을 때는 그 요점을 짚어 내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예를 들면 《도덕경》은 '있음'과 '없음' 두 글자가 요점이고, 《능엄경》은 '마음'과 '눈' 두 글자가 요점이며, 《반야심경》은 '비추어 살핌' 두 글자가 요점이다. (출전: 《암서유사》)
27. 《산해경》은 험준한 기운을, 《수신기》는 게으름을 낫게 한다
《산해경》을 읽으면 마치 높고 험한 산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고, 《수신기》를 읽으면 마치 괴이하고 허황된 이야기를 들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게으른 병을 고치는 데는 이만한 책이 없다. (출전: 《암서유사》)
28. 산속에 살 때는 운서와 자학도 익혀 둘 만하다
운서(한자의 발음을 정리해 둔 책), 자학(글자의 짜임과 쓰임을 연구하는 학문), 휘파람에 관한 책 같은 것들은 산속에 살며 한가할 때 틈틈이 익혀 둘 만하다. (출전: 《암서유사》)
29. 패관소설과 지리서는 늘그막의 좋은 벗이 된다
패관소설(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은 책)이나 산천과 지리를 적은 책들은 이따금 책상 위에 놓아두면, 미처 듣지 못했던 견문을 넓혀 줄 뿐 아니라 늘그막의 좋은 벗이 되어 주기도 한다. (출전: 《암서유사》)
30. 아이들은 세상일이 아니라 책으로 세상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일 때문에 책 읽는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되며, 오히려 책을 통해 세상일에 두루 통달해야 한다. (출전: 《암서유사》)
31. 유교 경전과 사서는 글로, 비석은 글씨로 옛사람을 전한다
경전과 역사책, 여러 학자의 글과 시문집은 오로지 글로써 서로 전해지지만, 비석에 새긴 글은 옛사람의 필적까지 함께 전해진다. 그래서 옛것을 좋아하고 옛 현인과 벗하기를 즐기는 선비들은 서로 다투어 그런 비석의 글을 찾아 전하는 것이다. (출전: 《암서유사》)
32. 남의 흉을 보느니 옛사람의 좋은 말과 행실을 적는 것이 낫다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책을 베끼는 것이 낫고,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옛사람의 아름다운 말과 행실을 기록해 두는 것이 낫다. (출전: 《암서유사》)
33. 옛 글씨첩을 책상에 두면 다섯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옛사람의 글씨첩을 두루 찾아 책상 위에 놓아두면 다섯 가지 좋은 점이 있다.
긴긴 날을 소일하며 속된 마음을 씻어 낼 수 있는 것이 첫째요, 한자를 이루는 여섯 가지 원리와 획을 긋는 법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둘째요, 옛사람들이 쓰던 특이한 글자를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셋째요, 옛 현인들의 풍류와 운치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고 그들이 남긴 행적과 흩어진 기록, 그들이 사귀던 사람들과 살던 곳과 묻힌 곳까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넷째요, 책상 앞에 매여 앉아 날마다 애써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이 옛 글씨첩을 통해 절로 조금씩 공부가 쌓여 가는 것이 다섯째 좋은 점이다. (출전: 《태평청화》)
한정록 제13권 · 현상
출처: 한정록 제13권, 현상
배경: '현상'은 '그윽한 안목으로 감상한다'는 뜻으로, 한정록의 이 항목에는 사람, 글, 글씨와 그림, 거문고, 바둑, 일상의 취향, 새와 벌레, 꽃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 걸쳐 고아한 안목과 취미를 지녔던 옛사람들의 일화와 평이 모아져 있다. 원문은 이 여덟 가지 주제에 따라 순서대로 묶여 있으며, 번역에서도 그 구분을 그대로 살려 소제목으로 나누었다.
일러두기: 이 권에 실린 이야기는 허균이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중국 책에서 뽑아 온 것이므로, 이야기 끝에 적힌 책 이름은 허균이 인용한 원래의 출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인물의 자(성인이 되면서 따로 지어 부르던 이름), 호(따로 즐겨 부르던 별칭), 시호나 봉호(죽은 뒤나 공로에 따라 나라에서 내린 이름)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에서는 되도록 본이름을 앞세우고 나머지는 괄호 안에 풀어서 밝혔다. 특히 역대 시인들을 사물에 빗대어 한꺼번에 평한 대목에는 낯선 옛이야기가 여럿 섞여 있어, 필요한 곳에 따로 용어 설명을 붙였다. 이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 기존 국역본을 참고하여, 그 뜻을 오늘의 쉬운 한글 문장으로 다시 옮긴 것이다.
인물 — 사람됨을 알아보다
범방과 곽태 — 곽임종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범방(자는 맹박)에게 곽태(자는 임종)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범방이 대답했다. "곽임종은 숨어 살면서도 부모를 떠나지 않았고, 곧게 살면서도 세상과 인연을 끊지 않은 사람이다. 천자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고 제후도 그를 벗으로 삼을 수 없으니, 그 밖의 것은 나도 알 수 없다." — 《세설신어》에서
산도와 혜강 — 외로운 소나무 같은 인품
산도가 혜강(자는 숙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숙야는 인품이 고결하여 우뚝 솟은 것이 마치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는 것과 같다." — 《세설신어》에서
채사도와 육기 형제 — 나란히 관아에 머물다
사도 벼슬을 지낸 채씨(채사도)가 낙양에 있을 때 육기, 육운 형제를 만나 보고 자기 밑에 보좌관으로 삼아 관아에 머물게 했다. 세 칸짜리 기와집에서 육운(자는 사룡)은 동쪽에, 육기(자는 사형)는 서쪽에 머물렀는데, 육운은 사람됨이 우아하고 유순하여 사랑스러웠고, 육기는 키가 일곱 자가 넘고 목소리가 종소리 같았으며 말에는 강개함이 넘쳤다. — 《세설신어》에서
왕제와 왕징 — 위개를 향한 감탄
표기장군을 지낸 왕제(진나라 무제의 사위였다)는 위개(자는 숙보)의 장인이었는데, 헌걸찬 풍채를 지녔으면서도 사위인 위개를 볼 때마다 이렇게 탄식했다. "주옥이 곁에 있으니 내 모습이 초라해짐을 깨닫는다."
왕징(자는 평자)은 뛰어난 재주가 있어 어려서부터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마음으로 따랐는데, 위개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감탄해 마지않았다. — 《세설신어》에서
허순 — 거문고의 이치를 논하다
허순(자는 현도)이 말했다. "이른바 〈금부〉는 지극히 정밀하지 못한 사람과는 함께 그 이치를 따져 볼 수 없다." — 《세설신어》에서
(용어) 〈금부〉는 거문고를 주제로 지은 오래된 글로, 거문고 소리의 이치를 논한 것이다.
유담과 간문제 — 고요한 사람이라야 함께 지낼 수 있다
유담(윤 벼슬을 지냈다)이 말했다. "그 사람은 마음이 깊고 고요하지 않은 자와는 함께 한가로이 지낼 수 없다." 여기서 '그 사람'은 바로 진나라의 여덟 번째 임금인 간문제를 가리킨다. — 《세설신어》에서
소사업 — 원덕수를 아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소사업(국자감의 사업 벼슬을 지냈다)이 늘 당대의 이름난 선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불행히도 쇠퇴한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원덕수(자는 자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하씨어림》에서
하지장과 이백 —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
당나라의 시인 하지장이 이백을 보고 이렇게 칭찬했다. "이 사람은 하늘 위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다." — 《하씨어림》에서
황정견 — 소식의 초상 앞에 예를 갖추다
황정견(자는 노직)이 늘그막에 방 안에 소식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아침마다 의관을 갖추어 향을 피우고 매우 공경스럽게 절을 올렸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두 분은 같은 시대에 명망이 서로 엇비슷했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황정견은 깜짝 놀라 곧바로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내가 어찌 소공을 따를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그의 제자일 뿐이니, 예를 잃어서야 되겠는가." — 《하씨어림》에서
문언박과 문동 — 갠 구름과 가을달 같은 마음씨
문언박이 성도의 유수로 있을 때 문동(자는 여가)을 만나 보고 기특하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여가는 마음씨가 깨끗하기가 마치 갠 하늘의 구름과 가을밤의 달 같아서, 속세의 때가 조금도 묻지 않았다." — 《하씨어림》에서
진관 — 원우 연간의 인재를 논하다
진관(자는 영중)이 원우당적비에 이렇게 썼다. "아, 한나라 때 인재를 얻은 것도 원우 연간만큼 융성하지는 못했다." — 《장설소췌》에서
(용어) '원우당적비'는 송나라 때 사마광을 비롯한 옛 정파와 왕안석을 비롯한 새 정파가 격렬히 대립하다가, 새 정파가 권력을 잡은 뒤 옛 정파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 그 이름을 새겨 세운 비석이다. 진관은 이 비석에 오히려 그 옛 정파 사람들이 얼마나 뛰어난 인재들이었는지를 반어적으로 새겨 넣은 것이다.
서천상 — 왕사구의 문장을 칭송하다
서천상(호는 존재)이 왕사구를 칭찬하여 말했다. "왕사구는 반고, 양웅, 낙빈왕, 왕발의 문장을 한데 모아 자기만의 문장을 완성한 사람이다." — 《장설소췌》에서
시문 — 글을 보는 안목
옛 문장의 네 대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문장 가운데 참으로 뛰어난 것은 오직 네 사람의 것뿐이다. 좌구명(춘추좌씨전을 지은 사람이다)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화려하고, 장자의 글은 호방하면서도 오묘하며, 굴원의 〈이소〉는 슬프면서도 그윽하고, 사마천의 글은 격렬하면서도 웅장하다. — 《장설소췌》에서
갈홍 — 육기의 문장을 옥에 비유하다
갈홍(자는 치천)이 평원내사를 지낸 육기의 문장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육기의 문장은 신선이 사는 곳에 쌓인 옥과 같아서, 어느 것 하나 밤에도 빛나는 야광주가 아닌 것이 없다." — 《하씨어림》에서
안연지와 포조 — 사영운과 견주다
안연지가 포조(자는 명원)에게 자기 시와 사영운(봉호는 강락)의 시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 물었다. 포조가 대답했다. "사영운의 오언시는 마치 갓 피어난 연꽃 같아서 사랑스럽고, 그대의 시는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아서 아름다운 무늬가 눈에 가득합니다." — 《하씨어림》에서
왕적 — 주역과 노자, 장자만 곁에 두다
왕적(자는 무공)은 책상머리에 오직 《주역》과 《노자》, 《장자》만 두었을 뿐,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 《하씨어림》에서
소식과 왕안석 — 두 구절의 시에 감탄하다
소식(자는 자첨)이 강을 건너 의진 지방에 이르러, 왕안석(봉호는 형공)의 〈장산에서 노닐다〉라는 시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왕안석에게 보냈다. 왕안석이 그 시를 읽다가 "산봉우리 많으니 교묘하게 햇빛을 가리고 / 강이 머니 하늘을 띄우려는 듯하다"라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탁자를 어루만지며 감탄했다. "내가 한평생 지은 시가 이 두 구절만 못하다." — 《하씨어림》에서
역대 시인들을 사물에 빗대어 논하다
위나라의 조조(무제라는 시호로도 불린다)는 북방 국경을 지키는 노련한 장수와 같아서 기품이 침착하고 웅장하며, 조식(자는 자건)은 화려한 도성 근처의 젊은이 같아서 풍류가 볼 만하고, 포조(자는 명원)는 굶주린 매가 튀어나온 듯하여 기이한 재주가 견줄 데 없으며, 사영운(봉호는 강락)은 동해에 뜬 돛단배가 바람과 햇살을 받는 것 같고, 도연명(팽택현의 현령을 지냈다)은 붉은 구름이 하늘에 떠서 자유로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 같으며, 왕유(상서 우승 벼슬을 지냈다)는 가을 물 위의 연꽃이 바람을 맞아 웃음 짓는 듯하고, 위응물(소주 자사를 지냈다)은 '원객'이라는 전설 속 인물이 홀로 조용히 누에를 치던 것처럼 그윽한 소리가 은은히 어우러지며, 맹호연은 동정호 물결에 나뭇잎이 살며시 떨어지는 것 같고, 두목(자는 목지)은 구리 탄환이 비탈을 구르고 준마가 언덕을 내달리는 것 같으며, 백거이(자는 낙천)는 산동 지방의 늙은 농부가 농사에 힘쓰는 것처럼 일과 말이 다 착실하고, 원진(자는 미지)은 늙은 악공이 지난 시절의 옛일을 이야기하는데 모습은 초췌해도 정신만은 다치지 않은 것 같으며, 유우석(자는 몽득)은 얼음과 옥에 조각을 새긴 듯 절로 광채가 나고, 이백은 회남왕 유안의 닭과 개가 그의 신선 약을 먹고 구름 속에서 짖고 울어 그 소리가 하늘까지 남았으나 정작 그 자취를 찾으려 하면 황홀하여 붙잡을 곳이 없는 것과 같으며, 한유(호는 퇴지)는 모래주머니로 강물을 막고 물을 등지고 진을 쳐서 싸운 한신처럼, 오직 뛰어난 장수만이 해낼 수 있는 일과 같고, 이하(자는 장길)는 한 무제가 이슬 받는 그릇을 만들어 이슬을 받아 마셨어도 끝내 욕심을 고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 것과 같으며, 맹교(자는 동야)는 물에 잠긴 부러진 칼과 골짜기에 누운 쓸쓸한 소나무 같고, 장적은 떠돌이 광대가 시골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다가 이따금 익살을 부리는 것과 같으며, 유종원(자는 자후)은 늦가을 저물녘에 홀로 졸다가 갠 저녁 하늘 아래 외로이 피리를 부는 것 같고, 이상은(자는 의산)은 온갖 보물로 화려하게 꾸민 장식이나 천 가닥 실로 짠 쇠그물처럼 곱고 화려하지만 실제로 쓰기에는 마땅치 않은 것과 같다.
송나라에 이르러, 소식(호는 동파)은 하늘의 은하수를 터서 넓은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 같아 온갖 기이한 변화가 다 일어나지만 끝내는 웅장하고 도타운 데로 돌아가며, 구양수는 종묘에 바칠 귀한 제기들을 갖추어 놓은 것과 같고, 왕안석은 위나라 장수 등애가 음평이라는 험한 길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 촉나라로 쳐들어갔던 것처럼 험준한 길을 뚫어 결국 공을 이룬 것과 같으며, 황정견(호는 산곡)은 옛 은자 도홍경이 궁궐에 들어와 도리를 논하고 현묘한 학문을 이야기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산속 솔바람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고, 매요신(자는 성유)은 황하의 거센 물줄기를 막아서 삽시간에 소리조차 없게 만드는 것과 같으며, 진관(자는 소유)은 혼기가 찬 처녀가 봄나들이를 나갔다가 도리어 아름다움에 흠집이 난 것과 같고, 진사도(호는 후산)는 깊은 곳에서 학이 홀로 울고 깊은 숲에 꽃이 외로이 피어 조용히 스스로를 곱게 여길 뿐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으며, 한구(자는 자창)는 당나라 궁중의 음악 기관인 이원에서 기른 젊은 악공들이 차례로 늘어서서 질서 있게 연주하는 것과 같고, 여본중(자는 거인)은 유학을 버리고 불교의 선으로 돌아간 것을 스스로 뛰어나다고 여긴 것과 같다.
그 밖의 작가들을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당나라의 두보(공부원외랑 벼슬을 지내 두공부라고도 불린다)만은 마치 주공이 예와 음악의 제도를 처음으로 세운 것과 같아서, 후세 사람이 감히 이러쿵저러쿵 논할 수 없는 존재다. — 《시인옥설》에서
(용어) 회남왕 유안은 한나라 황족으로 신선술을 좋아했는데, 그가 죽을 때 먹다 남긴 약을 닭과 개가 먹고 함께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한신은 한나라의 명장으로, 조나라를 공격할 때 일부러 강물을 등지고 진을 쳐서 병사들이 물러설 곳 없이 싸우게 하여 크게 승리했다. 한 무제는 이슬을 받아 마시면 오래 산다고 믿어 궁궐에 이슬 받는 그릇을 만들어 두었다. 도홍경은 남북조 시대에 벼슬을 버리고 산속에 은거했지만 나라의 중요한 일마다 자문에 응해 '산속의 재상'이라 불린 인물이다.
서화 — 글씨와 그림을 아끼다
구양순 — 옛 비석 앞에서 사흘을 머물다
구양순(솔경이라는 벼슬로도 불린다)이 길을 가다가 오래된 비석을 발견했는데, 바로 삭정이 쓴 글씨였다. 구양순은 말을 세우고 한참 동안 비석을 살펴보다가 그곳을 떠나 수백 걸음을 갔지만, 다시 돌아와 말에서 내려 비석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피곤해지면 자리를 깔고 앉아서 보기를 사흘이나 계속한 뒤에야 그곳을 떠났다. — 《세설신어》에서
염립본 — 장승요의 그림을 보고 생각을 바꾸다
그림을 잘 그리기로 이름난 염립본이 형주 지방에 가서 장승요(남조 양나라의 화가다)가 남긴 옛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헛되이 이름만 얻었을 뿐이구나." 이튿날 다시 가서 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요즘의 솜씨 좋은 화가 정도는 되는구나." 또 이튿날 가서 보고는 말했다. "이름이 높은 사람 중에 헛되이 이름을 얻은 사람은 없구나." 그러고는 그 그림 아래에 머물러 자면서 앉아서도 보고 누워서도 보았다. — 《세설신어》에서
미불 — 왕희지의 서첩을 얻으려고 강물에 뛰어들려 하다
미불(자는 원장)이 진주 지방에 있을 때 배 안에서 채유를 만났는데, 채유가 왕희지의 서첩을 꺼내 보여 주었다. 미불은 감탄한 나머지 다른 그림과 바꾸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채유가 난처한 기색을 보이자 이렇게 말했다. "공께서 제 청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더 살지 않고 이 강에 빠져 죽겠습니다." 그러고는 소리를 지르며 뱃전에 걸터앉아 강으로 뛰어들려 하니, 채유가 결국 그 서첩을 내주었다. — 《세설신어보》에서
미불 — 진품과 모사품을 구별할 수 없게 하다
미불은 남의 글씨나 그림을 빌려다가 그대로 베껴 그린 뒤, 원본과 모사본을 함께 돌려주곤 했는데 더러는 그 모사본을 진품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잘된 서화에는 '미씨 집안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는 뜻의 도장을 찍었고, 그 밖의 서화에는 '맑게 감상한다'는 뜻의 도장을 찍었다. 그가 일찍이 회남 지방을 유람할 때 작은 배에 서화를 싣고 다녔는데, 어느 날 밤에는 그 배에서 무지개가 뻗쳐 나와 달을 꿰뚫었다고 한다. — 《백천학해》에서
조맹견 — 서화를 배에 싣고 다니다
조맹견(자는 자고)은 몸가짐이 우아하고 예스러웠으며 식견이 넓었다. 옛 서예를 몹시 좋아하여 하·은·주 세 왕조 이후의 금석문과 이름난 서예가들의 법첩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서화를 만나면 주머니를 다 털어서라도 사들였다. 매화와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옛 명인들의 경지에 가까웠고, 산수화에는 더욱 뛰어나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마음가짐이 맑고 깨끗하여 옛 왕조 현인들의 풍모가 있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불(남궁이라는 벼슬로도 불린다)에 견주었다.
그는 이곳저곳을 널리 유람했는데, 길을 떠날 때마다 반드시 자신이 소장한 서화를 모두 가져다가 배 위에 나란히 진열해 싣고는, 겨우 자리 한 장을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지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좌우의 서화를 꺼내 어루만지고 완상하느라 잠자고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 그의 서화를 실은 배가 이르는 곳마다, 그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 그 배가 조맹견의 배임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 《하씨어림》에서
조맹견 — 목숨보다 지킨 서첩
조맹견은 일찍이 다섯 글자가 손상되지 않은 왕희지의 〈난정첩〉을 삽천 지방에서 구해 무척 기뻐하며, 그날 밤으로 가흥 지방으로 돌아오다가 승산이라는 곳에서 큰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혔다. 조맹견은 얕은 물속에 서서 〈난정첩〉을 손에 든 채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난정첩〉이 여기 이렇게 있으니, 다른 것은 신경 쓸 것 없다." 그러고는 서첩 끝에 이렇게 여덟 글자를 적어 넣었다. "목숨은 가벼이 여길 수 있어도 이 지극한 보물만은 지켜야 한다." — 《설부》에서
왕세정 — 옛 책 뒤에 자기 초상을 그리다
왕세정(자는 원미)에게는 송나라 때 나라에서 목판으로 찍어 낸 《한서》와 《후한서》가 있었는데, 그 책들은 길이가 다섯 자쯤 되었고 뒷면에는 원나라의 문인 조맹부(시호는 문민)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 아마도 조맹부(죽은 뒤 위국공에 추증되었다)가 지녔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왕세정은 이 책을 은 오백 냥을 주고 사서, 역시 그 뒤에다가 자기 자신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 — 《미공비급》에서
고개지 — 사곤을 바위 속에 그리다
고개지(자는 장강)는 사곤(자는 유여)이 바위산 속에 있는 모습을 그렸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고개지가 대답했다. "사곤은 스스로 '자연 속에 노니는 깊은 뜻만큼은 내가 유량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으니, 이 사람은 마땅히 그런 깊은 산과 골짜기 속에 두어야 한다." — 《세설신어》에서
(용어) 유량은 진나라의 이름난 장수이자 어진 재상이었다.
막시룡 — 복희씨의 세상에 노니는 듯
막시룡(자는 운경)이 말했다. "서늘한 저녁에 연못가에 걸터앉아 술 몇 잔을 마시고, 이따금 붓과 벼루를 벌여 놓고 옛 서첩의 한두 줄을 따라 써 보고 거문고를 타다 보면, 정신이 아득한 옛 시절 복희씨의 세상에 노니는 듯하다." — 《명세설신어》에서
거문고
거문고와 바둑의 참된 경지
거문고는 타지 않는 것을 최고의 솜씨로 여기고, 바둑은 두지 않는 것을 최고의 수로 여긴다. 순박한 본모습만 보여 주고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이 옛날의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 《소창청기》에서
소식 — 거문고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소식(호는 동파)의 거문고에 관한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만약 거문고에 저 스스로 소리가 있다면 갑 속에 넣어 두었을 때는 어찌 울리지 않는가 만약 그 소리가 손가락 끝에서 난다면 어찌 그대의 손가락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소식은 거문고를 빌려 깨달음의 이치를 말했다고 할 만하다. — 《미공비급》에서
조맹부 — 송설이라는 이름의 거문고
조맹부(자는 자앙)에게는 '송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문고가 있었는데, 때때로 그 거문고를 평상 위에 꺼내 놓기만 할 뿐 손으로 타며 즐기지는 않았다. — 《미공비급》에서
바둑
왕랑중과 지둔 — 좌은과 수담
왕랑중(낭중 벼슬을 지냈다)은 바둑 두는 것을 '앉아서 숨는 일'이라 불렀고, 지둔(공이라는 존칭으로도 불렸다)은 바둑 두는 것을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 불렀다. — 《미공비급》에서
원도의 노래에 춤춘 소식
노래꾼 원도가 일찍이 소식을 따라 손님들과 함께 금산을 유람한 적이 있었다. 마침 한가위 명절이라 사방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며 달빛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일행이 금산의 묘고대에 올라 원도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니, 그는 '수조가'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첫머리는 이러했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술잔 들고 저 푸른 하늘에 물어보리라
노래가 끝나자 소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 《하씨어림》에서
소식 — 바둑을 모르면서도 바둑을 사랑하다
소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본래 바둑 둘 줄을 모른다. 예전에 혼자 여산의 백학관을 유람할 때 보니, 도관 안 사람들이 모두 문을 닫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늙은 소나무와 시냇물 사이에서 바둑 두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가 무척 반가워 그때부터 바둑을 배우려 했지만 끝내 배우지 못했다.
내 아들 소과는 바둑을 둘 줄 알아서, 담이의 태수였던 장중이 날마다 찾아와 소과와 바둑을 두었다. 나도 곁에 앉아 온종일 구경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시를 지었다.
오로봉 앞 백학관이 있던 옛터에는 늙은 솔이 뜰을 덮어 바람과 볕이 맑구나 나는 홀로 거닐어도 선비 하나 못 만났는데 아들은 누구와 바둑을 두는지 문밖에 신발이 두 켤레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따금 바둑돌 놓는 소리만 들리네 바둑판 마주하고 앉은 이 맛을 누가 알까 낚싯바늘 없이 낚으려 하니 마음이 어찌 물고기에 있으랴 아이는 도에 가까워 바둑돌 놓느라 손가락을 편다 이겨도 참으로 기쁘고 져도 그런대로 기쁘니 평화롭고 한가로움이여, 다시 무엇을 바라겠는가" — 《장공외기》에서
이암로 — 한 판을 두는 동안 낮잠 두 번
남악 지방의 이암로는 낮잠 자기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바둑을 둘 때면 이암로는 번번이 베개를 베고 누웠다. 몇 판이 끝난 뒤에야 한 번 돌아누우며 말했다. "나는 이제 겨우 한숨 잤을 뿐인데, 그대들은 몇 판이나 두었는가?"
소식이 이렇게 말했다. "이암로는 늘 다리가 넷 달린 바둑판을 쓰는데, 판 위에 검은 돌만 놓을 뿐 흰 돌은 놓지 않는다. 예전에는 변소와 실력이 비슷한 맞수였는데, 지금은 진박에게 흰 돌 쪽을 내주었지만 그래도 이기는 때가 더러 있다. 바둑을 둘 때는 마음속에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다고 하니, 구양수의 시에 '서늘한 밤 온 산에 달 밝은데 피리를 불고 / 어두운 길에 온갖 꽃이 피어 사람을 홀리네 / 바둑이 끝나면 세상이 바뀐 줄도 모르고 / 술에 취하면 나그네의 고향 생각을 어쩌지 못하네'라고 한 것이, 거의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에 가깝다." — 《소창청기》에서
(용어) 변소와 진박은 모두 옛날에 바둑을 잘 두기로 이름난 사람들이다.
나(허균)의 생각 — 바둑과 잠
나는 일찍이 바둑은 세상을 피할 수 있게 해 주고 잠은 세상을 잊게 해 준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바둑은 짝을 지어 밭을 갈던 옛 은자들과 같아서 상대가 없으면 둘 수 없지만, 잠은 바람을 타고 다닌다는 옛이야기 속의 신선처럼 홀로 가고 홀로 올 수 있다. 아, 훌륭하다, 진박(호는 희이)이여, 그대야말로 잠의 참뜻을 깊이 터득한 사람이로구나. — 《이씨분서》에서
(용어) '짝을 지어 밭을 갈던 옛 은자들'은 공자와 같은 시대에 함께 밭을 갈며 숨어 살았다는 두 사람을 가리킨다.
복식 — 먹고 입는 즐거움
백거이 — 구름을 신고 다니는 신
백거이가 여산의 초당에서 신선의 단약을 굽던 시절, '나는 구름'이라는 뜻의 신을 만들었는데, 검은 비단으로 바탕을 삼고 네 둘레에는 흰 솜으로 구름 모양을 만들어 붙이고 향으로 물들였다. 신을 흔들면 마치 안개가 이는 듯했다. 그가 말했다. "내 발밑에서 구름이 일어나니, 이제 곧 하늘로 오르게 될 것이다." — 《소창청기》에서
충명일 — 차조로 빚은 술
충명일은 타고나기를 술을 좋아하여 차조를 심어 술을 빚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빈 산이 맑고 고요하니 마음 편히 화기를 기를 수 있다." 그러고는 스스로 '구름 낀 시내에서 취해 사는 제후'라는 뜻의 호를 지었다. — 《하씨어림》에서
육구몽 — 굶주림을 참으며 책을 읽다
천수생(호를 이렇게 지었는데, 바로 육구몽이다)은 집이 황폐하여 빈터가 많았는데, 앞뒤의 빈터에 구기자와 국화를 심어 술을 담그는 재료로 삼았다. 한여름이 되어 구기자 가지와 잎이 쇠고 쓰고 떫어져도 아이들을 재촉하여 계속 따게 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 큰 고을에 날마다 짐승을 잡아 반찬을 만들어 그대를 배불리 먹여 줄 집이 없지 않은데, 그대는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은 채 빈속에 옛 성현의 도리와 말씀만 채우고 있으니, 어찌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가?" 천수생이 웃으며 답했다. "내가 몇 해나 배고픔을 참고 경서를 읽었는데, 어찌 술장수와 백정에게도 술과 밥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이러고 있겠는가." — 《소창청기》에서
금충 — 새와 벌레를 아끼다
정훈 — 소나무 일곱 그루와 함께 살다
정훈(소사라는 벼슬을 지냈다)은 자기 집에 작은 소나무 일곱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일곱 소나무의 처사'라는 호를 지어 부르며 말했다. "훗날 사람들이 나를 오류 선생(도연명)과 나란히 짝지어 이야기할 것이다." — 《하씨어림》에서
(용어) '오류 선생'은 도연명이 자신의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스스로 붙인 호다.
선우추 — 괴이한 소나무를 애지중지하다
선우추(자는 백기)는 일찍이 황폐한 채마밭에서 기이하게 생긴 소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 자신이 거처하는 서재 앞으로 옮겨 심었다. 그러고는 그 소나무에 '외로이 홀로 선 늙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어루만지며 즐겼다. — 《하씨어림》에서
막시룡 — 미불이 아꼈던 산 모양 돌
막시룡(자는 정한)에게는 미불이 아꼈다는 산 모양의 돌이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색이 검고 가까이서 보면 맑고 푸르렀다. 높이는 일고여덟 치쯤 되고 길이는 한 자 남짓 되었는데, 봉우리와 골짜기 모양이 여럿 새겨져 있어 두드리면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났으며, 아무리 메마른 날씨에도 푸른 윤기가 흘렀다. 그 돌 밑에는 '운경'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암서유사》에서
지둔 — 학의 날개를 자르고 후회하다
지둔은 학을 좋아했다. 그가 담동의 앙산에 머물 때 어떤 사람이 학 한 쌍을 보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의 날개가 자라 날려고 하자, 지둔은 학이 날아가 버릴까 걱정되어 그만 날개를 잘라 버렸다. 학은 날개를 퍼덕여도 다시는 날지 못하고, 잘린 날개를 돌아보며 목을 늘어뜨리는 것이 마치 번민하는 듯했다. 지둔(자는 도림)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이미 하늘을 날려는 뜻을 품었는데, 어찌 사람의 노리개가 되려 하겠는가." 그러고는 날개가 다시 자라기를 기다려 날려 보냈다. — 《세설신어》에서
노도 — 이름 붙인 물고기들
노도는 여릉 지방에 은거하면서 집 앞 연못에 물고기를 길렀는데, 물고기마다 이름을 붙여 두었다. 이름을 부르면 물고기들이 차례로 다가와 먹이를 먹고는 돌아가곤 했다. — 《하씨어림》에서
채씨 — 쥐를 길들이다
회계산에 사는 채씨라는 사람이 산속에 숨어 살면서 쥐를 수십 마리 길렀다. 오라고 부르면 오고 가라고 하면 바로 가서, 사람의 말을 재빨리 알아들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두고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 불렀다. — 《하씨어림》에서
위제천 — 글자를 아는 학
위제천은 학 여섯 마리를 길러 날마다 죽을 쑤어 먹였는데, 삼 년이 지나자 그 학들이 글자를 알아보게 되었다. 위제천이 책을 살펴볼 때 학에게 시켜 책을 가져오게 해도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 《하씨어림》에서
고태소 — 시간을 알리는 원숭이
상산의 은자 고태소의 집을 '청심정'이라 했는데, 정해진 시각이 되면 뜰 아래에서 원숭이가 울었다. 사람들은 그 원숭이를 '시간을 알리는 원숭이'라 불렀다. — 《하씨어림》에서
꽃
매화를 감상하는 법
봄날 뜰가에 있는 매화나무 몇 그루에 꽃이 피면, 술 석 잔을 마신 뒤 매화나무 둘레를 몇 바퀴 돌면서 꽃을 살펴보고 향을 맡으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른다. 그러다 문득 고계(자는 계적)의 시구, "눈 가득한 산속에는 고결한 선비가 누워 있고 / 달 밝은 숲 아래로는 아름다운 사람이 찾아오네"라는 구절을 외면, 참으로 매화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듯하다. — 《소창청기》에서
진계유 — 사물이 사람의 마음에 건네는 것
진계유가 말했다. "향은 사람의 생각을 그윽하게 하고, 술은 사람의 뜻을 원대하게 하며, 돌은 사람의 뜻을 굳세게 하고, 거문고는 사람의 뜻을 적막하게 하며, 차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대나무는 사람의 뜻을 서늘하게 하며, 달은 사람을 외롭게 하고, 바둑은 사람을 한가롭게 하며, 지팡이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물은 사람의 마음을 비우게 하며, 눈은 사람의 뜻을 넓게 하고, 칼은 사람의 생각을 비장하게 하며, 부들방석은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아름다움은 사람을 그립게 하며, 승려는 사람을 담담하게 하고, 꽃은 사람을 운치 있게 하며, 옛 청동 그릇은 사람을 고아하게 한다." — 《미공비급》에서
병에 꽂는 꽃, 저마다의 쓰임
병에 꽃을 꽂아 책상머리에 두는 데도 저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매화는 한겨울에도 굴하지 않으니 그 둘레를 거닐면 시상이 절로 떠오르고, 살구꽃은 봄날 아리땁게 피니 화장대에 가장 잘 어울리며, 배꽃에 비가 내리면 봄날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하고, 연꽃이 바람을 맞으면 붉은 꽃잎이 활짝 벌어지며, 해당화와 복사꽃, 오얏꽃은 화려한 잔치 자리에서 고움을 다투고, 모란과 작약은 노래하고 춤추는 자리에 잘 어울리며, 향기로운 계수나무 한 가지는 웃음 짓게 하기에 충분하고, 그윽한 난초 한 다발은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에 알맞다. 이렇듯 비슷한 것을 끌어와 저마다의 마음에 맞게 쓰면, 어울리는 정취가 참으로 많아진다. — 《미공비급》에서
한정록 제14권 · 청공
출처: 한정록 제14권, 청공
배경: 이 14권의 주제인 "청공"은 "맑고 담박한 삶에 쓰이는 물건과 그 씀씀이"를 뜻하는 말로, 산속에 은거하며 살아가는 선비가 갖추어야 할 온갖 살림살이와 취미 생활의 도구,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격조 있는 음식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 붓과 벼루, 향로, 베개, 지팡이, 부채 같은 문방 도구와 생활용품을 어떻게 마련하고 다루어야 그 멋을 살릴 수 있는지에서 시작해, 차를 따고 끓이는 법, 산나물과 죽순 같은 소박한 음식의 맛, 그리고 끝으로는 음식을 대할 때 군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다섯 가지 성찰까지 두루 다룬다. 소박한 살림 속에서도 격조와 운치를 잃지 않으려 했던 옛사람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방과 살림의 격조
산속 생활에 필요한 것들. 경전과 베틀을 갖추어 두어 풍속을 가르치고 자손을 기르는 데 쓰고, 약과 의서를 갖추어 두어 삿된 것을 물리치고 병을 막는 데 쓰며, 좋은 붓과 종이를 갈무리해 두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데 쓰고, 맑은 술을 빚고 온갖 채소를 심어 손님을 대접하거나 혼자 술을 마실 때 쓴다.
