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빗속의 콜
비가 온다.
콜이 없다.
아내가 아프다.
김철(42)은 낡은 오토바이에 기댔다.
거미줄처럼 금 간 스마트폰 액정만 노려봤다.
‘번쩍 딜리버리’.
로고가 빗물에 번졌다.
젠장.
또 욕이 나왔다.
반지하 현관문을 열었다.
희미한 기침 소리가 습기를 갈랐다.
“쿨럭! 콜록….”
아내, 선아(38)였다.
뼈만 남은 몸이 이불 속에서 들썩였다.
세 살배기 아들, 새벽이가 낑낑거렸다.
울음소리마저 배고팠다.
선아의 푹 꺼진 눈이 철을 향했다.
“여보….”
갈라진 입술이 힘겹게 열렸다.
“따뜻한… 설렁탕….”
그 말이 칼이 됐다.
심장을 쑤셨다.
철은 벽을 봤다.
붉은 글씨의 ‘월세 독촉 고지서’가 그를 비웃었다.
“죽도 못 넘기면서 설렁탕은!”
모진 말이 튀어나갔다.
선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후회했다.
철은 돌아섰다.
헬멧을 집어 들었다.
등 뒤로 목소리가 날아와 박혔다.
“오늘은… 나가지 마….”
“제발… 같이 있어 줘….”
그 애원을 뿌리쳤다.
문을 닫는 순간.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울었다.
[번쩍 딜리버리!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첫 콜이었다.
2화
6만 5천 원짜리 유혹
운이 좋았다.
첫 콜, 커피 배달.
팁 천 원을 받았다.
두 번째 콜, 파스타 세 개.
문 앞에 붙은 오천 원.
젖은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 오늘 뭔가 된다.’
이 돈이면 된다.
설렁탕.
새벽이 먹일 죽.
아내의 약.
희망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번쩍! 초장거리 프리미엄 배달!]
[출발: 강남 테헤란로]
[도착: 일산 킨텍스]
[예상 수익: 65,000원]
눈을 의심했다.
6만 5천 원.
법인 고객의 긴급 서류 배달.
이거 한 건이면 며칠을 번다.
이거면… 월세를 낸다.
손가락이 멈칫했다.
일산.
너무 멀다.
왕복 두 시간.
‘나가지 마.’
아내의 얼굴이 헬멧 실드 위로 어른거렸다.
[주문 수락 대기 시간: 10초… 9초….]
앱이 재촉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괜찮을 거야.
별일 없겠지.
이 돈만 벌면, 다 괜찮아진다.
욕망이 죄책감을 눌렀다.
‘수락’ 버튼을 눌렀다.
오토바이가 빗속으로 뛰쳐나갔다.
강변북로에 올라탔을 때.
핸들 위 스마트폰 화면이 빛났다.
알림창이 떴다.
[옆집 아줌마: 부재중 전화 1통]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이미 시속 80km였다.
3화
도망치는 라이더
일산의 빌딩은 괴물 같았다.
서류를 건넸다.
‘배달 완료’.
6만 5천 원이 꽂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줌마! 저 철이 아빤데요!”
[어, 철이 아빠. 선아 기침이 아까 심하더니….]
[지금은 조용하네. 자나 봐.]
조용하다는 말이 섬뜩했다.
집에 가야 했다.
빨리.
하지만 두려웠다.
그 ‘조용한’ 집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또 콜이 울렸다.
[일산 -> 마포 / 케이크 배달 / 20,000원]
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이것만….’
도망치듯 콜을 잡았다.
멈추면 안 됐다.
달려야 했다.
계속 달려야 잊을 수 있었다.
밤 9시.
익숙한 동네 골목.
계좌에 15만 7천 원이 찍혔다.
기쁘지 않았다.
저 모퉁이만 돌면 집이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저편에서 친구 대식(42)이 보였다.
국밥집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철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오토바이 핸들을 그쪽으로 틀었다.
4화
국밥과 눈물
“야! 박대식!”
철은 비에 젖은 오만 원짜리를 던졌다.
“오늘 내가 쏜다!”
대식이 혀를 찼다.
“미친놈. 이 꼴로 어딜 싸돌아다녀.”
“죽기는! 오늘 나 운수 오진 날이야!”
국밥집 안은 뜨거웠다.
철은 소주를 물처럼 들이켰다.
허겁지겁, 무언가에 쫓기듯.
술기운이 돌았다.
그가 갑자기 테이블을 치며 웃었다.
“내가 오늘 말이야! 크하하!”
웃음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그러나 웃음은 금세 울음이 됐다.
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굵은 눈물이 국밥 그릇으로 뚝뚝 떨어졌다.
“대식아….”
“내 마누라가… 죽었어.”
“뭐? 야! 정신 차려!”
대식이 어깨를 흔들었다.
철은 눈물을 쓱 닦았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속았지, 이 자식아!”
“안 죽었어! 멀쩡하다니까!”
어린애처럼 손뼉을 쳤다.
하지만 눈은 공포로 새빨갰다.
대식이 그를 일으켰다.
“집에 가. 제수씨 걱정한다.”
“안 죽었어! 안 죽었다니까!”
철은 절규하듯 소리쳤다.
비틀거리며 국밥집을 나왔다.
그 와중에도 24시 설렁탕집에 들렀다.
뜨거운 뚝배기를 손에 들었다.
집으로 향했다.
어둡고 고요한 그 집으로.
5화
설렁탕을 사 왔는데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유난히 어두웠다.
고요했다.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두려웠다.
철은 일부러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이 여자야! 남편이 왔는데!”
문이 열렸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한가운데, 선아가 누워있었다.
미동도 없이.
그 곁에 새벽이가 엎드려 있었다.
낑낑거리며 엄마의 젖을 빨았다.
차갑고, 마른 젖을.
손에서 설렁탕 그릇이 떨어졌다.
쨍그랑.
뽀얀 국물이 시멘트 바닥을 적셨다.
철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아내의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 봐! 말 좀 해봐!”
“…”
“죽었어? 왜 대답이 없어!”
“…”
“정말… 죽은 거야…?”
그는 아내의 얼굴을 봤다.
텅 빈 눈동자가 천장을 향해 있었다.
짐승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죽은 아내의 뻣뻣한 얼굴을 적셨다.
철은 그 차가운 얼굴에 제 얼굴을 비볐다.
흩어진 국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이상하게 오늘은… 운수가 오지게 좋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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