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가제): 오늘도 두쫀쿠를 찾아 헤매는 당신에게
부제: 두바이 초콜릿부터 탕후루까지, 달콤함 뒤에 숨겨진 우리의 마음
프롤로그: 편의점 문을 열며
"사장님, 그 쿠키 들어왔나요?"
우리가 찾아 헤매는 건 쿠키일까, 위로일까?
"띠리링-."
퇴근길 밤 10시, 편의점 문을 열 때 들리는 이 경쾌한 알림음은 현대인에게 일종의 '파블로프의 종소리'입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제 눈동자는 본능적으로 간식 매대, 그것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신상' 코너로 향합니다.
오늘의 목표물은 이름도 거창한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 쿠키', 줄여서 '두쫀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혹합니다. 텅 비어있는 매대에는 '일시 품절'이라는 야속한 태그만이 붙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생분과 눈이 마주칩니다. 제가 입을 떼기도 전에, 그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물류 차 들어오자마자 다 나갔어요."
편의점을 나서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입니다. 아니, 도대체 그게 뭐라고. 손바닥만 한 쿠키 하나 못 먹었다고 이렇게까지 서러울 일인가요? 4,000원이면 국밥 반 그릇 값이고, 조금만 보태면 커피가 한 잔인데 말이죠.
그런데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게 정말 그 '쿠키' 한 조각의 맛일까요?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설탕 코팅이 와작 씹히는 탕후루에 열광했습니다. 그전에는 혀가 얼얼해지는 마라탕에 줄을 섰고, 더 전에는 구하기도 힘든 포켓몬 빵을 찾아 대형마트 오픈런을 뛰었죠. 어른들은 혀를 찹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유난을 떠냐"고요. 뉴스에서는 연일 'MZ세대의 과시 소비'니 '슈가 쇼크'니 하며 걱정 어린 분석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행복'을 사려는 겁니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고,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서울에 없는 것 같고, 뉴스를 틀면 한숨 나오는 소식뿐인 이 팍팍한 세상에서, 4,000원짜리 쿠키는 우리에게 '배신 없는 기쁨'을 약속하니까요.
바삭한 카다이프면이 씹히는 그 순간의 경쾌한 소리는 상사의 잔소리를 잠시 잊게 해주고, 쫀득하고 꾸덕한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는 고단한 하루를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그 유행에 나도 동참했다는 소소한 안도감, 그게 바로 우리가 편의점 문을 매일같이 여는 이유 아닐까요?
이 책은 사막의 도시 두바이에서 날아온 낯선 초콜릿이 한국 편의점의 왕좌를 차지하기까지, 그 달콤하고도 기이한 여정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유행의 뒷면에 숨겨진 우리의 외로움, 인정 욕구, 그리고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마음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자, 이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
비록 두쫀쿠는 품절됐을지 몰라도, 당신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줄 따뜻하고 맛있는 이야기는 이제 막 입고되었으니까요.
1부. 사막에서 온 달콤한 폭풍: 두바이 유행의 시작
1장. 두바이는 모르겠고, 초콜릿은 먹고 싶어
: 낯선 중동의 디저트가 한국 편의점의 왕이 되기까지
여러분, 솔직히 말해봅시다. '두바이'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부르즈 할리파? 톰 크루즈가 맨몸으로 빌딩을 타던 영화 <미션 임파서블>? 아니면 길거리에 돌아다닌다는 호랑이와 슈퍼카? 아마 대부분은 '석유', '사막', 그리고 '엄청난 부자들의 도시' 정도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2024년 대한민국에서 두바이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정의됩니다. 바로 "초콜릿이 맛있는 나라"로요.
지구 반대편, 비행기로 10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낯선 중동의 디저트가 한국 편의점의 '왕'이 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우리는 두바이 왕자가 뭘 먹는지는 관심 없지만, 인스타그램 돋보기 탭에 뜬 그 녹색 괴물 같은 초콜릿은 죽기 전에 꼭 한번 먹어보고 싶어 하니까요.
틱톡이 쏘아 올린, 아주 달콤한 공
모든 것은 15초짜리 영상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바이의 '픽스(Fix)'라는 디저트 업체가 만든 초콜릿 영상이 전 세계 알고리즘을 강타했죠. 투박한 초콜릿을 반으로 '툭' 하고 갈랐을 때,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꾸덕한 초록색 내용물.
"저게 뭐야? 슈렉 팩이야?"
처음엔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영상 속 인플루언서가 그걸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들리는 "파삭-!" 하는 소리. 그 소리가 전 세계인의 고막을 때리고, 뇌세포 깊숙한 곳의 도파민 버튼을 눌러버린 겁니다. 그 정체는 바로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중동의 국수라 불리는 '카다이프' 면을 섞은 것이었죠.
한국 사람들은 특히 이 장면에 열광했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눈으로 먼저 먹고, 귀로 두 번 먹는' 민족이거든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이 낯선 디저트는 순식간에 '먹어보지 않았지만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은, 그래서 더 미치겠는 맛'으로 등극했습니다.
가본 적 없는 나라를 그리워하는 법
재미있는 건, 이 유행을 주도하는 사람 중 99%는 두바이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 포함해서요.)
과거의 유행 음식들을 떠올려보세요. 대만 대왕 카스테라는 대만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쌀국수나 일본 라멘도 마찬가지죠. '여행의 추억'이 유행의 씨앗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먹는 게 아니라, 먹음으로써 여행을 합니다.
방구석에 누워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두바이의 맛을 상상하고, 소비합니다. 비행기 티켓값 200만 원은 없지만, 2만 원짜리 수제 초콜릿을 사 먹으며 잠시나마 '오일 머니'의 달콤함을 느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초연결 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미식 여행법, '방구석 미각 여행'입니다.
한국 편의점,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장
이 열망을 현실로 만든 건 다름 아닌 한국의 편의점들입니다.
"두바이 가서 사 오기엔 너무 멀고 비싸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자마자, 대한민국의 식품 업계는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습니다.
"카다이프 면이 없어? 그럼 소면을 튀겨서라도 만들어!"
"피스타치오가 비싸? 아몬드랑 섞어서라도 색을 내!"
원조 레시피를 분석하고, 대체 재료를 찾고, 공장을 돌려 제품을 찍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한두 달. 서울은 전 세계에서 트렌드를 가장 빨리 수입해서, 가장 빨리 씹어 삼키는 도시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여권 없이도 집 앞 편의점 슬리퍼 상권에서 사막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죠.
결국 '두바이 초콜릿' 유행은 단순히 맛있는 간식이 등장했다는 뉴스가 아닙니다.
"세상 힙한 건 나도 무조건 경험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호기심과, "고객이 원하면 지옥에서라도 가져오는" 한국 기업의 실행력이 만나 탄생한, 아주 한국적인 해프닝인 셈입니다.
자, 이제 두바이는 잊으셔도 좋습니다. 우리에겐 편의점 사장님이 숨겨둔, 혹은 당근마켓에서 거래되는 'K-두바이 초콜릿'이 더 중요하니까요. 진짜 두바이 초콜릿 맛이냐고요?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지금 내 입안이 달콤하고 바삭하면 그만인 것을요.
2장. '바삭'과 '쫀득' 사이, 식감에 미친 민족
: 왜 우리는 ASMR에 열광하고 씹는 맛에 집착하는가?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식감 소믈리에'들입니다.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할 때 가장 난감한 순간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바로 '쫀득하다', '쫄깃하다', '찰지다', '꾸덕하다', '꼬들꼬들하다'의 차이를 영어로 설명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에겐 그저 다 똑같은 'Chewy(질긴/씹히는)'일 뿐인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에게 떡볶이 떡의 '쫄깃함'과 약과의 '꾸덕함', 그리고 곱창의 '꼬들함'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는 맛(Taste)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입안에서 느껴지는 물리적인 감각, 즉 텍스처(Texture)에 목숨을 거는 민족입니다.
소리로 먹는 사람들: 귀르가즘과 도파민
두바이 초콜릿이 한국에서 그토록 빨리 뜬 이유, 저는 단언컨대 '소리'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튜브 숏폼 영상을 켜보세요. 마이크를 입 바로 옆에 대고 초콜릿을 깨물 때 나는 소리.
"콰-직!"
마치 마른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눈 밟는 소리 같기도 한 그 경쾌한 파열음. 그 안에 들어있는 '카다이프(튀긴 면)'가 으스러지며 내는 이 소리는 뇌의 전두엽을 강타합니다. 일명 '귀르가즘(귀+오르가슴)'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 '먹방(Mukbang)'과 'ASMR'의 종주국입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남이 밥 먹는 소리를 듣는 기이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죠. 시각 정보보다 청각 정보가 더 직관적으로 뇌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두바이 초콜릿은 그저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 '엔터테인먼트 푸드'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씹어야 산다: 스트레스와 저작 운동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무언가를 부수고, 으깨고, 씹어돌리고 싶어 할까요?
여기엔 다분히 생물학적이고 슬픈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무언가를 씹는 행위(저작 운동)를 통해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려고 합니다. 원시 시대에는 맹수를 만나면 이를 악물고 싸워야 했고, 그 본능이 남아있는 거죠.
하지만 현대 사회의 정글인 사무실에서 우리는 맹수(상사)를 물어뜯을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쇠고랑 찹니다.) 대신 우리는 퇴근길 편의점으로 달려가 '대리 만족'을 찾습니다.
- 와작와작 씹히는 탕후루의 설탕 코팅.
- 질겅질겅 씹히는 오징어와 젤리.
- 그리고 이제는 바삭함과 쫀득함을 동시에 주는 두바이 쿠키까지.
우리가 "아, 씹을 거 당긴다"라고 말할 때, 그건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아니라 "나 오늘 좀 힘들었어, 뇌를 좀 진정시켜 줘"라는 구조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겉바속촉: 한국인이 추구하는 식감의 이데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자성어(?)는 아마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일 겁니다. 치킨도, 붕어빵도, 소금빵도 겉바속촉이어야 팔립니다.
지금 유행하는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는 이 식감의 완벽한 변주입니다.
쿠키 도우(반죽)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떡처럼 묵직하고 '쫀득'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튀긴 국수(카다이프)가 들어있어 씹을 때마다 '바삭'거립니다.
[쫀득함(안정감) + 바삭함(해방감)]
이 모순적인 두 식감이 입안에서 팡팡 터질 때, 한국인은 비로소 완벽한 미식의 희열을 느낍니다. 부드럽게 위로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때려 부수고 싶은 우리의 이중적인 마음이 이 쿠키 하나에 다 들어있는 셈이죠.
그러니 오늘 밤, 누군가 "너는 왜 식감을 그렇게 따지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말하세요.
"나는 지금 맛을 보는 게 아니라, 내 스트레스를 가장 우아하게 씹어 삼키는 중이야"라고요.