또 해진 옷과 낡은 갓을 손질해 두었다가 눈 오고 바람 부는 날에 꺼내 입고, 아름다운 돌과 좋은 먹, 오래된 옥, 진기한 책 등을 모아 두어 긴긴 하루의 지루함을 달래며, 버들솜 베개와 갈대꽃 이불을 만들어 침상을 나란히 붙여 놓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데 쓰고, 얼굴이 누런 늙은 노인—석가여래를 이르던 말로, 여기서는 승려를 가리킨다—과 백발의 어부를 가까이하여 늙어 가는 근심과 세상사의 번거로움을 잊는다. 《암서유사》
두섬(당나라 사람)은 집에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모든 책 끝에 이런 발문을 써서 자손을 훈계했다.
"이 책들은 내가 녹봉을 받아 사들여 손수 교정한 것이니, 자손들이 이를 읽으면 성인의 도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팔거나 남에게 빌려주는 것은 모두 불효이다." 《태평광기》
문방구를 보기 좋고 취미에 맞게 꾸민다며 이를 시장처럼 늘어놓으면 오히려 그 멋을 잃고 만다. 이를 정돈하는 요령은 원굉도(호는 석공)가 병에 꽂은 꽃을 성글고 담박하게 두었던 것처럼 해야 비로소 우아한 멋이 산다. 《소창청기》
군후의 《화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림은 아무리 간직해도 상자를 가득 채우지 않고, 옮길 때도 소나 말이 땀을 흘릴 일이 없다. 밝은 창가와 정갈한 책상은 앉으나 누우나 편안한 느낌을 주고, 높은 대청과 흰 벽은 지루하거나 피곤한 느낌이 없다. 게다가 그 안에 사람과 짐승과 물고기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산천과 초목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로 환하게 눈앞에 펼쳐지니, 이 또한 풍류를 아는 이가 즐길 만한 취미의 하나이다." 《소창청기》
맑은 취미를 즐기는 일은 지나치게 애를 써서는 안 된다. 만약 옷차림은 반드시 기이하고 예스러운 것만을 찾고, 물건은 반드시 정교하고 좋은 것만을 구하며, 음식은 반드시 남다르게 맛있는 것만을 찾는다면, 이는 맑은 취미 가운데서도 오히려 탁한 일이 되니, 나는 이런 것들을 맑은 취미를 갉아먹는 좀이라고 생각한다. 《소창청기》
사공도가 중조산에 숨어 살 때 소나무 가지를 깎아 붓대를 만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숨어 사는 사람의 붓이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 《하씨어림》
붓을 보호하려면 유황을 탄 술로 붓끝을 풀어 주고, 종이를 보호하려면 부용꽃 가루로 종이에 윤을 내며, 벼루를 보호하려면 무늬 있는 비단 덮개를 씌우는데 이는 먼지를 막으려는 뜻이고, 먹을 보호하려면 표범 가죽 주머니에 넣어 두는데 이는 습기를 막으려는 뜻이다. 《소창청기》
사마광이 소식(자는 자첨)과 차와 먹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말했다.
"차와 먹, 이 두 가지는 성질이 정반대이다. 차는 흰 것을 좋게 치는데 먹은 검은 것을 좋게 치고, 차는 무거운 것을 좋게 치는데 먹은 가벼운 것을 좋게 치며, 차는 새것을 좋게 치는데 먹은 오래 묵은 것을 좋게 친다."
그러자 소식이 말했다.
"좋은 차와 뛰어난 먹은 둘 다 향기로우니 이는 그 덕이 같은 것이요, 둘 다 성질이 단단하니 이는 그 지조가 같은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어진 이와 군자가 지혜와 아름다움의 정도는 저마다 달라도 그 덕과 지조만은 한가지인 것과 같습니다."
사마광이 이 말을 매우 옳게 여겼다. 《소문충공집》
글 쓰는 선비와 벼루의 관계는 미인과 거울의 관계와 같아서, 평생 가장 가까이 두고 지낸다. 그래서 거울은 진나라 시절의 것을 으뜸으로 치고, 벼루는 송나라 시절 갱에서 나는 돌을 으뜸으로 친다. 《미공비급》
청천향병—어떤 사람이 예전에 구양수에게 이것을 선물한 일이 있는데, 청천은 지명이고 향병은 석탄으로 만든 향의 이름이다. 이것으로 향을 피우면 향병 하나로 하루 종일 피울 수 있다. 《미공비급》
왕희지는 정교하게 생긴 돌로 만든 붓걸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름을 "호반"이라 했고, 왕헌지(왕희지의 아들)는 얼룩무늬 대나무로 만든 붓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름을 "취종"이라 했다. 《소창청기》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는 데는 향로가 없어서는 안 된다. 숨어 산 지 오래되어 좋은 향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오래된 소나무와 잣나무의 뿌리, 가지, 잎, 열매 따위를 모아 빻고 단풍잎에서 낸 기름을 섞어 향을 만들어 심지 하나씩 태우는데, 이 역시 맑고 소박한 분위기를 내는 데 한몫을 한다. 《소창청기》
인주를 만드는 법은 옛날에는 아주까리 기름이나 삶아 낸 나무 기름을 썼는데 이 방법들은 모두 좋지 않았다. 근래에는 천산갑의 기름을 쓰는데, 이는 색이 번지지 않는 장점을 취한 것이다. 시험해 보니 참으로 좋았다. 《선화학고론》
시통과 아욱꽃 편지지—백거이(자는 낙천)와 원진(자는 미지)은 늘 시를 지어 대나무 통에 담아 서로 주고받았는데, 초록빛 대나무 통에 시를 담으니 윤이 나서 자못 멋스러웠다. 그 편지지 만드는 법은 이러하다. 이슬 맞은 접시꽃 잎을 따서 갈아 즙을 낸 뒤 베로 걸러 대나무 종이에 바르고, 약간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돌로 눌러 둔다. 허상의 시에,
해를 향해 기우는 그 빛깔은 담지 못했으니 임금을 그리는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 종이는 산속에서 쓰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아욱과 콩잎이 해를 향하는 그 마음까지 헤아리게 한다. 《소창청기》
잎사귀 모양 편지지—밀랍을 입힌 판을 갈아서 잎사귀 모양의 무늬를 만든 다음 가위로 오려 만드는데, 붉은색으로는 붉은 잎사귀 모양을, 초록색으로는 파초잎 모양을, 노란색으로는 작은 보리수잎 모양을 만든다. 산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짧은 시 한 수가 떠오르면 이 잎사귀 편지지에 써서 허공에 던져 바람에 날리거나, 배를 타고 가면서 물속에 던져 물결 따라 떴다 가라앉았다 하게 하면 절로 그윽한 정취가 인다. 《소창청기》
당나라 방천리의 대나무 방은, 집 사방에 빙 둘러 대나무를 심고 네 귀퉁이를 묶어서 곧게 선 것은 기둥으로, 옆으로 걸친 것은 서까래로 삼은 것이다. 왕우칭(자는 원지)의 대나무 누각도 대개 이를 본뜬 것이다. 《소창청기》
산속 서재에서 쓰는 도구들—가을에 단국화를 따다가 바둑판만 한 붉은 천 주머니에 담아 베개를 만들면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나쁜 욕심을 가라앉혀 준다. 또 버들솜 같은 부들꽃을 따다가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 뒤 네모진 푸른 주머니에 담아 방석이나 요를 만들면, 햇볕을 잘 흡수해서 솜보다도 따뜻하다. 굽은 소나무 가지로는 등을 기대는 굽은 안석을 만드는데 이를 "양화"라 부른다. 《소창청기》
돌베개는 송나라 시절의 흰 자기석으로 만든 것이 좋은데, 대부분 무덤에서 나온 것이라 쓸 수가 없으므로 자석으로 만들어 쓴다. 만약 큰 자석 덩어리가 없으면 작은 것을 다듬어 베개의 윗면만 만들고 아래는 나무를 붙여 쓰는데, 이렇게 하면 눈이 밝아진다. 눈을 밝게 하는 데는 자석만 한 것이 없으니, 자석으로 오목한 베개를 만들어 쓰면 늙도록 눈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영왕의 궁중에서도 이것을 썼다. 《소창청기》
육유(자는 무관)는 이렇게 말했다.
"행각승이 짚는 지팡이는 얼룩무늬 대나무로 만든 것이 으뜸이다. 대나무는 늙고 가늘면서 단단한 것이 좋고, 얼룩무늬는 옅은 붉은빛에 점이 드문드문 박힌 것이 좋다."
가도(별호는 장강)의 시에는,
숲 속에서 가장 가는 가지를 골랐으니 돌 위에 뿌리내려 더디게 자랐구나 방울방울 스민 자국에 점이 드문 것을 싫어하지 말라 순임금의 두 왕비가 눈물이 다할 때의 모습과 흡사하니
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는 지팡이를 잘 표현한 말이다. 여기서 말한 두 왕비란 순임금의 왕비 아황과 여영을 가리키는데, 순임금이 죽자 두 사람이 슬피 울어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스며 검은 반점이 되었고, 훗날 상수에 몸을 던져 강의 신이 되었다는 옛이야기 속의 인물들이다. 내게 이런 성벽이 없었다면 이 뜻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미공비급》
도사의 옷은 베로 지은 것이 좋은데, 그중에서도 흰색이 좋다. 이는 참선할 때나 말을 탈 때, 눈길을 걸을 때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다. 도사의 부채는 종이를 풀로 붙여 만든 것도 있고 대쪽을 엮어 만든 것도 있다. 옛날에는 거위 깃털로 만든 부채도 있었으니, 곧 새의 깃으로 만든 부채인 셈이다. 《소창청기》
대나무 지팡이는 글자무늬가 있는 대나무, 각진 대나무, 오래된 대나무를 다듬어 만든 것이 우아하다. 오래 묵은 등나무나 명아주로 만든 것은 늙은 승려가 나들이할 때 쓰는 도구이다. 《소창청기》
정경은 갈대로 자리를 엮어 늘 갯버들 그늘을 찾아다녔다. 《소창청기》
부들꽃 요—9월에 부들을 베어다가 살짝 쪄서 말린 뒤, 버들솜 같은 꽃을 따다가 요나 방석을 만드는데, 모두 성긴 베로 주머니를 지어 만든다. 《소창청기》
기댐주머니—평상 위에 두 개의 둔덕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푸른 꽃과 흰 꽃을 섞어 깔아 만드는데 높이는 한 자 남짓이다. 속에는 솜을 채워 완전히 꿰매고, 그 곁에 끈 두 개를 매달아 손잡이로 삼는다. 평상에서 졸다가 일어나 두 팔꿈치를 이 둔덕에 기대고 잠시 앉아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만드는 법이다. 《소창청기》
갈대꽃 이불—늦가을의 갈대꽃을 베어다가 베 이불 속에 넣어 만드는데, 옥빛 베나 난초무늬 베로 짓는다. 그 위에 호랑나비를 그린 천으로 덮개를 씌운다. 첫추위에 이 이불을 덮으면 그다지 춥지 않다. 다만 북쪽 지방에서는 쓸 수 없으니, 그 맑고 우아한 멋을 취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소창청기》
종이 휘장—등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나 고치실로 뜬 종이를 단단하게 얽어 물결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든다. 이때는 풀을 쓰지 않고 접어서 실로 꿰매며, 윗부분은 성긴 베로 만들어 바람이 통하게 한다. 《소창청기》
먼지떨이—예전에는 붉은 자루가 달린 먼지떨이가 있었으나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다. 저절로 자란 대나무가 영지버섯이나 등긁이처럼 생긴 것을 깎아 자루로 삼으면 매우 우아하다. 이 먼지떨이는 원래 얼룩소의 긴 꼬리털을 묶어 자루를 달아 만들어, 먼지를 털거나 파리를 쫓는 데 쓰던 승려의 도구였다. 요즘 만드는 털이개는 말갈기를 길게 잘라 만든다. 《소창청기》
기댐 평상—등나무와 대나무를 엮어 만든다. 술을 마시고 누워 책을 보거나 꽃 아래 누워 감상할 때 쓰면 좋다. 《소창청기》
대나무 평상—얼룩무늬 대나무로 만든다. 세 면이 막혀 있고 다리는 없다. 높다란 서재에 놓아두고 낮잠 자기에 알맞다. 《소창청기》
상범은 손님을 대접할 때 옻칠하고 꽃을 그린 쟁반과 올챙이 모양 젓가락, 물고기 꼬리 모양 숟가락을 썼다. 《소창청기》
소박한 밥상의 운치
밥은 부드럽게 익혀 먹고 고기는 흐물흐물하게 푹 삶아 먹으며, 술은 늘 적게 마시고 밤에는 늘 혼자 자는 것이 옛사람들의 양생하는 오묘한 방법이었다. 나는 일찍이 이 뜻을 풀어 자리 오른쪽에 이렇게 써 두었다.
"부드러운 밥으로는 위를 기르고, 푹 삶은 고기로는 온몸을 기르고, 술을 적게 마셔 피를 기르고, 홀로 잠들어 정신을 기른다. 이것이 나날이 쓰는 오묘한 방법이며, 집에 머무는 이가 타고난 성품을 온전히 지키는 길이다." 《미공비급》
산속에서의 생활은 비록 뛰어나게 맛있는 것은 없지만 맑고 우아한 맛만은 자못 풍부하다. 나는 연 종류에서는 도톰히 살찐 열매와 뿌리의 단맛을 취하고, 마름 종류에서는 가시연밥의 따스한 맛과 마름 줄기를 얻으며, 나무 종류에서는 대나무의 운치와 줄풀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나물 종류에서는 순채의 향긋함과 아욱의 담박함과 토란의 매끄러움을 취한다. 또 계수나무로 기름을 짜고 국화를 심고 매실로 장을 담근다. 농어회와 포를 곁들여 놓고 농사일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거문고와 서화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편히 누워 태평한 세상을 즐기니, 높은 벼슬자리의 즐거움이 어찌 이보다 낫겠는가. 《미공비급》
소식은 이렇게 말했다.
"동주에서 나는 양고기를 푹 쪄서 살구 즙을 발라 먹는데, 숟가락으로 먹지 젓가락으로 먹지 않는다. 남도 지방의 발심면으로는 홰나무잎 냉국수를 만들고, 양읍에서 나는 새끼 돼지로 국을 끓이고, 공성에서 나는 좋은 쌀로 밥을 짓고, 거위알을 찌며, 오흥의 요리사가 송강에서 나는 농어로 회를 쳐서 가져오면 배불리 먹는다. 그런 뒤 여산 강왕곡의 물로 증갱차의 상품을 달여 마신다. 잠시 후 옷을 벗고 편히 누워 사람을 시켜 나의 〈적벽부〉 전편과 후편을 외게 하면 더없이 즐거울 것이다." 《소문충공집》
검푸른 밥—버들잎이나 오동잎의 즙으로 지은 밥이다. 이를 먹으면 양기를 북돋아 준다고 하여 도가에서 귀하게 여긴다. 두보의 시에,
미끄럽기는 줄풀 열매로 지은 밥 같고 향긋한 맛은 비단 띠 나물국 같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말한 "비단 띠"는 꽃을 가리킨 것이다. 《소창청기》
방수는 6월에 연꽃을 찧어 초록빛 향기로운 술을 빚어 마셨다. 《소창청기》
당경(자는 자서)이 혜주에 있을 때 순한 술은 "양생주"라 부르고 독한 술은 "제물론"이라 불렀으며, 양만리(호는 성재)는 순한 술을 "금반로"라 부르고 독한 술을 "초화우"라 불렀다. 《소창청기》
차를 딸 때는 정성껏 골라야 하고, 차를 저장할 때는 바짝 말려야 하며, 차를 끓일 때는 정갈하게 해야 한다. 《소창청기》
황정견(호는 산곡, 소식의 제자)은 이렇게 말했다.
"차를 가려내는 법은 대나무를 가려내는 법과 같다. 살찐 것은 좋지 않고 여윈 것이 좋다. 다만 서리를 흠뻑 맞은 것이라야 한다." 《소창청기》
차를 끓일 때는 불을 너무 세게 하면 좋지 않으니, 세게 하면 맛이 지나치게 써진다. 그러므로 계곡물 소리나 솔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는 정도로 끓이는 것이 좋다. 또 차를 거를 때는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다. 병에 옮기고 불을 끈 뒤 물이 끓어오르던 것이 잠시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걸러야 알맞다. 《미공다동》
소식의 시에,
게 눈 같은 거품 지나가니 물고기 눈 같은 거품 이는구나
라는 구절이 있다. 차를 끓일 때 처음 일어나는 자잘한 거품을 게의 눈에, 한참 지나 굵어진 거품을 물고기의 눈에 빗댄 말이다. 《미공다동》
차의 여린 싹이 막 터져 나온 것을 "일창"이라 하고, 점점 자라 잎이 펼쳐진 것을 "기"라 한다. 그보다 더 자란 것은 쓸모가 없다. 《미공다동》
멀리서 풍기는 향기와 갓 딴 새 차는, 마땅히 큰 바가지로 시냇물을 길어다가 물가에 흩어진 삭정이를 주워 다리 없는 돌솥에 불을 지펴 끓여 마셔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신선 같은 운치를 즐기면서도 마음에 품은 뜻을 다 전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우니, 이는 그저 채마밭 가꾸는 즐거움 정도를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공다동》
백거이가 재계하고 있을 때 유우석이 술병이 났다. 유우석이 국화 순으로 만든 나물과 절인 무를 가져다주고, 백거이의 "육반차" 두 봉지와 바꾸어 마시고 나서야 술기운이 깨었다. 《하씨어림》
왕검이 주옹(남제의 학자로 《노자》와 《주역》을 좋아했다)에게 물었다.
"그대는 산속에 살면서 무엇을 드시오?"
주옹이 답했다.
"붉은 쌀과 흰 소금, 푸른 아욱과 자줏빛 여뀌를 먹습니다."
문혜태자가 다시 물었다.
"채소 반찬 중에서는 어느 것이 가장 맛있소?"
주옹이 답했다.
"이른 봄에는 일찍 나오는 부추가 맛있고, 늦여름에는 늦게 나는 배추가 맛있습니다." 《하씨어림》
죽순은 산속에서 사는 이에게 맑고 아득한 운치를 주니, 참으로 채소 가운데서도 빼어난 것이다. 이것으로 국을 끓이거나 포를 뜨면 오히려 그 본맛을 잃으니, 구워서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나는 술에 취하고 배가 불러 목이 타고 갈증이 날 때면 집사람을 시켜 이것을 구워 먹는데, 그 단맛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다음 송라차와 무이차를 달여 마시면 답답함이 확 풀린다. 《미공비급》
막 돋아난 나물잎이 조금 자란 것은 우유보다도 맛이 좋다. 비 내리는 썰렁한 밤에 아이를 시켜 이를 따다 무치고 술을 곁들여 놓은 채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그 맑고 향긋한 맛을 즐기면, 그 향이 가슴속 답답함을 말끔히 씻어 주니 굳이 여러 가지 것들로 속을 씻어 낼 필요가 있겠는가. 강동의 천리호에서 나는 순채국은 맛이 좋아 따로 간을 하지 않고 먹는다는데, 이에 견주면 이 나물이 조금 나을 뿐이다. 《미공비급》
소식은 이렇게 말했다.
"고구마로 걸쭉한 국을 끓이면 빛깔과 향과 맛이 모두 좋다. 하늘 위 신선들이 먹는다는 우유 음식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땅 위에는 결코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을 것이다." 《미공비급》
산속에서 살 때는 고비나 고사리가 없더라도, 매화로는 국을 끓여 먹을 만하고 무나 목련으로는 국수를 만들 수 있으며 모란으로는 우유를 달일 수 있고 장미와 산수유로는 장을 담글 수 있다. 구기자와 파, 박태기나무꽃, 등나무꽃으로는 반찬을 만들 수 있다. 그 밖에 콩꼬투리, 오이지, 나물 순, 솔꽃가루도 죽순을 대신할 만하니, 이 모든 것이 산에서 사는 사람의 반찬거리이다. 《미공비급》
음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마음가짐
옛 군자들은 음식을 대할 때 지켜야 할 가르침이 있어서, 지금도 《논어》 향당편과 《예기》 곡례편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요즘 사대부들은 음식을 대할 때 이를 잊고 지낸다. 그래서 이제 불교에서 행하는 방법을 간추려, 군자가 음식을 대할 때 마음에 새길 다섯 가지 성찰을 짓는다. 《이문광독》
첫째, 이 음식에 들어간 노력이 얼마나 되며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할 것.
이 음식은 땅을 일구고 씨를 심어 거두고 빻고 씻은 뒤 끓여서 만든 것이니 그 노력이 매우 많이 든 것인데, 하물며 살아 있는 것을 잡아 제 입맛만 즐기려 해서야 되겠는가. 한 사람이 먹는 것은 열 사람이 애쓴 결과이다. 벼슬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부모와 조상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이룬 것을 먹는 것이고, 설령 자기 재산으로 살아간다 해도 이 또한 조상이 남몰래 쌓은 덕을 입은 것이다. 벼슬하는 이라면 백성의 피와 땀을 먹는 셈이니 더 말할 것이 없다.
둘째, 자신의 덕행이 온전한지 아닌지를 헤아려서 이런 대접을 받을 것.
사람은 처음에는 어버이를 섬기고, 중간에는 임금을 섬기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뜻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잘 해낸 사람이라면 이런 대접을 받아도 좋지만, 여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마땅히 부끄러운 줄 알아서 맛있는 음식을 함부로 다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마음을 다잡아 지나친 욕심 같은 허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요점으로 삼을 것.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려면 먼저 세 가지 허물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좋은 음식을 탐내는 것, 나쁜 음식을 만나면 화를 내는 것, 온종일 먹으면서도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군자가 음식을 대할 때 배부르기만을 구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허물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넷째, 음식은 좋은 약이니 몸이 야위는 것을 막기 위해 먹는 것임을 알 것.
쌀과 보리, 조, 콩, 기장 같은 다섯 가지 곡식과 아욱, 콩잎, 염교, 파, 부추 같은 다섯 가지 나물로 사람을 기르고, 물고기와 고기로 노인을 봉양한다. 몸이 야위는 것은 굶주림과 목마름이 그 주된 원인이고, 그 밖의 사백네 가지 병—사람의 오장에 저마다 여든한 가지씩 병이 있어 모두 사백다섯 가지인데, 그 가운데 죽음 한 가지를 뺀 수라고 한다—은 모두 여기에 딸린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음식을 약으로 여기고 먹어서 몸을 지탱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늘 약을 먹는 마음으로 먹는다.
다섯째, 도를 이루기 위해 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생각할 것.
군자는 밥을 먹는 그 잠깐 사이에도 어진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먼저 정성스러운 몸가짐을 갖춘 뒤에야 음식을 먹는다. 《시경》 벌단편에서 "저 군자는 공짜로 밥을 먹지 않는구나"라고 한 것도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황정견(호는 산곡)은 이렇게 말했다.
"예법에서 음식 먹는 순서를 가르치는 것은 가르침의 곁가지일 뿐이고, 음식을 대할 때 이 다섯 가지 성찰을 지어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르침의 근본이다. 대개 요즘 사대부들은 옛 성왕의 귀감이 되는 말을 욀 때의 자기 모습과, 평소 지내며 음식을 먹을 때의 자기 모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가르침이 부득이 필요한 것이다. 군자에게는 늘 마음에 새겨야 할 아홉 가지 생각이 있다.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들을 때는 총명하게 들을 것을, 낯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몸가짐은 공손하게 할 것을,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일은 신중하게 할 것을, 의심나는 것은 물어볼 것을, 화가 날 때는 뒷일의 어려움을 생각할 것을, 이익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를 생각할 것을 새기는 것이니, 이는 평생토록 마음에 두라는 뜻이다. 음식을 대할 때 이 다섯 가지 성찰을 짓는 것 또한 평생토록 마음에 두라는 것이다. 날마다 이렇게 행하며 매번 어질고 지혜로운 마음만을 생각한다면, 저 서로 다르던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져 온전한 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한정록 제15권 · 섭생
출처: 한정록 제15권, 섭생
배경: 한정록은 허균이 직접 지은 책이 아니라, 명나라에 사신으로 오가면서 사 모은 수천 권의 중국 책 가운데서 세상을 등지고 한가로이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와 글을 뽑아 엮은 책이다. 은둔, 고일, 한적, 퇴휴, 유흥, 아치, 숭검, 임탄, 광회, 명훈, 정업, 현상, 청공 등 열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열다섯 번째 항목인 '섭생'은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모은 것이다. 앞선 권들이 주로 사람에 얽힌 일화였다면, 이 권은 도교의 양생서와 여러 문인들의 글에서 뽑은 호흡법·마음가짐·식습관·생활 습관에 관한 구체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각 이야기 끝에는 허균이 그 글을 뽑아 온 원래 책의 이름을 밝혀 두었다.
일러두기: 이 권에 실린 이야기는 허균이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중국 책에서 그대로 뽑아 온 것이므로, 이야기 끝에 적힌 책 이름은 허균이 인용한 원래의 출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도교 양생술 특유의 몸속 기운과 경혈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번역에서는 한자 없이 우리말로 풀어 쓰고 낯선 용어는 "(용어)" 항목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이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 기존 국역본을 참고하여, 그 뜻을 오늘의 쉬운 한글 문장으로 다시 옮긴 것이다.
정신은 맑음을, 마음은 고요함을 좋아한다
사람의 정신은 맑은 것을 좋아하는데 마음이 이를 흔들어 놓고, 마음은 고요함을 좋아하는데 욕심이 이를 유혹한다. 언제나 욕심만 버릴 수 있다면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지고, 마음만 맑게 지닐 수 있다면 정신도 저절로 맑아지는 법이다. — 《도서전집》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의 뿌리다
삶이란 죽음의 뿌리요 죽음이란 삶의 뿌리다. 은혜는 해로움에서 생기고 해로움은 은혜에서 생긴다. 마음이 요동치는 것만 없애야지 마음이 밝게 비추어 보는 것까지 없애서는 안 되며, 마음은 늘 비워 두고 한곳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 《도서전집》에서
태식 — 배꼽 아래로 숨 쉬는 법
서른여섯 번의 호흡 가운데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하니, 숨을 내쉴 때도 조용히 하고 들이쉴 때도 조용히 하며, 앉아 있을 때도 그렇게 하고 누워 있을 때도 그렇게 하며, 서 있을 때도 평온하게 하고 걸을 때도 평온하게 하며, 시끄러운 곳에는 가지 말고 비린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 이를 '태아처럼 숨 쉬는 법'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배꼽 아래 단전으로 숨 쉬는 것인데, 병이 낫는 것은 물론 목숨도 길어져서 오래오래 계속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 — 《도서전집》에서
(용어) 단전은 배꼽 아래 몸속 깊은 곳에 있다고 여겨지는, 생명의 기운이 모이는 자리를 가리키는 도교의 용어다.
식사 뒤의 명상
음식을 먹고 나서는 입을 다물고 똑바로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온갖 잡념을 다 잊고 정신을 가다듬은 뒤, 아무 물건도 보지 말고 아무 소리도 듣지 말고 정신을 몸 안으로 모아 지키면서, 숨을 고르게 조용히 들이쉬고 내쉬되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모를 정도로 끊이지 않게 이어 간다면, 자연히 심장의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고 신장의 서늘한 기운은 위로 올라와 입 속에 침이 생기고 참된 기운이 몸속에 자리하게 되어 오래 살 수 있게 된다. — 《도서전집》에서
욕심은 마음에서, 마음은 호흡에서 안정을 찾는다
욕심은 마음에서 일어나고, 마음은 호흡을 고르게 함에 따라 안정을 찾는다. 마음과 숨이 서로 의지하면 숨이 고르게 되고 마음도 안정을 찾게 된다. — 《도서전집》에서
눈, 귀, 마음을 함부로 쓰지 말라
눈으로 화려하게 꾸민 것만 보려 드는 사람은 시력이 더욱 상하고, 귀로 시끄러운 음악만 들으려 드는 사람은 청력이 더욱 상하고, 마음으로 심오하고 신비한 것만 좇는 사람은 마음이 더욱 상한다. — 《금단정리대전》에서
몸과 정신과 말, 이 세 가지를 지키면 성현이다
몸을 움직여 근육과 뼈를 단련하면 겉모습이 튼튼해지고, 욕심을 버리면 정신이 튼튼해지고, 말을 차분하게 하면 복이 갖추어진다. 이 세 가지만 지킬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을 일러 성현이라 한다. — 《금단정리대전》에서
몸 안의 세 보물, 몸 밖의 세 보물
정과 기운과 정신은 몸 안의 세 보물이고, 귀와 눈과 입은 몸 밖의 세 보물이다. 몸 안의 세 보물은 바깥 사물에 이끌려 흐려지지 않게 해야 하고, 몸 밖의 세 보물은 마음을 유혹하여 흔들리게 하지 않아야 한다. — 《금단정리대전》에서
(용어) 정, 기, 신은 도교에서 사람의 생명을 이루는 세 가지 근본 요소로 꼽는 것이다. 정은 몸을 이루는 근원적인 물질, 기운은 그것을 움직이는 힘, 정신은 그것을 다스리는 의식을 가리킨다.
영예와 치욕에 흔들리지 않으면 오장이 편안하다
영예와 치욕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간이 안정을 잃지 않고,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면 심장에 열이 오르지 않고, 음식을 절도 있게 먹으면 비장이 기운을 빼앗기지 않고, 숨을 고르게 쉬고 말을 적게 하면 폐가 손상을 입지 않고, 마음이 고요하여 욕심이 없으면 신장의 기운이 늘 넉넉하다. — 《금단정리대전》에서
(용어) 옛 동양 의학에서는 간, 심장, 비장, 폐, 신장 다섯 장기를 각각 나무·불·흙·쇠·물의 기운에 대응시켜 이해했다. 이 이야기는 그 다섯 장기가 저마다 어떤 마음가짐과 습관에 영향을 받는지를 말하고 있다.
