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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으로 뽑은 잡지식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과 일상적 영웅주의에 대한 심층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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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과 일상적 영웅주의에 대한 심층 해설

1. 서론: 현대 문학의 지평을 넓힌 기념비적 서사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는 1922년 2월 2일, 작가의 40번째 생일에 맞추어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를 통해 단행본으로 최초 출간된 이래,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성취이자 동시에 영미 문학사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이 작품은 1918년 3월부터 1920년 12월까지 미국의 문예지 『리틀 리뷰(The Little Review)』에 부분적으로 연재되며 이미 문단의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출간 직후부터 현대 문학의 모든 흐름을 시연하고 집대성한 전범(典範)으로 추앙받았다.

이 소설의 기본 뼈대는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에서 일어난 세 명의 주요 인물(레오폴드 블룸, 스티븐 데덜러스, 몰리 블룸)의 행적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순해 보이는 서사적 틀 이면에는 고대 그리스의 맹인 시인 호메로스(Homer)의 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y)』와의 치밀하고도 방대한 평행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조이스 자신조차 "이 책에 너무 많은 수수께끼와 퍼즐을 숨겨 놓았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교수들은 내가 무슨 의도로 이 글을 썼는지 논쟁하느라 바쁠 것이며, 그것이 나의 불멸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공언했을 만큼, 『율리시스』는 독자에게 고도의 지적 헌신을 요구하는 텍스트이다. 같은 작가의 후속작인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에 이어 영어로 쓰인 가장 읽기 어려운 책 2위로 종종 꼽히지만, 동시에 그 난해함을 돌파했을 때 주어지는 문학적, 철학적 보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본 보고서는 『율리시스』가 지닌 복잡한 층위를 다각도로 해체하여, 역사적·전기적 배경, 신화적 평행 구조, 심층적인 인물 분석, 문체적 혁신, 그리고 작품이 내포한 '일상적 영웅주의'의 가치를 총체적이고 명확한 시각으로 규명한다. 이를 통해 난해한 수수께끼의 집합체로만 여겨지던 이 텍스트가 어떻게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진실을 포착한 '우리 시대의 서사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 논증할 것이다.


2. 역사적 및 전기적 맥락: 식민지 아일랜드와 1904년 6월 16일

더블린: 마비의 중심지이자 세계의 축소판

『율리시스』의 공간적 배경인 더블린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소설을 이끌어가는 거대한 유기체이자 또 다른 주인공이다. 조이스가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약 7년의 세월을 바치는 동안,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통치 아래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폭풍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1921년 12월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이전의 이 시기는, 억압적인 영국의 정치적 식민 통치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조적 통제가 아일랜드인들의 일상을 이중으로 짓누르던 암흑기였다.

조이스는 청년 시절인 22세에 고국을 떠나 평생을 파리, 취리히, 트리에스테 등 유럽의 도시들을 떠도는 망명객으로 살았지만, 그의 모든 문학적 시선은 오직 고향 더블린을 향해 있었다. 조이스는 더블린을 '마비(paralysis)의 중심지'로 인식했으며, 초기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을 통해 체념과 정체 상태에 빠진 동포들의 정신적 해방을 촉구하고자 했다. 『율리시스』 역시 이러한 식민지적 조건 속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아일랜드인들의 심리와 군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일상적인 묘사 이면에는 반유대주의, 아일랜드 민족주의, 대영제국의 지배, 가톨릭교회의 억압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담론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더블린의 흐린 날씨, 우울한 거리, 그리고 그곳을 맴도는 소시민들의 구질구질하고 상스러운 언어들은 영국의 지배와 가톨릭의 도덕주의에 의해 거세당한 아일랜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블룸스데이(Bloomsday): 일상에 부여된 영원의 시간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04년 6월 16일은 작가 조이스에게 지극히 사적이고 신성한 의미를 지닌 날짜이다. 이 날은 조이스가 그의 평생의 반려자이자 소설 속 여주인공 몰리 블룸의 현실 모델이 된 노라 바너클(Nora Barnacle)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 날이다. 두 사람은 1904년 6월 10일 더블린의 내소 스트리트(Nassau Street)에서 처음 조우했다. 당시 20세였던 노라는 '핀스 호텔(Finn's Hotel)'에서 일하던 객실 하녀였고, 22세의 조이스는 문학적 야심에 불타는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6월 14일에 메리언 스퀘어(Merrion Square)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노라가 나타나지 않아 불발되었고, 조이스의 편지를 통해 6월 16일 링센드(Ringsend) 지역에서 마침내 두 사람의 역사적인 첫 만남과 산책이 이루어졌다.

