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론 ◈
◇ 군주론 ◇
목차
제1장 — 군주국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그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획득되는가
제2장 — 세습 군주국에 대하여
제3장 — 복합 군주국에 대하여
제4장 —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다리우스의 왕국은,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에도 왜 그의 후계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제5장 — 병합되기 전에 자기 법과 자유 아래 살아가던 도시나 군주국을 통치하는 방법
제6장 — 자신의 무력과 역량으로 획득한 신생 군주국에 대하여
제7장 — 타인의 무력이나 행운에 기대어 획득한 신생 군주국에 대하여
제8장 — 악행으로 군주국을 차지한 자들에 대하여
제9장 — 시민적 군주국에 대하여
제10장 — 모든 군주국의 힘은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야 하는가
제11장 — 교회 군주국에 대하여
제12장 — 군대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용병은 어떤 존재인가
제13장 — 원군, 혼성군, 자국군에 대하여
제14장 — 군주가 전쟁의 기술에 관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
제15장 —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이유들에 대하여
제16장 — 관대함과 인색함에 대하여
제17장 — 잔혹함과 자비, 그리고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은가
제18장 —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켜야 하는가
제19장 — 경멸과 증오를 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제20장 — 군주들이 흔히 의지하는 요새와 여러 수단은 과연 이로운가 해로운가
제21장 — 군주는 어떻게 처신해야 명성을 얻는가
제22장 — 군주의 측근과 비서들에 대하여
제23장 — 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제24장 —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왜 나라를 잃었는가
제25장 — 인간사에서 운명이 미치는 힘과 그것에 맞서는 방법
제26장 — 야만인의 손에서 이탈리아를 해방하라는 권고
제1장 — 군주국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그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획득되는가
지금까지 인간을 지배해 왔고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모든 국가와 권력체는, 공화국이거나 군주국이다.
군주국은 오래전부터 한 가문이 다스려 온 세습 군주국이거나, 새롭게 생긴 신생 군주국이다.
신생 군주국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차지한 밀라노처럼 완전히 새로운 나라일 수도 있고, 스페인 국왕이 나폴리 왕국을 손에 넣은 경우처럼 기존 세습 영토에 덧붙은 일부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새로 얻은 영토는, 원래 군주의 지배 아래 살아온 곳일 수도 있고 자유롭게 살아온 곳일 수도 있다. 또 그것은 군주 자신의 무력으로 얻은 것일 수도 있고, 남의 무력이나 행운, 혹은 능력 덕분에 얻은 것일 수도 있다.
제2장 — 세습 군주국에 대하여
공화국에 대한 논의는 다른 자리에서 이미 충분히 했으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나는 이제 군주국만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순서에 따라, 군주국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다.
우선 분명히 말해두자면, 세습 군주국, 그것도 오랫동안 같은 가문이 다스려 온 나라를 지키는 일은 신생 군주국을 지키는 일보다 훨씬 어렵지 않다. 조상 때부터 이어져 온 관습을 크게 거스르지 않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신중하게 대처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아주 뛰어나지 않은 군주라도 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 아주 예외적이고 압도적인 힘에 밀려 쫓겨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설령 한 번 나라를 빼앗긴다 해도, 새 지배자에게 불운이 닥치는 순간 그는 다시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의 페라라 공작이 그랬다. 그는 1484년 베네치아의 공격도, 1510년 교황 율리우스의 공격도 버텨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오랫동안 그 지역을 다스려 온 군주였기 때문이다. 세습 군주는 굳이 백성의 반감을 살 이유도 적고, 실제로 그렇게 할 필요도 적다. 그래서 백성에게 더 쉽게 사랑받는다. 특별히 미움받을 만한 악덕을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백성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호의를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랜 통치와 익숙함 속에서 변화를 부르는 기억과 명분은 희미해진다. 하나의 변화는 언제나 또 다른 변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제3장 — 복합 군주국에 대하여
어려움은 신생 군주국에서 생긴다. 특히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아니라, 기존 국가에 덧붙은 일부라면, 곧 복합 국가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 이유는 모든 신생 군주국에 공통으로 따라붙는 고질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기꺼이 지배자를 바꾼다. 그 기대 때문에 기존 군주에게 맞서 무기를 든다. 그러나 나중에 경험으로 깨닫게 된다. 상황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새 군주는 새로 얻은 영토를 지배하기 위해 군대를 들여보내고, 또 수많은 부담과 고통을 백성에게 지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연스럽고도 흔한 일이다.
그래서 새 군주는 그 나라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해를 입힌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된다. 그렇다고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놓은 이들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그들이 기대한 만큼 보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강경하게 대하기도 쉽지 않다. 어느 정도 그들에게 빚을 진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도, 새로운 지역에 들어갈 때는 그곳 주민들의 호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왕 루이 12세는 밀라노를 순식간에 차지했지만, 그만큼 빨리 잃었다. 그를 처음 밀라노에서 몰아내는 데에는 로도비코의 힘만으로도 충분했다. 처음에 성문을 열어주었던 사람들 스스로가, 장차 더 나은 이익을 얻으리라는 기대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 군주의 가혹한 통치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 번 반란을 일으킨 지역을 다시 차지한 뒤에는, 처음보다 쉽게 잃지 않는다. 군주는 반란을 구실로 반대자들을 처벌하고, 의심스러운 자들을 솎아내고, 취약한 지점을 더욱 단단히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가 밀라노를 처음 잃게 만들기 위해서는 로도비코 공작이 국경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프랑스를 밀라노에서 몰아내려면, 사실상 온 세계가 프랑스를 상대로 나서야 했고, 프랑스 군대는 패배해 이탈리아에서 축출되어야 했다.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그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프랑스는 밀라노를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결국 잃었다. 첫 번째 경우의 일반적인 이유는 이미 설명했다. 이제 두 번째 경우의 이유를 말하고, 루이 12세가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누구든 그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어떻게 했어야 프랑스 왕보다 더 안전하게 영토를 지킬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새로 얻은 영토가 기존 국가에 덧붙는 경우, 그 영토는 두 부류로 나뉜다. 같은 언어와 같은 풍속을 지닌 곳이거나, 그렇지 않은 곳이다. 같은 언어와 풍속을 가진 곳이라면 지키기가 더 쉽다. 특히 그곳이 자치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영토를 안전하게 다스리려면, 예전 군주의 가문만 없애버리면 된다. 나머지 생활 조건과 관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두 지역 사람들은 곧 조용히 한 몸처럼 살아가게 된다. 브르타뉴, 부르고뉴, 가스코뉴, 노르망디가 오랫동안 프랑스에 속해 있으면서도 큰 혼란 없이 지낸 것이 그 예다. 언어에는 약간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생활 풍속이 비슷하니 함께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런 지역을 병합한 군주는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 이전 지배 가문의 혈통을 완전히 끊을 것. 둘째, 그들의 법과 세금을 건드리지 말 것. 이 두 가지만 지키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새 영토는 기존 국가와 하나가 된다.
하지만 언어도, 풍속도, 법도 다른 나라를 차지한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곳을 유지하려면 큰 행운도 필요하고, 대단한 역량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 영토를 차지한 군주가 직접 그곳에 가서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지배가 더 안전하고 오래간다. 오스만 투르크가 그리스를 장악한 뒤 그곳에 직접 자리 잡았던 것이 좋은 예다. 다른 여러 조치를 취했다 해도,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면 그 영토를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군주가 현장에 있으면 문제가 싹틀 때 바로 볼 수 있고, 커지기 전에 손쓸 수 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문제는 이미 커진 뒤에야 귀에 들어온다. 그때는 늦는다. 또 군주의 관리들이 그 지역을 마음대로 수탈하기도 어렵고, 백성은 군주에게 곧장 호소할 수 있어 만족감도 더 커진다. 선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군주를 더 사랑하게 되고, 반대로 잘못을 저지르려는 사람은 군주를 더 두려워하게 된다. 밖에서 그 영토를 공격하려는 자도 훨씬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군주가 직접 그곳에 살고 있다면, 그 영토를 빼앗는 일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더 나은 방법은 전략적 요충지 한두 곳에 식민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땅을 지배하는 열쇠가 될 만한 지점에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기병과 보병을 늘 주둔시켜야 한다. 식민지는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큰 비용 없이 보내고 머물게 할 수 있다. 피해를 보는 사람도 일부에 그친다. 새 이주민에게 토지와 집을 내주어야 하는 시민들만 손해를 본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해지고 흩어져서 더는 군주를 해칠 수 없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शांत해지고, 괜히 나섰다가 자신도 재산을 빼앗길까 두려워 더욱 조심한다. 요컨대 식민지는 비용이 적게 들고, 충성도는 높고, 해악은 덜하다. 피해를 본 사람도 가난하고 흩어져 있어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사람은 잘 대해주든지, 아예 다시는 복수할 수 없게 짓눌러야 한다. 가벼운 상처는 복수의 대상이 되지만, 너무 큰 타격을 입으면 복수조차 못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때는, 훗날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해야 한다.
식민지 대신 군대를 주둔시키면 비용은 훨씬 커진다. 그 영토에서 나오는 수입을 거의 전부 주둔군 유지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토를 얻은 것이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된다. 게다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게 된다. 주둔군이 이리저리 이동하며 온 나라 사람에게 불편과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원한을 품게 되고, 그 원한은 패배한 뒤에도 살아남아 군주를 해칠 수 있다. 이 모든 점에서, 그런 주둔군은 식민지가 유용한 만큼이나 쓸모없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서로 다른 언어와 풍속을 가진 나라를 지배하는 군주는 주변의 약한 이웃 나라들의 보호자이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그 지역의 강한 세력은 약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큼 강한 외세가 우연히라도 그 지역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외세는 언제나, 야심이 과한 자나 불안에 떠는 자들이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로마인이 그리스에 들어온 것도 아이톨리아인들이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외세가 한 나라에 들어오면, 기존 지배 세력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던 종속 국가들은 곧장 그 외세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러니 새로 들어온 강자는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쓸 필요조차 없다. 그들은 순식간에 새 권력에 달라붙는다. 군주가 할 일은 그들이 지나치게 힘과 권위를 키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 점만 조심하면 자신의 군사력과 그들의 호의를 이용해 더 강한 세력도 손쉽게 눌러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그 나라 전체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군주는, 얻은 것을 곧 잃게 되고, 지키고 있는 동안에도 끝없는 어려움과 골칫거리에 시달리게 된다.
로마인은 새로 병합한 지역에서 이 원칙을 철저히 따랐다. 그들은 식민지를 보내고, 약한 세력과는 우호를 유지하되 그 힘이 커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강한 세력은 눌렀고, 강력한 외세가 영향력을 넓히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스만 봐도 충분하다. 로마는 아카이아인과 아이톨리아인과는 우호를 유지했고, 마케도니아 왕국은 약화시켰으며, 안티오코스는 몰아냈다. 하지만 아카이아인과 아이톨리아인이 로마에 협력했다고 해서 그들의 세력 확장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필리포스가 설득한다고 해서 그를 굴복시키기 전부터 친구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안티오코스의 영향력도 그 나라 안에서 어떤 지배권도 유지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현명한 군주가 해야 할 일이다. 눈앞의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문제까지 내다보고, 온 힘을 다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 미리 알면 쉽게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닥칠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손쓸 시기를 놓친 뒤다. 병이 깊어진 뒤에는 약이 소용없다. 의사들이 말하는 열병과도 같다. 병은 처음에는 고치기 쉽지만 알아차리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차리기는 쉬워지지만, 그때는 고치기 어렵다. 국가의 일도 마찬가지다. 현명한 사람만이 미리 볼 수 있는 악을 일찍 알아채면 금방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미리 보지 못해 모두가 눈치챌 만큼 커지고 나면, 더는 대책이 없다. 로마인은 어려움을 미리 내다보고 곧바로 대응했다. 전쟁을 피한다는 이유로 문제를 방치하지도 않았다.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남에게 유리하도록 미뤄질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필리포스와 안티오코스를 그리스에서 상대하려 했다. 이탈리아까지 끌고 오지 않기 위해서였다. 둘 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현명한 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때를 기다리자”라는 태도는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의 혜택보다 자신의 용기와 신중함의 혜택을 택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휩쓸고 가며, 선과 악을 함께 가져오기도 하고, 악 속에서 선을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프랑스로 눈을 돌려보자. 과연 프랑스는 방금 말한 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따랐는가. 나는 샤를이 아니라 루이 12세를 말하겠다. 그가 더 오랫동안 이탈리아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서 더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서로 다른 요소로 이루어진 나라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원칙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루이 왕은 롬바르디아의 절반을 차지하려는 베네치아의 야심 덕분에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나는 이 결정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겠다.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지만, 거기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고, 샤를의 정책 때문에 모든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우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다른 곳에서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곧장 성공했을 것이다.
왕은 롬바르디아를 손에 넣자마자 샤를이 잃어버린 권위를 즉시 회복했다. 제노바는 복종했고, 피렌체는 그의 편이 되었다. 만토바 후작, 페라라 공작, 벤티볼리오 가문, 포를리의 여주인, 파엔차·페사로·리미니·카메리노·피옴비노의 영주들, 루카 사람들, 피사 사람들, 시에나 사람들까지 모두 그와 손잡으려 했다. 그제야 베네치아는 자신들이 얼마나 무모한 선택을 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롬바르디아의 도시 둘을 차지하려다가, 프랑스 왕에게 이탈리아 3분의 2를 넘겨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생각해 보라. 만약 루이 왕이 앞서 말한 원칙을 따랐다면, 그는 얼마나 쉽게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그의 편에 선 이들은 수는 많았지만 모두 약하고 겁이 많았다. 어떤 이는 교회를 두려워했고, 어떤 이는 베네치아를 두려워했다. 그러니 그들은 계속해서 프랑스 왕 쪽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왕은 여전히 강한 세력들에 맞서 자신을 충분히 안전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밀라노에 들어가자마자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로마냐를 차지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는 그 행동이 스스로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기 품으로 들어온 친구들을 잃고, 자신을 지탱해 줄 기반을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교회는 영적 권위에 더해 세속 권력까지 갖게 되면서 훨씬 더 강해졌다. 그는 첫 번째 실수를 이렇게 저질렀고, 결국 그 실수를 계속 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데르의 야심을 막고 그가 토스카나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다시 직접 이탈리아에 들어와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그는 교회의 힘을 키워주고 친구들을 잃은 데 이어 나폴리 왕국까지 스페인 왕과 나누어 가졌다. 원래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심판자였던 그가, 스스로 경쟁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야심가들과 프랑스 내부의 불만세력은 몸을 숨길 피난처를 얻게 되었다. 원래라면 프랑스에 기대는 꼭두각시 왕을 나폴리에 세울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를 내쫓고 결국 자기 자신마저 몰아낼 수 있는 자리를 다른 이에게 내주었다.
무언가를 차지하려는 욕망은 인간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흔한 것이다.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언제나 그것을 차지하려 든다. 그리고 그럴 능력이 있을 때 그렇게 하면 칭찬받지 비난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할 힘이 없으면서도 무슨 수를 써서든 하려 든다면, 그것은 어리석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프랑스가 나폴리를 자기 힘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할 수 없었다면 나누지 말았어야 했다. 롬바르디아를 베네치아와 나누었던 것은 이탈리아에 발을 들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나폴리를 나눈 것은 그런 불가피함조차 없었으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결국 루이는 다섯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작은 세력을 없앴고, 이탈리아의 강한 세력 하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으며, 외세를 끌어들였고, 직접 머물지도 않았고, 식민지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섯 번째 실수만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 다섯 가지가 치명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여섯 번째 실수는 베네치아의 영토를 빼앗아버린 일이었다. 만약 교회의 힘을 키워주지 않았고, 스페인을 이탈리아에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베네치아를 약화시키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먼저 그런 조치를 취해놓고 나서는, 결코 베네치아의 몰락에 동의했어서는 안 됐다. 베네치아가 강한 한, 다른 세력들이 롬바르디아를 넘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역시 자신이 지배권을 얻지 못하는 한 롬바르디아를 남에게 넘기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나라들도 프랑스에게서 롬바르디아를 빼앗아 베네치아에 넘겨주기 위해 나서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을 동시에 적으로 돌릴 배짱은 없었을 테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루이 왕은 전쟁을 피하려고 로마냐를 알렉산데르에게 내주고, 나폴리를 스페인과 나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한 이유로 대답하겠다. 전쟁을 피하려고 잘못된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불리한 시점으로 미뤄질 뿐이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왕이 혼인 무효 승인과 루앙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을 받는 대가로 교황을 돕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군주의 신의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하겠다.