잡념보다 무서운 것은 뒤늦은 깨달음
잡념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이 문제다. 잡념이 일어나는 것은 병이고, 그것이 이어지지 않게 막는 것은 약이다. — 《금단정리대전》에서
고요한 곳에서는 기운을, 시끄러운 곳에서는 정신을 단련하라
고요한 곳에서는 기운을 단련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정신을 단련한다. — 《금단정리대전》에서
욕심을 마음으로 붙잡으려 하면 욕심은 더 깊어진다
욕심을 없애고 마음을 맑게 하는 것도 결국 마음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마음을 가지고 욕심을 억지로 붙잡으려 들면 욕심은 오히려 더 깊어질 뿐이다. 다툼과 온갖 잡념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처방은 따로 전해지는 수련서에 실려 있다. — 《금단정리대전》에서
성냄을 삼가고 침으로 양치하라
너무 화를 내면 기운이 상하고,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정신이 상한다. 정신이 지치면 마음이 이리저리 부림을 당하고, 기운이 약해지면 온갖 병이 서로 침범한다.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말고, 음식은 언제나 고르게 먹어야 한다. 밤에 술 취하는 일을 거듭 삼가고, 새벽에 화내는 일을 가장 조심하라.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귓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입안에 고인 침으로 양치질하면 나쁜 기운이 몸에 덤벼들지 못하고 몸속의 기운이 저절로 가득 차게 된다.
모든 병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언제나 부추·마늘·자총이·평지·무릇 같은 자극적인 채소를 지나치게 먹지 않도록 삼가라. 정신을 편안히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며 기운을 아껴 온화하고 순수한 상태를 지켜라.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을 누가 정해진 운명이라 하는가. 그것을 가꾸는 일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그대가 이 이치를 잘 지킨다면 평범한 삶 속에서도 참된 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현관잡기》에서
(용어) 오신은 부추, 마늘, 자총이, 평지, 무릇 다섯 가지의 자극적인 향신료 채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마음은 정신의 집, 눈은 정신의 창
마음은 정신이 사는 집이고 눈은 정신이 내다보는 창문이다. 눈이 가는 곳으로 마음도 따라가므로, 몸 안을 다스리는 수련법에서는 눈으로 코끝을 보고 코는 배꼽을 향하게 하여 심장의 뜨거운 기운을 아래로 내려보내 기해로 들여보낸다. 이 공부는 그저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 《장자양집》에서
(용어) 기해는 배꼽 아래에 있다고 여겨지는, 몸의 정기가 모이는 자리를 가리키는 경혈 이름이다.
봄 연못의 물고기처럼, 겨울잠 자는 벌레처럼
고요함이 극에 달해 숨을 내쉴 때는 봄 연못의 물고기처럼 하고, 움직임이 극에 달해 숨을 들이쉴 때는 겨울잠 자는 벌레처럼 한다. 물고기가 봄기운을 받아 움직일 때는 그 움직임이 매우 가볍고, 벌레가 찬 기운을 피해 겨울잠을 잘 때는 그 잠이 흔적조차 없다. 호흡법을 익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 멈춤 없이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내쉴 때는 온몸 구석구석의 기운이 함께 빠져나오고 들이쉴 때는 온몸 구석구석의 기운이 함께 들어오게 해야 한다. 이렇게 오래 계속하면 그 속에서 참된 기운이 저절로 생겨난다. 몸을 다스리는 온갖 방법의 효험도, 수련의 강약을 조절하는 이치도 모두 이 참된 기운 속에서 찾는다면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 《주자전서》에서
마음에 애정도 분노도 없다면
요즘 사람들은 몸속의 정기가 모두 아래로만 흘러내리고 위로 올라가 발산되지 못해, 물의 기운과 불의 기운이 서로 등을 돌린 채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다. 이는 모두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에 참으로 애정이라는 것이 없다면 정기는 결코 아래로만 흘러내리지 않을 것이고, 마음에 참으로 분한 감정이 없다면 불기운이 위로 치솟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온갖 잡념이 말끔히 사라진다면, 물의 기운과 불의 기운은 저절로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 《도서전집》에서
눈, 코, 미려 — 정신과 기운과 정액이 드나드는 길
눈은 정신이 내다보는 창이요, 코는 정신이 드나드는 문이며, 미려는 정액이 흐르는 길이다. 사람이 보는 일이 많으면 정신이 소모되고, 숨쉬는 일에 무리가 많으면 기운이 빠지고, 욕심이 많으면 정액이 고갈된다. 그러므로 눈을 감아 정신을 기르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기운을 기르고, 몸의 아랫부분을 굳게 지켜 정액을 길러야 한다. 정액이 가득하면 기운에 여유가 생기고, 기운에 여유가 있으면 정신이 온전해지는데, 이 세 가지를 도가에서는 삼보라 부른다. — 《도서전집》에서
(용어) 미려는 꽁무니뼈 부근을 가리키는 도교 수련 용어다.
깨어 있으면 혼이 자라고, 잠들면 백이 자란다
깨어 있는 것은 양의 기운과 통하고, 잠자는 것은 음의 기운과 통한다. 깨어 있는 시간이 많으면 혼이 굳세어지고, 잠자는 시간이 길면 백이 굳세어지는데, 혼이 굳센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요 백이 굳센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름없는 무리다. 그러므로 몸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화락한 기운을 받아들이고 맛있는 음식은 절제하여 정신과 기운을 상쾌하게 하며, 밤낮으로 늘 깨어 있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오래 사는 방법이다. — 《도서전집》에서
(용어) 혼과 백은 옛사람들이 사람의 정신을 이루는 두 요소로 여긴 것이다. 혼은 양의 성질을 지닌 밝고 움직이는 기운, 백은 음의 성질을 지닌 무겁고 가라앉는 기운으로 여겨졌다.
세 늙은이의 장수 비결
성냄을 없애 성정을 기르고, 잡념을 줄여 정신을 기르고, 말을 적게 하여 기운을 기르고, 욕심을 없애 정액을 기른다.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저마다 백 살이 넘어 보이는 세 늙은이가 함께 김을 매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앞에 나아가 절을 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오래 살게 되었는지 거듭 물었다. 첫째 늙은이는 "우리 집 안방에 못생긴 마누라가 있어서다"라고 했고, 둘째 늙은이는 "저녁밥을 몇 숟가락씩 덜 먹어서다"라고 했고, 셋째 늙은이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머리를 이불로 덮지 않아서다"라고 했다. 이 세 늙은이의 말은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말로, 바로 그것이 그들이 오래 산 까닭이었다. — 《현관잡기》에서
말은 적게, 일은 적게, 밥은 적게, 잠은 적게
입으로는 말을 적게 하고, 마음으로는 일을 적게 생각하고, 뱃속에는 밥을 적게 채우고, 밤에는 잠을 적게 자라. 이 네 가지만 적게 할 수 있다면 신선도 될 수 있다. — 《현관잡기》에서
물고기가 물을 모르듯, 사람은 공기를 모른다
사람이 공기 속에 있는 것은 물고기가 물속에 있는 것과 같다. 물이 물고기를 기르고 있지만 물고기는 그것을 모르고, 공기가 사람을 기르고 있지만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기운을 기르려면 먼저 호흡을 고르게 다스려야 하는데, 그 방법은 이러하다. 먼저 참선하듯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가라앉히고, 눈으로 코끝을 보고 코는 배꼽을 향하게 하여 숨을 고르게 쉬되 급하게 몰아쉬지 않는다. 숨을 들이쉴 때는 기운이 아래에서 위로, 내쉴 때는 기운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하며, 한 번 오르고 한 번 내려갈 때마다 무리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듯 마는 듯 조금도 끊김 없이 이어 가면서, 다만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조금씩 조정해 나가면 된다. — 《수진비록》에서
두 눈에 담긴 오장의 정화
사람 몸의 원신은 언제나 눈에 깃들어 있고, 오장의 맑은 기운도 눈에 모여 있다. 그래서 도교의 옛 경전에서는 "생명의 기틀이 눈에 있다"라고 했고, 도가의 또 다른 경전에서는 "갖고 싶은 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몸속을 기르는 방법은 언제나 두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마음을 안으로 돌려 살피면서, 심장의 뜨거운 기운을 단전으로 끌어내리고 정신을 깊은 곳에 간직하여 밖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정신과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오래 사는 것을 기약할 수 있다. — 《수진비록》에서
(용어) 원신은 도교에서 사람의 생명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등잔불처럼 사라지고, 볍씨처럼 자란다
한 도인이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에게 보탬이 되는지도 모르고, 무엇이 자신을 해치는지도 모른다. 대체로 해가 되는 일은 알아차리기 쉽고 그 작용도 빠른 반면, 보탬이 되는 일은 알아차리기 어렵고 그 작용도 느리다. 그런데 알기 쉬운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하물며 알기 어려운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몸이 상하는 것은 등잔불이 기름을 태우듯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금세 사그라지고, 몸에 보탬이 되는 것은 볍씨를 뿌려 가꾸듯 눈에 띄지 않지만 어느새 무성해진다. 그러므로 몸을 가꾸고 성정을 기르는 일에서도 애써 작은 것부터 삼가야 한다. 작은 보탬이 별것 아니라고 여겨 닦지 않아서도 안 되고, 작은 손상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 막지 않아서도 안 된다. 작은 것이 쌓이면 큰 것이 되고, 하나가 사라지면 억 개도 사라지는 법이다. 이렇게 작은 것을 아끼면서도 남에게 티 나지 않게 잘 해낼 수 있다면, 그는 도를 아는 사람이다." — 《지비록》에서
정기와 혈액이 함께 도는 이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정기가 혈액과 짝을 이루고 있다. 혈액은 맥 속을 흐르고 정기는 맥 바깥을 흐르는데, 숨을 한 번 내쉴 때 맥이 서른 번 뛰고 한 번 들이쉴 때도 맥이 서른 번 뛰면서, 정기와 혈액이 함께 온몸을 돌아 뼛속까지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끊임없이 돌고 돌아 조금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묘한 이치다. 혈액은 몸의 영양이 되고 정기는 몸을 지키는 힘이 된다. — 《수진비록》에서
임맥과 독맥, 몸속의 자오선
임맥은 아랫배 깊은 곳의 한 경혈에서 시작하여 사타구니 위쪽으로 올라와 뱃속을 지나 배꼽 아래 관원혈을 거쳐 목구멍까지 이르는데, 몸속 음의 기운이 모이는 바다에 해당한다. 독맥은 꽁무니뼈 끝의 한 경혈에서 시작하여 등뼈를 타고 올라가 뒷목의 경혈에 이르러 뇌로 들어갔다가, 정수리를 지나 이마를 돌아 콧등에 이르는데, 몸속 양의 기운이 모이는 바다에 해당한다. 임맥과 독맥은 한 곳에서 시작하여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독맥은 회음혈을 거쳐 등 쪽으로 올라가고 임맥은 회양혈을 거쳐 배 쪽으로 올라간다. 사람의 몸에 이 두 맥이 있는 것은 마치 하늘과 땅에 자오선이 있는 것과 같다.
도교의 경전에는 "내 마음속에는 하늘의 길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으니, 밤낮으로 그 길을 따르면 늙지 않고 오래 산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길이란 바로 내 몸속에 있는, 해가 다니는 길과 같은 것으로 모든 움직임이 비롯되는 근본이며, 다름 아닌 임맥과 독맥을 가리킨 것이다. — 《수진비록》에서
(용어) 임맥과 독맥은 한의학에서 몸을 순환하는 여러 경락 가운데 특히 중요하게 꼽히는 두 갈래 경락으로, 몸의 앞쪽 정중선을 흐르는 것이 임맥, 뒤쪽 정중선을 흐르는 것이 독맥이다.
몸을 지키는 근본은 원기
의학 서적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이 몸을 놓고 볼 때 무엇보다 먼저 보호해야 할 것은 원기다. 원기를 잘 가꾸고 지키는 방법은, 아무리 편안한 상태에 있더라도 위태로운 순간이 올 것을 미리 생각하여 늘 삼가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약을 쓰는 일에서도, 참된 기운을 북돋우는 약은 적고 오히려 온화한 기운을 갉아먹는 약이 많은 경우가 흔하니, 약을 잘 챙겨 먹는 것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잘 닦는 것만 못하다." — 《수진비록》에서
명도 선생 — 성냄을 빨리 잊는 것이 도의 절반
명도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감정 가운데 가장 쉽게 터지면서도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성냄이다. 화가 났을 때 그 노여움을 빨리 잊고 사리의 옳고 그름을 살필 수 있다면, 바깥일이 나를 유혹하는 것이 그리 미워할 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니, 그런 사람이라면 도에 있어서도 이미 절반 이상 올라선 사람이라 할 만하다." — 《하남사설》에서
(용어) 명도 선생은 송나라의 유학자 정호를 가리키는 호다.
문원공 조형 — 운명이 나를 어찌하랴
양생술에 능했던 문원공 조형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전부터 백낙천의 글이 탁 트이고 활달하여 읽는 이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을 좋아해 왔다. 그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운명을 내 어찌하랴, 죽을 때까지 순리대로 따르리라 운명이 나를 어찌하랴, 내 마음은 텅 빈 허공과 같으니
이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하늘의 조화나 은밀한 화복으로도 그 마음을 흔들지 못할 것이니,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야 그의 마음에 걸릴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 《법장쇄금록》에서
(용어) 백낙천은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를 가리키는 자다.
유공도 — 기운을 기쁨과 분노에 쓰지 않는다
유공도는 몸을 잘 다스려 나이 여든에도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사람들이 그 비결을 물으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 "나에게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다만 원기를 기뻐하거나 화내는 일에 함부로 쓰지 않았더니, 배꼽 아래 기해가 언제나 따뜻하다." — 《지비록》에서
진원방 — 음식의 해가 여색보다 심하다
진원방이 이렇게 말했다. "온갖 병과 일찍 죽는 일이 대부분 음식 때문에 일어나는데, 음식으로 인한 해로움이 여색으로 인한 해로움보다 심하다. 여색은 일 년 넘게도 끊을 수 있지만 음식은 하루도 끊을 수 없으니, 음식이 몸에 이로운 점도 많지만 해로운 점 또한 매우 많은 것이다." — 《지비록》에서
(용어) 진원방은 후한 시대 사람 진기의 자다.
옥화자 — 담박한 맛이 오장을 편안케 한다
옥화자가 이렇게 말했다. "음식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니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요점은 담박한 맛을 취하고 기름지고 살찐 음식은 피하며, 지나치게 구운 것을 삼가고 살생한 것을 멀리하며, 비린내 나는 것을 멀리하는 데 있다. 이렇게 음식을 잘 조절하여 오장육부에 맑은 기운이 통하고 속이 조화를 이루어 막힘없이 흐르게 하면서, 늘 알맞게 먹었다는 느낌을 유지한다면 정신이 제자리를 지켜 몸속 기운의 오르내림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 《수양총서》에서
(용어) 옥화자는 전설 속 선녀의 이름으로, 일명 자양선자라고도 하며 구슬 쟁반에 받은 이슬로 신선의 약을 만들어 먹었다고 전한다.
동파거사 — 세 가지 절제로 복을 기르다
동파거사가 황주에 있을 때 이렇게 썼다. "오늘부터는 아침저녁 밥상에 고기 한 점을 넘지 않도록 할 것이며, 귀한 손님을 맞을 때라도 세 번까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결코 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초대할 사람에게도 미리 이렇게 알려 둔다. 이렇게 하는 데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분수에 맞게 복을 기르는 것이요, 둘째는 위장을 편안하게 하여 기운을 기르는 것이요, 셋째는 씀씀이를 아껴 재산을 불리는 것이다." — 《공여일록》에서
(용어) 동파거사는 송나라의 문인 소식의 호다.
두 노인의 밥상머리 지혜
내 고향에 나이 아흔이 넘었는데도 기운이 소년 못지않은 노인이 있어 음식 먹는 법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충분히 씹은 뒤 침과 함께 천천히 삼켜야 양분이 비장으로 들어가 얼굴에 화색이 돈다. 거칠게 씹어 삼키면 그 모두가 찌꺼기가 되어 창자만 메울 뿐이다."
또 다른 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평생 음식을 대할 때 늘 절반만 먹고, '아직 여유가 있으니 다 비우지 말자'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사람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복이 다하면 죽는 것인데, 닥치는 대로 마구 먹는 사람이 머리 희도록 오래 사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내 생각에도 이 노인의 말대로만 한다면 뱃속이 늘 편안할 것이니, 이 또한 몸을 잘 다스리는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 《서호유람지》에서
팽조, 소녀, 사상채가 말하는 절제
팽조가 말하기를, "한 달에 두 번, 한 해에 스물네 번 정을 배설하는 것, 이것이 절제하고 삼가는 도리다"라고 했다. 소녀는 "사람이 예순이 되면 더는 정을 배설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죽음을 만회하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사상채는 "자식을 둔 뒤로는 한 방울도 함부로 배설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생명의 이치에 통달하고 본성을 기르는 도리다. 그래서 옛말에 '뜻이 높은 선비는 잠자리를 따로 쓰고, 그다음가는 선비는 이불을 따로 쓴다'라고 했으니, 천 봉지의 약을 먹는 것이 혼자 자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 《지비록》에서
(용어) 팽조는 아주 오래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로, 본명은 전갱이다. 소녀는 옛 중국의 전설 속 여성 의술가로, 그 이름을 딴 의학서가 전한다. 사상채는 송나라의 학자 사양좌를 가리키는 호다. 이 대목은 성생활의 절제가 건강과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옛 양생서의 관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낙경도 — 동지와 하지에는 욕심을 절제하라
《자경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관중 땅의 은사 낙경도가 늘 말하기를, '몸을 닦는 선비는 마땅히 절기를 적은 달력을 옆에 두고, 하지에는 욕심을 절제하고 동지에도 욕심을 절제해야 한다'라고 했다. 대체로 하나의 양기 혹은 음기가 처음 생겨날 때는 그 기운이 몹시 미약하여, 마치 새싹이 막 돋아날 때 쉽게 상하는 것과 같으므로 아예 욕심을 끊어야지 적당히 조절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욕심이라는 것은 사철 내내 사람을 상하게 하지만, 특히 동지와 하지는 음과 양이 팽팽히 맞서 다투는 시기이므로 사람을 더욱 크게 상하게 한다." — 《지비록》에서
팽조 — 하늘과 사람과 땅이 꺼리는 것들
팽조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없어지고 생겨나는지 그 사정을 몰라서는 안 된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 거센 바람과 비와 눈, 일식과 월식, 지진, 천둥과 번개는 하늘이 꺼리는 것이요, 만취와 과식, 지나친 기쁨과 노여움, 근심과 슬픔과 두려움은 사람이 꺼리는 것이요, 산신과 물의 신, 사직단, 우물과 부뚜막이 있는 자리는 땅이 꺼리는 것이니, 이런 때와 장소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 《지비록》에서
생활과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면
《참찬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생활을 규칙 있게 하지 않거나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면 음의 기운이 해를 입어 오장으로 들어가고, 해로운 바람과 텅 빈 틈을 파고드는 삿된 기운은 양의 기운이 받아들여 육부로 들어간다." — 《후생훈찬》에서
(용어) 오장은 간·심장·비장·폐·신장을, 육부는 담·소장·위·대장·방광·삼초를 가리키는 한의학 용어다.
오래 하면 상하는 것들
오래 뚫어지게 보면 심장이 상하고, 오래 귀 기울여 들으면 신장이 상하고, 오래 걸으면 근육이 상하고, 오래 서 있으면 뼈가 상하고, 오래 앉아 있으면 살이 상하고, 오래 누워 있으면 기운이 상한다. 말을 많이 하면 폐가 상하고, 지나치게 웃으면 오장이 상한다. — 《후생훈찬》에서
천은자 — 편안한 곳이란 밝기가 알맞은 곳
천은자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편안한 곳이라 하는가. 화려한 집과 깊숙한 방에 겹겹이 깔린 요와 넓은 침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남쪽을 향해 앉고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며, 밝고 어두움이 알맞게 갖춰진 곳이 바로 편안한 곳이다. 집이 높은 곳에 있으면 양의 기운이 성하여 밝음이 지나치고, 집이 낮은 곳에 있으면 음의 기운이 성하여 어두움이 지나치다. 밝음이 지나치면 백이 상하고 어두움이 지나치면 혼이 상한다. 사람의 혼은 양에 속하고 백은 음에 속하는데, 지나친 밝음과 어두움에 상하면 병이 생기게 된다." — 《후생훈찬》에서
자고 나서 말하지 않는 습관
잠들 때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장은 매달아 놓은 경쇠와 같아서, 매달지 않으면 소리가 울리지 않는 법이다. — 《수양총서》에서
잠자리에서 침묵하면 기운이 새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어 말하지 않는 것을 습관으로 삼으면 기운을 잃지 않고 삿된 기운도 침입하지 못한다. — 《수양총서》에서
불 켜 둔 채 자면 혼백이 불안하다
등불을 켜 둔 채 잠자리에 들면 정신과 혼백이 불안해진다. — 《수양총서》에서
발을 씻고 자면 냉병이 없어진다
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면 팔다리에 냉병이 생기지 않는다. — 《수양총서》에서
바람이 새는 자리는 급히 피하라
앉거나 누운 자리에 바람이 새어 드는 틈이 있으면 급히 자리를 피해야 하니, 몸이 약한 사람이나 노인에게는 더욱 해롭다. 집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갑자기 거센 바람과 폭우, 번개와 천둥, 짙은 안개를 만나면 이는 모두 용이나 귀신이 지나가는 것이라 여겨,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아 그 기운을 피한 뒤에 나와야 한다. 여름에 갑자기 몹시 추워지거나 겨울에 갑자기 몹시 더워지는 것도 모두 피해야 하니, 철 따라 도는 병이 대부분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몸이 몹시 얼었을 때 뜨거운 물을 끼얹지 말고, 몹시 더울 때 갑자기 찬물을 쓰지 말아야 하니 그 해로움이 적지 않다. 대소변을 볼 때는 이와 입을 꼭 다물고 눈은 위를 향한 채로 하여 기운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 《수양총서》에서
머리는 자주 빗고, 얼굴은 자주 문지르고
머리는 자주 빗질하는 것이 좋고, 손으로는 얼굴을 자주 문지르는 것이 좋고, 이는 자주 마주치는 것이 좋고, 입안에 고인 침은 자주 삼키는 것이 좋다. — 《수양총서》에서
용천혈 마찰 — 구양수도 효험을 본 방법
두 발바닥의 용천혈을 한 손으로는 발을 받쳐 들고 한 손으로 백스무 번씩 문지르면 몸속에 쌓인 풍습이 가시고 다리 힘이 튼튼해진다. 문충공 구양수도 이 방법을 써서 큰 효험을 보았다. — 《수양총서》에서
(용어) 용천혈은 발바닥 한가운데 오목한 곳에 있는 경혈로, 몸속 기운이 시작되는 자리로 여겨진다. 문충공 구양수는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를 가리킨다.
문언박 — 외물에 마음의 조화를 상하지 않게 할 뿐
벼슬에서 물러나 낙양으로 돌아온 노공 문언박이 황제를 뵈었는데, 그때 나이가 여든이었다. 신종 황제가 그의 건강함을 보고 물었다. "경에게는 몸을 다스리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문언박이 답했다.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신은 다만 마음이 가는 대로 편안히 살아 바깥일로 마음의 조화를 해치지 않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애써 하지 않고, 적당히 흡족하고 좋은 순간에 곧 멈출 뿐입니다." 황제는 이를 명언이라 칭찬했다. — 《저기실》에서
하늘과 땅의 한가운데, 사람 몸의 한가운데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는 팔만 사천 리다. 하늘에서 삼만 육천 리를 내려오면 서른여섯 갈래의 양의 기운에 해당하고, 땅에서 삼만 육천 리를 올라가면 서른여섯 갈래의 음의 기운에 해당한다. 하늘 쪽 서른여섯과 땅 쪽 서른여섯의 한가운데, 그 만 이천 리가 바로 음과 양이 만나는 자리요 하늘과 땅의 한복판이다.
사람의 몸에서 심장과 신장 사이의 거리는 여덟 치 네 푼인데, 심장 아래로 세 치 여섯 푼은 양에 해당하고 신장 위로 세 치 여섯 푼은 음에 해당하며, 그 한가운데 한 치 두 푼이 바로 물의 기운과 불의 기운이 만나는 자리요 사람 몸의 한복판이다. 이곳은 고요하고 텅 비어 그 속에 깊고 그윽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으니, 곧 원신이 깃들어 사는 참된 자리다. 이 자리는 밖으로 두 눈과 서로 통하기 때문에 눈을 일러 몸 밖으로 열린 자리라고도 한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정신이 그 안에 있으므로 눈빛이 밝고, 사람이 죽으면 정신이 떠나므로 눈빛이 사라지는데, 사람들은 날마다 이 정신을 쓰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이 한 자리는 하늘과 땅에 견주어도 그 크기를 다 비유할 수 없고 해와 달에 견주어도 그 밝음을 다 비유할 수 없으니, 만약 이 이치를 참으로 깨닫는다면 황하의 물로도 우유를 만들 수 있고 대지를 변화시켜 황금을 만들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이 신령함을 보게 되면 기운이 맑아지고, 기운이 맑아지면 욕심이 줄어들고, 욕심이 줄어들면 타고난 성품과 목숨이 바로 서고, 성품과 목숨이 바로 서면 감정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감정에 얽매이지 않으면 마음조차 사라진다. 그리하여 마음이 사라지면 정신이 비로소 온전히 살아나고, 정신이 온전해지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한가로워진다. — 《사우재총설》에서
새벽 수련법 — 이를 마주치고 침을 삼키다
눈을 감고 조용한 마음으로 앉아, 두 주먹을 가만히 쥐고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힌 채 이를 서른여섯 번 마주친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좌우로 귓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스물네 번 낸 다음 그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다음에는 조용히 목뼈를 흔들면서 혀로 서른여섯 번 침샘을 자극하여 입안 가득 침이 고이면 세 번에 나누어 삼킨다. 이렇게 하면 몸속의 물 기운은 잘 운행되고 불 기운은 저절로 고루 퍼진다. 숨을 멈추고 손등을 문질러 뜨겁게 한 다음, 아랫배가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숨이 다할 때까지 그 열기로 아랫배를 문지른다.
좌우로 몸을 흔들며 두 다리를 쭉 뻗는다. 두 손을 엇갈려 잡고 허공을 두 번 치듯 하며, 머리를 숙이고 발가락을 바깥쪽으로 자주 젖힌다. 그런 다음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해서 두 번 우물거리고 삼킨다.
이 과정을 세 번 되풀이하여 침을 아홉 번 삼킨다. 삼킬 때는 꼴꼴 소리가 나도록 하는데, 이렇게 하면 온몸의 맥이 저절로 조화를 이룬다. 침을 다 삼키고 나서는 마치 불길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느낌을 떠올린다. 이렇게 하면 삿된 기운이 감히 몸을 해치지 못하고, 꿈속에서도 정신이 흐려지지 않으며, 추위와 더위도 침범하지 못하고, 재앙과 병도 머물지 못한다. 이 수련은 자정이 지난 뒤와 정오가 되기 전에 하는 것이 좋으니, 그리하면 몸의 기운이 하늘과 땅의 조화와 하나가 될 것이다. 순서를 돌아가며 차례로 행하라. 여덟 방위의 이치가 본래 그런 차례를 이루고 있다. — 《현관잡설》에서
유궤 — 술을 마셔도 입을 씻으면 치아가 상하지 않는다
낙양 사람 유궤는 나이 일흔이 넘었는데도 정신이 쇠하지 않고 몸에 병이 없이 건강하였으며 술도 굉장히 잘 마셨다. 평소 그가 몸을 잘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 비결을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방중 수련으로 몸을 보하는 방법이 있는데, 자네에게 일러 주고 싶네." 내가 "지금 하찮은 벼슬자리에 매여 있고 집에는 어린 딸아이뿐인데 그것을 어디에 쓰겠소" 하였다.
그러나 유궤를 가만히 살펴보니, 술을 한 잔 마실 때마다 꼭 한 번씩 입을 씻었는데 아무리 취해도 그것만은 잊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치아에 탈이 없었고, 저녁에는 무엇이든 아주 조금만 먹었다. 유궤의 사위 진영이라는 사람이 그 수련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외신을 따뜻하게 하는 것, 그뿐입니다." 그 방법은 두 손으로 아랫도리를 감싸 쥐어 따뜻하게 한 채 묵묵히 앉아 숨을 고르는 것을 천 번에 이르도록 계속하면, 두 고환이 진흙처럼 부드럽게 풀려 허리 사이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 방법이 매우 신묘하다고 한다. — 《저기실》에서
(용어) 외신은 남성의 생식기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이 대목은 도교의 양생술에서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여 건강을 지키는 방법으로 전해 오던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회회교의 보양법 — 아랫도리를 차게 하지 말라
회회교를 믿는 사람들이 몸을 잘 보양하는 데는 특별한 다른 방법이 없고, 오직 아랫도리를 따뜻하게 하여 찬 기운이 닿지 않게 할 뿐이다. 그들은 남쪽 지방 사람들이 여름철에 베로 만든 홑바지를 입는 것을 보고 매우 잘못된 일이라 여기며, 찬 기운이 아랫도리를 상하게 할까 두려워한다고 했다.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는 마땅히 손으로 감싸 쥐어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의 근본이니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참으로 일리가 있다. — 《사우재총설》에서
(용어) 회회교는 이슬람교를 가리키는 옛 중국식 명칭이다.
진서림 — 신유혈을 문지르는 비결
진서림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약재를 관리하는 벼슬을 맡고 있을 때 동료들이 나에게 여든여덟 살 생일잔치를 열어 주겠다고 청한 일이 있었다. 그때 고향 사람 장성지가 관청의 벼슬아치로서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겨울 추위가 매서운 때라 두세 시간 사이에 소변을 보러 두 번이나 일어나니, 그가 '어찌 그리 자주 가는가?' 하고 물었다. 내가 '날이 추우면 자연히 이렇게 된다'라고 답했더니, 장씨가 '나는 겨울이든 여름이든 아침저녁 두 번이면 족하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무슨 몸을 다스리는 비법이라도 있는가?'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기에, '조만간 배우고 싶다'라고 하며 틈을 내어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다.
그가 구두로 일러 주기를, '내가 처음 이 문정공의 사위가 되었을 때, 처남 되는 소년이 어떤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라며 나에게 이 짧은 비결을 가르쳐 주었네' 하며 이렇게 전해 주었다. '잠자리에 들 때 침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내리고 옷을 느슨히 한다. 숨을 멈추고 혀는 윗잇몸에 붙이고 눈은 이마 쪽을 올려다보며 항문을 지그시 조인 채, 손으로 등허리의 신유혈 두 곳을 각각 백스무 번씩 문지르는데 많이 할수록 좋다. 이것을 마치면 눕는다.' 이렇게 서른 해를 계속하니 매우 큰 효험을 얻었다고 하기에, 돌아가 노인께 말씀드렸더니 노인이 열흘을 시험해 보시고는 '정말 신묘하다' 하셨다. 이 방법을 독실히 믿는 몇몇 벗들에게 말해 주었더니 모두 효험을 보았다고 하며, 수련하는 이들에게 널리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 《저기실》에서
(용어) 신유혈은 등허리, 척추 양옆에 있는 경혈로 신장의 기운과 통한다고 여겨지는 자리다.
동파, 구양수, 왕정국의 발바닥 마찰법
동파가 이렇게 말했다. "양주에 무관 시진이라는 이가 있는데, 남방의 두 지역에서 십여 년 벼슬살이를 하였으면서도 끝내 그 지방의 풍토병에 걸리지 않았고, 안색은 불그레하니 윤기가 돌았으며 허리와 다리도 가벼웠다. 그는 애초에 약을 먹지 않았고, 다만 매일 새벽마다 일어나 앉아 두 발을 마주 대고 뜨거워져 땀이 날 때까지 용천혈을 문질렀을 뿐이다.