3장. K-패치의 마법, 두바이 '쿠키'의 탄생
: 초콜릿을 구하기 힘들자 쿠키로 만들어버린 한국인의 응용력 (이라 쓰고 광기라 읽는다)
혹시 인터넷에서 떠도는 '한국인 마늘 밈(Meme)'을 보신 적 있나요?
외국 요리 레시피에서 "마늘 한 쪽(One clove)을 넣으세요"라고 하면,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한 숟갈(One Spoon)", 아니 "한 주먹"을 때려 넣는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우리에게 마늘은 향을 내는 향신료(Spice)가 아닙니다. 감자나 당근처럼 씹어 먹는 채소(Vegetable)죠.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식문화의 정수, 'K-패치(Korea+Patch)'의 시작점입니다.
우리는 외부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입맛, 우리의 속도, 우리의 '양'에 맞춰서 기어이 변형시키고야 맙니다. 이번 '두바이 초콜릿' 사태(?)에서도 이 종특(종족 특성)은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없으면 만든다, 그것도 더 크고 묵직하게
두바이 원조 초콜릿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해외 직구를 하려 해도 배송비가 초콜릿 값보다 비싸고, 여름엔 녹아서 옵니다. 보통의 민족이라면 "아, 아쉽지만 나중에 먹자" 하고 포기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인은 포기를 모르는 민족입니다.
"초콜릿을 못 구한다고? 그럼 그 속재료(피스타치오+카다이프)만 가져와. 우리가 씹을 수 있는 다른 걸로 감싸버리면 되잖아!"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 쿠키', 일명 '두쫀쿠'입니다.
왜 하필 쿠키였을까요? 그냥 초콜릿은 너무 잘 녹고, 배가 안 차거든요. 한국인은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고 하지만, 기왕이면 디저트도 든든해야 합니다. (우리는 밥 먹고 후식으로 볶음밥을 먹는 탄수화물 중독자들이니까요.)
그래서 얇은 초콜릿 껍질 대신, 손바닥만 한 두툼한 쿠키 반죽 위에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얹고 초콜릿으로 코팅을 해버렸습니다. 이건 단순한 변형이 아닙니다. 거의 '마개조(마구 개조함)' 수준의 재창조입니다.
편의점 개발팀의 피, 땀, 그리고 설탕
이 광기의 최전선에는 편의점 PB(자체 브랜드) 상품 개발팀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유행을 선도한 CU와 압구정의 핫한 베이커리 '이웃집 통통이'의 콜라보 제품을 보세요. 원조 두바이 초콜릿의 모양(바 형태) 따위는 과감히 버렸습니다. 대신 한국인이 환장하는 '약과 쿠키' 형태의 납작하고 둥근 모양을 채택했죠.
상상해 봅니다. 트렌드가 뜨자마자 편의점 본사 회의실에서 벌어졌을 긴박한 풍경을요.
"김 대리, 지금 두바이가 뜬대. 2주 안에 제품 출시해."
"부장님, 카다이프 면 수입이 안 되는데요?"
"그럼 한국 소면을 튀기든, 옥수수면을 볶든 식감을 만들어 내! 무조건 되게 해!"
아마 개발자들은 진짜 두바이 초콜릿은 구경도 못 해봤을지 모릅니다. 유튜브 영상 속 "바삭하고 고소하다"는 묘사 하나만 붙들고 밤새 밀가루 반죽과 씨름했을 겁니다. 그렇게 탄생한 '한국형 두바이 쿠키'는 원조보다 덜 달면서, 더 쫀득하고, 결정적으로 '구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바로 K-패치의 위력입니다.
모든 길은 'K-디저트'로 통한다
마카롱이 한국에 들어와서 필링을 3단으로 쌓은 뚱카롱이 되었듯,
크로와상이 와플 기계에 눌려 크로플이 되었듯,
두바이 초콜릿 역시 한국의 땅을 밟는 순간 '쫀득한 쿠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어떤 외국인들은 "이건 원조(Authentic)가 아니야!"라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요? 문화는 흐르고 변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막의 모래바람이 아니라, 한국의 편의점 물류 트럭이 실어 나른 '창조적인 달콤함'을 맛보고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더 맛있게, 먹기 힘든 것을 먹기 좋게 바꾸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 'K-연금술' 아닐까요?
4장. 편의점 오픈런과 당근마켓
: 4,000원짜리 쿠키를 구하기 위해 40,000원어치의 에너지를 쓰는 이유
몇 년 전,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포켓몬 빵' 대란을 기억하시나요? 대형마트 앞에 새벽부터 텐트를 치고, 편의점 물류 트럭 뒤를 좀비 영화처럼 쫓아다니던 그 풍경 말입니다.
"아니, 다 큰 어른들이 빵 쪼가리 하나 먹겠다고 저러나?"
혀를 차던 김 대리님도, 이번엔 상황이 다릅니다. 퇴근길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고, 화면에는 편의점 재고 조회 앱인 '포켓CU'가 켜져 있습니다. 새로 고침을 누르는 그의 손가락이 떨립니다. 목표는 단 하나, 우리 동네 편의점에 딱 2개 입고된다는 '두바이 스타일 쿠키'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당근!" 쿠키가 거래되는 기이한 시장
편의점 순회공연(일명 '편의점 뺑뺑이')에 실패한 패잔병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백화점? 아닙니다. 바로 주황색 아이콘의 세계, '당근마켓'입니다.
"당근!"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새 게시물이 올라옵니다.
[판매] 두바이 초콜릿 쿠키 1개 팝니다. (미개봉)
가격은 정가 4,000원의 두 배인 8,000원. 심지어 어떤 곳은 "일괄 2만 원 쿨거래"를 외칩니다. 예전 같았으면 "먹던 걸 파냐", "음식 가지고 장난치냐"며 신고당했을 게시글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구매자: "저요! 저요! 지금 당장 갈게요!"
구매자: "제발 저한테 파세요 ㅠㅠ 네고 안 할게요."
채팅창은 전쟁터입니다. 누군가는 웃돈을 얹어주고(플미, Premium), 누군가는 왕복 택시비를 감수하며 옆 동네까지 원정을 갑니다. 쿠키 하나를 사기 위해 들어가는 돈과 시간, 에너지를 계산해 보면 대충 40,000원은 족히 넘을 겁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합리적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미친 짓입니다. 4,000원짜리 효용을 얻기 위해 그 열 배의 비용을 지불하다니요.
우리가 사는 건 쿠키가 아니라 '성취감'이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합리적이지 않은 동물입니다. 특히 '희소성(Scarcity)' 앞에서는 더더욱 이성을 잃죠.
우리가 편의점 문을 박차고 들어가 마지막 남은 쿠키를 손에 쥐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와, 맛있겠다"가 아닙니다.
"해냈다!", "내가 이 구역의 승리자다!"라는 원초적인 성취감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내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직장 생활 속에서, 이 작은 쿠키 쟁탈전에서의 승리는 꽤나 짜릿한 도파민을 선사합니다. 남들이 못 구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신상'을 내 손에 넣었다는 그 우월감. 그걸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을 때 쏟아지는 "헐, 어디서 구함?"이라는 DM들.
우리는 4,000원짜리 쿠키를 산 게 아니라, 오늘 하루의 가장 확실한 '승리의 트로피'를 산 것인지도 모릅니다.
리셀러를 욕하면서도 지갑을 여는 이유
물론 이 틈을 타 이득을 취하려는 '리셀러(Reseller)'들은 얄밉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꺼이 웃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가 갑니다. 현대인에게 '시간'은 돈보다 귀하거든요. 편의점을 다섯 군데 돌아다닐 에너지를 아껴서, 차라리 5,000원을 더 내고 편하게 먹겠다는 계산입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바쁜 현대인의 슬픈 효율성 추구입니다.
오늘도 당근마켓에는 "두바이 쿠키 구해요"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그 간절한 글을 보며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배가 고파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남들 다 하는 유행의 막차라도 타서 '나도 이 사회의 일원임'을 확인받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뭐가 됐든, 중고 거래 앱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쭈뼛거리며 쿠키를 건네받는 그 어색하고도 비장한 순간. 훗날 돌아보면 2024년의 가장 웃프고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아닐까요?
5장. 틱톡이 낳고 릴스가 키운 맛
: 15초 안에 시선을 뺏지 못하면 맛없는 음식이다
옛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2024년, 이 속담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보기에 좋지 않은 떡은, 애초에 먹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라고요.
맛집을 검색할 때 네이버 블로그의 긴 줄글보다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를 먼저 누르는 시대. 우리는 이제 혀끝의 미각보다 망막의 시각으로 먼저 맛을 봅니다. 바야흐로 '시각이 미각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전 국민의 의식(Ritual), '반갈샷'의 미학
두바이 초콜릿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결정적인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칼을 대는 순간, 단단한 초콜릿 코팅이 "파삭-" 하고 갈라지며 그 안에서 꾸덕한 피스타치오 필링이 마그마처럼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갈샷(반으로 가르는 샷)'이라고 부릅니다.
편의점 신상 빵이든, 쫀득 쿠키든,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들의 공통점은 이 '반갈샷'이 예뻐야 한다는 겁니다. 겉모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속을 갈랐을 때 크림이 폭포수처럼 흐르거나, 알록달록한 단면이 드러나야만 합격입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사람들에게 "이것 봐! 이렇게 꽉 차 있어!"라는 시각적 충격을 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제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 카메라 렌즈에게 먼저 양보합니다. "잠깐! 아직 먹지 마! 단면 찍어야 돼!"라는 외침, 식당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죠?
15초의 법칙: 평양냉면이 틱톡에서 망하는 이유
이 시각적 집착의 배후에는 '숏폼(Short-form)'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있습니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이 플랫폼들의 문법은 냉혹합니다. 영상이 시작되고 3초 안에 시선을 끌지 못하면, 손가락은 가차 없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갑니다(Swipe).
이 15초의 세계에서 '깊고 은은한 맛'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밍밍하지만 씹을수록 구수한 '평양냉면'은 숏폼에서 인기를 끌기 어렵습니다. 화면상으로는 그냥 물에 젖은 국수일 뿐이니까요.
반면, 마라탕의 시뻘건 국물, 탕후루의 영롱한 반짝임, 두바이 쿠키의 흘러넘치는 초록색 필링은 1초 만에 뇌를 자극합니다.
"와, 쩐다."
이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직관적인 색감과 화려한 텍스처. 그것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는 비결입니다. 맛이 있고 없고는 나중 문제입니다. 일단 눈을 사로잡아야 '존재하는 음식'이 됩니다.
과잉의 시대: 더 크게, 더 많이, 더 화려하게
그래서일까요? 요즘 디저트들은 점점 '괴식'에 가까울 정도로 과해지고 있습니다.