조이스는 훗날 노라에게 "당신이 나를 남자로 만들어 주었다(You made me a man)"라고 고백할 만큼 이 날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여겼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노라였지만, 조이스가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라고 부르짖었을 때 기꺼이 긍정의 대답을 돌려준 유일한 안식처였다. 두 사람은 그해 10월 아일랜드를 떠나 유럽 대륙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으며, 1931년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까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두 자녀(조르조, 루시아)를 낳았다.

청년기적 저항과 지적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던 반항적 지식인(스티븐 데덜러스의 자아)이 타인과의 진정한 교감을 통해 현실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성숙한 자아(레오폴드 블룸의 자아)로 나아가는 기점을 바로 이 6월 16일로 설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문학 팬들과 학자들은 매년 6월 16일을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따 '블룸스데이(Bloomsday)'라 명명하고, 에드워드 7세 시대의 복장을 한 채 소설 속 인물들의 궤적을 밟는 행사를 벌인다. 마르텔로 탑에서 시작해 스위니 약국(Sweny's Pharmacy), 데이비 번의 술집(Davy Byrne's), 국립도서관을 거쳐 밤의 거리로 이어지는 이 투어는 문학 작품이 현실의 지리를 영원한 신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


3. 호메로스의 메아리: 신화적 평행과 서사 구조

『율리시스』라는 제목 자체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라틴어식 표기인 '오디세우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이스는 고대의 지중해를 무대로 펼쳐지는 영웅의 10년간의 모험을, 현대의 좁은 더블린 시내에서 벌어지는 단 하루의 일상으로 치환했다. 조이스의 의도는 신화적 영웅을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 인물들이 지녔던 보편적인 인간의 원형을 현대인들의 삶("sub specie temporis nostri", 즉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속으로 끌어내려 재해석하는 데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의 호메로스적 대응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고대 신화의 인물들과 정교하게 짝을 이룬다.

  • 레오폴드 블룸 = 오디세우스(Ulysses): 기원전 1200년경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괴물과 신들의 분노에 맞서던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 오디세우스는, 1904년 더블린 거리를 배회하며 아내의 불륜을 외면한 채 광고 수주를 위해 발품을 파는 중년의 유대인 광고 외판원 레오폴드 블룸으로 변모한다.
  • 스티븐 데덜러스 = 텔레마코스(Telemachus): 아버지를 찾아 바다를 헤매던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알코올 중독자인 친아버지 사이먼 데덜러스(Simon Dedalus)와 단절된 채 정신적 아버지를 갈구하는 22세의 청년 작가 스티븐 데덜러스로 대치된다. 스티븐은 동시에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인 성 스티븐과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인 장인 다이달로스(Daedalus)의 이미지를 겹쳐 입고 있다.
  • 몰리 블룸 = 페넬로페(Penelope):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구혼자들을 물리치며 수십 년간 정절을 지켰던 페넬로페의 서사는 완전히 전복된다. 율리시스의 아내 몰리 블룸은 오후 4시에 자신의 침대에서 다른 남자(블레이지스 보일런)와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 기타 인물들: 오만하고 냉소적인 의대생 벅 멀리건(Buck Mulligan)은 텔레마코스를 괴롭히던 구혼자 안티노우스(Antinous)에, 스티븐이 근무하는 사립학교의 무지하고 반유대주의적인 교장 미스터 디지(Mr. Deasy)는 네스토르(Nestor)에, 몰리의 정부인 블레이지스 보일런은 또 다른 구혼자 에우리마코스(Eurymachus)에 대응한다.

이러한 고대 텍스트와의 연결성은 코엔 형제의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오디세이아를 재해석한 방식과 유사하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감금(또는 정신적 구속)에서 탈출하여 집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리며, 마녀 키르케(Circe)나 거인 키클롭스(Cyclops) 등 신화적 괴물들을 현대의 타락한 자본주의자, 위선적 종교인, 폭력적 민족주의자 등으로 절묘하게 치환하여 배치한다.