문충공 구양수는 평생 신선이나 불교의 가르침을 믿지 않았고 남들이 기운을 다스리는 수련을 하는 것도 비웃던 사람이었는데, 만년에 이렇게 말했다. '몇 해 전부터 발에 종기가 나서 참을 수 없이 아팠는데, 어떤 사람이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주기에 사흘을 해 보았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아 있었다. 그 방법은 이러하다.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눈을 감고 주먹을 꼭 쥐며 항문을 조인 채 몸을 좌우로 흔들고, 두 다리는 공을 굴리듯 움직이다가 힘이 다하면 쉬고 기운이 회복되면 다시 하되, 이레를 계속하고 여드레째는 쉬었다.' 이것이 바로 가장 손쉽게 기운을 돌리는 방법이다. 구양수는 아픔이 가시자 곧 그만두었지만, 만약 계속했더라면 훨씬 더 큰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또 왕정국의 편지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발바닥을 문지르는 방법은 내가 이미 스스로 행하고 있으니, 다시 바라는 것은 공부를 더하여 그치지 않고 계속하며, 매일 술을 조금씩만 마시고 음식을 절제하여 위장의 기운을 늘 튼튼하게 지키는 것뿐이다.'" — 《저기실》에서
오관을 다스리는 법 — 다섯 감각이 곧 다섯 함정
욕망을 다스리려면 먼저 오관을 단속해야 한다. 오관이란 욕망이 드나드는 길이요 온갖 기호가 쌓이는 창고다. 눈은 아름다운 빛깔을 좋아하니 이를 두고 생명을 해치는 도끼라 하고, 귀는 음란한 소리를 즐기니 이를 두고 마음을 공격하는 북이라 하고, 입은 맛있는 음식을 탐하니 이를 두고 창자를 썩게 하는 약이라 하고, 코는 향기를 좋아하니 이를 두고 목구멍을 그을리는 연기라 하고, 몸은 수레와 말의 편안함을 좋아하니 이를 두고 화를 부르는 도구라 한다. 이 다섯 가지는 몸을 잘 기르는 길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몸을 해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 《후생훈찬》에서
광자원 — 늙은 승려가 가르쳐 준 세 가지 망상
동료 광자원은 한림원에서 지방으로 좌천된 지 십여 년이 되도록 다시 부름을 받지 못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마음의 병을 얻어, 병이 도질 때마다 갑자기 정신이 흐릿해져 꿈속을 헤매는 듯했고 때로는 헛소리까지 했다.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진공사라는 절에 한 노승이 있는데, 부적도 약도 쓰지 않고 마음의 병을 잘 고친다더군요." 광자원이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니 노승이 이렇게 말했다.
"상공의 병은 번뇌에서 생긴 것이고, 번뇌는 망상에서 생긴 것입니다. 대체로 망상이 일어나는 데는 세 가지 갈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십 년 전의 영광과 치욕, 은혜와 원한,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 그리고 부질없는 그리움 같은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니 이것을 과거의 망상이라 합니다. 둘은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순리대로 따르면 될 것을, 앞뒤를 두려워하며 몇 번이고 망설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지금의 망상이라 합니다. 셋은 훗날의 부귀영화가 모두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거나,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친 뒤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거나, 자손이 벼슬길에 올라 가문의 명예를 이어 가기를 바라는 것, 그 밖에 이루어질지 말지 알 수 없는 온갖 일을 미리 바라는 것이니 이것을 다가올 망상이라 합니다. 이 세 가지 망상이 문득 일어났다가 문득 사라지는 것을 선가에서는 헛된 마음이라 하고, 그 헛됨을 환히 꿰뚫어 보고 마음에서 잘라 버리는 것을 선가에서는 깨달은 마음이라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근심할 것이 없고, 다만 깨달음이 늦어지는 것을 근심할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마음이 텅 빈 허공과 같아질 수만 있다면 번뇌가 어디에 발붙일 수 있겠습니까."
노승은 또 이렇게 말했다. "상공의 병에는 몸속 물의 기운과 불의 기운이 서로 통하지 못하는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색에 빠져드는 것을 선가에서는 바깥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라 하고, 잠자리에서 여색을 그리워하다 절로 마음에 열이 오르는 것을 선가에서는 안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라 하는데, 이 두 가지 욕망에 얽매이고 물들면 모두 몸의 근원이 되는 정기를 소모하게 됩니다. 만약 이 두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있다면 신장의 기운이 저절로 불어나 위로 심장과 호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글 읽는 데 골몰하여 잠자고 먹는 것마저 잊는 것을 선가에서는 이치에 얽매인 장애라 하고, 일에 파묻혀 피로를 잊는 것을 선가에서는 일에 얽매인 장애라 하는데, 이 두 가지 장애는 비록 욕망은 아니지만 역시 타고난 성품을 해칩니다. 이것을 떨쳐 버릴 수 있다면 심장의 열기가 위로 치솟지 않고 아래로 신장과 호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섯 가지 바깥 대상과 얽히지 않으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붙을 곳이 없어지고, 근본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면 여섯 가지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또 '괴로움의 바다는 끝이 없으나 깨달으면 그 자리가 바로 저편 기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광자원은 그 말대로 홀로 조용한 방에 거처하며 온갖 인연을 다 떨쳐 버리고 한 달 남짓 고요히 앉아 있었더니 마음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훗날 내가 변문대에 있을 때 광자원이 이 일을 자세히 들려주며 또 이렇게 말했다. "선가의 이런 가르침이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으니, 우리도 그 가운데 한 가지 방법만이라도 잠시 택해 보는 것이 좋겠소." — 《사우재총설》에서
(용어) 선가는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는 불교의 한 갈래를 가리킨다.
이상으로 한정록 제15권 섭생을 마친다. 이 권에서 허균이 뽑아 모은 글들은 앞선 권들의 인물 일화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은둔한 이들의 삶의 태도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실용적인 지침들이다.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법에서 시작하여, 호흡을 고르게 하는 법, 음식을 절제하는 법, 잠자리와 생활 습관을 다스리는 법, 그리고 몸속 경혈을 문지르고 기운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수련법에 이르기까지, 도교의 양생서와 여러 문인들의 글에서 뽑아 온 가르침들을 폭넓게 엮어 놓았다. 그 가운데는 성생활의 절제를 다룬 대목이나 몸을 따뜻하게 보하는 방중 수련법처럼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내용도 있지만, 이는 모두 당시 사람들이 건강과 장수를 위해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양생의 지혜였다. 허균은 한가로이 살아가는 삶의 이상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삶을 실제로 오래도록 건강하게 누릴 수 있는 방법까지도 이 권에 함께 담아 두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정록 제16권 · 치농
출처 허균, 《한정록》 제16권 치농
배경 《한정록》은 허균이 직접 지은 글이 아니라,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구해 온 여러 책에서 한가로이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와 가르침을 뽑아 엮은 책이다. 앞선 권들이 은둔한 선비들의 일화나 마음을 다스리는 잠언,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양생법을 다루었다면, 이 16권 치농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시골에 자리를 잡고 실제로 먹고사는 문제, 곧 땅을 고르고 집을 짓고 곡식과 채소와 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고 소와 닭과 물고기를 기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룬 실용적인 농사 지침서다. 허균은 한가롭게 사는 삶이 그저 풍류로 그쳐서는 안 되고, 스스로 농사지어 먹고살 수 있어야 진정으로 오래갈 수 있다고 보았던 듯하다. 그래서 한정록의 마지막 부분에 이처럼 매우 세밀하고 기술적인 농사 지식을 따로 갈무리해 둔 것으로 보인다.
일러두기 이 권은 조선 시대 농서와 중국 농서(특히 《제민요술》 등)에서 뽑아 온 내용을 담고 있어, 절기·방위·간지(육십갑자로 날짜와 방위를 가리키던 옛 표기법)·토양·품종을 가리키는 낯선 옛말이 매우 많다. 이런 말들은 본문에서는 한자 없이 풀어 쓰고, 필요한 경우 문장 끝에 짧은 설명을 붙였다. 원문에 나오는 구체적인 수치(며칠, 몇 자, 몇 근 등)와 순서는 그대로 살려 옮겼으며, 옛 방식의 소 치료법이나 못에 부적을 세우는 것과 같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낯선 민간 신앙적 내용도 원문에 있는 그대로, 다만 쉬운 말로 옮겼다.
좋은 땅을 고르는 법
먹고살 방도를 세우려면 무엇보다 먼저 땅을 잘 골라야 한다. 땅은 물길과 뭍길이 서로 잘 통하는 곳이 으뜸이니, 산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는 자리가 가장 좋다. 다만 그 땅이 넓어야 하고, 동시에 아늑하게 감싸인 곳이어야 한다. 땅이 넓으면 재물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고, 땅이 아늑하게 감싸여 있으면 그렇게 만든 재물을 흩어지지 않게 모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밑천 마련하기
무슨 일을 하든 밑바탕이 없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고, 재물이 없으면 이루어 낼 수 없다. 뜻을 함께할 사람을 이미 구했다 해도 밑천이 넉넉하지 않으면 역시 성공할 수 없으니, 앞으로 일을 벌이려면 먼저 재물을 모아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새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욕심부리지 않고 순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자연히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러니 밑천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큰 부자가 될 만큼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리 잡고 살 집
거처와 먹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다. 좋은 땅을 얻었다 해도 살 곳이 없으면 이 몸을 어디에 두겠는가. 그런데 땅을 손보는 일을 벌이면서 동시에 집까지 짓다 보면 시기를 놓쳐 두 가지 일을 다 그르치기 쉽다. 그러므로 살림을 차릴 때는 이미 지어져 있는 집을 사서 들어가는 것이 옳다. 다만 그 집이 너무 크지는 않아야 한다.
곡식 심는 법
거처를 옮겨 자리를 잡을 때는 먹을거리가 넉넉한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고, 먹을거리를 넉넉하게 하려면 농사를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단 거처를 정하고 나면 집안의 모든 일꾼에게 곧바로 저마다 맡을 일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인과 일꾼을 합쳐 열 사람이라면 한 해에 예순 섬은 되어야 살림을 꾸려 갈 수 있으므로, 가진 땅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아 형편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만약 땅이 백 마지기쯤 된다면 일꾼들에게 그중 서른 마지기는 직접 농사짓게 하고, 나머지는 소작을 주어 부치게 하는 것이 옳다.
채소 심는 법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것을 흉년이라 하고, 채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을 흉작이라 한다. 그러니 쌀보리 같은 주식 곡물 말고도 채소가 없어서는 안 된다. 사는 집의 좌우에 곧바로 땅을 일구어 심되, 김매고 물 주기 편하도록 이랑을 지어 씨를 뿌려야 한다.
나무 심는 법
거처가 이미 정해졌으면 그 근방의 산자락을 두루 살펴서, 그 땅에 맞는 나무를 골라 재목이 될 나무와 과일나무를 함께 심고 가꾸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훗날 재물과 살림 도구를 마련하는 밑천이 된다.
누에를 쳐서 고치를 켜는 법
옛 예법을 다룬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천자와 제후는 반드시 나라에서 관리하는 뽕밭과 누에를 치는 방을 따로 두었다." 하물며 벼슬아치나 평민의 집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일단 거주할 곳을 정했으면 집 둘레에 뽕나무를 널리 심고, 누에 기를 때 쓰는 채반과 시렁과 광주리 같은 여러 도구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누에를 기를 때 먹일 뽕잎이 모자랄 걱정도 없고, 도구가 없어서 낭패를 볼 일도 없다.
가축 기르는 법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는 데는, 머물 곳이 정해지고 생업이 자리를 잡은 데다가 가축까지 기르면 이익이 절로 생겨난다. 옛날 큰 부자가 된 인물이 다른 부호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고 한다. "그대가 재산을 크게 불리고 싶다면 마땅히 다섯 종류의 암가축을 기르라." 또 이렇게도 말했다. "먹고사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물에서 기르는 가축, 곧 물고기 기르는 일이 으뜸이다." 그러니 가축 기르는 일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용어) 여기서 말하는 "다섯 종류의 암가축"과 "물고기 기르는 일이 으뜸"이라는 말은 뒤에 나오는 오자 항목에서 다시 자세히 다룬다. 옛날 중국 춘추 시대에 큰 부자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의 조언을 인용한 것이다.
때에 맞추어 하기
세상 모든 일을 이루는 데는 때를 잘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는 데도 저마다 알맞은 때가 있으니, 그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옛 성인이 짧은 시간도 아까워한 데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이 이치를 새기지 않을 수 없다.
부지런히 힘쓰기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한평생을 살아가는 계책은 부지런함에 있다." 또 이런 말도 있다. "거름을 넉넉히 주고 부지런히 일하는 집이 농사를 가장 잘 짓는 집이다." 그러니 밤에는 곰곰이 생각하고 낮에는 몸을 움직여 일하며,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과감하게 결단해서 때를 놓치는 잘못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익이 갑절로 늘어날 것이다.
검소함 익히기
씨앗을 뿌리고 누에를 쳐서 고치를 켜는 데서 곡식과 옷감을 얻을 길이 이미 열리고, 나무를 심어 가꾸고 가축을 기르는 데서 재물의 밑천이 이미 갖추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재물을 절제 없이 써 버린다면 몸만 고될 뿐 살림은 오히려 더 쪼들리게 된다. 송나라의 한 재상이 자손에게 남긴 여섯 가지 뉘우칠 일을 적은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부유하게 살 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반드시 뉘우치게 된다."
(용어) 여기서 말하는 송나라 재상은 구준이라는 인물로, 그가 남긴 "여섯 가지 뉘우칠 일"이라는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아홉 가지 곡식의 씨앗을 고르는 법
농사에 관한 옛 책을 살펴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곡식에는 모두 메기장, 차기장, 차조, 벼, 참깨, 보리, 밀, 콩, 팥 이렇게 아홉 가지가 있다. 이 모든 곡식의 씨앗을 축축하게 젖은 땅에 심으면 싹이 잘 트지 않고, 트더라도 곧 죽어 버린다. 대개 씨앗이 여러 가지로 뒤섞여 있으면 싹이 틀 때도 어떤 것은 빨리 나오고 어떤 것은 늦게 나와 자람이 고르지 못하며, 방아를 찧을 때도 다시 이리저리 축나고 밥을 지어도 잘 익지 않는다. 그러니 마땅히 정성을 들여 잘 가려서, 이삭이 좋고 빛깔이 고른 것만 골라 저장해 두었다가, 씨 뿌리기 스무 날 전에 꺼내어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 말을 끌고 그 이삭 더미가 있는 곳으로 가서 두어 차례 뜯어 먹게 하여 말이 마구 밟고 지나간 것을 씨앗으로 삼으면 벌레로 인한 피해가 없어진다. 씨앗이 혹 습기에 젖어 상했을 경우에는 벌레가 생기기 쉬우니, 눈 녹은 물에 담가 두어야 한다. 눈 녹은 물은 곡식이 가진 맑은 기운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농작물이 가뭄을 잘 견디게 해 준다. 보리 씨앗은 도꼬마리씨나 쑥을 가늘게 부수어 보리와 섞은 다음 뜨거운 볕 아래 바짝 말려서 질그릇에 잘 담아 두었다가 때에 맞추어 심으면 무성하게 자라지 않는 법이 없다."
(용어) 도꼬마리는 들에 흔히 자라는 풀로, 씨앗에 갈고리 같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다.
올해 가장 잘될 곡식을 점치는 법
그해에 가장 잘 자랄 곡식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베로 만든 자루에 여러 곡식의 씨앗을 똑같은 양으로 나누어 담은 뒤 동짓날 그늘진 곳에 묻어 둔다. 그리고 동지가 지나고 쉰 날이 되는 날 파내어 저울로 달아 보면, 그중 가장 많이 불어난 씨앗이 그해에 가장 잘 자랄 곡식이다.
또 옛날 소리를 듣고 길흉을 점쳤다는 음악가의 점법에 이런 말이 있다.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버드나무, 뽕나무, 삼나무 이 다섯 가지 나무는 다섯 곡식보다 먼저 그 해의 기운을 드러낸다. 그러니 어느 곡식이 잘될지 알고 싶으면, 먼저 이 다섯 나무 가운데 올해 어느 나무가 가장 무성했는지를 보고, 그 나무에 해당하는 곡식을 골라 이듬해에 많이 심으면 만에 하나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음양의 이치를 다룬 옛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벼는 대추나무나 버드나무에서, 보리는 살구나무에서, 밀은 복숭아나무에서, 찰벼는 버드나무나 다른 종류의 버드나무에서, 메기장은 느릅나무에서, 콩은 회화나무에서, 팥은 오얏나무에서, 참깨는 버드나무나 모형나무에서 그 기운을 받아 생겨난다."
(용어) 다섯 가지 나무로 점을 쳤다는 음악가는 중국 춘추 시대에 소리만 듣고도 일의 길흉을 알아맞혔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큰키나무이고, 모형나무는 마편초과에 속하는 떨기나무다.
달마다 씨 뿌리는 차례
농사에 관한 옛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곡식의 씨앗을 심는 데는 저마다 정해진 차례가 있으니, 때가 알맞은지를 잘 살펴서 그 앞뒤 순서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들이 서로 이어서 자라고 서로 힘입어 쓰이게 되니 어찌 곡식이 모자랄 일이 있겠는가. 정월에는 삼을 심고, 이월에는 조를 심는다. 참깨에는 일찍 심는 것과 늦게 심는 것 두 종류가 있으니, 삼월에는 일찍 심는 참깨를 심고, 사월에는 콩을 심고, 오월 중순에는 늦게 심는 참깨를 심으며, 칠석이 지난 뒤에는 무나 배추 따위를 심는다. 팔월에는 가을 사일 이전에 곧바로 보리를 심는데, 두 차례의 사일을 지나서 심으면 오히려 수확이 갑절이 되고 보리알도 단단하고 좋아진다. 이렇게 곡식을 심는 데는 모두 차례가 있으니, 이는 하늘의 때를 따르기 때문이다."
(용어) 사일은 봄과 가을에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옛 절기로, 입춘이나 입추가 지나고 다섯 번째로 돌아오는 무일에 해당한다.
씨 뿌리는 시기와 땅에 따른 원칙
무릇 다섯 가지 곡식은, 그달 상순에 심으면 온전한 수확을 거둘 수 있고, 중순에 심으면 절반의 수확을 거둘 수 있으며, 하순에 심으면 수확이 가장 적다. 또한 땅에는 기름진 곳과 메마른 곳이 있고, 산과 늪지대에는 저마다 알맞은 곡식과 알맞지 않은 곡식이 있으므로, 기름진 땅에는 늦게 심는 것이 알맞고 메마른 땅에는 일찍 심는 것이 알맞다. 기름진 땅은 늦게 심는 것만 알맞은 게 아니라 일찍 심어도 해가 없지만, 메마른 땅에 늦게 심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산에 있는 밭에는 추위와 서리를 잘 견디는 튼튼한 모종을 심어야 하고, 늪지대에 있는 밭에는 그런 내성이 강하지 않아도 되는 모종을 심어 꽃과 열매를 얻어야 한다. 옛 책에 이르기를 "누런빛과 흰빛이 도는 흙에는 벼가 알맞고, 검은 흙에는 보리가 알맞고, 붉은 흙에는 조가 알맞고, 물이 고인 진흙땅에는 찰벼가 알맞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땅의 성질에 맞추어 심는다는 것이다.
남쪽 지방의 물벼 세 종류
남쪽 지방에서 물을 대어 기르는 벼는 부르는 이름이 일정하지 않지만, 크게 나누면 세 종류가 있다. 일찍 익으면서 쌀알이 단단하고 자잘한 것을 선벼라 하고, 늦게 익으면서 향이 나고 윤기가 도는 것을 갱벼라 하며, 익는 시기가 딱 알맞고 쌀알이 희면서 차진 것을 찰벼라 한다. 이 세 종류는 모두 같은 시기에 씨를 뿌리는데, 해마다 씨앗을 거둘 때는 벼알이 잘 여물어 아주 단단하고 쭉정이가 없으며 다른 종자가 섞이지 않은 것을 골라,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 볕이 들지 않도록 그릇에 담아 높고 시원한 다락 같은 곳에 둔다.
청명절이 되면 그것을 꺼내어 물동이에 물을 붓고 담가 둔다. 사흘 뒤 건져 내어 바구니 같은 데 담아 두었다가, 날이 맑으면 볕에 내어 바짝 말리고 하루에 세 번씩 물로 축여 준다. 날씨가 흐리고 차면 더운물로 축여 주면서, 하얀 싹이 가지런히 터져 나올 때를 기다려 씨를 뿌린다.
씨를 뿌릴 때는 반드시 먼저 비옥한 땅을 골라 논을 잘 갈아서 흙이 아주 부드러워지고 물이 맑아진 뒤에, 이미 싹이 튼 씨앗을 너무 빽빽하지도 성글지도 않게 알맞게 뿌린다. 모가 나서 자라면 소만과 망종 무렵에 그 모를 뽑아 옮겨 심는다.
(용어) 소만과 망종은 모두 24절기에 속하며, 양력으로 각각 5월 하순과 6월 상순 무렵에 해당한다.
씨 뿌리는 네 가지 방법
무릇 씨를 뿌리는 방법에는 흩어뿌리기, 골뿌리기, 바가지뿌리기, 구덩이뿌리기 네 가지가 있다.
흩어뿌리기는 말에 곡식 씨앗을 담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손으로 적당히 집어 뿌리면서 걸어가는 방법이다. 세 걸음쯤 갈 때마다 다시 손으로 씨앗을 집어 뿌리되, 반드시 씨앗이 고르게 퍼지도록 해야 싹이 날 때 성기고 빽빽한 정도가 알맞게 된다.
남쪽 지방에서는 참깨, 보리, 조, 콩을 심을 때 하나씩 호미로 구멍을 파서 심는 방법을 많이 쓰는데, 이는 호미로 김매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땅이 넓고 기름진 곳에서는 흩어뿌리기를 쓰는 것이 좋다.
북쪽 지방에서는 골뿌리기를 많이 쓰는데 그 방법이 매우 꼼꼼하다. 옛 농서에 이르기를 "무릇 곡식을 심을 때는 소를 아주 천천히 몰고, 씨앗을 심는 사람은 소 뒤를 바삐 따라가며 심되, 두 발로 두둑 밑을 밟아 씨앗을 덮는다. 이렇게 해야 흙이 씨앗을 충실히 덮어 싹이 잘 튼다"라고 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씨앗을 다지는 수레를 만들어 쟁기를 따라가며 씨앗을 심은 다음 두둑을 따라 갈고 넘어가서, 뿌리가 흙에 잘 붙게 하여 일하는 힘을 크게 줄인다.
바가지뿌리기는 바가지에 구멍을 뚫고 씨앗을 담아 걸어가면서 빽빽하거나 성글지 않게 고르게 뿌리면 쟁기가 뒤따라가며 흙을 덮는 방법이다. 이렇게 덮은 흙은 깊어서,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흙이 씻겨 나갈 걱정이 없고, 여름 가뭄에도 잘 견디며, 호미질하기에도 편리하다.
구덩이뿌리기는, 무릇 산언덕에 가까운 고을에서 매우 가파른 비탈땅에 흔히 쓰는 방법으로, 구덩이를 파서 거름을 주고 씨앗을 심은 다음 물을 주어 가뭄에 대비하는 것이다.
채소 심는 일반 원칙
다섯 가지 곡식 말고도 채소 또한 없어서는 안 된다. 무릇 채소를 심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그 씨앗을 볕에 잘 말려야 한다. 땅은 기름진 것이 좋으니 땅이 메마르면 거름을 주고, 호미질은 자주 하는 것이 좋다. 가뭄이 들면 물을 대어 주며, 이렇게 힘을 많이 들이면 수확이 반드시 갑절이 될 것이다.
대체로 잎채소는 이랑에 심는 것이 알맞고, 오이나 참외 같은 열매채소는 고랑을 파서 심는 것이 알맞다. 이랑은 길이를 열 자쯤, 너비를 석 자쯤으로 만드는데, 심기 며칠 전에 묵은 흙을 괭이로 일으켜서 짚 태운 재를 섞어 태워 벌레를 없애는 동시에 그 재를 거름으로도 쓰고, 심기 직전에 다시 다른 거름을 더 넣어 이랑을 만들어 심는다.
고랑에 심을 때는 고랑의 깊이와 너비를 한 자쯤으로 파 놓았다가, 심기 직전에 잘 삭은 거름을 흙에 골고루 섞어서 씨앗을 그 속에 묻는다. 그런 다음 싹이 나오기를 기다려, 성기고 빽빽한 정도를 보아 남겨 둘 것은 그대로 두고 솎아 낼 것은 뽑아 버린다.
또 싹을 먼저 틔워서 옮겨 심는 방법도 있다. 씨앗을 먼저 깨끗이 씻어 바가지에 담고 젖은 수건으로 덮어 두면, 사흘 뒤 싹이 나서 손가락 길이쯤 자란다. 이때 비로소 씨를 뿌리는데, 먼저 만들어 둔 이랑에 물을 축축하게 준 다음 싹 튼 씨앗을 손에 쥐고 고르게 심는다. 그런 다음 아주 고운 체로 거름흙을 쳐서 그 위를 덮어 주어 뜨거운 볕을 막아 준다. 이렇게 하면 채소가 나서 서로 가지런히 자라고 잡초도 나지 못한다. 채소에 벌레가 생겼을 때는 고삼 뿌리를 석회수에 타서 뿌려 주면 벌레가 곧바로 죽는다. 참으로 이 방법대로 심으면 한 집안이 먹기에 넉넉할 뿐 아니라 살림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용어) 고삼은 뿌리에 쓴맛이 강한 콩과 여러해살이풀로, 예로부터 벌레를 없애는 데 썼다.
묵은 밭을 일구는 법
씨앗 심는 법을 이어서 다음에도 하나하나 늘어놓았으니, 이것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은 저마다 그 땅에 알맞은 것을 골라 심어야 한다. 무릇 오랫동안 묵혀 둔 땅을 일굴 때는, 그 위에 자란 잡초를 모두 태워 버리고 쟁기로 간 다음, 첫해에는 참깨를 심어 풀뿌리와 나무뿌리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뒤에 다섯 가지 곡식을 심으면 잡초의 피해가 없어진다. 대개 참깨는 풀과 나무에 대해서 마치 주석이 다른 쇠붙이를 삭게 하는 것과 같은 성질을 지녀, 그 성질이 서로 억누르기 때문이다.
봄갈이와 가을갈이
봄갈이는 늦게 하는 것이 좋고, 가을갈이는 일찍 하는 것이 좋다. 봄갈이를 늦게 해야 좋은 까닭은, 봄 얼음이 점점 풀리고 땅의 기운이 비로소 통하게 되면, 아무리 단단하게 굳은 땅이라도 쟁기질과 호미질이 잘 되기 때문이다. 가을갈이를 일찍 해야 좋은 까닭은, 날씨가 아직 차가워지기 전에 따뜻한 기운을 땅속에 미리 담아 두기 위해서다.
한 해가 저물 무렵, 물이 얼 즈음을 기다려 밭을 갈아 두면 흙의 결이 봄에 쉽게 부드러워지고 잡초도 나지 않는다. 흙의 결이 부드러워진 뒤에는 반드시 볕에 바짝 말리고 물을 대어 맑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씨를 뿌릴 수 있으니, 이렇게 하면 씨앗이 흙 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고 쉽게 싹이 튼다. 강가나 저수지의 진흙, 또는 참깨나 콩의 깻묵을 한 마지기마다 서른 근씩 넣어 재거름과 섞거나, 목화씨 깻묵을 한 마지기마다 이백 근씩 넣되, 모내기 하루 전에 그 깻묵을 논에 고르게 흩어 쟁기로 간 뒤에 모내기를 한다. 어떤 거름을 쓸지는 저마다 땅의 성질에 맞추어 정한다.
올벼와 늦벼 기르기
일찍 심는 벼는 청명 이전에 씨를 뿌리고, 늦게 심는 벼는 곡우 이전에 씨를 뿌린다. 씨앗을 싸서 냇물에 담가 두고 낮에는 물에 담그고 밤에는 건져 내기를 되풀이하면 싹이 쉽게 튼다. 그래도 싹이 나지 않으면 풀을 두껍게 덮어 두었다가, 싹이 두세 푼쯤 자란 뒤 풀을 걷어 내고 뿌리의 잔털을 없앤 다음 논에 뿌리는데, 이때 마침 청명 절기와 맞아떨어지면 모가 쉽게 튼튼해진다. 또한 반드시 아침 날씨를 잘 살펴서 하되, 청명이 지나고 이삼일 뒤에 볏짚 태운 재를 위에 덮어 주면 뿌리에서 잡초가 나기 쉬우므로, 반드시 때를 맞추어 개똥을 뿌리거나 재거름을 넣어 북돋아 주어야 한다.
볍씨를 물에 담그는 일 소만과 망종 절기를 앞뒤로 하여 모내기를 하는데, 처음 모를 뽑을 때는 물로 뿌리를 깨끗이 씻어 진흙을 없애고 피가 섞여 있으면 곧바로 가려낸 다음 작게 한 묶음씩 묶는다.
모내기 이 모를 심을 때는 논을 써레로 잘 고른 다음, 대략 모 여섯 줄기를 한 포기로 하고 여섯 포기를 한 줄로 삼아 심되, 포기와 줄을 곧게 맞추어 김매기 편하도록 한다. 모를 얕게 꽂아야 잘 자란다.
뿌리 손질하기 벼가 막 뿌리를 내릴 때 벼 포기 사이를 쇠스랑으로 긁어 잡초를 없애면 나중에 논매기가 쉬워지고, 벼뿌리의 잔털을 찾아 잘라 주면 벼가 쉽게 잘 자라며, 곁뿌리를 잘라 주면 원뿌리가 곧장 아래로 뻗는다.
물 빼고 대기 뿌리를 손질한 뒤에는 재거름이나 참깨 깻묵, 콩깻묵 가루를 논에 뿌려 넣고 잡초를 말끔히 매서 없앤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물을 빼서 논바닥에 볕이 들게 하는데 이를 논 말리기라 하며, 논바닥의 흙이 말라 갈라질 즈음 다시 물을 대는 것을 물 되돌리기라 하는데, 벼가 완전히 여문 뒤에 물을 빼야 한다.
논매기 가을걷이 때는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좋은 이삭만 뽑아 바짝 말린 다음 체로 쳐서 피나 쭉정이를 깨끗이 없애고 자루에 담되, 자루마다 스물다섯 근 또는 서 말씩 담아 들보에 높이 매달아서 쥐가 먹지 못하게 한다.
벼 이은 자리에 보리 심는 법, 그리고 보리와 밀 갈무리하기
올벼를 베고 나면 반드시 논을 갈아서 호미로 두둑을 짓고 사방으로 도랑을 내어 물을 뺀 뒤에 씨를 뿌린다. 씨를 뿌린 다음에는 재거름으로 덮어 주는데, 속담에 "재 없이는 보리를 심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반드시 재거름을 고르게 주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보리씨를 다룰 때는 귀리나 잡초 씨 같은 것을 잘 가려내고 쭉정이와 싸라기를 까불러 낸 다음 구월에 씨를 뿌리는데, 그 방법은 큰보리와 똑같다. 씨 뿌리는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까마귀가 날아와 쪼아 먹어 씨가 드물어질 염려가 있다.
보리가 누렇게 익으면 좋은 날씨를 골라 서둘러 베어 거두어야 한다. 오월에 가장 바쁜 농사일은 누에 치는 일과 보리 거두는 일만 한 것이 없다. 속담에 "보리 거두기를 불 끄듯이 하라"라는 말이 있으니, 이 일이 더뎌지면 장맛비에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 갈무리하기 삼복더위에 바짝 말려서 보리알이 뜨끈뜨끈할 때 거두어 담되, 먼저 볏짚 태운 재를 항아리 밑에 깔고 보리를 담은 다음 다시 그 재로 위를 덮어 주면 좀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여러 곡식과 채소를 심는 법
여기서부터는 개별 작물마다 심는 법을 하나하나 짧게 적어 둔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 땅에 알맞은 작물을 골라 심어야 할 것이다.
메밀
입추를 앞뒤로 하여 흩어뿌리기나 구멍뿌리기, 또는 구덩이뿌리기로 심되, 싹이 나오는 즉시 성기고 빽빽한 정도를 알맞게 호미로 잘 골라 주고 거름도 준다. 싹이 자란 뒤에는 호미로 잡초를 말끔히 매 주면 무성하게 잘 자라며, 씨앗을 촘촘히 뿌릴수록 열매도 많이 맺는다.
콩
두둑을 짓고 심을 자리를 발로 밟아 가며 씨를 뿌리는데, 일찍 심는 것은 3월에 뿌려 4월에 먹을 수 있어 이를 매화콩이라 부른다. 나머지 콩은 대개 3~4월에 심는데, 땅이 너무 기름지면 오히려 좋지 않다. 잡초가 나면 뽑아 없애야 한다.
3~4월에 심고 호미로 잡초를 말끔히 없앤다. 이 콩으로는 장을 담글 수도 있고 두부를 만들 수도 있으며, 그 껍질은 말 먹이로도 좋다.
녹두
4월에 심어 6월에 거두고, 그 자리에 씨를 다시 심어 8월에 또 거둔다. 한 해에 두 번 여무는 콩으로, 가루를 내거나 콩나물을 기르는 데 쓸 수 있다.