한입에 넣을 수도 없는 탑처럼 쌓인 햄버거, 크림을 너무 많이 넣어 터질 것 같은 도넛, 토핑이 산처럼 올라가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이것들은 인간의 입 크기를 고려한 게 아닙니다. 16:9 비율의 스마트폰 세로 화면을 꽉 채우기 위해 설계된 디자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보여주기식 가짜 미식"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식사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제 위장으로만 포만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눈으로 화려한 이미지를 섭취하고, 좋아요 숫자로 심리적 포만감을 느껴야 비로소 "잘 먹었다"고 생각하니까요.
두바이 쿠키를 찾아 헤매는 당신, 당신은 지금 배가 고픈 건가요, 아니면 당신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배고픈 건가요?
뭐가 됐든 상관없습니다. 15초 안에 사람들을 홀릴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맛있는(Tasteful) 음식일 테니까요.
2부. 유행의 족보: 탕후루가 가고 두쫀쿠가 왔다
6장. 단짠의 롤러코스터
: 마라탕 먹고 탕후루 먹고. 위장을 자극하는 도파민 풀코스.
대한민국 1020세대에게는 헌법보다 강력한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마라탕 먹고 나서 탕후루 안 먹으면 유죄"라는, 일명 '마라탕후루' 법칙입니다.
이 기이한 코스 요리는 단순한 식사 순서가 아닙니다.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생화학적 쾌락의 메커니즘이죠. 그리고 탕후루의 인기가 살짝 주춤해진 지금, 그 빈자리를 아주 묵직하고 거대한 녀석이 채우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주인공, '두바이 쫀득 쿠키'입니다.
혀를 학대했다가 위로하는, 변태적인 사랑
먼저 1차전, 마라탕입니다.
맵기를 '3단계(불닭볶음면 정도)'나 '4단계(지옥의 맛)'로 설정하고, 혀가 마비될 것 같은 산초의 알싸함(마, 麻)을 즐깁니다. 엄밀히 말해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고통)'입니다. 우리는 돈을 내고 내 혀를 때려달라고 주문하는 셈이죠.
왜냐고요? 뇌는 이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엔돌핀'이라는 천연 진통제를 뿜어내거든요. 스트레스로 꽉 막힌 속을 캡사이신으로 뚫어버리는 그 카타르시스. "아, 맵다 매워!"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순간,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고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 엉망이 된 혀를 달래줄 구원투수가 등판해야 합니다. 2차전, 디저트의 등장입니다.
단짠(Sweet & Salty)을 넘어선 맵단(Spicy & Sweet)의 세계
예전엔 짠 음식을 먹으면 단 음식을 먹는 '단짠'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자극의 레벨이 다릅니다. 지옥 불 맛(매운맛) 뒤에 극강의 설탕 맛(단맛)을 들이붓는 '맵단맵단'의 시대입니다.
탕후루가 그토록 유행했던 건, 마라탕의 기름지고 매운 뒷맛을 설탕 코팅의 '와작' 하는 식감과 과일의 상큼함으로 단번에 씻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고통 $\rightarrow$ 진통]의 과정이 끝나고 [당분 $\rightarrow$ 도파민 폭발]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탕후루 가게가 하나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두바이 초콜릿과 쿠키가 들어왔습니다. 왜일까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과일 사탕 정도로는 더 이상 도파민이 안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더 기름지고, 더 꾸덕하고, 더 비싼 무언가가 필요해진 겁니다.
혈당 스파이크가 칠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정된다
두바이 쫀득 쿠키는 마라탕의 완벽한 파트너입니다.
마라탕의 자극적인 나트륨을 쿠키 속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의 고소한 지방이 덮어버리고, 초콜릿의 단맛이 혀의 통증을 잊게 만듭니다.
이 코스를 완주하면 우리 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혈당이 수직 상승하는 '혈당 스파이크(Blood Sugar Spike)'가 일어납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들으면 뒷목 잡을 이야기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은 이 혈당이 치솟았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그 나른한 기분을 '안정감'이라고 착각하며 즐깁니다.
세상이 너무 팍팍하고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내 혈당 수치라도 내 의지대로 롤러코스터를 태우고 싶은 걸까요?
"마라탕 먹고 두쫀쿠 먹으러 가자."
이 말은 단순히 밥 먹자는 제안이 아닙니다.
"오늘 내 기분이 너무 바닥이니, 강제로라도 텐션을 좀 끌어올려야겠어. 내 췌장을 희생해서라도 기분을 좀 풀어야겠어."라는 비장한 선언입니다.
우리의 혀는 하루도 쉴 틈이 없습니다. 학대당했다가, 위로받았다가.
극단적인 맛의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이 식습관은, 어쩌면 극단적인 경쟁과 피로 속을 오가는 우리네 일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밤 편의점에서 두바이 쿠키를 집어 든 당신,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은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위로가 고픈 것일 테니까요. (물론, 내일 아침 공복 혈당은 책임 못 집니다.)
7장. 할매니얼의 역습, 약과의 재발견
: 가장 힙한 것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약게팅 신드롬)
홍대나 성수동 같은 '힙플레이스'에 가보신 적 있나요?
최신 유행의 최전선인 그곳에서 요즘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풍경이 있습니다. 크롭티에 와이드 팬츠를 입은 20대 '젠지(Gen Z)'들이 손에 커피 대신 '약과'나 '양갱', '개성주악'을 들고 다니는 모습입니다.
네, 맞습니다. 명절 차례상 구석에서 "이거 누가 먹냐"며 천대받던 그 갈색 덩어리들 말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이라고 부릅니다. 할머니들이나 좋아할 법한 흑임자, 쑥, 인절미, 약과 같은 옛날 간식에 열광하는 신인류죠. 도대체 왜 갑자기 21세기에, 조선시대 간식이 아이돌 티켓팅보다 치열한 '약게팅(약과+티켓팅)'의 주인공이 된 걸까요?
약과는 '조선시대의 두바이 초콜릿'이다
사실 약과와 지금 유행하는 두바이 초콜릿(혹은 두쫀쿠)을 나란히 놓고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습니다.
- 약과: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서 조청(시럽)에 절임.
- 두쫀쿠: 밀가루 반죽에 버터를 넣고 구워서 설탕/초콜릿을 입힘.
둘 다 [탄수화물 + 지방 + 당분]의 고농축 폭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이 환장하는 그 식감, '꾸덕함(Fudgy)'의 결정체죠.
입에 넣었을 때 이가 살짝 박힐 정도로 쫀득하고, 씹을수록 기름진 고소함과 단맛이 배어 나오는 그 느낌. 약과는 사실상 'K-브라우니'이자 '조선시대의 마카롱'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아, 당 떨어진다. 약과 하나 가져오너라" 하셨을 게 분명합니다.
결국 형태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수백 년째 '밀도 높은 단맛'과 '이에 달라붙는 쫀득함'을 찾아 헤매고 있는 셈입니다. 할매니얼 트렌드는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우리 유전자 속에 잠들어 있던 '탄수화물 중독 DNA'가 세련된 포장을 입고 부활한 것입니다.
장인한과와 약게팅: 기다림도 맛이다
이 열풍의 중심에는 의정부의 '장인한과'가 있습니다.
못생긴 파지 약과(모양이 깨진 약과) 하나를 사기 위해 온라인 몰 오픈 시간에 맞춰 수천 명이 광클을 하고,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웃돈이 붙어 팔립니다.
"아니, 편의점 가면 널린 게 약과인데 굳이?"
하지만 MZ세대에게 그냥 약과와 '장인한과'는 다릅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퍼석한 약과는 취급 안 합니다. 장인이 손으로 직접 튀겨내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조청으로 꽉 차 쫀득한(마치 두바이 쿠키처럼!) 그 '텍스처'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이 희소성은 약과를 단순한 간식이 아닌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구하기 힘든 것을 구해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나는 공산품이 아니라 장인의 손맛(Craftsmanship)을 소비한다"는 자부심. 이것이 바로 '힙 트래디션(Hip+Tradition)'의 핵심입니다.
촌스러운 건 없다, 재해석된 것만 있을 뿐
전통은 더 이상 지루하거나 촌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힙(Hip)'하고 '희귀한'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스타벅스보다 오래된 찻집에서 쌍화차를 마시는 게 '레트로 감성'으로 통하고, 마카롱 대신 개성주악(찹쌀 튀김)을 선물하는 게 센스 있는 행동이 됩니다. 서양 문물에 질린 젊은 세대에게 우리 옛것은 오히려 '신선한(Fresh) 자극'으로 다가온 것이죠.
두바이 쿠키를 먹다가 질리면, 냉동실에 얼려둔 약과를 꺼내 한입 베어 물어보세요. 그리고 느껴보세요.
"아, 우리 할머니도 사실은 엄청난 '식감 천재'였구나."
유행은 돌고 돕니다. 사막의 초콜릿이 지겨워질 때쯤이면, 어쩌면 누룽지나 숭늉이 'K-시리얼'이라는 이름으로 오픈런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입니다. 입맛은 변덕스럽지만, '맛있는 건 시대를 초월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8장. 줄 서는 식당, 줄 서는 베이글
: 웨이팅 앱은 어떻게 우리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가
주말 아침 7시, 안국동 골목.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이른 시각, 출근 시간도 아닌데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좀비처럼 서 있습니다. 그들의 눈은 퀭하지만, 손에 든 스마트폰을 보는 눈빛만은 비장합니다.
무슨 아이돌 팬미팅 현장이냐고요? 아닙니다. 그저 '베이글'을 사러 온 사람들입니다. 네, 밀가루 반죽 가운데 구멍 뚫어서 삶고 구운 그 빵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대 웨이팅(Great Waiting)의 시대'입니다. 맛집 앞에 줄을 서는 건 예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릅니다. 밥을 먹기 위해 3~4시간을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줄 서기 대행 알바'까지 등장했으니까요.
도대체 우리는 왜, 밥 한 끼 먹겠다고 소중한 주말 반나절을 길바닥에 헌납하는 걸까요?
런던에는 없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
이 기이한 현상의 중심에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있습니다.
이곳의 베이글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그 살인적인 웨이팅 소문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재미있는 건, 정작 런던 사람들은 베이글을 그렇게 줄 서서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베이글은 뉴욕이나 몬트리올이 유명하니까요.)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빵집이 아닙니다. 마치 영국 귀족의 별장에 온 듯한 이국적인 인테리어, 직원들의 유니폼,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베이글의 비주얼은 그 자체로 하나의 '테마파크'입니다.
우리는 빵을 사러 가는 게 아닙니다. '입장권'을 끊으러 가는 겁니다.
롯데월드에서 롤러코스터 하나 타려고 2시간 줄 서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 유명 베이커리 입장에 3시간 쓰는 건 왜 이상한가요? MZ세대에게 핫플 웨이팅은 놀이공원 줄 서기와 똑같은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기다림이라는 최고의 조미료 (feat. 인지 부조화)
여기에는 아주 재미있는 심리학적 기제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영하 10도의 추위에 덜덜 떨며 3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입장해서 베이글 한 입을 베어 물었습니다. 그런데 맛이 그냥 그렇다면?