내비게이션으로서의 스키마 (The Linati and Gilbert Schemas)

『율리시스』의 방대한 상징과 인유 체계는 독자뿐만 아니라 당시 조이스의 동료 지식인들에게도 커다란 장벽이었다. 이 난해한 미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조이스는 스스로 두 가지 종류의 해설표, 즉 '스키마(Schema)'를 작성하여 지인들에게 배포했다. 1920년 카를로 리나티(Carlo Linati)에게 보낸 리나티 스키마, 그리고 1930년 스튜어트 길버트(Stuart Gilbert)의 연구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연구(James Joyce's Ulysses: A Study)』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 길버트 스키마가 그것이다.

이 스키마들은 소설을 『오디세이아』의 구성에 맞추어 크게 세 부분(텔레마코스 파트, 오디세이아 파트, 귀향 파트)과 총 18개의 장으로 나누며, 각 장이 특정한 시간, 신체 기관, 학문/예술, 색상, 상징, 그리고 고유한 문체적 기법(Technic)을 모티프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이스는 이 소설이 단지 하루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육체의 순환(cycle of the human body)"이자 하나의 "백과사전"으로 기능하기를 원했다. 모든 시간, 장기, 예술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somatic scheme"), 각각의 모험은 그 자체의 고유한 서술 기법을 창조해낸다.

18개 에피소드의 구조적 평행표

파트 장소 시간 학문/예술 인체 기관 색상 문체 기법
제1부 1. 텔레마코스 마르텔로 탑 08:00 신학 - 금/흰 내러티브 (젊음)
2. 네스토르 데이키 사립학교 10:00 역사 - 갈색 문답법 (개인적)
3. 프로테우스 샌디마운트 해변 11:00 언어학 - 푸른색 독백 (남성)
제2부 4. 칼립소 블룸의 집 08:00 경제학 신장 주황색 내러티브 (성숙)
5. 연꽃 먹는 사람들 시내/목욕탕 10:00 화학/식물학 생식기 짙은 갈색 나르시시즘
6. 하데스 장례식 11:00 종교 심장 검정/흰 인큐비즘
7. 아이올로스 신문사 12:00 수사학 붉은색 생략 삼단논법
8. 라이스트리고네스 술집 13:00 건축학 식도 핏빛 적색 연동 운동
9. 스킬라/카리브디스 국립도서관 14:00 문학 - 변증법
10. 배회하는 암초 거리 전체 15:00 역학 혈액 - 미궁
11. 세이렌 호텔 16:00 음악 - 푸가 형식
12. 키클롭스 선술집 17:00 정치학 근육/뼈 - 거인주의
13. 나우시카 해변 바위 20:00 회화 눈, 코 - 팽창과 수축
14. 태양신의 소 산부인과 22:00 의학 자궁 - 배아 발달
15. 키르케 사창가 24:00 주술/마술 골격/신경 - 환각 (희곡)
제3부 16. 에우마이오스 마부의 쉼터 01:00 항해술 신경 - 이완된 산문
17. 이타카 블룸의 집 02:00 과학 골격 - 문답법 (과학적)
18. 페넬로페 침대 - - 육체/지방 - 의식의 흐름

이 스키마가 증명하듯, 제임스 조이스는 작품의 매 순간마다 그 상황에 부합하는 장기, 예술, 기법을 완전히 새로 창조함으로써 고전 소설이 지니고 있던 선형적인 서술 관습을 철저히 파괴했다.


4. 분열된 시대의 인간상: 심층 인물 분석

『율리시스』의 인물들은 20세기 초 아일랜드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담론들이 격돌하는 전쟁터 그 자체이다.

레오폴드 블룸 (Leopold Bloom): 일상의 영웅이자 이방인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인 38세의 레오폴드 블룸은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혁신적인 캐릭터 중 하나이다.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여왕 호텔(Queen's Hotel)을 경영하다 독약을 먹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블룸 자신은 약 10년 전 태어난 지 11일 만에 사망한 아들 루디(Rudy)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게다가 그는 육감적인 아내 몰리가 콘서트 매니저인 블레이지스 보일런(Blazes Boylan)과 오후 4시에 불륜을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채 더블린 시내를 하루 종일 배회한다.