완두
여러 콩 가운데 오직 이 콩만은 오래 두어도 좀이 슬지 않고, 수확량도 많으며 일찍 여문다. 이 콩의 껍질도 내다 팔 수 있다. 8월 무렵 참깨와 섞어서 함께 심었다가 함께 거두기도 한다.
잠두와 흰콩
8월 초에 심는데, 땅이 너무 기름지면 오히려 좋지 않다. 중국 강남 지방에서 이 콩을 많이 심는데, 밭이나 논에 심는 것으로 붉은콩과 흰콩 두 종류가 있다. 곡우가 지난 뒤 심어서 6월에 씨앗을 거두고, 다시 심어서 8월에 또 거둔다.
팥
3월에 심어 6월에 따는데, 늦게 심을 때는 4월에 심는다. 심는 방법은 모두 콩과 같다. 잡초가 나면 반드시 자주 뽑아 주고, 성기고 빽빽한 정도를 알맞게 해 주어야 한다. 너무 빽빽하게 심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까치콩
담을 따라 심는 콩이라고도 부른다. 청명일에 씨를 뿌리고 재로 덮어 주되, 싹 위까지 덮어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 나누어 심고 시렁을 매어 덩굴을 끌어올린다. 열매를 거두면 내다 팔 수 있는데, 이 콩 두 몫에 밀가루 한 몫을 섞으면 국숫감으로도 좋다.
참깨
기름진 땅이 가장 좋으며, 심는 시기는 3월이 가장 좋다. 검은깨, 흰깨, 누런깨 세 종류가 있는데 그중 흰깨에서 기름이 가장 많이 난다. 그달 초순에 심으면 꼬투리가 많이 달린다. 4~5월에 심어도 되지만, 밭이 걸어야 열매가 잘 여문다.
생강
기름진 땅을 깊이 갈아 3월에 심는다. 심은 뒤에는 누에똥이나 썩은 풀, 재거름, 쇠똥 등으로 덮어 주고, 이랑마다 너비 석 자로 지어 물 주기 편하게 한다. 싹이 튼 뒤에는 썩은 생강을 걷어 내고 시렁을 만들어 거적으로 볕을 가려 주며, 쇠똥과 물을 자주 준다. 8월에 뿌리를 거두는데, 9~10월에는 움을 깊이 파고 왕겨와 함께 따뜻한 곳에 묻어 이듬해 씨앗으로 삼아야 한다. 불을 때는 온돌방에 두어도 좋다.
토란
씨앗은 둥글고 길쭉하며 끝이 흰 것을 골라, 남쪽 처마 밑에 구덩이를 파고 왕겨를 바닥에 깐 뒤 그 위에 놓고 풀로 덮는다. 3월 무렵 꺼내어 기름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싹이 서너 잎 나오기를 기다려 5월 무렵 물 가까운 기름진 땅에 옮겨 심는다. 포기 사이와 줄 간격은 벼 심는 법과 같이 한다. 강가의 진흙이나 재거름, 썩은 풀 등으로 두텁게 북돋아 주고, 날이 가물면 물을 주며 김은 자주 맬수록 좋다.
토란에는 물토란과 밭토란 두 종류가 있는데, 물토란은 아주 기름진 땅에 심어야 하고 밭토란은 고랑을 파서 심어야 한다. 고랑은 깊고 넓게 파고, 콩깍지를 가져다 고랑 가운데 넣어 발로 밟은 다음 그 위에 씨앗을 놓고 다시 단단히 밟아 준다. 그런 다음 물을 자주 준다.
무
달마다 심을 수도 있고 달마다 먹을 수도 있다. 땅은 기름져야 하고, 흙은 거칠어야 하며, 물은 자주 주어야 하고, 씨앗은 성기게 뿌려야 하며, 촘촘하게 났으면 솎아 내야 한다. 여러 채소 가운데 오직 무만이 이렇게 다루기 좋은 채소다.
당근
삼복더위 안에 땅을 갈아 두둑을 짓고 씨앗을 하나씩 손으로 쥐고 심어야 하는데, 땅이 기름지면 흩어 뿌려도 된다.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
갓, 배추, 근대, 오송채, 함채
7~8월 무렵 씨를 뿌렸다가 9월에 두둑을 지어 나누어 심은 다음 거름물을 자주 준다. 서풍이 부는 날이나 몹시 메마른 날에는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용어) 오송채와 함채는 모두 옛날에 심던 잎채소의 한 종류다.
콩나물
좋은 녹두를 골라 이틀 밤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불릴 만큼 불면 새 물로 헹궈 말린 다음, 갈대 자리에 물을 뿌려 적셔서 땅에 깔고 그 위에 녹두를 얹은 뒤 젖은 거적으로 덮어 두면 싹이 저절로 자란다.
상추
8월에 씨를 뿌려 싹이 자라기를 기다려 두둑을 지어 나누어 심고, 이듬해 잎을 따 먹되 수시로 물을 주면 가운데 줄기가 굵어지면서 곧 상추 속대가 올라온다.
쥐참외
2월에 씨를 뿌려 싹이 한 치쯤 자랐을 때 호미로 구멍을 파고 나누어 심되, 한 구멍에 한 덩굴씩 심는다. 그런 다음 날마다 아침 일찍 맑은 거름물을 주되, 날이 가물면 아침저녁으로 거름물을 주며, 덩굴이 길게 뻗을 때는 시렁을 만들어 끌어올린다.
동아와 호박
먼저 젖은 볏짚재를 부드러운 진흙과 섞어 땅 위에 깔고 호미로 두둑을 지어 3월에 씨를 뿌리되, 씨앗 사이의 간격을 한 치쯤 두고 심은 다음, 젖은 재를 체로 쳐서 덮어 주고 물과 거름물을 준다. 늘 마르면 다시 물을 주고, 싹이 난 뒤에는 한낮에 재를 뿌려 주며 뿌리 곁에도 재를 북돋아 주고 맑은 거름물을 준다. 그렇게 하다가 3월 하순에 두둑을 치고 호미로 구멍을 파서 옮겨 심되, 구멍 사이 간격은 한 자 두 치쯤으로 하고, 구멍마다 반드시 짙은 거름물을 준다. 덩굴이 길게 뻗으면 시렁을 매어 끌어올린다. 이는 오이 심는 법과 모두 같다.
고수
먼저 씨앗을 네댓 조각으로 쪼갠 다음 7월 그믐날 해가 진 뒤에 심되, 습기가 있는 땅에 심어야 한다. 심은 다음 재로 잘 덮어 주고 물을 주면 잘 자란다.
파
8월 하순에 뿌리의 잔털을 깨끗이 떼어 버리고 줄 간격은 성글게 하되 포기는 촘촘히 심고, 돼지똥과 오리똥을 왕겨에 섞어서 북돋아 준다. 또 사철 아무 때나 심을 수 있는 사계파도 있는데, 이 역시 반드시 잔털을 떼어 내고 볕에 살짝 말린 다음 심는 방법은 앞서와 같다.
마늘
8월 초순에 기름진 땅에 고랑을 치고 두 치 간격으로 한 포기씩 심은 뒤 거름물을 준다. 또는 외양간에서 소가 밟은 짚신을 오줌에 담가 그 안에 씨앗을 싸서 넣고 삭은 흙을 끼워 심은 다음 그 위에 똥을 두껍게 덮어 주면 마늘이 사발만큼 크게 자란다.
부추
2월 하순에 씨앗을 뿌렸다가 9월에 나누어 옮겨 심는다. 10월에는 볏짚 태운 재를 세 치쯤 덮어 주고 그 위에 흙을 얇게 덮어 주면 바람이 불어도 재가 날리지 않는다. 입춘이 지나 싹이 재 위로 올라오면 베어 먹을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하면 2월 말쯤 싹이 자라 어엿한 채소가 되므로 차례로 베어 먹는다. 이렇게 싹만 베어 먹고 뿌리는 그대로 남겨 두면 그 뿌리를 나누어 다시 심을 수 있으므로, 다시 씨앗을 뿌릴 필요가 없다.
염교
아무 때나 심을 수 있으며, 마늘과 함께 심기도 한다.
가지
청명 무렵 볍씨와 함께 물에 담가 두었다가 두둑을 지어 심은 뒤, 싹이 두세 치쯤 자란 다음 옮겨 심되 성글게 심고 거름물을 자주 준다. 또는 포기마다 뿌리 밑에 유황을 조금씩 넣고 심으면 가지가 길고 크며 맛이 달다.
마
먼저 기름진 땅에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마 맨 윗부분에 흰 가시가 돋은 것을 골라 대칼로 두 치쯤 되게 끊어서 서로 눕혀 심은 다음 다섯 치 두께로 흙을 덮어 주고, 가물면 물을 준다. 재거름이나 참깨 깻묵으로 북돋아 주어야 하며 사람 똥거름은 절대 써서는 안 된다. 싹이 나면 대나무로 시렁을 매 준다. 상강이 지난 뒤나 입동이 지난 뒤에 종자를 거두는데, 뿌리 둘레를 넓고 깊게 파서 캐내야 부서지지 않는다. 이 뿌리를 노란 감자라고도 부르며, 그 맛이 마와 같다. 녹두 껍질이나 참깨 깻묵, 또는 소변에 담근 짚신에 싸서 심고 둘레에 재를 뿌려 두면 벌레의 피해가 없다.
이상의 채소와 열매채소는 방법대로 잘 심으면 기름과 소금 살 돈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모시
정월에 뿌리를 캐어 다시 옮겨 심고, 5월에 첫 번째 모시를 베고, 7월에 두 번째 모시를 베고, 9월에 세 번째 모시를 베되, 그 뿌리는 늘 그대로 두고 재거름으로 북돋아 주며 풀과 흙으로 덮어 준다. 혹은 가지를 눌러 놓으면 이듬해에 새 모시가 되기도 한다. 달마다 심을 수 있다고도 한다.
목화
곡우를 앞뒤로 하여 먼저 씨앗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알맞은 때에 걸러 내어 재를 골고루 섞은 다음, 한 자 간격으로 구덩이 하나씩을 파고 씨앗을 대여섯 개씩 심는다. 싹이 나오기를 기다려 촘촘하고 줄기가 약한 것은 뽑아 버리고 튼실한 것 두세 포기만 남겨 두고서 호미질을 자주 해 주는 것이 좋다. 반드시 사람 똥거름을 주어야 하며, 때로는 오동나무 기름을 거름물에 타서 주기도 한다. 그리고 늘 위로 뾰족하게 솟는 순을 잘라 주어 너무 높이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싹이 너무 높이 자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잇꽃
8월 중에 호미로 두둑을 치고 구덩이를 파서 씨를 뿌리는데, 재거름이나 닭똥으로 덮어 주고 물을 주되 너무 진한 거름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듬해 꽃이 피면 맑은 새벽에 그 꽃을 따서 살짝 두드려 노란 즙을 버리고 맑은 물에 하룻밤 담가 둔 다음, 바짝 비틀어 짜서 얇은 떡 모양으로 만들어 볕에 말려 쓰되, 습기 찬 벽 가까이에는 두지 말아야 한다.
(용어) 잇꽃은 붉은 물감을 얻는 데 쓰던 꽃으로, 옛 문헌에서는 홍화라 불렀다.
쪽
정월 중에 자루에 씨앗을 담아 물에 담갔다가 싹이 나오면 땅에 뿌리고 재거름으로 덮어 주며, 잎이 나기를 기다려 거름물을 준다. 두 치쯤 자라면 줄을 맞추어 나누어 심고 이어서 거름물을 주어 뿌리를 살린다.
5~6월이 되기 전에 거름물을 가져다 잎사귀 위에 대여섯 차례 뿌리고, 잎이 두꺼워지기를 기다려 땅 위로 세 치쯤을 베어 낸다. 그런 다음 그 줄기와 잎을 항아리 안에 담그고, 항아리 크기를 보아 푸른빛이 도는 조개껍데기 잿가루를 적당히 넣는다. 그렇게 꼬박 하루 낮 하루 밤을 담가 둔 뒤 깨끗이 걸러 그 잿가루를 빼내고 나무로 두드려 푸른빛이 나오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물을 말끔히 빼내면 이것이 첫 번째로 얻은 쪽물감이다. 그 땅에 남아 있는 밑동에 다시 거름물을 뿌려 주고 앞서와 같은 방법으로 베어 내어 항아리에 담갔다가 두드리면 이것이 두 번째로 얻은 쪽물감이 되는데, 세 번째까지도 얻을 수 있다. 걸러 낸 찌꺼기는 밭에 거름으로 넣어도 좋다.
요즘 사람들은 겨울을 나는 쪽을 많이 심는데, 보리를 거둔 뒤 그 자리에 심되, 큰비가 내려 땅이 다져져서 싹이 나지 못할까 걱정되면 밀 까끄라기를 거름에 섞어 덮어 준다. 거름물 뿌리는 일도 반드시 자주 해야 하며, 담갔다가 두드리는 방법은 앞서와 같다.
누에 치는 법
누에씨 고르기
무릇 누에를 치는 법은 씨앗이 될 고치를 고르는 데서 시작된다. 누에섶 가운데 볕이 잘 드는 쪽에 있는 고치 중에서 맑고 두껍고 단단한 것을 고르되, 단단하고 가늘고 자그마한 고치는 수컷 고치이고, 둥글고 크고 두꺼운 고치는 암컷 고치다. 이런 고치를 골라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방 안의 깨끗한 채반 위에 펼쳐 둔다. 날수가 차면 나방이 저절로 나오는데, 맨 처음 나온 것을 애벌나방이라 하고 맨 나중에 나온 것을 마지막나방이라 한다. 이 가운데 날개가 굽었거나, 눈썹이 벗겨졌거나, 다리가 검게 탔거나, 눈썹이 검게 탔거나, 몸빛이 누렇게 떴거나, 붉거나, 털이 없거나, 무늬가 검거나, 몸통이나 머리가 검은 것이 있으면 이는 모두 애벌나방이거나 마지막나방이니 씨앗으로 쓸 수 없다.
(용어) 누에섶은 다 자란 누에가 올라가 고치를 짓는 짚이나 나뭇가지 다발을 말한다.
나비 짝짓기와 알 받기
그 사이에 나온 나방들은, 채반 위에 종이를 깔고 그 위에서 암수가 서로 짝짓기를 하도록 둔다. 저물녘이 되면 수나방은 버리고 암나방만 종이 위에 고르게 놓아 알을 낳게 하는데, 알이 한데 뭉쳐 쌓인 것은 모두 쓰지 못한다. 나방이 알을 어느 정도 낳으면 다시 그 종이 위에 그대로 두고 기르되, 사흘에서 닷새 동안은 반드시 서늘한 곳에 매달아 두어 연기나 햇빛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높이 매달 때 누에알이 바깥쪽을 향하게 되면 자칫 바람을 맞을 염려가 있다.
겨울철 목욕과 갈무리
한겨울과 섣달 초여드렛날 목욕을 시킬 때는 뽕나무나 볏짚을 태운 잿물에 누에알이 붙은 종이를 담근다. 목욕물로는 눈 녹은 물이 가장 좋지만 너무 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에 담근 지 사흘 만에 꺼내어 다시 높은 곳에 걸어 두었다가, 설을 지낸 뒤에는 항아리 안에 그 종이를 넣어 두되 반드시 빛이 곱게 비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열흘이나 그 남짓마다 한낮에 한 번씩 꺼내어 바람을 쐬어 주고, 구름 끼고 비 온 뒤에는 곧바로 볕에 바짝 말려야 한다. 누에알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빠르든 느리든 저마다 제 기능에 달린 일이니, 억지로 손을 대어 무리하게 변하게 해서는 안 된다.
뽕잎이 돋았을 때는 오전 일고여덟 시에서 열 시 사이에 항아리 안에서 그 종이를 꺼내어 누에알을 이리저리 고르게 펼쳐 놓아야 한다. 다만 반드시 첫날에는 알의 삼십 퍼센트가 색이 변하고 이튿날에는 칠십 퍼센트가 변하는데, 이렇게 되면 곧바로 종이에 풀칠을 하여 잘 봉해서 다시 항아리 안에 갈무리해 두었다가, 사흘째 되는 낮에 다시 그 종이를 꺼내어 펼쳐 보았을 때는 반드시 알 전체의 색이 다 변해 있어야 한다.
누에 방 준비하기
누에를 기를 방과 불 때는 곳, 채반 따위는 반드시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누에가 알에서 나올 때는 창문을 환하게 해 주어야 하며, 누에가 자고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창문을 환하게 밝혀 두어야 한다. 그리고 바닥 쪽에는 바람구멍을 여기저기 터놓아 여닫으면서 눅눅한 기운을 없애야 한다. 만약 새로 바른 흙벽이 축축하면 불을 때서 바짝 말리며, 창문에는 흰 종이를 새로 말끔하게 바르고 창마다 갈대발을 준비해 둔다.
부화 직후 다루기
누에가 막 알에서 나왔을 때는 닭털 같은 것으로 살살 쓸어 모으되 누에가 놀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빽빽하거나 겹쳐 있는 누에를 가지런히 눕힌 다음, 뽕잎을 따다가 품속에 넣어 따뜻하게 한 뒤 칼로 잘게 썰어서 그릇에 담긴 종이 위에 가는 체로 쳐서 뿌리고, 누에알이 붙은 종이를 그 뽕잎 더미에 맞대어 준다. 그러면 누에가 뽕잎 향을 맡고 스스로 기어 내려오는데, 시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거나 오히려 종이 위쪽으로 기어오르는 놈은 모두 버린다.
어린 누에를 기를 때는 먼저 방 한 칸을 비우고 네 귀퉁이에 불기운을 막는 자리를 만들어 방 안 온기를 고르게 하며, 누에가 잠들 무렵이 되면 이를 걷어 내고 날을 가려 채반에 옮겨 앉힌다. 채반에 옮긴 뒤에는 그 위아래로 빈 채반을 하나씩 더 꽂아, 위의 것은 먼지를 받고 아래 것은 습기를 막도록 한다. 피 이삭 짚을 가늘게 썰어 이 위아래 빈 채반에 깔아 두어 누에를 나누어 눕힐 때 대비하는데, 그 짚을 가늘고 부드럽게 썰어 채반에 깔아 푹신한 자리를 만들고 다시 그 위에 깨끗한 종이를 붙여 누에를 앉힌다.
색깔로 알아보는 먹이 때
누에가 막 나왔을 때는 색이 검다가 뽕잎을 점점 더 먹으면서 사흘째 오전 아홉 시에서 낮 한 시 사이가 되면 작은 바둑돌만큼 자라는데, 이 누에를 채반에 펴 놓고 점점 뽕잎을 먹이는 것을 검은 허물 벗기라 하며, 또는 나뉘어 흩어짐이라고도 한다. 누에가 하얀빛으로 변하면 이는 먹이를 찾는 때이니 뽕잎을 조금 더 두껍게 주어야 하고, 푸른빛으로 변하면 이는 한창 먹는 때이니 뽕잎을 더욱더 두껍게 주어야 하며, 다시 하얀빛으로 변하면 이는 먹이가 줄어드는 때이니 뽕잎을 조금 줄여야 하고, 누런빛으로 변하면 이는 먹이가 크게 줄어드는 때이니 뽕잎을 더욱더 줄여야 하며, 순수한 누런빛으로 변하면 이는 먹기를 멈추는 때로 이를 정면이라 한다. 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 누런빛에서 흰빛으로, 흰빛에서 푸른빛으로, 푸른빛에서 다시 흰빛으로, 그리고 또 누런빛으로 바뀌면 또 한 번 잠을 자게 된다. 잠잘 때마다 이렇게 색을 살펴 뽕잎을 더하거나 줄여 준다.
(용어) 원문에서는 이 색깔 변화의 각 단계에 저마다 이름을 붙여 놓았으나, 여기서는 그 뜻을 풀어 옮겼다.
뽕잎 다루는 법
무릇 뽕잎을 밖에 그냥 내놓아서는 안 된다. 만약 바람과 볕에 말라 버린 뽕잎을 먹이면 누에가 병이 난다. 늘 사흘 치 먹일 뽕잎을 미리 따 두어 장맛비에 대비하면 누에가 물에 젖은 뽕잎을 먹는 일도 없고 굶는 일도 없을 것이다. 뽕잎을 따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방 안에 펼쳐 바람을 쐬어 열기를 식힌 다음에 누에에게 먹여야 한다.
밤낮의 온도 관리
하루 밤낮도 대략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견줄 수 있다. 아침저녁은 봄가을과 같고, 한낮은 여름과 같으며, 한밤중은 겨울과 같아서 춥고 더운 정도가 일정하지 않으니, 누에 치는 방의 온도를 알맞게 짐작하여 때에 따라 조절할 것이요, 늘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
누에가 갓 나서부터 두 번째 잠을 잘 때까지는 반드시 아주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한다. 누에를 돌보는 사람은 반드시 홑옷을 입고 지내면서, 자신이 춥다고 느껴지면 누에도 추울 것이니 곧 방 안 온도를 더 올려 주고, 자신이 덥다고 느껴지면 누에도 더울 것이니 곧 방 안 온도를 내려 주어야 한다.
누에가 한 번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날씨가 맑은 날 오전 아홉 시에서 낮 한 시 사이에 잠시 창문의 발을 걷어 바람을 통하게 하되, 남풍이 불면 북쪽 창을 걷고 북풍이 불면 남쪽 창을 걷어 바람이 통하게 해 주면 누에가 상하지 않는다.
누에가 마지막 잠을 자고 일어난 뒤 세 번 먹이를 먹고 나면 창문 종이에 구멍을 뚫어 바람을 통하게 하되, 반드시 갑작스럽게 하여 누에가 놀라 병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잠에서 깬 뒤에는 발을 걷어 올리고 창문 종이도 떼어 버리되, 날씨가 매우 더우면 문 앞에 항아리를 놓고 새 물을 담아 서늘한 기운이 돌게 하며, 비바람이 쳐서 밤이 서늘해지면 얼른 발을 내려야 한다.
밀도 조절과 늙은 누에 다루기
누에가 자라 수가 불어나면 채반을 나누어 붐비지 않도록 덜어 주고, 너무 두껍게 겹쳐 누워 있으면 갈라서 눕혀 준다. 누에는 무르고 여린 것이라 저절로 서로 비비대고 부딪치게 되므로, 어릴 때도 자주 나누어 눕혀 사람이 돌보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하고, 커서도 늘 나누어 눕혀야 한다. 만약 사람이 이를 돌보지 않고 오랫동안 어지럽게 쌓이도록 내버려 두면 끝내는 누에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에가 상하거나 병드는 일은 흔히 여기서 비롯된다.
누에가 마지막 잠에서 깬 뒤 열대여섯 번 먹이를 먹고 나면 곧 늙는데, 고치실을 많이 얻고 적게 얻는 것은 오로지 이 먹은 횟수에 달려 있다. 북쪽 지방의 누에는 흔히 세 번만 잠을 자지만, 남쪽 지방의 누에는 모두 네 번 잠을 잔다. 날마다 다 자란 누에가 얼마나 되는지 보아 가며 먹이 주는 양을 줄여 나가되, 누에 열 마리 가운데 아홉 마리쯤이 다 자랐을 때 비로소 누에섶에 올릴 수 있다.
여름누에와 가을누에
또 여름누에와 가을누에가 있는데, 가을누에는 늦누에라고도 부른다. 여름누에는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내내 서늘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오직 모기와 파리가 걱정거리이니 반드시 장막을 쳐서 막아 주어야 한다. 가을누에는 처음에는 서늘하게 해 주다가 점점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 밖의 방법은 모두 앞서와 같다.
여름누에는 고치실을 켜는 데는 알맞지 않고 오직 솜을 만드는 데만 쓸 수 있다. 여름누에는 많이 기르지 않는 것이 좋으며, 혹 기르더라도 검은 허물을 벗은 뒤에는 날마다 이른 아침 한 번씩 똥을 가려 누여야 하는데, 그 똥은 또한 약재로도 쓸 수 있다.
고치 보관과 실켜기
무릇 누에고치는 서늘한 곳을 골라 얇게 펴 두어야 나방이 저절로 더디 나오므로 실 켜는 일이 바빠지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항아리에 고치를 넣고 쪄서 나방을 죽이는 방법도 있다. 실을 잘 켜는 비결은 오직 가늘면서 둥글고 고르고 단단하게 하여, 굵은 마디가 생겨 자새가 잘 돌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
고치실을 켜는 데는 뜨거운 물을 쓰는 방법과 미지근한 물을 쓰는 방법이 있는데, 어느 쪽이든 반드시 자새와 물레가 있어야 쓸 수 있다. 가마솥은 반드시 커야 하는데, 가마솥 위에 큰 시루를 얹고 그 시루 안에 물을 가득 부은 다음, 시루 한가운데 나무 하나를 가로질러 놓으면 두 사람이 양쪽에 마주 앉아 실을 켤 수 있다. 물은 늘 끓고 있어야 하며, 고치는 조금씩 넣어야 하니 너무 많이 넣으면 미처 다 삶아지지 않으므로 덜어 내는 것이 좋다. 굵은 실로 외올을 켤 경우에는 두 올을 합쳐 켜는 것도 좋지만, 이는 깨끗하고 빛깔이 고운 미지근한 물로 켠 실만은 못하다.
미지근한 물을 쓸 때는 그릇이 반드시 커야 하는데, 먼저 솥 바깥에 진흙을 바르고 실을 켤 때는 물을 열에 아홉 푼쯤 붓는다. 물은 따뜻한 기운이 오래 지속되도록 할 것이요, 금방 뜨거웠다가 금방 식어서는 안 된다. 이 방법으로는 여러 올을 한데 모아 가는 실을 켤 수 있는데, 중간 정도 되는 고치라면 두 올을 합쳐 켤 수도 있다. 뜨거운 물을 쓰는 방법보다 훨씬 정성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실이 더 튼튼하다.
뽕잎이 모자랄 때
누에를 기르다가 뽕잎이 모자랄 때는 감초 즙을 나뭇잎에 뿌리고 그 위에 쌀가루를 발라 말린 뒤 먹이면 하룻밤을 버틸 수 있는데, 이를 임시로 대신 먹이는 잎이라 한다.
먹이는 때를 살피는 열 가지 상태
춥고, 덥고, 주리고, 배부르고, 성기고, 빽빽하고, 잠들고, 깨어나고, 서두르고, 늦추는 이 열 가지가 바로 먹이를 줄 때 살펴야 할 상태다.
두 가지 빛깔로 알아보는 때
흰빛이 돌면 먹이를 찾는 때이고, 푸른빛이 돌면 많이 먹여야 할 때다. 누에의 살갗이 쭈그러드는 것은 굶주려서 그런 것이며, 누런빛이 돌면 차츰 먹이 주는 것을 그쳐야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누에가 막 잠들려 할 때는 어둡게 해 주어야 하고,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밝게 해 주어야 하며, 누에가 모두 잠들었을 때는 따뜻하고 어둡게 해 주어야 하고, 누에가 모두 깨어났을 때는 밝고 서늘하게 해 주어야 한다. 누에가 뽕을 먹을 때는 바람이 통하게 해 주고 뽕잎을 더 주어야 하며, 누에가 서두르거나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바람을 두려워하므로 얇은 뽕잎을 천천히 먹여야 한다.
잠재우기와 먹이기에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
누에가 막 깨어났을 때 연기를 마시면 곧바로 검게 변하며 죽는 일이 많고, 차가운 이슬에 젖은 뽕잎을 먹으면 반드시 하얗게 말라 죽는 병이 생기며, 딴 지 오래되어 마르고 열기가 있는 뽕잎을 먹으면 배가 뭉치거나 머리가 커지거나 꼬리가 뾰족해지고, 창문을 갑자기 열어 세찬 바람을 마시게 하면 반드시 붉게 말라 죽는 병이 많이 생긴다. 매번 똥을 가려 준 뒤에는 누에를 성글게 눕혀야 한다. 누에가 빽빽하면 기운 센 놈은 뽕잎을 얻어먹지만 약한 놈은 얻어먹지 못하고 채반 가장자리로 밀려나 헤매게 된다. 그러나 누에를 펴서 골라 눕힐 때 함부로 손으로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서로 부딪쳐 상하게 되는데, 늙은 누에나 붉게 말라 죽는 병은 흔히 이 때문에 생긴다. 하얗게 말라 죽은 누에는 거두어 두면 약으로 쓸 수 있다.
성글게 두어야 할 세 번의 때
누에가 알에서 막 나왔을 때와 채반에 처음 올릴 때, 그리고 누에섶에 올릴 때다.
넉넉해야 할 다섯 가지
첫째는 일할 사람이요, 둘째는 잠실이요, 셋째는 뽕밭이요, 넷째는 채반이요, 다섯째는 누에섶이다.
여러 가지 금기
물에 젖거나 열기가 있는 뽕잎을 꺼리고, 쨍쨍한 볕을 꺼리며, 볕을 쬐며 바람 맞는 것을 꺼린다. 누에가 막 나왔을 때 집안 먼지를 쓸어내는 것을 꺼리고, 생선이나 고기를 굽거나 볶는 것을 꺼리며, 잠실 안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우는 것을 꺼린다. 달이 차지 않은 산모는 누에를 치지 말아야 한다. 술을 지니고 뽕잎을 써는 것이나, 누에똥을 가려 내며 나누어 눕히는 것을 꺼리며, 누에는 나서부터 늙을 때까지 연기를 꺼린다. 또한 상을 치르는 사람이나 몸이 정결하지 못한 사람이 방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고, 더러운 냄새를 가까이하는 것을 꺼리며, 술이나 식초, 그리고 냄새가 강한 다섯 가지 채소나 사향 같은 물건을 꺼린다.
소 기르는 법
소는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므로, 가축을 잘 기르는 사람은 반드시 소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소의 피와 기운도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너무 춥거나 덥게 하지 말아야 하고, 그 성정도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지나치게 부리지 말아야 한다. 서늘하고 따뜻함을 알맞게 해 주고, 배고픔과 배부름을 때에 맞게 해 주며, 성질을 잘 맞추어 주고, 일과 휴식을 절도 있게 해 주고, 피와 기운을 잘 길러 주어야 한다. 이렇게만 한다면 털가죽에 윤기가 흐르고 몸에 살이 올라 힘이 넉넉해져서 늙어도 쇠약해지지 않을 것이니, 어찌 지쳐서 파리하게 마르는 폐단이 있겠는가.
이른 봄에는 반드시 외양간 안에 두껍게 쌓인 똥 무더기를 쳐내고, 그 뒤로도 열흘에 한 번씩 계속 똥을 치워서 더러운 기운이 답답하게 차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 발굽이 똥 무더기에 잠기면 병이 나기 쉬우므로 수시로 깨끗하지 못한 것을 없애 주어야 하니, 깨끗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다.
묵은 풀이 다 말라 없어지고 새 풀이 아직 나지 않았을 때는 깨끗한 볏짚을 가늘게 썰어 밀기울이나 겨, 콩 등을 섞어서 물기가 약간 있게 하여 구유에 담아 배불리 먹인다. 봄가을 풀이 무성할 때는 놓아 먹이되, 물을 먹인 뒤에 풀을 주면 배 속이 거북하지 않게 된다. 날씨가 흐리고 눈보라 치는 한겨울에는 소를 곧바로 따뜻한 곳에 두고 죽을 끓여 먹여야 하니, 이를 위해 미리 콩잎 따위를 거두어 잘게 부수어 저장해 두어야 한다. 쌀뜨물에 잘게 썬 풀이나 겨, 밀기울 등을 섞어 먹이고 또는 목화씨 깻묵을 먹이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배고픔과 배부름을 때에 맞게 해서 그 성정에 맞춘다는 것이다.
농사철이 될 때마다 낮에는 놓아 먹이고 밤에는 다시 배불리 먹인 다음, 새벽 어스름 해가 뜨기 전 서늘한 때를 타서 부리면 힘이 평소보다 갑절이 되어 한나절 일이 하루 종일 일한 것보다 많을 것이다. 해가 높이 떠서 더워지고 소가 헐떡거리면 쉬게 해 주어야지 힘을 다 빼서 지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남쪽 지방에서 낮에 밭 가는 방법이다. 만약 땅이 넓게 트인 평야 지대라면, 소를 밤에 밭 갈게 하여 한낮의 뙤약볕을 피하고, 밤중에는 꼴과 콩을 먹여 힘을 보태 주며, 이튿날 밭갈이를 마치면 곧바로 놓아 쉬게 하니, 이것이 바로 일하고 쉬는 것을 절도 있게 하여 피와 기운을 기른다는 것이다.