우리의 뇌는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습니다.
*"내가 고작 평범한 빵 쪼가리를 먹으려고 이 고생을 했다고? 나는 바보인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뇌는 즉각적으로 현실을 왜곡합니다.
"아니야, 이건 그냥 빵이 아니야. 내 인생 최고의 베이글이야. 3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는 천상의 맛이야!"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겁니다.
사실 음식의 맛을 완성하는 건 셰프의 손맛이 아니라, '나의 고생'과 '기다림', 그리고 '시장기'라는 세 가지 조미료입니다. 웨이팅 없이 바로 들어가서 먹었다면? 아마 "음, 괜찮네" 하고 말았을 그 맛이, 3시간의 기다림 끝에는 "미친 맛"으로 둔갑하는 마법. 이것이 줄 서는 식당의 비밀입니다.
'캐치테이블'이 바꾼 풍경: 웨이팅도 스펙이다
과거에는 무작정 가게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면, 이제는 '캐치테이블'이나 '테이블링' 같은 원격 줄 서기 앱이 필수입니다.
이 앱들은 웨이팅을 하나의 '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대기 382팀."
이 절망적인 숫자를 뚫고 내 순서가 다가올 때의 카운트다운. "입장해 주세요"라는 알림톡이 왔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한 전율. 이것은 흡사 수강신청 성공이나 복권 당첨과 맞먹는 도파민을 선사합니다.
심지어 돈을 받고 대신 줄을 서주는 '웨이팅 알바'가 성행한다는 건, 이제 '유명 맛집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사고팔 수 있는 자산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 거기 가봤어."
이 한마디는 이제 "나 시간 많아"가 아니라, "나 트렌드에 민감하고, 인내심도 강하고, 운도 좋은 사람이야"라는 스펙 자랑이 되었습니다.
기다림조차 콘텐츠가 되는 세상
우리는 줄 서 있는 내 모습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립니다.
[대기번호 450번... 실화냐? 😱]
욕을 하면서도 올리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나 지금 이만큼 핫한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죠. 기다리는 과정조차 콘텐츠가 되고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 혹시 이번 주말, 여자친구나 친구에게 끌려가 하염없이 줄을 서게 되더라도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단순히 밥을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을 몸소 체험하며, 스스로에게 '맛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중이니까요.
물론, 3시간 기다린 베이글보다 집 앞 편의점 두쫀쿠가 더 맛있을 수도 있다는 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로 합시다.
9장. 뚱카롱부터 요아정까지
: 한국에만 오면 뚱뚱해지고 화려해지는 디저트들의 비밀
외국 음식들이 인천공항 세관을 통과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특별한 절차가 있다는 소문, 들어보셨나요? 바로 'K-패치(Korea Patch) 심사대'입니다.
이곳을 통과하는 순간, 작고 소박했던 외국의 디저트들은 '벌크업'을 시작합니다. 더 커지고, 더 달아지고, 무엇보다 '토핑'이라는 갑옷을 덕지덕지 두르게 되죠.
프랑스 파티시에가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지고, 이탈리아 젤라또 장인이 보면 "맘마미아!"를 외치며 기겁할 이 현상. 우리는 이것을 'K-스타일의 재창조'라 부르고, 인터넷 용어로는 '뇌절(적당히를 모르고 끝까지 감)'의 미학이라고 부릅니다.
마카롱이 햄버거가 되기까지: 뚱카롱의 전설
대표적인 희생양(?)이자 수혜자는 바로 프랑스의 고급 과자, '마카롱'입니다.
본래 마카롱은 여리여리한 파스텔 톤 꼬끄(과자 부분) 사이에 얇게 펴 바른 필링(크림)의 조화를 즐기는, 아주 섬세하고 감질나는 디저트입니다. 한입 베어 물면 "음, 사라졌네?" 하는 그 아쉬움이 미덕이죠.
하지만 '가성비'와 '푸짐함'의 민족 한국인에게 그런 여백의 미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아니, 돈이 얼마짜린데 크림을 바르다 말아?"
결국 한국의 제과 사장님들은 결단을 내립니다. 필링을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로 짜 넣기 시작했죠. 그것도 모자라 그 사이에 딸기, 치즈 케이크, 오레오, 심지어 뽀또 치즈나 떡을 끼워 넣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뚱카롱(뚱뚱한 마카롱)'입니다. 이제 한국의 마카롱은 한입에 넣을 수 없는 '디저트계의 햄버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원조 레시피는 파괴되었지만, 우리는 행복합니다. 입안 가득 차오르는 그 묵직한 포만감이야말로 한국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미식'이니까요.
요아정: 아이스크림은 거들 뿐, 주인공은 토핑이다
최근 이 '뇌절'의 계보를 잇는 핫한 주자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입니다.
이름은 '정석'인데, 먹는 방법은 전혀 정석이 아닙니다.
배달 앱을 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1인분에 4,500원 남짓.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토핑을 추가하기 시작합니다.
- 벌집 꿀 추가 (+3,000원)
- 자몽/샤인머스캣 추가 (+4,000원)
- 초콜릿 쉘(코팅) 추가 (+2,000원)
- 치즈 큐브, 그래놀라, 연유...
정신을 차리고 보면 4,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20,000원짜리 요리가 되어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그저 토핑을 접착하기 위한 '풀'에 불과합니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상황이죠.
이탈리아 사람들이 젤라또 본연의 맛을 즐길 때, 우리는 "맛있는 거 옆에 맛있는 거, 그 위에 또 맛있는 거"를 쌓아 올립니다. 이것은 흡사 비빔밥의 민족다운 발상입니다. 다 섞어서 한 입에 넣었을 때 터지는 그 '파티' 같은 맛을 사랑하는 것이죠.
미니멀리즘? 우린 그런 거 몰라요
왜 한국 디저트는 유독 이렇게 과하고 화려해지는 걸까요?
첫째는 '인증샷 문화'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었을 때 화면을 꽉 채우는 압도적인 비주얼이 필요합니다. 얇은 마카롱이나 하얀 아이스크림만 덜렁 있는 건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지 않으니까요.
둘째는 '확실한 자극'을 원하는 심리입니다.
"은은한 맛", "재료 본연의 맛"은 한국 트렌드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한 입 먹자마자 "와! 달다! 바삭하다!" 하고 뇌를 때려주는 직관적인 맛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피곤하고,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니까요. 미묘한 맛을 음미할 여유 따윈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괴식이다", "당뇨병 직행열차다"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요? 프랑스 마카롱이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라면, 한국의 뚱카롱과 요아정은 앰프 볼륨을 최대로 키운 'K-POP'입니다.
화려하고,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이것이 바로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K-디저트'만의 장르입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칼로리 계산 따위 집어치우고, 토핑 추가 버튼을 과감하게 눌러보세요. 뇌절 끝에 낙이 오는 법이니까요.
10장. 한정판의 유혹
: "지금 아니면 못 먹어요"라는 말이 주는 공포와 쾌감
쇼핑몰이나 편의점을 지나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있습니다. '세일'도 '1+1'도 아닙니다. 바로 빨간 글씨로 적힌 "한정판(Limited Edition)", 그리고 그 옆에 붙은 "품절 임박" 스티커입니다.
분명 배도 안 고프고,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원이 무심하게 한마디 던집니다.
"손님, 그거 시즌 한정이라 다음 주면 단종돼요."
그 순간, 우리의 뇌에서는 비상 사이렌이 울립니다.
'뭐? 다음 주면 없어진다고? 평생 다시는 못 먹을지도 모른다고?'
정신을 차려보면 제 손에는 이미 핑크색 벚꽃 에디션 라떼와 딸기 샌드위치가 들려 있습니다. 맛이 궁금해서가 아닙니다.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지갑을 열게 만든 겁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밤, 겨울에는 붕어빵
대한민국의 식음료 업계는 '시즌(Season)'을 파는 데 도가 텄습니다.
봄이 오면 모든 카페가 약속이라도 한 듯 벚꽃 향(사실은 화장품 맛이 나는) 음료를 내놓고, 가을이 되면 편의점은 밤과 고구마로 도배됩니다. 심지어 두바이 초콜릿조차 '발렌타인데이 한정 패키지', '수능 응원 한정판'이라는 옷을 입고 나옵니다.
우리는 1년 365일 내내 '지금 먹어야 하는 이유'를 주입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봄이니까 딸기 뷔페 가야지."
"겨울이니까 슈붕(슈크림 붕어빵) 먹어야지."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딸기는 비닐하우스 덕분에 사계절 내내 나오고, 붕어빵도 냉동식품으로 언제든 먹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기어이 줄을 서서 그 시즌 메뉴를 먹습니다. 그것은 음식을 먹는 행위라기보다, "나 지금 이 계절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어"라는 확인 도장을 찍는 의식(Ritual)에 가깝습니다.
가질 수 없어서 더 갖고 싶은 '품절 임박'의 심리학
경제학에서는 이를 '상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고통을 2배 더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지금 안 사면 못 먹어요"라는 말은 우리에게 "지금 안 사면 당신은 이 맛있는 경험을 영영 '잃어버리게' 됩니다"라는 협박으로 들립니다. 맛이 있고 없고는 나중 문제입니다. 일단 내 손에 넣어서 '기회의 상실'을 막는 게 급선무죠.
편의점 매대 구석에 딱 하나 남은 '두바이 쫀득 쿠키'를 봤을 때의 심정을 떠올려보세요.
만약 그 쿠키가 100개 쌓여 있었다면? 아마 "음, 요즘 유행이라지?" 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텅 빈 매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마지막 하나(Last One)'는 다이아몬드보다 빛나 보입니다.
'희소성'은 평범한 물건을 명품으로 둔갑시키는 가장 강력한 조미료입니다. 우리는 그 희소성을 획득함으로써 남들보다 우월해졌다는 쾌감을 삽니다.
한정판의 진실: 마케팅이거나, 간 보기거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속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정판'은 진짜 재료가 부족해서 한정판인 게 아닙니다.
기업 입장에서 한정판은 최고의 '테스트 베드(시험대)'입니다.
"일단 '한정'이라고 붙여서 팔아보자. 안 팔리면 '시즌 종료' 핑계 대고 없애면 되고, 잘 팔리면 슬그머니 '온고잉(정식 출시)' 하면 되니까."
우리가 열광했던 수많은 한정판 메뉴들, 반응 좋으면 이름만 살짝 바꿔서 내년에 또 나옵니다. 그러니 "평생 못 먹는다"는 공포에 너무 떨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되는 메뉴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다시 만들어내니까요.
하지만 알면서도 우리는 또 속아 넘어갑니다.
왜냐고요? 그 '한정판' 딱지를 떼는 순간, 왠지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이벤트가 생긴 것 같거든요.