이러한 수동적인 행보로 인해 그는 사회적 '베타 남성(beta male)'이나 패배자, 무능한 남편으로 비칠 수 있다. 블룸의 상징물인 '열쇠(Keys)'는 그가 아침에 외출할 때 집 열쇠를 두고 나오는 바람에 나중에 담장을 넘어 자신의 집으로 무단 침입하듯 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낳는데, 이는 그가 가정 내에서조차 주도권을 잃고 소외된 존재임을 암시한다. 또한 더블린 곳곳에 붙어 있는 '플럼트리의 화분용 고기(Plumtree’s Potted Meat)' 광고는 광고업자인 블룸의 직업적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의 불안정한 가정생활과 육체적 고착 상태를 상징하는 모티프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조이스가 주조하고자 했던 진정한 현대적 영웅주의는 바로 이 남루한 블룸의 모습 안에 깃들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에서 영웅의 이상적인 원형은 극단적인 폭력성과 열정으로 적을 말살하고 전장에서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산화하는 아킬레스(Achilles)였다. 조이스는 근대 이후의 세계는 더 이상 근육과 살육의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통찰했다. 대신 폭풍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기지와 인내로 삶을 연명해 가고, 어떻게든 고향(일상)으로 살아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적 모델을 블룸에게 투영했다. 블룸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적 폭언과 억압 속에서도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비폭력과 관용(pacifism)을 유지하며, 장례식에 참석해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임산부를 동정하며, 창녀촌에서 폭행당할 위기에 처한 고아나 다름없는 스티븐을 보호하여 집으로 데려온다. 육체적으로는 나약할지라도, 일상의 난관을 묵묵히 극복하며 타인에게 연민을 베푸는 그의 태도는 고대의 어떤 서사적 위업보다도 숭고한 '일상의 영웅주의(everyday heroism)'를 체현한다.

스티븐 데덜러스 (Stephen Dedalus): 소외된 지식인과 정신적 고아

전작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에 이어 등장하는 스티븐은 22세의 야심 차고 지적인 작가 지망생이자 역사 교사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지중해를 헤매는 텔레마코스에 대응하는 그는, 영적·정신적 고아 상태에 놓여 있다. 물리적인 아버지인 사이먼 데덜러스(Simon Dedalus)가 더블린 시내에 버젓이 살아 있음에도, 알코올 중독에 무능력한 그에게서 스티븐은 지적 교감을 전혀 얻지 못한다. 나아가 스티븐은 죽어가는 어머니가 임종 직전 기도를 부탁했을 때 자신의 신앙적 양심과 종교적 거부감 때문에 이를 매몰차게 거절했던 기억으로 인해 극심한 죄책감과 환영에 시달린다. 그의 머릿속에는 썩어가는 간과 초록색 담즙을 토해내던 어머니의 모습, 밀랍과 장미목 냄새가 나는 수의를 입은 시신이 유령처럼 맴돈다.

종교(가톨릭), 조국(아일랜드 식민주의), 그리고 물리적 가족이라는 거미줄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스티븐은, 그가 세 들어 살던 마르텔로 탑(Martello Tower)에서조차 배척당한다. 밤마다 흑표범 환상을 보며 헛소리를 해대는 옥스퍼드 출신의 영국인 헤인즈(Haines)와, 의대생이자 냉소적인 유물론자인 벅 멀리건(Buck Mulligan)에게 밀려난 스티븐은 결국 열쇠를 반납하고 탑을 떠나 집 없는 방랑자가 된다. 스티븐의 상징물인 '물푸레나무 지팡이(Ashplant)'는 그가 세상을 짚고 나아가는 예술가적 자의식이자 동시에 방어 기제를 의미한다. 그는 날카로운 지성을 바탕으로 국립도서관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햄릿은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아니라, 죽은 아들(햄릿닛)을 애도하며 아내(앤 해서웨이)에게 배신당한 셰익스피어 자신의 투영이라는 변증법적 해석—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념 속에만 갇혀 실질적인 삶의 기반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던 그는, 밤의 거리(Nighttown)에서 영국 군인들과 시비가 붙어 쓰러진 뒤, 블룸이라는 대리 아버지(surrogate father)를 만나 비로소 물리적, 정신적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스티븐과 블룸의 만남은 추상적인 예술적 지성과 육체적, 세속적인 일상의 경험이 하나로 융합되는 모더니즘적 통합의 상징이다.