루이 왕은 결국 나라를 차지한 자가 지켜야 할 조건 하나도 제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롬바르디아를 잃었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다. 나 역시 이 문제를 낭트에서 루앙 추기경에게 직접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알렉산데르 교황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가 로마냐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흔히 ‘발렌티노 공작’이라 불리던 그 사람의 일을 두고 추기경이 “이탈리아인은 전쟁을 모른다”고 말하자, 나는 “프랑스인은 정치를 모른다”고 답했다. 정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교회가 그렇게까지 강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교회와 스페인의 세력이 커진 것은 프랑스 탓이었고, 프랑스의 몰락 역시 바로 그것 때문에 일어났다. 여기서 거의 예외 없이 들어맞는 하나의 일반 법칙이 나온다. 남을 강하게 만들어준 자는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그 우위는 교묘함으로 만들어졌든 힘으로 만들어졌든, 권력을 얻게 된 자는 두 경우 모두 그것을 경계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4장 —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다리우스의 왕국은,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에도 왜 그의 후계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새로 얻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은 이런 점을 이상하게 여길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불과 몇 년 만에 아시아를 제패했고, 제국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때에 죽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는 제국 전체가 반란을 일으켰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그의 후계자들은 나라를 유지했다. 내부의 야심 때문에 벌어진 다툼 말고는, 별다른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군주국은 크게 두 방식으로 통치된다. 하나는 군주 한 사람이 신하와 관리들을 거느리고, 그들을 자신의 은총과 허락에 따라 대신과 행정관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군주와 귀족들이 함께 나라를 이루는 방식이다. 이 경우 귀족은 군주의 은혜 덕분이 아니라 오래된 혈통과 전통 덕분에 그 지위를 가진다. 그들은 자기 영지와 자기 백성을 가지고 있으며, 백성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주인으로 인정하고 애정을 품는다. 반면 군주와 신하들만으로 운영되는 나라는 군주에게만 절대적인 권위가 집중된다. 나라 안에서 그보다 높은 존재로 인정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다른 이에게 복종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리나 대리인으로서일 뿐 특별한 애정을 품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예를 들면, 오스만 투르크와 프랑스 왕국이 이 두 방식을 잘 보여준다. 투르크의 군주국은 한 사람의 군주가 전체를 지배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의 신하일 뿐이다. 그는 제국을 여러 지역으로 나누고 행정관을 보내며, 원하면 언제든 그들을 바꾸거나 옮긴다. 반면 프랑스 왕은 오래된 귀족 집단 한가운데 놓여 있다. 그 귀족들은 자기 백성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자신들만의 특권도 가지고 있다. 국왕이라 해도 함부로 그 권리를 빼앗았다가는 위험하다.
이 둘을 비교해 보면, 투르크의 나라를 정복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일단 정복하고 나면 지키기는 매우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귀족이나 유력자들이 외부 침략자를 불러들이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고, 군주 주변의 인물들이 반란을 일으켜 도와줄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모두 노예와도 같은 신하들이어서 매수하기가 어렵고, 설령 매수해도 백성을 함께 끌고 움직일 수가 없다. 따라서 투르크를 공격하는 자는 그 나라가 하나로 단단히 뭉쳐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한다. 남의 반란에 기대기보다 자기 힘만 믿어야 한다. 하지만 일단 투르크를 전장에서 철저히 꺾어 군대를 재건할 수 없게 만들고 나면, 두려워할 것은 그 군주의 가문뿐이다. 그 가문만 없애면 더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백성에게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복자가 승리 전에는 그들에게 기대지 않았던 것처럼, 승리 후에도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프랑스 같은 나라는 다르다. 그 나라에는 불만을 품은 귀족이 늘 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일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은 앞서 말한 이유로 외부 세력에게 길을 열어주고, 승리를 쉽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나라를 붙들어두려 하면, 끝없는 어려움이 생긴다. 자신을 도와준 자들과 자신이 짓눌러버린 자들 모두가 문제가 된다. 예전 군주의 가문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살아남은 귀족들이 다시 새로운 반대 세력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모두 없애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기회만 오면 그 나라는 곧 다시 흔들리게 된다.
다리우스의 지배 구조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투르크의 나라와 매우 비슷했다. 그러니 알렉산드로스는 먼저 전장에서 다리우스를 꺾고, 그다음 영토를 장악하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승리 뒤 다리우스가 죽자, 그 나라는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에게 안전하게 남았다. 후계자들만 서로 단결했더라면, 아주 평온하게 그 제국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왕국 안에서 일어난 소요는 그들 스스로 불러들인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처럼 구성된 나라에서는 그런 평온한 지배가 불가능하다. 로마가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에서 끊임없이 반란에 시달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나라들 안에는 수많은 군주국과 유력 세력이 남아 있었고, 그 기억이 살아 있는 동안 로마의 지배는 언제나 불안정했다. 그러나 제국의 힘이 오래 지속되자, 옛 지배자들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사라졌고, 그제야 로마는 안정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로마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졌을 때도, 각자는 자신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을 자기편으로 묶을 수 있었다. 이전 군주의 혈통은 이미 사라졌고, 사람들은 로마인 외에는 다른 지배자를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왜 그렇게 쉽게 아시아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반대로 피로스나 다른 정복자들이 왜 그토록 힘겹게 새 영토를 지키려 했는지 더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차이는 정복자의 능력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정복당한 나라의 구성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제5장 — 병합되기 전에 자기 법과 자유 아래 살아가던 도시나 군주국을 통치하는 방법
이처럼 원래 자기 법 아래 자유롭게 살아오던 나라를 손에 넣었을 때, 그것을 지배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파괴해 버리는 것, 둘째는 군주가 직접 그곳에 가서 사는 것, 셋째는 그들의 법은 그대로 두고 조공만 받으면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소수 지배층을 세워 통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정권은 군주가 세워준 덕분에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군주의 우정과 보호 없이 버틸 수 없다는 점을 잘 안다. 그래서 힘을 다해 군주를 떠받든다. 자유에 익숙한 도시를 붙들어두려면, 다른 어떤 방식보다도 그 도시 사람들 자신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스파르타와 로마가 좋은 사례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테베에 과두정을 세워 지배했지만 결국 그 도시들을 잃었다. 반면 로마는 카푸아, 카르타고, 누만티아를 철저히 파괴했고, 그래서 잃지 않았다. 로마는 한때 스파르타처럼 그리스를 자유롭게 두고 자체 법도 허용한 채 지배하려 했지만, 그 방식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 나라의 여러 도시를 무너뜨려야만 했다. 사실 자유롭게 살아온 도시를 안전하게 지배하는 방법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 말고는 거의 없다. 자유를 누리던 도시를 차지해 놓고도 없애버리지 않는 자는, 언젠가 그 도시에 의해 파멸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도시는 반란을 일으킬 때마다 언제나 ‘자유’와 ‘옛 권리’를 구호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시간도, 은혜도 그것을 잊게 만들지 못한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대비를 하든, 그들을 흩어놓거나 갈라놓지 않는 한 그 이름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기회만 오면 그들은 곧바로 그것을 되살린다. 피사가 피렌체의 지배를 백 년이나 받았는데도 결국 다시 들고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도시나 나라가 원래 군주의 지배 아래 살아왔고, 그 가문만 끊어지면 상황은 다르다. 한편으로는 복종에 익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전 군주를 잃었기 때문에, 그들끼리 새 지배자를 세우는 데 쉽게 뜻을 모으지 못한다. 스스로 통치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무기를 들지 못하고, 군주는 그런 나라를 훨씬 더 손쉽게 자기 편으로 만들고 붙들어둘 수 있다. 그러나 공화국은 다르다. 그 안에는 더 강한 생명력과 더 깊은 증오, 더 끈질긴 복수심이 살아 있다. 그래서 옛 자유의 기억이 결코 잠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곳을 안전하게 다스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파괴하거나 직접 가서 사는 것이다.
제6장 — 자신의 무력과 역량으로 획득한 신생 군주국에 대하여
이제 완전히 새로운 군주국을 말하려 하면서 위대한 군주와 국가의 사례를 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사람은 거의 언제나 남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고, 남이 이룬 일을 본받으려 한다. 비록 그 길을 그대로 밟을 수는 없고, 모범으로 삼은 이들의 힘에 완전히 도달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늘 위대한 인물들이 걸어간 길을 따르고, 가장 뛰어난 이들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 역량이 그들만큼 크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향기만큼은 닿게 해야 한다. 훌륭한 궁수가 과녁이 너무 멀리 있을 때 활의 힘이 닿는 한계를 알면서도 과녁보다 훨씬 높이 겨누는 것과 같다. 그 높이까지 화살을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높이 겨눔으로써 원하는 지점에 맞히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새로운 군주국에서, 새로운 군주가 나라를 지키는 일이 쉬운지 어려운지는 그 나라를 차지한 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큰가에 달려 있다. 본래 평민의 처지에서 군주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에게 능력이나 행운이 있었다는 뜻이니, 이 둘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그가 겪을 어려움을 어느 정도 덜어준다. 하지만 행운에 덜 기대고 자기 힘에 더 의지한 사람일수록 더 단단히 자리를 잡는다. 또 군주가 다른 나라를 갖고 있지 않아 그곳에 직접 머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그것 역시 통치에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제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을 보자. 가장 뛰어난 본보기는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 같은 인물들이다. 물론 모세는 신의 뜻을 집행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은 자리에 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과 대화할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키루스나 그 밖에 나라를 세우고 차지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모두 감탄할 만하다.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과 삶을 들여다보면, 모세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비록 모세에게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행동을 자세히 보면, 그들이 행운에서 받은 것은 기껏해야 기회뿐이었다. 그 기회가 있어야 그들은 자기 생각에 가장 알맞은 형태로 재료를 빚을 수 있었다.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의 역량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역량이 없었다면 기회 또한 헛되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억눌려 있는 상황이 필요했다. 그래야 그들이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세를 따를 마음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물루스에게는 알바에 머물지 못하고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야 로마의 왕이자 나라의 창건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키루스에게는 페르시아인이 메디아인의 지배에 싫증을 내고, 메디아인들이 오랜 평화 속에서 나약해진 상황이 필요했다. 테세우스도 아테네인이 흩어져 있지 않았다면 자기 역량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기회들이 그들을 행운아로 만들었고, 그들의 뛰어난 역량은 그 기회를 알아보고 붙잡아 자기 조국을 높이고 이름나게 만들었다.
이처럼 용기와 역량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은 나라를 차지할 때는 고생이 많지만, 일단 차지하고 나면 지키기는 쉽다. 그들이 나라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새 질서를 세우고 권력을 안전하게 굳히기 위해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새로운 제도와 방식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일보다 손대기 어렵고, 추진하기 위험하며,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은 없다. 혁신을 시도하는 사람은 구질서 아래서 이익을 누리던 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되고, 새 질서 아래서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조차도 미온적인 지지자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적거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이 법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쉽게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겪어 보기 전에는 그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적대자들은 기회만 생기면 맹렬하게 덤벼들고, 지지자들은 미지근하게 방어할 뿐이다. 결국 군주는 그들과 함께 위험에 빠진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제대로 따지려면, 이런 개혁가들이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남에게 기대야 하는 사람들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설득과 부탁에 의존해야 하는지, 아니면 힘을 쓸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전자라면 거의 언제나 실패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반대로 자기 힘에 기대고 무력을 쓸 수 있다면, 그들은 좀처럼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장한 예언자들은 모두 성공했고,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들은 모두 몰락했다. 게다가 사람들의 성향은 쉽게 바뀐다. 설득하는 일은 쉽지만, 설득된 믿음을 오래 붙들어두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더는 믿지 않게 되었을 때, 필요하면 힘으로라도 다시 믿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모세, 키루스, 테세우스, 로물루스가 무장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만든 질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프라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그랬다. 그는 새로운 질서를 세웠지만, 군중이 더는 그를 믿지 않게 되자 곧 무너졌다. 여전히 믿는 자들을 붙들 힘도, 믿지 않는 자들을 다시 믿게 만들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들은 나라를 세우는 오르막길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모든 위험이 그 길 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량이 있다면 결국 그것을 이겨낸다. 그리고 일단 그 어려움을 넘어서고, 그들의 성공을 시기하던 자들이 제거되고 나면, 그들은 존경받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강하고 안전하며 명예롭고 행복한 지위를 누리게 된다.
이 위대한 사례들에 비하면 한 단계 아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한 한 인물을 덧붙이고 싶다. 같은 종류의 다른 사례들까지 함께 대신할 만한 예로, 시라쿠사의 히에론을 들 수 있다. 그는 평민의 처지에서 시라쿠사의 군주가 되었지만, 그 역시 행운에서 받은 것은 기회뿐이었다. 억압에 시달리던 시라쿠사인들이 그를 군대의 지휘관으로 뽑았고, 그는 그 공으로 나중에 군주가 되었다. 그는 평민일 때부터 이미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를 두고 어떤 이는 “왕국만 있었더라면 이미 왕이었을 사람”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옛 군대를 없애고 새로운 군대를 만들었으며, 낡은 동맹을 버리고 새 동맹을 맺었다. 자기 군대와 자기 동맹을 갖추자, 그는 그 토대 위에 어떤 체제든 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라를 차지할 때는 큰 수고를 들였지만, 지키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제7장 — 타인의 무력이나 행운에 기대어 획득한 신생 군주국에 대하여
평민의 처지에서 순전히 행운만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올라가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데에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정상에 오를 때는 날아오르듯 쉽게 올라가지만, 정상에 도달한 뒤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의 돈이나 호의로 나라를 받는다. 다리우스가 자신의 안전과 명예를 위해 이오니아와 헬레스폰토스의 여러 도시들에 군주들을 세워둔 것처럼, 또 군인들의 타락과 부패를 발판 삼아 시민의 신분에서 황제가 된 자들이 그랬다. 이런 군주들은 자기를 끌어올려준 사람의 호의와 행운 위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둘은 가장 불안정하고 오래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지위에 걸맞은 능력도 갖추지 못한다. 원래부터 뛰어난 사람이라면 몰라도, 늘 평민으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남을 지휘하는 법을 저절로 알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편으로 충성스럽게 묶어둘 군사력도 없다.
갑자기 솟아오른 나라들은 자연에서 갑자기 자라고 빨리 커버린 것들과 비슷하다. 뿌리도, 다른 것들과의 연결도 제대로 자리 잡기 전에 커버리기 때문에, 첫 폭풍만 불어도 쉽게 쓰러진다. 물론 앞서 말했듯, 갑자기 군주가 된 사람이 워낙 뛰어나서 행운이 품 안에 던져준 것을 곧바로 붙잡아 지킬 준비를 한다면 예외는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군주가 되기 전에 쌓아두었던 토대를, 그는 군주가 된 뒤에라도 재빨리 마련해야 한다.
능력으로 군주가 되는 경우와 행운으로 군주가 되는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을 예로 들겠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와 체사레 보르자다. 프란체스코는 적절한 수단과 뛰어난 역량으로 평민의 자리에서 밀라노 공작이 되었다. 그는 수많은 불안과 고생 끝에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일단 손에 넣은 뒤에는 비교적 쉽게 지켜냈다. 반대로 발렌티노 공작이라고도 불리던 체사레 보르자는 아버지의 권세가 높을 때 나라를 얻었고, 그 권세가 기울자 그 나라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남의 무력과 행운으로 얻은 나라에 자신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두었다.
앞서 말했듯, 처음부터 토대를 갖추지 못한 사람도 뛰어난 능력이 있다면 나중에 그것을 세울 수는 있다. 다만 그 과정은 건축가에게는 고통스럽고, 건물에는 위험하다. 그래서 공작이 한 일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는 자신의 미래 권력을 위해 아주 튼튼한 기초를 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말하는 것이 결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 군주에게 이보다 더 나은 교훈을 줄 예를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계획이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운명이 유난히도 가혹하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자기 아들 공작의 세력을 키우고 싶었지만, 눈앞에도 장래에도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교황령이 아닌 나라에서 아들에게 줄 영토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교회 소유를 떼어주자니, 밀라노 공작과 베네치아가 절대 가만있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파엔차와 리미니는 이미 베네치아의 보호 아래 있었다. 더구나 이탈리아의 군사력, 특히 교황이 기대어 쓸 수 있는 군사력은 모두 교황의 세속 권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세력의 손에 있었다. 곧 오르시니 가문과 콜론나 가문, 그리고 그 추종자들이었다. 그러니 교황은 이 구도를 뒤흔들고 강국들끼리 충돌하게 만들어, 그 틈에서 일부 영토를 안전하게 차지해야 했다. 다행히도 그 일은 쉬웠다. 베네치아가 다른 이유로 프랑스를 다시 이탈리아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 일을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 왕의 기존 혼인을 무효로 만들어 주며 오히려 더 쉽게 길을 터주었다. 그렇게 해서 프랑스 왕은 베네치아의 지원과 교황의 동의 아래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그가 밀라노에 도착하자마자 교황은 로마냐를 공격할 병력을 그에게서 받아냈고, 로마냐는 프랑스 왕의 위세에 눌려 넘어갔다.
이렇게 공작은 로마냐를 얻고 콜론나 세력을 꺾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려 하자 두 가지 문제가 그를 가로막았다. 하나는 자기 군대가 아직 완전히 자기 편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태도였다.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오르시니 세력이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고 의심했다. 그들이 더 많은 정복을 방해할 뿐 아니라, 이미 얻은 땅마저 빼앗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또 프랑스 왕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오르시니에 대한 불안은 그가 파엔차를 차지한 뒤 볼로냐를 공격했을 때 드러났다. 그들은 그 공격에 너무도 미온적으로 움직였다. 프랑스 왕의 속내도 분명해졌다. 공작이 우르비노 공국을 손에 넣은 뒤 토스카나를 노리자, 왕이 직접 나서서 그 일을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작은 더 이상 남의 무력이나 남의 행운에 기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로마에서 오르시니와 콜론나 양파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그 두 가문에 속한 귀족들을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여 자기 신하로 만들었다. 충분한 급여를 주고, 신분에 걸맞은 직책과 지휘권도 맡겼다. 그 결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 그들의 파벌 충성심은 사라지고 공작 한 사람에게로 완전히 쏠렸다. 그다음 그는 오르시니를 짓누를 기회를 기다렸다. 콜론나 가문의 세력을 흩어놓은 뒤였기 때문에, 그 기회는 곧 찾아왔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르시니는 공작과 교회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결국 자신들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페루자 근처 마조네에서 회합을 열었다. 그 결과 우르비노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로마냐 곳곳에서도 소요가 번졌으며, 공작은 끝없는 위험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의 도움으로 이 위기를 극복했다.