"야, 이거 시즌 한정이래!" 하며 친구와 호들갑을 떨며 나눠 먹는 그 순간의 즐거움.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사고 싶었던 건, 그 쿠키의 맛이 아니라 지루한 일상을 환기해 줄 4,000원짜리 이벤트 티켓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편의점에서 '품절 임박' 딱지를 보거든 그냥 즐겁게 속아주세요.
"그래, 내가 너를 구해줄게!" 하고 말이죠. 그것 또한 소소한 행복이니까요.
3부. 왜 우리는 먹는 것으로 증명하는가? (MZ 심리 분석)
11장. 3만 원짜리 명품은 없지만 3만 원짜리 디저트는 있다
: 불황 시대의 가장 확실한 '스몰 럭셔리'
백화점 1층 명품관 앞. 샤넬 매장에 들어가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데, 솔직히 우리네 통장 잔고를 보면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1,000만 원짜리 가방?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 샤넬 매장을 지나 지하 식품관으로 내려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손바닥만 한 케이크 한 조각에 15,000원, 호텔 빙수 한 그릇에 80,000원.
"와, 미쳤다. 밥값보다 비싸네."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 손은 이미 카드를 긁고 있습니다. 점심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웠으면서, 후식으로는 그 10배가 넘는 비용을 태우는 이 기이한 소비 패턴. 어른들이 보면 "배가 불렀다"고 혀를 찰 노릇이지만, 여기엔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만의 눈물겨운 생존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립스틱 대신 마카롱을 바르는 시대
경제학 용어 중에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경제가 어려워지자 오히려 립스틱 매출이 급증한 현상에서 유래했죠. 돈이 없으니 비싼 코트나 드레스는 못 사지만,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립스틱을 사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는 겁니다.
202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이 립스틱의 자리를 '디저트'가 꿰찼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가진 3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명품'이 세상에 존재하나요?
명품 브랜드의 키링 하나도 못 사고, 향수 한 병도 어림없습니다. 옷 한 벌 제대로 된 거 사기도 힘들죠.
하지만 디저트의 세계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3만 원이면 '이 구역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최고급 재료를 썼다는 프리미엄 케이크, 줄 서서 먹는다는 두바이 초콜릿 쿠키, 호텔 파티시에가 만든 에클레어. 식품 카테고리 안에서만큼은 'End-Game(끝판왕)'급의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3만 원으로 가난한 명품족이 되느니, 부유한 디저트 미식가가 되기를 택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불황형 소비의 꽃, '스몰 럭셔리(Small Luxury)'의 정체입니다.
가성비? 아니요, 이제는 '가심비'입니다
"그 돈이면 국밥이 3그릇인데..."
이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논리는 디저트 앞에서 무력화됩니다. 왜냐고요? 애초에 우리는 배를 채우려고(성능) 디저트를 먹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心)을 채우기 위해 먹습니다. 바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의 영역입니다.
직장 상사에게 깨지고, 전세 대출 이자에 치이는 날.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질 때, 4,000원짜리 두바이 쿠키는 나에게 말해줍니다.
"그래도 너, 유행하는 건 챙겨 먹을 줄 아는 센스 있는 사람이야."
"너 오늘 고생했으니까 이 정도 달콤함은 누릴 자격 있어."
그 한 조각의 사치는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지탱해 주는 아주 저렴하고 강력한 기둥입니다. 샤넬 백은 못 들어도, 내 입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최고급으로 넣어주고 싶은 '자기 대접'의 욕구인 셈이죠.
오마카세의 대중화: 2시간짜리 판타지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 오마카세'나 '커피 오마카세'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스시 오마카세는 부담스럽지만, 3~4만 원대의 디저트 코스는 도전해 볼 만하거든요.
단순히 맛있는 걸 먹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셰프가 내 눈앞에서 정성스럽게 플레이팅을 해주고, 재료 하나하나를 설명해주고, 나를 귀한 손님(VIP)으로 대접해 주는 그 '경험'을 사는 것입니다.
비록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현실로 복귀하겠지만, 그곳에 머무는 1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환상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혹시 주변에 비싼 디저트를 사 먹는 친구를 보더라도 "사치 부린다"고 뭐라 하지 말아주세요.
그 친구는 지금 낭비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는 중일 테니까요.
3만 원짜리 명품은 없지만, 3만 원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편의점과 빵집에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고 달콤한 사치가 아닐까요?
12장. 인스타그램은 나의 메뉴판
: 먹기 위해 찍는가, 찍기 위해 먹는가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자마자 숟가락을 드는 사람, 요즘은 ‘눈치 없는 사람’ 취급받기 딱 좋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가 식탁 위에 놓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암묵적이고도 엄숙한 의식(Ritual)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아직 먹지 마."
일행 중 누군가 비장하게 외치면, 모두가 동작을 멈춥니다(Freeze). 그리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누군가는 조명을 켜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 위로 올라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밥을 먹기 전에, '카메라에게 먼저 진상(進上)'하는 현대판 제사를 지내는 중입니다.
텍스트의 몰락: "이거랑 똑같은 거 주세요"
과거의 우리는 메뉴판을 '읽었습니다'.
"매운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 음, 이게 맛있겠군."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메뉴판을 '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메뉴판을 덮고 스마트폰을 켭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창에 그 가게 이름을 치고, '인기 게시물'을 훑어내립니다.
"사장님, 저 이 사진이랑 똑같은 거 주세요."
이제 텍스트로 된 메뉴 설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선한 바질과 올리브유의 조화"라는 문구보다, 사진 속에서 얼마나 윤기가 흐르는지, 플레이팅이 얼마나 예쁜지가 내 선택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인스타그램은 이제 단순한 SNS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디지털 메뉴판'입니다. 두바이 초콜릿 쿠키가 유행한 것도 맛에 대한 설명 때문이 아닙니다. 그 꾸덕한 초록색 단면이 우리네 피드(Feed)를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죠.
찍히지 않은 음식은 먹은 것이 아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지만, 2024년의 MZ세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찍는다, 고로 먹었다."
아무리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30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먹었다 한들, 인증샷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배만 채운 겁니다. 내 디지털 세상 속에서 그 식사는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박제'라고 부릅니다.
물리적인 음식은 씹어 삼키면 사라지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사진은 영원히 남습니다(혹은 24시간 동안 모두에게 생중계됩니다).
음식이 식어가는 3분 동안 요리조리 각도를 비틀어가며 '항공샷(위에서 수직으로 찍는 샷)'을 찍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혀의 즐거움(따뜻한 음식)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영원히 남을 시각적 즐거움(완벽한 사진)을 획득하겠다는 고도의 계산된 행동인 셈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기록(Archiving)입니다
기성세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쯧쯧, 다 보여주기 식이지"라며 혀를 찹니다. 물론 과시욕이 전혀 없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자랑질'로만 치부하기엔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인스타그램 피드는 '나의 미식 일기장'이자 '포트폴리오'입니다.
- "작년 여름에 먹었던 그 빙수, 누구랑 먹었더라?"
- "그때 거기 분위기 진짜 좋았는데."
갤러리에 쌓인 음식 사진들은 내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취향을 가졌으며, 그날 기분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데이터입니다. 두바이 쫀득 쿠키 사진 한 장에는 '유행을 따라가고 싶었던 나', '친구와 편의점을 돌며 깔깔거렸던 추억'이 함께 압축되어 저장된 것이죠.
그러니 오늘 점심, 음식이 나왔는데 친구가 갑자기 일어나서 항공샷을 찍더라도 너무 타박하지 마세요.
그 친구는 지금 유난을 떠는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을 가장 예쁜 모습으로 '저장(Save)'하고 싶은 것일 테니까요.
물론,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내리기 전에는 셔터를 멈추게 하는 게 좋겠지만요.
12장. 인스타그램은 나의 메뉴판
: 먹기 위해 찍는가, 찍기 위해 먹는가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자마자 숟가락을 드는 사람, 요즘은 ‘눈치 없는 사람’ 취급받기 딱 좋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가 식탁 위에 놓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암묵적이고도 엄숙한 의식(Ritual)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아직 먹지 마."
일행 중 누군가 비장하게 외치면, 모두가 동작을 멈춥니다(Freeze). 그리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누군가는 조명을 켜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 위로 올라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밥을 먹기 전에, '카메라에게 먼저 진상(進上)'하는 현대판 제사를 지내는 중입니다.
텍스트의 몰락: "이거랑 똑같은 거 주세요"
과거의 우리는 메뉴판을 '읽었습니다'.
"매운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 음, 이게 맛있겠군."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메뉴판을 '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메뉴판을 덮고 스마트폰을 켭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창에 그 가게 이름을 치고, '인기 게시물'을 훑어내립니다.
"사장님, 저 이 사진이랑 똑같은 거 주세요."
이제 텍스트로 된 메뉴 설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선한 바질과 올리브유의 조화"라는 문구보다, 사진 속에서 얼마나 윤기가 흐르는지, 플레이팅이 얼마나 예쁜지가 내 선택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인스타그램은 이제 단순한 SNS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디지털 메뉴판'입니다. 두바이 초콜릿 쿠키가 유행한 것도 맛에 대한 설명 때문이 아닙니다. 그 꾸덕한 초록색 단면이 우리네 피드(Feed)를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죠.
찍히지 않은 음식은 먹은 것이 아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지만, 2024년의 MZ세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찍는다, 고로 먹었다."
아무리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30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먹었다 한들, 인증샷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배만 채운 겁니다. 내 디지털 세상 속에서 그 식사는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박제'라고 부릅니다.
물리적인 음식은 씹어 삼키면 사라지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사진은 영원히 남습니다(혹은 24시간 동안 모두에게 생중계됩니다).
음식이 식어가는 3분 동안 요리조리 각도를 비틀어가며 '항공샷(위에서 수직으로 찍는 샷)'을 찍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혀의 즐거움(따뜻한 음식)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영원히 남을 시각적 즐거움(완벽한 사진)을 획득하겠다는 고도의 계산된 행동인 셈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기록(Archiving)입니다
기성세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쯧쯧, 다 보여주기 식이지"라며 혀를 찹니다. 물론 과시욕이 전혀 없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자랑질'로만 치부하기엔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인스타그램 피드는 '나의 미식 일기장'이자 '포트폴리오'입니다.
- "작년 여름에 먹었던 그 빙수, 누구랑 먹었더라?"
- "그때 거기 분위기 진짜 좋았는데."
갤러리에 쌓인 음식 사진들은 내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취향을 가졌으며, 그날 기분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데이터입니다. 두바이 쫀득 쿠키 사진 한 장에는 '유행을 따라가고 싶었던 나', '친구와 편의점을 돌며 깔깔거렸던 추억'이 함께 압축되어 저장된 것이죠.
그러니 오늘 점심, 음식이 나왔는데 친구가 갑자기 일어나서 항공샷을 찍더라도 너무 타박하지 마세요.