마리온 '몰리' 블룸 (Marion 'Molly' Bloom): 육체와 대지의 무한한 긍정

레오폴드 블룸의 아내인 몰리 블룸은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18장 '페넬로페(Penelope)'의 유일한 화자로서 등장한다. 1870년 지브롤터에서 아일랜드인 군 장교 트위디 소령(Major Tweedy)과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이다. 그녀의 출신 성분은 남편 블룸과 마찬가지로 켈트족 중심의 아일랜드 순혈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방인의 속성을 지닌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남편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밤마다 짠 베를 풀며 수십 년간 정절을 지켰던 페넬로페의 숭고한 서사는, 몰리에 이르러 완전히 전복된다. 몰리는 블룸과 10년 넘게 정상적인 성관계를 갖지 않은 상태이며, 혈기 왕성한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오만하고 천박한 매니저 블레이지스 보일런과 대낮에 혼외정사를 벌인다. 블룸은 온종일 더블린 시내에서 보일런이 몰리에게 다가가는 환청, 즉 그가 타고 가는 마차의 '딸랑거리는 소리(Jingling)'에 시달리며 성적 불안과 패배감을 곱씹는다.

이러한 파격적인 설정 탓에 초기 비평가들, 특히 D. H. 로렌스(D. H. Lawrence) 같은 이들은 몰리의 독백을 가리켜 "지금껏 쓰인 글 중 가장 더럽고, 외설적이며, 역겨운 글"이라 비난했고, 어느 비평가는 "암컷 고릴라의 마음을 전시해 놓은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18장 '페넬로페'의 노골적인 성적 묘사로 인해 『율리시스』는 미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설 서적으로 분류되어 판매 금지 처분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대의 억압적 도덕률을 벗겨내고 현대적 관점, 특히 페미니즘 비평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몰리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나 이분법적 이성주의를 완벽하게 해체하는 주체적 여성으로 재평가된다. 몰리는 스티븐이나 멀리건 등 관념과 논리에 사로잡힌 지식인들과 달리 육체적 감각과 감정, 생명력 그 자체를 긍정하며 자신의 욕망을 은폐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 블룸이 자신에게 가르치려 드는 현학적인 말("환생(metempsychosis)"과 같은 어려운 어휘)들을 비웃으며, 사물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이해하는 육체적 실재(corporeal woman)이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복잡한 애증 속에서도, 결국 호스(Howth) 곶 언덕에서 젊은 블룸과 나누었던 격정적인 첫 키스와 청혼의 순간을 회상하며 삶의 아름다움과 우주를 향해 연속적인 "Yes(그래)"를 외치며 소설의 막을 내린다. 이것은 대지(Earth)와 생명이 지닌 근원적인 수용성과 사랑의 승리를 의미한다.

키클롭스 에피소드의 '시민 (The Citizen)': 맹목적 민족주의의 폭력성

소설 내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첨예한 인물은 12장 '키클롭스(Cyclops)'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시민(The Citizen)'이다. 오후 5시, 바니 키어넌의 선술집(Barney Kiernan's pub) 구석에 게리 오웬(Garryowen)이라는 사나운 개를 데리고 앉아 끊임없이 맥주를 들이켜는 이 인물은, 호메로스 서사시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Polyphemus)의 현대적 화신이다. 그는 식민 지배를 타파하기 위해 게일어(아일랜드어) 부흥을 부르짖고 아일랜드 국가의 위대함만을 설파하는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국수주의자이다.

'시민'이 외눈박이 거인에 비유된 것은 그의 물리적 눈이 하나라서가 아니라, 그가 지닌 시각이 극도로 단안적(one-eyed)이고 편협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과 결부된 모든 것을 경멸하고 오직 아일랜드적인 것만을 찬양하며, 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랐으나 유대인 혈통을 지닌 블룸을 "프리메이슨"이라 매도하며 외국인 취급한다. 블룸이 폭력을 혐오하고 보편적 인류애와 평화를 주장하며, "그리스도 역시 나와 같은 유대인이었다(Your God... Christ was a jew like me)"라고 정곡을 찌르자, 격분한 '시민'은 예수마저 십자가에 다시 매달 기세로 블룸을 향해 비스킷 통(biscuitbox)을 집어 던진다.

이 장면은 1904년 당시 더블린에 팽배했던 맹목적이고 흑백 논리적인 민족주의가 얼마나 쉽게 파시즘적이고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적인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시민'은 자신이 순수한 아일랜드인이라는 단일한 정체성(singular identity)의 환상에 집착하지만, 실상 인간의 정체성은 블룸이 증명하듯 무수히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조이스는 폭력적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영웅은 거친 폭력이 아니라 블룸과 같은 다원주의적 관용을 지닌 인물임을 웅변하고 있다.