권위를 회복한 뒤에도 공작은 프랑스나 다른 외부 세력을 믿고 위험을 남겨두려 하지 않았다. 그는 계략에 의지했다. 그리고 자기 속내를 감추는 데 워낙 능숙해서, 시뇨르 파올로를 매개로 오르시니와 화해를 이끌어냈다. 돈도 주고, 옷도 주고, 말도 주며 온갖 정성을 다한 끝에 말이다. 결국 오르시니는 순진하게도 시니갈리아에서 그의 손아귀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그 추종자들까지 자기 편으로 돌려놓았다. 그 결과 로마냐 전체와 우르비노 공국을 손에 넣은 채, 권력의 토대를 꽤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게다가 백성은 점점 질서와 안정을 체감하면서 공작에게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점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고, 다른 이들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므로 나는 빠뜨리지 않겠다.
공작이 로마냐를 차지했을 때, 그곳은 힘없고 무능한 지배자들의 손에 있었다. 그들은 백성을 다스리기보다 수탈했고, 결속보다 분열의 원인을 더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온 나라가 약탈과 분쟁, 온갖 폭력으로 가득했다. 공작은 질서와 복종을 되찾으려면 강력한 통치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재빠르고 잔혹한 성품의 라미로 도르코를 그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에게 전권을 주었다. 라미로는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성과를 내며 평화와 질서를 회복했다. 하지만 공작은 그런 막강한 권력을 오래 한 사람에게 맡겨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보았다. 그가 미움을 한몸에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재판장을 수장으로 세운 법정을 그 지역에 설치하고, 각 도시가 스스로 대변인을 두게 했다. 그리고 과거의 가혹함 때문에 생긴 미움을 자기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모든 잔혹함이 자기 뜻이 아니라 그 관리의 타고난 엄격함 때문이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아침, 라미로를 체세나 광장 한가운데 목과 함께 피 묻은 칼을 곁에 둔 채 처형해 버렸다. 그 잔혹한 장면은 백성에게 단번에 만족과 공포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무렵 공작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추었고, 자기 방식으로 무장함으로써 눈앞의 위험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 또 정복을 더 밀고 나갈 경우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주변 세력도 상당 부분 눌러두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프랑스였다. 그는 왕이 자기 실수를 너무 늦게 깨달았고, 더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동맹을 찾아 나섰고, 스페인이 가에타를 포위한 채 나폴리 왕국을 두고 싸우는 동안에는 프랑스와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양쪽 모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알렉산데르가 더 오래 살았다면, 그는 아마 아주 빠르게 이 목표를 이뤘을 것이다.
이것이 눈앞의 현실에 대해 공작이 취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장래를 생각하면, 그는 무엇보다 다음 교황이 자기 편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했다. 알렉산데르가 자신에게 안겨준 것들을 새 교황이 도로 빼앗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네 가지 길을 택했다. 첫째, 자신이 영지를 빼앗은 옛 영주들의 가문을 없애서, 교황이 개입할 구실 자체를 없애는 것. 둘째, 로마의 모든 귀족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그들의 힘으로 교황을 견제하는 것. 셋째, 추기경단 전체를 자기 쪽으로 더 끌어오는 것. 넷째, 교황이 죽기 전에 스스로 엄청난 힘을 쌓아, 첫 충격 정도는 자기 힘만으로도 견뎌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알렉산데르가 죽을 무렵, 공작은 이 네 가지 가운데 세 가지를 이미 이뤄냈다. 그는 손에 닿는 한 많은 옛 영주 가문을 죽였고, 살아남은 자는 얼마 없었다. 로마 귀족도 자기 편으로 만들었고, 추기경단 안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차지했다. 새로 정복할 영토와 관련해서는 토스카나의 주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미 페루자와 피옴비노를 차지했고, 피사도 그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는 프랑스 눈치를 볼 필요도 거의 없었다. 프랑스는 이미 스페인에게 밀려 나폴리 왕국에서 밀려났고, 양쪽 모두 공작의 호의를 사려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피사를 덮쳤다. 이어 루카와 시에나도, 피렌체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 때문에 곧장 그에게 기울었다. 알렉산데르가 죽던 해에도 이 상승세가 이어졌다면, 피렌체는 손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힘과 명성을 쌓아, 더는 남의 운이나 남의 군사력에 기대지 않고 자기 힘과 자기 역량만으로 설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산데르는 공작이 처음 칼을 뽑은 지 겨우 다섯 해 만에 죽었다. 그는 공작에게 로마냐만 겨우 굳혀진 상태로 남겨두었을 뿐, 그 밖의 것은 모두 허공에 떠 있었다. 게다가 공작은 두 강한 적군 사이에 끼어 있었고, 자신도 죽을병에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대담함과 능력이 있었고, 사람을 어떻게 자기편으로 만들고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짧은 시간 안에 닦아놓은 토대 또한 매우 단단했다. 만약 등에 적군이 붙어 있지 않았거나, 몸이 건강했다면 그는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기반이 얼마나 견고했는지는 이후의 일들이 보여준다. 로마냐는 한 달이 넘도록 그를 기다렸고, 그는 반쯤 죽은 몸으로도 로마에서 안전을 지켰다. 발리오니, 비텔리, 오르시니가 로마에 들어올 수는 있었지만, 그를 상대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자기가 원하는 인물을 교황으로 만들 수는 없었어도, 적어도 자기가 원치 않는 사람이 선출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만약 알렉산데르가 죽을 당시 그가 건강하기만 했어도 모든 것은 달라졌을 것이다. 율리우스 2세가 선출되던 날,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나는 미리 생각했고, 그에 대한 대비도 다 해두었다. 다만 그때 내 자신이 죽을 지경에 이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공작의 모든 행동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를 비난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오히려 앞서 말했듯, 남의 행운이나 남의 무력으로 권력을 얻게 된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로 제시해야 할 인물로 보인다. 그는 뜻이 높고 시야가 멀었기에, 달리 행동할 수도 없었다. 오직 알렉산데르의 짧은 생애와 공작 자신의 병만이 그의 계획을 가로막았다. 그러므로 새로운 군주국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 친구를 얻고, 힘이든 계략이든 써서 적을 꺾고, 백성에게 사랑과 두려움을 함께 불러일으키고, 병사들에게 존경받고 따르게 만들고, 자기를 해칠 힘이나 이유가 있는 자들을 제거하고, 낡은 질서를 새 질서로 바꾸고, 엄격할 때는 엄격하고 너그러울 때는 너그러우며, 위엄과 관대함을 함께 지니고, 믿을 수 없는 군대를 없애고 새 군대를 만들며, 왕과 군주들과의 우정을 잘 유지해 그들이 기꺼이 도우면서도 함부로 해치지는 못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이 사람보다 더 생생한 본보기는 찾기 어렵다.
그에게 비난받을 점이 있다면, 오직 율리우스 2세를 교황으로 뽑는 선택을 잘못한 일뿐이다. 앞서 말했듯, 자기가 원하는 인물을 교황으로 만들 수 없었다면, 적어도 원치 않는 인물이 되는 것만큼은 막았어야 했다. 특히 자기가 상처를 입힌 추기경, 혹은 교황이 되면 자신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는 추기경이 선출되는 일은 결코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은 두려움이나 증오 때문에 남을 해친다. 그가 상처를 준 인물 가운데는 산 피에트로 아드 빈쿨라, 콜론나, 산 조르조, 아스카니오 등이 있었다. 나머지 이들 역시 교황이 되면 그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루앙과 스페인 계열 추기경은 예외였다. 스페인 계열은 혈연과 의무 때문이었고, 루앙은 프랑스 왕국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러니 무엇보다 그는 스페인 출신 교황을 세우려 했어야 하고, 그것이 안 되면 적어도 루앙을 택했어야 했다. 산 피에트로 아드 빈쿨라를 택해서는 안 됐다. 새 은혜를 베풀면 오래된 원한을 잊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공작은 바로 이 선택에서 실수했고, 그것이 결국 그의 최후를 불러왔다.
제8장 — 악행으로 군주국을 차지한 자들에 대하여
평민의 신분에서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길 가운데에는, 행운이나 역량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 가지 길이 더 있다. 공화국을 논할 때 더 길게 다룰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하나는 악하고 사악한 수단으로 군주국을 차지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한 시민이 자기 나라의 군주가 되는 경우다. 먼저 첫 번째 경우를 두 개의 사례로 설명하겠다. 하나는 옛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시대의 사례다. 더 길게 말하지 않더라도, 이 두 사례만으로도 그런 길을 따라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충분한 교훈이 될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 아가토클레스는 평민일 뿐 아니라, 아주 천하고 비천한 처지에서 시라쿠사의 왕이 되었다. 도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삶의 모든 굴곡 속에서도 늘 악명 높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추악한 삶과는 별개로, 그는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군인의 길에 몸을 던졌고, 계급을 차례로 밟아 올라 결국 시라쿠사의 최고 집정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 지위에 오른 뒤 그는 남에게 빚지지 않고, 시민들의 동의로 맡겨진 권한을 폭력으로 자기 권력으로 바꾸어 군주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시칠리아에서 군대를 이끌고 싸우던 카르타고의 하밀카르와 손을 잡았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마치 공화국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처럼 시라쿠사의 시민과 원로원을 소집했다. 그리고 미리 정한 신호에 따라 병사들이 원로원 의원들과 가장 부유한 시민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렇게 장애물이 사라지자, 그는 도시 안에 큰 소요 하나 없이 권력을 잡고 유지했다. 카르타고에게 두 번이나 패하고 마침내 포위까지 당했지만, 그는 도시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병력 일부를 수비에 남겨둔 채 나머지를 이끌고 아프리카를 공격했다. 그 결과 짧은 시간 안에 시라쿠사에 대한 포위를 풀 수 있었다. 카르타고는 궁지에 몰려 아가토클레스와 협상해야 했고, 시칠리아는 그에게 넘겨준 채 아프리카만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사람의 행위와 능력을 함께 살펴보면, 그가 이룬 일 가운데 행운의 몫으로 돌릴 것은 거의 없다. 앞서 본 것처럼 그는 누군가의 호의가 아니라 군인의 길을 한 단계씩 밟으며 올라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생과 위험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얻은 권력은 또 다른 위험 속에서도 대담하게 붙들고 지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속이고, 신의와 자비와 종교심을 버린 일을 능력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런 수단으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어도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용기,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는 대범함만 놓고 보면, 왜 그를 뛰어난 장군들보다 못하다고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의 잔혹한 야만성과 비인간성, 끝없는 악행은 그를 가장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넣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이룬 것은 행운의 덕도, 참된 덕성의 덕도 아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알렉산데르 6세 시대의 페르모 사람 올리베로토다. 그는 오래전에 부모를 잃고 외삼촌 조반니 포리아니의 손에서 자랐다. 젊은 시절 그는 군인의 길에서 출세하기 위해 파올로 비텔리 휘하로 보내졌다. 파올로가 죽은 뒤에는 그의 형 비텔로초 밑에서 싸웠고, 재빠른 두뇌와 강인한 몸과 정신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그 분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남 밑에서 일하는 삶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페르모 시민 가운데 자기 조국의 자유보다 예속을 더 좋아하던 몇몇 사람과 비텔리 가문의 도움을 받아, 페르모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조반니 포리아니에게 편지를 써서, 여러 해 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으니 이제는 외삼촌과 고향을 찾아가 보고 싶다고 했다. 자기 재산도 어느 정도 살펴보고 싶다고 했다. 또 자신이 오직 명예만을 좇아 살아왔지만, 시민들에게 괜히 세월만 허비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체면을 갖추어 백 명의 기병과 함께 가겠다고 했다. 친구와 부하들을 데리고 말이다. 그리고 페르모 시민들이 자신을 정중히 맞아주도록 손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이 자기 명예일 뿐 아니라, 자기를 길러준 외삼촌의 명예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조반니는 조카를 위해 할 수 있는 예우를 다했고, 페르모 시민들도 그를 성대하게 맞이했다. 또 자기 집에 머물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악한 계획을 실행할 준비가 끝나자, 올리베로토는 성대한 연회를 열어 조반니 포리아니와 페르모의 유력자들을 불러 모았다. 음식과 잔치의 즐길 거리가 다 끝나자, 그는 교황 알렉산데르와 그의 아들 체사레의 위대함과 그들이 벌이는 일들에 대한 गंभीर한 대화를 교묘하게 꺼냈다. 조반니와 다른 이들도 그 말에 응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일어나, 이런 이야기는 좀 더 은밀한 곳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며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조반니와 나머지 시민들도 뒤따라 그 방에 들어갔다.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숨어 있던 병사들이 튀어나와 조반니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 살인이 끝나자 올리베로토는 곧바로 말에 올라타 시내를 돌아다니며 궁 안의 최고 행정관을 포위했다. 겁에 질린 시민들은 그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직접 군주가 되는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그는 자신을 해칠 만한 불만 세력을 모두 죽였고, 새로운 민정 제도와 군사 제도를 마련해 권력을 굳혔다. 그래서 그가 군주국을 지배한 1년 동안, 그는 페르모 안에서 안전했을 뿐 아니라 주변 나라들까지 두려워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다. 만약 그가 시니갈리아에서 체사레 보르자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그를 무너뜨리기는 아가토클레스를 무너뜨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는 오르시니와 비텔리와 함께 체사레에게 붙잡혔다. 그렇게 아버지뻘 되는 친족을 죽인 지 겨우 1년 만에, 그는 자신의 악과 용맹을 함께 나누던 비텔로초와 함께 목이 졸려 죽었다.
여기서 어떤 이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아가토클레스 같은 자는 그렇게 숱한 배신과 잔혹함을 저지르고도 오랫동안 자기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며 외적을 막아냈는데, 왜 많은 다른 사람들은 잔혹한 수단을 써서도 평화로운 시기조차 나라를 붙들지 못했고, 더구나 전쟁 같은 불안한 때에는 더더욱 실패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 까닭이 잔혹함을 쓰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나쁘지만 그나마 ‘잘 쓴’ 잔혹함이 있고, 나쁘게 쓴 잔혹함이 있다. 나쁜 것을 두고 잘 썼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권력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악행을 한 번에 몰아서 저지르고, 그 뒤에는 반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백성의 이익으로 돌리는 경우다. 반대로 처음에는 적어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지 않고 더 늘어나는 잔혹함은 나쁘게 쓴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을 택한 사람은, 아가토클레스가 그랬듯, 하늘이나 인간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자신의 통치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방식을 따르는 사람은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빼앗는 자는, 자신이 가해야 할 해악이 정확히 무엇인지 냉정하게 따져본 다음, 그것을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매일같이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지 않고, 이후에는 은혜를 베풀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달리 우유부단하거나 잘못된 조언에 끌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는, 늘 손에 칼을 쥐고 살아야 한다. 그런 군주는 백성을 믿을 수도 없고, 백성도 계속되는 상처와 반복되는 억압 때문에 그에게 마음을 붙일 수 없다. 상처는 한꺼번에 주어야 덜 아프고, 은혜는 조금씩 나누어야 더 오래 기억된다.
무엇보다 군주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뜻밖의 사태가 닥쳤을 때 그 때문에 자신의 태도를 바꾸게 되는 일이 없도록, 평소부터 백성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혼란의 시기에 그런 필요가 생기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그때는 엄하게 굴어도 효과가 없고, 너그러이 대해도 도움 되지 않는다. 그런 온화함은 억지로 나온 것으로 보일 뿐이고, 누구도 그것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제9장 — 시민적 군주국에 대하여
이제 다른 경우를 보자. 어떤 유력한 시민이 악행이나 참을 수 없는 폭력이 아니라, 자기 동료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자기 나라의 군주가 되는 경우다. 이것은 시민적 군주국이라 부를 수 있다.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꼭 비범한 능력이나 큰 행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눈치와 영리함이 더 필요하다. 이런 군주국은 백성의 지지로 생기기도 하고, 귀족의 지지로 생기기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도시에는 언제나 이 둘이 있기 때문이다. 백성은 귀족에게 지배당하거나 억압당하고 싶어 하지 않고, 귀족은 백성을 지배하고 억누르려 한다. 이 상반된 욕망이 부딪히면, 도시는 셋 가운데 하나의 결과를 낳는다. 군주국이 생기거나, 자유로운 자치가 생기거나, 무질서가 생긴다.
군주국은 백성이 만들기도 하고 귀족이 만들기도 한다. 어느 쪽이 기회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 귀족은 자신들만으로는 백성을 억누를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치켜세우고 그를 군주로 만든다. 그의 그늘 아래서 자기 야심을 펼치기 위해서다. 반대로 백성은 귀족에게 맞설 수 없다고 느끼면,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떠받들어 그를 군주로 만든다. 그의 권위로 보호받기 위해서다. 귀족의 힘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백성의 힘으로 군주가 된 사람보다 자리를 지키기가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귀족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은 군주는 자기 주위에 스스로를 자기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두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대로 다스리거나 부리기가 어렵다. 반면 백성의 지지로 군주가 된 사람은 혼자 우뚝 서 있으며, 곁에 있어도 쉽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자는 거의 없다.