먹이가 그 배고픔을 채우기에 모자라고 마실 물이 그 갈증을 풀기에 모자란 데다가, 추위에 얼리고 뙤약볕에 쬐며 힘을 다 빼서 몸을 파리하게 만들고 쉼 없이 부려 고되게 하면서 매질까지 한다면, 죽는 소가 태반일 것이다. 배고프면 먹으려 하고 목마르면 마시려 하는 것은 모든 짐승의 본디 성정이다. 그런데도 지치도록 부려서 숨을 헐떡이고 땀을 뻘뻘 흘리게 한 밭갈이 소를 먹이를 찾는다며 산에 풀어 놓거나 물가로 내몰기도 하니, 소가 물만 마시고 나면 속이 텅 비어 먹이를 먹지 못해서 병이 생기게 된다. 소를 높은 산에 풀어 놓았을 때 기운이 다 빠져 쓰러져 있는 것을 이따금 볼 수 있다. 그 힘은 이용하면서 그 목숨은 이렇게 해치니, 소를 사랑하여 기르는 도리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소의 병은 일정하지 않으나 약을 쓰는 이치는 사람과 서로 비슷하다. 다만 약을 지을 때 양을 넉넉하게 하여 먹이면 낫지 않는 병이 없다.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은 열을 받아 생긴 병이니 피를 다스리는 약으로 치료한다. 찬 기운이 뭉치면 콧물이 마르고 숨이 가쁘지 않으니 흩어 내는 약을 쓰고, 열이 뭉치면 콧물이 흐르고 숨이 가쁘니 설사시키는 약을 쓴다. 이런 증세는 흔히 소의 돌림병이 유행할 때 그 훈김이 서로 옮아서 생기는 것이니, 다른 소가 있는 곳에 가지 않도록 피하고 나쁜 기운을 없애면서 약을 쓰면 혹 살릴 수도 있다.
좋은 소를 가리는 법
소를 상 보는 법은 이러하다. 눈은 반드시 뿔 가까이에 있는 것이 좋고 눈은 커야 하며, 눈 속에 흰 핏줄이 눈동자를 꿰뚫고 있거나 정강이뼈가 길고 뒷다리가 넓으면 모두 부리기에 좋다. 털은 아주 촘촘해야 하니, 털이 성글고 길면 반드시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뿔은 가늘고 몸집은 굵으며 꼬리 끝이 길고 크면 좋은 소이고, 꼬리 끝의 털이 어지러이 헝클어져 꼬불꼬불 말려 있으면 명이 짧은 소다. 어미 소가 털이 희고 젖꼭지가 붉으면 새끼를 많이 낳으며, 하룻밤에 똥을 세 무더기 누는 소는 한 해에 새끼를 한 마리씩 낳는다. 젖꼭지가 성글면서 검은 소는 새끼를 낳기 어렵다.
소를 치료하는 데 급히 쓰는 간단한 처방들
소가 풍토병에 걸렸을 때 안식향을 외양간에서 태워 그 연기를 쐬게 한다.
소가 기침할 때 조각 가루를 콧구멍에 불어 넣어 주고, 짚신 밑창으로 꼬리 밑동의 관절 부분을 두드려 준다.
소가 옴이나 헌데가 났을 때 메밀짚을 태운 잿물로 씻어 준다. 말도 이와 같이 한다.
소의 어깨가 짓물렀을 때 묵은 솜 서 냥을 알맞게 태워 참기름을 타서 발라 주면 사흘 만에 곧 낫는다.
소의 발굽 사이가 물렀을 때 붉은 광석 가루를 돼지기름에 섞어서 발굽 사이 물기를 메우고 쇠를 불에 달구어 지진다.
소가 열을 받았을 때 참깨 잎을 찧어 즙을 내어 먹이면 당장 낫는다.
소가 기침감기에 걸렸을 때 소금 한 냥에 된장 한 되를 타서 먹인다.
소의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올 때 당귀와 잇꽃을 곱게 가루 내어 술에 타서 한 사발씩 먹인다.
소의 몸에 벌레가 생겼을 때 당귀를 잘 찧어 식초에 담가 하룻밤 재운 뒤 먹인다.
소의 꼬리가 마르고 풀과 물을 먹지 않을 때 대황, 백지, 황련 각 반 냥씩을 가루로 만들어 달걀 한 개의 흰자위와 술에 타서 먹이면 당장 효험이 있다.
소가 갑자기 배가 부풀어 오르며 미친 듯이 날뛰어 사람을 들이받으려 할 때 대황과 황련 각 다섯 돈을 달걀 한 개의 흰자위와 술 한 사발에 골고루 타서 먹인다.
소가 여러 벌레를 잘못 먹어 배가 부풀었을 때 제비 똥 한 홉을 물에 타서 먹인다.
소의 눈에 흰 막이 생겨 시야를 가릴 때 소금과 대나무 마디를 알맞게 태운 다음 곱게 갈아 조금 덜어서 흰 막 위에 찍어 발라 준다.
(용어) 안식향, 조각, 당귀, 잇꽃, 대황, 백지, 황련은 모두 전통적으로 약재로 쓰이던 식물이나 광물이다. 여기서는 원문에 적힌 처방을 그대로 옮겼을 뿐, 오늘날 실제 효과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닭 기르는 법
닭의 씨는 뽕잎이 떨어질 무렵, 곧 가을에 태어난 것이 가장 좋고 봄이나 여름에 태어난 것은 좋지 않다. 봄이나 여름에 깬 병아리는 서른 날 안에는 둥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먹이는 마른 밥을 주어야지, 만약 젖은 밥을 먹이면 배꼽에 고름이 생긴다.
닭이 올라앉는 홰는 복숭아나무나 오얏나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홰를 놓는 자리는 방위를 가려서 정해야 하는데, 마땅히 정해진 방향에 안치해야 한다. 그러면 비록 닭 우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지 않더라도 닭이 편안하고 살이 오르며, 여우나 살쾡이에게 잡아먹힐 걱정도 없다. 만약 홰를 버드나무로 만들어 태우면 어린 닭은 죽고 큰 닭은 눈이 멀게 된다.
(용어) 원문에는 홰의 방향을 정할 때 간지와 별자리 이름으로 방위를 가리키는 옛 술법이 적혀 있는데,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 방위 점술이므로 여기서는 "방위를 가려 정해야 한다"로만 옮긴다.
뜰 안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그 아래에 삼태기 하나를 매달아 두어 닭이 그 위에 올라가 자게 하거나, 담장 안에 작은 벽감을 짓고 풀로 둥지를 엮어 닭이 알을 품게 한다. 그 뜰 곁에는 수수를 한 마지기쯤 심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이 되면 그 수수를 거두어 다시 닭에게 먹이면 닭이 쉽게 크고 살찐다. 또는 큰 뜰 하나를 마련하여 둘레에 담을 두른 다음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담을 하나 더 쌓아 두 구역으로 나누고, 그 두 뜰 담 밑의 동서남북 네 방향에 저마다 닭집을 하나씩 두어 닭이 쉴 곳으로 삼는다. 그리고 열흘마다 죽을 쑤어 뜰의 한쪽에 뿌리고 풀로 덮어 두면, 이틀 만에 그 죽이 모두 벌레로 변하여 닭이 쪼아 먹게 되는데, 다른 한쪽에도 이렇게 해 두었다가 한쪽을 다 쪼아 먹으면 곧바로 닭을 다른 쪽으로 몰아 준다. 이렇게 하면 닭이 저절로 살찌고 알도 끊임없이 잘 낳을 것이다.
닭을 살찌우는 방법은, 기름을 밀가루에 섞어 짓이겨 손가락 끝만 한 덩이로 만들어서 날마다 열 개 남짓씩 먹이거나, 이를 되게 지은 밥에 섞고 유황 가루를 조금 넣어 곱게 갈아서 밥에 골고루 섞어 먹이면 며칠 만에 곧 살이 오른다. 어미 닭은 봄가을에 걸쳐 한 해에 병아리를 두 번 깔 수 있다. 어미 닭이 알을 낳을 때 날마다 그놈을 안고 참깨를 먹이면 늘 알만 낳고 알을 품지는 않는다. 닭에서 얻은 알은 물론 집에서 먹기도 하지만, 다른 물건과 바꾸어 쓸 수도 있으니 살림에도 한 가지 보탬이 된다.
무릇 닭이 여러 잡병에 걸렸을 때는 참기름을 먹이면 당장 낫고, 지네의 독에 쏘였을 때는 산수유를 갈아서 먹인다. 만약 돌림병이 돌 때 한 마리가 옮으면 나머지 닭도 모두 전염되어 죽게 되니, 즉시 쪽풀을 닭의 부리에 넣어 거꾸로 매달아 놓거나 다락 위로 옮겨 놓으면 병을 피할 수도 있다.
물고기 기르는 법
물고기 기르는 법을 다룬 옛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는 데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물에서 기르는 가축이 으뜸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에서 기르는 가축이란 곧 물고기를 가리킨다.
여섯 마지기 넓이로 못을 만들고 못 가운데 아홉 개의 깊은 자리를 만든 다음, 새끼를 밴 석 자 길이의 잉어 스무 마리와 석 자 길이의 수컷 잉어 네 마리를 구해다가 2월의 첫 번째 경일에 못 가운데 넣되, 물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어야 물고기가 반드시 산다. 4월에는 자라 한 마리를 잡아넣고, 6월에는 두 마리를, 8월에는 세 마리를 잡아넣는다.
(용어) 경일은 옛 육십갑자 가운데 천간이 경에 해당하는 날을 가리킨다.
옛말에 따르면, 못 안의 물고기가 삼백육십 마리가 차면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이무기가 되어 물고기 떼를 이끌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고 하는데, 이 자라를 넣어 두면 물고기가 다시 날아가지 못하고, 못 둘레의 아홉 개 자리를 스스로 강과 호수로 여기며 머물러 산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이듬해 2월에는 한 자 길이 된 것 만 마리와 석 자 길이 된 것 사만 마리와 두 자 길이 된 것 만 마리를 얻게 되고, 그다음 해에는 한 자 길이 된 것 십만 마리와 두 자 길이 된 것 오만 마리와 넉 자 길이 된 것 사만 마리를 얻게 되는데, 이 가운데 두 자 길이 된 것 이천 마리는 그대로 남겨 씨앗으로 삼고 나머지는 모두 내다 판다. 또 그 이듬해가 되면 물고기 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게 된다. 잉어를 기르는 것은 자라는 속도가 빠르고 서로 잡아먹지 않으므로 귀하게 여긴다.
무릇 물고기를 기르는 곳은 진흙이 기름지고 물풀이 우거진 곳을 고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반드시 그 곁에 집을 짓고 사람이 살면서 지키게 하되, 여러 방법을 마련해 수달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무릇 사는 곳과 가까운 호수에 이 방법대로 물고기를 기른다면 재산을 빨리 불릴 수 있으니, 이렇게만 하면 효험이 틀림없다. 요즘 사람들은 강에 나가 물고기 새끼를 잡아다가 못 안에 놓아 기르면서 푸른 풀을 먹이는데, 한 해에 한 자쯤 자라면 이를 잡아먹으니 이 또한 손쉬운 방법이 될 만하다.
또 못 언덕 위에 양 우리를 짓고 양을 기르면서 매일 아침 일찍 양의 똥을 못 가운데 쓸어 넣어 초식 물고기를 먹이고, 이 물고기가 눈 똥으로 다시 다른 물고기를 먹일 수 있으니, 이렇게 하면 굳이 사람이 손수 풀을 베어 줄 필요가 없고 다만 물고기가 이따금 먹이가 부족한 정도에 그칠 뿐이다. 혹시라도 물고기가 독을 먹어 하얀 배를 위로 뒤집고 있으면, 급히 그 독 기운을 흩어 내고 따로 새 물을 끌어다 못에 넣은 다음, 파초 잎을 찧어 새 물이 흘러드는 곳에 넣어 물고기가 그 물을 마시게 하면 곧 독이 풀리며, 오줌을 못에 흘려 넣어도 독이 풀린다.
다섯 가지 암가축 기르는 법
다섯 가지 암가축을 기르는 법에 따르면, 첫째는 물고기를 기르는 것이고, 둘째는 양을 기르는 것이고, 셋째는 돼지를 기르는 것이고, 넷째는 닭을 기르는 것이고, 다섯째는 거위와 오리를 기르는 것인데, 이 다섯 가지 가운데 오직 물에서 기르는 가축의 이익이 가장 크다.
마땅히 산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며, 산이 모여들고 물이 굽어드는 곳을 가려 집을 짓고, 먼저 밭과 산자락을 마련한 다음, 모든 일꾼을 시켜 곧바로 곡식을 심고, 채소를 심고,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쳐서 실을 켜게 하여 입고 먹을 것의 근원을 만들게 한다. 그런 뒤에는 큰 못을 파서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못 안에 여러 개의 섬과 골짜기 모양의 자리를 두어 마치 강과 호수처럼 만들고는, 거기에 새우며 자라며 소라 따위를 잡아넣어 지키게 함으로써 물고기가 서로 즐기며 스스로 강과 호수 가운데 있다고 여기면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닐도록 해야 한다.
못을 만드는 법
못을 열 마지기 넓이로 하면 한가운데를 백 걸음쯤 넓게 트고 네 방면도 모두 이와 같이 한다. 그 안에 아홉 개의 돈대를 만든 다음, 여덟 개의 돈대에는 여덟 방위에 맞추어 부적을 적은 패를 세우고, 한가운데 돈대에는 여덟모진 정자를 짓는다. 좋은 날을 가려 패를 세우되, 그날이 어느 별자리에 해당하든 그 별 이름을 부적에 적어 넣은 다음 패를 세운다. 아홉 자리의 부적 패는 모두 돌에 새겨 붉은 글씨로 쓰고, 그 위에는 용왕을 모신 형상을 만들어 놓고서 봄철에 제사를 지내고 달마다 또 제사를 지낸다. 이렇게 옛 법대로 만들면 반드시 효험이 있다고 한다.
만약 흐르는 물이 있으면 못의 흙이 마를 때 이 물을 더 대어 주고, 못이 가득 차면 이 물을 빼내야 한다. 못에 둑을 쌓을 때는 좋은 날과 시각을 가려서 공사를 시작하고, 둑을 완전히 쌓고 나서 물을 가득 채운 다음에 물고기 씨를 넣을 때도, 어느 방위가 그날의 생기 있는 문에 해당하는지에 맞추어 넣어야 한다고 하였다. 옛 방법에 이르기를, 어느 날에는 어느 방위가 좋다는 식으로 각 날짜에 맞는 방위를 정해 두었으니, 이 방위에 맞추어 물고기 씨를 넣으면 물고기가 죽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용어) 여기서 말하는 "생기 있는 문"이란 옛 방위 점술에서 길하다고 여기던 방위를 가리키는 말이며, 날짜의 간지에 따라 그날그날 좋은 방위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오늘날에는 실증된 근거가 있는 방법은 아니며, 원문에 있는 옛 민간 술법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상으로 한정록 제16권 치농을 마친다. 이 권은 앞선 권들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은둔한 선비의 풍류나 마음가짐이 아니라, 땅을 골라 집을 짓고 곡식과 채소와 나무를 심으며 누에를 치고 소와 닭과 물고기를 기르는 일에 이르기까지, 시골에서 실제로 살림을 꾸리는 데 필요한 지식을 매우 꼼꼼하게 모아 놓았다. 절기와 토양에 따라 씨 뿌리는 때를 가리는 법에서부터 수십 가지 작물 하나하나의 재배법, 누에의 하루하루 상태에 따라 뽕잎의 양을 조절하는 법, 소의 병을 고치는 여러 처방, 그리고 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며 방위에 따라 부적을 세우는 옛 풍속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허균이 이렇게 세세한 농사 지식까지 굳이 갈무리해 둔 것은, 한가로이 사는 삶이 결코 관념적인 이상에 그쳐서는 안 되며 실제로 땅에 발을 딛고 스스로 먹고살 수 있어야 비로소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한정록 제17권 · 병화사
출처: 한정록 제17권, 병화사
배경: 병화사는 꽃을 꽃병에 꽂아 기르고 감상하는 법을 적은 글로, 명나라 말기의 문인 원굉도(호는 석공)가 지었다. 원굉도는 그의 형 원종도, 아우 원중도와 더불어 '삼원'이라 불리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을 담은 글쓰기를 추구한 공안파 문학의 중심인물로 이름이 높았다. 허균은 한정록 제17권부터 제20권까지는 자신의 글을 짓지 않고, 원굉도의 병화사와 상정, 오영야(오빈)의 서헌, 진계유의 서화금탕, 이렇게 네 편의 글을 통째로 옮겨 실었다. 이는 청빈하면서도 운치 있게 사는 법을 담은 이 글들의 정취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하고자, 요약하거나 발췌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병화사는 머리말에 해당하는 글에 이어 꽃의 종류, 품등, 그릇, 물, 배치, 속된 것을 물리치는 법, 꽃의 재앙, 목욕시키는 법, 시중드는 꽃,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성벽, 맑은 감상, 경계할 일, 꽃의 서열까지 열세 항목으로 이루어져, 꽃을 고르고 꽂고 돌보고 감상하는 법을 세세하게 들려준다.
일러두기: 이 권은 허균 자신의 글이 아니라 명나라 문인 원굉도가 지은 병화사를 허균이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이다. 그래서 이 권에는 허균 특유의 문체보다 원굉도 특유의 섬세하고 유희적인 문체가 짙게 배어 있다. 원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고사에는 한자 없이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꽃과 화병의 세부 품종은 원문의 내용을 살려 모두 옮기되, 지나치게 전문적인 명칭은 뜻을 풀어 쉬운 말로 옮겼다.
머리말
세상을 등지고 그윽하게 사는 선비와 풍류를 아는 문인은 노래와 여색을 멀리하니, 그 마음이 기댈 곳은 자연스레 산과 물, 꽃과 대나무로 향하게 마련이다. 산수화초에는 명예도 이익도 끼어들지 않고 다툼도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시끄러운 자리와 명리의 덤불 속에 눌러앉아 눈은 속세의 먼지에 흐려지고 마음은 계산하느라 지쳐 있으니, 아무리 산수화초를 갖고 싶어도 그럴 틈이 없다. 그러니 산수화초는 오직 그윽한 선비와 풍류객만이 차지하여 하루의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다.
그윽한 선비와 풍류객은 본디 다툼 없는 자리에 머물며 세상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산다. 그런데 산수화초만은 아무리 양보하려 해도 세상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고 받으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만은 마음 편히 차지할 수 있고 화가 미칠 걱정도 없다. 아,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등진 이와 뜻을 못 편 사내가 할 만한 일이다.
나는 한평생 이런 삶을 부러워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다가, 다행히 지금 벼슬에 나설지 물러날지 어중간한 처지에 놓이게 되어 세상과 다툴 일이 전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높은 바위에 갓을 벗어 걸어 두고 흐르는 물에 갓끈을 씻으며 살고도 싶었지만, 자그마한 벼슬자리에 매인 몸이라 그저 꽃나무를 기르고 대나무를 심는 것으로나마 스스로 즐거움을 삼으려 했다.
그러나 사는 집이 낮고 좁은 데다 이사도 잦아, 어쩔 수 없이 목이 길고 배가 불룩하여 마치 쓸개를 매단 듯한 병에 꽃을 꽂아 놓고 수시로 갈아 주게 되었다. 그러자 도성 안 이름난 집들이 저마다 소유한 이름난 꽃들이 하루아침에 내 책상 앞의 물건이 되었다. 가지와 잎을 손질하거나 물을 주는 수고 없이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꽃을 가진 이도 아까워하지 않고 구경하는 나도 다툴 일이 없다. 이야말로 글로 남길 만한 일이다.
아, 그러나 이것은 그저 한때 마음을 유쾌하게 해 줄 뿐이니, 산수를 벗 삼아 늘 노닐며 세월 가는 줄도 잊어버리는 큰 즐거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상은 석공(명나라 문인 원굉도의 호)이 적는다. 이제 꽃병에 관한 여러 품목을 아래에 늘어놓아, 일 벌이기를 좋아하면서도 청빈하게 사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꽃의 종류
북경은 날씨가 워낙 추워서 남쪽 지방의 이름난 꽃이 잘 올라오지 않고, 혹 올라오더라도 대개 권세가들의 차지가 되어 버리니 가난한 선비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가까운 데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꽃이나 얻어 기를 수밖에 없다.
무릇 꽃을 구하는 일은 벗을 구하는 일과 같다. 산속에 묻혀 사는 빼어난 선비는 그 생활이 사슴이나 고라니와 다름없어 무성한 풀숲에 온몸을 숨기고 사니, 내가 아무리 그와 벗하고 싶어도 벗할 수가 없다. 그러니 도시에서 세속의 무리들이 함께 손꼽는 뛰어난 선비를 벗 삼으려 하는 것이니, 이는 곧 가까운 데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구하는 셈이다.
내가 가까운 데서 쉽게 구하는 꽃으로는, 봄에는 매화와 해당화, 여름에는 모란과 작약과 석류꽃, 가을에는 목서(계수나무 꽃)와 연꽃과 국화, 겨울에는 섣달에 피는 매화가 있어, 한 방 안에 옛사람 순욱이 지녔다는 향기와 하안이 즐겨 바르던 분처럼 여러 꽃향기가 번갈아 손님으로 드나든다.
그런데 아무리 가까운 데서 구한다 해도 평범한 꽃까지 함부로 다 들이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대나무나 잣나무 가지 몇 개를 가져다 병을 채우기도 하니, 이는 마치 옛사람이 말했듯 노성한 인물은 세상을 떠나도 그 본보기만은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찌 저잣거리의 하찮은 무리를 어진 선비들의 모임에 함부로 끼워 넣어서야 되겠는가. 옛날 진나라의 환온이 별볼일 없는 황보희라는 자를 억지로 고상한 선비들 축에 끼워 주었다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 일과 같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용어) 순욱은 후한 시대 사람으로 몸에서 늘 향내가 풍겨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사흘 동안 향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안은 삼국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얼굴에 분 바르기를 좋아하여 늘 분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노성한 인물이 떠나도 본보기는 남는다는 말은 옛 시집 《시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2. 품등을 매기다
한나라 후궁 삼천 명 가운데 조비연의 여동생이 가장 아름다웠는데, 못지않게 총애를 받던 형씨와 윤씨 두 후궁은 그녀를 보고 오히려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이처럼 절세의 미인 앞에서는 다른 미인들도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고, 특이한 물건은 같은 부류 가운데서도 유독 뛰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절세의 미인을 평범한 여인과 한 수레에 태우고, 뛰어난 선비를 평범한 재주와 한자리에 앉힌다면, 이는 대체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매화 가운데는 여러 겹 꽃잎의 매화, 푸른 꽃받침의 매화, 나비 날개 같은 매화, 백 겹 노르스름한 매화를, 해당화 가운데는 자줏빛이 도는 서부 해당화를, 모란 가운데는 누런 겹모란과 초록 나비무늬 모란과 수박빛 모란과 짙은 붉은 겹모란과 푸른 사자 빛깔 모란을, 작약 가운데는 뭇 꽃 중의 으뜸이라는 품종과 임금이 입는 옷빛 노란 품종과 보배로 꾸민 듯한 품종을, 석류꽃 가운데는 짙은 홍색에 꽃잎이 겹겹인 것을, 연꽃 가운데는 푸른 꽃잎에 비단 같은 테두리가 둘린 것을, 목서 가운데는 공처럼 둥근 열매가 맺히고 노란 꽃이 일찍 피는 것을, 국화 가운데는 갖가지 빛깔의 학의 깃털 같은 품종과 서시가 오려 놓은 듯한 품종을, 섣달 매화 가운데는 입을 벌린 방울 모양의 품종을 으뜸으로 친다.
이상은 모두 이름난 품종들로, 가난한 선비의 서재 안에 이 모두를 갖출 수는 없다. 내가 지금 이 몇 가지를 늘어놓은 것은, 여러 꽃 가운데서 평범한 것을 진귀한 것들 틈에 함부로 끼워 넣어서는 안 됨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무릇 한 글자의 평가를 받는 일이 임금이 내리는 큰 은총을 받는 것보다 더 영예로운 법이니, 이제 좋은 꽃동산의 사관을 시켜 꽃 세계의 역사를 쓰게 한다면 어찌 엄격함과 조심스러움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자도 역사서 《춘추》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있었던 사실 자체는 그대로 두고, 오직 그에 대한 평론만은 내가 감히 붙였을 뿐이다."
(용어) 조비연은 한나라 성제의 왕후였던 여인이고, 그 여동생 역시 성제의 총애를 받았다. 옛사람들은 곧은 역사가를 가리켜 흔히 진나라의 사관 동호 같다고 일컬었다.
3. 그릇
꽃을 기르는 병도 반드시 정밀하고 좋은 것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양귀비나 조비연 같은 절세미인을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살게 할 수 없고, 풍류를 알던 옛 선비들을 술집 같은 데로 불러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찍이 강남 지방 어느 집에서 소장한 물건들을 본 적이 있는데, 옛 청동 술잔 모양의 그릇은 푸르고 취색 도는 무늬가 깊이 배어 있고 모래알 같은 반점이 도드라져 있어 가히 꽃의 황금 궁궐이라 할 만했고, 그다음으로 관가의 가마와 여러 이름난 가마에서 구운 그릇들은 곱고 윤기가 흘러 모두 꽃의 아담한 처소라 할 만했다.
무릇 서재 안에 두는 꽃병은 반드시 작고 아담해야 한다.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는 옛 술잔 모양을 본뜬 병, 술잔 모양 병, 제기 모양 병, 네모진 한나라풍 병, 꾸밈없는 병, 납작한 병 들이 있고, 도자기로는 종이방망이 모양, 거위 목 모양, 자루 모양, 항아리 모양, 주머니 모양, 시초 풀 다발 모양, 부들방망이 모양의 병들이 있는데, 그 크기가 다 작고 단출해야 맑고 고상한 자리에 어울린다. 그렇지 않으면 좀처럼 쓰이지 않는 사당 안의 향로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해도 속될 뿐이다.
그러나 꽃 모양에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모란과 작약과 연꽃 같은 것은 꽃송이가 크므로 이런 작은 병에만 국한할 수 없다.
일찍이 듣기로, 오래된 청동 그릇이 흙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파내어지면 흙의 기운을 흠뻑 머금고 있어, 여기에 꽃을 꽂으면 빛깔이 선명하고 마치 뜰에 핀 생화처럼 빨리 피고 더디 시들며 심지어 병 속에서 열매까지 맺힌다고 한다. 질그릇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오래되고 귀한 병은 그저 완상하기 위한 것만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가난한 선비는 이런 것을 구할 수 없으니, 유명한 가마에서 구운 자기병 한두 점만 얻어도 거지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셈이라 할 만하다.
겨울철 꽃은 주석으로 만든 대롱에 간수해야 한다. 북쪽 지방은 날씨가 추워서 그릇 속 물이 얼면 청동 그릇도 깨질 수 있으니 도자기야 말할 것도 없다. 다만 물속에 유황을 조금 넣어 두면 그릇이 얼어 깨지지 않는다.
4. 물을 고르다
도성 서산에 있는 벽운사의 물과 열백호의 물과 용왕당의 물은 모두 꽃병에 쓸 만하지만, 한번 고량교를 지나고 나면 곧 흐린 물이 되어 버린다. 무릇 꽃병에 쓰는 물은 바람과 햇볕을 오래 쏘인 것이어야 한다.
그 밖에 상원의 물, 만정의 물, 사과둔의 물, 왕마마정의 물은 맛은 달지만 꽃병에 쓰면 꽃이 잘 자라지 않고, 짠물은 더더욱 꺼리니 그 맛이 유난히 짜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실 익을 무렵에 내린 빗물을 많이 받아 두는 것만 못하다.
물을 받아 두는 법은, 물을 처음 항아리에 담을 때 벌겋게 타는 석탄 한 덩이를 넣어 두면 해가 바뀌어도 물이 썩지 않는다. 이 물은 꽃을 기르는 데 쓸 뿐 아니라 차를 끓이는 데도 쓸 수 있다.
5. 알맞은 배치
꽃병에 꽃을 꽂을 때는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된다. 아무리 많아도 두세 가지를 넘기지 않도록 하고, 높낮이와 밀도를 마치 그림을 배치하듯 해야 절묘하다.
꽃병을 늘어놓을 때는 서로 마주 보게 하거나, 한 줄로 늘어세우거나, 나란히 줄지어 놓거나, 끈으로 묶어 놓듯 하는 것을 꺼린다. 무릇 꽃의 배치가 가지런하다는 것은, 그 자리가 일정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자연스러운 정취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마치 소식(자는 자첨)의 문장이 마음 가는 대로 끊어지고 이어지듯, 이백(호는 청련)의 시구가 대구에 얽매이지 않듯 해야 하니, 이것이 진짜 가지런함이다. 만약 가지와 잎이 서로 맞닿고 붉고 흰 빛깔이 나란히 짝을 이루게 한다면, 이는 마치 궁궐 층계 아래에 무덤 앞 돌기둥을 세워 놓은 꼴이니, 어찌 가지런한 배치라 하겠는가.
(용어) 소식과 이백은 모두 당·송 시대의 이름난 문인으로, 여기서는 그들의 글이 격식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절로 조화를 이루었음을 빗댄 것이다.
6. 속된 것을 물리치다
방 안에는 자연 그대로의 나무로 만든 책상 하나와 등나무로 엮은 평상 하나면 충분하다. 다만 책상은 널찍하고 두툼하며 결이 곱고 반들거려야 한다. 그 밖에 면과 테두리에 칠을 한 탁자나, 금박을 입힌 자개 평상이나, 알록달록 꽃을 그려 넣은 병꽂이 같은 것은 들이지 않아야 한다.
7. 꽃의 재앙
꽃 아래서 향을 피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마치 찻물에 과일을 넣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다. 무릇 차의 참맛은 단맛이나 쓴맛을 더한다고 나는 것이 아니고, 꽃의 참향기도 향 연기를 쐰다고 나는 것이 아니다. 차 맛이 변하고 꽃향기가 상하는 것은 모두 속된 이들의 잘못이다. 향 연기는 성질이 메마르고 매워서 한번 그 독한 기운을 쐬면 꽃은 곧 말라 버리니, 향은 실로 꽃을 해치는 칼날과 같다.
또한 꽃 아래서는 절대로 향을 피우거나 조제하지 말아야 하니, 향 속에 사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옛날 한희재라는 이가 "목서에는 용뇌향이, 도미(꽃이자 술 이름이기도 하다)에는 물에 가라앉지 않는다는 침향이, 난초에는 전단향·침향·계설향·훈륙향 네 가지를 통틀어 이르는 향이, 함소꽃에는 사향이, 치자꽃에는 전단향이 어울린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마치 죽순 나물에 고기를 곁들이는 격이니, 이는 관청 푸줏간에서나 할 법한 일이지 고상한 선비가 할 일은 아니다.
촛불 그을음이나 등잔 연기도 다 꽃을 죽이는 것이니 서둘러 물리쳐야 한다. 이런 것들을 꽃의 재앙이라 이르는 것이 어찌 마땅하지 않겠는가.
(용어) 한희재는 오대 남당 시대 사람으로 문장과 서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8. 목욕시키기
도성에는 이따금 흙바람이 몰아쳐, 환하던 창문과 깨끗하던 책상 위에 몰려들 때마다 흙먼지가 한 치 넘게 쌓이곤 하니, 꽃병이 겪는 곤욕이 이보다 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꽃은 반드시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야 한다.
무릇 아무리 뛰어난 미인이라도 단장하고 손질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어지는 법인데, 잎 몇 장과 시든 꽃이 때 묻은 채 손질도 받지 못하고 흙먼지 속에 버려져 있다면 이내 시들어 버릴 터이니, 내가 어찌 그것을 감상할 수 있겠는가.
꽃에도 기뻐하는 때와 성내는 때, 깨어 있는 때와 잠든 때, 새벽과 저녁이 있으니, 꽃을 목욕시키는 이가 그 때를 잘 맞추어야만 단비를 내려 주는 셈이 된다. 구름이 엷게 낀 때나 햇빛이 희미한 때나 해 질 무렵이나 달이 환히 뜬 때는 꽃의 새벽이요, 거센 바람이 몰아치거나 장마가 계속되거나 날씨가 몹시 덥거나 추운 때는 꽃의 저녁이요, 붉은 꽃잎에 햇살이 은은히 스미고 고운 자태에 바람이 살랑이는 때는 꽃의 기쁨이요, 술 취한 사람처럼 빛깔이 흐릿하고 안개 낀 듯한 때는 꽃의 시름이요, 지친 가지가 마치 바람에 시달린 듯 늘어진 때는 꽃의 잠이요, 생긋 웃으며 눈을 굴리듯 광채가 흘러넘치는 때는 꽃의 깨어남이다.