5. 핵심 철학적 모티프: 시차(Parallax)와 일상의 의미

시차(Parallax): 진리를 향한 다원적 렌즈

『율리시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형이상학적, 문학적 방법론을 단 하나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단연 '시차(Parallax, 視差)'이다. 천문학과 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블룸은 6월 16일 하루 동안 이 단어를 반복해서 떠올린다. 천문학적 의미에서 시차란, 관측자의 위치(관점)에 따라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이나 물체의 위치가 배경에 대비되어 서로 다르게 보이는 현상을 뜻한다 (예컨대 눈앞에 손가락을 두고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감았을 때 손가락의 위치가 이동해 보이는 것). "고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별들조차 무한히 먼 과거로부터 끝없이 이동하는 방랑자들(evermoving wanderers)에 불과하며, 이에 비하면 인간에게 할당된 70년의 수명은 무한소의 괄호에 불과하다"는 블룸의 천문학적 사유는 조이스의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조이스는 이 천문학적 시차를 문학적 시차(literary parallax)로 변주하여 소설의 구조 원리로 삼았다.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하나의 권위적인 렌즈로 세계를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더블린 시내에서 일어나는 단일한 사건과 공간을 스티븐 데덜러스의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시선, 레오폴드 블룸의 실용적이고 과학적이며 감각적인 시선, 그리고 몰리 블룸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시선 등 다양한 주관적 의식을 통해 번갈아 투사한다. 우편선이 항구에 들어오는 평범한 풍경조차 스티븐의 눈과 블룸의 눈에는 완전히 다르게 인식된다. 시차의 개념은 객관적 절대 진리라는 과거의 환상을 버리고, 다원적인 관점들이 겹쳐지고 병치될 때 비로소 대상의 진정한 입체성과 진실의 심연에 도달할 수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통찰의 기원이 된다.

일상적 삶의 신성함과 다원성 (A. N. Whitehead와 조이스)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의 과정 철학은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지향하는 세계관과 완벽한 공명을 이룬다. 화이트헤드는 우주와 존재를 이해하는 가장 근원적 단위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 순간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s of experience)'에 있다고 보았다. 추상적 관념 그 자체는 현실을 창조하지 못하며, 오직 이 찰나의 경험적 계기들만이 세상을 실현시킨다는 '존재론적 원리(ontological principle)'를 주장했다.

『율리시스』는 화이트헤드의 이러한 철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완벽한 실증 사례이다. 조이스는 영웅들이 악과 싸우는 거창한 에픽(epic)의 자리를, 배변, 식사, 성욕의 몽상, 펍에서의 말다툼, 목욕, 장례식 참석과 같은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의 파편들로 대체했다. 인간의 고귀한 철학적 몽상과 위에서 배출되는 방귀 냄새, 숭고한 사랑과 소변의 생리 현상 사이에 어떤 위계나 차별도 두지 않는다. 선과 악의 우주적 대결 대신 꽉 끼는 신발이나 소화불량, 은행 빚이 현대인의 진정한 장애물이며, 이 혼돈스러운 구체성 속에서 무사히 하루를 살아내고 침대(집)로 귀환하는 소시민들의 여정 자체가 가장 숭고한 서사라는 것이다.


6. 문체적 혁신: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의 완성

『율리시스』가 영미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지위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적 궤적을 텍스트로 구현해 낸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의 극한적 활용에 있다.

의식의 흐름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비유

의식의 흐름이란 등장인물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소멸하는 생각, 감각, 기억의 연상 작용을 인위적인 편집이나 논리적 검열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내러티브 모드이다. 이 용어는 1890년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그의 저서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에서 인간의 사고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고안한 은유에서 비롯되었다. 제임스는 인간의 의식이 논리적인 사슬이나 기차처럼 '토막 난(chopped up)'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합쳐지고 흐르는 '강(river)'이나 '시냇물(stream)'과 같다고 통찰했다. "논리는 당신을 A에서 B로 이끌지만, 상상력은 당신을 어디로든 데려간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명언처럼, 인간의 실제 머릿속은 파편적이고 엉망진창이며(messy) 수많은 감각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이를 현대적인 일상으로 쉽게 비유하자면, 전통적인 산문 글쓰기는 교통경찰의 통제와 신호등(문법, 구문론, 논리 구조)의 지시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차들이 멈추고 이동하는 '정체된 시내의 출퇴근길(mental rush-hour traffic)'과 같다. 반면 의식의 흐름 기법은 뇌 속의 자동차가 아무런 우회나 장애물 없이 무의식의 경로를 따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탁 트인 고속도로(wide-open highway)'와 같다.