그 친구는 지금 유난을 떠는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을 가장 예쁜 모습으로 '저장(Save)'하고 싶은 것일 테니까요.
물론,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내리기 전에는 셔터를 멈추게 하는 게 좋겠지만요.
13장. 유행에 뒤처지면 죽을 것 같은 기분
: FOMO 증후군과 '나도 먹어봤다'라는 안도감
점심시간, 회사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
평화롭게 김치찌개를 먹던 중 누군가 화두를 던집니다.
"야, 너네 그거 먹어봤어? 그 편의점 신상, 두바이 쿠키."
순간, 찌개 국물을 떠먹던 제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칫합니다.
A 대리는 "아, 그거요? 어제 3군데 돌아서 겨우 구했잖아요. 진짜 꾸덕하던데요?"라고 맞장구치고, B 사원은 "저는 이미 인스타에 올렸죠. 릴스 조회수 대박 났어요"라며 거듭니다.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지는데, 오직 저만 그 흐름에 끼지 못합니다.
내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그게 뭔데? 두바이? 초콜릿? 왜 나만 몰라?'
마치 외국어 수업에 잘못 들어온 학생이 된 기분. 저는 그저 "아... 진짜요? 맛있겠네요"라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리액션 로봇이 될 뿐입니다. 이 순간 느껴지는 싸늘한 등줄기의 감각, 우리는 이것을 '소외 불안', 유식한 말로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 부릅니다.
쿠키는 '간식'이 아니다, 대화의 '입장권'이다
우리가 기를 쓰고 유행하는 음식을 찾아 먹는 이유. 솔직히 말해봅시다. 진짜 그 맛이 궁금해서인가요? 아니면 "대화에 끼기 위해서"인가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행'은 일종의 '공통 언어'입니다.
어제 넷플릭스에 뜬 드라마를 안 보면 오늘 점심시간 대화에서 소외되고, 요즘 뜨는 밈(Meme)을 모르면 '아재(아저씨)' 취급을 받습니다.
두바이 쫀득 쿠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닙니다.
동료들과의 수다, 친구들과의 카톡방, 인스타그램 피드라는 거대한 사교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4,000원짜리 '입장권(Ticket)'입니다.
이 입장권을 손에 넣지 못한 사람은 문밖에서 서성거려야 합니다. 남들이 "그거 진짜 식감 미쳤더라"라고 떠들 때, 혼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그 기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그것은 배고픔보다 더 참기 힘든 '사회적 고립감'입니다.
'인싸'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아싸'가 되기 싫을 뿐
우리는 흔히 유행을 좇는 사람들을 보며 "인싸(Insider)가 되고 싶어서 안달 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대다수의 심리는 다릅니다. 인싸가 되고 싶은 욕망보다, '아싸(Outsider)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훨씬 큽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
이 '도태'에 대한 공포는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정답을 맞혀야 했고, 남들 가는 학원에 가야 했고,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입맛조차 '평균'을 맞춰야 안심합니다.
남들이 다 마라탕을 먹으면 내 혀가 얼얼해도 먹어야 하고, 남들이 다 탕후루를 씹으면 내 이가 아파도 씹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휴, 다행이다. 나도 이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이야"라는 소속감을 확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라는 피곤한 감투
SNS는 이 불안에 기름을 붓습니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세상 모든 사람이 두바이 쿠키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0.1%일 뿐인데도요.)
"아직도 안 먹어봄?"
"이거 모르면 간첩."
이런 자극적인 썸네일들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유행의 꽁무니라도 잡고 따라가는 '트렌드 팔로워(Follower)'라도 되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또다시 편의점을 순회합니다.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건 시원한 맥주 한 캔과 눅눅한 오징어일지라도, 내 손은 기어이 유행하는 그 쿠키를 집어 듭니다. 그리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죠.
"미션 클리어. 나도 이제 대화에 낄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유행하는 쿠키 하나 못 먹었다고 당신의 삶이 뒤처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진짜 좋아하는 맛을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Missing Out)' 일 아닐까요?
오늘 점심, 남들 다 먹는 메뉴 대신 당당하게 "저는 순대국밥이 땡기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그게 진짜 '힙(Hip)'한 걸지도 모릅니다.
14장. 외로움의 맛, 함께 씹어돌릴 무언가가 필요해
: 공통의 화제가 필요한 고립된 사회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시간입니다.
메뉴를 고르고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그 짧은 공백, 혹은 엘리베이터에 상사와 단둘이 갇혔을 때의 그 숨 막히는 정적.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통의 화제'를 찾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2024년은 대화의 지뢰밭입니다.
"김 대리, 주식 좀 하나?" (폭락해서 건드리면 안 됨)
"이 사원, 결혼은 언제 해?"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음)
"요즘 정치가 말이야..." (밥상머리 전쟁의 서막)
정치, 종교, 돈, 결혼... 꺼내는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거나 누군가 상처받을 주제들뿐입니다. 바로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팀장님, 혹시 두바이 초콜릿 드셔보셨어요?"
이 한마디면 게임 끝입니다. "아, 그거? 우리 딸이 사달라고 난리던데", "편의점 가봤는데 없더라", "맛은 어때요?" 등등 대화의 물꼬가 댐 터지듯 트입니다.
우리는 '안전하게 씹을' 대상이 필요하다
한국어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씹다'라는 동사죠.
음식을 씹어 먹는 것도 '씹다'이고, 남을 헐뜯거나 욕하는 것도 '씹다(뒷담화)'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무언가를 같이 씹으면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예전에는 그 대상이 주로 '직장 상사'나 '연예인'이었습니다. "부장님 오늘 히스테리 봤어?" 하며 함께 누군가를 씹을 때, 우리는 '우리 편'이라는 끈끈한 동질감을 느꼈죠.
하지만 '각자도생'의 시대, 남 이야기도 함부로 하기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뒷담화가 돌고 돌아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가장 안전하고, 만만하고, 뒤탈 없는 대상을 찾았습니다. 바로 '유행하는 음식'입니다.
두바이 쿠키가 맛이 있네 없네, 가격이 비싸네 마네, 편의점 알바가 불친절했네... 이 쿠키 하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신나게 난도질하며 우리는 '안전한 수다'를 떱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도 기분 나쁘지 않은 완벽한 가십거리. 이것이 유행 푸드가 가진 최고의 미덕입니다.
고립된 섬들을 연결하는 4,000원짜리 다리
우리는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섬에 갇혀 사는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지하철을 타보세요.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만큼 붙어 있지만, 시선은 모두 각자의 액정 속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초밀착 상태지만, 심리적으로는 지구 반대편만큼이나 멀어져 있죠.
이 고립된 섬들을 잠시나마 연결해 주는 다리가 바로 'SNS 챌린지'와 '유행템'입니다.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유행하는 '두바이 초콜릿 깨는 소리' 챌린지를 따라 하고, 똑같은 해시태그를 달아 올리는 행위. 이것은 단순히 관심을 받고 싶은 관종(관심 종자)의 행동이 아닙니다.
"나도 당신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있어요."
"나도 이 거대한 흐름 속에 함께 흐르고 있어요."
라고 외치는 고독한 현대인의 구조 신호입니다.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그거 구하기 힘들죠? ㅠㅠ"라는 댓글 하나에 우리는 묘한 위로를 받습니다.
외로워서 씹습니다, 같이
결국 우리가 편의점을 헤매며 두바이 쿠키를 찾는 건, 그 달콤한 맛 때문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일 회사에 가서, 혹은 친구들을 만나서 "야, 그거 진짜 웃기지 않냐?"라고 떠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사는 것입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피스타치오의 고소함보다 더 달콤한 건,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상대방의 맞장구니까요.
그러니 누군가 유난스럽게 유행하는 음식을 사 와서 "한입만 먹어봐"라고 권한다면, 귀찮아하지 말고 기꺼이 한입 베어 물어주세요.
그 사람은 지금 쿠키를 건네는 게 아니라, "나 외로워요. 나랑 대화 좀 해요"라는 손길을 내미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는 밥을 먹어서 배부른 게 아니라, 함께 씹고 떠들어서 마음이 부른 존재들이니까요.
15장. 스트레스 해소법이 '저작 운동'밖에 없어서
: 상사 씹는 대신 오징어(또는 쫀득 쿠키)를 씹는다
직장 생활 N년 차, 우리에게는 한 가지 초능력이 생깁니다. 바로 '복화술'입니다.
부장님의 말도 안 되는 지시 사항을 듣는 순간, 입꼬리는 웃고 있는데 어금니는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꽉 깨물고 있는 그 기술 말입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세요. 턱 근육이 잔뜩 펌핑되어 있지 않나요?
우리는 흔히 화가 날 때 "아, 씹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한국어의 위대함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남을 헐뜯는 것도 '씹다'이고, 음식을 으깨는 것도 '씹다'입니다.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날, 우리는 본능적으로 딱딱하거나 질긴 것을 찾습니다. 예전에는 그게 마른오징어나 껌이었고, 지금은 '두바이 쫀득 쿠키'나 '탕후루'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 단순히 배가 고파서가 아닙니다. 살기 위해, 아니 미치지 않기 위해 턱을 움직이는 겁니다.
뇌과학이 알려주는 '씹기'의 신비
이건 핑계가 아니라 과학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강하게 씹을 때(저작 운동), 뇌에서는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감소합니다. 동시에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뇌로 가는 혈류량이 늘어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게 되죠.
야생 동물들을 보세요. 맹수들은 사냥감이 없어도 나뭇가지나 뼈다귀를 하루 종일 물어뜯습니다.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격성을 표출하는 그들만의 힐링 타임인 셈입니다.
현대 사회라고 다를까요? 우리는 양복을 입은 맹수들입니다.
당장이라도 나에게 모욕감을 준 김 부장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지만(!), 우리는 교양 있는 지성인이기에 참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경찰서 가니까요.)
대신 우리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대타'를 찾습니다.
- "와작!" (탕후루 설탕 코팅 깨지는 소리 = 내 속이 뚫리는 소리)
- "질겅질겅..." (버터오징어 씹는 느낌 = 상사를 잘근잘근 씹는 느낌)
이 강렬한 식감들은 억눌린 공격성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아주 맛있게 해소해 주는 배출구입니다.
부드러운 케이크로는 풀리지 않는 화(火)
그래서 스트레스받은 날에는 카스테라나 푸딩 같은 부드러운 디저트가 안 땡깁니다. 그런 건 너무 순식간에 녹아버려서 성에 안 차거든요.
뭔가 내 이빨과 턱관절에 '저항감'을 주는 녀석이 필요합니다.
지금 유행하는 '두바이 쫀득 쿠키'가 딱입니다. 겉의 초콜릿은 단단해서 깨부수는 맛이 있고, 속의 카다이프는 바삭거려서 씹는 재미가 있고, 쿠키 도우는 쫀득해서 턱을 묵직하게 잡아줍니다.