새벽은 널따란 뜨락이나 큰 집과 같고, 저녁은 굽이진 방이나 깊숙한 거실과 같고, 시름은 숨죽이고 오도카니 앉은 모습과 같고, 기쁨은 환호하며 웃는 모습과 같고, 잠은 발을 드리우거나 휘장을 내린 모습과 같고, 깨어남은 기름기 흐르고 윤기가 번지르르한 모습과 같으니, 그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그 자리를 알맞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새벽에 목욕시키는 것이 으뜸이고, 잠든 때에 시키는 것이 그다음이며, 기쁠 때에 시키는 것은 그보다 못하다. 만약 저녁이나 시름에 잠긴 때에 목욕을 시킨다면 이는 참으로 꽃에게 벌을 주는 셈이니, 무엇을 얻겠는가.
꽃을 목욕시키는 법은, 맛이 달고 맑은 샘물을 써서 아주 가늘게 뿌려 마치 가랑비에 취기가 깨고 맑은 이슬에 옷자락이 젖듯 해야 하며, 손으로 함부로 만지거나 손가락으로 꺾어서는 안 되고, 거칠고 경솔한 종에게 맡겨서도 안 된다. 매화를 목욕시키는 데는 속세를 등진 선비가, 해당화를 목욕시키는 데는 운치 있는 손님이, 모란과 작약을 목욕시키는 데는 곱게 단장한 어린 소녀가, 석류꽃을 목욕시키는 데는 얼굴 고운 몸종이, 목서를 목욕시키는 데는 맑고 영리한 아이가, 연꽃을 목욕시키는 데는 얼굴 고운 첩이, 국화를 목욕시키는 데는 예스럽고 기이한 풍모를 지닌 이가, 섣달 매화를 목욕시키는 데는 맑고 야윈 스님이 어울린다.
다만 겨울꽃은 목욕을 견디지 못하므로 가벼운 비단으로 감싸 보호해 주어야만 자태가 한결 돋보이고 빛깔이 절로 살아나 꽃의 수명이 길어지니, 어찌 윤기만 더할 뿐이겠는가.
9. 시중드는 꽃
꽃에게 시중드는 꽃이 있는 것은, 마치 궁궐 안에 임금을 모시는 후궁들이 있고 규방 안에 딸려 오는 몸종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산과 들에 핀 꽃과 풀 가운데도 고운 것이 많고, 안개와 비마저도 곁에서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될 수 있으니 어찌 그 경계를 다 그을 수 있겠는가.
매화는 영춘화·서향화·산다화를 몸종으로 삼고, 해당화는 능금꽃·아그배꽃·정향나무꽃을 몸종으로 삼고, 모란은 매괴꽃·장미꽃·목향꽃을 몸종으로 삼고, 작약은 양귀비꽃·접시꽃을 몸종으로 삼고, 석류꽃은 백일홍·짙은 홍련·겹무궁화를 몸종으로 삼고, 연꽃은 산반나무꽃·옥잠화를 몸종으로 삼고, 목서는 부용꽃을 몸종으로 삼고, 국화는 노랗고 흰 산다화·추해당화를 몸종으로 삼고, 섣달 매화는 수선화를 몸종으로 삼으니, 이 모든 몸종 꽃들이 저마다 제철에 자태를 뽐내고, 그 빛깔의 짙고 옅음과 운치의 고상하고 속됨에도 저마다 품평이 따른다.
수선화는 맑고 고결하니 직녀성을 모시는 시녀와 같고, 산다화는 곱고 서향화는 향기롭고 매괴꽃은 흐드러지고 부용꽃은 환하게 아름다우니 진나라 석숭의 총애받던 몸종과 양씨 집안의 정완이란 여인 같고, 능금꽃과 아그배꽃은 자태가 고와 사람의 마음을 끄니 진나라 반악의 근심을 풀어 주던 이 같고, 양귀비꽃과 접시꽃은 울타리 아래서 품위 있게 아름다우니 당나라 사공도가 노래한 난새 타는 누각 같고, 산반나무꽃은 맑고 빼어나 산림에 묻혀 사는 고상한 선비의 풍모가 있으니 당나라 여인 어현기의 몸종 녹교 같고, 노랗고 흰 산반나무꽃은 자태보다 운치가 넉넉하니 한나라 곽거병을 모시던 봄바람 같은 여인 같고, 정향나무꽃은 야윈 듯 가냘프고 옥잠화는 쓸쓸하도록 청초하고 추해당화는 곱지만 곤궁한 자태가 있으니 후한의 정현이나 최씨 성을 가진 수재를 모시던 몸종 같다.
이 밖에도 낱낱이 비유하여 말할 수는 없으나, 모두 세상에 이름난 꽃들로서 부드럽고 아리땁고 섬세하고 곱기가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기에 넉넉하니, 어찌 소식이 읊은 석류꽃이나 백거이가 읊은 가을풀보다 못하겠는가.
(용어) 여기 나오는 석숭, 양씨 집안의 정완, 반악, 사공도, 어현기, 곽거병, 정현 등은 모두 중국 역사와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각기 화려함이나 고아함, 애틋함 등 저마다의 정취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다. 이 대목에서는 그들의 일화나 시구를 빌려 꽃들의 자태를 빗대고 있다.
10. 일 벌이기를 좋아함
혜강이 쇠붙이 다루기를 좋아한 것과, 왕제(자는 무자)가 말을 좋아한 것과, 육우가 차를 좋아한 것과, 미불(호는 미전)이 큰 바위를 보고 절하며 형이라 부른 것과, 예찬(호는 운림)이 유난히 깨끗한 것을 좋아한 것은 모두 저마다의 성벽으로써 그 활달하고 빼어난 기개를 드러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하는 말이 재미없고 생김새마저 밉살스러운 사람은 다 이런 성벽이 없는 부류들이다. 만약 참으로 성벽이 있다면 거기에 빠져들고 도취되어 죽고 사는 것조차 돌아보지 않을 터인데, 어느 겨를에 돈과 벼슬의 노예 노릇을 하겠는가.
옛날 꽃에 성벽이 있던 이는 어디에 진귀한 꽃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아무리 깊은 골짜기나 높은 봉우리라도 미끄러지거나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으며, 혹독한 추위와 무더위에 살갗이 얼어 터지고 땀이 비 오듯 흘러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부자리까지 가지고 가서 그 꽃나무 아래서 묵으며, 꽃이 피기 시작해서 활짝 피고 시들어 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지켜본 뒤에야 자리를 떴다. 어떤 이는 수천수만 송이 꽃으로 그 변화를 헤아려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한두 가지만으로 그 정취를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잎의 냄새만 맡고도 꽃송이의 크고 작음을 짐작하고, 어떤 이는 뿌리만 보고도 빛깔이 붉은지 흰지를 가려냈으니, 이는 참으로 꽃을 사랑한다 할 만하고 또한 참으로 일 벌이기를 좋아한다 할 만하다.
하지만 나 석공이 꽃을 기르는 까닭은 그저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잊고자 함이지, 참으로 꽃을 좋아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만약 참으로 꽃을 좋아한다면 나는 이미 신선이 산다는 무릉도원의 사람이 되었을 터인데, 어찌 지금까지 속세의 벼슬아치로 남아 있겠는가.
(용어) 혜강, 육우, 미불, 예찬은 모두 중국 역사 속에서 저마다 남다른 기호와 몰입으로 이름난 인물들이다. 왕제(자는 무자)는 말을 몹시 아껴, 도성의 비싼 땅을 사들여 말달리며 활쏘는 자리로 삼고 그 둘레를 돈꿰미로 둘러쌓아 사람들이 이를 두고 '돈도랑'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11. 맑은 감상
차를 곁들여 꽃을 감상하는 것이 으뜸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꽃을 감상하는 것이 그다음이며, 술을 곁들여 꽃을 감상하는 것은 가장 못하다. 그러니 술만 앞세우고 차를 멀리하거나 하찮고 속된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짓은 꽃의 신령이 몹시 싫어하고 꺼리는 바이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죽은 듯이 앉아 있는 편이 꽃의 신령을 짜증 나게 하지 않아 훨씬 낫다.
무릇 꽃을 감상하는 데는 알맞은 장소와 때가 있는 법이니, 그 때를 얻지 못하고서 함부로 손님을 불러들이는 것은 모두 당돌한 짓이다.
겨울꽃은 첫눈이 내릴 때나 눈이 갠 때나 초승달이 뜬 때, 따뜻한 방 안이 어울리고, 봄꽃은 맑게 갠 날씨나 살짝 쌀쌀한 날씨, 화려한 마루가 어울리고, 여름꽃은 비가 갠 뒤나 시원한 바람이 불 때나 좋은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운 때, 대나무 아래나 물가 정자가 어울리고, 가을꽃은 시원한 달빛이 비칠 때나 해 질 무렵이나 조용한 섬돌이나 이끼 낀 오솔길이나 오래된 나무 그루터기나 가파른 바위가 어울린다.
만약 때를 따지지 않고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면 꽃의 기운이 흩어져 서로 이어지지 못할 터이니, 이야말로 기생집이나 술집에 놓인 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12. 경계할 일
송나라 장자(자는 공보)가 지은 《매품》은 그 말이 참으로 운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감탄한 나머지 몇 가지 조항을 본떠 지어 내 서재인 병화재 안에 걸어 두었다.
꽃의 신령을 유쾌하게 하는 일이 열네 가지이니, 창문이 환할 때, 방 안이 깨끗할 때, 옛 청동 솥이 진열되어 있을 때, 송나라 벼루가 놓여 있을 때, 솔바람 소리가 들려올 때, 시냇물 소리가 들려올 때, 주인이 일 벌이기를 좋아하고 시문에 능할 때, 스님이 차 끓일 줄 알 때, 먼 지방 사람이 술을 보내올 때, 자리에 함께한 손님이 그림에 능해 한창 핀 꽃을 그려 줄 때, 마음 맞는 벗이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꽃 기르는 법을 적은 책을 손수 베낄 때, 한밤중에 무늬 새긴 술잔이 딸그락거릴 때, 아내와 첩이 꽃에 얽힌 옛이야기를 함께 교정해 볼 때 들이다.
꽃의 신령을 욕되게 하는 일은 스물두 가지이니, 주인이 손님을 자주 맞아들일 때, 속된 자가 마구 들어와 꽃가지를 휘어잡을 때, 변변찮은 중이 선을 논할 때, 창문 아래서 개들이 싸울 때, 골목에서 연밥이 날아들 때, 노래하는 아이가 속된 유행가를 부를 때, 못생긴 여인이 모자를 쓰고 나타날 때, 부질없이 벼슬의 승진과 전임을 이야기할 때, 억지로 사랑하는 척 꾸며 낼 때, 시를 지어 주기로 한 빚을 갚기도 전에 꽃이 벌써 활짝 피어 버렸을 때, 집안사람이 셈해 둔 장부를 찢어 버릴 때, 운을 맞추는 책을 뒤적여야만 겨우 운자를 달 수 있을 때, 책들을 함부로 찢어 놓았을 때, 지방의 거간꾼이 드나들 때, 가짜 그림이 걸려 있을 때, 쥐똥이 굴러다닐 때, 전갈의 침 자국이 얼룩졌을 때, 어린 종들이 교만하게 굴 때, 잔이 막 돌자마자 술이 떨어졌을 때, 술집과 이웃하게 되었을 때, 책상 위에 속되고 상투적인 시구가 적힌 종이가 놓여 있을 때, 도성의 풍속이 꽃 구경에 지나치게 경쟁하여 꽃이 필 때마다 장막까지 치고 구름처럼 몰려들 때 들이다.
내가 보기에는 꽃을 욕되게 하는 자가 많고 꽃을 기쁘게 하는 자는 적다.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돌아보면 우리도 이따금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때가 있으니, 이 경계의 글을 특별히 앉은 자리 곁에 걸어 두어 스스로를 일깨우고자 한다.
13. 꽃의 서열
손님 가운데 꽃을 품평하기 좋아하는 이가 말했다.
"꽃의 품종에 따라 서열을 정하되, 곱고 요염한 품격과 그윽하고 은근한 품격과 맑고 담박한 품격과 이름난 품격으로 나누어, 복사꽃과 오얏꽃 같은 부류를 곱고 요염한 품격으로, 모란과 작약 같은 부류를 이름난 품격으로, 국화 같은 부류를 그윽하고 은근한 품격으로, 연꽃 같은 부류를 맑고 담박한 품격으로 삼으려 하네. 이 서열을 큰길에 내걸어도 그 차례가 공정할 걸세."
내가 대답했다.
"높은 재주를 가진 이에게 남모르는 보배가 있다면, 가난한 선비에게도 마음속에 쌓아 둔 보물이 있는 법이니, 평범함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기이해지고 맑음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귀해지는 수가 있소. 초라해 보이는 흰마름꽃과 붉은여뀌꽃을 놓고 보면 제아무리 봄철 해당화라도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고, 향기 짙은 수선화와 패랭이꽃을 모아 놓으면 제아무리 목련꽃이라도 밀려나기 십상이오.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에 있어 소문만 들을 뿐 직접 볼 수는 없는 꽃은 이름난 품격이요, 무성한 숲과 아름다운 골짜기에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어도 함부로 친해질 수는 없는 꽃은 그윽하고 은근한 품격이오.
맑은 품격이란 번뇌를 벗어난 경지를 뜻으로 삼으니,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뿐 아니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나, 아침에 봉오리가 벌어졌다가 저녁이면 오므라드는 원추리 같은 꽃도 다 저마다의 본성을 다할 수 있소. 그러니 도를 닦는 마음으로 세상의 본디 텅 빈 이치를 깊이 들여다본다면, 모든 꽃이 다 하늘이 내린 비와 이슬이니 그 사이에 음과 양을 굳이 따질 것도 없소."
손님이 다시 말했다.
"그런 생각으로 꽃을 논하면 결국 정해진 격식이 없어져, 외롭고 쓸쓸한 정취에서는 뛰어날지 몰라도 호걸다운 풍모에서는 도리어 뒤집히고 말 것이오."
내가 말했다.
"아, 외롭고 쓸쓸함 말고 또 어디에 호걸이 있겠소."
손님이 이 말에 탄복하였다. 이에 이 꽃의 서열을 옛사람들이 정해 놓은 어진 이들의 방문에 나란히 끼워 넣고자 하는 바이다.
한정록 제18권 · 상정
출처: 허균, 《한정록》 제18권 〈상정〉
배경: '상정'은 본디 '술잔의 정치', 곧 술자리에서 지켜야 할 법도와 규칙을 뜻하는 말이다. 이 권은 중국 명나라 문인이 술 마시는 풍류를 조목조목 정리해 놓은 글을 통째로 옮겨 실은 것으로, 술벗을 고르는 법부터 취하기 좋은 때와 곳, 술자리에서 지킬 예의와 벌칙, 술의 등급과 안주, 술자리를 꾸미는 도구에 이르기까지 열여섯 항목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곳곳에 중국 역대의 이름난 술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마치 유학자들이 공자를 모시듯 '술의 성인'으로 떠받드는 대목은 이 글 특유의 익살과 풍류를 잘 보여 준다. 짐짓 근엄한 법전이나 격식을 흉내 낸 문체로 쓰였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자는 것일 뿐이다.
머리말
나는 파초 잎 모양의 병 하나만 한 술도 다 마시지 못하는 처지이면서도, 술잔이 오가는 소리만 들으면 절로 기뻐 날뛴다. 또 술벗들과 어울릴 때는 밤을 꼬박 새우지 않고서는 그만두는 법이 없으니, 오래도록 나를 가까이 지켜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내 주량이 실은 형편없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요즘 세상에는 술 마시는 무리가 부쩍 늘었지만 정작 '술자리의 법도'는 제대로 익히지 않으니, 너무 서툴다는 생각이 든다. 무릇 술찌꺼기 더미에 파묻혀 살다시피 하면서도 술 마시는 법을 갈고닦지 않는 것은 이 또한 나 같은 사람의 책임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옛 법도 가운데 간결하고 적절한 것을 골라내고 새 조항을 덧붙여 그 이름을 '상정'이라 하였으니, 술 마시는 사람마다 이 글 한 부씩을 지니고 있다면 취한 세상의 좋은 법령이 될 것이다.
1. 자리를 이끄는 두 사람
술을 마실 때는 먼저 한 사람을 '자리의 우두머리'(고을 수령에 견주어 좌석을 이끄는 어른을 이렇게 부른다)로 세워 술잔이 도는 속도를 조절하게 한다. 술이 너무 뜸하게 돌면 이는 직무를 게을리하는 것이니 '차다'고 하고, 술이 너무 급하게 돌면 이는 정치를 가혹하게 하는 것이니 '뜨겁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을 '기록 맡은 이'로 세워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살피게 하는데, 반드시 술자리에 어울리는 재주를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 재주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으니, 말을 잘하는 것과 음률을 아는 것과 주량이 큰 것이다.
2. 술벗을 고르는 열두 가지 기준
술벗을 고르는 데는 열두 가지 기준이 있다. 말을 잘하면서도 아첨하지 않는 사람, 기백이 여려 보이면서도 남에게 쉽게 휩쓸리지 않는 사람, 눈짓만으로 건네는 술자리의 신호를 알아채고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술자리의 규칙이 정해지면 좌중 모두가 곧바로 호응하고 나서게 만드는 사람, 규칙을 들으면 바로 알아듣고 두 번 묻지 않는 사람, 품위 있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 좋지 않은 술잔을 받아도 불평 한마디 없는 사람, 술을 받으면서 그 맛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 사람, 술을 마시면서도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 설령 만취하더라도 술잔을 엎지르지 않는 사람, 주어진 제목에 맞추어 그 자리에서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 술은 이기지 못해도 흥만큼은 밤새도록 식지 않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3. 자리마다 다른 몸가짐
기쁜 마음으로 마실 때는 절제가 있어야 하고, 지친 몸으로 마실 때는 차분해야 하며, 점잖은 자리에서 마실 때는 말쑥하고 시원스러운 태도를 갖추어야 하고, 어수선한 자리에서 마실 때는 나름의 규칙을 세워야 하며, 처음 만난 사람과 마실 때는 한가롭고 진솔한 태도를 보여야 하고, 잡스러운 사람들과 마실 때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4. 취하기 알맞은 때와 곳
무릇 술에 취하는 데도 저마다 알맞은 때와 곳이 있다. 꽃을 보며 취할 때는 대낮에 마셔 환한 햇빛을 함께 누려야 하고, 눈을 보며 취할 때는 밤에 마셔 눈빛의 맑고 깨끗함을 한껏 맛보아야 하며, 뜻을 이룬 기쁨으로 마실 때는 노래를 불러 그 즐겁고 화창한 기분을 북돋워야 하고, 이별을 앞두고 마실 때는 그릇을 두드리며 씩씩한 기상을 드높여야 한다. 글 하는 선비와 취할 때는 절조와 문장에 신중을 기하여 그에게 흉잡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빼어난 인물과 취할 때는 술잔을 자주 들어 그 씩씩하고 협기 있는 기상을 북돋워 주어야 하며, 누각에서 취할 때는 여름철을 골라 그 시원함을 누려야 하고, 물가에서 취할 때는 가을철을 골라 그 상쾌함을 더해야 한다.
한편 이런 말도 전한다.
"달빛 아래 취하기에는 누각이 알맞고, 여름철 취하기에는 배 위가 알맞고, 산에서 취하기에는 그윽한 곳이 알맞고, 아름다운 여인과 취하기에는 얼근히 마시는 것이 알맞다. 글 하는 선비와 취하기에는 재기 넘치는 말솜씨면 족하지 까다로운 격식은 필요 없고, 호탕한 벗과 취하기에는 술잔을 휘두르며 거침없는 노래를 불러야 하며, 마음이 통하는 벗과 취하기에는 고운 노랫가락에 맞추어 박자판을 쳐야 한다."
5. 잘 맞아떨어지는 다섯 가지와 어긋나는 열 가지
술을 마시는 데는 다섯 가지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와 열 가지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
시원한 달이 뜨고 좋은 바람이 불며 반가운 비가 내리고 때맞춰 눈이 오는 것이 첫째로 맞아떨어지는 경우요, 꽃이 활짝 피고 마침 술이 알맞게 익은 것이 둘째요, 우연한 기회에 문득 술 생각이 나는 것이 셋째요, 조금만 마셔도 흥이 절로 도도해지는 것이 넷째요, 처음엔 울적하다가 차츰 마음이 풀려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가는 것이 다섯째다.
날씨가 푹푹 찌고 바람이 메마르고 뜨거운 것이 첫째로 어긋나는 경우요, 기분이 삭막한 것이 둘째요, 모처럼의 자리에 주량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셋째요, 주인과 손님이 서로 눈치만 보며 견제하는 것이 넷째요, 분주히 겉치레로 술잔만 주고받아 마치 시간에 쫓기는 듯한 것이 다섯째요, 억지로 기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 여섯째요, 신발을 신은 채 자리를 옮겨 다니며 귀엣말을 주고받는 것이 일곱째요, 미리 약속하고 야외로 나갔는데 날이 몹시 흐리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여덟째요, 갈 길은 먼데 날이 어두워져서야 돌아갈 생각을 하는 것이 아홉째요, 손님은 훌륭한데 다른 약속이 있거나 기녀는 흥겨워하는데 다른 급한 일이 생기거나 술은 맛이 진한데 변질되었거나 구운 고기는 먹음직스러운데 식어 버린 것이 열째다.
6. 좋은 조짐과 나쁜 조짐
흥겨운 조짐에는 열세 가지가 있다.
때를 잘 만난 것이 첫째요, 주인과 손님이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이 둘째요, 술맛이 진하고 주인이 반듯하고 엄정한 것이 셋째요, 술잔을 들기 전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이 넷째요, 규칙을 못 지킨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이 따르는 것이 다섯째요, 이제 막 마시기 시작할 때 안주를 거듭 권하지 않는 것이 여섯째요, 술자리에서 우왕좌왕하지 않는 것이 일곱째요, 기록 맡은 이의 몸가짐이 씩씩하고 자리의 규칙이 엄격한 것이 여덟째요, 자리의 우두머리가 사사로운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홉째요, 자기 몫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이 열째요, 남의 몫을 대신 짊어지지 않는 것이 열한째요, 자기 주량만 믿고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열두째요, 노래하는 여인과 술 시중드는 이들이 사람의 속뜻을 미리 헤아려 척척 움직여 주는 것이 열셋째다.
흥이 깨지는 조짐에는 열여섯 가지가 있다.
주인이 인색한 것이 첫째요, 손님이 주인을 얕잡아 보는 것이 둘째요, 자리 배치가 어수선하여 정돈되지 않은 것이 셋째요, 방 안이 어둡고 등불이 희미한 것이 넷째요, 풍악이 매끄럽지 못하고 기녀가 교만한 것이 다섯째요, 나랏일을 논하는 것이 여섯째요, 서로 돌아가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일곱째요, 자리에서 어지러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여덟째요, 귀엣말로 소곤거리는 것이 아홉째요, 정해 둔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 열째요, 취한 김에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 열한째요, 앉은 채로 엉덩이걸음을 하며 오가는 것이 열두째요, 두건 차림새로 몰래 술을 훔쳐 마시거나 곤드레만드레 취해 쓰러지는 것이 열셋째요, 손님이 데려온 하인이 어리석고 못미더운 것이 열넷째요, 깊은 밤에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열다섯째요, '미친 꽃'과 '병든 잎'이 열여섯째다. 여기서 술꾼들 사이에서 눈을 흘기는 것을 '미친 꽃'이라 하고, 눈을 감고 조는 것을 '병든 잎'이라 한다.
이 밖에도 술자리를 망치는 사람은 으레 쫓아내야 하는데, 말씨가 저속하고 거동이 점잖지 못한 부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7. 술로 겨루는 법
술을 겨루는 데도 여러 방식이 있다. 주량으로 마시는 사람은 큰 잔으로 승부를 겨루고, 기세로 마시는 사람은 주사위 놀이 따위로 승부를 겨루고, 흥취로 마시는 사람은 이야기로 승부를 겨루고, 재주로 마시는 사람은 시와 노랫말로 승부를 겨루고, 정신의 경지로 마시는 사람은 그림으로 승부를 겨루니, 이를 두고 '술로 벌이는 싸움'이라 한다. 그러나 옛 경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도, 애초에 싸우지 않아 아무 탈이 없는 것만은 못하다."
8. 술의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다
무릇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시조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한 예의다. 지금 공자를 '술의 성인'으로 높여 제사 지내는 까닭은, 공자가 술을 마시는 데 정해진 양이 없었으면서도 흐트러진 지경에는 이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술꾼 세계의 시조로 삼은 것이니, 공자야말로 술꾼들이 으뜸으로 받드는 조상인 셈이다.
문묘에서 공자 곁에 네 분을 나란히 모시듯, 여기서도 네 사람을 곁에 모신다. 완적(자는 사종, 진나라 사람으로 대나무숲에서 노닐던 일곱 선비, 곧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 도잠(진나라 팽택 고을 원님을 지낸 시인), 왕적(당나라 사람), 소옹(자는 요부, 송나라 학자)이 그들이다.
또 문묘의 '열 사람의 뛰어난 제자'에 견주어 열 사람을 모시니, 정천(오나라 사람), 서막(위나라 사람), 혜강(진나라 사람,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 유령(진나라 사람,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 상수(진나라 사람,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 완함(진나라 사람으로 완적의 조카, 역시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 사곤(진나라 사람), 맹가(진나라 사람), 주의(진나라 사람), 완수(진나라 사람)가 그들이다.
그 아래로는 산도(진나라 사람,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 호모보지(진나라 사람), 필탁(진나라 사람), 장한(진나라 사람), 하충(진나라 사람), 이원충(북제 사람), 하지장(당나라 사람), 이백(당나라의 이름난 시인) 이하 여러 사람을 사당 좌우 곁채에 모셔야 한다.
한편 의적(하나라 사람), 두강(주나라 사람), 유백타(진나라 사람), 초혁 같은 무리는 모두 술 빚는 재주로 이름을 얻었을 뿐 정작 술을 즐기던 무리는 아니니, 따로 별채에 모셔 놓고 술 잘 빚던 사람으로 기려야 할 것이다. 이는 마치 향교에서 그 고장을 세운 이를 함께 모시고, 절에서 그 절을 지키는 신을 함께 모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9. 술꾼들의 여러 모습
같은 술을 마셔도 사람마다 마시는 까닭과 태도는 저마다 달랐다.
조참(한나라 사람)과 장완(촉한 사람)은 나랏일을 위해 마셨고, 육가(한나라 사람)와 진준(후한 사람)은 활달한 기상으로 마셨고, 장제현(자는 사량, 송나라 사람)과 구준(자는 평중, 송나라 사람)은 호탕하게 마셨고, 왕탐(자는 원달, 진나라 사람)과 하승유(송나라 사람)는 빼어난 기품으로 마셨고, 채옹(자는 중랑, 후한 사람)은 문장을 위해 마셨고, 정현(자는 강성, 후한 사람)은 선비답게 마셨고, 순우곤(전국 시대 제나라 사람)은 익살로 마셨고, 역이기(한나라 사람, 광야군이라는 봉호를 받았다)는 말재주로 마셨고, 공융(후한 사람으로 북해 태수를 지내 공북해라고도 불렸다)은 거리낌 없는 기개로 마셨고, 취전과 법상은 참선하듯 마셨고, 공원방(신선 이야기를 모은 《열선전》에 나오는 인물인 듯하다)과 장지화(당나라 사람)는 신선처럼 마셨고, 양웅(자는 자운, 한나라 사람)과 관노(자는 공명, 삼국 시대 위나라 사람)는 현묘한 이치를 궁리하며 마셨고, 백거이(호가 향산, 당나라 사람)는 유유자적하며 마셨고, 소순흠(자는 자미, 송나라 사람)은 울분을 풀려고 마셨고, 진훤(남북조 시대 진나라 사람)은 우직하게 마셨고, 안연지(남조 송나라 때 금자광록대부를 지내 안광록이라 불렸다)는 자존심으로 마셨고, 형가(전국 시대 제나라 사람)와 관부(한나라 사람)는 성난 기운으로 마셨고, 공자무기(전국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신릉군에 봉해졌다)와 조식(위나라 사람으로 동아왕에 봉해졌으며, 슬픈 정서를 담은 시로 이름났다)은 슬픔에 겨워 마셨다.
이상 여러 사람이 모두 이름난 술꾼은 아니었지만, 저마다 흥이 오르면 그 마음속 감회를 술로 풀어냈기에 줄곧 사람들의 추앙을 받아 왔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하나같이 술자리의 고수요, 술꾼들이 본받을 만한 본보기라 하겠다.
10. 술에 관한 책들
《시경》, 《서경》, 《예기》, 《악경》, 《역경》, 《춘추》 여섯 경전과 《논어》, 《맹자》에 나오는 술 마시는 법도는 모두 '술의 경전'이라 할 만하다.
그 뒤로 당나라 여양왕 이진이 지은 《감로경》과 《주보》, 왕적의 《주경》, 수나라 유현이 지은 《주효경》과 《정원음략》, 자가 자야인 송나라 두평의 《주보》, 송나라 주익중의 《북산주경》, 이보적의 《주경》, 호씨의 《취향소략》, 당나라 황보송의 《취향일월》, 수나라 후백의 《주율》처럼 술을 즐긴 이들이 지은 기록과 노래는 '술의 안쪽 경전'이라 할 만하다.
또 《장자》, 굴원의 노래를 모은 이소경, 한나라 역사책, 남북조 시대의 역사책, 예로부터 전해 오는 여러 일화집, 《세설신어》, 《안씨가훈》, 그리고 도잠(진나라 사람, 호는 정절)·이백과 두보(둘 다 당나라의 이름난 시인)·백거이(호는 향산)·소식(호는 옥국)·육유(호는 방옹) 같은 이들의 문집은 '술의 바깥 경전'이라 할 만하다.
그 밖에 노래로는 유공권(당나라 사람)이나 호가 가헌인 신기질(송나라 사람)의 것이 있고, 노랫말로는 동해원(금나라 사람으로 이름과 고향은 전하지 않는다)·왕실보(원나라 사람)·호가 동리인 마치원(원나라 사람)·자가 칙성인 고명(명나라 사람)의 것이 있으며, 이야기책으로는 《수호전》과 《금병매》 같은 것이 있으니, 이런 것들은 '술의 곁 경전'이라 할 만하다. 이런 책들을 두루 익히지 못한 사람은 그저 얼굴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텅 빈 술독 같은 자일 뿐, 참된 술꾼이라 할 수 없다.
11. 술자리에서 저지른 잘못을 벌하는 법
거만한 기색을 보이는 자는 얼굴에 먹물로 글자를 새기는 벌을 내리고, 아첨하는 기색을 보이는 자는 코를 베는 벌을 내리고, 남의 눈치만 살피며 우물쭈물하는 자는 거세하는 벌을 내리고, 말 속에 잔꾀를 숨기는 자는 손발을 묶어 구속하는 벌을 내리고, 생각이 지나치게 깊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는 사당에 쓸 땔나무를 삼 년 동안 해 바치게 하는 벌을 내리고,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벌을 내리고, 경솔하게 나서는 자는 죄인이 쓰는 흉한 두건을 씌우는 벌을 내리고,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한 자는 살빛이 창백해 보이는 옷을 입히는 벌을 내리고, 놀이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가겠다고 하는 자는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 대신 짚신을 신기는 벌을 내리고, 자리에 앉은 사람 모두를 싸잡아 욕하는 자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성 쌓는 일을 사 년 동안 시키거나 절구질을 사 년 동안 시키는 벌을 내리고, 멀리 섬으로 유배 갈 죄인들처럼 술주정을 핑계 삼아 마치 억울하게 붙잡혀 간 충신이나 되는 양 거들먹거리거나 그런 짓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따라 하게 부추기는 자는 목숨을 거두는 가장 무거운 벌을 내린다.
12. 술의 등급
빛깔이 맑고 맛이 시원한 술은 '성인'이라 할 만하고, 빛깔이 황금빛이고 맛이 짙은 술은 '현인'이라 할 만하고, 빛깔이 검고 맛이 시큼한 술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 만하다. 찹쌀로 빚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술은 '군자'라 할 만하고, 동짓날 지나 셋째 술의 날에 빚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술은 '보통 사람'이라 할 만하고, 술집에서 사다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소주는 '소인'이라 할 만하다.
13. 술잔의 등급
옛날에 쓰던 옥잔이나 옛날 가마에서 구운 도자기 잔이 으뜸이요, 무소뿔이나 마노로 만든 잔이 그다음이요, 요즘 것 가운데 가장 좋은 자기 잔이 또 그다음이요, 금이나 은으로 만든 둥근 술잔이 하품이요, 소라 껍데기 모양으로 밑이 뾰족하고 몇 군데 굽이진 잔이 가장 못하다.