게다가 귀족은 남을 억누르려 하기 때문에, 아무리 공정하게 행동해도 그들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는 어렵다. 그러나 백성은 단지 억압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므로, 그들의 요구는 훨씬 더 정당하고 만족시키기도 쉽다. 또 군주는 적대적인 백성을 상대로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만들 수가 없다.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족은 수가 적으므로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다. 백성이 적대적일 때 군주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버림받는 일이다. 그러나 귀족이 적대적일 때는, 버림받는 일뿐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들고일어설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귀족은 이런 문제에서 더 멀리 내다보고 더 교묘하게 움직이며, 늘 제때 몸을 빼고 승리할 것 같은 쪽에 붙어 자기 이익을 챙긴다. 더구나 군주는 언제나 같은 백성과 함께 살아야 하지만, 귀족은 매일 새로 만들고 없앨 수 있으므로 굳이 같은 사람들과 계속 살 필요가 없다. 권한을 주었다가 빼앗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점을 더 분명히 하자면, 귀족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 보아야 한다. 하나는 자기 운명을 철저히 군주의 운명과 묶는 사람들,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운명을 군주의 운명과 함께 묶고, 게다가 탐욕스럽지 않은 귀족이라면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두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한 소심함이나 타고난 결기 부족 때문이라면, 그런 자들은 오히려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판단이 좋은 자들이라면 더 그렇다. 번영할 때는 그들을 써서 명예를 주고, 어려울 때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야심 때문에 군주에게 몸을 맡기지 않는 자라면, 그것은 군주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군주는 그런 자들을 경계해야 하며, 아예 드러난 적과 같은 눈으로 보아야 한다. 어려운 때가 오면 그들은 반드시 군주를 무너뜨리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지지로 군주가 된 사람은 무엇보다 백성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렵지 않다. 백성이 원하는 것은 단지 억압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과 맞서 귀족의 힘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백성을 자기편으로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그 역시, 백성을 보호 아래 두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사람은 자기를 해칠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 뜻밖의 선의를 받으면 더 강하게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은 자기 손으로 군주를 세웠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깊이 그에게 헌신하게 된다. 군주는 여러 방식으로 백성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고정된 규칙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군주에게는 백성이 우호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 속에서 그를 지켜줄 안전장치는 없다.
스파르타의 군주 나비스가 좋은 사례다. 그는 그리스 전체와 승리한 로마군의 공격을 견뎌내며 자기 조국과 권력을 지켜냈다. 이 위험을 넘기기 위해 그가 손봐야 했던 것은 소수의 반대자들뿐이었다. 백성까지 적대적이었다면 그런 정도로는 절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백성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진흙 위에 집을 짓는 셈이다”라는 낡은 격언으로 이 말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평민 한 사람이 백성에게 기대어 권력을 세우고, 적이나 관직자에게 눌렸을 때 백성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을 때에나 들어맞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나 피렌체의 조르조 스칼리처럼 자주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미 군주로 자리를 잡고, 명령할 수 있으며, 역경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다른 자질도 갖추고 있고, 결단력과 활력으로 백성 전체의 사기를 북돋우는 사람이라면, 그런 군주는 결코 백성에게 배신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기초를 아주 튼튼하게 놓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된다.
이런 군주국은 시민적 질서에서 절대 권력의 질서로 넘어갈 때 특히 위험에 처한다. 왜냐하면 이런 군주들은 직접 다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관리들을 통해 다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그들의 권력은 더 약하고 더 불안하다. 정권의 운명이 전적으로 그 관리로 임명된 시민들의 호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그 관리들이 음모나 공공연한 반항만으로도 정권을 아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반면 군주는 그런 소요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발휘할 기회를 잡기 어렵다. 시민과 백성이 평소에 관리의 명령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혼란의 때에 군주 자신의 명령에는 쉽게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태로운 시기에는 정말 भरोसा할 만한 사람이 늘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런 군주는 평온한 시기의 모습만 보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평소에는 시민들이 국가를 필요로 하니 모두 그와 뜻을 같이하고, 누구나 충성을 맹세하며, 죽음이 멀리 있을 때는 누구나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 곧 국가가 시민을 필요로 하게 되는 순간, 실제로 남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런 실험은 한 번밖에 해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그러니 현명한 군주라면, 시민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국가와 군주 자신을 필요로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는 늘 그들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제10장 — 모든 군주국의 힘은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야 하는가
이런 군주국의 성격을 따질 때는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군주가 위급한 때 자기 힘만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언제나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가 하는 문제다. 이를 분명히 하자면, 나는 병력이나 재물이 충분해서 누가 공격해 오더라도 맞서 싸울 만한 군대를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자기 힘으로 버틸 수 있는 군주라고 본다. 반대로 들판에서 적과 맞서기보다는 성벽 뒤로 숨어 방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남의 도움을 늘 필요로 하는 군주라고 본다. 첫 번째 경우는 앞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했지만, 필요하면 다시 말하겠다. 두 번째 경우에 대해서는 한 가지 조언만 할 수 있다. 그런 군주는 자기 도시를 잘 보급하고 튼튼하게 요새화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시골 전체를 지키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 도시를 잘 요새화해 두고, 앞서 말했듯 백성에 관한 다른 일들도 잘 처리해 둔 군주는, 아주 큰 주의 없이 공격받는 일이 거의 없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어려움이 있는 일은 본능적으로 꺼리기 때문이다. 도시가 튼튼하고, 백성의 미움을 사지 않은 군주를 공격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게 된다.
독일의 여러 자유도시가 그 좋은 사례다. 그들은 주변 영토는 많지 않지만, 필요할 때만 황제에게 복종하며, 황제나 주변의 어떤 강국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벽과 해자와 포병이 잘 갖춰져 있어, 누구나 그런 도시를 공격으로 함락시키는 일은 오래 걸리고 어려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늘 공공 창고에 1년 동안 먹고 마시고 싸울 수 있는 물자를 비축해 둔다. 그뿐 아니라, 백성의 생계와 도시의 힘이 되는 공공사업을 끊임없이 마련해 사람들에게 일을 준다. 그래서 백성이 손해를 보지 않고도 도시 안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다. 게다가 군사훈련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규정도 여럿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도시가 튼튼하고 백성의 미움만 사지 않는 군주라면, 쉽게 공격받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 공격하더라도, 결국 수치를 당하고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세상일은 너무도 잘 바뀌기 때문에, 누군가가 군대를 1년 내내 전장에 붙들어 두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군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백성이 도시 밖에 재산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불타는 모습을 보게 되면, 끝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긴 포위와 자기 이익에 대한 걱정이 생기면 군주를 잊을 것이다.” 그러나 내 대답은 이렇다. 강하고 용기 있는 군주라면, 한때는 이 불행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또 한때는 적의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며, 때로는 지나치게 성급한 백성을 슬기롭게 견제함으로써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더구나 적은 보통 도착하자마자 곧장 시골을 불태우고 파괴한다. 바로 그때가 백성의 기세가 아직 뜨겁고 방어 의지도 살아 있을 때다. 그러니 군주는 더더욱 주저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 열정이 식고 나면 이미 피해는 다 입은 뒤이고, 상처는 남았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다.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백성은 군주와 더 쉽게 하나로 묶인다. 자기 집이 불타고 재산이 파괴된 것이 군주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남에게서 받은 은혜만큼이나 자기가 베푼 희생에도 얽매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을 잘 따져보면, 현명한 군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의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두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단, 그가 그들을 계속 북돋우고 지켜내기만 한다면 말이다.
제11장 — 교회 군주국에 대하여
이제 남은 것은 교회 군주국뿐이다. 이런 군주국은 차지하기 전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일단 손에 넣고 나면 능력도 행운도 없이 유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의 오래된 제도에 의해 떠받쳐지기 때문이다. 그 힘은 너무 강하고 성격 또한 특별해서, 군주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가든 나라를 붙들어둘 수 있게 만든다. 이런 군주들만이 나라를 갖고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며, 백성을 두고도 직접 다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나라들은 방비가 없어도 빼앗기지 않고, 백성은 통치받지 않으면서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떠날 마음도 능력도 없다. 이런 군주국만이 참으로 안전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힘에 의해 유지되므로, 나는 더 말하지 않겠다. 하느님에 의해 높여지고 지켜지는 것을 인간이 함부로 논하는 것은 무례하고도 경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을 수는 있다. “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큰 세속 권력을 갖게 되었는가? 알렉산데르 이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군주들, 아니 작은 귀족과 영주들조차 교회의 세속 권력을 크게 여기지 않았는데, 이제는 프랑스 왕마저 교회를 두려워하고, 교회는 그를 이탈리아 밖으로 몰아내고 베네치아까지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이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기억해 둘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간단히 되짚어 보겠다.
프랑스 왕 샤를이 이탈리아에 들어오기 전, 이 나라는 교황, 베네치아, 나폴리 왕, 밀라노 공작, 피렌체가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 강국이 가장 신경 쓴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외국 세력이 무력을 들고 이탈리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지나치게 세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계의 대상은 교황과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를 견제하려면 다른 나라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했고, 실제로 페라라를 지킬 때 그렇게 했다. 교황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로마의 귀족 가문들을 이용했다. 오르시니와 콜론나, 두 파벌로 갈라진 이 로마 귀족들은 늘 소요를 일으킬 구실을 갖고 있었고, 교황의 눈앞에서 무기를 든 채 대치함으로써 교황권을 약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물론 때로는 식스토 같은 용감한 교황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행운도, 지혜도 그를 그런 골칫거리에서 완전히 구해내지 못했다. 교황의 짧은 재위 기간 역시 약점이었다. 교황의 평균 재위 기간인 10년 남짓한 시간 안에 한 파벌을 눌러놓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교황이 거의 콜론나를 없앨 만큼 제압했다고 해도, 그다음 교황 아래서는 다시 오르시니와 적대하는 또 다른 세력이 생겨 콜론나를 지지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교황 역시 오르시니를 완전히 꺾을 시간까지는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의 세속 권력이 늘 가볍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알렉산데르 6세가 등장했다. 그는 역대 교황 가운데서도, 돈과 무기를 함께 쥔 교황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발렌티노 공작을 앞세우고 프랑스의 이탈리아 진입을 이용해, 내가 앞에서 공작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 모든 일을 실제로 해냈다. 물론 그의 의도는 교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키우는 데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가 한 일은 교회의 위세를 키우는 데 모두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알렉산데르가 죽고 공작이 몰락한 뒤, 교회는 그가 쌓아놓은 모든 성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다음에 교황이 된 율리우스는 이미 강해진 교회를 물려받았다. 교회는 로마냐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고, 로마 귀족들은 무력해져 있었으며, 알렉산데르가 가한 타격으로 양파의 힘도 거의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알렉산데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방식으로 돈을 끌어모을 길까지 열려 있었다. 율리우스는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더 밀고 나갔다. 그는 볼로냐를 손에 넣고, 베네치아를 꺾고, 프랑스를 이탈리아에서 몰아내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성공시켰다. 더 높이 평가해야 할 점은, 그가 이 모든 것을 교회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했다는 것이다. 사적인 인물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또한 그는 오르시니와 콜론나 두 파벌을 자기가 물려받은 범위 안에 묶어두었다. 물론 그들 가운데 소요를 일으킬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두 가지를 확실히 붙들고 있었다. 하나는 교회의 위대함으로 그들을 눌러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자기편 추기경을 갖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로마 안팎의 소란은 늘 그런 추기경들 때문에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파벌이 자기 추기경을 가지게 되면 오래 잠잠히 있지 않는다. 추기경이 로마 안팎에서 파벌을 키우고, 귀족들은 그를 받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직자의 야심이 귀족들 사이에 혼란과 폭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교황 레오 10세는 아주 강력한 교황권을 물려받았다. 다른 이들이 무력으로 교황권을 키웠다면, 그가 그것을 선함과 수많은 덕으로 더욱 크고 더욱 존경받는 자리로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제12장 — 군대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용병은 어떤 존재인가
앞에서 나는 처음에 다루겠다고 한 여러 군주국의 성격을 하나씩 살펴보았고, 그것들이 좋은지 나쁜지의 원인도 어느 정도 검토했다. 또 많은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차지하고 유지하려 했는지도 말했다. 이제는 각 군주국에 속한 공격과 방어의 수단을 전반적으로 다루어야 할 차례다.
우리는 이미 군주가 기초를 잘 닦아두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모든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새 나라든 오래된 나라든 복합 국가든, 좋은 법과 좋은 군대다. 나라가 무장되어 있지 않다면 좋은 법이 있을 수 없고, 반대로 제대로 무장된 나라에는 좋은 법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니 법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두고, 나는 군대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군주가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쓰는 군대는 자기 군대이거나, 용병이거나, 원군이거나, 또는 이 둘이 섞인 혼성군이다. 그런데 용병과 원군은 쓸모없고 위험하다. 군주가 이런 군대 위에 나라를 세운다면, 그 나라는 결코 단단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그런 군대는 분열되어 있고, 야심만 크며, 규율이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아군 앞에서는 용감한 척하지만 적 앞에서는 비겁하고, 신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에 대한 신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파멸이 미뤄질 뿐이다. 평화 때는 그들에게 약탈당하고, 전쟁이 벌어지면 적에게 넘겨진다. 그들은 약간의 급료 말고는 전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그 보수만으로는 그들이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마음을 품게 만들 수 없다. 전쟁이 없을 때는 기꺼이 당신의 군사 노릇을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달아나거나 도망친다. 이를 증명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이탈리아가 무너진 까닭은 오랫동안 용병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용병들은 예전에는 서로끼리 싸울 때 제법 용감해 보였지만, 외세가 들어오자 정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프랑스 왕 샤를은 손에 분필만 들고도 이탈리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 죄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한 자는 맞는 말을 했다. 다만 그가 생각한 죄가 아니라, 내가 말한 바로 그 죄였다. 그리고 그것은 군주들의 죄였기에, 벌도 결국 군주들이 받았다.
나는 이런 군대가 얼마나 불행을 가져오는지 더 분명히 보여주고 싶다. 용병대장은 유능하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다. 유능하다면 더더욱 믿을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위대함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기 주군인 군주를 짓밟는 형태로 드러나든, 군주의 뜻과 무관하게 다른 이들을 눌러 자기 이름을 높이는 형태로 드러나든 마찬가지다. 반대로 대장이 무능하면, 군주는 너무도 익숙한 방식으로 망하게 된다.
혹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무기를 든 자라면 용병이든 아니든 어차피 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내 대답은 이렇다. 군사력을 써야 하는 주체가 군주이든 공화국이든, 군주라면 직접 현장에 나가 장군의 역할을 해야 하고, 공화국이라면 자기 시민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보낸 사람이 기대만큼 해내지 못하면 곧바로 불러들여야 하고, 유능하다면 법으로 그를 묶어 마음대로 권력을 쥐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실제 경험은, 군주와 공화국이 자기 손으로 직접 군대를 지휘할 때 가장 큰 성과를 냈고, 용병은 해악 외에는 거의 남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자기 시민으로 무장한 공화국을 시민 한 사람이 장악하는 일은, 남의 군대로 무장한 공화국을 장악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로마와 스파르타는 오랜 세월 자기 군대로 무장한 채 자유를 지켰다. 스위스인들도 완전히 무장한 채 자유를 지키고 있다.
옛 용병의 예로는 카르타고가 있다.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첫 전쟁이 끝난 뒤, 자기 용병들에게 거의 짓밟힐 뻔했다. 비록 카르타고에는 자국 시민 출신 장군들이 있었음에도 그랬다. 또 에파미논다스가 죽은 뒤, 테베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를 자기 군대의 지휘관으로 세웠고, 그는 승리를 거둔 뒤 테베의 자유를 빼앗아 버렸다.
밀라노 공작 필리포가 죽은 뒤, 밀라노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막기 위해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고용했다. 그런데 그는 카라바조 전투에서 적을 무찌른 뒤 오히려 베네치아와 손을 잡고 자기 고용주인 밀라노인들을 짓밟았다. 그의 아버지 스포르차 역시 나폴리의 조반나 여왕에게 고용되었지만, 그녀를 보호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 결과 여왕은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 아라곤 왕에게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베네치아와 피렌체는 예전에 이런 군대를 써서 영토를 넓혔지만, 그들의 장군은 스스로 군주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나라를 지켜주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피렌체는 그 점에서 우연히 행운을 얻은 것이다. 두려워해야 할 만큼 유능했던 장군들 가운데 어떤 이는 승리하지 못했고, 어떤 이는 다른 세력에게 견제당했으며, 또 어떤 이는 야심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승리하지 못한 사람 가운데 조반니 아쿠토가 있다. 그는 승리하지 못했으니 충성심을 증명할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겼다면, 피렌체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리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스포르차는 언제나 브라초 일파와 서로 견제하고 있었고, 프란체스코는 롬바르디아를 노렸으며, 브라초는 교회와 나폴리 왕국을 노렸다. 더 가까운 시기의 예를 보자. 피렌체는 매우 신중하고 유능한 사람인 파올로 비텔리를 장군으로 삼았다. 그는 평민의 자리에서 출발해 큰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피사를 함락시켰다면, 피렌체가 그와 손잡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가 적의 군대에 들어가면 피렌체는 버틸 길이 없었고, 그를 붙잡고 있으려면 결국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의 경우를 보아도, 그들이 자기 백성과 귀족, 평민을 직접 무장시켜 싸울 때는 안전하고도 영광스럽게 행동했다. 그들이 육지로 진출하기 전, 바다에서 싸우던 시절이 그랬다. 그러나 육지에서 싸우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 미덕을 버리고, 이탈리아의 풍습을 따랐다. 초기에 육지로 세력을 넓힐 때는 영토가 아직 크지 않았고 명성도 높았기 때문에 장군들을 크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카르미뇰라 시대에 이르러 세력이 커지자, 그들은 비로소 자기 실수를 맛보게 된다. 카르미뇰라는 매우 용감한 장군이었고, 그의 지휘 아래 베네치아는 밀라노 공작을 꺾었다. 그런데 동시에 그들은 그가 전쟁에 미온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있는 한 더는 승리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그를 놓아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얻은 것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를 죽여야 했다. 그 뒤로 바르톨로메오 다 베르가모, 로베르토 다 산 세베리노, 피틸리아노 백작 같은 자들이 장군이 되었는데, 그들과 함께 베네치아가 기대해야 했던 것은 이익이 아니라 손실이었다. 실제로 바이야 전투에서 그들은 한 번의 패배로, 800년 동안 애써 쌓아온 것을 거의 다 잃었다. 이런 군대로 얻는 정복은 더디고, 오래 걸리고, 보잘것없다. 반면 잃는 것은 갑작스럽고 엄청나다.