예를 들어, 전통적 소설의 화자는 "나는 도서관으로 걸어가면서 대본을 보냈는지 걱정했고, 떨어지는 단풍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라고 정돈된 문장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의식의 흐름'을 통과하면 이 서술은 "추워 / 눈부셔 / 선글라스 가져올걸 / 빨리 걸어야지 / 또 지각이야 / 대본은 보냈던가? / 앗 저 사람 누구지? / 신발 끈 풀렸네 / 와 단풍나무 빨간색 주황색 눈부셔 / 늦었어 늦었어"와 같이 쉼표와 마침표를 무시하고 감각적 인상과 자유 연상이 무질서하게 병치되는 형태로 폭발한다. 문법적으로는 틀렸지만(run-on sentences), 심리적 진실에는 훨씬 더 완벽하게 부합하는 서술 방식인 것이다.

개별 에피소드의 문체적 변주: 형식 파괴의 향연

조이스는 단순히 의식의 흐름에 머물지 않고, 18개의 각 장(Episode)마다 내용에 걸맞은 독창적인 문체를 부여하여 소설 자체를 다양한 스타일의 콜라주로 만들었다.

  • 7장 아이올로스 (Aeolus): 수사학적 허풍과 신문 편집
    정오 무렵 신문사를 배경으로 한 이 장은 총 63개의 소제목(Headlines)으로 분절되어 있어 마치 신문의 기사 배열을 읽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호메로스 신화에서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준 바람 주머니가 열려 배가 난파된 것에 착안하여, 조이스는 더블린 저널리스트들이 내뱉는 실속 없고 과장된 수사학적 웅변을 '허풍(windbag)'으로 풍자한다. 뉴스라는 매체가 지닌 파편적 속성과, 현재의 행동보다 과거의 향수에 매달리는 아일랜드인들의 공허한 담론을 텍스트의 형태 자체로 모방한 것이다.

  • 14장 태양신의 소 (Oxen of the Sun): 문체와 태아의 발생학적 진화
    밤 10시, 홀스 스트리트 산부인과 병원을 배경으로 미나 퓨어포이(Mina Purefoy) 부인의 출산을 기다리는 동안 조이스는 영문학사 전체를 응축한 마술적 기교를 선보인다. 조이스는 영어 산문 문체의 발달 과정을 인간 태아의 성장(embryonic development)에 빗대어, 임신 40주에 대응하는 40개의 문단으로 이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도입부의 주술적인 고대 라틴어 번역체 혼돈에서 시작하여, 앵글로색슨 기원, 중세 영어, 밀턴과 스위프트를 거쳐 디킨스풍의 19세기 산문, 그리고 1904년 당시 더블린의 속어와 은어로 끝맺는다. 조이스가 이 한 장을 쓰기 위해 무려 1,000시간을 투입했다고 추정될 만큼 극강의 기교(authorial powerflex)를 자랑한다. 신화 속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신성한 헬리오스의 소를 도살하여 신의 저주를 받았듯, 병원 대기실에서 의대생들은 피임, 불임, 영아 살해 등 생명을 모독하는 난잡한 대화를 나눈다. 조이스는 낡은 문체의 죽음(death)과 새로운 문체의 탄생(birth), 죽음의 언어와 출산의 숭고함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며 극적인 긴장을 창출했다.

  • 17장 이타카 (Ithaca): 문학적 수사를 배제한 뼈대의 미학
    새벽 2시, 블룸과 스티븐이 집에 도착하여 부엌에서 코코아를 마시며 대화하는 장면은 가장 극단적인 안티-문학(anti-literary)의 형태를 띤다. 조이스는 이 장을 '수학적 교리문답(mathematical catechism)' 형식으로 썼다. 마치 과학 실험 보고서나 취조 기록을 보듯, 무미건조한 질문과 대답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의 감정 표현은 완전히 증발하고, 물이 끓는 과학적 원리, 더블린 상수도 체계의 기원, 두 인물의 물리적 거리, 별의 시차 등 차갑고 딱딱한 사실(cold, hard facts)들만이 나열된다. 모든 은유와 미사여구를 벗겨내고 문체의 '골격(skeleton)'만을 남겨둠으로써, 조이스는 오히려 사실들의 압도적인 축적을 통해 우주적 스케일의 허무와 소시민적 일상의 디테일을 극대화했다.