14. 술안주
술 마실 때 곁들이는 요리를 안주라 하는데,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담백한 것으로 날조개, 살조개를 재워 만든 것, 게로 만든 요리 따위요, 둘째는 특별한 것으로 곰 등심의 기름, 복어(봄철에 유난히 맛이 좋다 하여 '서시의 젖'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따위요, 셋째는 기름진 것으로 염소나 양, 구운 거위고기 따위요, 넷째는 과실로 잣이나 살구씨 따위요, 다섯째는 채소로 갓 캔 죽순이나 이른 봄 부추 따위다.
15. 술자리를 꾸미는 것들
비자나무로 짠 앉은뱅이책상, 환하게 밝은 창, 제철에 피어난 꽃과 아름다운 나무, 겨울철에 치는 장막, 여름철의 짙은 그늘, 수를 놓은 치마, 덩굴풀을 엮어 만든 자리, 이런 것들이 술자리를 한껏 운치 있게 꾸며 준다.
16. 술자리를 즐겁게 하는 도구들
바둑판, 크고 작은 병, 술잔 수를 세는 산가지와 주사위, 옛 솥 모양의 그릇, 곤산 고을에서 만든 놀이용 종이패, 어여쁜 계집아이와 곁에서 문서를 돌보는 시녀, 반점이 있어 가장 값진 침향, 차 도구, 오나라 종이와 송나라 벼루와 좋은 먹, 이런 것들이 술자리의 흥을 돋운다.
맺음말
나는 술잔만 보아도 이내 취해 버리는 사람이니, 어찌 술 한 방울 못 마시는 처지로 취한 세상의 우두머리가 되려 하겠는가. 그러나 갑옷 입고 무기를 들어 싸우는 데는 용맹한 장수가 아니면 무예를 뽐낼 수 없지만, 그 장수들을 거느리는 대장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법이다. 한나라의 유후 장량은 얼굴이 여인처럼 곱상했다고 해서 그를 만 명의 적도 당해 내는 대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술 마시는 법에 훤히 통달하고 술의 이치를 깊이 깨우쳤으니, 술찌꺼기 언덕의 패왕 자리에 뜻을 함께하는 여러 벗들이 나를 추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석공'은 이 글을 지은 명나라 문인이 스스로를 이르던 호다.)
한정록 제19권 · 서헌
출처: 한정록 제19권, 서헌
배경: '서헌'은 '책에 관한 법도'라는 뜻으로, 앞서 실린 여러 권과 달리 이 권은 여러 옛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명나라 사람 유사엽이 책을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마치 나라의 법전처럼 조목조목 정리해 쓴 글 한 편을 통째로 실은 것이다. 무엇에 깊이 빠지는 것 자체는 흠이 아니되, 그 대상이 책이라면 평생의 법도로 삼을 만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함께 책을 읽을 벗을 고르는 법부터 책을 소중히 다루는 법, 가난해도 책을 구하는 법,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 옛 독서가들의 본보기, 그날그날의 흥에 맞는 독서법, 감정을 고르게 다스리는 독서법, 서재를 꾸미는 법, 삼가야 할 일들에 이르기까지 열두 조항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글쓴이 유사엽이 마지막에 이 글을 쓴 뜻을 밝히는 짧은 발문을 덧붙였다.
일러두기: 원문에는 각 조항의 이름이 한 글자로 되어 있으나, 이 번역에서는 그 뜻을 풀어 조항마다 알기 쉬운 우리말 제목을 붙였다. 원문 곳곳에 등장하는 옛 인물과 고사는 대부분 낯설고 압축적이어서, 필요한 곳마다 짧은 용어 설명을 붙여 이해를 도왔다. 이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 기존 국역본을 참고하여, 그 뜻을 오늘의 쉬운 한글 문장으로 다시 옮긴 것이다.
들어가는 말
사람이란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 깊이 빠지는 버릇이 생기게 마련이고, 애초에 좋아하는 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애쓸 일도 없다. 이를테면 산수를 좋아하거나, 꽃과 나무를 좋아하거나, 개와 말이나 화려한 옷을 좋아하거나, 음악을 좋아하거나, 술을 좋아하거나, 차를 좋아하거나, 무엇이든 한번 마음이 거기에 끌리면 사람은 은근히 애를 쓰고 정성껏 자리를 마련해서라도 기어이 자기 뜻대로 이루려고 한다. 이무기나 호랑이가 사는 험한 곳이든 바람 부는 정자든 이슬 내리는 누각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온 정신을 쏟고 보고 듣는 모든 감각을 다 기울여 그것을 칭송하는 글을 짓는가 하면, 그것을 따르고 싶어 안달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이런 것은 그저 한때의 취미일 뿐인데도 이토록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데, 하물며 그 대상이 글, 곧 책이라면 어떻겠는가. 책에 대한 사랑은 한번 자리 잡으면 평생의 법도가 되어, 소년에서 장년으로, 장년에서 노년으로, 노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침저녁으로 꿈속을 오가고 자손의 손길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것을 어찌 한때의 흥에 못 이겨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흥이 다하면 그만두어 버리는 여느 취미와 같이 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세속에 얽매인 나머지 귀한 서적을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성현의 말씀을 마침내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저 출세를 위해 책을 죽을 때까지 저버리지 않을 벗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아침에는 손발처럼 아끼던 책을 저녁에는 원수처럼 미워하여, 옛사람이 남긴 법도 있는 글을 그저 한때 자기 생각을 꾸미는 도구로만 써먹곤 하니, 이래서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는 다름이 아니라 책을 읽는 멋과 운치를 깊이 알지 못하여, 쓴 것과 단 것을 가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때와 장소에 알맞게 그 운치를 제대로 거두어들인다면, 몸을 두는 곳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다 유쾌하여, 아무리 방대한 옛 문헌이라도 자기 몸에서 떼어 낼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그로 인해 애쓰지 않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도 서로 앞서려 다투지 않는다면, 남들도 기꺼이 양보할 것이요 나더러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는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니, 나는 바로 이것을 몸소 시험해 보려 한다. 그래서 이 '서헌(책의 법도)'을 지어 뜻을 같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다만 단란한 모임의 흥취만 빌려 오고 정작 규칙을 세워 절제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저 몰입하는 버릇에만 빠지고 말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나의 실수 또한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제1조 · 동료 — 함께 읽을 사람을 가리다
놀이 삼아 벗을 모으는 자리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 하나만 끼어 있으면 안개와 구름조차 빛을 잃고 꽃과 새조차 운치를 잃게 마련인데, 하물며 높다란 서재나 은밀한 다락에서 책을 읽는 자리라면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을 먼 옛일에 두면서도 세상 물정에 어둡지 않은 사람, 마음을 고요한 데 두면서도 허황되지 않은 사람, 자리의 적막함을 깨뜨릴 줄 아는 사람, 말솜씨는 서툴러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 낯빛이 온화하여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사람, 옛일과 지금 일을 뒤섞어 함부로 트집 잡지 않는 사람, 모든 일을 여쭙고 문서를 처리하는 데 절차 하나하나를 어김없이 지키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야 스승으로 높이든 벗으로 사귀든 우리의 동료가 될 수 있다.
만약 별것 아닌 일에도 크게 놀라 야단법석을 떨며 남의 재주를 억누르려 들거나, 음흉하고 못되어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자라면, 그런 자와 함께 있으면 책마저도 근심 어린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간신을 내리쳤던 옛 신하의 홀이나 아첨꾼을 가려냈다는 옛 풀 이야기가 저 옛 문장가의 서가에도 남아 있을 것이니, 옛날 관영이 화흠과 절교한 데에도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결하고 세속을 벗어난 인품은 이런 겉모습을 떠나서도 절로 서로 통하는 법이니, 이는 마치 나라에서 편찬한 정식 역사책은 아니어도 나름의 운치가 있는 이야기책이 있는 것과 같다. 이 점만은 따로 논해야 할 문제다.
(용어) 옛날 당나라의 한 신하는 반역을 꾀하는 자를 조정에서 손에 든 홀(신하가 임금 앞에 설 때 손에 쥐던 판)로 내리쳐 꾸짖었다고 하며, 요임금 시절 궁궐 뜰에는 아첨꾼이 다가오면 저절로 잎이 구부러져 그자를 가리켰다는 신비로운 풀이 자랐다는 옛이야기가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옛 문장가의 서가'는 당나라 때 이필이라는 사람이 지녔던 방대한 장서를 가리킨다. 후한 때 관영과 화흠이 함께 글을 읽는데 문밖으로 높은 벼슬아치가 지나가자 화흠이 뛰쳐나가 구경하니, 관영이 자리를 갈라 앉으며 "자네는 나의 벗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절교했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제2조 · 마땅함 — 책마다 어울리는 때와 자리
역사책을 읽을 때는 눈 내리는 창가에서 읽어 그윽하고 깊은 안목을 갖추어야 하고, 제자백가의 책을 읽을 때는 달빛을 벗 삼아 읽어 심원한 정신을 붙여야 하며, 불교의 경전을 읽을 때는 아름다운 사람을 곁에 두고 읽어 지나치게 적막한 데 빠지지 않아야 하고, 《산해경》이나 《수경》 같은 온갖 이야기책과 잡다한 기록을 읽을 때는 성긴 꽃가지와 맑고 여윈 대나무, 차가운 바위와 싸늘한 이끼를 가까이하여 끝없는 이야깃거리를 모으거나 아득한 논설을 간추려야 하고, 충신과 열사의 전기를 읽을 때는 생황을 불거나 비파를 뜯어 그 꽃다운 넋을 불러내야 하며, 간사한 자들을 논한 글을 읽을 때는 칼을 휘두르거나 술을 들이켜서 그 울분을 풀어야 하고, 초사 계열의 노래를 읽을 때는 텅 빈 산에서 슬피 외쳐야 산과 골짜기를 울릴 수 있으며, 부(운문의 한 갈래)를 읽을 때는 물가에서 미친 듯이 외쳐야 바람을 일으킬 수 있고, 시와 노랫말을 읽을 때는 노래하는 아이에게 박자를 맞추게 해야 하며, 귀신에 관한 이런저런 기록을 읽을 때는 촛불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야 한다. 그 밖의 경우는 저마다 다르고 운치도 한결같지 않다.
진계유(호는 미공)가 더위를 식히고 추위를 물리치던 방법도 그 나름대로는 이치에 맞았다 하겠지만, 사실 한가한 벼슬아치가 될 기회가 어느 때인들 없겠으며 책을 덮고 한가로이 노닐 자리가 어디엔들 없겠는가. 굳이 혜강이 게으르다는 핑계를 댔던 것처럼 이유를 끌어다 붙일 필요는 없다.
(용어) 혜강은 진나라의 이름난 선비인데, 벗 산도가 자기 벼슬자리를 그에게 물려주려 하자 자신은 본래 게으르다는 핑계를 대며 굳이 사양했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제3조 · 보배로이 여김 — 책을 아끼는 참된 법
보배롭게 간직한다는 것은 그저 꼭꼭 싸서 숨겨 둔다는 뜻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어찌 언제까지나 화려한 방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있겠는가. 만약 미인이 줄곧 화려한 누대 안에만 갇혀 있었다면, 왕소군이 오랑캐 땅으로 떠나며 남긴 비파 곡조가 어떻게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책은 손바닥 안에, 품 안에 두고서 은근히 아끼고 사랑해야만 헛되이 묵혀 두는 것이 되지 않는다.
책을 보배롭게 간직한다는 것도 이와 같아서, 비단으로 책갑과 책축을 만들고 오색으로 물들인 상아 표찰을 붙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온 마음과 정신을 그 책에 쏟아부어서, 마치 귀한 진주를 손안에 두고 마음껏 아끼듯 차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참으로 보배롭게 여긴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저 꽁꽁 싸매어 두기만 한다면 그저 눈요기만 될 뿐이니, 책이 나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는 오히려 책을 천하게 만드는 것이니 어찌 보배롭게 간직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제4조 · 모음 — 가난해도 책을 모으는 법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우연히 눈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아무리 귀한 갖옷이라도 선뜻 내주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 한다. 그러나 책만큼은 돈에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구할 수 있다. 대개 진귀한 책은 잃어버리는 일이 잦으므로, 평생토록 즐겨 읽는 책이나 책상 위에 없어서는 안 될 책, 세상에서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책은 마치 귀한 구슬이나 보물처럼 소중히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옛사람이 "집안의 재산이 다 없어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책을 살 만한 재력이 없을 때는, 옛날 노온서가 부들잎을 엮어서 그 위에 글을 베껴 쓰고, 손경이 버들잎을 엮어 경서를 베껴 쓰고, 범왕이 불을 지펴 놓고 그 불빛으로 책을 베껴 쓰고 외우며, 유향이 남의 집에 고용살이를 하면서까지 글을 읽었던 것처럼 한다면, 그렇게 얻은 것이 바로 참된 보배가 되고, 책 한 권이 천고에 남을 부자가 되게 해 줄 것이다. 어찌 꼭 혜시처럼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책을 모으거나 장화처럼 서른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책을 쌓아 놓고서, 그것을 산더미처럼 곳간에 채운 뒤에야 부자라 부를 수 있겠는가.
(용어) 여기서 말하는 '귀한 갖옷'은 옛날 한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가 진귀한 새의 깃털로 만든 갖옷을 술과 바꾸어 마셨다는 옛이야기에서 나온 표현이다. 노온서와 손경, 범왕, 유향은 모두 옛 중국의 학자들로, 하나같이 집이 가난하여 종이나 붓을 마련하지 못한 채 남다른 방법으로 책을 구해 읽거나 베껴 쓰며 학문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혜시와 장화는 각각 전국 시대와 진나라 때 사람으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소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제5조 · 가까이함 — 많은 책보다 소중한 책을
한나라 궁궐에 가득했던 삼천 명의 후궁도 자기와 함께 총애를 받는 동료를 시기했고,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칠 때 맹진 나루에 모여든 팔백 명의 제후들도 저마다 한 나라의 임금이었다. 겨우 편지 한 장으로도 전체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의 총명함에는 저마다 한계가 있어서 마음이 너무 넓은 것에만 치달리고 뜬구름 잡듯 들떠 있으면 보고 듣는 것이 오히려 어지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밀하고 빼어난 책만을 가려내어 마치 침소 깊숙이 숨겨 둔 보물처럼, 군대 안의 뛰어난 장수나 궁중의 절세가인을 대하듯 소중히 여겨야만 그 책과 나 사이의 거리가 날로 가까워지고 정이 날로 깊어진다. 그럴 때는 미천한 심부름꾼을 시켜 자신이 아끼는 책의 곁을 지키게 하여 뜻밖의 어려움에 대비하고 은밀한 애정을 쏟아야지, 어찌 이것저것 두루 아끼려다가 정작 가장 아끼는 것을 잃어버릴 수 있겠는가.
저 서점에 가서 책을 탐독했다는 왕충이나, 글을 한 번 보고도 바로 통달했다는 양웅이나, '책에 빠진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은 황보밀 같은 이들은, 내가 보기에는 그저 한쪽으로 치우친 학문을 한 사람들일 뿐이다.
제6조 · 벌함 — 옛글의 잘잘못을 가리다
벌한다는 것은 사실을 낱낱이 밝혀 캐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글자를 비슷한 다른 글자로 잘못 베껴 쓴 사람은 실수로 인한 죄에 해당하고, 어진 사람인 증삼이 정말로 사람을 죽였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자나, 손빈의 다리를 자르게 만든 모함자나, 반첩여의 총애를 시샘한 자는 남을 모함한 죄에 해당하며, 옛 역사서를 왜곡하여 쓴 자나, 《논어》를 흉내 내어 지은 책으로 세상을 어지럽힌 자나, 나라를 찬탈한 자를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지어 바친 자나, 역적에게 과분한 특전을 내리도록 부추긴 자는 나라를 배반한 죄에 해당한다.
사건의 자취가 모호할 때는 마땅히 엄정한 법관을 본받아 낱낱이 심리해야 한다. 옛 황제가 만들었다는 신묘한 거울이 내 눈앞에 환히 걸려 있는데, 자취를 감춘 죄인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 갖추어진 법전이라도 한낱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모쪼록 세밀히 심리하여 판결문을 작성하고 진술을 받아, 억울한 이는 풀어 주고 허술한 그물은 촘촘히 기워서, 천 년 뒤에도 사람들이 나더러 옳고 그름을 정확히 가렸다고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옛사람이 나에게 쓸모없는 입과 귀를 맡겨 준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 조항을 '벌함'이라 이름 붙인다.
(용어) 증삼은 공자의 어진 제자였는데도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거짓말을 세 사람이 연이어 전하자 그의 어머니마저 이를 믿었다는 옛이야기가 전한다. 손빈은 전국 시대 제나라의 병법가로, 모함을 받아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당했다. 반첩여는 한나라 성제의 후궁으로 다른 후궁의 시샘을 받았다.
제7조 · 마주함 — 하늘을 대하듯 책을 대하다
《춘추좌씨전》에 "하늘이 너의 머리 위에 임해 있다"고 했고, 《시경》에 "마치 깊은 못가에 서 있듯이 조심한다"고 했으니, 여기에는 두려워 공경하는 마음과 스스로 삼가는 마음, 이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책상과 서가에 가득 쌓인 책에는 옛 성현의 뜻이 깃들어 있으니, 종이 한 조각 한 치인들 어찌 빈말이 적혀 있겠는가.
하늘이 나에게 결코 피할 수 없는 도리를 내려 주었으니, 옛 가르침을 배우고 새기는 일에 행여 남에게 뒤질세라 힘써야 한다. 만약 성현의 참된 자식이 되지 못한다면 세상의 가르침에 죄를 짓는 것이요, 하늘의 뜻을 가벼이 여긴다면 곧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마니, 이 일이 세상의 가르침에 주는 보탬이 얼마나 큰가.
만약 책을 진귀한 향으로 쐬거나 비단으로 감싸거나 향초로 좀벌레를 물리치거나 이슬로 손을 씻는 등 겉치레만 힘쓰면서, 정작 불교의 경전이나 도가의 비밀스러운 책만 외우고 있다면 자신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데, 하물며 그것을 그저 장식으로 삼아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뒤적이는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책을 어지러이 간수하면 옛 경전과 역사서의 정신조차 나가 버리고, 함부로 뒤섞어 다루면 아무리 뛰어난 인물의 글이라도 그 기운을 잃고 만다. 하늘의 감시가 이토록 가까이 있으니, 내 어찌 감히 허튼소리를 하겠는가.
제8조 · 본보기 — 가난 속에서도 공부한 옛사람들
밭을 매면서도 책을 읽었던 상림, 쇠뿔에 《한서》를 걸어 놓고 소를 먹이면서 읽었던 이밀, 땔나무를 팔아 그 돈으로 책을 사서 읽었던 갈홍, 마른 풀을 태워 그 불빛으로 책을 읽었던 이강, 보리가 빗물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른 채 책 읽기에 빠졌던 고봉, 남의 양을 치면서 책을 읽다가 그만 양을 잃어버렸던 왕육, 길에서 주운 금덩이를 도로 내버리고 오로지 책 읽기에 힘썼던 악양자, 나무하던 도끼를 내던지고 스승을 찾아가 배웠던 문당, 성인이 남긴 글을 힘써 외우고 익혔던 공부, 살림을 돌보지 않고 책만 읽었던 주매신, "나의 학문이 이제 동쪽으로 전해지는구나" 하고 제자를 떠나보냈던 마융, 옛 글자를 가르쳤던 양웅, 산골짜기에 숨어 남의집살이를 하면서도 책을 읽었던 환영,
'자명(그의 자다)에 견줄 사람이 없다'는 칭찬을 받았던 순상, 소가 덮는 거친 덕석을 팔아 책을 구했던 유식, 죽순 껍질로 산에서 쓰는 두건을 만들어 썼던 은자, 남의 집 벽에 구멍을 뚫어 이웃집 등불을 빌려 책을 읽었던 광형, 평생 자리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어 앉은 자리가 다 닳아 패였던 관영, '옥산이 사람을 비추는 듯하다'는 칭찬을 받았던 배해, 신비로운 노인에게서 옛 지혜를 전해 받았다는 유향,
상투를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졸음을 쫓으며 책을 읽었던 소진, 배움을 게을리하여 흔쾌히 벌주를 받아 마셨던 소순흠 등, 그 방법은 저마다 달라도 이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용어) 여기 열거된 이들은 모두 가난하거나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남다른 방법으로 학문에 힘써 후세에 이름을 남긴 중국의 옛 인물들이다. 그 가운데 마융이 "나의 학문이 이제 동쪽으로 전해지는구나"라고 한 것은, 그가 애써 가르친 제자가 학업을 마치고 동쪽 고향으로 돌아갈 때 남긴 말이다. 순상은 열두 살에 이미 유교 경전에 통달하여 '자명(그의 자)에 견줄 사람이 없다'는 칭찬을 받았다. 관영은 평생 한 자리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어 앉은 자리가 다 닳아 우묵하게 패었다고 전한다. 배해는 풍채가 하도 준수하여 '옥으로 된 산이 사람을 비추는 듯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유향은 밤에 홀로 앉아 있다가 신비로운 노인에게서 옛 지혜를 전해 받았다는 옛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제9조 · 알맞음 — 흥에 맞는 때를 골라 읽다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 맑은 이슬이 내릴 때, 가벼운 배를 탈 때, 높다란 누각에 오를 때, 산에 비가 내릴 때, 골짜기에 구름이 피어오를 때,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향을 나누어 줄 때, 고결한 선비들이 대숲을 찾아올 때, 새가 조용히 울 때, 꽃이 차갑게 피어 웃는 듯할 때, 낚시꾼들이 안개와 물기운을 두르고 서로 반겨 맞을 때, 늙은 승려가 불경의 게송을 물어볼 때, 하인이 붓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볼 때, 침상 머리에 술독이 놓여 있을 때, 구름 사이로 학이 날아갈 때, 차를 맛본 뒤 떨어진 낙엽을 쓸 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문득 일어나 거닐 때, 옛 유물을 늘어놓고 구경할 때, 앵무새를 길들일 때, 이런 흥에 맞추어 마음을 다스려야 정신이 지나치게 메마르지 않는다.
명나라의 풍몽정(자는 개지)이 말했다.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하면 마음이 산만해지고, 너무 싫어하면 읽기가 껄끄러워진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참으로 내 뜻과 꼭 들어맞는다.
제10조 · 짝지음 — 감정을 고르게 다스리는 독서법
짧은 글을 읽을 때는 금세 끝나 버리는 것을 아쉬워하고, 긴 글을 읽을 때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것을 괴로워하며, 신랄하게 나무라는 글을 읽으면 머리털이 곤두서고, 통쾌한 글을 읽으면 손에 든 그릇마저 깨뜨리고 싶어지며, 도도하게 펼쳐지는 글을 읽으면 가슴이 활짝 열리고, 울분에 찬 글을 읽으면 마음이 슬퍼지며, 허무를 논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허황해지고, 물정에 어두운 선비의 진부한 글을 읽으면 정신이 시들해지며, 은자가 남긴 글을 읽으면 그 사람됨을 따져 그 정신을 헤아려 보고 싶어지고, 까다로운 글을 읽으면 편한 대로 제멋대로 해석하려 들게 되며, 빠진 곳이 있는 글을 읽으면 그것을 채우고 싶어지고, 흐릿한 글을 읽으면 다른 책을 찾아 참고하고 싶어지며, 쓸쓸한 글을 읽으면 목이 타들어 가기 전에는 마음이 트이지 않고, 화려한 글을 읽으면 맑고 화사해지거나 혹은 들뜨고 겉만 화려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한 책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다른 책을 곁들여 읽어서,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과 슬픔·기쁨·분노·통쾌함 같은 마음을 고르게 다스려 저마다 알맞은 데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책을 읽다 말고 탄식하거나 책을 덮고 헛웃음을 짓는 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짝지음'이라는 조항의 참뜻이다.
제11조 · 지키고 보호함 — 책을 위한 좋은 환경
서재는 그윽한 곳이 좋고, 난간은 굽이진 것이 좋으며, 나무는 성글게 서 있는 것이 좋고, 담쟁이덩굴은 푸르게 드리워진 것이 좋으며, 책상과 자리, 난간과 창문은 가을 물처럼 맑고 깨끗한 것이 좋고, 앉는 평상 위에는 안개와 구름이 떠 있는 듯한 것이 좋으며, 먹을 가는 벼루와 붓을 놓는 받침에는 늘 꽃향기가 감도는 것이 좋고, 글씨를 베껴 쓰는 데는 사리에 밝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으며, 책에 표찰을 붙이는 데는 눈치 빠른 하인이 있는 것이 좋다.
책을 읽는 데 이런 환경을 두루 갖춘다면 수많은 책 하나하나에서 모두 기쁨을 느끼게 되어, 아무리 부드럽고 따스한 이상향이나 신선이 사는 세계라도 부러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제12조 · 경계함 — 삼가야 할 것들
함부로 남을 훈계하거나 쓸데없이 트집을 잡으면서 옛 영웅들의 호기로운 말을 엉뚱하게 끌어다 쓰는 일, 문밖에 나가서는 공연히 떨어진 꽃을 밟거나 어지러운 별자리를 함부로 가리키는 일, 멀쩡한 책을 훼손하는 일, 부질없이 무리와 어울려 다니며 배움이 얕은 자에게 글자를 물어보는 일, 술에 취한 자가 당돌하게 걸상에 걸터앉아 귀신 이야기를 마구 지껄이는 일, 편견만 내세워 남의 행실을 따지는 일을 함부로 뒤흔드는 일, 비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하여 서재의 휘장과 운치 있는 일들을 망치는 어려움, 이런 몇 가지를 대충 가려 경계로 삼았으니, 부디 조심하여 나의 글을 욕되게 하지 말고, 나의 잠자리를 함부로 범하지 말고, 나의 옷차림을 흩뜨리지 말라.
덧붙이는 글 — 유사엽의 발문
하늘의 이치는 서리가 내린 뒤에야 온갖 만물이 무르익고, 사람의 일은 법도가 세워진 뒤에야 비로소 행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법이 없으면 규율을 굳건히 할 수 없고 규율이 없으면 법을 받들 수 없으며, 임금의 제도가 지켜지는 곳이라야 글의 이치도 통하게 되는 법이다.
경전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옛 학교의 여러 과목 앞에서 손발이 묶인 듯 쩔쩔매고, 시와 노래를 짓는 선비들은 한자음의 높낮이 앞에서 겁을 먹기 마련인데, 법도를 잃은 자에게는 마땅히 벌을 내려야 하고 요점을 놓친 자에게는 마땅히 밥을 굶겨야 한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낮은 벼슬자리에 머물렀던 것도 나름대로 하나의 출세이니, 저 푸른 산이 절로 늙어 가는 것은 아무리 임금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사람을 달래고 내일은 저 사람을 달래다가 그만 세상일에 지쳐 버리고 마니, 채찍을 갈다가 뜻밖에 칼을 얻고 칼을 갈다가 뜻밖에 바늘을 얻게 되는 이치를 어찌 알겠는가. 천하를 손에 넣으려 애쓰는 사이 세월만 흘러가 버리니, 옛 현인이 소를 먹이던 들판에도 온전한 소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옛사람은 보리가 빗물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른 채 책 읽기에 흠뻑 빠져, 하루에 책 한 권을 다 읽어 치우고 붓을 씻은 못물이 온통 검게 물들 정도였으니, 그들이 우스갯소리로 나눈 말조차 다 훌륭한 글이 되었고 그들이 즐긴 놀이조차 다 본받을 만한 법도가 되었다. 그래서 나도 요즈음 이 '서헌'을 지어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비유하자면 칼을 막 숫돌에 갈아 내면 아무리 단단한 것도 갈라지고, 비단을 그림 족자에 이어 붙이면 그 광채가 찬란해진다는 말과 같으니, 이는 다 절실한 이치를 담은 말이지 어찌 그저 우스갯소리에서 나온 것이겠는가. 세상에 식견 있는 사람에게는 글자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고, 식견이 깊은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의 일부를 지어 일 벌이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즐길 거리를 드리고, 훗날 온전한 책으로 엮어 시와 문장을 짓는 이들의 감상거리를 넓히고자 한다.
유사엽 씀
한정록 제20권 · 서화금탕
출처: 한정록 제20권, 서화금탕
배경: 이 20권의 주제인 "서화금탕"은 글씨와 그림을 감상하고 간직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과 물건들을 정리해 놓은 대목이다. "금탕"이란 본디 쇠로 쌓은 성과 끓는 물로 채운 못, 곧 아무도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방벽을 이르는 말이니, 여기서는 서화를 소중히 지켜 낸다는 뜻으로 쓰였다. 내용은 네 갈래로 나뉜다. "선취"는 글씨와 그림을 감상하기에 좋은 때와 분위기를, "악마"는 감상을 망치거나 작품을 상하게 하는 나쁜 일들을, "장엄"은 표구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 쓰는 귀한 재료들을, "낙겁"은 소중한 작품이 끝내 망가지거나 흩어지고 마는 여러 불행한 경우를 열거한다. 짧은 낱말을 나열하는 형식이지만, 그 안에는 글씨와 그림을 아끼고 지키려는 옛사람들의 세심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은 정취
안목 있는 감상가가 함께 있을 때, 정갈한 서재, 깨끗한 책상, 바람과 햇살이 맑고 고울 때, 병에 꽂은 꽃과 차, 죽순, 등자와 귤이 두루 갖추어져 있을 때, 산수 사이에 있을 때, 주인이 잘난 체하지 않는 것, 먼지를 깨끗이 떨어낸 뒤, 이름난 향을 피울 때,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곳, 출처와 내력을 꼼꼼히 따져 보는 것, 세상이 평온하여 아무 일 없을 때, 덕 높은 승려가 함께할 때, 흰 눈이 내릴 때, 기이한 바위가 곁에 있을 때, 오래된 솥이나 종묘에서 쓰던 제기가 가까이 놓여 있는 것, 낮잠에서 막 깨어난 뒤, 병을 앓다가 막 나은 뒤, 천천히 펼쳤다가 천천히 거두어들이는 것.
훼방 놓는 것들
매실 익을 무렵 내리는 장맛비, 어두운 등불 아래에서 보는 것, 술에 취한 뒤에 보는 것, 벼루의 물이 말라붙어 굳어 있는 것, 두루마리를 묶는 끈이 뻣뻣하고 거친 것, 교활하게 속여서 파는 것, 경솔하게 빌려 오는 것, 소장자의 도장이 너무 많이 찍혀 있는 것, 함부로 아무렇게나 글귀를 적어 넣는 것, 감상하는 자리에서 대신 졸고 있는 것, 곁에 있는 손님이 자꾸 재촉하는 것, 지붕에서 물이 새는 것, 눅눅하고 흐린 비가 내리는 날, 메마르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것, 눈이 침침해 잘 보이지 않는 것, 고르고 가려내는 데 순서가 없는 것, 저잣거리에서나 오가는 속된 말을 마구 떠들어대는 것, 기름기가 잔뜩 묻은 손으로 만지는 것, 더러운 곳에 널어 햇볕을 쬐는 것, 표구를 서투르게 한 것, 베껴 그리다가 원본을 더럽히거나 상하게 하는 것, 좀이 슬어 좀먹은 것, 억지로 갖다 붙여 해석하는 것, 쥐가 곁에서 재채기를 해대는 것, 어린 종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하는 것, 그림 값이 얼마인지 묻는 것, 손톱으로 그림에 자국을 내는 것, 가위는 부러지고 부채는 쭈그러진 것.
화려하게 꾸미는 재료
바다거북 등껍질, 마노, 유리, 자줏빛이 도는 순금, 흰 옥, 무늬가 아름다운 무소뿔, 그리고 옛날 이름난 가마터에서 구워 낸 도자기로 만든 그림 두루마리의 축, 수를 놓은 띠끈, 궁궐 서고 깊숙이 간직된 귀한 표찰, 오색 옥으로 만든 패찰, 옛날에 짠 비단, 제왕의 옥새, 진기한 비단으로 지은 주머니, 이름난 현인이 써 준 발문, 여류 문사가 지녔던 소장품, 베를 짜서 만든 두루마리 겉장, 금실, 자개, 석청(푸른빛을 내는 광물 안료), 전단향나무로 만든 문갑.
끝내 망가지고 마는 경우
무지한 촌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 돈을 받고 전당포에 잡히는 것, 권세가에게 바치는 것, 잘라서 치마나 버선감으로 쓰는 것, 못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 도둑맞는 것, 술과 밥으로 바꿔 먹어 치우는 것, 물난리나 불에 타 없어지게 하는 것, 죽은 이와 함께 묻어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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