이 사례들을 통해 다시 이탈리아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용병에 의해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그 문제를 좀 더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들이 어떻게 등장했고 어떻게 세력을 키웠는지 본 뒤, 더 잘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최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황제의 권위가 약해지고, 교황의 세속 권력이 커졌으며, 나라가 더 많은 국가들로 쪼개졌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여러 대도시가 무기를 들고 귀족에 맞섰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황제가 그 귀족들을 후원했고, 귀족들은 도시를 억눌렀다. 반면 교회는 자기 세속 권위를 키우기 위해 도시 편을 들었다. 또 어떤 도시에서는 시민들 가운데서 군주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이탈리아의 일부는 교회의 손에, 일부는 공화국의 손에 들어갔다. 그런데 교회는 성직자로, 공화국은 무장에 익숙지 않은 시민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양쪽 모두 결국 외국인을 끌어다 군대로 쓰기 시작했다.
이런 군대에 처음 이름을 안겨준 사람은 로마냐 출신의 알베리고 다 코니오였다. 그의 무리에서 브라초와 스포르차 같은 인물들이 나왔고, 그들은 한 시대 동안 이탈리아의 주인 노릇을 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군사를 쥐고 흔든 장군들이 모두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용맹’이 끝내 가져온 결과는, 이탈리아가 샤를에게 짓밟히고, 루이에게 약탈당하고, 페르디난도에게 유린당하고, 스위스인에게 모욕당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처음 세운 원칙은 보병의 위신을 떨어뜨려 자기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급료로 먹고사는 처지였고 자기 영지도 없었기 때문에, 많은 병사를 유지할 수 없었다. 적은 수의 보병만으로는 권위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기병에 의존하게 되었고, 적당한 수의 기병만으로도 먹고살며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군사 2만 명이 모인 군대에서도 보병 2천 명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자신과 병사의 피로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만들어냈다. 전투에서는 적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은 뒤 몸값도 받지 않고 풀어주었고, 밤에는 성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성 안의 수비대도 야간에 적의 진영을 공격하지 않았다. 진영 둘레에 목책이나 도랑도 두르지 않았고, 겨울에는 아예 전쟁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만든 전쟁 규칙 안에서 허용된 것이었고, 말하자면 피로와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이탈리아를 예속과 치욕 속으로 끌고 갔다.
제13장 — 원군, 혼성군, 자국군에 대하여
원군은 또 다른 쓸모없는 군대다. 이것은 어떤 강력한 군주에게 지원을 요청해 보내오는 군대인데, 최근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바로 그런 예를 보여주었다. 그는 페라라 공격에서 용병의 비참한 실상을 본 뒤, 다른 방식을 택해 스페인 국왕 페르디난도와 협약을 맺고 그의 군대와 지원을 빌려 썼다. 이런 군대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잘 훈련되어 있고 유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불러들인 군주에게는 거의 언제나 해롭다. 그 군대가 패하면 함께 무너지고, 승리하면 그 군대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고대의 사례들은 이 점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이 최근 사례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다. 오직 페라라를 얻겠다는 욕심 때문에 전적으로 남의 군대 손에 몸을 맡긴 그의 선택만큼 위험한 결정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다행히도 그의 무모함은 뜻밖의 행운 덕분에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원군은 라벤나에서 패배했지만, 직후 스위스군이 나타나 승리한 적군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이는 교황 자신은 물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적의 포로도, 원군의 포로도 되지 않았다. 적은 패배했고, 원군은 스위스군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피렌체도 자기 군대가 없었기에 피사를 공격하려고 프랑스군 1만 명을 끌어들였는데, 그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큰 위험에 빠졌다. 비잔티움 황제는 이웃 나라에 맞서기 위해 터키군 1만 명을 그리스로 들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터키가 그리스를 지배하게 된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승리가 두려운 사람만이 원군을 쓴다. 용병도 해롭지만, 원군은 그보다 훨씬 더 해롭다. 원군을 쓰면 파멸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뭉쳐 있고 남에게 복종할 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용병은 당신을 무너뜨리더라도 승리한 뒤에 더 많은 시간과 더 좋은 기회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당신 손으로 조직된 군대도 아니고 당신이 뽑은 병사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용병은 비겁함 때문에 위험하고, 원군은 용맹함 때문에 위험하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늘 이런 군대를 피하고 자기 군대를 택해 왔다. 그는 남의 무력으로 승리하느니 차라리 자기 군대로 패하는 쪽을 택한다. 남의 힘으로 얻은 승리는 진짜 승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행동을 예로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공작은 처음에 프랑스군이라는 원군을 데리고 로마냐에 들어가, 그 군대로 이몰라와 포를리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그런 군대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용병을 썼고, 그쪽이 덜 위험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오르시니와 비텔리의 군대를 고용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들 역시 애매하고, 불충실하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군대를 만들었다. 이 세 종류의 군대가 얼마나 다른지는 공작의 명성이 변해 간 과정만 봐도 분명하다. 프랑스군과 오르시니·비텔리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을 때와, 오직 자기 군대만을 거느리고 자기 힘에만 의지하게 된 뒤를 비교해 보면 된다. 그의 평가는 점점 높아졌고, 아무도 그를 자기 군대를 가진 진정한 주인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는 결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사례만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히에론의 사례는 너무도 적절하므로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앞에서 말했듯, 시라쿠사 사람들이 군대 지휘권을 맡기자 그는 곧 용병대가 쓸모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지휘관들이 이탈리아의 용병대장들과 똑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수도, 그렇다고 내보낼 수도 없다고 판단한 그는 그들을 모두 토막 내 죽였다. 그 뒤로 그는 남의 군대가 아니라 자기 군대로 전쟁을 수행했다.
이와 관련해 기억해 둘 만한 구약의 한 구절도 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 골리앗에게 맞서 싸우러 나가면서, 사울이 자신을 무장시키기 위해 입혀 준 갑옷을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막상 입고 나니 도저히 자기답게 움직일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것을 벗어 던지고, 오직 물맷돌과 칼 하나만 들고 적을 마주했다. 남의 갑옷은 몸에 크거나, 몸을 짓누르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을 뿐이다.
프랑스의 샤를 7세는 행운과 능력으로 프랑스를 잉글랜드로부터 해방시킨 뒤, 나라를 자기 군대로 무장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기병과 보병의 편제를 법으로 정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루이 11세는 그 뒤 보병을 없애고 스위스 용병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실수는 뒤이은 다른 실수들과 겹쳐, 실제로 프랑스 왕국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스위스의 명성을 높여 주는 바람에 자기 군대 전체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보병은 없애 버렸고, 기병은 외국 보병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스위스군과 함께 싸우는 데 익숙해진 프랑스 기병은, 스위스 보병이 없으면 적을 꺾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는 스위스를 상대로도 버티지 못했고, 스위스가 없는 한 다른 나라를 상대로도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군은 원군과 혼성군이 섞인 꼴이 되었고, 전체적으로는 용병보다야 낫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히 좋은 군대는 결코 아니다. 실제로 프랑스 왕국은 샤를 7세가 만든 제도를 유지했더라면 무적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별 없는 지혜는 눈앞에 좋아 보이는 것에 취해, 그 안에 숨어 있는 독은 보지 못한다.
앞서 말한 열병처럼, 악이 싹틀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나라를 덮치는 악을 미리 알아보지 못하면 참으로 지혜롭다고 할 수 없는데, 그런 안목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로마 제국이 처음 약해진 원인을 따져보면, 고트족을 용병으로 들여온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부터 제국의 힘은 꺾였고, 그동안 제국에 있던 용기는 다른 자들에게로 넘어갔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겠다. 자기 군대가 없는 군주국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오히려 그 나라는 전적으로 행운에 기대어 있을 뿐이며, 역경의 때 자신을 지켜줄 힘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언제나 현명한 이들은, 자기 힘에 뿌리내리지 않은 명성이나 권력만큼 불안정하고 덧없는 것은 없다고 보았다. 자기 군대란 백성, 시민, 혹은 자기 신하로 이루어진 군대다. 그 밖의 모든 군대는 용병이거나 원군이다. 그리고 자기 군대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는, 내가 지금까지 제시한 원칙들을 곱씹어 보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와 여러 공화국과 군주들이 어떻게 무장하고 군대를 정비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그 사례들을 따르라고 권하고 싶다.
제14장 — 군주가 전쟁의 기술에 관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
군주는 전쟁과 그 제도, 훈련 외에는 다른 목적도, 다른 생각도, 다른 배움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통치자의 고유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본래 군주인 사람을 지켜줄 뿐 아니라, 평민이 군주의 자리로 올라서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반대로 군주들이 무장보다 안락함을 더 사랑할 때 나라를 잃는다는 사실도 분명히 볼 수 있다. 나라를 잃는 가장 큰 원인은 이 기술을 소홀히 하는 데 있고, 나라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은 이 기술을 익히는 데 있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군사적 능력 덕분에 평민의 신분에서 밀라노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전쟁의 고생을 피하다가 공작의 자리에서 다시 평민으로 떨어졌다. 무장을 갖추지 못한 군주가 입는 해악 가운데 하나는 경멸을 받는다는 점인데, 그것은 군주가 무엇보다 피해야 할 치욕이다. 무장한 자와 무장하지 않은 자 사이에는 균형이 있을 수 없다. 무장한 자가 기꺼이 무장하지 않은 자에게 복종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무장하지 않은 군주가 무장한 신하들 사이에서 안전하리라고 믿는 것도 어리석다. 한쪽에는 멸시가, 다른 한쪽에는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둘은 함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전쟁의 기술을 모르는 군주는, 앞서 말한 다른 불행들에 더해 병사들에게 존중받을 수도 없고 그들을 믿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군주는 전쟁 문제를 결코 생각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평화로운 때일수록 전쟁을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할 수 있다. 하나는 행동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로 하는 것이다.
행동의 면에서는 무엇보다 군대를 잘 조직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또 끊임없이 사냥을 하며 몸을 고생에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지형의 성격도 배우게 된다. 산이 어떻게 솟고, 골짜기가 어떻게 열리며, 평야가 어떻게 펼쳐지고, 강과 늪이 어떤지 몸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은 두 가지 점에서 유익하다. 첫째, 자기 나라를 더 잘 알게 되어 그것을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어떤 새로운 지역이든, 그 지형을 자기 나라에서 익힌 경험과 견주어 금세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토스카나의 산과 계곡, 평야, 강, 늪을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어떤 지역의 지형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지식이 없는 군주는 군 지휘관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적을 찾고, 진영을 잡고,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조직하고, 포위를 유리하게 진행하는 모든 일은 지형을 읽는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카이아 연맹의 군주 필로포이멘이 다른 점보다 특히 칭송받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평화로운 시기에도 전쟁 생각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다. 친구들과 산책을 나가면 늘 이렇게 묻곤 했다. “적이 저 언덕 위에 있고 우리가 이 군대와 함께 여기 있다면,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 규율을 잃지 않은 채 어떻게 그쪽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후퇴해야 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할까? 그들이 물러선다면 우리는 어떻게 पीछ아가야 할까?” 그는 길을 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전쟁 상황을 친구들에게 하나씩 던졌고, 그들의 의견을 들은 뒤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끊임없는 사색과 토론 덕분에, 실제 군대를 이끌 때도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공부의 면에서는 역사 읽기에 힘써야 한다. 위대한 인물들의 행동을 살피고, 그들이 전쟁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승리와 패배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따져, 하나는 피하고 다른 하나는 본받아야 한다. 특히 예전의 뛰어난 인물들 가운데서 자기 모범으로 삼을 누군가를 정해, 늘 그 사람의 행동과 업적을 마음에 품어 두어야 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킬레우스를 본받았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스키피오는 키루스를 본받았다. 또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삶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스키피오가 얼마나 큰 영광을 그 모방에서 얻었는지, 그리고 절제와 친절, 인간미 같은 점에서 키루스의 모범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지 알 수 있다.
현명한 군주는 이런 방식을 따라야 한다. 평화로울 때는 결코 게을러져서는 안 되며, 그 시간을 부지런히 모아두어 불운한 때에 쓸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운명이 돌아설 때에도 그것을 견뎌낼 수 있다.
제15장 —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이유들에 대하여
이제는 군주와 그 백성 및 친구들이 어떤 태도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다. 이 문제를 다룬 사람이 이미 많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쓰는 내용이 지나치게 뻔뻔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특히 이 주제를 논하면서 내가 다른 이들의 논의와 크게 갈라지는 길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의도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쓰는 데 있다. 그렇다면 상상된 진실보다 실제의 진실을 따르는 편이 훨씬 더 적절하다. 많은 사람이 지금껏 존재한 적도 없고, 실제로 본 적도 없는 공화국과 군주국을 마음속에 그려왔다. 하지만 사람이 실제로 사는 방식과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방식 사이에는 너무도 큰 거리가 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따르기보다 모두가 하는 방식만 피하려 드는 사람은, 자기 보존보다 자기 파멸을 먼저 배우게 된다. 늘 선하게만 살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를 지키려는 군주는 필요할 때 선하지 않을 줄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쓰거나 쓰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군주에 대해 사람들이 상상해 온 것들은 접어두고, 실제로 존재하는 군주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성질로 인해 평가받는다. 특히 군주는 더 그렇다. 군주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관대하다고 불리고, 어떤 이는 인색하다고 불린다. 어떤 이는 베푸는 사람으로, 어떤 이는 욕심 많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잔인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자비로운 사람으로 여겨진다. 어떤 이는 믿음을 지키는 사람으로, 어떤 이는 배신하는 사람으로, 어떤 이는 유약하고 겁 많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과감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어떤 이는 오만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방탕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절제하는 사람으로, 어떤 이는 정직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교활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완고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어떤 이는 위엄 있는 사람으로, 어떤 이는 가벼운 사람으로, 어떤 이는 종교적인 사람으로, 어떤 이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불린다.
물론 군주가 앞서 말한 모든 गुण을 다 갖추고 있다면 더없이 훌륭하겠지만, 인간의 조건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군주는 자신이 나라를 잃게 만들 수 있는 악덕만큼은 피하는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 반면 나라를 잃게 만들지 않는 악덕이라면, 가능하다면 멀리하되, 완전히 그러지 못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악덕이라는 비난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는 덕처럼 보여도 그것을 끝까지 지키면 오히려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있고, 반대로 악덕처럼 보여도 그것을 따르면 안전과 번영을 가져오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16장 — 관대함과 인색함에 대하여
이제 앞서 말한 गुण들 가운데 첫 번째로 관대함과 인색함을 이야기하겠다.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는 일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볼 만큼 관대하게 굴려고 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 현명하고 알맞은 방식으로 관대함을 실천하더라도, 그것은 대개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때문에 반대편의 오명, 곧 인색하다는 평판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서 관대하다는 이름을 얻고 싶은 군주는, 화려한 씀씀이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자기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관대하다는 평판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돈을 긁어모아야 한다. 그러면 그는 백성에게 점차 미움을 사게 되고, 가난해질수록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많은 사람에게 부담을 지우고,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는 꼴이 되니, 첫 위기만 닥쳐도 흔들리고, 첫 위험만 다가와도 무너진다. 만약 그때 가서 잘못을 깨닫고 인색한 사람처럼 보이기를 택하면, 사람들은 곧바로 그를 탐욕스러운 군주라고 욕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관대하다는 이름을 지키려다 나라 전체의 원망을 사게 된다면, 그는 그 허영을 거두고 인색하다는 평판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의 검소함 덕분에 수입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있고, 백성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며, 전쟁을 벌여도 남의 재산에 손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러면 그는 오히려 진짜 관대한 군주로 여겨질 것이다. 곧 자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못하는 무수한 사람들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고, 실제로 뭔가를 줄 수 있는 소수에게만 베풀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를 돌아보면, 큰일을 이룬 사람들 가운데 관대하다는 평판을 가졌던 자는 거의 없다. 큰일을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인색하다는 평판을 감수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교황이 되기 위해 관대한 이미지를 이용했지만, 자리에 오른 뒤에는 전쟁 자금을 모으느라 그 명성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프랑스 왕도 백성에게 특별세를 늘리지 않고 그토록 많은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오래도록 검소한 재정 운영을 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페인 국왕도 관대하다는 평판을 지키려 했다면 그토록 많은 원정을 벌일 수도, 승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약탈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가난해지거나 멸시받지 않고, 탐욕스러운 군주가 되지 않으려는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라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악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카이사르는 관대함 덕분에 제국의 자리에 올랐고, 지금도 많은 이가 관대하다는 평판 덕분에 높은 지위에 올랐거나 앞으로 오를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이렇다. 당신이 이미 군주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군주가 되는 길 위에 있는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군주가 되는 길 위에 있을 때는 관대함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군주가 되었는데도 계속 관대하려 한다면 그것은 해롭다. 카이사르 역시 로마의 지배자가 되는 길 위에 있었기 때문에 관대함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오른 뒤에도 오래 살면서 계속 그런 식으로 지출했다면, 제국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관대하다고 여겨진 군주는 많았고, 그들 가운데 자기 군대를 이끌고 큰일을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구분해서 말하겠다. 군주는 자기 재산과 백성의 재산을 쓰는가, 아니면 남의 재산을 쓰는가. 첫 번째 경우에는 절제가 필요하고, 두 번째 경우에는 최대한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 실제로 군대와 함께 진군하며 전리품과 약탈물, 몸값, 타인의 재산을 다루는 군주라면, 그런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사들이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자기 것이나 자기 백성의 것이 아닌 재산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후하게 줄 수 있다. 키루스, 카이사르, 알렉산드로스가 모두 그랬다. 남의 재산을 써서 관대하게 구는 것은 오히려 당신의 명성을 깎지 않고 높여 준다. 해를 입는 것은 당신 자신뿐이다. 주는 행위만큼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은 없다. 계속 베풀수록 베풀 힘은 사라지고, 결국 가난하고 멸시받게 되거나, 그 가난을 피하려다 약탈자와 탐욕스러운 자로 보이게 된다. 군주가 무엇보다 피해야 하는 것은 멸시와 증오를 사는 일인데, 지나친 관대함은 그 둘 가운데 하나로 반드시 이끈다.