이 복합적인 텍스처는 뇌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냅니다.
"자, 지금 뭔가 엄청난 놈을 씹어돌리고 있어! 그러니까 진정해!"
우리가 '식감(Texture)'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미각의 문제가 아니라 '분노 조절'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퇴근길 맥주와 안주: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
밤 10시, 씻고 나와서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냅니다. 그리고 봉지를 뜯습니다.
육포든, 먹태든, 아니면 아껴둔 쿠키든.
TV를 멍하니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입을 움직이는 그 시간.
"오물오물, 쩝쩝."
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은 복잡했던 하루의 스위치를 끄는 의식(Ritual)입니다. 턱이 움직이는 동안만큼은, 내일 아침의 회의 걱정도, 카드 값 걱정도 잠시 멈춥니다. 오직 씹는 행위와 맛에만 집중하는 '몰입의 시간'이죠.
그러니 오늘 밤, 야식을 먹는 자신을 너무 타박하지 마세요.
"또 먹냐, 돼지야"라고 자책하기엔, 오늘 하루 당신이 참아낸 말들이 너무 많지 않나요?
당신의 턱관절은 오늘 하루 종일, 하고 싶은 말을 참느라 고생했습니다.
이제 그 턱에게 '맛있는 휴식'을 줄 시간입니다. 그게 오징어 다리든, 4,000원짜리 쿠키든 말이죠. 마음껏 씹으세요. 그래야 내일 또 웃으며 출근할 수 있으니까요.
4부. 달콤함이 녹아내린 뒤에 남는 것들
16장. 혈당 스파이크의 경고
: 우리의 췌장은 안녕한가? 건강과 쾌락 사이의 줄타기
대한민국 2030 세대의 식습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라탕에 꿔바로우 먹고, 후식으로 탕후루나 두바이 쿠키를 때려 넣은 뒤, '제로 콜라'로 회개한다."
이 기이한 삼단 논법, 찔리시는 분들 많으시죠?
칼로리 폭탄과 당분 쓰나미를 온몸으로 즐기다가, 마지막 순간에 '제로(Zero)'라는 방패를 꺼내 드는 이 모순. 우리는 이것을 '현대인의 마지막 양심'이라 부르고, 의학계에서는 '당뇨병으로 가는 급행열차'라고 부릅니다.
제로 콜라: 다이어트가 아니라 '면죄부'입니다
우리가 탕후루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엔 제로 아이스티를 드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살이 덜 찌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죄책감(Guilt)을 덜기 위해서입니다.
"아, 오늘 당을 너무 많이 섭취했는데..."라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 설탕이 0g이라는 영양 성분표는 우리에게 강력한 심리적 위안을 줍니다.
*"봤지? 나 그래도 건강 생각해서 제로 마셨어. 쌤쌤(Same same)이야."*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봅시다. 불난 집에 부채질 대신 입김을 분다고 불이 꺼지나요?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 끈적한 설탕물은 제로 콜라를 마신다고 희석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건강을 챙겼다는 착각'을 마시고 있는 셈입니다. 혀는 속일 수 있어도, 췌장은 속일 수 없으니까요.
"내 췌장: 살려줘..." 젊은 당뇨의 습격
요즘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혈당 스파이크(Blood Sugar Spike)'입니다.
공복 상태에서 갑자기 고농축 당분(탕후루, 쿠키, 케이크 등)이 들어오면 혈당이 수직 상승했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하죠.
이게 왜 무섭냐고요? 우리 몸의 '인슐린 공장'인 췌장이 과로사하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두바이 쿠키의 그 황홀한 단맛이 입안에 퍼질 때, 당신의 췌장은 비명을 지르며 야근을 시작합니다.
"비상! 비상! 설탕 폭탄 투하! 인슐린 전량 투입해!"
문제는 이 야근이 매일 반복된다는 겁니다. 결국 지친 췌장은 파업을 선언합니다. 그게 바로 '당뇨병'입니다.
과거엔 5060세대의 병이었던 당뇨가 이제는 2030세대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젊은 당뇨' 환자가 폭증하고 있다는 기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는 '식곤증'이나 '만성 피로'가 사실은 췌장이 보내는 구조 신호일 수도 있다는 사실, 섬뜩하지 않나요?
저당(Low Sugar) 트렌드: 병 주고 약 주는 시장
재미있는 건, 우리를 설탕 중독으로 이끈 식품 업계가 이제는 '해독제'를 팔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편의점 매대를 보세요. '저당 아이스크림', '설탕 뺀 초콜릿', '단백질 쿠키'가 즐비합니다.
"달콤한 건 먹고 싶지만, 죽기는 싫어."
이 절박한 니즈를 파고든 '로우 스펙(Low Spec)' 푸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알룰로스나 스테비아 같은 대체 당을 써서 "살 안 찌는 속세의 맛"을 구현했다고 홍보하죠.
물론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이건 저당이니까 괜찮아"라며 두 개, 세 개를 집어 먹는 순간, 도루묵이 된다는 점입니다. 결국 문제는 성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단맛을 갈구하는 우리의 습관' 그 자체니까요.
쾌락에는 반드시 청구서가 날아온다
두바이 쫀득 쿠키, 정말 맛있습니다. 저도 압니다. 그 바삭하고 달콤한 한 입이 주는 위로가 얼마나 큰지도요.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합니다. 그 4,000원짜리 쿠키의 진짜 가격은 영수증에 찍힌 금액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요.
우리는 지금 '미래의 건강'을 담보로 '현재의 쾌락'을 대출받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당장 모든 디저트를 끊고 풀만 뜯어 먹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다만, 탕후루를 먹고 나서 제로 콜라를 마시며 안심하기보다는, 차라리 동네 한 바퀴를 걷는 정직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달콤함 뒤에 오는 청구서가 '인슐린 주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혀보다 췌장의 안부를 먼저 물어봐 주는 센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오늘도 고생했어, 내 췌장아. 내일은 좀 덜 달게 먹을게." (과연?)
17장. 냄비 근성이라 욕하지 마라
: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대한민국 트렌드의 역동성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는, 거리가 3개월마다 바뀐다는 점입니다.
"어? 지난번에 여기 탕후루 가게였잖아? 언제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으로 바뀌었어?"
"저기 대왕 카스테라 줄 서던 데 아니야? 지금은 네컷 사진관이네?"
우리는 흔히 이런 현상을 두고 자조적으로 말합니다.
"역시 한국인은 냄비 근성이라 어쩔 수 없어."
양은 냄비처럼 확 끓어올랐다가, 불을 끄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리는 기질. 끈기가 없고 변덕스럽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하죠. 두바이 쫀득 쿠키의 유행도 언젠가 식을 겁니다. (아마 이 책이 나올 때쯤엔 이미 식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오늘 이 '냄비'를 좀 변호해 보려 합니다.
뚝배기처럼 은근하게 끓는 것도 좋지만, 라면 하나를 끓여도 1분 만에 화르르 끓여내는 그 폭발적인 에너지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원동력이니까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혹한 테스트 베드'
글로벌 기업들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나라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바로 한국입니다.
스타벅스 전 회장 하워드 슐츠도, 넷플릭스 CEO도 입을 모아 말합니다.
"한국에서 통하면, 전 세계에서 통한다."
왜일까요? 한국 소비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롭고, 가장 빠르고, 가장 피드백이 확실한' 심사위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이 나오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어 맛보고, 씹고, 뜯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별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손절(Loss cut)하죠. 이 냉혹한 속도전이 기업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제품의 퀄리티를 극한으로 끌어올립니다.
만약 우리가 뚝배기처럼 한번 좋아한 걸 10년씩 진득하게 좋아했다면?
아마 지금의 'K-푸드', 'K-컬처' 같은 혁신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싫증을 잘 낸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늘 새로운(New) 것을 갈망하는 혁신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식는 게 아니라, 자리를 비워주는 겁니다
우리가 탕후루를 버리고 두바이 쿠키로 갈아탔다고 해서, 탕후루를 사랑했던 마음이 거짓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다음 타자'를 위해 위장을 비워줄 뿐입니다.
대한민국은 땅덩어리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습니다. 게다가 초고속 인터넷으로 모두가 뇌를 공유하고 있죠.
옆집 철수가 먹는 건 나도 먹어야 하고, 인스타에서 뜬 건 나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 촘촘한 연결망 속에서 유행의 전파 속도는 빛의 속도와 맞먹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남들 다 스마트폰 쓰는데 삐삐를 고집할 수 없듯이, 남들 다 두바이 쿠키 이야기하는데 혼자 허니버터칩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빨리 식는 이유는,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빨리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의 속도에 발맞추려면, 우리는 부지런히 끓고 부지런히 식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변덕이 아니라, 엄청난 적응력(Adaptability)입니다.
그러니 뜨거울 때 마음껏 즐기세요
어떤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사장님들 불쌍해서 어떡해. 유행 따라 가게 차렸는데 금방 망하잖아."
물론 뼈아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 자영업자들의 능력치는 이 정글 속에서 만렙을 찍었습니다.
탕후루 기계로 붕어빵을 굽고, 두바이 초콜릿 재료로 다음 유행인 스모어 쿠키를 구워내는 그 놀라운 '태세 전환' 능력.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냄비 근성"이라 욕하지 마세요.
우리는 1년 365일 지루할 틈 없이 무언가에 열광하고, 떠들고, 줄을 서는 '에너지 과잉'의 민족입니다.
두바이 쫀득 쿠키의 유행이 지나간다고 아쉬워할 필요 없습니다.
분명 다음 달이면 튀르키예의 카이막이든, 스웨덴의 젤리든, 아니면 강원도의 감자빵이든, 우리의 냄비를 다시 팔팔 끓게 할 무언가가 반드시 나타날 테니까요.
이 얼마나 재미있고 역동적인 나라인가요?
지금 당신의 냄비가 뜨겁다면, 식을 걱정 말고 그냥 그 열기를 즐기세요. 라면은 센 불에 끓여야 제일 맛있는 법입니다.
18장. 다음 타자는 누구인가?
: 두바이 다음은 튀르키예? 아니면 다시 한국?
편의점 사장님들의 표정을 보면 세상의 흐름이 보입니다.
한때 "두바이 초콜릿 없어요?"라는 질문에 지쳐 "없음"이라는 종이를 써 붙여 놓으셨던 사장님이, 이제는 슬그머니 그 종이를 떼고 계십니다. 매대에 쌓인 초콜릿 쿠키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서서히 눅눅해져 가고 있다는 신호죠.
유행의 왕좌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왕은 죽고, 새로운 왕이 즉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두바이의 피스타치오가 떠난 자리에 깃발을 꽂을 '넥스트(Next) 디저트'는 누구일까요?
저는 점쟁이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트렌드의 족보를 분석해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보입니다.
이른바 'K-유행 간식의 3원칙'에 부합하는 녀석이 다음 타자가 될 것입니다.