  • 18장 페넬로페 (Penelope): 무한히 긍정하는 의식의 강물
    소설의 최종장인 '페넬로페'는 자리에 누운 몰리 블룸의 몽롱한 의식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의 결정판이다. 이 장은 전통적인 문법 규칙이나 구두점(마침표, 쉼표, 콜론 등)이 완전히 배제된 채 약 22,000개의 단어가 단 8개의 거대한 문단(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마지막 8번째 문장은 4,391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영어 문학사에서 가장 긴 문장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구두점의 부재는 어떠한 남성적·사회적 억압이나 형식적 구속도 거부하는 몰리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무한한 내적 자유를 시각적으로 대변한다.


7. 독서 가이드: 율리시스를 해독하는 방법론

『율리시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이 거대한 텍스트의 미로에서 좌절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반적인 소설 읽기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100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비평가들과 애호가들은 이 책을 정복하기 위해 외부의 안내서(Companion guides)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

  • 대표적인 가이드:
    • 해리 블래마이어스(Harry Blamires)의 『새로운 블룸스데이 북(The New Bloomsday Book)』: 18개 에피소드의 플롯과 호메로스 평행 구조를 평이한 산문(plain language)으로 요약하여 독자가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 역할을 한다.
    • 스튜어트 길버트(Stuart Gilbert)의 『연구(A Study)』: 1930년에 출간된 조이스의 공인을 받은 원조 가이드이다.
    • 돈 기포드(Don Gifford)의 『율리시스 주해(Ulysses Annotated)』: 모든 역사적, 문학적 인유를 백과사전처럼 낱낱이 파헤쳐준다.
    • 디지털 자원: 현대에 이르러서는 텍스트에 하이퍼링크 주석과 시각 자료를 색상별로 결합한 웹사이트 '더 조이스 프로젝트(The Joyce Project)'나, 페이지 단위로 문장을 해부해 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 등 디지털 자원들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부 지식이 전혀 없이 『율리시스』를 곧이곧대로 읽었을 때 작가의 의도를 60% 정도만 이해한다고 해도, 그 60%가 주는 문학적, 지적 체험은 다른 어떤 소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환상적(fantastic)이라고 조언한다. 완벽한 이해에 집착하기보다는,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과감히 넘어가며 조이스가 창조한 언어의 리듬과 일상의 혼돈 그 자체를 감각적으로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8. 결론: 현대 문학의 불멸성을 담보한 우리 시대의 오디세이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단순한 하루치 서사를 넘어, 서구 문명의 언어와 문학적 기법의 한계를 실험하고 파괴한 뒤 다시 구축해 낸 거대한 백과사전적 세계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불친절함과 방대한 난해함을 지니고 있으나, 해설서의 도움을 받아 그 이면을 파고드는 이들에게는 소설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뒤흔드는 비할 데 없는 문학적 희열을 선사한다.

심층적 분석에 따르면, 『율리시스』의 위대한 성취는 단순히 고대 신화의 웅장한 틀을 빌려와 화려한 퍼즐을 조립한 데 그치지 않는다. 조이스는 영웅적 기상을 잃어버리고 마비된 식민지 아일랜드의 한복판에서, 평범하고 남루한 소시민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우주적 숭고함을 부여했다. 거창한 이데올로기와 배타적인 국수주의가 폭력을 정당화하던 시대에, 타인을 억압하지 않고 묵묵히 팍팍한 일상을 견디며 약자에게 연민의 손길을 내미는 레오폴드 블룸의 관용(pacifism)은,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현대적 영웅주의'가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더 나아가 조이스는 파편화된 인간의 사유와 감각을 '의식의 흐름'이라는 극단적이고도 파격적인 텍스트의 그릇에 담아냄으로써, 문학이라는 매체가 인간의 심리적 심연을 얼마나 정밀하고 진실하게 지도화(mapping)할 수 있는지 만천하에 입증했다. 단일한 진리에 복종하지 않고 인물들의 엇갈리는 시차(Parallax)를 온전히 수용하는 이 다원적 세계관은 이후 도래할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혔다.

우리가 『율리시스』라는 험난한 활자의 미로를 고군분투하며 탐험하는 과정은, 1904년 더블린의 뒷골목을 걷는 블룸의 여정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것은 타인의 다층적인 시각을 이해하고 삶의 찰나적 순간들이 지닌 무한한 긍정을 깨달으며,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비루한 일상 속에 감춰진 눈부신 신성함을 재발견하는 길고 아름다운 지적 오디세이아이다. 출간 후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매년 6월 16일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문학 순례자들이 기꺼이 자신만의 블룸스데이를 기념하며 이 책을 펴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