따라서 관대하다는 명성을 좇다가 오히려 악명을 뒤집어쓰느니, 차라리 인색하다는 평판을 감수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다. 그런 평판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주지 않지만, 관대함 때문에 생기는 악명은 수치와 미움을 함께 가져오기 때문이다.
제17장 — 잔혹함과 자비, 그리고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은가
앞서 말한 다른 गुण들에 이어, 모든 군주는 잔인하다는 평판이 아니라 자비롭다는 평판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해야겠다. 그러나 자비를 잘못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체사레 보르자는 잔인한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그의 그 잔혹함은 로마냐를 정돈하고, 통합시키고, 평화롭고 충성스럽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를 잘 생각해 보면, 그는 피렌체 사람들이 피스토이아를 망하게 내버려 둔 것보다 훨씬 더 자비로운 셈이었다. 피렌체는 잔인하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손을 놓고 있었고, 그 결과 그 도시는 분열과 살육에 시달렸다. 그러므로 군주는 백성을 하나로 묶고 충성하게 만들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는 몇 번의 본보기만으로, 지나치게 너그러워 어지러움과 약탈, 살인을 방치하는 자보다 훨씬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혼란은 언제나 공동체 전체를 해치지만, 군주가 내리는 처벌은 특정한 몇 사람만 건드리기 때문이다.
특히 신생 군주는 잔혹하다는 비난을 피하기가 더 어렵다. 새로운 국가는 온갖 위험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가 디도 여왕의 입을 빌려 말한 것도 이런 뜻이다.
“새로 세운 나라의 어려움과 위태로운 형편 때문에나는 이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고,국경을 엄하게 지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군주는 쉽게 믿지도 말고, 공연히 겁먹지도 말아야 한다. 오히려 신중함과 인간다움을 함께 지켜야 한다. 지나친 신뢰로 부주의해져서도 안 되고, 지나친 의심으로 견디기 힘든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긴다. 사랑받는 것이 더 나은가,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나은가. 답은 이렇다. 둘 다 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둘을 함께 갖추기 어렵다면,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할 때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고마움을 잘 모르고, 변덕스럽고, 거짓되며, 위험을 피하려 하고, 이익 앞에서는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들에게 혜택을 줄 때는 모두가 당신 편이다. 피와 재산, 생명과 자식까지 바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위험이 닥치면 등을 돌린다. 그러니 그들의 말만 믿고 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군주는 무너진다. 돈을 주고 사거나 평온한 시절 얻은 우정은 위기 속에서 쓸모가 없다. 그때 필요한 것은 대가를 치르고도 흔들리지 않는 결심인데, 그런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를, 자기 이익 앞에서 너무 자주 끊어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묶여 있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군주는 미움은 사지 않는 방식으로 두려움을 만들어야 한다. 사랑을 얻지 못하더라도 미움만 사지 않으면 충분히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백성과 신하들의 재산과 여자에게 손대지 않으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누군가를 죽여야 할 필요가 생기더라도, 정당한 이유와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의 재산에는 손대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유산을 빼앗긴 일을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재산을 빼앗을 명분은 언제나 쉽게 만들어지지만, 사람을 죽일 명분은 그보다 찾기 어렵고, 또 더 빨리 바닥난다.
그러나 군주가 군대를 거느리고 수많은 병사를 지휘해야 하는 경우라면, 잔혹하다는 평판을 전혀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 평판이 없으면 군대는 결코 단결하지 못하고, 전투 태세도 갖추지 못한다. 한니발의 놀라운 업적 가운데 가장 감탄할 만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그는 엄청나게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대군을 이끌고, 멀리 타국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행운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그 군대 안에서는 반란이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오직 그의 비범한 잔혹함 덕분이었다. 그의 무수한 용기와 뛰어난 재능이 그 잔혹함과 결합되어, 병사들 눈에 그를 언제나 위엄 있고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 잔혹함이 없었다면, 다른 자질만으로는 그런 효과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모자란 글쓴이들은 한편으로는 그의 업적을 찬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업적의 첫째 원인을 비난한다.
그의 다른 자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은 스키피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우리 시대는 물론 모든 역사 속에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그의 군대는 스페인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은 병사들에게 지나치게 큰 자유를 준 탓이었다. 그는 군사 규율에 어울리는 것 이상으로 온화했다. 그래서 원로원 안에서 파비우스 막시무스에게 그 일로 비난을 받았고, 결국 그는 군대를 부패시키는 사람이라고까지 불렸다. 또 로크리 사람들을 자기 부하가 유린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 부하의 오만함을 벌하지 않은 것도 그의 느슨한 성품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로원에서 누군가 그를 두고 “남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보다 그냥 보고 넘기는 데 더 능한 사람”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기질이 만약 그가 계속 지휘권을 쥔 채 오래 이어졌다면, 결국 그의 명성과 영광도 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로원의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 해로운 성향은 드러나지 않은 채 오히려 그의 명성에 보탬이 되었다.
다시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의 문제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쪽에서는 덜 망설이고, 군주 뜻대로 처벌되는 쪽에서는 더 망설인다. 사랑은 의무의 끈으로 묶이지만, 인간은 사악해서 자기 이익이 끼어들면 그 끈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처벌의 공포로 묶여 있다. 다만 군주는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미움은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백성과 신하들의 재산과 여자에게 손대지 않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피를 흘려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반드시 분명한 이유와 적절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의 재산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제18장 —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켜야 하는가
군주가 약속을 지키고, 속임수 없이 정직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칭찬받는지는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경험은 이렇게 보여준다. 큰일을 해낸 군주들은 신의를 가볍게 여기고, 교묘한 꾀로 사람들의 머리를 어지럽힐 줄 알았던 이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신의에만 매달린 사람들을 넘어섰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싸우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법으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으로 싸우는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은 인간다운 것이고, 두 번째 방식은 짐승다운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두 번째 방식도 함께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인간의 방식과 짐승의 방식을 모두 쓸 줄 알아야 한다. 옛 작가들은 이 점을 은근히 가르쳤다. 그들은 아킬레우스와 다른 여러 옛 영웅들이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맡겨져 자랐다고 썼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스승 밑에서 길러졌다는 이 이야기가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군주는 두 본성을 함께 지녀야 하며, 하나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는 짐승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면, 그 가운데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 사자는 덫을 피할 줄 모르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줄 모른다. 그러니 덫을 알아차리려면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쫓아내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사자만 흉내 내는 사람은 일을 모른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자기에게 불리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않는다. 또 약속을 하게 만든 사정이 사라졌다면 더욱 그렇다. 만약 인간이 모두 선하다면 이런 가르침은 나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악하고, 당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도 그들에게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약속을 깨야 할 정당한 명분도 군주에게는 늘 널려 있다. 이 점을 뒷받침할 현대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얼마나 많은 평화협정과 약속이 군주들의 불신 때문에 무너졌고 힘을 잃었는지를 보면 된다. 그리고 여우 노릇을 가장 잘한 자가 늘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다만 군주는 이 짐승의 성질을 잘 감출 줄 알아야 한다. 위대한 위선자이자 위장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도 순진하고 그때그때의 필요에 너무도 쉽게 끌려가기 때문에, 속이려는 사람은 언제나 속아줄 누군가를 찾게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의 한 예를 굳이 숨기지 않겠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평생 속이는 일 말고는 다른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고, 언제나 속일 사람을 찾아냈다. 그보다 더 힘차게 약속을 하고, 더 강하게 맹세하고, 그 약속을 더 적게 지킨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속임수에서 성공했다. 인간의 이런 면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위에 적은 모든 좋은 गुण을 실제로 다 갖출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할 필요는 아주 크다. 나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하겠다. 실제로 그 모든 गुण을 다 지키면 해가 되지만, 갖춘 것처럼 보이면 도움이 된다. 곧 자비롭고, 신의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종교심 깊은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만 필요할 때는 반대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 군주, 특히 신생 군주는 사람들이 선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늘 지킬 수 없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신의와 자비, 인간다움, 종교심에 어긋나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운명의 바람과 사태의 변화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가능하다면 선에서 벗어나지 말되, 필요하다면 악으로 들어설 줄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군주는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गुण, 특히 마지막 덕목에 어긋나는 말이 자기 입에서 새어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를 보고, 듣고, 함께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를 온전히 자비롭고, 신의 있고, 인간적이며, 정직하고, 종교적인 사람으로 느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적이라는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은 대개 눈으로 판단하고, 손으로 만져 보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당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볼 수 있지만, 당신이 실제로 어떤지는 소수만 안다. 그 소수도 다수의 의견에 맞서지 못한다. 다수에게는 국가의 위엄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주, 특히 새 군주의 행동을 평가할 때 사람들은 결과를 본다. 그러니 군주는 이기고 나라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그 수단이 어떠했든 언제나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지고 칭찬받게 된다. 대중은 눈에 보이는 것과 결과에 끌리며, 세상은 거의 모두 대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소수는 다수가 설 자리를 잃지 않는 한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 시대의 한 군주는,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겠지만, 입만 열면 평화와 신의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둘 모두의 철저한 적이다. 만약 그가 말한 대로만 살았다면, 여러 차례 명성과 나라를 함께 잃었을 것이다.
제19장 — 경멸과 증오를 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앞에서 중요한 गुण들 가운데 대부분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간단히 일반 원칙으로 말할 수 있다. 앞서도 어느 정도 비췄지만, 군주는 무엇보다 증오와 경멸을 피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피할 수만 있다면 다른 악명은 웬만해선 문제 되지 않는다. 그것이 있어도 그는 충분히 안전하다.
증오는 무엇보다 백성과 신하들의 재산, 그리고 여자에게 손댈 때 생긴다. 사람들의 대다수는 재산과 명예만 지켜지면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군주가 맞서야 할 것은 소수의 야심뿐인데,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쉽게 눌러둘 수 있다. 반면 경멸은 군주가 변덕스럽고, 가볍고, 유약하고, 겁 많고, 결단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때 생긴다. 군주는 이런 인상을 마치 암초처럼 피해 가야 한다. 행동에서는 위엄과 용기, 진지함과 힘이 드러나야 한다. 신하들 사이의 개인적 분쟁에 대해서는 자기 판결이 번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도 그를 속이거나 농락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인상을 백성에게 심어준 군주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높은 평가를 받는 군주를 상대로는 음모를 꾸미기도 어렵고, 공격하기도 쉽지 않다. 그가 뛰어난 사람이고 자기 백성에게 존중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는 두 종류의 적이 있다. 하나는 내부의 적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적이다. 외부의 적은 좋은 군대와 좋은 동맹으로 막아야 한다. 좋은 군대가 있으면 대개 좋은 동맹도 따라온다. 그리고 외부가 평온하면, 내부도 대개 평온하다. 다만 음모가 내부를 흔들지 않는 한 그렇다. 설령 외부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군주가 제대로 살고 또 스파르타의 나비스처럼 단단한 기개를 지녔다면, 그는 버틸 수 있다.
외부의 적이 없는 평온한 때에도 군주는 은밀한 음모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매우 강한 방어책이 있다. 바로 백성에게 미움받거나 멸시받지 않는 것이다. 음모를 꾸미는 자는 늘 군주를 제거하면 백성이 만족할 것이라고 믿어야 용기를 낸다. 그런데 백성이 오히려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되면, 그런 계획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를 못 낸다. 음모가 가져오는 어려움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경험은 음모가 수없이 있었지만 성공한 것은 드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공모자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불만을 품은 사람들 말고는 아무와도 손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만 있는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 당신은 그에게 자기 살 길을 열어주는 셈이 된다. 그가 당신을 밀고하면 온갖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쪽에는 확실한 이익이 보이고 다른 한쪽에는 불확실하고 위험천만한 미래만 보이니, 아주 특별한 친구이거나 군주에 대한 극심한 증오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공모를 지켜내기 어렵다. 한마디로, 공모자 편에는 두려움과 질투, 처벌의 공포가 있지만, 군주 편에는 위엄과 법, 친구들과 국가의 힘이 있다. 여기에 백성의 호의까지 더해지면, 감히 음모를 꾸밀 배짱을 낼 사람은 거의 없다. 설령 일을 실행한 뒤에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위험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과 관련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지만, 내 아버지 시대에 벌어진 한 가지로 충분하다. 당시 볼로냐의 군주였던 안니발레 벤티볼리오의 할아버지 안니발레가 칸네스키 가문에게 살해당했을 때, 그 뒤에는 갓난아기 조반니만 남아 있었다. 사건 직후 백성이 들고일어나 칸네스키를 모두 죽였다. 그때 벤티볼리오 가문이 볼로냐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당시 그 가문에서 안니발레 사후 나라를 이을 사람이 조반니 외에는 남아 있지 않자, 볼로냐 사람들은 피렌체에 살고 있던 한 벤티볼리오 집안 출신을 찾아가 그를 군주로 세웠다. 전에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라고 여겨졌던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런 뒤 조반니가 장성할 때까지 그가 볼로냐를 다스렸다.
그러므로 군주는 백성이 자기 편으로만 남아 있다면 음모를 거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백성이 적대적이고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면, 누구든, 무슨 일이든 다 두려워해야 한다. 잘 조직된 국가와 현명한 군주는 언제나 귀족을 절망에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백성을 만족시키고 편안하게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그것이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잘 정비된 왕국 가운데 가장 훌륭한 예를 들자면 프랑스가 있다. 그 나라에는 왕의 안전을 보장하는 훌륭한 제도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고등법원과 그 권한이다. 왕국의 제도를 만든 이가 왕의 야심과 오만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억누를 재갈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동시에 백성 역시 귀족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왕이 어느 한쪽 편을 노골적으로 드는 모습을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귀족을 편들면 백성의 증오를 사고, 백성을 편들면 귀족의 반감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 자신은 비난을 피하고, 귀족은 억제하고, 백성은 보호할 수 있는 제3의 재판 기관을 세운 것이다. 왕의 안전과 왕국의 평온을 위해, 이보다 더 현명한 장치는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군주는 남의 원망을 살 만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은혜를 베푸는 일은 직접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겠다. 군주는 귀족을 존중하되, 백성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쩌면 로마 황제들의 삶과 죽음을 보면 이 말과 반대되는 사례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황제는 늘 훌륭하게 살고 큰 기개를 보였는데도 제국을 잃었고, 심지어 자기 부하들에게 살해되기까지 했다. 이런 반론에 답하기 위해, 나는 몇몇 황제의 성격을 살펴보며, 왜 그들이 몰락했는지 설명하겠다. 그 과정에서 앞서 논의한 내용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보여주겠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읽는 사람에게 눈여겨볼 만한 점들도 덧붙이겠다.
나는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막시미누스까지 이어지는 황제들, 곧 마르쿠스, 그의 아들 콤모두스, 페르티낙스, 율리아누스, 세베루스, 그의 아들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마크리누스, 헬리오가발루스, 알렉산데르, 막시미누스만 살펴보면 충분하다고 본다. 먼저 말해야 할 점은, 다른 군주국에서는 귀족의 야심과 백성의 오만만 상대하면 되지만, 로마 황제들은 여기에 더해 병사들의 잔인함과 탐욕까지 견뎌야 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너무도 어려워 많은 황제들을 파멸시켰다. 백성과 병사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백성은 평온을 사랑해서 절제된 군주를 좋아했지만, 병사들은 전쟁을 즐기고, 오만하고 잔인하며 탐욕스러운 군주를 좋아했다. 그래야 백성에게서 두 배로 돈을 뜯어내고 자기 탐욕과 잔혹함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주가 백성이나 병사들 가운데 어느 쪽에도 특별한 권위를 세우지 못하면 언제나 무너졌다. 그리고 대부분, 특히 새 군주들은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병사들 편에 섰다. 그 과정에서 백성이 다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대개 불가피했다. 군주는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더 많은 무리를 적으로 돌리는 일부터 피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가장 강한 세력의 미움은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새 군주들은 병사들에게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역시 해가 크든 작든, 어차피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마르쿠스, 페르티낙스, 알렉산데르는 절제된 삶, 정의에 대한 사랑, 잔혹함에 대한 반감, 인간다움과 선함으로 인해 모두 존경받았다. 그러나 마르쿠스만은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고 영예롭게 살다 영예롭게 죽었다. 그는 세습 황제였기에 병사나 백성 어느 쪽에도 빚진 것이 없었다. 또 많은 덕으로 존경을 받았으므로 두 집단을 각자의 자리에서 적절히 묶어둘 수 있었다. 그래서 미움도 경멸도 사지 않았다.
반대로 페르티낙스는 병사들의 뜻과는 달리 황제가 되었다. 그 병사들은 콤모두스 밑에서 방탕하게 살아온 탓에, 페르티낙스가 되살리려 한 절제된 삶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그를 미워했고, 그 미움에 새 황제라는 이유에서 오는 경멸까지 더해져 결국 초기에 살해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야 한다. 선행은 미움을 살 수도 있고, 악행도 미움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나라를 지키려는 군주는 때로는 선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떠받치는 집단이 백성이든 병사든 귀족이든, 그것이 어떤 성질이든, 군주는 그 집단의 기질에 맞추어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선행은 그때는 해가 될 수 있다.
알렉산데르에 대해서는, 그가 지나치게 선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통치한 14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재판 없이 죽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유약하고 어머니에게 휘둘리는 인물로 여겼다. 그래서 경멸이 쌓였고, 군대는 그를 업신여기다가 결국 죽여버렸다.