제1원칙: 이름은 낯설고 이국적이어야 한다
일단 이름부터가 좀 있어 보여야 합니다.
'꿀 빵', '크림 빵' 같은 정직한 한국어로는 안 됩니다. 발음할 때 혀가 약간 꼬이거나, "그게 어느 나라 거야?"라는 질문이 나와야 합격입니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튀르키예의 '카이막(Kaymak)'입니다.
백종원 선생님이 "천상의 맛"이라고 극찬한 덕분에 이미 인지도는 쌓였습니다. 우유의 지방을 모아 굳힌 이 꾸덕한 크림은 '지방의 민족'인 우리의 입맛을 저격하기에 충분합니다. 아직 대중화(편의점화)가 덜 되었을 뿐, "편의점표 카이막 샌드"가 나오는 순간 제2의 전성기가 올 것입니다.
북유럽에서 온 '스웨덴 젤리(Swedish Candy)'도 다크호스입니다.
틱톡에서 외국 언니들이 씹는 소리가 기가 막히거든요. 마시멜로와 젤리의 중간쯤 되는 그 묘한 식감. 두바이 쿠키가 '바삭함'으로 승부했다면, 다음은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질긴 쫀득함'이 올 차례일지도 모릅니다.
제2원칙: 칼로리는 폭탄이어야 한다 (feat. 스모어)
한국인은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풀떼기나 제로 칼로리로는 유행을 만들 수 없습니다.
뇌가 "이러다 죽는 거 아냐?"라고 경고를 보낼 만큼 치명적인 '당분+지방'의 조합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모어(S'more)'를 주목합니다.
캠핑장에서 구운 마시멜로를 초콜릿과 함께 크래커 사이에 끼워 먹는 이 악마의 간식. 마시멜로가 치즈처럼 쭈욱 늘어나는 비주얼은 숏폼 영상각(角)으로 완벽합니다.
최근에는 '딥 츄러스(Dip Churros)'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냥 설탕 뿌린 츄러스는 시시합니다. 갓 튀긴 츄러스를 꾸덕한 초코 소스나 치즈 소스에 '푹' 찍어 먹는 행위. '찍먹'의 쾌감과 칼로리 폭탄의 죄책감이 만나는 그 지점, 바로 거기에 다음 유행이 숨어 있습니다.
제3원칙: 무엇이 오든, 우리는 또 줄을 설 것이다
사실 다음 타자가 카이막이든, 스모어든, 아니면 남미의 어느 이름 모를 튀김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이미 줄을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갑은 열려 있고, 인스타그램 앱은 켜져 있으며, 다리는 튼튼합니다.
만약 내일 당장 유명 인플루언서가 "몽골 유목민들이 먹던 튀긴 돌멩이인데, 이게 겉은 딱딱한데 속은 촉촉하고 하루에 50개밖에 안 판대요"라고 한다면?
장담하건대, 이번 주말 홍대 앞에는 '몽골 돌멩이'를 사려는 줄이 1km쯤 이어질 겁니다. 당근마켓에는 "돌멩이 삽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겠죠.
트렌드라는 이름의 술래잡기
우리는 새로운 맛을 찾는 게 아닙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어제의 달콤함은 오늘의 익숙함이 되고, 내일의 지루함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 새로운 식감, 새로운 줄 서기 대상을 찾아 헤매는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두바이 쿠키를 아직 못 먹었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그 버스는 떠났거나, 곧 종점에 도착합니다.
대신 운동화 끈을 조라 매고 스트레칭을 해두세요.
조만간 지구 어딘가에서 날아온, 이름도 생소하고 칼로리는 무시무시한 '새로운 녀석'이 편의점 문을 두드릴 테니까요. 그때 가장 먼저 달려가서 줄을 서는 사람이 바로 이 구역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준비되셨나요?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19장. 유행은 돌고 돌아도, 내 입맛은 남는다
: 남들이 먹는 것 말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맛을 찾아서
거센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바다는 잠잠해집니다.
우리들의 식탁을 휩쓸고 지나간 탕후루 태풍, 두바이 허리케인도 언젠가는 잠잠해질 겁니다. 편의점 매대는 또 다른 신상들로 채워지겠죠.
그 폭풍우가 지나간 뒤, 덩그러니 남겨진 당신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나요?
남들이 다 좋다고 해서 샀던 그 쿠키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원래부터 좋아했던, 투박하지만 익숙한 '단팥빵'인가요?
우리는 지금까지 유행을 쫓느라 너무 바빴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먹어야 했고, 더 예쁘게 찍어야 했고, 대화에 끼기 위해 억지로라도 씹어 넘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잠시 숨을 고르고, 내 혀와 위장에게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시간입니다.
"근데 너, 솔직히 그거 맛있었니?"
알고리즘이 골라준 맛 vs 내 혀가 기억하는 맛
우리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내가 배가 고프기도 전에 "너 이거 먹고 싶지?"라며 영상을 들이밉니다. 우리는 최면에 걸린 듯 "어? 나 저거 먹고 싶었나 봐"라고 착각하며 주문 버튼을 누르죠. 이것은 '주입식 식욕'입니다.
하지만 진짜 '취향(Taste)'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내 몸과 기억 속에 축적된 데이터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문득 생각나는 '김치 수제비'.
야근하고 돌아와서 엄마 몰래 부쳐 먹는 '계란 프라이'의 반숙 노른자.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좀비처럼 찾게 되는 특정 브랜드의 '컵라면'.
이것들은 유행하지도 않고, 인스타에 올리면 "이게 뭐야?" 소리를 들을 만큼 촌스럽습니다. 하지만 혀끝에 닿는 순간, 내 영혼을 가장 편안하게 안아주는 음식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부릅니다.
트렌드는 유통기한이 있지만, 취향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단팥빵을 집어 드는 용기
편의점에 갔습니다.
왼쪽에는 품절 대란을 일으킨 4,500원짜리 신상 쿠키가 딱 하나 남아있고, 오른쪽에는 1,500원짜리 단팥빵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SNS의 좋아요 수, 트렌드 세터라는 타이틀... 이 모든 계급장을 떼고, 오직 '지금 내 혀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면 당신은 무엇을 집으시겠습니까?
남들이 다 쿠키를 향해 달려갈 때, 당당하게 단팥빵을 집어 들 수 있는 마음.
"너네는 유행 따라 먹니? 나는 내 입맛 따라 먹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미식의 주체성'이자, 줏대 있는 어른의 태도입니다.
남들이 "야, 요즘 누가 촌스럽게 그런 걸 먹냐?"라고 비웃어도 상관없습니다. 내 입에 맛있으면 그만이니까요. 남의 입맛에 맞추느라 내 미각을 희생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습니다.
취향은 나를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언어
결국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입니다(You are what you eat).
매일 남들이 먹는 유행 템만 따라 먹는 사람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색깔 없이 남의 인생을 따라 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반면, 유행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여름에도 뜨거운 쌍화차가 좋아", "나는 탕후루보다 아삭한 오이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호불호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매력적입니다.
음식 취향을 찾는다는 건, 단순히 맛있는 걸 먹는 행위를 넘어 '나라는 사람을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짠맛에 예민한지 단맛에 관대한지, 바삭한 걸 좋아하는지 흐물거리는 걸 좋아하는지. 이 사소한 데이터를 모으다 보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위로받고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알게 됩니다.
유행은 지나가지만, 내 입맛은 남는다
두바이 쫀득 쿠키의 열풍은 곧 사그라들 겁니다. 그다음엔 또 다른 무언가가 오겠죠.
하지만 그 수많은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가도, 결국 당신의 식탁에 끝까지 남는 건 '당신이 진짜 사랑하는 맛'입니다.
그러니 부디, 유행의 홍수 속에서 당신의 취향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세상이 뭐라 떠들든, 오늘 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가 라면 한 그릇이라면, 주저 없이 물을 올리세요.
남들이 줄 서서 먹는 미슐랭 맛집보다, 내 입에 딱 맞는 김밥 한 줄이 나에게는 최고의 명품입니다.
그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오직 당신만의 진실된 맛이니까요.
[에필로그]
제목: 결국 행복해지려고 먹는 거니까
유행하는 쿠키 하나 못 먹어도 괜찮아요. 오늘 당신이 먹은 밥 한 끼가 가장 소중합니다.
"딸랑-."
다시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옵니다. 제 손은 빈손입니다.
사장님이 미안한 표정으로 "다 나갔어요"라고 했을 때, 예전 같으면 세상 무너진 듯 한숨을 쉬었을 겁니다. 당근마켓을 뒤지고, 옆 동네 편의점까지 뛰어갈까 고민했겠죠.
하지만 오늘은 그냥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밤공기가 찹니다. 빈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쿠키가 뭐라고. 없으면 없는 대로, 집에 가서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지 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참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사막의 도시 두바이에서 시작해 탕후루의 끈적한 거리를 지나, 약과를 튀기는 기름 냄새와 베이글 가게의 긴 줄 서기 행렬을 뚫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열광하고, 조바심 내고, 또 환호했습니다.
도파민이 터지는 짜릿한 식감을 찾아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팍팍한 하루를 위로받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제 고백하건대, 저를 진짜 살게 했던 건 그 화려한 유행 음식들이 아니었습니다.
야근하고 돌아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먹었던 식은 밥에 김치 한 조각.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끓여주신 투박한 된장찌개.
헤어진 다음 날, 친구가 말없이 사주었던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엔 너무 평범하고 초라해서 사진조차 찍지 않았던 그 '보통의 끼니'들이, 사실은 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마음을 데워준 진짜 연료였습니다.
유행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갑니다.
두바이 쫀득 쿠키의 유행도 언젠가는 식을 것이고, 편의점 매대는 또 다른 낯선 이름의 간식들로 채워지겠죠. 우리는 또다시 궁금해하고, 맛보고 싶어 할 겁니다. 그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새로운 맛을 탐구하는 건 삶의 즐거운 활력소니까요.
다만, 그 파도에 휩쓸려 정작 내가 딛고 서 있는 땅을 잊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남들이 다 먹는다는 쿠키 하나 못 먹었다고 당신의 하루가 실패한 건 아닙니다.
유행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당신의 삶이 촌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치열하게 오늘 하루를 버텨냈습니다.
그 고단한 몸을 이끌고 챙겨 먹은 오늘 당신의 점심, 그리고 저녁 한 끼.
그것이 김밥 한 줄이었든, 화려한 오마카세였든 상관없습니다.
내 몸을 위해 무언가를 씹어 삼키고 소화해 낸 당신의 그 생명력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한정판 디저트보다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은, 남들 보여주기 위한 메뉴 말고,
당신이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밥상을 차리세요.
우리가 줄을 서고, 돈을 쓰고, 맛집을 찾아 헤매는 그 모든 수고로움의 이유는 단 하나.
결국은, 행복해지려고 먹는 거니까요.
잘 먹고, 잘 사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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