이제 콤모두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막시미누스의 성격을 반대로 보면, 모두 대단히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었다. 그들은 병사들을 만족시키려고 백성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을 다 썼다. 그 결과 세베루스를 빼고는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세베루스에게는 워낙 큰 역량이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우정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백성을 짓밟고도 늘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능력이 너무도 놀라워 백성과 병사들 모두를 늘 경이롭게 했기 때문이다. 백성은 겁에 질려 멍해졌고, 병사들은 존경하며 만족했다.
그의 행동은 새 군주에게 특히 본받을 만하므로, 조금 더 자세히 보겠다. 그는 여우와 사자를 모두 몸에 지닌 사람이었다. 앞서 말했듯 군주는 이 두 짐승을 함께 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베루스는 황제 율리아누스가 로마에 머무는 병사들을 속여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자, 판노니아에서 자기가 지휘하던 군대에, 페르티낙스의 죽음을 복수하러 로마로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는 제국을 노린다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했고, 출발 사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로마에 이르자 겁에 질린 원로원은 그를 황제로 선포하고 율리아누스를 죽였다.
그러나 제국을 손에 넣은 뒤에도, 그가 완전한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아시아의 니게르였고, 그는 동방의 군대를 자기 황제로 추대해 놓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서방의 알비누스였고, 그 역시 위험한 경쟁자였다. 세베루스는 이 둘 모두에게 동시에 적의를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고, 니게르를 공격하고 알비누스를 속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알비누스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는 원로원에서 황제로 선출되었으나 그 영예를 그와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카이사르 칭호를 보내고, 원로원의 결의로 동료 황제로 삼았다. 알비누스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세베루스는 니게르를 물리치고 죽인 뒤, 동방 문제를 정리하고 로마로 돌아오자마자 원로원에 호소했다. 알비누스가 자신이 베푼 은혜를 잊고 배신을 꾸몄으니, 자기를 지키기 위해 그를 처벌하러 갈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그 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알비누스의 권력과 생명을 함께 빼앗았다.
이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는 자는, 그가 얼마나 사나운 사자인 동시에 얼마나 교활한 여우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고, 군대 역시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니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이 그토록 큰 권세를 오래 유지한 것이 이상할 리 없다. 그의 뛰어난 명성은, 백성이 약탈당하더라도 병사들이 그를 미워하지 못하게 막아 주었다.
그의 아들 안토니누스 카라칼라도 매우 뛰어난 자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것은 백성의 눈에는 존경스럽고, 병사들의 눈에는 사랑스러웠다. 그는 전쟁의 고생을 잘 견디는 진짜 군인이었고, 사치스러운 음식과 모든 나약함을 경멸했기 때문에, 전 군대의 사랑을 샀다. 그러나 그의 사나움과 잔혹함은 너무도 극단적이고 전례가 없었다. 수많은 개인을 죽인 데 그치지 않고, 로마 시민의 상당수를 학살하고 알렉산드리아 시민 전체를 몰살한 뒤에는, 온 세상이 그를 증오하게 되었다. 심지어 자기 주변 사람들까지도 그를 두려워하게 되어, 결국 한 백인대장의 손에 군 한가운데서 죽고 말았다. 여기서 기억할 점이 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품는 단단한 결심에 군주는 완전히 대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은 드물기 때문에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자기 가까이에서 복무하고, 자기 몸 가까이에 늘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해를 입히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카라칼라는 바로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백인대장의 형을 치욕스럽게 죽였고, 정작 그 자신은 날마다 그를 협박하면서도 여전히 호위대에 남겨 두었다. 이는 무모한 일이었고, 결국 그를 파멸시켰다.
이제 콤모두스를 보자. 그는 마르쿠스의 아들로 세습 황제였기 때문에, 제국을 차지하는 일은 매우 쉬웠다. 그가 해야 했던 일은 그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며 병사와 백성을 만족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잔인하고 야수 같은 성품 때문에 백성에게서 더 많이 약탈하려 했고, 이를 위해 병사들을 마음껏 방탕하게 굴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편으로는 황제의 위엄을 지키지 않고 검투사처럼 경기장에 내려가며, 황제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 천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병사들 눈에도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미움을 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업신여김을 받다가 결국 공모자들에게 살해되었다.
막시미누스의 성격도 남았다. 그는 대단히 호전적인 사람이었다. 앞서 말한 알렉산데르의 유약함에 염증을 느낀 군대가 그를 황제로 추대한 것이다. 그는 오래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두 가지 일이 그를 미움과 경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하나는 그의 출신이 너무 비천했다는 점이다. 그는 트라키아에서 양을 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큰 업신여김을 샀다. 다른 하나는, 제위에 오른 직후 로마에 가지도 않고 황제로서의 위엄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로마와 다른 여러 곳에서 자기 총독들을 통해 극도의 잔혹함만 휘두르게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온 세상은 그의 비천한 출신에 대한 경멸과 야만적인 성품에 대한 증오를 함께 품게 되었다. 먼저 아프리카가 반란을 일으켰고, 이어 원로원과 로마 시민 전체, 마침내 이탈리아 전체가 그를 상대로 들고일어났다. 거기에 자기 군대마저 합세했다. 그들은 아퀼레이아를 포위하고 고생만 하다 지친 데다, 그의 잔혹함도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되었고, 그토록 많은 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는 그를 두려워하기보다 업신여기게 되었다. 결국 그를 죽인 것이다.
헬리오가발루스, 마크리누스, 율리아누스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들은 너무도 비루해져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무너졌다. 이제 이 장을 마무리하겠다. 오늘날의 군주들은, 옛 로마 황제들처럼 병사들을 지나치게 만족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오늘날에도 군대를 어느 정도 배려해야 하지만,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지금의 군대는 어떤 군주국이나 공화국의 정부 및 백성과 오래 밀착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군대는 제국의 정부와 백성에 깊이 얽혀 있었다. 그러니 그때는 백성보다 병사들을 만족시키는 편이 더 중요하고 더 불가피했다. 병사들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군주들은 오스만 술탄과 이집트의 술탄을 빼고는, 언제나 병사보다 백성을 더 만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백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내가 오스만 군주를 예외로 든 것은, 그가 1만 2천의 보병과 1만 5천의 기병을 늘 거느리고, 그 힘에 국가의 안전과 강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백성에 대한 다른 고려를 다소 접어두더라도 병사들의 우정을 지켜야 한다. 이집트의 술탄도 마찬가지다. 그는 병사들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백성에 대한 다른 고려를 뒤로하고서라도 병사들을 자기편으로 붙들어야 한다. 이집트의 술탄 국가는 교황권과 비슷한 성격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것은 새로운 군주국이라고도, 세습 군주국이라고도 보기 어렵다. 옛 술탄의 아들들이 새 군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 사람이 그 자리를 잇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래된 질서로 유지되고 있으니 새로운 군주국이라고 할 수도 없다. 새 군주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군주는 새롭지만, 국가의 제도는 오래되어 있으므로, 마치 세습 군주를 맞듯 백성은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앞서 말한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로마 황제들을 몰락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 증오와 경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들 가운데 일부는 왜 그렇게 행동하고도 살아남았고, 다른 일부는 똑같은 성향을 지니고도 망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티낙스와 알렉산데르는 새 군주였기 때문에, 세습 군주였던 마르쿠스를 흉내 내려 한 것이 쓸모없었고 오히려 해로웠다. 카라칼라, 콤모두스, 막시미누스 역시 세베루스를 본받으려 했지만, 그처럼 될 만큼의 역량이 없었기 때문에 파멸했다. 그러므로 새 군주는 세베루스의 방식을 그대로 좇아서는 안 되지만, 나라를 세우는 데 필요한 부분은 배워야 한다. 또 마르쿠스의 방식을 모두 따를 수도 없지만, 이미 굳건하고 안정된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요소는 배워야 한다.
제20장 — 군주들이 흔히 의지하는 요새와 여러 수단은 과연 이로운가 해로운가
어떤 군주는 신하를 무장시키고, 어떤 군주는 무장을 풀어 버린다. 어떤 군주는 자기가 차지한 도시들 안에 분열을 조장하고, 어떤 군주는 오히려 그 분열을 없애려 든다. 어떤 군주는 요새를 쌓고, 어떤 군주는 이미 있는 요새를 허문다. 이런 수단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개별 상황을 모두 따져보지 않고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이 문제들을 가능한 한 넓게 아우르는 방식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새로 나라를 얻은 군주가 신하의 무장을 풀어 버린 사례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런 나라를 차지한 군주는 대개 백성을 무장시켰다. 그렇게 하면 그 무력은 곧 군주의 것이 되고, 전에는 의심스러웠던 자들이 충실해지며, 충실하던 자들은 더 굳건해진다. 그 결과 단순한 신민이던 사람들도 군주의 편이 된다. 물론 백성 전체를 다 무장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부를 두텁게 대해 무장시키면, 나머지는 더 쉽게 다룰 수 있다. 특혜를 받은 자들은 자신을 군주에게 빚졌다고 느끼고, 무장하지 않은 자들은 그런 차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더 큰 위험과 의무를 떠안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백성의 무장을 풀어 버리면, 군주는 곧장 그들을 모욕하는 셈이 된다. 겁을 먹었거나 그들을 믿지 못한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감정 모두 증오를 부른다. 군주는 늘 무장한 힘에 기대어야 하는데, 자기 군대 없이 살 수는 없다. 결국 용병을 쓰게 되거나, 아니면 앞에서 말한 해악을 고스란히 안게 된다.
반대로 새로 얻은 영토를 기존 국가에 덧붙인 경우라면, 그 영토 사람들의 무장을 풀어야 한다. 다만 정복 과정에서 당신 편이 된 이들은 예외다. 그들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나약하게 만들고 흩어놓아야 하며, 나라 전체의 힘이 오직 당신 고유 영토의 병사들에게만 모이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조상들, 특히 현명하다고 여겨졌던 이들은 “피스토이아는 분열로 다스리고, 피사는 요새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배하는 일부 도시 안에서 일부러 당파 싸움을 키워 더 쉽게 통치하려 했다. 이탈리아에 어느 정도 균형이 유지되던 시절에는 이 방식이 그럭저럭 먹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것이 옳은 처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열은 결코 힘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이 오면 그런 도시는 곧장 무너진다. 약한 쪽은 언제나 외세에 기대려 하고, 강한 쪽은 홀로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자신이 강할 때 점령지 곳곳에 구엘프와 기벨린의 분열을 키웠다. 물론 그들이 실제 피를 흘리게까지는 두지 않았지만, 시민들끼리 갈라져 다투게 만들었다. 그래야 그들이 서로 다투느라 정신이 팔려 베네치아를 거스르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바이야 전투 뒤에 드러났듯, 이런 장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번 패배하자 그 도시들 가운데 일부는 곧바로 등을 돌려 버렸다. 그런 분열은 지배자의 약함을 드러낼 뿐이다. 강한 군주국은 절대로 그런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그럭저럭 유용해 보여도,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빠르게 파멸로 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군주는 새로운 시련과 적을 맞닥뜨릴수록 위대해진다는 점은 틀림없다. 그래서 운명은 새 군주가 더 큰 명성을 얻기를 바랄 때, 특히 선대의 자리를 물려받은 군주보다 더 많은 적을 그에게 붙여 준다. 그래야 그는 그들을 넘어설 기회를 갖고, 남들이 가져다준 사다리보다 더 높은 곳으로 스스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는 새 군주가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지혜로운 군주는 일부러 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을 꺾어 이름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서다.
군주들은 특히 새로 권력을 잡은 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던 사람들에게서 훨씬 더 큰 충성과 도움을 얻곤 한다. 처음부터 편들었던 자들보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유용해지는 경우가 많다. 시에나를 다스리던 판돌포 페트루치는 처음에는 의심하던 사람들에게 기대어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일반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사정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라를 얻을 때부터 적대적이었던 사람들보다, 처음에는 의심받았던 사람들이 훨씬 더 쉽게 군주의 편으로 돌아선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 태도를 고쳐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강한 필요에 이끌려 더 깊이 충성하게 된다. 군주 역시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평판을 쉽게 높일 수 있다. 원래 자신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에게서 좋은 성과를 끌어내면, 그 공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 군주는 나라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무력보다 책략에 더 많이 의존한 경우라면, 무엇보다 그 도시와 그 영토의 백성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잘 이해하려면, 아가토클레스와 올리베로토, 그리고 비슷한 길을 걸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된다.
새로 얻은 도시들, 특히 이전 국가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지 않는 곳에 가서 직접 사는 일보다 더 좋은, 더 안전한 통치 방식은 없다. 터키가 그리스에서 그렇게 했고, 그 덕분에 다른 어떤 조치를 해도 얻지 못했을 안정성을 얻었다. 군주가 직접 그 나라에 가서 살면 혼란이 생길 조짐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빨리 대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커진 뒤에야 소식을 듣게 된다. 또 관리들이 그 나라를 함부로 수탈하지 못하고, 백성은 군주에게 더 가까이 호소할 길이 있으니, 선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군주를 더 사랑하게 되고, 악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군주를 더 두려워하게 된다. 밖의 적도 그 나라를 공격하려면 훨씬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군주가 직접 그곳에 사는 한, 그 땅을 잃기는 몹시 어렵다.
이제 요새의 문제를 말해 보자. 군주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새로 차지한 영토를 더 잘 지키고, 반란이나 적의 침입에 맞설 거점과 재갈을 마련한다는 뜻에서 요새를 세워 왔다. 나는 이 관습을 칭찬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도 니콜로 비텔리가 치타 디 카스텔로를 지키기 위해 두 개의 요새를 허물게 한 일은 알고 있다. 귀도 우발도 몬테펠트로 공작도 우르비노로 돌아오자 체사레 보르자가 세운 요새를 모조리 무너뜨렸다. 그는 요새가 없을 때 오히려 나라를 다시 잃을 위험이 줄어든다고 보았다. 볼로냐의 벤티볼리오 가문도 돌아온 뒤에 같은 선택을 했다. 그러니 요새는 때로는 유익하지만, 때로는 해롭다. 요새는 이럴 때는 도움이 되지만 저럴 때는 손해가 된다.
이 문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자기 백성보다 외세를 더 두려워하는 군주는 요새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외세보다 자기 백성을 더 두려워하는 군주는 요새를 버려야 한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세운 밀라노의 성은 그 가문에 어느 무엇보다 더 큰 해를 끼쳤고, 앞으로도 더 끼칠 것이다. 따라서 최선의 요새는 백성에게 미움받지 않는 것이다. 요새를 많이 지어도 백성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백성에게 미움받는 군주를 공격하는 외세는 언제나 그들을 도울 지원군을 발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를 보더라도, 요새가 어떤 여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포를리의 백작부인만은 예외인데, 남편 지롤라모가 살해된 뒤 그 요새 덕분에 민중의 분노를 피하고, 밀라노의 도움을 기다릴 수 있었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의 국제 정세도 외세가 민중을 도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체사레 보르자가 그녀를 공격했고, 그녀를 미워하던 백성이 외세와 손을 잡자 그 요새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그때나 그 뒤나, 백성에게 미움받지 않는 편이 요새를 갖는 것보다 그녀에게 더 안전했을 것이다.
이 모든 점을 따져보면, 나는 요새를 쌓는 사람도 탓하지 않고, 쌓지 않는 사람도 탓하지 않는다. 다만 요새를 믿고 백성에게 미움받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군주는 비난할 수밖에 없다.
제21장 — 군주는 어떻게 처신해야 명성을 얻는가
군주가 위대하게 보이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로 존경받게 만드는 일 가운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큰 사업을 벌이고 자기 행동에서 보기 드문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아라곤의 페르디난도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지금의 스페인 국왕 말이다. 그를 거의 새로운 군주라 해도 무방하다. 그는 미약한 왕에서 출발해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군주가 되었다. 그가 한 일들을 보면 모두 아주 위대하거나 적어도 범상치 않다. 그는 통치 초기에 그라나다를 공격했고, 이것이 그의 국가 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평화로운 가운데, 다른 일에 방해받지 않고 그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 카스티야 귀족들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 정치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명성과 권위를 높여 갔다. 그는 교회와 백성의 돈으로 군대를 유지했고, 긴 전쟁 속에서 군사 제도를 닦아 이후 큰 명성을 얻게 되는 군대를 만들었다. 또 더 큰 사업을 벌이기 위해 언제나 종교를 구실로 삼았다. 겉으로는 경건한 잔혹함이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왕국 안의 마라노들을 추방하고 약탈했다. 이것보다 더 비참하고 보기 드문 일도 드물 것이다. 같은 구실 아래 그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원정을 벌였고, 다시 이탈리아로 들어왔으며, 마침내 프랑스까지 공격했다. 그래서 그는 늘 크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며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갔다. 그의 행동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어서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이에 그를 거스를 시간조차 얻지 못했다.
또한 군주가 자기 나라 안에서 보기 드문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베르나르도 다 카스티오네가 밀라노 공작 바르나보에 대해 전하는 일이 그런 예다. 어떤 시민이 공공의 삶에서 특별한 일을 하든, 선한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군주는 그것을 분명히 평가하고 널리 회자될 만한 방식으로 보답하거나 벌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주는 어떤 행동을 하든 위대한 사람, 뛰어난 인물이라는 인상을 남기도록 힘써야 한다.
군주는 또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이자 진정한 적으로 알려질 때 존경을 얻는다. 곧 숨지 않고 한쪽 편에 분명히 서는 것이다. 이 선택은 언제나 중립보다 더 낫다. 왜냐하면 주변의 강한 두 세력이 서로 싸울 때, 그들 가운데 이긴 쪽이 훗날 당신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당신은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하고 공개적으로 전쟁에 나서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첫 번째 경우, 곧 승리한 쪽이 당신에게도 위협이 되는 경우를 보자. 당신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 승자가 당신을 먹잇감처럼 삼을 가능성이 크다. 패자 역시 당신을 돕거나 피신처를 내주지 않는다. 승자는 위급한 때 도와주지 않은 미덥지 못한 친구를 원하지 않고, 패자는 칼을 들고 함께하지 않은 자를 감싸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카이아 동맹의 지도자 안티오코스가 그리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을 때, 아이톨리아인을 이끌던 사신들이 중립을 권했다. 반대로 로마 대표들은 참전하라고 설득했다.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아카이아인이 회의를 열었을 때, 안티오코스 측 사신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립을 지키는 것보다 너희에게 더 해로운 일은 없다. 그것은 명예도, 감사도 없이 패자의 전리품이 되는 길이다.”
언제나 그렇듯, 당신 편이 아닌 쪽은 중립을 권하고, 당신 편이 되고 싶은 쪽은 무기를 들고 돕기를 바란다. 우유부단한 군주들은 현재의 위험을 피하려고 흔히 중립을 택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선택으로 무너진다. 반대로 당신이 결연하게 한쪽 편을 들었는데, 그 편이 승리한다면, 설령 그가 강해서 당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 해도, 그는 당신에게 일정한 의무와 우정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배은망덕의 악명을 뒤집어쓸 만큼 악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승리도 정의를 모두 짓밟고 약속까지 모조리 버릴 정도는 못 된다. 반대로 당신 편이 진다면, 그는 당신을 받아 주고, 가능한 한 도와 주며,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행운을 함께 기다리는 동료가 된다.
두 번째 경우, 곧 어느 쪽이 이겨도 당신을 직접 위협할 만큼 강하지 않은 경우라면, 한쪽 편에 서는 일은 더욱 현명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다른 한쪽의 도움을 받아 한 세력을 무너뜨리는 데 참여하는 셈이 되고, 이긴 쪽은 당신 덕분에 이긴 만큼 당신 영향 아래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또 당신 편은 당신 도움이 있었기에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군주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보다 힘이 센 자와 손잡아 제3자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그 결과 그 강자의 손에 자신을 넘겨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현명한 군주는 가능한 한 그런 처지를 피해야 한다. 베네치아는 프랑스와 손잡고 밀라노 공작을 공격했고, 바로 그 선택 때문에 자기 몰락을 불러왔다. 물론 그런 동맹이 불가피할 때도 있다. 앞서 피렌체와 교황이 스페인군의 롬바르디아 침공을 막으려 했을 때처럼,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중립을 택해서는 안 된다. 그런 믿음은 결코 옳지 않다. 당신은 언제나 어떤 쪽이든 선택해야 한다.
또한 군주는 자신보다 더 강한 자의 편에 서서 누군가를 공격하는 일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이기면 그 강자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군주는 남의 의지와 운명 아래 놓이는 일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베네치아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들은 프랑스를 불러들여 밀라노 공작을 공격하게 했고, 그것이 자기 몰락으로 이어졌다. 물론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피할 수 있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다.
군주는 또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불러들여 나라 안의 중요한 직책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가 능력에서 앞서고, 백성이 그를 믿고, 병사들이 따르기 시작하면 결국 군주의 자리가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는 신하를 쓸 때에도, 그가 군주 없이 설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많이 받아야 하고, 자주 도움이 필요해야 하며, 쉽게 다른 삶을 꿈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늘 군주에게 충실할 수밖에 없다.
제22장 — 군주의 측근과 비서들에 대하여
군주가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우선 그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두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유능하고 충실하다면, 군주는 현명하다고 평가받아도 좋다. 그런 사람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충성스럽게 붙들어 둘 줄 알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이 그렇지 않다면, 군주에 대한 첫 판단도 좋을 수 없다. 그가 첫 선택부터 잘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판돌포 페트루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안토니오 다 베나프로를 곁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판돌포를 매우 현명한 군주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람의 지능은 세 종류다. 하나는 스스로 이해하는 사람, 하나는 남이 설명해 주면 이해하는 사람, 하나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남이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첫 번째는 가장 뛰어나고, 두 번째도 훌륭하며, 세 번째는 아무 쓸모가 없다. 따라서 판돌포가 첫 번째 부류의 인물이 아니었다 해도, 적어도 두 번째에는 속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할 때 그것의 선악을 분별할 만한 판단력만 있어도, 설령 스스로는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는 신하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알아볼 수 있다. 좋은 것은 북돋우고 나쁜 것은 꾸짖을 수 있으며, 신하는 그를 속이리라는 희망을 품지 못하고 충실하게 남는다.
군주가 신하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쉬운 기준이 하나 있다. 신하가 자기 일보다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고, 모든 일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 든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좋은 신하가 아니며, 군주도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일을 맡은 자는 자기 일이 아니라 군주의 일만 생각해야 하고, 군주에 관한 일 말고는 군주 앞에서 다른 무엇도 떠올려서는 안 된다.
반면 군주는 신하의 충성을 붙들어 두기 위해 그를 존중하고, 넉넉히 대하며,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또 그가 품위와 재산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어야 하고, 명예와 무거운 책임을 함께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하는 군주 없이는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명예를 많이 누리는 자는 더 많은 명예를 두려워하고, 부를 많이 누리는 자는 더 많은 재산을 지키려 하며, 책임이 큰 자는 변화보다 안정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주와 신하가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면, 그 관계는 오래간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결국 둘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손해를 입는다.
제23장 — 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이미 말한 여러 점들과 관련해, 군주가 빠지기 쉬운 또 하나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현명한 군주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빠져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아첨꾼의 문제다. 궁정은 아첨꾼으로 가득하다. 사람은 자기 일에 너무 쉽게 만족하고, 자기 판단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 병을 피하기가 몹시 어렵다. 게다가 그것을 피하려고만 하다 보면, 오히려 경멸을 살 위험도 있다. 아첨을 막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도 당신이 화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알리면, 그들이 당신을 존중하지 않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세 번째 길을 택해야 한다. 자기 나라 안에서 현명한 사람들을 골라, 오직 그들만이 진실을 말할 자유를 갖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도 군주가 묻는 문제에 대해서만 허락하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게 해야 한다. 그러나 군주는 모든 것을 묻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그 뒤에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또 그 조언자들과 따로따로 이야기하며, 각자가 두려움 없이 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많이 들을수록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밖의 누구에게도 귀를 열어 두어서는 안 된다. 이미 정한 결정을 밀고 나가야 하고, 그 결정을 굳게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군주는, 아첨꾼들에게 휘둘리거나, 여러 의견에 흔들려 자주 태도를 바꾸는 인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면 존중을 잃는다.
현대의 예 하나를 들겠다. 현재 황제 막시밀리안의 일인데, 그는 남의 조언을 구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남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워낙 많고, 또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 했기 때문에, 실행 단계에 이르러 언제나 실패했다. 그는 스스로 결단하지 못했고, 남의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고, 시작했다가도 중간에 포기하곤 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그는 많은 일을 꿈꾸었지만 이룬 것은 적었다.
그러므로 군주는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만 구해야 한다. 남이 먼저 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군주 자신이 많이 묻고, 그가 묻는 문제에 대해서는 인내심 있게 진실을 들어야 한다. 또 누군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기색이 보이면 화를 내야 한다. 많은 사람은 군주가 현명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을, 자기 주변의 좋은 조언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예외 없이 참된 규칙은 이렇다. 현명하지 않은 군주는, 아주 우연히 모든 것을 제대로 아는 유능한 조언자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는 한, 좋은 조언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경우에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 조언자가 곧 나라를 빼앗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면, 현명하지 않은 군주는 여러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도 못하고, 그 차이를 스스로 판단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익을 따르므로, 군주가 그들을 바로잡을 줄 모르면 그들은 언제나 자기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
결론은 이렇다. 좋은 조언은, 그것이 누구에게서 나오든, 군주의 지혜에서 나와야 한다. 군주의 지혜가 좋은 조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제24장 —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왜 나라를 잃었는가
앞서 말한 내용을 지혜롭게 지키는 새 군주는, 오래된 군주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들보다 더 빨리 더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다. 왜냐하면 새 군주의 행동은 세습 군주의 행동보다 훨씬 더 주목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크고 뛰어나다면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과거보다 현재에 더 끌린다. 사람은 만족스러우면 지금 누리는 것에 기꺼이 마음을 준다. 또 현재가 충분히 좋다면 과거를 들춰 다른 것을 찾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나라를 잃은 일도, 그런 일반 법칙을 몰랐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나폴리 왕, 밀라노 공작, 다른 여러 군주들은 오랫동안 나라를 지켜 왔는데도 한순간에 그것을 잃었다. 그 이유를 운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쉽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운명은 인간이 제대로 대비하지 않을 때만 힘을 얻는다. 그들은 평화로운 시기에 닥쳐올 폭풍을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온할 때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닥쳤을 때,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방도를 찾기보다 도망칠 생각부터 했다. 그리고 백성이 정복자의 오만함에 싫증을 내면 다시 불러 주리라고 기대했다. 아무 희망도 남지 않았을 때 그런 기대에 매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최선책을 포기하고 가장 나쁜 수단에 기대는 태도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따라서 군주는 오직 자기 잘못 때문에 나라를 잃은 것이지, 운명의 힘 때문에 잃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평화로운 시기에 다가올 위험을 생각하지 않았고, 이것은 인간에게 아주 흔한 결함이다. 또 위험이 실제로 닥치자, 자신을 방어하기보다 달아나기만 했고, 백성이 언젠가 자기를 다시 불러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었다. 다른 길이 전혀 없을 때 그런 방식에 기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수단들을 버리고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은 비겁하다. 넘어졌다고 해서 누군가가 다시 일으켜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기대는 맞아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설령 맞아떨어진다 해도, 그것은 당신 스스로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남의 손에 의해 일어서는 것은 자신을 구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로 좋은 방어책, 참으로 확실하고 오래가는 방어책은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역량에 기대는 것뿐이다.
제25장 — 인간사에서 운명이 미치는 힘과 그것에 맞서는 방법
인간사는 운명과 하느님이 지배하며, 사람은 어떤 지혜로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그저 운명에 몸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큰 변동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때때로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자유의지가 완전히 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명이 인간사 절반쯤을 다스린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 적어도 그에 가까운 부분은 여전히 우리 손에 맡겨져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나는 운명을, 평소에는 조용히 흐르다가 비가 많이 오면 범람하여 들판을 잠기게 하고, 나무와 건물을 쓰러뜨리고, 흙을 한곳에서 쓸어 다른 곳에 쌓아 버리는 거센 강에 비유하고 싶다. 그런 강물이 밀려오면 누구나 그 앞에서 달아나고, 그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막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물살이 잦아든 평상시에 둑과 제방을 쌓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다면, 다음 홍수는 운하로 흘러가게 하거나, 적어도 그 힘이 덜 거세지도록 만들 수 있다.
운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디서도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힘을 드러낸다. 그리고 사람들의 저항이 어디에 없는지 잘 알기 때문에, 거기로 힘을 쏟아붓는다. 이탈리아를 보라. 변화의 본거지이자 그 변화를 몰고 온 힘의 집결지였던 이탈리아는 평야처럼 텅 빈 땅이었다. 독일처럼 둑과 제방이 있었더라면, 프랑스와 스페인, 스위스가 몰고 온 큰 변화가 그렇게까지 나라를 휩쓸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 변화는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만으로도, 운명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에 대한 일반론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제 더 구체적으로 보자. 어제는 번영하던 군주가 오늘 갑자기 몰락하는 일을 우리는 본다. 그런데 그의 성격이나 능력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앞서 길게 말했듯, 전적으로 운명에만 기대고 있던 자가 운명이 바뀌면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 시대와 상황의 성격에 맞춰 자기 태도를 바꿀 줄 아는 사람은 잘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잘되지 못한다고 본다.
또한 사람은 각자 자기 목적, 곧 명예와 부를 얻으려 할 때 아주 다른 길을 택한다.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가고, 어떤 이는 성급하게 나아간다. 어떤 이는 폭력으로 밀어붙이고, 어떤 이는 책략으로 움직인다. 어떤 이는 인내로 버티고, 어떤 이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그런데도 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모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또 같은 방식으로 가더라도 한 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사람은 실패한다. 이것이 바로 이유다. 시대와 사정에 어떤 방식은 맞고, 어떤 방식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걸어도 한쪽은 성공하고 다른 쪽은 실패하는 것이다. 또 서로 정반대 방식으로 움직여도 둘 다 성공할 수 있다. 각자의 방식이 시대에 잘 들어맞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타고난 성향을 잘 바꾸지 못한다. 오랫동안 한 방식으로 성공해 온 사람은 더더욱 그 길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중한 사람은 필요할 때 대담해지지 못하고, 그 때문에 망한다. 반대로 시대와 상황에 맞춰 자기 성향을 바꿀 수 있다면, 그의 운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언제나 성급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시대와 환경이 그 기질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져, 그는 모든 일에서 성공했다. 그가 볼로냐 원정에 나설 때를 생각해 보자. 베네치아는 아직 살아 있었고, 스페인 국왕은 그 계획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프랑스 왕과도 그 원정을 두고 줄다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타고난 기질대로 거칠고 단호하게 먼저 움직였다. 이 행동에 스페인과 베네치아는 얼어붙었다. 베네치아는 두려워했고, 스페인은 나폴리 전역을 원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프랑스 왕까지 자기 쪽으로 끌어들였다. 왕은 그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보고, 베네치아를 꺾으려면 그를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군대를 내주었다.
따라서 율리우스는 어떤 신중한 군주도 해내지 못했을 일을 그 돌진하는 태도로 해냈다. 만약 그가 다른 군주들처럼 모든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로마에서 기다리려 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왕은 온갖 핑계를 대며 미뤘을 것이고, 다른 이들 역시 온갖 두려움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의 다른 행동들은 접어두겠다. 그것들도 모두 비슷했고, 모두 성공했다. 재위 기간이 짧았던 것도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그와 반대되는 태도가 필요해질 만큼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신중함이 꼭 필요한 시대가 왔다면, 그는 망했을 것이다. 본성이 시키는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운명은 바뀌지만 인간은 자기 길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둘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는 성공하고, 어긋날 때는 실패한다. 나는 또한 조심스러운 태도보다 대담한 태도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운명은 여자와 같아서, 제압하려면 거칠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명은 차갑고 조심스러운 사람보다, 뜨겁고 성급한 사람에게 더 자주 굴복한다. 그래서 여자처럼 늘 젊은 사람의 편에 더 기운다. 젊은이는 덜 조심스럽고 더 사납게 밀어붙이며, 더 대담하게 그녀를 다루기 때문이다.
제26장 — 야만인의 손에서 이탈리아를 해방하라는 권고
앞서 논의한 모든 내용을 곰곰이 따져 본 끝에, 이제 나는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이탈리아에는 새로운 군주가 나타나 그 위대함과 영광을 드러낼 충분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불행에 짓눌린 이 땅이 새로운 구원자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정의로운 전쟁을 위해 깃발을 들고 나설 누군가를 이탈리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모세보다 더 큰 이유를 가진 사람도, 키루스보다 더 뛰어난 기회를 얻은 사람도, 테세우스보다 더 정당한 필요를 지닌 사람도 지금은 없다. 이탈리아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고, 페르시아인보다 더 억눌려 있으며, 아테네인보다 더 흩어져 있다. 지도자도 없고, 질서도 없고, 상처 입고 약탈당하며, 찢기고 유린당해 온갖 파멸을 겪었다.
지금까지는 누군가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탈리아를 구원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인물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결정적 순간이 오면 운명이 그들을 밀어냈다. 그래서 생명만 남은 듯한 이 나라는 누구든 와서 그 상처를 꿰매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롬바르디아가 어떻게 짓밟히고 수탈당했는지, 나폴리 왕국과 토스카나가 어떤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는지, 이 모든 외적의 오만한 폭력을 씻어 줄 사람이 없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지 보라. 또한 이탈리아가 누군가를 믿고 따르려는 자세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도 보라. 깃발만 세워지면 그 아래 모여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나설 수 없다. 메디치 가문보다 더 큰 희망을 줄 수 있는 집안도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교회의 은총을 함께 받는 그 집안은 지금 이탈리아 구원의 맨 앞에 서 있다. 물론 이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인물들의 삶과 행적을 떠올려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들 역시 뛰어난 사람들은 맞지만, 그래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맞이한 기회가 지금보다 더 나았던 것도 아니다. 그들의 일도 지금보다 더 정당하지 않았고, 더 쉬웠던 것도 아니었다. 또한 하느님은 그들보다 지금 우리에게 덜 가까이 계신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큰 정의가 있다.정의가 있는 곳에서는 무기도 힘을 얻는다.”
또 이탈리아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무장이 준비된 곳에서는 하느님이 뜻을 이루실 길도 열린다. 게다가 이탈리아가 메디치 집안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 집안은 하느님의 은총과 교회의 힘, 또 자기 공덕과 특출한 지혜로 지금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 구원의 일을 이끌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오랜 고난 끝에 이탈리아가 자기 구원자를 보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최근의 외세와 약탈로 짓밟힌 각 지역이 그를 얼마나 큰 사랑으로 맞이할지, 얼마나 목마른 복수심으로 그를 따를지, 얼마나 굳은 믿음과 경건한 눈물로 그를 떠받들지 말이다. 누가 그에게 문을 닫을 수 있겠는가. 누가 그에게 복종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누가 질투로 그의 길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이 야만인의 지배는 모든 이의 코를 찌를 만큼 악취가 난다.
그러므로 명예로운 이 일을 그 집안이 기꺼이 떠맡아야 한다. 정의와 무기로, 그래서 그 깃발 아래 조국이 드높아질 수 있도록 말이다. 페트라르카가 마지막에 했던 말처럼.
“용기는 무기를 들어 광포함에 맞서리라,싸움은 오래가지 않으리니,옛 로마의 힘은 아직이탈리아인의 가슴 속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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